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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책을 보고 시집 간 처녀
2016년 11월 07일 23시 46분  조회:4406  추천:0  작성자: 죽림

책을 보고 시집간 처녀

                                      -상해 텐이각(天一閣)에서-

 

 

 중국 상해(上海)에 텐이각(天一閣)이란 우리나라의 국립도서관 격인 장서각(도서관)이 있다. 내가 언젠가 그곳 상해를 여행 했을 때 계획적으로 찾아 갔던 곳인데 그곳을 들렸던 이후의 감상이 지금 까지도 나와의 대칭의식을 갖게 한다.

 나도 책을 가까이하고 책을 많이 읽는 스스로이기 때문에 대학시절 내가 하숙하는 집이나 자취했던 방엔 온통 책으로 방 구석구석에 책이 쌓여 있어 밤에 겨우 공간을 조금 비집어 잠자리를 만들 정도였고, 대학도서관에 출입하는 학생 중 내가 대본을 제일 많이 해간 학생으로 기록되기도 했으며, 돈이 생기면 제일먼저 책방부터 찾던 나였다. 그런 연유로 같은 급우들이 나를 보고 도서관이란 별호를 지어줬고 경제학 전공의 대학생인 나는 오히려 철학 쪽의 서적을 더 많이 읽고 전공이 아닌 옆길로의 학문에 심취한 나였다. 그 당시 마음으로 다짐하기를, 나는 늙어서 책이 모이면 사설도서관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의 빚이 아직도 쌓여있었기 때문에 그곳 상해에 들린 기회에 이 텐이각(天一閣)이란 도서관을 찾아 그 유명세의 진상을 내 눈으로 확인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과의 약속과 동기로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이 상해의 도서관인 텐이각에 들려보고 싶던 마음은 다름 아닌 중국의 모든 발행문서와 자료, 발행도서 등을 오래전부터 아니 중국의 역사와 함께해

온 글들을 전부 모아 놓은 중국의 서책과 자료를 확인 해 보고 싶어서였다.

 

 어제 토요일은 언제나 버릇처럼 두 권의 책을 사들고 왔다. 두 권의 책 값 이라야 일주일의 모든 생활비용중 책에 투자하는 비용이 제일 적고 양식을 채워주는 수단이요 생활의 지혜가 되고 지식을 넓히며 선지자(先知者)와 선현(先賢)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짐은 말할 것 없고,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기도 해서다. 그러면서 오늘 책상 곁에 쌓여 있던 몇 권의 책을 서재로 옮겼다. 내가 보관중인 장서를 또 한 번 정리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몇 년 전 내가 참여해 설립한 녹색대학에 내 장서 중 용달차로 한 트럭 가득 실어 대학도서관에 보낸 후로 또 책이 쌓여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느끼면서 책들을 살펴보곤 한다.

 

 그리고 이렇게 책들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텐이각의 책을 떠 올린다. 내가 상해에 있는 중국인이 자랑하는 도서관인 텐이각(天一閣)에 들린 여행의 한 모퉁이를 생각는다. 즉 내가 중국 상해의 여행에서 느끼고 보고 접했던 텐이각이란 그 도서관의 역사와 위용이 부러워 마음의 한 구석을 짓눌려 짐은 어쩔 수 없는 넋두리이기는 하지만. 그런 그곳 도서관에 비하면 이따금 내 초라한 서가를 뒤질 때마다 더 없이 간난(艱難)하고, 더 없이 슬프고, 마음 아픈 문화의 기적을 갖는 텐이각(루)의 실화인 전설들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간다.

그렇다면 왜 이 장서각인 텐이각(우리말로 천일각天一閣)을 내 기억으로부터 털어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다. 그 내력의 첫째는 바로 상해의 이 장서각이 그 이름부터가 주술적 철학적 의식을 담고 있었다. 天一閣 (텐이각)이라 이름을 달게 된 장서각은 장서각 창시자가 역경(易經)중의 ‘천일에서 물이 생기다’(天一生水)라는 심오한 뜻을 갖는 뜻에서 빌어, 역대 중국 장서각들의 가장 큰 우환인 화재를 물로 방비(防備)하자는 데서였다한다. 이름부터 진정 주술적 철학을 갖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의미를 띄고 있어 중국인의 생활철학이 엿보인다.

