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시인
[시평] 와 련결고리
2019년 03월 04일 10시 01분 작성자: 박문희
⦁시 평⦁
와 련결고리
--정두민의 하이퍼시 를 읽고나서
□박문희
1. 앞머리에
정두민 시인의 는 다질적인 변형, 이질적인 접속과 그것에 의해 련쇄적으로 탄생한 새롭고 다양한 이미지로 씌여진 하이퍼시다. 하이퍼시란 새로운 류형의 시가 탄생한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고 우리한테는 창작기법이나 감상, 평론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리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씌여진 시를 논평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퍼시를 배우는 일개인으로서 새 리론 공부는 피치 못할 사안이라 생각되여 결국 시험적으로나마 평론을 쓰기에 이르렀다.
논의의 방법상 들뢰즈와 가타리의 명저 에서 고원 전체를 아우르고 통솔하는 기본고리격인 리좀리론에 기대고자 한다. 왜냐하면 정두민 시인이 하이퍼시 를 창작함에 있어서 리좀리론의 련결접속의 원리, 다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등 여러 가지 원리를 두루 적용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리좀의 특성에 있어서 련결접속의 원리는 제1원리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질성 원리, 다양체 원리 등 기타 원리를 거느리는 핵심원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의 제목을《〈련결고리〉와 련결고리》라고 달았다.
2. 심하게 충돌되는 시어들을 자유롭게 이어보기
형식상 이 시는 또 로 련을 나누지 않은 시다. 그러나 내적 측면에서 보면 6개 이미지단위로 나뉘여져 있다. 하여 논의의 편의상 시 전문을 6개 이미지단위로 나누어 토론코자 한다.
1. 려명의 피를 뽑은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2.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3. 날짐승 깃소리 진렬대 세우려고
종달새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4.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한다
5. 미인계 왕관을 딴
진달래꽃 지키는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
6. 변성수술을 거절한 마련화향기가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이 시를 보면 매 이미지단위마다에 이미지주체를 하나씩, 도합 6개의 주체(안테나, 바람, 계곡, 흰점무리, 피뢰침, 마련화향기)를 등장시켰다. 그 매 하나의 주체는 또 적어도 2개 지어 그 이상(3개 혹은 4개)의 행위의 대상을 거느리고 있다.
안테나--행위대상은 ‘려명의 피’와 ‘맑은 날씨’ (2개)
바람---대상은 ‘펌프’, ‘움튼 라체의 기저귀’ (2개)
계곡--대상은 ‘날짐승 깃소리’, ‘종달새 목청’, ‘하프’, ‘흐름의 선률’ (4개)
흰점무리--대상은 ‘꽃사슴의 몸체’, ‘북극성꿈의 장기’와 ‘천수관음의 천궁’ (3개)
피뢰침--대상은 ‘진달래꽃’, ‘말(=번개의 웨침)’ (2개)
마련화향기--대상은 ‘변성수술’, ‘담벽’과 ‘하늘’ (3개)
여기서 6개의 행위주체는 서로 아무런 련관성도 없는 동떨어진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주체와 행위대상의 관계를 보면 매 하나의 주체가 가지는 행위대상 역시 동질적이 아닌 이질적인 것들이다. 례컨대 ‘흰점무리’의 행위대상은 ‘꽃사슴의 몸체’, ‘북극성꿈의 장기’와 ‘천수관음의 천궁’인데 돼지밭에 감자 뛰여다닌다는 식으로 아주 뚱딴지같은 사물들의 집합이다.
이 시를 시어자체의 본의에 따라 의미를 풀면, 행위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표출된 주체들의 동작은 다음과 같다----
1. 안테나가 려명의 피를 뽑아, 날씨를 예보하며 (2가지 동작),
2. 바람이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녹은 땅속에서) 길어 올린 다음, (그 숨결을 가지고)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2가지 동작),
3. 계곡이 날짐승의 깃소리를 진렬대에 (진렬해)세우려 하며, (그러기 위해서) 계곡이 종달새의 목청을 대패질하며, (나아가) 계곡은 하프를 튕기면서, 흐름의 선률을 편집하며(4가지 동작),
4. 흰점무리들이 꽃사슴 몸에서 탈출하며, (탈출로 자유를 얻은 후에는) 북극성꿈 한 쪼박을 따먹으며, (따먹고 난 뒤)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하며(3가지 동작),
5. 피뢰침이 미인계시합에서 왕관을 따낸 진달래꽃을 지켜주며, (그런 창날 같은 피뢰침이) 말(=번개의 웨침)을 위협해 줄행랑을 놓게 하며(2가지 동작)
6. 마련화의 향기가 변성수술을 거부하며, (거부 후에는)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3가지 동작).
