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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색평화주의者] - "얘들아, 래일은 전쟁난다. 학교 오지마..."
2019년 10월 26일 22시 40분  조회:3476  추천:0  작성자: 죽림
긴장감 도는 최전방에서 남북간 평화통일을 꿈꾸다

[오마이뉴스 글:오문수, 편집:김혜리]

▲  국제평화아트파크에 있는 조형물로 평화를 약속하는 높이 38m의 거대한 반지와 탱크 포신에 커다란 나팔이 붙어있다. 평화를 노래하는 나팔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 오문수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러시아 정치인 레온 트로츠키가 한 말이다.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지나간 전쟁을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또다시 6.25 같은 전쟁을 겪을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을 다녀왔다. 서울 잠실 운동장을 떠난 버스가 춘천을 거쳐 화천으로 들어가니 거리 곳곳에 "27사단 해체, 화천군민 분노한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화천 시장에 들러 한 상인을 만나 '27사단이 해체되면 지역 경기에 영향이 있느냐?'고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화천 하면 군인 가족이나 면회객이 대부분입니다. 27사단이 나가면 지역경제에 타격이 큽니다."
  
▲  화천군 곳곳에 27사단 해체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는다는 게 이유다
ⓒ 오문수

   

플래카드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44년 전, 필자는 27사단 모 연대 수색중대에 배치되어 34개월 동안 근무했다. 일명 이기자부대인 27사단. 당시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왜 이기자 부대인가'를 묻자 "사단장 사모님 이름이 '이기자'"라는 우스운 풍문이 돌기도 했다.
 
난생처음 강원도 땅을 밟고 첩첩산중에서 밤중에 보초 서던 순간 전방이라는 중압감이 밀려왔다. 전방이지만 적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식이 끝나고 기분이 좋아진 주임상사의 무용담은 전쟁을 모르는 졸병을 더 긴장시켰다. 부대에 갓 배치된 동기병들은 노병인 주임상사의 경험담에 귀를 쫑긋하며 등골이 서늘했다.
 
"우리 수색중대가 최전방 DMZ에서 근무할 때 밤마다 긴장하지 않으면 죽는 수가 많았다. 어느 날 밤 북한 인민군이 철조망을 끊고 내무반에 들어와 군인들을 죽이고 증거로 코를 베어 가면 우리도 복수조를 북한에 보내 똑같이 코를 베어왔다."
 
다행히 필자가 부대에 배치되기 얼마 전부터 우리 부대는 최전방 DMZ 근무에 배치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의 그림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필자는 부대 내무반에 있는 한국 전쟁사 읽기를 좋아해 쉬는 시간이면 종종 전쟁사를 읽으며 일반인들이 몰랐던 6.25 당시의 현장 역사를 알게 됐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수세에 몰려 패주하자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유엔군이 당시 필자가 근무했던 지역에서 적의 급습을 받아 몰살당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있는 인민군사령부 막사 모습. 6.25전쟁 당시 화천과 철원일대를 관할했다고 한다.이 근방에서 살았던 89세된 할머니 증언에 의하면 6.25가 터지기 하루전인 6월 24일 초등학교 선생님이 "얘들아! 내일은 학교 오지 말아라. 내일은 전쟁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 오문수

  
그래서일까? 부대 인근에서 구덩이를 파다 미군 잠바에 붙어있던 녹슨 지퍼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일지도 모를 미군의 흔적. 자신의 땅도 아닌 먼 타국까지 와서 죽어간 그를 생각하며 영면을 빌었다.
 
수색중대는 정찰훈련이 많고 이동도 많다. 어느 날 부대가 이동한 후 막사에서 나온 쓰레기를 보니 상당량이다. 선임하사가 우리 분대에 "땅을 파 쓰레기를 태워 묻어라"고 명령했다. 분대원들은 깊이 70㎝ 너비 5m 정도 땅을 파 쓰레기를 모아놓고 불을 붙이려는 찰나 선임하사가 감독하기 위해 현장에 와 호통을 쳤다.
 
"야! 이놈들아! 그 정도 파서 되겠어? 1m 정도 더 파서 불태워 묻어."
 
돌덩이가 굴러다니는 구덩이를 겨우 파 힘들었는데 더 깊이 파라는 선임하사의 명령에 모두 투덜댔지만 하는 수 없었다. 군대는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다시 걷어내고 분대원 하나가 맨 가운데를 삽질하면서 "돌이 있는지 삽이 잘 안 들어가는데요"라고 하자 다른 선임병이 "내가 해볼 테니 삽 이리 줘"라며 돌을 비켜 삽질을 한순간 돌과 다른 물체가 나왔다. 쇳덩어리다. 그냥 쇳덩어리가 아니라 느낌이 이상해 조심스럽게 쇳덩어리 주위를 파자 팔뚝만 한 크기의 80밀리 박격포탄이 나왔다.
  
