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대화ㅣ함기석 지음ㅣ난다ㅣ444쪽ㅣ
이 책의 장르는 '시산문'. 시를 말하는 산문이면서 동시에 산문으로 된 시다. 나름의 시론(詩論)으로도 읽힌다. 부제는 '제로(0), 무한(∞), 그리고 눈사람'. 이 연쇄적 동그라미가 수학도이면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저자의 정체를 드러낸다.
책에 담긴 208편은 시에 대한 비장한 은유로 점철돼 있다. "시는 마침표 없는 육체다."(시) "시인은 자신의 일생을 죽음 쪽으로 던져 삶에 닿으려는 격렬한 폭포다."(시인) 시와 수학을 연결하는 사유도 흥미롭다. "수학은 물리적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든 불변하는 진리의 핵심을 담아내려는 최소한의 언어를 지향한다. 극소를 지향하여 극대의 효과를 노린다는 점에서 시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수학은 꿈의 언어이자 존재의 언어다. 천국과 지옥, 존재와 무가 공존하는 추상의 시다."(추상의 시)
현재 시단(詩壇)에 대한 날 선 시각도 번뜩인다. "난해하지 않은 난해한 시는 가차없이 공해다. 인식의 깊이, 사유의 진폭, 반성적 통찰 그 어느 것도 내장되지 못한 난해를 가장한 난해 시는 전혀 난해하지 않다. 난해한 전통 해체의 시에도 짝퉁이 많지만 난해하지 않은 전통 서정시에는 더 짝퉁이 많다."(난해 시)
책 말미엔 희곡도 실었다. 저자가 유령과 대화하는 2인극이다. 실제와 재현, 인간과 언어의 비극적 간극을 얘기하면서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누구인가 자문한다.
유령 : 당신은 누구요?
함기석 : (잠시 침묵한다)
그림자요…
실재하는 환영의 숲이오...
/ⓒ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