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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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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9    미국 시인 - 엘리자베스 비숍, 에이드리언 리치 댓글:  조회:2902  추천:0  2021-01-26
미국의 문학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1911년~1979년)과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 1929년~ )     엘리자베스 비숍 특이한 여성 시인들 중에는 엘리자베스 비숍과 에이드리언 리치가 최근 가장 많이 존경받고 있다. 비숍의 투명한 지성, 외진 풍경에 대한 관심, 여행과 관련한 은유들은 정확성과 섬세함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비숍은 자신의 정신적 선배인 메리앤 무어처럼 결혼하지 않았고, 철학적 깊이를 내포하고 있는 냉담하고 묘사적인 스타일로 멋진 시들을 창작했다. 〈어시장에서(At the Fishhouses)〉처럼 매우 추운 대서양 북부의 묘사는 비숍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지식이 그러했으면 하는 것들과 닮았다 / 검고, 짜고, 맑고, 움직이고, 완전히 자유로운." 플라스, 섹스턴, 에이드리언 리치 등의 '뜨거운' 시들과 비교해서, 비숍의 시는 무어의 시와 함께 에밀리 디킨스까지 족적을 찾아갈 수 있는 '차가운' 여성 시 전통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리치는 비록 전통적인 형식과 운율에 맞춰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작품들, 특히 그녀가 1960년대에 열렬한 페미니스트가 된 후에 쓴 작품들은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특히 재능을 보인 곳은 은유인데, 그녀의 뛰어난 작품 〈난파선으로 잠수하기(Diving Into theWreck)〉(1973)는 여성의 정체성 찾기를 난파선을 찾아 잠수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난파선은 여성의 자아 상실과 같은 것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을 뚫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화자는 주장한다. 시인 드니즈 레버토프에게 바치는 리치의 시 〈루프워커(The Roofwalker)〉(1961)에서는 여성의 시 창작을 위험한 작업과 동일시하고 있다. 지붕을 만드는 남성들처럼 그녀는 "실제보다 크고, 노출되었으며 / 언제라도 목이 부러질" 것처럼 느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1911년~1979년)과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 1929년~ )  
7858    미국 시인 - 제임스 디키 댓글:  조회:2636  추천:0  2021-01-26
미국의 문학 제임스 디키(James Dickey, 1923년~1997년)     이미지 크게보기 제임스 디키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인 제임스 디키는 조지아 주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주제가 자아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야만 하는 연속성에 대한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작품들 다수는 강과 산, 날씨 변화,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등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디키는 남성간 우정의 어두운 면을 다룬 소설 《석방(Deliverance)》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책이 출간되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그의 명성은 높아졌다. 그의 최근 시집들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예리코 : 남부 관망(Jericho : The SouthBeheld)》(1974)에서는 남부의 풍경을, 《신의 이미지(God's Images)》(1977)에서는 성경의 영향 등을 보여주고 있다. 디키는 종종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필사적으로 이루고 / 요구 이상으로 해내며"라는 표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임스 디키(James Dickey, 1923년~1997년)  
7857    미국 시인 - 필립 레빈 댓글:  조회:2759  추천:0  2021-01-26
미국의 문학 필립 레빈(Philip Levine, 1928년~ )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필립 레빈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노동자들의 경제적 고통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휴고와 마찬가지로 레빈도 도시 빈민 출신이다. 그는 산업 사회에 갇힌 외로운 사람들을 대변해왔다. 그의 시 다수가 우울하며, 정부 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임을 아는 가운데 느끼는 무정부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시에서 레빈은 용기와 꾀로 사냥꾼들의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여우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운율법을 사용하다가 후기로 가면서 더욱 자유롭고 형식에 개의치 않는 시를 창작했다. 또한 그는 현대 사회의 악에 대한 외로운 저항을 작품에 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필립 레빈(Philip Levine, 1928년~ )  
7856    미국 시인 - 리처드 휴고 댓글:  조회:2521  추천:0  2021-01-26
미국의 문학 리처드 휴고(Richard Hugo, 1923년~1982년)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난 리처드 휴고는 시어도어 레트키의 문하생이다. 그는 비참한 도시 환경 속에서 가난하게 자랐으며 미국 북서부를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희망, 공포, 좌절 등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휴고는 과감하게 억양격을 활용해 미국 북서부의 허름하고 잊혀진 작은 마을에 대한 향수 어린 고백적 시를 창작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의 수치, 좌절, 배척 등을 다루었다. 또한 자세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디테일에 독자가 관심을 집중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당신이 매우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미국적인 것이다(What Thou Lovest Well, Remains American)〉(1975)라는 시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기억을 음식인 것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당신이 이상한 텅 빈 마을에서 길을 잃고 배고픈 연인들을 친구로 삼고 싶고 그들이 만든 길가 선술집에서 환영을 받고 싶다면··· [네이버 지식백과] 리처드 휴고(Richard Hugo, 1923년~1982년)  
7855    미국 시인 - 시어도어 레트키 댓글:  조회:2681  추천:0  2021-01-26
미국의 문학 시어도어 레트키(Theodore Roethke,1908년~1963년)     온실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시어도어 레트키는 작은 벌레들과 보이지 않는 뿌리로 채워진 '온실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특별한 언어를 개발했다. "벌레야, 내 곁에 있어주렴 / 내가 아주 힘들거든." 《바람을 위한 말(Words for the Wind)》(1958)에 실린 그의 사랑시는 순수한 열정으로 아름다움과 욕망을 찬미하고 있다. 그의 시 하나는 "나는 바짝 말라 아름다운 여성을 알고 있는데 / 작은 새들이 한숨을 쉬면 그녀 또한 한숨으로 답했다"라고 시작한다. 때때로 그의 시는 자연에 관한 짧고 오래된 수수께끼 같다. "누가 먼지를 기절시켜 소리 지르게 만들었는가? / 두더지에게 물어보렴, 그가 알고 있으니."     [네이버 지식백과] 시어도어 레트키(Theodore Roethke, 1908년~1963년)  
7854    미국 시인 - 존 베리먼 댓글:  조회:2782  추천:0  2021-01-26
존 베리먼(John Berryman, 1914년~1972년)     존 베리먼의 삶은 로버트 로웰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베리먼은 북동부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와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원이 되었다. 전통적인 형식과 운율을 따랐던 그는 초기 미국 역사에 영감을 받았으며 《꿈 노래(Dream Songs)》(1969)를 통해 자기 비판적이고 고백적인 시들을 발표했다. 이 시집에서 베리먼은 헨리라는 괴이한 자전적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일상적인 교편 생활, 만성 알코올 중독, 야심 등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동시대 작가 시어도어 레트키처럼 베리먼은 민담, 동요, 상투어, 속어 등의 구문으로 활기를 더해 유연하고 쾌활하며 동시에 심오한 스타일을 개발했다. 베리먼은 헨리에 대해서 "그는 폐허를 바라보았다. 폐허가 대답하듯 그를 쳐다보았다"라고 적고 있다. 다른 곳에서 그는 "이런, 이런, 이런 / 무관심이 언제 올 것인가, 나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기뻐 소리친다네"라고 쓰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존 베리먼(John Berryman, 1914년~1972년)  
7853    미국 시인 - 앤 섹스턴 댓글:  조회:2820  추천:0  2021-01-26
미국의 문학 앤 섹스턴(Anne Sexton, 1928년~1974년)     플라스처럼 앤 섹스턴도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아내, 어머니, 시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고 했던 열정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도 플라스처럼 정신 질환으로 고생했으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섹스턴의 고백시는 플라스의 시보다 더욱 자전적이며, 플라스의 초기 시가 가진 능숙함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섹스턴의 시는 강렬하게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성, 죄의식, 자살 등 금기시되었던 소재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녀는 종종 여성의 관점에서 본 임신, 여성의 육체, 결혼 등의 여성적인 주제들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시 〈그녀의 종류(Her Kind)〉(1960)에서는 화형에 처해지는 마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나는 당신의 수레에 탄 적이 있어요, 마부여 내 벌거벗은 팔을 지나가는 동네사람에게 흔들면서 마지막 환한 길을 배우며, 생존자여 당신의 화염이 내 정강이를 아직도 물어뜯는 그리고 당신의 바퀴가 구를 때 내 갈비뼈에는 금이 가는 그곳을. 죽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여성. 나는 그녀와 한 종류였다오. 그녀의 작품집 제목을 보면 광기와 죽음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집 중에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일부(To Bedlam and Part Way Back)》(1960),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Live or Die)》(1966), 그리고 사후에 출간된 《하느님을 향한 서툰 배젓기(The Awful Rowing Toward God)》(1975)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앤 섹스턴(Anne Sexton, 1928년~1974년)  
7852    미국 시인 - 실비아 플라스 댓글:  조회:2478  추천:0  2021-01-26
미국의 문학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년~1963년)     이미지 크게보기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는 스미스 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닌 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들어가는 등 외면적으로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녀는 카리스마적인 영국 시인 테드 휴즈를 만나고 그와 함께 아이 둘을 낳아 잉글랜드의 작은 시골집에 정착했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 《유리 그릇(The Bell Jar)》(1963)에 나타나듯이 동화 같은 성공 뒤에는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인 문제들이 곪고 있었다. 그녀가 안고 있던 문제들 중 일부는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여성에 대한 1950년대의 억압적인 풍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풍조 중에는, 여성은 분노를 표출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경력을 야심적으로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대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대부분 여성들 또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비아 플라스 같은 성공한 여성들은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살아야 했다. 플라스의 동화 같은 삶은 휴즈와의 별거로 무너졌고 그녀는 극도로 추운 겨울날 런던의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아프고 고립된 채 절망에 싸인 플라스는 부엌에서 가스로 자살하기 전까지 시 창작에 몰두했다. 이 시들은 그녀가 죽은 지 2년 후에 출간된 시집 《아리엘(Ariel)》(1965)에 수록되었다. 이 시집의 머리말을 쓴 로버트 로웰은 그녀와 앤 섹스턴이 1958년 자신의 시 수업을 듣던 때에 비해 플라스의 시가 급격하게 발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플라스의 초기 시는 깔끔한 정통 시들이었지만, 후기 시는 대담성과 원형 페미니스트다운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원자(The Applicant)〉(1966)라는 시에서 플라스는 아내를 무생물인 '그것(it)'이라고 축소하며, 아내 역할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있다. 살아 있는 인형, 너는 어디서나 본다. 그것은 바느질하고, 요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말하고, 말하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잘 한다, 거기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너는 구멍이 있다, 그것은 땜질한 것이다. 너는 눈이 있다, 그것은 그냥 환상이다. 내 아이야, 그것은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과 결혼, 결혼, 결혼하겠니. 플라스는 동요적인 운율과 잔인할 정도로 직접적인 표현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그녀는 대중문화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솜씨 있게 활용했다. 아기에 대해 그녀는 "사랑은 너를 뚱뚱한 금시계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시 〈아빠(Daddy)〉에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영화에 나오는 드라큘라로 상상하고 있다. "당신의 기름진 검은 심장엔 말뚝이 박혔고 /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어요." [네이버 지식백과]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년~1963년)  
7851    미국 시인 - 칼 샌드버그 댓글:  조회:2909  추천:0  2021-01-26
두산백과 칼 샌드버그   [ Carl Sandburg ] 요약 미국 시인. 시카고라는 근대도시를 대담 솔직하게 다루었으며 부두 노동자나 트럭 운전사들이 쓰는 속어나 비어(卑語)까지도 시에 도입해 전통적인 시어(詩語)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주요 저서에는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사람》등이 있으며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링컨 연구자로도 유명하다. 출생-사망 1878.1.6 ~ 1967.7.22 국적 미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미국 일리노이주 주요수상 퓰리처상(1940, 1951) 주요작품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사람 Cornhuskers》(1918) 스웨덴계 이민의 아들로 일리노이주(州) 출생. 집이 가난하여 어려서부터 갖가지 노동에 종사하다가 아메리카-에스파냐 전쟁에 종군하였다. 제대 후에는 고향에 있는 롬버드대학에서 고학으로 공부하였으며, 그 뒤 신문기자가 되어 정치운동에도 관여하는 한편, 시작(詩作)에도 손을 대었다. 1914년에 잡지 《포에트리 Poetry》에 《시카고 Chicago》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일약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의 시는 시카고라는 근대도시를 대담 솔직하게 취급, 부두 노동자나 트럭 운전사들이 쓰는 속어나 비어(卑語)까지도 시에 도입, 전통적인 시어(詩語)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1916년에 《시카고》를 포함하여 중서부 지방의 자연을 노래한 작품을 모아 《시카고 시집 Chicago Poems》을 출판, 뒤이어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사람 Cornhuskers》(1918) 《연기와 강철 Smoke and Steel》(1920) 《전(全)시집 Complete Poems》(1950, 퓰리처상 수상) 등을 간행하였다. 그는 또 링컨 연구자로도 유명하여 대작 《링컨, 대초원 시대 Abraham Lincoln:the Prairie Years》(2권, 1926) 《링컨, 남북전쟁 시대 Abraham Lincoln:the War Years》(4권, 1939, 퓰리처상 수상)를 썼고, 이 밖에 각지의 민요와 전설을 모은 《아메리카 민요집 The American Songbag》(1927), 자서전 《언제나 젊은 이방인들 Always the Young Strangers》(1953) 등을 남겼다. ===============================/// 미국의 문학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년~1967년)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칼 샌드버그에 대해 짧게 적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흑백사진 한 장으로 그랜드캐니언을 담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시인이자 역사가, 전기작가, 소설가, 음악가, 수필가이기도 했던 샌드버그는 철도 제철공의 아들로 태어나 수많은 일을 한 인물이다. 직업적으로는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20세기 고전 작품 중 하나인 거대한 분량의 에이브러햄 링컨 전기를 집필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샌드버그는 범위가 넓고 기억을 상기시키는 도시적, 애국적 시들을 창작하며 단순하고 순수한 동요 및 민요 형식을 이용한 점에서 월트 휘트먼을 연상시킨다. 그는 자신의 시를 노래하는 듯 경쾌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낭송하고 녹음하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전국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우쭐해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은 "감옥에 가지 않고, 제때에 밥을 먹으며, 내가 쓴 것을 출간하고, 가정과 미국 전역에서 자그마한 애정을 받으며, 날마다 노래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제와 휘트먼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시카고(Chicago)〉(1914)라는 시이다. 세상 사람들을 위한 돼지 도살자, 연장 제조자, 밀을 저장하는 자, 철도에서 일하는 자, 국가의 화물 취급자 ; 격렬하고, 튼튼하고, 요란한 큰 어깨들의 도시. [네이버 지식백과]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년~1967년)  
7850    "시는 그림자도 춤추게 하는 메아리" 댓글:  조회:2248  추천:0  2021-01-26
오피니언   詩가 나를 춤추게 하네 최재천 교수 2021.01.26    제46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22세 청년 계관시인 어맨다 고먼이 낭송한 축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은 시가 왜 예술의 최정점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시는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너무 좋아 완벽한 문장일 필요도 없다”는 말처럼 그는 겨우 3937자로 우리 모두의 마음을 훔쳤다. “빛은 언제나 거기 있다/ 우리에게 빛을 바라볼 용기만 있다면/ 우리에게 빛이 될 용기만 있다면.”   지난 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송하는 어맨다 고먼./로이터 연합뉴스 고먼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한 여섯 번째 시인이다. 이 전통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가지 않은 길’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모시면서 시작됐다. 그 후 클린턴 대통령은 마야 앤절루(1993)와 밀러 윌리엄스(1997)를,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더(2009)와 리처드 블랑코(2013)를 초대했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프로스트가 케네디 대통령을 위해 따로 축시를 준비했다가 당일 아침 눈이 너무 부셔 읽지 못하고 자신의 시 중 하나를 암송한 일화는 유명하다. 바이든 대통령 영부인 질 바이든의 요청을 받은 고먼도 탈고의 진통을 겪다가 지난 6일 의회 폭동을 지켜본 뒤 밤을 새워 쏟아냈다고 한다. “우리는 나라를 산산조각 내려는 힘을 지켜보았다/ …/ 그리고 그 노력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때로 멈출 수는 있어도/ 결코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 시인 칼 샌드버그는 일찍이 “시는 그림자도 춤추게 하는 메아리”라 했다. “우리의 따뜻한 마음과 힘을 합하면/ 그리고 그 힘과 공정함을 합하면/ 사랑이 우리의 유산이 된다.” 고먼의 시는 우리 모두의 그림자를 갈등과 분열의 늪에서 건져내 화합과 희망의 언덕으로 밀어 올려주었다. 20세기가 기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했듯이, 21세기의 막은 2021년에 오른다.
7849    [세상만사] - 하면 된다... 댓글:  조회:2404  추천:0  2021-01-26
국제 바이든 취임식서 시낭송한 그 소녀, 세계 최고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 김수경 기자 2021.01.26      아만다 고먼/IMG 인스타그램   미국 대통령 취임식 역사상 최연소 축시 낭독자인 아만다 고먼(22)이 세계적인 모델 에이전시인 ‘IMG 모델’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25일(현지 시각)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보도했다. 세계적인 모델 에이전시인 IMG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LA, 파리, 런던, 밀라노, 시드니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케이트 모스, 지젤 번천, 미란다 커, 벨라 하디드 등이 이곳 소속이다. IMG와 계약하는 것만으로도 커리어가 보장되는 셈이다. 고먼은 취임식 시낭송 이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7000명이었던 트위터 팔로워가 140만명이 됐고,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310만명으로 늘었다. 그가 취임식 당시 착용했던 프라다 헤어밴드는 이미 품절이고, 귀걸이와 반지도 모두 구하기 어려워졌다. IMG는 고먼의 패션과 뷰티 분야를 맡아 관리할 예정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 낭독을 하고 있는 아만다 고먼./로이터 연합뉴스 고먼은 10대 시절인 2017년 미국 젊은 시인상을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인종차별 철폐와 페미니즘 활동가이기도 하다. 시 낭독 전 자신을 “노예의 후예”라고 소개했다.   바이든과의 공통점도 있다. 말더듬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고먼은 취임식 당일 실린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청각 장애로 말을 더듬었다. 사람들이 나를 나이지리아에서 막 이민 온 아이로 여기곤 했다”고 말했다. 취임식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바로 뒤에 등장한 고먼은 약 5분에 걸쳐 ‘우리가 오르는 이 언덕(The Hill We Climb)’을 낭송했다. 그는 이 시의 3937자에 갈등과 분열을 넘어 통합과 화합으로 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모두가 경청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페이스북에 “아만다, 계속 반짝반짝 빛나길 바란다”고 썼고,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또 다른 젊은 여성의 활약에 자랑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7848    [그것이 알고싶다] - 색... 댓글:  조회:2465  추천:0  2021-01-21
국제 ...집무실 보면... 이현택 기자  2021.01.21      20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벽면의 모습. 벽난로 위 중앙 부문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왼편에는 토머스 제퍼슨과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오른편에는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과 알렉산더 해밀턴 당시 재무장관 초상화가 짝 지어 있다.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신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집무실에 걸려 있는 초상화 등 미술품들도 그의 신념에 맞게 대거 교체됐다고 AP통신과 가디언 등이 2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날 백악관 업무동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앤드루 잭슨 제7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빠진 것이다. 남북전쟁 전 대통령을 지낸 잭슨은 흑인 노예를 부렸으며,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도 가혹하게 정책을 행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 자리는 과학자 출신 정치인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화로 대체됐다. 이는 과학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짚었다. 백악관 집무실 벽난로 바로 위 중앙 자리에는 대공황을 이겨낸 프랭클린 루스벨트 32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설치됐다. 왼편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노예제를 폐지한 에이브러햄 링컨 16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놓였다. 오른편에는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과 알렉산더 해밀턴 당시 재무장관의 초상화도 짝지어 배치됐는데, 이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인물들이 함께 일한 것을 상징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벽난로 옆에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등의 흉상이 세워졌다. 또한 라틴계 노동운동가 세자르 차베스, 원주민 아파치를 나타내는 조각상, 상원의원 출신의 일본계 정치인 대니얼 이노우에의 조각상도 놓였다. 카페트와 커튼, 벽지 등 심미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밝은 색을 좋아하는 트럼프와는 달리 바이든은 어두운 파란색 계열의 카페트를 놓았다. 또한 집무실 책상 앞에는 사망한 아들 보 바이든을 비롯한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들이 올려졌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른바 ‘결단의 책상’으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 업무책상은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때 사용한 것과 같은 것을 쓴다고 외신은 전했다.
