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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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동시]인사(서금복) 댓글:  조회:1798  추천:0  2014-04-16
인사 서금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랑 장난치던 친구가 누군가에게 꾸벅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나도 엉겁결에 큰소리로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 우리 엄마잖아?
609    [동시]사과나무 심부름(하지혜) 댓글:  조회:1687  추천:0  2014-04-16
사과나무 심부를 하지혜 과일농사 짓는 삼촌에게 사과나무가 일을 시킨다 ㅡ봉지 씌워 ㅡ겉봉지 벗겨 ㅡ속봉지 벗겨 ㅡ이제 따서 담아 사과나무 심부름 하느라 이 가을 삼촌 얼굴도 발갛게 익었다.
608    [동시]호박씨(박방희) 댓글:  조회:1505  추천:0  2014-04-16
호박씨 박방희 호박씨는 덩굴을 내어 길을 가며 군데군데 커다란 머리를 만들어 놓고, 멈칫멈칫 몇 걸음 안 가 또 머리를 만든다 생각할 게 참 많은가 보다
607    [동시]물수제비(문삼석) 댓글:  조회:1857  추천:0  2014-04-16
물수제비 문삼석 ㅡ나,    새 같니? 돌멩이가 파닥파닥! 강물 위를 힘겹게 뛰어갑니다. ㅡ저런!    날개도 없는 게... 강물이 뽀그르르! 돌멩이를 받아 가슴에 안습니다.
606    [동시]아침이슬.22(김관식) 댓글:  조회:1670  추천:0  2014-04-15
아치이슬.22 김관식 무슨 생각이 그렇게도 많니? 뜬눈으로 밤새우고도 눈만 말똥말똥하니.
605    [동시]울퉁불퉁 계단(문성란) 댓글:  조회:1563  추천:0  2014-04-15
울퉁분퉁 계단 문성란 참나무 소나무 잣나무의 울퉁불퉁한 나무 등걸 다람쥐들 오르내릴 때 미끄러지지 않게 발받침이 돼 준다 산개미들 오르내릴 때 미끄러지지 않게 손잡이가 돼 준다 추위에 껍질 터져 울퉁불퉁 비바람에 속 터져 울퉁불퉁 나무의 그 상처들이.
604    [동시]봄 낚시(추필숙) 댓글:  조회:1443  추천:0  2014-04-15
봄 낚시 추필숙 낚 싯 대 끝 에 사과나무는 사과꽃을 배나무는 배꽃을 대추나무는 대추꽃을 매 달 아 놓 고 기다린다. 나비와 벌이 낚시밥을 물 때까지.
603    [동시]불꽃놀이(김미희) 댓글:  조회:1615  추천:0  2014-04-15
불꽃놀이 김미희 꽁지에 불붙은 올챙이들이 피융! 하늘로 올라가 퍼엉! 개구리로 변하더니 수많은 알을 낳고는 저 너머로 스러진다.
602    [동시]잠(하지혜) 댓글:  조회:1532  추천:0  2014-04-15
잠 하지혜 종일 열어 두었던 입의 문 귀의 문 눈의 물 닫히자, 종일 열려 있던 정신도 슬그머니 나가버리지. 온몸의 문이 닫히지.
601    [동시]울고 나면(하지혜) 댓글:  조회:1532  추천:0  2014-04-15
울고 나면 하지혜 빨래가 줄줄 울었어 눈물꼬리 늘어뜨리며 한나절 울다 그쳤어 울음 그친 뒤 환해졌어 울고 나면 깨끗해진다는 걸 빨래가 말해 주었어.
600    [동시]손(전병호) 댓글:  조회:1729  추천:0  2014-04-15
손 전병호 “춥지?” 왼손도 시린데 오른손을 먼저 감싸줍니다. “이젠 괜찮아.” 잠깐 추위를 녹인 오른손이 얼른 왼손을 감싸줍니다.
599    [동시]그냥(문삼석) 댓글:  조회:1648  추천:0  2014-04-15
그냥 문삼석 엄만 내가 왜 좋아? ㅡ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ㅡ그냥...
598    [동시]소와 염소(손동연) 댓글:  조회:1830  추천:0  2014-04-15
소와 염소 손동연 소가 가기 염소에게 그랬대요. “쬐끄만 게 건방지게 수염은? 또 그 뿔은 뭐람?” 그러자 아기 염소가 뭐랬게요? “쳇, 아저씬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 덩치에 아직도 엄마 멈마게...”
597    [동시]다람쥐(박두순) 댓글:  조회:1575  추천:0  2014-04-15
다람쥐 박두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그만 도토리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먹지요.
596    [동시]잔소리야(추필숙) 댓글:  조회:1603  추천:0  2014-04-15
잔소리야 추필숙 잔소리야 너, 성을 바꾸면 어떻겠니? 닿소리 물소리 북소리 새소리 종소리 한 글자 성도 많고 노랫소리 바람소리 박수소리 파도소리 두 글자 성도 있어 어때, 우리 엄마한테 물어봐 줄까?
