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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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    [시]죽은 아기의 집(김경후) 댓글:  조회:2546  추천:1  2011-08-09
김경후 아이는 눈을 뜨기도 전에 죽었다 지금 그의 투명하고 찢어질 듯한 살가죽은 벽에 걸려 있다 창문을 열어줄까 밖은 소나기구름의 어두움 희오리바람 소리 아기 살갗이 파르르 떨린다 펄럭이며 울음소리를 낸다 덩달아 난 딸국질을 시작한다 순간, 부억에서 들려오는 굉음 달아오른 냄비 속 내 젖꼭지, 폭발했다 누가 끓는 물에 소독하려 했을까 아이의 살가죽이 자꾸 내 얼굴을 덮는다 울음은 점점 커져 웃음소리가 되고 비바람은 거세진다 창문을 닫아야 해 하지만 밤새도록 천장에선 누렇고 끈적한 젖방울이 떨어지고 아기의 살가죽은 내 목을 꼬옥 감아조른다
469    [시]침대(김경후) 댓글:  조회:2309  추천:0  2011-08-09
김경후 여자는 밤새도록 침대에 포도주를 붓는다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버터를 바른다 어느 날 그녀의 밤과 그녀의 낮 사이로 비가 새기 시작한다 점점  불어나는 빗물 그곳에 포도주 병을 따다 다친 여자의 손가락과 잃어버린 구두 한 짝이 떠다니고 있다 회색 쥐가 침흘리며 손가락을 뒤쫓고 쥐를 따라가던 늙은 개는 구두 위에 오줌을 싼다 물길이 거세져 밤과 낮을 뚫는다 까마귀의 비명, 물살에 쓰러지는 포도주 병과 쥐털이 묻은 버터조각 여자는 더 이상 시트를 갈지 않는다 큰물이 몰려오고 있다 침대, 뒤집혀 여자와 함께 가라앉는다
468    [시]흡(吸)(김경후) 댓글:  조회:2364  추천:0  2011-08-09
김경후 너는 출렁거리는 내 몸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내 목덜미에 빨대를 꽂는다 입을 대려다 멈칫, 다시 빨대를 뽑아 날 주전자에 붓고는 끓인다 기포가 생기면서 부어터지는 내장 김으로 날아가버리는 살덩이 식탁에 팽개쳐진 내 껍질이 찌그러들고 있다 식어가는 나를 마시자마자 너는 바닥에 쓰러져 뒹군다 배를 쥐어뜯으며 덩어리 피를 토하더니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난 아직 네 내장들을 녹이며 출렁이고 있다
467    [시]칼(김경후) 댓글:  조회:2191  추천:1  2011-08-09
김경후 여자는 하루 종일 아궁이에 숨어 도마에 내리꽂힌 식칼을 쳐다본다 가끔은 칼날을 갈다가 도마를 베고 잠들기도 하지만 발소리가 들리면 다시 검댕이 속에 몸을 파묻는다 불 피워본 적 없는 아궁이에 매일 장작을 가져오고 굴뚝청소를 하는 마을사람들 옆집 할멈은 여자를 위해 하얀 옷을 뜨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도 칼을 치우지 않는다 모두 잠든 한밤중 여자는 밖으로 나와 처녀 별자리를 향해 힘껏 칼을 던진다 별자리의 배 부분에 칼이 꽂히다 온 마을에 쏟아지는 멍울멍울한 핏덩어리 피를 뒤집어 쓴 채 여자는 저수지로 향한다 암적색이 번지고 있는 살얼음들 새벽엔 다 얼겠구나 물무늬 하나 생기지 않게 가만히 그녀가 몸을 담근다
466    [시]雨(김철호) 댓글:  조회:1799  추천:57  2011-04-25
