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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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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9    중국조선족 우화시인 허두남 篇 댓글:  조회:376  추천:0  2024-08-29
조선족문단 우화시의 개척자-허두남   조선족문단 우화시의 개척자-허두남                  최룡관                                  세계적으로도 일생동안 심혈을 몰부어 우화와 우화시를 연구하는 작가는 아마 많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우리 연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일찍 이십대에 자신의 첫 우화시집이자 중국조선족문단의 첫 우화책을 펴내서부터 40년동안 우화와 우화시 창작에 몸을 담그어온 허두남이다.     1979년  첫 우화시집 “개미와 코끼리”로 우화책이 없던 우리 문단의 공백을 메꾼 허두남은 지금까지 8권의 우화책을 출판했는데 산문으로 쓴것이 2권, 시로 쓴것이 6권이다. 허두남은 산문으로 된 우화보다 우화시 창작에 더 많은 심혈을 쏟아붓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허두남이 창작한 6권의 우화시집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저 한다. 일찍 맏형님의 영양을 받아 소학교시절부터 우화시를 습작해오던 허두남은 1979년 처녀작 우화시집《개미와 코끼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우화시 25수가 수록되여있는 이 책은 정영석의 중편소설 “제2호순라선에서”와 더불어 문화대혁명후 제일 먼저 출판된 개인아동문학서적이다. 책장을 열면 집채만한 코끼리로부터 입쌀알만한 개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동물들이 살아움직이는데 대뜸 아이들의 눈길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작품집중의 “잣새의 계획”은 국경30돐창작상을 받아안는 영예를 지녔고  소학교교과서에도 번듯이 올랐다. 작품집에 호구를 올린 우화시들은 거개 이야기가 흥미롭고 주제가 뚜렷하다. “잣새의 계획”은 조건타령을 하며 일을 미루다간 랑패볼수 있다는 도리 ,”사슴의 후회”는 작은 흠집도 제때에 고치지 않으면 큰 흠집이 될수 있다는 도리, “고양이건축기사”는 일을 첫시작부터 착실히 하지 않다간 망쳐버릴수 있다는 도리, “알깔줄 모르는 소쩍새”는 부질없는 자존심을 부려서는 배울것도 못배우게 된다는 도리를 재미있는 이야기속에 재치있게 집어넣었다. 그밖에 우화시 “뽐내던 원숭이”, “퇴박맞은 담비”, “여우의 선물” 같은 작품들은  풍자성과 유머감이 아주 짙다. 책에는 많은 장점이 있는 반면 부족점도 적지 않다. 첫째: 산문화경향이 심한것이다. 우화시에선 산문화를 허용한다고는 하나 허용한다는 것은 좋다는 말과는 다르다. 이야기를 담자면 산문화를 피면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너무나 산문화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작품집의 많은 우화시들은 시행을 붙여놓으면 산문이 된다. 둘째: 편폭이 너무 길다. 우화시라면 무조건 꼭 짧아야 한다는 도리는 없지만 어느 작품이나 다 기니 문제인것이다. 우화시 “민들레씨의 이사”는 주견 없는 민들레씨가 좋은 고장으로 이사가려다가 가지 못하는 이야기를 생동하게 그려낸 작품인데 내용은 매우 좋으나  산문화되고 편폭이 너무 길다. 무려 58행이나 된다. 주인공 민들레씨가 네 인물-동풍, 서풍, 남 풍,북풍과 대화를 주고받은것을  직접담화법의 수법으로 옮겼으니 그렇게 길어질수 밖에 없는것이다. 전반 시도 길고 시행도 늘차니 좀 숨이 찬감이 난다. 허두남의 우화시집《승냥이와 범》은 첫 작품집이 출판되여서부터 5년뒤인 1984 년에 료녕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되였다. 이 책엔 31수의 신작이 수록되여있는데 책을 읽어보면 작자가 첫 작품집에서 나 타난 약점을 미봉하려고 모대긴 흔적을 “함축”이라는 두 글자로 함축할수 있다. 이 책에도 좋은 우화시들이 적잖게 있다. 첫 작품집에서 나타났던 시가 너무 긴  페단을 극복하고 완정한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간결하게 쓴 우화시들이 여러편이다. “범나비”, “도마뱀의 재간”, “대충의 대화””후회만 하는 염소” 등은 아주 풍자적이고 재미 있다. 우화시 “범나비”를 살펴보기로 하자.   풀이슬에 날개 젖은 친 범나비/큰길에 앉아 볕쪼임하는데/ 꼬꼬수탉 한마리/모 이 찾아 기웃기웃 다가왔다// “거기 오는 수탉놈아/ 냉큼 제자리에 서지 못할가?/ 내가 누구라고 / 감히 내앞으로 지나가려하는거냐?/ 그 말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다가오는 꼬꼬수탉// 범나비는 가장 위엄있게/ 목청을 가다듬어 꾸짖었다./ “이 버릇 없는 수탉놈아/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하느냐?/ 내 이름을 들으면 넌 기절할게다./ 이 어른이 바로 범나비란말이다.// 여진히 못들은듯/ 기웃기웃 다가오는 꼬꼬수탉// 범 나비는 날개를 퍼덕이며/ 고래고래 욕설 퍼부었다./ “이 되지 못한 수탉놈아/ 하루강 아지 범 부서운줄 모른다더니/  내 이름 듣고도 그냥 다가와?/ 범나비란 나는 범이란 말이다./ 네놈이 뛰는 범 무서운줄 알면서/ 나는 범 무서운줄 모르다니…”// 그제야 범나비를 발견한 꼬꼬수탉/ 씽 달려가 뚝 찍어먹었다. 이 우화시를 보면 웃음을 금할수 없다. 범나비야말로 풍자의 대상이고 우습광스 러운 우화적 인물이다. 이름보다 실속이 중요하고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것을 반면적으로 일러주고있다. 그런데 작품은 내용은 재미 있지만 표현수법은 별루인감이 든다. 전반 시는 29 행으로 첫번째 우화집에 실렸던 대다수의 우화시들보다 절반가량의 편폭이다. 그런데 도 여전히 함축미가 결여한 느낌이 드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 원인은  작품구상이 산문적으로 되였기 때문이다. 이 우화시는 비록 편폭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첫번째 책 에 수록된 우화시들과 똑 같은 수법으로 창작되였다. 사건발전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서술했는바 붙여놓으면 산문이 된다. 이 작품집에 실린 많은 우화시들이 이런 공통적인 단점을 갖고있다. 편폭은 줄이 려고 애썼으나 다양한 수법을 동원하여 재치 있게 예술적으로 표현하지 못했기에 단 조롭고 딱딱하며 매력이 모자란다. 우화시를 보다 짧고 감칠맛 있게 쓰려면 고운 시어를 고르고 조화롭게 다듬는것 도 중요하지만  구상할때 “시적”으로 구상하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줄글의 구성과 시 의 구성은 서로 다른 특점을 갖고있는것이다.  우화제재를 찾기가 그처럼 어려운데 마음 드는 제재를 손에 넣었다면 매 한편의 작품마다 제재를 찾는것만큼 그 형식에도 고심해야 할것이다. 1995년에 출판된 세번째우화시집 《춰주는 바람에》(우화시 64수)에서는 작자가 시도한 개혁이 보다 폭이 크다 앞의 두책에서는 이야기과정을 전개했지면 세번째책에서는 과정을 전개하지 않고있다. 따라서  산문적이던 구성도 시적으로 해결되였다    우화시 “떨어져버린 록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따스한 새 봄/ 꽃사슴 머리에 돋아났어요/ 솜털 보시시한 “록용나무”가// 귀한 보약이라/ 만나는 짐승마다/ 간청 했어요, 록용 팔라고// (어쩔가, 팔가?/ 안야/ 두고 두고 자랑거리 삼을테야!)// 꽃사슴 고개 건뜩/ 어깨를 으쓱/ ㅡ나의 보밴 한평생 안 판다 안 팔아// 가을 되니 보배 록용/ 뼈처럼 땅땅/ 이듬해 봄 되자 떨어져버렸어요   이왕에 쓴 우화시같으면 또 독자가 다 내다본 과정을 지루하게 서술했을것이다. 례컨대 곰할아버지가 록용을 팔라고 청들었지만 도리머리를 저으며 안 팔았다, 노루아저씨가 사정했지만 또 밀막아버렸다, 토끼아우가 간청했지만 그것도 외면해버렸다….그렇게 전개했더라면 그 편폭이 “민들레씨의 이사”와 거의 비슷하게 되였을것이다. 하지만 작자는 이 작품에서 과정을 일일이 기록하지 않고 내용을 집중,개괄하여 표현했기에 편폭이 절반나마 줄어들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대다수의 우화시가 이 우화시처럼 이야기를 씀에 있어서  사건을 따라가며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점에 서서 그려냈다.  역시 우화시 64수가 수록된 네번째 우화시집《세수해선 뭘해, 또 때가 낄텐데》 (동북3성교육출판사,2002년년)는 많은 새로운 특점이 있다. 첫째: 동식물을 쓰던데로부터 아이들을 쓰는것으로 개혁을 가져왔다.   64수가운데56편이 아이들을 쓰고있다. 이른바 “랑만주의우화시”로부터  “사실주의우 화시”로 바뀐것이다. 둘째: 시어가 한층 세련된 것이다  우화시 곤충채집은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돌쇠하고 누나하고/ 곤충채집 간다야// 누나는야 맨손이지만/ 돌쇠에겐 포충망// 나풀나풀 꽃나비/ 또로록또로록 베짱이// 나무잎우에 앉아/ 그네뛰는 매미// 쑥초리끝에서 파르르/ 발레추는 잠자리// 누나는야 살금살금/ 발꿈치 살짝 매미 한놈// 돌쇠는야 우쭐우쭐/ 포충망 휙 잠자리 한놈// 누나는야 한나절에/ 열마리 잡았는데// 돌쇠는야 웬 일일가/ 살펴보면 빈 포충망// 포충망에 포충망에/ 구멍난줄 몰랐네.   이 우화시는 허두남에게서 늘 나타나는 산문화가 가장 잘 극복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제를 볼 때 전혀 새롭지 않다 가능하게 “구멍난 독에 물 퍼붓기”란 속담에서부터 구상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어가 아주 잘 짜였다.  “그네 뛰는 매미”,  “발레추는  잠자리” 등 구절들은 매우 생동하며 운률도 성공적이다.  전반 작품이 이른바 산문적으로가 아니라 시적으로 언어구사가 이루어졌다. 셋째: 유머감이 한층 진해졌다.  우화시 우화시 “약 먹을 때”를 살펴보자.   파리가 썰매 탈지경/ 윤기 반들 대머리 만지며/ 의사 선생님/ 한 눈 찡긋 일러준 말//ㅡ꼬마아가씨/ 이 약 먹을때/ 물 마시면 절대 안돼/ 물 마시는 날엔/ 이 할아버지처럼 대머리가 돼// 의사 선생님의 대머리/ 참기름이라도 칠했나/ 내 눈길도 미끄러져 떨어지는듯/ 몸이 오싹// (어마나! 롱구공 같네요/ 내 머리가 대머리 되면/ 작은 배구공 같을거야!)/ 머리가 대머리 될가봐/ 작은 배구공 될가봐/ 갈증이 나도/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어요//해님이라도 삼킨듯/ 너무너무 목이 탈때면/ 한꺼번에/ 얼음과자 열대 먹었을뿐   이 작품은 풍자와 유머가 강할뿐 아니라 표현도 아주 훌륭하다. “파리가 썰매탈지경 윤기 반들 대머리”, “의사선생님의 대머리 참기름이라도 칠했나 내 눈길로 미끌어떨어지는듯”, “어마나! 롱구공 같네요. 내 머리가 대머리 되는 날엔 작은 배구공 같을거야!”. 해님이라도 삼킨듯 너무너무 목이 탈때면” 등 표현들은  극히 성공적이다. 이렇듯 작품의 언어가 갓난아기처럼 귀한 주요원인은 아이들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천진란만한 동심에 비쳐진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냈기때문이다.     춰주면 좋아하는 아이/ 코흘리개는/ 숱한 애들이 앞다투어/ 너 참 힘세다 춰주니/ 너무 좋아 코를 풀쩍풀쩍/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 나 진짜 힘장사야/ 얼마나 센지 보련?/ 커다란 돌 척 들고서/ 다들 보라는듯 우쭐우쭐/ 국수오리 같은 코물이/ 발등까지 드리운줄도 몰랐대요   이는 우화시 “코흘리개”의 전문이다. 이 글의 주제는 “칭찬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놈에게 쉽게 리용된다.”로 될것이다. 이 주제를 표현하자면 “큰 인물”의 “큰 사건”을 가지고 “큰소리”를 치는 페단이 생길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작자는 그와는 정반대로 코를 많이 흘리는 한 아이를 통해 그것을 생동한 만화처럼 잘 보여줬다. 자칫 꽛꽛하게 만들수 있는 문제를  작고 재미있는 해학으로 원만히 표현하였다   앞으로 이러루한 제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작자는 이 책에서 학교생활과 공부에 대한 내용을 많이 취급했다.  흔히 아이들을 쓴 작품들에 학굫생활, 특히 공부에 대해 쓴것이 적다 그만큼 중요하고 가장 일반적인 것일수록 쓰기 힘들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학교생활, 공부를 두고 쓴 우화시가 상당한 수를 차지한다.  “성급한 아이”, “사내애가 그럼 못써”, “구멍난 책장”,   “”그런 로봇”, “락제생된 사연”, “두고보자”, “책을 많이 읽을테야”,  “빵점”,  “꾀보→“울보”,  “지각대장” 등이다  작자의 다섯번째 우화시집 《사탕을 좋아하는 애》(우화시 80수)는 2006년 한국에서 출판되였다. 이 책에는 네번째 책의 우화가 절반 넘게 들어있다 하지만 그대로 실은 우화는 기본상 없고 다시 손본것들이다 작자는 이 책에서 우화시의 언어를 많이 “미용”했을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을 창조하려고 품을 넣었다. 우화시 “뚝쇠의 자존심”을 보기로 하자   아이참, 저 뚝쇠/ 머리는 뚝 막혀가지고/ 자존심은 쇠처럼 강해서/ 이름도/ 뚝/ 쇠// 저보세요/ 상우에 숙제책 펼쳐놓고/ 책장우에 연필장단 똑똑/ 귀불만 만지작만지작// 녀동생 꽃분이 들여다보더니/ 오빠, 내 알려줄가?// 힐끗 동생을 지릅떠본 뚝쇠/ 까불지 마/ 쥐방울같은게 뭘 알아서…// 연필장단에/ 애꿎은 책장은 벌집 되여도/ 뚝쇠와 숨바꼭질하는/ 답안// 시계소리 재깍재깍/ 텔레비죤아동프로 이제 곧 시작한다/ 뚝쇠를 재촉하며 재깍재깍’’ 바빠 난 뚝쇠/ 궁둥이 들썩들썩/ 솥뚜껑우의 개미인가/ 안절부절/ (이 뚝쇠를 구해줄 사람은 없나?)// 이제 다시 동생에게/ 묻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하고   이 작품도 인물에게 꼭 맞는 어휘를 사금 일듯 골라서 주인공의 행동을 잘 묘사했다. 하나도 능하게 없으면서 녀동생앞에서 으시대는 이웃집의 코흘리개와 비슷한 뚝쇠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온다. “연필장단 똑쪽”, “귀불만 만지작만지작”, “힐끗 녀동생을 지릅떠본 뚝쇠”, “쥐방울같은게”, “”연필장단에 책장은 벌집 되여도”, “뚝쇠와 숨박곡질하는 답안”, “솥뚜껑우의 개미인가 안절부절”, 등 구절들은 머리는 뚝 막혀가지고 동생앞에서 오빠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웃기는 아이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아주 적격이다. 마지막 련에서 “묻지도 못하고”를 반복한것도 주제을 강조하는면에서도 좋거니와 문체론적효과도 충분히 나타냈다. 마지막련도 잘 처리했지만 이 작품이서 특히 훌륭하게 쓴 부분은 첫련이다. 첫행에서  “아이참, 저 뚝쇠”-이렇게 “문을 열자 산이 보이는” 수법으로 시작한것부터 좋다. 편폭이 짧은 우화시에서 “짧은 밤에 긴 노래 부를”것 없이 글줄을 아낀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첫 련에서도 가장 첱금싸게 잘된 점은 이름도 뚝 쇠 이렇게 세개행에다 갈라놓은 것이다. 이것은 형태이미지이다. 종이를 랑비하면서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뚝쇠라는 이름이 바로 주제이기 때문에 강조한것이다. 서로 상반되는 모순의 성격을 이 두 글자로 잘 표현했지 않은가? 그러니 두 글자에게 당당하고 분명한 자리를 드린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행을 한글자씩 뜯어서 내리배렬하니 자기도 한번쯤 그렇게 해본 그런 언어장난과는 전혀 다른 좋은 착상이고 설정이다.  “뚝쇠의 자존심”이 이름 두글자를 두행에 나눠놓은것이 형식상 성공적이라면 전반 우화시를 새로운 형식으로 쓴것도 있다.  우화시 “착한 일”이 그렇게 씌여졌다.   일과에서 빠짐없는/ 일기 적기/ 착한 일 적기// 보배둥이 일기책에/ 또박또박/ 연필도 신이났나/ 미끄럼질 쭉쭉// ㅡ오늘은 뜻깊은 날/ 낯선 할머니 도와/ 짐 들어다 드린 날/ 착한 일 찾아하니/ 칭찬받은것보다 더 기쁘다// 귓가에 속삭이는/ 자애로운 목소리/ 일기란 진실하게 써야 해!//! 뒤머리 썩썩/ 덧붙이는 몇줄// 아래 학급 돌이/ 자기가 할머니 돕겠다/ 짐 붙잡고 놓지 않았다/ 달래여도 듣지 않아/ 겁을 줘도 듣지 않아/ 빵! 한주먹 먹이고/ 제꺽 짐 빼앗았지 헤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연, 그러면서도 너무 진실하게 아이의 성격을 그려낸 성공작이다. 내용도 새롭고 형식도 새롭다. 작자는 천진란만한 아이의 성격을 잘 그려냈을뿐 만 아니라 그 그림을 일기라는 액틀에다 정히 넣어서 걸었는데 형식이 아주 맘에 쏙 든다     형식이 생신하고 독특한 우화시로는 또 “친구사귀기”가 있다. “친구사귀기는 인터넷사이트를 리용해서 친구를 사귀는 형식을 빌어 웃음거울에 비친듯 우습광스러운 주인공의 형상을 보여주고있다.   인터넷 사이트로/ 친구나 사귀여 볼가/ 아무렴!/ 나처럼 훌륭한 애에겐/ 친구도 많아야지// 제 자랑한다 말아/ 나하고 사귀고 싶은 애들은/ 검색 창에 내 간력 쳐보렴/ 내가 허풍 쳤나// 나는나는/ 장점은 하늘만큼/ 단점은 손톱눈만큼// 내 또래중 키도 껑충/ 학급에서 힘도 으뜸/ 성미 활달한 사내대장부// 밥은 아빠보다 더 먹고/ (애들은 잘 먹어야 잘 큰대)/ 잠은 하루 열시간/ (애들은 잘 자야 건강하대)/ 늘 토끼처럼 뛰놀지/ (애들은 잘 놀아야 밝게 자란대)// 장점은 무지무지/ 많고 많지만/ 단점은 딱 하나 공부싫어증   “친구사귀기”나 “착한 일”같은 형식은 아주 좋은 추구이다. 앞으로 이런 추구들이 많아져 허두남이 독자친구들을 더 많이 사귈수 있기를 바란다. 우화시집 “사탕을 좋아하는 애”도 생동성, 형상성면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남긴 다. 2015년에 출판된 여섯번째 우화시집 《빵순이 다이어트》(연변인민출판사)에는 보다 세련된 우화시가 무려137나 수록되여있다. 이 책에서 작자는 우화시를 보다 동시처럼 개조하는데 모를 박았고 많은 성과를 올리고있다. 작자는 아예 책의 쟝르를 우화동시집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이전의 책들보다 질이 한 차원 높아졌다. 우선 우화시들이 재미 있어졌다. 다음 편폭이 한층 짧아졌다. 편폭은 짧아졌지만 작품을 인위적으로 줄여놓은 느 낌이 들지 않고 생동한 세부와 형상적인 구절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간결하고 재 치로우며 깜찍하다. 많은 우화시들은 형식상 완전히 일반적인 동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일반 동시처럼 쓰여진 몇편의 우화시를  살펴보자     내 가슴속에 피여난 꿈/  아롱다롱 칠색무지개/ 저 하늘의 무지개보다 더 고운 고운 꿈/ 목화송이 흰구름 말끔히 닦은/ 파란 저 하늘보다 더 고운 꽃꿈//나의 고운 꿈 멋진 꿈은/ 아롱다롱 칠색무지개 베여다가/ 색동저고리 지어 입고/ 파란 하늘 한 자락 살짝 베여다가/  파란 치마 곱게 지어 입는거야!// 너무 너무 소중한 꿈이기에/ 맘속으로만 고이 키우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 다른 사람 내 꿈 훔쳐갈가봐//저 높은 곳에 있는 무지개를/  어떻게 베여올가?/ 누가 저 높은 곳에 올라가서/  파란 하늘을 베여온담?/ 그리 큰 가위는 또 어데서 구하나?        이는 우화시 “고운 꿈”이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존의 우화들과 완전히 다르게 일반 동시처럼 썼 다. 아주 감칠맛 난다. 작자는 한 녀자애의 아롱다롱 고운 무지개꿈을 그리고있다. 파란하늘을 베여다가 치마를 지어입고 칠색무지개를 베여다가 색동저고리를 지어입 었으면 하는 천진란만한 어린아이의 꿈은 그야말로 “목화송이 흰 구름이 말끔히 닦은 파란 저 하늘보다 더 곱고 아롱다롱 칠색무지개보다도 더 고운 꽃꿈인것이다. 좋기는 파란 하늘을 베여올  때 해까지 함께 베여다가 옷을 지어입는다면 더 리상적이겠지. 하늘색 파란 바탕에 황금빛 해를 수놓은 옷,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옷이 아름다운걸 물론 해까지 있으니 겨울에 춥지도 않고 그처럼 좋은 옷이 더 없을것이다.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서 눈이 비뚤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파란 하늘을 누가 베여오고 어떻게 베여오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우화시는 이소프의 우화 “쥐들의 회의”와 비슷하다. 쥐들이 모여서 어떻게 고양이를 대처할가를 토론하는 회의에서 모두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자고 한다. 어떤 방울을 달고 어떤 끈으로 달 것인지를 열렬하게 토론했지만 누가 가서 그 무서운 고 양이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하자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고양이가 무서워서 방울을 못 달듯이 하늘은 너무 높아서 팔이 자라지 않으니 베여올수 없다. “분선이가 미워요”도 일반 동시처럼 쓴 우화시이다.   속눈섭 긴 쌍가풀눈도 미워요/ 오똑한 코도 미워요/ 볼우물 파며 생글생글/사과 같은 얼굴도 미워요// 선생님 물음에/ 남먼저 대답하는 입/ 남먼저 쳐드는 손도 미워 요/ 이름도 미워요// 남학생들 눈길 혼자 끌어가는/ 욕심쟁이 분선이/ 얄미운분선이// 미운 분선이/ 요즘 더 미운 짓 해요/ 밤마다 내 머리속에 찾아와/ 단잠 들지 못하게/  막 휘저어놓군 해요// 분선이를 미워하다가/잃어버린 잠       이렇게 써도 우화가 되는가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 존의 우화형식에 길들어있는 사람들이다. 꼭 “토끼와 거부기”처럼 보자마자 그 뜻이 다 알리게 써야만 하는가? 일정한 심도를 심어주고 사색을 거쳐야 그 뜻이 알리게 쓰는것이 더 예술적효과가 있고 현대적 미감에 맞는다고 생각된다. 풍자속에 교훈을 담으면 우화시는 다양한 형식으로 쓸수 있다고 본다. 아니, 다양한 형식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싶다. 그럼 이 작품이 왜서 우화로 될수 있는가?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이 작품 의 주제는 친구를 미워하고 미워하다가 밤잠까지 잃게 되였다는것이다. 남을 너무 미 워하다가 결국 자신을 해쳤다는 뜻이니 풍자가 성립되는것이며 풍자속에 분명한 따끔 한 교훈도 담긴것이다. 지금껏 그 누구도 우화시를 이런 형식으로 쓴적이 없는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써서는 안된다는 도리는 없다. 우화시를 “이야기→교훈” “교훈→이야기”의 낡은 도식으로 가두지 말고 다양한 새 형식으로 써서 작품의 매력을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는 우화시 “바람”을 살펴보자   살구나무가지끝에서 /바람이 앵앵 울고있어요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못된 장난 재미삼던 개구쟁이 바람 /빨래줄에 걸린 옷 팽개치고 /장독뚜껑 허공중에 날려버리더 니 /나무가지 부러뜨리려 심술 부리다가 /가지끝에 옷자락 걸렸나봐요/도와줘요!/도 와줘요 /애처롭게 구원 청하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네요 /저러다 옷자락이 찢어지 면 어쩐담? /아이참, 그러게 /고약한 미운 짓 일삼지 말게지   얼핏 봐도 훌륭한 동시이다. 내용으로 보면 이는 또한 교훈과 풍자를 두루 갖춘 완미한 우화이기도 하다. 잘 짜인 동시안에 “남잡이 제잡이”라는 철리와 나쁜 일을 일삼는 자는 도와주는 이가 없다는 철리를 담고있다.     완전한 동시형태로 쓰여진 우화시로는 또 “파란 호수”를 들수 있다.       아빠 함께 뽀트 타던 날/파란 호수물 처음 보았다/노랑병아리빛 치마에 파란 물 튕길가/가슴에 두손 포개고 조심히 서있는데/심술쟁이 파도가 처절썩/치마자락에 물방 울 튕겨놓겠지/난 몰라/난 몰라/내 옷 어쩌나 발 동동 굴렀는데/참말 신기했다/옷에 한 점도 옮지 않은 파란 물감    이 작품을 보고 한수의 매력적인 동시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다. 파란 호수물을 눈에 보는듯이 그려낸 한폭의 수채화이다. 물방울이 튕기면 옷에 파란 물이 옮으리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은 진실하게 과장 없이 표현된것이다. 이 작품은 시어도 참 아름답게 씌여졌다. “노랑병아리빛 치마” “가슴에 두손 포개 고” “심술쟁이 파도”  “난 몰라! 난 몰라!” “발 동동 굴렀는데” 등 구절들은 말이 고우 면서도 어린 소녀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 그럼 이처럼 아름다운 동시가 어떻게 우화시로 될수 있는가? 무엇을 풍자했고 어 떤 교훈을 던져주고있는가? 사물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볼줄 모른다는 천진란만한 생 각에 가벼운 웃음이 생기는 풍자적인 요소가 살짝 깃들어있는것이다. 파란 물감을 풀 어놓아 파란 물과 해빛이 반사되여 파랗게 보이는 물은 얼핏 보면 비슷한 면이 있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물방울이 튕기면 옷에 파란 물이 옮으리라고 생각하는건 서 산마루에 물든 빨간 저녁노을을 보고 서산에 불이 났다고 소방대에다 전화를거는것과 같은것이라 하겠다. 우화시 “내 만약 미용마술사라면”도 일반 동시의 형태로 씌여졌다.   내 만약 미용마술사라면/ /엄마를 다시 젊어지게 하고싶다/더 예쁘게 만들고싶다 // 눈귀와 입귀 잔주름/  /다리미질한듯 곱게 펴드리고 세월의 그늘 비낀 볼도/싱싱한 사과처럼/ 반들반들 윤기 돌게 만들련다// 군데군데 나이살/  날씬한 곡선 잃어가는 엄마에게/ 그제날의 몸매 돌려드리고/ 날아갈듯 사뿐사뿐/ 예쁜 걸음걸이도 되찾아드 리련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아름답게는 안 만들거야/  선녀처럼 변한 엄마/옷자락  이 날개로 변하여/ /훨훨 하늘로 날아가면 안되니깐!/ 옛말에 나오는 선녀처럼/아빠와 날 버리고 가버리면 안되니깐!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겠다 이외에도 벨, 시계바늘 날 닮았어, 무지개, 세배 등 동시처럼 쓴 우화시들이 여 러편이다. 이 책에서 작자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짓는데도 정성을 쏟아부었다. 하는 짓이 망태기인 개차반 망택이, 옹졸한 옹남이, 얼핏하면 앵돌아지는 앵나, 노래 잘 부르는 여울이, 큰소리 잘 치는 왕구, 남의 흠 잘 잡는 “짹짹2인방”, 그외에 도 꽃분이, 초롱이, 영재, 망칠이, 뚝쇠, 대식이, 미숙이, 울남이, 떼돌이, 빵순이, 달 인이, 으뜸이, 우승이, 진수, 보석이, 금이, 구슬이, 똘똘이, “배살공주” 등 이름들은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고 작품의 주제를 반영하는데 한몫 담당하고있다. 이상으로 우화작가 허두남이 40여년간 땀으로 가꾸어온 6권의 우화시집에 대해 살펴보았다. 모두어보면 허두남은 크릴로브우화시와 조선의 우화시 등 재래의 우화시로부터 양을 섭취하였으나 그의 우화시는 재래의 우화시들보다 많은 다른 개성적특점이 있다. 제일 중요한 특점은 이야기 과정을 전개하지 않고 일반 동시와 비슷한 형태로 쓴것이다. 허두남은 초기에는 동화시 비슷하게 이야기 과정을 전개했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서 일반 동시형태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였다. 재래의 우화시를 “풍자시. 철리시. 이야기시”로 정의를 내린다면 허두남 우화시는 “풍자시, 철리시. 동시”로 정의를 내릴수 있다. 비뚠 인물의 비뚠 행동을 빌어 작고 깜찍한 도리를 귀띔해주는 우며동시-이것이 허두남이 수십년의 탐구로 만들어낸 우화시이다. 허두남우화시의 다른 특점은 동식물을 주로 쓰던 전통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주인 공으로 한것이다. 허두남은 끈질긴 노력으로  우화시창작에서 많은 결실을 맺었지만 그의 우화시에 는 미숙한 점이 적지 않다. 여섯권의 책에 공동으로 존재하는 부족점은 생동성과 형상성이 부족한것이다. 많은 우화시들은 형상이 론리에 묻히고있다. 우화작품은 론리정연해야할것이 자명하 지만 우화도 문학인이상 생동하고 형상적이여야 하며 재미있어야 한다.     갱신을 위해 공을 들이는데 린색하지 않은 작자가 이제 꼭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 로 돌려놓을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 조선족문단에 한떨기 이색적인 꽃을 피운 우화작가 허두남, 재능 있는 구연 작가인 그가 앞으로 구연작품의 특점을 우화시에 배합하여 완정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스찔을 갖춘 우화작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8018    중국조선족시인 박문희 篇 댓글:  조회:380  추천:0  2024-08-29
박문희 시인 [시평] 와 련결고리 2019년 03월 04일 10시 01분  작성자: 박문희 ⦁시 평⦁ 와 련결고리 --정두민의 하이퍼시 를 읽고나서 □박문희 1. 앞머리에 정두민 시인의 는 다질적인 변형, 이질적인 접속과 그것에 의해 련쇄적으로 탄생한 새롭고 다양한 이미지로 씌여진 하이퍼시다. 하이퍼시란 새로운 류형의 시가 탄생한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고 우리한테는 창작기법이나 감상, 평론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리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씌여진 시를 논평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퍼시를 배우는 일개인으로서 새 리론 공부는 피치 못할 사안이라 생각되여 결국 시험적으로나마 평론을 쓰기에 이르렀다. 논의의 방법상 들뢰즈와 가타리의 명저 에서 고원 전체를 아우르고 통솔하는 기본고리격인 리좀리론에 기대고자 한다. 왜냐하면 정두민 시인이 하이퍼시 를 창작함에 있어서 리좀리론의 련결접속의 원리, 다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등 여러 가지 원리를 두루 적용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리좀의 특성에 있어서 련결접속의 원리는 제1원리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질성 원리, 다양체 원리 등 기타 원리를 거느리는 핵심원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의 제목을《〈련결고리〉와 련결고리》라고 달았다. 2. 심하게 충돌되는 시어들을 자유롭게 이어보기 형식상 이 시는 또 로 련을 나누지 않은 시다. 그러나 내적 측면에서 보면 6개 이미지단위로 나뉘여져 있다. 하여 논의의 편의상 시 전문을 6개 이미지단위로 나누어 토론코자 한다. 1. 려명의 피를 뽑은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2.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3. 날짐승 깃소리 진렬대 세우려고 종달새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4.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한다 5. 미인계 왕관을 딴 진달래꽃 지키는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 6. 변성수술을 거절한 마련화향기가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이 시를 보면 매 이미지단위마다에 이미지주체를 하나씩, 도합 6개의 주체(안테나, 바람, 계곡, 흰점무리, 피뢰침, 마련화향기)를 등장시켰다. 그 매 하나의 주체는 또 적어도 2개 지어 그 이상(3개 혹은 4개)의 행위의 대상을 거느리고 있다. 안테나--행위대상은 ‘려명의 피’와 ‘맑은 날씨’ (2개) 바람---대상은 ‘펌프’, ‘움튼 라체의 기저귀’ (2개) 계곡--대상은 ‘날짐승 깃소리’, ‘종달새 목청’, ‘하프’, ‘흐름의 선률’ (4개) 흰점무리--대상은 ‘꽃사슴의 몸체’, ‘북극성꿈의 장기’와 ‘천수관음의 천궁’ (3개) 피뢰침--대상은 ‘진달래꽃’, ‘말(=번개의 웨침)’ (2개) 마련화향기--대상은 ‘변성수술’, ‘담벽’과 ‘하늘’ (3개) 여기서 6개의 행위주체는 서로 아무런 련관성도 없는 동떨어진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주체와 행위대상의 관계를 보면 매 하나의 주체가 가지는 행위대상 역시 동질적이 아닌 이질적인 것들이다. 례컨대 ‘흰점무리’의 행위대상은 ‘꽃사슴의 몸체’, ‘북극성꿈의 장기’와 ‘천수관음의 천궁’인데 돼지밭에 감자 뛰여다닌다는 식으로 아주 뚱딴지같은 사물들의 집합이다. 이 시를 시어자체의 본의에 따라 의미를 풀면, 행위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표출된 주체들의 동작은 다음과 같다---- 1. 안테나가 려명의 피를 뽑아, 날씨를 예보하며 (2가지 동작), 2. 바람이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녹은 땅속에서) 길어 올린 다음, (그 숨결을 가지고)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2가지 동작), 3. 계곡이 날짐승의 깃소리를 진렬대에 (진렬해)세우려 하며, (그러기 위해서) 계곡이 종달새의 목청을 대패질하며, (나아가) 계곡은 하프를 튕기면서, 흐름의 선률을 편집하며(4가지 동작), 4. 흰점무리들이 꽃사슴 몸에서 탈출하며, (탈출로 자유를 얻은 후에는) 북극성꿈 한 쪼박을 따먹으며, (따먹고 난 뒤)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하며(3가지 동작), 5. 피뢰침이 미인계시합에서 왕관을 따낸 진달래꽃을 지켜주며, (그런 창날 같은 피뢰침이) 말(=번개의 웨침)을 위협해 줄행랑을 놓게 하며(2가지 동작) 6. 마련화의 향기가 변성수술을 거부하며, (거부 후에는)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3가지 동작). 이 의미풀이의 결과를 보면 6개 주체이미지의 동작은 행위대상의 개수와 맞먹는다. 한개 대상에 한가지 행위만을 취한 셈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한개 대상에 여러 가지 행위도 가능할 것이다. 례하면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 동작은 “담벽을 허물어 짓밟아 뭉개고 하늘을 늘여서 물어뜯”는 행위로도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 엉뚱한 접속으로 새 이미지 창출하기 아래 6개 이미지단위를 하나하나 분석해보도록 하자. [제1 이미지단위] 려명의 피를 뽑은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려명의 피”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침노을이다. 왜냐하면 노을은 피처럼 빨갛기 때문이다. 또 피를 뽑는다 하면 련상되는 것이 주사바늘이다. 멀리서 보는 안테나는 주사바늘이나 수액관을 닮은 데가 있다. 주사바늘을 닮은 안테나가 주사로 피를 뽑듯 아침노을을 빨아들이는데, 참 근사한 상상이다. 여기서 안테나는 전파를 보내거나 받기 위하여 설치하는 도선으로 방송국 통신장비의 대명사로도 쓰일 수 있다. 주사침이나 수액관을 직유할 수 있을 뿐더러 천기예보를 하는 아나운서를 은유할 수도 있다. 안테나는 전파를 받거나 보낸다는 의미에서는 피를 뽑거나 수혈하는 주사바늘과 통하는 데가 있다. 한편 려명과 피와 안테나는 아주 이질적이며 서로 동떨어진 객관적 상관물들이다. 일반 론리에 따르면 “려명”은 “빛” 등과의 직접적인 접속이나 “지는 해 피와 같아라”는 식으로 “피”와의 간접적 접속은 가능하지만 “려명의 피”처럼 “피”와의 직접적 접속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리좀리론에는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왜냐 하면 리좀의 “련결접속의 원리”나 “다질성의 원리”에 따르면 “리좀은 매우 잡다한 모든 양태들에 대해 새로운 접속가능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양체의 원리와도 상통한다.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한다. 려명과 피, 이질적인 두개 이미지의 접속. 그것은 “려명”도 아니고 “피”도 아닌 다른 무엇이다. 노을일 수도 있고 불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물의 까만 뼈, 구름의 쌍날개, 바위의 도끼눈, 번개의 새끼발가락. 오솔길의 긴 꼬리, 모두가 가능하다. 이 이미지단위의 “려명”, “안테나”, “맑은 날씨”, “예보” 등 시어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계절, 날씨, 시간 등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제2 이미지단위]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합리적 론리사유로는 에너지를 리용해 액체를 끌어올리거나 압축하는 장치로서의 펌프는 샘물이나 기름 따위만 길어 올릴 수 있게 돼 있으므로 “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와 같은 언어와의 결합은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펌프가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리”는 행위와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행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좀의 사유에서는 그것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그런 이질성 혹은 다질성 사물간의 상호접속은 필수적인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여기서 펌프가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린다는 묘사는 해동을 의미하며,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준다는 묘사는 움튼 라목의 신진대사를 암시한다. 요컨대 제2 이미지단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해토무렵 검은 땅이 숨결을 가다듬을 때 땅을 깨우는 봄의 산들바람이 움튼 라목을 어루만지는 모습이다. 여기서는 바람이 주체다. 무슨 바람인가? 두말할 것 없이 봄바람이다. 봄바람이 모처럼 펌프로 길어올린 흑토의 숨결을 모셔다가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게 하는 것이다.   [제3 이미지단위] 날짐승 깃소리 진렬대 세우려고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계곡 하면 떠올려지는 것이 항상 촐랑이는 산간 벽계수다. 종달새 지종 하면 역시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날을 련상시킨다. 화창한 봄날 가뜩이나 고운 종달새의 노래소리를 더 이쁘게 대패질해서 전하는 계곡은 오현금을 튕기며 벽계수의 촐랑이는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이 제3 이미지단위에서 주체이미지인 계곡이 세가지 동작을 하는데 이 세가지 동작 간에는 아무런 련관성도 없다. 첫행에서는 “날짐승의 깃소리를 진렬대에 세우려 하”지만 다음 행들에서 하는 짓을 보면 생뚱맞게도 “종달새의 목청을 대패질하”지 않으면 “하프를 튕기”거나 무슨 “흐름의 선률” 같은 것을 “편집”한다. 어떤 합리성으로 주어진 선에서의 계곡, 산과 산 사이에 좁고 길게 움푹 패여들어간 곳으로서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계곡은 워낙 흐르는 물이나 계절이나 지역과 관련되는 언어와 련결되는 것이 상례다. 그리고 종달새의 목청은 맑고 구성진 노래 따위와 련결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단위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전부 그런 주어진 선과 연을 끊고 그 선들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들이 주어진 어떤 선과 연을 끊고 그 선들에서 벗어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새로운 이미지들과 접속하여 또 다른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제4 이미지단위]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한다 이 단위의 주체이미지는 꽃사슴도 아니고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한 흰점무리다. 흰점의 집합들이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하며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는다. 참으로 근사한 상상력의 발현이다. “북극성의 꿈”은 “북극성”과 “꿈”이란 한쌍의 이질적 이미지의 접속이다. 이질적이미지의 접속으로 “북극성꿈”이란 새로운 사물이 탄생했다. 꿈이란 원래 생명현상인데, 여기서는 “북극성꿈”과 “장기”란 또 다른 한 쌍의 이질적 이미지의 새로운 접속을 통해 “북극성꿈”은 “장기(례컨대 심장)”를 가진 또 하나의 특이한 생명체 “북극성꿈의 장기”를 생성했다. 이는 리좀적 다양체원리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하나의 척도,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의 집합이고, 따라서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 전체의 의미를 크게 다르게 만드는 그런 다양체이다. 흰점무리가 별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하는데, 천수관음이라 하면 중국장애인예술단의 청각을 잃은 장애인들이 눈부신 무대를 배경으로 펼친 황홀한 무용 “천수관음(千手觀音)”을 떠올리게 한다. 꽃사슴의 몸에 난 흰점들이 나비 날듯 날아올라 천궁을 유람하는 상상속의 광경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황홀경을 련상시키기에 족하다.   [제5 이미지단위] 미인계 왕관을 딴 진달래꽃 지키는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 ▲진달래꽃이 미인계왕관을 따다. 피뢰침이 진달래꽃 지키다--역시 이질적 이미지의 접속으로 어떤 주어진 선과 연을 끊는 것이고, 그 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그 어떤 주어진 선과 연을 끊고 그 선에서 벗어나야 이질적인 다른 이미지와의 접속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말이 피뢰침(의 진공)에 (놀라) 줄행랑 놓다.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말을 혼비백산케 한 피뢰침은 창이나 칼과 같은 존재다. 피뢰침은 높은 건축물 등을 벼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장치로서 피뢰침의 돌침에 번개가 맞으면 번개의 전류를 도선으로 유도해서 접지전극을 통해 땅으로 흘려보내는데, 피뢰침과 번개의 겨룸에서 피뢰침은 자연 승자(勝者)이고 땅속으로 버려진(혹은 도망간) 번개는 당연히 패자(敗者)다. 피뢰침의 보호를 받는 진달래꽃은 두말할 것 없이 피뢰침과 더불어 승자가 된다. 그것은 또한 봄의 상징이기도 하다. “번개의 웨침”은 겨울의 잔영(殘影) 혹은 비명(悲鳴)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말은 네굽 날려 줄행랑 놓는 패자의 랑패상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이미지다. 말하자면 “말의 줄행랑”과 “번개의 비명” 이란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즉 “패자의 랑패상”을 생성한 것이다.   [제6 이미지단위] 변성수술을 거절한 마련화향기가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마련화향기’와 ‘변성수술’ 역시 접속의 원리에 의한 이질적인 언어의 결합이다. ○향기가 코를 찌른다(주체의 주동형).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온다(주체의 피동형). 이런 것은 합리적 론리사유에 의한 묘사이다. 하지만 하이퍼시는 이런 묘사를 거부한다. ○마련화 향기가 손을 뻗어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향기가 지팽이를 휘둘러 꽃사슴을 쫓는다. 우주공간에 물길을 빼고 은하수를 에워 온다. 이런 것들은 합리적 론리를 깬 서술,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으로 하이퍼시가 지향하는 묘사기법이다. 이 련에서 마련화의 향기는 역시 봄과의 련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4. 창작기법 몇가지로 귀납해보기 이상에서 시의 각 련에 나타난 다양한 이미지와 그 다양한 이미지간의 다질성 접속 등 기본기법에 대해 초보적으로 살펴보았다. 초보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귀납해 낼 수 있을 것이다. (1) 구태로부터의 탈피와 불련속적 상상의 가지치기 하이퍼시는 기존의 인과적, 순차적, 론리적, 선형적 전개에서 탈피하여 비인과적, 비순차적, 비론리적, 비선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불련속적 상상의 가지치기 또는 이미지의 집합으로 완성되는, 따라서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무한히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문학형태이다. 이 문학형태는 연결접속의 원리, 다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탈기표 작용적인 단절의 원리 등을 근간으로 하는 리좀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정두민 시인의 시 는 하이퍼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를 두루 갖춘 시라고 생각되며 창작방법에 있어서는 들뢰즈, 가타리의 리좀리론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례컨대 내재적으로 나뉜 6개의 이미지단위는 그 주체이미지로 보나 그 주체이미지와 관련을 지으면서 뻗어나간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보나 서로 간에 아무런 련관도 없이 단절되여 있으며 각 이미지단위 안에서도 기성의 론리를 깨는 이질적 련결접속이 교차적으로 전개되면서 시 때 없이 마찰의 불꽃을 튕긴다. 이처럼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길어 올리고,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고,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 먹고,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구고 하는 이런 서로 동이 닿지 않는 이미지의 움직임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 모두 배렬하고 전체적으로 계절의 어느 한 부분을 표현해내는 이런 특이한 구성은 아마 하이퍼시만의 작시기법이 아닐가 싶다. (2)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의 조화 하이퍼시 창작에 있어서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자못 중요하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의 조화로 태여난 시라야 싱싱한 감각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시 의 시구를 례로 들어보자. “피를 뽑는다”는 삶의 현실이다. 그러나 “안테나가 려명의 피를 뽑는다” 하면 이것은 상상의 현실이며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의 조화인 것이다.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린다” ,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준다” , “계곡이 종달새목청을 대패질 한다”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상상력의 현실이며  삶의 현실과 시적상상력의 조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처럼 삶의 현실과 시적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면 의외의 명구생성도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이미지들이 허상으로 혹은 가상으로 시적 이미지의 새로움과 시인의 새로운 창조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보기 드문 명창’이라고 할 만한 구절이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흰점배기 꽃사슴의 몸에서 흰나비 같은 흰점무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개를 파득이며 훨훨 무리쳐 날아오르는 모습, 그리고 흰점들이 떠나가 버려 조금은 이상해진 꽃사슴의 몸뚱이를 상상해 보라. 참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상상의 신선함,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이다. 순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튀여나오는 새롭고 다양한 이미지들에서 우리는 모종 정서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데 그런 매력으로는 언어적 유희, 발랄한 상상, 재빠른 이미지의 전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리좀은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내물이며, 량쪽 둑을 갉아내고 중간에서 속도를 낸다”는 리좀리론의 명제처럼 하이퍼시는 첫 시어의 이미지와 뒤이어지는 이미지가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절은 다른 연결고리와 접속하면서 거기서 속도를 내는 그런 단절이다.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이 례문을 보면 첫 이미지(펌프)와 뒤에 따라오는 이미지들(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의 기저귀, 바람)이 의미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는 듯한 생뚱같은 이미지들은 기실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앞뒤와의 다른 연결고리를 통해 교차접속되면서 더욱 탄탄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다양한 이미지간의 충돌을 통해 첫 시행에서 출발한 사유가 새로 만나는 사물들은 제마끔 새로운 관념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3) 내면 의식의 흐름 파악하기 일반적으로 '의식의 흐름'이라 하면 이것은 지금까지의 현대시 창작론에서 흔히 써온 말이다. 그러나 하이퍼시 창작론에서는 의식의 흐름을 강조하지 않고 '무의식의 흐름'이나 '무의식의 반복충동'을 강조한다. 하이퍼시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내면 무의식의 흐름에 대한 파악이다. 이런 무의식의 흐름을 ‘하이퍼시의 맥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시의 맥락은 하이퍼텍스트시의 구성에서 중심역할을 한다. 하이퍼시의 시어들은 시인의 무의식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 앉으면서도 하이퍼시가 지닌 정보의 수평적 결합처럼 내면적 질서를 갖추고 있다. 정두민의 시 전반을 보면 거의 모든 주체이미지와 그것의 움직임이 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려명의 피, 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 종달새 목청,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들, 천궁 유람, 진달래꽃, 마련화향기 등 다양한 이미지와 안테나, 바람, 계곡, 천궁, 피뢰침, 담벽 등의 다각적인 시각으로 봄 기상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설적이 아니라 철저히 암시적이며 은폐적이다. (4) 시어의 선택차원에서 문제점 꼬집기   ◎려명의 피를 뽑는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앞뒤구절의 련관속에서 바라볼 때 뒤구절인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는 너무 직설적이며 새롭지 않고 평범하여 앞 구절에서 떠올린 상상력의 맛을 뒤구절에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소지가 있다. 물론 그 어떤 경우나를 막론하고 새로운 이미지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아니다. 한개 이미지단위 내의 지나치게 많은 이미지 창출이 이 시의 매력과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경우 두번째 행에 대한 수정은 가능해 보인다. 혹시 두번째 구절을 앞구절에 걸맞게 “동녁하늘에 잠자리떼 날린다” 이런 식으로 바꾼다면 어느 정도 직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여기서 “움튼 라체”는 도대체 무슨 라체인지 알 수 없다. 상상에 맡길 수도 있겠으나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례컨대 ‘움튼 바위’ 혹은 ‘움튼 라목(裸木)’이라 하면 이미지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도 전부 추상어로 구성이 되었는데 별로 신통치 않아 보인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여기서 “꽃사슴에서 탈출”은 어페이다.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로 돼야 한다. 5. 마치면서 이상에서 정두민 시인의 시 를 창작기법의 몇가지 측면에서 풀이해 보았다. 잘못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하며 회원들의 기탄없는 지적을 바란다. 요컨대 정시인은 리좀리론을 하이퍼시 창작에 활용함에서 성과를 올렸으며 동인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정시인이 계속 하이퍼시 창작에 정진하면서 보다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펴내기를 기대한다. 2017.11.30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문고(7)《비비(飛飛)》2019.2 ===================================================== 변주의 미학   ----강동한 시 단평    ▢박문희      한수의 시에 대한 단평에 이란 거창한 제목을 단다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대로 모종의 그럴만한 리유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여 그대로 쓰기로 했다.   '변주'는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중 제하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네이버사전에서는 '변주'를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르게 바꿈'으로 해석, 이를테면 한복들이 현대에 시류를 타 변화하는 것도 '변주'(중문으로 된 《천개의 고원》에서는 '流變'으로 번역되였음)로 표현한다. 한편 동음어인 음악의 '변주(變奏)'로도 통한다.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함을 일컫는 말이다.   '변주'에 대한 들뢰즈-가타리의 말을 조금 따다 음미해보자.   "...변주의 련속체를 만듦으로써, 그리고 상수들을 조이고 변주들을 풀어주도록 변수들을 조작함으로써, 언어가 말을 더듬도록 하라. 또는 언어가 '삐약삐약 울게' 하라..., 언어 전체에, 심지어 문어에도 텐서(tensor/张量)들을 설치하라. 그리고 거기서 웨침, 아우성, 음높이, 지속, 음색, 억양, 강렬함을 끌어내라....바꿔 말하기에 대한 취향..." (《천개의 고원》중 , 201페이지)   '변주리론'에 대한 나의 리해를 한마디로 개괄하면 시어를 해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현대시류를 타 변화시키듯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양하게 바꾸고 음악에서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듯 바꿔주면서 원래의 틀 안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강동한 시인의 시 한수를 옮겨온다.   만경창파 건너온 너 나 자취 더듬어 몇 만리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오랜 보뚝 터져 녹아내린 눈가의 고드름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고 있는 개바자의 해바라기꽃   언젠간 단비 되여 말라 찢긴 가슴 적셔 주리라   ----시 전문   4개 련에 12행으로 씌여진 시로서 제목은 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우리는 읽고자 하는 시를 접할 때 우선 시 제목부터 보게 된다. 제목을 봐야 읽고자 하는 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시문을 여는 열쇠이자 시를 리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또한 각 련과 행을 련결하는 하이퍼링크 기능의 주요담당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드시 전부의 담당자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제목-행-련’을 련결하는 구도를 갖는 링크기능은 각 련, 각 행, 지어 모든 시어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시 읽기와 시 쓰기에서 링크기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시제가 이니 내용도 편지와 관련이 있기 마련이다. 칼로 자르듯 철저한 단절, 도주와 탈령토를 운운하면서 그것을 련결과는 아주 무관하게 취급하는 것을 하이퍼시의 한 개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일도 있지만, 실상 분리탈주와 접속련결 및 탈영토와 재령토의 변증관계를 외면하고 도주, 분리와 단절만 강조하는 사고방법은 재고되여야 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제목과 내용의 관계처리도 그렇지만 련과 련, 행과 행과의 관계처리도 마찬가지이다.   만경창파 건너온 너 나 자취 더듬어 몇만리   시 의 첫 련이다. 시 제목이 이므로 첫 행의 '너'를 편지로 상정해볼 수 있다. 만경창파 수만리 먼 이역 땅에서 날아온 편지. 그러나 제목이 라 해서 내용이 반드시 편지라는 보장은 없다. 편지가 단지 상징물에 불과해 그것이 상징하는 대상이 다른 사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례컨대 막언의 장편소설 제목이 《풍유비둔(丰乳肥臀)》이라 해서 그 내용이 풍만한 가슴에 큼직한 엉덩이를 쓴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제2련: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이 련은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를 첫 행으로 시작된다.   의인화된 2인칭 '너'의 '옷'을 떨리는 손으로 벗기는 이미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모종의 전률감을 줄 수 있는 시행이다. 여기서 '옷'은 편지봉투의 상징물이다. 하지만 '다르게 바뀐 내용물'로서의 '옷'은 필경 변주의 결과이며, 편지란 령토로부터의 탈주 혹은 탈령토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가타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조금 긴대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련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령토화하며 안정화되기도 한다. 우리가 상황이나 변수라고 부르는 것들도 사실은 탈령토화의 정도들 자체이다. 한편으로 내용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몸체의 혼합체 또는 몸체의 결집체 안에 있는 비률들이다. 다른 한편으로 표현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언표행위 내부에 있는 요소들이다... 요컨대 표현은 내용을 발견하거나 표상함으로써 내용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이 서로 소통하며 끼여들고 작용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의 상대적 탈령토화의 량자들의 결합 때문이다." (《천개의 고원》 중 171페이지)   시 제목 와 시 첫련의 '너'와 2련 첫행의 '옷'을 내용과 표현을 언급한 들뢰즈-가타리의 말에 련계시켜 보면 '편지'는 내용에 속하고 '너'와 '옷'은 표현에 속한다.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련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령토화하며 안정화되기도 한다. 그것은 부단히 진행되는 변주의 과정이기도 하다.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이 서로 소통하며 끼여들고 작용하면서 '편지'는 령토로부터 탈령토, 재령토로의 과정을 밟는데 그것은 내용과 형식이 상대적으로 탈령토화한 량자들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이것은 2련 첫행 뒤에 오는 3행의 시구다.   '너'의 '옷'을 벗긴 후에 나타난 경상은 눈처럼 희디흰 피부가 아니라 생뚱맞은 '수놓은 화원', '하얗게 뜬 녹비'와 '토장의 손길'이다. 이런 시어들의 조합은 일상론리에는 맞지 않으나 시적 론리에는 맞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행 '해진 젖살을 달래주는 익은 토장의 손길'은 '떨리는 손'에 대한 대응이면서 또한 이질적 언어의 무단 접속(례컨대 '해진 젖살', '토장의 손길')의 내포도 가진다. 이 시구들을 몇 번 음미해 보노라면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향기를 련상케 하는 전통 삶에 대한 회고의 의미도 지니지만 표현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다음 제3련을 보자.   오랜 보뚝 터져 녹아내린 눈가의 고드름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고 있는 개바자의 해바라기꽃   느닷없이 오랜 보뚝이 터지고 눈가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내리며 또 예고 없이 개바자의 해바라기꽃이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어재낀다. 이 역시 변주이다.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는 변주(變奏)'이기도 하고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르게 바꾸'는 변주(流變)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랜 보뚝' 과 '녹아내린 고드름'은 눈물샘과 눈물의 변주이며 '해바라기꽃'은 '나'의 화신이자 변주이다.   이제 마지막 련을 보자.   언젠간 단비 되여 말라 찢긴 가슴 적셔 주리라   여기서 '나'는 '해바라기꽃'에서 탈주하여 '단비'로 '재령토화' 된다. 마른 '가슴'을 적신다는 대목에서 그 '가슴'이 상정하는 의미는 상당히 다양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읽는 이들이 스스로 읽어내야 할 터이다.   이제 시 전문을 표현대상의 측면에서 귀납해 보자.   1련: 너, 나 2련: 화원, 록비, 손길 3련: 보뚝, 고드름, 해바라기꽃 4련: 단비, 가슴   보다싶이 각 련의 표현대상들은 분명 자립성과 독립성을 가지며 그것들 서로간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례컨대 2련의 화원, 녹비, 손길과 3련의 보뚝, 고드름, 해바라기꽃은 각 련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서로간에 아무런 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란 제목의 링크기능에 의해 우리는 편지와 각 련이 분명 련결되고 있음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오랜 보뚝의 터짐과 고드름의 녹아내림은 쏟아지는 눈물과 감정의 폭포일 터이고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어 예는 해바라기꽃은 만경창파 수만리 이국타향에서 정든 고향을 그리는 화자의 화신일 터이다. 각 련과 행들에 새로 발생하는 이미지들은 변주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러한 변주들이 시 전반에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을 이라 한 리유라면 리유겠다.   이상에서 우리는 시 를 한번 훑어보았다. 시 전반에 걸쳐 우리는 시어의 의미화에 대한 강동한 시인의 추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미지의 활발한 변주와 확장도 맛보게 된다. '떨리는 손, 벗기는 옷, 해진 젖살, 울고 있는 해바라기꽃'과 같은 이미지의 변주와 확장된 이미지는 읽는 이의 마음과 눈을 시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시어의 구사를 봐도 반 마디 설교도 없이 진지한 표현만 있을 뿐이며 내용은 진지하고 깊은데 반해 표현은 감각적이고 유연하다.   이런 점이 자못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지의 활발한 변주와 확장 및 시어의 의미화에 대한 의도적인 추구를 소홀이 한다면 우리의 시는 자칫 무의미한 언어유희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시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유미주의적 감각을 충분히 살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시는 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살려야 할 것이다. 상상력의 공간을 충분히 확장함과 동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살리는 것은 우리 시인들에게 있어 필수과목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2023.5.28.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창작세미나에서) ////////////////////////////////////////////////////// 박문희 1950년 9월 7일 龍井 출생 1968년 上山下鄕 운동 가담 1972년부터 연변한사,연변대학 중문 전공 1974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 1980년 연변일보사 입사 1985년 길림신문사에 이적 2011년 퇴직.
8017    중국조선족시인 홍영빈 篇 댓글:  조회:271  추천:0  2024-08-29
 홍영빈과 시집 “바람 가는 길”/장학규 1939년 흑룡강성 통하현에서 태여난 홍영빈은 병약한 신체와 가난한 살림때문에 소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굳은 의지와 이악스런 노력으로 1973년에 처녀작 “봄은 어디에”로 등단, 현재까지 시집 2권과 300여 수의 시를 발표했다.  “바람 가는 길”은 1장 “나를 찾아서”, 2장 “세상과 세월”, 3장 “바람과 나무와 별과 시”, 4장 “생명예찬” 등 총 4장으로 나뉘여졌다. 홍영빈의 시는 시골집 무쇠솥에 우려낸 구수한 숭늉같다고 하는 편이 어울릴것 같다. 현란한 언어가 없지만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솔직한 표현과 알송달송한 몽롱미가 없어도 마음까지 편한 시어의 선택은 홍영빈만의 창작풍격이다.  막차 //밤 아홉시 정각 /나는 집에 가려고 막차에 올랐다/ 네온등 꽃 수놓아 협곡을 달리는/ 막차에 앉아서 해보는 자문 / 이제 훗날 그 어느 역에서/ 마음 놓고 안식처에 내려야 할 / 막차를 탈 승차권은 / 마련 되었는지? 시에서의 막차는 마지막 뻐스가 아닌 시인이 살아온 전반 인생에 대한 회고의 시간인것 같다. “막차”를 보면  시인 자신이 보인다.  자맥질 // 물속 자맥질로 먹이 사냥하는 물새가 / 물의 깊이를 다는 모르고 살 듯 / 하늘을 자맥질하며 노니는 날새도 / 하늘의 높이를 다는 알지 못하지만 / 새들은 저마다 즐거운 삶을 사는거다 /… 주어진것에 만족하고 주어진것을 누리는 삶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홍영빈 시인도 스스로를 날개를 펼줄 아는 한마리의 새라고 했다. 좋아하는것을 마음껏 할수 있는 자유를 가진 스스로가 날개를 펼줄 아는 새라는것은 홍시인의 만족스러운 삶을 말하는것이 아니겠는가?
