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시 움직이는 그림
김룡운
ㅡ김철호의 동시세계 일별
1. 들어가기 앞서
순수와 맑음과 진선미가 아기자기 모여앉아 오손도손 향기로운 이야기꽃을 피우고있는 동심의 궁궐, 절대의 순수와 천진함과 지고무상의 아름다움이 찬연한 원광을 발산하는 곳. 하기에 성경에서도 동심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서는 천국에 이를수 없다고 했으리라. 결국 동시창작이란 어린이들의 심령 저변에 깔려있는 순결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날이 갈수록 동심의 궁궐을 향해 전진하고있는 동시인들이 불어나 오늘 중국조선족동시단은 전대미문의 왕성기를 맞고있다. 동시대오의 증가, 동시의 대량산출이 이것을 명지하게 말해주고있다. 그러나 량적인 증대가 결코 질적인 발전과 등가를 이루는것은 아니란 엄숙한 시각으로 우리 동시단을 관조하면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시의 량에 비해 값가는 시들이 그리 많지 못하다는것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동시창작을 너무 쉽다고 여기는것이 요즈음의 페단의 하나가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동시창작은 성인시창작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동시는 필경 시라는 외연의 하위개념으로서 시의 속성외에도 동시라는 하나의 내포를 더 가지기에 그만큼 의미방이 더 너르며 아울러 또 자체의 특정된 울타리를 가지고있다. 그러므로 문학일반, 시일반에 대한 총체적인 파악이 있는 전제하에서 동시창작을 운운해야 될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이란 무엇인가 한는것을 기본상 장악한 기초에서 동시창작을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인시에 매달렸다가 자신이 없으면 동시쪽으로 방향판을 돌린다. 문학개념에 대한 오도된 상태에서 동시를 창작하니 훌륭한 동시가 산출될리 만무하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문학리론을 깊이있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부득불 기교의 미달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전설적인 기법으로 현상을 파렬하거나 모방하거나 그대로 재현하는 시들이 상당히 많으며 따라서 개성이 빼여진 작품들이 그리 많지 못하다.
그다음으로 동시에서의 철리성문제이다. 일부 시인들은 동시는 필경 그 상대가 어린이므로 너무 깊은 의미를 깔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의 주장은 동시에도 철리가 체현되여야 한다는것이다. 어린이들에게도 그들로서의 철리가 따로 있으며 오히려 그것은 성인에 비해 순진하고 유치하면서도 오묘하여 때로는 성인의 사유방식으로서는 종잡을수 없을 때가 있다. 그들의 철리는 흔히 무한한 상상과 과장과 추상속에 깃들어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철리를 체현시키는것은 대단히 간고한 작업이 아닐수 없다. 이 무거운 과제가 지금 동시인들을 기다리고있다.
상술한 모든 문제를 극복하자면 동시에 일대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사실 동시뿐만아니라 성인시를 비롯해서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일반이 혁명을 해야 한다. 혁명을 하자면 전위의식을 앞세우고 사유의 갱신과 의식의 갱신을 하여야 한다. 이 면에서 한족문단은 우리의 본보기가 된다. 한족문단의 전위파들은 지금 한창 열을 올려 “감각환원”, “의식환원”, “언어환원”을 내용으로 하는 “창조환원”을 부르짖고있다. 우리는 이들을 따라배워야 한다. 그러나 단지 용기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지런히 배우고 탐구를 하여야 하며 종합적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른바 종합적사유란 정치, 경제, 문화, 생명, 죽음, 종교, 철학에 대한 종합적사고를 일컬은다. 우리 동시단에는 종합적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의 혁신을 꾀하고저 하는분들이 더러 있어 무척 기쁘기도 한데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이런분들이 아동문학의 키를 잡고 아동문학의 드넓은 대해를 질주하고있기에 아동문학의 앞길은 밝고 희망차다.
이 글에서 얘기하고저 하는 김철호시인도 동시단의 앞장에 서서 달리고있는 기둥시인의 한사람이다.
