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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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시]모네의 저녁 산책(조연호) 댓글:  조회:2283  추천:37  2009-09-16
모네의 저녁 산책 조연호[한국] 산책이 시작되는 길 위에서 모든 아침은 세상 밖의 것이 된다. 응달 위에 내린 눈이 따뜻하게 익어갈 때 바람은 魂이 모인 쪽으로 날아가곤 했다. 나는 산기슭에 앉아 날이 저물도록 어둠의 입문서를 읽었다. 모든 산길의 나무는 浮力을 가진다. 나는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을 불러 여러 번 캐물었다. 아직도 불지 않겠는가, 배후는 누구냐. 날개 없는 나무가 새의 날개 속으로 날아간다. 집으로 가서 빨래들과 함께 잠들고 싶었다. 이방인들이 편히 쉬는 7일째의 날에 나는 옥수수알처럼 노릇노릇 굳어가는 저녁길을 걸었다. 낡은 책 속에서 읽은 밤의 이목구비가 내 앞에서 뚜렷이 깎이고 쉰소리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공중으로 떠오른 흙과 돌이 나무의 부레 속에서 함께 맴돌았다. 간선도로 끝에서 세상의 본을 뜨는 무딘 쇠망치질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결심이 수난史를 쓰고 낙엽이 땅보다 더 밑으로 걸어갔다. 오후는 공원과 도살장으로 가는 두 개의 길을 만들고, 밤은 그 위에 목탄가루를 뿌렸다. 나는 모래흙 위에 하늘과, 땅과, 집과, 집과 집이 모여 만드는 天地宇宙에 관한 쉬운 이국어의 뜻문자를 썼다. 모든 명료함은 아팠다. 나는 아프게 말했고 누구의 말도 읽지 못했다. 붉은, 푸른, 흰 바람이 먼저 순례하고 간 저녁 산책길은 아이들만 남아서 딱지와 고무줄을 흥정하는 흐린 풍경의 것이었다
249    [시]해바라기 시간(김경후) 댓글:  조회:1453  추천:14  2009-09-16
해바라기 시간 김경후[한국]                                      해바라기 씨앗 위로 시멘트 반죽이 떨어진다 계절 내내 계속되는 오후 두 시 세 시를 향해 혼자 울며 뛰어가던 길 가방 속 탬버린은 흔들려도 조용했다 공터의 땅을 나 혼자 다 따먹어도 나는 공터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도 오지 않아도 나랑 놀아주세요 울다 지친 오후 두 시에게 오후 두 시를 잊어버리기 위한 놀이와 단어들이 바닥난다 바닥도 고꾸라지며 더 이상 바닥이 아니다 굳지 않는 시멘트에 고이는 물 나는 내 발을 걸어 넘어진다 목 잘린 해바라기 줄기 위로 여보세요, 툭, 두 시가 된다
248    [시]서정적인 삶(김안) 댓글:  조회:1354  추천:16  2009-09-16
서정적인 삶 김 안[한국] 당신은 나를 향해 몸을 벌려요 나는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어느새 내 얼굴은 녹색이 되어요 당신이 몸을 벌리면 파르르 서리 낀 창이 흔들려요 방 전체가 하얀 서리들로 가득 차요 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당신의 벌어진 몸에선 노래가 흘러나와요 나는 이 노래를 알고 있지만 아무리 불러도 첫 소절로만 돌아갈 뿐이에요 나는 이 노래의 끄트머리에 뱀과 쥐들, 개와 파리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의 노래를 움키고 당신의 푸른 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요 온갖 은유를 만져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 먹지 않을게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 먹지 않을게요 당신은 사려 깊은 장님처럼 내 손을 빼내어 당신의 입 안으로 넣어요 아직 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는데 당신의 입 안에서 내 손이 사라져요
247    [시]어떤 出土(나희덕) 댓글:  조회:1370  추천:19  2009-07-06
어떤 出土 나희덕[한국]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늘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려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어찌 보면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들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추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었다 불꽃들도 흙 속에 잦아든지 오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움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246    [시]가시(김행숙) 댓글:  조회:1234  추천:22  2009-07-06
가시 김행숙[한국] 그는 오늘 아침에도 가시를 부러뜨린다. 찔끔, 눈물이 난다. 처음 가시를 발견하고 그는 열다섯 살 소년처럼 몸을 뚫고 나오는 털에 대해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으로 소년은 털이 집중적으로 자라는 부위를 만지곤 했다. 그렇지만 그는 열다섯 살 소년이 아니고 가시는 부드럽게 쓸리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찔러요. 여자가 했던 말은 감각적인 것이었다. 빼야 할 건 가시겠지만 그는 여자를 빼고 눕는다. 그는 다시 오늘 아침에도 가시를 부러뜨리며 눈물을 흘린다. 처음 가시를 발견하고 그는 가시에 찔린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뽑으려고 하니까 그가 딸려왔다. 방바닥과 그의 엉덩이 사이에 3센티쯤 간격이 생겼다. 그는 어느새 가시의 뿌리가 되어 있었다. 아, 아, 아, 그는 소리를 지르며 손을 뗐다. 그는 다시 몸을 뚫고 나오는 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던 몇 분 동안 그녀에게서 빠져나간 머리털을 그는 다 셀수 없었다. 여자는 머리털같이 흩어져서 그를 빠져나갔다. 여자는 그를 빼고 눕고 그는 여자를 빼고 눕는다. 누가 날 좀 뽑아줘, 누워서  소리치기도 하지만 그건 분명 헛소리다. 그는 다시 오늘 아침에도 가시를 부러뜨리며 눈물을 흘린다.  
245    [시]집274(김언희) 댓글:  조회:1391  추천:24  2009-07-06
집 274 김언희[한국] 1 얘야 집이 어디니 네 집으로 가거라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네 집이란다 얘야 이제 그만 집으로 가거라 아버지가 기다리시지 않겠니 식탁 위에서 아버지의 의수가 변기 속에서 아버지의 개눈이 기다리지 않겠니 기다릴 거야 얘야 침대 속에서 아버지의 의족이 물잔 속에서 아버지의 의치가 이빨을 딱딱딱 마주치며 기다릴 거야 2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너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 집으로 너는 돌아간다 한 번도 집이었던 적이 없는 집으로 그 집에서 너는 한번도 밥이었던 적이 없는 밥을 먹는다 경멸과 면박의 망각과 질식의 더운 밥을 먹는다 외눈박이 집 추잡한 의처의 집에서 너는 한 번도 잠이었던 적이 없는 칼잠을 잔다 한 번도  꿈이었던 적이 없는 꿈 매일밤 똑같은 꿈을 꾼다 하루밤도 빠지없이 한 장면도 빠짐없이 배려의 손길이 죽음의 손길인 그 집에서  
244    [시]비내리는 날(김승희) 댓글:  조회:1334  추천:12  2009-07-06
비내리는 날 김승희[한국] 오늘은 내가 조용히 견디려고 하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 주룩주룩 유리창으로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좀 봐. 빗물마다 손이 있어. 손마다 귀신이 있어. 유리창을 마구 문지르며 손은 유리를 부여잡으려고 해. 나팔꽃, 칡꽃, 넝쿨 장미, 위로 위로 올라 가려는 세상의 모든 손들이 떠올라. 그런데 유리창은 그 손을 미끄러뜨리려고 해. 그리고 비가 오고 있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빗물의 손들은 하염없이 유리창에 손을 비비며 무언가를 호소해. 그 손들이 모두 송이 송이 혀로 보여. 오늘은 내가 조용히 견디려고 하는데 빗줄기마다 수천수만 송이 귀신의 혀가 피어나고 있어. 빗줄기마다 흐린 혀의 꽃다발이야. 시냇물 같은 혀의 꽃송이들이 유리창에 죽죽 흘러. 오늘은 내가 견디려고 하는데 유리창 속 얼굴 속으로 빗물이 번개를 그으며 급류처럼 흘러가. 번개의 급류에 맞아 내 얼굴이 쪼개진 석류가 되었어. 쪼개진 석류 이빨 사이로 소용돌이치듯 뜨거운 피가 흘러. 그러나 비는 또 오고 유리창엔 수천수만의 꽃송이가 지고 구름 같은 귀면이 흐르고 유리창은 야간열차처럼 검은 거울이 되고 거울 속에는 얼굴이 있고 그녀의 얼굴은 비바람에 부딪쳐 파열하는 석류가 돼. 핏물 흐르는 파열된 석류가 점점 부어오르고 있어. 점 점 점 점 석류는 커져서 드디어 이 방보다도 커진 석류, 지평선보다 더 부어오른 석류의 쪼개진 두개골이 하염없이 비바람을 맞고 있는 거야. 흐린 나무들은 미친 듯이 머리를 풀고 회오리치고 푸른 곰팡이 먹은 얼굴의 오필리아가 몇 번이고 다시 또 다시 부풀어오른 늪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런 날.   
