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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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기행문]두만강은 이렇게 시작된다(김철호) 댓글:  조회:2136  추천:17  2009-03-05
                                  약류하와 홍토수 정답게 몸을 섞어 적봉(赤峰ㅡ일명 紅土山, 해발 1321.4메터)은 구릉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백두산화산분출에 의한 부석은 거개가 검은빛인데 적봉을 덮고있는 부석은 이상하게도 적갈색이라 한다. 그러나 푸른 숲에 싸여있기에 보기에는 그대로 푸른산이다. 산정의 수평면적은 0.8평방킬로메터, 그 둥두렷한 산정에 올라 사위를 둘러보면 멀리로 크고 작은 연지봉과 백두봉이 손에 잡힐듯 가깝고 서쪽으로 몸을 돌리면 손거울같은 원지가 해볕에 반사되여 눈부시다고 적봉에 올라본적 있는 류연산씨가 말했다. 금방 보고온 원지가 저 산봉우리에 오르면 볼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불같이 달아올랐으나 사정이 그러하여 참을수 밖에 없었다. 원지의 직경은 180메터, 맑고 얕은 못속에는 꽃무늬가 돋힌 산천어가 자란다고 한다. 이 원지를 일명 천녀욕궁지(天女浴躬池)라고 하는데 원지기슭에 돌비석이 세워져있다. 옛이름은 만족어로 푸러후리, “룡구(龍狗)”라는 못이라 한다. 못가에는 매죽이라는 산열매가 아주 많았다. 둬자쯤 되는 작은 나무에 다락다락 달린 감푸른 매죽은 완두알만큼 했는데 새큼새큼한것이 먹을수록 맛났다. 철에 따라 산딸기며 들쭉들이 익는데 그 맛 또한 별미라고 안내원으로 나선 숭선진 김송춘진장이 자랑했다. 그러면서 일행중 녀성들을 돌아다보면서 이곳에 와서 녀성들은 무턱대고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된다고 짐짓 엄숙한 얼굴을 보였다. 어쩌구려 잘못 열매를 따먹고 임신할수도 있다는 말에 일행은 원지가 떠나갈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알고보니 원지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있었다. 400년전, 세 자매가 원지에서 목욕을 했다.푸쿠륜이라고 부르는 막내동생이 붉은 열매씨를 먹고 그만 임신하게 되였다. 남편없이 임신한 푸쿠륜은 아들 쿠리옹순을 낳았다. 쿠리옹순은 어엿한 사나이로 장성하여 부락의 수령으로 되였다. 그는 어머니의 분부에 따라 삼성(三姓)이라는 지방에 가서 그곳의 내란을 평정하고 국주로 되였으며 나라이름을 만주라고 하였다. 지금도 만족들은 쿠리옹순을 시조로 받들면서 “성자(聖子)”로, 푸쿠륜은 “천녀(天女)”로 모신다. 20세기에 와서 원지는 우리 민족의 현대전설을 전해주고있다. 항일전쟁시기였다. 한 시골마을에는 남편을 유격대에 보내고 의롭게 사는 옥녀라고 부르는 절색의 녀인이 살고있었다. 이웃마을 일제주국놈은 옥녀의 미모에 반해 겁탈하려 집착거렸다. 옥녀는 남편찾아 적봉으로 떠났다. 토벌대를 이끌고 적봉에 이른 주구놈은 옥녀를 보자 눈이 뒤집혀졌다. 깎아지른듯한 적봉이 병풍처럼 막히고 뒤는 원지인지라 더는 도망칠 길이 없게 된 옥녀는 치마를 머리에 둘러쓰고 늪에 뛰여들었다. 남편이 유격대를 거느리고 나타났을 때는 못우에 비낀 아름다운 무지개를 타고 옥녀가 언녕 승천했을 때였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은 원지를 옥녀늪이라 불러왔는데 지금도 원지보다 옥녀늪으로 더 많이 불리운다. 옥녀늪으로부터 약류하(弱流河)가 몸을 감췄다 나타냈다 하면서 적봉을 향해 흘러간다. 그 적봉기슭에서 겨우 30메터되는 발치에 “21호변계비석(二十一邊界碑石)”이 세워져있다. 새하얀 돌비석 남쪽면엔 “조선”, 북쪽면엔 “중국”이란 글자가 새겨져있다. 몸을 훌쩍 움직이기만 해도 금방 조선땅을 딛고 서있게 되는곳이다. 국경선표식이 처음 선것은 1712년 봄이였다고 류연산씨가 말했다. 청나라 우라총관 무커덩이 리조의 군관 리의복일행과 함께 백두산 5킬로메터 되는곳에 세운것이 첫 “정계비”였다. 너비가 한자여덟치, 높이가 두자세치되는 돌에 78자의 글을 새겼다는 정계비는 문헌에만 남아있고 실물과 원지점은 찾을 길이 없다는것이다. 그리고 광서 13년(1887년)에 두만강발원지의 암류가 흐르는곳에 경계석 10개를 세우고 비석마다에 “화하금탕고하산대려장(華夏金湯固河山帶旅長)”이라는 글자를 새겼다는데 역시 찾을길 없다는것이다. 21호변계선에서 조금 가면 옥녀늪에서 흘러오는 약류하와 조선측 서남쪽에서 흘러내리는 홍토수(紅土水)가 적봉기슭의 개바닥에서 련인마냥 정답게 손을 잡는다. 두만강은 이때로부터 한몸이 되여 곧추 천리를 흐르게 되니 바로 여기가 두만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약류하와 홍토수가 정답게 몸을 섞는 맑고 정갈한 개울을 마주하면 누구라 없이 숭엄한 기분이 된다. 남북 길이가 4메터, 동서 길이가 2메터인 합수목, 무릎을 넘을가 말가 하는 이 개울물이 나라와 나라의 지경이고 수많은 한을 싣고 흘러야 했던 천리강줄기의 1번지였던것이다. 이제 자기가 가닿아야 할곳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있는지 모른채 즐거운 첫발작을 떼버리는것이다. 철부지마냥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또릿거리면서 버들가지를 휘여잡기도 하고 풀잎을 꼬드기기도 하면서 꼬지깽이가 울끈불끈 솟은 개활지로 숨었다 나타났다 숨박꼭질하면서 잰걸음을 치고있는 두만강, 소꿉장난에 심취된 사내아이마냥 수없는 이야기를 조잘댄다. 합수목에 띄운 노란 금잔화 한송이가 눈깜박할새에 두 기슭의 버들과 버들이 맞대인 밑으로 숨어버렸다. 내 마음도 금잔화와 함께 두만강에 싣긴 기분이다. 천리길을 떠나는 심정이다. 아, 두만강 너는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연변일보 1998년 10월 1일 제3면
209    [소설]산딸기.2(김철호) 댓글:  조회:1342  추천:18  2009-03-04
5   그해 여름방학에 나는 연길에 가서《언어연구소》의 리소장을 만났다. 그는 이전에 나의 론문을 추천하고 발표해준분이다. 학생시절에 나는 언어연구에 관한 론물 몇편을 발표하여 인기를 끈적이 있었다. 그때 리소장은 나에게 많은 조언을 주었다. 이번에도 리소장은 나더러 론문을 써보라고 했다. 흑석에 돌아온후 나는《우리 말 토에 관하여》라는 소론문을 리소장에게 부송했다. 얼마후 나의 론물이《언어연구》잡지에 발표되였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러던 어느날 최교장선생님의 알선으로 어느 사범학원졸업생인 공사중학교의 한 총각선생이 선보러 나한테로 찾아왔다. 나는 좋은 말로 그를 되돌려보냈다. 그날 만룡이는 시물시물 웃으면서 나를 골려주었다. 《조선생님, 기쁘겠습니다. 인젠 흑석도 리별이겠군요. 섭섭한데요…》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눈엔 서운한 마음이 비껴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그 어떤 갈망으로 불타는 절절한 광채가 번뜩하다가 가뭇없이 사라짐을 보아냈다. 나는 웃으면서 만룡의 롱을 받았다. 《흑석이 얼마나 좋아요. 흑석의 물은 얼마나 맑고 흑석의 산딸기는 얼마나 단가요. 내가 그까짓 공사마을 중학교가 부러워 떠날것 같아요? 천만에, 나는 할머니가 지어주는 음식이 세상 제일 맛있어요. 파란 햇완두를 얹고 지은 조밥, 시원한 열무김치, 빨간 고추장, 취쌈, 깨잎, 구운감자… 그보다 뜨거운 할머니의 정성을 팽개치고 가면 어디로 간다구 그래요…》 어느새 왔는지 할머니가 채소바구니를 들고 우리옆에 서있었다. 그도 나의 말을 들었는지 슬며시 눈굽을 찍는것이였다. 나는 순박하고 어진 드들을 속였다. 마음에 없는 말을 했으니말이다. 그러나 만룡이는 단통 헤벌쭉해지더니 어린애마냥 좋아했다. 《정말입니까? 아무튼 저에게 초중과목까지야 가르쳐주고 가야지요.》 《그다음엔 제가 아무데를 날아간대도 의견이 없겠군요. 호호호…》 그는 시물시물 웃으며 머리를 썩썩 긁기만 했다. 그 이튿날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날이 횅창 밝아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쌀을 씻고있었다. 