595    제79장 주구청산투쟁 댓글:  조회:2437  추천:0  2014-04-14
인민들 투쟁전렬에 나서서 피의 원한 풀고 피의 대가 받아내 길동군정대학 길동군정대학은 1945년말부터 준비하기 시작하여 1946년 1월 6일 연길에서 정식 설립되였다. 주보중이 교장을 맡고 옹문도, 강신태가 부교장을 맡았다. 길동군정대학을 세운 목적은 시급히 수요되는 청년군정간부를 양성하기 위한것이였다. 길동군정대학에서는 1946년 3월 20일, 시험과 신체검사를 거쳐 500여명 학생을 입학시켰다. 그중 조선족학생이 380명이였다. 1946년 7월, 길림군구의 결정에 좇아 원래의 항일군정대학본교 제3대대, 태항산 조선군정학교 간부반을 토대로 하여 세워진 조양천교도대, 조선의용군 제7지대에 세운 화전군정학교와 길동군정대학을 합병하여 동북군정학교 동만분교를 내왔다. 교사는 연길 북대영에 잡았다가 인차 왕청현 라자구에 옮겼다. 학생은 2600여명, 조선족학생이 71.5%를 차지하였다. 1946년 8월, 동만분교는 룡정에 옮겨왔다. 9월에 원 룡정은진중학교자리에 교사를 잡고 10월 18일부터 정식 제1기분과학습을 시작하였다. 중공길림성위와 길림군구의 결정에 따라 동북분교를 길림분교로 개칭, 주보중이 교장을, 진정인이 정치위원을 맡았다. 1948년 3월, 길림시가 해방되자 중공길림성위와 성정부, 군구가 길림시로 옮겨갔다. 이에 분교도 길림에 옮겨갔으며 학원들을 모두 부대에 편입시키고 길동분교는 동북군정대학 제4퇀으로 재편성, 치치할에 가서 분교와 합병하였다. 길림분교나 동만분교 시기에 군정대학이 길동지구에 자리잡고있는 원인으로 하여 습관적으로 줄곧 “길동군정대학”이라고 불렀다. 길동군정대학은 설립되여서부터 2년 4개월간 4기에 걸쳐 3700여명의 학원을 졸업시켜 부대에 수송했다. 길동군정대학은 해방전쟁의 전면적인 승리를 위하여 우수한 군사간부와 정치간부를 양성, 불후의 공적을 쌓았다. 악질지주와 주구들을 청산 해방되자마자 연변인민들은 악질지주와 일제의 주구에 대한 청산투쟁에 귈기해나섰다. 이것은 기세드높은 군중운동으로 번져졌는데 주구청산투쟁과 감조감식투쟁의 결합은 농민들의 단순한 계급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넘어가게 했고 공산당이 령도하는 군중사업이 커다란 성과를 취득하게 하였다. 화룡현 삼도구에는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대지주 리영춘이 있었다. 리영춘은 화룡현 덕화향 길지촌의 류가라는 한족집 돼지몰이군이였다. 리영춘은 남들보다 먼저 귀화입적한후 다른 사람을 동원시켜 입적시키고는 입적비를 받아먹었다. 1919년, 리영춘은 녀동생 리춘화를 동북군 화룡현보안퇀 련장 석중운에게 첩으로 바쳤다. 하여 석중운의 권세에 의거하여 토지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토지를 차지하게 되자 리영춘은 화룡부근의 대금장에 이사하여 백호장을 담당하고 지방깡패로 되었다. 1931년에는 화룡현 명신사 사장으로 되었다. 차츰 리영춘은 1600여정보의 토지와 수천평방메터의 가옥을 가진 화룡현의 첫째가는 대지주로 되었다. 1945년 8월 20일, 일제가 망한지 며칠 안되여 리영춘은 지주 문덕창, 주회창 등과 결탁하여 일본제국주의와 괴뢰만주국의 잔여세력을 그러모아 화룡현치안유지회를 조직하였다. 문덕창이 회장으로 되고 리영춘, 주회창이 부회장이 되었다. 수하에 30여명 무장대를 두었다. 1945년 10월 2일, 남평일대의 조선족들이 로농청부동맹창립대회를 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리영춘은 무장대를 보내여 탄압하게 하였다. 하여 9명의 사상자를 내는 류혈사건을 빚어냈다. 남평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한 화룡주둔 쏘련홍군은 10월 5일 쏘련홍군 20여명을 파견하여 치안유지회의 무장을 해제하고 문덕창, 리영춘, 주회창, 두유상, 리영창 등을 체포하였다. 10월 10일, 인민군중들의 강렬한 요구에 의해 쏘련홍군은 리영춘과 리영찬을 화룡에 호송해다가 인민재판에 넘겼다. 그날 화룡 남가소학교운동장에서 리영춘을 재판하는 군중대회가 열렸는데 분노한 군중들은 앞다투어 리영춘의 죄악을 고소적발했다. 군중재판에 의해 그날 리영춘은 당장에서 처단되였다. 1946년 가을, 훈춘현인민정부에서는 전 현 여러 민족 인민들의 강렬한 요구에 의해 8000여명이 참가한 공개재판대회를 연후 친일악질지주 한희삼을 청산, 총살하였다. 한희삼은 훈춘현 경신구 소하전사람이였다. 1904년 그는 혈혈단신으로 훈춘 포대촌으로 왔다. 온 낯이 곰보투성이인 그를 사람들은 “한곰보”라고 불렀다. 땅 한뙈기도 없고 집 한칸도 없던 한희삼은 포대촌에서 5년동안 소장사로 사기쳐 거액의 돈을 모으게 되었다. 그 돈으로 1700무의 땅을 산후 호되게 빈고농민들을 착취했다. 정씨성의 로인은 10년동안 한희삼네 돼지를 먹이다가 지쳐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나 한희삼은 약 한첩 써주지 않고 팽개쳐버렸다. 한희삼은 농민들의 반항을 탄압하고 유격대의 습격을 방비하기 위해 일제에게 달라붙어 총 13자루를 타내다가 무장자위단을 조직한후 스스로 단장이 되었다. 무장대까지 가지게 된 한희삼은 더욱 미친 듯이 농민들의 반항과 지하당의 활동을 탄압하였다. 무장대가 생겨서 3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이자의 손에 10여명의 유격대원이 살해되였다. 이자는 또 일제와 배합하여 10여차나 피비린 “토벌”작전에 참가했다. 1938년, 한희삼은 일본천황에게 자신의 충성을 나타내기 위해 비행기를 사서 헌납하기까지 하였다. 