8016    중국조선족시인 리삼월 篇 댓글:  조회:275  추천:0  2024-08-29
리삼월 시인 리삼월 자기시를 론함 2013년 08월 17일 17시 58분  작성자: 김송죽   리삼월 자기시를 론함     내가 내내 촌에서 살다가 할빈에 이사를 해 거기서 지낸 몇해간은 참으로 즐거웠다. 류류상종(類類相從)이라 문학을 한답시고 글쓰는 데만 정신팔고 지어는 그것을 종생의 락으로 삼은 우리 글쟁이 몇은 아무 때건 종종 만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손으로 일떠세운 흑룡강성조선족작가소조가 있기는 해도 우리 나머거리끼리의 호흡이 따로있었으니 자연히 별도로 종종 “문학쌀롱”을 가지게되었던 것이다. 발기자는 제일좌상이였던 리삼월(리경희)선생이고 그담은 나였다. 그리고 정기수, 림국웅(한춘)해서 모두 넷이였다. 이때의 우리들  서로간의 믿음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최대의 보배였다고 할 수 있겠다. 공식모임은 어김없이 두주일에 한번씩, 돌림식으로 주식(酒食)을 책임졌는데 우리는 만나면 기탄없이 속심을 다 털어 사회를 론하고 인생을 론하고 문학을 론하고 창작을 론했던 것이다.   그때는 나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 탈고되여였기에 시간이 있는지라 이미 발표된 글들을 한데모아 자체로 을 묶느라 역사를 해던것이다. 그러고있는 판인데 어느날 리삼월선생이 우리 집에 왔다가 보고서 “거참좋구만! 내것도 그렇게 만들어주구려.”했다. 하여 나는 흔연히 그러마 대답했던 것이다.   “지금은 자비출판이 유일한 시대다. 나의 안해는 나더러 어느날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빨리 자비로 책을 낼 준비를 하라고 여러번 독촉했다. 나는 그때마다 응낙을 하지 않았다. 나는 원고료를 받는 시절에 두권의 시집을 냈다. 자체발행을 해보고 몽땅 증송도 해보았다. 어차피 자존심만 상하게 하는 일이였다. 그래서 돈이 아까운 것보다 훗처리가 무서워서 자비출판을 포기하고말았다. 이렇게라도 몇책 만들어놓는 것은 몇수라도 가치있는 시가 다시 시의 번영기를 맞는 후세사람들에게 읽힐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나의 자신심의 표현이라 하겠다.”  내가 컴퓨터로 타자해 만들어준 의 머리말의 글이다.  이 책에는 1954년부터 1978년까지의 시들은 한수도 수록하지 않았다. 1979년부터 2002년까지의 작품중에서 558수만을 추려내 한데묶은것이다.  5B용지 246페지.   리삼월선생은 해방후 북방문단에서는 아마 제일먼저 떠오른 밝은별일것이다. 시창작에 대한 그의 견해가 후세에 저그마한 참고라도될것같아서 올리니 시창작자들은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관점이 다를수도있겠지만.                         나와 나의 시                            리삼월   나에게는 시창작에서 시종일관 견지해온 자기나름의 주장이 있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면 독자들이 알아보기쉽게 소박하게 그러면서도 심각한 함의가 내포된 시를 쓰는 것이다. 어떻게 쉬우면서도 심각한 시를 쓸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것이다. 어차피 매우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이 없다. 이 모순되는 량자를 조화시키지 않으면 나는 결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시의 맥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적발견이 없으면 나는 필을 들지 않는다. 일단 새로운 시적발견이 있게되면 령감이 생기고 또 령감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유발시킨다. 나의 경우를 놓고 보면 시적발견은 나로하여금 언제나 개성화되고 격정으로 고양된 심태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미묘한 환경속에 밀어넣는다. 나는 다시 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각도를 찾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기물탁상이라는 전통적인 기초를 바탕으로 하여 시를 설계하고 시의 집을 짓는 대체적인 과정인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시에는 많은 경우 일정한 서사성분이 세절과 함께 가첨된다. 서정시에 서사성분이 과분하게 가첨되면 알아보기는 쉽지만 감정밀도가 성그러져 서정미에 손상을 주게된다. 나는 이런 위험을 경계하면서 새롭게 신선한 세절에 개성이 강한 정감을 반죽하는 방식으로 결함이 될수있는 가능성을 미리방지하는 것이다.   나는 상기한 창작방법을 거쳐 독자들이 알아보기쉽고 소박하면서도 심각한 함의를 담을 수 있는 나의 문학주장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내가 나름대로의 주장이 있다고해서 창작실천에서 훌륭한 시를 많이 내놓은 것은 아니다. 실패작도 많은 것이다.   나는 거의 한평생을 편집사업에 종사해왔다. 그것도 동인지가 아닌 국록을 타먹는 문학지를 편집했기에 모든 부동한 창작방법으로 씌여진 시와 시인을 폭넓게 포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혁”후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이는 내가 부동한 창작방법과 그리고 예술기법 등을 배우고 가늠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했다.   어떠한 창작방법이거나 그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모두 재간을 길러낼 수 있고 어떤창작방법으로 씌여진 작품이던간에 모두 대작이 있으면 졸작도있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계속쓸것이다.          
8015    중국조선족시인 김철 篇 댓글:  조회:205  추천:0  2024-08-29
김철 시인 추억과 사랑 그리고 허무의 미 -2000년대 김철의 시/장춘식 2011년 01월 21일 09시 45분  작성자: 장춘식 추억과 사랑 그리고 허무의 미 -2000년대 김철의 시 장춘식   1. 시작하면서   김철은 해방후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시인중의 한사람이다. 1955년 서정시 《지경돌》로 문명(文名)을 세상에 알린 이래 수많은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시창작을 멈추지 않고있다. “기발한 착상, 강렬한 시대정신, 풋풋한 시형상 그리고 세련된 언어”라는 평가는 김철의 출세작인 《지경돌》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그의 초기작품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시집 《산향길》에 수록된 서정시들은 1979년이전시기의 김철의 시풍격을 보여주고있는바 명쾌한 격조, 랑만적인 색채, 풍부한 상상력, 다정다감한 언어, 류창한 운률이 그대로 보존되고있다”는 개혁개방 이전시기 시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지경돌》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물론 개혁개방후 특히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여러모로 변모를 시도하고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1980년대 김철의 시는 점차 싸구려랑만주의 시풍에서 해탈되여 참사실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생활의 표층에 대한 기계적인 모방이 없어지고 인생과 시대에 대한 심층사고가 많아졌다. 시표현수법이 보다 개방적이고 다양해졌으며 시인의 직관적인 통찰력에 기초한 간결하고 생동하고 개성적인 시형상을 창조하였다.”는 평가에서 그러한 변화의 모습을 감지할수 있다. 여기서 “싸구려랑만주의 시풍”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해방후 개혁개방이전까지 우리 문학의식의 미숙상태에서 비롯된 리상주의적인 시풍을 지적하였을것인데 이는 김철시인 한사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전반 조선족문학의 문제였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렇다면 로년기에 들어선후 씌여진 2000년대 김철의 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이고있을까? 본고에서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문예지들에 게재된 김철의 시작품을 통해 김철시인의 새로운 시적시도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삶의 허무와 그 겸허한 수용   허무는 인간의 영원한 과제중의 하나이다. 이는 생명의 한계성과도 관련되거니와 문학작품으로서도 피할수 없는 주제분야가 된다. 특히 중로년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삶에 대한 허무의식은 점차 강해지며 그래서인지 2000년대 김철의 시작품중에는 삶의 허무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 많다. 간접적으로 다뤄진것까지 하면 본고에서 론의대상으로 삼은 작품 다수가 이러한 허무의식을 다소간 내포하고있을 정도이다. 아무래도 시인이 이제 여든살에 가까운 로인이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어떤 측면에서 허무에 대한 서글픈 표현은 인간의 마음이 약해졌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렇기때문에 일부 소극적인 정서를 띤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 공동의 과제라는 측면에서 시문학이라고 이를 외면할수가 없다. 문제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허무의 상황에 한탄하고 거기에 그냥 젖어버리고마느냐 아니면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적극적인 극복의 의지를 보이느냐에 있을것이다. 김철의 2000년대 시작품들은 이 량자를 동시에 드러내고있다. 먼저 《리발소에서》라는 작품을 보자.   리발소 땅바닥에 내 하-얀 머리칼이 떨어진다 소리없이 쌓이는 서글픔 내 생이 잘린다 리발소에 드나드는 동안 이렇게 내 소년이 잘리고 청춘도 잘리고 지금은 가을, 늦가을 퇴색한 황혼이 싹둑싹둑 잘려나간다   내 생명을 잘라먹는 시간의 가위는 멈출줄을 모르는데 비상과 추락의 틈서리에서 만신창이 된 나의 꿈은 세월의 아쉬움 한자락 붙잡고 운다, 내- 삶이 먹혀가는 잔인한 리발소에서…   세월의 무정함과 삶의 무상함을 리발소에서 잘려나가는 머리칼에 비유하고있다. 여기서 특히 “리발소 땅바닥에”떨어지는 “내 하-얀 머리칼”은 “내 생이 잘린다”는 표현에 의해 잘리는 머리칼과 줄어드는 삶이 등치되였다. 소년과 청년, 중년, 로년이 머리칼을 자르는 가위에 의해 잘려나갔다고 믿는것이다. 이는 일반인이 다 리해할수 있는 생명의 허무감이라 하겠다. 시인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비상과 추락의 틈서리에서/만신창이가 된 나의 꿈은/세월의 아쉬움 한자락 붙잡고”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꿈꾸었던 꿈을 다 이루고 복된 삶을 누리며 인생의 황혼에 이르렀다면 삶은 조금 덜 허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삶은 그 시대 다수인, 적어도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혹은 조선족인들이 겪었던것과 마찬가지로 “비상과 추락”을 거듭하며 젊은날 꾸었던 꿈은 “만신창이가”되였다. 그래서 삶이 더욱 허무하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송화강변》이라는 작품에서는 그러한 력사의 기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좀더 서글픈 느낌을 준다.   송화강변 눈덮인 허허벌판 옛날, 만주 올 때 아버님 지게우에 달랑 앉아있던 깨진 밥솥 하나, 그리고 울보 내 녀동생, 지금은 모두 다 가버렸다   홀로 남은 내 가슴의 허허벌판 얼어붙은 추억은 녹을줄을 모른다…   여기서 화자는 이주민이다.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난을 겪고나서야 오늘의 조선족이 있었는지를 우리는 안다. 렬악한 동북땅의 자연환경은 “눈덮인 허허벌판”으로 묘사되였다. 그렇게 춥고 견디기 힘든 땅이 이민지요 이주민은 그러한 불모의 땅에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가꿔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 왔던 녀동생도 가버렸으니 아버지, 어머니도 벌써 다 가버렸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화자는 이제 홀로 남았고 그러기에 가슴이 옛날 만주땅처럼 “허허벌판”이 되고 추억이 “얼어붙”었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과 얼어붙은 추억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수가 없는것. 그래서 인간은 허무할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깨진 사랑은》이라는 제하에 발표된 이 작품외에도 《북국설》(외10수)이라는 제하에 발표된 작품들 대부분은 사라지는것에 대한 허무의식을 담고있다. 이상 두편을 포함하여 허무의식이 표현된 김철의 근작시 작품은 어느 정도 허무에 젖어들거나 심지어 탐닉한듯한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이대로만 계속 나간다면 삶의 허무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로시인은 여기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겨울나무》에서 화자는 “흘러간 아쉬움을/갈기갈기 찢고있다”면서 삶의 허무에 반항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리 험한 삶이고 허무한 세월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련의 “아무렴,/기억은/상록수가 아니지!…”라는 표현에서는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의 운명을 그대로 겸허히 혹은 성실히 받아들인다. 여기서 겨울나무는 화자의 삶을 의미할것이다. 《내 인생 그대로가》에 오면 그러한 달관과 겸허가 삶자체의 궁극적인 모습에 대한 인식으로 심화된다.   거치른 바다 험한 파도를 헤치다보면 나, 소금물 많이도 먹었네   오장륙부가 다 절어 이제는 토해내도 쓴물밖에 없는 신세   바람부는 세월에 인생을 걸궈내면 짜고 쓴 소금 인생 그대로가 소금이 아니겠나   《내 인생 그대로가》의 전문이다. 여기서 화자는, 삶은 거치른 바다, 험한 파도를 헤치는것이라 전제하고나서 그런 과정에서 소금물을 많이 먹어 오장륙부가 다 절었다고 했다.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험했으면 바다물처럼 짜고 쓸까. 그러나 “인생 그대로가/소금이 아니겠나”에 오면 그러한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삶자체가 쓰고 짜다는 인식에 이른다. 삶자체가 쓰고 짤진대 이를 거부하고 분노할 리유가 있을수 없다. 허무에 직면해 교만하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는 일종의 달관의 경지라 할수 있다. 허무가 피할수 없는것일진대 이에 분노하고 이를 거부하려는것은 옳바른 삶의 자세가 아닐것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는것은 삶의 중요한 지혜가 되기도 한다.   3. 고향과 추억과 사랑, 그 애틋함   시인의 로년기 작품이여서 그렇겠지만 2000년대 김철의 시작품들은 기본적인 소재 혹은 주제의식면에서 추억에 많이 의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억에는 고향과 사랑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등장한다. 앞에서 이미 살펴본 《송화강변》에도 이민으로부터 시작된 화자 가족의 삶 전반이 슴배여있거니와 《별》에서는 기억속의 잊지 못할 사람을 이제는 “저 멀리 날아”가버린 “별”에 비유한다. 그리고 《북국설》이라는 제하에 발표된 11편의 작품중 다수가 추억에서 취재하고있다. 특히 《해질무렵》이라는 작품에서는 어린날의 기억들이 세월의 무상함과 련관되여 알찐한 마음의 공감을 부른다.   옛날, 서산마루에 해가 지면은 엄마 곱돌장싸개에 장 지져놓고 돌쇠야 말순아 불러들였지   그것들 지금은 뿔뿔이 다 가고 해져도 불러들일놈 없는 쓸쓸한 저녁 부르면 바람만 우여-찬서리 몰고오네   토속적인 이미지들속에 묻어나는 아득한 옛날 삶의 모습은 그것이 우리의 고향이고 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잊혀져가는 상황이여서 더구나 가슴아픈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래서 《고향길》이라는 작품에서 타향살이하다가 고향길에 나선 화자의 “나그네”처지에서 허무의식이 좀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고향의 추억은 《고향집》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절실하게 표현된다. 이 작품에서는 고향의 기억과 고향을 떠난 화자의 삶의 기억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고향의 기억은 따스함과 행복함과 사랑 등으로 밝게 인식되는 반면 고향을 떠난 화자의 삶의 기억은 차가움과 서글픔과 패배감으로 어둡게 그려진다. 그리고 “아리숭한 기억속으로/증발해버린 고향의 정/그래도 고향엔 예와 다름없이/철이 되면 봄꽃이 물들고있다네요”라는 마지막련에서 알수 있는것처럼 고향은 어떤 신앙처럼 절대적인 선이 되기도 한다. 《달빛》이라는 작품에서도 이점은 다시 확인된다.   달이 우물에 잠겼습니다 퍼내도 퍼내도 천년을 퍼내도 달은 그냥 웃고만 있습니다   달처럼 이쁜것이 고향의 마음 천리를 가도 만리를 가도 갈증을 달래주는 샘물입니다   《달빛》의 전문이다. 여기서 달빛은 절대적 아름다움 혹은 진리로 표현되는데 이 달빛과 등치될만한것이 바로 “고향의 마음”이라 했다. 그만큼 시인에게 있어 고향은 삶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 시인에게 있어 추억과 늘 함께 따라다니는 또다른 이미지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의 이미지는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깨진 사랑은》과 《보리밥》에서 절실하게 표현된다. 먼저 《깨진 사랑은》에서는 사랑을 쉽게 깨지는 유리에 비유하고 “사랑도 깨지면/저렇게 아픔인것을”이라 하여 사랑의 깨짐을 뒤늦게야 후회하는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하고있다. 그리고 결국 “아물지 못한 어린 상처 하나가/세월의 물살우에/눈물처럼 떠있다”는 표현에서 느낄수 있는것처럼 사랑을 옛날의 추억과 련관시키고있다. 《보리밥》에서 사랑은 달콤함 혹은 행복함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아니라 “깔깔한 보리밥”과 등치된다. “세상살이 마치도 보리끄스름같아”서이다. “깔깔한 그것을 삼켜야만 했었지/고운 정 미운 정/사랑은 덫…”이라는 마지막련의 표현은 긴 세파속을 헤쳐나온 사람만이 느끼는 사랑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세집사랑》도 시인의 사랑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사랑은 나의 세집, 정들어 사는동안 부엌에서 타버린 장작개비마냥 내 심장은 타고타서 재가 되였다   어느날 돈없어 쫓긴다 해도 네집의 삐뚤어진 문패만은 내 마음에 항시 걸어두리라!   시인은 남녀 두사람의 사랑을 세집살이로 표현한다음 사랑하는동안 “내 심장은 타고타서 재가 되였다”고 할 정도로 사랑을 아픈 과정으로 절실히 느끼면서도 그 사랑이 깨지면 오히려 항상 마음에 새겨두겠다고 한다. 김철의 시에서 사랑은 이처럼 세파속을 헤쳐나온후의 어떤 깨달음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다수의 경우 《깨진 사랑은》에서처럼 지난 삶의 한 기억으로 인식된다. 가령 “봄 여름 끓던 시절도 다 보내고/잎보다 더 많은 가을의 애수/가랑잎을 밟지 마세요/단풍은 나의/멍든 사랑입니다”에서 사랑은 험한 세상을 지나온 삶의 한 기억이기에 더 소중한것으로 인식된다. 요컨대 김철은 세월의 덧없음과 삶의 허무를 서글퍼하면서 때로는 거부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고희를 훨씬 넘긴 원로시인이 긴 세월 삶의 바다를 헤여오면서 건져낸 인생의 지혜라 할수 있다. 그리고 늙어서도 뗄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집착은 고향에 대한 드팀없는 사랑과 더불어 삶의 허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으로 리해된다. 그러한 사랑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애잔한 추억,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삶의 허무를 극복하려 했다는 말이다. 세월의 덧없음과 삶의 허무를 겸허히 수용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인의 인생모색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를 우리는 달관의 경지라 부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4. 민족분단의 아픔에 대한 사명의식   2000년대 발표된 김철의 시작품중에는 특별한 주제의 작품 한편이 있다. 이 시기 김철의 대부분의 작품이 10행 내외의 단시인데 비해 이 작품은 20련 110행에 달하여 서정시로서는 장시라 할수 있다. 《휴전선은 말이 없다》가 그것이다. 전성기 김철의 시중에는 장시가 더러 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고 오랜 사색끝에 내놓은 력작인데 그 주제 또한 심상치가 않다. 여기서 휴전선은 당연히 조선반도 남북을 가로자른 이른바 “38선”을 말한다. 화자는 백발이 되여 휴전선 근처 어느 옛날의 전적지인 무명고지에 서있다. 시적표현도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마음에 걸려서/석양도 벌겋게/피를 끓인다” 라는 표현이 그렇다. 그만큼 화자의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될것이다. 그리고 휴전선이다.   바라보면 머얼리 휴전선은 여전하고 녹쓴 철조망을 넘어 새들만이 오가는데 피없이 터치지 못할 울분이 내 한가슴 가득 차있다.   꼭같은 배달민족이건만 휴전선 하나로 남북이 갈려 수십년을 혈맥이 끊겨 살아온다는것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고 분노할 일인가. 게다가 화자는 남과 북 어느쪽에도 편을 들수 없는 처지다. 다음의 례문에는 그러한 중간자적 립장이 잘 드러나있다.   높은 령마루에 올라 남북을 바라보는 내 마음 긁힌데없이 저리고 한점도 떼낼수 없는 아픈 살점들을 어루만지는 내 손길 천추의 한이 맺혀 서로의 아픔을 싣고 저기, 흰 구름만 조용히 흘러간다   그러나 그 중간자적 립장은 그냥 방관자로 지켜볼수만은 없는 립장이다. 화자역시 꼭같은 단군의 후예이기때문이다. 남북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긁힌데없이 저리고” 그래서 화자의 손은 저도모르게 “한점도 떼낼수 없는/아픈 살점들을 어루만”진다. 이때 화자에게 있어 오늘까지 수십년간 이어져온 분단의 아픔을 만든 장본인인 이데올로기는 이제 먼 옛날의 얘기일뿐이다. 그러나 휴전선 이남과 이북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긴긴 불장마에 시달리는 이 나라 생각하면 진짜 환장하겠다 습관된 그 애환은 언제 끝나련? 어둡고 질긴 밤이 장장 반세기를 울부짖는 귀먹은 이 시대 절망하는 별들은 폭포로 무너져내리고   남과 북은 아직도 “긴긴 불장마에 시달”리고 이때문에 화자는 “환장하겠다”고 애탄 심정을 뱉어낸다. 여기서 “귀먹은 이 시대”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장 반세기의 울부짖음에도 “귀먹은 이 시대”는 아마도 겨레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하는 혹은 치유해주려 하지 않는 모든것을 의미할것이다. “몸살난 절규를 넉두리하며/가도가도 끝없는 통일의 미로”는 그래서 현실이다. 책임이야 누구에게 있던지 “아무도 드틸수 없는/그 하나의 진실때문에/멍든 가슴들을 화독으로 달굴 때/숨기지 못하는 하나의 갈망이/온 강토에 메아리로 여울져간다” 그래서 화자는 그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기로 한다.   찬바람속에서도 뜨거운 입김이 흐르는 하늘이여 땅이여 기어이 오고야말 해동의 계절 어수선한 강토를 설걷이하고 내 여기 사랑을 심으리라 자유를 키우리라   겨레의 비극은 결국 사랑의 결핍으로 이루어졌다고 본셈이다. 그래서 “어수선한 강토를 설걷이하고” 거기에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랑을 심고 자유를 키우겠다고 한다. 시인의 가슴에 쌓이고 쌓인 서러움이 그러한 결단을 가능케 한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그러한 자신의 결단에 자신감을 가진다. “나의 호소는 비수처럼/태양을 찔러 피흐르게 하였고/나의 념원은 천둥이 되여/잠든 우주를 흔들어 깨우리”라는 화자의 의지는 그러한 자신감의 표현일것이다. 그리고 다시 화자가 선 산정에 되돌아온다.   아, 분단의 절규가 피멍든 창공에 메아리로 솟고 삭이지 못하는 겨레의 한이 여기, 산정의 노을을 피로 끓인다.   이 마지막련은 앞의 시련들에 비해 직설적이다. 시인의 격한 가슴이 터쳐나올 출구를 찾은것이라 하겠는데 상당히 세련된 상징과 비유로 흐르던 정서가 결구부분에 와서 직설로 표현됨으로써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시의 흐름에는 큰 영향이 없는것 같다. 이 작품은 해외에 사는 단군의 후예라는 립장에서 민족분단의 상황을 아파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세련되고 때로는 원색적이고 충격적이기도 한 비유와 상징들은 시의 기품을 한결 돋워준다. 김철시인으로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시단의 한 력작임에 틀림없다.   5. 시적 의미의 다중성   형식적측면에서 2000년대 김철의 시는 상당정도 전날의 특징들을 이어오고있으나 갈고 닦은 흔적들이 사라지고 좀더 솔직담백하며 성숙되고 달관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특히 시적상관물의 의미층이 보다 두텁고 다중성을 띠고있다는 점은 신중국 1세대 시인으로서 특기할만한 변화라 하겠다. 먼저 《깨진 사랑은》의 경우 사랑을 유리에 비유해 깨지면 아프고 다시 맞출수 없다는 리치를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과거 김철시인의 일관된 시작특징을 거의 그대로 이었다고 할수 있다. 《아기는》이라는 작품도 같은 경우가 된다. 아기의 웃음과 울음은 진실한데 “돈에 곯아빠진 순정때문에” 세상은 진짜로 울고 웃지 못한다고 하고는 진실한 아기의 웃음과 울음으로 때묻은 세상을 깨우친다고 했다. 하나의 속성으로 다른 하나의 속성을 비춰서 드러낸것이라 할수 있다. 이런 작품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앞항에서 론의한바 있는 《휴전선은 말이 없다》에서 다음의 표현들은 분단의 아픔과 그 해소 혹은 극복의 의지라는 주제의식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일뿐만아니라 그것 자체로서 의미의 두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많은 추억들이 덕지덕지 쌓여서 봉우리를 이루고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마음에 걸려서 석양도 벌겋게 피를 끓인다   이 6행의 시구에서 표현의 대상은 “봉우리”와 “석양”이다. “하많은 추억들이 덕지덕지 쌓여서 봉우리를 이루”었다함은 저 봉우리에 오랜 력사의 기억이 쌓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의식속에 수많은 력사의 기억이 쌓였다는 사실을 표현한것이 되기도 한다. 석양이 벌겋게 피를 끓인다는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붉은빛의 석양을 보며 피로 얼룩진 력사의 흔적이 화자의 마음속에 떠올라 격한 감정을 유발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유발시킨 장본인은 바로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다. 이는 물론 6.25전쟁으로 비롯된 민족분단의 력사를 두고 말할것이다. 그런데 전반작품의 주제를 떠나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적표현 혹은 상관물은 좀더 많은 련상을 가능케 한다. 이를 우리는 시적의미의 다중성이라 볼수가 있을것이다. 《뿌리》라는 작품은 좀더 복잡한 의미망을 형성하고있다. 일차적으로 “뿌리”는 나무의 뿌리를 지칭한것 같다. 땅에 살면서도 땅위의 가지와 잎과 열매를 사랑하는 마음은 계절도 없고 야심도 사욕도 없다고 했다. 나무뿌리의 속성이다. 2차적으로 뿌리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를 상징한것처럼 보인다. “거치른 광야에 자식을 세워놓고”나 “실성한 바람같은 무심한 세월/빨강꽃 노랑꽃 사랑이 주렁질 때”라는 표현들에서 우리는 상관물의 등가관계를 짐작할수 있다. 즉 나무뿌리의 가지와 잎, 열매에 대한 사심없는 사랑과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련관시켜 표현하고있는데 이때 생기는 의미는 당연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초월한다. 상징과 비유의 속성에 의해 의미의 다중성이 만들어지기때문이다. 《락수물》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다중성이 좀더 확대된다. 시적상관물의 불확실성때문이다.   한밤중, 나는 락수물소리 들으며, 저 사나운 바다를 생각한다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이루는 데모의 바다, 그 엄청난 함성을 듣는다   강자를 만드는 락수물 짙푸른 바다의 효용 죽음에 도전하는 그 무서운 밤!   하-얗게 표백된 나의 꿈이 바다가 백사장에 슬픔으로 깔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저 몸부림 벌겋게 달아오른 갈증이 지구의 여윈 몸을 달군다   락수물은 그리움의 변주곡인지도 몰라 퍼렇게 멍든 내 가슴에 쬐고만 구멍 하나를 판다   이 작품에서는 시적상관물이 락수물과 물의 최후의 귀속처인 바다로 이루어졌다. 같은 물이면서도 그 속성이 뚜렷한 차이를 가지는것이 락수물과 바다이다. 문제는 이 두 시적상관물이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층을 이룬다는데 있다. 그래서 시는 난해해진다. 첫련에서 화자는 락수물을 보며 바다를 생각하며 바다는 또 “데모의 바다”와 등치된다. 그리고 제 2련에 오면 락수물과 바다물 각각의 속성이 다른 힘이 부각되며 거기에 세상사의 흐름이라는 의미가 암시적으로 나타난다. 제 3련에서는 바다라는 시적상관물이 화자 개인의 삶에 련관된다. 그런데 그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화자의 바래진 꿈과 강력한 욕구가 겹쳐지면서 제3의 의미층을 이룬다. 다시 마지막련에 이르면 락수물에 되돌아와 연약하지만 끈질긴 힘을 가진 락수물의 속성이 화자개인의 운명에 관련되면서 또다른 의미층을 만들어낸다. 비록 락수물과 바다물이라는 관련성을 가지면서도 속성이 판이한 두 시적상관물이 화자의 삶에 비유되면서도 결과적으로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있기때문에 미완의 작품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지만 바로 그렇기때문에 열려진 공간이 형성되여 독자의 상상이 개입될 여지가 생성되며 이때문에 오히려 의미의 다중성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산사》라는 작품은 시적상관물이 단순하다.   오늘은 장날인가봐 개미들이 줄지어 장보러 가는 구멍빠진 퇴마루에서 봄볕이 잠간 놀다간 뒤 잠을 깬 풍경이 뫼바람에 왈랑절랑 수선을 피우면 면벽한 스님은 깜빡 졸다가 나무아미타불 헛갈린 념불에 다람쥐 깜짝 놀라 정적 하나 물고 달아나는 산사의 하오   보는바와 같이 별로 새로울것도 놀랄것도 없는 어느 산사 하오의 풍경이 엷은 수사적인 옷을 입고 담백하게 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으며 의미의 다중성을 느낄수 있는것은 상관되는 주제의식이 분명하지 않기때문이다. 즉 여기에 그려진 이미지들과 이런 이미지들이 모이면서 이루어진 어떤 경지 모두가 열려있다는 말이 된다. 이제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질수밖에 없다. 의미의 다중성이 가능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요컨대 2000년대 김철의 시는 시인이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기발한 착상과 세련된 언어를 통한 철학적 의미의 창출이라는 시작특성을 이어오면서도 젊은 시절의 시작품들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조각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좀더 솔직담백하며 때로는 원색적이기까지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게다가 시적상관물의 불확실성을 통해 의미의 다중성도 획득하고있어 로시인의 달관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5. 끝내면서   2000년대 김철시인의 작품들은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삶의 허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허무에 직면하여 때로 거부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결국 겸허히 수용하며 고향과 추억과 사랑, 즉 추억속의 아름다운 고향과 아직도 끈질기게 지켜가는 사랑의 의지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것처럼 보인다. 이는 로시인의 삶의 지혜인 동시에 달관의 경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 대한 불만과 비판, 특히 민족분단의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사명의식 또한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한 노력이라 볼수도 있을것이다.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뿐만아니라 시작의 형식적측면에서도 로년기의 김철시인은 전날의 일관된 풍격을 이어오면서 동시에 그에 만족하지 않고 시적상관물의 불확실성을 통해 의미의 다중성을 꾀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하지 않을수 없다.   * 에 게재한 글입니다.
8014    중국조선족시인 조광명 篇 댓글:  조회:325  추천:0  2024-08-29
조광명 시인 장르적인 경계 깨기- 조광명특집 평론/장춘식 2013년 09월 29일 15시 45분   작성자: 경은 장르적인 경계 깨기 ―조광명특집 평론                 장춘식   신중국의 조선족문학사에서 대개는 매 10년에 한번씩 새 세대의 작가들이 출현하여 활동하면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고있는데 수적으로 1960년대와 1990년대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적은편이다. 1960년대 작가군의 빈약함은 당연히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동란이 조성한것이지만 1990년대작가들의 수적인 빈약은 무엇때문일까? 흔히 1980년대말의 정치적인 상황과 1990년대초반의 하해(下海)붐을 든다. 일리 있는 말이다. 문학이라는 직업의 정치적인 위험부담과 돈이라는 물질적인 매력이 어울리면서 이른바 1990년대 “기문종상(棄文從商)”의 현상을 초래한것이다. 기성문인들의 기문종상은 자연히 신세대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쳐 이 시기 우리 문학인구의 절대적인 빈약함을 초래한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이 시기 몇명의 문학에 투신한 집요한 문사들이 있으니 조광명은 바로 이들중의 한명이다. 한편 수적인 빈약함도 원인이 되겠지만 어쨌든 이 세대 작가들의 문학이 지금까지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온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끈질기게 문학을 생명처럼 여기며 정진해왔다. 조광명이 바로 그렇다. 조광명에게 있어 문학의 장르는 일종의 자기표현의 도구일뿐이다. 그는 시, 소설, 수필 등 장르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표현해내고있다. 심지어 사진작품과 시, 수필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장르들을 넘나들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그러하다. “바람이여, 사랑이여”는 수필이 분명한데 시로 읽힌다. 그것도 “바람의 둥지”라는 사진작품을 창작하는 전 과정을 거침없이 쏟아낸 시작품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시 2편을 삽입하고있다. 물론 그 “바람의 둥지”라는 문제의 사진작품과 관련된 시작품이다. 수필에서는 조경수로 가두에 심은 아열대수종이 북방의 겨울을 무사히 지나게 하기 위해 나무에 “옷”을 입힌 사실에 대해 조금의 불만을 나타내고는 한류가 닥친 한밤에 카메라를 들고 그 조경수와 관련된 사진작품을 기대하며 거리에 나섰다고 하고는 조경수와 야경과 바람의 이미지를 담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한다. 사진작품창작의 전 과정을 담은셈이다. 가슴 떨리는 격정과 창조의 희열, 예술에 대한 화자의 심취 혹은 무아의 몰입상태는 그것 자체로도 감동적이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화자의, 사진작가의 그 희열과 감동, 격정은 시로 승화되여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겨지고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냥 현상이요 화자의 느낌일뿐이다. 가장 독자의 공명과 감명을 자극하는 부분은 역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어떤 깨달음, 즉 바람에 대한 남다른 인식이다. “바람은, 글쓰기는, 사진찍기는 결국 사랑으로 통하는, 사랑의 자궁안의 잉태와 날개짓인것이다.”라는 결구가 그것이다. 바람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바람의 생리에서 인간의 삶을, 삶의 가장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랑을 발견한것이다. 이는 예술로써만이 가능한, 작품에서 말하는 “믹스”적인 예술, “한데 막 버무린 믹스”로써만 가능한 발견이 아닐까싶다. “벽을 읽다”도 마찬가지로 카메라 렌즈와 더불어 관찰한 세상―벽의 이미지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번의 수필 3편 모두가 세밀한 관찰, 렌즈를 통한 섬세한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화자의 노력이 깃든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앞의 작품이 격정에 넘치는 한편의 서사시라면 “벽을 읽다”는 사소한것에서, 사람들이 흔히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낡은 벽에서 차분한, 섬세한 관찰과 생각을 통해 얻어낸 삶의 지혜, 우주의 원리라 볼수 있겠다. 그리고 “바람이여, 사랑이여”에서 바람을 통해 사랑을 발견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벽을 통해 삶의 경력, 력사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화자는 사진작가의 눈으로 본 벽의 모습, 벽의 이미지를 시로 담아낸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먼저 벽, 그것도 주로는 낡은 벽을 보면서 숙연해진다고 했다. 그 벽에 남겨진 세월의 흔적, 세월의 상처를 보면서 인간의 삶, 삶의 흔적을 련상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벽의 상처”라는 시로 적고있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벽에서 삶의 흔적들, 경력들을 관찰하고 느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느날인가는 그 벽에서 어린애의 락서비슷한 하트모양의 그림을 보고는 사랑을 느끼고 그것을 렌즈에 담아 사진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벽에서 발견한 자연의 흔적들에서 인간의 창조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력사의 중후함과 자연의 창조력에 감탄하며 또다른 시 한편을 쓰기도 한다. 결국 벽에 대한 화자의 집념, “벽의 기억”이라는 시리즈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진작가로서의 집념은 삶에 대한 집념에 다름아닌것이다. 이제 다시 특집의 첫편으로 편집된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것들”에로 되돌아가보자. 이 작품에서 화자는 아름다운 자연의 미와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작품들을 보면서, 그중에서도 김덕수사물놀이패의 공연을 감상하면서 슬퍼지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리고 장 폴로의 모래그림을 통해 그 슬프고 아름다운것의 의미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미라고 했다. 그것을 붙잡아두고 오래오래 혼자 감상할수 있는것이라면 그 아름다움도 사라지고말것이라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름다움은 순간적이고 순간적이기때문에 아름답고 동시에 슬퍼진다는것이다. 조금은 허무주의적인 냄새가 나는것 같지만 화자는 곧 말문을 바꾸어 그 슬픔을 극복할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준다. 즉 아름다움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자연이나 예술은 하나 혹은 한번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만나게 된다는것이다. 그래서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추한것들, 아픈것들, 좌절들, 어려움들은 그렇게 만나는 아름다움이 있기에 극복이 가능하다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렇게 눈물겹도록 아름답지 않은것이라 해도 살아가면서 웃음과 눈물을 자극하는것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껏 웃고 울고나면 삶이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휴대전화로 받은, 후배가 찍은 목련꽃사진을 보면서도 전률과 행복을 느낄수 있는것처럼. 조광명은 어느 한 장르에 연연하지 않는다. 시, 수필, 소설 등 여러 문학장르를 거침없이 넘나들뿐만아니라 심지어 문학이 아닌 예술, 가령 사진작품같은것들도 거침없이 드나들면서 삶의 체험을 표현해낸다. 우리의 삶에 최대한의 의미를 부여하는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의미있는것이기때문이다. 조금의 아쉬움은 감정의 절제와 문장의 정제 측면에서 좀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것이다. 조광명은 사실 80년대후반에 등단한 작가이다. 그리고 제5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여타 작가들, 가령 김혁, 한영남, 등도 비슷한 경우이다. 이들 작가들은 수적인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문단을 굳건히 지켜오고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것처럼 앞으로도 끝까지 집요하게 문단을 지키며 사명을 다하리라 믿는다.   * 에 게재한 글입니다.  
8013    중국조선족시인 김창영 篇 댓글:  조회:217  추천:0  2024-08-29
김창영 시인 서탑의 력사적의미와 시적인 상징성― 김창영의 련작시 "서탑"/장춘식 2012년 05월 15일 21시 03분  작성자: 경은 서탑의 력사적의미와 시적인 상징성 ―김창영의 련작시 《서탑》                                 장춘식   1. 시작하면서   김창영의 시는 우리가 늘 먹는 된장이나 김치와도 같이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 화려한 수사도 별로 없고 모더니즘의 특징이라 할수 있는 난해함도 없다. 그러나 술술 읽히면서 읽고나면 거기에서 뭔가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깊은 의미, 깊은 맛이 느껴진다. 이번에 묶은 시집 《서탑》 련작시 99편은 그의 이러한 소박하면서 깊은 맛을 집대성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100편이 아닌 99편, 많다는 의미가 될것 같기도 하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리해해도 될것이다. 하긴 저 서탑아래 도라지꽃이 피는 한, 즉 조선족의 흔적이 존재하는 한 김창영시인의 시상도 끝나지 않을것이다. 련작시는 우리 시단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김창영의 《서탑》 련작시처럼 방대한 규모의 련작시는 흔치 않다. 석화시인의 련작시 《연변》이 31편으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김창영의 《서탑》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의미있는것은 두 련작시 모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장르적으로 두 련작시는 전례가 없는것이여서 1980년대 리욱, 김철, 김성휘 등의 장편서사시가 하나의 붐을 이루었던것처럼 장르적혁신의 붐을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시인이 관심을 두고있는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시집의 의미와 가치를 살펴본다.   2. 공동체의 정체성 확인 욕구   련작시의 최초발상은 아무래도 조선족의 상징, 이주민의 상징으로서 비롯된것처럼 보인다. 서탑과 서탑거리는 료녕성 특히 심양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는 사실상 연변과 마찬가지로 중국내 전반 조선족의 상징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99편에 달하는 련작시의 거의 반 이상이 민족 정체성의 리해와 확인의 경향을 드러낸다.   1) 기억속의 력사와 그 상징성 시집의 작품에는 기억속의 력사적 흔적들이 많이 나온다. 10여편이 이런 소재를 다루고있다. 가령 3번 작품의 량세봉장군에 대한 기억, 4번과 64번 작품의 조선족의 이민과 벼농사를 통한 정착의 력사적기억, 5번 작품의 새끼골목의 유래, 15번 작품의 백석시인의 기억, 16번 작품의 “봉천국밥집”의 유래 등이 이에 속한다. 15번 작품은 “시인 백석을 그리며”라는 부제를 달고 작품 전체적으로 북관 즉 우리의 이민지인 동북땅에 대한 백석시인의 인상과 느낌을 재현해내는데, 수십년이라는 시간적차이를 두고 하나의 같은 공간속에서 벌어졌던 두 시인의 느낌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력사와 현재의 시간을 하나의 공간속에서 통합시켰다고 보아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그러한 시인의 상상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 력사와 오늘의 삶을 동시에 느낄수 있기때문이다. “류치환의 ‘절도(絶島)’에 답하여”라는 부제목이 붙은 32번 작품에서는 일제강점기 이민시인 류치환의 이민지에 대한 느낌 혹은 정서와 김창영시인의 오늘의 이민지의 느낌을 대조시키고있다. “외로운 絶島”라는 류치환의 만주국치하 동북땅의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에 대해 시인은 “해빛 찬란한 광야의 하루”라는 표현으로 대조시킨다. 력사와 오늘 현실의 시간적거리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수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난후 바뀌여진 정착지의 삶의 양상이 체험적으로 다가온다. 《봉천국밥집》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16번 작품과 “화평구중흥가31번지”라는 부제목이 붙은 39번 작품에서는 조선족이 현재 살고있는 정착지의 력사적인 기억과 상징성이 보다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남편을 항일투쟁에서 잃은 8명의 독립군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개장했다는 “봉천국밥집”의 유래를 특별히 제시한 16번 작품에서는 오늘날 우리 조선족의 정착이 얼마나 뼈아픈 대가를 치렀는지를 기억하게 하며 39번 작품에서는 다시 옛 봉천의 조선인 부호 김창호가 살던 주택을 들어 그러한 력사적기억을 립체적으로 확산시킨다. 이런 기억이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한것은 그것이 우리의 기억, 선조들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속에까지 침투된, 수많은 상징과 암시를 동반한 기억이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논밭을 바라보며”라는 부제목이 달린 4번 작품과 “새끼골목”이라는 부제목의 5번 작품, “북운하 서정”이라는 부제목의 64번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시인의 그러한 인식을 확인할수 있다. 맨주먹으로 강을 넘어 남의 나라 땅에 몸을 맡긴 우리의 부조들은 거의 벼농사기술 한가지로 이땅에 정착할 밑천을 마련했고 그렇게 수많은 피와 땀을 이땅에 뿌리는 동안 몇세대를 걸쳐 오늘에 이르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력사적기억을 끊임없이 더듬어보고 감개무량해한것은 력사적기억 그 자체만에 대한 관심때문은 아닌것 같다. 그러한 력사적기억의 재생에는 항상 오늘의 우리가 엮여지기때문이다.   2) “나”와 “우리” 확인의 콤플렉스 사실 시집 전체적으로 시인 김창영이 서탑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것은 오늘의 우리, 우리라고 표현되는 조선족의 존재감에 대한 확인 콤플렉스라 할수 있을 정도로 이 부분에 해당되는 작품이 량적으로도 많고(20편이 넘는다) 정서적으로도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앞항에서 살펴본 력사적기억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우리” 확인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였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련작의 첫편에서 이점은 벌써 확인된다. “어제밤 꿈속에서 부르던/할아버지가 그리워/이른 새벽 서탑을 찾는다”는 표현은 련작시 전체의 창작동기를 제시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태여나 얼굴조차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너 이놈, 서탑을 가슴에 심거라!”가 “탑아래서 탑의 언어에 귀 기울이다”는 표현과 겹쳐지면서 “나”와 “우리”의 정체성 확인의 욕구를 충분히 드러내고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서탑은 이민민족인 “우리”의 상징으로서 시인의 의식과 정서를 자극하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묘향산 모란봉”(이북땅을 상징)을 거쳐 “한라산”(이남땅을 상징)에 이른다고 한것은 앞의 “현풍할매곰탕집”이라는 식당 이름과 련관시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상호(商號) 명칭이 분명하지만 이를 통해 고국의 산천, 고국땅을 표현하고자 한 시인의 의도 또한 뚜렷하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에서는 “나” 혹은 “우리”를 조선반도에서 이주해 서탑으로 상징되는 중국땅의 정착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공동체로 보고 이를 스스로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이점은 2번 작품에서 “우리”를 가슴에 “하얀 도라지꽃”을 피운 공동체, 즉 고국의 동포와는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점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서탑이 “행인들의 가슴속에 탑으로 우뚝 솟았다가” “거리로 드러누웠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탑이 “드러누웠다”는 표현은 련작시 전체적으로 5-6곳에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의 기교적인 기호와도 관련되겠지만 그 “드러누웠다”는 표현이 “우리”의 정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할 때 거기에는 뜻깊은 상징성이 동반된다. 그리고 이 상징은 련작시 전체적인 상징―서탑=조선족=자랑스런 정착민공동체의 의미를 띠게 된다. 왜 서탑이 시인의 의식속에서 그토록 절실한 의미를 가지고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로서의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진다. 27번 작품에서 시인은 서탑이 “여기에 이렇게 서있음은/서러움인가 자랑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해놓고는 “쪽박차고 압록강 건너야 했던 비운”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서러움이 되겠지만 “다시금 엮어가는 우리네 삶”은 오히려 자랑이 된다고 말한다. 정체성 확인의 한 방법이 될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선문서점”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28번 작품에 오면 고국과의 관련, 혹은 민족적인 정체성을 인정한다. “서탑대랭면점”이라는 부제가 붙은 31번 작품에서는 랭면사랑을 통해 또다시 민족적정체성을 확인한다. “북릉공원놀이”라는 부제목의 42번 작품은 심양의 조선족들이 왜서 북릉공원놀이에 그처럼 애착을 가지는지를 통해 공동체의 자기확인의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43번 작품에서 “백두에 이르는 진달래 꽃길과/한라에 이어지는 무궁화 꽃길이 보인다”는 표현은 우리 공동체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시인의 독특한 감수성의 소산이라 하겠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로서 조선족공동체의 자기확인을 통해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있는바 여기에서 서탑은 항상 그 상징 혹은 가치의 중요한 이미지로서 독자의 정서를 자극한다.   3) 위기 맞아 다지는 마음 그러나 공동체로서의 자부심과 가치의식은 시인에게 있어서도 항상 자신감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도시화를 맞아 분해되는 우리 공동체의 현실앞에서 이런 문제성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러한 위기상황을 맞아 좌절하고 한탄만 하지는 않는다. 서탑의 이미지 혹은 상징에는 그러한 위기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욕, 혹은 자기다짐의 의식들이 다수 드러난다. 그런데 시인의 위기의식은 련작시의 초반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다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점차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도시화시대를 맞아 민족공동체가 맞은 위기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있음을 말해준다. 가령 34번 작품에서 시인은 위기의식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내고있다. 그것도 “오랜세월 삼복 폭염아래/탑이 열병을 앓는다”는 표현에서 볼수 있듯이 최근의 위기만이 아닌, 조선족이 겪어온 시련과 고난의 전 과정을 포함하고있는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오늘의 위기도 물론 포함될것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시련, 위기의 극복을 “흐린날 뼈속에 스며든 랭기를 삭히는 일”로 보고 “가린것 하나 없이 온몸 내맡기고/열받아 깡그리 녹아내렸다가/이 땅에 다시 일어서는것”이라 락관한다. 이런 시인의 락관에는 이민과 정착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우리의 력사적저정이 바탕이 되였을것이다. 37번 작품에서도 시인의 락관적인 정서에는 과거 백수십년의 력사적경력이 바탕에 깔려있지만 미래의 불투명성에 대한 시인의 걱정은 조금 깊어진것처럼 보인다. “시작이 보이지 않는것처럼/끝도 없을거야”라는 첫 2행이 은유하는것은 과거의 시련보다는 현재의 위기의식이다. 그러나 시인이 다지는 마음은 여전히 락관적이다. “보이지 않는 끝은/더 높이 솟아/보일 때까지 더 솟는것이야”라는 마지막 련의 표현이 그렇다. 물론 이런 시인의 락관은 “뒤돌아보면/지금 뒤돌아보이는것까지가/참으로 소중한거야” 라는 표현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상당히 철학적인 자신감, 혹은 강력한 문화적능력이 뒤받침해주고있다. 그리고 40번 작품에서 그러한 위기극복의 다짐과 락관적인 정서는 고조를 이룬다. 비록 “떠나야 했던 걸음에/서러움 있었을망정” 즉 이민의 출발과 과정에는 고난과 시련, 그리고 그로 인한 서러움이 있었지만 “저 끝간데 없는 벌판에 피여난/복된 벼꽃파도”처럼 “저 서탑가에 정다운/‘나의 살던 고향’ 가락”처럼 이제 서러움은, 적어도 과거의 서러움은 아니며 “해빛고운 날 날마다/해빛처럼 살 일이다/여기서 고향처럼 살 일이다” 라는 표현에서 보는것처럼 우리의 삶, 공동체의 삶은 궁극적으로 락관적이라는 시인의 정서,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50번 작품도 비슷한 정서를 드러낸다. “따스한 봄바람뿐이였다면 오늘의 이 모습/하늘아래 당당히 자랑할수 있었을가”는 오늘날 시인의 락관주의의 원인이 될것이고 “인제 또 언제까지 오늘까지 온것처럼/그냥 이대로 이럴수밖에 없을지 모르는거야”에서는 미래 공동체 운명의 불투명성에 대한 걱정과 반드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고있다. 그리고 67번 작품에서는 다시 한번 “꽃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일이다” 라는 마지막 시행이 의미하는것처럼 서러움 딛고 굳건히, 끈질기게 그리고 락관적으로 살아가려는 공동체의 의지가 시인의 정서에 녹아있다. 김창영에게 있어 서탑은 시련을 이겨낸 “우리”이고 “드러누운” 서탑은 이민지에 정착하고 뿌리내려 해빛처럼 밝게, 꽃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조선족공동체의 다른 표현이다. 비록 도시화시대를 맞아 공동체의 분해라는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있는 서탑처럼 조선족공동체 또한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것이라는것, 그리고 이런 끈기와 힘은 백수십년 시련과 고난의 력사적과정을 거쳐 형성된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결성시킨 문화적, 생활적 능력이라는 점, 이것이 김창영시인이 축조한 서탑의 상징성 혹은 이미지의 내포가 될것이다.   3. 돌아갈길 없는자의 서러움―향수   다시 돌아갈수 없는 혹은 돌아갈길 없는 고향, 이는 이민기 우리 시인들의 중요한 정서적표현이였다. 이제 이민의 제3, 제4 심지어 제5 세가 우리 민족공동체의 주류가 된 상황에서도 이러한 고향상실의 서러움 혹은 향수는 여전히 무거운 삶의 짐이 되고있다. 디아스포라의 공통된 체험이요 정서라 하겠다.   1) 망향과 향수의 처절함 “바다물이 마를가/그리움은 끝없어라”로 시작되는 20번 작품은 그리움을 그냥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있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이 탑으로 굳어졌다는 표현은 그 상징적인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 개인적인 소망을 공동체의 소망으로 승화시키고있기때문이다. 특히 “내 간절한 소망은 탑으로 굳어지고”에서 굳어졌다는 표현은 소망의 간절함을 충분히 드러냈다 하겠다. 그렇다면 이처럼 간절한 소망은 무엇이며 또 왜 그토록 간절할까? 상기 작품의 마지막 련에 나오는 “아득한 수평선 우러러/눈 먼 마음 어찌할거나?”에서도 대개는 그 소망이 고국에 대한, 혹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너무 추상적이여서 그냥 “짐작”할수 있을뿐이다. 그러나 21번 작품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고국에 대한, 고향에 대한 망향 혹은 향수의 정서가 구체화되고있을뿐만아니라 대를 이어 유전되는 그리움을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가고프다”와 “보고싶다”에서 화자 세대의 “그립다”로, 다시 “예서 태여나 자란 내 아들은/말없는 탑과 탑너머 저쪽산을/아버지처럼 나처럼 기억이나 할까?”라는 걱정까지를 포함한 그리움의 궁극으로 드러내고있다. 그러한 그리움, 향수는 22번과 44번 작품에 이르러 고조를 이룬다. 그리고 왜서 그러한 그리움이 그토록 절실한지를 확인시켜준다. “해와 달이 엇갈아 뜨고 져도/받아주지 않는 야속함에/돌아갈수 없는 아쉬움이 겹쳐” 가슴에 응어리지고 가시마저 끼여있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러움은 력사적으로 응어리진것이다. 44번 작품에서 “서러움 하나는 하찮은것 같아도/내 가슴속 깊은 곳에 종기로 곪고 곪아 터져/닦아도 닦아도 아물길 없”다. 여기서 서러움은 바로 “아직도 남아있다 돌아갈길 없는 서러움이”라는 마지막 행에서 표현된 망향과 향수의 서러움이다. 결국 이것이다. “돌아갈수 없는 아쉬움”, 고국, 고향은 거기 그대로 있지만 세대가 바뀌고 강산마저 바뀌여 돌아갈수 없는 상황, 그것이 이민초기의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돌아갈수 없는 아쉬움”과는 또다른 “돌아갈수 없”음인것이다. 거기에서 서러움을 동반한 절실한 망향과 향수의 정서가 자라고 솟아나는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서러움은 지금까지도 유전되여내려오고있는것이다.   2) 분단의 아픔을 앓는 디아스포라 돌아갈수 없는 고국에 대한, 고향에 대한 정서는 이제 고국과 고향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된다. 24번 작품에서 “탑 이쪽을 저쪽처럼 보고/탑 저쪽을 이쪽처럼 보리”라는 마지막 2행의 표현은 탑의 이쪽과 저쪽을 넌지시 고국땅의 남과 북으로 은유하고 그에 대한 화자의 관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48번 작품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고국의 아픈 현실에 대한 가슴앓이를 드러낸다. “탑이 소근대는 소리를 들으면/온통 겨울이야기 차가움이다”라는 첫 2행의 표현에서 “겨울이야기”는 고국땅의 안타까운 현실, 가령 분단의 현실이나 분단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가지 안타까운 사건, 사실들을 은유할것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그리운 고향소식 듣는것조차 죄되여”라는 중간 2행과 마지막 3행 “고향의 봄바람이 아직도/여기에 불어오지 못하기때문/아득한 기다림이여라!”에서 이를 확인할수 있다. 여기서 특히 “아득한 기다림이여라!”는 마지막 시행은 시작자아가 얼마나 고국의 “봄바람” 혹은 그리운 소식을 기다리고있는지, 말을 바꾸면 얼마나 고국의 통일이나 눈부신 발전을 기대하고있는지를 드러내고있다. 시인의 향수속에 남북분단의 현실이 얼마나 가슴아프게 인각되여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51번 작품이다. 서탑아래서 귀를 기울이면 정답게 속삭이는 조선팔도 말씨, 사투리의 말잔치를 즐겁게 들을수 있고 친구하며 다정하게 지내지만 고국에 가면 서울과 평양, 각각 저들끼리 논다는것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은 “서울 평양 두분 특별 손님 모셔와/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 보여주면 좋을까 몰라”라는 마지막 2행에서 잘 드러난다. 62번 작품에 가면 이런 분단의 아픔에 대한 가슴앓이는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승격된다. “한라에서 백두 가는 길/언제면 열릴까나?”라는 첫 2행의 상징적의미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거니와 시적자아는 남북통일의 위업을 그냥 열망에 그친것이 아니라 “꽃피는 탑의 고향에/한라 백두의 얼” 심고 “금강 설악의 혼 살리자”고 호소한다. “버려진 신세여도/버릴수 없는 그곳”이기때문이며 또 상기 51번 작품에서 확인된 “탑이 낸 길”, “탑의 마음따라”, 즉 남북에 고향을 둔 조선족들이 “친구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 고국의 통일에 힘을 보태겠다는것이다. 물론 조선족공동체가 생존하며 쌓은 지혜가 남북통일에 충분히 귀감이 될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수십년간 얽히고설킨, 얼음처럼 얼고 돌처럼 굳어진 남북의 마음을 깨치고 녹여낼 힘이 우리에게 과연 있는지는 더러 의심되기도 하지만 시적자아의 소원과 열망, 그 소원과 열망의 간절함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겠다. 고국과 고향에 대한 사랑, 그리움의 처절함은 49번 작품에서 다시 확인할수 있다. “아득한 외로움이여/아리랑 열두고개 불러 부르다/목까지 쉬여” 노래가락마저 쉴 정도로 시적자아는 그리움에 몸을 태운다. 그리고 “아지랑이 춤추는 봄날/봄의 노래는/가슴속에 묻어두었다”고 절규한다. 디아스포라의 슬픔이요 한맺힌 외로움이 여기에 있을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내기 어렵겠지만 보수적으로 짐작해도 조선족의 반수 정도가 한국에 다녀왔다고 볼수 있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갈길 없는 서러움” 혹은 최초의 이민으로 유발된 향수병은 기본적으로 해소되였다고 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것은 큰 착각이다. 미처 조상의 고향에 가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백년이상 유전되면서 오늘까지 내려온 “향수병”을 해소하기 위해 다녀온 고향이 사실상 상상속의 고향이 아니기때문이다. 고국도 변했지만 우리도 변했고 따라서 유전적으로 내려온 “향수병”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될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슬픔이 되고말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측면에서 망향과 향수, 고국의 분단을 아픔으로 앓는 마음은 사실상 조선족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항의 상징성 혹은 이미지 또한 앞항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공동체의 정체성 확인, 혹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확인의 의미가 될것이기때문이다.   4. 탑의 또 다른 이미지―삶의 진리의 상징   지금까지 우리는 서탑의 민족적상징의 문제에 대해 론의해왔다. 비록 련작시의 중심의제 혹은 핵심적인 주제가 공동체의 삶에 대한 관심인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한정된것은 아니다. 시집에서 서탑은 민족적상징의 문제외에도 일부 인류공동의 삶의 문제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이 비록 서탑을 주로 조선족공동체의 상징체계로 인식하고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시인은 조선족공동체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한 인간, 즉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의식을 가진 개체이기도 하기때문이다.   1) 력사의 무게감과 삶의 허무 그리고 달관 시인의 이러한 개체적인식 혹은 보편적인 가치는 력사의 무게감과 삶의 허무에 대한 정서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11번 작품에서 화자는 “스님들 떠나고/탑은 말이 없다”고 하고는 “내 눈에 보이는건/빈 하늘뿐”이라 하여 력사의 무게와 삶의 허무의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허무는 공허나 상실감은 아닌것 같다. “내 마음 하늘처럼 비여/바람 한점 일지 않는/호수인양 고요하느니”에서는 삶의 공허나 역사의 허무함이 상실감으로가 아니라 달관적인 세계인식에 이르고자 하는 의식의 방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첫 련을 거의 그대로 중복한듯한 마지막 련의 “이제 더는/탑도 없고/스님도 없어라” 라는 표현은 허무의식이 또다시 강화되면서 이른바 우주적인 괴로움을 드러내고있다. 이러한 허무의식이 불교적세계관과 닿게된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14번 작품에서 이점은 잘 드러난다. “비우고서 있는듯 없는듯/서있는 일/누운듯이 서있는 일”이라는 마지막 3행의 표현은 “심즉공”이나 “시즉공”처럼 비움과 무위를 추구하는 불교적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것이 “탑에서 눈길 거두고/마음에서 탑을 비우는 일이란/탑의 그 공간에/나를 세우는 것이다”라는 첫 4행의 의미와 서로 호응하여 집착을 버려야 무위정적(無爲靜寂)에 이를수 있다는 불교적가치, 어쩌면 달관의 경지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보여준것이라 할수도 있다. 25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시인의 인식이 인간의 인식의 한계, 인간관계의 측면에까지 확대된다. 마음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읽지 않는다면 대상을 보지도, 읽지도 못할것이거니와 대상의 뒤켠에서 대상의 마음을 읽는 다른 마음이 있다는것은 더구나 알지 못한다는것, 그 마음의 눈이란 바로 무위나 달관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시인의 달관에 대한 인식, 삶에 대한 가치추구는 33번과 35번 작품에서도 불교적인 가치관과 겹쳐지면서 어떤 깨달음, “돈오(頓悟)”의 경지를 드러낸다. 33번 작품의 “미미한것 하나 하나도/해빛같은 귀중한 존재임을/조용히 일깨운다” 라는 표현에서 읽을수 있고 35번 작품에서는 “내 생각의 천만갈래 길들이 알고보니/내가 걸은 그 단 한갈래로 이어진것을”이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상징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런 시인의 인식은 “탑”과 항상 련관성을 가진다. “그곳 내 생각의 끝마다에/탑 하나씩 서있을까?”가 그렇다. 달관에 이르고자 하는 시인의 집착 혹은 명상은 38번 작품에 이르러 다시 그 경지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준다. “눈뜨고 하늘 올려다보면/참으로 높아보이나/눈감고 느끼면 내 손/하늘에 닿아있는것처럼”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마음의 눈”의 법칙을 재확인하고있고 “탑도 없고 하늘도 없고/나도 없어라” 라는 마지막 2행의 표현은 인간이 무에서 왔다가 무에로 되돌아가는 세상의 섭리를 상징할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내 서탑가를 거닐다가 잠간 멈춰서서/그대 우러러 생각한것은/그대 딛고 선 이 땅의 기운과 하나되여/머리우 하늘에 닿아 마침내” 라는 불교적 명상을 통해 얻어진것처럼 보인다. 56번 작품에서 “언제 또 허물어지는 일 있더라도/리유도 묻지 말고 서러워도 말자/눈감고 생각마저 비우고/나마저 있는듯 없는듯, 또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첫 련의 상징성은 여전히 “공(空)”이라는 불교적세계관과 닿아있다. 결국 시인은 비움, 무위 등 불교적인 가치를 통해 달관의 경지를 실현할수 있다고 인식하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탑의 묵묵부동에서, 탑의 불교적의미에서 명상을 통해 얻어진것처럼 보인다.   2) 일상탈출의 욕구 “공”이나 “무위”에 대한 가치인식에도 불구하고 현대문명의 끊임없는 유혹은 쉽사리 떨쳐버릴수 없는 모양이다. 물론 현대인의 삶은 문명의 추구와 탈출의 욕구라는 두가지 서로 모순된 정서를 배태하고있다는 사실을 상기살 때 이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17번 작품에서 밤과 낮이 바뀐 현대인의 삶은 상당정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표현되고있다. “낮달이 눈물을 떨군다” 라는 표현이 그러한 시적자아의 정서를 대변해준다. 그리고 19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문명비판의 정서가 일상탈출의 욕구와 비움과 무위에의 추구로 비약한다. 여기서 “가끔은 이사하는 생각을 가져본다”는것은 일상탈출 즉 현대문명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낸것이 분명하다. 흔히 이런 류형의 일상탈출의 욕구는 그냥 욕구에 그치거나 잠시적인 일탈의 욕구로 변질하기도 하지만 김창영시인의 일상탈출은 “빈 공간 빈 터 찾아” “이사길에 버리고 버려/말끔히 비여서 마침내 가벼워진 마음”이라는 표현에서 확인할수 있는것처럼 “자기비움” 혹은 “무위”의 경지를 가상목표로 한다. “내 터는 따로 없다”는것은 속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경지가 되기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이 애초에 정해놓은듯한 경지와는 달리 현대의 문명은 끊임없이 시인을 유혹한다. 46번 작품에서 “과욕이 한껏 부풀은 내 마음”이나 88번 작품에서 “무엇엔가 자주 흔들리는 내”가 그렇다. 그러나 화자의 이러한 세속적인 욕구, 현대문명의 대표적인 욕구인 물질에 대한 유혹은 동시에 탑의 “주어진 고만한것에 참으로 만족하는” “당당한 너의 모습”에 의해 제어되고 억제된다. “이제라도 값 따지지 말고 저당잡혀야 겠다”는 마음다짐이나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흔들릴 때까지 흔들리기로 한다” 라는 자기 검증은 그러한 시인의 의지를 대변할것이다. 그러니까 김창영시인에게 있어 서탑은 공동체의 상징으로서만이 아니라, 탑이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로서도 중요한 시적인 상관물이 된다는 말이 되겠는데, 여기서 비움이나 무위라는 불교적인 가치관은 시인이 달관에 대한 인식을 대표하는 경지가 될것이다.   6. 마무리   전체적으로 김창영의 《서탑》 련작시에서 서탑은 우리의 선조들과 우리 자신들마저 포함한 이주민을 상징한다. 이주민의 력사적기억, 돌아갈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 심지어 일상의 탈출욕구와 우주적외로움마저 탑은 받아준다. 서탑의 상징적인 의미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도 하고 자랑스럽게도 하며 때로는 슬프게도 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99편의 시작품을 여러해를 두고 쓰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인의 립장이나 주제의식은 거의 변화가 없다. 이 시들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오랜 세월 시인의 의식속에서 발효되다가 련작시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수가 있다. 하지만 무르익은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시를 쓰면서 더러 의식의 변화가 있음직하기도 한데 너무 변화가 없다는것은 오히려 약점이 될수도 있다. 혹 력사의 무게를 담아내겠다는 시인의 강박의식이 주제의식의 변화를 제약한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더러 여유를 가지고 좀더 가벼워진 마음, 열린 마음으로 서탑의 새 력사를 쓸수는 없을까 기대해본다. 본고의 서두에서 김창영의 시는 된장이나 김치처럼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소박하다는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단순하다는 표현도 가능하여 약점이 될수도 있다. 화려함에 흔히 동반되는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제거했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지만 현대시의 많은 표현기교들이 결여되여있다는 측면에서는 약점이 될수도 있는것이다. 현대시의 핵심적인 특징은 이미지의 전략적인 사용이다. 리성적인 주제발굴로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창조적의미들이 시인의 감성을 통해 시인자신마저 감지하지 못하는 중에 드러날수 있는것이 바로 이미지즘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기교라는것은 필수라기보다 선택의 문제가 되지만 오늘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는 의미에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에 게재한 글입니다.
