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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꿈꾸는 자는 늘 고독하다...
2017년 03월 29일 21시 47분  조회:2379  추천:0  작성자: 죽림

 

   조향의 시와 정신

 

                              최 휘 웅

 

 

   시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꿈꾸는 자는 고독하다. 전위의 예술 행위는 인습이나 관행에 대하여 통렬한 반항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당대의 몰이해는 물론이고, 현실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다. 외면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타성에 젖어 있는 시의 현실을 일신하기 위한 새로운 정신의 추구는 늘 이런 고통을 수반한다. 시의 발전을 위하여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의 영토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은 꼭 있어야 되는 것이지만, 정작 전위의 중심에 서 있는 시인은 주변의 몰이해와 비난의 형벌을 감내해야 된다. 무미건조한 상식의 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전위시인들은 그들이 걸어온 혁명의 길만큼이나 험난한 예술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유교적 윤리관이나 자연 친화의 정신이 뿌리박혀 있는 한국 문화 토양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방가르드 정신을 수용하고 용인할 수 있는 문화적 폭이 그만큼 인색하다는 뜻이다.

   초현실주의의 전도사임을 자처했던 조 향(1917-1984) 시인의 시의 일생도 몰이해와 외면과 비난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중앙문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방기된 채, 주변 문학의 한 축으로만 인식됐던 시의 인생이었다. 몇몇 그의 추종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문단의 중심에 있었던 문인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어쩌다가 관심을 보이는 시인이나 비평가들도 비난의 칼을 들이대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84년 여름 강원도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했을 때, 그 흔한 추도사 한 마디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문학은 절해의 고도에 유배되어 격리된 이단의 문학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1950년대 6.25전쟁중 피난 수도 부산에서 이봉래,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김차영 등과 함께 했던 『후반기』 동인 시절이 그의 문학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던 것 같다. 1940년 매일신문에 「초야」란 시가 가작으로 입선되어 등단한 이후 일제말기『日本詩壇』,『詩文學硏究』와 같은 일본잡지에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작활동을 했으며, 광복후 잠시 경남 마산에서 박목월, 김수돈, 김춘수 등과 『魯漫派』의 동인활동을 했지만 조 향의 본격적인 문학정신이 드러난 것은 『후반기』동인 시절부터였다. 이렇다 할 동인지는 없었지만 주로 『週刊 國際』를 통하여 그들의 문학적 신념을 펼쳐 보여 주었는데, 문단의 관심이 모아졌던 때다. 이때는 피난 문인들의 집결지로서 중앙문단의 역할을 했던 부산의 지정학적 조건과 전쟁이란 시대의 정신적 공황과 그들의 문학정신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문학사의 조명을 받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어떻든 이 시기의 이들은 중기 한국 모더니즘을 주도했다는 평을 듣는다. 조 향의 입장에서는 문학의 동지들이 있었고, 시대의 첨단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였다. 수도의 환도 이후 후반기 동인들은 흩어졌다. 대다수 서울로 올라가 버렸고, 조 향은 부산에 혼자 남는다. 그 이후 그는 외로운 문학의 길을 걸어야 했다. 후반기 동인이었던 박인환과 그 주변에 있던 김수영, 김춘수가 문단의 중심에서 각광을 받고 있을 때, 조 향은 한국의 남단 부산에서 초현실주의의 깃발을 들고 혼자 고군분투했다. 20년 가까이 봉직했던 동아대학교 교수직을 잃고, 1968년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현대문학』,『가이가』, 『일요문학』 등의 동인지를 주도하면서 양병식, 구연식, 조봉제, 노영란, 김춘방, 정영태, 김일구, 문재구, 안장현, 김용태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의 이념과 방법론을 나름대로 소화하여 확장하고자 했지만 문단의 무관심 속에 그의 문학은 소외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조 향은 그런 문단의 소외에 굴하지 않았다. 일부 문인들의 그의 시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문학적 신념을 놓지 않았다. 주로 도시적 우울과 불안의식으로 현실에 대한 반항정신을 노래했던 후반기 동인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고 실험성이 강했던 그는 문단의 아웃사이더 시인으로 고립되어 있었지만, 그는 현실과 타협하거나 기존의 문학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다. 아방가르드 정신의 철저한 실천자로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시의 인습에 반항하는 혁명가의 길을 걸었다. 서울로 이주해서도 제자들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연구회>를 조직하여 『아시체』란 실험적인 동인지 1,2집을 냈고, 김종문, 정귀영, 김차영, 노영란 등과 『전환』동인 활동을 하며 과격할 정도로 시의 형식을 파괴하는 초현실주의 시를 발표했다.