이 의미풀이의 결과를 보면 6개 주체이미지의 동작은 행위대상의 개수와 맞먹는다. 한개 대상에 한가지 행위만을 취한 셈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한개 대상에 여러 가지 행위도 가능할 것이다. 례하면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 동작은 “담벽을 허물어 짓밟아 뭉개고 하늘을 늘여서 물어뜯”는 행위로도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 엉뚱한 접속으로 새 이미지 창출하기
아래 6개 이미지단위를 하나하나 분석해보도록 하자.
[제1 이미지단위]
려명의 피를 뽑은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려명의 피”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침노을이다. 왜냐하면 노을은 피처럼 빨갛기 때문이다. 또 피를 뽑는다 하면 련상되는 것이 주사바늘이다. 멀리서 보는 안테나는 주사바늘이나 수액관을 닮은 데가 있다. 주사바늘을 닮은 안테나가 주사로 피를 뽑듯 아침노을을 빨아들이는데, 참 근사한 상상이다.
여기서 안테나는 전파를 보내거나 받기 위하여 설치하는 도선으로 방송국 통신장비의 대명사로도 쓰일 수 있다. 주사침이나 수액관을 직유할 수 있을 뿐더러 천기예보를 하는 아나운서를 은유할 수도 있다. 안테나는 전파를 받거나 보낸다는 의미에서는 피를 뽑거나 수혈하는 주사바늘과 통하는 데가 있다.
한편 려명과 피와 안테나는 아주 이질적이며 서로 동떨어진 객관적 상관물들이다. 일반 론리에 따르면 “려명”은 “빛” 등과의 직접적인 접속이나 “지는 해 피와 같아라”는 식으로 “피”와의 간접적 접속은 가능하지만 “려명의 피”처럼 “피”와의 직접적 접속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리좀리론에는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왜냐 하면 리좀의 “련결접속의 원리”나 “다질성의 원리”에 따르면 “리좀은 매우 잡다한 모든 양태들에 대해 새로운 접속가능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양체의 원리와도 상통한다.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한다.
려명과 피, 이질적인 두개 이미지의 접속. 그것은 “려명”도 아니고 “피”도 아닌 다른 무엇이다. 노을일 수도 있고 불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물의 까만 뼈, 구름의 쌍날개, 바위의 도끼눈, 번개의 새끼발가락. 오솔길의 긴 꼬리, 모두가 가능하다.
이 이미지단위의 “려명”, “안테나”, “맑은 날씨”, “예보” 등 시어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계절, 날씨, 시간 등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제2 이미지단위]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합리적 론리사유로는 에너지를 리용해 액체를 끌어올리거나 압축하는 장치로서의 펌프는 샘물이나 기름 따위만 길어 올릴 수 있게 돼 있으므로 “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와 같은 언어와의 결합은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펌프가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리”는 행위와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행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좀의 사유에서는 그것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그런 이질성 혹은 다질성 사물간의 상호접속은 필수적인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여기서 펌프가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린다는 묘사는 해동을 의미하며,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준다는 묘사는 움튼 라목의 신진대사를 암시한다.
요컨대 제2 이미지단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해토무렵 검은 땅이 숨결을 가다듬을 때 땅을 깨우는 봄의 산들바람이 움튼 라목을 어루만지는 모습이다. 여기서는 바람이 주체다. 무슨 바람인가? 두말할 것 없이 봄바람이다. 봄바람이 모처럼 펌프로 길어올린 흑토의 숨결을 모셔다가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게 하는 것이다.
