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현직 대통령 시계의 워치페이스(시계상판)들. 사진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시계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총회장이 2일 오후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연수원 '평화의 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총회장의 손목에 청와대 박근헤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가 보이고 있다. 가평=고영권 기자

지난 2일 사죄 기자회견을 한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총회장의 시계가 논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손목 시계를 이 총회장이 지니고 있는 것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자 박 전 대통령측은 집권 당시 제작하지도 않은 ‘가짜’라고 일축했다. 그러자 온라인상에선 일부 국회의원들에게만 전달된 ‘한정판’일 가능성이 제기됐고, 여기에 “과거 정치활동을 했던 성도가 자신이 가진 ‘박근혜 시계’를 선물한 것”이라는 신천지측의 해명이 더해지며 논란은 더 커졌다.

진품 가품 여부와 상관없이 이 총회장의 철 지난 ‘박근혜 시계’ 논란은 역대 대통령 시계의 기억을 소환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 시계는 ‘손목 위의 완장’ 같은 존재였다. 대통령으로부터 시계를 선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최고 권력자의 측근이자 그 비호를 받는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 후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사회는 바뀌었지만 이 같은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권력 자체를 상징하던 대통령 시계는 점차 지지자들 사이의 ‘레어템’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 특히 정권 초기 대통령 시계에 대한 갈망이 넘치면서 ‘짝퉁’이 등장, 유통되기도 했다.

짝퉁 대통령 시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에는 무서워서 누구도 만들 엄두를 못 냈고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는 권력에 억눌렸던 한을 풀 듯 다량 제작해 각계에 선물했기 때문에 굳이 가짜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특히, ‘김대중 시계’의 경우 10 종류 이상 제작됐는데 남북 정상회담이나 한일월드컵, 노벨평화상 수상 등 각종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한 시계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청와대뿐 아니라 집권 여당에서도 김대중 시계를 선물용으로 제작해 배포했고,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시계는 아예 선물용과 판매용 두 가지 종류로 제작하기도 했다.

종로 시계방에서 만들어진 가짜 이명박 시계, 가짜 박근혜 시계

가짜 대통령 시계가 본격적으로 유통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이 전 대통령의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정부 출범과 동시에 가짜 ‘이명박 시계’ 1,300여개가 청계천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상인들이 무더기로 적발돼 실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그러나 퇴임 후 이 전 대통령의 인기가 폭락하면서 이명박 시계 역시 값어치가 하락했다. 현재 인터넷 중고 거래장터에선 5만 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2종류의 대통령 시계를 제작했는데 대중적 인기가 높지 않아 가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지층을 중심으로 구매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중고 시세가 25만원 선 정도로 높은 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권력의 상징처럼 비칠 수 있는 기념 시계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가 2013년 광복절 이후 청와대 방문객 중 일부 인사들에게만 기념 시계를 선물했다. ‘박근혜 시계’는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가짜조차 인기를 끄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검찰이 가짜를 제작해 유통한 업자를 재판에 넘기는 일도 있었는데, 해당 피의자가 과거 가짜 이명박 시계 제작자로 드러나기도 했다.

대통령 시계의 뒷면 문구.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노무현, 이명박 시계.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제작한 시계 뒷면에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는 각인이 선명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도 ‘VIP 시계’를 제작했다. 통상 총리가 대통령을 대행해 선물하는 시계의 경우 전면에 봉황 무늬는 있으나 대통령의 서명이 없고 시계 뒷면에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글씨만 새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황 전 총리는 시계 뒷면에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고 자신의 이름까지 새겨 넣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황교안 시계’ 역시 당시 중고 장터에 나왔는데, 권한대행 시계라는 희소성 덕분에 20만원 선에 거래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도 시계를 만들었다. ‘문재인 시계’는 청와대 행사에 초청된 손님에게 1인당 1개씩만 선물로 증정한다. 시계를 한 번 선물 받은 사람은 두 번째 방문 시엔 시계 대신 다른 선물을 받게 된다. 청와대가 선물 수령자 명단과 시계 수령자 명단을 일일이 대조해 확인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시계를 두 번 받는 경우는 없다. 청와대는 “증정용 기념 시계의 시리얼 넘버를 관리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확인했다. 집권 초기 문 대통령 자신도 문재인 시계를 받지 못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도 못구한다는 '문재인 시계'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종이오리기로 문재인시계만들기와 스마트와치의 와치페이스를 공유하고 있다.

대통령 시계는 보통 증정용이지만 중고 장터에서는 꾸준히 거래되고 있다. 시계 자체의 희소성이나 당시 대통령의 인기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진품 박정희 시계의 경우 빈티지로써의 가치가 인정돼 50만원선에 거래된다. 전두환 시계는 7만원, 노태우 시계는 4만원, 김영삼 시계는 5만원, 김대중 시계는 15만원 선이다.

‘손목 위의 완장’ 대통령 시계의 증정 취지는 어느 대통령을 막론하고 사회 공익과 질서 유지를 위한 희생, 봉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그러나 여기에 권력이라는 인간의 탐욕이 얹히면서 의미는 변질됐다.

이 총회장 손목 위의 철 지난 대통령 시계는 그 진위와 정치적 의도를 떠나 스스로가 무상한 권력에 기대 허황된 꿈을 쫓고 있음을 증명한 소품에 불과했다.

/류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