나는 이부자리를 포갠후 카텐을 거두면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만룡이가 마당 한복판에 말뚝처럼 버티고 서있었는데 그의 발치에는 잘 패놓은 장작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한손에 도끼를 쥔채 만룡이는 우두커니 수양버들을 바라보면서 히죽이 웃을을 짓고있었다. 이상히 여긴 나는 그의 눈길을 따라 수양버들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살며시 열었다. 청신한 공기가 페부를 적셔준다. 산간마을으 아침공기는 맑고도 시원했다. 호기심에 끌려 수양버들에 눈을 준 나는 그만 어이없이 웃고말았다. 한쌍의 고운 새가 나무가지에서 쫑긋쫑긋 뛰여다니면서《련애》를 하고있었다. 만룡이는 입을 벙글서 벌리더니 새를 보고 혼자 중얼거리는것이였다. 《날아가지 말아라. 거기에 둥지틀고 알을 낳고 살란말이다. 우리 집이 얼마나 좋니! 나와 할머니는 다 좋은 사람이다. 날아가지 말어. 날아가지 말어…》 나도 어느새 새들의《련애》에 정신이 팔렸다. 암컷은 그만 수컷에게 반하고말았다. 수컷은 부리로 암컷의 깃을 다듬어주면서《사랑》을 고백했다. 그들의 사랑이 바야흐로 무르익으려는 순간 정지문이 덜컹 열리더니 할머니가 물통을 들고 나가 구정물을 버드나무밑에 활 던졌다. 그바람에 놀란 한쌍의 새는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다. 《야, 할머니두 참…》 《엉?!》 만룡이가 다시 뭐라고 말하려고 머리를 드는 순간 나와 그의 시선이 마주치게 되였다. 그는 머리를 썩썩 긁더니 쑥스레 웃으면서 도끼를 들어 나무를 패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만룡이가 나에게 애욕을 갖고있는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이였다. 하늘땅이 바뀌면 몰라도 그가 어찌 나한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품겠는가… 나는 사범졸업생이고 그는 나에게서 몇글자 배운 학생에 지나지 않으니말이다.   6   그해 가을의 어느날이였다. 하학후 집에 돌아오니 만룡이와 할머니가 큼직하 항아리를 앞에 놓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의혹에 찬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만룡이는 말없이 낡은 편지 한통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만룡의 아버지의 유서였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씌여있었다. 《…나는 조선어를 연구하는 가운데서 좀 과겨간 말을 하였다 하여 세상의 버림을 받았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해볼 생각이였다. 그런데 쇠약한 이 몸이 령혼을 배반하려 한다. 애절쿠나, 의기쇠진한 이 몸이 기름이 다한 등잔이 됨이. 이 자료더미를 너에게 맡긴다. 꼭 아버지의 유언을 현실로 되게 하여라. 뜨락 앵두나무밑에 묻어둔다…》 만룡이는 항아리속의 기름종이에 싼 물건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그리고 말없이 조용히 기름종이를 풀었다. 두툼한 노트들이 구둘에 쌓였다. 그것은 언어연구에 관한 재료들을 정리해놓은 노트들이였다. 그중에는 내가 지금 집필하고있는 론문에 극히 필요한 재료도 있었다. 력사적근거가 충분하고 준확하여 나의 론문에 그 자료를 인용하기만 하면 례문이 아주 명철할 그런 자료였다. 나는 어찌도 기뻤던지 보배나 주은듯 했다. 만룡이는 나를 보면서 침통히 말했다. 《조선생님 덕분에 나는 새로운 천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글을 통해서만이 볼수 있는 천지입니다. 저는 하마트면 평생 까막눈이 되여 아버지가 어떤 유언을 남기고 가셨는지도 모를번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서가 할머니의 농밑에 있었습니다. 할머니도 여태 그것이 뭔지 모랐습니다.》 《이걸 조선생님이 맡아 쟤 아버지의 유언을 실현시켜주우.》 이렇게 말하는 늙은이의 눈엔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나는 격동된 심정으로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나의 두번째 론문이 인차 집필되였다. 나는 원고를《언어연구》잡지사에 발송했다. 원고는 인차 채용되였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뻤던가! 나는 희망의 고봉에라도 오른듯 했다. 이 기쁨을 나누고싶어 나는 하숙집으로 뛰여왔다. 집은 텅 비여있었다. 웃방문을 열어보니 만룡이가 요를 펴놓은채 학습장을 한구들 가득 널어놓고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갑자기 만룡이의 학습정황을 알고싶었다. 나는 그의 학습장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문자를 다루는것이 이전보다 훨씬 제고되였고 글씨도 퍽 여물었다. 그날 나는 우연히 요밑에서 만룡의 일기책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훔쳐보았다. 아래것은 그날에 본 만룡의 일기 몇토막이다. 《오늘 조선생님과 함께 산보했다. 더워서 조선생님을 속이고 아래목에 내려가서 목욕하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산딸기를 따왔다. 조선생님은 딸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조선생님은 나를 어찌도 쏘아보는지… 조선생님이 나를 쏘아볼 때 나는 그가 성을 내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공사마을 총각선생님이 선보러 왔다. 그가 우리 집으로 들어올 때 나는 그를 쫓아버리고싶었다. 어쩐지 그 사람이 곱지 않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조선생님이 훌륭한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간절했다.》 《오늘 조선생님이 나더러 라는 작문을 지으라고 했다. 우리 집 식구는 나와 할머니 둘뿐이 아닌가? 그런데 웬 일인지 로 첫머리가 떼여지는것이였다. 나는 조선생님이 볼가봐 부랴부랴 를 로 고쳤다. 조선생님은 필경 우리 집 식구가 옳은데 왜서 우리 집 식구로 될수 없는가? 조선생님이 영원히 우리 집 식구가 되였으면 좋으련만…》 그 일기장을 이만큼 기억한것도 그것이 하도 나의 마음에 크게 자극을 주었기때문인것 같다. 나는 일기책을 팽개치고 부랴부랴 방에서 뛰쳐나왔다. 아, 만룡이가 그런 생각을… 나는 나의 가슴속에도 만룡이와 꼭같은 생각이 있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불현듯 그를 좋아한 자신을 발견했던것이다. 그가 목욕하는것을 훔쳐보았을 때부터였는가? 아니면 그보다 퍽 전 그의 어글어글한 두눈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였던가… 아무튼 나는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것만은 사실이였다. 나는 만룡이로 하여 끓어오른 그 무엇이 나의 가슴속에서 튕겨나오려 한다는것을 몇번이고 느꼈다. 그것으로 하여 나는 또 수치감까지 느낀적이 있었다. 물론 만룡이의 눈이며 곱슬머리며 몃진 체구에는 처녀들의 눈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사회에 내놔도 그런것은 아니다. 그는 나한테서 글 몇자를 배운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나는 그를 나의 미래의 생활과 련계시켜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바야흐로 문단에 두각을 드러낼 내가 어찌 만룡이와 함께 생활의 천평우에 오를수 있겠는가? 아무리 내가 자기희생을 한다쳐도 그 천평을 어찌 평형잡을수 있겠는가? 미구하여 내앞에 펼쳐질 길은 오색령롱한 주단이 깔린 희망의 길일것인데 그 길을 만룡이가 나와 함께 걸을수 있겠는가? 