243    [시]野菜史(김경미) 댓글:  조회:1358  추천:21  2009-07-06
野菜史 김경미[한국]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지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 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242    [동시]파도와 빛(김철호) 댓글:  조회:1394  추천:19  2009-06-29
파도와 빛 김철호 강물이 번득거린다 빛들이 번득거린다 강물에 잡힌 빛들이 도망치려 버둥거리면 파도가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밤동안 파도와 빛은 끊임없이 실랑인다 연변문학 2009년 6월호
241    [동시]신나는 날(김철호) 댓글:  조회:1815  추천:20  2009-06-08
신나는 날 김철호 ㅡ나무야, 나무야, 춤추는걸 보니 신나는 일 있는 모양이구나? ㅡ아니야, 바람이 신나해 그런다! ㅡ바람아, 바람아, 무슨 좋은 일 있니? ㅡ아니야, 파도가 신나해 그런다! ㅡ파도야, 파도야, 왜 신나는거지? ㅡ아니야, 아침이 신나해 그런다! ㅡ아침아, 아침아, 무슨 좋은 일 있니? ㅡ아니야, 해님이 신나해 그런다! ㅡ해님아, 해님아, 왜 싱글벙글하는거지? ㅡ아니야, 꿈님이 신나해 그런다! ㅡ꿈님아. 꿈님아, 혼자 좋아하면 안되지? ㅡ아니야, 태식이가 신나해 그런다! ㅡ태식아, 태식아, 외국 간 엄마 돌아왔니? ㅡ아니야, 새들이 신나해 그런다! ㅡ새들아, 새들아, 무척 좋은 일 있는 모양이구나? ㅡ아니야, 나무가 신나해서 그런다!   《아동문학》2009년 봄호
240    [동시]바람.2(김철호) 댓글:  조회:1473  추천:31  2009-06-08
바 람 김철호 바람은 친구 만나야 말한다   백양나무숲에 와서는 쏴ㅡ쏴 큰소리로 말하고   전선줄에 앉아서는 앵ㅡ앵 맵짠 소리로 말하고   얼마의 빨래 만나면 펄럭ㅡ펄럭 부드럽게 말한다   바람은 친구 없으면 벙어리 된다   《아동문학》2009년 봄호
239    [동시]개울물(김철호) 댓글:  조회:1648  추천:20  2009-06-08
개울물 김철호 “돌돌돌…”   돌이 자꾸 앞을 막아 그래    “돌돌돌…”   돌이 자꾸 발에 채여 그래   “돌돌돌…”   비켜라 비켜 목이 쉬겠다   《아동문학》2009년 봄호
238    [동시]새 이발(김철호) 댓글:  조회:617  추천:20  2009-06-08
동시새 이발김철호하얀 새 싹 뾰족 돋았어요   실실 말이 새던 자리에 바자 될 나무 한그루 자랄거예요   《아동문학》2009년 봄호
237    [동시]천기예보(김철호) 댓글:  조회:1711  추천:24  2009-06-08
천기예보 김철호 오늘 흐림 작은 비 내림   엄마의 목소리 챙챙 아빠 얼굴 뎅뎅   오늘 맑음 아기바람 붐   엄마 웃음 캘캘 아빠 어깨 으쓱   《아동문학》2009년 봄호
236    [소설]허공장장 일화(김철호) 댓글:  조회:1506  추천:19  2009-06-03
단편소설 허공장장 일화 꽃분이네 집 창가에서 또다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동네사람들은 귀를 강구면서 경탄해하는것이였다. 금방 산 “꾀꼬리표” 라지오록음기가 고장난바람에 그러지 않아도 말썽이던 꽃분이네 집 창가엔 요사이 부부간의 말다툼이 노래소리 대신 흘러나와 듣그럽게 동네사람들의 귀를 자극주었던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다투막질소리 대신 또다시 아름다운 선률이 흘러나오는것이 아닌가?! 아마 상식이 없은탓에 조절할줄 몰라 록음기가 고장난줄로만 안 모양이였겠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면서 이웃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입과 눈을 찡긋거렸다. 이때 꽃분이 어머니가 쪽걸상을 들고나오더니 마당 한쪽에 앉으면서 언제나 손에 놓을새 없는 뜨개질감을 잡는것이였다. 얼굴에 홍조가 발가우리하게 어린 꽃분이 어머니는 오늘 무척 기분이 나는 모양이였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한쪽 꼬리가 축 처져 심술이 드레드레 매달려있는것 같던 눈섭이 련속 춤을 추어대는가 하면 지금 한창 건드러지게 흘러나오는 남성독창에 맞춰 한쪽 발로 박자를 쿵작쿵작 치고있었다. 아낙네 서넛이 저마다 쪽걸상을 갖춰들고 꽃분이 어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그녀들은 자기네가 갖고간 일감을 다듬질하면서 꽃분이네 집 창가를 힐끔힐끔 건너다보며 그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마 미남자일) 그 목소리 좋은 독창가수의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좋아들했다. “‘꾀꼬리’가 병난줄 알았는데…” 옆에서 누군가 이렇게 묻자 꽃분이 어머닌 이때를 기다렸다는듯이 입이 함박만해지면서 웃었다. 그통에 어금이에 박아넣은 금이가 석약볕에 번쩍 하고 빛을 반사했다. “나도 영 숨이 넘어간줄 알았죠뭐.” “그래 아무 일도 없는걸 가지고 원앙이 다툰건 아닌가요?” 이쪽에 앉은 아낙네가 슬쩍 구루를 쳐보는것이였다. “고장 안나다니요. 한심하게 마사졌댔죠뭐.” 꽃분이 어머닌 이쪽저쪽을 번갈아보며 좋아서 또 웃었다. “금방 이사온 허공장장님 모르나요. 거 우리 꽃분이와 한반 다니는 허일 아버질말이예요.” 금방 이사온 허공장장님을 왜 모를수 있겠는가. 아낙네들은 저마다 허공장장네 집쪽을 피끗 바라보았다. 얼마전 새로 이사온 허공장장님이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이라는것을 누가 말치 않아도 다 아는 이녀들이였다. “글쎄 그분은 정말 귀신같아요. 눈에 현미경을 걸었는지 손에 자석을 달았는지 그저 척척척 하더니, 호호호… 난 귀신께 홀리나 했죠뭐.” 꽃분이 어머닌 그저 신이 나서 련속 웃기만 했다. “그런데 꽃분이 어머닌 어느새 그런 뒤문을 다 보아뒀나. 정말‘팔방미인’이군요. 히히…” “그거야 내 낮바닥이 소볼기짝처럼 두터우니 그런거죠. 난 애아버지와 한바탕 다툰 끝에 숙제공부하러 허일네 집에 가있는 딸애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피난가려고 그 집에 갔더랬지 않았겠나요. 그때 피뜩 이런 생각을 했던거래요. 무선전공장의 공장장님이니까 록음기같은건 애들 놀이감처럼 여길거라구말이예요. 때마침 일요일이라 공장장님이 집에 계셔서 난 마구잡이로 제기했죠. 처음엔 두손 내흔들면서 거절하더니 허일이랑 꽃분이랑 마구 매달리며 흥흥거리니 하는수 없는지 말씀이 없는거 아니겠어요. 난 불이 펄쩍나게 뛰여와서 록음기를 들구갔죠. 그분은 록음기 뒤덮개를 열더니 이리저리 훑어보겠죠. 그러던것이 뭐 관인지 돈인지 하는 귀에 생소한 부속품이름을 말씀하시면서 영 못쓰게 된것 같다지 않겠어요.” “저런 큰일났군요.” 아낙네들은 혀을 끌끌 찼다. 꽃분이 어머니도 그때의 그 락태상이 되였던 꼬락서니를 보여줄양으로 잔뜩 우거지상을 해대면서 한숨까지 훌 내쉬였다. 그러던것이 또다시 쾌활한 안청으로 여럿을 둘러보며 웃었다. “그분은 집에 부속품을 예비로 둔것이 없으니 지금 당장 수리할수 없겠은즉 저녁에 와보라는게 아니겠어요. 저녁에 가보니 글쎄 우리‘꾀꼬리’가 목청 하나 변치 않은대로 청맑게 노래하지 않겠나요. 호호호…” 꽃분이 어머니는 찔끔 솟구치는 눈물을 손등으로 꾹 눌러버리면서 기쁨에 겨워 깔깔 웃어댔다. “참, 대단하구만요.” “아무렴, 무선전공장의 공장장이니까 범상해선 안되지.” 아낙네들은 허공장장님을 구구히 춰올리는데 야단스레 우짖는 한떼의 새무리 같았다. “아니, 저기 그분이 와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서 아낙네들은 머리를 솟구치며 골목 저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골목길로 허공장장님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는데 락조가 토해놓은 혈색에 물올라서인지 온후하고 인품좋게 생긴 둥실한 얼굴에 점잖으면서도 도량과 예지와 높은 기품이 풍기는 모습이였다. 허공장장님은 꽃분이네 집 마당앞을 지나가면서 아름다운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것 같더니 보기만 해도 듬직하고 신뢰감을 주는 두툼한 입술을 빙긋 열며 꽃분이 어머니를 향해 한마디 묻는것이였다. “그래 별다른 문제는 없습데까? 솜씨가 서툴어서…” “아유, 어려운 말씀을 다… 금방 사왔을 때와 꼭 같습데다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좋아요?” “은혜라니요. 이웃끼리… 허허 참, 또 다른 문제가 보이면 인츰 알리시오.” “정말 감사해요.” 꽃분이 어머니는 벌써 자기집마당까지 간 허공장장님의 뒤에 대고 연신 허리 굽혀 절을 올리면서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송구스레 앉아있던 아낙네들도 꽃분이 어머니의 정서에 감염되여 경모에 찬 눈길로 허공장장님의 름름한 모습을 숭엄히 바라보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은 집에 들어서자 열이 오른 얼굴을 식히려고 선풍기의 전류꼭지를 누르고 적삼깃으로 부채질하면서 쏘파에 철썩 들어앉았다. “어이쿠!” 뭔가 와싹하는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펄쩍 뛰여일어난 허공장장님은 앉았던 자리를 홱 돌아다보았다. 이런, 거기에는 그가 제일 즐겨피우는 “봉황”표 담배 두보루가 놓여있지 않는가. 물론 금방 너무 요란스레 앉는바람에 포장한 종이가 찢기긴 했어도 그속으로 비쳐나온 노오란 권련은 군침이 꿀꺽 솟게 눈뿌리를 뺐다. (이거 마누라가 헴이 드는 모양이군.) 