 

 중국도 여느 나라 정황과 같이 내란이나 부족국가들 간의 싸움이 일거나, 왕권이 바뀌고 침략을 받을 때 가장 피해가 심했던 것 중의 하나이고 그 액운(厄運)을 면할 수 없었던 물건이 책이었다. 그런 의식 속에서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원형 그대로 모든 서책과 자료를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다는 지혜와 그 노력들이 오롯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 봐도 학식이 출중한 선비가 역적으로 몰리거나 귀양 보내는 선비의 집이나 글들은 전부 모아 불태우거나 소멸시킨 역사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게 하고 반성해 볼 우리 역사적 사실이 아니더냐. 그래서 일까, 그 텐이각이란 장서각의 이름을 붙이는 데도 철학적 슬기가 숨어 있어 수백 년 동안 역사의 무게를 않은 채 중국 유일의 대형 개인 장서각으로 살아남아 있다. 그 규모도 우리의 규장각의 몇 배의 크기란 점에 또 한편 놀랐다. 지금은 당당히 중국 국가 도서관으로 변했기는 하지만.

 

 두 번째로는 일개 개인의 의지와 힘, 그리고 자료의 경중을 가리지 않은 치밀한 수집의 열의를 높이 볼 수 있다. 이 엄청난 크기의 장서각 창건자는 명(明)나라 때의 환 친(范 欽)이란 사람으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옮겨 다니면서 벼슬을 하고 봉사하며 온갖 서책들과 자료 등 글이 담긴 모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모았고, 그 전통이 후손들에게 계승되어 중국정부의 중앙도서관에는 몇 백 년 전의 자료와 서책이 보관되어 잊지 않아도 이곳 텐이각에는 있다는 데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는 이 장서각에 얽힌 기막힌 일화와 역사다. 환씨의 텐이각(天一閣)에는 명대(明代)로부터 청대(淸代)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광범위한 중국문화의 흔적과 서적들이 수집 보관되어 있는데 중국문화와 역사에 공헌하는 서적문화의 꽃으로 중국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위용을 내뿜고 있다. 이 텐이각이란 장서루가 오늘날 까지 잘 보전되어 역사의 맥을 이어온 데에는 참으로 기막힌 내력과 일화가 많이 숨어 있었다.

이 텐이각에 얽힌 일화 중 기막힌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보자. 

청나라 때 닝버 지사요 세력가였던 츄우테칭(丘鐵卿)의 조카 딸 첸슈윈(錢綉芸)이란 처녀가 있었는데 텐이각의 내력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 처녀는 그 당시의 시(詩)를 읽고 쓰기를 즐기고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텐이각에 올라가 책을 읽어보려고 마음에 작정하고 있었다. 시집을 가야 할 나이에 든 이 처녀는 삼촌인 지사를 졸라 중매형식을 빌어 환씨 가문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 헌데 이 첸슈윈의 결혼이 알려지고 주위에서 뿐만 아니라 널리 소문이 나기를 ‘너는 대체 책에 시집을 간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 시집을 간 것이냐’고 물을 정도로 그 나라의 화젯거리가 될 정도로 전국에 소문이 퍼질 정도이었다. 그 시절의 중국 상황을 보면 중국은 봉건왕권시대였고 상위 귀족가문의 출생으로 그 처녀는 평생을 호의호식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추어 져 있는 그런 집안의 그가 혼인상대나 돈, 명예, 가문과 세력을 모두 마다하고 오로지 혼인관계를 이용하여 책을 읽겠다는 욕심만으로 시집을 갔으니 그 시대의 식자나 현대의 사회학자들 까지도 그로부터 감동을 받았다고 한 결 같이 평가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네 번째로 그 장서각을 보전하고 책을 지키려는 기막힌 역사와 실질이다. 그 장서각을 보전하려는 내력은 아연실색 할 정도이었다.

첸슈윈(錢綉芸)이란 처녀는 이와 같은 숨은 내력을 전혀 몰랐었고 시집만 가면 책을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만 가지고 그 집 식구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나. 그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환씨 가문에 시집을 가서도 텐이각에 접근하지도 올라가지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유인즉 가규(家規)에 부녀자들이 누각에 오르지 못한다는 조목이 있기 때문이라 하기도하고, 시집간 환씨 가문이 이미 갈래를 친 가문이라는 등 추론이 구구하였다. 하여튼 첸슈윈 그녀는 애석하게도 텐이각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한 채 속만 태우다 우울증으로 몸이 겅더리되어 시름시름 병이 깊어져 종국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마음이 찡할 정도로 애잔한 실화이었다.

그렇다면 왜 첸슈윈 그녀는 끝내 비극의 여인이 되었어야 만 했을까? 그런 의문은 곧 다음과 같은 여러 규정이나 관리수칙 등에서 풀릴 수 있었다. 이 장서각엔 이런 규례까지 있었다.

즉, 다섯 번 째로서 이 장서각을 지키려는 기막힌 가문의 규례이었다.