   조 향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질서를 거부했다. 그는 분명 시대의 첨단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무장한 시의 혁명가였다. 한국시의 보수적 질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의 영토를 개척하고자 했던, ‘시는 전적으로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랭보의 명제를 실천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당대의 문화조건이나 전통이란 미명의 사슬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절대적 자유를 향한 정신적 저항이었다. 그의 시는 이성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것이었고, 관습적 관념에 길들여져 온 피폐한 인간 정신을 일신하는 것이었으며, 합리주의의 이성적 사고에 의하여 억압된 인간의 원초적 감성과 상상력의 불을 무의식의 자동기술을 통하여 지피고자 했던 언어 혁명이었다. 그렇기에 당대에 이해 받을 수 있는 그런 시인은 아니었다. 문단으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으며 외로운 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기성의 비평가나 시인들 다수는 조 향의 시와 초현실주의 이론을 육화되지 못한 설익은 서구시의 모방으로 혹평했다. 한자어나 외래어를 남용한 난해시의 원조로 비난하기 일쑤였다. 장백일 평론가는 ‘그의 시에서 4, 5할을 차지하는 외래어를 빼어버리면 16, 7세 소녀의 눈물 같은 센치만 남을 뿐이다.’(현대시학 70년 7월호)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평생 추구했던 조 향의 초현실주의에 대해서는 1920년대 서구에서 있었던 한 때의 유행을 답습한 철지난 문학운동쯤으로 평가절하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조 향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협한 논리다. 지근거리에서 그의 문학 강의를 듣거나 논문을 상세히 읽었던 지인들은 그의 시 이론이나 시를 그렇게 쉽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재단할 수 없다. 그의 해박한 현대시의 이론에 경외감을 가졌던 필자의 눈에는 조 향의 시가 우리 문학에 분명 새로운 지평을 제공한 것으로 비춰졌다. 아직 유교적 윤리관과 동양적 자연관이 지배했던 당시의 시각으로는 조 향의 시가 납득하기 어려운 난삽한 언어장난으로 보였을 것이지만 점차 우리 사회가 산업화, 서구화의 길을 가면서 후기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내는 시점에서 그의 시는 여기에 대응하는 분명한 하나의 문학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물론 그것이 서구 이론에 경도된 결과였기에 독창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문학의 지평에서는 의미 있는 문학의 실천이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조 향 시인도 후반기 동인활동 이전의 초기에는 낭만적인 서정시를 썼다. 본인도 60년대 초에 출간된 경남 문인협회 기관지 『문필』에서 이 시기에는 주로 낭만적인 연애시에 몰두했다고 회고한다. 등단작인 「초야」가 그렇고 다음에 인용하는 시에서도 서정성에 기초한 그의 초기 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

 

하얀 돛배가 돌아오면

작은 항구에는 불이 켜진다

 

자줏빛 어스름으로 저무는 무학(舞鶴)의 산허리에

꼬리 긴 흰 문어연이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는 이른 봄

 

어두운 다리 밑에서 비럭지의 무리가

거미들처럼 기어나올 무렵

점토빛 매축지(埋築地)에 서커스의 천막이 흔들리면서

손님을 부르는 슬픈 클라리넷의 노스탈자!

 

죄그만 부두(埠頭)

부선(艀船) 위에는 인간들이 붐비고 하얗게 탁해진 먼지 냄새

 

<스미레>호의 기적(汽笛)이 이 밤을 흔들 무렵

먼 추억의 피안(彼岸) -그대의 하렘에는

작은 사랑의 불꽃이 갑자기 피어오른다.

  - 「마산항 」전문

 

 

옷도 베드도 벽도 창장(窓帳)도 모두 희어

무섭게 깨끗해얄 곳인데두 이 무슨

악착한 병균(病菌) 살기에 이리 외론 곳이냐

 

저승으로 갈 채비를 하얗게 하였구나

병동(病棟) 유리창에 오후의 햇볕이 따가워

간호부 흔드는 손이 슬프기만 하여라

-「SANATORIUM전문

 

 

   위의 시들은 조향 시인이 해방 직후 마산에서 교편생활을 하며『魯漫派』(1946년)동인활동을 할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쉽게 읽혀지는 시들이다. 마산항과 병동의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전달한다. 감상적인 정감도 깔려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들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운율 중심의 전통적 서정시와는 다른 시적 표현에 있다. 회화적 이미지가 주축을 이룬다. 시에서 회화성이란 20세기 초에 있었던 영미 이미지즘 운동의 중요한 시적 방법으로 이미 30년대에 김기림, 김광균 등이 선보인 바 있다. 이것은 조 향의 시가 초기부터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시「마산항 」에는 ‘Dessein 초(抄)’란 부제가 있는데, 이것은 언어로 마산 항을 점묘적으로 그려 보여주려는 시적 의도를 밝힌 것이다. 저녁 무렵 작은 돛배가 들어오고 있는 조그만 부두, 거기서 바라본 마산 무학산, 그리고 매축지의 써커스 천막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크라리넷 소리와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부선艀船의 정경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시 「SANATORIUM」에서도 흰색의 병동 이미지와 외롭고 차가운 그리고 슬픈 환자의 내면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조 향은 초기부터 회화성을 시의 기본 축으로 삼아왔다. 관념의 진술을 거부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태도는 이미 초기 시에서부터 나타난 것이다. 이국적 취향도 엿볼 수 있다. 병동이나 요양소로 번역되는 영어를 그대로 시의 제목으로 쓰는 의식에서 그런 취향이 드러난다. 회화성과 이국적 취향은 조 향 시의 한 평생을 지배해온 요소다. 일어세대로 성장한 조 향은 광복후 우리말 구사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었다고 『문필』의 같은 지면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말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그의 시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외래어 남용의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1949년 박인환, 김수영, 김경린, 양병식 등의 신시론 동인이 발간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보고 급거 상경하여 그들과 합류하기로 한 것도 조 향의 시적 경향으로 보았을 때, 극히 자연스럽다. ‘후반기 동인회’를 결성하기로 한 것도 이 때였지만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은 1950년 6.25전쟁 중 부산에서다.

