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에 관한 프로포* / 윤금초
아직도 시조에 관한 한 명쾌한 학설이 서 있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적 있는 교육이니, 주체성 확립이니 하는 이 마당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학인 시조에 관한 뚜렷한 이론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서글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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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명칭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핑퐁?을 치듯 왔다 갔다 하는 논쟁만 거듭했을 뿐 이렇다 할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이다. 시조의 기원이나, 발생 연원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선생은 ‘시조 기원에 관한 일고찰(1933)’에서 시조는 무당의 노랫가락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고,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정병욱(鄭炳昱) 선생은 ‘한국고시가론(1977)’에서 별곡체라고 하는 고려 가요가 붕괴되면서 ‘만전춘 별사’와 같은 형식이 나타나서 나중에 시조로 바뀌었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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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율격(律格)에 대한 대목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른바 평시조의 율격이 초장 3·4·4(3)·4, 중장 3·4·4(3)·4, 종장 3·5·4·3이라는 음수율(音數律)에 의한 정형 규정은 맹랑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 박사가 평시조 2천7백59수를 표본조사한 "시조 자수고"에 따르면 초장이 위와 일치하는 작품은 47%(1천2백98수), 중장이 정형에 맞는 작품은 40.6%(1천1백21수), 종장의 율격이 맞아떨어진 것은 21.1%(7백89수)로 나타났다. 이것을 다시 확률론의 공식에 따라 계산하면 초장·중장·종장이 모두 시조의 정형과 일치하는 작품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원섭(徐元燮) 선생이 ≪평시조의 형식연구≫(1977)에서 재확인했고, 서울대 조동일(趙東一) 교수도 그의 책 ≪한국시가의 전통과 율격≫(1982)에서 고시조를 분석한 결과 초장·중장·종장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 고작 4%에 지나지 않는 데도 어떻게 이것을 시조의 정형이라고 고집할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따라서 “전체의 4%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정형으로 삼는다면 시조는 실상과는 사뭇 다르게 이해되고, 시조 창작의 방향도 왜곡된다.”고 말하고 “잘못된 지침은 창작을 부당하게 구속하게 만든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조동일 교수는 음수율을 따진 정형 규정은 일본 시가(詩歌) 율격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이루어졌으며, 조윤제 박사의 연구 방법론은 식민지적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고 못박고 있다.
조윤제 박사가 활동했던 그 시절은 그만큼 불행한 시대였다. 그러므로 우리 문학의 연구 방법론에서 식민지적 사고방식을 빨리 청산할 것을 우선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조의 정형을 음수율이나 음보율(音步律)로 헤아려야 했던 이유는 우선 시조 창작을 위한 기본 개념과 지침을 제공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밝히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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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한다.
동짓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구비구비 펴리라.
(밑줄 친 부분)
이 작품에서 시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장의 둘째 음보가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이라고 표현한 대목은 3·5의 율격―즉 석 자·다섯 자가 아니라 석 자·여덟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이호우(李鎬雨ㆍ爾豪愚) 선생의 ‘개화’를 예로 들어보자.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빛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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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역시 우리가 시조의 생명이라고 배워 온 종장, 즉 3·5·4·3의 틀에서 훨씬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시조의 기원·명칭·형식론을 되짚어 볼 때 우리는 지금까지 몇몇 학자의 이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해 왔음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상옥(金相沃) 선생의 작품 ‘느티나무의 말’을 예로 들어보자.
바람 잔 푸른 이내 속을 느닷없이 나울치는 해일이라 불러다오
저 멀리 뭉게구름 머흐는 날, 한 자락 드높은 차일이라 불러다오
천년도 눈 깜짝할 사이, 우람히 나부끼는 구레나룻이라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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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의 말’ 역시 시조의 정형 규칙에 의한 자수개념으로 따지면 그 정격(定格)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즉 초장의 경우 ?해일이라 불러다오?, 중장에서 ?차일이라 불러다오?, 그리고 종장의 경우 ?구레나룻이라 불러다오? 같은 대목이 시조 형태의 자수개념을 뛰어넘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상옥 선생의 "느티나무의 말"을 시조가 아니라고 우기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는 앞에 든 책에서 좁은 의미의 시조와 넓은 의미의 시조론을 개진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를 텍스트로 제시, 좁은 의미의 시조와 넓은 의미의 시조론을 펴고 있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40수 가운데 좁은 의미의 시조란 마지막 한 수, 즉 춘·하·추·동 사계절로 구성된 40수 가운데 동(冬)에 해당되는 40째 수뿐이고, 나머지 39수 모두가 넓은 의미의 시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부사시사’ 40수 가운데 단 한 수 외에는 39수 모두가 시조의 율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가 감히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시조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를 개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에서 예로 든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 긴 밤’이나 이호우의 ‘개화’, 그리고 김상옥의 ‘느티나무의 말’을 시조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고시조에 나타난 Y담 한 마디를 소개하겠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지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이름 없는 강계의 기생 진옥(眞玉)과 주고 받은 진한 외설시조는 현대인을 뺨칠 정도로 그 격조가 높은 것이다.