8012    중국조선족시인 김견 篇 댓글:  조회:178  추천:0  2024-08-29
강- 연길시 방송국에서 편집사업을 했었고, 시창작과 번역도 많이 했던 고 김견시인의 시 “게”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게            김견   천지 창조 6일째 바닷가에서 유유히 게 낚시를 즐기고 있는 신, 낚시에 걸린 큰 놈, 작은놈, 검둥이, 민둥이, 털복숭이…게들이 육속 구럭에 담겨지고…허리를 넘쳐 배부를법도 하건만, 아직 성차지 않는지 하늘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게구럭, 지나가다 구럭속을 들여다보고 갸우뚱하고 지껄이는 갈매기, “꽤 많이 낚으셨네요 근데 왜 뚜껑을 다지, 저러다 다 기여나와 도망가겠어요” “허허, 걱정없다, 한놈도 빠져나가지 못할것이니” 여유만만 부표만 지켜보는 신의 옆얼굴을 쳐다보다 말고 다시금 구럭속을 한참 갸웃거리다 이윽고 신의 말씀을 알만하다는듯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날아오르는 갈매기, 하늘 가득 하얗게 울려퍼지는 갈매기의 웃음소리…구럭속에서는 밀고, 당기고, 물고, 늘어지는 동생공사의 사투가 한창이다.   림금산-해설: 지금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할때 제6일째 각종 동물과 새와 물고기 등을 만들었다고 자료에 나옵니다. 아마 그래서 6일째라는 말을 꺼낸것 같습니다. 시인은 성경의 창세기부분을 읽은것 같습니다. 그런데 관건은 신이 잡아내는 게들이 아무리 도망치자고 해도 도망칠수가 없다고 신은 믿고 있습니다. 왜? 게들은 구럭안에서 저들끼리, 밀고 당기고 물고 늘어지는 동생공사의 사투를 벌리는데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동생공사-함께 살다가 같이 죽는, 사투-죽고사는 싸움. 이 부분이 이 시에서는 관건이고 핵이고 문제의 고리입니다. 즉 구럭속은 결국 속세의 인간들을 말합니다. 누가 올라가면 긁어내리고 누가 더 먹으면 질투 시기하고 결국 너도 못먹고 나도 못먹어야 말이 없습니다. 앞집에서 잘사면 뒤집에서 배아파 하고 누가 잘되면 배아파 견디지 못하는 …그러다가 결국은 너도 못되고 나도 못되는 국면을 초래하고 마는 요즘 욕념이 맣고 시기 질투가 많은 인간들의 병적인 심태를 날카롭게 꼬집었습니다. 이 면에서 이 시는 그 의미가 있겠죠  
8011    중국조선족 시인 김영건 篇 댓글:  조회:307  추천:0  2024-08-29
강- 전 주필을 맡고 있으면서 많은 시들을 창작하고 있는 김영건시인의 시 를 함께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꽃나무        김영건   흰 달이 동천에 올라서면 달속에 계수나무 하얀 뱀 두마리 쪼각배는 구름에 실려 도꾜를 향한다 목마른 섬나라에 눈처럼 흰 사쿠라꽃 피고 그리움의 꽃잎 눈부신 은하강 내려 두만강 별빛으로 젖어흐른다 멀리 저 멀리에서 흘러가는 고운 버선발 둘 선한 눈망울 둘 하늘호수 흰 달 허물며 두 줄기 그리움 맑게 길어 계수나무 붉은 열매로 무르익었다.   강- 이 시에는 뱀 두마리, 버선발 둘 등이 있는데요 무엇을 말할가요? 림금산-네 이 시는 …시인의 사랑하는 안해와 사랑하는 따님은 지금 모두 일본에 갔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환영과 그리움이 또 두만강기슭에 전해옵니다. 여기서 사쿠라꽃은 일본을 상징하고 두만강은 연변 즉 고향을 상징한다고 할수있죠. 고운 버선발 둘이나 선한 눈망울 둘 등은 모두 착하고 수집고 아직 오염도 안되고 순수한 나의 안해 나의 딸의 성품을 잘 그렸습니다. 이런 그들이 국제적인 대도시에서 구경 어떻게 그 복잡다단한 일상을 헤쳐나갈가? 시인은 지금 그게 궁굼하고 그게 근심되는겁니다. 여기서 두 줄기의 그리움은 두 눈길을 말할수도 있고 안해한테 대한 그리움과 따님한테 대한 그리움을 말할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인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는 구절로 안위를 얻고저 합니다. 언어표현이나 이미지나 심히 아름답게 된 시입니다. ============================================== 김영건, 정봉숙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준마상 수상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8월1일    7월 31일, 제13회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준마상 평의심사위원회는 투표표결로 25부의 수상작품과 5명의 번역상을 산생시켰다. 연변작가협회에서 추천한 김영건의 시집 《류신동 산새는 겨울산에서 운다》와 정봉숙의 번역작품 《위씨네 사당(魏氏祠堂)》이 수상의 영예를 지녔다.  제13회 준마상 응모작품은 소수민족작가들이 국가통용언어문자 혹은 소수민족문자로 2020년 1월 1일부터 2023년 12월 31일 사이에 중국대륙지구에서 출판발행한 작품으로 평의선발 표준의 요구에 부합되는 작품들이다. 이번 평의선발에는 장편소설 119부, 중단편소설 65부, 시가 96부, 보고문학 36부, 산문 65부, 번역 11부 도합 392부의 작품이 추천되여 참가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준마상(간칭 준마상)은 1981년에 창립되였는데 중국작가협회, 국가민족사무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매 4년에 한차례씩 평의선발하는 소수민족문학의 국가급 문학상으로 모순문학상, 로신문학상, 전국우수아동문학상과 나란히 중국작가협회의 4대 전국성 문학상에 속하는 문학상이다.  제13회 준마상 수상작품 공모는 2024년 3월 1일에 가동하여 4월 30일에 마감하였으며 초심을 거쳐 381부의 작품과 11명의 번역자 명단을 5월 17일부터 6월 1일까지 《문예보》와 중국작가넷에 공시하였었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8010    중국조선족시인 심예란 篇 댓글:  조회:347  추천:0  2024-08-29
강ㅡ 다년간 전 주당위 재무처에 근무하면서 많은 시들을 창작했고 또 많은 상들을 수상한적 있는 녀류시인 심예란의 시 를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주산알 튕기며        심예란   눈알아 파도야 내 가슴으로 오라 악어의 이발과 기린의 목과 내 등높은 발가락을 매정한 네 혀바닥에 숨겨다오 너를 구워먹어 아픈 내 머리를 잘라내고 시든 꽃향기 맡듯 저문 사랑의 자취를 맡고 싶어라 너의 내장을 꺼내 헹구면 살인은 너무 비싸 차라리 강한 망각에 복종할 일이고 보석은 공포만 끌고 다녀 차라리 구멍뚫린 양말에 키스할일이다 더는 죽음이 아니되게 감로수를 먹일 일이다 너의 회전이 가속될수록 돈은 돈이 아니고 내것은 내것이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니다   강-여기서 주산알은 돈을 상징하는것 같은데요. 이 시를 해설해 주시죠 림금산-네 이 시는 …여기서 주산알을 튕기는건 결국 돈을 계산하는 것이고 돈은 돈만으로 의미가 있지 인생이나 삶과는 별개의 문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오희려 돈이 참인생의 참삶과는 정 반대작용을 놀고있음을 말해주지요. 그래서 시의 마지막부분에 돈은 돈이 아니고 내것은 내것이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니다고 웨칩니다. 결국 돈은 나의 삶의 본질이 아니고 전부는 더구나 아니고 나의 생의 본질이 돈의 지배를 받음으로해서 심히 외곡되고 파괴됨을 쓰고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금전만능을 추구하고 저도 모르게 금전의 노예가 되여 원래는 가치있는 존엄을 돈때문에 가치를 잃어버리게 하는 페단들이 비일비재이지요. 이 면에서 이 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8009    중국조선족시인 김일량 篇 댓글:  조회:306  추천:0  2024-08-29
  감자가 익는 냄새            김일량   나를 맛있게 먹는 방식을 당신은 끝내 찾아냈군요 당신이 지핀 불씨는 내가 맛있게 익기에 너무나 알맞습니다   언젠가는 누구에게 꼭 먹히여야 하는것이 나의 숙명인것을   당신의 기특한 솜씨에 나는 행복하게 익으며 당신의 그 혀끝으로 꿀처럼 감겨들어 뼈까지 주물러 주려고 하얀 속살을 번져가며 원시적인 날것을 향기로 익혀갑니다   강-김일량 시인은 농민시인으로 정지용문학상 등 많은 상들을 탄걸로 알고있는데요 그리고 58년도 생이구요 안도현 량병태에 살고있죠? 림금산-네 그렇습니다. 구체적인 프로필은 시간상관계로 략하고 그의 시들을 살펴봅시다 이 시는 나의 순수와 당신의 나를 다스리는 솜씨, 그 기특함을 쓰고있습니다. 나는 숙명적으로 당신한테 먹히일 존재입니다. 또 먹히우길 원합니다. 더욱 향기롭게 당신한테 먹히우길 바랍니다. 솔직하고 순수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나를 솜씨있게 다루고 나를 맛있게 먹을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원시적인 순한 거칠은 착한 나를 즉 날것을 향기로 익혀갑니다. 날것—생것 가공을 거치지 않은것. 여기서 당신은 나를 먹는 사람을 말하고 나는 결국 불에 익혀지는 감자인데 감자를 의인화하여 결국 먹히움을 당하는 측을 말합니다. 부부간의 조화로움을 말했다고도 할수 있고 어떤 남녀지간의 사랑의 이치를 말한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읽는 이에 따라 그 해석이 조금씩 다르겠죠. 참 읽기에 재미다분한 그런 시입니다.
8008    중국조선족 시인 석화 篇 댓글:  조회:634  추천:0  2024-08-24
석화 련작시 연변(허동식/중역)   延边(一) --天地花与长白山   初春时节 金达莱全然不顾 因被方言叫做天地花 略显土里土气的境遇 在满山遍野傲然盛开   翻耕望不到尽头的垄沟 可犁出瓦片和古老传说 名叫龙井的轱辘井边 棵棵柳树依然是翠绿 爷爷奶奶在北山 也在我们的心底 如座座山冈安息已久 阳光绚烂的学校里 传来琅琅的读书声   长白山依旧高昂着头 图们江依旧情满意深 这就是延边 是我们的家乡 是我们的乐园     延边(二) ----音界   火车驶过此地 鸣响汉语里的呜呜之音 又鸣响朝鲜语里的嘣嘣之音 风儿吹过此地 奏出汉语里的呼呼之音 又奏出朝鲜语里的嘙咙咙之音   鸟雀飞过此地 啼鸣韩国歌朝鲜歌延边歌 又啼鸣大陆歌港台流行歌   当绵延丘陵下的河沟里 垂临夜幕之时 已故的朝鲜族汉族阴灵们 重聚一地在亲切交谈 只是他们能听懂的混杂言语   春来此地 集于大街小巷的一切音符 如六月斑斓花海的合成色 汇流一江激荡之水 奔流前进 颇为壮观   延边(三) ---延边阿主妈   在延边叫已婚妇女为阿主妈 其实阿主妈为婆姨的变型词 阿意指为小孩 主妈意指为袋子 我自认为:阿主妈是复合词 其语意是已有孩子了的妇女 要想知道这想法对还是不对 得问韩国语博士廉光浩先生 可不管怎么说 在延边被叫做阿主妈的人普遍为孩儿之母 过去她们身穿不分前后的日式松紧大筒裤 脚穿船型白色胶鞋 整年正月整日地忙于生计 如今她们的发型变得甚是五花八门 可在我来看 不管如何细细地观察 在延边阿主妈们依旧是头顶着半边天 每天日月依次升落 暗示世间阴阳分明 可延边的阿主妈们至今毅然拒绝着 艰辛生活中的男女之别 听说二元世界里竟然存在 如此之特别而研究其因的一个学者 已熬白了双鬓还没理出个 延边阿主妈现象里的头绪   延边阿主妈毕竟是延边之现象 所以我在自想: 或许延边阿主妈她们 申请类似于著名人类现象什么的 也可以吧   延边(四) ----路人   有人说延边在延吉 有人说延边在韩国首尔九老工团站或是在水源市附近 这都是不知情的人闹出的笑话 知情人都知道: 延边始于 手牵着黄牛腰挂着水瓢到来的 一帮白衣人艰辛移民史 可因这个缘故在文化大革命时 我们的朱德海爷爷挨过整批 若干年之后 在延吉的西市场叫卖野葱和小白菜开始 延边人在长春火车站之前胡同里稍有了名气 之后延边人在北京上海等全国大城市里 织出了如冷面丝一般纵横复杂的景象 如今延边人平生第一次乘坐飞机或海轮 开始去韩国在工地在饭馆打工 不过这些都是不足挂齿的距离 因为更多的延边人已东去日本东京 北去俄罗斯哈巴罗斯克 有些人竟去了美国赛班岛 旧金山 还有地球那边的伦敦巴黎等地 谋着自己的幸福生活 所以我敢说:今日地球上的哪个角落 现今都存有延边人的艰难足迹 不管是买了假护照还是利用了跨国假结婚方式 延边人在不择手段地走向着世界各地 阿波罗号神州号升太空的这年代  让我不禁想:今后在月球上也能找到延边人吧!   延边(五) ----打糕之演义   到了高考开始的一日 好像晨光也早来了一些  三五成群的孩子们走进 围墙上贴有白色打糕的 考场大门之后 留守外围的无数人 为考生们在围墙上 贴了打糕的人们 在一日三秋般的等待中 开始煎熬着绷紧了的心 其景象让我不觉想: 战国时的燕国人 送走了荆轲之后 其心情不过也是如此的吧! 我身后的一人 一直不停地自言自语 --考上吧 考上 一定要考上 回头看发现: 竟是一位耄耋老人   延边(六) ----保险丝简介   无论是冰箱还是微波炉 无论是电视机还是音响 够得上家电的 都配有保险丝 像是人体的某个部位 大人小孩都要感些羞意的器官 隐藏于家电内没人注意的一角落 只因空气不畅通而难免呼吸困难 只因没有光线照进而难拒失明之意 可每根保险丝必然都是殉道人 只为了履行于一瞬间的职责 有了电压或电流之剧变 便把自身烧成黑色灰烬 而保护着各种家电的正常运行 我知道 保险丝不只是存在于各种家电内 看到冰箱电视机依然正常工作 向物尽其用的最后时刻日夜行进 我更能知道 有了敏感的天性而勇于献身的保险丝 不只是存在于家电一类的器物内   延边(七) ----苹果梨   叫不上是苹果 也叫不上是梨子的一种果子 在树上开花结果已是很久了 长白之丰脉从天际疾奔下来 到一个名叫帽儿的地方忽而隆起之后 在其四周缓缓山坡上 出现了广阔的万亩果园 叫不上是苹果 也叫不上是梨子的一种果子 在树上开花结果已是很久了 吸进黑土地的滋养 纳进阳光中的精气 春季里绽出白云之景 夏季里泛出绿海之意 9月里, 当海蓝江畔迎来金秋之时 叫不上是苹果 也叫不上是梨子的一种果子 开始显耀着粒粒的丰满 尚在我们的植物图鉴里 尚在我们的言语里 没有丝毫陌生感的 叫不上是苹果 也叫不上是梨子的一种果子 是延边的苹果梨 她制造鲜甜和清新已是很久了     延边(八) ----桔梗谣新章    道拉吉 道拉吉 道拉吉 深山密林中的白色桔梗 到延吉摇身一变成了彩色桔梗   被装于胡条枝编制的箩筐里 附带些乡下的碎土和干草叶 进出东市场西市场是新一章     被刀石水泡了一夜装扮出洁白身子 出入景喜宫 景福宫 韩式料理馆是新二章   被辣酱豆酱酱油醋受尽洗礼是新四章 被生拌油煎爆炒是新五章   被流入灰暗胡同边的练歌房 至半夜只是哼出无词的音乐 不熟悉朝鲜语的汉族朋友们 也唱起了 倒垃圾 倒垃圾是新六章   我不想知道拉吉还是倒垃圾的发音准确 我只知道深山密林中的道拉吉是白色道拉吉 在延吉街道上是彩色道拉吉也是倒垃圾   延边(九) ----在空旷田野   锋利之镰刀 收割了金黄色稻穗之后 在空旷稻田 只见连根带茎的杂乱   稻谷脱皮成米 米粒煮熟成饭 米饭供上饭桌 或然是一过程 可我清晰梦见 留守田野的无数稻根 在紧紧相拥互道安慰 的凄凉 也清晰梦见 一阵无情之风 掠过空旷田野 他走远方的无奈     延边(十) ---- 一日   像是等候久违的恋人 我在等候雪天的来临   去年的春夏蒸腾之季节里 飘然升至苍茫之空的水汽 和跟随了其影的我之梦幻 在万里高空遇上了冷空气 凝结为六角形的片片纯白 必将归宿于 父亲坚韧肩膀般的山岭 父亲宽厚脊背般的原野 不将温暖覆 漫长血脉般的曲曲河谷 日见人迹稀少的村落 缺了打理的荒芜墓地   像是等候久违的恋人 我在等候雪天的来临 天气节目终于喜报 名副北国之天候的一日 我只等候天地间的银白传说   延边(十一) ----写在珲春防川   大海啊 大海 我沿着疾走千里之路 欣然投奔你的图们江 来到了防川 可为什么 像是悬挂树梢上的破旧纸张 我脚踏梦园却难行于寸步? 只让风儿吹翻着我之眷念? 为什么 空望着咫尺之前的招手和呼唤 只让我之眷念折射出白色盐泽? 为什么 在明阳之下倍显阴冷的铁丝网 依然阻挡着我与你的相会? 只让无尽苦涩充满于肝胆? 大海啊 大海 你就在我之前方 依然翻涌着迷人的晶蓝     延边(十二) ----晨吟处容歌   清晨起床时发现: 鸭绒枕边掉有几根发丝 我不知将已离了身子的归结于自身 是合理还是合情 可我眼前开始浮起 去年冬季领略过的 忠清南道扶余古兰寺 和落花岩 还有白马江之景色 三千宫女的裙袂也影印于枕边 又是迷乱着我之眼神 百济早亡不知其去向 曾并百济的新罗也已无了踪迹 高句丽的大大小小的陵墓 也留在了北国的茫茫雪原 可昨夜还附于我身上的发丝 竟如碎落的梦幻闪发着灰暗   虽知月夜已逝 可我不禁在吟: 原归我 你夺走 我能奈何   延边(十三) ----年夜   1 瞬息之间  洪荒的惊涛骇浪吞没了近岸上的一切 收看东南亚海啸惨剧之后 我关了电视   2 关了电视 灭了屋灯 我感到帽儿山已经默然走近了我 在窥探放走了光亮的屋内之安逸 为解除一年的辛劳 卧榻邀情睡眠的我 恍然之间感悟到: 我们以何种言语也 无法向给我们安顿了 天伦人伦之空间的 祖辈和父辈 表示内心深处的感激之情   3 年夜如此深深沉沉 伸直腿脚入眠如此幸幸福福     延边(十四) ----种子   撒播决然不同于丢弃 她不在我们之视域内 可我们无可否认 他们在黑暗之中 毅然养育着梦幻 霜雪盈满于天地间 可我们无可拒绝自然之行进   云朵终将要化为甘露降落 小花终将要结出丰实之果 在时空之轨与道上 千年只是一瞬而已 谁敢戏说照敖东城残桓断壁的月光 之前和今夜有何不同?   延边(十五) ---敦化   深夜里 鸣了一声汽笛音之后 列车缓缓驶入敦化站 我坐的卧铺车厢里 亮醒着很多双白眼 在穿走过道准备下车的我之一侧 演绎着如来佛的一串念珠之显现 卸放了我之后 列车又是大叹一声 渐然消逝于黑暗中   每当为了探访渤海国 来到敦化站下火车时 我能感到: 直到天亮 列车还疾奔在我之心管里 鸣响着莫名和茫然之悲怆   延边(十六) ----是非    敢以指 是为是 非为非 所以守护村口的长僧像 之鼻子被打歪了一些   不敢指 是为是 非为非 所以墙外的排水口 整日在发出着不畅通之咕噜音   敢是意 是为非 非为是 所以瘦骨嶙峋的一只土狗 竟在丧家之门前狂吠不止   敢是伪 这是那 那是这 所以一阵微风 也在肆意驱赶着云儿   延边(十九) ----IC卡   你不能再言语了 因为金额之所限 已是不能言语的时候了 我很是喜欢你 是因为视着你之残相 能恍然悟省 我生命之一切 不过是一阵注定赠与的缘故 你没有一丝皱纹 也没有一个裂纹 可尽了你之效用 我手中的你 打量你的我 都不能再言语了 按照金额之所限 按照言语之所限 我们都不能再言语了   延边(二十九) ----万病草   称是草 实为一种灌木 开放芬芳醉人的花儿 却仅以拥有一个草名 心满意足 是一则故事而已   在众草不敢望去的高处 在诸树不能生根的高地 让一切变幻之风云 淡然掠过了你身边   无了树之名也无可谓 无了辉煌之开花结果也无可谓 仅以拥有直意了的一草名 便能显出 你对自然之恩泽的敬畏   或许你之心性如此灵验 才得了治万病之意的吧   要寻万病草 得攀上长白山高寒地带     延边(三十) ----七月速写   七月里,雨季过了之后 李子树上的果子已是哺乳期母亲乳头那般大 未曾来得及抹去 开满了白云般的花儿 盛情邀来翩翩之蝴蝶 的春忆 粒粒已奔向着成熟   村里的一新媳妇 抬头贪望着 李子树上散发酸甜的青果 在不觉地舔着自唇   当年栽了李子树的老爷爷 看到这一幕 喜得嘴已笑裂至耳根 挨家挨户地在说: 喜事呀 喜事  十年里没闹过周岁宴的咱们村 来年要添一个人丁了     延边(三十二) ----山梨树   失落了一颗梨 略显茫然的山梨树上 飞来了 一只山雀 于是   山梨树的枝条 在深蓝天空的画布上 重新绘出了柔软弧线 小憩了之后 山雀终将归巢吧 可这时在我看来 山梨树 竟已拂尽了茫然     延边(三十三) ----下山之景   触了一回天 摸了一次空 该是下山的时候了 转身重踏自己的脚印 到了悬崖之边 双脚只寻坚硬之岩石 屏住了呼吸甚为小心 身后的四面风 在飒飒走动 连喊悚然的言语 上山之时 未曾留意过的榛子树胡条树橡子树 下山之时竟发现甚是亲切 这时山下终于出现了一个村落 叫我又见到了炊烟袅袅   延边(三十四) ----盈与亏   去年之末报来冬季 今年之初报来春夏的自然之神 今日在报来秋季   遥远地平线已披满了金色 天空如一泓蓝水 只是往高远离去   我知 盈满天地间的丰饶 是一杯美酒   可我不知 我将是 举在谁之手里的一杯亏空       延边(三十六) ----目前   走在胡同 到了拐弯成大直角之处 松放了握着的同伴之手 与他背对相离的时候 忽感前方是无尽深渊 进而心中响起 一阵恐惧之落音   繁星在酣然 胡同藏有大直角拐弯 是事实       延边(三十六) ------征程中的一棵树   已是谁也说不清 一棵树在何时 自何方 如何来到此地的 细细节节   我们只是心明 她在千万年落叶陈腐为黑土的此地 生根发芽并茁壮成长 最终拥有了该属于他的一个树名   可如今谁也道不明 这棵树将走向何方 只知这棵树还在不停丈量着 属于其下勤劳的蚂蚁群 属于其上喜人的松鼠一家 属于勇敢的秃鹫 也属于一帮人的蓝天之高度 只知这棵树 年年制作着层层年轮之衣 在翻越着遥遥远远的峰岭叠嶂 在行渡着滔滔荡荡的千山万水  
8007    중국조선족 시인 김정호 篇 댓글:  조회:478  추천:0  2024-08-24
김정호시인 중조문 대조                  허동식 梦的足迹                        꿈의 발자취 金正浩                                   김정호 1                          1 我曾是一朵云               나는 한송이 구름이였다   当苍天的梦破碎时           푸른 하늘 꿈이 깨여질 때 我便降落到大地             땅우에 하락되였다 十年                       10년 年年垒起的雪人周围         해마다 만들어놓는 눈사람 주위에 人与兽的脚窝               사람과 짐승의 발자국들이 重叠了黑白不清的照片       흑백이 뒤섞인 사진들을 겹쳐놓았다 我的脚印                   나의 발자욱은 忘却疼痛                   아픔을 잃고 睁着麻木的眼睑             감각을 잃은 눈길을 뜨고 躺着                       누워있다 旁边                       곁에는 是生锈的青春墓碑           녹이 쓴 청춘의 묘비가 서있다   2                           2 白花花的雪花               하얀 눈송이들은 是梨花迷人的梦么           배꽃의 아름다운 꿈이런가 白色的梦中                 흰 꿈속에서 我的笑                     나의 웃음이 飘飘摇摇                   흩날린다 落地雪白雪白似             땅에 하락되는 그것들은 没有价格的香粉             가격을 모를 분가루로 보인다     远处                       멀리 孤独的烟囱                 외롭게 서있는 굴뚝에는 升腾                       흰 연기가 缕缕白雾                   모락모락 피여오른다   3                           3 我这树叶                   나라 나무잎 被大树的咳嗽               아름드리 나무가 기침을 할 때 震落下来                   땅에 떨어진다 随秋风 被                  가을바람에 싣겨 带到安徒生的童话中         아데르쎈 동화속에 잠겨든다 突然                       갑자기 被狗叫声罩住               전해오는 개짖음 소리에 지지눌려 停留在田埂上               밭두렁우에 머무른다     我的心                     나의 마음은 被冻僵的田埂               차디찬 밭두렁우에 깔려 压碎了                     산산 조각나고 在射来的阳光里             내리쬐는 해빛속에 腐烂了                     무더기 거름으로 一堆肥料                   썩어버린다 探出一支新芽               새싹 하나가 哦 好冷                    아 춥다고 부르짖는다 4                          4 醋睡在                     눈사람 광장에서 雪人广场里的脚印           곤하게 잠자던 발자욱들이 醒来了                     깨여난다 醒来穿着皮鞋               두를 신고 狂热地读着                 큰 거리 광상곡을 大街随想曲                 미친듯이 읽는다   我该穿什么样的鞋好呢       나는 무슨 신발을 신어야 할가 脚趾缩进                   낡아빠진 운동화에 破旧的运动鞋               큰 발을 집어넣고 正在踌躇                   주밋거릴 때 远处                       멀리에서 响起了                     종소리가 钟声                       들려온다   5                          5 一轮明月                   휘영청 밝은 달이 漫游天庭                   밤하늘을 노닌다   是哪个猴子在敲锣           어느 원숭이가 꽹과리를 쳐서 山里的动物                 산속의 짐승들더러 纷纷跑过来                 앞을 다투어 뛰쳐나와 赏月                       달구경을 벌리게 하는가   一阵齐唱摇晃夜晚           짐승들 합창소리가 밤하늘을 흔들 때 我这候鸟来个和声吧         나라는 철새는 화음이라도 부르자 我的发声怎么总是           그런데 나의 목소리는 어째서 # 和b                       # 와 b뿐이고 老是跳着跳板               언제나 훌쩍훌쩍 뛰여넘기만 하는걸가   6                                   6 当奔泻的悲愤                       줄기찬 슬픔들이 在山崖                             산벼랑에서 铸成一只长剑时                     검을 벼릴 때 我                                 나는 겨울의 눈을 一摄冬雪                           한웅큼 잡아들고 哭泣了                             슬피 운다   雪被泪水融化了                     적설이 눈물에 녹는다 也带着昨日                         어제날도 녹아버린다 光灿灿的谎言                       빛나는 거짓말도 哭醒后                             울다가 깨여나면 我变作了                           나는 한점의 一星泥土                           흙으로 된다   7                                   7 我是一只小松鼠                     나는 한마리 다람쥐 轻轻地踩着夏天走进深谷             여름을 밟고 산골짜기로 간다 发现有几只白眼                     흰 눈동자들이 将今天的记忆                       오늘의 기억을 冷藏在它的心底                     마음속에 냉장함을 발견한다   一股凉气                           차딘간 공기가 把残忍的回忆                       잔인한 추억들을 吹向                               땀구멍들이 있는 곳으로 所有有毛孔的地方                   보낸다  발산하게 한다   8                                   8 大街阳光的河床上                   거리는 해빛이 있는 강곬이다 流着变色镜                         수많은 선글라스들이 흐른다 我也戴上了一副                     나도 선글라스를 끼지만 可一只镜片有裂纹                   안경알 하나에는 금이 실렸다   我漂流着                           나는  그 흐름속에 부대끼면서 这时我想起了小舟                   작은 쪽배 하나를 생각해본다 想起了卓别林的尖皮鞋             챠플린의 뾰족한 신발도 생각해본다   9                                   9 我怎么光着脚                        나는 왜서 맨발일가 跑到海滩来了                        신발도 없이 바다가로 달려왔을가 是来找伊索的寓言                    이소프의 우화를 찾아온걸가 还是找祖父祖母的故事        할아버지 할머니 야야기를 건질러 온걸가   我奔跑过去                          나는 바다가에서 抓一把闪光的东西                    반짝이는것을 한웅큼 주어든다 可那不是沙金呵                      그것은 싸락금이 아니다 不是                                싸락금이 아니다   这时我的心变成岛屿了                이 시각 나의 마음은 岛屿上空                            섬으로 솟아오르고 섬우의 하늘에는 飞过来一只海燕                       한마리 갈매기가 날아예누나 海燕碧绿碧绿的声音                   푸르른 갈매기 울음소리는 象旗帜般飘飘杨杨                     깃발처럼 나붓기누나   10                                  10 是谁在编排                          그 누가 风与石头的故事                   바람과 돌의 이야기를 제조하는걸가 制作一个又一个梦                    하나하나의 꿈들을 시리즈로 梦的系列片                          제조하느는걸가   我看着看着                     꿈을 제조하는 생산라인을 바라보면서 有些累了                            나는 어딘가 해나른하다 困                                  고달프다   11                                   12 鲁宾逊你把我带到哪儿了          로빈손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온걸가 喧闹的大街                         혼잡한 거리에는 熟人都带了假面具                   익숙한 얼굴들은 탈을 쓰고 있다 没带的全是陌生人      탈을 쓰지 않은 이들은 얼굴을 모를 사람들이다 为寻找我的名字                     나는 나의 이름을 찾기 위하여 我却丢掉了鞋                       나의 작은 운동화를 잃어버렸다 为寻找我的朋友                     나의 친구들을 찾다가 我却迷了路                         길을 잃어버렸다   穿过                               습기찬 시장거리를 지나가면 湿流流的市场                       나는 我觉得                             모든 사람 얼굴들이 面孔一个个                         바람처럼 형체없다는 犹如风                             느낌을 没有模样                           앓아야 한다   12                                 12 天上飘浮                           하늘에는 一支古老的歌                       흘러간 옛노래 한곡조 떠돌고 一个苍白的回忆                     창백한 추억이 떠돌고 있다   我是风筝                           나는 작은 연이다 春天生了我这只小鸟                 봄이 낳은 한마리 작은 새이다   不知是线绳断了                     연줄이 끊어진것일가 还是放长了                         아니면 연줄을 길게 놓아준것일가 管他呢                             물어볼것도 따질것도 없다 我要再飞一程                       나는 또 날어야 하리 去寻找白云底下                     흰구름속에 묻힌 我生命的赞歌                      나의 생명의 노래를 찾아내야 하리   13                                 13 无数点与线                         무수한 점과 선들이 丰富了地球的故事                   지구 떵덩어리 이야기를 엮는다   我从一条线走向另一条线       내가 이 선에서 저 선으로 뛰여넘어가면 天空有一束极光                     하늘에는 斑斓如霞                           오로라가 찬란한 무지개로 걸린다 泪与歌的呼唤              눈물섞인 울부짖음과 노래섞인 울부짖음이 又一个交叉扭在                     서로 부등켜안고 光与血中燃烧起来                   빛과 피속에서 불타오른다 在那一片燃烧中                     그 불타오름에 升腾起太阳一轮                     해가 껑충 튕겨오른다   我乘太阳到太空              나는 태양을 따라 하늘우  태공에 오른다 极光不见了                         아래에는 오로라가 없고 地上的无数点与线                   지구에 얽힌 무수한 점과 선들이 朦胧地呈现出一张网                 하나의 몽롱한 그물을 만들고 있음을 본다 而看清了                           내가 서있던 교차점은 我那交叉口是                       피붉은 종지부임을 一个血红血红的                     발견한다 句号   1986年 写于延吉                      1986년 연길에서  
8006    중국조선족 시인 허동식 篇 댓글:  조회:433  추천:0  2024-08-24
김학철정신에 대해 약간/허동식   杂文 :     김학철선생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은 동네에서 꽤나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황이라는 느낌이다.     김학철선생의 생애와 문학작품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것들은 너무나 거창하고 너 무나 정의적이고 너무나 도덕적이고 아름다운것임은 의심할바가 없다.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들에서 또는 기념행사들에서 도대체 무엇을 건져내여야 할가? 짧은 생각이지만 우리가 건져내야 할것은 아웅다웅을 벌릴 필요도 없이 종극적으로는 김학철정신이라고 생각한다.번듯한 행사보다도 거의 아첨스러운 언행보다도 김학철정신 에 대한 똑바른 리해와 계승이야말로 김학철정신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아닐가! 김학철 선생에 대한 진정한 기념이 아닐가!     김학철정신이란 무엇일가? 몇권으로 되는 책으로 집필될수도 있겠지만 쉽게 생각해 보면 김학철정신에 있어서 그 기둥은 우선은 독립적 인격이 받침된 독립적 사유와 독립적 판단 정신이다.누구가 가르쳐주었던 스스로 깨닫었든 무슨 주의의 영향을 받았든,김학철선생남은 모든 인간사를 대함에 있어서 시종일관하게 독립적 사유와 독립적 판단을 집요하게 지키셨다. 이 세상에 어떤 사조가 류행되든 누구의 목청이 높든 무엇이 살판치든 정상적인 인간사회이면 독립적 인격이 보장되고 인간은 누구나 상대적으로 독립된 사유능력과 판단능력을 소유하게 되여 있다.만일 독립된 사유능력과 판단능력이 매 인간들에게 소유만 되고 그 실행이 순조롭지못할 경우에는 인간들은 흔히는 앵무새로나 그림자로만 살어가게 된다. 독립적 인격이 무시당하는 사회환경일수록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독립사유권과 독 립판단권의 실행을 중요시해야하고 진정 실행하여야만 소위 사회진보가 가능해진다.때문에 우리들은 독립적 인격을 존중하고 독립사유능력과 독랍판단능력을 갖추기에 수행을 거듭해야 한다.그것들에 대한 추구와 실행이 상실되면 인테리들마저도 풍문에만 물젖고 류행에만 매달리고 때로는 가엾는 시대정신에만 목매이고 만다.나중에는 남한테 당하고 남들더러 당하게 하고…     김학철정신에 있어서 두번째 기둥은 실천정신이다.김학철선생님은 독립적 사유와 독 립적 판단을 경유하여 이루어진 자신의 리념을 실천에 옮겼다.공담정신도 실험정신도 아닌 그 실천정신,추호의 주저심과 리해득실을 외면하는 그 실천정신은 일반인간으로서는 마련하기가 아주 어려운 정신이다.김학철정신의 실천정신이야말로 인간사회가 똑바르게 나아가는 진정한 힘의 하나가 아닐가?     김학철정신이 있어서 세번째 기둥은 인도주의와 정의감이다.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무진한 사랑 그리고 모든 불의를 외면하는 그 정의감,그러한 김학철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기념하고 따라배울 진정한 신성함이다.    
8005    중국조선족 시인 리상각 篇 댓글:  조회:557  추천:0  2024-08-24
리상각시인의 시 에 대한 나름의 시평                                        허동식      리상각시인의 가 최초에 시로 씌여졌는지 아니면 가사로 씌여졌는지는 잘 모르지만은 내가 흥이 날 때는 부르고싶은 노래이다. 또 아름다운 시로 느껴지는 시편이다.  에서 한  구절을 따오면서 나름의 감상을 적어본다.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 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그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1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이 부분은 거의 질박할 정도의 시어로  를 묘사형으로 구성된 서술형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서술형 그림이란 말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련환화라든가 환등으로 표현되는 그림을 서술형 그림이라 칭할수 있다면, 하늘에 날아예는 하얀 두루미들--하나 둘 또는 일거에 백사장에 내려앉는 두루미들--부리로 깃을 다듬는 두루미들 이런 순서로 두루미가 형상화되였고 그림화되였다.   2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이상 순서적인 그림화된 이 부분은 또 두루미의 動性을 靜성적으로 옮기어 적은 부분이다. 두루미의 동적인 이동과정과 행위과정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그 순서대로 정적으로 다루었다. 정적으로 다루었지만 정속에는 동이 흐르고 그 와중에 동과 정이 잘도 조화된 생명감(어떤 생명도 자연적으로는 동과 정의 연합체이다)이 넘치는 부분이다. 3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그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부분은 옛날 중학교 어문교과서에서 말하는 소위 주제사상개괄이라 할수도 있겟지만은 나는 두루미의 내심적인 안온과 靜性을 동적(심리활동)표현으로 마무리지었다 함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문자언어의 제한성으로(조선문은 표음문자로서 중구어처럼 一字로  天機를 다루기가 힘듬도 사실이다) 蜻蜓点水식 또는 완전은페식 경지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는 표상으로 보여지는 두루미의 靜성에 내재하는 동적원동력을 잘 표현한 시구라고 생각된다. 4  시인의 원초의 의도는 잘 모르지만 , 독자로서 나는 는 조선족의 심미리상과 사회리상이 조화스럽게 기록된  시편이라 생각된다.  조선족이 먼 옛날부터 두루미를 즐김은 흰색으로 표현되는 人性의 순진성과 고요하게 표현되는 삶의 우아함을 지향함이 전통으로 되여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 이런 문화전통에는 유학의 심미리상과 사회리상이 내재한다. < 두루미>에 나타나는 흰빛의 고요한 韻과  그림으로 펼쳐지는 舞는 우리의 재래적 심미리상의 절창이며 는 자연스럽고 화목하고 조화된 사회리상의 시적재현으로 보여진다. 5  또  에는 자민족에 대한 자평과 무조건적인 무한대의 민족애 그리고 긍지감이 많이도 담기여 있다.  