7847    [그것이 알고싶다] - 22... 계관시인... 댓글:  조회:2781  추천:0  2021-01-21
문화·라이프 스물두 살 청년 계관시인, 갈라진 미국의 상처 어루만지다 채민기 기자  2021.01.21      20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청년 계관시인 어맨다 고먼이 시를 낭송하고 있다. 어맨다는 미국 대통령취임식에서 낭송한 역대 최연소 시인이다. /EPA 연합뉴스 “역경을 지나 우리는 목격했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을 뿐 무너지지 않은 나라를.” 20일(현지 시각)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의 깜짝 스타는 통합과 치유를 노래한 22세 청년 계관시인(National Youth Poet Laureate) 어맨다 고먼(Gorman)이었다. 이날 약 6분 동안 낭송한 그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은 이날 새 지도자를 맞이하기까지 극한의 갈등을 거쳐온 미국 사회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하던 시점에 완성했다고 한다. “어디서 빛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시는 “우리에게 빛을 바라볼 용기가 있다면 빛은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라고 끝을 맺는다. 고먼은 춤추듯 리드미컬한 손짓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뉴욕타임스는 “분열을 넘어설 통합의 희망을 담은 시”라며 “취임식 주제인 ‘하나 된 미국’을 반영해 결속과 구원, 화해를 노래했다”고 평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고먼의 시구를 인용한 찬사를 남겼다. “역사에 남을 이 날에 더없이 어울리는 시였다. 고먼과 같은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빛을 바라보고,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빛은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의 증거다.” 고먼은 “노예의 자손으로 싱글 맘 손에 자란 말라깽이 흑인 소녀가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나라와 시대”라는 구절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자신의 성장 배경을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고먼은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겪었던 언어 장애를 글쓰기와 음악으로 극복했다. 16세에 로스앤젤레스 청년 계관시인이 됐고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2017년엔 미국 최초로 도입된 청년 계관시인에 선정돼 이름을 알렸다.     새장 속 새 모양의 반지로 마야 앤젤루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어맨다 고먼.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한 앤젤루는 자전적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남겼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해에 고먼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열린 낭독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가 취임식 무대에 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의 영상을 본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달 고먼에게 연락해 취임식을 위한 시를 쓰고 낭송해달라고 요청했다. 바이든 여사는 고먼에게 “노란 옷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도 했다. 고먼이 취임식 의상으로 프라다의 노란 코트를 선택한 것은 여기에 대한 화답이다. 이날 고먼이 착용한 귀걸이와 반지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선물했다. 윈프리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한) 마야 앤젤루에게도 코트와 장갑을 선물했다”며 고먼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특히 새장 속 새 모양의 반지는 자전적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를 남긴 앤젤루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20일(현지시각) 열린 취임식에서 어맨다의 시낭송이 끝나자 조 바이든 대통령과 영부인 질 바이든 박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일어나 박수를 보내고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를 낭송한 이후 일부 민주당 대통령들이 이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낭송 무대를 부활시킨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앤젤루와 밀러 윌리엄스(1997년 재선)가 초청받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취임한 2009년엔 엘리자베스 알렉산더, 재선에 성공한 2013년엔 리처드 블랑코가 시를 낭송했다. 채민기 기자
7846    [그것이 알고싶다] - 그림자... 댓글:  조회:2611  추천:0  2021-01-21
  뒤에서 그림자처럼...그 한국 남자 정체가 뭐야? 한국계 경호총책 데이비드 조 ”동료 신망 두터운 완벽주의자” 평가 트럼프 땐 북미정상회담 경호 작전 수행 김은중 기자  2021.01.21    “저 아시아계 사람은 누구야?” 20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제48대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가운데, 취임식 내내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아시아계 보디가드의 정체에 이목(耳目)이 집중됐다. 트위터 등에는 “저 중국 남자는 누구냐” “바이든 백악관에 아시아인이 고위직을 맡은 사람이 있었나”하는 추측성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조, 미국 언론이 “완벽주의자”라고 칭찬한 한국계 경호 총책임자다.   20일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앞서 차에서 내리는 바이든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데이비드 조(사진 왼쪽)의 모습. /트위터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경호 총괄은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국(SS) 소속으로 한국계인 조씨가 맡고 있다. 20여년을 근무했고, 지난달 초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비밀경호국 내 팀 재편이 이루어지면서 바이든의 경호 총괄로 선발돼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경호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데이비드 조(왼쪽에서 첫번째)의 모습. /CNN 캡처 조씨는 과거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2008~2016년)으로 있을 때도 경호한 경험이 있는 ‘익숙한 얼굴’이라고 외신들은 설명했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을 최근접 경호하는 ‘경호부장’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동료들의 신망도 두텁고 “평가 좋은 완벽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고 한다.     한국계 경호총괄 데이비드 조씨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경호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 /트위터 조씨는 비밀경호국에서 백악관 일대 보안 계획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는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때 성공적으로 경호 작전을 수행했다. WP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호팀의 ‘넘버2’까지 오른 인물이라고 전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미 국토안보부 장관이 수여하는 ‘우수 공무원을 위한 금메달(Gold Medal for Exceptional Service)’을 수상했다.   2019년 국토안보부에서 금메달 받은 데이비드 조(가운데) 백악관 비밀경호국 요원./국토안보부 홈페이지 캡처
7845    [그것이 알고싶다] - 4... 8... 댓글:  조회:2262  추천:0  2021-01-19
국제 방 16개, 화장실 6개인 백악관 가족 공간, 5시간 내 입주 준비 끝내야 이철민 선임기자  2021.01.19    백악관 내 미 대통령 가족이 생활 공간을 관리하는 약 90명의 직원에게 4년 또는 8년마다 주인이 바뀌는 1월20일은 가장 바쁜 날이다. 미국 대통령 가족의 주(主)생활 공간인 백악관 2층에는 16개의 방과 6개의 화장실이 있다. 또 3층에도 대통령 가족이 운동과 음악 청취 등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백악관 2층의 대통령 가족 생활 공간. 백악관 관리 직원들이 20일 정오를 기해 주인이 바뀌는 이 곳에, 새 주인의 기호에 맞춰 새 가구들을 배치하고 새로운 용도에 맞게 방들을 마련하는데 허용된 시간은 약 5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아침 일찍 취임식 참석 없이 바로 플로리다 팜 비치의 마라-라고 자신의 휴양지로 떠나면, 트럼프 부부의 나머지 짐들도 마라-라고로 떠나게 된다. 나가는 이삿짐에는 2019년 2월에 트럼프 대통령이 5만 달러를 들여 설치한 전세계 유명 골프코스를 골라가며 스윙 연습을 할 수 있는 골프 시뮬레이터와, 60인치 대형TV도 포함돼 있다. 트럼프의 짐이 빠져도, 바이든의 짐이 바로 들어올 수는 없다. 바이든 가족의 짐은 인근 메릴랜드 주의 한 창고에 주말부터 와 있지만, 공식적으로 그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 다음인 낮12시1분까지는 백악관에 풀 수가 없다. 따라서 그때쯤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과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부부가 이날 오후 늦게 입주하기까지 5시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9년 미셸 오바마에게 백악관 안살림을 넘겨준 로라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애니타 맥브라이드는 “아무리 준비해도 늘 혼란스러워서, 직원들이 종종 접이시기 간이침상이나 계단에서 자면서 이삿짐을 꾸린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그런데 올해 백악관 입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결과 반박과,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등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웠다. 여느 ‘정권 이양 기간’과 달리, 트럼프는 대선 결과를 뒤집는데 집중해, 그에게 백악관을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은 우선 관심사가 아니었다.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가 미래의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을 백악관에 초청해서 미리 둘러보고 직원들과 얼굴을 익히게 하는 절차도 없었다.   백악관 여주인들이 커피 타임을 갖고, 직원들을 소개하고 치프 요리사와 얘기하고 궁금한 것을 미리 물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로라 부시는 대통령 취임식 전에 미셸 오바마를 두 번 백악관으로 초청했고, 미셸 역시 멜라니아를 미 대선이 끝난 며칠 뒤에 백악관으로 초청했었다. 그러나 멜라니아 트럼프는 수 주 동안 짐을 싸고 열네 살 된 아들 배런을 챙기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에 바빠, 질 바이든과는 전혀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다. 물론 4년 전까지 부통령이었던 바이든과 아내는 이 백악관 거주 공간이나 직원들을 잘 알고 있기는 하다. 코로나 탓에 바이든 팀은 백악관 구석구석을 소독하는데 열을 내면서도, 바이든 부부의 20일 백악관 입주를 만류하고 있다. 아예 바이든의 일부 참모는 20일에 입주하지 말고, 영빈관인 인근 블레어하우스에 며칠 묵으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7844    [시공부] - 투르게네프 산문시 댓글:  조회:2443  추천:0  2021-01-18
  투르게네프 = 산문시=         참새 ​ 나는 사냥에서 돌아와 정원의 가로수 길을 걷고 있 었다. 개가 내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개는 걸음을 늦추더니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 했다. 마치 눈앞에 날짐승의 냄새를 맡기라도 한 듯이. 가로수를 따라 눈을 돌리니 조그만 참새 새끼 한 마 리가 눈에 띄었다. 부리 언저리가 아직도 노랗고 머리 에는 솜털이 자라 있었다. 둥지에서 떨어진 참새 새끼 는(자작나무 가로수는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갓 나기 시작한 날개를 힘없이 벌린 채 꼼짝달싹 않고 앉아 있었다. 개는 서서히 다가갔다. 그러자 별안간 가까운 나무 에서 가슴 털이 검은 참새 한 마리가 개의 바로 콧등 앞에 돌멩이처럼 날아내렸다. 그러고는 온몸의 털을 험 악하게 곤두세우고 필사적이고 애처러운 목소리로 울 어대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개의 입을 향해 두어 번 가량 깡충깡충 뛰어갔다. 어미새는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한 거다. 자기 몸 을 희생하며 새끼를 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뚱이는 온통 공포에 떨고 있었고, 그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다 못해 쉬어버렸다. 드디어 어미새는 실 신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참새에겐 개가 얼마나 거대한 괴물로 보였을까! 그 런데도 그는 그 높은 안전한 나뭇가지 위에 그대로 앉 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의지보다도 강한 어떤 힘이 그를 아래로 내몬 것이다. 나의 트레조르는 걸음을 멈추더니 비실비실 뒷걸음 질을 쳤다······. 개도 그 힘을 인정한 모양이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개를 황급히 불렀다-그리고 존경 어린 경건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조그만 영 웅적인 새 앞에 그 사랑의 충동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 보다도 더 강하다고, 바로 그 사랑에 의해서만 삶은 유 지되고 영위되어 나가는 것이다.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참새」 작은 어미 새는 둥지에서 떨어진 자신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 자신보다도 몇 십 배는 더 크고 거대한 개를 향해 돌진한다. 두려운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그래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모한 줄 알면서도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힘이다. 우리도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을 새우기도 하고,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에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그 누구보다 용감한 내가 되게 한다. 이렇게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자! 용기 있게 사랑하자!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 그건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대상이 연인이든, 운동이든, 영화든, 음식이든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사랑하자! =========================/// 신문기자 ​ 두 친구가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한길에서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났다. 애처로운 신음소리, 난폭한 욕설, 구경꾼의 웃음소리 가 터져 나왔다. ​ 「누가 매를 맞고 있군」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창문을 내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죄인인가 아니면 살인잔가?」 또 한 친구가 물었다. 「아니, 매 맞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무법적인 사형을 허용해선 안 돼. 자, 도와주러 나가세」 「그러나 살인자를 때리고 있는 건 아니야」 「살인자가 아니라고? 그럼 도둑인가? 어쨌든 마찬가지야, 가서 말리도록 해야지」 「아니, 도둑도 아냐」 「도둑도 아니라고? 그럼 회계산가? 철도 종업원? 군납업자? 러시아의 문예 보호자? 변호사? 온건주의 편집자? 사회봉사가 나으리? ······ 어쨌든 가서 도와주도록 하세! 」 「아니 그렇잖아······ 신문기자가 맞고 있군그래」 「신문기자? 그럼 우선 차나 마시고 보지」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신문기자」 누군가 맞고 있다. 두 사내는 살인자, 도둑 같은 악덕한 사람에게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싸움을 말리려 한다. 하지만 맞고 있는 사람이 신문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차 한 잔이 식어가는 데에 눈길을 돌린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인, 살인자, 도둑 악덕한 자들보다 더 '악독한' 무리였던 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이러한 무리가 단지 신문기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신문기자를 넘어서 그냥 기자로 범위가 확장된다. 그들이 책임 없이 뱉어내는 기사들은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무궁무진하게 생산되고 있고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그들의 책임 없는 권리 때문에 그들의 세치 혀에 핥음을 당한 당사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고 사회는 거짓을 판치게 된다. 기자, 그들은 언론의 자유라는 깨지지 않는 방패로 그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들의 책임 없는 권리 덕분에 그들은 '기레기'라는 새로운 작위를 받게 됐고 민중들은 더 이상 그들을 믿지 않는다. 시에서 나타난 두 사내처럼.     ============================/// 검은 인부와 흰 손의 사나이 ​ 대화 ​ 검은인부: 왜 우리한테로 기어드는 거지? 무슨 볼 일이 있어? 자넨 우리 편이 아니야……. 저리 나가줘! 흰 손의 사나이:나도 자네 편일세, 형제들! 검은인부: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편이라고! 웃기지 마! 내 손을 좀 보게. 자, 얼마나 더러우냐 말야. 게다가 거름과 타르 냄새까지 풍기는데─ 자네 손은 새하얗지 뭔가. 그래, 그 손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지? 흰 손의 사나이(두 손을 내밀며) 자, 냄새를 맡아보게. 검은 인부(냄새를 맡는다) 그거 참 묘하군. 쇠붙이 냄새가 나는 것 같군 그래. 흰 손의 사나이:쇠붙이 냄새가 틀림없어. 만 6년 간 쇠고랑을 차고 있었으니 말야. 검은 인부"그건 또 무엇 때문이었지? 흰 손의 사나이:자네들의 복지를 위해 애썼기 때문이지. 자네들같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자네들의 압제자를 반대하여 일어선 거야, 폭동을 일으켰단 말일세……. 그래서 감옥에 갇히게 된 거지. 검은인부:감옥에 갇혔다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폭동 같은 걸 일으킨담!. ​ 2년 후 ​ 동일한 검은 인부(다른 인부에게) 이봐, 표트르! 2년 전 여름, 손이 새하얀 녀석이 찾아와서 우리하고 이야기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나? 제2의 인부: 기억하다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제1의 인부:그 녀석이 드디어 오늘 교수형을 받는다는 거야. 포고문이 내렸어 제2의 인부:역시 폭동을 일으킨 게로군? 제1의 인부:역시 그런가 봐. 제2의 인부: 흐음…… 그건 그렇고, 이봐, 미트랴이, 그 녀석의 목을 맬 밧줄 조각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가 없을까…… 그게 있으면 굉장한 행운이 굴러 들어온다는 거야! 제1의 인부: 그것 참 옳은 말이야. 표토르, 어떻게 손을 써보도록 하세. ​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검은 인부와 흰 손의 사나이」 지식인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고뇌. 지식인은 떨리는 지남철과 같이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어느 한 곳에 고정시켜서는 안되고 쉴 새 없이 떨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이 아직이 되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불합리한 현실을 마주하여 머리가 아닌 발로 써 움직여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앎이 단순한 지식이 머무르지 않고 진짜 지식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한다 하더라도 민중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 흰 손의 사나이가 검은 인부의 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민중들을 위해 혁명을 하고 목숨을 바쳐도 민중들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은 민중으로부터 멀어져서도 안되고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해서도 안된다. 민중들에게 대가와 인정을 받으려는 순간 그의 행위는 무지한 대중을 일깨우는 엘리트의 한낱 계몽주의에 불과하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민중들에 대한 알량한 호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민중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아도 민중은 그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는다. 흰 손의 사나이를 살리기 위해 그의 목을 매달 줄을 없애려는 검은 인부들의 모습처럼.     ===============================///                                            Иван Тургенев —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                             언젠가 내가 없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한줌의 재로 변해 부서져 내릴 적에, 나의 당신이여, 나의 유일한 친구여, 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나보다 더 오래 살겠죠. 그렇지만 내 무덤에 오진 마시오. 당신한테는 거기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나를 잊지는 마오...그렇지만 일상의 일, 만족, 걱정 속에서 나를 떠올리지도 마오. 나는 당신의 삶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요. 편안한 삶의 흐름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 외로운 순간이 혹여 찾아오거든, 부끄럽고 이유 없는 슬픔이 당신을 찾아오거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그럴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사랑했던 책을 한 권 빼들고서, 그 페이지들을 찾아요. 그 구절, 그 단어들, 기억나나요? 우리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달고 말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 구절들...   그 대목을 읽어요, 눈을 감고서... 그리고 내게 손을 뻗어요. 그 자리에 없는 친구에게 당신의 손을 뻗어요.   나는 내 손으로 당신을 쥘 수는 없을 겁니다. 내 손은 땅 밑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놓여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혹시 당신의 손에 가벼운 건드림을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기쁩니다.   그리고, 내 모습이 당신 앞에 서겠지요. 그러면, 당신의 감은 쌍꺼풀 밑으로 눈물이 흐르겠죠. 아름다움에 취한 우리들이 언젠가 둘이서 흘렸던 그 눈물이... ​ 오, 당신, 나의 유일한 친구여!  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 когда всё, что было мною, рассыплется прахом, — о ты, 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 о ты, 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 ты, которая наверно переживешь меня, — не ходи на мою могилу… Тебе там делать нечего.   Не забывай меня… но и не вспоминай обо мне среди ежедневных забот, удовольствий и нужд… Я не хочу мешать твоей жизни, не хочу затруднять ее спокойное течение.   Но в часы уединения, когда найдет на тебя та застенчивая и беспричинная грусть, столь знакомая добрым сердцам, возьми одну из наших любимых книг и отыщи в ней те страницы, те строки, те слова, от которых, бывало, — помнишь? — у нас обоих разом выступали сладкие и безмолвные слезы.   Прочти, закрой глаза и протяни мне руку… Отсутствующему другу протяни руку твою.   Я не буду в состоянии пожать ее моей рукой — она будет лежать неподвижно под землею… но мне теперь отрадно думать, что, быть может, ты на твоей руке почувствуешь легкое прикосновение.   И образ мой предстанет тебе — и из-под закрытых век твоих глаз польются слезы, подобные тем слезам, которые мы, умиленные Красотою, проливали некогда с тобою вдвоем, о ты, 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 о ты, 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 ​ ​ ​ ​ 이반 투르게네프는 1874년 파리 근교의 부지발에 러시아식의 작은 저택을 하나 샀다. 평생의 유일한 연인 빨리나 비아르도가 사는 빌라 맞은 편이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 투르게네프는 발코니가 딸린 이 집의 이층 방에서 1883년 9월 3일 숨을 거두었다. 이 작은 집은 그의 유명한 여러 산문시를 탄생시킨 장소이다. ​ ============================================///     이반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국내 최초 완역 2018.11.08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러시아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의 산문시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민음사)가 번역, 출간됐다.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했다.   자연과 여성심리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러시아 제일의 문장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투르게네프는 언어의 장벽을 깨고 러시아 문학을 서구에 처음으로 소개한 작가.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소설들로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 산문시집은 그의 말년에 창작된 것으로,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들이다. 투르게네프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리고 환상적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이 길게 말하지 않고도 본질을 꿰뚫는 대가의 솜씨로 이 한 권의 시집에 완성돼 있다. “어미 새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했고,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새끼를 구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몸뚱이는 공포로 벌벌 떨었고, 어미 새의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게 쉬어 버렸다. 어미 새는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사랑은 죽음보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강하다. 삶은 사랑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움직인다.”― 투르게네프 ‘참새’에서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러시아 문학은 다른 어떤 외국문학보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중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3대 작가 중 하나였다. 투르게네프 산문시의 쉽게 읽히는 시어와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통찰은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투르게네프는 프랑스의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프랑시스 잠 등의 산문시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의 산문시는 다시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전통의 정형시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근대적인 시를 모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거지’였는데, 1910년~1930년 사이 최소 12회 반복해 번역됐다. 가난이라는 시대의 현실 앞에서 민중에게 손 내밀고자 하는 공감과 연민의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는 당시 지식인들의 영혼에서부터 공명을 이뤄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명은 투르게네프의 시를 번역하고 탐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졌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그가 차디찬 내 손가락을 꼭 잡아 주며 속삭였다. “형제님, 저는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형제님, 그 역시 적선이지요.” 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르게네프 ‘거지’에서 투르게네프 특유의 “꿀과 기름처럼 완벽하게 유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러시아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예술적 특징은 그의 시적 내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산문시집에서도 역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이야기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문시집의 투르게네프의 목소리는 대체로 슬프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때로 냉정하고 신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산문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다. /윤희정기자  ==================================/// 러시아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이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됐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한 이번 시집은 투르게네프의 탄생일인 11월 9일에 맞춰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투르게네프는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등 소설로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간된 산문시집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거장이 말년에 남긴 작품들이다.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작가 중 하나일 정도로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윤동주 역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탐독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가 남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당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인기를 끈 '거지'를 오마주한 것이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거지 중에서) 그의 산문시에서는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또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현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산문시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태경 기자 ======================/// 사랑에의 길                                                /이반 투르게네프 모든 감정은 사랑으로, 정열로, 이끌어질 수 있다. 증오로,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 그리고 멸시까지도 그렇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단 하나 감사만을 빼놓고. 감사는---부채, 사람은 누구나 부채를 갚는다… 그러나 사랑은---돈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회의적인 자문을 할 때는, 대개는 지난한 사랑이 끝난 후이다. 투르게네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사랑의 요소로 대답하고 있다. 너와 나는 모든 감정을 ‘증오도,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그리고 멸시까지도 차용할 것이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동원될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안온하고 평화로운 요소보다 불행한 요소를 더 추가하며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감사’를 제외하며, 사랑은 교환의 가치가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사랑은-돈이 아니’라며, 사랑이 ‘자본화’ 되어가는 점을 경계한다. 만약에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된다면, 사랑이 도착하고 사랑이 발전하고 사랑이 사라지는 동안, 낯선 자기를 대면하게 되고 당황하게 될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나와 네가 몰랐던 너와의 마주침. 하지만 ‘몰랐던 존재’는 없었던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자기들이다. 몰락과 부활의 반동사이, 침잠했던 그들은 불쑥 출몰할 것이다. 불시에 마주칠 증오와 연민과 공포의 음표들, 그리고 존경과 연민과 우정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끝날 수도 있다. 문득 사랑이 지나간 뒤,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당신도 묻고 싶을 것이다. /박소원시인 [출처] 경기신문    ============================///   휴머니즘과 섣부른 휴머니즘 [중앙선데이] 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SNS 공유 및 댓글 SNS 클릭 수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문학적 경력은 서정시로 시작해서 산문시로 마무리된다. 『루진』(1856)을 필두로 하여 마지막 장편 『처녀지』(1877)까지 여섯 편의 ‘사회 소설’을 쓴 투르게네프는 이후 생의 말년에는 80여 편의 산문시를 썼다. 산문시는 러시아 문학의 고유한 장르가 아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이던 투르게네프가 보들레르의 산문시에 영향을 받아 시도한 것이 그의 산문시다.  투르게네프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문학 형성기에 가장 많이 읽히고 번역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그의 산문시는 문학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처럼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범상치 않은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어서였다. 일본을 통해 투르게네프를 수용한 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많이 번역돼 읽혔던 산문시 ‘거지’를 읽어 보자.  시적 화자인 ‘나’는 거리를 걷다가 늙은 거지를 만난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화자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늙은 거지는 손을 내밀어 나에게 적선을 청하는데, 호주머니를 뒤져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빈손으로 산책을 나온 것이다. 동냥을 청하는 거지의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다.”  당혹한 나는 하는 수 없이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쥐고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늙은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그때 문득 ‘나’는 깨닫는다.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식민지 조선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주제인데, 특히 윤동주도 이 ‘거지’에 반응한 독자였다. 그런데 윤동주의 반응은 공감과 함께 위화감도 포함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거지’를 명백히 패러디해서 쓴 ‘투르게네프의 언덕’(1939)에서 시인은 ‘거지’의 기본 골격을 반복하지만 몇 가지 설정을 비튼다. 시적 화자가 걷는 길은 ‘고갯길’로 바뀌고 ‘늙은 거지’는 ‘세 소년 거지’로 대체된다.  나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는 넝마주이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 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이들의 행색은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 마찬가지로 비참하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 찢겨진 맨발.” 나는 탄식한다.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는 건 인지상정이다. 투르게네프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호주머니를 뒤져 본다. 한데 투르게네프의 화자가 빈손이었던 것과는 달리 윤동주의 화자에게는 두툼한 지갑과 시계·손수건 등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것이 윤동주 식 반전이다. 거지 아이들에게 동정심은 일지만 선뜻 자기 물건을 적선할 만한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하련만, 나는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아이들을 부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 역시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는 다르다. 세 아이가 모두 피곤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라지고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거지’의 반복이지만 ‘차이 나는 반복’이고 변주다. 시의 의미는 이 차이에 의해 생산된다.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의 주제는 한마디로 휴머니즘이다. 길에서 만난 늙은 거지에게 적선을 하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물건이 없었던 나는 되레 늙은 거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투르게네프는 적선의 의미를 뒤집고 있는 것인데, 시에서 나보다 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오히려 더럽고 남루한 행색의 거지였다는 사실에 시적 화자는 물론 독자도 감동을 받는다.    반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에서는 적선은커녕 교감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세 소년 거지’에게 잠시 동정의 마음이 일지만, 그것은 고작 일시적인 기분에서 머문다. 나의 동정심은 이기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자기 것을 내줄 만한 ‘용기’가 없는 나는 아이들과의 거리를 한 치도 좁히지 못한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는 섣부른 휴머니즘, 말뿐인 동정심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시의 ‘나’가 시인 자신이라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가혹한 자기 비판의 시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자주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의 초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신의 휴머니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두 편의 시를 거울로 삼아 비춰 봐도 좋겠다.  /이현우 ==========///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 김규종 메리 셸리(1797∼1851)가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한 1818년 러시아에는 잊히지 않을 인물이 태어난다. 산문시와 소설, 희곡 모두에서 천품을 발휘한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주인공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더불어 19세기 러시아 황금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다 보면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투르게네프의 ‘처녀지’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를 이식받은 식민지 조선 문인들이 열광했던 작가 가운데 하나가 투르게네프라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다. 일본 지식인과 문인들 역시 투르게네프의 문학적 성과에 매료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배경에는 ‘뜬구름’의 작가이자 러시아문학 번역가였던 후타바테이 시메이(1864∼1909) 같은 인물의 열성적인 노력이 자리한다. 뛰어난 원작과 성실한 번역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문학의 융성과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젊은 날 윤동주의 ‘툴계녭의 언덕’을 읽고 망연해진 적 있었다. 제목에 들어있는 어휘 ‘툴계녭’이 너무 친숙했던 때문이다. ‘저건 분명 투르게네프지!’ 그런 확신에 전신이 짜릿해지는 것이었다.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에 있던 ‘툴계녭의 언덕’.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투르게네프의 언덕’으로 읽는다. 당대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듯하여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러시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만년의 투르게네프가 인생의 깨달음과 소회를 질박하고 깊이 있게 드러낸 걸작이기 때문이다. ‘거지’(1878)는 그 가운데 하나다. 길 가던 시인이 거지를 만난다. 새빨간 가난에 무너져버린 거지가 그에게 적선의 손을 내민다.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조리 뒤져 보지만 시인에게는 돈과 시계는커녕 손수건도 없다. 거지의 손을 황망하게 잡아주는 시인. 거지는 몹시 미안해하는 시인에게 ‘그것도 적선’이라며 고마움을 전한다. 동주의 ‘툴계녭의 언덕’은 전혀 다르다. 연희전문 2학년 시절에 쓴 시에서 시인은 인도적이며 낭만적인 투르게네프와 사뭇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갯길을 넘다가 거지 소년 셋과 마주치는 시인. 무서운 가난에 삼켜진 아이들의 묘사가 우리를 전율케 한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이었다.” 시인도 이 장면에서 러시아 시인처럼 주머니를 뒤진다.   식민지 조선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다. 두툼한 지갑도, 시계도, 손수건도.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만지작거릴 뿐 내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용기’가 없다. 이야기나 해볼 요량으로 “얘들아!” 하고 부르지만 아이들은 흘끔 돌아볼 뿐 제 갈 길을 간다. 아무도 없는 언덕에는 짙은 황혼만이 밀려올 뿐이다. 왜 동주는 적선하지 않았을까?! 돈이나 시계는 몰라도 손수건은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투르게네프처럼 아이들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용정의 부모가 보내주는 월사금으로 공부하는 유학생이라 해도 그의 시에 내재한 영혼과 정신은 분명 적선을 요구했을 터. 일회적인 적선이 소년들을 가난에서 해방하지는 못한다 해도 인간적인 동정과 연대감 표시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프랑켄슈타인’에서 셸리는 창조주의 위치로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망과 비겁함과 무대책을 그려낸다. 투르게네프는 ‘거지’에서 공감과 연대를 보여준다. 반면에 동주는 대학생의 화사하고 소심한 자아에 멈춰있다. 연민과 동정과 연대가 사라진 문학에는 예술혼과 미래가 없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장자의 ‘학철지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갈급한 지경의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이기 때문이다. 잠시 옛시인들을 돌이키는 가을날이다.        