   후반기 동인 중에서도 전투성이 가장 강했던 조 향은 ‘20세기 시는 진화를 했다. 진보는 수정이고 진화는 혁명이다’고 『국어국문학』 16호지에 발표한 「시의 발생학」이란 제목의 글에서 말하고 있다. 그가 상정하고 있는 진화된 시란 서구 현대시의 여러 유파 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졌던 초현실주의 시일 것이다. 50년대 시인 다수가 서구시에 대한 교양적 접근을 통하여 시의 에스프리를 구했던 것처럼 조 향도 1920년대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의 시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신기성에 매료되어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있다. 그것도 한국에 수용된 외래사조가 거의 그렇듯이 그의 텍스트가 그 당시 일본의 계간지『시와 시론』지를 통하여 얻어진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굴절될 수밖에 없는 한계성 또한 갖고 있다. 조 향은 마산에 있을 때 문장지 출신의 김수돈과 교류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시와 시론』지를 읽으며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 이후 자동기술법, 오브제론, 데빼이즈망, 꼴라쥬, 달리의 편집광적 수법과 같은 초현실주의의 시적 방법론에 관한 연구와 이에 집착한 시작활동을 함으로서 초현실주의의 외형만을 쫓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시가 포마리즘Fomalism의 시 형태에 기울어진 것도 이런 비판의 원인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초현실주의가 한국의 자생적 사조가 아닌 외래사조의 수용과정에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시 「바다의 층계」중에서

 

 

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

....................

..............

..........

......

꽝!

                        -시「SARA DE ESPERA」중에서

 

 

    코에계층

     스      계층

     모          계층

     스              계층

     한                  계층

     송

 소 이

 녀 만

                          -시 「코스모스가 있는 층계」중에서

 

 

   이런 문자 배열을 통한 포마리즘의 시도는 시의 시각화를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것이다. 문자가 가지고 있는 시각성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촉발된 것이지만, 이런 시도는 이미 초현실주의의 원조로 평가되는 아뽈리네르의 입체파시나 李 箱의 시에서도 있었다. 그 자체로서는 독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전통시의 관점에서는 표현의 혁명임에 틀림없다. 李 箱의 시에서 띄어쓰기를 무시하거나 선과 숫자를 동원한 형태주의를 선보였지만 그보다 더 과격하게 본격적으로 포마리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인간심리의 단층과 음향효과를 선명하게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순기능의 측면도 있다. 특히 시 「코스모스가 있는 층계」나 「물구나무 선 세모꼴의 서정」은 모든 책자들이 종서로 인쇄되던 시절 그에 맞춰 문자배열을 한 것으로 시 전체가 문자로 만든 독특한 회화 양식처럼 느껴진다.

   조 향은 1951년 어느 날 부산의 전원다방에서 이봉래, 김경린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합작시를 시도한다. 부산으로 피난 온 시인들이 주로 밀다원 찻집을 이용했는데, 그들 문학에 식상하여 반기를 들었던 후반기 동인들은 그들을 피하여 전원다방이나 갈채다방을 아지트로 하여 모였었다고 한다. 일명 ‘아시체 놀이’라고 하는 합작시 시 쓰기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을 드러내기 위하여 집단적인 사고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종이 위에 돌아가면서 단어나 문장을 하나씩 써서 조합하는 방식이다. ‘아시체’란 용어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우아한 시체는 술을 마실 것이다.’란 기상천외한 문장을 최초로 얻은 데서 유래 한다. 이 방법을 조 향, 김경린, 이봉래가 다시 시도한 것이다. 다음은 그 합작시 「不毛의 엘레지」마지막 연이다.

 

 

A 오오, 산델리아 밑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우리들의 리리크

B 도움의 하늘에 拍手처럼 흩어지는 무수한 訃告여

C 강아지를 몰고 오후의 散步路에 선다.