한때 내가 그를 동정하고 그 처지를 가긍히 여겨 그에게 지식의 대문을 여는 열쇠를 주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정이였지 결코 련정을 아닌것이였다.   7   한달후《언어연구》편집부에서 나를 림시편집으로 빌려쓴다는 통지서가 왔다. 할머니는 몹시 서운해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림시로 가서 일을 보는것이라고 말씀을 드려도 할머니는 보물을 빼앗긴듯 몹시 억울해했다. 떠나던 날 할머니와 최교장네가 동구밖까지 나를 바래주었다. 만룡이는 소수레로 나의 짐을 사자툰까지 실어다주었다. 뻐스역에 도착하여 수레에서 나의 짐을 부리우던 만룡이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걸 어쨌습니까?》 나는 쓸쓸히 웃었다. 《그것》이란 만룡 아버지의 유물을 말하는것이다. 아침에 만룡이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나는 그것을 방에 숨겨두었다. 어쩐지 나는 그것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것이 더없이 귀중한것이긴 하지만 내가 만약 그것을 받는다면 만룡이는 내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것으로 잘못 생각할가봐 두려워 두고 온것이였다. 나의 생각은 얼마나 유치하고 미련했던가. 그러나 나는 그런 내속을 숨기며 슬쩍 딴전을 댔다. 《오해마세요. 그건 만룡 아버지의 유물이예요. 나는 감정상에서 부친의 유물과 아들을 갈라놓을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토록 귀중한 유물을 내가 어찌 차지할수 있겠나요.》 《그 말은 틀렸습니다, 틀렸습니다!》 만룡이는 펄쩍 놀라 부르짓었다. 그는 나를 원망스레 쏘아보다가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 줄달음을 놓는것이였다. 뻐스는 한시간후에 떠났다. 뻐스가 금방 떠나자 만룡이가 언덕길에 나타났다. 그의 어깨엔 큼직한 보짐이 메워져있었다. 《그것》이였다. 차가 떠난것을 본 만룡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않아버렸다. 나는 코마루가 시큼해나서 제꺽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다시 머리를 들어 차창밖을 내다보니 만룡이는 보이지 않았다. 현성에 도착한 나는 연길로 가는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아직도 반나절 시간이 있었다. 나는 시내구경도 하고 식당에 가서 저녁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저녁차를 탔을 때엔 날이 이미 어두웠다. 자리를 정해 앉은후 습관적으로 차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말았다. 만룡이가 플래트홈으로 들어서고있었던것이다. 황황히 자창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이글거리는 숯불 같았다. 그가 보짐을 그냥 메고있는것으로 보아 나를 찾고있다는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차창을 열면서 그를 불렀다. 나를 발견한 만룡이는 노루처럼 풍풍 뛰여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보짐을 창문으로 올리밀었다. 그제야 그는 만시름을 놓은듯 숨을 훌 몰아쉬는것이였다. 나는 량심의 가책으로 하여 가슴이 막 미여지는듯 괴로왔다. 그러나 만룡이는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있었다. 그 웃음은 그렇듯 천진하고 가식없는 순결한 마음이 담긴 웃음이였다. 나는 목이 메여 멍하니 만룡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발차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만룡이는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고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으나 그는 나를 바라볼뿐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물기가 빛을 뿜고있었다. 차는 서서히 떠났다. 《조선생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만룡이는 입술을 깨물고나서 겨우 한마디를 한다. 순간 나는 귀중한것을 놓치는것만 같아 한사코 손을 뻗쳤다. 말룡이도 손을 들어 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점점 속력을 내는 렬차는 우리들 사이를 갈라놓고야말았다. 나는 옥죄여드는 가슴을 붙안고 점점 멀어져가는 말룡이를 바라보았다. 집에 갔다가 사자툰까지 달려와 마지막 뻐스를 타고 현성까지 와서 차시간을 놓칠가봐 또 역전까지 달려왔을 만룡이를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이제 현성에 아무런 친척도 없는 저이가 이 밤을 어디에서 셀가? 나는 차창으로 휙휙 스쳐지나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두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순간, 나는 뭔가 그리워졌다. 초가삼간 온돌우에서 저녁상에 마주앉아 웃음꽃을 피우던 저녁이 그리웠다. 남포등밑에서 코를 끄슬리며 만룡이에게 글을 가르쳐주던 때가 그리웠다. 갑자기 나는 시장기를 느꼈다. 이맘 때면 할머니가 찹쌀구이나 감자를 구워주겠지 하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물클해났다. 이 모든것이 이젠 끝난 이야기거리로만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옥죄여들었고 무언가 나의 몸에서 가장 귀중한것을 잃은것만 같았다. 꼭 있어야 할 그 무엇이 몸에서 갈리여 나가는것만 같아서 나는 더없이 아쉽고 슬펐다. 그래 내가 귀중한 그 무엇을 잃지 않았단말인가? 나는 애틋한 감정을 잃었을뿐만 아니라 주요하게는 신의를 저버렸다. 순박하고 어진 만룡이와 할머니의 나에 대한 그 깨끗한 신의를…   8   며칠전 뜻밖에도 만룡이가 나를 찾아왔다. 지금 마을에서 소형수력발전소를 세우고있는데 자기가 그 공정을 책임졌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들이 그린 설계도와 공정계획표를 지구농전국으로 심사받으러 오던길에 들렸노라고 했다. 그는 큼직한 구럭을 내놓으면서 어색하게 얼굴을 붉혔다. 《할머니가 어찌나 가지구 가라는지… 도시엔 이보다 더 좋은것이 많다고 해도 그냥 참… 이건 이슬밭에서 따온것입니다.》 그것은 생신한 산딸기였다. 향기를 풍겨주는 흑석의 산딸기였다. 나는 코마루가 저려나서 가까스로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만룡이는 할머니가 여전히 정정하다고 말한후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집에 또 사범졸업생 선생님 한분이 들었습니다. 남선생님이십니다. 할머니는 기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냥…》 떠날 때 그는 나에게 슬며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지난번 학교에서 초중졸업시험을 칠 때 나도 쳐보았습니다.》 《그래서요?》 《성적이 수수했습니다. 래년부턴 고중과목을 배우려 합니다. 그리고 늦지만 않으면 통신학부같은것도… 히히… 다 꿈같은 소리지요.》 《해요. 꼭 될수 있어요. 학습자료는 내가 제때에 구해드리겠으니 꼭 해봐요.》 만룡이는 히죽이 웃다말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러던 그는 되돌아서서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썩썩 긁는다. 순간 나는 어쩐지 답답해나면서 몰래 가슴이 높뜀을 느꼈다. 저이가 뭘 말하자고 저럴가? 그는 주밋거리더니 멋적게 입을 열었다. 《전, 결혼했습니다. 중학생이라고 뽐내던 이쁜이가 저의 안해로 되였습니다.》 그는 손을 들어 한번 휘젓더니 인차 돌아서서 털썩털썩 앞을 향해 걸어갔다. 순간 나의 가슴속에서는 무엇인가 덜컹 떨어지느것만 같았고 알지 못할 그 어떤 욕망이 머리를 쳐드는것만 같았다. 나는 달려가서 만룡이를 막 붙잡고싶었다. 그라나 나는 그렇게 할수 없다는것을 자감했다. 만룡이는 오늘도 흑석에서 발전소공정을 하느라고 땀벌창이 되여 일하고있을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섰으나 아직도 남포등신세를 지고있는 고향을 변천시키느라고 변변치 않은 지식을 리용하고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룡이는 비록 아버지의 유물에 대하여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나에 대한 도전인것이다. 그날 나는 그 한구럭의 산딸기를 갖고 거리에 나섰다. 나는 거리모퉁이에서 장난치고있는 조무래기들에게 산딸기를 한줌한줌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좋아라고 날뛰며 달려갔다. 애들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흑석의 산딸기를 먹을 자격이 없는 자신을 뼈저리게 느꼈기때문이였다. 언제, 언제 다시 흑석의 산딸기를 먹을는지? 아, 잊지 못잊을 흑석이여! 못잊을 산딸기여!   1983년《아리랑》(연변인민출판사)  