정철이 강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였다(선조 때). 달은 밝고 오동잎 지는 소리 스산한 밤, 귀뚜라미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그를 더욱 쓸쓸하게 하였다. 적막한 처소에 혼자 취해 누워 있는 그에게 나지막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강은 누운 채로 누구인가 물었다. 대답 대신 문이 스르르 열리고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는데 여인은 마치 한 마리 하얀 학처럼 고왔다. 그가 바로 기생 진옥이었다.
두 사람이 술상을 마주 하고 앉은 어느 날 밤, 반쯤 취한 송강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진옥을 불렀다.
“진옥아, 내가 시조 한 수를 읊을 테니 그대는 이 노래에 화답을 하거라.”
“예, 부르시옵소서.”
기생 진옥은 가야금을 뜯고 송강 정철은 목청을 한껏 가다듬어 노래했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뚜러볼가 하노라
이 시조를 현대말로 풀이하면 대충 이렇다.
“옥이라 옥이라 하기에 번옥(가짜 옥―돌가루를 구워 만든 옥)으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자세히 보니 참옥(眞玉)임이 분명하구나.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여기서 살송곳이란 남성의 심볼을 의미)
송강 정철의 시조 창이 끝나자 지체 없이 진옥이 받았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憾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뇌겨볼가 하노라
“쇠라 쇠라 하기에 순수하지 못한 섭철(잡다한 쇳가루가 섞인 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자세히 보니 정철(正鐵→鄭澈)임에 틀림 없구나.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그 쇠를 녹여볼까 하노라.”(골풀무란 쇠를 달구는 대장간의 풀무로서 여기서는 여자의 심볼을 의미)
그날 밤 송강과 진옥은 이 시조를 촉매제로 하여 적소(謫所)를 밝히는 촛불보다 더 뜨겁고 아름다운 사랑의 밤을 보냈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남자의 상징을 ?살송곳?으로 비유한 송강의 기지나, 여자의 상징을 남자의 그것을 녹여내는 ?골풀무?로 비유한 기생 진옥의 메타포 수법은 참으로 탁월한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Y담, 즉 음담패설보다는 한 수 높은 격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과거판 ?르윈스키 스캔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사건이 이미 조선 선조 때에 우리 나라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세계 최강자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르윈스키 양이 백악관의 은밀한 곳에서 ?오럴 섹스?니, ?시거 섹스? 잔치를 벌였다고 하여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르윈스키 양이 자신의 옷깃에 묻은 정액을 증거물로 제시해 가며 눈물로 증언했지만 결국 그는 클린턴의 옷을 벗기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선조 때의 명기 홍랑(洪娘)은 시조 한 수로 최경창(崔慶昌)이라고 하는 걸출했던 한 인물을 함락시키고 만다.
묏버들 가리어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는 창밖에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당시 삼당시인(三唐詩人)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고죽(孤竹) 최경창이 북평사(北評事:武官 벼슬의 하나)로 경성(鏡城)에 근무하고 있을 때 일이었다. 기생 홍랑이 읊은 한 수의 시조, 마흔 다섯 자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사랑의 시조 한 수에 그만 사나이 애간장이 다 녹은 최경창은 시조를 지을 줄 아는 멋쟁이 여인 홍랑 앞에 엎어지고 말았다. 선조 6년 최경창이 경성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에서 만난 홍랑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듬해 임기를 마친 그가 서울로 돌아오게 되자, 영흥(永興)까지 배웅한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러 저문 날 내리는 빗속에서 이 시조와 버들가지를 함께 건네 주었던 것이다.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여기에 감복한 고죽 최경창은 돈도 벼슬도 영화도 다 싫다며 관직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기생 홍랑의 품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오늘날의 ?르윈스키 스캔들?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시조를 생활의 일부로 체득하고 살았다. 글줄이나 읽은 사대부(엘리트)는 물론이요, 창이나 방패를 들었던 무사, 그리고 기녀(妓女)에 지나지 않았던 진옥이나 황진이, 홍랑 등 수많은 여인들이 주옥같은 시조작품을 남겨 우리 문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일부 엘리트일수록 시조 한 수 외우지 못하고, 외국 것이라면 꺼벅 죽는 문화 사대주의병(事大主義病)에 걸린 환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문화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민족시인 시조문학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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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다시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사회현상이 ?막혀 있음?은 보수적·폐쇄적임을 의미하고 과거 지향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것이 ?