7843    [시공부] - 김기림 시인 댓글:  조회:2781  추천:0  2021-01-18
                    문학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월북 문인-시인 김기림 편     URL 복사  이웃추가              시인 김기림(출처: 위키백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이 시는 문학교과서에서 주지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개되는 김기림의 입니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감을 청색과 흰색의 색채 대비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인 '바다'와 '나비'가 등장합니다. 바다는 섬뜩하고 냉혹한 현실을 식민지 말의 현실로 혹은 신문명을 나타내며, 나비는 연약한 지식인의 존재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에서 드러나듯 김기림은 한국 문학계에서 회화적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20년대의 계급 문학과 감상적 낭만주의 시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 정신을 추구했습니다. 김기림의 시가 지닌 압축성을 통해 차가운 이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와 회화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추구를 잘 보여주었는데요. 그래서 김기림의 시는 어려운 시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는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했지만 동시에 비평가로도 유명했습니다. 비평가로 활동하며 많은 문인들을 문단에 데뷔 시킬 정도로 안목을 가졌던 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그의 부재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김기림 시인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상태입니다. 또한 납북된 이후 그에 대한 어떤 소식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러한 김기림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김기림의 삶   시인 김기림의 모습 (출처: 위키백과) 김기림의 호는 편석촌으로 1908년 5월 11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머니와 손윗누이의 잇따른 죽음으로 계모 밑에서 자라며 우울한 소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1915년 임명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 상경하여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퇴를 선택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1930년 니혼대학 문화예술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 고국으로 돌아온 김기림은 조선일보에서 주로 종로경찰서를 외근 구역으로 맡으며 사회부, 학예부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축구감독과도 같은 풍모를 지녔던 그는 신문사 내에서 ‘김모범 청년’으로 불릴 정도로 바른 생활을 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단 한 번의 지각이나 조퇴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으며, 능력이 탁월해 김기림에 대한 회사 간부들의 신임도 두터웠습니다.  김기림은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고대’(1931), ‘날개만 도치면’(1931)등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1931년 신문사를 그만 둔 그는 낙향하여 ‘무곡원’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김기림은 이양하, 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I.A. 리차즈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습니다. 1933년에는 김유정, 이태준 등과 구인회 결성에 참가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이상과 함께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활약했습니다. 두 문인은 특별한 인연을 유지했던 사이로 유명했습니다.    김기림과 이상의 인연    시인 이상의 모습(출처: 동아닷컴) 1930년대 조선일보에는 김기림 이외에도 염상섭, 현진건, 김동인, 채만식 등의 문인들이 기자로 있었으며, 동아일보에는 이익상, 주요섭, 주요한, 심훈 등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문인 기자들은 지면을 확보할 수 있었고, 문단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습니다. 김기림은 바로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임과 동시에 평론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주지주의 문학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평론을 통해 당대의 걸출한 문인들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들로는 이상, 백석, 정지용 등을 뽑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상 시인은 김기림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사이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김기림과 이상이 주고받았던 많은 편지들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상보다 두 살 위였던 김기림은 그에게 멘토이자 지지자였습니다. 이상의 천재성을 보고 유학을 권유했던 이도 김기림이었으며, 새로운 작품을 쓸 때마다 이상이 작품에 대해 의논하던 이도 김기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홍과의 이별, 질병, 연이은 카페 경영의 실패 등으로 셋방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상을 설득해 화가 구본웅 부친의 인쇄소에서 교정부 직원으로 나가게 한 것도 김기림이었습니다.  1936년 7월 발간된 김기림의 첫 시집 의 본문 편집과 표지 장정을 맡았던 이가 이상이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동료 문인으로 서로의 작품 활동을 도왔습니다.      김기림의 시집들 초판본(출처: 클래식정원) 구인회 활동을 하며 편석촌은 정지용과 함께 ‘출발’, ‘날개’, ‘가을의 과수원’ 등 수많은 시들을 발표했습니다. 1936년에는 그는 조선일보를 휴직하고 도호쿠대학 영문과와 와세다대학 영문학부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두 곳 모두 합격한 그는 도호쿠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유학을 위해 사표를 냈지만 당시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은 그를 휴직 처리하고 장학회에서 학비를 보조해주도록 했습니다.  그는 유학 당시 영미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흄, 엘리엇, 리처즈 등의 이론을 연구하고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한국 문학계에 주지주의적 문학이 자리 잡는데 앞장섰습니다. 연구 도중에도 그는 창작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1939년 졸업을 한 그는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성전문과 연희전문에서 교수로 초빙받았지만, 조선일보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기자로 복직하면서 학예부장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40년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면서 실직한 그는 1942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의 경성중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했습니다. 영어 과목이 폐지되고는 수학을 가르쳤는데 당시 그의 제자로는 시인 김규동*과 영화감독 신상옥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을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단정하게 정장을 입고) 영국 신사처럼 걷던 훤칠한 키의 스승'으로 기억했습니다.     *김규동(1925~2011): 함경북도 경성 출생의 시인으로 경성고보를 거쳐 연변의대를 수료하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 시절 스승이었던 김기림의 영향을 받아 전쟁, 도시문명 등을 소재로 한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해방 이후 김기림의 삶   김기림의 가족사진(출처: 클래식정원) 김기림은 1946년 1월 공산화된 북한에서 월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서적과 가산을 탈취당해 궁핍한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1947년 6월에 그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다시 38선을 넘습니다. 평양을 거쳐 무사히 고향에 도착한 그는 먼저 가족 중 3남매와 함께 월남에 성공했지만, 부인과 막내아들은 잠시 고향 집에 머물러 있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한 아내는 1948년 봄 막내아들을 데리고 월남합니다. 당시 김기림은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전임 교수를 지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조교수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설립한 신문화연구소의 소장도 역임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김기림은 미처 피난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북의 정치보위부에 의해 납북되었고, 북한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의 정확한 사망 시기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상으로 제10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유니콘 김양지였습니다. [출처] 문학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월북 문인-시인 김기림 편|  
7842    [타산지석] - 본받을만한 훌륭한 아버지... 댓글:  조회:2402  추천:0  2021-01-17
  졸업장에 잘못 기입된 줄 알았던 이름… 알고 보니 2021.01.17.    좋아요 훈훈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Pick] 딸 졸업식 날 학사모 쓰고 등장한 아빠…"나도 오늘 졸업해" 가족 중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비밀이 딸 대학 졸업식 날 밝혀졌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4일 미국 ABC 등 외신들은 일리노이주에 사는 47살 마이크 로벤 씨가 딸 탈레이의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가족 모두를 경악하게 한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탈레이는 최근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그랜드 캐니언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학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대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리지 않아 로벤 가족은 집에서 탈레이를 축하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배송된 대학교 졸업장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이 '탈레이 로벤'이 아닌 '마이크 로벤'으로 되어 있었던 겁니다. 가족들은 대학 측에서 졸업생의 아버지 이름을 대신 기입하는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때 로벤 씨가 탈레이와 똑같은 학사모와 졸업 가운 차림으로 방 안에 등장했습니다. 영문을 몰라 당황한 가족들에게 로벤 씨는 "나도 오늘 탈레이와 함께 대학을 졸업한다"는 깜짝 소식을 전했습니다. 로벤 씨가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려 4년 반 동안 학교에 다녀왔던 겁니다. 인재 파견 회사를 운영하는 로벤 씨는 젊었을 적 포기했던 대학 학위를 늦게나마 취득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2016년 탈레이가 다니는 대학교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거뜬히 입학 허가를 받은 로벤 씨는 몇 년 뒤 가족들에게 졸업장을 내밀어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장난스러운 계획을 세웠는데요, 당시 딸 탈레이뿐 아니라 아들 오스틴, 그리고 아내 캐리 씨까지 서로 다른 대학교에서 공부하느라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로벤 씨의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종종 대학교 과제를 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들키기도 했지만, 로벤 씨는 특유의 순발력으로 매번 위기를 넘겼습니다. 회계 과목 과제로 낼 스프레드시트를 작성하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예산을 짜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식이었습니다. 로벤 씨의 오랜 비밀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가족들은 곧이어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습니다. 과거 가족을 위해 공부를 포기했던 로벤 씨가 이번에도 가족을 위해 일과 학업을 병행해온 사실에 감동을 받았던 겁니다. 탈레이는 "아빠가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아빠가 이뤄낸 성취에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뉴스 픽' 입니다. (사진='Mike Loven' 페이스북, 'GCU Today' 홈페이지 캡처)   이서윤 에디터
7841    [회초리] - 표절, 도용, 저작권, 량심... 댓글:  조회:2760  추천:0  2021-01-17
세상에 이런 일이.. 남의 소설 통째로 베껴 5개 문학상 수상 2021.01.17.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서울=뉴시스] 김민정 작가 글. 2021.01.17. (사진 = 페이스북 캡처) 남의 소설을 통째로 베껴 5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뿌리'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쓴 김민정 작가가 지난 16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로한 글에 따르면, 한 남성이 자신이 3년 전 발표한 작품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각종 문학공모전에 응모, 무려 5개의 상을 받았다. 이 남성이 받은 상은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을 비롯해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미학' 2021년 신인상 등으로, 주로 지역에 기반을 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문학상으로 알려졌다.  작품 발표 당시 서울대 국문과 학생이었던 김씨의 단편소설 '뿌리'는 명지대 대학신문인 명대신문사가 전국 대학생 및 휴학생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백마문화상 당선작으로, 이 작품은 지난 2018년 12월9일자 명대신문에 게재됐으며 지금도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다. 당시 백마문화상 심사를 맡았던 명지대 문예창작과 신수정·편혜영 교수는 "이 시대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힘은 가히 기성작가의 재능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과 그에 걸맞은 깊이 있는 해석까지 갖춘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김 작가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이번 일로 인해 문장도, 서사도 아닌 소설 전체를 빼앗기게 되었고, 제가 쌓아 올린 삶에서의 느낌과 사유를 모두 통째로 타인에게 빼앗겨 버렸다. 제가 도용당한 것은 활자 조각이 아닌 제 분신과도 같은 글이었기에, 저 스스로를 지키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이번 일이 단순히 제 피해 회복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며, 창작계 전반에서 표절과 도용에 대한 윤리의식 바로 세우기가 반드시 뒤따르기를 바란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 일에 맞서고 제 글과 자신을 지키겠다"고 썼다.  한편, 김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각종 문학상을 받은 해당 남성은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각종 글과 아이디어를 도용해 다른 공모전에도 응모했던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   "내 소설 도용해 문학상 5개 수상" 폭로 파장 2021.01.17.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사진=김민정 작가 페이스북)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김민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 ‘뿌리’ 본문 전체가 무단으로 도용됐다고 주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김 작가는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 소설 ‘뿌리’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됐으며 제 소설을 도용한 분이 2020년 무려 다섯 개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구절이나 문단이 비슷한 표절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투고한 명백한 도용”이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뿌리’를 도용한 A씨가 해당 출품작으로 ‘제 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등 5개의 문학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용된 소설에서 이 분이 상상력을 발휘한 것은 ‘경북일보 문학대전’과 ‘포천38문학상’에서 기존 제 문장의 ‘병원’을 ‘포천병원’으로 바꿔 칭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작가는 “이번 일로 인해 문장도, 서사도 아닌 소설 전체를 빼앗기게 됐고, 제가 쌓아 올린 삶에서의 느낌과 사유를 모두 통째로 타인에게 빼앗겨 버렸다”며 “제가 도용당한 것은 활자 조각이 아닌 제 분신과도 같은 글이었기에, 저 스스로를 지키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뿌리’는 2018년 백마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었고, 온라인에 본문이 게시되어 문장을 구글링만 해 보아도 전문이 나온다”며 “이것은 문학상에서 표절, 도용을 검토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부재함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보를 해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 일을 끝까지 몰랐을 테고, 남의 작품으로 금전적 이득과 영예를 취하며 수상작품집까지 발간되는 이 기형적인 행태가 자정과 반성 없이 계속 자행되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이 단순히 제 피해회복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며, 창작계 전반에서 표절과 도용에 대한 윤리의식 바로 세우기가 반드시 뒤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작가가 폭로글을 올린 뒤 온라인상에서는 A씨가 소설뿐 아니라 다양한 타인의 글과 아이디어를 도용해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식 기자 =============================///   “소설 도용해 문학상 5개… 상상력, ‘병원→포천병원’ 바꾼 것뿐”  2021.01.17.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사진=동아일보DB단편소설 ‘뿌리’로 백마문화상을 받은 김민정 작가가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으로 도용됐다고 폭로해 17일 온라인에서 논란이다. 김 작가는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제 소설을 도용한 분이 2020년 무려 다섯 개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하였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김 작가는 2018년 단편소설 ‘뿌리’로 백마문화상을 받았다. 백마문화상은 명지대학교 명대신문사가 전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문학 공모상이다. 김 작가는 서울대 정보문화학과 출신이다. 명대신문사에 따르면 ‘뿌리’는 가진 건 몸 뿐인 주인공이 우연히 갖게 된 식물을 할 수 없이 척수에 심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이다. 명대신문사는 심사평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과 상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능력, 그에 걸맞는 깊이 있는 해석까지 갖춘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사진=동아일보DB “표절 수준 넘은 명백한 도용” 김 작가는 페이스북 글에서 “구절이나 문단이 비슷한 표절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투고한 명백한 ‘도용’”이라며 “제 글을 도용한 분은 저의 소설 「뿌리」로 『제 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이렇게 다섯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도용된 소설에서 이 분이 상상력을 발휘한 것은 『경북일보 문학대전』과 『포천38문학상』에서 기존 제 문장의 ‘병원’을 ‘포천병원’으로 바꿔 칭한 것뿐”이라고 꼬집었다. 김 작가는 “몇 줄 문장의 유사성만으로도 표절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 문학이다. 글을 쓴 작가에겐 문장 하나하나가 ‘몇 줄 문장’ 정도의 표현으로 끝낼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저는 이번 일로 인해 문장도, 서사도 아닌 소설 전체를 빼앗기게 되었고, 제가 쌓아 올린 삶에서의 느낌과 사유를 모두 통째로 타인에게 빼앗겨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제가 도용당한 것은 활자 조각이 아닌 제 분신과도 같은 글이었기에, 저 스스로를 지키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며 “도용은 창작자로서의 윤리와도 명확히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표절-도용,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부재” 김 작가는 “소설을 통째로 도용한 이 일은 문학을 넘어 창작계 전반에 경종을 울릴 심각한 사안이라 생각한다”며 “타인의 창작물을 짓밟고 유린하는 이와 같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뿌리」는 2018년 백마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었고, 온라인에 본문이 게시되어 문장을 구글링만 해 보아도 전문이 나온다. 이것은 문학상에서 표절, 도용을 검토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부재함을 시사한다”며 “제보를 해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 일을 끝까지 몰랐을 테고, 남의 작품으로 금전적 이득과 영예를 취하며 수상작품집까지 발간되는 이 기형적인 행태가 자정과 반성 없이 계속 자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이번 일이 단순히 제 피해회복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며, 창작계 전반에서 표절과 도용에 대한 윤리의식 바로 세우기가 반드시 뒤따르기를 바란다”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 일에 맞서고 제 글과 자신을 지키겠다”고 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김민정 작가 페이스북 글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단편소설 「뿌리」를 쓴 김민정입니다. 제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되었으며, 제 소설을 도용한 분이 2020년 무려 다섯 개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하였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구절이나 문단이 비슷한 표절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투고한 명백한 ‘도용’입니다. 제 글을 도용한 분은 저의 소설 「뿌리」로 『제 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이렇게 다섯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에서는 제목을 제 원 소설의 제목 「뿌리」에서 「꿈」으로 바꾸어 투고했고, 나머지는 제목과 내용 모두를 도용하였습니다. 즉 같은 소설로 여러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소설은 본인의 작품이 아닌 저의 소설을 무단도용한 것이었습니다. 도용된 소설에서 이 분이 상상력을 발휘한 것은 『경북일보 문학대전』과 『포천38문학상』에서 기존 제 문장의 '병원'을 '포천병원'으로 바꿔 칭한 것뿐입니다. 몇 줄 문장의 유사성만으로도 표절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 문학입니다. 글을 쓴 작가에겐 문장 하나하나가 ‘몇 줄 문장’ 정도의 표현으로 끝낼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작가의 사유가 글을 통해 서사를 가지며 총체적으로 녹아드는 장르입니다.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응축되어 시작하는 것, 고민하고 사유하지 않고서는 감히 첫 문장을 뗄 수 없는 것이 문학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일로 인해 문장도, 서사도 아닌 소설 전체를 빼앗기게 되었고, 제가 쌓아 올린 삶에서의 느낌과 사유를 모두 통째로 타인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제가 도용당한 것은 활자 조각이 아닌 제 분신과도 같은 글이었기에, 저 스스로를 지키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도용은 창작자로서의 윤리와도 명확히 어긋나는 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문학 외의 다른 창작 장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창작물이든 그 속엔 작가의 사유가 담겨 있으며, 남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곧 원작가의 사유를 짓밟는 것입니다. 창작을 하거나 창작물을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테제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을 통째로 도용한 이 일은 문학을 넘어 창작계 전반에 경종을 울릴 심각한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타인의 창작물을 짓밟고 유린하는 이와 같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투고자 개인의 윤리의식뿐만 아니라, 문학상 운영에서의 윤리의식도 필요합니다. 문학상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당선작이라 칭하는 작품엔 그에 맞는 표절, 도용 검토가 필요합니다. 「뿌리」는 2018년 백마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었고, 온라인에 본문이 게시되어 문장을 구글링만 해 보아도 전문이 나옵니다. 이것은 문학상에서 표절, 도용을 검토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부재함을 시사합니다. 제보를 해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 일을 끝까지 몰랐을 테고, 남의 작품으로 금전적 이득과 영예를 취하며 수상작품집까지 발간되는 이 기형적인 행태가 자정과 반성 없이 계속 자행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일이 단순히 제 피해회복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며, 창작계 전반에서 표절과 도용에 대한 윤리의식 바로 세우기가 반드시 뒤따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이 사건의 의미라 믿습니다. 이 도용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시고 계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저 또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 일에 맞서고 제 글과 자신을 지키겠습니다. 2021.01.16. 김민정   =====================================///       창작 '뿌리' 김민정씨와 도용 '뿌리' 손창현씨            지난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작가 김민정 씨의 작품 '뿌리가  다른 사람에 의해 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김씨는 자신의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 도용됐으며,  도용한 분이 2020년 다섯 개의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남성은 일부 문학상에만  ‘꿈’으로 제목을 바꿔 제출했을 뿐, 대부분 공모전에는 제목까지 ‘뿌리’로 냈다.   김씨는 “구절이나 문단이 비슷한 표절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투고한 명백한 ‘도용’이라고 했다.       [출처] 창작 '뿌리' 김민정씨와 도용 '뿌리' 손창현씨   ========================================///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당선작 '뿌리' 당선 취소  류희진 기자   2021년 01월 17일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뒤로멈춤앞으로 "16회 사계 김장생·2020포천38문학상 당선작과 동일한 원고 확인" 남성 A씨가 경북일보 문학대전을 비롯 표절작을 출품해 각종 문학 공모전에서 무려 5개의 문학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일보 문학대전 운영위원회 측은 “지난 15일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응모 기준을 위반한 당선작 ‘뿌리’에 대한 당선 취소 결정을 내린 상태”라며 “이와 더불어 상금 환수를 요청할 예정이며 반환하지 않을시 소액반환청구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당선작이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당선작과 동일한 원고로 확인됐다.   