토지개혁운동이 깊이있게 진행됨에 따라 연길현 세린하일대의 농민들은 투쟁의 예봉을 악질지부이며 대매국역적인 손영명에게 돌렸다. 1947년 3월, 혁명적농민들은 손영명의 죄악을 폭로하고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이 악질지주를 처단하였다. 봉천사람인 손영명의 백부 손부인은 광서년간에 세린하에 와 비적두목 손루와 한동아리가 되어 부당한 수단으로 숱한 돈을 끍어모아 벼락부자로 된 동시에 순관질을 하는 아들의 세력을 등대고 자지방을 차지한 대지주로 되었다. 이자의 유능한 보가사군인 손영명은 협잡질을 일삼으면서 세린하, 두도구, 이도구, 동불사 일대의 수한전 9000여헥타르와 산림 1700헥타르, 가옥 360칸을 차지했다. 손영명은 또 세린하에다 기름공장, 제분공장, 벽돌공장, 석회구이가마 등을 꾸려놓고있었고 연길에다는 “태화륭상졈과 “친일방식당”, 가목사에다는 “덕발동철공장”을 꾸려놓고있었다. 손영명의 집울안면적은 7000여평방메터도 더 되었는데 담장 네귀에 포대를 쌓았고 대문에는 문간보초를 세우고있었으며 집에다 보총과 단총 70여자루를 두고 10명 기병을 가지고있었다. 손영명은 소작인 1000여명, 소 1200여마리, 말 20여필, 마차 2대, 승용차 1대, 화물자동차 1대를 갖고있었고 70톤씩 넣을수 있는 량곡뒤주 7개나 있었다. 소작인과 머슴들에 대한 손영명이 착취는 지독했다. 이자는 여러 가지 명목의 가렴잡세를 받아냈는데 이를테면 보갑비, 툰비, 보초비, 방공비, 등유비, 결혼세 등 이루 헤라릴수 없었다. 고리대로는 봄에 량곡 한섬을 꿔주고는 가을에 석삼을 받으며 돈을 꿔주고는 량곡으로 받고 량곡을 꿔주고는 돈으로 받는것외에 꿔준 돈을 년말에는 매달 5푼리자에 본전을 합쳐 받는것이였다. 소를 1년동안 쓰게 하고는 콩 석섬을 받았고 하루동안 소를 쓰게 하고는 두자루의 품값을 받았다. 이밖에 이자는 길닦이, 집짓기, 과동먹이풀준비 등 힘겨운 일들을 모두 작인들에게 무상으로 시켰다. “9.18”사변전 이자는 민국관리들을 등에 업고 무장자위단 40여명을 내세워 작인들의 반항을 진압하였다. 괴뢰만주국이 건립되자 이자는 또 왜놈들과 위만관청에 무릎을 꿇고 달라붙어 무장자위단 40여명을 긁어모았으며 두도구경찰서와 야합하여 약수동, 대홍동 등지에서 44명 혁명자를 살해했다. 이 시기 각 현에서는 일본특무, 순사, 자위단장, 괴뢰경찰특무, 반역자 등을 잡아내여 청산하고 그 죄악에 근거하여 사형에 처하고 재산을 전부 몰수하였는바 투쟁이 치렬했으며 철저했다. "해란강대참안"청산대회 1946년 8월, 연길현공작대는 장안구 하동에가 일제주구를 청산할데 대한 선전활동을 활발히 벌리는 가운데서 김신숙으로부터 몰래 간직해두었던 “하동자위단이 혁명동지를 참살한 사록”을 받았다. 이 사록은 구위에서 사업하다가 왜놈들의 혹형을 받아 사경에 이른 김신숙의 남편 김학군이 림종시에 남겨놓은 유물이였다. 김신숙은 남편의 유언대로 이 사록을 병속에 넣은후 깊숙이 파묻어두었다가 내놓은것이였다. 사록에는 살인귀들의 명단과 그들의 극악무도한 죄상이 낱낱이 기록되여있었다. 이 사록은 곧 연길현정부에 보고되였고 현정부에서는 조사조를 파견하여 유서에 적힌 내용에 따라 조사하였다. 하여 1931년 10월 15일부터 1932년 8월 7일까지 기간에 일본침략자와 그 주구들이 마반산, 하동, 화련리, 소영자, 화첨자 등지를 94차나 “토벌”하면서 1700여명의 혁명자와 반일군중들을 살해한 전대미문의 “해란강대학살사건”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었다. 조사를 거쳐 죄악이 큰 18명의 살인귀들을 체포하였다. 1946년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중공연길현위에서는 길림성위의 직접적인 령도하에 연길시의 서광장에서 “해란강학살사건”청산대회를 열고 이 사건을 조작한 일제와 그 주구들의 죄행을 청산하기로 하였다. 청산대회준비처에서는 동북 각지의 피해자가족들에게  대회에 참가하여 악당들의 죄상을 까밝히도록 미리 통지를 하였다. 소영자, 하동, 화련리의 피해자가족은 물론 수십리, 수백리 떨어진곳에 있는 피해자가족들, 지어 조선에 있는 피해자가족들도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대회에 참가하러 왔다. 회의는 600여명 피해자가족과 1만여명 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였다. 대회장주석대정면에는 “연길현해란강살인사건청산대회”라고 쓴 프랑카드가 걸려있고 주석대량켠에는 “살인귀를 잡아내고 그 죄악을 폭로규탄하자!”는 표어들이 씌여져있었다. 5일간의 대화에서 30여명 피해자가족들이 일제와 그 주구들의 죄상을 성토했다. 그들의 피눈물나는 성토는 1만여명 군중들의 크나큰 의분을 자아냈다. 첫날부터 하늘을 진감하는 구호소리속에서 대회가 들끓었다. 대회가 끝날 무렵 대회주석단대표 한동우가 대회에 18명의 범죄자명단을 공포, 처리방안을 내놓았다. 죄악이 극악한 최남순, 박희선, 리철우, 김동우, 박승준, 허남철, 황병윤 등 7명은 사형에 처하고 서봉묵은 무기형에, 허병선은 유기형 7년에, 박영춘은 유기형 5년에, 최성일, 허동룡, 윤승화, 허경규, 허동간, 박명호는 죄악이 크지 않고 죄를 승인하며 뉘우지는 태도가 좋기에 석방한다고 했다. 이에 군중들은 환성을 올리면서 찬동했다. 살인귀들을 단죄한 이 청산대회는 인민들의 투지를 한결 높여주었고 반동파들의 잔인한 본성과 흉악한 몰골을 똑똑히 발가놓았을뿐만아니라 토지개혁을 유력하게 추동하였으며 향토를 보위하고 전 동북을 해방하는 싸움에 귈기해나서도록 연변인민을 고무해주었다.  