이 장서루가 언젠가는 허물어지거나 멸실될 것을 미리 염려하여 예방대책을 세워놓았다. 그 예방대책 중의 하나가 처벌인데 그 처벌규칙은, 「만일 자손들이 무고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자는 제사에 3차례 참여치 못한다. 자기 마음대로 친구를 데리고 들어가거나 책궤를 여는 자는 1년 동안 제사에 참여시키지 않는다. 마음대로 책을 다른 집이나 다른 성씨 가문에 빌려주는 자는 3년 동안 제사에 참여시키지 않는다. 이런 일로 일을 저질렀을 때는 책임을 추궁하는 외에, 영원히 쫓아내거나 제사에 참여시키지 않는다.」였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까지 이렇게 엄격한 처벌 규칙을 만들어 놓고 지키고 있었는데, 그 처벌 내용은 그 당시의 사회상이 지배했던 사상과 가문의 내침의 법칙이 있었는데 그 중 제일 큰 치욕으로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조상의 제사에 참여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처벌은 가족 혈통 관계에서 엄중한 경고를 받았음을 의미하였는데, 이는 장형(杖刑)이나 채찍 또는 곤장으로 얻어맞는 것보다 더 중한 상징적 처벌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전통을 지극히 중시하고, 가통의 계승과 혈연 및 가족구성원간의 유대와 귀속이 인간사회의 명운을 결정 짖는 중국 사람들의 인습상 그러한 처벌이 내려짐과 결정은 수궁이 가기도 한다.

 

 그리고 여섯 번째로 장서와 장서각의 보존 방법이었다. 텐이각과 책을 지키기 위한 환씨 후손들의 피나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중에서 텐이각의 문을 열고 책을 반출하거나 열람하고자 할 때 지켰던 규정이 또 한 가지 있었다. 즉 아무리 후손들 가족이 번성했다 해도 문을 열려면 반드시 각자의 집에서 100% 동의해야 문을 열도록 해 두었다. 장서루의 문마다, 각 층이나 방의 각각의 책꽂이 열쇠는 집집마다 나누어 보관해 두어 관리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집이라도 빠지거나 문 여는 것을 반대하거나 회의에서 부결되면 문을 열 수 없고 책에 접근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이와 같은 비결의 유지가 지속되었기에 오늘에 까지 전해오는 중국의 유일무이한 장서각의 원형그대로의 위용이요, 역사요, 궁지이며 오롯이 모든 서책을 수집해 모은 모든 자료를 보존할 수 있었던 힘이었으며 이곳은 그와 같은 노력의 산물로 오늘 날 귀중히 여기는 중국문화의 산물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욱 그 텐이각 문을 외부 사람들에게 절대 접근을 허용치 않고 닫은 채 지켜오다 외부 사람에게 문을 연 적이 있었다고 전하는 대목이다. 무려 장서루 문을 잠근 지 200여 년이 지난 1673년 그 장서각 문을 환씨가문의 만장일치 동의에 의해 열었으니 그 문을 열게 한 사람이 곧 그 시대의 유명한 대학자 황중시(黃宗義)였다 한다. 그러니 장서각의 며느리라 할지라도 어떻게 그 장서각의 문을 열어 책을 읽어 볼 수 있었겠는가? 책을 보고, 책을 읽고 싶은 욕망만으로 그 집안으로 시집간 처녀인 첸슈윈은 이와 같은 사연으로 결국 비련의 역사적 여인이 되고 만 것이다.

 지금도 엄격한 관리를 함은 말할 나이도 없거니와 요즘엔 널리 별도의 도서관까지 부설시켜 도서관의 소임을 다하게 하고 있고, 중국의 모든 역사기록과 문화의 기록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천일각의 위용은 가히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할 만한 문화의식 전수의 한 단면을 내가 보고 내 스스로 감탄사를 크게 토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사화(史禍)가 있었거나 역적(逆賊)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정변이 일 때마다 선비나 유명 인사들의 지적자료나 서책이나 학문 등을 말살시키기 위해 저서들을 불사르거나 폐기시켰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이 중국의 천일각과 우리나라의 그런 통한(痛恨)의 역사를 생각하게하고 나로 하여금 대칭의식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그곳 텐이각에 들려 들은 이야기와 그 역사 등 텐이각에 얽힌 사연들을 음미하면서 인본주의 기백이라곤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중국이 옛날의 봉건사회에서, 한 처녀의 생명이 얼마나 강인하고 취약하게 자기의 문화적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많은 책을 곁에 두고서도 한권의 책도 읽지 못하고 죽고 만 그녀의 영혼이 아직까지 구천을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서 그 혼령에 책을 전할 수 있다면 전하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애잔한 마음이 든다. 내가 오랫동안 실천해 오고 있는 책읽기 운동의 일환으로 펼치고 있는 “철부지들의 길 떠나는 책“을 가지고 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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