게다가 수상작의 저작권은 5년간 주최 측에 귀속된다는 응모기준을 위반하고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서 당선된 단편 소설 ‘꿈’ 또한 제목만 바꾼 뒤 동일한 원고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A씨는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을 받는 등 총 5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이번 표절 의혹은 소설 ‘뿌리’로 지난 2018년 백마문화상을 수상한 김민정 작가가 개인 SNS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파만파 커졌다. 김 작가는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됐다”며 “내 소설을 도용한 분이 2020년 무려 다섯 개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터넷 카페 등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남성이 소설뿐 아니라 신문 칼럼과 인터넷 게시물 등 다양한 타인의 글과 아이디어를 도용해 각종 형태의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 시리즈[생활밀착]   문학계 표절 논란 충격… 국정원도 속인 한국판 '캐치미이프유캔'   위메이크뉴스   2021.01.17. 14:421,903 읽음         한 누리꾼으로부터 제기된 문학 소설 표절 논란이 17일 인터넷커뮤니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논란은 손 아무개라는 사람이 남이 쓴 소설을 통째로 표절해 각종 문학상을 휩쓴 사건이다.  도용된 소설의 원본은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뿌리'(작가 김민정)라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손아무개라는 사람이 첫 문장부터 그대로 도용해 자신을 작가로 내세워 소설미학이라는 문예지에 올리고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나아가 손 씨는 이 소설을 제목만 바꿔가면서 '김장쟁 문학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포천 38문학상'까지 제출하면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논란이 되자 누리꾼들은 손 씨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찾아내 그동안 표절과 도용 사례들을 밝혀냈다. 손 씨는 남의 소설작품은 물론이고 해피캠퍼스에 올라온 아이디어나 레포트들을 구매하고 이를 각종 공공기관의 응모전에 제출해 상을 받는 방식으로 스펙을 쌓았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로채 각종 응모전에 제출해 상금을 타기도 했다.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했던 영화 '캐피미이프유캔'처럼 손 씨의 표절과 도용은 계속 이어지다가 이번에 누리꾼의 제보로 덜미가 잡혔다.  누리꾼들이 찾아낸 표절 사례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각종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공모전에서 표절 작품이 수상한 것은 우리나라 검증 시스템이 얼마나 빈틈이 많은지 보여주는 계기가 될 듯하다. 손씨는 '2020년 시민 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과 '포스트 코로나 강원도 관광정책 아이디어 공모전'은   해피캠퍼스에 올라온 글을 그대로 표절했다.  국정원 주관 '내가 만든 2021 NIS 달력' 문구 공모전에는 육군사관학교 캐피프레이즈를 마지막 조사만 바꾼채 표절했다.  심지어 유영석의 '화이트' 노래 가삿말의 일부 문장을 그대로 표절해 '하동날다'라는 창작물로 제출한 것도 드러났다.   한 누리꾼은 "이 사람이 이런 표절로 공모전 상금 받아먹고 이런걸로 스펙 쌓아서 서울에 웬만한 대학들에 다 다리 걸쳐놓았고 변리사회, 국민의힘 책임당원협의회, 각종 언론사 기자단등에 다 지원해서 활동하고 다녔다. 심지어 대통령경호처 교수로도 지원했다"면서 "더 어이없는 건 이 자가 한국 저작권 위원회에서 전국 청소년 저작권 글짓기 대회 심사위원까지 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손씨의 도용사례 발굴은 현재 진행형이며 이 사건은 지상파 방송에서 다뤄야할 만큼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손씨의 도용사례 캡처본이다. 소설 '뿌리' 원작자 김민정 학생 작품 손 아무개씨가 다른 문예지에 제출한 표절작품 제목과 첫문장이 동일하며 작가만 다르다. 손아무개의 하동날다와 유영석 노래 화이트의 가사 비교 손씨가 국정원 공모전에 제출해 최우수 문구로 당선된 문구 구글링을 통해 확인한 육군사관학교 캐피프레이즈 해피플러스에 올라온 동일한 제목의 레포트 서씨가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로 부터 수상한 자전거 내비 아이디어도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손씨가 해피캠퍼스에서 구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업계획서 손씨의 대통령 경호처 응시 수험표. 사진출처=손씨의 페이스북 ===========================================///   남의 소설 통째 배껴 '문학상 5관왕'… 피해 알리자 당선 취소 2021.01.18.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다른 작가의 소설 속 거의 모든 문장을 베껴서,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공모전에 출품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섯 개의 문학상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 뻔했는데, 원작자가 직접 밝히고 나선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최하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해 포천시가 연 문학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으로 뽑힌 단편 소설입니다. 당선자 손모 씨는 "매일 밤 틈틈이 써 내려가며 문학적 갈증을 해소했다"고, 소감도 남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글은 2년 전, 온라인에 공개된 소설을 통째 베낀 작품이었습니다. '뿌리'라는 제목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1만여 개의 글자 중 다른 건 몇몇 단어에 끼워 넣은 지역 이름뿐입니다. 손 씨는 이렇게 훔친 글로 다섯 개의 문학상을 탔고, 상금 270만 원도 챙겼습니다. [김모 씨/소설 '뿌리' 작가 : 제 분신과도 같은 소설을…수상을 위한 어떤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제목만 바꾸거나, 아예 원작 그대로를 응모했는데도 상을 준 주최 단체들은 작가가 피해를 알린 뒤에야 부랴부랴 수상을 취소하겠다 밝혔습니다. 남의 글을 통째 훔친 사람도 기막히지만 통째로 베낀 작품을 전혀 걸러내지 못한 엉성한 심사 과정도 작가는 믿기 힘들었다 말합니다. [김모 씨/소설 '뿌리' 작가 : 전문이 올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구글링만 해 봐도 바로 제 작품이 나옵니다.] 한 해 열리는 크고 작은 공모전은 약 300개. 문단 내에선 수상 작품을 모아 표절을 가려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성달/한국소설가협회 상임이사 : 거를 수 있는 장치가 약했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심사하면서 집어넣어 돌리는 방향을…] 사건이 커지자, 글을 훔친 손씨는 "도용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VJ : 김경찬 / 영상그래픽 : 한영주) 최하은 기자 [영상편집: 김영석] =========================================/// "조선일보" = 문화·라이프 “5개 문학상 휩쓴 남자, 내 소설 통째로 베꼈다” 소설 ‘뿌리’의 작가 김민정씨 주장 오경묵 기자  2021.01.17      /페이스북 지난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소설 ‘뿌리’의 작가 김민정씨가 다수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한 남성이 자신의 소설을 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됐으며, 도용한 분이 2020년 다섯 개의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구절이나 문단이 비슷한 표절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투고한 명백한 ‘도용’이라고 했다. 이 남성은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남성은 일부 문학상에만 ‘꿈’으로 제목을 바꿔 제출했을 뿐, 대부분 공모전에는 제목까지 ‘뿌리’로 냈다. 김씨는 “몇 줄 문장의 유사성만으로도 표절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 문학”이라며 “문학은 작가의 사유가 글을 통해 서사를 가지며 총체적으로 녹아드는 장르”라고 했다. 이어 “저는 이번 일로 인해 문장도, 서사도 아닌 소설 전체를 빼앗기게 되었고, 제가 쌓아 올린 삶에서의 느낌과 사유를 모두 통째로 타인에게 빼앗겨 버렸다”며 “제가 도용당한 것은 활자 조각이 아닌 제 분신과도 같은 글이었기에, 저 스스로를 지키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도용은 창작자로서의 윤리와도 명확히 어긋나는 일”이라며 “소설을 통째로 도용한 이 일은 문학을 넘어 창작계 전반에 경종을 울릴 심각한 사안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타인의 창작물을 짓밟고 유린하는 이와 같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며 “투고자 개인의 윤리의식뿐만 아니라 문학상 운영에서의 윤리의식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제보를 해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 일을 끝까지 몰랐을 테고, 남의 작품으로 금전적 이득과 영예를 취하며 수상작품집까지 발간되는 이 기형적인 행태가 자정과 반성 없이 계속 자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일이 단순히 제 피해회복으로 마무리 되지 않기를 바란다. 창작계 전반에서 표절과 도용에 대한 윤리의식 바로 세우기가 반드시 뒤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씨의 소설을 도용한 남성은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 국문학이나 문예창작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소설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 또한 없지만 매일 밤 틈틈이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스스로 문학적 갈증을 해소하며 큰 자긍심을 갖는다”고 했다. 김씨가 문제를 제기한 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 남성이 소설 뿐 아니라 각종 사진·아이디어·독후감 공모전에도 타인의 작품을 도용해 출품·수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에 실린 이 남성의 글을 보면 지방 일간지의 칼럼을 제목만 바꿔냈다. 또 다른 공모전에서는 타인의 사진과 함께 유행가 가사를 적어내거나 한 신문사의 기사를 그대로 써내기도 했다.     ================/// 문화·라이프 ‘뿌리’ 김민정 작가 “소설 표절은 영혼 도둑질” 법적 대응 검토 오경묵 기자  2021.01.18    소설 ‘뿌리’의 작가 김민정씨가 자신의 작품을 무단 도용해 5개의 문학상을 받았다고 자신이 지목한 남성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김씨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주 중으로 천천히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소설을 통째로 도용한 일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 그 피해자가 제가 됐다는 게 굉장히 슬펐다”며 “무엇보다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 제 시간과 노력 그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어 “(도용은) 영혼의 도둑질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소설이나 문학 같은 경우에는 삶에서의 생각과 느낌이 전제가 되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글을 통째로 도용했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삶 자체를 도용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등단 작가가 아닌 대학생이라고 밝힌 김씨는 “제가 대학생이고 유명하지 않은 일반 학생이어서 이름 없는 사람의 글을 도용하면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슬프다”고 했다. 김씨는 해당 남성과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15일 인스타그램 댓글을 통해 도용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문제의 남성에 대해 “제가 알기로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다닌다고는 들었는데 그것 외에 다른 사실에 대한 진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며 “(문학상 외에도) 다른 사진 공모전이나 경제 공모전도 (도용·표절 작품으로) 나가서 상을 받은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해당 남성은) 타인의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인식 자체가 없는 듯 했다”며 “그것을 페이스북에 전시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격을 이야기하는 그런 모습처럼 보였다”고 했다. 김씨의 소설을 도용한 남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각종 공모전 수상 실적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대부분 삭제했다. 김씨는 문학상 주최 단체를 향해서도 “논문 표절을 검토하는 것처럼 소설도 표절과 도용 검사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18년 소설 ‘뿌리’로 백마문화상을 받았다. 그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됐으며, 도용한 분이 2020년 다섯 개의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며 “구절이나 문단이 비슷한 표절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투고한 명백한 ‘도용’이라고 했다.     =================/// 문화·라이프 “날지 못하는 피터팬” 유영석 가사 표절해 대상…취소되자 “도둑 맞아” 소송 소설 ‘뿌리' 표절 논란 남성 “노래 인용한 것” 소송 유영석 “저작권 침해” 오경묵 기자  2021.01.19      /인터넷 커뮤니티 ‘날지 못하는 피터팬 웬디 / 두 팔을 하늘 높이 / 마음엔 행복한 순간만이 가득 / 저 구름 위로 동화의 나라 / 닫힌 성문을 열면 / 간절한 소망의 힘 그 하나로 다 이룰 수 있어.’ 가수 유영석이 1994년 발표한 ‘화이트’라는 곡의 가사다. 이 가사는 ‘하동 날다’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제6회 디카시 공모전’ 대상에 선정됐다. 디카시(詩)는 디지털카메라와 시를 합성한 단어다. 이 공모전은 디지털카메라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에 5행 이내의 시를 적은 형태를 말한다. 위 작품을 응모한 사람은 한 사립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손모씨였다. 그는 가사뿐만 아니라 사진도 도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후 네티즌들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자, 손씨의 당선은 취소됐다. 손씨는 “글은 5행 이내 시적 문장이면 될 뿐이지 본인이 창작한 글이어야 한다고 돼있지 않다. 그래서 노래를 인용했다”는 입장이다. 주최 측은 “안내문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통상적으로 신춘문예를 비롯한 모든 시 공모전은 표절인 경우 예외 없이 당선 취소하는 것이 상식에 속하는 문제”라며 “더욱이 모두 5행의 시적 문장 가운데 4행을 다른 사람의 글로 작성한 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손씨는 공모전 주최 측에 소송을 냈다.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대회 주최 측에 의해 대상을 도둑맞았다. 단순히 상, 상금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학교 선배인 검사 출신 변호사 선배에게 상담을 했더니 민사소송으로 가면 100% 승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썼다. 또 다른 글에서는 “빼앗긴 상패와 상금 100만원, 변호사 선임 비용, 정신적 피해발생에 따른 위자료 및 신경정신과 지출 의료비용, 이 일로 인해 스트레스 받아 출강하지 못해 발생한 미참석 강의에 대한 수업료까지 모두 (민사로) 청구했다”며 “하늘이 두 쪽 나도 소 취하는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 아직까지 나한테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다”고 했다. 노래 가사가 무단 도용된 사실을 알게 된 유영석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모르는 내 창작물을 무단으로 쓴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안다”며 “저작권을 위임받은 단체에서 이 부분과 관련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페이스북 손씨는 작가 김민정씨의 소설 ‘뿌리’를 도용해 5개의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인물이기도 하다. 손씨가 김씨의 작품을 베껴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소설과 노래 가사뿐만이 아니다. 손씨는 이 외에도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페이스북에 다수의 상패·상장 사진을 올렸다. 논란이 커지자 관련 포스팅은 모두 지운 상태다. 공모전 출품·수상작도 표절·도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료·보고서 거래사이트인 해피캠퍼스에 올라온 보고서·논문·사업계획서 등을 도용해 수상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특허청이 주최한 ‘2020 혁신아이디어 공모전’에서는 특허청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제출한 것은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신개념 자전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K-바이크’다. 손씨는 해피캠퍼스에 2018년 4월 올라온 보고서를 그대로 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다. 손씨는 같은 내용을 서울시 주관 ’2020 시민 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에도 제출해 우수상을 받았다. 그가 같은 해 서울시의 ‘스마트쉘터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에 낸 ‘쉘터형 버스 승강장’은 지난 2019년 안양시가 발표한 것과 동일한 것이어서 도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손씨는 이 아이디어로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강원도청이 주관한 ‘포스트 코로나 강원도 관광정책 아이디어 공모전’과 청주대 지식재산교육상용화센터의 ‘창의 아이디어 발명디자인 경진대회’, 안양예술재단의 ’2020년 상반기 버스정류장 문학 글판 창작시·문안 공모전'에도 해피캠퍼스에 있는 보고서나 작품을 도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 ‘제1회 대한민국 건설사진 전국 공모전’과 ’2020 국민저작물 보물찾기'에는 해외에서 찍힌 사진을 도용해 제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이름 검색은 해봤는데… " 심사위원도 기막힌 '표절 솜씨' 2021.01.19.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문학상 등 자신의 수상 사실을 알리는 손씨의 SNS. 인터넷 캡처 대학원생 손모씨는 그대로 베낀 작품으로 어떻게 5개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 문학상 담당자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필터링할 방법은 없었다”고 말했다.  손씨는 김민정 작가의 소설 ‘뿌리’를 제목까지 베껴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이 사실은 김 작가가 16일 페이스북에 “내 소설의 본문 전체가 무단 도용됐고, 도용한 분이 지난해 5개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사실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적으면서 알려졌다. 김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18년 명지대 신문의 백마문학상을 수상했고 명지대 신문은 작품 전문을 온라인에 게재했다. 포털 사이트에 작품의 첫 문장인 “가진 공간이라곤 자신의 몸뚱이 밖에는 없었던 K씨는”을 치면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는 링크가 검색된다.  하지만 다섯 개 문학상 심사위원과 운영진은 이런 검증 작업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계 김장생 문학상’을 진행하고 지난해 5월 당선작을 발표한 한국문인협회 관계자는 “신인상이기 때문에 다른 데에서 상을 탄 적이 없는지 이름을 검색 해봤는데 하자가 없었다”며 “작품을 검색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 있으리라고 누가 알았겠나”라고 했다. 예심 5명, 본심 2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했지만 그들도 작품을 걸러낼 수는 없었다. 지난해 6월 당선작을 발표한 ‘포천38 문학상’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또한 “심사위원은 작품을 본다. 인터넷에서 작품을 일일이 검색하는 걸 요구할 수는 없고 운영상의 허점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손씨의 활동 이력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가수 유영석의 노랫말을 베껴 디카시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것도 밝혀졌다. 손씨에게 상을 준 문학상 담당자들은 이처럼 예외적인 응모자를 걸러낼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올초 신춘문예 수상작으로 손씨의 작품을 결정했던 '글로벌 경제 신문' 관계자는 “오랜 경력의 심사위원이 살펴봤지만 필터링할 방법은 없었다. 심사위원도 많이 당황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손씨의 표절 작품을 올해 1월호에 신인상으로 게재한 ‘소설미학’측은 19일 홈페이지에 “이후 검증해보니 표절을 넘어 거의 복사였다”고 했다.  문학상 운영진 측은 손씨의 수상을 취소하고 상금 반환에 나섰다. 김장생 문학상은 수상을 취소하고 수상금 100만원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경북일보 문학대전 운영위원최 측도 “가작 당선작 ‘뿌리’에 대한 당선 취소를 했고, 상금 환수를 요청할 예정이며 반환하지 않을시 소액반환청구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포천38 문학상, 소설미학 신인상 수상도 취소됐다.  문제는 대책이 될 시스템 마련이다. 표절 작품으로 수상했을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계속해서 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 공모전의 규모는 크다. 각 분야의 공모전을 모아놓는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문학’으로 검색하면 현재 응모할 수 있는 공모전만 60여개에 이른다. 2020년 한 해를 범위로 하면 400여건이다. 하지만 모든 문학상이 수상작을 공개하지는 않고, 다른 문학상이 이를 참고하거나 검색하는 시스템도 없다. 문학상은 늘어나는데 중복 지원을 걸러낼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김호운 이사장은 "매뉴얼을 만들어서 문학상 수상작은 반드시 저장·공개하고, 다른 문학상은 수상작 발표 전에 이를 검색해야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또한 "다만 이번 사건 때문에 문학상의 확대까지 비판을 받아서는 안되고 수많은 응모작을 표절 의심작으로 봐서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단체, 언론에서 문학상을 운영하는만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한국소설가협회는 곧 이같은 매뉴얼과 규정을 만들어 문학상 운영진 측에 제안할 예정이다.  /김호정 기자    =============/// [팩트체크] 손창현 의인상 진짜? 국민의힘 소속?  선정수 팩트체커  2021.01.19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URL복사 기사공유하기 스크랩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남의 소설을 통째로 도용해 문학상을 다섯 개나 수상한 손창현씨가 공분을 사고 있다. 손씨는 지난해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의인상을 받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쓰러져 있는 화물차 기사를 구조하는 데 공을 세웠다는 취지이다. 손씨가 국민의힘 당직을 맡고 있다는 내용도 확산되고 있다. 뉴스톱이 각각 팩트체크했다. 출처:한국도로공사 블로그 손씨는 지난해 9월 한국도로공사로부터 '2020년 고속도로 의인상'을 받았다. 도로공사는 손씨의 공적에 대해 "휴게소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화물차 기사를 발견하고, 응급처치 및 빠른 신고로 인명 구조에 이바지"라고 설명했다. 도로공사 블로그에 위 사진을 게시하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알렸다. 손씨는 상과 함께 상금 100만원도 받았다.   ◈의인상- 신고는 했는데 출동사실은 없다? 손씨의 소설 도용 의혹이 밝혀지고 뉴스톱 기사로 손씨의 행적 중 상당 수가 허위 또는 조작이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그의 의인상 수상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선이 많다.  손씨의 수상 공적을 보면 2020년 4월15일 문경휴게소(양평 방향)에서 쓰러져 있는 화물차 운전 기사를 발견해 신고한 것으로 나와있다.  뉴스톱은 관할 구역 소방서인 문경소방서와 인접지역인 상주소방서에 출동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양쪽 소방서 모두 "2020년 4월15일에는 문경휴게소로 출동한 기록이 없다"고 확인했다. 공적서에는 분명히 "빠른 신고로 인명 구조에 이바지"라고 명시돼 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기록이 없는 것이다.    ◈의인상 - 도로공사 확인 시도, 손씨 연락 두절  출처: 구글 기사 검색 지역 신문의 인터넷 기사 검색 화면이다. 현재는 기사가 삭제돼 검색 화면에서 일부 흔적만 검색된다. 이 기사에는 손씨가 "코와 입에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화물트럭 기사를 발견했다. 이에 먼저 112와 119에 신고를 한 손씨는~"이라고 서술한다. 도로공사는 지난 8월 의인상 후보를 접수하면서 "본인 추천은 불가능"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뉴스톱이 도로공사에 질의한 결과 손씨의 의인상 후보 접수는 손씨의 지인이 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로공사는 18~19일 이틀 동안 손씨와 손씨의 지인에게 꾸준히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진위를 밝히기 위해 손씨의 의견을 청취하려고 했지만 불발된 것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의인상 관련 자료나 사실관계가 허위로 판명되면 의인상 수상을 취소하고 상금을 환수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사는 "남다른 시민의식으로 타인의 생명을 구한 분들의 의로운 행동을 격려하고 공유하기 위해 제정된 고속도로 의인상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손씨 국민의힘 국방안보분과 위원? - 국민의힘 "우린 모른다" 출처:손창현씨 페이스북 손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국민의힘이 수여한 임명장 사진을 게시했다. 김성태 전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도 첨부했다. 임명장에는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국방안보분과 위원으로 임명함"이라고 적혀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직인도 찍혔다. 뉴스톱은 국민의힘에 임명장 발급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당직자는 "우리는 그런 분을 알지 못한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손씨가 관련 내용을 조작했든지 국민의힘 당직자가 '꼬리자르기'를 하느라 거짓말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거짓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뉴스톱은 손창현씨의 의인상 수상과 관련한 의혹과 국민의힘 당직 임명에 대해 추가 확인이 되는 대로 후속 기사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7840    [그것이 알고싶다] - "김"씨냐, "금"씨냐... 댓글:  조회:2545  추천:0  2021-01-15