한때는 성인시를 쓰던 사람인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동시에 미쳐나기 시작했고 그후 피타는 각고의 려정을 겪더니 오늘은 마침내 우리 동시단의 거물급시인중의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김철호시인은 동시를 어렵게 생각하고 쓰는 시인이며 탐구를 하면서 쓰는 시인이며 일정한 정도로 사유의 갱신과 의식의 혁명을 꾀하면서 쓰는 시인이다.
지금부터 김철호의 동시세계에로 들어가 구체적인 시들과 얼굴을 맞대보기로 한다.
2. 신선함과 맑음에 시원을 둔 시
김철호의 동시들을 읽어보면 신선하구나, 맑구나, 한폭의 싱싱한 수채화같구나 하는 생각을 털어버릴수 없다.
바람 솔솔
새 아침엔
해살도 새것
금빛 예쁜 새 해살
창문으로 쏙쏙
해님 방글
새 아침엔
이슬도 새것
은빛 고운 새 이슬
풀잎에서 돌돌
ㅡ “새 아침” 전문
새 생명의 탄생과 약동을 노래한 시란 모든 소란과 오욕이 배제된 세계, 유독 새 아침만이 광활한 우주에 덩실 솟아 싱그러움과 예쁨을 발산한다. 저 “금빛 예쁜 새 해살”, 저 “은빛 고운 새 이슬”, 그것들이 “창문으로 쏙쏙” 머리 들이밀기도 하고 “풀잎에서 돌돌” 구을기도 한다. 순수한 자연과 순수한 동심이 하나로 합쳐져 무한히 아름다운 경지를 한껏 펼쳐주면서 읽는이의 마음을 차분한 감상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예쁜 새 해살”, “고운 새 이슬”,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 아침”이 곧 어린이라고 생각해볼 때 이보다 더 큰 만족이 어디 또 있겠는가. 그리고 무슨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숲속학교”는 구체적인 현장속에서 동적인 분위기를 만들면서 우리와 이야기 한다.
새들이 노래공부 한창일 때엔
꽃들도 얌전히 피여납니다
지지종종 도레미 지지종종 미화쏠
숲속은 도레미화 새들의 학교
다람이 산수공부 한창일 때엔
바람도 숨어서 구경합니다
또릿또릿 개암 하나 요리조리 개암 둘
숲속은 하나, 둘, 셋 다람이학교
ㅡ “숲속학교” 전문
시인은 숲을 인간세상으로 설정해놓고 그속에다 새들의 학교와 다람이학교를 세우고있다. 맑고 푸르고 시원한 숲속에 세워진 학교, 그 학교도 역시 숲속처럼 푸른 향기, 싱그러운 향기로 차넘치리라. 지지종종 유쾌한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있는 새들의 학교, 로동과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개암을 헤아리는 다람이학교, 세상의 모든 소란스러움과 비리, 강탈, 전쟁, 폭행이 없이 숲속과 그속에 있는 학교, 그리하여 그것은 평화와 신성함의 요람으로 되여 따라서 경건함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하기에 꽃들도 얌전히 피여나고 바람도 숨어서 구경한다.
한수 더 살펴보자.
구름산 구름산 움직이는 산
푸른 하늘 두둥실 움직이는 산
하얀 토끼 한마리 산에서 논다
하얀 범 한마리 산을 내린다
구름산 구름산 떠다니는 산
푸른 하늘 두둥실 떠다니는 산
하얀 사슴 한마리 산에서 뛴다
하얀 곰 한마리 산에 뒹군다
ㅡ “구름산” 전문
“구름산”은 강한 동작성과 함께 그 시원을 “하얀”에 두고있다. 토끼도 하얗고 범도 하얗고 사슴도 하얗고 곰도 하얗다. 하얀것들이 마음껏 뛰노는 하늘세계, 우리들의 마음도 금시 하얗게 물드는듯싶다.
우의 시들에서 살펴보았지만 김철호의 동시들은 그 시원(詩源)을 푸르름과 맑음과 하얀것에 두고있기때문에 만들어지고있는 시들이 신선하고 맑으며 푸른 향기로 넘치고있다.