 

 

   이런 놀이는 쾌락 원칙에 입각한 집단적 표현이다. 이런 방법을 통하여 순수하고 강렬한 희한한 구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그들에게 있었다. 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일탈한 이런 여러 가지 실험들은 기존 시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의식의 흐름을 원용한 특이한 소설 「구관조」가 발표되고, 초현실주의 이론과 실험적인 시들을 계속 썼다. 희곡이나 시나리오 형식을 접목한 장르 파괴적인 실험 시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시「ESQUISSE」첫째 연

 

            1

            (C ․ 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따악 붙어 있다

指紋엔 나비의 눈들이…

 

              (M ․ S)

쇠사슬을 끌고

수많은 다리의 행진

 

             (O ․ S)

M 「아카시아꽃의 계절이었는데……」

W 「굴러 내리는 푸른 휘파람도……

                                 -시 「검은 SERIES」첫째 연

 

 

   시에서 이처럼 인물 행위 위주의 진술과 독백이나 대화 형식의 과감한 도입은 그 때까지의 시 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특히 시 「검은 SERIES」는 cine-poem이란 부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시나리오 형식을 시에 도입한 최초의 작품이 될 것이다. 철저하게 설명적 요소나 관념의 진술을 배제하고 감각적인 언어의 지문과 독백, 대화로 구성된,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시 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조향은 초기 평면적인 회화 시로부터 보다 입체적이고 동적인 공간감 확장의 방향으로 시의 영역을 확대해 갔다. 연극이나 영화, 또는 사진 같은 인접예술에서 영감을 얻어 표현의 혁명을 꾀한다. 직접 초현실주의적인 사진을 찍어 사진전에 내놓기도 했고, 전위극단 『예술소극장』대표로 연극을 한 적도 있다. 이런 그의 노력은 그 당시 경박한 언어장난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완고하고 고루한 시의 근엄주의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유희본능이란 것이 있고, 거기에 기대어 예술적 상상력은 더욱 확장된다. 물론 서구시의 주체적 수용이란 측면에서 전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과 유리되어 토착화되지 못한 측면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지나치게 표현의 혁명에만 몰두한 나머지 내용의 공소함을 드러낸 점도 있다. 특히 내용 중심의 서정시를 쓰는 시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표현기법에 안주할 수 없는 시의 정신은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 고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의 성공 여부는 후차적인 문제다. 기성의 문학적 질서와 권위를 부정하고, 20세기의 후반기 문학을 선도한다는 의식이 강했던 후반기 동인들의 탈 전통성은 시에 있어서 현대성의 추구와 도시적 감수성을 근간으로 한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조 향은 초현실주의에 경도된 시작과 이론 전개에 열을 올렸다.

   조 향은 초현실주의가 물질문명에 길들여지고 순치된 인간정신을 해방하여 절대적인 자유를 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절대자유를 얻기 위한 근본적인 반항정신으로 초현실주의를 이해했다. 존재를 억압하는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무의식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의 논리를 버려야 한다. 이미 언어에 덧칠된 논리성과 의미의 때를 벗겨야 한다. 조 향에게 있어서 언어의 의미론으로 시에 접근하는 것은 자유의 포기를 뜻한다. 기성의 시적 사고에서 일탈하기 위하여 언어의 실용적 기능, 의미의 전달 기능을 철저히 배격했다. 신구문화사에서 출판한 『전후 문제 시집』에는 자작시「바다의 층계」를 해설한 ‘데뻬이즈망의 미학’이란 제하의 글이 실리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시에 있어서 말이란 것을, 아직도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단순한 연모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시는 대단히 이해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말'의 구성에 의하여 특수한 음향이라든가, 예기치 않았던 '이미지', 혹은 활자의 배치에서 오는 시각적인 효과 등, '말의 예술'로서의 기능의 면에다가 중점을 두는 이른바 '현대시'로서, 이 시를 읽고, '느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실용적인 언어가 갖고 있는 현실적 의미의 연관을 차단하지 않고는 새로운 언어미학은 탄생할 수 없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들은 기존의 언어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기 위하여 데뻬이즈망의 기법을 강조한다. 조 향은 같은 지면에서 '데뻬이즈망 Depaysement'을 전위轉位로 번역하면서 ‘사물 존재의 현실적인, 합리적 관계를 박탈해 버리고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어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의미를 배제한 언어미학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렛델이 붙은 통조림통이 아직 부엌에 있는 동안은 그 의미는 지니고 있으나, 일단 쓰레기통에 내버려져서 그 의미의 효용성을 일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한다.’는 입체파 화가 브라끄의 말을 인용하여 덧붙이기도 했다. 여기서 의미의 효용성을 잃어버렸을 때란 실용성과 일상적 의미의 세계를 포기했을 때 그 뒤에 남는 것이 절대 순수 실존이며, 이 상태가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초현실주의의 방법론 가운데서도 특히 자동기술법은 잠재의식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데 유용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하여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복해 있는 이미지들을 시의 전면에 끄집어 올리려 했다. 전연 이질적인 것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며 공존하는 이상야릇한 시, 문명과 현실의 정신적 속박에서 벗어나 환상과 꿈의 십자로가 열리는 시의 절대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다. 시의 진부함을 거부하고, 꿈의 물결, 신기루 같은 환상, 신기함, 증오와 절규,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마법의 신비주의가 그가 꿈꾸는 시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윤리관이나 질서관으로 보았을 때, 파괴적인 악마주의요, 무모하고 무질서한 난해시였다. 

