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인도 전통기술, 고무나무 공기뿌리 자라 얽혀 다리 형성고무나무의 공기뿌리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다리’. 시간이 갈수록 자라 튼튼해진다.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교수 제공.
인도 북동부 메갈라야주는 연평균 강수량이 1만2000㎜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아열대림 지역이다. 이곳 산악지대 원주민인 카시족과 자인티아족은 석회암 지대의 가파른 협곡에 물이 차오르는 몬순 때마다 고립됐다.
다리가 필요하지만, 대나무나 목재로 만든 다리는 습한 날씨에 쉽게 썩어 떠내려가고, 강철이나 콘크리트 다리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결국 낡아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찾은 해결책은 ‘살아있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인도고무나무의 공기뿌리를 강 건너로 유도하는 방식으로 나무다리를 만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자라 점점 튼튼해지는 실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건축물이 된다.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독일 뮌헨공대 교수 등 연구자들은 인도의 ‘살아있는 나무다리’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주민의 전통지식으로 지은 이 다리가 수백 년을 견디는 비결을 찾아냈다.
메갈라야의 ‘살아있는 다리’는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54년 그림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모두 74개의 다리를 분석 대상으로 수천장의 사진을 촬영해 3차원 입체 모델을 만들고, 형태와 구조, 관리 방법 등을 조사했다. 루드비히 건축학 교수는 “촘촘하게 서로 꼬인 뿌리가 안정된 다리를 형성하는데, 가장 긴 것은 50m가 넘는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가정에서 화분에 많이 재배하는 인도고무나무는 자연상태에서 보통 30∼40m, 크게는 60m 높이로 자란다. 정글의 숲 지붕(수관)에서 새의 배설물을 통해 옮겨져 싹튼 고무나무는 숙주 나무 아래로 수많은 공기뿌리(기근)를 뻗는다.
인도고무나무의 공기뿌리. 정글의 숲 지붕에서 숙주 나무를 죽이고 거대한 나무를 지탱하는 것은 서로 얽힌 공기뿌리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뿌리는 서로 얽히고 결합해, 마치 건축물 거푸집처럼 숙주 나무를 에워싸 결국 숙주를 죽인다. 숙주 나무가 썩어 없어져 가운데가 텅 빈 공간에서 공기뿌리끼리 튼튼한 구조물을 이루는 고무나무의 속성이 ‘살아있는 다리’의 핵심이다.
연구에 참여한 토마스 스펙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식물학 교수는 “다리 놓기 공사는 다리의 끝이 놓일 절벽 끄트머리에 고무나무를 심는 것으로 시작된다”며 “나무가 자라 공기뿌리가 나오면 대나무나 야자 줄기로 만든 틀에 감아 강 건너 다리 쪽으로 수평으로 자라게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움모노이 다리는 53m로 가장 긴 ‘살아있는 다리’이다(a). 다리 위에서 본 바닥 모습(b).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외 (2019)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뿌리가 강 건너편에 도달하면 땅에 심는다. 새로 공기뿌리가 생겨나고, 기존의 뿌리는 점점 굵어지면서 서로 얽혀 ‘접합’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스펙 교수는 “식물 줄기에 상처가 나면 세포가 분열해 상처를 막고 비대해지는 현상을 나타내는데, 같은 원리로 공기뿌리끼리 만나 하나로 뭉치는 접합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접합은 자연적으로 또는 사람이 매듭을 지어줘 형성되는데, 결과적으로 전체 뿌리의 강도를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공기뿌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매듭을 지은 모습(위). 이 부위는 결합되고, 그곳에서 새 공기뿌리가 나와 구조를 강화한다(아래).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외 (2019)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뿌리가 서로 얽히고 융합해 튼튼한 구조물을 이루고, 손잡이를 만들고, 바닥을 채워 제 기능을 하는 다리를 만들려면 오랜 세월이 걸린다. 연구자들은 현재 주민이 만들고 있는 살아있는 나무다리뿐 아니라, 알려진 조상이 시작해 200년 된 다리, 그리고 마을만큼 오랜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다리도 확인했다. 다리 만들기를 시작한 지 66년이 됐는데도 아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다리도 있었다.
