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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하면 현실이 된다 전병호
1 시적 상상력을 정의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그 말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상상력이란 한 편의 훌륭한 시를 빚어내는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현실을 바라보라. 결핍되어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만약 이 결핍이 채워진다는 상상을 해보라.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려보라. 현실에는 나를 얽어매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상상을 펼쳐보라. 다음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현실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것들을 흡족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고쳐보라.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상상하라.
가질 수 없는 것, 벗어나고 싶은 것, 얻을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시인은 항상 마음 속에서 갈등을 느낀다. 이때 상상 속에서나마 잠시 갈등을 풀어주자. 나중에는 그것이 정말로 현실로 되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이것이 상상의 기능이 아닐까 싶다. 이 기간에도 많은 시들이 발표되었다. 그중에서 낯선 상상력을 펼치는 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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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상상이란 인습적 시각을 버렸을 때 얻어질 수 있다. 그래야 사물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의미를 버리고 사물을 새로운 의미로 만난다는 것,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무가 가지마다/한 잎 두 잎 걸어두었던 신발//뿌리한테 신기려고/한 켤레 두 켤레 내려놓는다. - 추필숙, 「나뭇잎 신발」 전문(<오늘의 동시문학> 2013. 여름)
나뭇잎과 신발의 유사성이 얼마나 높으냐가 이 시의 성패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나뭇잎을 신발에 비유하려면 꽤 넓은 잎이어야 한다. 활엽수 잎이 적당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뭇잎과 신발이 딱 맞아떨어지는 비유는 아니다. 하지만 상당한 유사성이 인정된다. 그래서 나뭇잎은 나무의 신발이란 비유를 받아들이고 나니까 신선한 감각이 느껴진다. 새롭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가 뿌리한테 신발을 신기려고 내려놓은 것이다.왜 신발을 신기려고 했을까? 아마도 날이 추워지니까 나무가 발 시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시는 이렇게 나뭇잎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호박꽃도/ 가렵나?//꿀벌이/꽃 속에서/노란 귓밥/들고 나온다.//농부 말 잘 듣겠다. - 오윤정, 「호박꽃」 전문(<시와 동화> 2013. 여름호)
농촌에서 나고 자란 어른들은 호박꽃에 대한 추억이 많다. 그중 하나가 호박꽃에 벌이 들어가면 꽃잎 끝을 모아 잡고 꽃을 따는 일이었다. 이 호박꽃을 햇빛에 비춰보거나 귀에 대고 벌이 날갯짓하는 소리를 들으면 갖은 상상이 다 떠올랐다. 호박꽃이 노래한다고도 했고 호박꽃 태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호박꽃에 대한 이런 추억을 갖고 있는 필자는 지금도 호박꽃이 다른 식으로 표현이 잘 안 된다. 그런데 이 시는 꿀벌이 호박꽃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귓밥을 파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색적인 상상력이다. 그러니까 낯선 느낌으로 읽는 시가 되었다. 귓밥을 파내는 행위가 “농부 말 잘 듣겠다.”라는 구절과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농부가 하는 말이란 듣지 않아도 안다. 열매를 잘 맺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호박이 잘 달릴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쏘니까 날아갈 수밖에요 난 폭탄이니까요//한참 날아가다 깜짝 놀라 멈칫 했어요//정부군 버스 안에 아이들이 한 가득//정부군 탱크 옆에 아이들이 한 가득//방패가 된 아이들 해바라기로 피었어요//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어요//그냥 공중에서 쾅 울어버렸어요. - 이병승, 「미사일」 전문(<오늘의 동시문학> 2013. 여름)
이 시 끝에 “시리아 독재 정부는 반정부군의 폭격을 막기 위해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방패로 삼았다”라는 주를 달아놓았다. 시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지만 그걸 알면서도 시인이 주를 달아 놓은 것은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이야기다. 시인은 시리아 독재정부를 고발한다. “정부군 버스 안에 아이들이 한 가득//정부군 탱크 옆에 아이들이 한 가득”에서 보듯 시리아 독재 정부는 어린이들을 전쟁 방패로 삼고 있다. 비열한 짓이다. 그러니 폭탄인들 어찌 무심하겠는가. 그냥 공중에서 쾅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폭탄이 ‘터졌어요’라고 하지 않고 ‘울어버렸어요’라고 쓴 시인의 마음에 크게 공감한다. 시리아 독재정부가 어린이를 전쟁의 방패로 삼는 일은 전 세계가 나서서 규탄해야 할 일이다. 동시인, 동화작가가 어찌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지구 저쪽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일 일이다.