雨 김철호 빛이 흐른다, 이런 날에는 수많은 빛이 흐른다 빛의 길따라 빛들이 흘러서 어디론가를 간다, 달려간다 고운 음악을 만들며 간다 빛들은 빛들을 만나 더 큰 선률이 되여 흘러간다 빛의 흐름소리는 고요하다가도 요란하다 요란하다가도 잠잠하다 텅 빈 공간 쬐끔 큰 바람질이 있어도 빛은 꼭 가야할 곳에로 간다 그곳에 가서 빛은 빛난다, 고여서 빛난다 고였다 다시 흐르면서 빛난다 이런 날에 흐르는 빛은 빛이 아니지만 찬히 보면 빛이다, 반짝이는 빛이다  
465    [시]안개(김철호) 댓글:  조회:1797  추천:53  2011-04-25
안개 김철호 그 강으로는 가지 말어라 넓고 깊은 그 강엔 살엄음 덮혀 있네라 머나먼 대안에선 소리들이 달리고 그림자는 볼수조차 없구나 빛은 가까이에서는 더 밝으나 어둠은 가까이에선 더 어둠다고 그러더라 어둠속, 그 보이지 않는 속에서 공포에 떨고있는 웃음 그건 깊은 함정, 넓은 그물 누군가를 기다리는 크나 큰 아가리 단숨에 삼키려는 커다란 입이라 그러더라 그러니 그 강으로는 가지 말어라 한번 빠지면 영원히 나올수 없느니라 오늘 아침에도 그 강, 너무 넓고 깊어 건느려던 숱한 사람들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나오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더라 빤한 같아도 도무지 알수 없는 그 깊이와 폭 매일같이 임하면서도 알수 없는 그 미지의 정착점… 그러니 그 강으로는 가지 말어라 자칫, 풍덩! 영원히 혜여나오지 못할 수도 있네라.  
464    [시]12월(김철호) 댓글:  조회:1878  추천:50  2011-04-25
12월 김철호 창고에는 더럽고 퀴퀴한 짐들, 너절하고 지저분한 짐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다 내가 메여다 놓은것들이다 그 누구도 가져가려 하지 않는 쓸모가 도무지 없는 저 짐들을, 묵어 나자빠진 저것들을 이제 소각할 날이 있을것이다 짐이 더 생기지 않을 그날 나는 짐없는 몸으로 하늘에 올라 훨훨 가벼운 날개를 퍼득거리며 타버리는 나의 짐들의 불빛에 웃을것이다 순간으로 사라지는 불꽃 검은 연기로 우주속에 잠적하는 그 존재에 웃을것이다 웃을것이다  
463    [시]일식(김철호) 댓글:  조회:1872  추천:60  2011-04-25
일식 김철호 개가 짖는다, 해를 먹는다 우리는 다 한마리의 개가 되여 매일 짖는다 매일 해를 먹는다 도마우에 오른 해는 칼질에 토막나면서 먹히우고 개는 짖어댄다 해는 해에게 밀려 또 도마우에 오르고 죽음의 그림자는 개한테 놀라 버둥거린다 우리는 또 해 하나를 꿀꺽 했다 래일도 일식일것이다  
462    [시]순환(김철호) 댓글:  조회:1456  추천:34  2011-04-25
순환 김철호 시간의 시작과 시간의 끝이 빙 돌아 부딪치는 점에서 모든 생명들은 다 소실되고 새로운 기호가 생기면서 100억년을 기약한 생명의 첫 씨가 첫 숨을 쉴것이다 처음 직립하여 첫발자국 떼며 인간으로 되는 고요한 아침 기여다니는 짐승들과 짐승에서 벗어나려고 주춤거리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선 사람은 두 팔 벌려 허우적거릴것이다 춤의 시조가 된 허우적거림, 동료들을 불러 땅에서 앞발을 쳐들게 할것이다 생명을 죽이는 시간, 죽은 생명을 밟고 탄생하는 시간 시간은 생명이며 죽음이며 소실이며 탄생이 되여 세상을 바꿀것이다 새는 새와 토끼는 토끼와 여우는 여우와 호랑이는 호랑이와 물고기는 물고기와 벌은 벌과 딱정벌레는 딱정벌레와... 오로지 자기들끼리 맺는 종족번식에서 탈피하여 모든 생명 서로 얼키고 설키는 우주생명의 사랑시대 태양도 동쪽에서만 솟고 물도 아래로만 흐르는 지금의 진리가 꺼꾸로 되는 그런 세상에서 생명은 빛이 될수도 있을것이고 어둠이 될수도 있을것이다
