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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인 - 롤프 디터 브링크만
2016년 11월 26일 22시 11분  조회:3978  추천:0  작성자: 죽림
롤프 디터 브링크만(Rolf Dieter Brinkman)

롤프 디터 브링크만(1940~75)은 독일 베흐타 출생으로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학교 공부를 중단하였다. 세무서 관리와 서점 점원의 견습생활을 했던 그는, 1962년 쾰른으로 가 교육대학에 입학한다. 이후 자유문필가로 활동하며 詩作활동과 함께 영화와 사진 작업을 병행한다. 국내외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어렵게 생활을 유지했던 그는,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지를 돌며 방랑 생활을 하던 중 런던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사후 페트라르카 상을 수상한다. 번역된 시집으로는 『빨랫줄 위의 비애』(고려원, 1995)가 있다.


롤프 디터 브링크만의 세세계 ··· 이유선

1945년 패전 이후 정치적, 물질적, 정신적 폐허 속에서 독일시는 그동안 함께 한 역사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숙고와 반성보다는,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기 때문에 오히려 일종의 도피로써 자연시나 비정치적인 절대적 가치만을 추구한다. 이러한 잠정적인 방황 뒤에 독일시는 전쟁으로 단절된 20세기 초기의 전동을 다시 이어받으면서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50년대 벤이 재평가되면서 그의 절대시를 추종하는 바흐만과 첼란의 밀폐시류, 60년대 브레히트의 영향 아래에서 비판적 역사, 사회의식을 시로 표현하려 했던 엔젠스베르거, 비어만의 정치시류 그리고 언어자료적 측면을 극단화시킨 곰링어, 하이센뷔텔 등의 구체시가 그것이다. 그러나 모두 전통적 시 미학을 고수하고 있었다. 즉, 절대시와 밀폐시의 부정성, 인공적 언어, 점진적으로 침묵으로 이어진 독자와의 단절 : 시를 통한 정치 사회변혁을 꾀하려 한 문학의 정치화 : 그리고 실험을 통한 언어 매체에 대한 반성 등 모두 시가 사회 현실을 인식하고 반성하는 탁월한 수단으로 보았다. 시인은 보통 사람의 무리 중에서 출중하여 그들 위에서 일종의 현실인식의 모델을 제시해야만 하는 특별한 권위를 부여받은 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 문학관은 새로운 역사적 현실 앞에서 좌절하며, 문학은 더 이상 그 예의 진리제시적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 문학은 얼마든지 다르게 읽혀질 수 있으며, 작가가 지정한 진리를 찾으러 나서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내놓고 있는 것과 독자 자신의 경험이 만나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독서가 되는 독자 중심의 수용 미학으로 대체된다.
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등단한 브링크만은 전통적 시관을 배격하면서, 밀폐시류의 추상성, 부정성은 진정한 현실 경험을 가로막고 있는 문학의 신비화라고 비판한다. 문학의 정치 도구화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시를 읽고 사용하면서 인습적 경험과 생각 틀의 한계를 벗어나는 데에 그 정치적 기능이 있다고 역설한다. 즉 지각, 경험구조의 변혁이야말로 정치적 변혁의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지금까지 시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의 그 내용적, 형식적 기준이라는 시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하며, 유럽 문화를 실제 세상을 둘러보고 경험하기보다는 고답적인 죽은 교양언어만을 지껄이고 있는, 살아 있는 죽은 자들의 문화라고 도전적으로 진단한다. 그래서 더 이상 현실체험을 매개할 수 없는 언어에 회의하며 언어의 무용성을 시화한다. (<너희들은 그것을 언어 혹은 벽에 걸린 거울이라 칭한다>) <계절이 바뀌는데>에 나오는 은유법에 대한 공박에서 보여 주듯 전통적인 시에서의 절대적인 기법인 상징, 은유로서의 언어기호는 이제 브링크만에게서는 그 기의적 의미를 상실하며 다만 그 기표적 기능만이 강조된다. 