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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 강의-15(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 소재)
김송배
* 안녕하십니까.
5.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시를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서는 어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데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살펴본다면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단편적이나마 답변의 실마리가 풀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5-1. 소재에 대하여
시의 소재란 작품에서 다루는 재료를 말합니다. 이 재료는 자연일 수도 있고 일상샐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뿐만 아니라, 시인의 감정 흐름과 변화 등의 내부적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관계없이 무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주변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 가운데서 특히, 우리 인생이나 삶을 아름답게 한다든지, 아니면 어렵게 한다든지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절실한 것들이 언제나 시의 소재가 될 요소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C.D루이스가 ‘시인은 사물을 응시(凝視)함으로써 시적인 능력을 기른다’고 말하였듯이 우리에게 나타난 내외의 현상들을 관심있게 살펴보면 반드시 어떤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시적인 능력’이 바로 ‘어떤 의미’를 두고 사물과 자신과의 사이에 새로운 질서나 관계가 성립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상상력(상상력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것입니다)이 빚어내는 이미지의 연쇄반응도 언제부터인가 사물을 응시한 기억이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졸시 [담쟁이] 한 편을 읽어 보기로 합니다.
나는 지금 이쯤에서 망설여야 하리라
붉은 벽돌 틈새로 아직 여물지 못한 희망은
잠시 창문으로 흐르는 불빛으로 말려야 한다
구름처럼 떠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못내 아쉽게 되돌아 보는 행적이지만
용케도 기어오른 삶의 줄기가 현기증으로 나불댄다
뻗어나간 욕망만큼 무거운 사색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조심스러이 다시
기어올라야하는 창살에는 불이 꺼졌다
아아, 지금쯤에서 지혜를 예비하는
옷깃을 잠시 손질하고 태초의 씨앗으로
묻혔던 땅바닥을 돌아볼거나
그대 머리 위 내리는 한 줌 별빛만 줏으며
끝내 돌아보지 말아야 할 어지러운 벼랑 끝
아스라한 저 바람 소리.
비록 하찮은 ‘담쟁이’ 넝쿨이라도 응시함으로써 상상력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시를 창작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작은 돌멩이, 강물, 달빛, 산, 낙엽 등등 어떠한 대상으로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살아가면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건들, 예를들면 6. 25전쟁이라든가, 4. 19 민주혁명, 3. 1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실연을 했다던가, 가족의 죽음이 있었다는 등등이 시적인 감동으로 연결될 때 이들은 모두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하듯이 시 쓰는 사람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내면적인 생활이 그만큼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다음 시간에는 주제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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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毒)을 차고
―김영랑(1903∼1950)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이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훑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얼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김영랑 시집’(범우)에 실린 시인 연보를 훑어보다가 ‘1926년 장녀 애로(愛露) 출생’에서 입 끝이 빙긋 올라갔다.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딸 이름을 정성껏 짓는다면, 요조하고 현숙한 여인을 기원하는 마음이나 인생의 심원한 뜻을 담던 시절에 ‘애로(사랑의 이슬)’라니! 세상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 그리고 사랑과 아름다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찬란한 감각이 엿보인다.
선생의 시는 ‘서구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전통적인 시형을 현대시 속에 끌어들여 전통적인 것과 현대 서구적인 것의 접목 작업에 성공하고 있다. 특히 호남지방의 토착적인 언어를 탄력적으로 구사하여 언어예술로서 시의 참맛을 살려나간다’(평론가 김우종). 쉽고 친근한 시어로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생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오― 매 단풍 들것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 공감하고 애송하는 독자가 많을 테다.
‘독을 차고’는 선생이 나긋나긋한 감성의 ‘초식남’이기만 한 게 아니라 강건한 뼈와 근육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짧은 인생 그냥저냥 살고지고, 하는 친구에게 설핏 경멸의 독기를 뿜으며 끝내 독을 차고 가련다는 이 기개! 의당한 독을 버리고서야 어찌 사람이겠는가. 이 슬픔의 독, 분노의 독을 차고 가리라! 이 시는 식민지 시대 말기의 반항의식을 나타낸다고 한다. 선생이 6·25전쟁을 무사히 넘기셨으면 이후 어떤 시를 쓰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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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어(主語)가 곧잘 지워져도 무방한 한국어 속에 자주 숨거나 지워진 1인칭 화자(話者)로서 살아온 시의 세월 60년을 채우고 있다. 이제 시가 귀신의 일인지 허공의 일인지를 터득할 만 하더라도 도리어 시를 정의하는 나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라며 "시인이 되면 될 수록 시인은 자신의 뒷모습을 모르는 것처럼 시를 모르게 된다. 다만 나에게는 노래하는 자와 노래를 듣는 자의 실재(實在) 사이에서 영혼의 대칭(對稱)이 이루어지는 체험이 있다."
"나의 시는 첩첩이 고난을 견뎌온 한국어 속에서 태어났고 한국어는 거의 기적처럼 연면(連綿)이 이어와서 오늘에 이르렀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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