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시집을 곁에 두고 수시로 읽습니다. 잡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의 리더 중에 시를 즐겨 읽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시집을 펼쳐 드는 것일까요?”
‘건물은 악기다’라는 은유를 도입한 건물.
시를 통해 얻는 상상과 깨달음 해답은 “시를 읽으면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만나고, 이를 자신의 기업이나 삶의 경영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황인원 경기대 국문과 대우교수(문학경영연구원장)는 “시를 읽으면 밥이 나오고 떡이 나온다”고 외친다. 시와 경영이라는 이질적인 분야의 접목을 시도해 온 그가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흐름출판)란 책을 새로 펴냈다. 2008년에 출간한 를 업그레이드해 유명한 시 46편을 놓고 그 시에서 어떤 방식으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황진이의 시조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히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 예로 들어 보자. “동짓달 기나긴 한 밤 허리를 베어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른 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저자에 따르면 이 시조가 훌륭한 이유는 시간을 잘라내고, 그것을 다른 계절에 붙인다는 기막힌 상상력 때문이다. 혼자 견디기 힘든 동짓달 밤의 시간을 뭉턱 잘라다가 님이 오실 지도 모르는 짧은 봄밤에 붙여 재회의 밤을 길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시적 상상력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존재를 서로 만나게 한다”면서 “상상력이 개인의 성공이나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시대에 시를 읽는 게 도움이 되는 이유”라고 말한다.
의인화 수법을 이용한 춤추는 의자.
세밀한 관찰로부터 탄생한 지퍼 연못.
그는 시를 통해 관찰, 통찰, 상상,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차례로 설명한다. 먼저 관찰은 발견이나 창조에 이르는 첫 단추로서 매우 중요하다. 관찰은 단순히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지닌 남다른 특징을 찾는 일이다.
대상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찾아야 무엇을 생성하거나 다른 것과 연결해 제3의 것을 창출할 수 있다. 관찰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의도적으로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전체를 먼저 봐서 편견을 없애야 하고, 남들이 못 본 사소한 것에 집중하며, 항상 물음표를 마음에 담아야 한다.
“퇴약볕이 쬐는/한낮입니다//아기 방 앞에/바람이 찾아왔습니다//‘아기야,/혼자 심심했지?’/그러나 방에선/대답이 없습니다.”(김원기, ‘아기와 바람’ 일부) 단순한 동시이지만 ‘왜’라는 발상의 전환이 들어있다. “바람이 저절로 부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기를 찾아온다는 설정인데, 여기에는 ‘바람이 왜 불지’라는 의문이 들어 있다”는 저자는 “당연한 현상을 질문하다 보면 새로운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전업계의 효자 상품인 김치냉장고의 경우 “프랑스에는 와인저장소가 있고 일본에는 초밥저장소가 있는데 우리는 ‘왜’ 김치저장소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저자 황인원 교수.
한편 통찰은 관찰에다 생각이 더해져 생긴다. 통찰이 뛰어날 때 발견이 이뤄진다. 그렇다면 통찰은 어떻게 나올까. “시인들이 어떤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시도하는 세 가지 생각법, 즉 의인화·의미부여·단순생각법에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김수영의 시 ‘풀’은 의인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사물을 인간이 아닌 사물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들일 때 ‘춤추는 다리를 가진 의자’나 ‘스위치를 켜면 표정을 찡그리는 플레이트’ 같은 아이디어 상품이 나온다. 새로운 호칭 찾기, 치환, 재해석 등을 통한 의미 부여나 사물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도 색다른 아이템으로 이어진다. 일본에서 폭풍우를 이겨 낸 사과를 10배나 비싼 가격에 ‘합격사과’란 이름으로 판매해 성공을 거둔 것은 재해석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시를 읽는 방법 “시를 어떻게 활용할까” 상상과 깨달음은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 경지다. 뛰어난 상상을 하기 위해서는 에스프레소 커피나 감초처럼 다른 것과 쉽게 접목이 이뤄져야 하고, 상상력의 한계를 깨는 직유나 사물을 재발견하는 은유를 과감하게 발상에 도입해야 한다. 기이한 것끼리, 모순되는 요소끼리의 접목은 시에서 즐겨 쓰는 수사법이다. “오늘 광화문에서 만난/너는 꽃잎 같고/너무 고요해/귀가 떨어질 것만 같고//아니 번쩍이는 물고기 같고/물이 철철 흐르는 물병 같고/혹은 깊은 밤/문득 변하는 날씨 같고//바람은 불지 않는데/바람만 하루 종일 불고/너를 만난 시간은/봄날 같다 아아 기적 같다.”(이승훈, ‘어느 조그만 사랑’)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시에서 배울 것이 많다. “나뭇잎 하나/바다에 가 닿았어요//바다 속이 와글와글/-처음 보는 물고기가 왔어//왕관가시불가사리랑/친척인가 봐//빨간수지맨드라미산호랑/친척일 거야//꼬리 흔들며/나뭇잎이 뭐라고 했을까요?”(추필숙, ‘나뭇잎물고기’)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탄사를 쏟아내며 동심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시인들이 시를 통해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기이한 접목의 사고법을 적용한 닌텐도 게임보이 부츠.
<생각의 뼈>라는 시집을 펴낸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사람들은 시에서 아름다운 표현만을 보고 감동하거나 베껴 쓴다. 그러나 그 표현이 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시를 더 깊이 이해할 뿐만 아니라 시를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사고의 혁신이 필요한 경영 분야에 시를 접목시키면 많은 아이디어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버려야 채워진다는 ‘공경영’, 유연한 사고로 차이를 연결하는 ‘틈경영’,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투리로 공감을 부루는 ‘사투리경영’, 한 번 웃으면 생산성이 3배로 늘어나는 ‘유머경영’, 말이 아니라 몸으로 말하는 ‘신뢰경영’,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기다림의 경영’ 등 다양한 경영 아이디어와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감(感)을 시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를 읽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갈래는 서정시·자유시, 성격은 서정적·자연친화적, 운율은 내재율,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 수사법은 의인법…. 이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시를 배운 공식이었지요. 물론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 빠져 있어요. ‘나를 위해 무엇이 이 시에 담겨 있는가’ ‘내가 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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