허공장장님은 슬쩍 담배 한갑을 집어들고 코에다 대고 냄새를 큭큭 맡아보다가 갑을 터치고 한대 집어내여 입에다 꼬나물었다. 노루친 막대도 삼년 우려먹자고 드는 안해에게서 한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적 없는 허공장장님은 오늘 별일이라면서 구수한 담배연기를 힘껏 들이켰다. 저녁상에 마주앉은 허공장장님은 더욱 놀랐다. 반찬거리는 색이 변치 않았지만 전례없이 “불로주” 한병이 목을 빼들고 밥상우에 덩그렇게 올라앉아 있지 않는가. 허공장장님은 힐끔 안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의 귀빠진 날이 아닌가고 속으로 슬그머니 계산도 해보았으나 근본상 달수가 맞지를 않는다. 안해는 알았다는듯이 노르끼레한 눈확주위에 잔주름을 앉히면서 의미있게 웃었다. “아까 꽃분이 어머니가 가져왔댔어요.” “뭐라구?!” 허공장장님은 들었던 술잔을 딱깍 놓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안해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어쩌면 이웃의 례물을 어떻게 받는단말이요. 더구나 꽃분인 허일과 한반 다니는데… 당장 돌려보내오.” “쯧쯧, 눈알이 튕겨나오겠어요. 담배도 갑을 터쳤지 술도 마개를 뽑았지. 인젠 어떻게 되돌려요. 수고하셨다고 가져온건데 받는것도 성의지요.” “뭐, 수고했다구. 흥, 수곤 무슨놈의 오그라질 수고야!” 허공장장님은 기분이 상해 아무 내막도 모르고 받아먹기만 하려는 안해를 외면하고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이라는 체면이 그로 하여금 꽃분이 어머니가 록음기를 들고오는것을 막지 못하게 했던것이다. 수년간 행정사업을 해온 그가 라지오를 알면 얼마나 알고 더구나 록음기를 알면 또 얼마나 알겠는가? 황차 가마공장의 부공장장으로부터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으로 금방 전근되온 그가말이다. 덮개를 뜯고 보았댔자 누먼 중 갈밭에 든것 같았다. 허공장장님은 장님이 개천 나무리듯 여기 저기서 얻어들은 라지오부속품들의 이름을 주어대면서 돈벌이에 눈이 빨개 질량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바탕 기업관리형편을 비판한 다음 눈섭새에 내천자를 누비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거 전자관이 마구 타버린것이 틀림없습니다. 영 벙어리가 된걸 보면. 계기도 없고 부속품도 예비로 둔것이 없으니 저녁에 와보십시오.” 꽃분이 어머니가 가슴이 한줌 되여서 돌아간후 허공장장님은 인차 공장 독신숙소에 전화쳐서 허주활이를 찾았다. 그가 금방 전근되여왔을 때 주활이는 같은 허씨라고 우정 공장장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인사하면서 금후 많이 가르쳐 달라고 하던 낯이 운동장같은 젊은이였다. 공장장님이 장기를 잘 논다는 소문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엊저녁에는 장기판까지 갖춰가지고 공장장님이 퇴근하기를 접수실에서 꼬박 한시간이나 기다렸다면서 찰거마리처럼 달라붙는통에 저녁을 굶어가면서 아홉시까지 백병전을 벌린 일까지 있었다. “여보게 주활이, 엊저녁 결판을 마저 깨지 않으려나?  뭐, 그러겠다고. 좋아, 그럼 우리 집에 오라구. 마침 일요일이라 할일도 별로 없고… 에끼, 어렵긴 뭐가 어렵다고 우는 소리야. 지지리 못나긴… 그럼 인츰 오게나. 저 그리고 올 때말이야, 만능계기를 갖구 오라구. 글쎄 오면 알거니까.” 허공장장은 그제야 “후유ㅡ” 한숨이 새나왔다. 허주활은 1분도 안되여 고장난 곳을 찾아냈다. 나발에 붙은 선에 연물이 적게 발리워서 떨어져있었던것이다. 연물 한방울을 떨구었더니 선은 나발에 착 붙어버렸다. “왕ㅡ” 하고 나발에서 음향이 터져나왔다. 허공장장님은 흥이 난김에 점심을 굶으면서 저녁 4시까지 장기를 들었다. 수고는 허주활이 하고 수고값은 자기가 받아먹자니 어쩐지 가슴이 트릿해났다. 허나 무슨 별수가 있는가 허공장장님은 불로주를 부어놓은 잔을 건뜩 들어 굽을 쭉 냈다. 안해는 해쭉 웃으면서 열무김치 한쪼박을 날렵하게 짚어서 주인의 입에 제꺽 넣어주었다. 어느날 허공장장님의 안해는 요먼저 꽃분이 어머니가 가져왔던 “불로주”를 마지막 반주술로 잔에 꼴똑 부어주면서 좁쌀같은 눈을 쪼프리더니 전에없던 웃음을 웃었다. “여보, 은행집에서 록음기가 고장났다면서 당신이 좀 수고해주길 바라더구만요.” “뭐라구?” 허공장장님의 눈확은 한뽐이나 째져서 보기 망측해졌다. 내가 그걸 수리해? 그런 재간이 있으면 여북 좋게. 저건 여태껏 같이 살았다는게 남편의 재간통이 어디에 가 붙었는지도 모르고있으니 헛데리고 살았지, 에익. “여보, 당신은 여태 아무것도 모르고 납드오. 날 그래 수리쟁이로 만들어놓을 작정이오, 엉?” “여봐요. 누가 당신더러 수리쟁이가 되라고 했나요. 저절로 실컷 소문놓구는 흥!” 이튿날 퇴근해보니 은행집 록음기가 와있었다. 허공장장님은 천둥같은 화가 치밀었으나 울며 겨자먹기였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또 요먼저처럼 허주활이를 불러왔다. 물론 결판을 못낸 장기의 승부를 가르는것이 전제여고 왔던김에 고장난 록음기에 손을 대보라는것이 후제였다. 모든것이 원만히 되여 은행집에서는 이튿날 또 술담배를 가져왔다. 물론 안해가 허공장장님 몰래 슬그머니 받아두었다. 안해는 만면에 꽃이 펴서 더 예뻐보였으나 허공장장님은 하루밤새에 낯에 잠이 폭 돋더니 영감티가 났다. “여보, 다신 이런짓을 말기요. 내가 무선전공장의 공장장이면 뭐 록음기박사인줄 아오. 난 금방 전근됐고 또 행정을 책임진 부공장장이란 말이요.” “아니, 그럼 여태껏 어떻게 수리했게요? 아야, 그럼…” 안해는 불현듯 정신이 든듯 외마디소리를 쳤다. “다 그 장기친구가…” “아니, 그럼 이걸 어쩌나요?” 남의 손을 빈것도 모르고 남편이 언제 그런 재간을 배워뒀을가 하는 희한한 생각에 동네에 다니며 까치배때기같은 소릴 잔뜩 한 안해는 락태상이 되여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머리만 길었지 소견은 짧은지라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가 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겠으니 일이 분망하다는 핑게로 딱 잡아떼오.” 차츰 사람들은 허공장장앞에서 공손히 인사하게 되였다. 물론 허공장장은 아주 겸손하게 처신할줄 알았다. 그런데 요즈음 길 건너편에까지 소문이 가서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에서는 고문으로 그를 초빙하련다는 초청장까지 보내왔다. 물론 허공장장님은 그 일을 절대 접수할수가 없었다. 류비는 세번만에 제갈량을 초가집에서 끌어냈다지만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의 류비제씨들은 여섯번이나 벽돌기와집에 찾아왔으나 초빙해가기는커녕 지금까지도 그토록 현능한 허공장장님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있었다. 안해가 전문적으로 마당에 나서서 허공장장님이 집에 계시지 않는다고 방패를 쳐놓았던것이다. 허공장장님은 무더운 여름밤에도 집에 꾹 박혀있어야 했다. 엊저녁이였다. 아홉시가 넘었는지라 모든 방어태세를 다 낮추고 시름을 활 놓은 허공장장님은 한여름밤의 더위를 막으려고 바깥에 나와서 파초부채질을 슬슬 하면서 바람을 쏘였다. “허공장장님 아니신가요?” 은방울 굴리는듯한 녀인의 고운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파마머리를 곱살하게 내리드리운 어여쁜 처녀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순간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섬찍해났다.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가 피뜩 생각났던것이다. 끝끝내 당하고마는 “체포”, 허공장장님은 머리가 오싹해났다. 국에 덴것이 랭수를 보아도 땀이 돋는가보다. 허공장장님은 급기야 아니라고 도리머리를 치고는 자기집쪽을 가리켰다. “저 집에 가서 찾아보오.” 처녀는 집쪽으로 들어갔고 허공장장님은 집을 멀리 피해 으슥한 곳에 숨었서 그 처녀가 나오기를 꼬박 한시간이나 기다렸다. 후에야 그녀가 허일이네 반주임선생님이였다는것과 그날 여러 집을 방문하다보니 늦게 찾아오게 되였다는 사실을 알고 허파터지게 한바탕 웃긴 했으나 속은 어쩐지 열탕 마신것처럼 썼다. 그럭저럭 뻗치다나니까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에서도 인젠 기권해버리고말았는지 다시 찾지 않아서 허공장장님은 출입을 시름놓고 할수 있었다. 오늘 퇴근할 때 허공장장님은 자전거페달을 스쩍스쩍 밟으면서(허공장장님은 출퇴근을 검박하게 자전거로 한다.) 자기를 그렇게  혼내놓던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앞을 지나오면서 높직이 걸려있는 패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패쪽이 거룩해보였다. 그가 금방 수리부 문앞을 지나쳤는데 눅군가 “허공장장님!”하고 소리쳐불렀다. 피뜩 돌아다보니 홀태바지를 입은 청년남녀가 수리부앞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후두두해났다. 허공장장님은 모르겠다 하고 페달을 힘껏 디디면서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골목길로 해서 자전거를 냅다 몰았다. “허공장장님!” 뒤에서는 계속하여 그를 불렀다. 허공장장님은 그럴수록 기세를 올렸다. 