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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반쪽 반도"의 현대시 문제점을 알아보다...
2017년 02월 05일 18시 01분  조회:2781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국 현대시의 문제점
/ 임보 시인
 > 2011 

 

 

 

 “한국현대시의 연원을 신체시로 잡는다면 그 역사는 100년이 됩니다.

 

한국 현대시는 그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시는 공전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수천 개의 문예지들이 앞을 다투어 발간되고, 수만 명을 헤아리는 시인들이 등장하여

매일 수천 편의 작품들을 생산해 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어느 곳에도

한국처럼 왕성한 시단을 가진 나라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지금 시인 공화국으로 시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기현상은 이처럼 시를 생산하는 시인들은 많은데 시를 읽는 독자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 들러 시집 코너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수천 평의 광활한 공간인데 시집들을 진열해 놓은 서가는 겨우 둬 평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한쪽 귀퉁이에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시집들이 그렇게 푸대접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것일까요?

시가 재미없고 따분한 글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시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이라면 사람들은 읽지 말라고 해도 밤을 새워가며 다투어 읽을 것입니다.

도대체 시인들은 북적대는데 시가 외면당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점들 때문인지 따져보도록 합시다.

 

첫째, 자유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문제입니다.

 

자유시는 정형시와는 달리 정해진 틀에 구속됨이 없이 자유스럽게 쓰는 글입니다.

그런데 ‘자유스럽게’에 대한 인식이 ‘제멋대로’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자유시는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시는 애매모호한 글이고, 비문장적인 표현도 허용되므로 산문보다 쓰기 쉬운 글이라고

얕잡아보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시인이 되겠다고 시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넘쳐난 것이나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이처럼 시를 쉽게 생각하고 달려든 사람들에 의해 쓰인 글이라면 보나마나 조잡할 것이 뻔합니다.

 

둘째, 운율에 대해 경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유시가 등장하면서 시도 운율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운율이 시를 구속하는 굴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운율이 시의 구속물이 아니라 시를

능률적으로 지탱케 하는 장치라면 운율의 경시야말로 크게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래가 인간의 정서 함양에 얼마나 소중한가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래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 것은 가사의 내용에 앞서 그 가락 때문입니다.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청중들이 열광하는 것은 가사의 내용에 감동해서라기보다 리듬에 심취해서인 것입니다.

리듬 곧 율동적 요소는 정서를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시에서의 운율은 독자들의 가슴을 흔드는 원초적 장치입니다.
정형시의 형태는 정형적인 운율을 담기 위해 그렇게 자리잡은 틀입니다.

 

정형시의 각 행들이 일정하게 배행(配行)된 것은 가지런한 운율을 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행의 길이가 운율의 형태를 결정하는 바탕이 됩니다.

긴 행에는 유장한 운율이 짧은 행에는 촉박한 운율이 담기게 마련입니다. 

자유시의 배행은 정형시처럼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 자유스럽습니다.

 

따라서 자유시는 행마다 다양한 운율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형시는 작품 전체가 통일된 운율로 일관되지만 자유시는 다양한 운율이 혼재한 상태인 것입니다.

시인들이 아무리 운율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작품을 쓴다고 해도 운율은 스스로 행들 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비록 산문일지라도 분행하여 배열하면 운율이 살아납니다.

그 운율이 조화와 균형을 지닌 미적 구조를 갖춘 것이든 아니든 간에 말입니다.

 

셋째, 소통을 거부하는 독선적 발언이 문제입니다.

 

 모든 발언은 들어줄 상대를 전제로 해서 시도됩니다.

 

독백조차도 자신을 청자로 설정된 담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난해성’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현 시단에는 독자를 아예 무시한 독선적 발언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해되기를 거부하며 쓰인 작품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심층심리를 작품화하려는 초현실주의의 시와

대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무의미 혹은 비대상의 시들입니다.

여기에 크게 기여한 시인이 김수영 시인과 무의미시를 쓴 김춘수 시인입니다.

초현실주의의 시는 소위 자동기술법에 의해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상념들을 아무런 여과도 없이

 

그대로 쏟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질서도 논리도 규범도 없습니다.

어떠한 윤리의식이나 이념의 규제도 받지 않은 혼돈된 언어의 토사물인 셈입니다.

그야말로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일방적인 배설입니다.

 무의미시의 시 쓰기는 미술에서의 비구상화가 그렇듯이 대상으로부터의 자유를 모색합니다.