  김유신. 정작 신라인들은 금유신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중앙포토] 김(金)씨를 ‘금’이 아닌 ‘김’씨라고 발음하게 된 것은 우리 역사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중 하나입니다. 분명 한자 ‘金’은 ‘쇠 금’이라고 읽는데 김씨 성(姓)에서만 유독 ‘김’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당초 과거에는 ‘김’씨가 아닌 ‘금’ 씨로 발음했을 것이란 주장도 적지 않습니다. 삼국시대엔 김유신이 아닌 금유신, 김춘추가 아닌 금춘추 라고 발음했다는 겁니다. 그럼 왜 발음이 바뀐 것일까요? ━ 오얏나무 이(李)씨가 금(金)을 ‘김’으로 만들었나 오행(五行)의 상생과 상극 관계 현재까지 나온 가설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조선 왕가와 관련된 음양오행설입니다. 오행설에는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에서 목(木)은 토(土)를 이기고 토(土)는 수(水)를, 수(水)는 화(火)를, 화(火)는 금(金)을, 금(金)은 목(木)을 이긴다는 상극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왕조를 건국한 이성계가 전주 이(李)씨인데 ‘오얏나무 이(李)’는 목(木)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조선 왕조가 목(木)에 강한 금(金)을 꺼렸다는 것이죠. 즉 이(李)씨를 이기는 것이 금(金)씨이기 때문에 힘을 억제하기 위해서 김씨로 바꿔 부르도록 했다는 겁니다. 건국 초기 정통성이 약해 고민했던 조선 왕실의 사정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합니다. KBS 드라마 '정도전' 중 이성계(유동근) 실제로 ‘김(金)’이라는 발음이 15세기 이후 문헌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는 대체로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이 가설엔 치명적 결함이 있습니다. 김씨는 인구 분포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갖고 있는 성씨 집단입니다. 가문을 중시하는 전통을 고려할 때 이런 혁명적 변화가 있었다면 『조선왕조실록』이나 하다못해 개인 문집에서라도 분명 기록이 남았을 텐데 과거 문헌 어디서도 이러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 ‘금’에서 ‘김’으로 그럼 ‘금’이 ‘김’으로 바뀐 것은 언제 그리고 왜일까요. 최근 연구 결과 중 하나는 ‘金’에 대한 중국 발음이 바뀐 것에 주목합니다. 이에 따르면 수(隋), 당(唐) 시대만 하더라도 ‘금’에 가깝던 발음이 5대 10국 시대를 거치며 ‘김’에 가까운 발음으로 변화했다는 것이죠. 물론 한반도에도 이미 한자 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에 중국의 한자 발음 변화가 즉각적으로 영향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한자 '금(金)'의 발음 변천. 권인한 『성씨 김(金)의 한자음 연원을 찾아서』에서 인용. 그런데 원나라 시절 고려 왕실이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자연스레 고려에서도 ‘金’의 발음이 ‘김’으로 달라졌을 것이란 추정입니다. 왜 유독 ‘金’만 영향을 받았을까요.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들이 ‘황금씨족’이라고 자처하는 등 몽골 상류층은 금(金)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에도 '金'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몽골에서 지낸 고려 왕자 및 상류층을 중심으로 이 발음 변화가 확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명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경남 김해(金海)가 대표적인데, 금주(金州)에서 몽골 간섭기인 충선왕 때 현재 지명으로 개칭됐습니다. 참고로 중세 일본에서 만들어진 『석일본기(釋日本紀)』에는 『일본서기』에 수록된 신라인의 이름을 읽는 법이 나옵니다. 그런데 ‘金’이라는 성은 ‘코무(コム)’라고 발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에서는 ‘김’이 아닌 ‘금’으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당시 발음이 ‘김’이었다면 ‘키무(キム)’가 되었겠지요. ━ 왕의 존엄성을 지켜라…피휘(避諱)의 추억 『삼국사기』에는 연개소문 (淵蓋蘇文)이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고조 이연(李淵)의 이름을 피한 중국 측 사서를 인용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이 ‘김’으로 바뀐데 대해 음양오행설이 그럴듯하게 유포됐던 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과거 왕조 시절에 왕실에 위협이 되거나 불손한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은 제거하려 했던 문화가 워낙 뿌리가 깊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것이 군주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피휘(避諱)’ 입니다. 이는 군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꺼려 해당 한자를 뜻이 통하는 다른 자로 대체하는 걸 뜻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나라 국(國)이라는 한자입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 때까지 나라를 의미하는 한자로는 ‘방(邦)’이 널리 사용됐습니다. 국(國)은 왕이 사는 도성을 비롯한 도시를 의미했고, 여기에 주변 농촌이 합쳐져야 ‘방(邦)’이 됐습니다. 그런데 한나라에 들어와 문제가 생겼습니다. 건국 시조인 유방(劉邦)의 이름하고 겹쳤기 때문이죠. 이때부터 역사책을 비롯한 모든 기록에서 ‘방(邦)’은 국(國)이라는 한자로 대체됐습니다.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의 영토 이처럼 고려나 조선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는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것이 금기시됐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 시대엔 세울 건(建)자를 쓸 수 없어 설 립(立)으로 대체시켰습니다. 태조 왕건의 이름인 건(健)자를 피하기 위해서였죠. [출처] 김(金)씨는 왜 금씨가 아닌가..삼국시대 땐 '금'춘추 불렸나  
7839    가장 진실되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야... 댓글:  조회:2527  추천:0  2021-01-15
  봉준호, 韓감독 최초로 베네치아 영화제 심사위원장 됐다 2021.01.15.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제78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에 위촉됐다. 한국인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는 것은 봉 감독이 처음이다.  15일 베네치아 영화제 측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봉 감독을 오는 9월 열리는 제78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네치아 영화제 예술감독은 이같은 소식을 전하며 “오늘날 이 위대한 한국 감독은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진실되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그의 열정을 우리 영화제에 쏟기로 한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베네치아 영화제의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영화의 전통에 함께 하게 돼 영광”이란 소감으로 영화제 측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어 “심사위원장으로서, 더 중요하게는 영원한 영화 팬으로서 이 영화제가 선정한 모든 훌륭한 영화들에 존경과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며 “진정한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베네치아 영화제는 칸,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제78회 베니스 영화제는 오는 9월 1일부터 1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봉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2019년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정혜정 기자 =============================///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 `봉` 잡았다  2021.01.15.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경쟁부문 위원장에 봉준호 황금사자상 등 수상작 결정 "영원한 영화광으로서 흥분" [AP = 연합뉴스]'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베니스(베네치아)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에 위촉됐다. 한국 영화계 인사가 3대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이 된 최초 사례다.  베니스영화제 측은 15일(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을 제78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봉 감독은 "베니스국제영화제는 길고 다양한 역사를 이어온 영화제"라며 "아름다운 영화적 전통을 이어갈 수 있어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심사위원장으로, 또한 더욱 중요하게는 오랜 시네필로서 나는 영화제 측이 선정한 훌륭한 작품들에 대해 찬사와 박수를 보낼 준비가 돼 있다"며 "나는 진정한 희망과 흥분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제 예술감독인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이번 영화제의 첫 번째 좋은 소식은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기로 열렬히 동의했다는 점"이라며 "이 위대한 한국 감독은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진실되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는 그가 주의 깊고 호기심 많으며 편견이 없는 시네필로서 자신의 열정을 다해 영화제를 섬겨주기로 한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다"고 했다. 한국 영화감독이 베니스 심사위원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르베라 감독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감독을 심사위원으로 결정한 것 역시 우리 영화제가 전 세계 영화를 수용하고 모든 나라 감독들이 베네치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강조했다.  베니스 영화제는 칸,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개최를 포기한 칸 영화제와 달리 규모를 줄여 오프라인으로 영화제를 치렀다. 지난해 영화제 최고상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미국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영화제는 9월 1일부터 1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강영운 기자]
7838    [그것이 알고싶다] - 돌잔치와 돌잡이 댓글:  조회:3945  추천:0  2021-01-14
한국일생의례사전 돌   [ 周岁 ] 평생도 8폭 병풍 / 초도관희 분류 출생의례 목차 정의 역사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아이가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생일. 역사 아이의 첫 생일인 돌을 기념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풍속이다. 그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교훈서인 『안씨가훈顔氏家訓』과 송대宋代의 맹원로孟元老가 쓴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돌과 돌잡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그 모습이 조선의 기록에 나타난 것과 매우 유사하다. 아이의 돌을 기념하여 잔치를 열고 새 옷을 입힌 뒤에돌 잡이를 했다는 사실은 조선 초기 왕실 기록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태종실록太宗實錄』 12년의 11월 을유일(4일)의 기사에는 “임금의 어린 아들 종의 초도初度이므로 성수초星宿醮를 베풀어 수壽를 빌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정조실록正祖實錄』 7년 9월 을미일(7일)의 기사에는 문효세자의 돌에 신하들을 불러 하례를 받았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세자에게 ‘채색 옷[衣彩]’을 입혔다는 기록과 돌잡이에 쓰인 ‘활과 화살[弧矢]’의 의미에 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 왕실에서 이루어진 돌 의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자나 원자元子의 돌을 전후하여 백성의 세금을 감해주고 죄인을 풀어주거나 과거를 치렀던 것으로 보아 이때를 특별한 날로 기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대부의 일기와 문집에서는 왕실보다 늦은 16~17세기에 야 돌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돌잔치 모습은 이문건李文楗이 손자를 양육하며 쓴 『양아록養兒錄』(1552)과 임진왜란 때 피란처에서 쓴 오희문吳希文의 『쇄미록瑣尾錄』(1598)에 나타나 있다. 두 기록 모두 손자의 돌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리고 돌잡이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로써 돌은 조선 초기부터 왕실에서 왕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미로 치르던 공식적인 행사였으며, 16세기 중반 이전에 사대부와 백성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의례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돌에는 아이에게 돌 빔을 지어 입히고 잔칫상을 차려 돌잡이를 하는 것으로 생후 1년이 되었음을 기념한다. 돌 빔은 이전까지 입던 흰색 위주의 옷에서 벗어나 원색 옷감으로 화려하게 만들고, 쓰개에서부터 신발, 장신구에 이르는 일습을 모두 갖추어 입힌다. 돌날 아침에는 삼신상을 마련하여 아이의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가족이 모여 미역국과 쌀밥을 나누어 먹는다. 또한, 가까운 친척과 지인을 초대하여 잔치를 여는데, 이때 돌상 위에 활과 화살, 책과 붓, 쌀과 돈, 실타래, 가위와 자 등 성별에 따라 다양한 물건을 늘어놓고 아이가 무엇을 잡는가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돌잡이를 한다. 아이를 위한 돌상에는 돌잡이 물품과 더불어 여러 가지 음식을 차린다. 그릇 가득 담은 긴 국수 가락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흰쌀로만 쪄낸 백설기는 아이의 순진무구함과 티 없이 맑은 신성함을 상징한다. 돌상에는 반드시 수수로 둥근 경단을 빚어 팥고물을 묻힌 수수팥떡을 올리는데, 이는 붉은색 팥이 잡귀를 몰아내고 아이의 액을 물리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돌 이후로 아이가 열 살 혹은 열두 살이 될 때까지 매해 생일상에 수수팥떡을 올리는 것 역시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이 밖에도 돌에는 각종 과일과 떡, 다과와 음식을 마련하여 잔치를 찾은 손님들과 나누어 먹는다. 돌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쌀 등의 현물을 비롯하여 돈이나 돌 반지 같은 선물을 전하며 성의를 표시하고 아이의 미래를 축원한다. 특징 및 의의 아이의 첫 생일인 돌을 기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에 아이의 안정된 생존을 기원하기 위해 돌을 기점으로 의례를 했다는 것이 한 가지 설이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는 등 육체적 성장이 활발해지고 생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는 때가 돌 무렵이기 때문이다. 통과의례의 관점에서, 돌잔치는 가까운 친인척과 이웃에게 아이를 공개하는 기회가 되므로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절차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 기원이 어떠하든 돌은 아이의 생존을 축하하고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의례가 이루어지는 시점이다. 후손이 귀한 가문에서는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된다 하여 돌잔치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돌을 아이 성장의 한 단계로 보고 기록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또한, 돌빔과 돌상, 돌잡이 등 아이의 돌에 잔치를 베풀고 기념하는 의례의 내용과 의미는 지속되고 있지만, 그 형식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겪었다. 근대 이후, 사진 기술이 전파되면서 돌을 기념하여 사진을 찍어 간직하거나 앨범을 제작하는 것이 의례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 집안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간소하게 치르는 대신 외식업체나 이벤트 업체를 이용하여 돌잔치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의례의 외형이 바뀌고 있다. 돌잡이를 위한 물건도 과거 남성과 여성의 성性 역할에 근거한 것에서 벗어나 의사를 의미하는 청진기, 운동선수를 상징하는 골프공과 야구 글러브, 연예인을 뜻하는 마이크, IT 전문가를 나타내는 휴대전화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참고문헌 國朝寶鑑, 瑣尾錄, 養兒錄, 朝鮮王朝實錄, 芝峯類說, 조선상식문답(최남선, 동명사, 1948), 첫돌복식의 착용양상과 통과의례적 의미(조희진,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한국민속대관(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집필자 조희진(趙熙眞) 갱신일 2019.06.26. 관련이미지 11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돌 기념사진조사자 : 국립민속박물관 이미지 갤러리 [네이버 지식백과]돌 [周岁] (한국일생의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돌     이미지 크게보기 상차림의 음식들은 복을 받고 액을 멀리 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유형 개념용어 목차 정의 내용 정의 생후 일주년인 아기의 첫 생일. 내용 돌이라는 말은 아이의 나이를 표시하는 말로도 쓰여서 ‘한 돌을 맞았다.’, ‘두 돌을 잡혔다.’,‘세 돌이 된다.’ 할 때에는 아이의 나이를 표시하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냥 돌이라고 할 때에는 아이의 첫돌을 일컫는 말로 간주된다. 한자로는 돌을 초도일(初度日)·수(晬)·수일(晬日) 등으로 표기한다. 이와 같이 아이가 출생하여 꼭 1년이 되는 첫 생일날을 돌이라 하여 빈부귀천이나 경향(京鄕)의 지역적 차이 없이 누구나 아이를 위한 돌잔치를 지내준다. 돌날 아침에 삼신상을 차려 아이의 명복(命福)을 빌고, 가족이나 일동이 미역국과 쌀밥으로 조반을 마친 다음 돌잔치를 시작한다. 돌맞이하는 아이는 돌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준비된 돌상 앞에 앉는다. 사내아이는 저고리와 바지에 조끼·마고자·두루마기를 입히고, 그 위에 남색 쾌자를 입힌다. 머리에는 복건을 씌우고 발에는 수를 놓은 타래버선을 신긴다. 가슴에는 돌띠를 두르고 허리에는 돌주머니를 채워준다. 여자아이에게는 색동저고리와 다홍의 긴 치마를 입히는데, 당의를 덧입히기도 한다. 머리에는 조바위나 굴레를 씌우고 발에는 타래버선을 신긴다. 가슴에는 역시 돌띠를 매주고 치마말기에 돌주머니를 채워준다. 돌상은 안방이나 대청에 차리는데 각종의 떡과 과일을 풍부히 올려놓고 그밖에 강정·약과·약밥·고기·생선·전 등도 많이 차려 놓는다. 특히 돌음식으로는 국수·백설기·수수팥떡 등 장수와 무병, 부정을 막는 의미의 음식이 차려진다. 돌맞이 할 아이는 병풍을 쳐놓은 곳을 뒤로 하고 돌상을 향하여 앉게 된다. 앉을 자리에는 흰 무명 한 필을 접어서 방석같이 해놓는다. 아이의 전면에는 부모와 형제자매·일가친척·하객들이 모여서 아이를 바라본다. 돌상 아래 바닥에는 여러 가지 물건을 질서 없이 놓아둔다. 남자아이의 경우에는 쌀·돈·책·붓·먹·두루마리·활·장도·흰실타래·대추·국수·떡 등을,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쌀·돈·책·붓·먹·두루마리·바늘·인두·가위·잣대·흰실타래·대추·국수·떡 등을 놓아둔다. 아이는 이것들을 집는데, 첫번째와 두번째에 집는 것으로써 그 아이의 성격·재질·수명·재복·장래성을 점쳐본다. 이러한 행사를 돌잡히기라고 한다. 책·먹·붓·두루마리를 먼저 집으면 학문에 힘써 과거에 등과하여 벼슬을 할 것이라고 보고, 쌀·돈을 먼저 집으면 부자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활·장도를 먼저 집으면 무관이 될 것이라 하고, 실과 국수를 먼저 집으면 장수하리라고 본다. 대추를 먼저 집으면 자손이 많으리라고 보고, 떡을 먼저 집으면 미련하리라고 보고, 바늘·가위·자·인두를 먼저 집으면 바느질을 잘할 것이라고 본다. 부모와 가족들은 아이가 잘 살기를 바라서 쌀과 돈을, 공부 잘하기를 바라서 책·붓 등을, 명이 길기를 원해서 실과 국수를, 바느질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바늘·인두 등을 가까운 데 놓아두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가 바라는 대로 물건을 집지 않는 수가 많다. 돌날에는 떡을 쟁반이나 대접에 담아서 이웃집에 보낸다. 이것을 돌떡 돌린다고 한다. 돌떡을 받은 집에서는 떡을 가져온 그릇에 돈·쌀·실타래 등을 넣어 답례한다. 돌날에는 일가친척이며 친지들이 많이 와서 축하를 하고 주식과 떡을 대접받는다. 이 때 축하객들은 돈·쌀·실·수저·밥그릇·밥상 등의 축하품을 가지고 온다. 외할머니나 고모 같은 근친자는 옷·반지·수저·포대기·돈 등 다른 축하객보다 값이 나가는 선물을 한다. 참고문헌 『조선상식』-풍속편-(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민속대관』(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0)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통과의례-(문화재관리국, 1969∼1981) 「生産に關する民俗-京城-」(金文卿, 『朝鮮民俗』 2, 1934) 관련이미지 11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평생도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념이 될 만한 경사스러운 일들을 골라 그린 풍속화. 평생도 중에서 돌잔치의 모습.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돌잔치는 아기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되는 날 치르는 잔치입니다. 백일잔치와 비슷하게 돌잔치 상에도 백설기, 수수경단, 송편 등의 떡을 올려놓아 잔치를 벌입니다. 대추, 밤과 같은 곡식과 돌잔치 시기의 맞게 싱싱한 제철과일들도 놓습니다. 아기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진행됩니다. 돌이라는 말은 옛부터 아이의 생일을 새는 단위입니다. ‘한 돌을 맞았다.’, ‘두 돌을 잡혔다.’, ‘세 돌이 된다.’ 할 때에는  아이의 나이를 표시하는 말이 됩니다. 한자로는 돌을 초도일·수·수일 등으로 표기합니다. 이와 같이 아이가 출생하여 꼭 1년이 되는 첫 생일날을 돌이라 하여 빈부귀천이나 경향(京鄕)의 지역적 차이 없이  누구나 아이를 위한 돌잔치를 지내왔습니다. 돌날 아침에 삼신상을 차려 아이의 명복(命福)을 빌고, 가족이나 일동이 미역국과 쌀밥으로 조반을 마친 다음 돌잔치를 시작한다.  돌맞이하는 아이는 돌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준비된 돌상 앞에 앉힙니다.  사내아이는 저고리와 바지에 조끼·마고자·두루마기를 입히고,  그 위에 남색 쾌자를 입힌다.   돌잡이 돌잡이의 역사는 역사책에 정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국조보감에 '정조 15년 6월조'에 원자의 돌날 온갖 장난감을 담은  소반을 집복헌 에 차려놓고 대신과 경재에게  들어와 보도록 명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신하들이 다 축하의 말을 하고, 신하들로부터  서리, 하예, 군졸, 거리의 백성들에게까지 떡을 내렸고,  특별히 조관과 사서인으로서 유배 이하에 해당되는 죄를 지은  사람의 죄명을 씻어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고, 합벽사류,동경몽화록,애일노총초, 사원에 수반, 시수, 고주, 시주 등의 말이 나오는데  모두 돌을 뜻한 말로 그 풍속이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돌잡이용품 돌잔치는 우리나라의 전통 풍습이지만 돌잡이 용품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특히 근래에는 마이크를 두기도 하며 시대에 맞게 재밌는 돌잡이 용품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돌잡이는 아기의 장래를 점치며 잡은 물건에 따라 뜻하는 의미가 다릅니다. 실, 국수 : 장수한다 실과 국수는 길이가 길기 때문에 아이가 오래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놓았다고 합니다. 대추 : 자손이 번성한다. 대추는 씨가 많기 때문에 대대손손 번성한다는 의미를 붙인것 같네요. 쌀 : 유복한 재산가가 된다. 옛부터 쌀은 주식이며 과거엔 쌀이 가장 귀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에 재산가라고 합니다. 떡 : 튼튼하고 복이 많다. 되게 음식을 대변하는 의미는 건강과 복인것 같습니다. 돈 : 부를 많이 모은다. 활과 화살(남아)  : 무인이 된다. 미래에 장군을 꿈꾸기 위해 놓은 돌잡이용품입니다. 칼 :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이 된다. 무예가 아닌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게 재밌습니다. 요즘은 칼보다는 뒤집개를 많이 놓는다고 합니다.   자, 바늘 :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된다. 바느질 도구로 길쌈에 능하다. 아무래도 조선시대 때 여인의 돈벌이 수단이 한정적이였기 때문에 바느질 실력이 중요했습니다.   책, 먹, 벼루, 붓, 종이, 연필 공책 : 문장가가 되거나 공부를 잘한다. 요즘 부모님들도 원하는 돌잡이 용품입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지 1년을 맞는 돌잔치만큼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요? 또한 아기의 돌잡이 보는 재미도 쏠쏠한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잡은 돌잡이용품은 무엇이 있나요? [출처] 돌잡이용품 그 뜻과 유래는?|작성자 재테크인포   ============================/// 전통적인 돌잡이용품 - 명주실 : 몸 건강하게 자랄게요 (건강) - 엽전 : 재물을 많이 모을거예요 (부자) - 마패 : 높은 관직에 올라 휼륭한 사람이 될거예요 (공직자, 공무원 등) - 복주머니 : 복많이 받을거예요 (다복) - 붓 : 문필로 유명한 인물이 될거예요 (학자) - 벼루 : 문필로 유명한 인물이 될거예요 (학자) - 오방색지 : 오방색의 힘찬기운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거예요 (건강) - 천자문 : 학문으로 이름을 널리 떨칠거예요 (학자) - 활과화살 : 용맹스런 사람이 될거예요 (군인, 경찰 등) - 약탕기 : 한의사가 될거예요 (의사) - 바늘쌈 : 손재주가 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거예요 (디자이너 등) - 골무 : 손재주가 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거예요 (디자이너 등) - 실패 : 손재주가 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거예요 (디자이너 등) - 오색실 : 손재주가 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거예요 (디자이너 등) - 자 : 손재주가 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거예요 (디자이너 등) - 청실홍실 : 자손번창과 부부간 좋은 금술을 기원하는거예요 (자손번창, 부부금술) - 쌀 : 부자가 될거예요 (부자)
7837    [세상만사] - "아리랑과 외국인" 댓글:  조회:2392  추천:0  2021-01-14
문화·라이프 아리랑 편곡한 英 피아니스트 “곡의 단순함과 진실성에 반했다” 새 음반에 ‘아리랑’ 수록한 허프 “6월 방한하게 되면 연주할 것” 김성현 기자 2021.01.13      영국 음반사 하이페리온 제공 독집 음반에 '아리랑'을 편곡 녹음한 영국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 해외 연주자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보낸 뒤 답장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아도 1주일. 열흘이나 보름이 넘어가면 그야말로 ‘인내심 테스트’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영국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스티븐 허프(59)는 정반대로 딱 52분 걸렸다. 퇴근 전인 오후 6시 22분 한국에서 질문을 보냈더니, 퇴근 중인 오후 7시 14분쯤 질문마다 대여섯 줄의 영어 답변이 빼곡하게 적힌 그의 답신이 ‘받은 편지함’에 들어와 있었다. 보낸 편지가 반송된 줄 알고 퇴근 버스에서 깜짝 놀랐다. 60여 장의 음반을 내놓은 정상급 피아니스트, 30곡이 넘는 자작곡을 발표한 작곡가, 음악과 종교에 대한 책은 물론이고 소설까지 펴낸 작가. 세계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에서는 이런 그에게 ‘박식한 피아니스트(polymath pianist)’라는 별명을 붙였다. 정작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혀 좋아하지 않는 별명!”이라고 했다. 허프는 이달 말 발표하는 새 음반 ‘덧없는 인생(Vida Breve)’에서 한국 민요 ‘아리랑’을 직접 편곡하고 연주했다. 2019년 내한 무대에서도 그는 앙코르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이 영상은 예술 채널 아르테의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아리랑'을 녹음하게 된 계기는. “한국 공연을 앞두고 말레이시아에서 친구와 점심 식사 자리에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가 뭔지 물었다. 특별한 걸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그 친구가 ‘아리랑’의 악보를 건네줬다. 단순한 아름다움(simple beauty)에 첫눈에 반했고 앙코르용으로 편곡했다. 아시아 각국에서도 이 노래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Sim Canetty-Clarke -’아리랑' 원곡의 매력은. “유튜브에서 들어보았는데 멜로디가 자연스럽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예상 가능한 듯하면서도 놀라움을 선사하는 선율의 모양새와도 연관이 있다. 편곡할 때도 원곡의 단순함과 전통적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했지만, 몇 군데에서는 서구적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노래를 연주하는 이유는. “언어·정치·종교를 떠나서 음악은 세상을 통합시키는 힘이 있다.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베토벤처럼 유명한 작곡가뿐 아니라 요크 보엔이나 페데리코 몸푸처럼 덜 알려진 작곡가도 열심히 조명하는데. “우리가 연주하는 모든 곡이 걸작일 필요는 없다. 몇몇 위대한 작품만이 아니라 음악사의 샛길들(byways)을 탐색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보엔은 영국 낭만주의 음악을 공부하다가 발견했고, 몸푸는 내가 꼬마였을 때 처음으로 들었던 음반이었다. 진실성과 단순성이 깃들어 있는데, ‘아리랑’과도 그리 멀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연주자들도 집이나 스튜디오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일상에도 변화가 있는가? “팬데믹 기간에 예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 6장의 음반을 만들었고, 작곡·편곡도 많이 했다. 첼리스트 요요마의 음반에도 내가 편곡한 두 곡이 들어갔다.” -한국을 다시 찾을 계획은. “올해 6월쯤 대전과 서울에서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제발 바이러스와 여행 상황이 나아져서 한국 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너무 맵지만 않다면!”