[제3 이미지단위]
날짐승 깃소리 진렬대 세우려고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계곡 하면 떠올려지는 것이 항상 촐랑이는 산간 벽계수다. 종달새 지종 하면 역시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날을 련상시킨다. 화창한 봄날 가뜩이나 고운 종달새의 노래소리를 더 이쁘게 대패질해서 전하는 계곡은 오현금을 튕기며 벽계수의 촐랑이는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이 제3 이미지단위에서 주체이미지인 계곡이 세가지 동작을 하는데 이 세가지 동작 간에는 아무런 련관성도 없다. 첫행에서는 “날짐승의 깃소리를 진렬대에 세우려 하”지만 다음 행들에서 하는 짓을 보면 생뚱맞게도 “종달새의 목청을 대패질하”지 않으면 “하프를 튕기”거나 무슨 “흐름의 선률” 같은 것을 “편집”한다.
어떤 합리성으로 주어진 선에서의 계곡, 산과 산 사이에 좁고 길게 움푹 패여들어간 곳으로서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계곡은 워낙 흐르는 물이나 계절이나 지역과 관련되는 언어와 련결되는 것이 상례다. 그리고 종달새의 목청은 맑고 구성진 노래 따위와 련결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단위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전부 그런 주어진 선과 연을 끊고 그 선들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들이 주어진 어떤 선과 연을 끊고 그 선들에서 벗어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새로운 이미지들과 접속하여 또 다른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제4 이미지단위]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한다
이 단위의 주체이미지는 꽃사슴도 아니고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한 흰점무리다. 흰점의 집합들이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하며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는다. 참으로 근사한 상상력의 발현이다.
“북극성의 꿈”은 “북극성”과 “꿈”이란 한쌍의 이질적 이미지의 접속이다. 이질적이미지의 접속으로 “북극성꿈”이란 새로운 사물이 탄생했다. 꿈이란 원래 생명현상인데, 여기서는 “북극성꿈”과 “장기”란 또 다른 한 쌍의 이질적 이미지의 새로운 접속을 통해 “북극성꿈”은 “장기(례컨대 심장)”를 가진 또 하나의 특이한 생명체 “북극성꿈의 장기”를 생성했다.
이는 리좀적 다양체원리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하나의 척도,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의 집합이고, 따라서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 전체의 의미를 크게 다르게 만드는 그런 다양체이다.
흰점무리가 별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하는데, 천수관음이라 하면 중국장애인예술단의 청각을 잃은 장애인들이 눈부신 무대를 배경으로 펼친 황홀한 무용 “천수관음(千手觀音)”을 떠올리게 한다. 꽃사슴의 몸에 난 흰점들이 나비 날듯 날아올라 천궁을 유람하는 상상속의 광경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황홀경을 련상시키기에 족하다.
[제5 이미지단위]
미인계 왕관을 딴
진달래꽃 지키는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
▲진달래꽃이 미인계왕관을 따다. 피뢰침이 진달래꽃 지키다--역시 이질적 이미지의 접속으로 어떤 주어진 선과 연을 끊는 것이고, 그 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그 어떤 주어진 선과 연을 끊고 그 선에서 벗어나야 이질적인 다른 이미지와의 접속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말이 피뢰침(의 진공)에 (놀라) 줄행랑 놓다.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말을 혼비백산케 한 피뢰침은 창이나 칼과 같은 존재다. 피뢰침은 높은 건축물 등을 벼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장치로서 피뢰침의 돌침에 번개가 맞으면 번개의 전류를 도선으로 유도해서 접지전극을 통해 땅으로 흘려보내는데, 피뢰침과 번개의 겨룸에서 피뢰침은 자연 승자(勝者)이고 땅속으로 버려진(혹은 도망간) 번개는 당연히 패자(敗者)다. 피뢰침의 보호를 받는 진달래꽃은 두말할 것 없이 피뢰침과 더불어 승자가 된다. 그것은 또한 봄의 상징이기도 하다. “번개의 웨침”은 겨울의 잔영(殘影) 혹은 비명(悲鳴)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말은 네굽 날려 줄행랑 놓는 패자의 랑패상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이미지다. 말하자면 “말의 줄행랑”과 “번개의 비명” 이란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즉 “패자의 랑패상”을 생성한 것이다.