언어는 그의 시에 있어서 단지 하나의 단상적 영상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도해적 도구가 될 뿐이다. 그는 언어가 아니라 영상으로 사고하며, 우리의 모든 삶을 자료로 해서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언젠가 그는 시는 ‘단어로 된 영화’라고까지 말했다. 시내를 배회하고, 신문을 읽고, 극장에 가고, 성교하고, 콧구멍을 후비고, 레코드 판을 듣고, 사람들과 엉터리 소리나 지껄이는 등의 우리의 삶 모두가 시라 될 수 있으며 시를 쓰는 것 또한 이런 보통 행위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시는 자동적으로 잡혀진 사건, 움직임, 순간적으로 명백해지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스냅사진처럼 짧게 잡아내는 가장 적합한 형식이다”라는 그의 시관을 보여 주는 것으로 <단순한 그림> <10시 20분> <우리> <조용했다> <한번 더> 등이 있다. 특히 그러한 표본적 시로 자주 인용되는 <단순한 그림>에서도 브링크만은 어떤 행위에 내재한 의미보다는 다만 표피에 머물면서 한 처녀가 걸어 올라와 다시 가는 그 움직임을 그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으로 끝난다. 일상생활의 아름다운 단장, 짜릿한 순간들뿐만 아니라 일상의 잔인함 역시 시 속에 등장한다. <콘크리트> <뒤뜰전경> <베흐타 현장에서> <조용했다> 등이 그렇다. 그의 단시들은 <검둥이 없이> <&-시> 등 이후에 점점 더 짧아지고, 그 정확도를 더해간다.
브링크만이 지향하는 민주적인 시와 시인관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귀착된다. 이들은 합리죽의적인 실증주의에 반대하며 반이성, 반논리를 앞세우며 의식의 세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적 세계도 포괄한 인간의 총체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현실이 환상이 되며 환상이 곧 현실이 되는 ‘어린아이의 상태’를 이상으로 삼았다. 예술가는 더 이상 천부적 능력을 부여받은 창조자가 아니며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여 귀기울이는 자는 모두가 예술을 만드는 것이다. 때 지난 신문지의 활자를 잘라 넣은 주머니에서 뽑은 순서대로 나열한 것도 시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꿈과 행위의, 그리고 문학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졌다. 「수술대 위에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로트레아몽의 구절은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나타내는 고전적 명구가 되었으며, 몽타주, 콜라주 등의 아무런 연관 없는 것들의 결합 속에서 새로운 충격적 경험이 생성되게 하는 우연의 미학, 무의미의 미학인 것이다. 그러나 이간의 이성으로 파악될 수 없는 심연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인간 생활의 가장 표피적이고, 사소하고 진부한 것에 매달리게 되는 모순과 작위적인 기법적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도 많았다. 브링크만은 이러한 20세기 초의 전위적 예술관을 이어받으면서 이러한 전통을 이어나갈 당대의 모범을 산송장 같은 유럽 문화가 아닌 싱싱하고 미국의 반예술(하위문화)적은 팝아트, 프랭크 오하라 등의 시에서 찾는다. 더욱이 인간의 경험과 지각구조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언어적 기법에만 국한하지 않고, 회화, 사진, 영화, 특히 전자음악 등 모든 예술적 기법을 도입하는 열려진 공간으로서의 시를 추구한다. 특히 수용자에게 그 자신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록음악이 그 표본이 되었으며, 시 역시 추상적인 것이 아닌 「열아홉 살 난 처녀의 젖꼭지」같은 감각적 매력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문학의 감각적 체험이 브링크만의 의도였다.
