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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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시]생의 감각(이광섭) 댓글:  조회:1365  추천:10  2008-09-26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129    [시]마지막 기도(이해인) 댓글:  조회:1497  추천:13  2008-09-26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 사는 한 송이의 흰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빛 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나오리라 어떻게 웃을까 고통 속에도 설레이는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이는 들으실까
128    [시]마음이 마음에게(이해인) 댓글:  조회:1407  추천:9  2008-09-26
내가 너무 커버려서 맑지 못한 것 밝지 못한 것 바르지 못한 것 누구보다 내 마음이 먼저 알고 나에게 충고하네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다 욕심이에요 거룩한 소임에도 이기심을 버려야 순결해진답니다 마음은 보기보다 약하다구요? 작은 먼지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구요? 오래오래 눈을 맑게 지니려면 마음 단속부터 잘해야지요 작지만 옹졸하진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진 않게 마음을 다스려야 맑은 삶이 된다고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네요
127    [시]풀꽃의 노래(이해인) 댓글:  조회:1566  추천:15  2008-09-26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126    [시]화살과 노래(롱펠로우) 댓글:  조회:1103  추천:9  2008-09-26
하늘을 향해 나는 활을 당겼다. 화살은 땅에 떨어졌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도 빨리 날아가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다. 하늘을 향해 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땅에 떨어졌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길이 제 아무리 예리하고 강하다한들 날아가는 노래를 그 누가 볼 수 있으랴.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느티나무에서 나는 보았다. 아직 껏이지 않은 채 박혀있는 화살을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125    [시]안개속(헤르만 헷세[독일]) 댓글:  조회:1339  추천:9  2008-09-26
안개속을 거니는 고독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않으니 모두들 다 혼자다 나의 삶이 밝던 그때에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에 안개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다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이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그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안개속을 거니는 고독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나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다
124    [시]촛불(이경식) 댓글:  조회:1415  추천:10  2008-09-26
내 몸을 녹여 불이 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전할수가 없었다 조금씩 나는 사라질지라도 가슴으로 타오르며 어둠을 이겼을 땐 그 누구도 내게서 멀어지지 않았다 비로서 나는 나의 의미를 찾을수 있어서 좋았다 불꽃이 되고 싶다 ...나를 알고 ...또 너를 알수 있는 마음속 가슴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세상에 묻히는 추억이기 보다는 하늘에서도 기억될수 있는 영원한 사랑이고 싶다
123    [시]화살(고은) 댓글:  조회:1356  추천:10  2008-09-26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122    [시]바다와 나비(김기림) 댓글:  조회:1334  추천:12  2008-09-26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121    [시]꽃을 위한 序詩(김춘수) 댓글:  조회:1542  추천:8  2008-09-26
김추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無明)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120    [시]꽃(김춘수) 댓글:  조회:1346  추천:13  2008-09-26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 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119    [시]나비(류시화) 댓글:  조회:1721  추천:8  2008-09-26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 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가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
118    [시]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댓글:  조회:1531  추천:11  2008-09-26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117    [시]나그네(박목월) 댓글:  조회:1668  추천:11  2008-09-26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116    [시]국화 옆에서(서정주) 댓글:  조회:1548  추천:12  2008-09-26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115    [시]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신석정) 댓글:  조회:1490  추천:11  2008-09-26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 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 오던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 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田園)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114    [시]그릇(오세영) 댓글:  조회:1519  추천:8  2008-09-26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113    [시]마지막 섹스의 추억(최영미) 댓글:  조회:1488  추천:11  2008-09-26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안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112    [시]내 마음은(김동명) 댓글:  조회:1797  추천:9  2008-09-26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111    [시]악의 꽃(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댓글:  조회:1385  추천:8  2008-09-26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벼룩을 기르듯이, 우리의 알뜰한 회한을 키우도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고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을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흘린 우리 정신을 악의 배갯머리에서 오래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술사에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인지고!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큰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으로 내려가는구나, 구년묵이 똥갈보의 시달린 젖을 입맞추고 빨아먹는 가련한 탕아처럼, 우리는 지나는 길에 금제의 쾌락을 훔쳐 묵은 오렌지처럼 한사코 쥐어짜는구나. 우리 뇌수 속엔 한 무리의 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이 폐 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 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노효하고, 으르렁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 놈이 바로 ! - 뜻업시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를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 위선의 독자여, - 내 동류여, - 내 형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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