594    [평론]기수(旗手)는 바람이 없으면 달려간다(허인) 댓글:  조회:1650  추천:5  2014-04-10
평론 기수(旗手)는 바람이 없으면 달려간다           ㅡ2014년 장백산 제2기  김철호시인의 근작시를 읽고                     허인               머리글   요즘 신문잡지를 펼쳐들면 심상찮게 자주 마주치는것이 아마도 김철호시인님의 주옥같은 시작품들인것 같다. 어찌보면 오늘날 줄거리가 없고 한낱 표백된 아픔마저 버젓이 상품이라는 브랜드 마크를 달고서 콩나물이나 숙취나물처럼 슈퍼에 나란히 진렬되는 그런 무병신음의 가짜시가 아니라 읽을수록 알맹이가 꽉 차서 마침내 읽는 이 혼자서는 그 모든것을 감당하고 만끽하기엔 너무 아름차고 또한 즐겁기도 한 ㅡ 그래서 누구라도 상관없이 독자들과 함께 조금이라도 나누고싶은 심정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알건대 김철호시인님은 저명한 아동문학작가님이시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이 몇년사이 우리 조선족시단치고는 제일 먼저ㅡ 어쩌면 남들보다는 한발 앞서 파편문체와 포스트모더니즘을 깊이있게 연구를 끝마치고서 마침내 자신의 깔끔한 성미에 알맞게 개성있게 현대시를 쓰고 있는 그런 시인이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매번 김시인이 자신있게 내여놓는 한수 또 한수의 무게감이 있고 테마가 굵직한 시작품앞에서는 오래동안 외곬인생을 고집하면서 수십년째 시를 써온 허다한 시인들마저도 손발을 내밀기가 저어되여가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며 그 신비한 마력은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쭈욱 이어질것만 같다. 그럼 여기서 2014년 잡지 제2기에 실린 김철호시인님의 주옥같은 시 7수를 우리함께 손에 손잡고 잠간 즐거운 려행을 다녀와보자   링크와 네트워크구축으로 스스로 아름답고 좋은 시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조대, 어느 시대에서나ㅡ 시인의 사상의식은 항상 미래 지향적이였으며 또한 드레시(漂亮, 幽雅)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들을 창출,  랜덤하고도 더욱 디테일하게 드라이브코스(自驾游线路)를 스스로 구축해왔으며 더우기 새로운 언어조합속에서의 자률, 또한 지극히 러브 시(示好)한 이률배반속에서도 마스터피스(杰作)와 함께 항상 개혁이 동일시되여 왔었다는것을 누구나 쉽게 알수가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미래 지향적인 행보는 오늘도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으며 또한 과감한 개혁의 리론과 그 기능을 불러오는 중요한 단서가 곧바로 시인의 더없이 정확한 의사전달로써 길게 설명자면 멘트(话语, 台词)가 필요없는 기획적인 자아도전과 저돌적인 돌파, 즉 새로운 시어창출과 함께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여러모로 독자들앞에서 검증 받아야 하는 그런 데스트가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아직 필자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르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정석으로, 또는 기초로 하여 단단히 밟고 더욱 높이 올라서려고 하는 기획적인 발전이지 결코 지극히 이률배반적이지는 않다는것이다. 그럼 우리 함께 김철호시인은 링크와 네트워크구축으로 어떻게 이미지즘을 완성해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건 흠결이 아니였다 이중로출도 아니였다 틀림없는 유령의 그림자였다   물앉는다 요즘 그녀는 자주 물앉는다 복도에서도 거리에서도 벌렁벌렁 물앉는다   회사청사를 어깨에 메였다 19층청사가 어깨를 누른다 벌렁 물앉는다 8촌사진은 하나의 세상이다 그속에 19층청사,그녀의 어깨… 그녀는 어떤 유령에게 업혀있었다 그녀가 어떤 유령을 업고 있었다   이승너머에 숨은 삶이 보였다 그곳으로 가는 문이 보였다   새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죽는다고 했다   전문이다   이 시를 읽고나면 김철호시인님은 남달리 수판알을 튕겨가면서 계산적으로ㅡ 혹은 의도적로 독자들을 위한 배려심이 크다는 것을 인츰 알수가 있다. 란 우리 말로 직역하면 귀혼(鬼魂), 혹은 유령(幽灵)인데 ㅡ 즉 을 읽고나면 마치 산 사람이 허다한 스트레스, 콜플렉스, 혹은 무수한 폴더, 아건강(亚健康)에 짓눌리워 유령처럼 이 세상을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방불히 우리들 눈앞에 보이는듯이 그려놓고 있기때문이다. 첫련에서 과 이라는 단단한 부정뒤에 더욱 단단해져가는 긍정어 즉 /틀림없는 유령의 로출이였다/를 재치있게 등장시킨 이 시에서는 이미 전반 시적 흐름의 또렷한 륜곽을 벌써 독자들에게 명확히 잡아주고 있는 그런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제 2련에서는 마침내 /물앉는다/요즘 그녀는 자주 물앉는다/복도에서도 거리에서도/벌렁벌렁 물앉는다/로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암시의 태도를 슬쩍 더 보태주었으며 여기서부터 가 시적화두로 대두된 이 시의 흐름 즉 그 루트를ㅡ 의식과 무의식의 딸깍거리는 구두소리를 따라서 조심스레 걸어가노라면 더욱 큰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이중구조속으로 독자들은 저도모르게 냉큼 빨려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뒤에 더욱 큰 이미지즘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제3련에서 /회사청사를 어깨에 메였다/19층청사가 어깨를 누른다/에서 볼수 있다싶이 새로운 이미지로 등장한 , 정확히 를 어깨에 메였고ㅡ또한 /어깨를 누르고 있기때문에/그녀는 벌렁 물앉는다/는것을 누구나 쉽게 알수가 있다. 