208    [소설]산딸기.1(김철호) 댓글:  조회:1291  추천:12  2009-03-04
1   흑석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흑석이라고 불리우는 마을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터였다. 허지만 그곳이 항시 나의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앉아 미묘하고도 야릇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고장이여서 나는 가끔 이렇게 자문하기도 한다. 검은 돌이 많다고 흑석촌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심산벽지에 자리잡은 마을주변과 개울가며 산비탈에는 온통 거무칙칙한 돌천지이다. 허지만 흑석촌은 매우 아름다운 고장이였다. 산기슭에 오붓이 들어앉은 아담한 마을앞으로는 수정같이 맑디많은 벽계수가 감뛰며 흐르고 앞산뒤산에는 울울창창한 숲이 꽉 우거졌는데 그속에는 약재같은 보물이 쌔고버렸다. 그런데 이렇듯 좋은 고장에 아직도 전가가 들어가지 못했고 또 교통이 말째여서 사람들의 한탄을 자아내군 한다, 흑석촌은 연길에서부터 기차로 하루, 뻐스로 반나절, 또 소철을 타고 몇시간을 좋이 가야 닿는 장백산의 막치기였다. 1981년 여름, 나는 졸업배치장을 지니고 흑석학교에 찾아갔다. 차에서 내려 자주 들추는 소수례에 옹송그리고 앉아 흑석땅에 들어섰을 때의 나의 감정은 미개척지에 첫발을 들여놓는 풋내기 탐험가의 그런 신비감과 놀라움, 그리고 의혹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박할머니네 집에 하숙을 정했다. 그 집은 할머니와 그의 손자뿐인 단출한 식솔이여서 내가 들어있기에는 알맞춤했다. 그날 저녁 나는 할머니와 같이 가마목에 자리를 폈다. 말끔하고 깨끗한 장판방에서 자라는것을 나는 뜨끈뜨끈한 가마목이 소원이라고 우겼다. 할머니는 호두알처럼 주름살이 가득 잡힌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혀를 끌끌 찼다. 손자는 목장에 가고 없었다.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나니 벌써 가마에서는 흰김이 물물 피여오르고있었는데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구미를 당겼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바깥쪽으로부터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려왔다. 창가에 다가가 카텐을 들고 여겨보니 할머니가 웬 젊은이하고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나는 오래동안 깎지 않아 귀까지 푹 덮은 수세미같이 텁숙한 머리와 이슬에 젖어 꼴불견이 된 옷주제가 눈에 띄자 들었던 카텐을 슬며시 놓아버렸다. 대체 누굴가? 발자취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창가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두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윽고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할머니가 들어서면서 반색했다. 《어이유, 벌써 일어났소? 푹 잘게지. 얘야, 날래 이리와 선생님께 인사나 올려라.》 터벅터벅 나던 발자취소리가 문전에서 뚝 멎었다. 《이 꼴 보지, 촌바우가 돼놔서 이렇다오.》 할머니는 젊은이를 재촉해서 집에 끌어들였다. 젊은이는 수집은 처녀애마냥 한동안 주밋거리다가 겨우 입을 뗐다. 《선생님, 오시느라 욕보셨겠습니다.》 《아니, 별 말씀을, 펠 끼치게 됐어요.》 나는 맞인사를 하면서 그를 찬찬히 뜯어볼수가 있었다. 강대처럼 억세고 다기진 몸매, 농촌에서 흔히 볼수 있는 건강하고 병없는 그런 사나이였다. 얼굴은 먼지가 끼여 거무죽죽했으나 두 눈만은 맑고 어글어글해 보였다. 상큼한 코날, 두리두리한 얼굴, 훤한 이마, 입귀쪽으로 내려오면서 까칠하게 돋은 수염… 나는 첫눈에 정력이 왕성한 서른살쯤 되는 사나이로 보았는데 그가 개울에 나가서 세수하고 돌아왔을 때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비누로 머리를 감아 보기 좋은 곱슬머리엔 함치르르 윤기가 돌았고 금방까지 거무죽죽하던 얼굴은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 방금 꽃물을 들인듯했다. 그날 나는 최학구교장선생님을 통하여 할머니네 가정형편을 다소나마 알게 되였다. 할머니의 손자는 만룡이라 부르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읜 그는 할머니슬하에서 외롭게 자랐다는것이였다. 만룡의 부모들은 모두 1957년의 수난자들이였는데 그들이 우파모자를 쓰고 이 산골에 왔을 때 만룡이는 두돌이 갓 지난 어린애였다고 한다. 1958년, 전국적으로 교육을 보급시키는 열조가 일어났다. 그때 만룡의 부모들은 자진하여 흑석에다 학교를 꾸렸다. 헌데 1961년의 조절정돈과정에서 흑석학교를 해산시켰다. 그후 만룡의 부모들은 불행하게도 이름모를 병에 걸려 한해를 사이두고 타계의 사람이 되였다고 한다. 최학구교장선생님한테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어쩐지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해 목장에 갔던 만룡이는 좀해서는 집에 내려오지 않았었다. 나는 할머니가 손자를 몹시 그리워한다는것을 여러번 눈치챘다. 한번은 할머니가 밥상에 수저를 한모 더 놓은 일까지 있었다. 해도 할머니는 목장에 가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만룡이더러 큰일 없이는 절대 산을 내려오지 말라고 부탁하더라는것이였다. 만룡이도 어쩌다 일이 있어서 마을에 와서도 밤을 넘기지 않고 그날로 목장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할머니가 민망스러웠다. 《할머니, 어쩌면 이럴수 있나요. 어쩌다 온 사람을 쫓다니요…》 내가 이렇게 말할라치면 할머니는 나의 어깨를 도닥이며 히죽히죽 웃기만 하였다.   2   조석으로 개울가에  살얼음이 지기 시작할 때 만룡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밥은 집에서 먹고 자긴 쇠돌이네 집에서 잔다면서 이불짐은 가져오지도 않았다. 나는 말없이 쇠돌이네 집에  가서 그의 이불짐을 꿍져왔다. 《웃방이 그저 비여있는데 그렇게 하면 돼요?》 나의 말에 만룡이는 무중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부자연스레 모자채양을 움켜쥐는것이였다. 모자는 이미 다 해지고 색도 난것이 더 쓰고 다닐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하나밖에 없는 친인을 떨어져서 여름내 산에 들어가 있다가 집이라고 찾아온 불쌍한 사람을 보노라니 나는 어쩐지 목이 꺽 메였다. 