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주제에 대하여
오늘은 시를 쓸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기로 합니다.
시의 주제(thema)는 시 작품을 통해서 나타내려는 중심적인 주된 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는 보통 시를 쓰기 전에 선명하게 밝혀져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를 완성하고 나서 비로소 분명해지기도 합니다.
이 주제는 ‘시의 의미성’ 대목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시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어서 사람이 지닌 보편적인 성격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면 시인이 살고 있는 인생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시인들이 갈망하는 진실이 지성미와 함께 농축되어 작품 속에 버무려져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주제는 앞서 말한 소재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시의 발상이나 동기는 이미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확인되면서 이미지나 상징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비유법 등으로 주제를 창출시키게 됩니다.
흔히들 처음 시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소재와 주제를 혼동하는 일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런 일들은 시창작의 초기 현상으로서 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일이어서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한 예를 들어보면, 어느 백일장에서 [가을]이라는 시제(詩題)로 쓴 작품들을 심사하면서 느낀 점은 한결같이 ‘가을’이라는 소재에 매달려서 주제가 없거나 약하다는 것입니다.
‘가을’이라는 소재에 투영되는 의미성이 결여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작품은 미적인 감동은 있을 수 있지만 ‘가을’이 지니는 참된 모습이 의식 속에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시 쓰기에서 주제를 중시하는 현대시에서는 각별히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졸시 [황강(黃江) . 71-윷놀이]를 읽어 보기로 합니다.
윷이야 모야
처음부터 내가 떠나야 할
지점은 점지되어 있었다
무거운 등짐 지고
겨우 한 걸음 내 딛는 발걸음
갠가 걸인가, 윷판처럼
떨리는 한 생애가 질펀히 보인다
돌다릴 두들겨 건너가듯
먼저 가버린 발자국을 닮을거나
차들이 죽죽 빠져 나가는 새벽길
그 환희는 어느새 체증만 남고
어차피 가야하는 행보라면
석동무니 넉동무니 함께 업어
찌도까지라도 뛰어야 하리
도냐, 개냐? 뒤돌아보지 마라
시퍼런 칼날 세우고 쫓고 쫓기는 나
안찌로 피할 나무숲은 보이지 않는다
뒷도로 돌아가는 저 먼 길
한 생애의 종말 지점도
그렇게 점지되어 있을지라도.
매우 간단하고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서 느끼는 소재인 ‘윷놀이’는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를 깨닫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인의 눈으로 확인한 ‘윷놀이’는 전쟁터 같기도 한 생존경쟁의 처절한 현실이 깊게 깔려 있습니다.
윷말을 윷판에 놓아서 경쟁하는 일은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시퍼런 칼날 세우고 쫓고 쫓기는’ 현상이며 ‘무거운 등짐 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현실적인 고뇌가 진하게 배여 있습니다.
이처럼 ‘윷놀이’라는 단순한 소재에서 시인의 시각으로 정제한 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생존경쟁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한 부분에서도 커다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인들이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위대한 예술정신의 행적이며 가장 근원적인 시의 주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의 주제는 시인에 따라 다양하게 표징 되고 있습니다. 시인의 내면의식에 어떤 가치관을 포용하고 있느냐, 어떤 체험에서 지적인 자양을 농축하고 있느냐, 또는 어떤 염원과 갈망의 깊은 사상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등등의 정서나 정신(시정신)의 사유향방에 따라서 그 주제의 모습은 변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시인이 간직한 의식의 감도나 척도에서 서로 다른 모습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쨌거나 시의 주제는 모든 사물들의 참된 모습이나 진실이 은폐되고 망각되는 현상에서 ‘존재’라는 커다란 등불을 밝혀서 확인하고 감지하게 되는데 그 발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의 불행이나 암흑에서 어찌 보면 탈출의 의미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부당하거나 모순된 실상에 대한 항거로서의 진실을 탐구하는 열정으로 유도하는 역할이 시의 주제가 갖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의 <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라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으며 읽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주제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연유입니다.
이렇게 주제의 명확한 표징(명징한)은 앞에서 말한(시의 의미성) 바와 같이 인생의 강렬한 체험의 소산물임을 더욱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시의 ‘제목’을 어떻게 붙이는가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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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오후에
-홍신선(1944~ )
오랜만에 장마전선 물러나고 작달비들 멎고
늦여름 말매미 몇이 막 제재소 전기톱날로
둥근 오후 몇 토막을 켜 나간다
마침 몸피 큰 회화나무들 선들바람 편에나 실려 보낼 것인지
제 생각의 속잎들 피워서는
고만고만한 고리짝처럼 묶는
집 밖 남새밭에 나와
나는 보았다, 방동사니풀과 전에 보지 못한 유출된 토사 사이로
새롭게 터져 흐르는 건수(乾水) 투명한 도랑줄기를.
지난 한 세기의 담론들과 이데올로기 잔재들을 폭파하듯 쓸어 묻고는
천지팔황 망망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집중된 힘으로 넘쳐흐르는
마음 위 깊이 팬 생각 한 줄기 같은
물길이여
그렇게 반생애 살고도 앎의 높낮은 뭇 담장들 뜯어치우고는
범람해 흐르는 개굴창 하나를 새로 마련치 못했으니
다만 느리게 팔월을 흐르는 나여
꼴깍꼴깍 먹은 물 토악질한
닭의장풀꽃이
냄새 기막힌 비누칠로 옥빛 알몸 내놓고 목물 끼얹는
이 풍경의 먼 뒤꼍에는
두께 얇은 통판들로 초저녁 그늘 툭툭 쌓이는 소리.
툭하면 쏟아지던 작달비들 멎은 긴 장마 뒤, 말매미 몇이 울어댄다. 흡사 제재소 전기톱날 돌아가는 소리, 모처럼의 ‘둥근 오후’를 토막토막 켜는 듯하다. 화자는 ‘집 밖 남새밭에 나와’ 있다. ‘몸피 큰 회화나무들’이 둘러서 있다. 그 옛날 과거를 보러 가거나 합격하면 집에 심었다는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 혹은 선비나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는 거의 회화나무가 있다는데, 퇴계 이황이 모델인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도산서원을 둘러싼 무성한 나무도 회화나무란다. 화자는 학자를 많이 낸 집안 후손인가 보다. 화자는 남새밭 농부가 아니다. ‘제 생각의 속잎들 피워서는/고만고만한 고리짝처럼 묶는’ 회화나무는 지식노동자인 화자의 반영이다. 잦은 비에 씻겨 사위가 깨끗한 늦여름 오후, 방동사니 우거진 밭에 ‘건수 투명한 도랑줄기’ 졸졸 흐르는 걸 보며 화자는 ‘지난 한 세기의 담론들과 이데올로기 잔재들을 폭파하듯 쓸어 묻은’ 세상이며 ‘반생애 살고도 앎의 높낮은 뭇 담장들 뜯어치우고는/범람해 흐르는 개굴창 하나를 새로 마련치 못한’ 자신을 돌아본다. 이번 세기 초에 쓰였을 시다. 정치이념에서 비껴 살던 사람들도 충격이 없을 수 없었던 냉전 종식 이후, 세기가 바뀌는 ‘밀레니엄’ 여파로 벅차기도 하고 뒤숭숭하기도 했던 그때. 시대의 풍경 ‘먼 뒤꼍’을 기웃거리는 한 지식인의 내면이 장마 뒤 남새밭 풍경과 함께 ‘자유롭게 집중된 힘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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