8004    중국조선족 시인 조룡남 篇 댓글:  조회:466  추천:0  2024-08-24
조룡남시인 2019년 04월 27일 19시 59분    조룡남시인과 저 그리고 / 최흔                     오늘은 조룡남시인의 타계 일주년을 기념하여 연변작가협회에서 기념행사를 조직한데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저는 조룡남시인의 지인으로서 조룡남시인이 생평과 작품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하고저 한다. 지난해 12월 저는 덴마크에 있는 딸집에 가서 한가한 나날을 보내다나니 조룡남시인의 장례에 참가하지 못하여 느을 가슴이 쓰리였다. 저는 평소에 시인의 암이 가짜 암이라고 말하면서 덴마크에 다녀올만큼한 시간내에 조룡남시인은 타계하지 않으리라고 믿으면서 간다는 말만 전 하고 덴마크로 갔댔다. 그것이 마지막 리별일 줄은 전혀 몰랐던 그 아둔함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룡남 시인님이시여 죄송스럽습니다. 조룡남시인은 우리 로세대시인들 중에서 시개성이 가장 돌출한 시인중의 한사람이다. 제가 조룡남시인과 가까이 지내게 된것은 아마 장시 때문이였던것 같다. 이 시는 당년에 발표할 곳이 없는 문제작이였다. 지금 보면 아무렇지도 아닌 작품인데 문학지 편집이 도리머리를 저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파는 모자를 벗겨버렸지만 우파에 관한 시는 발표할수 없던 때였기 때문이였다. 아마 우파투쟁이 완전히 잘못 되였다는것이 해명된 초기였다고 생각된다. 저는 그전에 조시인한테서 보았던 그 문제작이 생각나서 원고를 달라고 하였다. 조시인은 발표할 수 있겠는가고 반신반의하면서 저에게 이라는 원고를 넘겨주었다. 저는 한글자도 손대지 않고 원고를 발간하였는데 반응이 열렬하였고, 후에는 전국 소수민족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조시인의 위망도 당연히 한급 높아지였다. 한번은 조시인이 병원에 입원하여 있을 때였다. 제가 병문안을 갔는데 시를 썼다면서 저한테 종이장을 넘겨주었다. 라는 시였는데 감정도 뜨겁과 환상도 풍부하여 저는 그 시를 가져다 신문에 발표하였다. 그런데 웬걸 하늘땅이 뒤집힐 줄이야. 우파분자가 권토중래하여 공산당을 보복하는 시를 신성한 당보에 냈다고 란리가 벌어졌다. 며칠후 신문사 주필과 부주필들이 모여앉아 저더러 편집착오를 승인하라고 윽박질렀다. 족히 세시간은  말도 안되는 비평을 당했다. 퇴근시간이 되여 온다고 빨리 태도를 표시하라고 하였다. 눈치를 보니 괜한 짓들을 벌렸음이 알리였다. 저는 하고 말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저와 조시인은 날이 갈수록 더 가까와 지였다. 그도 그럴것이 하마트면 둘다 비판투쟁을 받으며 고역을 치를 번 했으니까. 저는 조시인에게 울보라는 별명을 하나 달아주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죄다 가슴에 응어리졌던 울분을 토하는 것이였다. 를 제외하고도 이며 , 를 제외하고도 고향을 노래해도 사랑을 노래해도 조시인의 시는 모두가 밑바닥에 울음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의 모든 작품은 울분에 의하여 산생되였고, 눈물에 의하여 산생되는 것이였다. 그래서 저는 조시인의 모든 작품은 현시대의 한을 뿜어낸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한시대의 뒤안길을 쓴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후에 저는 조시인한테 또 라는 두번째 별명을 달아주었다. 그를 바보라고 부른데는 두가지 원인이 있었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나이는 스무살도 안되였던것이다. 이라는 유명한 동요와 라는 명동요를 발표하였고 후에는 라는 명동시를 발표하였다. 작가가 우파라는 모자를 썼든 말았든, 어떤 고관대작들이 그의 작품을 지옥에 처넣으라고 명령을 내렸든 말았든 백성들과 아니들은 줄창 하고 수십년을 기분나게 노래를 불렀다. 문화대혁명이 지나가고 작가협회가 다시 나타났지만 주석단에는 조시인의 이름이 없었다. 시간이 써억 지나서야 시분과 주임이란 이름이 차례졌고, 남들이 다 해먹은 다음에야 부주석이란 자리가 차례이였는데 그나마 말석이였다. 조시인은 언제나 제때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시인이였다. 이것이 첫번째 원인이다. 그는 퇴직후에도 그냥 출근하면서 일을 했다. 저는 그에게 이젠 일을 그만하고 자기가 겪은 우파생활이나 소설로 써보라고 권고했다. 22살 꽃나이에 우파에 걸려 45살이 되여서야 완전히 해방을 받았으니 그의 황금시절은 지옥에 묻혀있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을 장편실화라도 쓰면 얼마나 값진 것이랴! 그런데 조시인은 잃어버린 청춘으로 하여 일을 못한 것이 섭섭했던지 아니면 쓰기 싫어서 그랬던지 체계적으로 쓸 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바보가 아니고 우었이랴. 제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조시인의 작품을 리해하려면 조시인의 생애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시 와 같은 상징성이 강한 작품을 리해하려면 조룡남시인이 어떤 사람이였던가를 짚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시는 자아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조시인의 시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활과 직결된다. 그의 시는 그의 사상,감정, 추구가 너무 진실하게 깔려있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일 것이다. 이제 조룡남시인의 대료작으로 될수 있는 를 구체적으로 보기로 하자   내 가슴에는 웅덩이 하나 그것은 오래전에 옥을 파간 자리 나는 모른다 그 옥이 지금은 누구의 머리를 장식했는지   내 가슴에는 웅덩이 하나 그것은 오래전에 옥을 파간 자리 오랜 세월이 흘러갔건만 오늘은 웅덩이에 허연 소금이 돋히여 마를 줄 모르는 비물 눈물이 고여있다.   고요한 환경에서 한번 읽어만 봐도 속으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옥을 파간 자리가 가리키는 것이 우파에 걸려 빼았긴 조룡남시인의 청춘이라고 생각해 보자. 너무너무 처절하다.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 아닐수 없다. 황차 그 옥이 누구의 머리 장식품이 되였고 누구의 빛나는 목결이가 되였단다. 스물두살, 얼마나 찬란한 나이인가! 스물두살 얼마나 창창한 앞길인가! 그 스물두살에 우파로 몰려 조시인은 스물두살보다 더 많은 스물세해동안 인권이 없는 생활에 시달리였다. 스물두살 시인을 잡아놓고 누구는 대단한 공로를 세웠을 것이고 누구는 행운아가 되였을 것이고, 누구는 급도 췄을 것이다. 조시인은 죽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23년후에 다시 문단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초기에 그를 동정하는 문인은 있어도 그를 알아주는 문인은 별로 없었다. 우파라는 그림자가 그냥 그의 뒤를 따라다니였다. 시 그대로 고 조시인은 쓸쓸하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고독의 비탄을 토해내고 있으며 한없는 억울함을 토해내고 있다. 조룡남시인은 전생에 468수의 시를 창작하여 발표였는데 시인의 3권의 시집에는 467수의 시가 실려있다. 한수가 빠진 것은 에서 직접 쓸쓸하고 황량한 우파생활을 쓴 한수이다. 조시인은 생전에 우리 조선족시인들이 받아야 할 문학상을 거이다 받았지만 만은 한번도 상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시인의 대표작을 꼽을 때에는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 가 최대의 잇슈로 떠오르군 한다. 왜 그런가? 시란 상상의 산물이다. 이 시는 상상의 폭이 넓고 상상의 심도가 깊고 시적언어의 밀도가 비교적 치밀하다. 그러기 때문에 음미하여 보지 않으면 이 시의 알짜맛을 알기 어렵다. 이 시는 조시인의 피눈물이 앙금된 시이다. 조시인은 붓으로 이 시를 쓴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온 몸으로 이 시를 썼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시의 상상에는 재생적 상상, 복합적 상상, 생산적 상상 세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상상중에서 제일 중요한 상상은 생산적 상상이다. 생산적 상상은 기억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 내야 한다. 즉 련상의 기초우에서 새로운 상상의 사물을 생산해 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상상할수 있지만 누구나 다 시를 쓸수 있는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시를 쓸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생산적 상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상은 신비스럽고 환상적이며 바로 그러한 상상속에 예술이 있는 것이다. 이런 상상속에서 태여난 사물은 실제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허상이다. 조시인은 자기의 시에서 이 허상을 잘 발굴하였다. 세상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다. 금,은,옥이다. 시인 조룡남은 잃어버린 청춘을 옥이라고 하였다. 왜 옥이라고 하는가? 귀중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열줄의 짧은 시에서 이렇게 반복하고 있다. . 옥을 파간 자리가 주먹만큼한 것도 아니고 웅덩이 만큼하단다. 사람의 가슴에는 웅덩이라는 것도 없고 옥이라는 것도 없다. 가슴에 웅덩이가 있다는 것은 문학적으로는 통하지만 실제적으로 말하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시에서는 이렇게 새빨간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통하고 있으며, 이것이 곧마로 생산적 상상의 산물인 것이다. 가 좋다고 하는 것은 조시인이 바로 이 창조적 상상에 발을 붙이고 시를 창작하였기 때문이다. 시에서 나오는 웅덩이는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웅덩이가 아니고, 옥은 산이나 들이나 그 어떤 땅에서 캐낸 것이 아닌 언어로만 존재하는 옥인 것이다. 이런 옥이나 웅덩이는 시인의 오관에 의하여 산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6감각에 의하여 창출해 낸 것이다. 6감각이란 어떤 것인가? 오관에 의하여 감각을 받았거나 련상에 의하여 떠오른 영상에 의하여 새로운 상상을 떠올린 이미지를 말한다.  조시인은 이렇게 시를 마무리한다. 그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이런 이미지로 이 시의 종지부를 찍었겠는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아픔의 깊이를 다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허연 소금이란 어떤것일가? 썩지 않는 것이 소금이다. 화자의 생애에 영원히 아물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상처! 그 상처에 고여있는 것은 자연사물로서의 비물과 눈물이 아니라 화자의 설음이, 눈물이 그것도 인간의 뼈에서 우러져 나오는 설음이며 눈물이며 아픔과 한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웃으며 사는 화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울며 사는 화자를 보게 된다. 그 어느 시각, 그 어느 장소에 선들 상처의 모진 아픔을 달래며 감내하지 않았으랴. 여기서 우리는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며 사는 화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조룡남시인이라고 생각할 때 실로 조룡남은 불쌍한 시인이며 울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고통과 시는 정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시는 외롭기 때문에, 고독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에 쓴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시는 시인이 받은 스트레스 깊이와 너비에 의하여 심각성이 결정된다고 하겠다. 23년 동안 숨도 제대로 쉬며 살아보지 못한 조시인의 점철한 고통은 하늘이나 알 일이다. 마를줄 모르는 비통을  누구와 이야기하여야 23년 동안 쌓인 아픔과 한이 다 풀릴 수 있었으랴.  시인의 눈에 흙이 들어갔어도 그의 가슴에 패인 웅덩이는 메워지지 않았다. 그냥 력사의 상처로 남아서 후세를 울리고 있다. 영원히 사라질수  없는 이 웅덩이와 옥은 빛나는 등대로 남을 것이다! 조룡남 시인은 해방후 조선족문단에 데뷔한 제1대 시인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 조선족문단의 거목이시다. 이 거목은 력사의 증언자이며 시대의 불행아이며 시단의 기념비이다. 고 조룡남시인이시여 영원하시라.                                 2017년12월  
8003    중국조선족 시인 최룡관 篇 댓글:  조회:525  추천:0  2024-08-24
최룡관 시인  1944년 1월 22일(음력) 흑룡강성 삼강시 출생, 연변사범 졸업, 연변대학통신학부 졸업. 《연변일보사》 문화부 부장.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력임. 중국작가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 등 다수. 동화시집 :《신비한 세계》,  동화시집 :《신비한 세계》, 성인시집:《 반쪽은 다른 얼굴이다》, 《금단의 열매》, 《새벽 내 가슴에서 깃을 친다》, 《백두산은 독한 술이랍니다》, 《누드의 언어》등, 시론: 《이미지시창작론》,비평집:《이미지시론》, 민담집: 《백두산전설》(공저),이야기집 :《중국여인유머》, 문집: 최룡관문집 (1.2.3.4권)     하이퍼시와 현대시의 구별/최룡관 2017년 06월 19일 16시 26분   작성자: 최룡관 하이퍼시와 현대시의 구별    하이퍼시를 다양체라면 현대시는 단일체라고 말할수 있겠다. 시로서살펴보자 문둥이 서정주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시 [문둥이]에서는 전반시에 하나의 사물의 이미지에 대한 서술만 있는것이 특징적이라고 하겠다. 시는 문둥이가 어쩌는가만 쓰고있는것이다.아마 서정주시의 다른 시들도 거개가 이렇게 한가지 사물을 둘러싸고 씌여져있는 같다. 하지만 오늘의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의 시는 이와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문둥이가 아주 짧은 시니까 [하이퍼시]시집에서 짧은 시 한수를 보자 북소리 김은자 고무줄놀이를 한다 엄마는 장사 나가고 저녁이 줄을 뛰여넘는다 나는 엄마를 기다린다 지구를 한바퀴쯤 돌면 아빠가 나올가   이 시는 [문둥이]보다 한줄이 더 많다. 하지만 시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단선이 아니라 다선이다. 소제목부터 야릇하다. 영어에다 우물정자같은 글이 아닌 부호에다 아라비아수자 8을 조합하여 쓴것이 이색적이 아니라 할수 없다.(필자는 한글시에 영어같은 외래어문자를 쓰는것을 좋아하지 않지만)시가 시작되자 북소리가 고무줄놀이를 한다는 변형부터 창의적이다. 청각을 시각화한 공감각의 응용이 이채롭다. 그아래에 엄마가 나오고 저녁이 나오고 지구가 나오고 아빠가 나온다. 시의 행마다 성질이 다른 사물들이 나 타난다. 이 성질이 다른 사물들 자체가 련계성보다도 불연속성이 강한 사물들이다. 차원이 다른 사물들의 이미지라렬로 시를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들의 횡적배렬로 된 시를 하이퍼시라고 한다. 한수의 시에서 성질이 다른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공생하는 시를   심상운시인과 김규화시인은 [하이퍼시발간사]에서 이렇게 긍정하고 있다.  재래의 현대시와 하이퍼시  다른점 6가지를 론하였는데 우리가 심사숙고할만한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할수 있다. 이 여섯가지 구별을 잘 인식하고 리해하는것은 하이퍼시에 대한 리해에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의 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가를 가리켜준다고 생각된다.   현대시와 하이퍼시의 구별표      현과 하 내용 구별종류   현대시   하이퍼시 주제 하나 여럿 구성 종적구성 횡적구성 형상명칭 이미지 리좀 중심문제 유중심 무중심 흐름 기승전결 중간채취 이음새 련결 분렬 체험자 자아 무아.타자 의경 유아경 무아경   현대시와 하이퍼시는 상기한 도표처럼 다른 점이 있지만 시적예술의 동일성 있다. 그것은 둘 다 변형이라는 매개물을 가진다. 둘 다가 무의식이라는 발원지를 가진다. 동일한 매개물과 발원지에서 태여난 시가 단일체일 때는 현대시가 되고, 다양체일 때는 하이퍼시가 된다. 하이퍼시는 현대시에서 탄생한 시다. 하이퍼시의 토양은 현대시이다. 하이퍼시는 현대시 토양위에 세워진 찬란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달걀과 병아리의 관계이다. 병아리는 달걀에서 나왔지만 달걀이 아니고 병아리인것이다.   ============================= 금단의 열매/최룡관 골.1 각일각 날아드는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처에서 진땀을 흘린다 컴퓨터 한대로 동서남북 정보 수집에 구라파경제권에서 크린턴이 연설 강택민주석이 메히꼬 사절회견 오늘 장에서 배추 한근에 일원 상점에서 눅거리 천 팜 이웃 똥돌이가 싸우다가 코피 터짐 둘째놈 신발이 구멍 빠짐 배나무집 양반이 옥이와 사통함 굴암돼지가 죽을 먹지 않음 꽃시장에 가짜 꽃이 나짐 연길에서 녀자살인사건 파안 올망졸망 정보까지 컴퓨터에 차곡차곡 가려놓고 필요할 때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대천소식이나 관방소식보다 뒷골목 소식이 더 재밋다              1996.5.3. 골.2 명령이다 명령 아침에 출근할 때 연한 화장을 할것 여유시간에 백화점에 가서 아이신을 살것 털보와 치근덕거리지 말것 저녁에 된장에 부추쌈을 준비할것 밤에 진한 화장으로 남편을 맞을것 보이지 않는 사령부 보이지 않는 명령 소리없이 전달된다 명령에 따라 귀가 벌쭉해지고 눈이 돌아가고 입이 움직인고 손이 놀고 발이 가고 옷색이 변한다 이 사령부 명령은 황제의 칙지보다 에누리 없이 집행된다 범보다 더 무서운 짓을 치라해도 사령부하나는 언제나 추려야 한다 눈.1 한줄은 양전기 한줄은 음전기 닿기만 하면 찡찡 온 몸 저리다 두눈 감고 전기줄 닿기만 기다리는 미련한것아 땀 흘려! 땀! 전기는 수분이 있어야 잘 통해 눈.2 잘칵잘칵 오늘도 사진을 찍네 흑백사진 천연색사진 천장 만장 사진이야 네 맘대로 찍겠지만 기념사진 한장 고를 때 분이야 내 사진 골라 응 눈.3 뱀한테 홀리워 금과를 따먹고 눈을 떴지 뭐야 홀리워서 뜬 눈 홀리기만 하네 정말 그럴내기냐? 호호호... 멀쩡도 하네요 내가 홀렸나요 절로 매혹되고서 눈 .4 하나는 겉눈 하나는 속눈 겉눈으로 웃음 띄우고 속눈으로 셈평을 따진다 눈을 맞추려면 속눈으로 맞춰야 하리 눈.5 밤새도록 별들이 연마한 맑은 이슬 별하나에 이슬 한방울 별둘에 이슬 두방울 가벼운 이슬은 고무풍선 솔솔 바람에도 풀잎에서 똑 떨어진다 무거운 이슬은 천근 함마 한번 떨어지면 성벽도 박살난다 함마에 맞아 박살날지언정 고무풍선 끈 잡고 허우적이지 말라 눈.6 두자루의 붓이 새치스러운 붓이 그림 그린다 범을 범으로 그리기도 하고 범을 토끼로 그리기도 한다 쥐를 쥐로 그리기도 하고 쥐를 사자로 그리기도 한다 범을 토끼로 그렸다가 진땀을 뽀질뽀질 돋히기도 하고 쥐를 사자로 그렸다가 웃음거리를 사기도 한다 수줍음을 밟히고 그린 그림은 한생 보짐으로 되고 수줍음을 머금고 그린 그림은 평생에 웃음이 된다 재내비는 종래로 잘 그려지지 않는 모양이지 재내비에겐 평생 따스한 가마목이 차려지지 않는다 눈.7 자력선 한마당 펼쳐놓고 쇠붙이를 끌어당긴다 어떤 자석은 전문 망치에 맞은 못난이만 끌어당기고 어떤 자석은 전문 녹이 쓴 페철만 끌어당긴다 어떤 자석은 전문 은빛이 뛰는 강철만 고른다 나쁜 쇠붙이만 욕심내는 자석은 강철을 끌어와도 인차 녹이 쓸게 한다 몸매가 추한 자석은 하나도 없어 어느것이 나쁜 자석인지 강철들은 잘 몰라 금도금하려다가 똥물에 빠진다 눈.8 수림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에 아늑한 호수가 있다 맑다 못해 푸르러진 호수 물 푸른 물이 들라 모두 겁낸다 흰구름이 살금살금 건너가 본다 해님이 살금살금 건너가 본다 산들은 가만히 들여다 본다 하맑아 호기심난 달은 밤마다 살금살금 건너가 본다 싱숭생숭한 별들은 하나 둘 내려와 장밤을 실컷 놀고서 새벽이면 슬금슬금 뺑소니친다 풀수 없는 야릇함 가득 고인 호수여 뉘 속을 말리자고 오늘도 푸르렀는가
8002    중국조선족 시인 방산옥 篇 댓글:  조회:510  추천:0  2024-08-24
방산옥 시인 불가사의, 그속에서 숨쉬는 생명시학/김룡운 2014년 11월 11일 10시 15분   작성자: 김룡운     불가사의, 그속에서 숨쉬는 생명시학   ㅡ방산옥의 하이퍼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평함                                   김몽                        1. 방산옥시인이 하이퍼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출산했다. 우리 조선족시단에서 방순애의 하이퍼시집 «시간은 원이 되여» 다음으로 내놓은 두번째 하이퍼시집이다. 45년간 록색생식의학연구에 몰입하면서 수많은 아가들을 선물하였고 건강한 삶, 행복한 짝을 지어주었던 의학자가 이번에는 그 자신이 문학과 미친듯이 짝짓기를 하여 예쁘고도 포동포동한 아기,하이퍼시집을 낳았으니  실로 경하할만한 일이다. 오늘 필자는 69세가 되여 늦둥이를 출산한 산모를 경하하려고 이 자리에 앉았다. 시집을 읽으면서 감탄과 경이로움도 함께 읽었다. 중국어로 «中华妇女临床医学研究»,«中华实用临床医学防治研究»,«健康你我她»를 내놓고 우리 글로 «성을 알면 삶이 아릅답다»와 그리고 60만자에 달하는 «삶과 짝»을 저술한 의학자가 불과 2,3년 사이에 동시집 «바람도 빼똘빼똘»을 만들고 200여수의 하이퍼시를 창작했으니말이다. 그중에서 92수를 골라 묶은것이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이다. 시집은 제목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가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여서 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시인은 책머리글에서 최룡관선생님을 알게 되여 세심하고 열정적인 지도를 받았다고 말하고있다. 이 세상에서 인연이라고 하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만나 교향곡 제5번이 탄생했고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로상에서 예수를 만나 결국 오늘과 같은 기독교가 있게 되였다. 우리 중국 조선족의 문학의 경우 중국문학권의 영향도 무시할수 없지만 주로는 개혁개방으로 국문이 열린 덕분에 한국문학과 인연이 맺어져  서방현대파문학리론을 접수하여 오늘의 중국조선족현대파문학이 세워지게 되였다. 하이퍼시 경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문학의 거센 물결에 적응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나라들에서 하이퍼텍스트문학이 시작된지 오래다. 한국은 서구와 인연이 맺어져 십년 뒤늦게야 하이퍼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하이퍼텍스트문학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한창 실험단계에 있으며 론쟁도 많이 진행되는것으로 알고있다. 우리 문학은 이번에도 한국과 인연이 닿아 하이퍼시를 알게 되였고 지금 일부 시인들이 하이퍼시에 경도하는 바람이 일고있다. 최룡관시인을 주축으로 하이퍼시 동아리가 형성되였고 대련에서는 김파시인이 디지털시와 하이퍼시에 몰입하고있다.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읽으면서 생각이 깊었고 고민도 두터웠다. 비평문학은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감상괴 리해,해석과 가치판단을 통해 삶을 대하는 눈과 마음을 넓혀주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어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걸어가도록 구도하고 그 자신이 순례자로서 걸어가는 삶의 길을 찾기에 다름 아니다. 무릇 시를 비평하는 사람은 독자의 눈과 귀를 가져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인의 마음과 손의 감각을 감지하여야 한다. 아니, 어쩌면 비평가란 그 어느쪽에도 속할수 없는 경계선상에 서있는 경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희려 그런 리유로  해서 그런 경계인이야말로 가장 첨예하게 시를 읽는 일과 시를 쓰는 일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방산옥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곤혹스러웠던것은 하이퍼시의 특성때문이였다.하이퍼시의 특성을 간단하게 개괄하면 탈관념, 초월과 건너뜀의 기법,시간경계의 무시, 다선구조, 무한한 공간 등등이다. 이런  특성들이 또 언어의 폭력조합과 어울려져  난해성 내지 불가사이성이 가중된다. 매 수의 시를 정확하게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최룡관선생은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의  서평  «새로운 천지에서 타오르는 시의 불길»에서 다만 새로운 시 령역의 개척과  이미지폭력조합만 건드렸을뿐 구체적인 시해설은 한수도 하지 않았다.  사실 하이퍼시를 일목료연하게, 깨끗하게 해석하고 분석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난해성이다. 문학의 한 류파인 포스터구조주의와 포스터모더니즘은 신비를 추구하고 사이비를 제창한다. 이들은 “불가사이한것이 언제나 아름답고 아름다운것은 언제나 불가사이하다고 주장한다.”하이퍼시의 초월과 건너뜀의 기법은 이들의 리론과 많이 닮아있다. 결국 하이퍼시와 대화한다는것은 불가사이한 물체와 대화하는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하이퍼시에는 유일정확한 답이 있을수 없다. 명확한 풀이를 할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하이퍼시가 아닐것이다. 이런 리유에서 하이퍼시를 일목료연하게 해석한다는것 그 자체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하이퍼시와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다. 첫째는 비평가의 사명감이였고 둘째는 해석의 열쇠를 찾아보려고 미궁에서 헤매는것이 비록 피곤하고 고단한 일일지라도   바로 거기에 또 시 읽기의 다른  한 재미가 있기때문이였다.                   2. 방산옥시인은 소재발굴에서 새로운 령역을  개척하고있어 주목을 끈다. 그의 대부분의 시들이 주역과 의학소재를 다루고있다. 최근년에 우리 시단에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는 시인들이  나타나  시단에 활력소를  가미해주고있다.  광주의 박운호시인이 주역을 기본 핵으로 하여 미묘하고 신비한 마방진시를 쓰고있고 미국에 있는 홍군식시인이 순 불교를 소재로 130수의 시를 만들어 «원묘»라는 표제로 세상에 내놓을 준비를 하고있다. 그 본인은 불교시라고 하는데 내가 보건대 소재는 불교이지만 형식은 하이퍼시라고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학을 소재로 시를 쓴는  시인은 방산옥 한사람뿐인것 같다.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는 시적상상력의 기본 바탕을 이루고있는 주역적사유와 의학적사유가 시의 내면공간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견인력으로 작용하고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독자적특수성과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러한 특수성으로 하여 방산옥의 시는 남들과는 다른 개성적인 얼굴을 가지게 된다. 방산옥의 시를 여러가지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음양결합을 바탕으로, 주로 생명시학에 시각초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방산옥의 시가 여러가지 내용을 포괄하고있지만 생명 또는 섹스에  관한 내용이 가장 비중있게, 가장 빈번히 다루어지고있다. 표제들만 보아도 그것이 립증된다. “삼월이 분만한다”, “옥문”,“안개의 젖통을 스친다”, “짝사랑”, “자궁은 랭장저장고”, “송이버섯의 결혼” 등등. 그래서  필자는 시평의 표제를 «불가사이, 그 속에서 숨쉬는 생명시학이라고 달았다. 방산옥의 시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탄생하고 활발하게 숨쉬면서 푸덕이는것은 시인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시인 방산옥은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인줄로 알고있다. 그는 특히 성박사로 소문이 나있다. 그는 “성을 알면 삶이 아름답다”, “삶과 짝ㅡ생식과 전신건강”등 저서를 출간한 사람이다. 하기에  시인은 알게  모르게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생명례찬과 신비, 혹은 생명의 탄생과 부활, 성의 신성함을 시의 핵으로 다루고있는것 같다. 모든 생명의 탄생은 음과 양의 결합을 전제로 한다. «고물주를 수송합니다»가 전형적인 례로 된다. 시에서 남성의 생식기 남근은 «물구나무», «호랑이심장으로 만든 기차»로 은유되여 그 거대한 힘이 과시되고 있고 녀성의 생식기 질은 «불아궁이»,«동굴»로 은유되여  남근을  정복할수 있는 더 큰 힘으로 묘사되고있다.   남근이 «물구나무» 나 “호랑이처럼 힘이 세지만 녀성의 힘이 더 세여 그 “연장이”“불아궁이”에 들어가자  “그슬러 검정버섯이 ”된다. 성교를   해학으로 풀어낸 시라고 볼수 있겠다.     구들목에 앉았던 고양이 병아리소리에 연장이 부풀어납니다 질이라고 쑥 들어간 연장은 불아궁이에  그슬러 검정버섯이 되였습니다 ……중략 호랑이 심장으로 기차 만들고 위장으로 기차길을 닦았습니다 기차는 음낭역을 떠나 질역으로 고물주를 수송합니다   ㅡ«고물주를 수송합니다» 일부  “고물주”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필자는 “고물주”를 남성의 “정자”(精子) 가 아닐가고 생각한다. “기차가 음낭역을 떠나 질역으로/고물주를 수송”했기에 이로부터 수많은   생명이 탄생하거나 부활하여 방산옥의 시들은 생명의 약동으로 부풀어오른다.   집안에서 나는 응아 소리에 태양의 빨간 청각, 파란 미각, 투명한 시각들이 창문을 깨고 날아들어옵니다   ㅡ«버들과 련꽃형제» 일부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시인의 무한한 환희가 시줄에 앉아 춤을 추고있다. 얼마나 기뻤으면, 얼마나 급했으면 “태양”이 아기를 보려고 창문을 깨고 들어왔겠는가. “빨간 청각,파란 미각,투명한 시각”이라는 언어조합이 전반 시에 감미롭고도 싱싱한 숨결을 부어놓고있다. «산문을 열다»는 굉장한 상상의 힘을 빌어 만물을 창조하는 대자연의   신비무궁함을 시화하고있다.   새들은 향기를 부채질하여 친구들을 부르고 꽃들은 구름을 펼쳐 새아침 목청을 그린다   목동의 초막에서는 천문가가 아침 정적을 울리는 첫울음을 터뜨리고 심산의 근육수축으로  양수가 터진다   천년송에 머리박으며 울부짓는 바람은 사지를 무겁게 끌고다녀도 정에 취한 청산은 건(乾)도 손(選)도리(离)도… 모두들 품어준다   ㅡ«산문을 열다» 일부    대자연으로서의 산은 하나의 거대한 어머니의 자궁이 된다. 그 자궁이 수축하여 양수가 터지자 삼라만상, 안개, 나무잎,아침이슬,꽃, 목동, 구름 등이 태여나 세상은 생명의 숨결로 굼실거린다. 이 시의 구조상의 특징은 결과와 원인이 전도된데 있다.원인이 마지막 련에 누어있고  결과가 앞부분에 서있다. 필자는 산문을 열다를 “자궁을 열다”로 리해하고있다. 어머니로서의 산은 단지 수많은 아기들을 낳을뿐 아니라 보호하고 따스하게 품어주는것도 있지 않고있다. 천년송에 머리 박으며 울부짖는 바람은 사지를 무겁게 끌고 다녀도 정에 취한 청산은 건(乾),손(選)도 리(离)도… 모두들 품어준다 이 시에서 돋보이는 이미지결합은 “목청을 그리다”이다. 시인이 화가가 되여 소리를 그리고있는것이다.  이상은 주역적사유속에서 만들어지고있는 생명을 소재로 한 시들의 일부였다.우에서도 말했지만 방산옥의 시에는 주역적사유 못지 않게 의학적사유로 만들어진 시들도 적지 않다. «초경»은 인체의 생리변화로 새로운것의 탄생을 례찬한 시라고 본다.   제비 한마리 치마폭을 감싼다 제비 새끼가 첫 고고성을 울리며 얼굴을 뾰족히 내민다   우물가 수양버들에서 회색강아지들이 먹거리 찾아 우물에 뛰든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달님은 별아가들을 업고 앞마당에 내린다   자고 일어난  소녀의 침대머리에 장미꽃이 피여난다 어두운 협곡을 뚫고 13년만에 답은 선물   ㅡ«초경» 전문 초경을 장미꽃에 비기고 그것이 “어두운 협곡을 뚫고/ 13년만에 찾아온 선물”이라는 표현은 칭찬을 받을만한 시구다. 시인은 초경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장미꽃향기로 승화시키고있다. 더욱 눈박아 보아야 할것은 인간과 자연의 화합하고 인간과 자연이 동격을 이룬다는 점이다.  시인은 갓 태여난 제비새끼와 버들개지, 별아가, 초경을 맞은 소녀 등을 한줄에 세워놓고 함께 탄생을 축하해주고있다. 우리는 «용광로에 빠진다»에서 생명의 과정을 묘사한  새로운  신선한 시를 만나게 된다.   코가 바람을 잘근잘근 씹어삼킨다 인후바위를 비비며 호수들은 계곡을 가득 채우고 갑문을 연다   동그란 바람호수들이 낭떨어지로 미끌어떨어지며 붉게 달아오르는 용광로에 빠진다   심장펌프가 물을 퍼낸다 물은 도랑을 따라 전야를 적시며 점점 검푸른 옷을 입는다   강물은 새길 찾아 돌아오며 검푸른 옷을 벗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붉은 옷과 푸른 옷은 뱅글뱅글 옷만 갈아입다가 동년의 꿈을 꾸며 잠든다   ㅡ“용광로에 빠진다” 전문   제1련은 코로부터 호흡을 하여 산소가 페에 들어가는 현상을 말하고 2련은 산소가 심장에 이름을 말한다. 시인은 심장의 박동을 “심장펌프가  물을 퍼낸다”에 견주고있으며 수많은 모세혈관이 온 몸에  펴지는 현상을  «물은 도랑을 따라 전야를 적신다”고 묘사하고있다.   동맥을 “붉은 옷”으로, 정맥을 “푸른 옷”으로, 그리고 동맥과 정맥의 순환현상을 “붉은 옷과 푸른 옷은 /뱅글뱅글 옷만 돌려입다가/동년의 꿈을 꾸며 잔다”라고 노래부르고있다. 생명의 과정을 의학적도리로 설명했으나 이미지가 생신하고 선명하기에 읽으면 재미가 돋아난다. 이외도 의학적사유로 생명의 탄생과 환희를 읊조린 시들이 아주 많다. 례하면 “언덕에서 목을 쭉 빼든 민들레가/노란 꽃망울진 유방과 속삭일 때마다/젖무덤에서 한잎한잎 꽃잎이 피여난다” «처방전1» ,“침들을 한줌 쥔 손바닥은/침모내기에 구슬따 흘린다/ 땀방울은 파란 잔디밭을 키우고/벼꽃을 만발시킨다”«침모내기»,“올챙이들이 갤갤/새들이 짹짹/산에서 목탁이 딱딱딱/계곡에 노래를 심습니다”«옥문». 방산옥시인은 신선한 이미지창출에서도 재기를 보인다. “빨간 청각 파란 미각,투명한 시각”,“우뢰가 우주의 귀뺌을 치다”,“글자가 삐뚤삐뚤 길을 닦고/길은 모양을 조각하며 소리를 낳는다”주문의 마디마디가 /푸른 잎에서 쫑쫑 뛰여내린다”. “우주핸들”,“침모내기”.이런 잘 구사된 이미지조합들은 시를 시로 만드는데서 관건적인 구실을 하고있다. 방산옥시인이 열심스레 탁마해낸 이미지에 대해 할말이 퍼그나 있으나 편폭을 고려하여  더이상 론의하지 않기로 한다.                   3.     오늘 이 자리를 빌어 하이퍼시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간단히 피력하고자 한다.  우리 시단에서  하이퍼시를 두고 엇갈리는 견해들이 상충하고 있어 약간의 조률과 해석이  필요하기때문이다. 하이퍼시에 너무 매료된 어떤 사람들은 하이퍼시가 가장 우수한 시고 여타의 시들은 시가 아니거나 한층 낮은 수준의 시라고 하고 반대로  하이퍼시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은 하이퍼시는 인간과 세상을 등진 무의미한 동화적장난이라고 폄한다. 필자는 하이퍼시는 시대가 낳은 문학사조의 하나라고 본다. 그러나 하이퍼시가 최고의 시형식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이퍼시는 그로서의    강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있다. 그러므로 강점은 배우고 단점은 삼가해야  한다는 립장이다. 언젠가 김철호시인이 자기가 하이퍼시를 공부하는것은   하이퍼시를 쓰기 위함보다는 자기의 시를 더 풍부히 하기 위한데 있다고 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학사조는 모두 저마다의 강단점이 있으므로 서로가 대방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걸러내여 자신을 더 충실히 하는것이이 참다운 문인이 걸어가야 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공생공존(共生共存),  호경호존(互敬互爱)의  정신은 문학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와 견해가 같지 않다고 하여 무조건 대방을 비방하거나 폄하는 일은 부디 삼가해야 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데가주망과 앙가주망을 두고 끊임없이 론의가 계속되고있는데 그것을 화두에 올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 아다싶히  간단하게 정의하면  데가주망은 절대적자유,자기해방, 현실도피 등을 의미하고 앙가주망은 현실과 어떤 인연이나 관계를 맺는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참여와 통하기도 한다. 시문학에서는 순수시와 참여시로 구분된다. 사르르트의 앙가주망개념이 가장 대표적이다. “작가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를 모를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상에 나서서 [나는 세상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수 없도록 만드는데 있다. 그리고 일단 언어의 세계에 끼이는 이상 작가는 말할줄 모른느척 할수는 절대로 없는것이다. 의미의 세계속으로 들어가면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것이다.”(사르르트[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두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 다시말해서 문학은 문학을 위해서도 존재하고 사회를 위해서도 존재한다. 괴테는 “시는 남자가 세계에 하는 키스이다. 그러나 빈 키스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갈파한바 있다. 아내가 아니라 연인에게 하는 키스는 단순히 애정의 표현일뿐이여서 연인은 아내처럼 아이를 낳거나 생활계획과 같은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된다. 괴테의 말은 서정시의 무목적성 즉 순수성을 지적한 말이다. 에드리 앨렌포도 “시는 시이고 그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명제를 내놓았는데 역시 같은 맥락에 선다. 그러나 시는 이들이 말하는것처럼 단순한 감성의 표출로 끝날수는 없다. 시는 모종 의미에서 사회와 력사, 사상과 인식의 거울이 되여야 하다. 그렇다고 하여 시가 정치의 노예가 되야야 한다는것은 아니다. 순수와 참여, 시의 이러한 량면적속성에  주목하여 토마스 엘리엣은 “사상을 한다발 장미의 향기로 표현하라”는 주문을 내세운바 있다. 사상을 전하되 아름다운 장미의 향훈으로 감싸라는 뜻이다. 사상을 사상으로 전하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정치나 철학으로 될것이다. 어떤 사상도 예술의 옷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플라늘레르 역시 시에서 사상을 과일의 영양소처럼 숨겨놓으라고 권고하고있다. 사과의 아름다운 향기와 맛에 끌려 한줌 베어먹는 순간, 사과의 영양소도 함께 흡수되는것이다. 지금 우리 시단의 경우 순수와 참여(여기서 말하는 참여는 세상과의 교류와 인연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일체, 비희고락, 분노, 사랑 등을 모두 아우른다)의 대립이  상충상태로 존재하고있다. 그중 제일 많이 의론되고있는것이 하이퍼시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순수와 참여의 대립을 넘어서 이 둘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는 소통과 화홥의 지형도를 국축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드러나는 시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현실과 너무나나 동떨어진 시도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사료된다. 하이퍼시는 초월과 건너뜀의 기교를 통해 절대적자유와 무변의 공간을 제공하고 사유의 비약을 도모하며 생신한 이미지창출을 꾀하고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무의미를 뜻하는 랭혹한 탈관념과 지나친 언어폭력조합은 커다란 난해의 미궁을 만들어 세상과 독자와의 고립이거나 소외, 단절의 위험이 초래될수 있을것이다.  독자가 외면하는 시집을 찍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이퍼시가 안고있는 가장 큰 위험은 까딱하면 문자유희나 장난 그 자체에  머무르고만다는데 있다.  시가 아무리 순수를 겨냥한다 해도 시인이 세상밖이나 진공상태에서 살수는 없는 이상 현실과 교감하는 어느정도의 삶의 숨결은 있어야 한다는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오늘 필자가 례문에 올린 방산옥의 시들은 정도부동하게  관념이 슴배여있는 숨쉬는 시들이였다. 례문에 올리지 않은 시들중에서도 «오염된 부르하통하»,«어둠이 산문을 삼킨다» 등 시들은  현대문명이 가져다준 자연의 파괴,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를 고발한  시들이였다. 그리고 김파시인이 장백산집지에 발표한 디지털하이퍼시에도 «안개 낀 미로»를 비롯하여 옅은 관념의 옷을 걸친 시들이 몇수 보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하이퍼시에도 어느정도의 관념을 집어넣을수 있다는 도리를 립증해주고있다. 필자가 절대적인  탈관념에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부딪치고있는 현실상황때문이다. 멀리로는 서아프리카에 무서운 전염병인 에블라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수천명이 죽어가고있으며 그것이 미국과 구라파까지 확산하여  온 세계가 공포에 떨고있다. 중동에서는 전쟁과 폭란으로 수많은 인생이 살륙되고있어 세상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다. 시인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는척 할수 있겠는가. 가까이로는 중국의 고위급간부들이 수십억, 수백원의 나라돈을 탐오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사무친다. 문인들이 이런 현싱에 눈 감은채 그냥   음풍영월만 할수 있겠는가. 더 가까이로는 한반도가 매일 갈등으로 으르릉거리고 있으며 중국조선족은 해외진출로 부를 창조하였지만 그 대가로 교육위기, 가정파탄 등 위기도 함께 겪고있다.  이런것도 우리가 그냥 못본척 할수 있겠는가. 더 더 가까운 례를 들어 나의 누이나 어머니나 딸이 괴한에게 강간당할 때 그 광경을 보면서도 그 곁에서 그냥 수수께끼같은 시를 읊을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결코 구호식이나 탄원식의 정치시를 쓰라는것은 아니다. 엘리옷의 말처럼 사상을 예술적으로 장미의 향기처럼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이퍼시에서도 일정한 정도의 관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하이퍼시를 연구하고 하이퍼시를 쓰고있는 한국의 최진연시인의 말에  큰 공감을 갖고있다. “하이퍼시에서 일체의 관념을 배제한다면 문학의 량대가치인 유희성만 남고 관념에 의한 공리성은 전혀 무시될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소한의 관념이라도,심상운의 표현을 빌자면  “지장수같은 관념 ”을 쓰려고 한다. 대상에 대한 감각과 인식의 인지단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엷고 투명한 정도의 관념을 함유하게 함으로써 시적가치를 높이는것이 더 좋으리라고 생각해서이다.”(최진연 [하이퍼시의 리해]) 하이퍼시가 엷고 투명한 정도의 관념을 함유한다면 세상과의 화합도 이루어지고 따라서 독자층확보도 가능해질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폭력조합에 대해서 몇마디 덪붙히려고 한다. 신비평에서는 언어의 폭력조합을 아이러니견제와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적당한  견제와 균형은 시 앙금을 증강시키고 사색의 심도와 광도를 확대하여 시의 품위를 높이지만 지나치면 미궁에 빠지게 된다. 일반적인 시도 읽이지 않는 시대인데  하물며 수수께끼같은 시야 더 말할나뉘가 있겠는가. 독자층의 외면은 너무나 당연할것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폭력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는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무릇 세상일이란 모두 적당하면 좋다. 과하면 탈이 생긴다. 하이퍼시는 21세기에 군림한   문학의 한 사조로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 탈관념과 언어의 조합에서 조금 더 유연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하이퍼시가 많은 사람들의 긍정을 받을거이며 미래가 양양하고 창창할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이퍼시의 존재가치와 이후의 운명은 어느 한두사람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력사에 의해 증명될것이다. 하이퍼시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방산옥  시인의 시집출간에 다시한번 뜨거운 축하를 보낸다. 금후 더 훌륭하고 예쁘고 멋진 하이퍼시를 낳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2014년 10월 18일 연길에서   방산옥의 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세미나에서 발표한 론문  
8001    중국조선족 시인 김파 篇 댓글:  조회:483  추천:0  2024-08-24
김파 시인 찬란히 터져오르는 이미지/최룡관 2014년 05월 20일 11시 10분   작성자: 최룡관 찬란히  터져오르는  이미지   --김파시인의 열번째시집 《태양의 언어》에 부쳐                          최흔    김파시인의 열번째 시집을 보았다.  립체시라는 일로를 줄기차게 걸어오던 김파시인이 오늘은 라는 디지털 하이퍼시라는 작탄을 터지웠다.  이미지들은 야밤의 폭죽불꽃처럼 찬란하다. 폭죽은 순간의 황홀을 보이고 사그러지지만 는 그런 순간을 영원으로 고착시키는 황홀경을 이룬다고 하겠다. 무의식, 하이퍼특점, 언어들의 독특성을 이 론문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무의식사유의 결실   김파의 열번째 시집 의 시들은 무의식에 절어있다. 사람들이 시를 쓰는 의식은 대개 세가지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현실의식이고, 둘째는 잠재의식이고, 세째는 무의식이라겠다. 어떤 의식으로 시를 쓰는가는 시인마다 다르다. 현실의식만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현실의식과 잠재의식을 혼합시켜 시를 쓰기도 하고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혼합시켜 시를 쓰기도 한다. 김파시인은 이런 류형의  사유로 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무의식으로 시를 편집하고 있는같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의식이란 현실사물의 현상을 종합하고 처리하는 시를 말하고 잠재의식이란 한사물의 어느 한 현실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물의 력사거나 시인의 기억을 더듬어 시를 작성하는것이라 하고, 무의식이란 말그대로 현실의식을 묵살해버리고 새로운 의식으로, 환상적으로 시를 시작하고 발전시키고 마무리하는 시라고 하겠다. 현실사물에 대한 모든 기성관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관념으로 시를 쓰기에 무의식이라고 할수 있다. 때문에 시에 나타나는 제재들은 현실적인것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과 환각에 의하여 재구성된 표현들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이란 오직 시인에게만 있는 새로운 의식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없으면서도 있는 의식! 이제 김파시인의 시의 서두로써 이야기해 보자.     세월의 틈서리에 산란하는 말씀들 벼루기의 집장고도 --《무제》서두에서     시간의 얼마나 흘렀는가 고요가 사글어 곰팡이 낀다 고민이 쌓여 발요되는 열기 정감의 세포가 분해되고있다 --《무언의 대화》에서   태양이 늪얼음을 깁던날 치마자락으로 부채질하는 바람 바위살같에 소름이 돋힌다 녹 쓴 기억 닦아내고 윤활유 바르는 온도계 스케트날이 시간의 잔등 스친다. ---《기다리는 마음》   손톱끝에 지는 피방울 시간을 껍질벗긴다 후리드입술 콩나물 내뱉고 ---《예감에 찔리여》   우산 든 겨울 벌거 벗은 바위 --《서리낀 말씀》   다섯수의 시의 서두를 례로 들었다. 다섯수의 시의 서두는 김파시인의 시의 서두의 보편적인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에서 와 에서 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리앞에 낯선 세계를 펼쳐주고 있다. 이 두시구는 현실관념이라고 할수 있지만 다음줄에 나오는 시구들과 련계시키면 그렇다고만 할수도 없다. 이말은 시간이 고요에 곰팡이 끼게 한다는것이다. 여기에서 제일 주목되는 언어는 와 이다. 구상물에 곰팡이가 낀다면 말이 되지만 고요라는 추상물에 곰팡이 낀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적으로 통하는가? 무의식으로 쓰는 시는 생활의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라 시인의 절대적인 상상에 의하여 다시 조직되여 그려지는 허상이기때문이다. 재조직된 허상이 아닌 시는 무의식으로 쓴 시가 아니라고 하겠다. 무의식으로 쓴 시는 있는것을 없게 하고 없는것을 있게 하기라고 말할수 있겠다. 의 서두도 마찬가지이다. 하는데 시간이란 껍질이 있고 속이 있는 사물이 아니다. 그런데 시인은 고 한다. 무엇이 시간을  껍질벗기는가 시인의 말대로 하면 이다. 피방울이 껍질을 벗기는 도구로 씌였으니까 피방울이 표현하는것은 피방울이 아니라 예리한 칼끝과 같은 은어의 표현으로 되고있다. 현실적인 의식이 슴배인것 같은 시행들이 실제는 아래에 오는 변형에 의하여 원뜻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의식에 동화되여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사물로 다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시인의 시적사유의 사물이지 세상에 존재하는 현실적사물이 아니다. 그래서 싸르트르는 이미지의 핵심을 허상이라고 했을것이다. 현실의식이 작용하는 사물들이 허상의 영향아래 언어자체의 본뜻을 거세당하고 새로운 뜻으로 전이하게 된다. 그러니 워낙 새로운 사물의 운동으로 시작된 나머지 례들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 시행들은 100프로 환각된 사물의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어느 시구나 다 시인이 새롭게 만들어낸것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 여기서도 현실로 통하는것이 아니라 환각으로 통하는것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  이 의 서두도 허상적이거나 환상적이기는 위의 례들과 다를바 없다.
8000    중국조선족 시인 강효삼 篇 댓글:  조회:413  추천:0  2024-08-23
북방의 시혼, 사실주의 창작거장 강효삼 2015년 07월 07일 00시 45분  작성자: 허창렬 북방의 , 사실주의 창작거장 강효삼                    시인 강효삼과 인간 강효삼을 론함                허인                                                           하고싶은 말       대개 북방시단하면 필자의 머리속에 제일 자연스럽게 먼저 떠오르시는 분이 곧바로 강효삼선배님이시다. 한평생 민초의 삶을 꿋꿋히 살아오시면서 결코 곁눈조차  한번 팔지 않으시고 오직 현실주의와 사실주의 창작기법으로 외곬인생을 묵묵히 살아오신 북방의 ㅡ사실주의 창작거장 강효삼선배님ㅡ 매번 신문, 잡지에서 이제는 70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로익장을 과시하고 계시는 강효삼선배님의 주옥같은 시 한수 또 한수를 읽을적마다 필자는 마치 잃어버린 고향소식을 어느 날 문득 인편에 다시 전해 듣는듯한 그런 느낌에 저도몰래 가슴 짜릿한 전률을 느꼈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1944년 흑룡강성 연수현태생인 강효삼선배님은 1962년부터 벌써 처녀작을 발표, 근 50여년간 시, 수필, 에세이, 아동문학작품 등을 무려 300여만자 신문, 잡지에 발표, 고 담담히 이야기하시는 강효삼선배님은 필자가 보건대 아마도 래생에 다시 태여나신다 하셔도 시만 쓰실 분 ㅡ 윤동주님의 서시처럼 성격이 대나무처럼 곧고 개성이 뚜렷한 시인님이시다.    1980년대초엽 , 북방시단의 첫 동인시집ㅡ 중 한분이셨던 강효삼선배님은 누가 뭐라해도 우리들의 본보기로 되시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으신 분이시다. 모두 알다싶이 80년대 초엽은 인터넷이 없었고 교통마저 몹시 락후한 시대였던 만큼 각지 문단상황은 지극히 국한시 되다싶이 하여 타성 문인들의 작품을 읽는다는것은 마치 하늘의 별따기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한 시기에 북방시단에서  민초들의 애닲은 삶과 희노애락을 시로 , 희망으로 줄줄이 엮어 오신 분이 곧바로 강효삼선배님이시다. 여기서 조금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80년대말, 90년대초엽, 그토록 날마다 목이 터져라 , 를 노래로 부르면서도 솔직히 작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지를 못하였으며 필자의 경우 썩후에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야 비로소  김성휘, 리상각선배님들의 시들을 점차 접할수가 있었다    박철준, 리삼월, 한춘, 한병국, 강효삼, 김동진(현재 훈춘에 거주), 리명재, 특히 리삼월, 박철준, 한춘, 리명재시인마저 타계하신 이 시점에서  현재까지 북방의 시단ㅡ완달산맥에 오롯히 작은 거목으로 우뚝 서셔서 현재까지 아낌없이 꾸준히 한수 또 한수의 현실주의, 초현질주의, 사실주의 시작품들을 한점 부끄럼도 없이 세상에 떳떳히 내여놓고 계시는 강효삼시인님은 북방조선족시단의 이심이 분명하다. 그럼 여기서 우리 다 함께 강효삼선배님의 주옥같은 시 한수 또 한수를 조심스레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기억에 생생히 살로 돋아나는 참신한 이미지   고향시초   실바람 어서 가자 길잡이 해주고 시내물 목청 돋궈 반갑다 노래하네 잘 있었냐 고향아 어머니 품이여 아 동구밖 배나무 한 그루 어머님 모습인듯 두 팔 벌려 나를 맞아주네   꿈 많던 소년시절 그때를 잊으랴 나는야 고향 떠나 학창으로 달렸지 생각나냐 고향아 석별의 그 날을 아 흰 저고리 고름에 매였던 빨각돈 쥐여주던 어머님 그 사랑 나를 울리네   …  … … (1980년 흑룡강신문에 발표)      강효삼선배님의 50년 창작성과를 필자는 단 한마디로 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시인 은 언제나 민초들 삶속의 크나 큰 희로애락을 항상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피로, 살로 경험하시면서 때로는 웃음으로 , 때로는 눈물로 한수 또 한수의 사실주의 시를 쓰시는 -사실주의, 현실주의 시인이시며 인간 은 함경도, 평안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엮어가면서 언변이 청산류수이신ㅡ어쩌면 그 자그마한 체구와는 달리 너무나도 호방하신 분이시다. 특히 특정된 년대에 특정된 시, 즉 정치적인 구호시들을 써내여 명리에 눈이 어두웠던 그런 시인들과는 달리 과 의 70여성상 인생궤적을 아무리 낱낱이 살펴보아도 부끄럼없이ㅡ 와도 같이 청백하신 분이시다.     이 시는 지금 읽어도 감수가 새롭고 또한 가슴이 순간 뭉클하기도 한다. 어드바이스나 그 어떤 멘트조차 필요없이 필자가 알건대 강효삼선배님은 절대로 남이 알지 못하는 시들은 쓰시지를 않으신다. 시 창작에 있어서 강효삼선배님은 항상 이미지화를 극대화하면서도 또한 괴상한 이미지 조합이나 폭력적인 조합같은것은 아예 쓰질 않으시다. 거의 40여년전에 씌여진 시라고는 지금도 믿겨지지 않을만큼 여기서 실바람, 길잡이, 시내물, 목청, 노래소리는 자연스럽게 를 견인해 내여 구체적인 형상화까지 깔끔히 마무리해가면서 언제 ㅡ 어느때 ㅡ 어디에서나ㅡ멀리에서부터 마주서기만 하여도 벌써 듯한 배나무를 한폭의 그림으로 그려내여 읽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이 저도 모르게 뭉클해지게 한다. 특히 제 2련에서 이라는 이 참신한 이미지는 오늘까지 조금도 녹 슬지 않은 반짝반짝 빛나는 하나의 거대한 보석이 되여 마치 꿈 많았던 학창시절을 생각만 하여도 눈시울이 먼저 붉어지고야 마는 을 극대화 시켜놓아 시의 매력을 한껏 증폭시킨듯 하다. 알수가 있듯이 강효삼선배님의 시속에는 언제나 파워플한 패러다임 전환을 굳이 약속치 않으시면서도 꼭 우리들만의 방식, 우리들만의 정서, 우리들만의 비분, 그리고 강개와 긍지를 표현 그대로 과 으로 풋풋한 휴머니즘정신, 즉 인문정신이 그 밑바탕에 든든히 안받침 되여 있어 마치 개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 그럼 아래에서 겨레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과 애증,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민족을 부각시키고 있는 강효삼선배님의 어쩌면 자화상일지도 모를 와 를 다 함께 잠간 더 살펴보도록 하자   늘 거기 있기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 너른 세상 갈 곳 많아도 민들레는 아예 흙에 자신을 맡겨버리고 제 본래 태여난 땅 그 한구석에서 순하고 천해도 항상 밝게 살기로 했다   누굴 닮았나 묻지 말자 무심히 보기엔 너무 고상한 꽃 그렇게 많이 모여있어도 서로 헐뜯는것 보지 못했다 그렇게 가혹하게 짓밟혀도 신음소리 한마디 듣지 못했다 흘리는 눈물은 더구나 없는 아, 우리 겨레 녀인들 같은 꽃이여 전문이다       사실주의 창작기법은 아마도 러시아 언어학자 로만 야꼽슨, 카르세프스키, 트루베츠코이와도 같은 이들의 상징주의 형식론에서부터 시작된듯하다. 구체적으로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1928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1차 국제언어학회에서 라는 용어를 프랑스에 망명중이던 러시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사실주의창작기법은 빠른 급물살을 탄것으로 알고있다. 그럼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구조(라틴어 동사 struere에서 온 stuctura)란 알기 쉽게 을 가르키는 낱말이다. 보줄라나 베르노가 언어를 하나의 건물이라고 파악한것과 마찬가지로 퐁트넬은 인간의 육체마저 하나의 건축물로 보았으며 시에서의 사실주의는 상징주의를 기초로 그렇게 탄생이 된다. 사실주의 창작기법이 오늘날 우리 조선족시단에 현실주의,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모더니즘 점토우에 마침내 한떨기의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 날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수많은 선배님들과 50여년간 결코 곁눈 한번 팔지 않고 꾸준히 외곬 인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강효삼선배님과도 같은 선배님들이 계셨기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였을가 생각해본다.    /늘 거기 있기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너른 세상 갈 곳 많아도/민들레는 아예 흙에 자신을 맡겨버리고/제 본래 태여난 땅 그 한구석에서/순하고 천해도 항상 밝게 살기로 했다/에서 볼수 있다싶이 독백성이 강한 제1련은 어쩌면 시인 자신의 자화상일수도 있으며 또한 풀뿌리와도 같이 얽히고 설킨  이 세상 민초들의 애잔한 삶을 직접 한눈에 들여다 볼수 있듯이 그려놓아 결코 낯설거나 거리감이 전혀 없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또한 친숙하기도 하다 . 바꾸어 말하면 어쩌면 시인자신의 옹근 삶 전체를 그대로 표현한것이 아닐가 싶을 정도로 이 구절은 읽을수록 무어라고 형언할수도 없이 단단한것이 문득 가슴에 맺혀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알짜지근해나는것을 어쩔수가 없다. 특히 /누굴 닮았나 묻지를 말자/무심히 보기엔 너무 고상한 꽃/으로 다시금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한 제 2련에서 /모여 있어도 서로 헐 뜯는것을 보지 못했고/, /짓밟혀도 신음소리 한마디 없으며/./흐르는 눈물은 더구나 없는/우리 겨레의 녀인들/의 강인한 모습에 초점을 모아 공명감이 더욱 큰듯 싶다. 이렇듯 시란 회화성으로 뜻을 전해야 시 예술법칙에 부합되는 것으로 영구불멸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누가 저렇게 이글거리는 화로불을 황홀하게 지펴놓았는가 때가 되면 봄은 절로 익는줄 알았지 이렇게 누구인가 지성이 뜨거운 입김되여 지펴야 하는줄을 진달래꽃 타는 불길의 흐드러짐 알겠다 화로불에 잘 익은 고구마 같이 물씬 풍겨날 구수한 봄내음새… 진달래는 봄의 구미를 돋구려 산이 훌훌 입김불어 피워올린 숯불이 아니냐 아 봄은 이렇게 빨간 진달래 그 원초의 숯불에서 맛스레 익혀진 《불고기》여라   전문    아마도 강효삼선배님에게 있어서 는 영원한 시제이기도 하며ㅡ 수많은 시속의 이 되기도 하며 또한 그러한 겨레에 대한 사랑과 정서, 애착은 신선한 에너지가 되여 수많은 창작 동기가 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제1련중에서 /누가 저렇게/이글거리는 화로불을/황홀하게 지펴놓았는가/에서 은 벌써 읽는들의 마음을 한꺼번에 사로잡기에 너무나도 충분하며 그 다음 제2련에서 과 은 마침내 제3련에서 /알겠다 화로불에 잘 익은 고구마 같이/물씬 풍겨날 구수한 봄내음새…/를 견인해 내여 로 시적 분위기를 무르익히고 한껏 고조시켜놓았으며 특히 제4련에서/산이 훌훌 입김 불어 피워올린 숯불/은ㅡ 제일 마지막 련에서 마침내 / 아 봄은 이렇게 /빨간 진달래 그 원초의 숯불에서/맛스레 익혀진 《불고기》여라/로 참신한 이미지를 등장시켜 시의 진수가 무엇인지 아낌없이 보여주는듯 싶다.   시인 강효삼과 인간 강효삼, 그리고 환유와 은유ㅡ직유와 비유ㅡ    력사는 련속적이면서도 동시에 불련속적인 특성을 띤다.시를 쓴다는것은 어쩌면 전통적인 시각에서 살펴볼때 을 기록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기도 하다.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은 현실에서 오는 이러한 소외를 항상 의식하면서도 또한 늘쌍 새롭게 시작이 된다. 즉 리성(理性)이 보여주는 반리성적인 특성, 그리고 엄연한 사실과 그 가치의 분리와의 재조합, 더 나아가서는 구도적 효률성이 항상 시에서 각종 소외의 조건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그러한 리성의 종착역은 곧 바로 죽음일수도 있다는 그러한 가 가슴을 치기도 하는 실례들이 현실적으로 적지 않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여난 이상 누구나 을 외면할수 없으며 또한 언젠가면 너나없이 받아 들여야 할 중요한 과업이기도 하다 .그럼 강효삼선배님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어떻게 표현하셨을까? 여기서 강효삼선배님의 을 또 살펴보도록 하자   십자길에 앉아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얀 로인 한분 지금 로인이 앉아있는 곳으로 두갈래 길이 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이 로인은 가고싶지 않다 그래도 죽음의 길로는 로인은 부득부득 앉아버틴다 제자리를 뭉개며 얼마를 더 버티려고 정녕 고집부리지 마시고 어서 가시라해도 로인은 거절하며 오히려 자신의 낡은 철학을 푼다 ㅡ날 그대로 두게 죽음을 앞에 둔 늙은일수록 더 살고싶다네.   전문이다      강효삼선배님의 시는 언제봐도 항상 질서 정연하고 일목료연하다. 질서 정연하고 일목료연하다고 할수 있는것은 그만큼 강효삼선배님의 삶 자체가 신의로 가득 넘쳐나기 때문이다. 에서 공자는 라고 하였다. 뜻인즉 신과 의는 아주 근접한것으로써 신(信)은 의의 범수와도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시인 강효삼을 80점 이상이라고 할수 있다면 인간 강효삼은 90점 이상이다. 왜냐하면 시인 강효삼에게는 가 있고 인간 강효삼선배님은 거짓없이 너무나도  진솔하기때문이다 . /십자길에 앉아있다/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얀 로인 한분/에서 볼수 있는것은 역시 자화상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지금 로인이 앉아있는 곳으로/두갈래 길이 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이/ 로인은 가고싶지 않다/ 그래도 죽음의 길로는/ 로인은 부득부득/ 앉아버틴다 제자리를 뭉개며 /얼마를 더 버티려고/ 정녕 고집부리지 마시고 어서 가시라해도/ 로인은 거절하며 오히려 자신의 낡은 철학을 푼다/로 삶에 대한 애착을 남김없이 표현하였으며 제일 마지막 련 /ㅡ날 그대로 두게 /죽음을 앞에 둔 늙은일수록 더 살고싶다네./에서는 인생에 대한 회유와 허전함, 공허함ㅡ그러한 인생에 대한 반추에서 오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을 즉 . , 사실주의 그대로 표현하여 어쩌면 쓸쓸하게  인생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끔 하는듯 하다. 필자가 알건대 강효삼선배님은 얼마전 사경에서 벗어나신줄로 알고 있는데 모쪼록 건강에 더욱 류의해가시면서 주옥같은 시작품들을 계속 써내시길 삼가 부탁 드리고 싶다.     모스 페컴(morse pekham)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 설파한적이 있다. 이여야 한다. 그럼 아래에 강효삼선배님의 를 조심스레 더 살펴보고 가도록 하자   한평생 락을 바라고 허위 허위 쫓았지만 그건 꿈에 본 신기루 쫓고 쫓아도 그냥 그만큼 멀리 있어 가다가다 지쳐누운 나지막한 산비탈에 허리 착 꼬부라진 늙은 비술나무 한구루 삼밭처럼 숨막히는 오두막 찢어진 문풍지를 비집고 젓가락처럼 새여드는 빛을 거친 피부에 바르던 못난 사나이였다 산해진미는 평생 팔자에 없어 다마토리 술 석잔 그것에도 취해서 목침베고 뽑는 가락은 그나마 앞에선 노래도 못 넘기고 가파론 산을 톱는 초부처럼 암벽을 쪼아대는 석공처럼 힘들고 아프게 흙을 뚜져 참께 기름같은 땀을 동이로 짜냈던 누렇게 말라도 독한 잎담배였던걸 그래도 때묻은 동저고리 옷고름 잡아 풀면 장작개비처럼 말라가는 가슴에도 남은 것은 비취색 하늘같이 깨끗한 마음  젖은 장작같이 바른 금 쫙쫙 서는 참나무였다 옹배기는 숭늉같이 근심과 걱정을 증발시키며 인내를 연덩이로 굳혀들고 굴종을 담배로 말아피우며 근로와 선을 새끼처럼 꼬아서 뒤로뒤로 넘겨주고 태여날 때처럼 맨주먹 저세상을 가시였다 아 흙을 앗기고 흙에 미쳐 흙을 찾아 지구를 류랑한 나그네 그때문에 고향도 혈육도 다 잃는 눈물에 젖은 무명수건아 무지와 순박 근로와 인내를 한데 버무려 소여물처럼 새김질한 늙은 황소여   전문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강효삼선배님의 를 수작(秀作)으로 생각한다.여기서/한평생 락을 바라고 허위 허위 쫓았지만 그건 꿈에 본 신기루 쫓고 쫓아도 그냥 그만큼 멀리 있어 가다가다 지쳐누운 나지막한 산비탈에 허리 착 꼬부라진 늙은 비술나무 한구루 /로 멋지게 베이스를 깔고 /산해진미는 평생 팔자에 없어 다마토리 술 석잔 그것에도 취해서 목침 베고 뽑은 가락은 그나마 앞에선 노래도 못넘기고/를 포인트로 단단히 골격을 이룬 이 시에서/옹배기는 숭늉같이 근심과 걱정을 증발시키며 인내를 연덩이로 굳혀들고 굴종을 담배로 말아피우며 근로와 선을 새끼처럼 꼬아서 뒤로뒤로 넘겨주고 태여날 때처럼 맨주먹 저세상을 가시였다/는 환유(欢喻)와 은유(隐喻)의  절정을 이루며 /아 흙을 앗기고 흙에 미쳐 흙을 찾아 지구를 류랑한 나그네/고향도 혈육도 다 잃은 눈물에 젖은 무명수건아/ 무지와 순박 근로와 인내를 한데 버무려 소여물처럼 새김질한 늙은 황소여/는 직유(直喻)와 비유(比喻)의 신기를 아낌없이 보여주는듯 하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도합 7련으로 나뉘였지만 산문시에 가까워 읽기에 조금 어려운 감이 드는듯하다.이외에도 강효삼선배님은 북방시단의 원로답게 북방의 산하(山河)와 향토문화, 고향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시리즈로 무려 37수나 련작시를 쓰신적이 있으시고 또한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도 많고도 많지만 여기서 시간상 관계로 일일히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무리하면서      북방시단에는 강효삼선배님과도 같으신 든든한 거목들이 계셨기에 문학기초는 상대적으로 다른 산재지방에 비해 많이 튼튼하였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어쩌면 망조가 들기 시작한 조선족문단 ㅡ이제 으로 찾아가면 웬 낯모를 타민족이 고 되묻는 세상 ㅡ 가령 40ㅡ50년후에도 조선족문단이 계속 존속하여 있다면 그때 가서 강효삼선배님의 현실주의, 사실주의기법으로 씌여진 주옥같은 시작품들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었을 명시였음을 아마 후세에 새롭게 재 평가될것 같다. 인심이 야박해서가 아니라 흔하면 누구나 수월하게 대하기 마련이고 금싸락같이 귀할때일수록 귀중한 보석이였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고  생각해 본다. 끝으로 강효삼선배님께서 여생에 더욱 큰 와 가 있으시길   두손 모아 빌면서 후배된 도리로 시 한수를 증정하려 한다. 필자의 수준상 관계로 간혹 서툴지라도 그냥 이쁘게 봐주시고 성의로 받아주셨으면 한다   시인 강효삼   머나 먼 북방 완달산기슭에 버섯같이 아담한 초가집 짓고 한일평생 흰 저고리에 흰 고무신 신고 백발이 성성한 시인 한분이 해마다 봄마다 민들레를 읊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입니다 그가 바로 입니다 그가 바로 조선민족시인 강효삼입니다 시인은 오늘도 노래를 부르네 2015년7월3일 흑룡강신문 발표  
7999    중국조선족 시인 윤청남 篇 댓글:  조회:425  추천:0  2024-08-23
옥녀늪에 와서 (외4수)/윤청남 2019년 07월 11일 08시 40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옥녀늪에 와서      윤청남 밭머리 먼 밭골에서 허리 굽혀 이삭을 줏다가 6월에 뜨는 꽃 누가 진달래라 할 것인고 손끝에 닿는 하늘 그 물의 원두에서도 우라고 했다 비가 내려 한결 축축한 날 고풍스런 구리거울에도 례외 없이 구름은 어려있었다 어디에도 실은 남아있지 않으리라 믿었던.   자작나무숲에서   네가 빨갈 때 나는 까맣고 네가 까말 때 나는 빨갛다 덮인 날 검은 흙에 해살은 살이 되여 천년을 넘어온 그리움의 바람이런가 수렁길에 설이 오른 소똥 식지 않은 물 남의 말소리 멀어지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는 사의에는 둥지를 튼 음악이 초원으로 여리다 어둠에 맞먹는 그늘 밑을 굴러가는 살 촘촘한 저 바퀴.   습 지   밀려온 것이 자작나무숲을 짠하게 한다 낮은 곳을 선택했다가 이렇게 하늘을 갔고 구름을 갔고 별을 숨기게 된 것이다 머문다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 수밖에 없는 저지대를 습하게 만든 것은 돌아갈 수 없는 물이다 새들의 지저귐에도 절반쯤 슬픔을 얹어준.   숭선 폭포   내가 아니라 너에 의해 얻어낸 멋 누가 시대를 택할 수 있겠냐만 운명은 너로 하여 달라져 있었다 미울 수 없는 농토 30리 구실이라면 어떠랴 너에게로 간다는 것 타고난 복이여라 그리움 천리를 허물고 두만강 둘이 하나로 되는 일은 숨기기 어려운 그림이였다.   상천벌   거북등 각골문 임금의 옥새 품도 품이려니와 물이 먼저니 올라선 두만강 꿈이라 하라 모내기 풍경은 지우지 못한 군함산 손톱눈에 흙이라 할가 얻어지는 것이 잃은 것을 덮을 수 있다면 가을에는 눈물 없이 마주설 수 있을지 그 뜰에 물이 들면 명경이 따로 없나니. /연변일보 2019년 6월 28일 발표 ====================================   힘들게 발표한 시 2020년 12월 15일 12시 01분   작성자: 윤청남                    평양랭면(1)                                      윤청남 오늘의 그림에는 과거도 미래도 섞일 수 없다고 했다 어둠을 사르는 정조로 영원을 노리는 어디에도 기대 살 수 없는 것이 별이라 했다 흙에 뿌리를 대이고 언어를 대신한 초불은 바람을 씹어 광명은 만든다 너를 청정하게 삭힌 태양은 고독이라 했다 풍만한 사상과 건전한 정감은 어둠 하나 벗는 순간의 정서라 했다 살아가는데 여유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2018.6.4.                                평양랭면(2)                                       윤청남 낯설지 않은 풍경을 거리와 대동강물에서 접할 수 있었다 유경호텔을 평양에서 으뜸가는 건물이라면 밤을 지배한 빛이 너를 얇게 썰어 말렸다 백이 되고 천이 돼도 결국은 다시 점 하나로 모여가 달이 됐다 내리는 봄은 야산 굽이굽이 모양을 지니지 않은 만큼 잔잔한 비에만 실릴 수 있는 서정이 밤을 흙으로 밑그림이 순한 음악을 대신했다                                      2018.7.7. 평양랭면(3)                                 윤청남 옥류관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 어이다 잡힌 조선의 미인이 간판을 유색하게 한다 몇억광년 품을 들이면 별에도 닿을 수 있다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경계를 넘어왔다 서늘한 숨결로 다가선 전자문명이 둘을 하나로 얽어줬다 보내려 해도 다시 보내지지 않는 너는 나와 석양을 함께 한다                             2018.7.8. 평양랭면(4)                                            윤청남 새 울음소리는 거울 밖에서 넘어오고 심플한 냄새가 하늘에 닿는데 한몫을 한다 산을 만나 물을 넘고 밀은 내가 멀어진 들에서 출렁였다 떠나 온지도 참 오래된 고장인데 어리광 부리는 바람을 다시 느꼈다 천지간에 그림을 바꿔 놓은 감았다 뜨는 눈이 나를 누르게 했다                                  2018.7.9. 평양랭면(5)                                               윤청남 너의 그림자는 있어도 너는 누굴 닮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하늘이다 수수한 언어로 불가한 거리를 줄였다 한컵의 물과 같은 군자와의 만남 어느 것과 같지 않은 것이 너다 너를 먹고 돌아앉아 이루지 못한 사랑을 떠올렸다                                            2018.6.5. 평양랭면 (6)                                      윤청남 유에 무란 말과 무에 유란 말을 씹어보게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사색하게 한다 먼 것이 가까운 것이고 가까운 것이 먼 것이란 것을 깨우치게 한다 돌아앉으면 눈앞에 있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2018.7.10.    평양랭면(7)                                       윤청남 밀이 골조 되고 메밀이 살 되어 일궈세운 건물 비우기가 아닌 한 몸 으깨진 뒤 자연과 환경을 널 키워낸 혼이랄 때 그리움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자(尺)는 눈물뿐이다 향기는 아픔과 맥락을 같이 한다                                 2018.5.15.  평양랭면(8)                                            윤청남 귀 눈 볼 살짝 들린 입귀를 넘어 상큼한 코신 콧마루까지 은근하다 담박하게 그려진 눈썹 하나의 곡선을 그릇이라 한다면 속히웠다 속혀 가는 련못에 바람과 달리 더디게 와서 느긋이 머무는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담담한 정서를 앞세운다 했을가 점 하나로 나를 향해 지금도 오는 것 물론 화가의 초월한 작품에 그칠 수도 있지만 내가 작아지는 만큼 커지는 달은 진한 그림자를 만든다                                      202011.24. 평양랭면(9)                                         윤청남 대동강을 사이하고 옥류관과 수상시장 단군릉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넘어온 평양성 날 저물어 짐을 푼 량강도호텔이 대동강 물에 둘러싸인 섬이란 것을 알게 되고 새 날을 맞는다는 것은 숨겨진 비밀을 헤친다 하기보다 깨여나는 자의 느낌을 대신하는 그림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손이 아니면 닫을 수 없는 것들 무엇으로 저 풍경을 바꿀 수 있겠는가 맑다는 것의 의미는 이슬 보다 큰 이슬이 이슬을 덮었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때는 봄 여백의 한끝을 철새가 끼룩끼룩 날아들고 있었다                                                 2018.7.9.   