7836    [그것이 알고싶다] - 지방 쓰는 법, 명정 쓰는 법 댓글:  조회:4018  추천:0  2021-01-11
시사상식사전 지방 쓰는 법      지방(紙榜)은 명절 차례와 제사를 모시는 대상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당에 쓰이는 신주(神主)가 없을 때 임시로 만드는 위패를 뜻한다. 현대에는 신주·위패 등을 모시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대신하여 종이로 지방을 만들고, 제사나 차례가 끝나면 태우게 된다.             외국어 표기     紙榜 -    출처: 픽사베이 지방은 원래 정해진 규격이 없지만 신주를 약식화한 것이므로 신주와 유사하게 제작하는 것이 좋다. 지방의 규격은 가로 6cm·세로 22cm로, 위쪽은 둥글게 하고 아래쪽은 평평하게 한다. 글자는 깨끗한 한지(백지, 창호지)에 먹으로 쓰는데, 한자로 쓰는 것이 전통이지만 최근에는 한글로 쓰기도 한다. 글씨는 세로쓰기로 위에서 아래로 적는데, 지방의 상단 모서리가 접히거나 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방에는 ‘고인과 차례를 모시는 사람과의 관계’, ‘고인의 직위와 이름’, ‘신위(神位, 신령의 자리로 설치된 장소)’ 순으로 작성해야 한다.   지방 쓰는 법 ① 제주(祭主)와의 관계    지방의 가장 윗부분에는 고인을 모신다는 뜻을 기리기 위해 ‘고인이여, 나타나십시오’라는 의미인 ‘나타날 현(顯)’ 자를 쓴다. 다음으로 제사를 올리는 제주(祭主, 제사를 모시는 사람)와의 관계를 적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      현고(顯考)     어머니      현비(顯妣)     조부      현조고(顯祖考)     조모      현조비(顯祖妣)     증조부      현증조고(顯曾祖考)     증조모      현증조비(顯曾祖妣)     고조부     顯高祖考(현고조고)     고조모     顯高祖妣(현고조비)     남편      현벽(顯辟)     아내      망실(亡室), 고실(故室)     형     현형(顯兄)     동생      망제(亡弟), 고제(故弟)     자식      망자(亡子), 고자(故子)   ② 고인의 직위와 이름    남자 조상이 벼슬을 한 경우에는 벼슬의 이름을 써주고, 벼슬을 안 한 경우에는 ‘學生(학생)’이라고 쓴다.  ‘學生(학생)’은 본래 관직이 없거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다만 과거제도가 없는 현대에는 특별한 변형 없이 고인이 남성이라면 모두 '學生(학생)'으로 적는다. 그 다음에는 ‘府君(부군)’이라고 쓴다.    여자 조상은 남편의 벼슬 급에 따라 나라로부터 부여 받은 貞敬夫人(정경부인)·貞夫人(정부인)·淑夫人(숙부인) 등의 호칭을 쓰면 되는데, 일정한 봉작이 없다면 ‘孺人(유인)’이라 적는다. 그 다음에 고인의 이름을 쓰는 부분에는 본관과 성씨(예. 김해 김씨)를 적는다.  ③ 신위(神位)   지방의 맨끝에는 공통적으로 '신위(神位)'라고 써야 한다. 여기서 신위는 제사를 지내는 주인공이 위치할 곳이라는 뜻이다.    부모의 지방 쓰는 법 부모의 지방을 쓸 때 제주와의 관계를 적는 부분에서는 아버지를 왼쪽에 쓰고, 어머니를 오른쪽에 쓴다. 만약 한 분만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돌아가신 분만 중앙에 쓴다.    아버지 지방의 경우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쓰는데 이때 顯(현)은 존경의 의미를 지니며 考(고)는 고인이 제주의 아버지임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오는 ‘學生(학생)’은 본래 관직이 없거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다만 과거제도가 없는 현대에는 특별한 변형 없이 고인이 남성이라면 모두 學生(학생)으로 적는다. 府君(부군)은 제사 대상이 남자일 경우 적는 것이며, 마지막에는 조상의 자리를 의미하는 神位(신위)를 적는다.    어머니 지방의 경우 ‘顯妣孺人光山金氏神位(현비유인광산김씨신위)’이라고 적는데, 여기서 妣(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뜻한다. 여성의 경우 과거에는 정경부인(貞敬夫人) 등 봉작이 있다면 봉작을 적지만, 일정한 봉작이 없다면 孺人(유인)이라 적는다. 그 다음에 고인의 이름을 쓰는 부분에는 본관과 성씨(예. 광산김씨)를 적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조상의 자리를 의미하는 神位(신위)를 적는다.    지방 접는 법 지방을 접기 위해서는 우선 깨끗한 창호지나 한지 등의 백지를 가로 40cm, 세로 25cm 크기로 준비한다. 그리고 종이를 세로로 4등분해 선을 만든 다음 양쪽 면을 중심쪽으로 접는다. 다음으로 양쪽 모서리를 접은 다음 뒤집어, 삼각형 부분을 위아래 모두 앞쪽으로 꺾어 접는다. 그리고 중심선을 기준으로 양쪽을 뒷쪽으로 접은 후, 이 상태에서 위아래의 접힌 부분을 각각 재끼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방 쓰는 법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방법사전 지방 쓰는 방법 전통 제례 예절   예전에는 집집마다 조상의 위패(位牌), 즉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이 있었다. 사당은 조선시대 양반층이 먼저 만들기 시작해서 조선 후기가 되면 각계각층으로 일반화되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집안 한쪽에 간단하게나마 조상의 위패를 모신 자리를 마련하였다. 제사를 지낼 때는 이 위패를 모셔다 지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일반적으로 가정에 사당도 없고 조상의 위패도 없다. 그러니 제사 등을 지낼 때 형편상 임시로 종이에 글을 적어 임시로 위패를 대신 삼는 것이 바로 지방이다. 지방은 신주가 없을 때 임시로 만드는 위패이다. 지방 쓰는 법 제사를 지낼 때 부모 한쪽이 생존해 있을 경우는 단독으로 지내니 지방에도 한 분만 쓴다. 그런데, 두 분 다 돌아가시면 같이 지내므로 지방에 부모를 같이 쓴다. 이때 오른쪽에 어머니의 신위를 쓰고 왼쪽에 아버지의 신위를 쓴다.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지방 쓰는 법. 지방에는 고인과 제사를 모시는 사람(제주, 祭主)의 관계를 적고, 고인의 직위를 적고, 고인의 이름을 적고, 마지막에 신위라고 적는다. 각각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고인과 제주의 관계  아버지는 ‘고(考)’, 어머니는 ‘비(妣)’, 조부모는 ‘조고(祖考)’, ‘조비(祖妣)’, 증조부모는 ‘증조고(曾祖考)’, ‘증조비(曾祖妣)’라 하여 앞에 현(顯)을 써서 ‘顯考(현고), 顯妣(현비), 顯祖考(현조고), 顯祖妣(현조비), 顯曾祖考(현증조고), 顯曾祖妣(현증조비)’라고 쓴다. 남편은 顯辟(현벽)이라고 쓰며, 아내는 ‘顯(현)’을 쓰지 않고 亡室(망실) 또는 故室(고실)이라 쓴다. 형은 顯兄(현형), 형수는 顯兄嫂(현형수), 동생은 亡弟(망제), 또는 故弟(고제), 자식은 亡子(망자), 또는 故子(고자)라고 쓴다. 2. 고인의 직위  전통적으로는 남자 조상이 벼슬을 한 경우에는 벼슬의 이름을 쓰고, 여자 조상은 남편의 급에 따라서 貞敬夫人(정경부인), 貞夫人(정부인), 淑夫人(숙부인) 등의 호칭을 나라에서 받았기 때문에 그 호칭을 썼다. 벼슬을 안 한 경우 남자 조상은 ‘學生(학생)’이라 쓰고, 그 부인은 ‘孺人(유인)’이라 썼다. 3. 고인의 이름  남자 조상의 경우 모두 ‘府君(부군)’이라고 쓰며, 여자조상이나 아내는 본관과 성씨(사례에서는 ‘김해 김씨’)를 쓴다. 자식이나 동생의 경우 이름(사례에서는 ‘길동’)을 쓴다. 백숙부모, 형제, 부부, 자식의 지방 쓰는 법. 다양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공직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여자가 공직을 지낸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어 밀양 박씨 여자가 서기관을 지낸 경우 현대 사회상에 맞추어 직위에 ‘서기관’이라고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방쓰기에 참고할 사항 지방에 고인 외에 제사를 받드는 봉사자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는 큰 아들인 경우 ‘孝子’, 작은 아들인 경우 ‘子’, 큰손자이면 ‘孝孫’, 증손자이면 ‘孝曾孫’, 남편이면 ‘夫’라 쓴다. 봉사자는 오른쪽으로부터 마지막 줄에 기록한다. 예를 들어 ‘孝子○○봉사’라고 쓴다. ○○는 이름이다. 최근에는 한글로 지방을 쓰는 집안도 늘어나고 있다. 이때는 ‘어머님 신위’, ‘아버님 신위’ 등으로 간단하게 쓸 수도 있고, 한자의 우리말 표기만 써서 ‘현고학생부군신위’와 같이 쓰기도 한다.       관련이미지 3                               지방신주를 모시고 있지 않는 집안에서 차례나 기제사에 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지방 쓰는 방법 - 전통 제례 예절 (방법사전, 용인시 예절교육관)   ===================================================================/// ◐  명정(銘旌)    (1) 명정은 한글로 비단 홍포(紅布)에 흰색 글씨로 (00(직함)00(본관)00(성명)의널(구)이라고 쓰며 그 크기는 온 폭으로 길이 6척, 폭 1.5척 정도로 씁니다.   (2) 옛 풍속대로 한문으로 쓴다면 벼슬이 없는 분은 학생능성구공한진지구(學生綾城具公漢振之柩) 또는 여자의 경우에는 유인태인허씨이름지구(儒人泰仁許氏이름之柩)라고 쓰며, 벼슬이 있는 분은 학생 대신 관직을 넣으면 되고, 여자 역시 유인 대신 품계를 적어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만 20세 미만의 사망자는 원래 초상을 치르는 것이 아니므로 명전이 따로 없으나, 만 20세가 넘은 성인 총각의 초상에는 동자능성구공현철지구(童子綾城具公之柩)라고 쓰며, 만 20세가 넘은 성인 처녀 초상에는 동녀태인허씨지구(童女泰仁許氏之柩)라고 쓰면 됩니다.  물론 본관과 이름은 모두 해당 고인에게 맞춰 적어 넣으면 될 것이며, 요즘에는 보통 벼슬 없는 분의 명정은 고인의 이름을 적지 않는 것이 관례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3) 명정을 쓴 다음에는 위아래의 끝에 대를 넣어 편편하게 하고 출상(出喪)전에는 관을 모신 동편에, 출상 시에는 긴 장대에 달아 영구 앞에서 들고 가며, 하관 시 관 위에 덮고 묻습니다. 이것은 상여로 출상할 때의 경우입니다. 명정에 흰 글을 쓰는 것은 백분에 아교를 섞어서 쓰지만, 붓에 물이나 조선 간장을 묻혀 쓰고 백분이나 밀가루를 뿌리면 편리합니다만 요즈음에는 은분으로 대개 명정을 쓰고 있으나 그것은 보기에는 매끄럽고 반짝반짝 빛나 보여 좋아 보일지는 몰라도 땅에 들어가면 비단은 썩어도 글자만 썩지 않을 우려도 있어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7835    [세상만사] - "꽁꽁" 댓글:  조회:2377  추천:0  2021-01-11
국제 꽁꽁 언 ‘한베리아’… 영하 40도 북극은 어떻게 사는거야? 임규민 기자  2021.01.11        북극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의 러시아인 정착촌 바렌츠부르크의 풍경. 눈밭 좌측편에 설상차들이 주차돼 있다. /그루망 북극 관광 센터 유럽 최북단 노르웨이 오슬로 북쪽 2000여㎞. 북극점에서 1000㎞ 안쪽인 북극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諸島). 9일(현지 시각) 러시아 현지 매체 러시아비욘드에 따르면 이곳 러시아인 정착촌 바렌츠부르크에서도 겨울나기가 한창이다. 여름철 석달가량을 제외하곤 항상 영하의 날씨를 유지하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이곳에서도 450명가량의 주민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곳 주민 티모페이 로고진씨는 “겨울철 우울하게 지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북단 정착촌 중 하나인 스발바르 제도는 전체 6만2700㎞ 면적의 1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다. 17세기부터 고래잡이를 위해 이용되던 이 섬들은 20세기 들어 석탄 채굴지로 각광 받으며 정착촌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정착촌은 10여개에 이르며 3000명가량이 살고 있다. 1920년 이 섬들에 대한 노르웨이의 자치권 행사를 인정하는 ‘스발바르 조약’이 체결되면서 이곳은 노르웨이 영토가 됐다. 대신 모든 조약 서명국은 이곳에서 석탄 채굴 등 경제 활동 권리를 보장 받았다. 이에 러시아·폴란드 등 각국 주민들이 이곳에 와 정착해 살게 됐다. 이중 러시아는 영사관까지 설치해 자국 국민들의 거주를 지원하고 있다. 바렌츠부르크는 비(非)노르웨이인 정착촌 중 가장 큰 규모다.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5도. 날이 조금 풀리는 6~9월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간이 영하 12~40도를 오르내린다. 6~9월도 평균 기온은 영상 5도에 그친다. 북극권 소식에 정통한 노르웨이 바렌츠옵서버에 따르면 겨울철 이들은 창문을 호일로 2~3중 덮어 추위에 대비하고, 집안 곳곳에 여분의 담요를 마련해둔다. 그러나 지나친 난방은 금물이다. 드미트리 막시모프씨는 “난방에만 의존하면 사계절 내내 이곳에서 버티기 어렵다”며 “야외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선 일종의 적응 훈련이 필요한 셈”이라고 말했다.   북극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의 러시아인 정착촌 바렌츠부르크가 어둑한 풍경. /그루망 북극 관광 센터 대비할 건 추위만이 아니다. 극지방에선 동절기 극야 현상이 심하다. 여기선 1년 중 120일가량 해가 거의 뜨지 않고 밤이 지속된다. 로고진씨는 “겨울철 유일한 광원(光源)은 랜턴과 달뿐”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해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곳 한 주민은 “많은 이들이 여기 사람들은 맨날 북극곰의 습격을 받고 집 밖으론 나가지도 못할 것이라 말하지만 전부 엉터리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들은 겨울 스포츠를 활발히 즐긴다. 설상차를 수백㎞ 이상 몰고 바렌츠부르크 북동쪽에 위치한 또 다른 러시아 정착촌 피라미다를 방문하기도 한다. 피라미다에도 러시아인 5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동토(凍土)의 땅에도 여름은 찾아온다. 다만 여름철 이곳에선 더위가 문제가 아니다. 이곳 여름철 평균 기온은 영상 5~7도. 이들은 영상 10도만 돼도 두꺼운 옷을 벗고 티셔츠 차림으로 다닌다고 한다. 여름철 골치를 썩이는 건 백야다. 백야는 극야와 반대로 해가 거의 지지 않아 대낮이 늘상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또한 이곳에서 120일가량 계속된다. 러시아비욘드에 따르면 이때 이곳 주민들은 잠을 청하기 위해 밤에도 창문을 커튼으로 온통 가려놓는다. 자외선 차단제도 꼼꼼히 바른다. 극지방 햇빛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강렬해 잘 타기 때문이다.   북극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의 러시아인 정착촌 바렌츠부르크의 풍경. /그루망 북극 관광 센터 이 시기 이곳 주민들이 각별히 신경 쓰는 건 ‘고양이 보안’이다. 스발바르 제도에선 생태·환경적 이유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반려동물을 기르는 게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곳 일부 주민들은 집 안에만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는 고양이를 몰래 기르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비욘드에 따르면 이들은 해가 항상 떠 있는 여름철엔 노르웨이 당국에 들키지 않도록 고양이를 집 안에만 잘 숨겨놓는다. 1980년대까지 스발바르 제도엔 2400명 가까운 소련인이 거주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던 1990년대 상당수가 러시아 본토로 귀환했다. 오늘날 이 지역에선 석탄 채굴 등 광업뿐 아니라 북극권 과학 연구·관광업 등에 많은 주민들이 종사하고 있다. 한편 이곳은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청정 지역’이다. 그루망 북극 관광 센터 직원 알렉세이 카르가신씨는 “스발바르는 코로나 사례가 없는 지구상 유일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작년 봄 이후 모든 식당·술집이 방역 수칙을 준수해 2시간마다 소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도 마스크를 꾸준히 착용한다. 현재 이 제도에 들어올 수 있는 건 노르웨이인과 노르웨이 본토에서 10일간 격리를 마친 이들뿐이다. 로고진씨는 “상황이 어쨌든 우린 어떻게든 즐겁게 지내려 한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7834    [세상만사] - "영화와 경계선" 댓글:  조회:2667  추천:0  2021-01-09
문화·라이프 [시네마 천국과 지옥] ‘미나리’는 어느 나라 영화일까? 김성현 기자  2021.01.07      영화 '미나리'의 주연배우들과 감독 리 아이작 정(오른쪽).   만약 연출과 제작은 미국인데, 주연 배우는 한국계이고 사용 언어는 한국어라면 어느 나라 영화일까요? 이전까지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었던 질문을 던질 때가 왔습니다. 한국계 미국 영화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의 ‘미나리’ 덕분입니다. 살짝 과장을 보태면 이 작품은 오는 4월로 예정된 미 아카데미 시상식을 향해서 ‘쾌속 질주’를 하는 중입니다. 지난해 미 선댄스 영화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쥐더니, 최근에는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 등 미 현지 영화 비평가 협회상을 연이어 받고 있지요. 미 연예 매체들도 이 작품을 미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과 각본상, 여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의 후보로 점찍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의 전초전’부터 청신호가 켜지고 있는 셈입니다.   영화 '미나리' 방금 전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미나리’의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이고, 제작은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사인 플랜 B가 맡았습니다. 연출과 제작 기준으로는 분명 ‘미국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셈법이 복잡해집니다. 영화는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가족이 남부 아칸소의 시골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봉준호 감독의 ‘옥자’로 친숙한 한국계 미국 배우인 스티븐 연과 한예리가 한인 부부, 윤여정이 딸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는 친정 어머니 역을 맡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한국어 대사가 차지하지요. 어쩌면 ‘미국 영화계가 제작한 한국어 영화’가 정답에 가장 근접한 답변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미나리’를 둘러싸고 미 영화계에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앞서 다음달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 영화는 본상인 작품상이 아니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갈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지요.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의 규정에 따르면 대사의 절반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에는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나리’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보도가 나온 직후, 아시아계 영화인들은 이 규정이 ‘차별 조항’이라고 반발했지요. 잠시 이야기가 곁가지로 빠지는 감이 있지만, 여기서 2017년 골든글로브 공로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의 수상 소감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네요.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현재 미국 사회에서 비난 받는 집단에 속해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할리우드, 외국인, 그리고 기자들이라니요(All of us in this room belong to the most vilified segments in American society right now. Think about it: Hollywood, foreigners and the press).” 스트립의 소감처럼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에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요소가 세 가지나 들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미나리’를 둘러싼 최근 논란이 보여주듯이 이 영화는 한국과 미국의 영화적 경계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한국 관객들이 느낄 법한 자긍심과 미국의 아시아계 영화인들의 반발은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지요. 영화는 정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는 국내 언론과의 영상 인터뷰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일화를 제 가족의 이야기에서 가져왔다”고 말했지요.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영화의 배경인 아칸소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예일대를 졸업한 뒤 영화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국내에서 35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할리우드 실사판 리메이크가 그의 차기작입니다. 오는 3월쯤 극장 개봉 예정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이 영화를 본 관객이 많지 않습니다.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1박 2일의 짧은 출장길에 이 영화를 관람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뒤에 소감을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제 영화적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작품”이라고 말이지요. 과연 ‘미나리’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까요.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 영화계 가운데 어느 나라에 기쁜 소식일까요. ‘미나리’의 선전에 관심이 가는 이유입니다.