 

 

   노크를 한다「어둠」나와서 갈색 기침을 너댓번 내뱉더니 문을 연다。 「어둠」의 얼굴은 뭉개져 있고, 손엔 二미터나 되는 털들이 흐늘거린다。 물결에 일렁이는 水草다。 너무 하십니다。 퇴락한 벽에는 죽음이 자고 간 자국。 더러운 무늬들이。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내 과거의 시제가 동결된 채 매달려 있고。 「白髮(백발)의 拳銃(권총)」소리。「일찌기 존재했던 모든 장소를 오직 메아리만이 또락히 再現할 것이다。」사면 벽에선 자물쇠 잠그는 섬짓한 音階(음계)。 다시 낄낄거리는 소리들。 아찔하다。「어둠」은 길게 절망을 그림자인 양 끌면서 아직도 골마루에 서 있고 창 밖에선 군중의 시커먼 끝없는 아우성들이。 밤의 층층계 死神의 옷자락엔 검은 나비가。 도시는 오늘. 노예선처럼 암담히 가라앉아만 간다。

  -시「검은 不定의 arabesque」후반부

 

 詩集을 안고. [빠아] <地中海>의 辭表. 거만한 高架線. 과부 구락부. [메가 폰] 걸어가는 헌병 Mr. Lewis. Poker. 검문소의 <몽코코 ․크림>. 聖敎堂에서는 街娼婦人과 卒業證明書를 (중략) 검은 안경. 화랑부대 00고지 탈환. von de nuit. <을지문덕>의 미소. (중략) <모택동>의 피리소리. 파아란 맹렬한 밤. 그럼요. <카사브랑카>.

-시 「어느날의 MENU」중에서

 

 

죽어 쓰러진 엄마 젖무덤 파고드는 갓난애.

버려진 軍靴짝.

피 묻은 [까아제].

휘어진 鐵筋.

구르는 頭蓋骨.

부서진 時計塔.

전쟁이 쪼그러고 앉았던 廣場에는 누더기 주검들이.

彈丸 자국 송송한 郊外의 兵舍.

                                                                 -시 「文明의 荒蕪地」에서

 

 

   이상에서 예시된 바와 같이 조 향의 초현실주의 시에는 일상과 비일상이, 꿈과 현실이 공존한다. 시 「검은 不定의 arabesque」에서 ‘어둠’은 꿈에서 만나게 되는, 실체가 잡히지 않는 공포의 대상이다. 깊은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억압 상태의 변형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무의식 속에 잠복되어 있다가 꿈의 상태로 재현되는 죽음의 공포와 그것에 전율하는 절망적 심리상태, 그리고 시적 자아를 에워싸고 있는 암담한 현실인식 등이 복합된 이미지들을 비논리적으로 자동기술 하고 있다. 이 시에서도 ‘白髮의 拳銃’, ‘자물쇠 잠그는 섬짓한 音階’, ‘시커먼 아우성’, ‘밤의 층층계’와 같은 이질적 언어의 결합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데뻬이즈망을 통하여 창조된 오브제들이다. 현실적인 의미관계가 박탈된 사물들, 일상적인 합리적인 관념에서 해방된 특수한 객체를 초현실주의에서는 오브제objet라고 한다. 특히 ‘白髮의 拳銃’에서 권총 앞에 현실적으로 올 수 있는 말은 백 개의 총알이란 뜻의 ‘百撥’이다. 그런데 이것을 흰 머리털이란 뜻의 ‘白髮’로 환치해 놓고 있다. 이것은 동일 음에서 유추하여 다른 뜻의 단어로 바꿔치기 한 언어유희다. 언어유희는 언어 사이의 현실적인 의미 관계를 박탈하여 의미를 초월하게 하고, 예기치 않은 뜻밖의 발상으로 이때까지 길들여진 언어습관이나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일종의 정신해방 운동이다. 이런 오브제들은 비시각적 대상을 시각화 하며, 합리적 사고에 충격을 가하여 이완시킨다. 경련하게 한다. 느닷없이 끔직한 공포의 심리상황과 마주하게 한다. 특히 죽음이나 어둠, 탄환, 병사 등이 환기하는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전쟁의 기억'과 관련된다.

   1954년에 발표한 <어느날의 MENU>에서 이미지의 충돌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시는 마치 음식점의 메뉴판에서 각기 다른 음식의 이름들이 인과 관계나 논리적 연관 없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처럼 이미지의 파편들을 열거한다. 문장 구문이 갖고 있는 주어, 수식어, 서술어 등의 유기적 관계를 해체하여 이미지 간의 단절, 또는 단층화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혁명적인 새로운 시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런 오브제들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시적 효과는 단절감, 해학, 경이의 미학이다. 이 시에서 인과론적 관계가 차단된 이미지의 파편들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전쟁의 상흔'을 환기한다. 시「文明의 荒蕪地」는 보다 직설적으로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전쟁의 기억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시에서는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들이 차례로 이동하는 영화장면의 컷처럼 전개된다. 이미지의 끝마다 마침표를 찍고 행갈이를 함으로써, 의식의 단절을 꾀한다. 수사학의 측면에서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라 물질성을 지닌 언어기호를 나열한 환유적 표현이다. 환유의 세계는 파편화 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어느날의 MENU」에서도 이미지 간의 단절은 있었지만 산문시 형태로 연속시켜 ‘불연속의 연속’과 같은 자유연상의 형태였다면 이시의 각기 독립된 이미지들은 몽타주 기법으로 처리된 영화의 장면처럼 '전쟁의 참상'을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준다.