일본 공포영화에 나오는 바다괴물의 이름을 딴 「고드질라」에서 그는 반라의 수영복 차림의 여자의 부위적 사진의 배경 위에 음담패설에 가까운 노골적인 내용의 시를 조합시키면서 그때까지 금기시되었던 성적 소재를 대담하게 도입한다. (그 중 가장 점잖은 것으로 「C&A백화점의」「성적인 빨간모자」「무엇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가」「비행기조종사」「풀」등의 시집은 모두 미국시와 팝아트의 영향 아래에서 쓰여진 것이다. 특히 브링크만은 시집 「비행조종사」를 “우리가 보고, 종사하는 것들은 정확하게 보고 아주 그대로 직접적으로 재현된다”면 모두가 시가 될 수 있다는 프랭크 오하라와 비록 싸구려 극장에서나마 언제나 새로운 세게의 경험으로의 채비를 차리는 모든 「조종사」들에게 헌정한다. 여기서 브링크만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언제나 부딪치는 사물들을 시화할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적 산물의 파편들, 즉 영화세계(「타잔」, 「채플린」, 「리즈 테일러」, 「보니와 클라이더」), 만화인물 (「배트맨」), 광고표지, 상표(「배달차 따위의 시」「치키타 바나나」「그 해 마지막 날에 페르질」등), 로큰롤 가수 등에서 표현된 공통적 표상 내용을 연상의 밑받침으로 사용한다. 사소한 것들 하다못해 토마토 케첩, 케이크 밑바닥, 단추 등도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이런 것들을 시로 기입하는 데에 주저할 필요가 없이 예술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그저 시작하자!」고 말한다. 이러한 민주적 일상시와 더불어 「한번 더」「짧은 노래」「그저 태양」그리고 매일 지나다니는 길 판자울타리의 광고 표지의 반라의 여성을 보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전혀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역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볍게 살짝 건드리는 「오늘」의 재치와 경쾌함은, 브링크만을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박상배선생이 지적했듯이 휠더린이나 릴케, 트라클이나 벤, 바흐만이나 첼란의 작품에서 답답한 우울증을, 정치시인들의 작품에서 심한 자폐증을 느껴왔던 독자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고도 남을 「열린시」임을 잘 보여준다.
60년대 중반부터 젊은 세대의 새로운 생활 감정을 색채 화려하고 비감상적인 팝아트적인 일상시로 대변하면서 낡은 귀족적 서정시를 대체했던 브링크만은 그의 도적적인 시관만큼이나 “위협적이며, 정상적인 사람들과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불안을 과장하여 남을 공격하고 상처를 입힌다”는 등의 반감적인 비판을 받는다. 그의 시는 팝시, 섹스시 등의 저급문화적 소산으로 평가 절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의거한 독일, 유럽의 낡은 문화에 대한 반격으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봉기하는 학생들과 항시 논쟁하고 좌파적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는 탈이데올로기자였다(「이데올로기」). “70년대에 들어서면서 60년대의 반전통, 반문화의 개혁적 열기도 식어가고 브링크만도 잊혀져 간다. 쾰른에서 부인, 장애자인 아들 로버르트와의 가정생활은 출판사와의 결별 뒤에 경제적 궁핍으로 생존적 위기에까지 이르렀으며, 친구, 동료와의 불화는 정신적 고독감을 더해 주었다. 타협할 줄 모르며, 생존 경쟁에서 숙련되지 못해 살아가는 데에 무능했던 그는 언제나 굶주림으로 고통받으며, 정신적인 방치 속에서 불안과 고독으로 괴로워했다. 이 모든 자신의 창조적이며 인간적인 삶을 저해하고 있는 자신의 주위 환경에 대한 반항적 자세가 그의 공격성을 더했을는지도 모른다. 이후 예술가에게 주는 장학금으로 생활을 근근히 꾸려 나간다. 즉, 그는 살기 위해서 런던, 이태리, 미국 등으로 방랑 생활을 하게 된다. 1975년 런던에서 한 레스토랑의 간판을 보면서 건너가던 중에 그는 자동차에 치어 35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1974년 12월에 내놓은 시집 《서쪽으로 가는 1&2》에서는 그 이전의 단시류보다는 장시류의 시들이 많이 실려 있으며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이전의 시와 차별된다. 