다음 가상현실속(혹은 영정사진과도 같은)의 클로즈업된 또 다른 하나의 색다른 세계ㅡ 즉 /8촌사진은 하나의 세상이다/그속에 19층청사, 그녀의 어깨…/가 있고 여기에서 다시금 첫련에서부터 강한 힌트를 주었던 그 유령을 재치있게 재등장시키면서 /그녀는 어떤 유령에게 업혀있었다/그녀는 어떤 유령을 업고 있었다/면서 어딘가 19층청사를 소유하고 있음직한 정도면 그냥 보통 인물이 아닌듯한 어떤 녀인의 전쟁과도 같은 치렬한 삶의 한장면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본능적인 도전정신, 또는 그러한 삶의 애환을 반복구사법, 겹쳐 그리기기법을 동원하여 시어와 시어사이를 재치있게 링크(련결), 또는 의식과 무의식의 조용한 흐름을 통하여 자의도 타의도 아닌 늘쌍 객관적인 립장에서 시종여일하게 한폭ㅡ 또 한폭의 그림을 완성해왔음을 우리는 비로소 알수가 있다.   특히 제4련과 제5련에서는 한술을 더 떠서/이승너머에 숨은 삶이 보였다/그곳으로 가는 문이 보였다/새들은 보이지 않는곳에 가서 죽는다/고 했다/면서 결국 삶과 죽음의 사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것이며 또한 종이 한장 차이일뿐ㅡ 어쩌면 죽음마저도 삶의 또다른 연장선일수도 있다는것과 현시대 삶의 치렬한 경쟁의식을 시인은 비관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제3자의 립장에 서서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 그런 양상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특징은 다선이 고리이기때문에 시인의 의식은 그 어떠한 관념에도 묶이지 않고 있으며 또한 시인은 연출자인 동시에 제작자이기때문에 읽을수록 호흡이 자유로운  그런 장점이 있는것 같다. 아무튼 김철호시인님의 은 오랜간만에 읽어볼수 있는 속이 꽉 차고 통통 잘 여문 좋은 시라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아래에 은유의 상징으로 이미지집성을  완성시킨 이라는 시 한수 더 보고 가자.   벽에 기대앉았는데 벽이 무너진다 벽체에 깔려 납죽해진 그를 잡아당긴다 납죽한 다리가 뽑혀나오고 납죽한 팔이 뽑혀나오고 납죽한 가슴, 배 ,머리는 그냥 벽체밑에 깔려있다 두렵지도 않은가보다 누군가 또 벽에 기대인다 벽이 쿵 무너진다 누가 또 벽에 기대인다 벽이 쿵 무너진다 누가 또 벽에 기대인다 벽이 쿵 무너진다 무너진 벽체에 그가 깔려있다 잊어졌던 그가 있다 나도 있다 납죽 깔려 납죽해져 있다   의 전문이다.   여기서 은 무엇을 의미할가? 필자가 보건대 그건  아마도 어디엔가에 자꾸 기대고싶어하는 인간의 나약한 요행심리와 껌딱지처럼 다닥다닥 심장에 와붙는 상표도 아닌 무정한 들을 은유적으로 상징한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첫련에서 /벽에 기대앉았는데 벽이 무너진다/로부터 시작하여 이 시는 줄곧 /벽이 쿵 무너진다/를 여러차례 반복해가면서 나역시도 피해자가 될수 있임을, 결국 이 세상 그 누구라도 자칫하면 똑같은 피해자가 될수 있음을 깔끔하고 간결하게 표현한것 같다. 조지p 란도의 《하이퍼텍스트3.0>> 말씀중에서의 한마디다. 댓글을 받아본 사람이면 아마 누구라도 쉽게 동감이 가는 그런 좋은시 라는 생각이 저절로 첨부되여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예술이란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수단일수록 더욱 아름답다.   너는 왜 하늘 향해 누워있니? 너는 왜 땅을 보며 누워있니?   하늘엔 뭐가 있니? 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별 하나 있다 그럼 땅엔 뭐가 있니? 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은근한 별 하나 있다   하늘의 별과 땅의 별이 만나려고 무지개 통로로 마주 달려간다 너무 빨리 달리다보니 그만 서로 부딪쳐 산산조각난다   별의 파편 수많은 별이 되여 흩날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은하수가 펼쳐진다 별들의 원무가 시작된다   전문이다. 이 시는 브레인스토밍과도 같은 자문자답과 럭셔리한 역설로써 수많은 새로운 들의 탄생과정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있으며 더불어 우주의 진면목 즉 시인의 세계관을 독자들로 하여금 엿볼수 있게끔 하고 있는것 같다. 특히 제1련에서 /너는 왜 하늘을 향해 누워있니?/로부터 시작하여 와 가 서로 만나려고 마주 달려가다가 그만 부딪치면서 산산조각이 나며 드디여 별의 아름다운 원무를 연출자가 아닌 관중이 되여 희망으로 지켜보고 있는 작자의 성숙된 모습을 엿볼수가 있게끔 시야를 넓혀주고 있는상 싶다. 그럼 여기서 은 도대체 무엇일가? 