   이렇게 조 향 시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근원에는, 전쟁의 어두운 기억이 도사리고 있다. 5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활동을 한 많은 시인들이 그랬듯이 조 향도 식민지 시대의 암울과 해방공간의 혼란, 전쟁의 참혹한 기억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전쟁의 폐허에서, 탈출구 없는 검은 벽과 부딪힌다. ‘世紀의 폐허에서' '돌아다봤더니 내 뒤에는 검은 壁 壁壁壁壁壁壁 되돌아나갈 바늘구멍 하나도 없는'<검은 DRAMA> 한계상황으로 현실을 인식한다. 그러나 조 향은 시「왼편에 나타난 灰色의 사나이」에서 ’우리는 아직도 살아있다. 스스로 타버린 잿더미에서 다시 생생하게 숨 쉬는 것‘을 노래한다. 다시 태어나는 생명력을 회구하는 의식에서 한계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억압된 죽음의 검은 벽으로부터 자아해방을 꿈꾸는 의지의 표현이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자신의 문학적 신념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바로 이런 의지에서 나온다. 조 향에게 있어서 초현실주의는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통로요, 방법이었을 것이다. 초현실주의가 일체의 억압이나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자아를 해방하여 절대자유를 획득하고자 한 문학 운동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1950년대 암담했던 전후라는 특수상황의 맥락에서 조 향이 초현실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름하게 한다.

시「Episode」에서는 현실계를 떠나 꿈의 상태, 잠재의식의 몽상적인 세계가 무관계한 구상적 언어들의 병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이윽고 총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보았다.

-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동그라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리를 처박곤 하이얗게 화석(化石)이 되어 갔다.

 

 

   여기서 소년, 소녀, 총, 손바닥, 연기, 구멍, 바다 등은 모두가 구상적인 언어들이다. 그러면서도 이 구상적인 언어들은 실재적인 현실관계를 표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의 상태를 탐미적으로 나타낸다. <소년>과 <총>, <소녀의 손바닥>과 <나비>, <손바닥의 구멍>과 <바다>가 관계 지워지는 공간은 현실적인 공간을 떠나 상상력이 펼치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치 현실적인 사물의 관계를 박탈한 오브제들을 화폭에 담아 놓은 살바돌 달리의 초현실적인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의 구조는 다분히 논리적이다. 소녀의 손바닥에 총을 겨눈다는 가정 다음에 손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는 구멍을 통하여 보이기 때문에 동그랗다는 모양 설정이 그렇다. 이런 논리성의 이면에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환상이 자리한다. 이런 환상을 통하여 조 향은 일체의 실용성이나 이데올로기적인 관념을 거세한 순수의 절대 영지를 개척하려 했다. 한 편 프로이드의 관점에서는 무의식에 억압된 성 충동이 치환되어 나타나는 이미지의 시로 볼 수도 있다. 남성 성기가 총으로, 여성 성기는 구멍을 통하여 바라본 동그란 바다로, 그리고 도착된 성행위가 놀란 갈매기들이 머리를 처박는 것으로 치환되고 상징화 되어 꿈으로 나타난 무의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의식은 이성에 의하여 억압된 기의들의 다양한 기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프로이드 학파들은 말한다. 이 기표들이 기의에 종속되지 않고 압축, 치환, 은유, 환유 등의 법칙에 따라 무의식을 구성하는 것으로 그들은 보았다. 이 시의 언어들을 그런 무의식의 기표들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조 향의 시에는 순수한 환상시와 더불어 상황악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이나 무의식에 잠복해 있을 법한 돌출 이미지들이 그의 많은 시들에서 발견된다.

 

 

1. 너는 까만 밤의 수첩 갈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태양의 경수, 끈끈이주걱, 소파수술)

2. 검은 발자국 소리, 모가지도 없는 붉은 망토자락의 그림자들(붉은 달이 있는 풍경화)

3. 붉은 발톱이 국경선을 할퀸다. 밤 곁에서 회색의 기침소리가 난다(쥬노의 독백)

4. 모가지 없는 입상들이 하얀 태양 아래서/ 시커먼 회의를 열고(검은 Ceremony)

5. 유령의 마을에는 백합꽃이 만발한데(지구 위령탑 위에)

6. 지하욕조에서 납인형이 된 여인을 한 아름 안고(시편들은 옴니버스를 타고)

7. 밤의 톱니바퀴에 걸려 있는 소녀의 육체(샅으로 손을 내미는 소녀는 밤의 톱니바퀴에 걸려있다)

8. 醫師의 손가락을 잘라서 옥상정원에 심었다(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算數)

9. 맥줏병저쪽, 죽음의 灰色이 만발한 오후3시에(木曜日의 하얀 筋骨)

10.고층건물은 向天性 男根(하얀 傳說)

11. 아침마다 펼쳐진 서울의 퀴퀴한 內臟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聖 바오로 病院의....)

