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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베이징 올림픽을 두고 '선구자의 백 년 꿈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한다.
1907년 애국교육자이며 톈진 남개대학(南開大學) 초대 총장이었던 장백령(張伯岺) 선생은
글의 내용은 세 가지 질문으로 축약된다. 하나, 중국은 언제 본국 선수 팀을
국운이 위태롭고 국민이 도탄에 빠져 아시아의 병자라고 수모를 당하던 그 참담한 시대에
1932년 단거리 달리기 선수 류장춘(劉長春)은 제10회 로스엔젤레스올림픽에
4년 뒤인 1936년, 류장춘은 다시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 나갔다.
첫 올림픽 금메달은 그로부터 다시 48년이 지난 뒤인 1984년,
중국은 최근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자
중국 사람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여기면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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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자: [ 길신 ] [ 길림신문 ] [ 2010-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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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2010년월드컵을 가는 국내 유일의 소수민족신문
6월 23일 새벽 2시 30분에 한국 vs 나이지리아전이 펼쳐지는
더반, Moses Mabhida Stadium (약 70,000명 수용)
세계가 주목하는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이 100일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외 언론들에서 월드컵을 열점화제로 다루고 있다.
지난 1월 27일 본사는 2010년 남아프리카월드컵 취재자격심사에 통과되였다는 중국축구협회의 팩스를 받았다. 그후 국제축구련맹 관방사이트에 접속하여 인증과 심사를 거쳐 보도단위회원가입에 성공하고 정식으로 취재자격을 획득했다. 이번 회원가입시 안전검사는 남아프리카국가정보국에서 책임졌다.
금년 월드컵취재기자증은 수량이 제한되였는데 중국에 60장밖에 차려지지 않았다. 국내 큰 언론들지간의 경쟁이 치렬했는데 본사는 국내 소수민족신문으로서는 유일하게 자격을 얻었다.
이번 취재자격을 얻은 본사 김룡기자는 월드컵현장에 가서 나란히 월드컵에 진출한 조선과 한국국가팀의 다수경기와 결승전 등 중요경기를 현장에서 보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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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자: [ 김태국 김파 ] [ 길림신문 ][ 2010-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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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으로 략칭) 월드컵 취재현장에서 중국 조선족기자의 모습을 볼수 있게 되였다.
6월 5일 오전, 길림신문사는 《남아공월드컵 현장취재 출발식》을 갖고 원정취재를 떠나는 김룡기자를 격려했다.
남아공 월드컵취재에 우리 나라에 할당된 공식 기자명액은 60명, 유일한 소수민족신문기자로 취재권을 획득한 김룡(필명 청룡)기자는 이번 취재길에서 전 세계 우리 말 축구팬들에게 남아공월드컵의 생생한 뉴스를 전하게 된다.
이날 출발식에서 길림신문 한정일 부주필은 김룡기자가 이번 취재권을 획득한 과정과 월드컵취재일정에 대해 소개하면서 《중국조선족신문으로서 우리 기자가 직접 월드컵에 가서 현장에서 취재하여 우리 말 독자들에게 생생한 스포츠뉴스를 제공한다는것은 그 어느 각도로 보나 심원한 의의가 있다. 월드컵본선에 동반진출한 조선팀과 한국팀을 자유롭게 취재할수 있는 세계 유일한 기자가 될수도 있다는 점에서 김룡기자의 남아공행이 기대된다》고 했다.
김룡기자는 오는 8일 북경에서 항공편으로 출발, 9일에 남아공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취재활동을 시작하게 되며 7월 14일에 귀국하게 된다.
출발식에는 연변일보(조,한문), 연변방송국,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연길시텔레비죤방송국 등 매체의 기자들이 참가하였다.
김룡기자의 월드컵 취재는 《길림신문》 창간 25주년맞이 특별 기획행사중 하나이기도 하다.
남아공월드컵으로 향발하게 되는 길림신문사 김룡기자(오른쪽).
남아공월드컵 출발식 취재를 진행하고있는 연변매체기자들.
1963년 11월 27일 연길에서 출생 1981년 10월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 1984년 7월 연변일보사 입사 1992년부터 현재까지 길림신문사 조판실주임, 편집반공실 부주임, 인터넷스포츠주임 등 직을 력임. 혈형: AB형 신장: 1.65m 애호: 축구, 낚시, 등산 좋아하는 축구팀: 독일팀, 조선팀, 한국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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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자: [ 김태국 ] [ 길림신문 ] [ 2010-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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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기자증 발급받고 취재활동 본격 시작
지난 7일, 연길공항에서
지난 7일 아침에 연길을 떠난 김룡기자는 북경에서 8일 오후에 항공편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발했다. 김룡기자는 9일 오후 1시(당지시간으로 아침 7시)좌우에 남아공수도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였다.
9일 오후,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모든것이 낯설고 위험과 신비가 안개처럼 뒤덮인 아프리카대륙 남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길과 3만리나 떨어진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을 비롯한 9개 도시를 홀로 전전하면서 김룡기자는 40여일간 2010남아공월드컵을 생생뉴스로 보도하게 된다.
하지만 세계축구계의 거물스타들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처음으로 길림신문 애독자들을 비롯한 조선족축구팬들에게 전하게 되는 김룡기자에게는 어려움도 많다.
언어는 물론 음식습관과 6시간의 시간차, 남북위도차로 오는 피곤함은 그런대로 극복할수 있지만 가장 어려운것이 바로 홀로라는 점이다. 당지의 불안한 치안상황 때문에 남아공주재 중국대사관에서는 홀로 다니지 말고 택시를 함부로 타지 말라고 부탁하더란다.
국제축구련맹(FIFA)에서 발급한 기자증(촬영)
길가의 게양게시대에는 걸린 국기가 유표하다.