461    [시]2011ㅡ1ㅡ1호(김철호) 댓글:  조회:1627  추천:26  2011-04-25
2011ㅡ1ㅡ1호 김철호 에이츠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시가 있는 아침! 창가에 매달린 새 해살들은 참새떼들처럼 재잘거리는것 같다 2천하고 열 한 알 똑 똑 …… 이슬이 매달린 겨울유리창 눈동자마다에 태양 하나씩 담겨 새해의 입술을 빨려고 혀를 내민다 비둘기떼들은 신비한 우뢰소리를 내며 쥐색의 하늘에 뿌려지고 하늘에 젖은 첫날은 어제처럼 다가선다 원쑤의 시간은 빠른 걸음으로 뛰여와 몸속에 꽂혀 사(死)의 씨앗 되더니 생(生)의 순 돋혀 슬픈 가지를 뻗는다 나무야, 이 엄동에도 자라고있니? 풀아, 돌같은 흙속에서도 꿈꾸고있니? 샘아, 얼음을 뚫으려고 솟고있니? 아가야, 한살 더 먹으려고 잠깨여있니? 사람들 얼굴처럼 도무지 새롭지 않는 하늘과 땅 그슬린 빌딩과 먼지 덮힌 강 그래도 생명은 새 박동소리 웨치며 누구의 가슴속에서도 쿵쾅거리고있다 쿵쿵, 쾅쾅…… 발걸음같은 살아있다는 아우성소리!  
460    [시]넝마(김철호) 댓글:  조회:1521  추천:27  2011-04-25
넝마 김철호 푸른 숲속을 깊이깊이 걸어들어가면 너도 하나의 파랗고 작은 풀잎이 되리라 자갈 널린 강가에 던져져 씻기고 부비우고 갈리우고 하면 너도 하나의 반들반들 윤나는 돌이 되리라 별은 우주의 점 수많은 점들이 모여 우주가 됐다 지구도 그 속에 섞여 할딱인다 너도 그 속에 섞여 숨을 쉰다 그래서 저 커다란 산이 지구의 하나의 점인것처럼 저 강이 지구의 하나의 점인것처럼 저 도시가 지구의 하나의 점인것처럼 그리고 나도 지구의 하나의 점인것처럼 너도 지구속의 하나의 점 커보이는것은 네가 작기때문이고 작아보이는것은 네가 크기때문이다 모두다 세상속의 한 점 세상에 버려질것 없다 버려져도 세상속에 있으니깐  
459    [시]音(김철호) 댓글:  조회:1648  추천:27  2011-04-25
音 김철호 퉁타당 탕탕…… 몽둥이에 얻어맞은 자지러진 악기들이 벌떡 일어선다 음정박자 도무지 맞지 않는 음들이 광란한다 입술들이 힘을 쓴다 눈알들이 돈다 뒤범벅이 된 소리…… 알수없는 음들이 흘러나와 부딪치며 날뛰며 음계를 터뜨리고 계곡으로 흘러간다 쏴ㅡ쏴, 콸ㅡ콸, 좔ㅡ좔 뒤돌아보면 안돼! 뒤에서도 힘차게 밀려온다 앞에서도 힘차게 달려간다 여섯개의 구명을 향해 열 손가락 춤춘다 몇줄의 현 우에서 수만개의 손가락 싸운다 찢고 튕기고 간지럽히고 꼬집고 밀고 당기고 깨물고 문지르고 엎치고 덮치고 뻗치고 너부러지고 긋고 두드리고 뜯고 비비고…… 뒤섞인 쏘와 레가 흥분하고 손잡은 도와 시의 춤사위 즐겁다 바이올린이 잔을 비우자 곤드라베이스가 와인병을 든다 오르가즘을 맞은 술판은 미들의 지랄과 라들의 아우성과 화들의 고함소리로 파르르 파르르 와들 와들 떨고있었다, 떨고있었다, 떨고있었다……  
458    [시]새.2(김철호) 댓글:  조회:1646  추천:30  2011-04-25