서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모든 외부 세계가 전과 다름없이 계속해서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타자기 앞에 앉아서 종이 위에 낱말을 때리며 함께 가고 있는 나날 중에 볼현듯 뜻밖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제 자기 자신을 기억해 내고, 자신의 개인적 역사를 더듬으면서 자신의 아픈 상흔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전쟁으로 잃어버린 유년기의 기억은 자신의 고향인 베흐타를 모든 생명이 질식하는 구멍의 세계, 「베흐타 현장에서」가 되게 하며, 「추운 시골의 추운 농부의 노래」에서와 같이 어린아이의 고립감은 이해돌 수 없는 주위 환경에서 생성된 것으로, 계속해서 시행을 이끌어 가는 「오로지」의 반로, 계속해서 시행을 이끌어 가는 「오로지」의 반복으로 강조된다. 전쟁으로 불행했던 유년시절의 기억들, 궁핍과 고독의 방랑 속에서 체험되는 현실의 파편들, 텅 빈 거리를 지나가는 자전거의 찌르릉 소리 외에 어디에서도 짜릿함을 느낄 수 없는 처절한 그의 삶의 기록을 「자거라, 마그리떼」에서 볼 수 있다. 그가 60년대에 권장했었던 단순하고 깜찍한 영상적 시들(「오렌지 주스 기계는」「저 고전적인」「평화로운 정오」「빨랫줄 위의 비애」등)은 그의 암울한 고통의 폭발적인 토로와도 같은 장시들 사이의 오아시스적인 휴식과 평화를 노래하기도 하지만, 「서쪽으로」를 위시한 대부분의 시에서는 「죽음의 영토, 독일」에 대한 분노, 역겨움, 증오를, 체험된 현실의 파편을 통해 서술한다. 그러나 절망적인 국가현실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아픔의 근거를 알고 싶어했으며, 일만의 희망이라도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 여전히 자료를 모으고 시를 썼던 것이다. 제목 「서쪽으로」가 암시하듯 움직임은 계속되며, 어떤 정지상태도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가 60년대 미국의 반문화적 새로운 삶의 형태에서 희망했던 다른 삶 역시 발견할 수 없었던 미국으로부터, 즉 미국 문화로부터의 귀향을 암시하기도 한다. 반문화적인 미국화라는 그의 옛 꿈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반유럽, 반문화적인 태도는 여전히 그의 반시 「하나의 시」의 자유분방하면서도 호흡이 긴 부정의 넋두리 속에도 잘 나타난다.
더욱이 형식면에서도 해체시적 형태를 띠며, 행 도약, 연 도약 등 도약 형태가 더욱 빈번해졌고, 찢겨진 현실 체험의 단상들도 시의 인쇄된 지면 위에 찢겨진 채 하나의 시행, 하나의 연 등으로 공간을 뛰어넘으며 서로 엇갈려 자리한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언어에 대한 그의 철저한 불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가상적 명증성만을 가지며, 경제, 정치, 대중매체 등등의 사회 체제가 개인을 구속하고 그들의 법칙 안에 가둘 목적으로 추상화된 언어는 인간의 꿈을 파괴하고, 감정을 말살한다(「서쪽으로 2」)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언어의 분절화, 단편주의로 명명되는 위의 실험을 통해서 기존의 단어, 문장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한 문장에서 다른 문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표상의 자유를 얻고자 했으며, 기존의 틈새, 사고의 비약을 통해서 화석화된 언어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비약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시의 침묵 속에서 시어의 혁신적 사용을 포기한다. “시는 무언성으로 해체된다”는 그의 「통제되지 않은 후기」에서의 발언처럼 순수 경험의 보다 직접적인 매개를 위한 새로운 매체에 관심을 갖는다. 《서쪽으로 1&2》시집 앞뒤 수페이지에 달하는 무제의 사진들이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저 노래처럼 단순히 시를 썼으면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기타를 칠 줄 모른다. 다만 타자기만을 칠 줄 안다, 그것도 두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하지만 아마도 내가 마치 노래를 부르듯, 문을 열 듯, 언어와 확정들로부터 벗어나면서 시를 그저 많이 쓸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라는 그의 시쓰기 열망은 절망 속에서의 그의 자기 존재 확인과 방어를 표현하는 듯하다. 시는 그에게 있어서 아무도 아닌 나라로 가는 경계(「주제 없는 변주」)로서 현실로부터 구출되는 유토피아적 선취이며, 미지의 세계와 인식의 세계로의 관문이고, 또한 하나의 환상으로, 시를 쓰고 있는 동안만은 현실에서 벗어나 소외되지 않은 자기 존재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을까, 그런 것이 삶
이라고? 나는 하나의 다른
푸름 속으로 들어간다.

-「시」



-롤프 디터 브링크만 시집『빨랫줄 위의 비애』(고려원, 199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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