중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어렵게 호텔방을 잡고 월드컵주최측을 찾아 기자증을 발급받은후 개막전이 열리는 사커시티 스타디움에 다녀오면서 김룡기자는 길가의 게양대에서 펄럭이는 각국 국기외에는 월드컵의 뜨거운 분위기는 뜨겁게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멀리서 바라본 사커시티 스타디움
중국글로 된 상무중심이 눈길을 끈다.
개막 이틀을 앞둔 주경기장은 아직도 일부 공사가 마무리 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사진제공: 김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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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자: [ 김태국 ] [ 길림신문 ] [ 201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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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외롭고 힘든 취재길 인신안전 수시로 위협 받아
길림신문창간 25주년 특별기획의 하나인 남아공월드컵취재임무를 맡고 지난 6월 7일 연길을 떠나 남아공행을 했던 김룡기자가 각종 취재임무를 원만히 마치고 6월 30일에 귀국, 7월 1일에 연길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남아공에서 20일간 머물면서 월드컵현장취재활동을 해온 김룡기자는 이번 취재길에 대한 소감을 말하라고 하면 두손부터 내젓는다. 외롭고 힘들었다는 소리는 메신저를 통해 많이 료해했지만 퇴역군인으로 강직한 성격을 가진 김룡기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6월 9일 새벽,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 김룡기자는 언어소통이 되지 않아 진땀을 흘려야 했다. 월드컵같은 큰 행사에 외국인들을 위한 봉사자가 많아야 하는데 중국어나 조선말통역을 하는 봉사자를 찾아볼수 없었고 상세한 안내게시판도 없어 손시늉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했단다. 같은 항공편으로 남아공에 도착한 중국의 기타 큰 매체의 기자들은 팀을 묶었고 또 그곳의 화교들이 마중을 나왔기에 인츰 공항을 빠져나갔지만 김룡기자는 홀로 공항에 남게 되였다.
국내에서 그곳 치안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관계로 감히 공항밖으로 나갈수 없었고 또 FIFA(국제축구련맹)에 호텔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라 부득불 중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할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3시간가량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대사관에서 알선해준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대사관에서 그곳 치안상황이 말이 아니니 홀로 다니지 말고 될수록 택시를 타지 말라고 부탁을 해오더란다. 호텔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는데 취재활동을 할수 없다는 말처럼 듣겨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더라고 한다.
그날 오후 FIFA에 기자증을 발급받으러 갔다가 남방에서 온 중국 기자들을 만났다. 기자증 하나에 4명이 취재팀을 뭇고 왔지만 그들의 사정도 다를바 없었다. 하루전에 도착한 그들은 거리에 나갔다가 벌써 사진기를 빼앗기고 돈지갑을 털린 상태, 정상적인 취재를 할것같지 못하다면서 거친 말로 FIFA와 남아공월드컵주비위원회를 욕하더란다.
치안상황은 듣던바보다 더 심각했다. 김룡기자도 10일 저녁 대형공연을 취재하려고 호텔을 나섰다가 어이없이 봉변을 당한것이다. 앞에서 걸어오던 흑인 괴한 2명이 우호적인 손짓을 하며 웃음띤 얼굴로 다가서더란다. 멈칫하는 사이 뒤에 세사람이 나타나 두팔을 꽉 붙잡고 뭉툭하고 딱딱한것이 허리에 들어오더란다. 돌아보니 검은 괴한 3명이 그의 몸에 붙어 서있었고 검은 총부리가 오른쪽 허리께로 보이더란다. 눈깜짝할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꼼짝하지 못하고 돈지갑에 있던 1500딸라를 강탈당하고 말았다. 억울했지만 하소연할곳도 없었고 그날 취재도 포기해야만 했다.
고안끝에 그날저녁부터 김룡기자는 몸에 보호용무기를 장만하고 지갑에는 200딸라만 넣고 만일을 대비해 호주머니에 조금씩 더 넣고 다녔다. 그의 보호용무기란 바로 남아공에서 식사시 사용하는 한뼘 남짓한 포크였다.
중국에 할당된 60명 기자가운데 유일한 소수민족기자로 월드컵취재권을 획득, 연길에서 출발식을 가지고 환송을 받으며 떠난 취재길이 이렇게 험난할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중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 남아공에서는 백주에도 거리낌없이 벌어지고있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 취재기간 김룡기자는 두차례에 걸쳐 2000여 딸라를 강탈당했다. 하지만 가족이나 신문사동료들이 근심할것같아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신문에 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조선팀이나 한국팀을 취재하려고 많이 준비했지만 치안상황 때문에 그들의 훈련하는 모습을 취재하거나 선수나 감독을 만나려던 계획은 접어야 했다. 이에 김룡기자는 독자들에게 대단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룡기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조별리그 14껨과 16강전 2껨 도합 16껨의 경기를 취재하여 생생한 뉴스로 보도했고 수백장의 사진을 독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요한네스버그, 프레토리아, 케이프타운, 더반, 엘리자베스 등 도시를 전전하면서 경기장에서는 부부젤라 때문에 귀가 먹먹하였고 경기장외에서는 치안상황 때문에 신경을 도사렸다고 한다.
함께 취재를 다녔던 외국기자들은 겁없이 홀로 취재를 다니는 김룡기자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들었고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비롯한 큰 행사를 중국에서 거행하면 좋겠다고 말하더란다. 북경올림픽의 성공적인 주최가 외국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는 말이다.
김룡기자의 이번 남아공월드컵취재활동을 위해 길림신문사, 장백산선봉스키리조트유한회사(회장 전룡만), 장춘시조선족기업가협회, 장춘시조선족골프협회 등 단위에서 대폭적인 지지를 주었고 사내동료와 친척, 친우들이 흔쾌히 호주머니를 털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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