6·25 때 사용한 불발 박격포탄이었다. 분대원 모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임하사의 명령을 안 듣고 쓰레기에 불을 붙였다면 분대원 모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등병으로 진급한 필자는 인근 부대원 몇 명이 수류탄 사고로 희생되는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3대 독자의 부모가 부대에 찾아와 부대장 가슴을 쥐어뜯으며 "내 아들 내놔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부대원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수류탄 폭발사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사고 현장은 하루 전까지 필자가 보초 근무를 섰던 자리다. 만약 내무반장이 "이것들 근무상태가 개판이야! 내일부터 보초 근무 위치를 변경한다"라며 보초근무지 이동 명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어찌 됐을까?
 
내무반장의 명령에 따라 필자는 대공초소로, 필자와 보초근무지를 바꿔 나갔던 선임병은 사고 현장으로 나가 변을 당했지만 살아 돌아왔다. 선임병은 다행히 살아남아 복부와 허벅지에 박힌 파편을 빼냈다. 하지만 코뼈 부분에 파편 2개가 박힌 채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수술을 담당했던 군의관이 "코뼈 부분에 박힌 파편을 빼내면 흉터가 크게 생긴다. 파편은 독성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그냥 안고 살아라"라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문득 어딘가에 살고 있을 선임병을 만나보고 싶다.

온갖 살상 무기로 가득한 한반도는 언제 또다시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 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이 불어닥쳐서는 안 된다.   
 
평화를 염원하는 기념물들
 
▲  평화의 댐 모습으로 댐높이를 높인 공사현장 모습이 보인다. 총길이 601m, 높이 125m, 최대 저수량 26억 3천만톤인 평화의 댐은 북한의 수공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지어진 댐이다. 수도서울이 물바다가 될 수도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전국민이 성금 661억을 전달했었다
ⓒ 오문수

   
일행과 함께 말로만 들었던 평화의 댐 관광에 나섰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3481-18에 있는 평화의 댐은 북한강 줄기의 최북단, 군사분계선 남쪽 9㎞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총길이 601m, 높이 125m, 최대 저수량 26억 3천만 톤의 대규모 댐이다. 1986년 북한이 200억 톤가량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임남댐을 짓고 있어 만약 붕괴한다면 강원도는 물론이고 서울 국회의사당이 잠기게 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이를 들은 전 국민이 성금 모금에 나서 661억 원을 모아 댐 높이를 높이는 평화의 댐 공사가 시작되었다.
   
▲  평화의 댐 인근에 세워진 세계평화의 종 모습. 30여개 분쟁지역에서 실제로 사용된 탄피와 포탄, 무기류를 모아 만든 종이다
ⓒ 오문수

 
평화의 댐 인근에는 세계평화의 종이 있다. 평화의 종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철물을 재료로 만든 게 아니라 세계 30여 분쟁지역에서 실제로 사용됐던 탄피와 포탄, 무기류 철물을 모아 만든 종으로 높이 4.7m, 무게 1만 관(37.5t)이다.
 
평화의 종은 종 위에 달린 비둘기 날개(1관)를 따로 떼어내 보관하고 있다. 비둘기 날개 모양의 1관은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9999관의 종에 1관을 추가해 세계평화의 종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2009년 공원개장식 때는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고르바초프는 냉전을 종식한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탄 인물이다.        
  
▲  평화의 댐 아래 있는 '국제평화아트파크'에는 대북방송용 확성기를 이용해 평화를 뜻하는 영어 'PEACE'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오문수

   
▲  국제평화아트파크에 있는 조형물로 '우리가 전쟁속에 살고 있다면'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 오문수

  
평화의 댐 아래에는 '국제평화아트파크'가 있다. 지난 2009년 화천군이 38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1만 2000㎡여 부지에 전쟁의 아픔과 안보·평화·생명을 주제로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 있는 30여 점의 조형물은 전쟁의 상징인 무기를 활용해 평화예술품으로 재구성했다. 노란 나팔을 달고 오색 바람개비로 장식한 탱크, 평화를 약속하는 높이 38m의 거대한 반지, 폐기 처분된 탱크, 자주포, 전투기 등은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화천 인근 호수위에 세워진 조형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이러한 평화로운 모습이 유지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화천북방 최전방에서는 뺏고 뺏기는 고지전으로 수많은 군인들이 전사했다.
ⓒ 오문수

 
군에서 제대한 지 오래됐지만 가끔 대공초소에서 보초 서던 중 '펑!' 하며 온 산골짜기를 뒤흔들었던 수류탄 사고와 30미터쯤 하늘로 올라가던 파란색 화약 연기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남북이 극한적인 무력대결을 관두고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아니 평화통일이 된다면 이 땅의 젊은이들이 희생당할 필요가 있을까?      

///오마이뉴스(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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