열려 있음?은 개방적·발전적 성격을 지님은 물론 미래 지향성을 내포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음수율ㆍ음보율에 얽매인 평시조를 ?막힌 시조? 혹은 ?닫힌 시조?라고 규정한다면, 반대로 폭넓은 융통성을 가진 사설시조, 엇시조, ?옴니버스시조? 같은 형태를 ?열린 시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시조가 외형율(外形律)의 제약을 받는 닫혀 있는 문학양식이 아닌, 내재율(內在律)을 중시하는 열린 마당, 열린 문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사설시조의 경우 우리 문학의 발전적 변모 과정을 더듬어 볼 때 열린 형식의 준거(準據)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강대 박철희(朴喆熙) 교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변화·발전 과정을 밝히는 글에서 ?조선조 사설시조의 경우 그것은 선행하는 사대부 시조의 관념성과 대립되는 사실적 요소에 의한 현실적인 시?라고 전제하고, ?그것은 다음에 올 자유시의 기초를 닦게 해준 에포크(新紀元)임에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사설시조에 있어서 사설조의 산문성이 당시 조선조 가사를 지배하던 산문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산문성이 다름 아닌 그 후 자유시의 개성적 리듬의 미학적 기반?이었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 말을 요약하면 사설시조가 발전하여 현대 자유시의 모태를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은 시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철희 교수가 진단한 한국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일관하는 지속성과 변화·발전의 흐름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면 우리는 ?사설시조→산문정신→현실인식→역사의식→현대 산문시?라는 등식을 쉽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설시조는 개성적인 리듬을 지녀왔으면서도 자유시에 영향을 끼친 개혁의지가 담긴 시요, ?열려 있음의 시?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단조로운 형식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걷어내는 ?의식의 혁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섬겨왔던 평시조 유일사상의 울타리를 허물고 시조의 다양한 형태―즉 양장시조·엇시조·사설시조 등 시조의 모든 형태를 즐겁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가 주장하고 이미 실험해 보인 ?옴니버스시조?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작품 속에 평시조·엇시조·양장시조(2장시조)·사설시조 등 모든 시조 형식을 다 아우르는 ?옴니버스시조(혼합 연형시조)?를 적극 수용하는 것도 시조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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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사 그놈
―이봉환(1961∼ )
여보씨요잉 나 세동 부녀 회장인디라잉 이번 구월 열이튿날 우리 부락 부녀 회원들이 관광을 갈라고 그란디요잉 야? 야, 야, 아 그라제라잉 긍께, 긍께, 그랑께 젤 존 놈으로 날짜에 맞춰서 좀 보내주씨요잉 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좋다고라? 앗따, 그래도 우리가 볼 때는 이놈하고 저놈이 솔찬히 다르등마 그라네 야, 야, 그랑께 하는 말이지라 아니, 아니, 그놈 말고, 아따, 그때 그 머시냐 작년에 갔든… 글제라 잉 맞어 그놈, 김 기사 그놈으로 해서 쫌 보내주랑께 잉, 잉, 그놈이 영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고 노래도 잘 하고 어른들 비우도 잘 맞추고 글등마 낯바닥도 훤하고 말이요 아, 늙은 할망구들도 젊고 이삐고 거시기한 놈이 좋제라잉 차차차, 관광차 타고 놀러갈 것인디 안 그요? 야, 야, 그렇게 알고 이만 전화 끊으요, 잉?
이 부녀회장은 혼자 전화 통화를 하는 게 아닐 테다. 모처럼 한가롭게 다리를 뻗고 앉았거나 뒹굴뒹굴 누워서 통화 내용에 귀를 쫑긋 세우고 “글제, 글제” 추임새를 넣거나 “아따 언니, 그놈이 뭐요?” 하며 까르르 웃는 부녀회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테다. 마을 공터마다 콩이며 팥이며 붉은 고추를 한바닥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농촌의 구월. 한 해의 징글징글한 고생을 마무리하는 관광철이다.
이 총기 있고 화통할 부녀회장은 관광여행을 준비하는 데도 만전을 기하는데, 여행사에 괜히 깐깐하게 ‘갑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김 기사 그놈’을 확실하게 요구한다. ‘영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고 노래도 잘 하고 어른들 비우도 잘 맞추고’ 게다가 ‘낯바닥도 훤한’ 김 기사. 친절과 환한 표정은 직업의식이 투철한 데서도 나올 테지만, 손님들을 어머니 같고 누이같이 느끼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 테다. 이 마을 여인들은 그걸 알아주는 것이다. 돈 몇 푼 차이로 거래처를 바꾸지 않고 어지간하면 단골이 되는 질박한 손님들을 여행사 직원도 알아서 모신다. 한 해 한두 번이나 대할 손님의 말귀를 척척 알아듣고 능청스레 맞장구를 친다. 이렇게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서로 마음 상할 일이 없으련만. ‘아니, 그놈 말고’ 소리를 듣는 사람은 제 직업이 적성에 맞는지 한번 돌아봐야 하리라. 기분 한번 내자고 마음먹은 순박한 이들을 ‘봉’으로 알고 바가지나 씌우며 성의 없이 대하는 관광지 식당이나 숙박업소도 반성하시길. 사투리 맛이 생생히 씹히는 재밌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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