목구멍에서 가죽타는 냄새가 나고 바지가랭이에서는 비파소리가 났다. “아이고… 허공장장님,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그렇게 속도를 냅니까? 기력이 참 좋으십니다그려.” 추격자 역시 헐한 사람이 아니여서 끝끝내 따라잡았던것이다. 허공장장님은 놀라면서 돌아다보니 이웃에 사는 시1중 어문교원 오선생님이였다. 그제야 시름을 활 놓은 허공장장님은 속도를 늦추었다. 아래다리가 후둘후둘해났다. 등골에서는 도랑물이 좔좔 흐르는것 같았다. 이런 꼴사나운 일이라구야. 허공장장님은 그만 사맥이 뚝 떨어지는것 같았다. 그는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면서도 빙그레 웃음을 날려보냈다. “내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오선생은 허공장장님의 소개로 무선전공장에서 일본의 부속품을 가져다 생산하는 천연색텔레비죤을 사게 되였는데 지금 안테나선을 사가지고 오는 길이라면서 구구히 말하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 저녁에 꼭 건너오십시오. 공장장님의 덕분에 시제품을 다 사게 되였는데 와서 맥주도 한잔 할겸 집구경도 할겸 꼭 나오십시오.” “시간이 있는데로…” 허공장장님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저녁에 오선생의 안해가 세번이나 내보내서 허공장장님을 모셔오게 했다. 푸짐히 차려놓은 주안상앞에 다정한 이웃들이 모여앉아 텔레비죤방송시간을 기다리면서 맥주잔을 기울였다. 신호가 나왔다. 칠색단을 드리운것 같은 신호는 눈이 시게 현란했다. 집안은 삽시에 환락으로 끓었다. 절목소개가 끝나고 소식보도가 지나자 이어서 텔레비죤소품이 시작되였다. 손님과 주인은 허물없이 껄껄, 킬킬 웃으면서 즐거운 저녁 한때를 보내고있었다. “효과가 참 좋습니다. 허공장장님, 금년에 귀공장에서 이런 제품을 많이 생산하게 됩니까? 우리도 기회를 보아 하나 들어와야겠는데… 허허허…” 건너집 장씨가 엉뎅이를 들춤질하면서 허공장장님에게 다가앉았다. “그럼요. 이번에 광주에 가서 일본사람들과 교섭했는데 수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참 묘하단말입니다. 이것이 좋거든요.” 허공장장님은 이마를 툭툭 쳤다. “결정권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나라에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내항(전문일군)이 아니고선말입니다.” “아무렴요. 허공장장님같은분이 실무를 책임졌은즉 실수가 있을리 있겠습니까?” “그렇고말고요!” 옆에서 추슬러주자 한잔 들어간 허공장장님은 그만 어깨가 으쓱해났다. “아니, 아니, 나야 언제나 아무것도 아는게 없지요. 저는 행… 칵…칵…” 허공장장은 짐짓 기침질을 하면서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곤 맥주잔을 조심히 상우에 놓으면서 여럿을 둘러보는데 입가엔 늠실늠실 웃음이 파도치고있었다. 오선생은 맥주잔을 도로 허공장장님의 손에 쥐여주면서 히쭉 웃는데 무척 감동된 모양이였다. “허허… 오선생, 정말 이 손끝 세개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답니다. 책임이 크지요.” 허공장장님은 만년필을 쥐였을 때의 자세로 세손가락을 굽혀보였다. “그렇지요. 지도간부들이란 석자이름으로 큰일을 해내니깐요.” “하하하…” “흐흐흐…” 집안은 웃음으로 끓었다. 바로 이때 오색이 령롱하던 화면이 문뜩 새까매졌다. 웃음꽃 피였던 얼굴들은 삽시에 흐려져버렸다. 여럿은 긴장한 기색으로 허공장장님의 얼굴을 한결같이 쳐다보았다. 마치 그 얼굴에서 신비한 힘이 비쳐나와 새까만 화면에 조화로운 색조를 부어넣을수 있기나 한듯이 오로지 허공장장님의 얼굴만 얼이 빠져 쳐다보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섬찍했다. 얼굴에 벼룩이 매달린듯 근질근질해났고 한쪽 입귀는 별스럽게 푸들거렸다. 그는 조심스레 전류꼭지를 몇번 눌러보았다. 아무 효험도 없었다. 누군가 뒤덮개를 열어보자고 했다. 그러나 허공장장님은 손을 홱 내저었다. “그건 절대 안됩니다. 폭발합니다!” 그바람에 오선생의 안해는 쇠꼬챙이를 맞비비는듯한 새된 소리를 질렀고 이웃 손님들은 능구렁이라도 밟은듯이 화닥닥 자리에서 뛰쳐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런게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제야 모두들 안도의 숨을 훌 내쉬였다. 허공장장님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돋은 땀을 문지르곤 눈살을 몇번 쪼프렸다폈다하면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튼 난처한 자리는 피하고 봐야 했다. “이건 꼭 만능계기가 있어야 검사할수 있습니다. 아마 큰 고장은 아닐겁니다. 새거니깐요. 제가 곧 공장에 갔다오겠으니 오기전에 절대 손대지 마십시오.” 점잖은 사람이 떠나겠다는데도 누구 하나 일어나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언녕 그러길 바랐다는 눈치들이였다. 갑자기 바깥에 나섰기때문이여서인지 눈앞이 캄캄해져서 허공장장님은 벽모서리를 더듬어짚고 몇초란 휴식해야 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로 걱정이 구름처럼 일어섰다. 이 밤중에 허주활을 찾아가자니 지난 두번의 일까지 한데 겹쳐지여 자신의 모든것이 다 드러날것 같아 걱정이요, 아니 가자니 안타까이 기다리는 오선생네 일가에 미안하기 그지없었어 걱정이였다. 이럴 때 다른 급한 사정이 생겨서 난처한 장면을 면하고 봤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허공장장님은 오다나니 저도 모르게 공동변소 있는데까지 왔다. 변소안에서 기침질하는 소릴 들으니 녀자변소켠이라 허공장장님은 허둥지둥 남자변소쪽으로 몸을 피했다. “아이쿠!” 허공장장님은 허공을 딛는것 같은 감촉에 외마디소리를 지르고말았다. 그러나 어쩔새 없었다. 잇달아 콩크리크바닥에 딱 하고 턱이 맞쪼이는가 싶더니 뒤골이 떡 하고 부딪쳤다. 숨이 칵 막히고 눈앞에서 불꽃이 팔팔 일어났다. 풀썩 하더니 재가루와 함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발을 잘못 옮겨 그만 재구뎅이에 빠지고말았던것이다. 위생국에 몇번이나 제기하였으나 고쳐주지 않아 지금까지 그럭저럭 쓰고있는 동네 공용재구뎅이였다. 허공장장님은 끙끙 앓음소리를 했다. 그런데 도무지 허리를 펼수가 없었다. 땅에 닿은 다리가 찌륵찌륵 아파나는게 깡깡 얼어붙은 커다란 성에장에라도 집히운듯했다. 허공장장님은 콩크리트로 된 구뎅이벽을 간신히 짚고 서서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는 입술을 꽉 사려물고 참기 어려운 진통을 이겨가면서 구뎅이에서 나오려고 웃모서리를 향해 뻗쳤다. 순간 허공장장님은 몸이 갑자기 허공에 둥둥 뜨는것 같았다. 어쩐지 몹시 홀가분해지는것 같았다. 왜 그럴가? 그렇지, 이걸 핑게로 난 그 장소에 안가도 되니깐. 흐흐흐… 나야 이제 며칠 앓게 되겠는데 날 청하러 오지야 않겠지. 아이구 고맙기루, 하느님이 도와준거로구나. 정말, 잘된 일이야, 잘된 일이구말구! 허공장장님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상처는 크지 않았다. 놀라서 신경이 긴장해진외에 몇곳이 경한 타박상을 받았고 왼쪽 종이뼈가 실금이 갔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며칠 치료한후 집에 나가서 몸조리를 잘하기만 하면 아무런 후유증도 없을거라고 의사는 몇번이고 안심시켜주었다. 이웃에서 련달아 병문안을 왔다. 그들은 저마다 과일즙이며 통졸임, 사탕, 과자를 사오느라고 적지 않은 돈을 팔게 되였다. 그러나 유능한 지도간부가 불행을 당했은즉 몇푼 돈을 아낄 이웃은 또 아닌것이였다. 그날 저녁 한자리에 앉았던 오선생과 그의 처, 그리고 이웃인 장씨도 왔다. “우리때문에 허공장장님이 이렇게 불행을 당하셨습니다. 전 괴로와 죽을 지경입니다.” 오선생 내외간은 눈물이 글썽하여 사과했다. 허공장장님은 온후하고 인품좋게 생긴 둥실한 얼굴에 인자한 웃음을 담고 가장 궁굼한 문제를 물었다. “그래 텔레비죤은 어떻게 됐습니까?” “거…” 오선생은 그만 송구스러워서 무릎만 두손으로 싹싹 문지르면서 처를 바라볼뿐이였다. 그의 처 역시 아궁이앞에 앉았을 때처럼 빨개진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숨이 한줌만해 앉아있었다. “오선생, 근심마십시오. 크게 고장났다면 되물릴수도 있고 아니면 바꿔드릴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오선생은 시무룩히 웃었다. 허공장장은 영문을 알수 없어 여럿을 돌아보았다. “제가 어찌도 재간이 신통한지 글쌔, 이어놓은 전기선에 전기가 통하지 않았던겁니다. 개천에 버릴 위인인겁죠. 히히…” 허공장장님은 무슨 말인지 리해가 서지 않아서 띠룩띠룩 눈알만 굴렸다. “남들이 못쓴다고 줴뿌린걸 어느땐가 제가 주어들였댔어요. 그것을 저이가… 후ㅡ돈을 좀 아끼자 하다가 곤욕을…” 그 말에 저마다 제마끔의 웃음을 킬킬, 껄껄 웃었다. 허공장장님은 따라 웃긴 했으나 허무해지는 심정을 어쩔수 없었다. 그들이 돌아간후 허공장장 내외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여보, 우리 또 이사해야겠소.” “왜요? 여북 좋은 이웃인가요. 옛말에도 세잎 주고 집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 했는데 이좋은 이웃 두고 이사가긴 어데 간다고 그래요.” “이웃이야 좋구말구.” “그런데 왜요?” “글쎄 살아가자면…”   1986년《천지》제11기