3. 움직이는 시, 움직이는 그림
우수한 아동문학작가들은 언제나 동심과 함께 산다. 아니, 창작순간에는 곧바로 어린애로 되고만다. 김철호시인은 동심의 밖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동심의 대문을 열고 그안에 들어가 동심과 함께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숨박곡질을 놀고 춤을 추고 노래 부르고 함께 뒹굴고 장난을 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움직이는 시로 되고있으며 한폭의 생생한 수채화로 그려진다.
어린이들의 가장 큰 특성의 하나가 동작성이 강한것이다. 그들은 웬간해서는 앉아있거나 누어있지 안고 자꾸 움직이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말 속담에 아이들과 장독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김철호시인은 동심의 이러한 특점을 잘 포착하고있기에 그의 시들은 살아서 펄떡펄떡 뛴다.
산같은 구름도
밀고 당기면서 논다
거울같은 련못도
산산이 부시면서 장난친다
ㅡ “바람” 전문
시인의 눈에 비치는 구름과 련못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의인화된 어린이다. 밀고 당기면서 놀고있는 구름과 잔물결을 일구면서 장난치는 련못, 얼마나 재미있고 생동한가. 신인은 구름이 왜서 밀고 당기는지, 잔물결이 왜서 장난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시가 되는것이다. 사실 어린이들이 사물을 관찰할 때 망막에 안겨드는 사물 그 자체만으로 리유가 충족하므로 구태여 인과관계를 운운할 필요가 없다.
동작성과 회화성이 극치를 이루는 “구름산”인것 같다.
“구름산”에서 보면 천태만상을 이룬 자연의 기기묘묘한 제 현상이 움직이는 시로, 움직이는 그림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움직이는 구름을 움직이는 산이라고 상상한다. 다시 어린이들의 눈으로보는 경상이라 하겠다. 그것도 고정된 산인것이 아니라 두둥실 흘러가는 산이다. 그 우람한 산속에서 하얀 토끼 한마리가 놀고 하얀 범 한마리가 산을 내리고 하얀 사슴 한말가 뛰고 하얀 곰 한마리가 뒹군다.
“코스모스”도 한폭의 움직이는 그림으로 되기에 족하다.
키다리 코스모스 손에 손잡고
갈바람 한들한들 손에 손잡고
하얗게 빨갛게 손에 손잡고
어디로 가느냐 손에 손잡고
키다리 코스모스 손에 손잡고
먼 하늘 한들한들 손에 손잡고
당기며 밀며서 손에 손잡고
어디로 가느냐 손에 손잡고
ㅡ “코스모스” 전문
정다운 7.5조로 노래부르고있는 “코스모스”, 지금 알락달락한 꼬까옷을 떨쳐입은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의 손목을 잡고 먼 하늘로 한들한들 즐거운 려행을 떠난다. “손에 손잡고”가 여섯번 반복되는 이 시는 단결과 우애, 화목의 분위기도 다분히 안고있다. “코스모스”야말로 오늘 행복하게 자라나고있는 우리 시대의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닐가.
이제 움직이는 시, 움직이는 그림으로서의 김철호의 동시들을 삽화로 그려보자.
“바람” = 떠가는 구름, 잔물결 치는 련못.
“새 아침” = 창문으로 들이비추는 새 해살, 풀잎에서 구을고있는 이슬.
“숲속학교” = 나무우에 오구구 모여앉은 새무리, 개암을 굴리는 다람이들.
“가을산” = 울긋불긋 곱게 단풍이 든 산등성이, 그우를 밟고 지나는 어린이들.
“구름산” = 하얀 토끼, 하얀 범, 하얀 사슴, 하얀 곰.
“코스모스” = 줄지어 서있는 각양각색의 코스모스.
이상으로 김철호의 동시들을 간단히 훑어보았다. 대부분이 훌륭한 시들이였지만 “노래시합 간다”, “북” 등 시들은 평범무이한 시들의 계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감을 주었다.
성과가 있는 시인일수록 자기를 초월하여 새로운 차원에로 오르기가 아주 어렵다. 그만큼 많이 탐구하고 몸부림쳐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금후 김철호시인이 더 피타는 노력을 경주하여 우리 동시의 화단에 더 알차고 예쁜 꽃송이들을 선물해줄것을 기대해본다.
《아동문학》200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