이 시는 몇 가지 시적 장치를 숨겨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폭탄을 의인화했다는 것, 폭탄에 투사된 시인의 복잡한 마음을 의식의 흐름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한 행으로 한 연을 구성하고 시 끝에만 마침표를 찍어 시적 긴장감을 높였다는 점. 현실에 대한 발언이 국경을 넘는 어린이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등이 눈길을 끈다.
그런가 하면 종교적 상상력의 발휘해서 색다른 감동을 주는 시도 있다.
하나/둘/셋/·/·//가부좌/틀고 앉아//아무나/징검징검/밟고 다녀도/묵묵히/머리를 내미는/물 속/부처님 - 박방희, 「징검돌」 전문(<열린아동문학> 2013. 여름)
징검돌은 개울을 건너기 위해 건너뛸 수 있는 너비만큼 떨어져 놓은 큰 돌이다. 이제까지 징검다리를 소재로 쓴 시는 많다. 하지만 박방희 시인에 의하니까 징검돌이 부처님 머리란다. 그것도 아무나 밟고 다니도록 물속에 앉아 가부좌한 부처님 머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들은 이제까지 부처님 머리를 밟고 다닌 것이 아닌가. 높고 귀한 부처님의 머리를 밟고 다녔다니 이처럼 불경스러울 수가 있는가. 하지만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중생들을 위해 공양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는가.
소나기가/세례를 줍니다//떡잎 배추/벌레 먹은 배추/앉은뱅이 배추//줄 선 배추에게/골고루 줍니다//배추밭이 살아납니다 - 김이삭, 「배추」 전문(<시와 동화> 2013년, 여름)
「배추」는 천주교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쓴 시다. 핵심 단어는 세례이다. 세례는 죄를 씻기 위한 종교 의식이다. 그렇다면 “떡잎 배추/벌레 먹은 배추/앉은뱅이 배추”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세상 사느라고 죄 많이 짓고 버림받은 영혼들이다. 이들이 줄을 서서 세례를 받는단다. 그러니까 마치 종교의식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축 늘어진 배추가 소나기를 맞고 푸르게 되살아나는 모습을 종교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시다. 배추밭에 소나기 오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그것을 세례 받는 것으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은 김이삭 시인뿐이다. 새롭다. 남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시인이다.
다음 시는 또 다른 낯선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은 가족놀이 닷컴에서/언니를 주문했어요//말도 잘하고/나를 데리고 백화점에도 가는/내 친구 희수 언니처럼/그런 똑똑한 언니로요//한참을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언제 내 방에 들어왔을까요/우리 언니,/두 눈에 눈물 그렁그렁 달고/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네요//-언니, 미안해!/사과는 했지만/가슴이 두근두근/얼굴이 화끈화끈//우리 언니는 지체장애 2급이에요. - 이성자, 「언니, 미안해」 전문(<열린아동문학> 2013. 여름)
가족놀이 닷컴에서 언니를 주문하다니! 미래의 어느 날에 일어날 일을 상상력을 발휘해서 쓴 것 같다. 정말이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언니를 주문하게 될까.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세상이 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한다. 한편으로 이 시는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게임 속의 세계를 시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시가 제기하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자기에게 도움이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존재마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언니, 미안해” 하고 시적화자가 사과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이런 일이 재발될 거라는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더라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요 장애우에 대한 사랑임을 이 시는 역설하고 있다.
간장종지 나는/사발과 대접 사이, 큰접시, 작은접시,/보시개와 뚝배기 사이에서//젤 키작고/쬐그많지만/상차림 한 가운데가 내 자리야.//내가 간장을 담았거든/밥그릇에 갔던 숟가락, 국그릇 갔던 숟가락이//굽신거리며 다녀가지,/부지런히 다녀가./“에헴!”//젓가락이 부침개 하나 집고/다녀가지/콩나물 하나 집고도/다녀가지.//뽐내지 않을 수 없지./“에헴 에헴!”/나는 키 작은 임금이야! - 신현득, 「키 작은 임금」 전문(<어린이책 이야기> 2013. 여름)
간장종지의 재발견이 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간장종지는 자신의 말 대로 “젤 키작고/쬐그많”다.큰 접시, 작은 접시, 보시개, 뚝배기와 비교하면 간장종지의 존재는 더 왜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상차림 한 가운데가 내 자리”라거나 간장을 담고 있기 때문에 숟가락, 젓가락이 굽신거리며 다녀간다는 사실의 발견이 간장종지에게 높은 수준의 자신감과 존재감을 안겨주고 있다. 시인이 발견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쪼그맣고 볼품없는 간장종지에 대한 재발견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소한 사물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시인의 따듯하고 배려 깊은 마음 때문이다.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시인은 시인으로서 참 행복할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독특한 눈을 갖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남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시인으로서 이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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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용기 영전에 내놓은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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