새.2 김철호 새야,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점 하나인 네가 있기에 하늘은 저렇게 커 보이는 거란다 나룻배마냥 하늘을 가르면 까만 금이 생겼다가 금새 사라지고 너무 높이 솟아 하늘 속에 잠겼다가 다시 나타날 때에는 새야, 새야, 넌 작은 별 하나로 반짝인다 찬히 보면 작은 별 그렇게 클 수가 없다 한 하늘 다 차지한 별 하나 하늘 만큼한 별 하나 죽어도 류성이 될 수 없는 별 하나 그건 하늘을 여는 작은 손잡이 꽉 잡아라, 그리고 저 푸른 하늘, 넓고 깊은 하늘을 활 열어 보아라! 하늘에게 덮혀 있는 저쪽 세상은 어떤 곳일가 새야, 하늘을 다 삼켜버린 새야 넌 알고 있겠지, 알고 있겠지 하늘을 하늘로 만든 하늘보다 더 큰 작은 새야!  
457    [시]어머니 몸 나를 버렸다(김철호) 댓글:  조회:1799  추천:27  2011-04-25
어머니 몸 나를 버렸다 김철호 어머니 몸 나를 버렸다 버림받은 살덩이가 땅에 떨어졌다 섬뜩 차거웠다 차거운 재속에 얼굴이 파묻혔기때문이다 어머니 몸에서 버림받은 나는 울었다 발버둥치며, 손을 휘저으며 울었다 태줄이 팔에 감겼다 발에도 감겼다 울면서 나는 이 세상을 느꼈다 울면서 나는 이 세상의 한 개인을 선포했다 무거운 눈까풀을 열고 이 세상의 하늘과 땅을 보았다 해가 동쪽 산마루에서 솟고있는것을 보았다 코를 벌름거리면서 이 세상의 내음을 맡았다 싸리나무 연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두 귀를 벌쭉거리면서 이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아들애라우 하는 칼날같은 목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어머니의 몸 나를 버렸기에 나는 나의 심장을 가질수 있었다 나의 페와 위장과 간장, 취장을 가질수 있었다 쥘수 있는 손과 디딜수 있는 발과 막을수 있는 가슴과 기댈수 있는 등을 가질수 있었다 어머니의 몸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어느 부위의 살덩이가 되여 어머니만큼 늙어서 어머니처럼 슬픔에 젖어 슬퍼할것이다 나를 버린 어머니 몸 고맙다  
456    [시]초불.4(김철호) 댓글:  조회:1590  추천:27  2011-04-25
초불.4 김철호 작은 씨앗 넝쿨 되여 생명으로 뻗고저 땅속 깊이에서 숨을 쉰다 어엿한 나무의 꿈을 그리며 풍성한 열매의 꿈을 익히며 아픈 눈물을 방울방울 떨군다 가슴을 헤쳐 파르르 파르르 떤다 작은 씨앗 넝쿨이 되여 힘찬 생명으로 뻗고저 보는이의 가슴마다에 생명 가득 채워준다 밝은 생명의 눈을 준다  
455    [시]초불.3(김철호) 댓글:  조회:1507  추천:25  2011-04-25
초불.3 김철호 따가운 손가락이 구석까지 찾아와서 끄집어낸다 그늘에 숨은것을 들춰내서 콕콕 찔러준다 밖으로 도망치려 하면 덜미를 잡아챈다 멀리서 바라보니 창문 가득 쥐고 놓지 않는 앙칼진 손가락들 그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쭉쭉 뻗어와 내 얼굴 할퀸다 눈에서 빛이 떨어진다 떨어진 빛이 차돌처럼 밟힌다 차돌같던 빛이 새알처럼 터지고 터진 속에서 총알같은 빛이 튕겨나온다 창문을 향해 빛이 사정된다 창문 가득 묻은 빛들이 창문속에서 나오는 칼날같은 손가락들과 싸운다 싸우다 쭈르르 흘러내리고 싸우다 쭈르르 흘러내리고... 먼동이 트기전에 다 죽어간다  
454    [시]초불.2(김철호) 댓글:  조회:1671  추천:29  2011-04-25