그때 나는 웬 일인지 만룡이가 몇호짜리 모자를 쓸가 하는 생각이 부지중 떠오르면서 저도 몰래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우리는 한집에서 살게 되였다. 만룡이는 웃방을 차지했다. 만룡이는 웃방문으로 출입했고 눈이 펑펑 쏟아질 때까지도 개울에 나가서 세수를 했다. 그러던것이 내가 방문을 문풍질해놓아서야 그는 주간출입을 하게 되였으며 차츰 나와 한두마디 말을 건늬기도 하였다. 저녁이면 나는 남포등을 켜서 창문가에 걸어놓고 책상에 마주앉아 학습하기도 했다. 때론 책을 펼쳐놓은채 바깥에 나갔다 오기도 했으나 누구나 나의 물건을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은 누군가 나의 책들을 건드려놓았다. 나는 은근히 성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온 나는 한창 두터운《조선말사전》을 무릎에 펼쳐놓고있는 만룡이를 보았다. 그는 내가 들어온것도 모르고 자주 책장을 번지기만 하였다. 그 모양이 얼마나 우습고 얄미웠던지… 혹 무슨 글쪽지같은것을 책속에 끼워넣은줄 알고 저러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어처구니 없어 그만 쓴웃음까지 나왔다. 《버릇없이 선생님것을 다쳐 쓰냐? 엉.》 할머니의 꾸짖음에 뭐라고 대꾸하려던 만룡이는 나를 발견하고 쭈물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먼지도 묻지 않은 책뚜껑을 팔소매로 쓱쓱 닦은후 조심스레 그것을 책상우에 놓고 벌쭉 입을 열었다. 《이 책이 참 멋진데…》 《아니, 사전이 멋있다고요?》 아마 그때 나의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개졌을것이다. 마음이 어질고 정직한 사람으로만 생각해왔던 만룡이가 이렇게 사람을 놀린다고 생각하니 모욕을 당한것 같아 입술마저 떨려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태연스레 책을 책꽂이게 얹으면서 마음을 눌렀다. 내가 아무 말도 없자 만룡이는 주눅이 들어 훌쩍 방으로 뛰여들어가고말았다. 할머니는 나의 손목을 끌어 자기옆에 앉히더니 쭈글쭈글 주름이 간 손으로 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정답게 말씀했다 《성내지마우, 쟤가 버릇없어 그렇소. 재미있는 그림이나 있는가 해 그랬겠지. 쟤는 낫놓고기윽자도 모른다오.》 《녜?》 나는 할머니의 말에 두눈이 데꾼해졌다. 《쟤는 나처럼 까막눈이라오. 애비에미는 모두 큰학교를 나왔는데 쟤는 유치원도 다녀보지 못했다오.》 할머니의 목소리는 솜뭉치가 땅에 떨어질 때처럼 가벼웠으나 나는 도리여 철없는 어린애가 우뢰소리라도 들으듯이 깜짝 놀랐다. 선량하면서도 총명해보이는 만룡이가 머리통이 텅 빈 문맹이라고 생각하자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갖고있는 우리 조선족은 자기들의 후손이 20세기 80년대에 문맹이 있는것으로 하여 치욕을 느낄것이다. 예로부터 서발장대 휘둘러도 거칠것 없는 구차한 살림이라 해도 자식들에게 꼭 글공부만은 시켰다는 우리의 조상들이 아니였던가. 나의 놀라움은 어느덧 원망으로 번져갔다.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일찍 부모를 여읜 불쌍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끝내 가슴속에서 고패치던 원망을 할머니앞에 쏟고야말았다. 《할머니, 생활이 아무리 고달팠어도, 처지가 아무리 험악했어도 어찌 소학교공부도 시키지 못했어요, 녜? 할머니는 나빠요.》 할머니의 움푹하게 꺼져들어간 눈엔 눈물이 그득 고여있었다. 그가 슬며시 눈을 내리감자 두눈귀에서 수은처럼 부서진 눈물방울들이 주름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얼기설기 잡힌 주름살과 훌쪽하니 패워들어간 그의 볼에는 갖은 고초를 다 겪어온 암담한 지난날이 력연히 어려있었다. 후에 최학구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그 까닭을 알게 되였다. 이고장 아이들은 이전에 모두 50리밖에 있는 공사마을 학교에 다녔다는것이였다. 만룡의 부모가 흑석촌에 학교를 꾸리면서부터 아이들은 몇년간은 그래도 앉은자리에서 공부할수 있게 되였다. 그때 만룡이는 겨우 대여섯살밖에 안되는 어린애였다. 그후 학교가 해산당하고 만룡의 부모들이 다 타계의 사람이 되였다. 그래서 학교갈 나이가 된 만룡이는 학교갈수가 없었다. 한것은 50리밖 공사마을에 숙소를 정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우파분자의 후대인 만룡이를 뉘 집에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렇다하여 어린 만룡이가 50리를 걸어다닐수도 없었고 소철을 타고 다닐수도 없었다. 그후 만룡이가 17세나던 해에 학교가 다시 앉았으나 배움의 철을 놓친 만룡이는 마음뿐이지 학교에 다닐수 없게 되였다. 열일곱살을 먹은 만룡이는 글공부보다도 소몰이에 더 재미를 붙였고 입에다 밥을 떠넣을 일이 더 요긴했다. 그러던 그는 이젠 벌써 25세의 피끓는 젊은이가 다되였다. 그는 고민했다… 그후부터 그는 나의 책엔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늘쌍 애수의 그림자가 비껴있었으며 빼앗긴 시절에 대한 애달픈 심정과 원한, 증오의 물결이 사품치고있다는것을 나는 엿볼수가 있었다. 1957년의 수난자ㅡ만룡의 부모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갔다면 그 후대는 암둔의 상징물로 이 세상에 남아있어야 한단말인가? 아!...   3   검푸른 하늘에 초생달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걸려있던 어느날 저녁, 차겁고 희미한 달빛은 나무토막우에 앉아있는 만룡이를 쓸쓸히 비춰주고있었는데 그 모양은 마치 거치른 석공의 손에서 다듬어진 석상 같았다. 날씨는 잠풍했으나 어쨌든 겨울은 겨울인것이다. 차디찬 한기를 마시면서  고민에 싸여있는 그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가슴이 쓰라렸으며 울적해졌다.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연히 모래를 뚜지다가 반짝하고 빛나는 금알맹이를 발견했을 때의 그런 심정이라 할가. 아니면 시인이 생활의 대해속에서 갑자기 예술적종자를 발견했을 때의 격정이라고나 할가. 나는 매우 흥분되여  만룡이를 불렀다. 그때 나의 생각은 이러하였다. (나는 교원이다. 그에게 지식을 전수해줄수 있다…) 나의 부름소리를 듣고 만룡이는 대번에 나의 앞까지 달려왔다. 그때 우리는 다 바깥의 으스름한 달빛아래 서있었다. 만룡이가 나의 신상에 큰변이라도 생겼나 해서 지켜보는 그 모양이 꽤나 우스웠다. 《결심이 있나요? 결심만 있다면 꼭 될수 있어요.》 두서없는 애매한 말을 듣고 만룡이는 더 쩔바를 몰라했다. 그제야 나는 성급한 자신을 나무리며 그더러 집으로 들어가자고 졸랐다. 우리는 할머니앞에 가서 앉았다. 《할머니, 전 만룡에게 글을 가르치려 해요.》 두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나를 쳐다만 보고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듯이. 그러나 나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할머니, 만룡 부모님들의 일생은 불행했어요. 그런데 만룡의 일생마저 그렇게 되게 할수 있어요? 만룡은 꼭 문화지식을 갖춘 새시대의 청년으로 되여야 해요. 세계가 변혁하는 오늘 눈뜬 소경이 되여가지고는 아무 일도 해낼수 없어요. 글을 배워야 해요.》 나는 그들이 알아듣건말건 연설조로 나의 마음을 토로했다. 만룡이는 매우 난처해했고 할머니는 영문을 몰라 멍해졌다. 《내가 이제 글을 배운다…》 만룡이는 못믿겠다는듯이 머리를 절절 가로저였다. 허지만 일종 호기심에 사로잡혀있던 그의 어글어글한 두눈은 금시 희망과 믿음으로 불타고있었다. 그제야 할머니도 영문을 알아차리고는 나의 손목을 꼭 잡더니 입술을 바르르 떨다말고 겨우 이렇게 말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면 쟤를 좀 눈뜨게 해주오. 나같이 늙은거야 까막눈이면 누가 뭐라오. 해두 저 얘야 새파란게… 내 그 은혤 눈에 흙이 들어간대두 잊지 않겠으니 제발…》 《할머니두 참… 전 교원이니까 그건 저의 직책이지요.》 