 

 

   비교적 후기에 쓰여진 텍스트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시구들이다. 원거리 연상에 의한 폭력적인 언어결합도 보이고, 의미론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문법의 해체도 보인다. 이미지들의 전위와 충돌. 이런 언어 구사는 공포, 불안, 죽음, 저주, 종말의식, 성도착과 같은 심층심리를 반영한다. 특히 黑, 白, 赤의 색채어는 시의 회화성에 일조하기도 하지만 어둡고 칙칙한 무의식의 세계를 형상화 한다. 조 향은 일찍부터 시의 회화성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이 표현 방법은 조 향 시의 핵으로 자리한다. 조 향의 시에서 색채어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 하는 시각적 효과, 그리고 일제의 암흑이나 6. 25전쟁의 참혹한 경험, 개인적인 좌절 등이 각인된 무의식을 표현하는 기표로서의 역할을 한다.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의 기표들을 조 향의 시에서 수없이 만나게 된다. 원초적 감정이나 강박관념, 성적 갈등 등이 도덕률이나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무의식에 억압되고,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자기소외와 욕구불만의 정신상황으로 이어진다. 조 향 시에 나타난 부정否定적 이미지들은 자아를 근원적으로 소외시킨 세계에 대한 욕구불만의 표현이요, 타락하고 부조리한 외부 현실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조 향 시의 언어기호들은 총체적으로 거대한 현대문명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현대인의 암흑 의식을 반영한 묵시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시에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공포영화나 심령영화의 장면처럼 섬뜩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자유 연상법에 의한 이미지들의 돌출 현상들은 살바돌 달리의 편집광적인 오브제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시에서 경이의 미학, 광기의 미학에 심취했던 조 향은 몽환적인 초현실의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갔다.

   조 향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융 등의 심층심리학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면서 초현실주의 이론을 확장해 갔다. 초현실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이들 심리학에서 구했다. 급기야 조 향은 동양의 주술적 세계에서 초현실주의의 정신을 만난다. 이미 장자나 노자의 사상과 초현실주의와의 관련성을 기술하여 초현실주의 정신이 동양정신에 맥락이 닿아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는데, 필자가 조 향 시인으로부터 들은 마지막 강의 내용은 무의식과 주술적 세계에 관한 시적 상상력이었다. 1975년 봄이었던가 싶다. 점술가들의 예화가 많이 등장했다. 영매들의 주술적인 언어를 시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면 훌륭한 초현실주의 시가 될 것이라는 부연이었지만 그것이 실현된 조 향의 시를 필자는 끝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시 「永訣」에서 그런 상상력의 일단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리도 거칠던 숨소리도 걷히고, 고요히, 핏빛, 입술에서 빠져나가고, 해쓱해진 아버지, 눈 감으시다. 얼굴. 주검

 

 

들먹거리는 어깨, 어깨, 아이고아이고아이고아이고아이고

 

 

                                                                          燮 濟

                                                                          鳳 濟

 

옴모보리 가마리 이다가야 사바하.

코스모스 핀 언덕길,아버지가 가신다.담배를 피워 무신다. 돌아다보신다. 幽體 자락에 바람이 감긴다.

옴바아라사다목사목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이젠 하이얀 미이라,하얗게 동여진 아버지

집을 배반한 놈 마중 나갔다만 봐라! 하시더라던 아버지 그래도 기차 닿을 시간에 먼저 나오셔서 먼빛으로 플랫포음의 날 맞이해 주시더니, 아버지,蕩兒 돌아오다 그 날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손자 보고 싶다시더니 <봉래>란 놈 손잡고 한 번 거니시지도 못해 보시고, 끝내 아버지는, 그만 참!

 

 

옴살바못다못디사다야사바하

새벽에,屈巾,祭服,대작대기,보슬비

靈幀旣駕 往卽幽宅

 

 

「處士咸安趙公偉鏞周之墓」

 

 

건너편 언덕 신작로 오르막길,

이승의 버스가 씨근거린다

 

 

 