뿌리가 점점 자라 다리가 튼튼해지는 것은 좋지만 늘어나는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까. 다리를 이용하는 사람과 짐의 무게, 그리고 홍수 때는 범람하는 물살의 하중까지 견뎌야 한다.
연구자들은 하중을 주로 받는 수평 방향의 뿌리 단면이 뒤집힌 ‘T’ 자 모양으로 심하게 변형된 사실을 발견했다. 또 수직 방향의 뿌리 단면에 원형이 많았지만 수평 방향에는 타원형이 많았다. 스펙 교수는 “뿌리는 기계적 하중에 이차적인 성장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그리아트 마을의 복층 살아있는 다리 모습. 여러 세대에 걸쳐 짓고 수백 년을 쓰는 지속가능한 건축물이다. 아르쉬야 우르비자 보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고무나무를 이용한 살아있는 다리는 인도 산악지대의 토착기술이지만 현대 건축에 응용할 수도 있다. 이른바 ‘식물 건축’이 그것이다.
루드비히 교수는 ‘식물 건축’이 기후변화의 충격에 더 잘 적응한다고 말한다. 그는 “석재, 콘크리트, 아스팔트는 고온 사태 때 빠르게 더워지기 때문에 특히 도시에서 열 스트레스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식물은 냉각 기능이 있어 도시 기상을 완화한다. 식물 건축의 개념은 나무를 심을 공간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나무를 아예 건축의 필수 구조물로 삼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8월 22일 치에 실렸다.
살아있는 나무를 주요한 건축 재료로 쓰는 ‘식물 건축’이 기후변화 시대에 관심을 끌고 있다. 루드비히 쇤레 제공.
/조홍섭 기자
인도 전통기술, 고무나무 공기뿌리 자라 얽혀 다리 형성고무나무의 공기뿌리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다리’. 시간이 갈수록 자라 튼튼해진다.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교수 제공.
인도 북동부 메갈라야주는 연평균 강수량이 1만2000㎜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아열대림 지역이다. 이곳 산악지대 원주민인 카시족과 자인티아족은 석회암 지대의 가파른 협곡에 물이 차오르는 몬순 때마다 고립됐다.
다리가 필요하지만, 대나무나 목재로 만든 다리는 습한 날씨에 쉽게 썩어 떠내려가고, 강철이나 콘크리트 다리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결국 낡아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찾은 해결책은 ‘살아있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인도고무나무의 공기뿌리를 강 건너로 유도하는 방식으로 나무다리를 만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자라 점점 튼튼해지는 실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건축물이 된다.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독일 뮌헨공대 교수 등 연구자들은 인도의 ‘살아있는 나무다리’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주민의 전통지식으로 지은 이 다리가 수백 년을 견디는 비결을 찾아냈다.
메갈라야의 ‘살아있는 다리’는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54년 그림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모두 74개의 다리를 분석 대상으로 수천장의 사진을 촬영해 3차원 입체 모델을 만들고, 형태와 구조, 관리 방법 등을 조사했다. 루드비히 건축학 교수는 “촘촘하게 서로 꼬인 뿌리가 안정된 다리를 형성하는데, 가장 긴 것은 50m가 넘는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가정에서 화분에 많이 재배하는 인도고무나무는 자연상태에서 보통 30∼40m, 크게는 60m 높이로 자란다. 정글의 숲 지붕(수관)에서 새의 배설물을 통해 옮겨져 싹튼 고무나무는 숙주 나무 아래로 수많은 공기뿌리(기근)를 뻗는다.