그건 희망이래도 좋고 또한 미래라도 좋고 아무튼 독자가 선정하기 나름이니깐 구태여 더 길게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 (秀吟)과 는 맥락을 같이하는 그런 파워플한 시라고 해도 아마도 무방할것 같다./정글엔 길이 없다/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발을 내디뎠다/로부터 시작하여 제일 마지막 결구에서 볼수 있다싶이 /정글에 그녀의 길이 생겼다/로 마무리되였고 에서는 /이제는 녀자가 없는 그, 바다로 간다/로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하여 제1련 4행에서 다시금 자연스럽게 /수평선을 베고 누워있는 붉은 녀인/즉 언덕 ,혹은 사막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그러나 이제는 녀자보다 높은 바다가 있다/그는, 바다는 실패를 모를것이라고 생각했다/로 인생행로의 이러저러한 고달픔과 또한 각근한 노력은 반드시 리상적인 결실을 맺기 마련이라는 작자의 독특한 진리를 이 두수의 시에서는 펼쳐 보이고 있는듯 싶다   남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   누에고치가 퍼렇게 익어 헐벗은 떡갈나무 그늘 잃은 큰 나무,뿌리 살아숨쉬는데 태양은 구름우에 숨어 찬 입김 뱉는구나   밤, 그 힘찬 몸부림 새벽, 그 벅찬 울부짖음 한낮, 그 거창한 춤…   파도는 저 거창한 바다를 만난다 파도는 높은 하늘을 만난다   절름발이 양잠인 50원에 황성옛터 잘 팔아먹고 누에고치줏는  계집들의 웃음소리 언덕 허무는데 대석하에 비낀 장수의 그림자파도따라 춤추누나 강물은 날 선 칼이 되여 력사를 두쪽으로 가르누나   태양은 언제나 동쪽에서 뜬것만이 아니다 별은 어두운 하늘에서만 반짝인것이 아니다 하늘 만리서 무지개 나래펴고 바람은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천리땅을 씻는구나   그러니 남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힘과 힘의 만남 숨과 숨의 겨룸   푸른 누에 기여온다   전문이다. 다시 봐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아름찬 몸집, 제1련에서 단단한 부정과 함께ㅡ 정물화기법, 모자이크기법으로 씌여진 이 한수의 시가 갖는 함의는 참으로 방대하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럼 우리함께  이 한수의 시에서 링크(련결)와 네트워크(리좀)가 어떻게 이미지즘을 형성하고 있으며 또한 텍스트를 어떻게 조성해가고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련에서 이미/ 남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녀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는 단단한 부정으로 시작된 이 시에서는 남자, 녀자, 누에고치, 떡갈나무, 그늘, 나무, 뿌리, 태양, 구름, 입김, 밤, 몸부림, 새벽, 울부짖음, 한낮, 거창한 춤, 파도,바다, 하늘, 절름발이, 양잠인, 황성옛터, 계집, 웃음소리, 대석하, 그림자, 강물, 칼, 력사, 동쪽, 별, 무지개, 바람, 손가락, 천리땅, 힘, 만남, 숨, 푸른 누에 등 40여개의 명사뒤에 접사 혹은 동사를 붙여 력사속의 을 현실속의 과 그 해학적인 50원, 그리고 로 조금은 익살스럽게 완성시킨 그런 느낌이 든다. 앞에서도 이미 말을 했지만 제 1련에서 단단한 부정어/남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녀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로 시작된 이 시의 제일 마지막 결구에서는 /그러니 남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된다/로 다시금 재치있게 부정했던것들을 다시금 재긍정해가면서 /힘과 힘의 만남 숨과 숨의 겨룸/ 을/푸른 누에가 기여온다/는 자연현상으로 아이러니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모두 알수가 있듯이 시제가 이고보니 력사와 현실을 하나 또 하나의 참조물로 관조해가면서 객관적으로 이미지완성을 집대성시킨 한폭의 좋은 그림, 방대한 이미지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마지막 시인 (冬至)에서 /하늘에 /수만개의 달/뜨는 날/슬픈 이에겐 /너무너무 긴/기쁜이에게는/길어도 짧은/이런 표현은 참으로 특이하고 기발한 착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김철호시인님의 근작시들을 읽노라면 마치 화면이 깨끗한 고화질의 티비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다    마무리하면서   오래동안 우리 시단을 지배해온 단선구조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다선구조의 틀로, 어젯날 시인의 독백적인 서술을 객관적인 이미지로, 정적인 이미지를 또한 동적인 이미지로, 시의 주체에서 시인자체를 이미지의 편집자로 바꾸어보려는 김철호시인님의 개혁성(改革性)은 그야말로 놀라울만큼 계획적이고 또한 그 기초가 믿음직하게 단단한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이 시대의 개혁은 누가 뭐라해도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 앞장서기 마련이다. 그럼으로 하여 기수는 바람이 없으면 앞장서 달려 가야 하는것이 오늘날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그 기치가 더욱 선명하지 않을가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번 2014년 제2기에 실린 김철호시인의 7수의 시작품은 마치 방대한 시리즈가 되여 거대한 이미지즘을 이루고 있는듯한 그런 느낌을 주며 또한 난해한듯하면서도 읽을수록 가슴에 와닿는 그런 공명감이 크고 한수 또 한수의 시가 꼭마치 통통 잘 여문 볍씨와도 같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미숙한 점이라면 지나치게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느낌이 들며 또한 무엇을 강조하려고 하는데서 부피가 커져가는듯한 그런 양상이 더러 있는것 같다. 아무튼 새로운 한해 새로운 시점에서 김철호시인님이 더욱 좋은 성과를 이룩하여 가시길 심양에서 두손 모아 진심으로 축원해본다    2014년4월5일 심양에서 (이 평론 허창렬시인님의 홈에서 퍼왔습니다.)