7998    중국조선족 시인 림운호 篇 댓글:  조회:392  추천:0  2024-08-23
8월 (외 4수)/림운호 2019년 09월 18일 08시 39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8월     -림운호- 해빛이 무겁게 뚝뚝 떨어진다 장미가 몸을 활짝 열고 그의 원숙한 몸매를 뽐낸다 미풍에 하느작이면서   언덕 우 키 큰 나무이파리가 금빛으로 물든다 매미가 문득 울음을 멈추고 깊은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장미는 저만치 와 있는 9월의 찬바람을 알아채지 못한 채, 한껏- 여름날 향연에 부풀어있다.   장미빛 추억   저기 덩그라니 빈 교정에 장미빛 추억 하나가 그린 듯이 서있다 하나의 그윽한 눈빛이 장미를 훔친 찰나가   아직도 장미 한송이가 꿈처럼 피여있고 령혼이 넋을 놓은 그곳에 시간이 다한 듯 순간이 영원에 멈춰있다.   순 간   내가 너를 바라보고 네가 미소 짓는   순간,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고   얼은 빠지고…   순간에 영원히 멈췄다.   흰 장미   달빛 어스름한 나무가지 사이로 파랑 나비 한마리가 힘겨운 듯 겨우 앞을 날아간다 -어서 서둘러라, 나비야!   홀제 찬바람이 우당탕-불어오고 죽음이 무겁게 와 있다 장미 한송이가 갸날픈 빛 띠고 온몸을 부르르-떤다   아아, 여름 내내 지켜온 흰 장미여 낱낱이 지는 슬픔이여 이제 우리도 작별을 해야겠지 머잖아 온 숲이 지니까.   산 책   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락엽이 낮게 흩날린다 언덕길을 따라 한 로인이 시름없이 걸어간다   세상의 여기저기에는 삶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로인의 가슴에는 한줌의 불씨만 남아있다   그리고 바람에 저 지는 락엽에 외로운 가슴에 고독한 령혼에 천국의 손이 축 드리워져있다. /연변일보 2019년 8월 23일 발표
7997    중국조선족 시인 방태길 篇 댓글:  조회:430  추천:0  2024-08-23
고 향 (외4수)/방태길 2020년 05월 22일 10시 25분    작성자: 문학닷컴 고 향 (외4수) 방태길 나는 고향의 하늘에서 멀리 가는 기러기 본다 모든 것이 낯선 고향에서 내 맘도 새들같이 남쪽으로 간다   저녁노을 피는 저 더기서 보면 서있는 허수아비도 정답던 벌판이 개구리도 엄마 그려 울던 여름밤이 인제는 머얼리 구름산같이 사라지고…   내 친구 황소와 강아지와 닭들은 없고 들국화만 머리 들고 고향손님 반긴다 새들은 옛 주인 찾아 훨훨 날아들고 정답던 나무들은 복덩이 찾아 시내로 갔다   나는 빈 집터에 무덤처럼 앉아 신기루같이 사라진 고향 다시 그린다 고향도 젊을 땐 홍시처럼 고왔다 고향은 지금 도시에 가 빨갛게 익는가보다…   천당과 지옥 사이   뒤골목 삼촌집에서 소주 마시고 너부러져 꿈나라 산책하다가 천당과 지옥 사이 드나들었다   지옥에는 악한들이 참회하고 천당에는 친인들이 북 치며 신선 되여 춤추고 있었다   고통스레 지옥 간 이들도 빈몸으로 세상에 왔다 가고 구름 타고 천당 간 이들도 빈몸으로 세상에 왔다 갔다 한다   가슴에 차오르는 죄 하늘에 날리며 마음 비우고 사랑 키운 이는 구름 타고 천당에 가고 량반도 모질면 지옥에서 청해가고…   천당과 지옥은 한발작 사이라 한다 사랑과 증오도 한발작 사이 선량과 사악도 한발작 사이 인간과 짐승도 한발작 사이…   삼촌집에서 소주 반근 마시고 천당과 지옥 사이 드나들었다… 천당도 지옥도 안가고 지금은 인간세상 기분 좋게 살려 생각했다.   들꽃 2   베토벤 운명교향곡 들으며 들꽃의 운명 생각한다   푸른 언어 하늘에 날리며 운명에 항거하며 웃는 들꽃   누구도 꺾을 근심 없는 들꽃 도시의 농민공처럼 사라져도 그리움 모르는 존재인 들꽃   락락 장송처럼 짤릴 행운도 없고 굳은 바위처럼 기초 될 행도 없는 들꽃   공기같이 물같이 존재감 없는 이는 버려진 의자에서 밟혀도 웃는 들꽃 보며 자기의 운명이 들꽃 같다 한숨 쉰다.   록차  풀어   고향의 청청하늘 물에 풀어 고향의 산냄새 꽃냄새 물에 풀어 록차 풀어 그대께 드리옵니다   그리운 정 만나면 한번 폭취하려고 고향의 해달과 흐른 세월 말하려고 도수 높은 소주 준비했지만   흐릿한 세월 청청한 머리 잊지 말라고 혼탁한 세상 맑은 눈 가리우지 말라고 오늘은 록차 풀어 그대께 드립니다   어느 때 또다시 엄동세월 만나면 온몸이 얼어드는 엄동세월 만나면 도수 높은 소주로 추위 이깁시다   고향의 청청하늘 풀어 마시니 얼굴에는 맑은 웃음 꽃으로 피고 가슴에는 붉은 해 둥실 솟습니다.   꽃은 새벽을 낳았다   모지름에 울고 흐느끼며 피 뿌려 하늘에 노을 만들며 부엉이처럼 수많은 밤 먹으며 꽃은 새벽 낳았다   꽃의 피는 해빛 되여 솟구치고 꽃의 사상은 안개 되여 펼쳐지고 꽃의 사랑은 강물 되여 흐르고 꽃의 노래는 무지개 되여 날고…   꽃은 이렇게 새벽 낳았다   왜글왜글 떠들던 별무리가 세월의 주머니서 조용히 잠들 때 온몸을 박산내는 아픔 참으며 아프게 사랑하는 법 세상에 가르치며… 꽃은 이렇게 새벽 낳았다   꽃의 아픔은 운명이라 말할 때 꽃의 향기는 숙명이라 말할 때 맑은 미소로 절규 씹으며 피멍 들어 타오르는 구름 헤치며…   꽃은 이렇게 새벽 낳았다 꽃은 이렇게 태양 낳았다 꽃은 이렇게 우주 낳았다! /연변일보 
7996    중국조선족 시인 김경희 篇 댓글:  조회:412  추천:0  2024-08-23
거미줄 (외7수)/김경희 2021년 11월 12일 09시 41분  작성자: 문학닷컴 거미줄 (외7수) □ 김경희 낭창낭창 바람이 불어도 끊기지 않는 선의 미학   한뜸한뜸 무늬 잡은 엄마 사랑 꽃방석   허공중에 걸리여 그리움 자아낸다.   아빠향   바람에 하느작이는 귀룽나무 흰 잎사귀   바람타고 날아드는 실큼한 향기   어쩌면 희끗희끗 머리칼이 땀내 싣고 날리는가   마음 덥혀 안겨오는 아빠향.   그대 봄이 온다   그대 다가오는 소리에 풀잎은 푸른 물 머금고 여린 맘 활짝 열어 나막신 끌고 마중 나선다   의젓이 다가서는 그대 모습에 민들레는 노란  옷 받쳐입고 수집음에 젖어 이쁜 미소를 짓는다   그대 봄을 맞는다.   징검다리   물수제비 날리여 징검다리 놓는다 각일각 야위여가는 서산해를 지켜보며   유독 님만이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주홍시가 익어가는 사랑다리를 놓는다.   숲 사랑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려요 귀를 막고 눈을 열면 보여요 마음 안에 들어와 앉은 숲처럼 설레이는 사랑 울대마저 꼴깍이게 하는 그대 사랑이 이 한몸 다 녹여가요 사랑해요 가을 숲 그대   꽃에 담아보는 마음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생긴 빈 자리 하나   그 빈 자리에 구절초를 따다 심었다 주옥 같은 꽃 빈 마음 꽉 채워달라고   소금같이 귀한 사랑이였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되는 걸가   사무치는 사랑을 구절초에 담아본다. 별에서 온 사랑   창문 밖 빠끔히 지켜보는 작은 별 하나   작은 마음에 작은 별 하나 심는다   어느새 안기여주는 은은한 향기 한올   톡톡 뛰는 심장이 느끼고 살풋 웃는다   별의 사랑이여.   락화류수   피고 있는 꽃은 설음을 모른다 봄기운에 젖어 열창 할 뿐이다 부서지는 아픔을 겪을 때라야 는개 속을 헤매고 있었음을 느낀다 목청 떨어 웨치고 싶어도 이젠 동동 떠가는 상처부스러기들 뿐   아픔이 강물 덮고 흐른다. /연변일보 
7995    중국조선족 시인 방순애 篇 댓글:  조회:430  추천:0  2024-08-23
버드나무 동네(외4수)/방순애 2019년 07월 29일 06시 28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버드나무 동네(외4수)         - 방순애- 산촌 현관문  출석부를 달고 있다 신선 구름 알몸 문 열고 들어간다 가장자리에 앉은 바위 머리가 번뜩이여 산을 빛낸다   달이 웃을 때 그림자 뒷걸음치고 생각 굴리던 별 풀잎에 키스한다   진달래에 햇님 뜨고 퉁소 소리로 촌락은 아침을 입는다 시계바늘 분침 오늘도 백년 전 할배한테 카톡 전한다     가을 연가   엉킨 혈 매듭 강물 타고 졸졸 풀려   초록빛 다림 꾸겨진 마음을 펴고 일천 봉오리 눈에 들어와 점 된다   저 기러기떼 릴레이 경주를 하고 가슴의 불꽃은 하늘로 치솟는다   커피향기        젊은 바다는 보라 커피색의 바다 뱃머리에서 떠오르는 꿈의 파도   언어의 선박 돛을 올려 출항한다   그늘 스친 입술 토기에 입 맞춘다 칠선녀 옷 벗는 소리에 찰랑대는 소천지 차잔에 흘러든다     길 우   환하게 웃는 인터넷 튕겨오는 모니터 정원의 선들 건반 우에 떠있는 짙푸른 호수가에서 련꽃으로 핀다   삿갓 구름은 하늘이 모아온 정액 울컥 눈물이 작동한 하얀 빛 보석 트럭에 구슬 옷을 입히여 소풍하는 대지를 수놓는다   높은 산은 저울추다 기여가는 길과 강을 저울에 달고 련못에 내려와 하늘을 재단한다     황야      웅크린 나무 왕관을 벗어버리고 이끼 낀 바위돌 무지로 달려간다   별무리들 쏟아지는  황혼 사막의 메마른 호양나무들 동천 붉은 땅의 천년 꽃으로 된다   기복을 타는 락타가 백리 언덕을 주름잡는 구름 타고 삼라만상 얼굴에 핀 야청빛 짓눌렸던 광명을 늘군다 /료녕신문 2019년7월23일 발표 =================================================== 언어련금술의 화려한 탈변 그리고 무아의 기저에서 펼치는 환상의 랩들                       방순애 첫하이퍼시집에 부치는 편지                              평론 허창렬(허인)           이모저모 살펴보면서ㅡ      십여년을 문학과는 쭈욱 담을 쌓고 지내오다가 요즘들어 조심스레 살펴본 조선족시단은 말그대로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아직 생소하고 낯선 얼굴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특히 중견시인으로 어엿이 자리매김을 하고서 맹활약중인 김승종 ,김영건 ,조광명 , 한영남 등 시인의 변화는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며 또한 놀라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란 구경 무엇인가 ? 이 세상 그 누구도 가볍게 단 한마디로 정의(定义)를 내릴수 없는 이 간거한 작업을 그들은 나름대로 소화해냈으며 또한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로 한폭ㅡ 또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며 립체화며 수묵화를 개성있게 그려내고 있다. 는 말이 있다. 어쩌면 아직도 제 자리매김에 집착하고있는 여러 동우시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지않을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며칠전 필자는 연길에서 부쳐온 조선족시단의 첫하이퍼시집 방순애시인의 를 읽으면서 또 한번 크나 큰 충격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 언어련금술의 화려한 탈변, 그리고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 과거의 대아(对我), 자아(自我)의 뿌리깊은 관습으로부터 당당하게 해탈을 웨치며 한결 숨결이 자유로와지고 시야가 맑아진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지(境界)ㅡ 겸손이 철철 넘쳐나는 그녀와의 짧은 통화에서 필자는 하고 다시 한번 자신의 지나온 행보를 뒤돌아보지 않을수가 없었으며 늦게나마 새로운 변화를 결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필자가 알건대 방시인은 시공부를 시작한지 이제겨우 일년이 조금 지난 늦둥이시인이다. 평생을 경찰직에 몸담그고 살아온 그녀가 퇴직후 문학공부를 시작한데는 그녀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책을 내면서 그녀는 머리글에 이렇게 쓰고있다          시란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는 표현예술이다. 이미지는 사물성과 회화성을 추구하며 관념을 배척한다. 영국의 비평가 시드니(Sir Philip Sidney, 1554-1586)는‘시를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가르치고 즐겁게 할 목적을 가진 “말하는 그림”(speaking picture)이다.’라고 하였다. 그럼 여기서 알알이 통통 잘 여무른 88수로 엮여진 방순애시인의 금싸락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주옥같은 하이퍼시들을 잠깐 함께 살펴보자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 그리고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지에서 펼치는 환상의 바이브   수천개의 태양이 나무가지사이로 들어온다 태양줄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잎새들 땅구멍마다 숨어있는 진실을 본다   개미가 떡함지무대에서 댄스를 쳐댄다 무대등 달덩이는 가슴을 헤치며 내려오고 베짱이들은 악기들고 연주에 여념이 없는데 엿장수가 지나다 멍하니 보며 중얼거린다   태고의 텅 빈 배속에 희미한 생명의 맥박이 널뛰기하고 시간의 등에 업혀 굴러나온 생명이 따가운 태양을 마주하느라 시물거리는 눈     의 전문이다. 수천개의 태양과 거꾸로 매달려있는 잎새들이 땅구멍의 숨어있는 진실을 살펴보고 있다고 시작된 이 시의 텍스트는 단순구조가 아닌 다선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제목이 이지만 마치 한폭의 자연을 무아(无我)와 무의식(无意识) 그대로 그려놓은듯하여 독자들은 대나무숲사이로 수많은 해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느듯한 느낌을 받을수도 있으며 또한 한폭의 생동한 오감도(鸟感图)를 보는듯한 새로운 느낌을 준다. 여기서 다시점(多视点), 다초점(多瞧点)의 역할이 된 수천개의 태양, 개미 , 떡함지 , 댄스 ,달덩이 , 베짱이 , 엿장수 , 악기 , 널뛰기, 시물거리는 눈은 방시인의 숙련된 언어련금술을 통하여 서로 묘하게 새로운 조화를 이루면서 현시대 단순구조적 동화(同化)에 거부와 강한 저항의식이 깔린 다선구조로의 화려한 탈변을 선포하면서 환상적인 바이브와 랩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이 시는 최소한의 상황제시를 하면서 시적 분위기를 나름대로 고조시키려는 작자의 의도가 최소한의 개입이 되여 냉정한 지적 사색과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럼 하이퍼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잠간 하이퍼시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 함께 료해하여 보자! ‘하이퍼텍스트 문학’(Hypertext literature)은 하이퍼와 텍스트를 조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드 넬슨(Ted Nelson)이 만든 말이다. 단순구조가 아닌 다선구조시를 일종 하이퍼시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문덕수선생의 해석에 귀를 기울이면 꽤도가 올것같다. 문덕수는 [하이퍼(hyper)란‘과도(过渡)한’, ‘과다(过多)한’, ‘초월하여’, ‘넘어서’,‘3차원보다 높은’등의 의미로서 본래 그리스어에서의 일종의 련결어]라고 밝히면서 이렇게 해석하고있다.     [하이퍼는 본의의 세계에서 유의의 세계로 뛰여넘는(초월해서), 현실세계의 상식을 초과할 때 일컫는 일종의 하이퍼적특징이다. 이 사실을 부정 하는것은 시의 본질적구조자체를 부정하는것과 같다… 더불어 하이퍼시는 ‘’현실세계’’의 경계를 넘어서 불연속성적 균열을 초월하여 ‘’상상세계’’와 연결하는 작시에서 얻어진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하이퍼시는 초월세계와 연속하려고 하는 정신적, 언어적 운동이라고 할수가 있다.]     무릇 모더니즘이든 포스터니즘이든 레알리즘이든 휴머니즘이든 필자가 알건대 시는 시인의 체험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진술, 전달하는것이 절대로 아니다. 더불어 시인과 독자 사이에는 시적언어라는 매개물이 있으며 이 매개물 역시 의미전달의 구조가 또한 아니여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의미형성을 위한 언어구조일뿐이다. 어디까지나“시는 예술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인정한다면 전통시든 현대시든 또한 하이퍼시든 시는 단순히 시를 통하여 의미를 전달하려 하거나 전달받으려고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듯 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삶을 체험하게 하는 언어예술이 되여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여기서 방순애시인의 하이퍼시를 한수 더 보자   지구가 점을 본다 너무 커서 보면 볼수록 어지럽다 지구가 지레대로 점을 앞으로 민다 요지부동이다 지구가  등으로 점을 굴려본다 꿈적거리는것 같더니 또 굳어버린다   바람이 쇠스랑 들고 은하수를 긁어어본다 표피가 떨어졌다가도 또 새살이 나온다 태양이 은하수를 바줄로 묶어 던진다 뒤로 번져지는 시늉만 하고 다시 원래 자리에 온다   컴퓨터 불이 켜진다 하나하나 또 하나가 켜진다 반짝이들이 세계표면을 덮는다 지구가 들린다 지구가 달린다   전문이다       보다싶이 전례의 자의였던 타의였던 아니면 피의였던간에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오랜 세월동안 주류를 이어온 대아(对我), 자아(自我)의 흔적은 꼬리마저 찾아볼수조차 없고 불교에서 달관의 경지에서나 찾아봄직한 무주(无住) , 무득(无得) , 무소위(无所谓),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계(境界)에서 작자는 마치 우주와 자연과 자연스럽게 남의 이야기하듯이 녀성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펼쳐진 이 시적화자는 우리들에게 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문명의 산물인 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면서 로 현실적인 직시, 미래에 대한 불안정과 또한 불안함과 그러한 갈구, 생명운동을 다차원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 꼼꼼히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알수 있듯이 지구 , 지레대 , 잔등 , 바람 , 쇠스랑이 , 은하수 ,태양 , 바줄 , 컴퓨터ㅡ 등등 달라도 너무 다른 실물들이 이 시에서 직접 만나 방시인의 섬세한 가공을 거쳐 마침내 하이퍼시의 특유의 새로운 개성을 완성해나가면서 시적인 울림, 즉 허다한 공명과 긴 여운을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      재래로 시를 쓴다면 시적계기요 서두요 발전이요 결말이요 조응이요 하는 말들을 잘 살펴보아야 했다 오늘 시의 현주소도 그런 시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방순애시인이 쓴 시는 이런 언어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다. 또 기, 승, 전 ,결이라는 언어로 방시인의 시를 살펴본다는것은 아마 통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시인의 시는 이런 용어들과는 무관하다.방시인의 시는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시라고 함이 타당할것 같다. 이 시집의 시들은 이미지 토막과 토막의 배렬로서 그 토막과 토막들은 시작이자 결말이고 결말이자 시작이라 하겠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것처럼 시작과 끝이 없고 항상 중간뿐이다…       최룡관시인이 평론에서 한 말이다. 달인의 경지에 이른 옳바른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너무나도 작은 우리 조선족시단에서 내노라하는 시인들과 평론가들이 많지만 진정 후배양성과 현대시보급에서 서슴없이 자신의 마저 선뜻이 문학도들에게 내여줄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가? 이 점에서 나는 최룡관선배의 로고에 나름대로 큰 긍정을 하고 싶다.  /시간이 우리를 버리고 간다/칼바람이 심장을 찢고 그늘들이 모여 몸의 골수를 빼먹는다/흐르는 피는 왜 저토록 푸른걸가?/바이올린 현줄을 켜면 떠나간 아픔이 다시 와서 신경을 켜댄다/노을이 머리를 빠끔히 내밀며 흩어진 가슴을 몰아세운다/바라보는 한순간 두눈길은 멈추고 얼어붙은 등뼈에서 시린 정이 빠져나간다/메마른 가슴에서 백양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키울수 있을가?/어둠 저편에서 빤히 쳐다볼때 진달래 흐드러진 젊은 산이 내게로 와서 옷소매를 잡는다/문득 가슴이 부푸는 이 시각/초록빛하늘을 들이 마신다/   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는 특히 /어둠 저편에서 빤히 쳐다볼때 진달래 흐드러진 젊은 산이 내게로 와서 옷소매를 잡는다/와 /초록빛하늘을 들이 마신다/라는 이처럼 단단한 긍정어로 부재의 세상속에서 현실적 존재의 충일성을 노래하는것은 부재의 그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갈수 있는 시인의 강한 힘, 그것은 곧바로 시인의 맘속에 포근한 휴머니즘정신이 자리하고있기때문이 아닐가 생각된다. 따라서 시인의 그러한 휴머니즘정신은 더없이 랭철하고 명석한것이며 또한 자성(自醒)이 밑거름으로 안받침되여있다고도 생각된다. 제목이 이지만 보시다싶이 결말에서는 부푸는 가슴이며 초록색하늘이여서 희망이 보여서 좋다. 이 시 역시 최룡관시인이 말한것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것이 특징이라면 또한 특징으로 될것도 같다   파란 하늘에 둥둥 달려 있는 커다란 바위우에 번화한 도시가 앉아 있다               >   상아는 검은 색 옷을 입고 호화로운 요트에 앉아 입술에 노래를 담고 있다   멍청한 후렴은 고해의 값을 벌거벗은 자연에 치르고…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깃발을 든다               스님이 되여 앉아 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 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입은 닫겨있다         이러한 시구들은 방시인이 얼마나 언어련금술을 자유자재로 잘 다루고 있으며 또한 숙련되여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근거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보는이의 시각이 다 즐거워지고 둘째 촉각이 스스로 감미로와지고 셋째 미각이 어느새 시원해지는ㅡ더불어 이러한 시구들은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의 새로운 상징이며 또한 무아의 경지에서 오직 방순애시인만이 마음껏 펼칠수 있는 화려한 바이브이고 환상적인 랩이라고 한마디로 총괄하고싶다. 그럼 여기서 늦게나마 방순애시인이 이처럼 짧은 시간내에 크나 큰 성과를 이루어낸데 대하여 아낌없는 치하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폭력적조합과 옴니버스기법처리       시에서의 회화성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여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옴니버스(낯설게 하기)기법은 여러개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시의 새로운 구조를 선보이는 하이퍼시창작기법이다. ‘낯설게 하기’는 로만야콥슨 등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사물, 언어, 사건을 충돌하여 낯선 구조와 낯선 의미의 새로운 감각과 미의식을 추구하였던 리론이다. 옴니버스기법은 제목과 내용, 련과 련의 연결고리를 끊어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한다. 즉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하면 구조의 새로움, 의미의 새로움, 감각의 새로움이라는 하퍼시성립조건을 충족시킬수 있기깨문이였다. 그럼 여기서 방순애시인은 폭력적조합과 옴니버스기법을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잠깐 다시 살펴보고 가자     스님이 되여 앉아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 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 마음속에서 지줄대는 이야기는 강을 따라 흘러가고 무성한 이파리 매달려있는 줄거리들 줄줄 타래진다   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 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입은 닫겨 있다 무거운 입술을 열면 하늘중 심에서 우는 천둥소리 지심까지 들썩인다   작은 귀뿌리는 점점 커진다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 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전문       여기서 1련과 2련ㅡ 그리고 3련은 제각기 생판 다른 세 얼굴이다 , 달라도 서로 너무 다른 불협화음을 조성하는듯하지만(옴니버스기법처리) 마지막련의 제일 끝부분에서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와 절묘하게 어울려 돌아가면서 뜻밖의 아어효과(雅语效果)까지 창출해낸다. 흔히 진펄에 빠진 발걸음이 한결 무겁다로 표현하지만 방시인은 여기서 로 시를 느긋하게 마무리하면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펄속에서도 발걸음이 자유로운 바람과 바람을 타고 둥둥 떠가는 마음을 엿볼수 있게끔 한다. 얼핏 보면 상호 모순이 되는 어구이면서도 또한 얼마나 희망적인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안겨주고있는가? 이것이 방시인의 놀라운 재치가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여기서 폭력적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잠깐 더 살펴보자 . 스님 ㅡ 법글 ㅡ전설 ㅡ 강 ㅡ이파리 ㅡ 구름 ㅡ펜 ㅡ 입술 ㅡ 천둥 ㅡ귀뿌리 ㅡ열쇠 ㅡ진펄ㅡ 어찌면 제법 글깨나 쓴다하는 이름있는 시인들마저도 제대로 잇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걱정이 슬그머니 든다 . 이렇듯 언어련금술은 아무나 자유자재로 사용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 언어련금술은 제대로 장악한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기때문이다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기발을 든다 갈대숲은 겨울의 어둠속에서 하얀 불을 지펴 지가 낳은 뿌리를 지킨다    울창한 숲과 새들 그리고 나의 집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달은 구름속으로 숨어버린다 창백한 손은 이곳에서 떠다니는 거품을 거둬내고 무지개의 현에 맞춰 밤의 찬가를 부른다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우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              전문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기발을 든다”라고 서두를 뗀 이 작품은 마지막 련에서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우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고 마감하고 있다. 이는 자유의 혼이 구속의 쇠사슬을 박차고 아무런 구애없이 천애지각을 나름대로 미화해보려는 시인의 조심스런 양상인것 같다. 또 어딘가 모르게 본능에로 끌려가는 생명의 충동 그대로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제목이나 작중에 등장하는 여러 이미지가 암시해주는것은 과연 무엇일가는 독자마다 견해가 다를수도 있겠으나 이 시는 곱씹을수록 무언의 암시와 그런 색깔이 다분히 짙다고 필자는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총체적으로 방순애시인의 많은 하이퍼시는 한수 한수가 거의 환상적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가 완전무결하다는것은 절대 아니다./손에 들려 호강을 받을때/ 중에서/시베리아 풍차가 /장거리 려행을 떠난다/ 중에서 이러한 시구들은 표현이 너무 단순하고 형상적인 이미지보다 추상적인 이미지가 더욱 짙어 방순애시인의 특유의 시맛을 많이 떨어뜨리고 있다. 또 일부 시편이 주제가 모호하고 어디로 튈지 몰라 읽기에 불안한것도 더러 있다. 첫술에 배 부를수는 없다. 아무튼 다시한번 방순애시인이 짧은 시간내에 이룬 성과에 다함없는 성원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마무리하면서      조선족시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연변시단이나 북방시단(흑룡강)에 비해 료심시단은 아직도 개간중인 에 불과한것만 같다. 료녕조선문보 문예부간, 심양조선족문학회 기관지라고 할수 있는 잡지에서 가끔 생소한 얼굴들이 때때로 나타나긴 하지만 별로 읽을만한것이 적고 새로운 시도를 꿈꾸는 시인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하는 말이 있다 . 두꺼비 한번 눈섭을 찡그렸다 하여 금방 하늘이 흐려지는것도 아니건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바른 말 하기를 꺼려하며 또한 너무 회피하려고만 드는것은 아닐가?  혹시 가슴 깊숙히 간직한것이 향긋한 파인애플이 아니라 겉이 속보다 더 싱싱한 한알의 진렬된 사과알처럼 자신의 이미지에 기스라도 갈가봐 너무 전전긍긍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아픈 매가 어쩌면 문인이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촉매제가 되고 필연적인 파스효과가 되지 않을가 ? 그럼 여기서 료심시단 중견시인이라고 할수 있으며 십여년간 심양조선족문학회 회장으로 있다가 지금 다시 료녕조선문보 기자부주임으로 사업하고 있는 김창영시인의 시집 과 을 잠간 살펴보자   산은 나보고 산이 되라 하네 물은 나보고 물이 되라 하네   산앞에 산처럼 물앞에 물처럼   말을 버리네 고개 숙이네   전문   물은 나보고 흐르라고 하고 산은 나보고 거기, 서라고 하네 산속에 물이 흐르고 물속에 산이 있으니 나, 여기 오도 가도 못하고 뜬구름 더불어 바장임이여    김학송시인의 전문     김창영시인은 아마도 도를 딲고 있는상싶다. 시인지 감오문(感悟文)인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ㅡ 장춘식연구원이 김창영시인의 련작시 평론중에 한 말이다.      그럼 여기서 료동문학 호롱불금상 수상자와 대상수상자인 서정순씨와 편도현씨의 근작시도 살펴보자. 본문에서는 이들의 수상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근작시만을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며 더불어 아무런 폄하나 저의도 없음을 명백히 밝혀둔다    맨드라미(鸡冠花)     (심양)  서정순   올망졸망 장독대사이로   빠알간 벼슬만 내여놓은   수탉 한마리   사위오면 닭 잡아준다는   집주인 말에   제 먼저 놀라   장독사이에 숨죽이고   간이 달랑   빠끔히 내다보네 .시. 숙명   ㅡ어머니의 83세 생신을 맞으며    (심양)  편도현 그 흔하디 흔했던 밭머리의 흙도 아니였소이다 무너진 돌담밑에 얼기설기 그것도 아니였소이다 바위돌 틈새에 가는 실뿌리 훅€?불면 쓰러질듯 가냘픈 신세 그러나 질기디 질긴 그 힘은 쇠사슬처럼 강파르게 살았소이다 헐벗어 드러난 하얀 속살 눈물겹게 가슴 시린데 바위에 매달려 안간힘 쓰며 여린 새싹들을 키우는 크나큰 사랑 어설픈 삶 시작할 때 이른봄 서리찬 새벽하늘은 그리도 차거웠고 밤하늘에 우뢰 울고 비바람도 사나웠소이다 걸음걸음 피눈물 나도록 세상살이 너무도 고달팠소이다 밤이나 낮이나 따로없이 푸름을 이고지고 보듬으며 언제나 분주했던 그 세월 몸에 푹 배인 그 땀이 이슬되여 축축이 젖어왔소이다 그렇소이다 모진 세파 그속에서 죽을 힘을 다하여 살아왔소이다 한잎 두잎 푸름을 받들며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이 두편의 시 모두가 작년에 료녕조선문보
7994    중국조선족 시인 최화길 篇 댓글:  조회:419  추천:0  2024-08-23
아버지(외 9수)/최화길 2021년 12월 30일 10시 32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 비소리(외 9수) ▣ 시 / 최화길   아버지(외 9수)       칭송에는 쪽걸상 신세지만   자식 사랑엔 암장입니다       매끄러운 성격이 아니여서   호랑이라 불리우신 우리 아버지       평생 그 독한 배갈 맛을 즐기며   줄담배로 근심은 혼자 태웠습니다        머리 한번 살갑게 쓸어주지 않았어도   깊은 속으로 우려주신 진한 차향기        내 머리 희기 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입이 비뚤어지게 쓴 맛이 다가섭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름 활 터시고 가셨지만   당신이 오르셨던 산마루엔 노을이 곱게 비꼈습니다       어머니        내가 울면 어머니는 아프셨습니다   내가 아프면 어머니는 우셨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품을 나에게 다 내주셨습니다   내가 그 품을 떠나면서 비여버린 항아리        나의 체온 고이 간직한 그 품에서   된장은 숙성하고 김치는 익고…        머나먼 타향으로 엄마 체온은   한치의 차이 없이 송달되였습니다        아직도 철부지여서 무릎을 내주시는   자장가의 멜로디에 파도가 일렁입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하얀 메아리지만    내 가슴의 온돌은 아직도 따뜻합니다        아, 아 당신에게서 하늘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 땅도 알았습니다        안해       나의 선택 존중하고 아껴준 사람    살다보면 험한 꼴도 보여주었건만   약점까지 껴안은 무던한 사람        꽃 한송이 안겨주는 랑만조차 모르는   무뚝뚝한 어둠에도 밝게 웃을 줄 아는   세상에 이런 녀자 또 있을지 의심 드는 사람       ‘큰 애기’라 이르는 소박한 롱담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무궁한 크기 만큼    세상 끝까지 가도 다는 알 수 없는 사람        빛은 올올이 볼 수 없어도 밝고   공기는 만질 수 없어도 떠나서는 못사는      없는 듯 숨쉬는 생명의 기원이라 이르옵니다       남편        어느 한 위대한 녀성이 점지하여 얻은    평생 싫지 않은 자랑스러운 칭호       땡볕이 지지면 양산이 되고   폭우가 찌르면 우산이 되는 일        아홉을 주고도 주지 못한 하나로   평생 가슴 앓아야 하는 숙명        스스로 원하기에 원했기에    몸과 마음 다 태우는 피빛 노을이다        아들       사람들은 나와 판박이라 말하는데   성질머리 하난 나의 적수인 듯하다    사춘기 때는 내가 동을 가르키면    기어이 서쪽으로 빠지곤 했다        내가 자랄 때도 아버지와 저렇게 맞섰는지?   자신을 검토해도 답안이 없던 허허벌판         장가 가서 자식 하나 생기더니   어딘가 내 눈치 얼마간 아는 듯하다        아버지대 아버지라야 공언이 있는 건지?   아들이 알아줄가 하니 나는 할아버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들 키울 때보다   손주놈 키우는 재미 더 쏠쏠한 건…        이왕지사 어찌 됐든    래일의 배심 하나 두둑하다        며느리        나하고는 말도 잘 안 섞는   뚝뚝한 아들놈의 최고 선물       어쩜 아들놈이 타고 난 결함    미봉하려 우리 집에 온 천사        묘하게도 아들한테서 받은 서운함    비자루 챙겨들고 깨끗하게 청소한다       딱히 고운 데 없이 곱기만 하고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주고만 싶다       너로 하여 아들은 더는 무릎 아래 아니지만    너로 하여 아들을 빼앗긴 듯하기도 한데        그래도 그냥 벙글써 좋게만 생각되는 나   며느리 앞에서는 항상 바보상이 아닌지?       그럼에도 시름이 다 가셔진 듯    구름 한점 없는 하늘처럼 청정하다        딸        엄마 곱니? 아빠 곱니?   하는 동네분들 물음에       똑 부러지게    “아빠 더 곱다”고 대답한 딸이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나는 아들의 눈에 난 딸바보       시집가던 날 끝내 참지 못하고   어느 모퉁이서 엉엉 방성한 딸바보       사위를 질투할 만큼 어리석은 딸바보   사위를 하늘 높이 받쳐올린다       내가 고와하는 절반이라도    우리 딸 고와해라고 공연히 설친다         평생 퇴직 없는 행복한 직업    살뜰한 딸 가진 아버지!        사위       오직 존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 딸의 자아 선택        기대 이상으로 나보다 더    살가운 놈 낚아올렸어요        밉다고 보자 해도 미워지지 않는   피 한방울 섞지 않은 자식       하기에 내 앞에서 남편 질책할 때면   은근히 사위편이 되는 못난 장인        속심이야 콩밭에 두고 있지만    남자의 자존은 구길 수 없는 일        남자 대 남자로 짝꿍이 되여   술 한잔 나누어도 편해서 좋다        손군       내 성씨 타고 난 손군은    밉게 놀아도 고운데    사위 성씨 타고 난 손군은    곱게 놀아야 곱다       물론 겉으로 보건대는    차이가 별로 나지 않지만    두 손군 데리고 밖에 나가면    오른쪽에 친손군 왼쪽에 외손군        애들에겐 꼭 같은 할아버진데   어쩜 그렇게 유치할 수 있냐구요   가볍게 웃을 일이 아니옵니다    내 마음이 깜쪽같이 나를 속여요       그렇다고 딸도 서운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딸 시집 보내고 아들 장가 들어    할머니로 되는 그 날이면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거니깐!        선생님        엄마의 회초리 이어받으신   피를 섞지 않은 ‘엄마’   사랑 깊이 감추는 지혜로        비뚤게 쓴 글씨 바로 잡아주시고   넘어진 연유 차근차근 풀어주시며   심지에 불을 달아 어둠을 밝혔습니다        래일을 살자면 날개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아끼던 깃털마저 내게 주시고   내 몸에서 돋는 날개에 꽃을 피웠습니다        내 생애에 숨어 사는 꺼지지 않는 등불    파도에 기우뚱거릴 때마다 손잡으시는    당신은 나의 인생과 함께 약동하고 있습니다 《도라지》2021년 2기  (계정)
7993    중국조선족 시인 허옥진 篇 댓글:  조회:463  추천:0  2024-08-23
[시] 얼굴 (외 7수) ♦허옥진 2021년 05월 24일 09시 46분  작성자: 문학닷컴 ►얼굴   허옥진   시작도 끝도 없이 생겨나는 즙의 맛으로 우리는 맛의 빙점에 와있다   착즙기의 즙은 흘러넘치고 나는 당신의 빈방의 열쇠를 갖고 있다   당신은 끝없이 흘러내리고 이젠 나는 각종 맛을 인내할 수 있는  강아지의 여유로운 혀로 당신을 맘대로 핥아낼 수가 있다.   방의 축음기는 돌아가고   이 슬리퍼는 참으로 오래된 것인데   나는 슬리퍼를 벗어내치고 물이 떨어지는 수도꼭지를 닫는다   아,  멈출 수가 없어요 전 겨울이 싫어요 절 멈추게 한 지혜는 저  창밖에서   탕후루糖葫芦 파는 늙은이의 호주머니에 있어요   나는 장농 안에서 그의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본다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어요 저의 빛의 부스레기들을 저 새들이 쪼아간 지 오래돼요 아, 병치된 언저리에 피여나는 해바라기, 해바라기 명도明度에 잘린 해바라기 속 해바라기   여전히 축음기는 돌아가고 나는 담배를 피워문다   절 태우지 말아주세요 저의 령혼을 흡입하면 당신은 나의 령혼 속에 살게 될 거예요   빈방에서 당신의 냄새로 가득한 빈 침대에서    나는 길게 누워 잠재울 수 없는  당신을 손가락으로 다독이며 당신의 카텐을 내리우고 다시 일어나서  랭수 한컵 들이켜고....   2019. 12. 4     ►해바라기   허옥진   나를 따르는 그림자가 있지 자주 이런 꿈을 꾸게 돼 이건 요람이야 외마디 부르짖고 한층 기여 오르고 아니 이 분지는 넘 고요하고  스스로 분출될 우려를 갖고 있기도 해   꽉 껴안은 이 팔은 넝쿨같기도 하고 그 창턱을 기억해? 스스로 기어 오르다  꽃이 피고 지었던 질긴 틈  말라간 사이로 이빨이 생겼던 게야 지칠 줄 모르고 까고까고 까고   이 분수는 분출을 멈추지 않아 텅 비였던 광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이건 피난이야 비비고 들어선 건 너의 앞니였지   미소한 전률은 송수신되지 못한 수집된 기록일 뿐이야   오래 동안 광장은 넓고 외다리로 길어져 목 떨구고  하루종일 침묵을 보이고 고드름이  길게 발 아래로 내려가  길고 긴 엿의 맛을 내지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한테 혼란을 가져와 가방 속에 한줌 넣고 가 까고 까고 까고 공연히 방향판 속에 헛돌게 해   난 이 화판우의 그림을 찢고  다시 그려야 해   까맣게 타들어간  어두운 한줄기 둥 뜬 표정   2020. 3. 17     ►신발   허옥진   신발을 바꿔 신고 사시斜视의 방향으로 가 보았습니다 어긋났던 발걸음들이 기러기가 되여 한일자로 날고 있었습니다 벌어졌던 입을 모으는 순간이였습니다   내 안으로 후두둑 새떼들이 지퍼처럼 날아들며 우짖고 있었습니다   저리도 긴 세기의 줄을 흔들 수 있었을가 허나 줄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고여서 흐르는 먼 길의 진물들은  온몸을 화끈화끈 지지고 있었습니다 뼈의 락인이 된 아집들은 단단한 거였습니다   골수에 닿아 전파된  배와 노의 옆에는 노란 여우의 노린내가 십킬로메터를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코와 신발이 맞닿는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신, 그래도 그런 롱담이 좋은 거였습니다 슬그머니 밑바닥부터 꽉 껴안는 그런 느낌이    반쪽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난 반쪽이 됐습니다 더 높아질 수 없다면 땅이 높아지길 바랬습니다   작은 것이 좋다는 건 페허가 된 육중한 몸뚱이에서 처음 느꼈습니다   키의 축소판이 된 발자욱은 평생을 따라왔습니다 발가락은 여섯개의 혐의를 버리고 신발 안에서 꽁꽁 고부린 채 옹송그린 발톱의 넓다란 기슭을 허비고 있었습니다   얘야 더 판다면 쥐굴이란다 그럼  대신 새줄을 내려주세요   수많은 발가락들의 피아노 소리가 신발 안에서 울려나왔습니다 발가락들 발레가 시작되는 오후였습니다   2020. 1. 24     ►빨래    허옥진   우리들의 교는 씻겨지는 것이지요 수많은 옷들이 쌓여지고 있어요 보디가드 같은  단추들을 벗어난 일상들은 헐렁해져 있습니다 버티던 관절들은 사라지고 경직된 울타리들을 벗어난  하염없이 연연한 그리움 같습니다   우리가 씻길 수 있는 것은 단추와 같은 당신과 단추구멍 같은 내가 서로를 놓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잠은 깊습니다   때 먼지 속에 사라져간 아이가 있어요 꾀죄죄한 그 아이는 먼지처럼 작아졌지요 공기 속에 존재하고 있는 그 아이는  유령 같은 존재였습니다 익힌 발음 하나 구명의처럼 떠가고 있어요 비누물이 구름처럼 내 주위를 감싸죠.   오늘도 비눗물의 세례로 아침을 시작하지요 한알 두알 사탕처럼 모아둔 것들 녹고 있어요 발밑에도 흰 구름이 떠 있군요 우리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건가요   정오의 빛이  마술사의 금박 지팡이가 될 때까지 솟구치는 분수는 정수리 뒤에서 날개 가진 천사로 착각하게 만들죠   먹먹하게 그리움에 말리워 들어가면 또 한층 색 바래여 나와서는  우리는 건조증으로   가려움에 불타다가 또다시 씻겨지는 겁니다   말쑥한 세상에서 우리의 외로움은 때묻지않은 것이였습니다   2019. 10. 24     ►울타리   허옥진   륵골을 들어올려 우리는 가출하는 당신을  기러기, 해당화, 민들레, 맨드라미, 개똥벌레, 참나리로 한데 묶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흔들리는 풍경입니다   흐르려는 당신을 우리는 고요히 품어줘야 합니다   응고된 고집은  반맹증의 의혹을 갖게 할 테지만 다시 겹쓰기를 한다 해도 우리는 고집할 것입니다   몇번 흔들렸지만 박힌 교훈으로 더 든든해진 우리는 어깨 결은 사이좋은 자매입니다   이음새에 피는 벚꽃은 당신의 필사본에 늘어나지 않는 저금통장에 당신이 구겨서 던진 에이포용지에 송이송이 무럭무럭 핍니다   늘 순간에 멈춰서서 버텨내는 지정학적 교훈은 거세당한 척박한 땅에서 기름진 꿈입니다   우리는 개연성 근원의 모서리에서 탄생한 것 같은 자아 환각에 빠졌나 봅니다   한번 쯤 당신을 껴안고 왈쯔라도 신나게 춘다면 와인과도 같은 이 밤은  우리의 등을 너무나 어둡게 지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늘 한자리에 멈춰있는데 당신이든 나든 몰락의 순간에  서로를 버텨낼 수 있는 끈끈함입니다     ►모래   이 세상을 가장 깊이 알게 된 후로 우리 가슴 한켠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모래바람이 한껏 불고 난 후로 움켜쥔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한줌의 모래 만큼이나 우리는 서로가 모래임을 쑥스럽게 생각했다 흙에 묻힌 얼굴을 씻고 볼 일이다 기대려 하던 바보스러움과 서로가 상대방에게 스며들 수 없는 존재란 걸 알게 된 후로 우리는 서걱이는 몸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갈증에 타는 목으로 사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였다 하나의 군체로 모임이 필요했을 뿐 더 이상 풀을 재래울 수 있는 흙인 척 꾸미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우리는 더는 씻을 필요 없는 얼굴이.되였다. 탁자에서 굴러내리는 콩알 만큼 불어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한 후로  불어서 터져죽을 사랑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누군가의 젖은 바지가랭이에 묻어가는 우리일진 모르지만  말라서 털리우면 우리는 또  완전한 개체임을  수시로 깨쳐야만 했다 불도를 얻으러갔던 약속이란 단어마저  지우기로 했다. 해변가의 모래성답게 없는 것을 굳이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자尺안에 들어갈 만큼 큰 존재가 아니므로, 모래일 뿐이므로 한없이 바다가 그리웠다.   해빛 속에 반짝이고  물속에 부드러워지는  우리는 우리 대로의 고요함을 깨치기 위한 것일 뿐 황사마저도 바다로 가기 위한 몸부림인 것을 알았다 바다를 잉태하기 위한 련어의 억센 거스르기임을 알았다  모래 만큼이나 개인주의자의 껄끄러움을 감수하는 것이 종내는 맑아지는 것임을 알았다     ►꿈에 대하여                                     그것은 불타버린 여름의 내장 주체못 할 가을비의 설사 동면의 깊은 곬으로 흘러 나오는 빛의 여울 푸르름으로 늘어 가는 흙의 사설 지평의 혼솔기를 마선질 하는 분침의 재봉틀 흑색의 칠판위에 하얗게 움트는 아지랑이들 비닐안의 끝없는 속삭임으로 눈 뜨는 부풀림 신용을 어긴 신용 불랑자의 낙언 벼락을 향해 솟구치는 피뢰침 백만광년의 집착으로 시공을 뚫는 별의 송곳 수거함에 분리되는 계절의 배설물들로 알찬 열매들 그것은 초원, 뭉게구름 노트북, 일기장..... 무수한 변신을 꿈꾸는 너와 나  그런 우리들.. .  한곳에 모여 함께 광장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네 함께 노래하네 합창의 우렁참은 극단의 기둥을 타고 높은 지붕을 떠이고 불멸의 흐름을 예언하지 1234567 도레미파쏠라시 솜사탕처럼 늘어져야 지 풀무가 돌아가는 한 우리의  부피 뜯어간다 그래도 우리는 달디단 맛          2018. 7. 23 9시     ►진눈까비의 복허수에 대하여    너에게로 날아든다 새나 나비처럼 근대성 가까이  어둡게 너한테 침몰 되는 중 나는 나라고 말 할 수 없어 사라지기 위해 네가 나를 위한 생리대는  일년에 두번쯤은 족 해   복식의 방안으로  복허수复虚数의 실수는 나의 이중성을 떠나는 첫번째 계절이 되였다   자기 카드에 인출된 수량만큼 형태소形态素를 나타냈을 뿐 너의 류배지에서  채 해동되지 못한 표절된 허두가 나의 첫 음성으로  너에게로 반환되여 사라지는 중   설맹雪盲으로 지양 되지 못한 여백에 공명으로 슴슴해 진 언어의 혈액형들 더는 낭설로 너의 밑바닥까지 적시진 않아   잠언으로 환원되지 못한 계절의 쪼각들 환절의 어설픈 주성走性으로  너에 향한 회귀성은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푸르른 땅에 대한 그리움으로 될 수 있었다 [허옥진 략력]   화룡시 출생 연변작가협회 리사   수상경력: 제15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2017년 연변문학 문학상 수상 중국 조선족 청년작가 수필 우수상 두만강 여울소리 시 우수상 수상  
7992    중국조선족 시인 류춘옥 篇 댓글:  조회:480  추천:0  2024-08-23
'도쿄의 조선족'(외 4수)/류춘옥 /한영남 시평 2021년 09월 23일 10시 33분  작성자: 문학닷컴 한영남 시평 : 재팬 드림 그 실상과 허상에 대한 고발 및 디아스포라의 애환 류춘옥(柳春玉) 약력: 1978년 흑룡강성 녕안시 출생. 1998년 중국정법대학 수료. 2000년부터 일본 거주. 현재 일본 옥룡상사주식회사 전무 이사.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사무국장.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길림신문 수기상, ‘애심녀성컵’ 제4회 전국조선족여성 생활수기상, ‘청년생활’ 계림문화상 등 다수 수상. 도쿄의 조선족    나는 일본에 산다 세계 경제대국으로 꼽히는 아침의 나라 기모노를 입고 늘 생글거리는 미소가 하얀 백목련으로 아름다운 나라 이곳에서 나는 그 유명한 긴자거리를 옆집 쌍가매네집 놀러 가듯 동네돌이처럼 한다 초밥을 먹고 아사히를 마시며 사시미에 심취되기도 하지만 대화를 할라치면 발음부터 꼬인다 악센트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나는 이방인 어쩔 수 없는 이방인 당신 재팬? 아니요! 차이나? 아니요! 나는 재일 조선족입니다 조선족? 코리아?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나는 말입니다 중국 조선족입니다! 동그란 도쿄에서 도쿄가 세상 전부인 듯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알 수가 없으리라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형제들을 한반도에서 북만주로 갔다가 이제 개혁개방으로 일본까지 건너와 이렇게 오겡끼데스까를 중얼거리는 내가 중국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김치를 좋아하는 내 아이들이 때로는 아리랑을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도쿄의 유산 2020년 5월 29일 효고켄 타카라즈카시는 뉴스를 발표했다 효고켄 타카라즈카 시립병원에서 최후를 마감하신 90대 할머니께서 3580만엔을 병원에 기부하셨다고 했다 새로운 의료기기들을 구입해 더 많은 환자들한테 삶의 희망을 안겨주라는 따뜻한 말씀을 얹어서 90여 년의 긴 려정을 마치면서 소담한 꽃노을로 하늘 한 자락 곱게 물들이신 할머니 그날 락조는 무지개보다 아름다웠다   도쿄의 터널 어느 별에서 왔는지 전혀 관심이 없지요 오 나의 도쿄 네모 반듯한 미소만 넘치는 곳 칼로 자르듯 거절하지 않는 곳 누군가에게는 천국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겠지요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 아무도 물어주지 않아요 오 나의 도쿄 나의 항구 하소연은 귀등으로 스치네요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꽃피는 거리 누군가에게는 가족마저 잃어야 하는 곳 가을도 아닌데 해살만 눈부시고 겨울도 아닌데 찬바람이 부는 곳 죽음과 환생의 갈림길을 수없이 오가며 방황이 반칙으로 결론나는 곳 오 도쿄 오 나의 도쿄 나의 청춘의 터널이여   도쿄의 텃새 도쿄의 까마귀는 길조도 흉조도 아니고 그냥 텃새라 부른다 도쿄의 아침은 그 까악까악 소리에 열리고 이 텃새들은 까만 눈이 아닌 냄새로 먹이를 찾아헤맨다 그물을 덮어 길바닥에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덮치는 도심 속 무법자들 어둠이 춤 출 때에야 비로소 시큼한 입을 다시며 시커먼 하늘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도쿄는 매일마다 먹이를 찾아헤매는 텃새들의 보금자리이고 아침마다 잠 깨우는 까마귀 까마귀 남편과 새끼들을 먹이겠노라 아침부터 주방에서 분주한 나도 도쿄의 한 마리 텃새일가 이름만이라도 철새라 불리웠으면 언젠가 고향 돌아갈 아아 그 이름 철새 철새   도쿄의 파티 요즘 도쿄의 파티에는 맥주도 없고 와인도 없다 그 흔하디 흔한 신선한 사시미도 없고  꿀처럼 달달한 디저트도 없다 황량한 들판에서 말라가는 갈대처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누렇게 부스럭거리는  가을 국화들의 모임처럼  물 한모금 없이 목만 타들어간다 지난 해 바닥을 치던 무우값처럼 초대장 가격이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올해 하늘을 찌르던 마스크값처럼 초대받은 손님들의 생활이 활짝 피여난 것도 아니겠는데 봉투의 무게는 변함없고 어쩐지 선거권 한표가 늘 모자란 도쿄의 어눌한 파티   문학비평 재팬 드림 그 실상과 허상에 대한 고발 및 디아스포라의 애환 ㅡ 류춘옥시인의 도쿄시 시리즈에 부쳐    한영남   한영남 약력 : 한영남 1967년 길림성 안도 출생. 시, 소설, 수필, 실화, 평론 등 300여만자 발표. 소설집 , 장시집 등 출간. 중국조선족수필상, 중국조선족동시상, 중국조선족연해문학상,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흑룡강신문 랑시문학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흑룡강성소수민족문학상, 연변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등 다수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자유기고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아메라칸 드림(Amrican Dream)이라는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James Truslow Adams라는 작가가 쓴 『Epic of America(미국의 서사시)』(1931)라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배경은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열심히만 일하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결국 미국이민의 꿈으로 연결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꿈을 지향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일본 땅을 밟은 중국의 조선족들 역시 재팬 드림을 꿈꾸었고 아직 일본을 모를 때 그들에게 도쿄는 천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교육에만 물 젖어 있던 그들에게 자본주의 세계는 냉혹하기 그지없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혹자는 눈물을 삼키며 혹자는 침을 뱉으며 혹자는 엿을 먹이며 정이 들까 말까 하는 꿈의 천당을 떠나야 했다.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생리만을 고집하는 재팬이 인정머리 없는 고장이었고 다시 뒤돌아보고도 싶지 않은 지옥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성실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면서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2세 3세를 낳아 키우면서 그들만의 삶의 신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이라고 손쉽게 그런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들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풍토, 새로운 인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깨물어 삼키며 비로소 오늘의 생활을 가꾸어온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일본에 사는, 아니 도쿄에 사는 조선족으로서의 당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중국조선족들이 일본에서의 생활을 소설로, 수필로, 실화로, 기행문으로 적어왔지만 시문학으로, 그것도 를 꺼내들고 세상에 이름을 알려온 이는 일찍 없었다. 그 경이로운 작업을 류춘옥 시인은 해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서 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도 벌써 류춘옥 시인이 성공한 시인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도쿄시 시리즈 창작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1인으로서 이 시리즈에는 일본에서 재팬 드림을 위해 엎어지며 뒹굴며 몸부림쳐온 조선족들의 삶의 모습이 적라라하게 투영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구체적인 시작품에서 더욱 소상하게 밝히겠거니와 이와 같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시작품의 완성만을 위해 오롯이 제3자의 각도에서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 벌거벗고 세상의 수술대위에 오르는 행위에 다름 아니며 자신과 자기 주변 지인들의 아픈 상처에 메스를 들이대는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인 까닭이다. 어쨌거나 그 어려운 작업을 류춘옥 시인은 해냈고 그것이 이제 라는 타이틀로 우리 앞에 성큼 와주었다. 구체 작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자. 시 은 제목 자체부터 포장 따위를 걷어내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한테 앵글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그런가 하면 를 입고 을 먹으며 를 마시고 에 심취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일본인이 다 되어버린 듯 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발음을 들어보면 어김없는 이방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을 받는다. 일본인, 한국인으로 오해를 받을 때마다 반발처럼 치켜드는 것이 바로 라는 말이다. 못살고 낙후할망정 그것은 를 낳아 키워준 조국이요 고향인 까닭이다. 독자들은 시줄에 이끌려 이 대목까지 이르러서는 저도 모르게 뭉클해내는 심정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반성해보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숨김없이 까발린다. 도쿄가 세상 전부인듯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알 수가 없으리라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형제들을 한반도에서 북만주로 갔다가 이제 개혁개방으로 일본까지 건너와 이렇게 오겡끼데스까를 중얼거리는 내가 중국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김치를 좋아하는 내 아이들이 때로는 아리랑을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ㅡ 시 에서 재팬들의 포위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중국 조선족임을 밝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자랑스럽다. 가난하고 헐벗었다고 어머니가 아닐 수 없듯이 시인에게 있어 낙후하다고 해서 조국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거기에 이 시의 핵이 묻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은 폭발하면서 독자들한테 엄청난 파장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시 을 보기로 하자. 시에서는 뉴스를 생방송하고 있다. 뉴스를 발표하는 연 월 일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신빙성을 부여하고 뉴스시의 정의에 충실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이 뉴스시에 대해 일부 시인들은 사건에만 치중하면서 뉴스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류춘옥 시인은 뉴스시의 생명인 정확성을 확보해줌으로써 독자들의 믿음을 견인해내고 그로부터 독자와의 소통에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90대 할머니가 3580만엔을 병원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전부의 내용이다. 여기서도 구체적인 숫자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신빙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일본에 등 돌려버린 사람들한테도 따끔한 일침이 될 수 있는 시이다. 왜냐면 자본주의 사회가 냉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도 인정이 있고 가슴 따스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지극히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봤음을 증명해보인 셈이기도 하다. 시의 말미를 같이 보기로 하자. 90여 년의 긴 려정을 마치면서 소담한 꽃노을로 하늘 한 자락 곱게 물들이신 할머니 그날 락조는 무지개보다 아름다웠다 ㅡ 시 에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인정이 넘치고 선량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그리하여 이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굵고 큰 목소리가 아닌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 을 같이 걸어가 보기로 하자. 이 시야말로 도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를 냉철하게 객관화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시인은 이라는 간결한 시구로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들에 대한 총적인 인상을 집약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일 수 있는 일본 도쿄는 왜 시적 화자한테 이며 로 자리매김 되고 있을까. 그것은 청춘의 한 토막을 일본에서 생활의 지반을 닦기 위해 바쳐온 시인의 인생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일본에서 살아본 조선족이라면 혹은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시에서는 이라는 재미나는 표현을 만날 수 있다. 방황이 반칙이라면 그럼 반칙을 하지 말라는, 못한다는 말로 풀이되겠는데 그것은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그럴 것이다.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없이 겪었을 법한 생활이고 이유 불문하고 따라야 했던 무가내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시인은 더없이 냉철, 냉정 지어 냉혹하리만치 사정을 두지 않고 꼬집는다. 시에는 이와 같은 발상들이 숨어 있어야 시가 시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 를 구경해보자. 드디어 우리한테도 익숙한 새가 등장한다. 그런데 하필 까마귀이다. 우리는 대체로 까마귀를 보면 재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까마귀야말로 효조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까마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렇다면 시인의 눈에 비친 도쿄의 까마귀는 어떤 모습일까. 무법자들이다. 그리고 까마귀들이 번창하면서 다른 새들은 다 쫓겨버린 셈이고 그리하여 까마귀는 텃새로 군림한다. 그렇다면 는 어떤가. 나 역시 한 마리 에 불과한 것이다. 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시가 끝나도 괜찮은 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한 번 잡은 시상을 절대 허투루 놓치지 않는다. 결국 시인은 까마귀에서 라는 낱말을 떠올리고 이라는 낱말을 길어올리고 있다. 까마귀가 새삼스레 뭉클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시는 시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코로나사태가 터진 다음 창작된 것으로 헤아려진다. 는 파티라니? 왜 그런 황당한 일이 생겨야 하는 것일까. 황량한 들판에서 말라가는 갈대처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누렇게 부스럭거리는  가을 국화들의 모임처럼 ㅡ 시 에서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파티는 스산하기 짝이 없다. 현실고발형의 시는 아무래도 가슴 아픈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백안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시인이다. 그런 현실을 폭로 비판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견인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는 코로나시대의 한 단면을 파티라는 특정 모임을 빌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는 이나 등의 말들로 현장감을 긴장시키고 있으며 등의 시구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할수무가내한 삶의 측면에도 렌즈를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이상 류춘옥 시인의 를 살펴보았다. 긍정적인 것은 시인의 도쿄시 시리즈가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도쿄에서의 조선족들의 삶에 서치라이트를 켜댈지 모르지만 라는 타이틀을 처음 내건 시인이라는 점과 시들이 점차 성숙되고 완숙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가 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코리안 드림, 아메리칸 드림, 재팬 드림 등 꿈을 위해 새로운 터전을 찾는 이들에게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류춘옥 시인의 도쿄시 시리즈는 미래지향적이며 건전한 시행보가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좋은 시를 써준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시인의 보다 성숙된 도쿄시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1년 8월 할빈에서
7991    중국조선족 시인 김선희 篇 댓글:  조회:467  추천:0  2024-08-23