7833    [세상만사] - "기부자와 기부금" 댓글:  조회:2475  추천:0  2021-01-08
사회 “생계 막막한 부녀자 가장에 써달라”... 편지와 함께 날아온 3억수표 정성원 기자 2021.01.08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3억원을 내놓은 익명의 기부자가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익명 기부자의 편지. / 연합뉴스 90대의 이 남성은 지난 2015년과 2017년에도 3000만원과 5000만원을 각각 춘천시에 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 춘천시는 지난 5일 90대의 한 노인이 춘천시청 복지정책과를 찾아와 3억원이 든 봉투와 편지 한 통을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했다고 8일 밝혔다. 이 남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으며, 편지를 통해 “코로나 등으로 힘든 현실에 놓인 이웃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편지엔 “어린 자녀를 거느리고 있거나 병든 노부모를 모시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녀자 가장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면서 “꼭 도움이 필요한 100개 가정을 엄선해 1월부터 3월까지 매달 100만원씩 지급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춘천시는 기부금을 강원도공동모금회에 전달했으며, 지원 대상자를 찾아 이를 전달키로 했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기부자의 따뜻한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사회의 온정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7832    [그것이 알고싶다] - "민주와 민주" 댓글:  조회:2710  추천:0  2021-01-07
사건·사고 끊이지 않은 미국 의회 2021.01.08.    화나요 훈훈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워싱턴DC 이전 후 220년간 다양한 위기… 미국 의회 [로이터=연합뉴스]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신생국이었던 미국 의회가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거쳐 수도 워싱턴DC로 이전한 것은 1800년의 일이었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을 참고로 한 설계도에 따라 포토맥강 동쪽 언덕에 세워진 의회 건물은 미국 민주주의의 전당으로서 기능했지만,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1814년 수도에 침입한 영국군이 의회 건물을 불태운 사건이 대표적이다. 나무 바닥 등 가연성 소재가 많이 쓰였던 의회 건물 중에서도 상원이 큰 피해를 봤다. 화재 4주 후 회기가 시작되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매디슨은 수도에서 유일하게 불타지 않았던 한 호텔에서 상원 회의가 열리도록 조치했다. 상원이 화재 피해가 복구된 의회 건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5년이 지난 1819년의 일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사고 중 하나로 1954년의 총격 사건도 소개했다. 푸에르토리코인 4명이 방청객 자격으로 의회 건물에 들어가 회의 중인 하원 의원들을 향해 반자동 권총을 난사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주장한 이들이 발사한 총알에 하원 의원이 5명이 맞았지만, 모두 생명은 건졌다. 이들은 모두 체포됐고, 주범에겐 85년형이 선고됐다. 1998년에도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병력이 있는 한 남성이 의회 건물로 입장하려는 도중 검색대에서 제지를 받자 갑자기 38구경 권총을 꺼내 들고 총을 발사했다. 의회 경관 2명이 숨졌고, 남성은 체포됐다. 편집증을 앓았던 범인은 평소 연방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주변에 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범행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2013년엔 의회 경관이 쏜 총에 한 흑인 여성이 숨졌지만, 의회를 침입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이 여성은 백악관 인근 검색대에서 자동차 사고를 낸 뒤 경찰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NYT는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대한 공격을 조장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영국군의 방화를 포함해 총격 사건까지 의회가 적지 않은 공격을 받았지만, 전날 발생한 시위대의 난입과는 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 ===============================/// 국제 시위대 휩쓸고 간 새벽, 의사당 청소한 한국계 앤디 김 의원 김은경 기자 2021.01.08    한국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인 앤디 김(39) 민주당 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난입한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 남아 뒷정리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7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휩쓸고 지나간 의사당 건물 내부를 정리하는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AP 연합뉴스 7일(현지 시각) 김 의원이 쓰레기를 치우고 의사당을 정리하는 모습이 동료 의원과 AP통신 취재진 등에 포착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다. 김 의원은 물병과 옷, 트럼프 깃발, 성조기 등 시위대가 휩쓸고 바닥에 널브러진 잔해를 직접 주워 봉투에 담고 치웠다.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는 오후 1시에 맞춰 수천 명의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의사당 건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워싱턴DC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다 의사당으로 행진했고, 일부 지지자들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난입했다. 수천명이 성조기를 들고 외부 계단을 점거해 경찰과 대치했고 일부 시위대는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안으로 들어와 문을 부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난리통이 지나간 후 무거운 마음으로 의사당 안을 걷다가 경찰관이 쓰레기 봉투에 피자 박스들을 넣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경찰관에게 ‘나도 (봉투를) 하나 달라’고 하고 같이 청소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누구든 좋아하는 것이 망가지면 고치고 싶지 않겠나”라며 “나는 의회 의사당이 좋다. 이곳에 있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이어 “정말 가슴이 아팠고 그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밖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7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휩쓸고 지나간 의사당 건물 내부를 정리하는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AP 연합뉴스 같은 뉴저지주(州) 동료 하원의원인 톰 맬리노스키는 김 의원이 의사당을 치우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새벽 1시쯤이었던 것 같다”며 “경비대원 두 명이 지킨 옆에 다른 누군가가 벤치 아래 무릎 꿇고 뭔가 줍는 걸 봤다”고 했다. 그는 “조용히 잔해를 치우고 비닐봉지에 넣고 있던 건 앤디였다”며 “앤디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청소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한국계 이민 2세로 뉴저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시카고대를 졸업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2018년 연방 의원으로 처음 선출됐고 이번에 재선했다.   앤디 김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EPA 연합뉴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의사당 사진을 올리고 “오늘 밤,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이 건물을 사랑한다”며 “방금 의사당이 마침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 오늘 우리가 다시 모여 대선 결과를 인증하고 헌법을 지킬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 PICK 안내 “경호원은 집 화장실 금지” ... 2021.01.15.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인근 주민 “그 부부, ‘우린 왕족이야’라는 태도였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부부.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와 재러드 쿠슈너 부부가 사저 경호원들이 화장실을 쓰지 못하도록 갑질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백악관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4년 내내 이같은 갑질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워싱턴포스트(WP)는 부부가 거주하는 워싱턴DC 북서부 캘러라마 지역 주민과 비밀경호국 관계자를 인용해 465㎡(약 141평) 넓이의 사저에 화장실이 6개나 있었지만 경호원들은 쓸 수 없었다고 폭로했다. “캘러라마의 경호원은 암살 위협, 거동 수상자를 걱정해야 하지만 이방카와 쿠슈너 부부에 배치된 경호원은 다른 걱정 하나가 새로 생겼는데 바로 화장실 찾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특히 주민들에 따르면 경호원들은 ‘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인근 집에 요청하거나 사무용 건물로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 캘러라마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미국 고위 인사가 몰려 사는 지역이라 정부 경호원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위 인사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업무상 통상 사저 내부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차고나 별채를 화장실이 딸린 휴게실로 개조한다는 게 WP의 설명이다. 이같은 불편사항은 상부에 보고됐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밀경호국은 경호원들의 불만에 나오자 길거리에 임시 화장실을 설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유층인 이웃들이 미관을 해치고, 통행에도 방해된다며 항의해 화장실은 결국 철거됐다. 한 주민은 당시를 떠올리며 WP에 “경호원들이 불쌍했다. 임시 화장실이 철수되는 날 ‘경호원들이 이제 화장실에 가려고 차를 타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다”고 털어놨다. 철거와 함께 경호팀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차고를 경호실로 개조한 건물 내 화장실을 썼다. 화장실이 더러워지는 바람에 2017년 중반 이마저 사용이 금지됐다. 경호팀은 사저에서 1.6㎞ 떨어진 펜스 부통령의 집까지 차로 이동해 볼일을 보거나 급박한 상황에는 인근 식당에 부탁해야만 했다. 한 경찰관은 WP에 “비밀경호국 요원이 화장실을 찾기 위해 이렇게 극한까지 가야 했다는 것은 난생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결국 비밀경호국은 2017년 9월 사저 건너편 주택 지하실을 4년 기간으로 임대했다. WP는 지난 3년여간 임대료만 월 3000달러(약 330만원), 총 14만4000달러(약 1억6000만원)의 연방 예산이 여기에 사용됐다고 전했다. 백악관 측은 이방카 부부가 경호팀의 사저 화장실 사용을 막은 적이 없고, 지하실을 임대한 것은 비밀경호국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비밀경호국 대변인은 WP에 “경호 업무의 수단, 방법, 자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WP는 이방카 부부가 캘러라마에서 ‘좋은 이웃’이 아니었고,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계층이 사는 이곳에서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했다는 불만을 샀다고도 전했다. 또 다른 주민은 WP에 “그 부부는 뭐랄까, ‘우린 왕족이야’라는 태도로 이 지역에 왔다”고 꼬집었다. /박장군 기자 
783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 댓글:  조회:3203  추천:0  2020-12-29
숲에서 4년… 최고령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  2020.12.30.    슬퍼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좁은 우리서 살다가 2017년 이주 축구장 4배 ‘호랑이숲’에서 여생 노환으로 지난 20일 숨 거둬 ‘수목원의 자랑’ 추모 영상 제작지난 10월 15일 낮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숲’이 있는 경북 봉화군의 문수산 자락. 국내 최고령 호랑이인 20살 두만이 바닥에 힘겹게 몸을 뉘었다. 두만은 동생 호랑이 한청(15, 암컷)과 우리(9)를 향해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냈다. 두만은 마치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들에게 “괜찮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전하는 듯했다.  이 장면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하 수목원)의 폐쇄회로TV(CCTV)에 담겼다. 수목원 측이 공개한 두만의 마지막 모습이다.  두만은 지난 20일 정오 무렵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숲에서 보낼 5번째 봄이 오기도 전이었다. 2001년 5월 16일 중국에서 태어난 두만은 2005년 11월 중국 호림원에서 국내로 들여와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 우리에서 살았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2017년 1월 좁은 우리에 갇혀 살던 두만을 데려왔다. 산림청은 백두대간의 체계적 보호와 산림 생물자원의 보전·관리를 위해 2009년~2015년 2200억원을 들여 수목원을 조성했는데, 여기에 축구장 크기의 4배인 3만8000㎡의 초원인 호랑이숲도 만들었다. 호랑이들이 자연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조성한 숲 형태의 우리다.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백두산호랑이 ‘두만’이 지난 20일 노환으로 숨지자 수목원에서 추모 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수명은 야생에서 13∼15년, 사육환경에서 17∼20년 정도로 두만은 수목원 도착 당시에도 고령이었다. 수목원이 마련한 우리에서 ‘진짜’ 숲으로 나가기까지 적응하는 과정도 1년이 넘게 걸렸다.  2017년 9월 중앙일보는 수목원의 호랑이 3마리(두만·한청·우리)를 단독 취재했다. 한청과 우리는 같은 해 6월 서울대공원에서 왔다. 당시 중앙일보는 철장을 사이에 두고 두만과 50㎝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호랑이를 관찰했다.  당시 두만은 늠름한 자태를 뽐냈다. 사육사가 닭고기와 소고기를 던져주자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두만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자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하게 설 정도였다. 당시 호랑이를 돌보던 전재경 수의사는 “호랑이가 숲에서 뛰놀 수 있도록 건강관리를 해 주는 일은 뜻깊고 경이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만은 고령으로 올해 초부터 부쩍 기력이 떨어졌고 관절염과 내형성 발톱이 심해져 걷는 걸 힘들어하거나 먹이도 잘 먹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월 11일에는 두만이 느릿느릿 숲속 산책로를 걷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제대로 걷지 못했지만 이날 두만은 햇살 아래서 자연을 만끽했다.  수목원의 자랑이던 두만이 떠나자 사육사를 비롯한 온 직원이 슬픔에 잠겼다. 수목원에는 호랑이만 관리하는 직원이 5명 정도다. 호랑이 관리 장부에는 매시간 체크한 호랑이의 상태가 빼곡히 적혀 있을 정도로 수목원은 멸종위기 1급인 백두산 호랑이의 보존을 위해 세심한 관리를 해왔다. 수목원은 ‘두만아 사랑해. 영원히 기억할게. 안녕!’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만들어 두만을 추모했다.  민경록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 주임은 “호랑이숲에서 자유롭게 거닐며 백두대간을 즐기는 두만의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며 “두만이가 편안하게 영면하길 바라며 앞으로도 호랑이들이 호랑이숲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신규 개체를 추가 도입해 백두산 호랑이 종 보존에 집중할 계획이다. 국내에는 20여 마리의 호랑이가 동물원 등에 있다. 호랑이숲에는 10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있다.  /백경서 기자 ==========================/// 사회 죽어서도 떨고 있는 백두산 호랑이... 직원 실수로 20일째 냉동창고에 경북대 동물병원 착오로 소각 안 돼 병원 측 “전적으로 병원 실수이자 책임” 13일 소각 예정 이승규 기자 2021.01.     백두산 호랑이 두만/국립백두대간수목원 지난달 20일 20살로 삶을 마감한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 사망 20일째인 지금도 소각되지 않고 있다. 병원 직원의 착오가 원인이었다. 8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수목원)과 경북대 수의대 동물병원(병원)은 두만의 사체가 병원 냉동창고에 보관돼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1일 수목원은 두만의 사체를 병원으로 보내 부검과 소각을 의뢰했다. 소각 처리비 71만원도 이때 지급했다. 현행 가축질병 병성감정 실시요령 제9조 1항에선 죽거나 질병이 의심되는 가축에 대해 전염병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한다. 확인 이후 남은 시료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 제25조에 따라 소각 또는 매몰 처리해야한다. 병원에선 보통 부검을 맡은 직원이 작업을 끝내고 타 업체에 소각 처리를 신청해왔다고 한다. 이후 사무 직원이 부검 직원의 신청과 소각 여부를 확인하는 식이다. 하지만 두만의 처리와 관련해선 별도 확인 과정이 없었다.   의뢰 이틀 뒤인 지난달 23일 수목원 측은 병원 측에 소각 여부 확인 전화를 걸었다. 이때 병원 측은 “소각 신청했고, 처리됐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이후 두만의 소각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오자 수목원이 다시 병원에 사실 여부를 물었다. 이때서야 병원 측은 “확인 결과 아직 소각되지 않았다”면서 “두만의 사체는 냉동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답했다. 경북대 수의대 동물병원 측은 직원 간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사무 직원이 부검 직원에게 소각을 신청해달라고 한 뒤, 신청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수목원에 답변을 했다”면서 “전적으로 병원장과 담당 직원의 관리 실수이자 책임”이라고 했다. 두만의 사체는 오는 1월 13일 수목원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각될 예정이다.
7830    [타산지석] - 늘 "이기리"... 꼭 "이기리"... 댓글:  조회:2642  추천:0  2020-12-28
문화·라이프 “등단하진 못했지만, 나는 이기리라” 김수영문학상 非등단으로 첫 수상… 시집 ‘그 웃음…’ 펴낸 시인 이기리 이기문 기자  2020.12.28    시인이 되고 싶었다.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시를 배우고 또 썼다. 시인이 되려면 자격이 필요해 보였다. 계속 ‘등단’을 시도했다. 신문사나 문예지가 주관하는 신춘문예 혹은 신인상 수상의 훈장. 번번이 미끄러졌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시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전에만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사 편집국의 우편물 수발. 하지만 그렇게 2년을 준비한 시편들이 다시 과녁을 잃었다. 준비하던 한 신인문학상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폐지된다고 했다. 책상 위로 쌓인 시 원고 뭉치는 30㎝ 넘게 자라 있었다. 독자와 만나지 못한 원고 뭉치를 보다 화가 치밀었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원고를 묶어 김수영문학상에 도전했다. 기성 등단 작가의 작품을 심사하는 여타 권위 있는 문학상과 달리 ‘응모 자격 : 신인 및 등단 10년 이내 시인’이란 문구에 용기를 냈다. 스물여섯 이기리는 그렇게 시인이 됐다. 지난 1981년 이 상이 제정된 이후 첫 비(非)등단 수상자. 그의 첫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민음사)가 이달 출간됐다. ‘이기리’는 필명이 아닌 본명. ‘이기리라’는 뜻에서 지었다.   27일 만난 이 시인은 “작가가 되려 끈질기게 이리저리 뛰었더니 이런 결과도 있구나 싶다”고 말했다. 민음사가 주관하는 김수영문학상은 2006년부터 기성 시인뿐 아니라 등단하지 않은 예비 시인들에게 문호를 열었지만, 수상의 영광은 줄곧 등단 시인 몫이었다. 지면을 가져본 적 없는 작가 지망생은 서울 구로구의 방에서 시의 탑을 쌓았다. “2018년은 160편, 작년엔 70편 정도 썼어요. 글쓰기에 최대치를 부여한 시간이지만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취업한 친구들은 미래를 확장해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럴 때면 ‘등단’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서호준⋅김누누 시인을 보고 힘을 냈다. 온라인과 독립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던 두 시인은 올해 각자 첫 시집을 냈다. 온라인 지면을 비롯한 소규모 출판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작가의 자격처럼 여겨졌던 등단 제도도 균열이 발생했다. 제도 바깥에서도 시인은 활동하고, 정세랑·임경선·손아람처럼 등단을 거치지 않고 활발히 독자와 만나는 작가도 많아졌다. “이번도 등단 못 하면 작품 먼저 선보이겠다”며 다른 독립출판사에도 다른 원고 묶음을 보냈다. 작품만 좋으면 시집을 내주는 곳이었다. 그는 작가를 꿈꾸는 예비 문인들에게 말했다. “쓰고 싶은 글을 어디에든 마음껏 써보세요. 실패와 성공을 떠나 글 쓰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의 시작이고 첫걸음이니까요.” ‘마침내 친구 뒤통수를 샤프로 찍었다’란 시구로 표제작은 시작한다. 친구의 커터칼로 ‘검지에는 칼을 댄 자국이 붉게 남았’지만, 화자는 자신을 끌어안은 ‘선생님에게 장래 희망을 말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정호승 시인의 시 ‘너에게’를 접하고 시인을 꿈꿨다. “유년 시절 경험한 폭력과,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사랑이나 이별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을 시집에 담았습니다.”   “평생 글 쓰는 삶을 살아갈 것이기에 이번 수상은 그저 다른 시작인 거죠. 독자로부터 영원히 달아나지 않는 문장들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집 마지막에 이런 제목의 시를 배치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
782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백두범"아, 어서 어서 돌아오라... 댓글:  조회:3462  추천:0  2020-12-26
  100년 전에 자취 감춘 한반도 상징 '백두범' 돌아오나 2020.12.26.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한반도의 상징, 백두범입니다. 범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호랑이가 많았지만, 백 년 전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춰버렸죠. 그런데 다시 한반도로 돌아오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습니다. 하혜빈 기자입니다. [기자] 달리는 자동차 앞으로 갑자기 새끼 호랑이 한 마리가 뛰어듭니다. 차에 부딪힌 호랑이는 도로 한복판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지난 2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발생한 로드킬 사건입니다. 죽은 호랑이는 멸종 위기종인 야생 아무르호랑이로 유전자 분석결과 한국호랑이와 종이 같습니다. 백두산을 정점으로 남쪽의 백두대간과 북간도로 불렸던 옌볜 지역을 관통하는 장백산맥, 연해주가 서로 연결된 한국호랑이의 서식지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 장백산맥 일대에서는 야생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고 있습니다. 발자국이나 배설물이 발견되는가 하면, 민가까지 내려와 키우던 소나 개를 물어 죽이기도 합니다. 연해주 산속에 살던 호랑이들이 중국 지역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최근 야생 호랑이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독자적인 서식 공간을 찾아 대거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대열이 한반도 북부인 백두산 일대나 두만강 이남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지속될 경우 이르면 10년 안에 백두대간 일대에 한국호랑이, 백두범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습니다. (화면출처 : 유튜브) 하혜빈 기자 /[영상편집: 임인수]
7828    [세상만사] - "지문" 있다?... 없다!... 댓글:  조회:3047  추천:0  2020-12-26
  '지문' 없이 태어난 방글라데시 가족… 사회생활 곳곳 '암초' 2020.12.26.    슬퍼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신분증 발급도 어렵고 휴대전화 심카드도 구매 못해 '무지문증' 추정…일명 '입국심사 지연 병' 지문인식기.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지문은 현대사회 들어 신분확인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신체적 특징'이다. 지문이 살아가면서 닳아 없어질 순 있어도 없이 태어날 순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타고나길 지문이 없는 사람도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은 선천적으로 지문이 없어 사회생활에 곤란을 겪는 한 방글라데시 가족의 사연을 전했다.  방글라데시 라지샤히에 사는 아푸 사커라는 이름의 올해 22살인 이 청년은 태어날 때부터 지문이 없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가족 내 모든 남성이 지문이 없이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지문이 없는 이들의 '시련'은 2008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신분증을 발급하고 엄지 지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방안을 도입했는데 아푸의 아버지 아말은 지문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결국 '지문 없음'이라고 도장이 찍힌 신분증을 받았다.  2010년 방글라데시가 여권과 운전면허증에도 지문이 담도록 하면서 아말은 또 난관에 부딪힌다. 아말은 몇 차례 시도 끝에 의학적 소견서를 첨부해 여권을 발급받지만, 공항에서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까 두려워 외국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운전면허는 시험까지 통과하고도 발급받지 못해 아말은 오토바이를 타고 농장 일을 하러 갈 때 무면허로 다닌다. 경찰에 적발되면 운전면허 발급 수수료를 낸 영수증을 보이며 사정을 설명해보지만, 경찰관이 이를 받아들지 않을 때도 있어 여태까지 두 차례 벌금을 물었다.  2016년 휴대전화 심카드를 살 때 지문조회가 의무화하면서 아푸 가족 남성들은 또 어려움에 직면한다. 아푸를 비롯해 가족 내 모든 남성은 현재 아푸의 어머니 명의로 심카드를 구매해 사용한다. 아푸와 아말은 최근 망막·얼굴인식을 활용한 새 신분증을 발급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운전면허를 발급받거나 심카드를 구매할 순 없다. 아말은 "내가 어쩔 순 없는 부분이지만 내가 (문제를) 물려줬다는 점에서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라면서 "나와 내 아들이 온갖 문제에 휘말리는 점이 정말 고통스럽다"라고 말했다. 아푸 가족 남성들에겐 희귀 유전질환인 무지문증(ADG·Adermatoglyphia)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무지문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선천적 수장족저각화증'을 진단받은 적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장족저각화증은 손발에 각질이 두껍게 쌓이는 피부질환이다.  무지문증은 2007년 스위스인 20대 여성이 미국에 입국하려다 지문이 없어 고생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피부과 전문의인 바젤대 생물의학과 피터 이튼 교수가 이 여성과 가족의 유전자를 조사했는데 선천적으로 지문이 없는 경우 'SMARCAD1'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SMARCAD1 유전자의 역할은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했을 때 지문이 없는 것 외에는 다른 병증을 나타내진 않는다. 이튼 교수는 무지문증에 '입국심사 지연 병'이라는 별칭도 붙였다. 