593    제78장 소작료와 리자 인하 투쟁 댓글:  조회:2443  추천:0  2014-04-03
  인민부담 경감시키고 인민생활 향상시키기 위해 가렴잡세 취소  소작료와 리자 인하 공유지 분배 연변철도로동조합 1945년 10월 15일, 연변로동자농민청년부녀총동맹의 지도하에 연변철도로동자의 첫 군중단체인 연변철도로동조합(이하“로동조합”으로 략칭)이 조양천에서 조직되였다. 민주추천방법으로 리충진을 위원장으로 하는 17명의 상무위원, 7명의 후보위원, 3명의 감찰위원을 선거하였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받는 연변의 첫 철도로동자군중조직이였다. 광복후 연변의 철도는 쏘련홍군이 군사관제를 실시하였으나 몇갈래 철도는 분할상태에 있었다. 목도선의 대흥구이남에는 도문철도운영부가 나오고 대흥구이북은 마희산비적의 교란과 파괴를 받아 운수를 회복할수 없었고 장도선에는 조양천감리부(길림국 국민당유지회계통)가 나와 하발령까지 관할하였고 화룡선은 군중이 자체로 단거리운영을 하였고 조개선은 통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조양천지구의 유지회계통과의 투쟁이 초점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45년 11월, 로동조합에서는 주군군의 무장을 빌어 조양천철도경찰의 무장 50여자루를 해제하고 감리부장 왕홍운패거리들을 쫓아버린후 돈화이남의 장도선, 화룡선, 조개선, 대흥구이남의 목도선을 접수하였다. 11월 30일, 중공연변지방위원회와 전원공서의 결정에 의해 연변철도관리국을 내오고 지희겸을 국장으로, 리충진을 부국장으로 임명하였다. 1946년 2월, 동만철도관리국에서 파견한 강례(김옥성)가 연변에 와 철도를 접수한후부터 연변철도관리국을 동만철도관리국 연변분국이라 하였다. 로동조합이 나온후 철도로동자들은 적극적으로 기관차, 차바곤, 선로, 통신신호시설을 복구하였다. 하여 1946년 1월 조양천역을 중심으로 연변경내의 네갈래 철도선이 기본적으로 개통되여 군사운수외의 민용운수도 하게 되었다. 2월 20일, 로동조합총지부는 제3차 확대회의를 소집, 통일적인 운행지휘계통을 내오고 철도국에서 통일적으로 경영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연변경비퇀의 군사운수를 담보하여 비적토벌투쟁과 제1차 장춘해방전투를 유력하게 지원할수 있게 하였다. 1946년 4월, 로동조합은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완수하고 철도공회로 재조직되였다. 철도공회는 6월에 동만철도총공회에서 접수관리하면서 길동분회로 개칭되였다. 인민생활 향상 위해 “가렴잡세를 취소하고 인민의 부담을 경감시키며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고 소작료와 리자를 인하시킨다.” 이것은 1945년 11월, 연변행정정독찰전원공서에서 발포한 “10대 시정강령” 제6조의 규정이다. 이 규정을 실천하기 위하여 중공연변지방위원회에서는 촌정무위원회, 각 단체 대표, 지주와 소작인들이 참가한 조절위원회를 건립하였으며 툰에까지도 류사한 조직을 건립하여 소작료를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 외에 왜놈과 괴로만주국의 토지를 소작농들에게 분여하여주고 경작권을 확정, 소작료는 “2.8”제를 실행하고 바친 소작료는 빈민구제량과 군량으로 할 것을 요구하였다. 1946년 2월, 춘경생산과 공유지분배사업에 결부시켜 연변전원공서에서는 “연변지구소작료조례”를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조례”에는 “고정적소작료에 대해서는 작년도의 원 소작료를 25% 낮추되 자연재해와 인위적재해로 하여 곡식의 전부 혹은 대부분이 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소작료의 지불을 중지하거나 인하하여 지불한다.” “림시적소작료는 상등전에 대해서 22%를 바친다” “소작인이 소작주는 사람에게 무대가로 로동하여 주거나 례물을 보내며 또한 타작한 곡식을 실어다주는 등 방법은 일률로 금지한다”는 등 규정이 있었다. 이러한 규정은 광범한 농민들을 지주의 각종 착취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생활면에서 향상을 가져오게 했고 정치면서 법률적보호를 받게 하였다. 반면 지주들의 위풍은 대대적으로 꺾어졌다. 이밖에 일반적인 지주와 부농의 합법적리익도 보장하여주었다. 1946년 4월, 연변전원공서는 “연변전원공서 제12호 포고”를 반포, 이렇게 지적하였다. “무릇 개인에게 속하는 토지는 정부에서 죄악이 극도에 달한 매국역적이라고 선포한 것을 제외하고는 일률로 그의 소유권을 보장하며 누구든지 침범하지 못한다.” 해방전 농민들은 고리대금착취를 보편적으로 매우 엄중하게 받았다. 고리대금을 놓는자들로는 지주, 부농, 왜놈과 괴뢰만주국의 금융기구, 고리대금업자 등이였다. 고리대에는 량식변리를 놓는것과 돈으로 고리대를 놓는 두가지 형식이 있었다. 왜놈과 괴뢰만주국 금융기관에서는 주로 현금으로 고리대를 놓았으며 지주, 부농들은 주로 량식으로 변리를 놓았다. 고리대의 비률은 일반적으로 높았는데 변리는 5푼 내지 10푼까지 달하였다. 빈고농들이 돈을 꿔쓰려면 보증인을 한두명 내세우거나 그 돈에 상응한 재산을 저당잡혀야 하였다. 따라서 채무자는 오래동안 그 무거운 채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지어 일부 채무자들은 파산당하고야말았다. 해방후 인민정부에서는 보증금제도를 없애버리고 리자를 1푼으로 낮추어 실행하도록 하였다. 소작료와 리자 인하는 농민들에 대한 봉건적착취를 경감시켰고 왜놈과 괴뢰만주국의 잔여세력을 집중적으로 타격하여 농민들의 계급적각성을 높혀 줌과 동시에 그들이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 물질적토대를 닦아주었다. 이리하여 공산당의 위신이 높아져 토지개혁운동의 전면적전개에 튼튼한 기초가 생기게 되었다. 공유지를 분배하다   연길시 해방1주년기면식장(1946년 8월 15일) 연변지구의 농업생산을 빨리 복구발전시켜 물질적부를 창조하여 인민의 생활을 향상시킴과 아울러 군대공급을 보장하기 위하여 연변전원공서에서는 1946년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연길에서 연변농업생산현장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우선 토지문제를 토론하였다. 