235    [소설]노다지타령(김철호) 댓글:  조회:1708  추천:12  2009-05-13
단편소설 노다지타령 ㅡ생태균형록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하복씨는 자기의 생활주제곡 “노다지타령”에 맞춰 어깨를 들썽거렸다. 또 무슨 수가 난 모양이였다. “히히… 여보, 마누라!” 남편의 호출에 설씨는 제꺽 중간문을 건너 매대를 벌려놓은 건너칸으로 넘어왔다. 하복씨는 병신모양으로 눈을 찔끔거리면서 안해를 향해 손마선질했다. “마누라 이걸 좀 보라니까.” “이게‘모태주’가 아닌가요?” 설씨는 혀를 끌끌 차면서 남편곁에 다가섰다. 글씨는 몰라도 눈썰미가 빠른 설씨는 남편이 들어보이는 금칠을 먹인 포장곽을 보고 해시시 웃었다. 인젠 눈에 익어 명표술담배는 제꺽제꺽 알아본다. “오랑액”이요, “분주”요, “량우”요… 그런것들은 벌써 포장부터가 눈에 환하게 안겨온다. “흐흐… 또 건너왔군요.” 설씨의 눈초리에서 웃음이 똑똑 떨어졌다. “벌써 열세번째라니까. 여기 이 연필로 찍어놓은 자릴 보오.” 하복씨는 “모태주”엉뎅이를 들어보이며 또 그 병신스런 웃음을 날렸다. “에이구. 돌돌이두 잘 한다. 자꾸 돌돌이해 되돌아오니 저 량반 입이 째지지. 그러다 개구리사촌되겠어요.” “쯧쯧 이게 자꾸 돌아야 우리 집에 하복(下福)하지. 보오. 접때 임자가 이 집을 팔자구 할 때 내 뭐랍데…” “에이구, 어쩌다 큰 똥 하나 뀌여놓곤 두구두구 우쭐하긴…” 하복씨는 안해에게 악의없이 눈알을 딜딜 굴려놓고는 닭알광주리나 다루듯이 손을 놀려 “모태주”를 매대밑에 감춰놓았다. “참, 요놈 한병에 250원이라지. 그래두 없어서 못사는판이니… 흥, 돈들두 썩었지.” “당신은 들어가서 저녁이나 자시고 나오세요. 그동안 매대는 내가 볼게.” 설씨는 남편의 흥을 깨칠세라 조심스레 아뢰였다. “응… 그럼 오늘저녁에 좀 갈증을 말려본다.” “병맥주 한병 터쳐요.” “그만둬. 그래두 근들이가 좋단말이요. 병들이는 손님을 위해 봉사하게 하구. 제길, 그게 아니믄 쇠통 문턱두 안넘어선단말이야. 똑같은 소오줌물인데두…” “에이구, 하나 터쳐요.” “쯧쯧, 위인민복무를 모르오.” “에이구, 쇠깍쟁이!” 그러건말건 하복씨는 비닐맥주잔에 근들이맥주를 떠들고 건너문을 넘어서며 흥얼댔다.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이곳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거북등처럼 키낮은 집들이 어깨를 비집고 들어앉아있던 주택구였다. 더럽고 어지럽고 좁고 분주한 골목길가에 그래도 상점 몇집이 간판을 내걸고있어서 골목몰골이 이루어졌지만 비오는 날이면 차라리 양돈장이라고 해야 격에 맞아보였다. 걸죽한 진탕이 골목길에서 이리저리 밀밀 밀려다니면서 문턱이 낮은 집들에 침입하여 사처에서 아우성소리가 터지는가 하면 성미급한 량반이 철렁거리고 지나가면서 옆사람에게 진탕을 갈겨놓아 욕설이 불꽃튕기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녀편네없인 살아도 장화없인 못산다는 골목으로 시가지판에 악명이 자자했다. 어느때부터인지는 모르나 이곳에다 새 층집을 짓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복씨는 복떨어지길 눈빠지게 기다렸다. 이주(動遷)뀀에 들기만 앉은자리에서 돈벌고 나앉을판이 되겠으니말이다. 그렇게 되면 몇해채 모은 돈에다 이주비까지 합쳐서 네거리에 나가 괜찮은 집 한채를 살수 있잖은가. 전민상업의 길에서 이 하복이의 만만찮은 솜씨를 한번 펼쳐보이리라. 하복씨는 궁리할수록 어깨가 으쓱해났다. 아닌게 아니라 이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시정부 제씨들이 매미차에 앉아 몇번 왔다갔다 하더니만 뒤따라 측량기를 멘 사람들이 빨간 기발, 파란 기발을 이쪽저쪽에 꽂으면서 올리뛰고 내리뛰고 했다. 잇따라 이주동원을 하고 집값을 흥정하느라 야단이였다. 이사짐을 나르는 자동차, 밀차, 손잡이뜨락또르들이 해종일 부릉부릉, 힝힝, 토토토토거렸다. 그런데 “하복상점”앞길까지 금을 긋고 그뒤 한줄은 다치지 않았다. 천재가 아닌 하복씨는 코앞에 닥친 불행으로 하여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는지 모른다. 이제 남향으로 고층건물이 일어서면 자기네 집은 음달에 들건 물론이려니와 현대주택구와 빈밀굴사이에 끼인 꼬락서니가 통 오리밑구멍에 달린 똥달개신세가 될판이 아닌가! 하복씨는 망했다고 가슴팍을 두들겨팼다. 속도전의 불바람을 일으켜 새 층집은 여섯달 보름만에 출태하여 소소리높이 하늘을 치받고 솟았다. 얼마후 하복상점앞으로부터 저쪽 대통로까지 콩크리트길이 네각을 쭉 뻗고 드러누었다. 알고보니 새 아빠트는 시정부의 주택이였다. 남향으로 키를 돋구고 선 시정부아빠트의 그늘밑에 그러잖아도 꼴불견인 “하복상점”은 거인앞에 선 곱새같아 보여 하복씨는 어금이가 갈려졌다. 손님아라는건 가물에 콩싹이였다. 이런판에 간판이라도 큼직하게 해달아보자! 하복씨는 2백원 돈을 던져버리고 집채만큼한 새 간판을 만들어 내걸었다. 그즈음 안해 설씨는 재수 옴붙은 고장을 떠나버리자고 남편과 몇차례 설전까지 치렀었다. 그때마다 하복씨는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 엉뎅이에 썩살이 배기도록 버티고앉아서 자릴 안뜬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손님들이 차츰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낙네들은 멀리 네거리까지 나가기 싫어서 “하복상점”문고리를 당겼다. 애들도 코묻은 돈을 쥐고 곧잘 뛰여들었다. 어찌하다 통이 큰 손님들이 찾아드는 때도 있었다. 와서는 무슨 “‘삼오패’권연이 없소?”, “무슨 술이 없소?”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술담배이름을 들이댄다. (있긴 개뿔 있어! 이 어르신님은 여태 그런걸 그림자두 못봤어!) 하복씨는 속으로는 이렇게 욕해대면서도 곁으론 웃음을 살살 발라대면서 작은 상점이여서 팔리지 않을가봐 “고급상품”을 갖추지 못했노라고 두손을 비비며 량해를 구했다. 그런데 그런 손님들가운데는 단골손님은 없고 언제봐도 거개가 낯선 손님이라는것이 하복씨의 흥미를 무척 끌었다. 어떤 손님은 상점에 들어와서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면서 상점안을 할깃할깃 참빗질 얼레빗질 해보다가도 “아무것도 없군” 하면서 업수여기는 눈길을 찔갈기고는 힝하니 나가버렸다. 그럴 때마다 하복씨는 속으로는 “별 강아지 무엇같은것들!” 하고 욕해댔지만 곁으론 잊지 않고 “또 오시우다”하고 입치례를 했다. 후에야 하복씨는 그 무슨 기미를 알아차렸다. 사자던 물품이 없어 손님이 썩썩 머리를 긁적거리면 하복씨도 잇달아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하복씨는 머리를 썩썩 긁던 손님들이 한숨을 훌 내쉬면서 푸른 하늘이 낮노라고 코대를 잔뜩 쳐들고 으리으리해 서있는 길건너 아빠트를 창너머로 건너다볼 때마다 이상야릇한 무엇을 느끼군 했다. 그러던것이 햇병아리가 껍데기를 까고 머리를 내밀듯 무엇인가 터득해냈다. 찾아드는 손님들은 모두가 “특수사명”을 갖고있는 사람들이였다. 그러니 이 하복상점의 경영방침도 고쳐져야 할게 아닌가? 하복씨는 무릎을 탁 쳤다. 이튿날, “하복상점”은 종일 문을 열지 않았다. 하복씨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훑었다. 친구를 만나 뒤문을 찾고 돈을 먹이고 마음을 팔고사면서 “오량액” 세명에 “모태주” 한병, “삼오패”권련 한상자, “중화패”권련 두상자, “아스마”권련 한상자를 획득해가지고 힘차고 기세높이 “노다지타령”을 부르면서 귀가했다. 상품은 불이 펄 나게 팔렸다. “오랑액”은20원씩 더 붙였는데도 군말없이 사갔고 “모태주”는 자그만치 50원이나 더 붙였지만 오히려 감지덕지해서 거스름돈 5원은 받지도 않고 달아나버렸다. 마치 누가 빼앗기라도 할듯이 꼭 부둥켜안고 가는 꼴이 우숩광스럽기까지 했다. 며칠새에 4상자의 고급권련도 거덜이 나고말았다. 하복씨는 다시 엉덩짝에 마파람을 일궜다. 그래도 언제나 공급이 수요와 어깨를 같이 할수 없었다. 골머리를 앓는판에 하루는 웬 젊은 각시가 상점을 찾아왔다. 면목이 꽤 서먹서먹한 녀자였다. “어서 들어오쉬우다.” 하복씨는 병신스러운 웃음을 날리며 례절스레 녀손님을 맞았다. 그새 상점안을 좀 현대화해놓아서 웬간한 손님앞에선 목대를 쳐드는 하복씨였다. “참, 이 상점에 뭐 없는게 없구만요. 깨끗두 하구…” 젊은 녀인은 오금을 녹일듯한 웃음을 선물하면서 별로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다가섰다. “헤헤… 뭘요.” 하복씨는 웬일인지 좀 어깨가 처짐을 느꼈다. 그는 면구스레 녀인을 바라보았다. 짙은 향기가 꽃밭인양 풍겨왔다. 요염하게는 화장하지 않았는데 어데서 풍겨오는 향내인지 견딜수 없는 자극을 연해연방 주었다. 말쑥하고 깨끗한 얼굴은 토들감자같은 자기 녀편네의 얼굴짝과 비하면 상아와 두꺼비랄가. 제길할. 이제 백만장자가 되는 날이면 재미를 실컷 볼테다. 그러면 저 등신같은 년편네가 지랄이나서 앙탈쓸거야. 히히히… “저, 여보세요.” “엉… 예.” 꿈속에서 소스라친 하복씨는 입가에 매달린 침방울을 조심스레 닦으면서 의연히 아까의 그 송그스러운 태도로 미녀를 바라보았다. 녀인의 얼굴엔 별스러운 홍조가 떠올라있었다. “저, 이 상점에서‘모태주’두병 사지 않으려는지요?” “아이참, 딱 한병밖에 없는데 그나마 값이 좀…” 하복씨는 녀인의 말을 풀이 못하고 제좋은 생각을 하면서 매대밑에다 숨겨놓은 “모태주”를 끄집어내려고 하였다. “아니, 사려는게 아니라…” “그럼유?” “저한테 두병쯤 있는데 지금은 쓸모가 없구 또 집에다 적치해둘 필요두 없구 해서… 이 상점에서 혹시…” “아… 아… 알만합네다요. 