초불.2 김철호 나 한번 눈 뜨면 죽는 순간까지 감지 않는다 나처럼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 있다는걸 알고있기때문이다 잠간 눈을 감았다 뜨는새 너의 눈 잃을가 두렵다 네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는건 나의 죽음을 의미하니깐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 있기에 나만을 바라보는 너의 눈 있기에 더욱 커다랗게 눈 뜨고 너를 바라본다 가장 밝은 눈으로 너를 바라본다 너, 보고있겠지 내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을 그건 내 마음이 탄 재다 나를 향한 변함없는 너의 그 눈에 뿌리는 씨앗! 때문에 순간도 눈을 감을수 없다 죽을 때까지 눈을 뜨고있어야 한다 그러니 너도 나를 끝까지 응시해야 한다  
453    [시]초불.1(김철호) 댓글:  조회:1473  추천:30  2011-04-25
초불.1 김철호 시방 너는 정수리에 불을 달고타고있다 불이 옮아 멀리 오랑캐령도 타고있다 륙도하도 타고있다 선바위랑, 선바위 너머 골짜기랑도 타고있다 소풍락동, 대립자도 타고있다 태양이 부서져 별무리 무성한 하늘, 하늘이 무너져 땅에 내린 그 숱한 별들도 타고있다 너는 타고 눈은 녹고, 눈 녹으니 네가 써놓았던 너의 이름 고함으로 일어선다 옷고름처럼 풀어지는 두만강 건너는 길 바라보며 사람들 무리에 들고싶어 발돋음하고있는 너의 이름 낯설은 땅에서 나자란 고향 등진 무리피해 그림자도 없이 서서 시방 너는 스믈여덟 애젊은 이름으로 타고있다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너 예순여섯해전 검은 태양의 나라에서 불러본 메아리로 남아있는 그 비명의 이름으로 타고있다 우두컨한 한 자루의 초불로 타고있다  
452    [시]진달래(김철호) 댓글:  조회:2051  추천:28  2011-04-25
진달래 김철호 소녀였던 어머니 맨발로 산자락을 밟았다 허벅지 따라 줄줄 흘러내리는 4월의 향기 어쩌다 남아있는 흰눈우에 빨간 자욱을 남겼다 너무도 신비한 비밀의 세상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림을 아프게 느끼며 소녀였던 어머니 자신의 품속에서 흘러나오는 물감의 조화를 밟으며 걸었다 지나는 자욱마다에 돋는 붉은 이슬의 숨 봄싹처럼 힘을 내고 봄물처럼 용을 써 처녀를 갖고 여인을 갖고 한송이 커다란 웃음으로 서있었다 소녀였던 어머니 향기가 가지에 묻어 가지를 물들이고 뿌리에 내려 뿌리를 물들이고 릉선을 따라가며 흘러져 릉선을 뜨겁게 태웠다 그건 첫 달거리였다 녀자되는 날이였다 4월의 하늘, 그 피빛 하늘을 날은 날이였다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 날이였다 또 하나의 계절의 무늬가 새겨진 날이였다  
451    [시]거미(김철호) 댓글:  조회:1641  추천:26  2011-04-25
거미 김철호 흰 머리 소리없는 골방에 누워있다 소리, 소리, 소리... 소리들은 다 어데 갔을가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줄 아, 너무도 은빛 찬란했던 줄의 세계! 그 세계는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는가 그 세계는 물처럼 흘러가버렸는가 이젠 없다, 슬픔도 눈물도 웃음도 환희도 목마름도 배설도... 한잔 마른 물 마시고 꿀꺽 큰 딸국질에 놀라며 흰 머리 소리없는 골방에 누워있다 줄을 다 잃은 거미 한 마리 개처럼 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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