농민의 토지에 대한 요구는 매우 강렬한바 현정부에서는 차압한 왜놈과 괴뢰조직의 재산을 농민들에게 합리하게 분배해주어 경작하게 하며 동시에 나머지 공유지를 소작주어 묵지 않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의에서는 춘경운동을 발동할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토론, “21만 1500톤의 량곡을 생산하여 자급자족하자”는 1946년 연변지구의 량곡생산분투목표를 제정하였고 농민에 대한 선전교양을 잘할것과 생산중의 구체문제를 잘 해결할데 대하여 포치하였다. 회의에서는 춘경생산을 승리적으로 완수하기 위하여 농촌에서 다음과 같은 조직을 내올 것을 요구했다. 첫째, 고농, 소작농, 빈농, 중농으로 농회조직을 내오고 농민이 법에 의하여 소작료를 줄이고 지주와 소작계약을 정하게 하며 농민의 리익에 관계되는 모든 운동을 령도해야 한다. 둘째, 합작사를 조직하여 농민의 부림소, 농기구, 비료, 종자 등을 조절하고 농산물을 수송하고 팔며 농촌의 일용품을 구입하는 등 일을 맡아해야 한다. 셋째, 자원적으로 결합하고 등가교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생산호조소조를 조직하여 소농경제의 곤난을 극복하고 농업생산을 촉진해야 한다. 광복전 식민주의자들이 차지한 “공유지”(경작지)는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 4개 현에서는 30좌우, 돈화, 안도현에서는 50~60%였다. 이러한 “공유지”를 네가지 종류로 구분할수 있는데 첫째, 동양척식회사가 저당잡고 대부하는 방법으로 략탁한 동척지와 자작농창정지이다. 다음으로 괴뢰만주국정부가 강제로 수매한 토지였는데 만척지, 만척자작농창정지, 일본인개척단지, 조선인개척단지, 중국인(한족)개척단지, 군용지, 도읍계획용지, 철도용지 등이 포함된다. 셋째는 원래 공유지였던 도학전, 현학전, 림지, 농장, 묘지 및 기타 현과 촌에서 소유하던 땅이였다. 넷째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회사, 공장과 사인이 수매한 토지였다. 이런 토지들을 동척, 만척, 관동군, 괴뢰만주국정부가 각각 관리했다. 동척과 만척에서는 략탈한 토지의 경작권을 다시 농민들에게 넘겨주어 고액이 소작료를 받았다. 그자들은 또 “자작농창정지”를 실시하여 토지를 비싼 값으로 농민들에게 외상으로 팔아 고리대착취를 하기도 했다. 1946년 3월 20일, 중공중앙동북국에서는 “일본침략자와 괴뢰정권의 토지를 처리할데 관한 지시”를 공포, “모든 동북경내의 일본침략자와 괴뢰정권의 토지, 개척지, 만척지 및 일본인과 대한간의 소유지를 즉시 무대가로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에게 나누어주어 춘경에 리롭게 하고 인민들의 식량을 증가하며 땅을 묵이지 말게 해야 한다”고 했다. 연변전원공서에서는 이 지시정신에 근거하여 “길림성 연변행정독찰전원공서포고 제12호”를 반포한후 공유지를 무상으로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946년 4월, 길동분성위에서는 소속 각 현에 “공유지를 분배해줄데 관한 지시”를 내리였다. 각 현에서는 이 지시를 받은 후 즉시 공유지처리위원회를 건립하고 춘경과 결합하여 공유지를 분배하는 고조를 일으켜 1946년 6월말까지 공유지를 전부 분배하였다. 연변제1차림시참의회의 1946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연길에서 연변제1차림시참의회가 열렸다. 각계통 인민들이 선거한 대표들과 사회인사들 중에서 초청을 받은 의원들이 회의에 참가했다. 회의에서 연변전원공서 부전원 동곤일이 정부사업보고를 진술했다. 동곤일은 보고에서 우선 연변전원공서가 제기한 10대시정방침을 어떻게 관철실시하여 정권을 회복개조하였으며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어떻게 소작료와 리자인하투쟁을 진행했는가 하는 정황을 치중하여 총화하였다. 이어 조직건설, 민정사업, 사회구제사업, 사회질서, 재정사업, 건설사업, 농업문제, 무역관계, 교육문제 등 제반사업정황을 총화했다. 보고에서 동곤일은 중한(中韓) 두 민족은 굳게 단결하여 공동으로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지적했다. 회의에서 길동군분구 사령원 강신태가 “우리군대의 사업경과”라는 제목의 보고를 진술하고 길동분성위 서기 당천제가 연설하였다. 당천제는 연설에서 평화, 민주, 단결, 건설에 대하여 “아는 것은 죄다 말하고 말할 것은 죄다 말하는” 정신에 좇아 직업, 계급을 따지지 않고 인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하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라고 참의원들을 격려하였다. 회의에서는 연변림시참의회잠정조례를 채택했다. 또 림시참의회잠정조례에 근거하여 당천제를 의장으로, 강위청, 림계학을 부의장으로, 지희겸 등을 상무위원으로 하는 상무회를 선거하였다. 회의에서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보내는 전보문을 통과하기도 했다. 3월 27일, 길동분성위에서는 “림시참의회사업에 관한 지시”에서 연변림시참의회의건립을 긍정하였고 연변림시참의회의건립은 중국공산당이 길동지구에서 민주주의정치를 실행한 중요한 표징이라고 지적하였다.(계속)  
592    [시]동지冬至(김철호) 댓글:  조회:1486  추천:0  2014-03-26
冬至 김철호 창가에 붉은 이슬이 줄줄 흐르고 하늘에 수만개의 달 뜨는 날 잠 깼으나 동이 트려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날 슬픈이에게는 너무너무 긴 기쁜이에게는 길어도 짧은 밤 긴 날 2014년 제2기
591    [시]동모산東牟山(김철호) 댓글:  조회:1359  추천:0  2014-03-26
東牟山 김철호 남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 누에고치가 파랗게 익어 헐벗은 떡갈나무 그늘 잃은 큰 나무, 뿌리 살아 숨 쉬는데 태양은 구름우에 숨어 찬 입김 뱉는구나 밤, 그 힘찬 몸부림 새벽, 그 벅찬 울부짖음 한낮, 그 거창한 춤... 파도는 거대한 바다를 만난다 파도는 높은 하늘을 만난다 절름발이 양잠인 50원에 황성옛터 잘 팔아먹고 누에고치 줏는 계집들의 웃음소리 언덕 허무는데 대석하에 비낀 장수의 그림자 파도따라 춤추누나 강물은 날 선 칼 되여 력사를 두쪽으로 가르누나 태양은 언제나 동쪽에서 뜬것만 아니다 별은 어두운 하늘에서만 반짝인것 아니다 하늘 만리서 무지개 나래펴고 바람은 손가락 튕기는 새에 천리땅 씻는구나 그러니 남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힘과 힘의 만남 숨과 숨의 겨룸 푸른 누에 기여온다 2014년 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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