헤헤… 그럼 얼마에유?” 하복씨는 점점 붉어지는 녀인의 탐스러운 얼굴을 맘껏 눈요기를 하였다. “지금 그런게 한병에 얼마씩이나…” 하복씨의 장사골이 대뜸 팽 돌았다. “2백원쯤 하면…” “그럼 180원에 넘겨가지세요.” “헤헤… 170원에 넘겨주세유.” “그럼… 10원쯤이야뭐.” 녀인은 들고왔던 들가방속에서 술병을 조심스레 끄집어내여 매대우에 올려놓았다. 틀림없는 진품이였다. 세상에 이런 복이 어데 있는가?  두병이면 순리윤이 백원도 넘어될게 아닌가. 하복씨가 넘겨주는 돈을 돈지갑에 찔러넣고 곱게 눈인사를 날리며 나가는 미녀를 점도록 바라보던 하복씨는 불현듯 집안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마누라!” 설씨는 나오면서 하품질을 짜악 했다. “아니, 이게 모… 모태…” “에익, 반벙어리상을 하면서… 이렇게 생겨먹은건‘모태주’라라고 하잖습데.” “그래, 고게 정말‘모태주’구만유. 어데서?” “저절루, 쉿!” 하복씨는 큰 비밀이라도 말하듯이 주의를 일으켜놓고는 안해의 귀에다 대고 쏙닥거렸다. “어떤 반편이… 히히… 곱게는 생겼더구만… 허허… 글쎄 이걸… 170원에 넘겨주구… 히히… 냅다뺐단말이요.” “누구게유? 이게 그래 진짜 옳아유?” “이런 등신을… 진짜가 아니믄 뭐 이 하복이가 동네집계집에게 속히울 둔재로 보여?” “호호… 그거야 그렇잖구유. 그런데 그녀가 누구게?” “알게 뭐야! 저기 시정부아빠트 중가문으루 들어가는걸 보아 아마 무슨 처장의 마나님쯤 되겠지. 히히…” 하복씨는 그녀인의 아름답고 인상좋던 얼굴을 그려보면서 연신 히히 웃어댔다. 물론 하복씨는 “모태주” 두병으로 100원에 꼬리가 붙은 순수입을 올렸다. 그후에도 그 녀인이 몇번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물품을 사러오는것이 아니라 고급술이나 고급담배같은것을 팔러 오군 했다. 참, 별일이지. 그후에 그런 녀인이 더 나타났다. 리유라면 자기네 집에는 그런게 필요없다는것이였다. 남편이 담배를 안피운다거니 술을 뗐다거니… 하복씨는 그런 “리유”에는 귀가 솔깃해지지 않고 그저 그 고급물품들에만 눈길이 쏠렸다. 얼마 안되여 “하복상점”엔 고급물품들이 제법 구전해졌다. 이젠 사자던 물품이 없어 한숨쉬며 머리를 긁는 손님도 별반 없었다. 하복씨는 열이 올라서 종적으로 횡적으로 다리를 놓고 나래를 펴면서 상품경제의 새 길을 탐구했다. 하복씨는 상품회수대상자의 사회적위치를 알아내는것을 첫 과업으로 내세웠다. “설계도”가 그려졌다. 시정부아빠트의 1층은 거개가 과장동지들이 차지하고 계셨고 2층은 부시장, 부장님들이 차지하고 계셨고 3층부터는 과원동무들과 각종 잡동사니 형제들이 보금자리를 틀고있었다. 방구조도 물론 달랐다. 120평방메터로부터 45평방메터까지 각양각색이였다. 하복씨의 “설계도”에는 몇층몇호는 xx과장동지, xx부장동지, xx처장동지, xx부시장동지… 라는것이 깨알처럼 적혀있었다. 그래서 손님이 와서 물건을 사들고 어느 현관으로 들어가는것만 보아도 어느 국장네 집, 혹은 어느 처장네 집으로 들어가는구나 하는것을 빤히 보아낼수 있었다. 두번째 과업으로는 탐문이였다. 탐문은 대개 낮에 한다. “그런 집”들을 찾아다니면서 처리할 물품이 없는가고 묻는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으나  차츰 낯이 익고보니 그것도 별일이 아니였다. 고급술, 고급과자, 고급사탕, 고급권련, 고급… 좌우간 고급무엇이 그런 집들에는 너무 많이 쌓여서 문제였다. 자칫하면 쓰레기통에 들어갈판이였다. 그러니 문앞까지 찾아와서 처리해주겠다는것을 마다할리 없었다. 흥정은 물품을 보고 정했다. 곽에 좀 손실이 간것이 있으면 값이 뚝 떨어졌다. 미관이 첫째이니까. 아무리 높이 주어도 본값보다 20ㅡ30%씩 낮춘다. 세상에 이런 장사가 어데 있는가? 어디에 가서 도매해오기보다 몇곱절 나은판이니말이다. “설계도”가 있으니 손님을 위해 봉사하기도 좋았다. 어떤 어리숙한 사람들은 앞문에서 쫓겨와 뒤문으로 찾아왔는데 어느 문이 제문인지 몰라 이마에 근심을 한보자기 달고서 높다란 시정부사택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그럴 때면 하복씨는 그 사람옆에 다가서서 히물히물 웃는다. 웃음으로 먼저 인심을 슬쩍 사놓고는 잇달아 “정보”를 제공해준다. “저… 어는 처장동지네 집을 찾는거나 아닌지요?” “아… 아니…” 도적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런 일에 처음인 사람이기에 일반적으로 통이 그닥 크지 않다. “그렇다니까. xx처의 xx네 집을 찾아야겠는데 통 소경이 갈밭에 든 격이군그래. 당신 아마 잘 알겠지?” 입심좋게 이쯔음을 말씀하시는분들은 이런 일에 썩살이 박힐대로 박힌분들이여서 통이 여간만 크지 않다. 사람에 따라 물건값이 오를수도 내릴수도 있고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는 이것이 하복씨의 새로운 상업경영예술이다. “그 집이 저기 저 문으로 들어가 저 2층 오른쪽입지요.” “오, 그럽습니까? 그럼 거저는 못들어가구… 좀 뭘…” “그 량반은 얼굴 한번 붉혀가지구 다니는 일 없잖구 뭡니까? 그저 손가락새에다 하루종일 불을 때면서 다닙지요. 헤헤… 그것두 말짱‘삼오’를 태워주는데 참, 어르신님이 높은 자리에 계시니 입두 높으신거죠. 헤헤…” “음… 그러시우.” 손님은 매대우를 뚜릿뚜릿 살핀다. “뭘 찾습니까?” “글쎄 빈손으로야 어떻게… 그런데 어째 보이질 않군요.” “헤헤… 그런게 어데 있습니까?” “그럼 어쩐다.” “여기 몇보루 있긴 있는데… 사실은 높은 가격으로 가져와놔서…” “얼맙니까?” 하복씨는 문밖을 힐끔 넘어다보고는 세손가락을 펴보인다 손님은 뭉치돈을 매대우에 팽개치고는 하복씨가 넘겨주는 담배보루를 가방안에 밀어넣고는 굽석 인사하고 나갔다. “히히히…” 하복씨는 이마의 잔주름을 식지로 쪽쪽 펴대면서 금방 나간 손님을 창너머로 내다보면서 실컷 비웃었다. 사실은 손님이 찾아가는 그집 주인량반은 담배를 안피우는 “고상한”분이였다. 그러니 이튿날 아니면 사흗날이면 그 담배보루가 도로 하복씨의 매대밑으로 되돌아올수 밖에 없는것이다. 세상에 별 묘한 노릇도 다 있지. 요런것을 생태균형이라 하는게 아닐가. 장사가 아무리 팔고사는 짓이라 해도 요런 장사놀음 세상에 어데 또 있으랴. 이것이야말로 진짜 하복식장사인것이다. 팔고 팔아버린것을 도로 문전에 가서 사들이고 혹은 안주인들이 들고와서 팔아버리고… 세상에! 팔자치고 나앉은 팔자는 이 하복뿐인가 싶다. 어느때부턴가 하복씨는 재미있는 궁리를 하나 해냈다. 즉 물품을 팔때마다 그 물품에 살그머니 표기를 해둔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 연필로 알릴듯말듯 점을 찍어놓거나 체크를 해놓는다. 그래서 자기한테서 사간 물품이 몇번이나 돌돌이를 하는가를 보았다. 어떤것은 세차례 또 어떤것은 일곱차례… 이렇게 돌돌이를 하는데 참 재미있었다. 그러는 동안 곁에 씌였던 비닐종이가  해여져서 하복씨가 솜씨를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새 비닐종이를 얻어다가 잔재간을 살짝 피워놓기만 하면 물품이 새것으로 제꺽 둔갑한다. 얼마나 재미있는 놀음이가. 달마다 초하루날이 있듯이 물품이  되돌아오는 날이 꼭 있었다. 오늘도 “모태주”가 되돌아왔던것이다. 그것도 열세번째로… 기록이였다. 하복씨는 웃음통이 흔들흔들 했다.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하복씨는 자기의 생활주제곡 “노다지타령”을 흥얼대면서 사이문으로 건너왔다. “여보, 인젠 들어가서 거두매(설거지)나 하오. 덕분에 껄… 코구멍으로 생맥주냄새가 물씬 풍겨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여보세유.” 설씨는 남편이 나타나자 기다렸다는듯이 해쭉 웃었다. “그게 또 팔려갔어유.” “양, 어느게…” “그 열세번째 건너왔던‘모태주’…” “정말이요?” “참, 당신의 날벼락을 맞자구 거짓말 하겠슈. 이번엔 저 맨마지막현관문으루 들어가는걸 보아 아마 인사처…” “쉿, 누가 듣겠소. 그 사람들의 일을 우리가 비밀로 지켜주어야 한다니까. 그래 밑바닥에 표해놓았소?” “아불싸!” 설씨는 울상이 되였다. 하복씨는 큰일이나 저지른것처럼 안해를 찔 흘려보았다. “명심하라는데두.” “다음부턴 꼭…” “음, 그러니 또 순수입이 50원에 꼬리가 달릴판이로구나!” “쉿, 손님이 와유.” 문이 열리더니 손님이 들어왔다. 낯선 손님이였다. 하복씨는 사람좋게 히쭉 웃으면서 손님을 맞았다. “뭘 요구합니까?” “좀 좋은 술과 담배를…” 손님은 명표술과 명표권련을 한아름 안고 기분이 좋아서 나갔다. “또 오세유.” 하복씨는 어깨를 들썽했다.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하복씨는 자기의 생활주제곡을 부르면서 다시 손님인지 로획물인지를 기다리고있었다.   1990. 3. 28. 열길에서   1990년 6월 16일 흑룡강신문 제3면 “진달래”부간
234    [시]장군묘(남영전) 댓글:  조회:1297  추천:18  2009-04-14
끌날 같은 장사들의 힘쓰기로다 하늘땅 뒤흔드는 입장단소리 밀어라 어영차 당겨라 어영차 삼복철 진땀에 삶아진 바위 마음 속 향불에 굳어진 바위 힘과 지혜로 다듬어낸 바위 산과 인간에 잉태된 암중왕이다 밀어라 어영차 당겨라 어영차 하늘땅 뒤흔드는 입장단소리 끌날 같은 장사들의 힘쓰기로다 끌날 같은 장사들의 힘쓰기로다 하늘땅 뒤흔드는 입장단소리 밀어라 어영차 당겨라 어영차 얼음길 깔며 영 너머 골 지나 서기 어린 명당자리 찾아서 믿음과 소망으로 의지와 담략으로 한층 또 한층 쌓아올리자 불사혼의 높이를 쌓아올리자 밀어라 어영차 당겨라 어영차 하늘땅 뒤흔드는 입장단소리 끌날 같은 장사들의 힘쓰기로다 어제날의 그 소리 들려오는 듯 어제날의 그 광경 보여오는 듯 어찌하랴, 세원은 까마득하여 옛날의 그분들 보이지 않고 옛날의 그 모습 보이지 않고 외로운 경탄만 홀로 남아 황금빛 광휘가 찬연하여라.