7827    김승종 譚詩 "내 고향은 그 언제나..." / 연변일보 댓글:  조회:894  추천:0  2020-12-25
2020년 12월 25일  문화 > 해란강 > 내 고향은 그 언제나…□ 김승종   내 고향은 그 언제나…□ 김승종   2020-12-24 15:35:38     ㄱ   어느 한때, 고래등 같은 팔간집은 성스러운 고향 시골에서 어마이와 아부지의 어깨를 딛고 으쓱으쓱 쾌지나칭칭 곱새춤도 잘 췄었지   어느 한때, 고향 마을에서 제일 으시대던 굴뚝은 아홉 식솔들이 팔간집 한 구들에서 알콩달콩 지지고 볶고 하는것을 다 보았었지   묻노니- 어마이와 아부지가 코물 눈물 짜며 깨기름 돌게 하던 부엌은 어디메?! 아홉 식솔들이 정나미 너울거리던 그림자들은 또한 어디메?!   고향 옛터에서 비(碑) 아닌 굴뚝은 오늘도 우두커니 홀로이 청청 가을 하늘가에 기나긴 촌사(村史)를 쓰고 있고지고…   ㄴ   지금 한창 할매의 계절 가을철인데- 왜 울 할매의 삼베모시수건은 한 마지기 고추밭에서 얼릉얼릉 보이질 아니할가…   지금 한창 어마이의 계절 가을철인데- 왜 울 어마이 그림자 너머 너머로 이끼 누우런 고추방아간에서 재채기 소리 한번도 들리지 아니할가…   지금 한창 누나의 계절 가을철인데- 왜 울 누나의 고추물에 아릿한 손부리는 저기 저 하늘가 노을 속에 눈물겹도록 처억 걸려 보일락말락 할가…   세월아- 네월아- 내 고향 죽림동 추억거리 서너개비가 이 내 손톱여물에서 갑북갑북 짓깨지고 있고지고…   ㄷ   어제가 울 할배 두루마기와 함께 여기 해란강가에 오기까지 스물여덟개의 비살문꼴들이 둥글게 휘이익 둥글게 달바퀴와 해바퀴로 빚어져서 소수레란 이름으로 덜커덩덜커덩 삐거덕삐거덕 그 얼마나 이랴낄낄 울고 울었을가…   평강벌에서 잔치집 상견례물들을 그들먹히 두둥그레 싣고 동네방네 살맛나게 오가던 울 할배의 소수레가 여기 비암산고개 너머 민속박물관에서 들숨 날숨 처절히 곰삭아가고 있는…   손주: 할매, 저 ‘소수레’란 것이 뭐예유? 할매: 후유, 이 할매가 저 소수레에 앉아 너 할배한테 시집 왔네라… 손주: 할매, 그럼 저도 이후 저 소수레에 앉아 장가 갈래유. 호사하게스리… 호호호…   어제의 소수레 두 바퀴가 오늘 울 할매의 두 무릎 고두리에서 덜커덩덜커덩 삐거덕삐거덕 슬피디 슬피디 울고 있고지고…   ㄹ   시가지 어느 한모퉁이에서 날파리 한 마리와 숨박꼭질하며 보리감자좁쌀밥 무향무미 먹는둥마는둥 하는데야… 하루살이 두 마리를 손사래짓 내젓으며 탁주 감주 민숭맨숭 마시는둥마는둥 하는데야... 모기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세 마리인지 온밤 새벽녘 씨아질 네굽 눈꼬리에 처매는데야…   고향에서 울 할배 쑥타래 택배로 부쳐왔는데야… 쑥타래 태워 모기 휘휘 쫓기 하루살이 힝힝 쫓기 날파리 활활 쫓기 탁주 감주 시원컬컬 벌컹벌컹 곳간 비워지는데야… 보리감자좁쌀밥 시라지장국 냠냠 밥도둑 찾는데야…   오호라, 오늘도 이 텁썩부리 맘속에서 구수히 향음 풍기는 내 고향 울 할배 쑥타래여!   ㅁ   울 외할매네 집 찾아가는 남평 동구밖 너머, 늘 두만강역 독수리바위가 청청 웅좌하고 개구쟁이들을 치렁치렁 불러세우곤 했었지…   소학교 때, 독수리바위 꼭대기에 꼬부장꼬부장 올라 마분지 공책 찢어 종이비행기 만들어서 신나게 날리던 학천이 룡순이 만송이 승종이 개구쟁이들을   독수리바위는 오늘도 어제의 개구쟁이들 모습들만 벼랑가에 얼씨구절씨구 품고 단풍과 함께 코노래 흥얼흥얼 거리며 울긋불긋 청춘만세를 부르고 있고지고…   독수리바위야,ㅡ 그때 그 시절의 개구쟁이들의 종이비행기를 하얗게 새하얗게 찾고 찾아서 돌려다오, 어서 빨리 새하야니 새하야니 돌려다오!…
7826    [록색문학평화주의者]-백두산 호랑이 = "두만"아, 잘 가거라... 댓글:  조회:2754  추천:0  2020-12-20
사회 최고령 백두산 호랑이 ‘두만' 20년 천수 누리고 떠났다 이승규 기자 입력 2020.12.20      백두산 호랑이 '두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내 최고령 백두산 호랑이가 사망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20일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지난 2001년 5월 16일에 태어난 두만은 올해 20살로 국내에서 사육 중인 백두산 호랑이 가운데 최고령이다. 백두대간수목원 측에 따르면 야생에서 활동하는 호랑이 평균 수명은 14~16살이다. 사람이 보호·관리하는 호랑이도 18살을 넘긴 사례가 드물다고 한다. 두만은 지난 2005년 11월 중국 호림원에서 국내로 입국해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백두산 호랑이 관리 정책 변경에 따라 지난 2017년 경북 봉화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으로 옮겨왔다. 당시 백두산 호랑이 ‘금강’과 ‘두만’이 함께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동했지만 금강은 곧 사망한 반면, 두만은 사람 나이로 70대 중반에 가까운 노호(老虎)였음에도 3년을 더 살면서 백두산 호랑이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해왔다.   백두산 호랑이 두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이종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장은 “국민의 사랑을 받은 백두산 호랑이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두만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4마리로 줄어든 백두산 호랑이 개체 수를 확보해 호랑이 혈통을 보존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782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비닐쓰레기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901  추천:0  2020-12-20
  느닷없이 선박에 충돌하는 고래… 알고보니 비닐 삼켜 ‘복통’ 몸부림 2020.12.20.    슬퍼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물속 둥둥 떠다녀 먹이로 착각 내장에 고통 느끼다 폐사 유발 코로나 방역에 비닐 사용 급증 ‘해양오염 막을 규제 시급’ 지적[경향신문]  수심 2000m까지 내려가 헤엄칠 수 있는 향유고래. 최근 호주 연구진은 고래들이 물속에 떠다니는 비닐을 먹고 복통으로 폐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유고래는 주요 피해 대상이다. 위키피디아 전 세계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고래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비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비닐 재질의 봉지나 필름을 먹은 고래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선박과 충돌하기도 해 플라스틱 해양투기에 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주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연구진은 해양 동물의 죽음을 주제로 삼은 논문 79편을 종합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컨서베이션 레터스’ 최신호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고래에게 가장 치명적인 플라스틱 쓰레기는 비닐봉지, 포장을 위한 필름, 시트지 등이라고 설명했다.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유연한 플라스틱인데, 주원료는 폴리에틸렌이다. 분석에 따르면 비닐을 먹은 고래는 이상 증세를 보였다. 죽기 며칠 전부터 정상적인 몸놀림으로 헤엄을 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주변의 배와 부딪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박과 충돌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고래의 절반이 이런 비닐 섭취로 인한 신체적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을 이끈 CSIRO 소속의 로렌 로먼 박사는 “고래가 비닐을 먹고 나서 사망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며 “그 과정에서 분명 내장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고래가 비닐을 먹는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비닐이 ‘중성 부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비닐은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는 것도 아닌 물속에 둥둥 떠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고래가 헤엄을 치다 발견하면 먹이인 줄 알고 입속에 넣는다는 얘기다. 수심 2000m 바다에서 헤엄치는 향유고래도 비닐을 삼켜 폐사하는 일이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일회용 비닐의 사용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더 확산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최근의 여건은 고래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이 이슈가 되면서 비닐 사용이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의료용 또는 일회용 장갑에 주로 활용되는 라텍스의 사용도 급증했다. 라텍스는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오염물질은 아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플라스틱의 일종인 일회용 마스크도 새로운 해양오염 물질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 세계자연기금(WWF)의 리처드 렉 해양분과 회장은 영국 매체 가디언을 통해 “우리는 올해 초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플라스틱 사용 감소를 위한 추진력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7824    [세상만사] - "유산 싸움과 월드컵 축구경기..." 댓글:  조회:2638  추천:0  2020-12-18
국제 죽어서도 파란만장한 마라도나… 시신 보존 명령 내린 이유 송원형 기자  2020.12.18    지난달 심장마비로 향년 60세에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생전 약물과 스캔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축구팀(11명)을 넘어서는 16명의 자식·형제가 마라도나가 남긴 유산을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더니 이번엔 친자 확인 소송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시신 보존 명령까지 받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마라도나의 모습./연합뉴스 영국 BBC는 지난 17일 “아르헨티나 법원이 친자 확인을 위해 마라도나 시신을 화장하지 말고 보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마갈리 길(25)이란 여성이 법원에 친자 확인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는 첫 부인과 두 딸을 두고 있다. 사생활이 복잡했던 마라도나는 이혼 후 6명 이상의 자식을 낳았다. 이번에 소송을 낸 여성은 기존에 알려진 마라도나의 자녀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이다. 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머니는 2년 전 마라도라가 내 아버지라고 얘기했었다”며 “내겐 마라도나가 생물학적 아버지인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마라도나 시신은 현재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개인 묘지에 안장돼 있다. 법원은 이미 마라도나에 대한 법의학적 조사가 끝날 때까지 화장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마라도나 시신에 대한 화장 금지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마라도나 변호사가 이미 마라도나의 DNA 샘플이 확보돼 있기 때문에 법원이 마라도나 시신에 대한 보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마라도나의 자식과 형제들은 마라도나가 남긴 유산을 놓고도 다투고 있다. 더선에 따르면 마라도나의 재산은 총 3700만파운드(약 5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뿐 아니라 스위스⋅두바이 등에 보유한 부동산과 고급 외제차, 코카콜라 등과의 광고 계약 수입 등을 합친 것이다. 마라도나도 자신이 죽은 후 유산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예상했는지 작년에 유튜브를 통해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법에 따르면 누구든 재산의 5분의 1만 기부할 수 있으며 최소한 3분의 2는 배우자나 자식에게 상속해야 한다. 더선은 “형제들까지 합쳐 최소 16명이 상속 분쟁에 뛰어들었다. 마라도나의 유산 싸움은 월드컵을 방불케 한다”고 전했다.
7823    [세상만사] - "연등 = 인류무형유산" 댓글:  조회:2815  추천:0  2020-12-16
문화·라이프 빛의 행진 연등회,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됐다 한국 21번째 인류무형유산으로 허윤희 기자 입력 2020.12.16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열린 연등행렬 모습. /조선일보 DB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사인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 됐다. 문화재청은 16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제1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신청한 연등회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강술래, 아리랑, 김장 문화, 씨름 등 인류무형유산을 총 21건 보유하게 됐다. 연등회는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551년(진흥왕 12) 신라에서 팔관회의 개설과 함께 국가적 행사로 열렸고 고려 때 특히 성행했다. 본래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기 위한 종교의식이었으나 오늘날 종교·나이·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하는 봄철 축제로 발전했다. 음력 사월 초파일이 가까워오면 전국에 다채로운 연등이 걸린다.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는 관불 의식으로 시작돼 연등을 든 사람들의 행진이 이어지며, 행진 뒤에는 참여자들이 모여 회향 한마당이 열린다. 연등을 밝히는 것은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비춰 차별 없고 풍요로운 세상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화재청은 “연등회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며 재창조되고 공동체에 정체성과 연속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무형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했다. 한편 북한이 신청한 ‘조선 옷차림 풍습(한복)’은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의 심사 결과 ‘등재 불가’ 판정을 받아 등재에 실패했다. 북한은 현재 아리랑, 김치 담그기, 씨름(남북 공동 등재) 등 3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7822    [세상만사] - "감독과 가수..." 댓글:  조회:2729  추천:0  2020-12-16
사회 김기덕 왜 라트비아? 그의 사망 뒤엔 빅토르 초이가... 정병선 기자 입력 2020.12.16    지난 11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김기덕(60) 감독은 왜 발틱해 소국(小國) 라트비아에 정착하려 했을까? 김 감독의 라트비아 거주와 영주권 신청 배경에는 옛 소련(蘇聯)의 요절(夭折) 가수 빅토르 초이(최)에 관한 영화 구상 때문으로 알려졌다. 빅토르 초이는 28세 요절했다. 김 감독 역시 요즘치고는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환갑일(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며 “한국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라고 애도했다.   고(故) 김기덕 감독 김 감독이 사망한 라트비아는 빅토르 초이가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치고는 상당한 관계를 형성한다. 라트비아 리가는 아름다운 도시로 헐리우드 감독을 비롯해 옛 소련 감독과 유럽 감독들이 영화 배경으로 자주 등장시켰다. 김 감독은 라트비아 휴양도시 유르말라에 집을 구하고, 영주권을 신청하려던 중 변을 당했다. 김 감독이 장기 거주하려 했던 유르말라는 빅토르 초이와도 연관된다. 유르말라는 빅토르 초이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1990년 8월15일 빅토르 초이 역시 리가 공연을 마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유르말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28세였다. 라트비아 현지 교민들은 “김 감독이 위임장 신청 문제로 대사관을 자주 방문했다”고 했다. 또 김기덕 감독 생전 러시아와 옛소련 영화제 초청에 관여한 관계자는 “내년(2021년)이 한국과 라트비아 수교 30주년이라 빅토르 초이에 관한 영화를 구상했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 감독이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테마일 것”이라고 했다. 유르말라는 소련 때부터 유명한 휴양지 중 한 곳이다. 리가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이곳은 리가만과 리엘유페강 사이 30km 해안을 따라 자리잡은 아름다운 도시다. 소련 당시 빅토르 초이는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죽은지 30년이 됐음에도 여전히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빅토르 초이는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곡을 발표했으며, 특히 비틀즈와 존 레논을 좋아했다. 그의 노래는 소련 젊은이들을 개혁과 개방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내모는 역할을 했다.   빅토르 초이 추모 우표 디자인. 올핸 공교롭게도 옛 소련의 전설적인 록스타 고(故) 빅토르 초이의 사망 30주기다. 러시아에서 최근 그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1990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빅토르 초이의 사망 30주기를 맞아 ‘초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지난 9월3일 러시아에서 개봉 예정이었지만 불발됐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빅토르 초이가 죽기 직전 2개월 간 벌어진 가상의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이즈베스티야는 “ ‘영화 개봉을 앞두고 빅토르 초이 유가족들이 영화가 빅토르 초이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담았다'며 크렘린궁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상영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보도했다. 김 감독을 아는 러시아와 라트비아의 영화 관계자들은 “이런 빅토르 초이에 관한 일련의 논란이 김 감독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2018년 개봉된 빅토르 초이에 관한 영화 ‘레토(여름)’가 김 감독이 생각하는 빅토르 초이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않아 또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 레토는 한국인들이 빅토르 초이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으로 출품되면서였다.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인데도 빅토르 초이 역으로 2000대1의 경쟁을 뚫고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연기하면서 관심을 더했다. 더구나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상’ 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오른 김 감독이기에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김 감독이 빅토르 초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영화로 다룰법 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과 러시아 영화인들의 시각이다. 빅토르 초이는 1962년 옛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인(옛 소련 거주 한인) 2세 아버지와 당시 소련 국적(우크라이나)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록그룹 ‘키노(Kino)’를 결성해 약 9년 동안 페레스트이카(개혁) 와중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통해 개혁·개방을 이끌며 우상으로 떠올랐다. 빅토르 초이는 인기 절정에 있던 1990년 8월 15일 순회 공연차 들른 라트비아 리가에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해 28세로 요절했다. 이 사고는 아직까지도 KGB에 의한 타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확한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서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전체주의 사회의 탄압 속에서 반정부 메시지를 전해준 밴드였기에 의문은 더했다. 빅토르 초이는 소련 당시 레닌그라드의 유일한 합법적인 록 공연장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데뷔했으며, 1990년 1980소련 올림픽 개막식장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열며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경기장에 6만2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록음악을 ‘서구의 퇴폐적인 산물’이라며 금지하고 단속했던 소련 당국은 빅토르 초이 노래를 반체제 작품으로 규정, 공공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소련 말기 그의 인기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특히, 소련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풍자한 노골적인 반전·반핵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발표하면서 정부를 자극했다. 키노의 최대 히트작은 1988년 발표된 ‘그루파 크로비(혈액형)’였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던 소련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곡이었다. 그해 영화 ‘이글라’에도 출연하는 등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키노를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은 지금도 “키노 이전엔 소련에 대중음악이란 것이 없었다”며 “키노가 등장하면서 소련에 대중음악이 생겼다. 이것이 우리가 아직도 빅토르 초이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유다”고 말한다.
7821    [세상만사] - "모나리자와 독감상" 댓글:  조회:3165  추천:0  2020-12-16
국제 얼마면 되겠니, 모나리자 나홀로 감상 루브르 박물관 코로나 경영난에 경매, 가격은 예상을 뛰어넘고... 김수경 기자 입력 2020.12.16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AFP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를 온전히 혼자 관람하는 데 얼마가 들까? 16일(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 측은 전날까지 코로나로 인한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경매 행사를 열었다. 경매 품목엔 ‘모나리자를 가까이에서 단독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포함돼있었다. 코로나 전엔 박물관을 찾더라도 세계적인 명화 ‘모나리자’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림을 봐야 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훼손 등 우려가 있어 작품으로부터 3미터 이상 떨어져 감상해야했다. 이번 경매 품목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모나리자 진품을 매우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다. 경매 전 박물관 측은 ‘모나리자를 가까이에서 단독으로 볼 수 있는 기회’ 경매품목에 1만~3만 유로(약 1300만~4000만원)가 책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낙찰가는 이보다 훨씬 높았다. 한 익명의 온라인 입찰자가 이를 8만 유로(약 1억650만원)에 낙찰받은 것이다. 낙찰자는 연말에 박물관 측이 여는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또다른 경매 품목 중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사장이자 책임자인 장 뤽 마르티네즈와 함께 박물관 개인투어를 하는 것, 박물관의 야간투어를 하는 것도 있었다. 경매 업체 크리스티 측에 따르면 두 경매품목 모두 3만8000유로(약 5059만원)에 낙찰됐다. 루브르 박물관 측은 코로나로 인해 방문객 수는 75%까지 감소하며 모두 9000만유로(약 1100억)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경매로 손실의 일부를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7820    [그것이 알고싶다] - "아리랑체‘’ 댓글:  조회:3312  추천:0  2020-12-14
서영근씨, 컴퓨터용 폰트(字体)' 중국조선족서예체' 개발 2020년12월14일    아이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면 웃음소리가 들끓고 자칫 티격태격하며 산만해지기 일쑤인데 수십명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인 이 곳에는 쥐죽은 듯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반듯하게 내리누른 백지장우에 비뚤어질세라 곱게곱게 한자씩 써내려가는 애고사리같은 아이들은 손에 저마다 먹을 머금은 붓대를 치켜세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들의 서예 스승 서영근 선생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한켠에는 로인분들이 먹물에 붓을 지그시 담가가며 붓글씨를 배우기에 한창 석양을 불태우고 있었다. 서예가 서영근 선생 남다른 서예 사랑, 유별난 제자 사랑. 이 두가지를 동시에 실천해가는 서영근 선생의 일상에는 서예도 제자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으로 되였다. 40년간 한결같았던 서예사랑을 이제 제자들에게 베풀어가련다는 서예가 서영근 선생, 그의 사무실 벽지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세면을 가득 메운 벽면으로 시작해 천장까지 빼곡하게 제자들의 영예증서로 도배되였는데 이게 바로 그가 ‘밥을 안먹어도 배부른 리유’라고 했다. 도문시 월청진에서 출생한 서영근씨가 서예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가인 아버지(서광억)와 서예가인 친형(서권)의 영향과 갈라놓을 수 없다. 소시적 어느날, 소설가인 아버지 앞으로 날아온 한 출판사 편집이 친필로 써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너무나 멋졌던 나머지 자신도 저런 멋진 글씨체를 익히고 싶어서 글씨를 잘 쓰던 친형의 도움을 받아 서예공부를 시작하게 되였다. 1989년 연변사범학원에 입학한 후로 당시 한개 과목으로 설치되여 있던 서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하고 남다른 집착으로 달라붙었다. 그는 사범학원 졸업을 앞두고 개인서예전을 개최하고 서예전에 입상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발한 서예활동을 시작하더니 서예가들 사이에서 유망주로 떠올랐다. 졸업 후에는 공예상표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각종 상표글씨를 써오다가 연길시중앙소학교 미술교원으로 전근하여 본격 아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994년에 연길에서 개최된 《아름다운 한글서예 중한련합전》에서 서영근씨는 여태 본적이 없던 한국의 전통서예작품을 보게 되였다. 그것은 연변의 서예작품과 확연이 다른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면서 또 다른 문화적인 차이를 크게 느꼈다. 하여 그는 전시회에 참가한 서예가들의 련락처를 수소문해 일일이 서신을 보내 가르침을 요청했다. 집요할 만치 가르침을 갈구하던 그에게 한국 서예가들은 그의 끈기있는 열정에 감동되여 서신 답장을 보내오면서 ‘장거리 가르침’을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스승들이 내여준 숙제를 서신으로 완성해 보내면 한국 서예가들은 하나하나씩 표기를 해가며 그의 작품을 지적하고 수정해가며 알뜰히 가르쳤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동안 서신으로 공부한 노력으로 당시 중국에는 없던 전통 궁체와 판본체를 마침내 배워낼 수 있게 되였다. 그러다 점점 더 서예에 갈증을 느낀 서영근씨는 한국 류학 길에 올라 더 깊은 문학과 서예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때는 1997년이였다. 한국 제주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본과과정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어학박사과정(경상대학교)을 수료한 후 서영근씨는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서예학 박사과정을 설치한 원광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궁체, 판본체 외 민체 등 여러가지 서체들을 두루 공부하게 되였으며 마침내 2008년에 제1호 서예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창신대학, 전주대학, 서정대학 등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서예 전수를 이어갔다. 또한 그는 한국에 있을 때 한민족서예학회, 재한동포서예협회 등 단체를 운영하면서 재한 조선족들에게 무상으로 서예를 가르치며  집 떠나 멀리 이국타향에 온 고향사람들과 서예로 끈끈한 고향정을 나누며 ‘재능기부’를 실천했다. 그러다 그는 언젠가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매일 쓰다싶이 하고 있는 컴퓨터 글씨는 진정 ‘우리의 것’이 아니란걸 알았습니다. 그건 한국이나 조선의 것이지 중국 조선족의 것이 아니였습니다.” 컴퓨터 속에 진정한 우리의 글씨체가 없다는 안타까움에 그는 2015년부터 우리 글 서체 컴퓨터 폰트개발에 달라붙었다. 남성미 넘치는 조선의 청봉체와 녀성미가 다분한 한국의 궁체를 접목해 2014년 ‘아리랑체’를 새롭게 개발했으며 이것을 2015년에 컴퓨터용 폰트로 제작하고 서예교본도 출간하였다. 꼬박 몇년간의 심혈을 기울여 드디여 지난달인 11월19일 그가 개발한 컴퓨터용 ‘서영근 아리랑체’ 등 폰트 저작권이 국가저작권국 허가를 받아 세상의 빛을 보게 되였다. 이로써 정정당당히 이제는 컴퓨터로도 아름다운 중국조선족서예체를 타자할 수 있게 되였다. 새로 개발된 이 폰트를 다운하여 컴퓨터에 설치하면 서영근 아리랑체를 위주로 서영근 궁체, 서영근 궁체흘림, 서영근 판본체, 서영근 판본체흘림, 서영근 민체, 서영근 민체흘림, 서영근 청봉체를 포함한 8가지 컴퓨터 폰트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골라 쓸 수 있게끔 우리 글 상용자 2500개를 수록해 넣었다. “영리성적인 목적으로 만든 폰트가 아니라 중국 조선민족 문화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이것을 진정으로 수요하는 공공기관이나 꼭 필요한 분야에 무상으로 제공하고저 개발한 만큼 그 과정이 길고 힘들긴 했으나 큰 자부심을 느낌니다.” 그윽한 먹향을 머금은 따끈따끈한 ‘우리의 글씨체’를 이제 우리의 컴퓨터 속에서도 륙속 만나보게 될 수 있게끔 보급에도 앞장서겠다는 서영근 선생의 당찬 포부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길림신문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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