   이 시는 외형상으로는 부친의 임종에서부터 시신을 산에 묻고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 그 시간 안에서 전개되는 전통적인 상례의 절차를 압축적이며,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장의가 진행되는 단층마다 상주의 의식이 겹치고, 망자에 대한 자식의 회한과 슬픔의 정서가 엄습한다. 스님의 염불소리, 상주의 곡소리를 의성화 하여 음향의 입체감을 살림과 동시에 과감히 차용한 한시나 한문구와 겹쳐 주술적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형태주의를 의식한 문자의 배치는 시에 공간감을 부여하는데, 특히 상주의 이름을 나란히 독립된 행으로, 행의 끝에 배치함으로써 상주들이 서서 곡을 하거나 문상객을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굴건, 제복, 대막대기 등 장의에 등장하는 소도구의 병치는 빈소의 리얼한 상황제시 효과가 있다. 언어 상호간의 논리적인 의미 관계를 차단하여 언어와 언어 사이, 행간에 의식의 명암을 투영시키고, 혼백의 움직임을 영상화 한다. 시의 결미에서 ‘永訣終天’의 한자를 일렬종대(원래는 횡대였다. 종서로 인쇄되던 때의 형식에 맞추어 쓴 것이기 때문에 시 전체를 종서로 읽으면 시각적 효과가 더 크다.)로 나열하여 혼백과 영결하는 심리적 공허감이나 공황의식을 시각화 한다. 특히 마지막 글자 ‘天'을 한 행 더 띄움으로써 망자를 묻고 돌아서는 순간의 휘청하며 무너질 것 같은 허전한 심리의 공복감을 형상화 한다. 현실과 영계, 과거와 현재, 내면의식과 상황을 동시공존 시키는 이런 기법들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시의 공간을 확장한다. 시적 상상력의 무한공간을 우리는 이 시에서 볼 수 있다. 이 시의 실험정신이 초현실주의 정신에 닿아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의 실제성을 뛰어넘어 비실제성의 영감의 세계까지를 시의 공간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과 교감하는 의식의 단층, 외부현실과 내부세계가 공존하는 환상공간을 우리는 이 시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일찍이 초현실주의는 의식과 무의식, 육체와 정신의 이원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현실세계와 꿈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경계가 소멸되었을 때, 비로소 신기루와 같은 초현실이 나타난다. 이것은 물질적 대립과 모순을 뛰어넘어 정신의 지고점至高點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의 한 소산이다.

   조 향은 현대시론(抄)에서 ‘항상 역사의 첨단에 서 있다는 의식과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식- 역사를 창조하는 데는 언제나 혁명과 실험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서구라파의 황혼의 네거리에서 이미 <의미의 세계>를 포기하려는 실험은 상징주의, 인상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 두 문장으로 조 향이 평생 동안 고군분투했던 시의 정신을 요약할 수 있다. 조 향 시인이 갈망했던 시의 길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의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었고, 우리의 정신을 일신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었다. 초현실주의가 작품 자체의 완성에 가치를 두기보다 자아 해방의 자유정신과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의 탐구를 더 우위에 두었듯이 조 향도 그런 맥락에서 시작에 임했다. 그것은 전위의식으로 무장할 때만 실천 가능한 일이다. 결코 그는 문학적 명성이나 대중에 영합하는 길을 가지 않았다. 비평가의 눈치를 보며 문학적 신념을 슬쩍 바꾸는 수정주의자는 더욱 아니었다. 항상 문학의 미래가치를 염두에 두고, 시의 고정된 관념의 틀을 깨며, 시의 진화를 위하여 고심했던 전위시인이었다. 그 이후에 전개된 해체시나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젊은 시인들의 실험시와 조 향이 추구했던 시의 여러 모험들을 비교해 봤을 때, 그의 시적 상상력이 결코 뒤지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가 미래를 향하여 살아왔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조 향의 문학적 성취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만큼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생전에 비판 받았던 것처럼 외래어의 남용과 방법론에 집착한 작위적인 시작 태도를 드러낸 점은 그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의 해박한 초현실주의에 대한 지식과 이론에 비하여 작품의 깊이가 미처 따르지 못했다는 느낌도 있다. 지나친 현학적 취향도 조 향의 글에 접근하는데 상당한 장애 요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서 새로움과 경이를 창출하기 위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보고자 했던 한 시인의 노력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도 한다. 문학의 본질 탐구 보다는 문단의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 하는 문단주변의 속물적 풍토에 혐오와 염증을 가지고 있었던 조 향은 철저히 문단과 담을 쌓으며 오로지 자신의 문학적 신념만을 붙들고 스스로 소외의 외로운 길을 걸었던 진정한 시학도였다. ‘무의식이야말로 존재의 진수요, 정신을 지배하는 원동력이요, 일체의 기만이 거세된 세계, 마땅히 그려질 가치가 있는 영토다.’ 라고 시론에서 그는 말하고 있다. 초현실주의가 순간과 영원, 외부와 내부,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 등 대립과 모순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고 용해시킴으로써 과학문명과 윤리적 이성에 억압된 자아를 해방하고자 한 운동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이 명제는 후기 자본주의 모순을 안고 신음하는 지금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 한다. 

 

 

 

*약력

1982년 월간 『현대시학』에 전봉건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와의식』(74년), 『절대시』(86년), 『시21』(98년) 동인활동

현재 계간 『시와사상』 편집인

시집: 『녹색화면』 외 다수. 평론집: 『억압. 꿈. 해방. 자유.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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