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계’가 난리다. 지난 2일 기자회견 도중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착용한 ‘박근혜 시계’ 정품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사과 큰절’은 잊히고, 금장으로 치장한 시계만 빛낸 꼴이 됐다. 이만희 교주가 찬 시계가 관심을 끈 덕분인지 ‘대통령 시계’ 키워드는 4일 오후 현재 네이버 쇼핑 시계 분야 2위를 질주 중이다.
■대통령 시계가 뭡니까?
첫 대통령 시계 출시는 ‘박정희 정권’ 때다. 위엄 있는 봉황 문양과 친필 서명을 넣은 손목시계와 탁상시계다. 당시 보기 드문 ‘오토매틱 무브먼트’ 기술을 접목했다.
시계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1970년대. 청와대에서 만찬을 즐긴 새마을지도자들이 첫 선물을 받았다. 이후 시계는 보통 국가유공자나 외빈 선물용으로 쓰였으며, 1982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종합 우승 복싱 선수단, 보훈가족 등에도 증정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내규에 따라 청와대 행사 초청자, 훈장 포장 대상자, 생일을 맞은 청와대 직원에게 시계를 선물로 준다.
시계 제작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실 담당이다. 일반 예산으로 개당 4만 원에 제작한다. 납품량은 매월 1000여 개. 시계마다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수령자는 모두 기록해 관리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시계 전문 중소기업에 의뢰해 제작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업체명은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시계는 정·관·재계 등에서 현 정부 ‘실세’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정치권에서도 특별한 친분 없이는 받기 힘들다고.
부산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시계가 여권 일각에서 ‘이니(인이) 시계’로 불리며 인기가 고공행진했다”면서 “청와대 관리가 워낙 철통이어서 김정숙 여사에게 특별히 부탁해도 받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근무했던 미래통합당 이성권 부산진을 예비후보는 “당시 시계를 요청하려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줄 것인지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일했던 이해성 민생당 부산시당위원장도 “‘노사모’ 회원은 대통령 시계 가지는 걸 영광으로 여겼다. 다만 시계와 관련된 일화까지는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최고 디자인은?
엇비슷하지만 시계마다 디자인은 제각각이다. 여러 가지 출시 버전이 있지만, 기본 모델만 보자.
‘깔끔형’은 박정희, 전두환, 노무현, 박근혜 시계다. 분·초침과 봉황문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은장’을 둘렀다.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 나는 요일, 날짜를 표기하기도 했다. 노무현 시계는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사각형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화려형’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시계. 테두리나 시간 문양 등에 눈에 띄는 노란색 빛의 금장을 둘렀다. 노태우 시계의 일부 버전은 알알이 박힌 화려한 금테두리가 눈길을 끈다.
‘도시형’은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 시계다. 요즘 유행하는 은은한 로즈골드색으로 분위기를 냈다.
각 시계 뒷면은 해당 정부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김영삼 시계 뒷면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 적혔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의 좌우명이다. ‘세계화 추진’ 정부답게 영문으로도 새겼다.
노무현 시계에는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 노무현’ 문구가 새겨졌다. 이명박 시계에는 대통령 내외의 친필 사인으로 장식됐다.
‘스폐셜 에디션’도 출시됐다. 김대중 시계는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시계 두 종류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와 한국 시각을 동시에 나타내는 시계를 만들어 이라크로 파병된 자이툰부대에 선물했다.
■‘유니크’할수록 비싸…최고 ‘중고 시계’는?
이만희 교주의 박근혜 시계 착용 논란에 ‘대통령 시계’ 몸값이 덩달아 뛰고 있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 중고거래 사이트 등 곳곳에서 시계 판매글이 줄줄이 올라온다. 남녀 세트에 스폐셜 에디션까지 등장했다. 케이스, 보증서까지 있어 애프터서비스까지 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박정희 시계가 60만 원으로 월등히 비싸다. 일각에서는 정권에 대한 향수, 최초의 청와대 시계, 제작 방식(일제 오토매틱 무브먼트)이 인기를 끈 것으로 본다.
이어 모델과 상품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재인, 박근혜, 노무현 시계 순으로 가격이 높다. 시계에 새겨진 대통령 이름 위치 등도 제각각이어서 짝퉁인지 진짜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박근혜 시계는 11만 원으로 시세가 형성된 이후 한때 30만 원 이상으로 올랐다. 그러나 탄핵 이후 1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다시 가격이 오르는 추세다. 노무현 시계는 대통령 서거 이후, 유족 기부 명목으로 180만 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짝퉁 제조는 불법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봉황 휘장과 서명이 각각 공기호(정부기관 인장·서명·기호), 공서명(정부기관 관계자 서명)이어서 위조해서 만들면 안 된다. 민정수석실에서 위조품 유통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우리도 있다
기념 시계는 앞선 대통령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도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자신의 이름으로 시계를 제작했다. 국무총리 신분으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기 때문에 봉황 문양은 새겨지지 않았다. 황교안 시계도 20만 원 내외로 가격이 형성됐다. 특히 중고나라 사이트 등에서는 판매자보다 구매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권한대행이다 보니 제작 물량도 적고, ‘권한대행 시계’라는 희소성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 밖에 정세균, 문희상, 정의화 등 전·현직 국회의장, 일부 지역 국회의원 등도 시계를 제작했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10만 원 내외로 거래되고 있다. 국회 문양과 함께 자신의 이름 석자나 ‘국무총리’ 등의 문구를 새기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박세익·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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