나는 송구스러워 할머니의 손을 꼭 마주잡았다. 만룡이는 연송 무릎은 주먹으로 쿡쿡 치면서 흘분상태에 처해있었다. 만룡이는 총명했다. 얼마되지 않아서 그는 책을 볼수 있었고 산수문제도 풀수 있었다. 마치 숭숭한 해면에 물이 스며들듯이 그는 글을 잘도 배워넣었다. 눈깜박할 새에 몇달이 흘렀다. 이듬해 만룡이는 목장에 가지 않고 마을에서 일했다. 하여 그는 나의 강의를 매일 들을수 있었다. 어느 한번 만룡이는 내가 그더러 읽어보라고 준 이야기책을 할머니에게 또박또박 읽어드렸다. 할머니는 너무 좋아 눈물까지 흘렸다. 할머니가 밤마다 우리에게 밤참을 마련해주었다. 기름기 차르르한 찹쌀구이를 저가락에 꿰여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언제나 딱 두개씩만 구워서는 한사람에게 하나씩 주군 했다. 철부지애들이여서 다투기라도 할가봐 두려워하듯이 우리들을 곱게 흘겨보고는 어서 먹으라고 재촉했다.  흑석의 감자는 또 얼마나 맛있었던가? 쪄놓으면 떡떡 터진 속으로 솜같은 감자살이 미죽미죽 나왔다. 할머니는 우리가 찰구이를 다 먹고나면 부엌에 파묻어둔 개지같은 감자를 꺼내여 재를 툭툭 털어서는 한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준다. 더 먹고싶어도 없다. 딱 두개만 구웠으니깐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다. 아니면 할머니가 성을 냈다. 처음엔 난 좀 면구스러워 만룡이와 마주앉아 먹지 못했다. 그러나 차츰 허물없는 사이가 되여버렸다. 나이를 따지면 만룡이는 나보다 몇달 앞선 동갑이다. 그러나 그는 번마다《조선생님, 조선생님…》 하면서 나를 존대해 불러주었다. 나는 반대로《만룡이, 만룡이…》 하면서 학생을 대하듯 그를 불렀다. 그러나 학습이 끝나고 밤참을 먹을 때면 우리는 소꿉시절의 동무가 된듯싶었다. 그가 목이 메여서 꺽꺽거리는 모양이 하두나 재미가 있어 나는 입을 싸쥐였고 그도 나의 코등에 묻은 재를 보고 우습다고 킬킬거렸다. 그럴 때면 할머니도 한옆에서 대견스레 웃고있었다.   4   세월은 빨리도 흘러 벌써 여름이 짙어가고있었다. 심록색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다정한 련인들처럼 부드럽게 속살거리고있었다. 산머리의 파란 하늘에서는 하얀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돌고 산과 밭은 날따라 푸른살이 오르는것만 같았다. 어느 한가로운 일요일, 나는 만룡이와 함께 들구경을 나갔다. 나는 오솔길옆에서 풀 한포기를 뿌리채 뽑아쥐고 한창 들여다보다가 던져버렸다. 만룡이는 내가 던진 풀포기를 주어다 뿌리를 털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질경이라고 하는데 씨는 약재로 쓰고 잎은 먹기도 합니다.》 《그런가요?》 《이 타원형의 길죽한 잎사귀와 삐여져나온 꽃대에 맺힌 하얀꽃을 보십시오. 이삭모양으로 피여난것이 얼마나 묘합니까? 질경이는 함박꽃처럼 그렇게 곱지도 않고 국화처럼 오래오래 피지도 못합니다. 그저 이렇게 수수히 누가 보든말든간에 두메산촌 오솔길가에 소리없이 피여났다 소리없이 사라지지요. 나같은 시골사람처럼말입니다. 허허허…》 《만룡인 참 멋지게 말하는군요.》 나는 환성을 올리며 손벽까지 짱짱 쳤다. 만룡이는 쑥스레 머리를 돌리더니 분비나무숲속으로 달려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서 우리는 숲을 나섰다. 아, 나는 경탄해마지 않았다. 앞에 파란 풀밭이 깔린 평지가 펼쳐져있었던것이다. 해볕은 풀밭에 무더기로 쏟아져내려 신비로운 빛을 반사해주고있었다. 나는 그처럼 깨끗한 풀밭에서 걸음을 옮겨놓기가 저어되였다. 두부모를 떨어뜨려도 깨여지지 않을것 같은 파란 잔디가 가쯘히 한벌 쭉 깔린 풀밭이였다. 나는 시골처녀가 궁전의 주단을 밟듯이 조심스레 풀밭을 밟으면서 사뿐사뿐 걸었다. 《아, 날씨가 몹시 찌물쿠는군. 나는 저아래 목장엘 가보겠습니다.》 나의 행동에 시답지 않은 눈길을 팔고있던 만룡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가 가건말건 들꽃을 꺾으면서 앞만 향해 걸어갔다. 얼마 안가서 언덕아래서 조잘거리며 흐르는 개울물이 나타났다. 나는 개울물에 발을 잠그고 앉아 싱그러운 풀냄새를 한껏 마셨다. 흐뭇이 취해왔다. 나는 어쩐지 혼자 있는것이 고독스럽기만 했다. 만룡이가 가버린것이 괘씸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가 신변에 있다면 이 자연의 야생미앞에 더 취할것만 같았다. (오솔길가에 소문없이 피였다 사라지는 질경이꽃, 그것이 자기같다 했지. 시골총각같으니, 못난이…) 거울같은 개울물에 둥글넙적한 만룡이의 얼굴이 비끼는것 같아 보인다. 그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시물시물 웃는다. 갑자기 정갱이에 무엇이 걸리자 나는 인차 그것을 손으로 쥐여보았다. 어디선가 떠내려온 풀포기였다. 나는 제멋에 웃고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개울물을 따라 아래로 달렸다. 계곡을 줄달음치는 개울물은 붉고 노랗고 푸른 각가지 색으로 조화부리며 솰솰 흘러가고있었다. 나는 꽃묶음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면서 개울을 따라 자꾸자꾸 내려갔다. 나는 꽃묶음에서 꽃을 한송이 한송이 뽑아선 내물에 띄워보냈다. 동동 떠내려가는 꽃을 쫓아가던 나는 갑자기 첨벙청벙 들려오는 물장구치는 소리에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나는 그만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눈을 딱 감고말았다. 한 사나이가 미역을 감고있었는데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이 해빛에 번들거리고있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손가락 쯤새로 사나이의 뒤모습을 훔쳐보았다. 함치르르 윤기도는 곱슬머리, 그것은 만룡이였다. 일순, 나의 피가 몽땅 얼굴에 모인것만 같았다. 그런것도 모르고 만룡이는 씩씩거리면서 물을 떠서는 몸에 끼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의 정갱이에는 내가 띄워보낸 꽃가지들이 무더기로 걸려있었다. 나는 몸을 홱 돌렸다. 헌데 그 끌밋한 체신, 윤기 번지르르한 피부를 만룡이 몰래 훔쳐보았다는것을 느꼈을 때 나는 이상스럽게도 이름할수 없는 모진 수모를 당한것만 같았다. 만룡이가 나에게 그 어떤 모욕이라도 준듯이 통분했고 통분할수록 만룡이가 얄미웠으며 얄미울수록 그의 건강한 체구가 눈앞에 다시 떠올라 종당엔 두눈에 뜨거운것이 고였다.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싸쥐고 냅다뛰였다. 나는 달리다가 그만 풀에 걸려 꼬꾸라졌다. 폭신한 풀이 담요처럼 나를 포옹해주었다. 나는 얼굴을 풀속에 파묻고 흐느꼈다. 나는 갑자기 그 어떤 갈망을 느꼈으며 따라서 뭔가 그리워졌다. 부지중 자신의 가슴속에 싹트는 알지 못할 그 무엇이 생겨남을 느꼈으며 그것으로 하여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이성을 그렸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는 총각은 만룡이가 아니였다. 나는 나와 학력이 비슷한 총각을 못내 그렸던것이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나이도 이만큼 먹었으니 인젠 부모님 신변에 가고싶다는 사연을 만장같이 썼다. 편지피봉을 봉하고있는데 만룡이가 털썩털썩 마당에 들어섰다. 그는 저고리에 무엇인가를 가득 싸안고 집안에 들어섰다. 나는 금방전에 그의 알몸뚱이를 본것으로 하여 가슴이 실없이 두근거렸다. 헌데 그런것을 모르는 만룡이는 외려 멀쑥한 얼굴에 천진한 웃음을 띠우고있었는데 그것이 나를 시름놓게 했다. 만룡이는 저고리에 싼것을 책상우에 와그르르 쏟아놓았다. 그것은 향긋한 냄새를 풍겨주는 빨간 열매였다. 《산딸깁니다. 흑석의 특산인 산딸깁니다. 달콤하고 시원하기로 유명하지요. 자 어서 자셔보십시오.》 《만룡인 언제 이런 익살을 배웠나요?》 나는 웃으며 산딸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당금 사르르 녹는것 같다. 익을대로 익은 산딸기는 향기롭고 달았으며 시원했다.       
