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김철호
검은 새들과 흰 새들이 앉아있다
길다란 손가락들이 심술스럽게 새들을 쪼아댄다
새들은 하늘로 날아올랐다가도 도로 내려와 앉는다
새들이 나래치는 소리가 구름을 솟게 하고 샘물을 흐르게 한다
뻘건 손가락에 돋은 자주빛 손톱이 섬득하다
10자루의 칼날, 10자루의 송곳 난도질 한다, 마구 날친다
검은 새들과 흰 새들이 쓰러진다, 퍼득퍼득 버둥거린다
하늘 가득 깃털이 흩날린다
얼룩얼룩한 하늘, 태양도 사라진다
새들의 자지러진 우짖음
지옥의 소리가 된다, 천상의 소리가 된다
하늘땅이 노한다, 우뢰가 운다,파도가 솟는다, 바람이 태질한다, 사계절이 뒤죽박죽이 된다, 펑펑 흰눈이 내리다가 주룩주룩 장대비가 쏟아진다, 꽃들이 활짝 입을 열어 환호하고 푸른 숲이 꺼꾸로 서서 춤을 춘다, 병든 산하를 팽개친 높은 하늘에 류성의 무리 나타난다, 칼날과 송곳이 서로를 찌른다, 검은 새와 흰 새가 서로를 쫓는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면서 신음한다, 고함을 지른다...
갑자기 숲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초롱초롱한 눈이 달린 나무들이 흔들거린다
나무들도 새들과 함께 우짖는다
떤다...
편자주: 본 작품은 제27회 "두만강여울소리"시가탐구회 응모작품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