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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시산책
2016년 11월 06일 00시 45분  조회:2819  추천:0  작성자: 죽림
해외 시산책
 

기욤 아폴리네르
 
 
저 투명한 창문에
불온한 tint coatingdmf 덧 씌운자,
기욤 아폴리네르
 
 

                                                                 — Modern Poetry는 이제
                          영원성 보다는 덧없음, 필연성보다는 우연성에 기대어
덧없이 순간적인 것들이 순결한 윤슬처럼 오르피즘의 물결을 타고 마침내
                                                             미학적 위치에 오르게 된다.
                  아폴리네르가 길을 터 수용한 에스프리 누보el'sprit nouveau
                                                                   아방가르드 정신 덕택에
 
                                                                                김영찬 (시인)
 
 
 
  1881년생 피카소(Pablo Picasso)는 19세 때 고향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드
리드를 전전하다가 약관의 나이 24살이 되던 해인 1904년 파리에 정착한
다. 피카소보다 한 살 많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로마
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미혼모인 어머니를 따라 모나코공국에서 극빈하게
살다가 그 또한 19살이 되던 해 리옹을 거쳐 파리로 입성한다. 가난에 찌
든 이들 두 젊은 예술가들은 1905년에 운명적으로 만난다. 몽마르트르라
는 기상천외의 장소가 이들 푸릇푸릇한 20대 중반의 가난뱅이 젊은 예술
혼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모든 것들의 시작, 그들은
시인 막스 자콥(Max Jacob)이 세탁선(Le Bateau Lavoir)이라고 이름 붙인 낡
고 지저분한 건물, 시궁창 냄새와 고양이 오줌자국의 천국인 몽마르트르
의 다락방에서 불행과 무명의 서러움을 견디며 오로지 예술혼을 불태웠
다. 예술만이 전 재산인 그들은 거기에 푹 빠져서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
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시인 아폴리네르가 피카소를 부추겨 그 당시 생경하기 짝
이 없었을 큐비즘에 눈을 뜨게 했다거나, 작가의 눈으로 대상을 특이하게
왜곡시켜 캔버스 위의 반란이 가능토록 추동했을 거라는 말을 하려고 피
카소를 들먹거리는 게 아니다. 당시, 기괴하기 짝이 없던 피카소의 실험적
인 그림을 곁에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옹호한 예술가는 아마도 아폴리네
르(피카소가 아폴리Apoli라고 다정하게 부르던) 보다는 동료화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아폴리가 피카소에게 소개했다) 쪽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큐비즘의 근원을 따진다면 아폴리네르의 언어적 발상, Cubisme
Orphique(Orphic Cubism)은 어휘 이전에 이미 캔버스 위의 혁명으로 활
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찍이 바실리 칸딘스키(Wasilly Kandinsky
1866~1944)가 있었고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가 맹활동
중이지 않았던가. 그들은 아폴리네르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미래파적인
행위에 역동적일 수 있었다.
  “대상을 지워 없애고 오브제가 없는 상태에서, 선과 색과 면만으로도 얼
마든지 캔버스 위의 예술(미술의 독립국가)은 가능하다”(칸딘스키)라며 아
주 멀리까지 진출해 있던 천재들이었으니.
  그러나 어쨌든 당대의 현장시인이자 미술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
한 아폴리네르가, 입체파(Cubisme)라는 간판과 초현실주의(Sur-réalisme)를
작명한 공로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는 이태리의 미래주의자 마리네트
를 도와 미래파선언문을 작성(1913년)한 장본인으로서 당시에, 엉터리 화
가로 조롱 대상에 불과했던 입체파들을 적극 옹호했으며 <입체파화가들
>Les Peintres Cubistes(1913)이라는 최초의 평론집을 내놓는 등 아방가르드
의 후견인으로서 전초병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왜 아
폴리네르 없이도 피카소가 가능했을까, 라고 묻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지 몽마르트르의 거주자라는 동질성을 넘어, 깊은 통
찰과 차원 높은 교감의 세계에서 서로 잘 통하는 관계 그 이상이었기 때문
이다. 그들은 각기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서 서로의 위상을 동반 상승시키
는데 서로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폴리네르는
풋내기 화가 피카소를 천재 화가로 부추기는 평론을 써서 피카소를 세상
에 알린 최초의 미술평론가가 된 셈이고 이것은 1905년의 일이다. 이를 계
기로 두 사람은 급격히 친해졌고 피카소 또한 아폴리네르에게 각별했음을
입명하는 일례로 피카소는 아폴리네르의 일생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연인,
화가이자 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마리 로랑생을 소개한다. 또한 만년에 아
폴리네르가 아내로 맞은 자크린 콜브와의 결혼을 주선한 사람 역시 피카
소였다. 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고수들로서 예술의 진로를 한 차원 위
에서 내려다보는 통찰력을 지녔던 것이다. 우리는 왜 인접예술과의 소통
과 교류(우리 한국문단에는 인접예술과의 대화 채널이 사실상 거의 없다)
에 이처럼 소홀한가. 나는 이점을 곁들여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강조하고 싶다.
 
 

    아폴리네르는, 말라르메처럼 그 우연을 없애버리고자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우
  연성에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는 사고와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친화력을 들어낼 필요가 있고 비록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그것들 상호간의
  교류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시학이란 본질적으로 자의성(恣意
  性)이며, 예견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추론을 통해서도 생겨나게 만들 수 없는
  자유 연상이며, 우연한 발견이며, 도취한 새가 부리로 물어다주는 순결하고도 아
  름다운 이미지이므로 그(아폴리네르)는 우연을 실험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학자로서 보들레르는, 스스로 결정한 것을 정확하게 완성해낼 수 있는 시인
  을 찬양했었다. 그러나 시인은 결국 선택과 결정을 포기하게 되고 말 것이다.
    아마도 시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시행들은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발레리가 구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어떤 새로운 시적
  순수라고 하겠다.
    — 마르셀 레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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