207    [시]내압(이병승) 댓글:  조회:1438  추천:12  2009-03-04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옥상 바닥 시원한 물을 뿌려주려고 잠가 둔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거침없이 몸을 흔드는 고무호스 긴 잠에서 깨어난 뱀처럼 시뻘건 각혈과 마른기침이 노래로 변하고 늘어졌던 마음의 통로에 생수의 강이 콸콸 흐른다 사방에 뿌려대는 열정의 땀방울들 더 이상 짓눌린 눈물이 아니다 무지개를 띄워라 거침없이 신나는 춤사위 꼼짝 말라고 두 발로 밟아보지만 그럴수록 더욱 딴딴해지는 오기의 몸짓 그 정도 힘으론 날 못 누르지 흐물흐물 늘어진 생은 끝났다는 저 팽창의 힘 자기를 채워 흘러넘치는 나눔의 통로 채워라, 터질 듯이 채워라 내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외려 솟구쳐 신명나게 춤추는 고무호스 건너 집 옥상 화단, 벽에 매달린 넝쿨까지 살리고 스스로 뜨거워 목마른 해도 적신다 2009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206    [시]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손택수) 댓글:  조회:1486  추천:16  2009-03-04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그의 집엔 주름 문이 있었고 아코디언처럼 문을 접었다 펴면 타향살이 적막한 노래가 가끔씩 흘러나왔다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이 접혔다 펴지며 아련한 소리를 낸다  
205    [시]다리 저는 사람(김기택) 댓글:  조회:1519  추천:12  2009-03-04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그 빽빽한 기둥 사이를 그만 홀로 팔랑팔랑 지나가고 있었다.  
204    [시]사막(정호승) 댓글:  조회:1368  추천:10  2009-03-04
들녘에 비가 내린다 빛물을 듬뿍 머금고 들녘엔 들꽃이 찬란하다 사막에 비가 내린다 빗물을 흠뻑 빨아들이고 사막은 여전히 사막으로 남아 있다 받아들일 줄은 알고 나눌 줄은 모르는 자가 언제나 더 메말라 있는 초여름 인간의 사막  
203    [시]돌아가는 길(문정희) 댓글:  조회:1300  추천:11  2009-03-04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202    [시]물의 결과부좌(이문재) 댓글:  조회:1430  추천:6  2009-03-04
거기 연못 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개의 달이 빠져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도 있느냐 오늘도 거기 있어서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 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참이냐 거기 오늘도 연못이 있어서 구름은 높은 만큼 깊이 비치고, 바람은 부는 만큼만 잔물결 일으키고, 넘치는 만큼만 흘러 넘치는, 고요하고 깊고 오래된 물의 결가부좌가 오늘 같은 열엿샛날 신새벽에도 눈뜨고 있느냐 눈뜨고 있어서, 보름달 이우는 이 신새벽 누가 소리 없이 뗏목을 밀지 않느냐, 뗏목에 엎드려 연꽃 사이로 나아가지 않느냐, 연못의 중심으로 스며들지 않느냐, 수천 수만의 연꽃들이 몸 여는 소리 들으려, 제 온몸을 넓은 귀로 만드는 사내, 거기 있느냐 어둠이 물의 정수리에서 떠나는 소리 달빛이 뒤돌아서는 소리, 이슬이 연꽃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이슬이 연잎에서 둥글게 말리는 소리, 연잎이 이슬방울을 버리는 소리, 조금 더워진 물이 수면 쪽으로 올라가는 소리, 뱀장어 꼬리가 연의 뿌리들을 건드리는 소리, 연꽃이 제 머리를 동쪽으로 내미는 소리,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는 소리, 물잠자리가 제 날개가 있는지 알아보려 한 번 날개를 접어보는 소리------ 소리, 모든 소리들은 자욱한 비린 물 냄새 속으로 신새벽 희박한 빛 속으로, 신새벽 바닥까지 내려간 기온 속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제 길을 내고 있으리니, 사방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니 어서 연못으로 나가 보아라 연못 한가운데 뗏목 하나 보이느냐, 뗏목 한가운데 거기 한 남자가 엎드렸던 하얀 마른 자리 보이느냐, 남자가 벗어놓고 간 눈썹이 보이느냐, 연잎보다 커다란 귀가 보이느냐, 연꽃의 지문, 연꽃의 입술 자국이 보이느냐, 연꽃의 단 냄새가 바람 끝에 실리느냐 고개 들어 보라 이런 날 새벽이면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떠 있거늘, 서쪽에는 핏기 없는 보름달이 지고, 동쪽에는 시뻘건 해가 떠오르거늘, 이렇게 하루가 오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오고, 모든 한살이들이 오고가는 것이거늘, 거기, 물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결가부좌 트는 것이 보이느냐
201    [시]과녁(이동호) 댓글:  조회:1409  추천:6  2009-03-04
나뭇잎 하나 수면에 날아와 박힌 자리에 둥그런 과녁이 생겨난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마다 수면은 기꺼이 물의 중심을 내어준다 물잠자리가 날아와 여린 꽁지로 살짝 건드려도 수면은 기꺼이 목표물이 되어준다 먹구름이 몰려들고 후두둑후두둑 가랑비가 저수지 위로 떨어진다 아무리 많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라도 저수지는 단 한 방울도 과녁의 중심 밖으로 빠뜨리지 않는다. 저 물의 포용과 관용을 나무들은 오래 전부터 익혀왔던 것일까 잘린 나무 등걸 위에 앉아본 사람은 비로소 알게 된다 나무속에도 과녁이 있어 그 깊은 심연 속으로 무거운 몸이 영영 가라앉을 것 같은, 나무는 과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 죽은 듯 서서 줄곧 저수지처럼 수위를 올려왔던 것이다. 화살처럼 뾰족한 부리의 새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나무 위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은, 명중시켜야 할 제 과녁이 나무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작년 빚쟁이를 피해 우리 동네 정씨 아저씨가 화살촉이 되어 저수지의 과녁 속으로 숨어들었다 올해 초 부모의 심한 반대로 이웃마을 총각과 야반도주 했다던 동네 처녀가 축 늘어진 유턴표시 화살표처럼 낚시바늘에 걸려 올라왔다 얼마나 많은 실패들이 절망을 표적으로 날아가 박혔던가 눈물이 된 것들을 위해 가슴은 또 기꺼이 슬픔의 중심을 내어준다 죽음은 늘 백발백중이다.   