가을앓이(외 6수)/ 김선희(윤형) /평론 두편 2021년 10월 29일 09시 00분  작성자: 문학닷컴   ►가을앓이     윤형  (김선희)   더이상 청운의 빛을 더듬지마라 몸살을 앓는 꽃들의 빛깔만으로는  생의 진수를 가늠할수없기에 달빛의 밋밋한 숨결을 받아들여야지 바람에 흩어지는 숲의 아우성처럼 뿌리 내리지못한 잎새들의 비명이 무너지고나면 옹이를 품은 천년송목*에도 피빛 저녁노을이 물살져오더라 그 차분하면서도 벅찬 윤슬앞에 나는 늘 가슴 텅 빈 죄인이 된다 육신에 스며드는 푸른 어둠이다가 만개한 빛자락의 여백이다가 가을은 천상의 향기를 남겨놓은채 저문 들녘의 침묵속으로 휘영휘영 나를 끌고 가는구나   달이 기우는것을 탓하지마라   * 송목 = 松木明子     ►채워도 채워지지않는것    세상의 한끝이다 허상들만 가득찬 도시의 언저리에 피빛을 태우다 남은 노을이 진다 붐비는 인파속에서도 날개안으로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시의 자세를 스케치해본다 이방인에게 쉽게 허락하지않는 하늘과 땅속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길이 열릴것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다보면 꿈을 향한 구멍들은 열릴수있을가 색이 바랜 달이 뜰때쯤 작은 부끄러움마저 여미고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싶지만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없다   채워도 채워지지않는 가슴 빈자리     ► 락화의 흔적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지축을 울리며 뼈들이 부서지는 소리 마지막 울음마저 토해버린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 한바탕 소나기 지나고나면 날개잃은 새들처럼 꽃이 추락한다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을 가슴 깊이에까지 끌어모아 품은것 이상으로 생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앞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될가 락하하는 순간 탈바꿈하며 한톨의 씨앗이되어 탄생을 알리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여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시린 가슴으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뭉클해지는 엄마의 살내음이 뿌리 깊은 숨결로 꽃을 피우고있었네 울다 지는 부상화(扶桑花)꽃잎처럼 굽이굽이 차오르는 여러겹의 빛깔사이 그대의 능선을 딛고  그대의 강을 넘어  억겹으로 요동치는 생의 빛살이 내게로 전해지고있었네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는 내렸네 싸리문 너머로 멈추듯 흐르던  부드러운 샘이  바위끝 심장을 뚫고있었네 빛 고운  엄마의 치마자락이 천상의 날개를 펼치고있었네     ►돌의 아리아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영겁의 시간 몸 속 응어리는 슬픈 구멍으로 뚫리고 가장 먼곳으로부터 달려와 반겨주던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있습니다 더 이상 낮아질수없는 육신은 담벼락 기여드는 잎새처럼 한잎 두잎 석화들이 모여 작은 위로를 주지만 그것 또한 옛노래처럼 흘러갈듯 아파도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슬퍼도 가랑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 고개를 쑤욱 쳐들고싶지만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 인과율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채 만추 끝자락에 촛대바위로  멈춰섰습니다   찌든 내 껍질은 어둠의 뿌리에 헝클어지고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  오늘도 가난한 뻐구기는 울다갑니다     ►석류   유리창 너머로  석류가 아프게 매달려있다 몇오리 바람이 찾아와 무어라 귀엣말 전해주듯 찌르륵 찌르륵 어디선가  풀벌레소리 땅을 울리고있다 떨어지면  금새 눈물날것만 같아   유리창 밖 ! 우주를 손바닥에 내려놓은 잎새 하나 햇살이 감겨들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황칠나무     태줄 묻어  몸의 조각들을 어둠속에 깔아놓았습니다 얽혀있는 매듭들을  노오란 수액으로  한올씩 풀어내며 버려야할 세상 찌꺼기들을 걸러냈습니다    천혜의 숨결이 닿는곳에 여울치는 물살에 씻기다 주상절리의 넉두리에 귀를 잃다 세상의 빛에 뿌리를 내린다지요   나무잎 흔들릴때 천년의 달은 어둠을 더듬어 지상에서 가장 령롱한 열매를 맺습니다   꽃은 꽃으로만 피지않고 나무는 바람에게 길을 묻지않습니다. 김선희 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연변시인협회 회원 시 《비》중국조선족명시집에 수록.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 참석. 시집 《석빙화》출간 아래 김선희 시에 대한 두편의 평론을 게재한다.   ▣ 비평 / 우상렬 생명, 혈연, 현대성 찍고―     윤형(김선희)의 근작시를 몇수 읊어보았다. 생명노래가 가장 진하게 울려퍼진다.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가 이에 해당한다.   〈락화의 흔적〉을 좀 보자. 여기서 〈락화의 흔적〉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한톨의 씨앗이 되여 / 탄생을 알리는 /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다. 그것은 죽으면서 삶을 잉태하는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다. 그런데 이런 변증법은 처절한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를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한 생명의 승화에 다름 아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딛고 탄생한다.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 되겠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생명탄생의 보편적인 리치다. 이 시는 바로 이런 생명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홍시〉를 좀 보자. 여기서 ‘홍시’는 생명의 상징. 그것은 ‘초불 같은 심장’을 가진 뜨거운 존재. 그리고 생명의 ‘새빨간 생각을 주고 받’는 존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허위와 거짓존재는 존재할 여지가 없다. “주변을 강타하던 무수한 소문들은 / 스멀스멀 그림자로 멀어져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가지마다 감도는 / 생의 물결이여 / 빛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라”에서 생명의 고양은 최고도에 달한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불행하고 아픈 존재들을 보듬고 감싸안는다. “물오르는 참꽃들의 애환과 / 비슬산 울다간 동박새의 꿈과 / 숲으로 돌아가고픈 / 령토들의 아픈 심사까지도 / 뜨겁게 감싸 안아준”다고 하지 않던가. 아름다운 기원을 한다. “서서히 타오르는 땡볕의 품으로 / 새빨간 날개를 활짝 펼치라”하지 않던가. ‘새빨간 날개’, 그것은 생명의 날개여라! 〈홍시〉는 생명의 찬가,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기원을 노래하고 있다.    〈원일초〉를 좀 보자. 여기서 생명은 ‘아기 꾀꼬리들’로 상징된다. 한 겨울 “아기 꾀꼬리들 뽀시시 / 날개짓을 시도한다”. 그런데 “푸르름은 아득하고 / 다른 세포들을 흔들어 깨우기에는 / 아직 밤이 길다”. 그리고 “부리를 쪼아 새 계절을 불러오고 싶지만 / 길을 열어간다는 것이 / 천년고목에 꽃을 피우듯 / 숨 가쁜 일”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다. “시나브로 날개짓에 익숙해질 때 쯤 / 하늘을 쪼개볼려”는 포부를 갖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원일초―설련화처럼 눈속에서 아름답게 피여나는 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의 끈질긴 힘, 생명의 역경 및 희망, 포부를 노래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를 좀 보자. 여기서 바람의 언덕은 어떤 곳인가? 그 곳은 ‘꽃을 피우는 곳’. 이 시는 령토, 바다, 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령토는 ‘가을 들녘을 살찌우’고 바다는 ‘전설 같은 매듭을 풀어내’며 섬은 ‘작은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령토는 물산, 바다는 정신, 섬은 천, 지, 인 합일의 문화를 지향하면서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결국 ‘꽃을 피우는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이 펼쳐지는 인생,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노래하고 있다.    혈연, 피는 무엇보다 진한 것이다. 인간은 혈연의 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혈연 가운데서도 부모자식 간의 정이 가장 끈끈하다. 따라서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기도 한다. 김선희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노래한 시를 좀 보자.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을 좀 보자. 여기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누가 보이지? 엄마가 보인다. 그런데 엄마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그 살내음이 뭉클해지게도 한다. 엄마는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가 되여 내렸고 ‘부드러운 샘’이 되여 ‘바위 끝 심장을 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엄마는 ‘뿌리 깊은 숨결’로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끈질긴 생명의 희생과 헌신으로 생명을 보듬고 키우며 인생을 마감하는 엄마를 노래하고 있다.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이 어머니의 노래였다면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은 아버지의 노래이다. ‘겨울에 피는 꽃잎’은 누구지? 아버지! 아버지는 바로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 사셨다. 그럼 ‘겨울에 피는 꽃잎’은 무엇이지? 그것은 희망이고 행복이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바람에도 빛을 잃지 않”았고, “허허로운 벌판에서도 씨앗을 키워오셨”으며 “엄동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주시”였고 “세상의 빛을 당겨주셨”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등대고 생명이고 스승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내 비여있는 길에 / 영생의 빛을 열어주고 계신”다.   현대성, 우리 인류가 고대를 넘어 추구해온 삶의 지표. 현재는 포스트모던시대라 현대성도 어지간히 실현된 듯하다. 그런데 삐긋 문제가 생긴 듯하다. 애초에 문제성을 내포한 현대성임에라! 적어도 과학성과 도덕성의 괴리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 범위에서 현대성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문학도 례외가 아니다. 이른바 모더니즘문학은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김선희의 시도 이런 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좀 보자. 여기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가슴 빈자리’. 그럼 왜 가슴이 비지?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여린 손’만큼 가냘프다. 그리고 ‘이방인’이다. 철저히 소외되고 주변화된 이방인이다. 그는 ‘세상의 한끝’에 서 있지 않은가. 그리고 ‘허상들만 가득 찬 도시의 언저리’에 말이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그를 품어줄 곳은 아무 곳도 없다. 한 쪼각의 하늘과 땅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하여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 길이 열릴 것 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기 때문이다. ‘꿈을 향한 구멍들’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색이 바랜 달이 뜰 때 쯤’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의 기대는 간절한 만큼 처절하다. 둥근 달이라도 모르겠는데 ‘색이 바랜 달’, 흰 구름 두둥실도 모르겠는데 ‘희미한 뜬 구름’이 아닌가. 그것은 애초에 허무맹랑한 기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라도 잡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이 시는 도시에 융합될 수 없는 한 이방인을 통해 현대 도시생활의 소외(異化)를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 응당 있어야 될 소통과 온정, 융합이 증발된 사막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현 단계 현대성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세계 보편적으로 보다 더 거론되고 있는 모더니즘문학의 기본주제와 통하고 있다.       현대성의 문제는 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지막지한 ‘과학성’에 의한 자연의 황페화로도 나타난다. 생태평형파괴,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생태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문제로 되였다. 세계의 지성들이 여기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문학에서는 세계적인 범위에서 생태주의문학이 산생되였다. 김선희도 이 생태주의문학에 동참하고 있다.   〈네모나방〉을 좀 보자.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현재 세계는 하나로 얼기설기 련결되여있다. 세계 한쪽 끝의 미세한 움직임이더라도 그것이 파노라마처럼 번져가며 결국 다른 한쪽 끝의 큰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효과일 때는 더 없이 반가운 것이겠지만 도노미현상을 일으키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 시작 “천애지각 땅끝마을에서 / 너는 반갑지 않은 기별처럼 왔구나”는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반 시에 관통된 이상한 ‘네모나방’의 상징이미지가 이것을 밑받침해주고 있다. ‘만신창’이 되여 ‘천지간을 켜켜이 들추’는 네모나방, ‘시나브로 모닥불이 서서히 피여오르’면 쉬여야 정상이건만 ‘어둠의 발자국’의 재촉 때문에 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네모나방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가여운 미물’인 것이다. 여기에 시적 자아는 ‘너만의 계절을 담은 / 안식처에로 날아가 주’기를 기원한다. 이것은 모든 존재가 자기의 ‘안식처’로 돌아가 이 세상이 정상적인 질서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기원에 다름 아니다. 보다시피 이 시는 미물인 네모나방을 다룬 것 같지만 실은 생태평형 및 세계질서라는 거창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 단계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생태주의라는 세계적 담론에 가닿고 있다.    윤형의 근작시 몇수를 생명, 혈연, 현대성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모두 만만치 않은 담론들이다. 영원성을 띠는 담론이기도 하다. 그녀의 근작시의 1차적 의미는 여기서 찾게 된다. 그녀의 시는 긍정적이고 밝아서 좋다. 요새 말로 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에게 있어서 생명은 시련은 있어도 굴복은 없다. 그것은 죽음조차 딛고 일어나는 끈질김을 갖고 있거늘! 그녀에게 있어서 혈연은 생명의 깊은 뿌리를 알려주고 생명의 영원한 등대가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대성은 문제가 있으되 우리가 그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반성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윤형의 근작시 가운데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 같은 생명 관련 시는 현대 상징시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지 및 이미저리를 통하여 전반 시의 상징적인 경지를 잘 엮어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볼 때 〈바람의 언덕에서〉의 ‘꽃’, ‘령토’, ‘바다’, ‘섬’이미지의 상징적 의미 및 ‘비여있는 바람’, ‘시린 령토’, ‘허기진 생각’과 같은 역설적 표현이 돋보인다.   그리고 혈연, 현대성 관련 시는 사실주의적으로 흐르되 상징적 이미지 및 이미저리로 잘 엮어져 시의 의미적 내연의 함축성을 확보하고 감칠맛을 돋구며 현대시의 격을 잘 갖추고 있다.   그녀의 근작시에는 일부 문제점도 노정하고 있다. 례컨대 〈홍시〉나 〈바람의 언덕에서〉의 일부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좀 자연스럽지 못하고 생경하며 난삽하다. 그리고 〈원일초〉의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론리적으로 좀 긴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근작시는 그녀의 끊임없는 시탐구에서의 새로운 한페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녀의 시탐구는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시의 녀신과 함께 달리고 있거늘!  《도라지》2019년 6호 br /> ▣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김선희의 꽃과 바람과 빛과 그리고 시--         박  은  희(일본)       “돌의 아리아(외7수)”는 김선희시인이 대한민국방문길에 들고 돌아온 선물인듯 하다. 물론 독자들을 위한 귀한 선물이기도 하겠지만,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바람의 언덕”)이였으니 시인 자신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기도 한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꽃’과 ‘바람’, 그리고 ‘빛’을 모티프로 서로 내적 련관성이 있는 8수의 시를 하나의 정체적인 작품, ‘나를 찾기’ 려정(旅情)시라고도 볼 수 있다.        회화성(繪畵性)과 서정성이 강한 뚜렷한 특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려정(旅程)에서 만나는 절경은 시인의 시정(詩情)을 불러일으키고 시인은 감정적색채가 짙은 언어와 적절한 수사법으로 산수풍경을 리얼하게 재현시키면서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격정을 토로한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에서 주관과 개관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된 존재인 것이 아니라 객관속에서 주관을 찾고 주관으로 개관을 확인하는, 서로 밀접히 련결된 존재이다.       아니무스의 심상—초대바위   첫 시 “돌의 아리아”는 외7수의 내용을 통괄(統括)하고 있다. 19행의 제1련과 5행의 제2련으로 구성되였지만 제1련과 제2련은 물리적인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제1련의 노을속에 서있는 낮은 초대바위와, 그와 좀 떨어진 곳에 있을, 제2련의 초화언덕의 시들어 가는 꽃, 그리고 뻐꾸기는 모두 시인 자신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하고 시인은 누군가에게 호소하는듯한 높은 격조와, ‘슬픈 구멍’, ‘피빛 노을’등 간잡적표현이나 ‘아파도’, ‘슬퍼도’등 직접적표현으로 된 짙은 감정적색채를 띤 언어로 풍경을 그리고 력사를 읊고 있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만추 끝자락에 초대바위로/멈춰섰습니다’하고 의인화하여 초대바위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본다. 소설가든지 수필가든지 시인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들이 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간에 독자는 그 표현에서 표현자의 심층심리를 엿볼 수 있다.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에서 돌이나 바위, 철같이 단단하고 강한 것이나 탑이나 기둥같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흔히 남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꽃처럼 여리고 아름다운 것은 녀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표현되여 왔다. 심층심리학에서도 각기 남성성과 녀성성으로 풀이하고 있다. ‘초대바위’와 ‘꽃’을 구성상 대칭적으로 배치한 것이 김선희시인의 의식적인 것이였는지 무의식적인 것이였는지를 막론하고 여기서 심층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초대바위’는 시인의 아니무스(animus)의 심상(心像)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녀성의 내계(內界)에 존재하는 남성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성상이란 꼭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공이나 신분, 권력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들어가고 있는 ‘꽃’은 즉 인생의 꽃시절을 끝마치고 있는 녀성상이다. 녀성상은 남성상과는 상대적인 것을 의미한다.       50후나 60후의 녀성이라면 남존녀비사상을 가진 부모의 밑에서 자랐거나 혹은 중남경녀의 부조리한 취급을 당한적이 있을 것이다. 녀자로 태여났기에 이루지 못했던 일, 얻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기도 했다. 하여 ‘몸속 웅어리는/슬픈 구멍으로 뚫’렸다. 그러나 시인은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 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항거할 수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다시 정리해 말하면 시인인 ‘나’(‘가난한 뻐꾸기’)가, 녀자로서의 인생의 꽃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시들어가는 꽃)가, 지금 이 시각 이 곳에서 지난 반생을 인생의 세파속에서 씻기고 구멍 뚫리여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육신’이 된 ‘나’(초대바람)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고(울고) 있다.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돌의 아리아”에서 시인은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하고 해가 서서히 져가거나 이미 진 뒤의 붉은 노을과, 져가는 꽃을 읊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지기시작하기 직전에 가장 원만하고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기에 지는 순간이 장렬하고 강렬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 두번 다시 볼 수 없기에 져가는 모습이 귀중하고 아름답운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애석하고 슬프고 아픈 것이다. 이것이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첫 시에 이어 시인은 두번째 시 “석류”에서 원숙한나머지 미풍이 불기만 해도, 아니면 풀벌레 울음소리가 나기만 해도 당장 떨어질 것만 같은 석류를 그리고 있다. 시 “석류”의 제1련은 유리창안이고 제2련은 유리창밖이다. 이 유리창은 시적주인공의 감정 즉 주관이다. 유리창너머로 석류의 원숙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어지게 될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시적주인공의 마음은 아프다. 이런 감정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면 ‘눈물 날 것만 같’다. 하여 마음의 유리창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거기에는 우주가 있고 해살이 있다. 시적주인공은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시인은 세번째 시 “황칠나무”에서 ‘원숙’과 ‘짐’(또는 死)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보여준다. 마지막 련의 ‘꽃은 꽃으로만 피지 않고/나무는 바람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는 명언이다. 꽃시절이 끝났다고 하여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지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부(富)의 상징인 황칠나무는 껍질에 상처를 주면 노란색 진액을 흘러낸다고 하는데 그 노란 수액은 도료로 쓰이고 뿌리, 가지, 껍질, 잎,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고 열매가 떨어진다고 비통해할 일이 아니다. 황칠나무가 사시절 귀중하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어느 시절이 또한 귀중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천혜의 숨결이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성스러운 나무를 의인화하여 노래하고 있다.       다음, ‘나무는 바람3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를 이어 시인은 시 “바람의 언덕”을 쓴다. 사실 ‘바람’은 첫시의 ‘바람1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돌의 아리아”)에서 ‘몇 오리 바람2이 찾아와/무어라 귀속말 전해주듯’(“석류”)로 이어져 내려왔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을 읽음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로 된다. 상술한바와 같이 ‘바람3’은 ‘외부적 영향’을 의미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바람1’은 사회적이나 가정적, 또는 정치적으로 인한 인생세파 혹은 타자 등, 즉 ‘외부적 압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람2’는 자연으로서의 바람, 또는 ‘외부적 압력’이다. “바람의 언덕”의 ‘바람4’은 위의 모든 의미를 포함함과 동시에 ‘내부적 갈등’의 의미가 첨부된다. 제1련의 ‘바람은 다가오는 봄을 막지 못하지/밑창마저 뜯긴 해살이/마른 풀잎을 꺾는 걸 본 적 있는가’는 위에서 렬거한 의미로 읽을수 있다. 제2련의 ‘뒤틀려버린 뿌리까지 가는 동안/심장판막 넘나들다/안팎으로 찢어지고 부서지고’는 ‘외적인 압력(또는 영향)’이 ‘내부적 갈등’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갈등에 의하여 생겨난 수많은 ‘나’들이 초봄에 파란 새잎이 돋기전인 겨울에 피는 산수유꽃으로 피고 있다.       무언가 얻으려는 확답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시인은 잠시 “산다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산다는 건/꽃을 벙을게 하려고/흩어진 수액의 줄기를 모으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꽃’은 성공이나 명예를 상징하는 것일가? 제3련의 ‘신열을 앓다/생의 몇바퀴 돌고서야/운무를 헤집고 만개하는 꽃불의 넉두리’를 읽고나면 비로서 ‘운무’(無知, 迷)의 상대적 의미로서의 ‘앎(知, 悟)’을 의미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끝으로시인은 ‘어떤 경우에도/길 밖의 길 앞에 헤매지 마라’고 호소한다. 길은 한자로 ‘道’로 쓴다. 특정된 어느 한 종교의 리치라기보다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로 해석하고 따라서 ‘꽃’은 불교에서 쓰이는 련꽃의 상징적 의미를 따온 시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앎’에 대한 각성은 “바람의 언덕”의 ‘빈 가슴으로 울던 억새 앞에/무심코 쳐다 본 하늘/그 중후의 빛갈을 느끼게 된 건/불혹의 지나서 한참 후였지’에서 ‘불혹’의 상대적 의미로 쓰인 하늘의 ‘빛갈’에서부터 전개되여 왔다. 아직은 그저 ‘느끼게 된’ 단계이다. 사실 전 시편에 관통되여 있는 이 ‘빛’이 또한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이다. “겨울 해변에서”의 해변은 그야말로 빛의 세계이다. ‘여울 치다 얼어붙은 저 물빛’, ‘극과 극으로 만난 령혼의 빛’, ‘물을 강타하는/저 역겹의 해살’,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빛’. 이 ‘빛’들이 즉 ‘앎’이다. 이 ‘앎’으로 하여 모든 슬픔을 물아낼 수 있고, 모든 풍문들의 매듭을 풀 수 있고, 모든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포옹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찾아헤맸던 ‘나’는 어디로 가고 ‘앎’이 남았는가? ‘나’는 어디에도 없고 또 어디에나 있다. 다만 ‘없다’ 혹은 ‘있다’고 깨닫는 ‘앎’에 의하여 존재한다.        시 “겨을 철쭉”은 첫시 “돌의 아리아”에 대응되는 작품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헌화가”에는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동행하던 절세미인 수로부인이 벼랑끝에 피여난 꽃에 반하였는데 누구도 꺽어다 줄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에 지나가던 한 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꺾어와 노래를 부르며 바쳤다는 에피소드가 적혀있다. 그 꽃이 철쭉이고 그로부터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락조의 후광속에 한겨울의 맹추위에 몸부림치는 철쭉은 피빛 노을속에 세찬 바람에 구멍 뚫린 초대바위와 영상(映像)적으로 조응되고 또한 아니무스의 심상에 대응되는 시적형상이다. ‘다시 누군가에게 돌아갈 때는/꽃으로 남지 않으리!’, 어디까지나 시인 개인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명언이다. 한 녀성으로서 꽃시절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인생의 한 계절을 떠나보내고 홀가분히 다음 한 계절을 맞이하려는 결단이다.        시인 김선희의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은 인생의 환절기에 아픔과 슬픔에 ‘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앎’으로 ‘나’를 확인하는 려정이였다. 이와 같은 인생과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 인간 김선희의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그리고 시(詩)    “돌의 아리아”에서 시작하여 “겨울 철쭉”으로 끝나도 구조상 내용상 완벽한데 시인은 위 7수의 서정시와는 전혀 다른 서사시 “오늘의 담시”를 추가한다. 담시(譚詩)는 물론 서사시에 속하겠지만 유럽의 발라드의 영향을 받아 정착된 전통적 서사시와는 달리 더욱 자유롭고 짧은 것이 특징이다. “오늘의 담시”는 텍스트(정확히는 위의 서정시)밖의 시인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우선 텍스트밖의 시인의 일상언어는 ‘내 핸드폰 안 챙겼슴다!’와 같이 연변방언이다. 서정시의 엄밀한 계산에 의하여 선택된 시어와는 다르다. 다음, 생사를 구분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담시의 시적화자 ‘내’는 무의식지간에 시를 쓰기 위한 재료나 초고가 들어있을 일기노트와 필기장들, 그리고 노트북보다는 먼저 려권과 돈지갑을 들고 도망친다. ‘나’를 찾는 려정에서 헤매이고 있는 서정시의 시적주인공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이다. 거듭 되풀이되는 대사는 마자막끝에  ‘—과연 뭐다 그리 중한지?!’로 매듭되면서 사고의 여지와 여운을 남긴다.    김선희시인이 담시를 부가하여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를 보여주려고 한 것은 서정시의 구조와 내용에 대한 보다 깊은 리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였는가 생각된다. “돌의 아리아”를 비롯한 7수의 서정시의 구조는 초령역적인 심적(心的)구조이다. 자연령역과 인류령역의 사이, 의식령역과 무의식령역 사이, 내적령역과 외적령역의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마음의 구조이다. 대문에 상징성이 강하다. 한 사물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로 중첩된 것이다. 될수록 여러가지 가능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여 읽으면 시적세계가 보다 넓어지게 된다.    김선희시인의 ‘나를 찾기’ 려정시를 읽고나면 의사(擬似)체험을 했다기보다는 시적주인공의 마음과 마음을 겹쳐서 실제에 가까운 체험을 한듯한 느낌이 든다. ‘나’가 이 순간 무슨 감정인지 인츰 깨닫는 ‘앎’에 의하여 ‘나’를 잃지 않는 것은 삶의 지혜이다   /연변문학 2020년 9월호
7990    중국조선족 시인 김성우 篇 댓글:  조회:468  추천:0  2024-08-23
《시경》과 술문화/ 김성우 2022년 02월 23일 10시 18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경》과 술문화 김성우   중국의 술문화 현상을 최초로 문학작품에 진실하게 묘사하고 반영한 것이 바로《시경(诗经)》이다.    중국 고대사회에서 생활의 ‘백과전서’라고까지 불리는《시경》에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민속문화 내용이 담겨져있어 후세의 민속문화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를 제시해주고 있다. 특히 술에 대한 시가 아주 많은데 술을 빚고 마시고 하는 옛사람들의 생활이 폭넓게 반영되여있다. 술을 언급한 시만도 50수가 넘는데 그중 한수만 맛 보기로 하자.    안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된 시〈권이(卷耳)〉는 도꼬마리 뜯는 녀인의 갖가지 상상을 통하여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더해가는 시름을 술로써 풀려 한다.    저기 가파른 바위산에 올라가려니  내 말은 지쳐서 휘청거리네  나도 잠간 청동술잔에 술을 따라서  오래된 이 그리움 잊어나 볼가  (陟彼崔嵬,我马虺隤。 我姑酌彼金罍,维以不永怀。)    저 가파른 산등성이에 올라가려니  말이 지쳐서 털빛이 검누렇게 되였네  내 잠간 소뿔잔에 술을 따라서  오래된 이내 시름 달래나 볼가  (陟彼高冈,我马玄黃。 我姑酌彼兕觥,维以不永伤)   간추린 통계에 의하면《시경》에 술 ‘주(酒)’자가 나오는 곳만 60여곳이 된다. 그중〈아(雅)〉에서만 50여곳이 된다. 시경에는 술의 뜻으로 씌여진 글자가 ‘주(酒)’뿐만 아니라 ‘례(醴)’, ‘고(酤)’ 등 여러 글자들이 있다. 이외 제사를 지내고 연회를 베풀고 하는 등 술과 관련된 내용만 해도 100여곳이나 된다. 그리고 제사에 쓰이는 술 기명들의 명칭도 수태 나온다.     중국 고전문학에서 시 300편으로 사실주의문학의 시조로 추앙받는《시경》이 이렇듯 술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술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일부 학자들은 지어 “《시경》은 ‘주경(酒经)’이다.”라고도 말한다. 일찍 청조 때의 학자인 요제항(姚际恒) 은《시경통론》에서  “《시경》의〈빈풍 칠월(豳风ㆍ七月)〉은 마치 한권의 술에 관한 경전 같다.”고 말한바 있다.    《시경》에서 술은 또한 ‘지주(旨酒)’, ‘청주(清酒)’, ‘시주 (酾酒)’ 등으로 감칠맛 있게 노래되고 있다.    옛날,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과 제사였다. 술이 당시 제사 같은 아주 중요한 행사에 씌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여기에서의 경로의 뜻은 한층 더 경건한 것이리라.    술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확실한 정설이 없으나 동방에서 문자기재로 가장 일찍한 것은 갑골문의 표기인데 거기서 술은 ‘유(酉)’로, 즉 용기모양으로 새겨져있다. 그런데 갑골문의 대부분 내용은 제사와 점복이다. 그러니 사실상 술은 썩 더 이전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술은 신의 음식으로 신과 통하는 매개로 작용하였기에 부족내에서 술을 관할하는 자 역시 그 신임과 지위가 대단하였다. 부족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추장’이라는 의미의 ‘추(酋)’ 자도 술(酒)과 련계되여있고 술을 관할하는 자는 ‘대추(大酋)’로 불리였다. 그러고 보면 ‘존경’의 높을 ‘존(尊)’도 술과 관계가 있은 것은 물론 높직하고 굵직한 행사에는 모두 술이 돌려졌던 것이다.        옛날(은나라와 주나라 시기) 술은 전부 알곡 혹은 과일류로 빚어진 것이였다.    《시경》에는 술이 제사에 쓰이는 대목이 많은데 제사외에도〈빈풍 칠월〉처럼 농가의 로인을 공양하는 장면에도 나오고 있다. 주나라에서도 음주가 성하였는데 이는 농업의 자급자족으로 알곡생산의 풍요로움과도 관계가 되며 특히 지금 말로 하면 산 사람을 위한 술의 양생학적 기능에 대한 연구가 발전한 것과도 관계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시경》에는 술과 더불어 이제는 귀신을 즐겁게 하는 것외에도 산 사람의 수명을 축원하는 단어들도 나온다.   ‘만수무강(万寿无疆)’이니 ‘수고만년(寿考万年)’ 같은 말들 모두가 술과 함께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으니〈빈풍 칠월〉의 ‘봄술’이 겨울에 빚어서 봄에 걸러 마시는, 한자로 ‘醪(료)’라고 하는 것으로 바로 우리말의 ‘막걸리’라는 것이다. /계정
7989    중국조선족 시인 김영능 篇 댓글:  조회:503  추천:0  2024-08-23
김영능 시-자가용(외 7수)/시평 한영남 2021년 12월 14일 09시 58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자가용(외 7수)-김영능(《도라지》2020년 5기) ▣ 시 / 김영능 자가용(외 7수)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 어리둥절 알고도 모를 일이다   네가 배가 곯아서 헐떡거리면 말이 없어도 때를 어기지 않고 주머니를 털어 배불리 먹여주고   네가 고단하여 탈이 나면 지체없이 병원으로 모셔가서 오장륙부 검진 치료하고   너의 모양새가 허름하게 얼룩이 지면 대중 모욕탕에 모시고 가서 안팎을 깨끗이 샤워 시키고   네가 동서남북 눈치 없이 앉을 자리 갈 자리 헛갈리면 내가 벌점을 먹고   네가 급한 성격 덤벼치며 앞뒤 꽁문 접촉 사고를 내면 내가 벌금을 당해야 하고   네가 장부 호걸 깡패행세 재산인명 큰일을 저지르면 내가 감옥으로 가야 하니   피땀으로 애써 모은 돈 수없이 밀어넣었는데 또 얼마를 말아먹어야 하는가   아차하면 재산을 탕진하고 가문이 망하고 인생이 끝장 나는 판   도대체 알고도 모를 일이다 누가 주인인지 누가 노복인지   그래도 너들 무리들 큰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만 빵빵 치고 싸다니니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 거꾸로 살아야만 하는 세월 알고도 모를 일 너무도 많아   삼색등이 색망이고 밤낮이 삭갈리고 하늘땅이 헛갈린다   시라지   한 뿌리 한 혈줄 한 족속인데   익고 여물어 하얗게 속대 탱탱 살아난 놈들 빠알간 맛갈양념 꽃단장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가 식탁무대에 올라서는데   바람을 막아주고 먼지 오물 뒤집어쓰며 애지중지 품어주며   껍데기 울타리로 퍼어렇게 멍이 들어 후줄근 꼴기 없으니   새끼줄에 목 졸리여 엄동설한 칼바람 속 사랑채 이영새에 교수형   피가 마르고 뼈가 삭아서 눈물마저 거덜이 났구나   록차   맑고 투명하여 거짓 없다 순결하고 뜨거운 가슴에 무작정 뛰여들었어요   야위고 여린 한몸 짜릿한 몸부림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어요   따가움으로 살이 터질 듯 뼈 속까지 타들어가는 정열 온몸이 녹아 무너지는데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정은 아픔이였어요 사랑은 죽음이였어요   그래도 후회없이 마지막 숨결로 향기를 주고 싶어요   풀이고 싶다   꽃이 아니고 풀이고 싶다   화사하여 나비들한테 밟히우고 허비우고 사방의 눈총질에 고달프고   요염하여 벌들한테 쏘이고 할키우고 팔방의 발길질에 아프고   짙은 체취로 바람의 품에 안겨 벌님네 혼을 앗아가고 나비님 얼을 홀려가며 순진한 봄날을 희롱하고 무심한 세월을 간지르는   한순간 피였다 지는 가녀린 꽃이 아니라 한결같이 푸르른 이름 없는 작은 풀이고 싶다   수증기   나의 족속들은 아래로 낮은 곳으로만 찾아가는데 나는 우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나의 사촌 비방울은 구중천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깨여져 땅 속에 스며들고   나의 팔촌 우박들도 구름차에서 뛰여내려 분신쇄골 부서져 흙 속에 사라지고   나의 본가집 하천강물들도 밤낮 구을러 바다에 침전되여 자취를 감추는데   나만은 훨훨 하늘을 날아 자유자재로 자유를 즐긴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올라갈 수 있는 한정된 자유의 세상   더 올라가면 사촌처럼 팔촌처럼 곤두박질 나뒹굴고 만단다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신들메 조여매고 톺아오른다 정상을 노리고   욕망의 구렁이 릉선을 기여오른다 희망의 꽃너울 가발로 둘러쓰고   새소리 흘러보내고 꽃구경 제쳐놓고 비지땀 쥐여짜고 가쁜 숨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서서 앞을 살펴보니 더 높은 봉우리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네   끝없이 오르고 싶은 욕구 오금이 저려나는데 올라온 가파름보다 내려갈 골짜기 더 깊구나   솜구름   할아버지 한숨 하아얗게 숨 가쁘게 서리여   할아버지 산소 뒤산마루 오솔길에 꼬부랑 허리로 서성거린다   떠나가버린 수십성상 차마 잊을 수 없어 오늘도 이마에 손을 얹었는가   쓰라린 설음 함박으로 쏟아붓던 키 낮은 초가삼간   룡마루가 주저앉고 구새통이 기울어지고 쑥대가 무성한데   황소의 영각소리 꿀꿀이 떼질소리 수닭의 홰치는 소리   바람이 쓸어갔나 비물이 씻어갔나 세월이 잡아갔나   뭉게뭉게 솜구름 하아얀 수염발 날리며 마른 눈물 휘뿌린다   자욱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이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이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짭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비평-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한영남(《도라지》2020년 5기)     ▣ 비평 / 한영남 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 ―김영능시인의 근작시를 모티브로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한마디 하자. 시는 생활가운데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다시 예술적 승화를 시켜서야 비로소 시로 완성된다고 한다. 요즘 많이 퇴색해버린 운률까지 넣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하겠다.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하는 리유가 있다. 왜냐하면 낡은 터에서 이밥 먹는 소리라고 픽픽 웃는 분들도 결국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 이밥을 다시 찾게 되는 까닭이다. 시는 생활을 떠날 수 없다. 생활에 대해 눈을 감고 오로지 상상만으로 시를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의 머리속에 반영된 것은 생활 자체이고 그것이 상상력의 작용하에 아무리 희한하게 변형된다 하더라도 결국 생활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을 반영한다고 해서 생활을 그대로 사진 찍듯이 옮겨온다면 그 역시 시로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까닭이다.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글은 마치 날개가 없는 봉황과 흡사하다. 봉황이 날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라. 거기에 무슨 뭇새들의 왕이라는 이름이 걸맞을 것인가. 한마디로 시는 생활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예술적 승화를 시켜주어야 시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만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조선족 중견시인 김영능선생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에서 어떻게 시가 채집되고 어떻게 예술적 승화가 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자가용〉이라는 시는 그야말로 생활에 밀착한 시이다.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라는 아기자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연 시는 시종 자가용을 ‘너’라는 이인칭으로 지칭하면서 자가용과 주인의 관계를 풀어나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듯 보살펴도 쩍하면 벌점, 벌금이 차례지니 그야말로 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복인지 모를 일이다. 이 시점에서 시인은 평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일갈한다. 시비가 전도되고 선이 손해 보고 악이 오히려 호통치는 일부 사회부조리에 시원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시는 가장 일반적인 생활의 한 모퉁이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아기자기하게 풀어나가다가 반전으로 예술적 매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생활의 묘미가 시의 묘미로 거듭나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시라지〉 역시 순수 소박한 우리 삶의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두고 자못 유머러스하게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간다고 엉너리를 부린다. 그러나 “새끼줄에 목 졸리여 / 엄동설한 칼바람 속”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는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너무 홀대한 것은 아닌지. 독자들의 반성을 견인해내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피가 마르고 / 뼈가 삭아서 / 눈물마저 거덜이 났”다고 끌어올림으로써 우리 민족의 애환과 매치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기승전결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시라고 해야겠다. 〈록차〉를 마셔보자. 시는 우선 록차의 속성으로부터 출발해 본론으로의 접근을 꾀한다. 단 이 시에서 시인은 록차의 각도에서 시를 전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록차가 뜨거운 물속에서 우려지는 과정이 극명하게 안겨오면서도 록차의 심경이 되여 저으기 안쓰럽게 여겨진다. 4련에서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 정은 아픔이였어요 / 사랑은 죽음이였어요”라고 직접적 주정토로를 함으로써 록차의 깨달음으로부터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백미는 “그래도 후회없이 / 중략 / 향기를 주고 싶어요”라는 그 간절한 소망에 있다. 록차는 사랑을 위해 뜨거움 속에도 용감히 뛰여들었고, 짜릿한 몸부림도 치고, 온몸이 녹아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행위가 결국 사랑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래도 향기 한점 주었다는데서 안도하는 여기에 시인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풀이고 싶다〉를 보자. 요란하고 화사하고 떠받들리는 고운 꽃보다 눈총질, 발길질에 아픈 풀이고 싶은 리유는 무엇일가. 그것은 한결같이 푸르다는 풀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상의 란타를 당해도 오로지 푸름을 떠이고 사는 풀로 행복하다는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시세계관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자연을 쓰되 인간의 삶과 매치시키고 거기에 생명의 숨결이 흐르게 하는 여기에 김영능시인의 범상치 않은 시적 재주가 돋보이는 것이리라. 〈수증기〉는 기체, 액체, 고체로서의 물의 세가지 상태를 둘러싸고 시가 전개되고 있다. 유머와 위트가 없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아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시에서도 김영능시인의 능청스런 어투가 위불없이 드러나 시에 맛소스를 쳐주고 있다. 물의 세가지 상태를 ‘사촌’이니 ‘팔촌’이니 ‘본가집’이니 지칭해서는 친근감과 더불어 독자들의 입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리게 만든다. 그런데 생활의 론리가 사개 맞게 들어맞는 것을 독자들은 놀랍게 발견해야 한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 올라갈 수 있”다는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세상사람들한테 던져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니였을가. 〈등산〉도 소박한 서두가 깊은 인생철리를 견인해내는 시이다. 1, 2, 3련에서는 등산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련히 겪게 되는 사정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골똘하다. 그러나 4련에 이르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정상에 올라서서 / 앞을 살펴보니 / 더 높은 봉우리 /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는 것이다. 이 산에 오르면 저 산이 높아보인다는 말도 있고 산 우에 산이 있다는 말도 있다. 옳고 옳고 옳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시적 발견을 해내고 있다. “올라온 가파름보다 / 내려갈 골짜기 더 깊”다는 이것이야말로 김영능시인만이 해낼 수 있는 시적 발견이요 이 시적 발견이야말로 이 시를 더욱 시중의 시로 거듭나게 해주는 화룡점정이라 해야겠다. 〈솜구름〉을 바라보기로 하자. 시인은 하늘에 떠있는 솜구름 하나를 보고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보고 있다. 그의 눈망울로 수십 성상 세월이 아프리카 반마처럼 줄달음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제 “바람이 쓸어갔나 / 비물이 씻어갔나 / 세월이 잡아갔나” 보이지도 않고 솜구름만이 마른 눈물을 휘뿌리고 있다. 고래희의 시인은 솜구름 한송이를 보고도 인생을 반추해보고 삶의 부족점들을 반성해보고 있는가 보다. 시 〈자욱〉 역시 비금한 맥락의 시로 분류된다. 시 전문을 옮겨보자.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히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은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 시 〈자욱〉 전문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시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고도 많다. 그러나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감지하고 어차피 묻혀버릴 인생이지만 누구나 나름대로 열심히 깊고 옅고 바르고 비뚠 자욱들을 만들어오는 바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이야기라고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단념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인은 땀과 눈물과 피물로 ‘새 삶을 반죽한다’고 소리높이 호매롭게 웨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폭풍 속에서 가련하게 움츠리는 갈매기, 가가르, 펭긴 등 새들을 비웃으며 오연하게 창공을 그 날개짓으로 찢어대던 저 고리끼의 해연의 노래와 얼마나 닮아있는 것인가. 건강하고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삶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리라. 이상 김영능시인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이 어떻게 시로 환원되고 생명력을 획득하는지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지만 최근에 들어 김영능시인은 달관의 경지에서 인생을 관조하면서 지나온 삶의 궤적을 반추해보이고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는 시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것은 시가 생활을 떠날 수 없고 예술적 승화 없이는 시의 완성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아는 한 중견시인의 량심 있는 시적 주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능시인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7988    중국조선족 시인 림금산 篇 댓글:  조회:570  추천:0  2024-08-23
림금산의 새 "아리랑"(시평) 2016년 03월 15일 13시 44분   작성자: 림금산 시평 림금산의 새 “아리랑”                                             우상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의 집단무의식적인 원형상징. 그런만큼 그것은 하나의 아리랑군을 형성하고 우리 민족 시인의 시적령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많은 시인들이 아리랑을 불러왔고 지금도 부르고있는줄로 안다. 그럼 우리 여기서 림금산의 새 “아리랑”(조시)을 감상해보도록 하자.   림금산에게 있어서 “아리랑”은 무엇이던가.        “조시1”-그것은 온 육신이 물러나는 소리가 나는 어려운 이주정착의 노래. 거기에는 가난이 깃들어 있고 피눈물이 슴배여있다. 그대로 두만강 민족적서정은 피여난다.       “조시2”-거기에는 가난속에서나마 전원목가적인 랑만이 깃들어있다.      “조시3”-조선족을 상징하는 모아산, 해란벌, 해란강 같은 키워드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좀 스산하다. “헐벗은 해란벌”, “짜개진 논밭”이 보이고 “구슬픈 곡조 익어가는 강끝”-“해란강의 소리”가 들린다. 그래 여기에 “모아산”으로 대변되는 조선족이 떠나련다.       “조시4”-아리랑은 우리의 령, 육, 혼이 하나로 아우러지는 경지. 바로 이런 경지속에 우리의 뼈대가 세워진다. 그것은 “조상이 피를 토하”는 한 맺힌 “민족의 국제가”로 우리의 하나의 집결점이 되고 기치가 된다.   전반적으로 볼때 림금산의 “아리랑”은 주로 우리 조선족의 아리랑, 우리 조선족의 이주정착 및 현실적삶의 역경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민족의 국제가”로 승화됨으로써 “세계공통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희망적이기도 하다.        림금산의 “아리랑”은 시적형식에 있어서 매 “조시”, 례컨대 “아리아리 아리랑(조시1)”, “아리랑 아라리요…(조시2)”, “아리랑 아라리요…(조시3)”, “아리랑 아리랑 윙-위잉—위이잉…//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나 주소…(조시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조시5)”에서 보다싶이 전통적인 아리랑의 “후렴구”를 넣음으로써 일종 전통민요 “아리랑”의 패러디양상을 나타내고있다. 이로써 전통적인 포스트모던적인 시창작특색을 나타내고있다.      매 “조시”의 이런 후렴구들이 서로 호응하고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새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감을 준다. 매 “조시”의 시구들도 보면 몽롱시나 현대파시의 경우처럼 별로 난해하거나 헛갈리지도 않는다. 평이한 가사에 가깝다고도 말할수있다. 특히 “조시1”에서 전반 시적이미지나 경지를 “소리”로 전환함으로써 애초에 “노래”분위기를 잡는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구의 산문적의미 련결 및 토씨가 분명히 따라붙고 종결어미가 구전한 산문적어감 그리고 시구의 길이로 놓고볼때 일종 산문시적인 특색을 가지고있다. 그러면서 산문시도 시인만큼 다양한 시적인 수사법을 구사하고있다. 례컨대 “손가락에서 소리가 난다”보다 이것을 념두에 둔 “손가락에서 소리가 흐른다”는 표현은 청각을 시적으로 전환한 통감적적표현 및 “할배의 수염발이 몸을 후려치는 숨결이다”에서 시각을 청각으로 전환한 통감적표현 그리고 “모아산이 잠에서 부어오른 눈을 비비며/멀리 바다쪽 하늘 우러른다…”를 보면 기표에서는 “눈을 비비며”, “우러른다”로 의인법, 기의에서는 “모아산”으로 조선족, “바다쪽 하늘”로 고국을 상징하고있다. 이외에 “가난이 가득 흘러내리던 소리”, “헐벗은 해란벌”, “짜개진 논밭”의 의인, “령혼속에 바위가 세워진다/바위속에 뼈가 세워진다/뼈속에 쇠쪼각이 세워진다”는 반복적인 틀속에서 “바위”, “뼈’, “쇠쪼각”의 중간꼬리법(顶针法), “아침안개 서려올라 무명저고리가/벗은 산허리를 둘러주고 저녁연기 타래쳐올라/초가삼간을 배불리던 이야기다”의 대구, “조시1”에서의 “소리를 낸다”, “소리다”의 각기 여러구에서의 반복 등등은 그 보기가 되겠다.      이제 림금산의 새 “아리랑”은 끝나는듯하다. 그런데 여운은 남는다. 새로 또 시작할듯하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멜로디이니깐. 기대해도 좋겠다. ++++++++++++++++++++++++++++++++++++++++++++++++++++++++++++ 달이 노래 부르면 상아는 춤을 추겠지(문학비평)   문학비평 달이 노래 부르면 상아는 춤을 추겠지 -임금산시인의 조시 열수에 부쳐   강혜라           자고로 시인 묵객치고 달을 노래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푸른 밤하늘을 흐르 듯이 가며 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던 달은, 저 시선 이백의 싯줄에서 뛰놀다가 존 키츠의 싯줄을 휘감기도 하던 달은, 이제 임금산시인의 시 노트에 담겨 둥그렇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임금산시인은 동시인으로도 소문났지만 문학을 시작할 때는 멋진 성인시를 펑펑 쏟아내던 분이다. 작은 눈으로 너른 세상을 훑어보고, 작은 가슴에 풍진세월을 품기도 하며, 작은 키로 큰 하늘을 떠이고 드팀없이 문학의 길을 매진해온 임시인의 시적행보는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임금산시인의 조시묶음은 세월 속에서 헹구어낸 우리 민족의 가락과 시인의 나이테로만이 해석이 가능한 인간세상의 다양한 모습이 웅건한 울림이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잘 길들여진 리듬감과 각고의 탁마 끝에 비로소 얻어진 보석같은 시어들로 해서 자칫 단숨에 읽힐지 모르지만 함부로 쉽게 읽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편편주옥들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그러면 이제 다 같이 탁배기맛 시에 젖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달이 내게로 와서 노래가 될 때   은 조시 의 머리시 격으로 큰 스케일로 달에 대한 전방위적인 찬사를 유감없이 구가하고 있다. , , , , , , 등 거창한 시어들이 시의 스케일을 대변해주고 있거니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정신 등 교감을 통해 우주질서를 견인해내면서 인간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하면서도 시는 지나치지 않은 잔잔한 시어로의 시적감흥을 밑그림으로 깔아주면서 거창함과 유연함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시 독자들의 달 조시에 대한 몰입에 올리브유를 쳐주며 강렬한 구독을 부채질해주고 있는 것이다. 에 이르면 달 잔치를 빌어 나의 달 사랑을 잦은 휘모리로 표현해보이고 있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시적흐름으로도 숨가쁜 달사랑을 확인할수 있으며 입, 가슴, 머리칼, 팔, 다리, 눈썹, 귀 등 온몸으로 표현되는 달사랑은 수천억번의 키스를 가능케 하며 달 키스의 순결성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 많은 키스가 하나로 되어 내 가슴을 쭉 가른다는 단연 압권이다. 은 달집이 형상화되고 있다. 달을 찾아가서 만난 달은 달 구멍이 되기도 하고 달 잉태를 낳기도 하며 달집들이 터지고 엉키기도 한다. 달의 냇물, 달의 강, 달의 바다 그것은 시인이 만난 달이며 시인의 시적사고에서 비롯되는 달의 언어인 것이다. 바로 이런 달 언어에 편승하여 달조시의 낭자한 흐름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한편으로 시 독자들을 달 독자로 탈바꿈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는 의 연장선에 있다. 달집에 들어서니 달이 매대 앞에서 달을 판다. 기상천외한 판타지가 가능한 것이 바로 시라는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시인과 함께 달을 안고 달과 사랑을 나누다가 달에 코를 박고 달 꿈에 실려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상아가 달에 오를 때 이런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었으리라. 별다른 시적장치가 없어도 이 시가 지극히 아름답게 안겨오는 것은 바로 달에 대한 넘쳐나는 시인의 사랑이 안바침되고 있음이요 달 아니었던들 상기의 아름다운 풍경은 시적묘술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는 이색적이다. 달의 가는 허리라는 시적상상에 편승하여 거기에서 비롯되는 온갖 현상들이 마침내 시 독자들에게 공감대로 다가서는 것이다. 달의 가는 허리에서 달이 빠져나오고 빠져들어 가면서 봄, 청춘, 황금, 황제, 바람, 낙엽, 귀밑머리, 엄동, 신음, 귀신, 서시 등이 쏟아져 나온다. 거의 카테고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상기 시어들이 왜 여기 나열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달이 충만 되고 이지러지는 일이 거듭되면 마침내 봄이 찾아오게 된다. 봄은 청춘과 통한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기라고 일컫는다. 황금은 황제의 특권이기도 하다. 황제는 늘 바람을 몰고 다닌다. 말하자면 호풍환우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지게 마련이요 낙엽이 진다는 것은 인생의 황혼 즉 귀밑머리의 퇴색을 의미한다. 그렇게 세상은 흐르면서 눈보라에 산천초목이 신음하던 엄동은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겨울의 신음소리는 귀신의 통곡소리를 연상시키고 귀신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귀신은 서시라 해도 대과는 없게 된다. 특히 서시까지의 연상은 월궁의 상아를 떠올리면 금세 안겨오는 시적대상물로 당연한 카테고리인지도 모른다. 자, 이쯤 시인의 상상을 추적해보았다. 가능하고 가능하며 달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채게 될 것이다. 에서는 달을 사랑하던 나머지 내가 달이 되어버린다. 달에 대한 찬사가 이번에는 달을 닮아버린 나의 일상에서 사품쳐 흐른다. 달의 유순함에서 순수의 나무를 키우고, 달의 밝음에서 순정의 샘물을 파내고, 달의 절절함에서 그리움의 싹을 얻는다. 달에 대한 노래가 격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에서는 드디어 우리 민족이 달을 빌어 묘사되고 있다. 하얀 저고리, 하얗게 바래고, 저 여울지는 저고리 고름, 하얀 서리 등 이 시에서는 쉽게 채집되지만 시인이 알심들여 고른 시어들에서 우리는 민족의 혼을 볼수 있으며 세상 어느 민족보다 순결함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 역시 지금껏 달과 함께해왔음을 감지할 수 있다. 에서는 달과 자연의 교감이 웅건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세상으로 보면 온갖 세상만사를 다 겪어온 달의 이야기는 별들이, 나무들이, 풀들이, 빌딩들이, 바람이 안다. 그래서 달을 쳐다보며 숙연해지는 시인의 마음을 우리는 어쩌면 알 수도 있으리라. 에서는 달에 대한 직설적인 고백이 눈물겹다. 달은 둥글어도 이지러져도 시인에게는 애모쁜 사랑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며 그래서 어떤 모습이여도 고마운 달은 시인에게 언제나 슬프도록 행복한 존재인 것이다. 행복이 극에 달하면 슬프게 보이는가 슬픔이 극에 달하면 행복해지는가. 잠시 제쳐두고 달에 미쳐 달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만 확인해보는 선에서 일단 만족하자. 에서는 연쇄적인 수법을 활용하여 달을 노래하고 있다. 달 속에서 달이 나오고, 그 속에서 호수가 펼쳐지고, 호수주변에 수림이 설레고, 수림위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 속에 흰 구름이 뜨고, 구름너머 아득히 하늘이 또 열리고, 나는 하늘을 휘감고 구름을 휘저으며 간다. 엄마야, 누이야 피터지게 외치는데 그 핏방울들이 흩뿌려져 살구꽃으로 피어난다. 세련된 아름다움이요 수채화 같은 장면이다. 꽃잎은 피로 색을 올려 더더욱 구슬프게 아름답다는 마지막 행에 시인의 달 노래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조시라는 암시가 숨겨져 있다.     시가 일어서서 춤을 출 때   이상 임시인의 달 조시 10수를 한 수씩 반추해보았다. 달을 노래한 그 많은 시인들 중에서도 유독 임시인의 달 조시가 새삼스러운 까닭은 시의 폭(넓이)과 시의 심도(깊이)가 지금까지의 달시들에 비해 월등히 상위라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아울러 아름다운 시어들의 몸짓이 사푼거리는 내지 너흘거리는 멋스런 춤사위로 우리한테 다가온다는 데서 그 두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터이다. 달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시인의 고아하면서도 설설 격정에 끓는 순수한 마음 앞에서 먼저 경건함을 여미고 접근해보기로 하자. 상기 10수의 시들은 일단 전혀 거리낌없이 달에 대한 시인의 송두리째 되는 고백을 동반하고 있다. 달을 바라보며 미치고 달을 미치도록 사랑하며 달 아니었던들 사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달 사랑을 주절거림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시인은 땅 위에서 달을 바라보다가 달에 이끌려 달에 찾아가고 드디어 달로 화하면서 달과 일심동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다시 지상에 내려와 눈물겹도록 달을 바라보며 달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다시다시 확인해본다. 왜 하필 달이었을까? 달보다 밝은 해도 아니고 달보다 기특한 별도 아니고 달보다 아름다운 그 무수히 많은 우주적 존재들을 다 제쳐두고 왜 하필이면 달이었을까? 일상에서 일반인이 바라보는 달은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나 시간을 알려주는(상현달이다가 보름달이다가 하현달이 되는) 존재나 기분을 돋궈주는 존재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 비치는 달은 순수하며 깨끗하며 호젓하며 은은하며 내성적이며 독보적이며 이상적이다. 달은 또 여성적(월궁의 상아)이며 소녀적(거의 모든 소년들이 달을 향해 첫사랑의 고백을 중얼거려 보았으리라)이며 할머니적(달밤의 할머니 이야기)이며 애인적(사랑 때문에 우는 사람은 거의 반드시 달을 보며 왜 너는 비추는 내 애인을 나는 볼 수 없냐고 원망 한 마디 쯤 던져 보았으리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시인에게 있어 달은 사랑과 더불어 시적 창작의 원천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이며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양인들에게 달의 존재는 저 비너스, 아폴로디테, 마돈나 등 유럽의 다양한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에 비견되는 존재로서 자고로 달에 대한 음풍영월은 단 한순간도 멈춰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달이 임시인의 시붓에서 조시로 떠오르며 새롭게 거듭났는 바 여기에는 임시인의 시적 내공이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일상어인듯 아름다운 조화(폭력적 조합이 아닌 티없이 순수한 리얼적인 조합)를 이루는 시어들의 행진은 단아하면서도 격정이 있고 사품치면서도 이지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시의 아름다움은 시어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것이며 시어의 아름다움은 시인의 사상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만큼 임시인의 심적 상태가 순수하고 깨끗하며 말숙하고 선량하며 폭포처럼 거창하면서도 깊은 소처럼 여울을 만들기도 하고 두루미처럼 끼끗하면서도 학처럼 도고함을 잃지 않는다는 방증이 되겠다. 시의 삼박자에서 시의 흐름과 시어들의 배렬과 시의 사상은 언제 어떤 시인의 어떤 시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 될 것이다. 임시인의 달 조시가 단순히 달에 대한 찬가에 그쳤더라면 시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에서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기 10수의 시들을 부벼보면 거기에는 민족적인 맑은 영혼이 살아 숨 쉬고 그래서 우리는 임시인의 달시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호흡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적인 시대적인 미래적인 높이와 깊이와 넓이의 시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달은 저쯤에서 노래 부르고 상아는 저리 사푼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임시인은 술잔을 잡은 채 시붓을 비스듬이 꼬나들고 있다. 이제 임시인의 조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달의 노래가 끝나지 않는 한, 상아의 춤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기만 해도 무방할 터이다. 모처럼 아름다움의 경지를 보여준 임시인께 박수와 응원을 섞어보낸다. =================================== 림금산략력: 연변작가협회 리사, 시창작위원회 前 부주임, 사단법인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중국조선족소년보사 기자부 주임,동시집"사랑의 동그라미", "옹달샘,시집"불새" 등 출판,"리영식아동문학상", "백두아동문학상", "꽃망울"아동문학상,"정지용문학상" 등 수상,"연변주10대신문사업일군", "길림성우수신문사업자" 칭호수여받음. ================================= 강- 림금산 시인의 시 을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림금산   눈물을 버리지 말아라 놋대야에 잘 담아뒀다 화분에 주어라 그러면 눈물을 먹고 꽃은 피여난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기는 눈물냄새가 나리라   아픔을 버리지 말고 하얀 손수건에 잘 싸두어라 그랬다가 가슴에 번열이 날때 꺼내보면 가슴에 봄이 내려앉는다 그 봄이파리에는 고름이 탐스럽게 열릴것이다   강- 눈물도 버리지 말고 아픔도 버리지 말라고 했는데요 왜서죠? 림금산- 네 사실 살아간다는것은 어찌보면 하나하나의 아픔의 련속이라고 할수도 있고 눈물의 련속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어느 아름다운 사랑에 눈물이 동반되지 않은것이 있고 아픔이 동반되지 않은것이 있습니까? 또 반대로 눈물 한방울 없는 사랑과 아픔 한쪼각 없는 사랑이면 남들도 감동시키지 못하고 사랑을 깊이하고있는 장본인들도 감동받지 못할수 있죠…물론 여기서는 극적인 사랑이나 문학적인 사랑을 말한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습니다. 사랑다운 사랑을 한번 뻐근히 해보자면 눈물과 아픔이 이렇게 저렇게 동반될수도 있겠죠. 그래서 눈물은 아까운 거고 아픔도 또한 소중한거라 생각됩니다. 이 시는 아마 그런 눈물과 그런 아픔을 쓰려고 한것 같아요.    
