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꽃씨와 불씨와 꿈을 지닌 여백(餘白)의 미학(美學)이다
시는 작지만 깨닫고 나면 커지고 미약하지만 터득하고 나면 강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시의 특수성이기에 그 원리는 꽃씨에도 적용되고 불씨에도 적용되고 꿈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시는 별스럽게 작다. 사람으로 말하면 그저 꿈만 지닌 어린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서사과정을 감출 수밖에 없는 것이고 행간에 의미를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행간과 끝 구절 다음에는 뒷맛이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 시는 긴 감동의 여운을 주는 여백의 미학이다.
시의 본질은 정서(情緖)와 사상(思想)의 결합이다. 이때 정서와 사상은 교직된 직물처럼 서로 녹아 있어야 한다.
사상은 지각(知覺) 지식(知識) 신념(信念) 의견(意見)의 종합물이고 정서는 감화적 요소로서 유기체의 전신적 감각이다. 그러나 시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감동과 쾌락에 있기 때문에 사상이 정서를 앞설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시의 정서가 한없이 약하다는 점이다.
어떤 형태의 정서라 할지라도 시라는 근원적 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전무하리 만큼 미미한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반응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쁨, 두려움, 슬픔, 근심, 노여움 등을 유발하는 매체는 시각과 청각이 주를 이룬다. 이때 시각의 예술이 미술이고 청각의 예술이 음악이다. 연극과 영화는 시청각을 다 합친 것이다.
미술은 원초적 반응을 유발시키고 음악은 몸을 흔들어 춤을 추게 한다. 연극과 영화는 사람을 흥분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나 시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도 눈물을 흘리게 하지도 못한다. 시는 율동을 하게 할 신명의 청각적 요소도 없고 미추를 구별케 할 시각적 요소도 없다.
이처럼 시는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하면 초라하다 할 만큼 내 세울 것이 없다. 동물로 말하면 날카로운 이빨도,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털도, 빨리 달리 수 있는 다리도 없는 하등동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하등동물이 인간인 것처럼 미미한 정서를 수반하는 시 또한 굴절의 예각 같은 지각의 촉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차원적인 시청각과는 다른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환언하건데 시는 사물의 순간적 파악을 속성으로 하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작고 가볍다. 그래서 누구든지 쉽게 암기할 수 있다. 일단 시를 외워 몸의 살붙이가 되도록 만들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수없이 반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경험이나 비전이 집중되는 결정의 순간들 속에 존재하는 시의 특성상 인간을 취하게 하고 인간을 변모하게 하는데 있어 더 이상 좋은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시는 예술 중에서도 명약임이 분명하다
시는 바로 이런 강점을 지닌 탁월한 정서를 지닌 문학인 것이다. 강한 충격 한 방으로 인생을 전환시키는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도 상당히 효과 있는 장르이긴 하지만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아무리 거대한 철옹성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시를 외워 암송하기만 하면 그 시의 정서는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 드디어 한 인간을 참 사람으로 바뀌어 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시는 참으로 작지만 매력적인 장르임이 분명한 것이다.
전쟁이 한참 치열하던 어는 날,
석양 녘 적탄의 총을 맞은 국군 병사 하나가 피가 흐르는 다리를 끌며 민가에 찾아든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생사기로에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이러다간 죽고 말겠구나’ 절망이 엄습할 때 주인집 딸로 여겨지는 젊은 여자가 툇간 옆 은폐된 지하곳간으로 병사를 숨겨준다.
병사는 그만 안도감과 함께 의식을 잃는다.
한참 뒤 의식을 차린 병사는 아름다운 처자를 바라보며 고마움의 표시로 씩 웃음을 짓는다. 고맙다는 말은 목 속에 잠겨 혀 밑에 숨고 만다. 젊은 처자는 전쟁의 비극 속에 희생되고 있는 꽃다운 젊은이의 부상이 안쓰러워 울먹 울먹거린다. 젊은이도 눈물이 맺힌다.