200    [시]재로 지어진 옷(나희덕) 댓글:  조회:1457  추천:13  2009-03-04
흰나비가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 건너간다 비를 맞으며 맞지 않으며 그 고요한 날갯짓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격렬함이 깃들어 있어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 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이니 제 마음 몇 배의 돌덩이를 굴려 올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저 사람 슬픔을 물리치는 힘 고요해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고요해   그는 남몰래 가졌을까 옷 한 벌, 흰 재로 지어진  
199    [시]나무에 기댄다(유용주) 댓글:  조회:590  추천:10  2009-03-04
풀잎이 나무에 기댄다 새들이 하늘에 몸 부비고 바위가 흙에 고개 숙인다 사람이 나무에 기댄다 등불이 창문을 뎁히고 집이 마을을 껴안고 논두렁이 들판을 업고 밭이 산자락 쪽으로 마중 나간다 꽃이 벌레를 글썽이고 구름이 강물을 안쓰러워 하고 해와 달이 바다의 속치마에 폭 싸인다 나무가 사람을 들여다본다 사람이 흙에 깃든다
198    [시]물의 집(박제천) 댓글:  조회:1307  추천:12  2009-03-04
빈 방에서 새소리가 도란도란 흘러나온다 들여다보니 백자주전자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한 향기 새소리는 간 데 없다 작설차를 우리는 동안 참새 입술 닮은 잎들이 정담을 나누었나 무심히 주전자 안을 들여다보니 물 속에 무슨 소리의 무늬가 설핏 보이는 듯싶다 우듬지 가득 받아든 햇빛, 뿌리가 탱탱하게 빨아올린 땅속 어둠이 서로 섞여들며 물이 하고 싶은 소리, 잎이 하고 싶은 소리를 물무늬 지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중이다 사람 몸속 어둠을 다 씻어야 해 맑은 기운으로 온몸을 감싸돌아야 해 그 소리 귀 기울이다보니 참 착하다. 참 맛있다 백자 주전자를 기울여 맛깔난 소리를 잔에 가득 채우는 이 황홀 나는 오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물의 말을, 새소리처럼 맑은 잎들의 말을 배부르게 먹었다  
197    [시]꽃뱀의 목에 꽃무늬를 두르는 시간(반칠환) 댓글:  조회:1684  추천:9  2009-03-04
구불구불 길 위로 길 하나 가는 걸 보았느냐. 아무리 곧은 길도 굽어가는 천형을 보았느냐. 평생을 달아나도 제 몸의 길 벗어날 수 없어 서럽게 울며 흰 길 위로 달아나는 한 발 초록길을 보았느냐. 지팡이 하나 봇짐 하나 미투리도 없이 온몸이 나그네인 발바닥을 보았느냐.가시덤불 헤치고 사금파리 넘어 가까스로 신작로 오르면, 우르르 쏟아지는 죄 없는 햇살이여 돌팔매여,머里 지나 허里 지나, 꼬里 이르도록 마디마디 고통의 눈금 새겨지는 가늘고 긴 줄자를 보았느냐. 아픔에서 아픔으로 가는 삼거리, 눈물에서 눈물로 가는 네거리를 재고 또 재는 슬픔의 측량사를 보았느냐.문득 네 앞에 서린 무서운 한 모퉁이, 꼿꼿이 목을 세운 한 타래를 보았느냐. 꽃이 될까, 독이 될까. 꿀꺽,기쁨에서 슬픔으로 가는 지름길에서,슬픔에서 기쁨으로 가는 벼랑길에 한 움큼 붉은 독 이겨 바르는 꽃뱀을 보았느냐. 이름은 꽃길이라도 온몸의 바탕은 지루한 암록인 우리네 구절양장을 보았느냐  
196    [시]콤파스(윤휘윤[미국]) 댓글:  조회:1507  추천:11  2009-02-27
가랑이를 벌리고 집게다리하고 디딜 지점을 찾는 순간 지축을 꿰뚫은 듯 중심은 잡았지만 自轉의 의지를 잡지 못한 통 넓은 치마로 가릴 수밖에 없어 약해지는 마음에 눈 뜨는 만남의 약속은 여울이 되어 원을 그린다 끝도 없이 원을 그린다   《해외문학》에서
195    [시]물이 햇볕을 이긴다(차옥혜) 댓글:  조회:1413  추천:14  2009-02-27
한여름 뙤약볕에서 김을맨다. 몸은 햇볕과 전쟁을 벌이려 수문을다 열어 제치고 물은 빠르게 성벽 옷을 지나 햇볕을 향해 진격한다. 전쟁은 숨 막히고 치열하다 누가 이길 것인가 마침내 날이 저물고 일사병으로 쓰러지지않고 끝끝내 물로 햇볕을 밀어내며 밭을 다 맨 물기둥이 호미를 들고 일어선다. 아직도 흠뻑 젖은 깃발에 쌓여 땅거미 내린 들녁 한가운데 우뚝 물 깃대가 선다. 《해외문학》에서
194    [시]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전기철) 댓글:  조회:1411  추천:9  2009-02-27
아내는 나를 조금씩 바꾼다. 쇼핑몰을 다녀올 때마다 처음에는 장갑이나 양말을 사 오더니 양복을 사 오고 가발을 사 오고 이제는 내 팔과 다리까지도 사 온다. 그때마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두덜거리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다. 당신, 이렇게 케케묵게 살 거예요, 하면 젊은 아내에게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만다. 얼마 전에는 술을 많이 마셔 눈이 흐릿하다고 했더니 쇼핑몰에 다녀 온 아내가 눈을 바꿔 끼라고 한다. 까무러칠 듯 놀라며 어떻게 눈까지 바꾸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들이 구식이라 그래요, 한다. 내 심장이나 성기까지도 바꾸고 싶어하는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서 쩔쩔맨다. 열심히 운동을 하여 아직 절마고 해도 아내는 나를 비웃으며 나무란다. 옆집 남자는 새 신랑이 도었어요. 당신은 나를 위해서 그것도 못 참아요, 한다. 그때마다 시무룩해진 아내가 안쓰러워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아침 일찍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거울 속에서 내 자신이었을 흔적을 찾느라 얼굴을아무리 뜯어보아도 내 모습이 없으니 밖에 나가면 검문에 걸릴까 두려워 일찍 귀가하곤 한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 시》에서
193    [시]여자는 몸의 물기를 닦는다(이원) 댓글:  조회:1365  추천:14  2009-02-27
목욕탕의 대형거울이 알몸의 여자를 정면으로 비춘다 여자의 왼쪽 유방이 있어야 할 자리가 납작하다 유방을 들어낸 자리에 가로로 흉터가 나 있다 뜨거운 시간에 닿았었는지 살이 오그라들었다 뜨거운 시간은 밀봉되는지 흉터가 달라붙은 입 같다 두 개의 유방을 가진 여자들은 재잘거린다 힐끔힐끔 여자의 시간을 빨아 먹는다 이내 뱉어버린다 여자는 수건을 들어 몸의 물기를 닦는다 왼쪽 유방이 있던 자리에서 여자의 손이 멈칫한다 여자는 없는 왼쪽 유방이 무겁다 없는 유방이 출렁거린다 유방을 도려낸 시간으로 여자는 뜨겁게 출렁거린다 유방을 남겨둔 시간으로 여자는 차갑게 출렁거린다 펄펄 끓는 손의 기억으로 여자에게 유방이 솟아오른다 오른쪽 유방이 제 그림자를 왼쪽 유방의 자리에 가만가만 드리워준다 외쪽 유방이 머물던 자리가 불빛을 둥글게 담는다 빛과 어둠으로 빚은 달항아리가 여자의 몸에서 탄생한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 시》에서
192    [시]그래, 생각이 에너지다(이문재) 댓글:  조회:1458  추천:9  2009-02-27
아무리 파도 기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을 팠다. 생각이 에너지다. sk에너지. 아무리 해도 사람들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텔레비전 반대편을 보았다. 맞다, 생각이 에너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지구를 그만 파야 한다. 그만 파야 할 뿐만 아니라 생각이 에너지라는 생각이 팠던 지구의 저 수많은 구멍들부터 막아야 한다. 지금 지구 반대편으로 달려가 구멍을 뚫고 기름을 뽑아올리는 생각은 새로운 에너지가 아니다. 지구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생각이 진정한 에너지다.   아무리 해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지구가 곧 내 몸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럼 그때 자기 몸의 반대편을 파보라. 그때 자기 마음의 안쪽을 보라. 먹고 입고 쓰고 타고 버리는 것의 앞뒤를 보라.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고 그것은 또 어떻게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그런 생각이 새로운 에너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새로운 생각도 못 된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 시》에서
191    [시]너무 어두운 꽃들이여(강태동) 댓글:  조회:1414  추천:14  2009-02-27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나무집에 들러 등불을 켜고 우두커니 들여다본다 꽃들이 환해! 기절을 할 것 같다 제 스스로 굿을 하는 꽃들이 수렁 수렁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칼을 뽑아 이 환한 꽃들을 베어본다 악, 악, 하는 소리 등불을 떨어뜨리고 나는 방금 수렁 수렁대던 꽃들의 어둠으로 걸어들어가 멀리서 곡하는 소리 들린다 방금 빼어 든 칼이 머리 위 그림자로 어른거려 꽃들은 어디 갔어? 멍한 눈을 뜨고 저기 멀리 흔들리는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년 올해의 좋은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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