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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를 얻기 위하여 땅을 파서 지하수를 괴게 한 설비.
맨땅을 깊거나 얕게 파서 물이 괴게 하는 토정(土井)과 바위틈 사이로 솟거나 흐르는 물을 괴게 하는 석정(石井)이 있다. 석정은 바위를 옴폭하게 파서 만든 것과 그 위에 다시 시설을 첨가하여 완성하는 것이 있다.
솟아서 괴는 물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물홈을 판 수통[椧]을 설치하는 상수도시설을 하여서 골짜기 아래의 절이나 정자, 살림집들에 급수할 수 있게 한다. 맨땅을 파서 깊이 만들었을 때에는 물기를 머금은 우물벽이 무너질 염려가 있으므로 통나무[椿木]를 둘레에 촘촘히 박아 방지한다.
급하게 임시변통하는 군진(軍陣)의 우물이나 습지에 가까운 지대의 우물에 이러한 장치를 하는 데 비하여 영구적인 우물에서는 알맞은 돌을 쌓아올려 벽을 구성한다. 돌 쌓는 기법은 매우 정교하다. 샘물의 출입이 자유스러워야 하기 때문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쌓아야 한다.
한번 집수(集水)된 물은 잦아들거나 흘러나가지 않도록 저수(貯水)가 되어야 유리하므로 그 점도 고려하고 쌓아야 한다. 물의 성질을 천연스럽게 유지하고 탁하거나 썩지 않게 하기 위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발달된 축조법이 공돌쌓기인데, 돌과 돌을 이맞추어 쌓는 기법으로 돌각담 쌓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물돌은 운두가 낮고 뒤뿌리가 길찍하여야 한다. 접착시키는 모르타르 등을 이용하지 않고 돌만으로 쌓아야 하기 때문에 돌끼리 편하게 놓여야 토압(土壓) 등으로 인한 충격을 감당해낼 수 있다. 물에 닿는 돌의 표면은 거칠면서도 궁글리게 하는 방법으로 다듬는다. 그래야 물에 자극을 주어 늘 유동하게 하기 때문이다.
들여다보는 물은 마치 그릇에 담긴 물처럼 정체되어 있는 듯이 보이나 실제로는 솟는 샘물로 인하여 늘 유동하고 있다. 이 유동을 적절히 자극하여줌으로써 물의 성격을 차분하게 하고, 맑고 깨끗하고 차고 맛있게 만들어준다. 돌을 쌓아 만든 우물의 대규모 작례(作例)가 공주산성에서 발굴된 연지(淵池)이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골짜기의 물을 방죽[堤堰]을 쌓아 막고, 방죽에 괸 물을 아래로 흘려주어 다시 머물게 한 저수시설이 연지이다. 거대한 우물인데, 금강에 면하게 된 쪽은 우물벽 쌓는 기법으로 하여 금강의 수위에 따라 맑은 물이 스며들고, 그래서 우물의 수량은 늘 필요한 만큼의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하였다.
규모가 커서 우물 구멍도 넓고 쌓아올린 돌벽도 거대한데, 사면에 따라 쌓는 방식이 다르다. 절벽같이 쌓은 부분, 부른 배가 불거진 부분, 층층대 쌓듯이 꾸민 부분 등이 있어서 스며든 물이 이에 따라 늘 흐를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이러한 축조기법은 서라벌의 안압지(雁鴨池)에서도 볼 수 있다.
늘 물이 알맞은 속도로 흐르게 하여서 머물면서 썩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이러한 거대한 우물은 남한산성에도 있다. 지수당(地水塘)이 그것인데, 소·말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한 시설이다. 우물의 벽체는 지표의 높이까지만 쌓는다. 지표 위로 노출되는 부분에는 통나무를 井자형으로 쌓아 설치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방식이었다.
고구려에서도 그러한 우물 구조가 보편적이었다. 안악제3호분(安岳第三號墳)이라는 황해도 안악 지방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묘사된 생활풍속도에서도 그러한 구성의 우물을 볼 수 있다. 용두레까지 설비된 이 우물 가에는 고구려 여인들의 자태도 있다.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井자형의 꾸밈을 석재로 한다.
분황사(芬皇寺)의 우물돌이나 김유신(金庾信)장군 집의 재매정(財買井) 등은 상대작품(上代作品)의 유례(遺例)인데 아직도 신라시대의 우물과 우물돌은 상당수 남아 있다. 또, 첨성대의 모습은 정수(井宿)라고 하여 별이 머무는 우물의 형태를 구현한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 우물 중에는 창덕궁 후원의 어정(御井)이 으뜸이다.
물맛이 좋고, 시원하고 차며, 우물돌의 시설이나 주변 정리 등이 일품이다. 우물은 용궁에 드나드는 출입구로도 인식되었다. 한우물[大井]이라는 개성의 우물은 고려시대 현인들이 서해용궁에 드나들던 출입구로 이용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미개시대 사람은 자연에 있는 샘 또는 하천 등에서 음료수를 구하고 인공적인 우물의 필요가 없었는데, 인구의 증대와 함께 자연수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땅을 파내려가서 지하수를 이용하는 우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산기슭지대에서는 산을 향해서 수평으로 판 우물이 있는데, 이것을 수평우물이라고 한다. 또한 석유 ·천연가스의 채취 또는 온천 ·지열가스의 탐사를 위하여 파는 구멍도 넓은 뜻에서는 우물에 속한다. 샘이나 하천을 이용한 자연우물의 유적은 발견하기 어려우나 굴착우물의 예는 많다.
고대 중국에서 불교의 전도와 함께 우물굴착기술이 도입되어 우물에 관한 전설이 전래되고 있는데, 이는 물을 신성시하는 옛 관습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생활에 물은 불가결한 것이므로 태고시대의 인류는 강변에 취락을 형성하여 거주하였다. 그후 우물 파는 법을 알게 되자 비로소 광대한 들로 진출해서 농경이나 목축을 영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음료수와 가정 잡용수는 거의 우물물을 사용하였으며, 전답관개에서도 주로 우물물에 의존하였다. 근대화와 함께 공업성장으로 각종 공업용수도 초기에는 거의 지하수에 의존하여 우물파기가 성행하였다. 근래에 와서 도시화에 따라 많은 고층건물이 건설되고 있는데, 그 잡용수 ·냉방용수도 지하수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시가지 및 공장지역에서는 지하수가 점차 고갈되고, 나아가서는 지반침하(地盤沈下)가 발생하여 교통이나 환경위생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외국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물에서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채취하고 있는 지방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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