 

그러나 언어 구조물인 시는 비구상화처럼 대상을 완전히 떠날 수 없으므로 대상 자체를 변형시키거나

이질적인 대상들을 낯설게 결합시킴으로 관습적인 기존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 역시 의도적으로 수신자와의 의사소통을 거부하는 일방적인 발언입니다.

오늘의 한국 현대시가 독자를 무시한 독선적 발언들로 넘친 것은 앞에 얘기한 두 경향과 더불어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서구적 풍조의 영향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시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자꾸 모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문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긍정적인 것이 아닐 경우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자신의 시를 세상에 내놓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때는 내놓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시라야 합니다.

 

넷째, 아름다운 생각을 담던지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예술의 반열에 선다고 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만스런 것들에 대한 비난, 질시, 혐오의 감정을 노래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규탄, 선동, 저항의 수단으로 시가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격한 감정을 노래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시라는 이름의 글로 불리기를 바란다면

아름다움, 미적장치를 통하여 표현해야합니다.

시는 격렬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낸 구호나 격문이나 욕설과 같은 생경한 글일 수는 없습니다.

 

위트 풍자 역설 비유 상징 등 시적 장치의 여과를 통해 순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속을 벗어나 시의 품격을 갖춘 글이 되고,

동양의 전통적 시관인 소위 온유돈후(溫柔敦厚)를 지니게 됩니다.

유연함이 시의 덕목이며, 힘이며 또한 아름다움입니다. 

요즈음 자극적인 감정을 중요시 하는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미사여구를 많이 써서 지나치게 억지로 치장해서 꾸민 시는 격을 잃게 됩니다.

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해내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야 합니다.

 

다섯째, 시정신의 퇴락이 문제입니다.

 

시인의 의도, 시속에는 우리의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시인의 유명한 작품에 담겨있는 욕망은 세속적인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것은 부귀나 명리를 지향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승화된 욕망입니다.

진․선․미를 추구하고 염결(廉潔)과 절조(節操)와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입니다.

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선비정신과 상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이 ‘선비정신’을 이상적인 시정신으로 삼고자 합니다. 좋은 시는 시정신 밑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무의미 시를 쓴 김춘수 시인은 시정신 같은 것 생각 안합니다.

 

김춘수 시인이 2001년 현대시학 1월호에 건건녹초(蹇蹇錄抄)를 발표했는데

‘시라는 것은 언어를 잘 다루는 기술만 있으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다음호에 나는
‘어디 그럴수야 있습니까.’라고 반박 글을 냈지요.
3월호에 나의 반박 글에 대한 답으로 다시 김춘수 시인은 속건건녹초(續蹇蹇錄抄)를 발표했어요.

 

다음에 재반박 글 을 써놓고 발표하려다 원로시인에게 인사가 아닌 것 같아 접어두었다가

'미지의 한 젊은 시인에게'라는 나의 시론집에는 발표를 했지요.

시는 언어의 정련 못지않게 시정신의 정련을 필요로 합니다.


좋은 시를 쓰려면 품격을 닦고 수련하여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 요점은

 현재 우리 시단을 시인이나 작품의 생산량으로 보아 공전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시의 전성기라고 하면서

 

오늘의 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난삽성’ 때문이라고 보았고,

그 난삽성의 요인을 다섯 가지 입장에서 비판했습니다.

 첫째, 자유시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폐단입니다.

 

그리하여 함량미달의 조잡하고 불성실한 작품들이 생산됩니다.

 둘째, 운율에 대한 등한시 하는 문제입니다.

 

운율은 시를 흥겹게 하는 무기인데 이를 소홀히 하여 시에서의 감동성이 상실되었습니다.

 셋째, 독선적 발언이 문제입니다.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일방적인 발언이 시를 난해하고 역겹게 만들어 독자들로 하여금 시를 멀리하게 했습니다.  

넷째, 미의식에 대한 문제입니다.

 

미의식에 대한 무관심으로 예술성이 부족한 작품이 생산되거나

혹은 저급한 미의식으로 진실성이 결여된 가식적인 작품들이 생산되기도 합니다.

 다섯째, 시정신의 퇴락입니다.

 

진 선 미와 염결 절조 친자연을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이상적인 시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이의 쇠퇴로 말미암아 시의 위의가 실추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현 시단에도 시인의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역작과 수작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긍정적인 작품보다는 부정적인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거론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현 시단은 작품의 풍요한 생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감동적인 작품은 흔치 않아 보입니다. 한마디로 풍요 속의 궁핍이라고 진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궁핍을 벗어나는 길은 분명합니다. 시가 다시 감동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시인들이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떠났던 독자들은 다시 되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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