인도고무나무의 공기뿌리. 정글의 숲 지붕에서 숙주 나무를 죽이고 거대한 나무를 지탱하는 것은 서로 얽힌 공기뿌리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뿌리는 서로 얽히고 결합해, 마치 건축물 거푸집처럼 숙주 나무를 에워싸 결국 숙주를 죽인다. 숙주 나무가 썩어 없어져 가운데가 텅 빈 공간에서 공기뿌리끼리 튼튼한 구조물을 이루는 고무나무의 속성이 ‘살아있는 다리’의 핵심이다.
연구에 참여한 토마스 스펙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식물학 교수는 “다리 놓기 공사는 다리의 끝이 놓일 절벽 끄트머리에 고무나무를 심는 것으로 시작된다”며 “나무가 자라 공기뿌리가 나오면 대나무나 야자 줄기로 만든 틀에 감아 강 건너 다리 쪽으로 수평으로 자라게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움모노이 다리는 53m로 가장 긴 ‘살아있는 다리’이다(a). 다리 위에서 본 바닥 모습(b).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외 (2019)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뿌리가 강 건너편에 도달하면 땅에 심는다. 새로 공기뿌리가 생겨나고, 기존의 뿌리는 점점 굵어지면서 서로 얽혀 ‘접합’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스펙 교수는 “식물 줄기에 상처가 나면 세포가 분열해 상처를 막고 비대해지는 현상을 나타내는데, 같은 원리로 공기뿌리끼리 만나 하나로 뭉치는 접합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접합은 자연적으로 또는 사람이 매듭을 지어줘 형성되는데, 결과적으로 전체 뿌리의 강도를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공기뿌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매듭을 지은 모습(위). 이 부위는 결합되고, 그곳에서 새 공기뿌리가 나와 구조를 강화한다(아래).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외 (2019)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뿌리가 서로 얽히고 융합해 튼튼한 구조물을 이루고, 손잡이를 만들고, 바닥을 채워 제 기능을 하는 다리를 만들려면 오랜 세월이 걸린다. 연구자들은 현재 주민이 만들고 있는 살아있는 나무다리뿐 아니라, 알려진 조상이 시작해 200년 된 다리, 그리고 마을만큼 오랜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다리도 확인했다. 다리 만들기를 시작한 지 66년이 됐는데도 아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다리도 있었다.
뿌리가 점점 자라 다리가 튼튼해지는 것은 좋지만 늘어나는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까. 다리를 이용하는 사람과 짐의 무게, 그리고 홍수 때는 범람하는 물살의 하중까지 견뎌야 한다.
연구자들은 하중을 주로 받는 수평 방향의 뿌리 단면이 뒤집힌 ‘T’ 자 모양으로 심하게 변형된 사실을 발견했다. 또 수직 방향의 뿌리 단면에 원형이 많았지만 수평 방향에는 타원형이 많았다. 스펙 교수는 “뿌리는 기계적 하중에 이차적인 성장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그리아트 마을의 복층 살아있는 다리 모습. 여러 세대에 걸쳐 짓고 수백 년을 쓰는 지속가능한 건축물이다. 아르쉬야 우르비자 보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고무나무를 이용한 살아있는 다리는 인도 산악지대의 토착기술이지만 현대 건축에 응용할 수도 있다. 이른바 ‘식물 건축’이 그것이다.
루드비히 교수는 ‘식물 건축’이 기후변화의 충격에 더 잘 적응한다고 말한다. 그는 “석재, 콘크리트, 아스팔트는 고온 사태 때 빠르게 더워지기 때문에 특히 도시에서 열 스트레스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식물은 냉각 기능이 있어 도시 기상을 완화한다. 식물 건축의 개념은 나무를 심을 공간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나무를 아예 건축의 필수 구조물로 삼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8월 22일 치에 실렸다.
살아있는 나무를 주요한 건축 재료로 쓰는 ‘식물 건축’이 기후변화 시대에 관심을 끌고 있다. 루드비히 쇤레 제공.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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