233    [시]국내성(남영전) 댓글:  조회:1213  추천:19  2009-04-14
황성옛터에 흙모래 씻겨가고 누각은 무너졌구나 푸른 벽돌 붉은 기와장 여기 저기 잡초에 묻혀있고 나그네 집 주춧돌도 신음하누나 그 옛날 초연은 꽃구름으로 비껴오고 그 옛날 피보라 봄바람으로 스치이네 살벌한 전화의 이갸긴 먼 기억속에 아련할 뿐… 옛성과 맥풀린 손바닥우에 지금은 레루와 철교 아빠트들 즐비하여라 무거운 력사의 한갈피 부여잡고 바라볼수록 생각할수록 무너진 국내성 옛터에 가냘픈 나팔꽃 분홍치마 주름마다 붉은 이슬 머금누나.  
232    [소설]의자(김철호) 댓글:  조회:1409  추천:16  2009-04-14
리직려행을 떠났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이 달포만에 돌아왔다. 그간 해변가 모래밭에서 피부를 그슬린 탓에 벌거우리해진 얼굴에 퍼그나 젊은 기운이 돌았다. 아직은 능히 지도직책을 더 맡을수 있는데도 빌어먹을 나이때문에 물러서잖으면 안되게 됐던 그다. 능력이 있으면 3, 5년을 더 책임지울수 있다는 문건이 있는데도 기어이 자리를 내라는 통에 훌쩍 리직휴양려행단 행렬에 끼이고말았던것이다. “여보, 내가 왔소!” 울안에 들어서자 마국철이 소리쳤다. 혼자의 목소리가 쩌ㅡ엉 울릴뿐 대답이 없다. 성큼 퇴마루에 올라서면서 마령감은 타고난 색스폰소리같은 목청을 터쳤다. “여ㅡ보ㅡ오!” 그래도 잠잠하다. “이게 어데 가 뒈진게 아니야!” 색스폰소리는 고음 쏘까지 올라갔다. “애개개…” 어디선가 로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객실문이 여닫기는 소리, 정주 미닫이가 드륵ㅡ열리는 소리가 분주히 들리는가싶더니 현관문이 펄쩍 열린다. 키작은 로친의 양파대가리같은 머리가 불쑥 튕겨져나왔다. “왔어유?” 함박 웃음을 오르라문 얼굴에 겁기가 좀 서린 비굴함이 살짝 발려있었다. “퉤!” 아까부터 혀끝으로 뚜져내다 못뚜져내서 애나 죽을것 같던 고기찌기가 금방 빠져나왔다. 괘씸한 그 고기찌기를 탁 뱉아버리는 순간, 에익 시원하기만 했다. 로친은 낯을 찡그리면서도 웃음만은 그냥 발라둔채 령감 손에서 퍼그나 무거워보이는 크렁크를 받아쥐였다. 그리고는 옆으로 몸을 탈면서 령감이 들어가게끔 쯤을 내주었다. 현관문을 가로타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머리를 돌리면서 로친께 부탁의 말씀을 올렸다. “트렁크를 조심하오. 마사질게 있소.” “뭔데유?” “글쎄 그런게 있어!” 그러고는 성큼 문턱을 넘어섰다. 그런데 아불싸! 뒤따르던 로친의 얼굴이 그만 새파랗게 질린다. 마령감이 무릎노리를 붙들면서 그자리에 폴싹 물앚고있었던것이다. 댕댕하게 켕긴 얼굴은 파랗다못해 까맣게 색이 죽어간다. 이마의 퍼런 힘줄은 푸들푸들 뛰고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풍이 오는게 아닌가? 로친은 트렁크를 덜렁 놓으면서(주의를 준걸 깜박 잊고) 령감께 다가갔다. “왜 이래유? 갑자기…” “으흐흥… 아이쿠…” 마령감이 연신 무릎노리를 주물러대면서 서슬이 돋친 눈을 험악하게 지릅뜨고 오만상을 찡그린다. “아파… 아파… 뒈질… 이건… 아이쿠…” “참, 령감님두, 눈은 보라는겁지 뭐 띠꼬리에 지르구 다니라구 뚫어진겐줄 알아유.” “아이쿠… 이건 갑자기 어데서 나진 물건짝이야?” “호호… 순철, 그 사람이, 아니 그 김국장어른이 가져온거예유.” “그 자식은 왜 이따위걸 가져왔대?” “볕쬐임이랑 할 때 베란다에다 내다놓고 앉으면 좋다더구만유.” “좋긴 뭐가 좋아. 정 생각해줄려면 차라리 흔들의자나 가져올게지. 더럽게…” “그렇게 생각했다가 괜뒀다더구만유. 베란다가 그닥 크잖지 또 령감은 사무실에서랑 언제나 까딱않고 앉아 사무를 보는 습관이랑 있다면서유. 그래서 이렇게 네발이 든든한 의자를 손수 만들어온게라누만유.” “뭐, 손수?”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자기 무릎을 쳐놓은(사실은 자기가 박았지만) 장본인ㅡ꽤나 그럴듯하게 만들어져보이는 의자를 아니꼽게 보면서 간신히 허리를 폈다. 숨이 좀 돌아서는 모양이다. “자식, 국장자리에 올려놨더니 할일 없는 모양이지. 이따위걸 다 만드는걸 보니. 다들 눈이 멀었지. 나두 멀구… 쯧쯧… 그런데 그자식 언제 이런 재간을 익혀뒀나?” “순철이… 아니, 김국장, 그 어른네 집의 가구는 말짱 손수 만든거라더구만유. 대학 두개씩 나오면서 어느새 배워둔 재간인지 참 능력있는 사람이라니깐유.” “자식, 부국장질 합네 하면서 전문 못된 짓만 해댔군. 뒈질…” 마령감은 덩그렇게 놓여져있는 의자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무릎이 아직도 새큼해나는 모양, 한손으로 계속 주물러댄다. “이게 견딜가?” 찔끔 로친을 쏘아본다. “참나무로 만들었다던데유.” 령감의 우람진 체구를 바라보며 로친이 힐끔 눈길을 던진다. 마령감은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의자레 털썩 실었다. 삐꺽, 어데선가 들리는 의자의 신음소리다. 그는 엉뎅이를 이리 움찔 저리 움찔해보았다. 삐꺽소리가 다시 없었다. 틀림없이 소리가 난것 같은데… 머리를 수그리면서 자꾸 엉뎅이를 비탈아보았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금방 무슨 소릴 못들었소?” “글쎄유.” 마령감은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자꾸 들었다놨다 하면서 신경질을 부렸다. 꼭 못쓰게 만들어야 시름을 놓을 잡도리 같다. “여보쉬, 그게 쇠붙이루 만들었대두 못배기겠어유. 그렇게 둔중한 몸집으로 조겨대면 돼유?” 마령감은 눈을 흘기면서 로친의 양파대가리같은 동그란 얼굴에 박힌 좀 불룩 튕겨나온 밉상한 눈을 쏘아보다가 벌떡 일어나 객실로 들어갔다. … 오전나절의 해볕은 참 좋았다. 쨍하니 쏟아지는 해볕이래도 아직은 독기가 오르잖아 볕쪼임하기가 안성맞춤이다. 마령감은 달포가량 해변가에서 이런 해볕보신을 단단히 한탓에 그새 퍼그나 허리통에 힘감각이 커보였다. 마령감은 베란다에 나서서 쏟아져내리는 해볕을 맘껏 쏘이면서 태권도도 아니요 무술동작도 아닌 즉흥적인 동작ㅡ주먹질, 발길질, 머리질을 해대다가 갑자기 기능잃은 기계사람마냥 허공을 긋던 주먹질을 그대로 둔채 굳어져버렸다. “저, 여보!” “예ㅡ에” 로친의 목소리를 듣고야 동작을 풀면서 머리를 돌린다. “거, 의자를 들어오오. 베란다에 놓고 해볕쪼임이랑 하라고 우리 그 김국장어른님이 만들어왔다는 그걸말이오. 나 좀 앉아 보게스리.” “무거운걸 내가 어떻게…” 로친의 짜증섞인 말이다. “그것 하나 못들 주제면 서산에 가 등록하고말거지 숨통은 왜 품고다녀.” 마령감은 눈을 지릅뜨고 방안을 노려보면서 씹어삼킬듯이 이발을 악문다. “당장 못들어올가!” “예ㅡ에.” 로친의 천만 주눅이 든 목청이다. 키작은 로친이 양파대가리같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간신히 의자를 들어왔다. 문턱을 몇개 넘느라고 무척 힘겨웠던 모양, 주름이 쪼골쪼골 패인 이마에 땀방울이 뾰족뾰족 내돋혔다.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의자를 닁큼 받아서 쾅 소리나게 콩크리트바닥의 베란다에 놓았다. 그리고는 또 그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의자에 쾅하고 놓았다. 잠시 만족스러운 표정이 흘렀다. 한달전 마국장답다. 위엄도 있고 자태도 의젓하다. “떨그럭…” (엉?) 마령감은 자취소리 들은 토끼마냥 눈을 휘둥그래 뜨고 귀를 벌쭉 강구었다. “금방 떨그럭 하는 소릴 들었지?” 마령감은 다시 힘껏 엉뎅이질해댔다. “떨그럭, 떨그럭…” 확실히 소리가 났다. 로친은 아첨기가 함빡 발린 웃음을 날리면서 금덩이가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은듯이 령감 보고 좋아했다. 마령감은 눈살을 치키면서 음흉하게 웃는다. 눈에서는 적의의 빛까지 번뜩거렸다. “떨끄럭, 떨그럭…”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흔들 때마다 그 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이렇단말이오. 편안히 해볕쪼임을 하라고 손수 만들어왔다는 의자가 이렇게 떨그럭대니 편안할수가 있소?” 의자에서 내린 마령감은 다시 두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거머쥐고 마구 흔들어댔다. 떨그럭소리가 분주하다. 