7987    중국조선족 시인 김춘희 篇 댓글:  조회:542  추천:0  2024-08-23
김춘희 시인 2015년 06월 19일 12시 31분  작성자: 림금산 김춘희 시인   서태문—안녕하십니까. 문학살롱에서 인사드리는 서태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 연변에서 이름이 크게 날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전쟁시들을 많이 펴낸 주선우시인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연변시인 김춘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도 림금산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림금산-네 수고하네요   서태문-네 감사합니다. 김춘희시인도 오래전부터 시를 쓰신 녀류시인이라고 알고있는데요. 오늘도 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 주겠어요?   림금산-네 김춘희시인은 1962.5.19---룡정 출생, 룡정 신안소학교졸업,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했습니다. 소학교나 중학교때에도 선생님들은 그가 쓴 시를 많이 칭찬해주셨고 범문으로 칠판에 써놓고 분석해주신적도 있습니다. 그는 가끔씩 필기장에다 시를 쓰군하였는데 아버지께서 버리시군 하였습니다. 룡정2중졸업 큐리부인같은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은후부터는 시를 쓰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리과성적이 아버지 기대와 같이 출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문성적은 여전히 좋아서 어문선생님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국 리과가 안되면 조문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좇아 1981년7월에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게 되였습니다. 1982년 봄, 친구와 함께 교실로 올라 가다가 길가에 돋아나는 새싹을 보면서 다시 시를 쓰고픈 충동을 가졌고 그래서 쓴 시가 “새싹”, “봄꿈”이였습니다. 연변대학 조문학부졸업, 흑룡강성탕원현문화관, 룡정시문화국, 연길시 연변대학부속중학교 연길시13중학교, 그간 시를 다시 시작하고 많이 발표도 했습니다. 길림신문같은데서는 상도 탄적 있고 방송에도 나왔던 적 있고 …여러가지 문단활동에도 참가하고…        연변대학 우상렬교수는 김춘희시인의 시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서태문-네 대학교시절부터 시를 내놓은 김춘희시인인데요. 그럼 오늘도 먼저 그의 시를 감상하면서 시인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감상할 시는 입니다.   어머니             김춘희   하나밖에 둘은 모르셨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위함이라기엔 당신의 행복이라기엔 너무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아침에서 저녁에로 저녁에서 아침에로   봄에서 겨울에로 겨울에서 봄에로   눈서리 찬바람 다 맞으며 땡볕 더위 머리에 다 이고   자식 농사, 손군 농사 다 하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먼먼 길에   365일 어느 하루가 남편 위한 하루가 아니였고   24시간 어느 순간이 자식 위한 순간이 아니였습니까?   당신밖에 모르는데 너희들밖에 없는데   눈물로 부르고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당신이 지나온 하루하루는 말합니다.   당신은 정녕 하나밖에 둘은 몰랐다고   정녕 하나밖에 둘은 없는줄 아셨다고   그래서 오늘은 나도 나를 당신 하나만으로 채우렵니다.   그 이름이 넘쳐 흘러 빛나는 날이면 빛을 따서 화환도 만들고 화환에게 길을 물을수 있도록   당신의 이름 새기며 그런 당신을 잊을수 있도록   서태문—네 김춘희 시인의 시였습니다. 어머니의 위대한 업적을 적은 시같은데요. 해설 부탁드리겠습니다. 림금산-해설…..이 시에서 먼저는 숫자로 하나밖에 모르는 당신, 오직 그 하나 자식과 남편, 결국 내가족 하나만을 생각한 어머니를 피타게 부르며 노래합니다. 다음 이 시에서는 24시간 어느 한순간도 자식위한 순간이 아닌적 없다고 역시 숫자, 또 일년 365일 어느 하루하루가 남편위한 하루가 아니였나 반문합니다. 역시 수자지요 다음 이 시에서는 또 숫자적인것인데 아침에서 저녁에서 아침, 봄에서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 이르기까지 어머님의 로고를 노래합니다. 여기서 아침에서 저녁 저녁에서 다시 아침, 봄에서 겨울 겨울에서 다시 봄도 역시 시간의 흐름인데 시간역시 수자인것입니다. 결국 매시간 매하루 매1년 시시각각 해해년년 오직 가족만 생각하고 유독 자신만은 생각하지 않은 위대한 어머님의 사랑을 읊조리고 있죠. 여기서 가족성원들은 남편 자식 손군들입니다. 자신만은 그 가운데 없습니다. 그럼 그이 자신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자식들마음에 남아있지요 그래서 제일 마지막 부분에 그 이름이 넘쳐 흘러 빛나는 날이면/빛을 따서 화환도 만들고/화환에게 길을 물을수 있도록/당신의 이름 새기며/그런 당신을 잊을수 있도록/ 라고 종합합니다.   서태문—김춘희 시인도 우리 연변의 저명한 시인 김성휘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림금산-네, 저보다 한학년 후배인데요 그때 저희들은 잡지를 꾸리면서 시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그때 김춘희씨는 적극적인 활약분자였어요. 연대조문계에 오셔서 시 인재를 선발하시느라 하던 김성휘선생님께서 과분하게 칭찬해주시면서 앞으로 우리 시단의 녀류시인으로 대를 이어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리랑”에 그의 시도 발표해주시면서…..그후 그는 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선생님의 학생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시를 발표할수 잇다는건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기쁜 일이였습니다. 그후 대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께서 애쓰셨지만 제가 원하는 글을 쓸수 있는 직장에 배치 받을수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녀자라고 어디서도 안 받겠다고 한다. 이게 너를 두고 쓴 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목책을 펼쳐보이며 안타까와하시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합니다.   서태문—일찍부터 시작품에 마음을 둔 김춘희시인이였는데요. 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조용히 불러봅니다.                 김춘희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걸어도 뛰여도   떠오르는건 당신 모습뿐   고개 숙여도 고개 들어도 꽃이 펴도 꽃이 져도   들리는건 당신의 목소리뿐   조용히 불러봅니다 어머니---   눈물이 절로 납니다. 가슴이 절로 떨립니다.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솟아날 구멍은 없는가봅니다..   서태문—김춘희 시인의 시 였습니다. 역시 어머님을 쓴 시같은데요. 해설 부탁드리겠습니다.   림금산-해설……아까 앞의 시에서 시간적인것, 수자적인것으로 어머님을 노래했다면요 이 시에서는 공간적인것으로 많이 어머님을 노래했습니다. 앞뒤, 고개숙이는것과 고개를 들어서 공간에서 찾는것, 꽃이 펴도 져도, 걸어도 뛰여도 …또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솟아날 구멍,  …등등 표현은 모두 공간적인 측면에서 어머니를 노래하는겁니다. 시인은  공간적인데 어머니란 위대한 이름을 세워놓고 다각도 다 층차로 노래합니다. 여기서 다각도 다층차란 눈으로 찾는것, 귀로 듣는것, 눈으로 흘리는것 가슴으로 느끼는것 등 청각적, 시각적, 촉각적인 측면에서 어머니에 대한 진지한 정감을 주고받습니다. 이래서 다층차 다각도라고 하는겁니다.   서—김춘희시인님은 흑룡강성에도 가 있었다면서요…왜서 연변분인데 흑룡강에 가셨을가요? 흑룡강성에 가서는 어떤 일들을 했습니까? 림-네 1985.9월부터 1996년9월까지 흑룡강 탕원현문화관에서 근무하면서 가끔씩 시를 썼지만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따라 흑룡강에 가게 되였구요. “아리랑”에 소부분을 발표햇습니다. 1996년7월에 연변 룡정문화관으로 돌아와  1997년까지 근무하다가 그해 9월에 연길시 연변대학부속중학교 조문교원으로 전근하였습니다. 연길로 돌아온후 선배선생님들의 고무격려하에 가끔씩 시를 썻습니다. “김성휘선생님이랑 아끼시던 춘희인데 이대로 사라지면 선생님께 미안하지도 않는가”라는 선배시인의 말씀에 시창작을 다시 시작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문단이나 수상에는 관심 가지지 않기로했습니다. 2011.11월 연변대학부속중학교가 페교되면서  지금은 연길시 13중 조문교원으로 있습니다. 서—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입니다. 어떤 내용을 적고있는지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령전에 무릎 꿇고                 김춘희   어머님 령전에 무릎 꿇고 333배를 올립니다.   이 몸이야 쪼각난들 어떠리 어머님 그 은혜 못 잊어   무릎 꿇고 333배를 올립니다.   불효에 가슴 치고 그리움에 목 놓아   이마가 터지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무릎 꿇고 두손 마주 333배를 올립니다.   어머님 령전에 이 한몸 바칩니다.   서—저 세상으로 가버린 어머니를 적고있습니다. 삼백서른 세번이란 수자가 인상깊은데요. 시인이 어머님에 대한 사랑을 리해될것 같습니다. 이 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분석해주시겠습니까.   림—해설: 여기서는 주로 과장의 수법으로 위대한 어머님을 노래합니다. 절을 세번이 아니라 333번 한다든가 물론 서장에서는 이마가 터져 피흐르게 쪼아대지만 여기서는 과장으로 씌였다고 해야겠죠 그리고 이 한몸 통채로 령전에 바친다 역시 과장이죠 이 마음과 몸을 다 바쳐 부어올린 술잔이나 음식을 령전에 올린다는게 아니라 이 한몸 통째로 바치다는 표현은 역시 과장이죠 이런 수법을 통해서 시인 마음속의 절절한 추모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들어내는 목적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보다 더 좋은 방법도 있겠지만 시인은 그 수법상 재래의 방법만 쓰고 있습니다. 이 점은 시인 자신이 앞으로 시창작수법상 많은 현대적이고 우수한 표현수법이나 형식들을 많이 탐구해야겠죠…   서—김춘희시인은 특별히 어머니에 대한 시에 애착을 가지고 어머니에 대한 시를 많이 쓰는것 같습니다. 왜서 어머님께 이렇게 집착할가요?   림-네 김춘희시인의 말을 빈다면   2015년1월31일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장례식에 갔댔는데요…그의 어머님은 무릎관절때문에 걱정은 많았어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2014년7월14일 담낭염이라는 오진으로 담낭수술을 했었는데 실은 담낭암이였습니다. 수술후 암세포들이 간에 전이되여 어쩔수 없이 두눈 펀이 뜨고 어머니를 보내드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줄도 모르시고 병이 낫기를 기다려 이것저것 계획하시는것을 곁에서 지켜본다는것은 참으로 목이 메고 가슴 터지는 일이였습니다. 누구 한번 나쁘게 생각지 않고 오직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을 잃지 않고 한결같이 정결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였습니다. 김춘희시인이 어렸을때부터 장기환자인 아버지때문에 모진 고생을 다했습니다. 아버지 따라 신강 가느라 병원 직업 다 잃고 … 룡정에서 벽돌공장의 남자들 하는 일을 포함해 안 해본일 없었습니다.   서—네 시인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리해할수 있는데요. 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땐             김춘희   당신이 계실 땐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로 몰랐습니다   어느날엔가는 당신이 떠나시리라는것을   그것을 알았더라면 그것을 깨우쳣더라면   이렇게 이렇게 돌아보면서 울고만 있지는 않을걸   어이 하시랍니까? 당신이 언젠가는 가시리라는걸   정말로 정말로 몰랐던 나는!   서—김춘희 시인의 시였습니다. 이 시도 어머님을 적은 시리고 보아야 할까요?   림—김춘희시인의 말을 들어보시면 이 시의 참뜻을 인츰 알게 됩니다   서-많은 분들의 마음의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당신 없는 봄은                  김춘희   당신 없는 봄은 봄이 아닙니다.   걸음은 락타처럼 느리고   마음은 미련 없는 연기처럼 한숨만 토할 뿐   당신 없는 봄은 봄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 숨은 어머님 옷자락일뿐입니다.   서—김춘희 시인의 시이였습니다. 이 시도 올해에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해설 부탁드리겠습니다.   림—해설….봄이 왔지만 엄마없는 봄은 스산하기 그지없습니다. 단위에 갔다가 집에 들어와도 어머님이 없으니 집분위기가 말이 아니고 마당에 나가도 어머니가 안보이니 기분이 썰렁한것처럼 저 산 저 언덕에 봄이 왔어도 엄마없는 봄은 봄이 아니라고 시인은 우깁니다. 봄이면 날듯한 기분이겟는데 락타걸음처럼 느리다고 합니다. 또 맘으로는 연기같은 한숨만 풀썩 풀썩 토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재치있게 엄마없는 봄은 봄인게 아니라 내안에 있는 엄마 옷자락 즉 엄마옷자락의 펄럭임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온 산 온 봄의 한복판에 펄럭이는 엄마옷자락밖에 안보이지요 마무리가 아주 잘됐습니다. 독자들의 마음을 톡 치는 무엇이 잘 형상화 되였죠   서-김춘희 시인의 문학관 같은것이 있습니까? 김춘희시인은 문학을 어떻게 특히 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주실수 있을가요?   림-네 김춘희시인의 말을 빈다면 “문학으로서의 시는 대중의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서 마음에로 수첩에서 수첩에로 전해질수 있는 시라야만 좋은 시라고 생각습니다. 투명하든 몽롱하든 독자들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위무하며 고양시켜주는 시는 다 훌륭한 시라고 생각습니다. 너무 몽롱하여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터득이 되거나 아예 터득되지 않는 시는 물론 제외고. 앞으로 시와 생활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을겁니다. 어머니에 관한 좋은 시, 아버지에 관한 좋은 시를 써내기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할겁니다. 내 부모 한번 좋은 시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가 무슨 시인이랴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저 개인의 생각으로는 김시인께서 앞으로 좀더 많은 여러가지 현대적인 표현수법들을 연구해서 시를 장식하였으면 하는 바랩입니다. 남들은 여러가지 신식무기를 척척 잘도 쓰는데 한두가지 무기로는 시를 이쁘게 장식하기 어렵겠죠… 남들이 중기관총으로 좋은 탄알을 재워넣고 뚜루룩 뚜루룩- 갈기는데 보총으로 한방한방 쏘면 좀 힘들겠죠… 좋은 탄알이란 시어겠죠…미국같은데서는 전문적으로 시인이나 작가들한테 창작수법만 훈련시키는 그런 학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엄가령(严歌苓)-미국적 화인인데 이분도 이런 학교를 다녔다는데 이 분의 많은 소설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였는데요 장예모감독도 이분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게 있죠… 명사와 명사의 조합이 때론 형용사보다 단어들을 더욱 살려주고 더욱 도약해줄수 있죠 통통뛰고 살아움직이게 …그리고 단어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시에 후각적이고 시각적이며 또한 촉각적인걸로 만들어 줄수 있죠… 례하면 네 마음속의  눈동자가/ 내맘속의 눈동자와 부딪칠때/ 나의 마음 하늘엔 숱한 별무리가/ 떨기떨기 피여난다…/뭐 이러루한 것이겠죠 …/노로 물밑의 달을 저으니/ 쪽배는 물밑의 하늘을 가른다… /(당나라 가도의 시구절)등 … 그리고 김춘희시인의 어떤 시들은 조금은 직설적인 면도 보입니다. 좀 더 알맞는 옷들을 잘 말가 입혀 내놓으면 더 좋지않았을가? 벌거벗고 나서기보담, 그리고 좀더 정서를 안에 꽉 짜서 안에다 재웠다 터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떤 정서는 아예 재워만 주고 터치우지 말든지… 그래서 독자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저절로 터지게 하든지…그저 겉면에서 아, 오 하지말구요..이 면에서 좀더 사로를 넓게 틔우고 시의 오색령롱한 빛갈을 맘껏 더 현란하게 파냈으면 하는 바랩입니다. 워낙 시적 기초가 든든하고 감수성이 뛰여난 분이라 이면에서 앞으로도 새로운 돌파가 있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서—김춘희시인의 시를 감상하다보니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되였습니다. 어머니를 주제로 적은 시들이였는데요. 정말 많은 분들이 마음속에 두고도 글로 써내지 못한 어머님에 대한 시를 김춘희시인이 써내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어머님에 대한 더 좋고 많은 시작품을 써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림선생님 오늘도 좋은 소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많았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서태문-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 이만 줄이겠습니다. 저는 다음 시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7986    중국조선족 시인 리문호 篇 댓글:  조회:512  추천:0  2024-08-23
시인 리문호 2014년 08월 17일 13시 10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 시단의 녀류시인 최기자님과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들을 만나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료녕성에서 다년간 살아오면서 많은 좋은 시들을 펴낸 료녕시인 리문호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반갑습니다. 신—리문호라고 하면 료녕성쪽에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있는 시인이라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시를 쓰신지 오래되엿습니까? 그럼 먼저 리문호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림—네 리문호시인은 70년대 으로 시단데뷔, 그러니깐 시창작시간이 30년도 넘었지요. 2007년 8월 26일 11회 연변 지용제 정지용 문학상 수상했구요 KBS성립 45주년과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망향시 우수상 2차 수상하엿고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녕성 작가협회 회원, 심양조선족문학회 부회장, 심양시 시조문학회 부회장 등을 력임하였습니다. 시집 등이 있음 신—리시인은 낚시질을 아주 즐겨한다면서요 ? 림—네 료녕의 거의 강과 호수는 다 돌아다니면서 낚시질하는 분이라고 하데요. 신—낚시질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는 행사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시인인 리문호가 낚시질을 하는건 어떤 의미같은것이 부여되나요?   림—네, 리문호시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총적으로 낚시질은 마음을 정화하고 성정을 다스리는 일이요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된기분이요 자연으로 회귀한 기분이요 참을성과 강한 의지를 련마하는 일이요 무한의 시공에 잠기여 사유를 넓이는 일이다” 신—그렇다면 리시인의 시문학관을 어떻게 말할수 있겠습니까? 림—그가 다섯번째 시집을 내면서 쓴 시가 있는데요 이 시에서 그의 시문학관을 우리는 잘 알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詩)래기 –(诗来记) -        다섯번째 시집 을 내며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질긴 고집으로 엮은 배추시래기 무시래기 그리고 끓는 물에 데친 민들레 취나물 한 다랑구 두 다랑구, 무정의 바람에 바즈작 바즈작 부서지는 기쁨과 슬픔과 인정이 말라버린 무미(無味)와 무감(無感)의 줄거리, 상가나 마트에 내 놓지 못할 값도 없는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울부짓는 소리도 메말라 사락사락 호탕한 웃음소리도 메말라 바작바작 눈물도 메말라 소금끼가 하얗게 돋은 허무와 고민의 아픔이 건조된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싱싱 파랗던 고락의 시래기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집념의 고혈이 까맣게 마른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시집 한권을 또 낸다   림—제목을 시래기(诗来记)라고 한건 우리 민족이 즐겨 자시는 찌개를 끓이는 시래기와 诗来记(시가 오다)가 우리 말로 대조시켜보면 음이 같던요 시인은 이걸 이용해서 자기의 시를 시래기에 겸손하게 비유했고 또 그러면서 자신의 시가 오게된 과정을 말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이 시를 살펴보면 그의 시는 “바즈작 바즈작 부서지는 기쁨과 슬픔과 인정이 말라버린” 시래기같은 시, 상가나 마트에 내놓지 못하는 그런 시,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시,   하지만 그의 시는 또 “집념의 고혈이 까맣게 마른”, “눈물도 메말라 소금끼가 하얗게 돋은 허무와 고민의 아픔이 건조된” 시인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이 추구하는 시는 눈물을 말리워서 쓴 생활의 밑바닥에서 우려낸 시임을 알수 있고 짜디짠 소금끼가 하얗게 돋을 정도로 생활에 푹 절은 시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수있고 허무와 고민의 아픔을 탁마가공해서 건조시킨 시임을 쉽게 보아낼수 있는것이다. 즉 현실의 허무와 고민의 아픔을 쓴 시를 추구하고 사실주의의 기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시인임을 알수 있고 생활이 있는, 최하층 삶을 읊어가는 시인임을 알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문호시인의 시창작 자세와 문학창작에 입문하는 그 각도를 잘 보아낼수 있다. 신—리시인은 자신의 창작담에서도 자기의 시문학관에 대해서 많이 말슴했다고 들었는데요 림—네, 자신의 창작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적 기교와 묘한 언어는 시적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야해요, 그럼으로서 극치를 보여주어야해요, 즉 감동을 주어야해요. 내용이 없는 기교나 무리한 언어의 조합은 시로 인정할수 없어요 ---누구나 다 좋은 시를 쓸수 있어요.. 문제는 시적 발견이에요. 자기만의 개성으로 쓰는 시와 다른 시인이 쓰지 못하는 시를 어떻게 발견하는가하는 문제에요.. --시적 발견은 시인의 지식, 체험, 감수에서 나타나는 것이에요. 시인이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면 좋은 시적 발견이 있을수 없어요, 사물을 관찰하는데 인문학적인 안광이 있어야해요 ---한수의 시가 발표되였을때 시인의 이름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에요. 사회적인 것이에요. 그러기에 신중성이 필요해요. 즉 어떤 이미지의 특징적인 이름으로 사회에 나타나는가하는 문제에요. 독자들에게 그의 시적 형상의 이름을 심어주는 것이지요.그러기에 시를 쓰는것은 장난이 아니에요 ---고금중외 책을 많이 보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자기의 시적세계를 넓혀야해요,특히 명시는 반복 구독하고 연구해야해요, 모르고는 형상을 창조할수 없어요, 독서는 어떤 의미에서 시창작보다 백배의 노력이 더 수요되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의 개성을 수립하고 창작 바탕을 두텁게 다지는 일이에요. 바탕이 엷으면 시창작의 다산은 불가능하지요 ---사물에 대한 감수성은 시인의 발상에 불꽃을 튀겨주는 것이에요, 풍부한 감정이 없이 좋은 시를 쓸수없어요. 감정이란 생활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것이에요. 생활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울고 웃고, 슬프고 기쁘고, 고민하고 염오하고, 서럽고 우울하고, 애상하고 그립고, 열렬하고 헌신적인 감정이 있을수 없어요, 시인의 감수성은 이런 생활에서 축적되는것이에요. 생활을 사랑하는것은 자기 인생에대한 가치의 책임감에서 오는것이에요 ----상상--- 시간과 공간속엔 무수한 시적 소재가있어요. 상상력은 무한히 넓은 시적 무대를 열어가는것이에요. ----시인은 몸으로 감각하고 마음으로 감수해요, 여기에는 시적 자질이 있어야 해요,  시인은 쉽게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몇편의 시를 발표하고 시인이 되였다고 더욱 생각말아요, 장기적인 고군분투를 거치는 심혈이 필요해요, 지독하게 노력하는 자만이 이 계관을 따올수 있어요. ---수련, 공유적 욕구, 나만의 정신생활 ---시인에게 왜 시인이 되려했는냐 물으면 참 답복하기 힘들어요. 천부와 그리고 후천적 동기, 처한 생활환경이 그를 시인에 지향하게 되였거든요.. 시를 쓰는것은 자기의 마음을 수련하고 자기의 새로운 정신적, 감정적 세계를 풍부히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느낀 느낌과 정을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려는 욕구가 있는것이에요. 시창작을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고생도 달갑겠지요. 다른 사람이 없는 하나의 풍부한 정신생활이에요.   신—그럼 아래에 리문호시인의 시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더욱 깊이 이 시인을 료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 “걸인과 시”를 함께 감상하시죠   걸인과 시인                   리문호   상해 한 지하철 입구, 사람들을 향해 깡통의 깡전을 요란히 흔드는 저 걸인   금은보화 가득찬 이 세상을 향해 차거운 깡전 한잎 애걸하는 눈빛   문뜩 그의 눈빛에서 나는 나를 본다   나는 정을 동냥하러 방랑하는 시인 도시를 헤맨다, 레온등 불빛을 헤친다   인정은 어디로가고 음침한 황금 사막인가   가상과 공상과 추상에 건초같은 나의 시 불을 지를까?   갈망의 거리에서 부르짓으며 나는 녹쓴 마음을 쇠줄에 꿰여 들고 깡통처럼 흔들며 다니는 걸인 ! 신- 참 신기하네요 대도시 상해에서 걸인을 썼고 또 걸인과 시인을 대비적으로 쓰면서 뭔가 시인의 의도를 부여한것 같은데요? 림—해설: 이 시에서는 거리에서 동전을 동냥하는 걸인과 인정이 메마른 거리를 누비며 시를 동냥하는 시인을 대비적으로 묘사하면서 부에로 날아가는 도시에 아직도 불쌍한 생명이 있는것과 인정이 메말라 가는 거리에 아직도 후한 정을 동냥하는 불쌍한 생명을 잘 보여주었다. 기발한 착상입니다. 중국의 부유한 도시 상해 거리바닥에 나부러진 두 걸인 하나는 물질상의 걸인, 하나는 정신상의 걸인…대비적 수법…실물인 깡통, 녹쓴 마음의 깡통 여기서 “가상과 공상과 추상에  건초같은 나의 시 불을 지를까?” 등 표현은 살아가기 힘든 시인의 심정을 아주 잘 표현, 다른 시인들도 앞의 장면묘사는 어느 정도 할수 있겠지만 이 구절은 이 시인만이 내 던질수 있는 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신호등                리문호   파란빛, 노란빛, 빨간빛 물막이처럼 올리고 닫히는 십자거리 어느 물목으로 가라는 신호냐   상어와 고래들이 물결쳐가는 섭에 은어 한마리 고향의 개울 그리며 두눈은 향수에 흐려라   제 노는 물 따로 있거늘 조수에 쓸리는 괴로움 오죽이나 옛 생각의 지느러미 저리도 저으랴     림—이 시는 십자거리의 신호등을 보고 서로 제갈길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자기갈길은 이 휘넓고 눈이 뒤집히는 호화스런 시중심이 아니라 고향, 신선한 공기와 자연임을 자각하는 시인을 볼수 있다. 시인은 별로 현대문명에 미련이 없는듯 싶다. “상어와 고래들이 물결쳐가는 곳에 은어 한마리는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향의 개울가를 그리고 두눈은 향수(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흐려진다 그래서 제노는 물 따로 있다고 은어는 지느러미를 막 그 그 쪽으로 젓는다 조수에 아프게 쓸리우지만 계속 제쪽으로 젓는 은어…그것이 바로 피여나는 안개와 신선한 공기로 충만된 자연을 그리고 고향의 산천초목을 그리는 시인자신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상해의 십자거리에선 시인의 순수한 마음을 읽을수있고 깨끗한 향수의 마음을 읽을수 있는것이다.   백 년을 못 사는 사람들이            천 년을 살겠다는 자라를 잡아 먹는다            양자강 류역의 어느 한 호텔식당            료리사가 산 자라를 들고 와            료리 솜씨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자라는 천년을 기어 가야 할 네발을            천 년의 허공에 발버둥치며            무엇을 소리 없이 부르짖다가            주방, 비참히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얼마 후 하아얀 백자옹에            자라의 눈물과 한, 그리고                                                                                 그의 부르짖음 소리가            젖빛 뽀얀 곰탕이 되여            식탁 정중에 오른다            - 자, 듭시다, 몸 보신에 좋습니다            금이빨 사장의 말, 드디어            금 숟갈들이 오고 가고            은 젓가락들이 집어가고            입들은 냠냠, 훌훌,             자라가 장송곡 부르며 목 고개를 넘어간다            곰탕에 우러난            천 년의 정한은 달고            김 안개에 서리는            세월의 슬픔은 향긋하다            우리는 지금 파렴치하게            우리 것이 아닌 미래를 먹는다                       술상에 뒹구는            탐욕의 찌꺼기들…….            쌓인 쓰레기 너머로 백 년이 흘러            야윈 우리의 후손들이            손 가락을 빨며          우리를 원망하고 있다                      - 고기는 다 뜯어 먹고          가시와 뼈다귀만 남겨 놓았다고               림—이 시는 선에 수록되였고 역시 리문호시인의 대표작의 하나라고 할수 있겠죠 조선족고급중학교과서 조선어문 필수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자라곰탕을 끊여먹는 장면을 통하여 현시대를 인간들의 팽창된 심리적 욕구와 앞으로의 미래를 먹어가는 아픔을 읊조리고 있다. 이 시는 록색시라고도 할수 있지만 저개인적으로는 록색시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인간들의 팽창된 타락과 코앞밖에 못보는 무지하고 욕념에 절어버린 현대사회에 대한 시인의 타는 부르짖음이라고 생각한다.     … … 천 년의 정한은 달고            김 안개에 서리는            세월의 슬픔은 향긋하다            우리는 지금 파렴치하게            우리 것이 아닌 미래를 먹는다   참으로 억이 막혀 더 말이 안나가게 만드는 대목이다.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천년을 살아가야 하는 자라를 삶아서 국물까지 다 마이고 뼈다귀만 달랑 천년후의 후손들에게 남기는 이 장면, 너무나 어이가 없다… 우리는 눈물을 거들먹이 고이면서 자라의 립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얄미운 인간들을 기소롭게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탄식하게 되고 비탄하게 되고 통탄하게 되는것이다. 여기에 또 이 시인의 부르짖음이 있고 이 시의 성공이 있는것이다.                벽계수                            리문호               청산벽곡에          미역 감던 소녀가 풀어놓은          파란 댕기가          길게 늘어져          요리조리 휘젓히네          그우로          해와 달이          조약돌처럼 굴러가고          별들이 모래알처럼 흘러가네          두손으로          한자락 떠 마시면          가슴 골골에도          시원스레 팔락이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위들의 속삭임소리          청산의 맑은 웃음소리          가슴 속속          아름다운 노래로 화음하네.   신—이 시 역시 중국조선족명시선에 오른 시라지요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림—그렇죠 청산벽곡에 흐르는 벽계수에 소녀가 풀어놓은 파란 댕기가 여울치고 그우에 해달이 조약돌처럼 구르고 또 별들이 모래알처럼 흐른다는 건 참 아름답고도 기발한 상상이죠 하늘의 해와 달, 별까지 다 벽계수의 구성물이 되게 아름다운 미의 극치를 쪼아새겼죠 역시 시인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맑은 마음을 들여다 볼수있고 한생을 깨끗함을 추구하는 참삶의 참인생의 발로라고 할수있지요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이 시인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리게 되고 동감하게 되고 또 그런 와중에 우리의 마음도 순화되고 려과되는 감을 받아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시의 성공이 있겠죠 신-네 참 아름다운 시인데요 우리의 마음도 벽계수처럼 정화되는 감을 느끼게 해주는데요 벌써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오늘은 료녕을 대표하는 시인중의 한분이신 리문호와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인상이 깊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어요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 프로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7985    중국조선족 시인 최기자 篇 댓글:  조회:512  추천:0  2024-08-23
최기자 시인 2014년 08월 12일 17시 18분  작성자: 림금산   서태문-문학살롱프로에서 인사드리는 서태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다년간 조선족예술단 창작실에서 가사창작을 하시면서 많은 시를 써낸 중견시인 박장길과 그의 일부 시작품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중국조선어문 잡지사에서 부주필로 사업하시면서 시, 수필 등을 많이 창작하신 녀류시인 최기자선생과 그의 일부 시편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과 함께 합니다. 림선생님,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하십니다. 서—최기자라고 하면 년세가 좀 계시는 분인줄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최기자선생을 잘 아는 사이인데요. 사람 참 좋은 분이시죠, 성격도 좋으시구…집체호에도 내려갔었죠? 언제 출생했으며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 최시인의 프로필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림-네 최기자시인은 1947년 1월11일 연길 출생. 연길시 공원소학교 졸업. 소대장, 연길시 3중 졸업. 대대위원, 학교 공청단선전위원 연변일중 졸업. 단지부서기, 학교공청단위원회 선전위원 소학교때 , ,와 같은   책읽기를 즐기고 글짓기와 시랑송에 흥취가 있었음. 리상은 대학공부를 마치고 작가나 변호사가 되는것이였지만 1966년 고중졸업을 앞두고 문화혁명바람에 휘말려 농촌으로  내려갔음.   하향하여 문학의 꿈을 버리지 않고 가사, 시 등을 쓰면서 대대선전대의 청탁으로 연길시 신풍대대 선전대의 연출자료, 이를테면 가사, 삼로인, 극본 등을 썼다. 1973년 가사 등이 연변방송과 텔레비 우수가요상을 받았고 수필 가 연변일보 을 수상. 시 가 18회두만강여울소리 탐구회 우수상, 가 25회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이 26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을 받음. 시 이 에 수록되였고  시 무제(2), 종합포도술(2) 가 에 수록되였음. 그외 교육론문 십여편이 시,주, 성, 전국급우수론문상을 받았음. 길림성신문출판우수작품편집 2등상과 3등상을 수상. 길림성정부 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네차례 선진사업자로 표창받음. 저서로는 시집 2006.12 (길림성 우수도서)(공저)  연변교육출판사 (공저))   연변대학출판사 (공저)  연변인민출판사 연변조선족녀류시회 초대회장,  사단법인 연변조선족어머니수필회 회장을 력임하고 녀류시회 회원 작품집 2권과 어머니수필회 회원작품집 1권을 펴냈다. 3회로 되는 중국조선족어머니수필상 응모를 벌리고 시상식을 가졌다.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단풍수필회 회원, 연변시인협회 회원,   가정—아들딸이 다 일본 류학생이다. 최기자시인은 45세에 남편을 잃는다. 시인의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 잃었고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 잃었단다. 그래서 며느리는 절대 최씨를 안삼는다고 했는데 장씨를 삼았다. ㅎ   서—최기자 시인께서 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면 어떤것들이 있습니까? 림-네 얼마전 서로 메일이 통했는데 최시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문학은 흥취만으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독과 고통과 아픔과 희열을 망라한 생활이 있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할줄로 안다. 한두편의 문학작품을 발표하였다고 문학가로 된것은 아니다. 나는 종래로 내가 시인이나 수필가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저 시나 수필을 좋아하고 시나 수필창작에 노력하는 사람중의  한사람이다. 선배님들은 물론 후배들에게서도 허심히 배우면서 창작능력을 키우고 문학소양을 쌓아가고있는중이다. 나는 시를 쓰고싶어서, 쓰지 않고는 못견딜것 같을 때 쓴다. 가장 알맞는 언어 하나를 발견하였거나 정말로 신선한 시어로 내 감성과 감정을 토로하였거나 독자들에게 순간이나마 가슴을 탁 칠수도 있음직한 시 한수을 써낸후의 그 희열과 짜릿함은 무엇이라 형언할수 없다. 솔직히 는 것이 그리 쉬운것이 아니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가 일정한 문학소양을 구비하였을 때에 가능하지 않을가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신-최기자시인의 시집 출간기념식도 가졌다면서요? 시집이 어떻게 평가되였습니까? 림—네, 시집 (2006.12)출간기념식이 있었는데요     문학평론가이며 연변문화발전추진회 조성일회장은 인생살이가 묻혀나오고있는 이 시집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의지, 저항의 시적응전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있는 좋은 시들을 담았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출처(연변모이자 yanbian.moyiza.com) : 최기자 - 최기자 시집 《아침에 머리카락 줏는 녀자》 출간 - http://yanbian.moyiza.com/jizi/82003   서태문—그럼 최시인의 시들을 감상하면서 그의 시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겠는데요 먼저 최기자시인의 시 “굴”을 함께 감상하면서 그 뜻을 음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굴(牡蛎) _대련에서 굴을 까며              최기자     꼭 돌에 살아야 하는 리유와 기어이 돌로 살려는 속심을         결코 가볍게 부산떨지 않았다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와 귀찮게 감겨드는 바다풀과 얄밉게 달라붙는 벌레따위도 바위에 뿌리 박고 하늘 향해 피여나는 그 옹골찬 몸짓을 막지 못했다            굳게 문 닫아걸고                    홀로 어둠속에서 묵묵히 소금 끓여 우유를 빚지만 집이 떠나가면 집을 빼앗기면 젖빛같은 눈물 흘리며                             두부같이 연한 알몸을 고스란히 통채로 바치는것이                                         고작 돌에 살아야 하는 리유와 돌로 사는 보람이였던가            시방 돌이 아닌 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숨을 씹어대고있다 (2009.7.26)   서태문—바다에서 굴을 캐면서 느낀 감수를 시로 적은것 같은데요 실생활에서 느낀 시여서 퍼그나 생활맛이 짙게 풍기고 또 철리적인 일면도 있는것 같은데요   림금산—해설: 네, 대련에 있는 딸집에 갔다가 굴을 캐면서 느낀 감수를 시화했는데 역시 특이하다. 제재가 역시 평소 시인들이 자주 쓰지않는 제재이다. 이 시는 제26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수상작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굴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하여 우리 현실의 수고한 인간이 수고한 대가를 받지못하고 억울하게 당하는 그 인간상을  조명하였다. 굴은 자기한테 주어진 운명앞에서 절대로 락방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다.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와 귀찮게 감겨드는 바다풀과 얄밉게 달라붙는 벌레따위도 바위에 뿌리 박고 하늘 향해 피여나는 그 옹골찬 몸짓을 막지 못했다            그만큼 굴은 현실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고 고스란히 연한 알몸을 통채로 인간에게 바친다. 즉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헌데 그 인간들이 문제다. 사실 굴의 집은 돌이고 바위이다 헌데 돌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즉 돌이 아닌 돌들이 그의 목숨을 씹어대고 있다. 여기서 돌이 아닌 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두번째 돌은 결국 아둔한 인간들을 암시하고 있는것이다. 한생을 돌을 붙잡고 살았지만 나중엔 돌에 목숨을 바친것이 아니라 돌도 아닌 인간들에게 잡히워 씹힌것이다. 아주 억울한 한생이요 불공평한 한생의 막끝이다. 화자는 여기서 굴의 억울함을 현실을 위해서 죽도록 헌신했지만 되려 그 현실에 버림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인간으로 상징하였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이다. 특히 문화혁명후기에 이런 악성일들이 많이 벌어지였다. 그 어떤 조직이나 집단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직의 불신임에 의심받게 되고 갇혀서 고생하다 무주고혼이 된 우수한 인간들이 아주 많았다. 시는 굴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비리와 현실의 암흑면을 아주 예리하게 풍자 비판한것이다. 여기에 이 시의 깊은 무게가 있지 않을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진짜 눈물나는 시이다…   서—다음은 최시인의 시 “정자의 미로”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두만강여울소리 상을 탄 시라고 하는데요…       정자의 미로             최기자   수억의 경쟁을 물리치고 나는 태여났다 시공의 한순간에   세상에 나왔으나 내가 갈 길은 어디인가 공기는 혼탁하고 물은 썩고 오존층 페는 구멍이 뚫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갈곳이 없다 빛을 잃은 반디불과 숨죽은 개구리 기침을 쿨룩이는 창백한 사나이에 도시는 피를 토하고 아파트마다 걸려있는 젊은 팬티는 피임을 선언했다   아, 어디로 가야 하나 깊은 밤 미궁을 헤매다가 잠을 청한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한 모금의 신앙으로 할머니적부터 넘겨받은 표주박을 들고 생수 마시러 산으로 가는 녹색의 꿈을 찾아 잠을 청한다   서태문--네 역시 제18회 두만강여울소리 상을 받은 시인데요 제18차라면 아마도 근 10년전에 쓴 시같은데요 그때 감히 정자에 대해서 쓴다는건 어딘가 대담하고 특이한 소재를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림금산—네 참 신기하다 할 정도입니다. 그때에 대담하게 이런 소재를 이 정도로 시화했다는건 조련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주로 자연오염과 생태파괴에 대한 주제를 다룬것 같은데요 어딘가 생신한 제재이면서도 또 그때 금방 성행되기 시작한 록색문학류에 속하는 시라고 봅니다. 시인은 시에서 파괴된 자연과 오염된 인간의 적라라한 현모습을 그려내면서 “수억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태여난 정자”가 갈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묘사를 통하여 당시 너무나 생태환경을 홀시하고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오염이 심했던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자가 세상에 나왔으나 갈곳이 없다. 공기는 혼탁하고 물은 썩고 지구의 오존층은 구멍이 뚫리고 반디불은 빛을 잃고 개구리는 숨을 죽였으며 사나이는 기침을 깇고 도시는 또 피를 토하고 아파트에 걸려있는 젊은 팬티는 임신하지 않겠다고 피임을 선언했다. 그래서 갈곳없어서 온밤 자지못하고 새벽을 기다린다. 여기서 새벽은 오염이 가셔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고 희망이다. 그리고 새벽이 도래하면 오염안된 할머니의 표주박을 들고 오염안된 산속의 생수마시러 갈 것을 생각하고 겨우 잠을 청한다. 온 시가지에 오염안된것이 없으니깐 산에다 희망을 걸고 산으로 갈 꿈을 꾸는 불쌍한 정자의 신세다. 우리 연길시로 말하면 모아산에 물길러 다니는 식이다. 총적으로 이 시는 록색시로서 심하게 오염된 자연과 오염된 인간사회를 준렬히 비판한 시이다. 10년전에 이런 시를 썼다는건 최시인의 시적 안광이 아주 예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종합포도술(1)            최기자   낮고 비좁은 무도장에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검은 녀자들이 알몸으로 혹은 면사포만 가리고 퐁당퐁당 뛰여들어 스치고 부딪치고 밀고 밀리우면서 동동 둥둥 한들한들 느믈느믈 춤을 춘다  어떤 게슴츠레한 염색체들만이 붉은 유혹을 후룩후룩 들이킨다 야위여가는 무도장에는 버림 받은 알몸들만이 거멓게 죽어가고있다 그날 숱한 녀자들이 라체춤을 추다가 죽었다   서태문—포도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무도장의 상황에 비유해서 다루었는데 기발하고 독특하다고 느껴집니다.   림금산—해설: 이시는 2009년 중국코리언명시정선에 오른 시이다.   그렇다, 포도는 술병에 미끄러져 들어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찢어지고 푸욱 고와져 나중엔 포도주가 된다. 이 시에서는 포도가 포도주병안에 들어가는 것을 즉 포도주병을 무도장에 비유하고 포도알들을 무도장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에 비유했다. 여기서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검은 여자”라고 묘사한건 빨간 포도알, 파란 포도알, 노란 포도알, 검은 포도알을 말한다. 즉 포도알을 의인화했다. 착상이 기발하고 시를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란함을 엿볼수 있다. “스치고 부딪치고 밀고 밀리우면서”—란 묘사들은 세월에 부대끼고 사람에 부대끼고 비리에 부대낌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그 다음 “동동 둥둥 한들한들 느믈느믈”- 등 시어들은 표면적으로는 행복한체 하고 점잖은체 하고 동동 둥둥 즐거운척 하지만 허황하고 허무하고 허탈한 인간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은근한 풍자와 조소인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한줄로 안다. 전반 시의 노리는 점을 감안할때 가히 이렇게 말할수 있겠다.   “야위여가는 무도장에는 버림 받은 알몸들만이 거멓게 죽어가고있다”--- 이런 시적 표현은 결국 허무하고 허황하고 공허한 요즘 인간들의 무도장은 절대로 풍요로운 즐거움이나 행복한 곳이 아닐것은 당연함을 암시하고 또 그래서 “야위여가”는 무도장이라고 했다. 나중엔 거멓게 죽어갈수 밖에 없는것이다. 절대로 싱싱히 살아나거나 또는 새힘을 얻거나 부활하는게 아닌 그와 정반대인것이다.   “그날 숱한 녀자들이 나체춤을 추다가 죽었다”고 한 표현은 껍질이 다 벗어진 라체의 포도알처럼 요즘 인간들도 광대와 들뜸과 허위와 허상의 표면적인 껍질을 다 벗으면 그 안엔 죽은 시체밖에 안남는건 당연한 일일것이다.   이 시는 포도가 술병속에서 시달리다 죽어가는 것을 무도장에서 허무에 말려서 죽어가는 인간과 비유해서 요즘 많이 들떠있고 붕- 떠있고 실속없이 자기를 세월속에 던져버리는 인간상을 예리하게 해부햇으며 나아가서는 전반 이 사회 거품식 현실을 폭로하고 통책하고 비판한 것이다. 이면에서 이 시는 이 시로서의 자기의 사명을 완수할수 있은것이라 해야겠다.     서태문—다음은 최기자시인의 력작 “언감자떡”을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감자떡   어느 배부른 자의 버림을 받아 한겨울 쓰레기로 나뒹굴던 감자들이 우리 집에서 옷을 벗으며 눈물을 쏟았다 엄마 손톱눈처럼 아린 눈물을   들어누워 열물을 토해낸 언감자 주렁주렁 처마끝에 내걸린 념주 알알마다 엄마손을 울린 동전들이 얼면서 녹으면서 마침내 하얀 속돌로 잘랑거리면 굶주렸던 절구친구가 배를 불린다                 엄마 머리에 하얗게 감자분꽃을 피우면서   엄마가 반나절이나 빚은 내 고사리손이 되짚으며 세여낸 언감자떡이 쑥불에 화독을 쓰고 무겁게 무겁게 장터에 나앉았다 엄마얼굴처럼 까맣게 나앉았다 1954년 팔월 스므이틀 오후 네시 엄마는 서시장에서 언감자떡을 팔다가 진달래동생을 낳았다 할머니는 또 계집애라고 토라지시고   서—언감자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아주 핍진하고 또 임신한 엄마가 임신한 배를 해갖고 서시장서 언감자떡을 파는 장면도 …참 눈물나는 묘사들인데요 이 시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림—해설: 네, 엄마가 언감자떡을 만들어 장에 나앉아 파는 장면에 대한 시적인 묘사를 통하여 잔밥들을 키우시느라 숱한 고생을 밥처럼 자신 엄마의 눈물나는 일생을 추억했다.   언감자가 녹으면서 물을 줄줄 흘리는걸 “열물을 토해낸다”고 하고 념주처럼 처마에 달아맨 언감자들을 동전에 비유한다 왜? 그것으로 이제 언감자떡을 해서 팔면 동전이 되기때문도 있지만 또 조롱조롱 달아놓았을때 동전같기두 하다. 또 다 마른 다음에는 가벼운 속돌같기도 하다. 그걸 또 절구에다 하얀 감분을 머리에 들쓰면서 찧어 가루를 낸다 그후 엄마가 감자떡을 빚으면 나는 그것을 헤여본다 몇개나 만들었는가 나중엔 시장에 나앉아 판다. 이때 엄마는 임신때였고 드디여 언감자떡을 파는 동안 “1954년 팔월 스므이틀 오후 네시”에 최시인의 녀동생을 낳았다. 시에서는 진달래동생—진달래냉면 유한공사 총경리를 말한다. 시의 마지막 행이 또 재미있다. 낳은 애가 계집애라고 할머니는 토라진다…그 살기힘든 세월에도 또 남존녀비사상까지 우리 할머니들을 괴롭히여 더욱 가슴 아프다.   이 시는 녀성시인으로서의 섬세하고 구체적인 핍진한 시적 묘사가 돋보인다. 그리고 우리 민족 여성들만이 알수있는 언감자떡을 만드 는 전반 과정이 시줄을 타고 눈물과 한숨과 함께 잘 익어갔다. 시인의 재치를 잘 보여주는 눈물나는 시이다. 언감자를 만드는 과정도 눈물나고 피나는 과정이지만 그걸 또 임신한 배를 해갖고 장에 나앉아 파는 장면은 더구나 눈물나고 후일 진달래동생이 그 큰 중국조선족의 유명짜한 어마어마한 냉면집 총경리 동사장이 된것도 아주 잘 안받침되여 못살던 그때 당시의 엄마의 형상이 더욱 돋보인다. 이면에서 이 시는 읽는 사람의 가슴을 짠하게 만들어주고 또 그러하기에 이 시는 아주 딱소리나게 성공했다. 신-다음은 역시 바다가에 갔다가 현장에서 느낀 감수로 쓴 시인데요 아주 독특한 내용을 쓴 시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대련 칠현령(七贤岭)에서 본 말매미   외손자 보러 왔다는 어느 할머니 손에 아이노리개로 되여버린 말매미 반나마 잘리워나간 날개 불구자의 고독한 연기입니다   가냘프게 치르르르 숫놈만 운다니 필시 숫놈일텐데 짝을 불러 열창하던 그 목청이 병들었습니다   넘어질듯 휘뚝휘뚝 빛에 취해 무리 지어 시공을 휘젓던 남자 그 남자가 거세되였습니다   고작 일곱날을 살려고 기껏 짝 한번 짓자고 칠년을 땅속에 묻혀산것 그것이 억울하지도 않은가요   녀자 하나 못 잡고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값없이 이렇게 무참히 노리개로 앓다가 병신으로 살다가 제명으로 못살고 외토리로 가는건 아닙니까   희비는 엇갈리고 생사는 지척이고 명암은 불빛이니 애당초 번데기로나 살거지   치르르르 치이 짝을 찾아 우시는가요 새끼 원해 우시는가요 세월 탓해 우시는가요   누구의 동생 누구의 오빠 누구의 삼촌  누구의 남자여   서—참으로 재미있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말매미를 썼는데 또 그 말매미도 병신말매미를 썼고 수컷구실을 못하는 말매미를 써서 더구나 독특한것 같습니다.   림—네, 제재가 역시 특이합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병신 말매미를 썼고 수컷구실을 못하는 말매미를 썼고 기껏 일주일간 살자고 땅속에서 7년을 묻혀산 말매미를 썼는데 그것도 또 병신이여서 한번 밖에 짝을 짓지못하는데 짝도 지을수 없는 불쌍한 말매미를 썼다. 정말 말매미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서 은근히 인간의 삶의 기구함을 배면에 깔아주고 있다. 시에서 “녀자 하나 못 잡고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값없이 이렇게 무참히 노리개로 앓다가 병신으로 살다가 제명으로 못살고 외토리로 가는건 아닙니까” 라고 한다. 완전히 우리 사회에 점점 시들어가고 병들어 가고 남편이 남편노릇못하고 지어 한생동안 외토리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인간상을 비유해서 탄식을 쏟았다. 치르르르 치이 짝을 찾아 우시는가요 새끼 원해 우시는가요 세월 탓해 우시는가요 라고 한것은 이런 남자들에 대한 측은한 감정과 눈물겨운 동정, 더 나아가서는 실망하는 그런 한탄을 풍겨준다…세월에 대한 한탄과 시들어가는 속세의 시들어가는 인간상에 대한 비탄을 쏟아냈다.   진짜 이런 병들고 제노릇못하는 남자가 누구의 동생이고 누구의 오빠이고 누구의 삼촌이고 누구의 남편인지? 만약 누가 이런 남자와 관계된다면 그건 진짜 그 사람의 비극이 아닐수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련, 마지막 행에서는 호격토 “여”까지 써가면서 피타게 부르짖고 있는것이다.   서태문—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녀류시인 최기자님의 재미나고 독특한 시들과 가까이 만나서 아주 좋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서태문-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에서 이만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7984    중국조선족 시인 김응룡 篇 댓글:  조회:505  추천:0  2024-08-23
김응룡 시인 2014년 08월 12일 16시 58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심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훈춘에 계시는 김동진시인과 그의 시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방송국, 잡지사에서 편집사업을 맡아오시면서 우리 문단을 장식해온 김응룡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응룡시인은 많은 문학인들을 탄생시킨 두만강기슭-화룡시에서 탄생한줄로 알고있습니다. 두만강과 문학은 어떤 필연적인 련관이 있는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먼저 김을룡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지요.   림-네, 김응룡시인은 1946년7.11. 길림성 화룡현 덕화향 유동촌 소유동골에서 출생, 선경대 그 아래. 유동하기슭. 좀더 내려가면 길지촌, 덕화향, 남평진, 맞은켠은 두만강건너 조선 이 부근에 많은 문학인들이 산출, 로과에 리욱선생(비록 여기서 태여나지 않았지만), 최룡관,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등 허씨3형제, 길지촌에 박장길, 김영건, 김응룡, 최홍일도 이 부근 하향 등   신-원래 형제가 여러분이였는데 후에 병으로 사망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그는 화전농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국가급 풍경구인 선경대아래골인 소유동에서 화전을 일구고 감자와 보리를 심어 식구들을 먹여살리였다. 그의 우로 형 둘과 누이 둘이 있었는데 형 둘과 누이 하나가 전염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자 아버지는 막내아들(후에 남동생이 하나 생겨났음)인 그마저 잃을가봐 사주팔자를 잘 보는 로인을 집에 청해놓고 그의 이름을 짓게 하고 또 그의 평생 사주를 쓰게 하였다. 하여 그의 가문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만자돌림이였으나 그만은 이름을 응룡이라고 지었다. 신-이름을 바꾸었는데도 여러차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이름이 좋아도 그는 어릴 때부터 내내 죽음의 신을 뒤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살을 잡는 해의 추석맞이때였다. 어머니등에 업혀 물레방아간에서 어머니가 방아를 찧는것을 보아온 그는 어머니가 제사상을 차리려고 기름떡을 굽는 사이에 아장아장 걸어서 방아간에 가 어머니처럼 방아확안의 쌀을 번지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방아확에 빠졌는데 방아공이 내리치자 얻어맞아 정신을 잃었다. 그때 어머니가 찾으러 나왔으니 망정이지 방아공에 한번만 더 맞았더라면 물아이였던 그는 진작 죽고말았을것이다. 또 한번은 그가 다섯살이 되던 해 봄이였다. 그의 집은 두만강변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이튿날 그 때는 1952년, 조선전쟁이 치렬한 때라 강건너 조선의 신작로로 중국인민지원군이 이틀 낮과 밤을 이어 전선으로 나가고있었다. 그는 군대들의 자동차며 땅크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풀리려고 버석버석해진 얼음우로 건너가다가 그만 얼음이 꺼지는바람에 물에 빠지고말았다. 다행히도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옥동이라는 처녀가 발견하고 기겁한 소리를 치자 그의 아버지가 달려나와 겨우 그를 건져냈다. 그 외에도 일곱살때 백일해에 걸려 죽을번하던 일, 강변에서 놀다가 뱀한테 물려 죽을번하던 일, 개한테 물려 범의 고기를 먹고 살아나던 일… 15살에 급성페염, 급성신염 등 합병증이 와서 다 죽게 되였는데 마침 연길현간부휴양소가 마을앞에 있어 휴양소 의사들의 극진한 치료를 받아 또 한번 사경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그 흔적으로 소년이였던 그의 머리는 반나마 희여버렸다. 그래도 죽음의 고비마다 귀인들이 나타난것은 아마도 이름 덕을 입은것 같다. 신: 그같은 일들이 그의 문학의 길에 어떤 힘을 주지 않았는가 생각하는데요.   림: 그는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오면서 생명의 귀중함과 그런 고비마다 사랑의 손길을 뻗쳐준 사람들한테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이 되는 도리를 조금씩 깨우쳐왔다. 이 모든것은 아마도 후날 그가 작가로 시인으로 될수 있은 밑거름이 되였으리라. 그는 아홉살에 13리나 되는 먼 곳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래서 학교로 오가는 길에 책을 들고 걸으면서 암송 같은 숙제를 하고 손에 들어오는대로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신-초중때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면서요? 그때 어떤 작품을 썼습니까?   림-네 초중때 《참외에 깃든 이야기》란 아동소설을 써서 연변방송국에 응모작품으로 보냈는데 뜻밖에도 우수상으로 입선되여 상을 받게 되자 그는 문학에 대한 뜻을 더욱 확고히 굳히게 되였다. 초중시절의 반주임선생이였던 남흥범선생님은 문학에 집념하는 그를 기특히 여기고 의식적으로 인도하고 지도해주었다. 그래서 초중을 졸업할 때는 일정한 문학수양을 갖게 되였다. 초중을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지망을 쓸 때 가정살림이 구차하여 아버지 뜻대로 연변사범에 지망을 썼는데 조선어문이 만점을 맞는 기적을 내여 화룡고중에서 먼저 입학시키는 바람에 사범학교로 못가고 화룡고중을 다니게 되였다. 1967년 화룡고중졸업. 문화혁명이 일어나 대학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68년 8월 고향에 돌아와 민영교원-남평소학교에서 1970년까지 교원을 하다가 (이때 학생가운데 박장길시인이 있음) 화룡현 중학교교원훈련반에 가서 근 8달동안 학습하고 덕화향 경흥중학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는 이 시기에 시와 아동문학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1972년에 연변작가협회에 가입. 이런 덕으로 1974년 8월 덕화향문화소에 소장으로 전근. 공사문화소사업을 하는 기간 김성휘시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사의 아침》이란 덕화공사시집을 편집출판했으며(정식출판) 길림성 모범문화소의 영예를 따냈다. 1978년 5월, 그는 연변방송국 오태호주필의 안중에 들어 곡절끝에 전근수속을 마치고 연변방송국에 전근이 되였다. 방송사업을 하는 기간 그는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함수공부를 하면서 청소년프로를 당담했기에 몹시 분망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사업의 수요로 가끔 아동문학작품과 가사만을 썼을뿐 어려서부터 사랑해온 시는 별로 쓰지 못했다. 1985년에 함수졸업. 방송국청소년부 대리주임. 문학부부주임으로 사업. 신: 에 전근되여서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편집과 창작에 몰두하였다고 들었는데요.   림:1988년 12월, 연변문학월간사에 전근이 되여서야 그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을 편집하는 한편 문학에 대해 재학습하게 되였다. 당시 그는 주관적으로 편집자가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하면 과외작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것이라고 인식하고 수필, 실화, 시를 닥치는대로 써서 발표했다. 이때 그는 수필편집, 실화문학편집, 시편집 등을 맡았댔는데 시문학작품을 편집하게 되자 그는 여러 류파의 시리론 특히 현대시리론을 알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학습에 게으르지 않았다. 나중엔 시평론실 주임도 맡아하면서 학습과 창작실천과정에서 그는 시란 심미적이고 정감적이고 생명의 상징이여야 한다는것을 깨우치게 되였고 그의 시에 이런것을 체현하려고 노력했다. 2006년 8월 정년퇴직. 신-그렇다면 김응룡시인에게는 어떤 작품들이 있으며 또 지금 정년퇴직후에도 많은 사업을 펼친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계십니까?   림-1969년에 시 “빈하중농호장”을 처녀작으로 발표하면서 아동서사시 “붉은 사과”, 덕화공사 시집 “공사의 아침”편집, 방송드라마 “산골마을의 아이들”, 동화그림책 “알룩이와 흰둥이”,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 등 백여수 성인가사 “그리운 고향길” 등 수십수.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인작품쓰기시작했는데 실화문학작품 “사랑의 손길”, 수필 “망돌” 등 50여편, 시 150여수 많은 가사를 창작, 시집 “잔디풀의 작은 사랑”, 황장석시인과 합작하여 장편실화소설: “얼의 몸부림”, “삶의 선택”, “물속의 불”, --주로 기업가들의 일대기- 그중 리송웅도 있음. 역시 황장석시인과 함께 “숲속에서 맺은 사랑”이란 소설집을 번역 그리고 대형문학총서 “두만강”, 단풍수필회 비전기간행물 “단풍잎” 연변시인협회에서 꾸리는 시문학총서 “시향만리”등의 편집에 참가. 중앙문화부를 비롯한 8개부문에서 공동주회한 “전국 “꽤꼴새컵”동요창작콩클에서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가 1등상을 타는 등 전국 성주 우수 문학창작상 수십차 수상. 한국 “문예시대” 해외동포문학상 수상. 현재: 연변시인협회 부회장 겸 비서장.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아동문학연구회 비서장. 시총서  "시향만리" 편집, 조직자의 한사람, 등   신-실로 많은 작품창작과 문단활동들을 펼친 김응룡시인이였습니다. 그럼 먼저 시골 외톨이들의 현실상황을 아프게 쓴 그의 시 "기다림"을 감상하고 림선생의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림   김응룡   정오무렵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개가 짖는다 컹컹 마을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 보고 이 집개 저 집 개 짖어댄다 목 메여 짖어댄다 산비탈 메밀밭에서 다락논에서 김을 잡던 외기러기 사내들 약속이나 한 듯 일손 놓고 일어선다 행여 행여… 저마다 부서지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신: 농촌의 현실생활에 눈길을 돌린 시였는데요 해설부탁드립니다.   림-녀성이 없어진 우리 농촌들에서 살아가는 외톨이 사내들이 정오무렵에 한적한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에 대한 동일한 눈길을 통하여 리향, 해외로무송출 등으로 인한 부부리산의 아픔, 로총각들의 결혼난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농촌에서의 가정의 해체화 경향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실존상황을 아주 짧지만 특색 있는 모멘트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준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시제목 "기다림"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다. 혹시 마을에 여인의 그림자라도 나타날가고 기다릴수도 있고 한국간 친척이나 안해를 기다릴수도 있고 장가갈 그 날을 기다릴수도 있고...   신: 네농촌의 현실을 그려낸 김응룡시인의 시 이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까치둥지          김응룡   지는 잎들이 받들어 올린 까만 그리움 하나 백양나무 가지에 동그랗게 걸려 쳐다보는 나의 눈 이슬 젖는다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 주인은 어데 갔나 동구밖 나선 할배할매 눈이 허는데 반가운 기별은 전하지 않고 늙은 총각들 술병 안고 쓰러졌는데 오작교는 놓지 않고 생기가 떠나간 자리 까만 그리움 하나 행복했던 나날들이 락엽되여 뒹구는 시골 백양나무가지에 높이높이 걸렸구나   신: 백양나무에 걸려있는 빈 까치둥지를 통해 생기를 잃어가고있는 농촌의 전경을 그려내고있습니다.   림- 이 시에서는 우리 농촌에서의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을 나무에 달린 빈 까치둥지에 비해 표현했다. 까치는 사실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새이다. 그러나 그런 길상스런 까치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밖에 남기지 않고 애오라지》 《까만 그리움만 하나》만이 《백양나무 우에 높이 높이 걸렸구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민족적인 우환의식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정서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민족적 사명감에서 우러난 김응룡시인의 우환의식을 잘 보여주었다. 민족적인것이 사라져가는 농촌의 현실에서 느낀 진실한 정서를 비교적 생동한 시적 형상화를 통해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이 시는 한국《문예시대》2006년 해외동포문학상수상작 신: 급속한 사회의 발전에 비해 피페해진 농촌의 현실을 밝힌 시였습니다.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입니다. 향수   김응룡 삶은 올감자에 하얀 김이 서리고 된장 찐 풋고추 향을 피워 올리면 내사 65도 배갈 한 병 마셔도 취하지 않소 앞강의 여울소리 긴긴 전설 풀어내고 숲속의 새들 딸기빛 사랑을 노래했소 젊은 시인은 심장을 뽑아 미루나무에 걸고 둥둥 북을 쳤소 먼먼 지평선 저쪽 내가 태를 묻은 땅이 있으련만 강물의 여울소리도 새들의 사랑노래도 들리지 않고 안개만 자욱하오 불볕에 달아오른 세멘트길 따라 홍개미 한 마리가 포복전진하오 35도 배갈에 취해 비틀 비틀   신: 역시 농촌의 실생활에 눈길을 돌리고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시인의 고향은 앞강건너 저쪽 먼곳의 지평선저쪽에 아득히 보인다. 허나 갈수가 없는것이 또한 현실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눈앞에 비쳐지는 것은 사랑도 희망도 빛바래진 농촌의 현실이고 그 속에서 정신상태가 허전하여  술이나 마이며 마음을 추슬리려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 시에는 쓸쓸함과  눈물이 반죽되여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이러한 시들은 우리 농촌의 쓸쓸한 통곡소리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마지막 부분에 홍개미가 포복전진한다는것과 술취한 작품중인물이 비틀비틀하며 겨우 한발작씩 전진한다는 표현이 아주 재치있어보인다. 이런 시적 형상화와 표현은 힘들게 향수를 참으면서 하루하루 한발작씩 옮겨디디며 살아가는 고달픈 정서를 더욱 짙게 해준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입니다. 역시 농촌의 정경을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시골개구리들의 울음   김응룡   어둠이 깃든 시골 개구리들이 운다 눈물도 없는 개구리들이 울음 높이 질벅하다 비도 오지 않아 강가 모래불에 묻은 엄마 물에 밀려갈 근심도없는데 왜 우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이 우는 리유 아는지 모르는지 이영이 고삭은 초가에서 진작 잠에 곯아떨어진 늙은 량주 꿈을 꾼다 꿈에 안아보는 손자손녀 재롱에 행복의 웃음 느침으로 흘러내려 베개잇 적신다 이 시골 인적 늙은 량주마저 초가에 묻힐가바 개구리들은 운다 밤새껏 밤새껏   신: 농촌에 내려가면 시상이 잘 떠오르는가 봅니다. 비록 도시에서 생활한 경력이 더 길지만 농촌제재를 많이 다르고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시도 농촌에 내려갔다가 느낀 감수를 적은것같은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 고향에 간 시인은 현대적인 문화향수에 푹 빠져 보내던 도회지와는 달리 밤에 우는 개구리소리를 듣게 된다. 문화도 없고 아예 늙은 량주밖에 안남은 그런 시골, 한산하기 그지없고 고적하고 스산하고 괴괴한 그 저녁 그저 하염없이 우는 개구리소리만 들린다 시인은 이제 늙은 량주만 늙어서 사망하면 이 시골은 완전 인적이 없어진다. 즉 사람냄새가 영영 없어진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초가에 늙은 량주가 묻혀없어질가봐 개구리가 밤새껏 운다고 한다. 역시 사그라져가는 시골의 삭막한 풍경에 대한 시인의 애탄의 목소리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시는 입니다. 젊음을 잃은 아쉬운 마음을 담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창졸한 시절 김응룡   꽃은 그때 벌써 다 지고 죽은 나비들의 장송곡이 슬펐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   눈물이 떠나간 자리에 아직 죽지않은 뼈들이 숭숭 구멍나는데 고해의 끝은 어디 굼실대는 저 파도우 지는 별이 차갑다   생명의 페지를 아무리 번져도 가장 빛났던 페지는 그 한장 행복도 그속에서만 파랗게 열기뿜는데 돌이켜 번질수 없는 오 창졸한 시절이여   신: 세월이 원쑤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느끼고 경험했던 그런 감수를 적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림—고향에 있을때의 그 청춘시절 젊은 시절이 너무도 빨리 창졸하게 흘러간걸 아쉬워하는 마음을 시화했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여기서 지렁이는 울뚝 돋아오른 피줄을 비유한것이고 그 지렁이가 세월이 가지말라고 모지름쓰지만 허사이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우에서 감상한 시들과 비슷하게 농촌전경을 빌어 시인의 감수를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우물                           김응룡 페허로 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 하늘이 좁다고 울던 개구리들 강따라 사방 흩어지고 돌담벽에 돋은 푸른 이끼 사라지는 농경세월 손저어 바래거니 시이미지 쫓던 이 붓대 갈팡질팡   신: 아주 짧은 시지만 사회현실을 잘 보여준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림-페허로 된 마을, 스산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밖에 안남았다. 그 우물속에서 울던 개구리들도 이젠 다가 강따라 골안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돌담벽엔 이끼만이 외롭게 푸르러진다 어딘가 락후햇지만 인심이 아주 후했던 농경세월은 차츰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휑덩그렁하고 스산한 살풍경이 된 고향에서 시인은 뭔가 쓸수가 없어, 정서를 흘릴수가 없어 붓대가 갈팡질팡 허공에서 헤매인다…여기서 또 하늘이 좁다고 울던 우물안의 개구리는 결국 시골세계가 너무나 좁다고 웨치며 그 어떤 꿈을 안고 버덕으로 도회지로 떠나간 사람들을 상징한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시는 입니다. 우에서 감상했던 시들보다 더 슬프고 쓸쓸하게 농촌의 분위기를 그려낸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감자 두알 김응룡 이글거리던 숯불도 꺼지고 화로를 마주한 할머니와 손자 주고받던 이야기도 꺼지고 이제 남은 재불엔 감자 두알 인적 끊긴 마을이라 개도 일찍 잠들어 밤이 긴 도포자락 끄는 소리만 스르럭 스르럭 이따금씩 문풍지 울린다 다가는 인생과 막 시작하는 인생을 익은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흰김이 이어주어 아직은 온기가 도는 시골 초가의 밤   신: 할머니와 손자의 내일이 근심되는 쓸쓸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림-령감도 없는 홀로인 할머니와 아빠 엄마도 없는 형제도 없는 홀로인 손자 합했자 둘이서 마주 앉아있다. 분위기가 어딘가 외롭고 조용하고 적막하다. 그래서 숯불도 이글거리는 숯불이 아니고  화로불 개도 일찍 잠들다. 인적이 없으니 개가 짖을일이 없게 됐고 그래서 더구나 적막강산. 거기다가 또 밤이니. 그래도 시인은 완전히 식은 모습에 붓을 놓아버리지 않고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휜김속에 그 조그만한 온기를 되살려 준다. 미소하나마 그래도 그 어떤 묘연한 희망을 살작 얹어주는 배려를 보였다. 가는 인생은 가더라도 아직 어린 손자 그는 오는 인생이요 시작하는 인생이니깐. 희망같을걸 얹어주는 배려를 보여준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유리창을 생기발랄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록있는 시입니다.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유리창                  김응룡 님아 너 상금도 기억하느냐 우리들의 숨결이 닿아 정열의 눈물 흐르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안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밖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서로서로 애타게 갈망하면서도 마음의 빗장 못열어 별만 쌍쌍 얼어붙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님아 그 유리창은 지금도 그 곳에 그 모습 그대로 달겨있고 소쩍새는 지금도 그날 밤처럼 그렇게 슬피 울고있어 님아 우리 함께 가자 그 시절 그 유리창가로 그리고 세월의 울타리 넘어 마주서 보자 너의 한쌍의 새별을 나의 한쌍의 새별을 그럼 축복같은 눈이 너와 나의 머리 하얗게 덮어놓고 꿈같은 옛말을 들려줄거야   신: 생기와 정열로 차넘치던 청춘시절의 사랑을 샛별눈을 빌어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림-사랑시다. 사춘기시절, 서로 창을 두고 눈사랑하고 기다리고 숨어서 보고 애타게 그 얼굴 그모습, 그 눈동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때 그 순진한 티없는 사랑. 지금처럼 대놓구 말하지도 못하던 전통적인 사랑, 수집은 사랑, 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쿵-쿵 방아찧던 그런 사랑을 진솔하게 시화했다. 구성상으로 보면 님아가 세번 첫번째 님아로부터는 그때 젊음의 새별같은 눈동자가 유리창을 사이두고 얼어붙던일, 두번째 님아로부터는 지금도 그 유리창이 그냥 그 자리에 달려있다는 (혹은 기억속에 달려있다는) 세번째 님아로부터는 우리가 다시 그 유리창창가로 즉 그 추억속으로 다시 가자는 가서 추억의 눈을 맞으며 서로 그때의 콩콩 뛰던 가슴을 얘기하자는 걸 썼다. 그래서 구성상에서도 흩어짐 없이 아주 정연하고 자연스레 흘렀고 아주 째였다.   신-네 김응룡시인에게는 시작품외에도 수필, 소설, 드라마, 실화 등 다양한 문학장르의 작품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의 시작품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더 넓은 범위에서 살펴보면 좋겠지만 시간상관계로 오늘은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이 시간 문학살롱프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7983    중국조선족 시인 김기덕 篇 댓글:  조회:455  추천:0  2024-08-23
문학살롱 김기덕 시인 2013년 04월 28일 14시 54분   작성자: 구름바다  김기덕 시인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다년간 대련에 거주하면서 안중근의사에 대한 연구와 시창작을 열심히 해오신 김파시인을 소개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쳥도에 거주하면서 시농사를 부지런히 지어온 김기덕시인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림금산 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하십니다. 신-그럼 먼저 김기덕시인의 시 “고향길”을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고향길     김기덕 찾아갈 때는 민들레 홀씨처럼 발걸음이 한 장의 종이 같고 떠나올 때는 진흙에 빠진 것 같이 이렇게 무거운 까닭이 애닯다 빨랫줄에 앉아 사설 많던 제비 떠나오는 이 사연을 입에 물고 하늘 높이 치솟으며 지저귀던 날 나는 뒤로 보고 또 보고 가슴 아팠다 떠나가면 다시 찾아가면 되지 하면서 그것만은 전부가 아니었다 멀리 멀리 손 흔들며 지켜 보는 80 넘은 어머니의 눈빛이 안타까워서다       2008년 8월 14일, 대한민국의 24시간 실시간 뉴스 전문방송국 YTN에서 방송한 김기덕 시인의 "고향길"입니다. 애절하게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의 튀는 심장은 전파를 타고 사람들에게 다가와 짜릿한 감동을 줍니다.   1950년 길림성 교하시에서 태어난 김기덕씨는 1972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 그간 1982년에 연변제일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1986년에 연변대학 통신학부 정치전업을 마쳤다. 그해로 교하시 교원연수학교에 교육연구원으로 승진했고 1993년 청도로 진출할 때까지 시종 교육 관련 사업을 하였었다.   김기덕씨가 문학을 접하기는 1981년 중국조선족교육잡지에 시 "코스모스"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문학이란 교사로서의 자질향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는 것을 의식한 김기덕씨는 그후 왕성한 열정과 피타는 노력을 들여 수백편의 문학작품을 발표, 동시에 길림성 교육간행물인 "교수와 연구"의 특약편집으로 초빙받기도 했으며 길림신문과 중국조선족소년보의 특약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3년 4월, 김기덕씨는 한일합자기업 성전전자의 초빙으로 청도에 와 총무관리로 근무하게 되었다. 교육자로서의 2백위안 노임에 비해 기업관리인으로서의 1300위안 봉급이 큰 유혹이었다고 신분 탈바꿈의 정당성을 담담하게 밝히는 김기덕씨는 그러나 그게 진정한 원인이 아님을 그의 눈빛이 증명하고 있었다. 금전적인 유혹보다는 문학에 완전 매료되어 문학을 통하여 현실 생활과 변화되는 세계를 재조명하고 그런 와중에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의 완성도를 한 발자욱 더 접근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자유인이 된 김기덕씨, 청도에서의 생활이 거의 고향에서의 사업경력과 맞먹어가는 이 시점, 김기덕씨는 청도는 무한한 창작에너지를 공급해준다고 말한다. 드넓은 바다와 붉은 기와, 푸른 나무와 기암괴석 그 어느 하나도 감동없이는 마주할 수 없다고 한다. 거기에 시넋을 얹으면서 김기덕시인은 연변작가협회에 가입하였고 2001년에 한국 월간 문학세계에서 시집 "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를 출판하였고 세계문인협회 청도지부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08년 8월에는 연변라디오방송에서 그의 시를 약 27분가량 특별 방송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중국은 물론 한국, 미국 등 국가의 간행물에 시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작품 2천여 편(수)를  발표한 김기덕시인은 건강이 좋지 못하여 병치료를 받으면서도 늘 문학창작의 필을 들고 물방울 하나 모래 한알이라도 그냥 스치지 않고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기 위해 감동의 몸부림을 다하고 있다.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길림시작가협회, 청도시연해조선족문인협회회원 《문학세계》문학상 금상(시), 중국조선족청마문학상 우수상(시) 수상 시집『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     가을빛 김 기 덕 소꼬리에 묻어 졸졸 따라 다니던 가을빛이 앞니 빠진 시골 애들 입술에 싱겁게 히죽거린다 오이밭에 여윈 빛이 언제 몽땅 철거했는지 곱사등 늙은 오이만 숨 가쁜 모양새로 걸려있고 밭고랑마다 변비인가 온 몸 붉어진 고추밭에 혀를 내밀며 호- 호- 바람을 부는 가을빛     림해설- 시-가을빛은 [경북일보]「아침시단」2011년 9월 30일,금요일 사위워 가는 가을 빛을 배경으로 펼쳐진 익숙한 시골풍경이 정겹게 읽힌다. 소꼬리나 앞니 빠진 시골 애들이나  오이밭이나 고추밭의 가을빛이 소멸로 가는 문턱에서 자신들의 형상과 빛깔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1련에서 가을빛, 2련에서 여윈빛, 3련에서 변비 등으로 진솔하면서 형상적으로 포옥 익어 흐드러진 가을빛을 그려냈다 마치도 고향의 채마전을 보는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빠진 애들을 썼고 변비같은 것을 썼지만 전혀 밉지가 않고 사랑스럽고 인정스럽다.          버들피리             김기덕 세월이 흘러가는 긴 흐름 위에 그리운 추억의 버들잎 하나 둘 띄워 보냅니다 사무치게 그리운 고향의 물 맑은 정 한 잎 두 잎 한 옥타브 높은 음악이 되어 흘러 보냅니다 삐리리- 반은 울음이고 반은 웃음이랍니다   봄이 생글생글 오고 있습니다   김기덕 봄비 키득 키득 웃으며 파란 물 염색하는 들에 꽃 애기들이 좋아라 짱-짱- 손 벽 칩니다   꽃잎 펼치는 보조개에 파아란 봄비 찰랑거리고 꽈리 부는 제비들의 부리에 봄빛 재롱이 즐겁습니다   봄이 옵니다 노래하는 산새들의 나래에도 새 봄이 앉아 웃고 진달래 민들래 피여 날 실개천 물소리에 봄이 가득합니다   봄이 옵니다 시골 길로 쪼르르 꼬리 흔들며 콩콩 짖어대는 시골 강아지 강아지 등에도 봄빛 반지르르 윤기 돕니다   봄이 옵니다 그리웠던 님도 함께 오실 봄이 옵니다   그때의 밤이 옵니다   김기덕   그대는 나의 행복한 밤이였습니다 밤이 되면 나에게로 조용히 날아들었고 낮이 되면 그대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날아가는 가을의 새들처럼 갔습니다   밤이 되면 그대가 꼭 오실 줄로 압니다 입은 옷 그대로 쪽잠을 자다 깨여나면 그대는 나의 창가에 샛별이 되여 있습니다 그대 뒤에는 출렁거리는 머-언 바다가 보입니다   갈매기들은 왜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지 제비들은 왜서 겨울을 피해 가는지 그대가 떠난 뒤에 알았습니다 저 새들의 우는 소리 들리면 난 너무 괴롭습니다   바다 가에 서서 먼 섬을 바라 보면 초점을 잃은 시선이 밤이 되여 옵니다 언젠가 섬 마을 고추 밭을 지나 가면서 똑 내 남편 거시기 같다는 웃기던 밤이 옵니다 ===========================================  김기덕과 시집 “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장학규 김기덕은 1950년 길림성 교하시에서 출생하여 1972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선후 연변제일사범학교와 연변대학 통신학부 정치전업을 졸업했으며 1993년에 청도에 진출했다. 1981년 시 “코스모스”로 등단한 김기덕은 현재까지 3000여 수의 시와 수십편의 수필을 발표하여 조선족문단의 다산작가로 손꼽히고있다.  한편의 좋은 시를 세상에 출품시키는 작업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시를 써본 시인들은 잘 알 것이다. 한 수의 시를 완성하기 위하여 여러 번 갈고 깎고 다듬고 지우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몸에 깊숙이 배여있다.  일년에  수백편의 시를 써오면서 한 수의 좋은 시를 내여놓으라면 그리 만만치 않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시속에 시인의 예리한 초점이 맞춰지고 최대의 카리스마로 압축시킨 강도 높은 함축이 시행마다 깊게 깔려 있는 시, 읽어보면 손으로 만져질것 같고 코를 대면 예상했던 글향이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을 할것만 같은 시를 일년에 한수를 창작한다는것이 그리 쉽지를 않은것이다 2002년 저자가 한국 월간 문학세계에서 출판한 시집 “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에서 “풀잎”이란 시가 그 례로 들수 있다. 즉 100년이 넘는 시간을 세개의 단어로 함축시키고 다이아몬드처럼 강도 높은 빛을 발산하게 하는 노력이 뚜렷하게 엿보여주는 것이 자랑스럽다. 풀 잎//그 어느날 밤/짚신이 지나가고/그 어느날 밤/ 고무신이 지나가고/그 어느날 밤 구두신이 지나가며/厄이 풀잎에 길게 누웠다//넘어진 풀잎은 누워서/설레는 소리를 연습하고/그 뒤에 황소같은/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밟히면 일어서고/또 밟히면 또 일어서고…/끝끝내 일어서는//풀잎에도 厄을 딛고 일어서는/뼈가 있나 보다//그것으로 끝이 없는 들/만경창파에/책 한권 쓰나보다// 풀잎은 이 세상의 높이를 전부 남에게 사양하고 자신은 가장 낮은 바닥을 선호하며 짚신에 밟히고 고무신에 밟히고 구두신에 밟혀 사는 흔히 볼수 있는 우리민족의 력사와 너무나도 가까운 일이다. 짚신 고무신 구두신으로 한백년의 력사를 함축시키며 강한 뼈로 밟히면 일어서고 또 밟히면 또 일어서는 기백과 지혜가 력력히 숨쉬고 있음을 감지할수 있는것이다.  