“걸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 - - - -- - -”
“저어 - - - - - ”
“저도 최대한 지혈을 하고 치료를 했습니다만 특별히 준비된 약이 없어 죄송하군요”
젊은 처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죄인 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뜻이 아니고- - - - - ”
“ - - - - - - - ”
병사는 젊은 처자의 방울진 눈동자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잠시 두려움이 없어진다
부상당한 군인병사와 산골 젊은 처자와의 만남, 그것도 전쟁터에서 피아간의 교전 중에 일어난 불행이 주선한 가교, 별난 조우, 숨막히는 치료, 공포와 두려움의 시간, 목숨을 건지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궁금증, 절박한 상황의 눈빛과 눈빛, 그리고 짧은 대화, 바로 여기에 슬픔과 연민의 정이 교차하면서 희망이라는 거대한 생의 좌표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한편의 시이며 아름다운 정서의 채색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 상황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겠다고 꾸역꾸역 자꾸 말을 건넨다면 이것이 어찌 전쟁터의 긴박한 상황의 분위기라 할 수 있으며 처음 만난 남녀의 떨림과 애처로움이 섞인 모습이라 하겠는가. 무언의 눈빛에 담겨진 수줍은 슬픔, 이미 서로의 마음이 다 드러나 있는 것이다.
시는 이처럼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여인의 작은 손길의 정서, 순박한 정서, 애절한 정서, 말을 다 삼켜버린 아픔의 정서- - - 그런 다음 처자의 가슴에 짙게 배어있는 고혹적인 정서, 그리고 한 움큼의 피와 출렁이는 긴 머리, 숨죽인 산 그림자,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자연, 그 침묵의 여백
우리는 이들의 다음 대화를 더 들을 필요가 없다.
그 뒤의 상황을 작가가 책임을 지면 소설이 되고 눈에 보이게 만들면 연극이나 영화가 되는 것이다
시는 짧은 대화로 형식적 소임을 다한 것이다. 비록 주인공이 치료 불능으로 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고 살아난다 해도 불구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비극적 결말보다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며 유추할 것이다. 그 유추가 여백이다
시는 꽃씨이기 때문에 착지하기만 하면 꽃을 피울 것이고
시는 불씨이기 때문에 눈빛과 만나기만 하면 생의 불을 지필 것이다
시는 꿈이기 때문에 한 발자국 내딛기만 하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상상의 날개 속에서 형용키 어려운 감격을 느낀다면---
생각만 해도 시의 여백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시란 참으로 위대하다. 그 작은 것이
시(詩)는 꽃씨와 불씨와 꿈을 지닌 여백(餘白)의 미학(美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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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과 ―고영민(1968∼ )
사과가 덜 익었다
덜 익은 것들은 웃음이 많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잘 익고
듬직한 사과가 되렴
풋!
선생님이 말할 땐 웃지 말아요
풋!
누구니?
풋!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풋내’는 ‘풋나물이나 푸성귀 등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라는 뜻인데 ‘미숙하고 유치한 느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덜 익은 것, 미숙한 것’이란 뜻을 가진 접두사 ‘풋’은 ‘푸르고 싱싱하다’라는 뜻의 형용사 ‘풋풋하다’에서 파생됐을 것이다. 풋감, 풋고추, 풋내기, 풋바심, 풋솜씨, 풋술, 풋잠, 풋사랑! 한입 베어 물면 잇새에 상큼하게 배어드는 풋사과 맛이 나는, 떫은 듯 새콤달콤한 ‘풋’ 단어들이여!
사과는 좀 덜 익어도 날것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그 풋풋한 맛을 잘 익은 사과맛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맏물 사과에 앞서 당당히 시장에 나온다. 빨강, 노랑, 보랏빛 과일들 속에서 파릇한 풋사과는 무르익은 여인들 속의 소녀 같으리. 풋사과를 보면 ‘풋사과’라고 읊조리고 싶어진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살짝 벌어지면서 마음을 싱그럽게 간질이며 나오는 소리, ‘풋’. 시도 때도 없이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소녀들의 웃음이란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잘 익고/듬직한 사과가 되렴’, 선생님 말씀에 소녀들이 ‘풋!’ 웃는다. 우스운 건 우스워서 웃기고 진지하면 진지해서 웃긴다. ‘선생님이 말할 땐 웃지 말아요’, 그 말에 소녀들은 또 ‘풋!’ 웃는다. ‘누구니?’, 언짢아진 선생님은 화난 눈으로 둘러봤을 테다. 소녀들도 웃음을 쥐락펴락하는 게 권력이라는 것, 웃을 자리 안 웃을 자리 가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위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풋!/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어떡해요’, 좋은 나이일세. 나이 들수록 웃을 일이 적어진다. 웃음이 웃음을 불러 배를 쥐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본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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