머리를 수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의자를 흔들던 마령감의 입귀가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눈꼬리에 다가가 붙는다. “의자다리가… 하하… 의자다리가…” “의자다리가 왜요?” “짝짝이란말이요. 여보, 사람도 한쪽 다리가 길고 한쪽 다리가 짧으면 어떻게 서있게 되는지 알겠지? 또 걸을 때면 어떤 꼬락서니니라는것두말이요?” “그게사 삐뚤스레 서있게 되고 걸을 때면 뻐꾹, 뻐꾹…” 로친은 제법 절름발이상까지 해보였다. “하하하…” 마령감은 못참겠다는듯 웃음보를 터뜨렸다. 남들의 병집을 뚱겨주고 쩔쩔매는 꼴을 볼 때마다 잘 웃던 그런 호걸찬 웃음을 껄껄 웃었다. “이런 주제에 뭐 의자를 만들어 선물한다구. 흥, 무슨 일이나 이따위로 어설프단말이요. 난 의자를 만들라면 이렇게 만들진 않겠소.” “당신, 톱질 한가락 할줄 알던가요, 못질 한망치 할줄 알던가요? 목수일엔 숙맥이면서두 흰소린…” “뭐야, 안하니 그렇지, 한다면 그렇다는거야. 잔말말구, 냉큼 톱을 가져와!” “톱은 왜서유?” “이 다리갱일… 저기 저 긴쪽을 좀 잘라버려야겠어.” “당신 되겠어유?” “이런… 어서 못가져오겠어!” “에ㅡ에” 양파대가리가 깜쪽같이 집안으로 사라져 들어가더니 또 깜쪽같이 나타났다. 조금후 녹쓴 톱 한자루가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의 손에 쥐여졌다. 로지심이 금방 벼린 선장을 손에 들고 우쭐대면서 득의에 차서 히쭉 웃던 때보다 더 양양해서 녹쓴 톱을 흔들어댄다. 무릎을 꿇고 엎딘 마령감은 머리를 콩크리트바닥에 착 붙이고 한쪽 눈을 지긋이 감고 역사하다가 콩크리트바닥과 의자다리 시이에 손톱눈의 4분의 1 되나마나한 쯤사리가 있는것을 발견했다. 연필꽁다리로 길다고 보여지는쪽의 의자다리에 벨만큼 겨냥해 금을 그었다. 그리고는 멱딴 돼지를 엎어놓고 튀할 때처럼 의자를 희뜩 엎어놓고는 금이 긋긴 자리에 톱날을 걸었다. “자, 붙잡소!” 로친은 거세당하는 수퇘지 다리갱이를 붙잡듯이 걸상다리를 붙잡고 올롱한 눈길로 령감만 바라볼뿐이다. “스륵, 스륵…” 녹쓴 톱이긴 하나 그만하면 괜찮게 베여지였다. 걸상이 옳바로 놓였다. 다시 석마짝이 메쳐졌다. “떨그럭…” 의연히 어데선가 재수없는 소리가 들린다. 마령감은 머리를 빼끔 하면서 의하스런 귀를 강군다. 틀림없이 떨그럭소리가 났다. 다시 엉뎅이를 탈아보았다. 계속하여 소리가 났다. 마령감은 사타구니새로 의자다리를 굽어보면서 이마살을 잔뜩 찡그린다. (무슨 놈의 감투끈이람. 금방 긴쪽 다리갱일 베버렸는데두?) 마령감은 다시 콩크리트바닥에 코마루를 붙이고 한쪽 눈을 지긋이 감았다. 음, 좀 훤해보이는 쯤새가 알렸다. 길다고 베버린 다리가 아니라 이번에 저쪽것을 베여버려야 했다. 금방 너무 들이벤것 같았다. 이쪽 다리갱이에다 손톱눈으로 금을 긋고(연필꽁다리가 어디로 굴러갔는지 찾을 방법이 없었다.) 다시 의자를 휘뜩 엎었다. 로친은 라태함이 없이 그 짧고 약한 팔로 의자다리를 붙잡아주느라고 성의를 다했다. “스륵, 스륵…” 다시 의자가 옳바로 놓여지고 석마짝이 쿵 메처졌다. 음, 마령감의 입귀가 실룩한다. 이번에야 하는 배심이 기분좋게 입가에 발려졌다. 량감님의  대사에 한몫 알뜰한 힘을 보태줬다는 자호로 어깨가 달싹해진 로친은 손바닥을 살살 비비면서 해시시 웃는다. 석마짝이 아무리 굴려져도 의자는 벙어리 그대로이다. 그럼 그렇겠지. “어떻소?” “소리가 없어유.” “보오. 이제야 내가 톱질 한가락 할줄  모르는 놈이라고 비웃질 않겠지.” “호호호…” 호들갑스레 웃으면서 양파대가리를 흔들던 로친의 입이 갑자기 조금 뾰죽이 삐여져 나온대로 그만 고정되여버렸다. 눈길도 퍼그나 놀람스럼 모양,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의자다리쪽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로친은 령감의 잔등을 조심스레 앞으로 민다. “몸을 좀 앞으루 숙여유. 그렇지, 뒤다리가 들리게스리. 응 됐어유.” 로친의 손엔 나무쪼각이 쥐여져있었다. “이게 다리밑에 끼웠더구만유.” 로친은 퍽 송그스런 모양이다. 구슬픈 눈길로 령감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톺았다. 로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떨그럭소리가 화답이라도 하듯이 징그럽게 들렸다. 마령감은 다시 콩크리트바닥에 이마를 대고 의자다리를 들여다보았다. 저런, 저쪽 다리갱이가 콩크리트바닥에서 이렇게ㅡ손가락두께만큼이나 들여있었다. 엄청난 간격이 일견에 알렸다. (너무 벴군.) 스륵스륵… 떨그럭 떨그럭… 스륵스륵… 떨그럭 떨그럭… … … “여봐유, 이렇게 한정없이 베기만 하면 될가유?” “무슨 놈의 잔소리가 이리두 많아!” 잘못된것이 다 로친의 탓인양 쏘아보는 마령감의 눈길엔 불꽃이 튕겼다. 스륵스륵… 떨그럭 떨그럭…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의 이마에선 구슬같은 땀방울이 시내물처럼 흘러내였다. 그러나 마령감은 결사적이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빌어먹을 다리갱이들이 걸맞지를 않는다. 이쪽이 길잖으면 저쪽이 길고 이쪽을 베면 저쪽이 들리고… 인젠 한뽐은 남아 베버린것 같다. 멋지던 의자가 단통 앉은뱅이 의자로 돼버렸다. 이런 꼴불견이라구야. 의자라기보다 아이들이 타는 썰매라고 하는편이 나을것 같다. 그래도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손을 뗄념없이 머리를 콩크리트바닥에 착 붙이고 눈초리를 실오리처럼 만들어가지고 어느 다리갱이가 더 긴가고 가늠해보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꽉 붙잡으란 말이오. 오뉴월 손 언놈이 남의 일하듯이 너펄뜨레 붙잡지 말구 좀 성의를 보이란말이오.” 마치 여지껏 모든 잘못이 다 로친이 잘 붙잡아주지 않는탓에 있는듯 으르렁대는 령감을 주눅이 들긴 했지만 반항기가 서린 눈으로 곱잖게 쏘아보던 로친은 다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의자다리를 잡는다. 손가락두께만큼에다 그어놓은 금에 톱날이 걸렸다. 스륵스륵… 한창 내려가던 톱날이 뭔가에 걸려 턱 서렸다. 그통에 의자를 붙잡고있던 로친이 휘청 끌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의자다리를 붙잡은채 비틀 몸을 쌔리웠다. 찰라, 톱날이 비탈리면서 쟁그랑 끊어지고말았다.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의 얼굴은 단통 문어대가리처럼 시뻘개졌다. 로친의 얼굴은 7월의 떡갈나무잎처럼 새파래졌다. 콩크리트바닥에 버티고앉아 한손으로 가슴을 문대면서 다른 한손으로 콩크리크바닥을 쓸던 로친이 갑자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이 바닥을 좀 봐유. 이쪽이 이렇게 꺼져있었구만유. 여기에다 의자를 놓으니 그 다리갱이가 방정할수 있었유.” 엉? 마령감은 둥굴소 눈이 되여 콩크리트바닥을 바라봤다. 꺼져있는 자리가 일견에 알렸다. 한달전의 마국철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씩씩 황소숨을 톺더니 발을 탕 굴렀다. “도끼를 가져와!” 소리를 꽥 지르면서 광기어린 눈길을 휘저었다. 로친의 조금 빼여져나온 밉상이눈이 금방 빠질것만 같다. “도끼를 해선 어쩌려구요?” “이런 잔소리라구야! 가져오라면 가져오는거지!” “예ㅡ에.” 로친은 문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집안으로 사라져버렸다.   1997년《천지》 9월호  
231    [시]나비(남영전) 댓글:  조회:1227  추천:16  2009-04-14
애오라지 얼과 얼의 만남이어서 하천의 물보라와 호수의 잔물결로 산악의 굽은 줄기와 언덕의 주름살로 그리고 해의 금빛과 달의 은빛으로 쬐꼬만 두 날개를 그렸으니 신비한 우주의 축도인가 하노라 애오라지 얼과 얼의 만남이어서 옅은 새벽빛과 짙은 저녁 놀빛 묻혀 초목의 신록과 꽃의 요염을 묻혀 그리고 비 온 뒤의 칠색무지개를 묻혀 아롱진 두 날개를 그렸으니 대천세계 색채의 축도인가 아노라 애오라지 얼과 얼의 만남이어서 하늘에서 춤추면 아롱진 노을로 땅에 내리면 아롱진 산꽃으로 봄날의 대문 활짝 열어제치고 빙설을 어서 녹으라 재촉하고 생명들 싹 트라 재촉하고 세상의 평화와 안녕 불러오네 나비와 함께 날자 나비와 함께 춤을 추자 나비의 길은 아름다운 삶의 길 나비의 길은 죽은 후 부활의 길 나비의 길 나비의 길 나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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