7982    중국조선족 시인 김창희 篇 댓글:  조회:443  추천:0  2024-08-23
김창희 시인 2014년 08월 09일 18시 24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편집사업을 해오면서 열심히 시창작을 견지해 오고있고 또 좋은 시들도 많이 써낸 중견시인 김창희와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을 모셨는데요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창희시인이라고 하면 시창작을 시작한지 꽤 오래된 분으로 알고있는데요 그럼 먼저 김창희시인의 프로필부터 소개해주시지요? 림-네   김창희 략력 1965년 안도현에서 출생 필명: 김희.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 수필, 평론 300여편 발표, 칼럼 다수 발표, 시집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2008) 출간. 선후로 교원, 그리고 , , 등 신문,잡지들에서 편집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지에서 시편집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신-그렇다면 김창희시인은 어떤 상들을 수상했습니까? 림-네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1990), 24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19차 중국조선족아동문학필회 최우수상, 제 3차 중국조선족동시탐구회 최우수상 등 문학상 수상. 흑룡강성보도특별상(2005), 흑룡강신문우수작품 2등상(2006) 등 각종 상 30여차 수상.    신-김창희시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판은? 림-네   한춘: 김창희시인의 파격적인 시구조는 우선 기존의 정연한 객관구조질서를 해체하여 자기의 심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데서 잘 보여지고있다. 해학적인것 같지만 그것은 단순한 해학을 넘어서 어딘가 풍자적 요소가 다분한 그리고 원유질서를 흔들어보려는 야심이 보여진다 김룡운: 김창희의 시들이 몇가지 양상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중 가장 두드러진것이 아이로니적(풍자, 비꼬기, 반어법: 사실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사실을 더욱 강조하는 말)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아이로니로 삶의 뒤안길을 정성껏 비춰보는 김창희의 시는 차거움속에 따스함이 있고 빈정거림속에 진정이 있으며 질타속에 인류구원의 강렬한 불꽃이 번뜩이고 있다.   림—이 두분의 말씀을 분석해 보면 둘다가 김창희시는 아이러니한 멋이 다분히 풍긴다고 했다. 김창희의 시에서 아이러니란 야유적이고 눈물겨운 풍자, 해학, 조소, 자초 등이 다 포함되는것 같다. “아이로니는 배부른자, 아픔을 모르는 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김창희의 시가 주로 아이로니의 뿌리에서 돋아나고 거기에 걸터앉아 이 세상과 지껄이기를 즐기는 까닭은 김창희가 걸어온 오솔길에 널린 삶의 편린들과 그의 타고난 성격적 기질에서 표현된다.”-김룡운 김창희시인은 자기 시집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이유”에서 말한다. 신—김창희시인은 젊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인생고 비슷한 것을 겪었다고 아는데요 아마 이것이 그의 시창작에 그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요? 림—네 그렇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젊어서 많이 그달프게, 아프게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안도에 있을때 20여평방메터가 되나마나 한 단간방(이집에 저두 가봤습니다.)에서 로모를 모시고 최하층삶의 쓰고 매운 맛을 볼때로 보았고 그후 어쩔수없이 숙명의 멍에에 끌려 갖가지 연길에 와서 일자리도 없이 전전긍긍하면서 고초와 애로를 겪었고 하지만 문학의 끈은 계속 놓지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조여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친인들을 련이어 잃고 비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였다. 아빠, 엄마, 조카, 누님 등이 련이어 사망. 그러한 삶의 쪼각들이 알게 모르게 시인의 세포에 슴배여 있다가 시의 불꽃으로 변해 세상밖으로 튕겨나온다. 배고픔과 아픔속에서 걸어나오는 김창희시들은 그때문에 리유가 많고 그때문에 인생이란 기차역을 휘딱휘딱 시름없이 지나치는것이 아니라 멈춰서서 달리지 않는다. 결국 달리지 않는 방식으로 달리고 있는것이다.  간신히, 혹은 말을 바꾸어 말하면 이악스레, 히질기에…밑바닥인생을 살아오면서 생에 대한 사색이 누구보다 더 깊다고 생각됨…     신-네 그럼 아래에 김창희시인의 시작품을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김시인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감상할 시로는 “수박”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수박                   김창희 계절에 맞춰 입은 파란 색상의 숙녀복 그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였다 모난돌이 정맞는다는 속설 또한 너무 잘 알기에 둥근 모습에 얼굴도 반반했다 그러나 무참한 칼날의 세례에 속마음 활짝 열면 세월에 피멍든 몸 그 진실은 남을 유인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진실은 늘 쓴맛만은 아니였던가 안팍을 다르게 살아야 하는 수박의 생 누구의 탓인가   신—네 참 일상에서 흔히 볼수있는 수박에서 령감을 얻은것 같은데요 수박에다 깊은 뜻을 담은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 시가 …   림—해설: 이 시는 2007년 8월호 결국 안팍이 다르게 살아야 하는 수박의 일생을 의인화하여 수박처럼 겉과 속이 다르게 살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대비했죠 그리고 이렇게 만든 것을 이 사회에 돌린것이다. 사실 요즘 세월엔 겉과 속, 안과 밖이 똑 같으게 살기 힘든 세월이다. 없어도 있는것 처럼 흉내내고 아파도 말을 못하고 세력앞에서는 지는척해야 하고 령도앞에서는 웃음을 지어야 하고 등 수박처럼 벌건 진실을 가슴속에 품고있으면서도 또 수박의 겉모양처럼 둥글둥글 살아야하는 요즘 세상의 비리에 대한 칼질이다. 풍자적인것을 바탕에 깐 아아러니한 작품이다. 사실은 화약냄새가 풀풀 나는 시인데. 시구에서도 칼이란 말이 나온다   … … 그러나 무참한 칼날의 세례에 속마음 활짝 열면 세월에 피멍든 몸 그 진실은 남을 유인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칼로 짜개보기전엔 겉모습은 그냥 둥굴둥글, 즉 편안하게 살게 위해서는 자기를 억제하고 둥글둥글 하게 살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안타까움을 썼다. 결국 비판이죠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연변명태는 찢겨져 누구 반찬이 되나”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변명태는 찢겨져 누구 반찬이 되나                      김창희   연변 도문발 렬차를 타면 비릿한 바다 바람이 매콤한 고추내음을 타고 나그네들 겨드랑이 사이를  비집고 흐른다 깡통맥주에 땅콩이며  소세지며 닭손이며 무더기로 모여온 안주속에 창백한 몸매에 발갛게 화장한 연변명태로 이름 바꾼 북어는 동해바다 너른 옷자락이 비좁게 미이라처럼 비닐에 꽁꽁 묶이여 남국인들 호기심 벅찬 눈길 벌겋게 받으며 한몸  활짝 열고 나그네의 손길을  기다리고있다 가리가리 찢기기를 기다리고있다 찢어져야 제구실을 하는 숙명 데치고 삶아지고 끓여여지는것도  모자라 한구(一軀)의 미이라가 돼서도 재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를 환생이라 하나 소세지 햄 땅콩에 세련된 나그네들에겐 연변명태란 입맛 바꾸는 하나의 존재일뿐 이따금 색다른 맛 즐기려 찾아들면 은근슬쩍 비릿한 향기에 개성있게 톡- 쏘는 일침으로 버려지는 그 아픔을 재생이라 해야 하나 동해바다서 태여나 연변호적 달고 여윈 몸 추스르며 동해바다보다 너른 세상 찾아 연변명태는 오늘도 무번호 승차권에 완행렬차 급행렬차 번갈아 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연출하며 번지없는 어디론가 떠난다 찢어지는 아픔이  즐거움으로 승화할  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며...   신-네 아주 흥미롭게 쓰면서 어딘가 씁쓸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는 내용인데요 어떻게 봐야 할가요?   림- 이 시는 2008.4월에 쓴 시이다. 그렇다. 연변명태를 통해 연변사람들을 썼다. 즉 조선족을. 도문에서 발차하는 차를 타면 꼭 조선족은 있기마련이고 조선족이 있으면 꼭 맥주같은걸 마실 가능성이 많다 맥주만 만나면 조선족은 명태를 안주하길 즐긴다. 요즘엔 또 고추양념까지 바른 비닐봉지속에 넣은 명태. 이건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니깐… 숱한 민족들속에 끼인 명태 어디론가 잘 살수있는 방법을 찾아 또 잘살려고 차타고 “번지없는 어디론가 떠난다” 요즘 나의 사촌동생도 한국가서 돈벌어왔는데 상해쪽으로 뭘찾아 떠났다…사실 번지도 없이…그저 알아볼라 떠나더라… 기타 민족들한테 씹히면서. 일단 조선족이면 꼭 이런 저런 문의를 물어온다. 그래서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긍정적인 답을 던진다. 확신을 준다. “찢어지는 아픔이  즐거움으로 승화할/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며...” 총적으로 이 시에서는 명태와 조선족을 비유하여 아직은 뭔가 뚜렷하지 못한 목표를 찾아 즉 잘살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이제 앞으로 다가올 찢어지는 아픔을 미리 예견하면서 종내는 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는 우리 민족의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몸부림을 썼다. 시에서 명태를 통한 묘사가 아주 시적으로 잘된 점 또한 돋보인다.   신—네 다음은 역시 시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죠.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                            김창희   2006년 1월 3일 할빈 중앙대가에 쓸리다 오랜만에 서점가에 끌려 2005년중국시가정선이라 이름 한 시집을 골라잡고 오랜만에 시고랑을 빗질한다 소학생이 장편소설 읽듯 훑어보다 세집살이에 옹송거리면서도 등이 휘지 않는 시우의 파리한 얼굴이 읽혀진다 세월에 살면서도 세월의 중앙을 범하지 못하고 오늘도 시를 끄적이며 삶의 그림자 흉내내는 장하고 용한 시우가 부럽다 누구라 할것없이 빚진것도 없으면서 늘 마음 하가득 근심을 지고가는 달팽이처럼 훔쳐본 세상을 세상의 모든것이나 한듯이 으시대며 알았다는듯 머리를 주억대는 파리처럼 왜 그리 소심하게 용감하게 사를수 있을가 부쉬낀, 조기천, 김소월, 마리아 릴케,리상, 윤동주, 북도, 이싸… 사실주의, 이미지즘, 초현실주의, 신사실주의,포스터모더니즘 맑스, 모택동, 칸트, 니체, 베르그송, 사르트르 조선시, 조선족시, 중국시, 한국시… 짬뽕으로 말아먹으며 기신기신 헐레벌떡 콜록쿨룩 오늘까지 붙어온 살아온 시우가 눈물 아니라 코물이 나게 피물이 나게 감사스럽다 사재를 틀어 시집을 만들고 나팔꽃처럼 바지랑대에 따라오르며 해빛인양 향기를 피우며 한무리 잊혀진 족속속에 살면서도 마음은 지구의 중심에 사는 유치원어린이보다 유치하지 않고 김삿갓보다 해학적이고 황소보다 고집이 센 시우가 부럽다 2006년 추운 할빈 겨울을 나며 2005년중국시가정선을 에어콘해 언손 녹여보다 언제면 파리한 얼굴의 시우의 시도 이 시집 한자리 녹일수 있을가 중얼대본다 왜소한 시우의 모습이 삶에 부닥껴 부황 든 비대한 내 그림자보다 너무 살가와 할빈의 겨울이 푸근해진다. 2006.1   신-시를 쓰는 친구에 대해서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을 쓴것같은데요 그 배면에 또 더 깊은 인생철리가 있는것 같기도 하구요…시 쓰는 작업이 별로라는 말은 아닌듯 싶은데요?   림-네 맞습니다. 한시기 할빈에서 흑룡강신문사에 있을때 쓴 시로 추정되는데 결국 문학을 하는 참다운 인생을 아이러니컬하게 썼다. 가엾게 보고 비웃는 것 처럼 빈정대며 썼는데 결국 정신적인 추구에 대한 소중함을 썼다. 돈내풍기는 요즘 세상에서 시쪼각이나 가지고 노는 인간에 대해 겉으로는 실망하는것처럼 하면서 내면에서는 소중하게 생각하는게 배면에 알린다. 그리고 여기서는 친구한테 쓰는식인데 사실은 친구를 포함한 자신을 쓰고있다. 경제시대에 문학을 하는 이들에 대한 근심과 걱정, 또 그밑에 깔린 소중하고 존경하는…그런 심태를 시로 써냈다. 시에서 “부럽다”고 여러번 말하는게 바로 이런 심태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이 시에서 시인과 철학자들, 그리고 문학인들의 필독해야 하는 여러가지 주의, 등을 쭉- 라렬했는데 자유자재로…그 어떤 활기찬 감을 주고 문학인들의 지식면의 넓음과 정신세계의 풍부함을 잘 표현해주었다. 생활은 비록 각박하지만 정신상태나 지식구조같은것은 풍부한 삶을 사는 그 부를 시에 깔아주는데 아주 좋은 표현방식이였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이 시에서만은 …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 -친구에게                  김창희   산다는것이 페철의 옷을 벗기듯 피곤한 사연인줄 알면서도 하얀 이 바자처럼 세우고 언제나 희죽이 미소하는 친구여! 숙명이란 그림자를 호주머니에 구겨넣고 물새인양 삶의 갈대숲을 후여후여 누비며 송사리든 대어든 투정없이 건져올리고 장독대 비물이 고이면 얼큰한 매운탕이 되는 친구여 물소의 뿔이 하필이면 뒤로 번져지고 지붕은 위태롭게 물매지며 지렁이는 안스럽게 주름으로 걷는지 그 사연을 구태여 풀지 않으면서 나름의 기분으로 세상사 굽어보는 새벽 이슬밭의 참딸기같이 싱싱한 친구여!     림—친구에게”라는  부제를 붙인 이 시는 2000년 6 월에 쓴 시인데     시인의 자화상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배고픔과 아픔속에서 걸어나오는 김창희 시들은 그런고로 리유가 많고 그런고로 인생이라는 역전들을 시름없이 휘딱휘딱 지나치는것이 아니라 맘취서서 달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김창희의 시들은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를 펼쳐보이게 된다. 페철의 때를 벗기는 고역의 주인공, 호주머니에 미지의 숙명을  구겨넣고 물새처럼 아득한 삶의 갈대숲을 날아예는 물새가 바로 시인이 아닐가. 시인은 달리려는 렬차를 세워놓고 생각에 잠겨 머리칼을 세여본다. “고달플 땐 그림자를 줄이고/ 빈혈에 걸린 머리칼을 세여보는 시간을 키워야겠습니다” 내가 미워날 때면 머리칼을 세여보는중에서 시인은 더욱더 아픔과 배고품을 느끼고 그것의 해결책을 빈정거림과 야유와 흘겨봄에서 찾는다.   비운속에서도 락오자가 되지않고 늘 하얀 이 드러내고 웃으면서 살아가는 친구(자기)…그게 슬프단다 또 그게 락관적으로 사는 모습이여서 위안이 된단다.그래서 새벽 이슬밭의 참딸기같이 싱싱한 친구,친구를 썼지만 결국 자기도 동감이라고 흰트주면서 결국 자기도 함께 쓴 시같다.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랭장고는 계절을 몰라도 좋소”를 함께 감상하고 림선생님의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랭장고는 계절을 몰라도 좋소                     김창희     아기와 정신질환 환자를 한방에 두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모기와 거미를 한 공간에 보태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계절과 랭장고를 접속시키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들판 허수아비가 감기를 하고있소 혹은 당신이 대신  약을 먹어도 좋소     림—이 시는 듣는 자가 아주 막연한 당신이고 화자는 베일에 가리운         아리숭한  자이다. 얼핏 보면 길 가던 싱거운 사람이 무심히 던지는 값 눅은 지껄임 같지만 그 지껄임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색이 흐르고있다. 가령당신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라고 가정하면 시인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약자, 위험에 처한 인간들을 구원하라고 반어적 귀띔을 하고있는것이다. 또한 모든 부조리를 조리로 환원시키려는 의도도 내포되여있다. 여기서 “혹은 그래도 좋소”라고 련마다 마지막행에 이렇게 썼는데 그 뜻인즉 “응 정안된다문 혹시 그래봐라 그래두 좋다. 어디보자. 콱 그래다”등의 뜻으로 즉 반어적으로 리해해야 할줄로 안다.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이 백두산 “온천”을 소재로 쓴 시 “온천”을 함께 감상하고 림선생님의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죠   온천         김창희   추웠어요 아버지 모습   느꼈어요 아버지 마음   신—짧은 시이지만 그속에 온천처럼 따가운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는것 같습니다. 맞죠?   림-네 맞아요. 바로 그걸 쓴거지요 이 시는 난해하지도 않고 짧지만 뭔가 처주는 그런 시라고 생각되네요. 이 시는 1988년에 씌여진 시인데요 참 아버지를 백두산아래에 있는 온천에 비유해서 쓴 시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를 춥다고 한건 아버지가 원체 어머니보다 무서운 존재이고 엄엄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또 백두산자체가 늘 백설을 떠인 추운 존재이기에 이렇게 비유한것이 아주 타당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한어로 말하면 恰如其分이지요. 그리고 온천은 따가운 물인데 바로 추운 아버지도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따가운 온천처럼 후덥다는 것이 동감갑니다. 이 시는 짧지만은 추우면서도 마음은 따가운 우리 민족 모두의 아버지들을 잘 개괄했고 진짜 야, 그렇구나 하고 동감하게 되는 그런 시가 아니였나 생각되네요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김창희시인과 더불어 그의 독특한 시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한층 더 가까이 김창희시인한테 다가가는 아주 좋은 시간이 되지않았나 생각됩니다. 오늘도 림금산시인님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 하셨습니다. 신- 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이만 접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7981    중국조선족 시인 김영춘 篇 댓글:  조회:542  추천:0  2024-08-23
문학살롱 김영춘 시인 2014년 08월 09일 14시 26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흑룡강성의 저명한 시인 한춘선생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우리 연변의 중견시인이고 또 녀류시인인 김영춘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님을 마이크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영춘시인이라고 하면 여성시인으로는 꽤 오래전부터 시를 쓴걸로 알고있는데요 석현에 계셨댓지요? 먼저 김영춘시인의 프로필부터 소개해주시죠 림-네 1968년 장백현 출생, 연변제1사범학교를 거쳐서 연변대학 졸업,석현에서 교원, 석지신문편집 등을 하셨구요. 도문에 다니며 두만강시회에서 활약。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녀성시회 부회장 등 현 연길텔레비죤방송국 편집. 여류시인으로는 아주 빼여나게 여성만이 쓸수있는 알찬 시들을 써낸 시인입니다. 2006년 8월 첫시집 출간. 두만강여울소리 시인상(2004년) 제1회 중국조선족녀성백일장상, 연변시조 우수상 등 수상   신- 그럼 아래 김영춘씨의 구체시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김영춘시인한테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감상할 시는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 김영춘 8월의 호숫가를 거닐면 한 마리 은빛 잉어가 되고 싶어요 그대 하늘색 셔츠와 금 빛 낚싯대 곱게 잠그고 있는 호수   그 푸르른 호심에서 헤염치며 그대 넋을 빼앗는 백조가 못 될 바에는 물속에 숨어 그대를 지켜보는 자그마한 꿈이고 싶어요.   그러나 서글피 읊조리는 그대 사랑시 나를 부르는 예쁜 미끼라 믿어질 때 그대 사랑의 낚시를 덤벙 물고 행복한 죽음으로 그대 손에 이르고 싶어요. 신- 참 기발하면서도 재미나게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구체적인 분석 부탁할게요 림--이 시를 보면 사춘기라 할까, 아니 사랑에 빠진 처녀들의 심리를 너무나 핍진하게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랑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님을 사랑하는 자신을 미끼를 덤벙 무는 은빛 잉어에 대상화시키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은근히 김영춘시인의 시재를 엿보게 한다. 이 시에서는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면서 본 낚시질관경, 그것으로부터 서정적주인공의 생각을 펼쳤다. 아, 나도 잉어처럼 그 사람의 낚시줄에 달린 미끼를 덥석물고 그 사람한테 잡혀서  사람의 손바닥에까지 떨어지고 싶은 그 심정. 낚시에 물리면 즉 잡히면 나중엔 죽기마련이지요 그래서 죽으면서까지도 사랑하는 님한테 이르고 싶은 그 사춘기의 심정이랄가… 아주 묘하게 시화하고 있습니다. 재미나고 멋스런 또 여성의 각도에서 남성을 그토록 갈망하는 심정을 아주 잘 표현한 그런 시라고 생각되는데 시가 너무나 아름답게 흘러 진짜 사랑시로서는 진품입니다. 신-다음은 김영춘의 시 “현대 승냥이”이 입니다. 제목만 봐도 아주 무시무시할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오는데요 함께 감상해보시죠  현대승냥이 김영춘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 건 너의 눈이 였다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 그 옛날의 네 눈빛과 하늘 땅 사이에 턱 버티고 서서 사납게 울부짖던 용맹한 위풍 이젠 조금도 찾아 볼수 없었다 양처럼 순한 눈매로 철창밖의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를 우울케 하는 풍경이였다 비린 바람이 불때마다 초원이 그리워 운다던 전설속의 승냥이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한 가닥 애수가 흐르는 너의 흐린 눈빛만이 가까와지고 있다 네가 너무 승냥이답지 않은 모습이길래 아름다운 사람옷 입은 승냥이들 이 겨울에 하나, 둘 늘어가는 걸가?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너의 눈이 였다 너를 너답지 않게 만든 이 부술수 없는 쇠살창과 양보다 더 순한 너의 눈매였다 신- 점점 시들어가는 용맹을 잃어가는 승냥이를 남성에 비유해서 쓴것같은데요. 왜서 요즘 남성들은 남성다운 기품을 점점 잃어가고 있을가요? 해설 부탁합니다… 림---여기서 하는 건 만든 부술 수 없는 과 양보다 더 순한 였다. 다시 말해서 에 갇혀 을 잃어 가는 승냥이가 슬프다는 것이다. 그 보다도 승냥이가 을 잃어감과 동시에 을 입은 들이 에 하나, 둘 늘어가기 때문이다. 이 승냥이를 승냥이 답지 않게 만들었다면 은 을 입은 들이 하나, 둘 늘어가게 한다. 그렇다면 은 무엇이며 을 입은 는 또 누구인가? 을 입은 가 어떤 부류의 을 가리키고 있음을 텍스트 자체가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으로 읽을수 있다. 사회가 점점 상업화로 나아가면서 농경생활이 없어지고 기계적인 움직임과 빠른 절주 등은 요즘 남성들을 꽁꽁 묶어서 스트레스에 쌓이게 하고 일상에 빠지게 하고 그러다나니깐 야성 즉 푸들지고 날파람나고 위풍당당한 그런 웅성이 점점 미약해진다. 그래서 나약해지고 여성화되고 특히 그 눈들이 정기가 없어지고 야성이 없어지고 무기력하다. 헌데 일상에 빠지고 삶에 지친 남성자신은 때론 그걸 잘 모른다. 이 시에서는 여성쪽에서 먼저 남성의 남성답지 못한 그걸 발견하고 탄식하고 아쉬워하고 나중에는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남성에게 용맹한 남성다운 기질이 다분히 보였으면 좋겠는데 아주 무기력한 남성들이 숙보이게 되는것이다. 이 시는 스러져가는 남성들의 주눅든 모습을 쓰는것으로 남성답지않은 남성들한테 회초리를 안기고 더 나아가서는 남성들을 남성답게 만들지 못하고 남성의 야성을 죽여가는 이 사회를 비꼬는 것이다. 이 면에서 이 시는 또 사회적의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이 시가 발표되던 당시에는 아주 인기를 끌던 시였고 지금봐도 그 새로운 사색령역에 대한 창조는 돋보인다.  신-네 참으로 묘하게 씌여진 시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다음엔 시 “젖먹이는 순간마다”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젖 먹이는 순간마다 김영춘 젖 먹이는 순간마다 나는 물이 된다 주고 주어도 더 주고만 싶은 샘터가 된다 하얀 사랑샘에 매달려 눈 한번 안 깜박이고 쉼없이 젖 빠는 아가는 풀이 되고 별이 되고 사슴이 되여 작은 나와 큰 세상을 이어준다 엄마 되는 길이란 내가 여위어지고 아기가 커 가는 아프면서 예쁜 여행인 줄 젖 먹이는 순간마다 조용히 행복하게 느낀다   신-네 참으로 아기엄마의 그 마음, 그 모성애가 아주 잘 형상화된 시라고 느껴집니다. 어떻습니까? 림--김영춘시의 특색을 말하라면 아마 현실적인 녀성생활미가 흐르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영춘의 시를 읽으면 현실속의 장면 장면들이 리얼하게 눈앞에 보인다. 이 시는 전혀 해석이 필요 없는 시다. 여기서 살펴보고저 하는 것은 연상이다. . 에서 , 에서 으로 연상이 자연스럽게 직선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 에서 로 이어지다가 와 , 와 , 와 의 형식으로 연상이 빛발처럼 사방으로 퍼져간다. 그러다가 와 이라는 대립속에 발산하던 연상들이 모이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이란 이라고 하면서 에서 으로 자연스럽게 연상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련상들이 이 시의 단순성을 극복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젠더 문제가 제기 된다. 아가에게 젖을 먹이면서 행복에 잠긴 여인의 모습. 전형적인 의 형상이다. 하지만 는 시행이 제시해 주듯이 그 은 달갑게 맛보는 이고 그 자체가
7980    중국조선족 시인 한춘 篇 댓글:  조회:476  추천:0  2024-08-23
북방시단의 저명한 시인이고 평론가인 한춘시인 2013년 07월 18일 20시 58분  작성자: 구름바다 신—이번 시간에는 북방시단의 저명한 시인이고 평론가인 한춘시인과 그의 부분적 시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을 마이크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신—한춘 시인이라고 하면 평론도 많이 쓰신분인줄로 알고있구요 현대시쪽으로 많은 연구가 있는분이죠. 그럼 먼저 한춘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주시죠. 림—네   1943년, 흑룡강성 연수현  출생. 본명 림국웅. 저와 한성씨라서 아주 잘 아는 사이입니다. 저희들이 두만강여울소리를 연변서 조직할때도 년세가 많으시지만 여러차 할빈에서 직법 와서는 참가하시고 심사위원도 맡아주고 또 여러차 론문도 발표하군 했습니다. 1966년, 동북농업대학 졸업. 해림시 수리측량설계대 대장 역임. 黑龙江新闻社文艺部主任,北方朝鲜族文学巨头,著名诗人。   신—그렇다면 한춘시인한테는 어떤 시집들이 있습니까? 림—네 시집 , , , 등과  평론 다수. 신—한춘 시인은 또 어떤 상들을 수상했습니까? 림—네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흑룡강성정부 문예상, 흑룡강소수민족문학상, “한춘시인의 중국읽기”란 수필은 도라지잡지에 련재되였더냈는데요  2009년에 도라지수필문학대상을 수상. 2005년 서울에서 진행된 한민족글마당에서 주관하는 제3회 한민족글마당 문학상 해외부문상 수상 등. 2008년 6월 20일. 장백산잡지사로부터 제6회 조선족문학비평상 수상. 이 상은 “한국문학리론과 비평학회”와 장백산잡지사에서 공동으로 수상하는 상인데 매년 중국조선족문학비평분야에서 성과가 큰 문학인에게 수상하는 상이다.   신—그렇다면 한춘시인은 문단적으로 어떤 문단활동들을 펼쳤구 또 지금쯤은 퇴직하셨겠는데요 지금은 만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림—네 비록 퇴임했지만도 아주 풍부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퇴임하기전에는 흑룡강신문사 문예부장, 흑룡강조선족창작위원회 책임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 2006년 10월 이틀간 한국대구시인학교에 초청되여가서 특강 1996년 10월 「문학의 해」 세계한민족문학대회 중국측 대표로 발제문을 발표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1990년 8월 서울에서 있은 제12차 세계시인대회와 1997년 8월 서울에서 있은 제17차 세계시인대회때 서울에 가서 참가했으며 흑룡강신문사 서울지사 특파원으로 한국에 수년간 머물기도 했다. 지금은 신문사에서도 퇴임했구요. 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 회장직도 나젊은 리홍규시인한테 넘겼습니다. 지금은 한글학회 하얼빈 소재 흑룡강지부장. 흑룡강신문사 편집위원 70  고령임에도  흑룡강동방학원에서  문학강의를  하고있는  한춘선생은  교수과정에서  한국문학사 교과서가  마땅한것이  없음을  느끼고  30만자에  달하는 《한국문학략사》를  편찬해  올해 내에  출판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당시 150수》, 《송사 150수”의  우리  글  번역서도  년내에  출판될  예정이란다.   신—그럼 한춘시인의  구체 시작품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한시인한테로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 “무궁화련가”를 함께 감상하시죠 무궁화련가   한 춘   오늘만의 기쁨이 아니라 해도 나는 시를 쓰고 노래했다 그대의 사랑이 내 살결에 닿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꽃대궁은 키를 높이였다.   오늘만의 아픔이 아니라 해도 외로운 마음 더욱 단단해졌다 한점의 향기 풍기고 지쳐서 쓰러진다 하더라도 꽃은 피여나고 만개하였다   오늘만의 기다림이 아니라 해도 서러운 꿈은 아름다왔다 그대와 헤아리던 별은 나홀로 사육한 사랑의 물증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   림—무궁화련가는 결국 시와의 련가이다. 여기서 무궁화는 결국 우리 민족을 뜻하고 우리 민족의 문화 내지 문학,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시를 뜻한다. 3련으로 된 이 시는 련마다 첫행에 “오늘만의 기쁨이 아니라 해도” “오늘만의 슬픔이 아니라 해도” “오늘만의 기다림이 아니라 해도” 등 말들로 시작되였다. 그렇다. 시를 쓴다는 자체가 미적 향수이고 기쁨일이다. 하지만 또 어딘가 아픔 일이다. 새로운걸 창작해 낸다는건 정신적인 고뇌, 즉 뇌즙을 짜내야 하는 아픔의 인고가 없음은 아니된다. 마치도 조개가 많은 아픔과 인고끝에 진주를 품어내는것 같이. 또 무한한 기다림이다. 3련의 첫행. 또 새로운 정서와 새로운 발상을 기다리는 늘찬 고행의 길이다 독자들한테는 아름다운 시의 꽃송이를 선물하지만 시인자신은 기다리고 아픔을 감내하고 물론 기쁨도 동반한 창작의 아픈 고뇌와 기다림. 나중에 시의 제일 마지막 련 마지막 행에서는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고 했다. 꽃은 피였다 질때에는 꽃씨를 남긴다. 그런데 쭉정이씨를 남겨서는 아니된다. 잘 여문 씨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는 시창작에 대한 신심과 희망과 용기를 말해주는듯 싶다.   신-네 시와의 뜨거운 련정을 읊어낸 좋은 시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시 “낫갈기”를 감상하고 그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낫갈기 한춘   낫을 갈아야 할것이다 한평생 갈아야 할것이다 망판같은 숫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반월만한 낫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꿈꾸는 가지도 쳐주고 새둥지엔 풀도 깔아주고 막혔던 물길은 열어주고 배고픈 기다림은 깎아주고 그리고 마음의 잡동사니 하나 둘 썩뚝썩뚝 자르면 찬란한 비명소리 익어갈테다   혼자서 자꾸 낫 가는 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 낫 가는 일은 버릴수 없는 일.   신—네 낫을 간다는 뜻인건 같은데 여기서 낫으로 아지랑 쳐주고 마음의 잡동사니랑 썩뚝 썩뚝 잘라버린다고 했는데 그 밑에 “찬란한 비명”소리란 뭔뜻입니까?   림—여기서 찬란한 비명소리란 바로 몸의 어지러운 곳을 다 쳐버리고 또 쳐버릴때는 아프죠 그러니깐 비명소리가 나겠죠 하지만 다 대패질하고 몸매나 마음가짐이 잘 다음어지며는 거뜬하고 아주 잘 수련된 그런 말끔한 몸이 되겠죠 그래서 또 찬란하다고 한것같애요 그래서 결국 찬란한 비명소리라 했죠. 이 시는 시인으로서 시종 마음의 낫을 갈아야하고 또 잘 간 낫으로 자기의 이런 저런 거치장스럽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잘 다듬어야 한다는 걸 시화했습니다. 즉 마음의 다듬기, 정신의 다듬기…여기서 시인자신의 자신에 대한 높은 요구와 바른 자세를 우리는 잘 보아낼수 있습니다. “낫을 갈아야 할것이다|한평생 갈아야 할것이다|망판같은 숫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반월만한 낫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아주 요구가 높은 …시인의 고도로 자각적인 수련을 강하게 표현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신-네 시인의 적극적이고 엄격한 자아수련의 자세를 읊조린 좋은 시였습니다. 다음은 시 “락엽”, 참 한창 락엽지는 계절에 “락엽”을 함께 감상해 보시죠…   락엽 한춘   나비처럼 숨을 할딱이다 바람결에 떨어지는 락엽 떨어지는대로 불평이 없다 한여름 진록을 녹여주고 문득 무언가 깨닫고 하나둘 가지를 떠나고 떨어져서는 뿌리께로 간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조용히 몸을 돌린다 높은 가지 끝엔 까치둥지가 당실하다.   림—누구나 다 퇴직할때가 있다. 자리를 내야 한다. 락엽도 나무에서 떨어질때가 있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떨어진다. 하지만 그걸 별로 싫어하진 않는같다. 그러나 그건 결국 맥이 모자라거나 능력이 제한되여 그런게 아니다. 살구가 제일 잘 익어 무게가 제일 무거울때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것처럼 제일 성숙되고 완숙될때 즉 성숙을 완성했을때 떨어진다. 결실의 계절이다.락엽도 이젠 자기 무게로 떨어져선 내려온다. 그렇게 푸르를땐 엄마의 몸체에 딱 붙어서 젖을 빨아먹느라 떨어지지가 않던 락엽이 이젠 모체가 필요치 않아 자체로 떨어진다. 하지만 자기를 키워준 모체를 잊지는 않는다. 즉 나무로 말하면 뿌리를 잊지않는다. 그래서 락엽은 뿌리께에 떨어진다. 떨어져서 하늘을 우러러 보니 까둥지가 당실하다. 하늘은 그렇게 높고 넓은데 그리 높지않은 곳에 까치둥지가 댕그랗게 보인다. 그것이 자기가 성숙되기 전에 여물기 전에 그렇게 흠모하며 우러러보던 꿈이였다. 지금 다시 보니 아주 우스웁지만…이렇게 우습게 보는 자체가 바로 락엽의 성숙을 말한다. 결국 다시 뿌리께로 와서 뿌리에 비료를, 부식토를 제공해주려 즉 모체에 보답하려 하면서 보니 까치둥치는 좀 유치스러워 보이는, 이런 생각이 바로 락엽의 성숙미를 보여준다. 락엽귀근, 즉 이 시는 락엽귀근의 위대한 인생철학을 보여준 훌륭한 시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락엽이 떨어져서 뿌리게로 간다는 말까지 쓴 시인은 많다. 하지만 마지막 머리돌려 쳐다보니 까치둥지가 저만치 높은 가지에  달랑 매달려있다는 걸 쓴 이는 드물거나 거의 없다. 요기서 이 시는 성공을 보여주지 않았나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해변의 고석(孤石)            한춘 돌은 절벽에 서있어야  돌이라 하겠는데  어느 누구의 재채기에 해변가로 던져졌나 철없이 채찍질하는 물파도에 온몸을 씻어내고 또 씻어내여  청허한 마음 하나  해평선 저 한끝으로  눈길을 모으는 고석  날아가던 해조들이  잠시 내려 깃을 다듬을 때  바다의 너비를 받아안았고  둔덕에서 지는 꽃잎이 지심의 밀어를 실어다줄 때 대지의 기지개를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대낮 한나절  스쳐가는 바람도 한점 없다 썰물은 저 멀리 달아나고  뿌려진 조가비들도 말이 없다  이 시각은 합장기도하는 시각  정도로 숨쉬는 법을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  이 시는 2008년 7월호에 실린 시인데요 참 무한한 인생의 막끝을 보는듯한 한생의 정점에 서서 그 넓이와 깊이를 응시하는 한 로시인을 마주한것 같은 그런 장중하고도 도고한 또 말없는 침묵을 우리는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하필이면 절벽에 서있어야 할 바위가 바다 한모퉁이에 고독하게 버려져 파도의 채찍을 맞고 …조가비도 말이 없고 스치는 바람도 없고 …고독..고독으로부터 사색, 합장, 응시, 회포, 추억, 안으로 반추하는 그런 자세…마지막에 “정도로 숨쉬는 법을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진 한마디…일생동안 방황해왔지만 이 시간만은 정도- 즉 바른 옳바른 인생길…그걸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한어로 时刻。 신-네 참으로 장중하고 엄엄하면서도 차분한 어떤 사색적인 무게로 우리들 마음을 눌러주고 다져주는 시였습니다. 다음은 또 한수의 시 “혜성”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혜성 한춘 굴레를 벗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방향이 없다 혹은 어디나 다 방향이다 밤이슬 오른 풀잎들이 입을 다물고있다 어둠이 쪼개지는 시각 또다시 끝없는 적막속으로 짧은 옷자락을 태운다 우주 사계절을 쌓아놓은 페허에서 시간을 략탈한다 무언의 대사(臺辞)를 입은 가사가 지친 조각돌의 아물지 못하는 상처우에 천서 한장을 올려놓다 신—역시 무게를 누루는 시인것 같은데요 해설 부탁합니다. 림—네 한춘시인의 시는 모두가 이토록 지긋이 무게를 눌러주는 맛이 있는것 같습니다. 역시 인생, 앤생의 자세, 다각적인 인생에서의 옳은 길, 정도를 제시해주는 그런 의미깊은 시인것 같습니다. 헤성은 궤도를 따라 돌지 않습니다. 궤도를 벗어나 밤하늘을 쭉- 가르며 어딘론가 자기만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곹추 그 길로 뻗어나갑니다. 향방이 없습니다.하지만 또 향방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나 다 미개척지이니깐 어디나 다 내가 뚫고 들어갈수있는 방향이지요 그래서 길이 더구나 많습니다. 옛적 처음으로 상품경제시대에 들어설때는 무얼할가? 무슨 장사를 할가? 종래로 해보지못한 일이니 여러가지로 생각이 잘 안나지요 감이 잘 잡히지 않지요 하지만 이젠 뭐어든 다 해서 돈을 버는것과 마찬가지로 시창작같은것도 그렇죠 진정한 창작자유를 안아오기전에는 걍 그 길 …사상이 있어야 하고 주제가 있어야 하고 주제를 둘러싸고 창작해야 하고 그 어떤 쾅쾅에 맞추려 했지만 요즘 세월엔 그게 아니죠 그저 어떤 느낌같을걸 아주 미감나게 쓰면 되죠 또 아주 길이 많죠 요기로 가면 새우는 수풀로 갈수있고 조기로 가면 사랑노래 질펀한 정감의 동산으로 가서 맘껏 상상을 펼칠수있는 호시절이 나타나죠 이 시에서는 바로 혜성의 과감하고 대담한 개척정신을 노래했고 “굴레를 벗어버리는” “남의 말을 듣지않는” 비록 앞에 그 어떤 곤난이 닥쳐도 떳떳이 어두운 밤하늘을 헤가르고 나아가는 그 고귀한 정신을 노래했다고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마지막 “아물지못하는 상처우에 천서한장을 올려놓는다” 즉 개척하자면 아물새가 없지요 늘 상처를 지니여햐 하는 로고. 위기를 느껴야하죠 하지만 천서-하늘에서 보내는 약속의 편지가 우리몸에 올려지는 …하늘의 뜻인걸 어떻게 할가 그냥 가보자 또 그속에서 인생의 진가를 느끼게 되는 개척의 희열…보람같은걸…느끼게 된다. 신—네 다음은 “황야의 길”을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야의 길 한춘 산비탈을 에돌아가는  저 길우에 지금은  아무 그림자도 없다   서리 내린 그날 아침  매가 채간 까투리 외마디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길바닥에 떨군 깃털   해볕이 이글거리는 삼복철  혀를 풀럭이며  빨간 눈알을 굴리던 미친개 그 지린내도 날려갔다   먼지속에 묻힌 차바퀴자국 찌그덕거리던 굴림도  이즈음 어디까지 달려갔나 누가 말했던가 황야의 저 길은  길이 아니라 바람이라고 림— 2008년 7월호에 실린 작품인데요. 문혁때의 살풍경을 통탄하며 쓴것 같습니다. 그때는 사실 황야지요 전반 중국이 경제가 붕괴의 변두리까지 갔으니깐 …사실 붕괴의 변두리인것이 아니라 완전히 붕괴되였다. 전문적으로 정치비판대회나 하고 구호나 부르고 투쟁대회나 하고 전쟁준비나 하고…고도로 긴장되고 고도로 고갈된 그때 –참 그때는 진짜 중국이 황야였다. 제1련: 그런데 지금은 그런 황야로 가던 길에 아무것도 없다 안보인다 텅비였다 지금은 중국이 황야로 가는 길이 아닌 부강에로 가는 길밖에 없으니깐 . 물론 황야로 가는 길엔 지금은 아무 그림자도 없는 것이다. 제2련:그때의 그 동란의 년대를 회상한다. 때리고 마스고 빼앗는 분자들이 나와서 살판치며 사람을 잡아가고 …하여튼 이런 일들을 회상 제3련:미친 시대의 미친 개들, 그때 그시기의 반면적인 인물들을 묘사, 그 지린내도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제4련: 먼지속에 묻힌 차바퀴자국- 결국 이젠 세월속에 묻혀버린 그때의 그 요란하던 차바퀴자국, 뜨락또르, 덜컹거리는 해방패차, 혹은 찌그덕 거리던 소수레, 마차 등 스산하던 차, 집체호로 가도 차, 시골에 연출가도 차, 자전자, 등 하여간 아주 스산한 년대의 소란스런 그런 차들… 제5련:   “누가 말했던가 황야의 저길은 길이 아니고 바람이라고”           -그렇다, 그 동란의 년대, 황야로, 지옥으로 가던 길은 사실 길이 아니다, 그저 한번 미친듯이 불어친 폭풍이였고 태풍이였다. 결국 바람이였다. 전반 중국의 옥토벌을 쓸어눕힌 미친듯한 바람의 세례였다. 지금애들이 그때를 뒤돌아 보면 야, 그때는 정말 정신병자들만 살았구나. 하고 개탄할것이다.그렇다. 그 길은 길이 아닌 길이요 그저 한시기 불어지나가 버린 바람일뿐이다…          결국 이 시는 황야와같던 시대를 비판하고 통책한 시라고 본다. 신-다음은 또 기분을 바꾸어서 차분한 마음으로 늙으신 로모를 묘사한 시 “한 어머니의 화상”을 함께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어머니의 화상(畵像)                한 춘 꼿꼿이 선 여윈 겨릅대 그리고 박토에 박힌 지팡이 춘삼월 매화꽃이 되여  가지끝에 매달린 연보라  추위를 이겨온 자랑 아무런 욕망없이 흐르는 강물에  꽃잎으로 떨어져서  꽃잎으로 떨어져서 저 멀리 욕망을 실어보내고  구들웃목에 걸어둔 메주덩이 하얀곰팡이가 내렸네 찬바람을 쫓는 어려운 나날들이  락수물이 되여 떨어지는 추녀끝 아픈 가슴 가득채운  간 밤에 키웠던 꿈이  거미줄에 대롱거리네 림- 이 시는 2007년 8월호에 실린 작품인데요. 제1련:늙고 무감각적인 현재의 어머니 외모묘사 서있는 모습.     제2련: 젊은 한철은 그 추운것처럼 맵짜게 어려웠던 때였지만 매화꽃처럼 피여 가지끝을 연보라빛으로 자랑하며 추위(즉 어려움)를 이겨낸 때도 있었다. 제3련:일생동안 아무런 욕망도 욕심도 야심같은것도 큰 포부도 없이            평범한 가정여인으로 자기의 청춘을 고스란히 세월에 맡긴 어머니다. 여기서 “흐르는 강물”은 류수같은 세월의 흐름을 말한다. “ 꽃잎으로”는 젊음의 한철을 말한다. 시는 다시 오늘로 돌아오는데 오늘날엔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구들 목의 메주가 하얀 서리 내렸다” 메주—엄마가 한생동안 반죽한 가정일, 가사를 말한다. 하얀서리—엄마의 꿈에도 이젠 흰머리, 엄마의 귀체도 이젠 늙었음을 암시한다 제4련: “락수물되여 떨어지는 추녀끝”—참 잘된 시구이다. 하나는 “그 어려운 나날들”이 다 물러갔음을 말해주고 또 거기에 어머니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비, 눈물—더 나아가서 시인과 독자들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얼굴에서 비오듯 쏟아지는 눈물이 한데 엉켜 반죽된다. “아픈 가슴”-이미 많은 풍상고초를 받아당한 상처입은 가슴 –그런 아픈 가슴에다도 간밤에 또 꿈성을 가득 채워본다. 허나 이젠 모든 꿈들이 다 현실로 될수없고 거미줄에 걸려 가냘프게 대롱거릴뿐-또 이것이 잔혹한 현실이다. 총적으로 이 시에서는 그 청춘의 매운 고개를 넘어오 고 시집살이의 추운 고개를 넘어온 이젠 늙으신 어머니가 지구의 한끝에 조용히 서서 인생의 허무를 생각하고 상실의 슬픔을 느끼는 인생무상을 읊조렸다. 또 그로부터 우리 매개 인간들이 자기 인생을 반추해 보게 만들었고 한없는 우주공간속의 티끌같은 인생을 다시 자아성찰하게 만드는 그런 시였다고 생각한다.참으로 명시이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북방문단에 하나의 작은 문학의 산을 만들어낸 시인 한춘과 그의 부분적 시편들을 감상해보는 아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요 한춘시인께서 만년을 아주 불타는 석양노을처럼 더욱 황홀하게 장식하기를 빌면서 이 시간 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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