[제6 이미지단위]
변성수술을 거절한 마련화향기가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마련화향기’와 ‘변성수술’ 역시 접속의 원리에 의한 이질적인 언어의 결합이다.
○향기가 코를 찌른다(주체의 주동형).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온다(주체의 피동형).
이런 것은 합리적 론리사유에 의한 묘사이다. 하지만 하이퍼시는 이런 묘사를 거부한다.
○마련화 향기가 손을 뻗어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향기가 지팽이를 휘둘러 꽃사슴을 쫓는다. 우주공간에 물길을 빼고 은하수를 에워 온다.
이런 것들은 합리적 론리를 깬 서술,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으로 하이퍼시가 지향하는 묘사기법이다.
이 련에서 마련화의 향기는 역시 봄과의 련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4. 창작기법 몇가지로 귀납해보기
이상에서 시의 각 련에 나타난 다양한 이미지와 그 다양한 이미지간의 다질성 접속 등 기본기법에 대해 초보적으로 살펴보았다. 초보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귀납해 낼 수 있을 것이다.
(1) 구태로부터의 탈피와 불련속적 상상의 가지치기
하이퍼시는 기존의 인과적, 순차적, 론리적, 선형적 전개에서 탈피하여 비인과적, 비순차적, 비론리적, 비선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불련속적 상상의 가지치기 또는 이미지의 집합으로 완성되는, 따라서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무한히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문학형태이다. 이 문학형태는 연결접속의 원리, 다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탈기표 작용적인 단절의 원리 등을 근간으로 하는 리좀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정두민 시인의 시 는 하이퍼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를 두루 갖춘 시라고 생각되며 창작방법에 있어서는 들뢰즈, 가타리의 리좀리론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례컨대 내재적으로 나뉜 6개의 이미지단위는 그 주체이미지로 보나 그 주체이미지와 관련을 지으면서 뻗어나간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보나 서로 간에 아무런 련관도 없이 단절되여 있으며 각 이미지단위 안에서도 기성의 론리를 깨는 이질적 련결접속이 교차적으로 전개되면서 시 때 없이 마찰의 불꽃을 튕긴다. 이처럼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길어 올리고,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고,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 먹고,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구고 하는 이런 서로 동이 닿지 않는 이미지의 움직임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 모두 배렬하고 전체적으로 계절의 어느 한 부분을 표현해내는 이런 특이한 구성은 아마 하이퍼시만의 작시기법이 아닐가 싶다.
(2)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의 조화
하이퍼시 창작에 있어서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자못 중요하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의 조화로 태여난 시라야 싱싱한 감각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시 의 시구를 례로 들어보자. “피를 뽑는다”는 삶의 현실이다. 그러나 “안테나가 려명의 피를 뽑는다” 하면 이것은 상상의 현실이며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의 조화인 것이다.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린다” ,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준다” , “계곡이 종달새목청을 대패질 한다”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상상력의 현실이며 삶의 현실과 시적상상력의 조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처럼 삶의 현실과 시적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면 의외의 명구생성도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이미지들이 허상으로 혹은 가상으로 시적 이미지의 새로움과 시인의 새로운 창조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보기 드문 명창’이라고 할 만한 구절이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흰점배기 꽃사슴의 몸에서 흰나비 같은 흰점무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개를 파득이며 훨훨 무리쳐 날아오르는 모습, 그리고 흰점들이 떠나가 버려 조금은 이상해진 꽃사슴의 몸뚱이를 상상해 보라. 참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상상의 신선함,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이다. 순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튀여나오는 새롭고 다양한 이미지들에서 우리는 모종 정서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데 그런 매력으로는 언어적 유희, 발랄한 상상, 재빠른 이미지의 전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리좀은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내물이며, 량쪽 둑을 갉아내고 중간에서 속도를 낸다”는 리좀리론의 명제처럼 하이퍼시는 첫 시어의 이미지와 뒤이어지는 이미지가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절은 다른 연결고리와 접속하면서 거기서 속도를 내는 그런 단절이다.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이 례문을 보면 첫 이미지(펌프)와 뒤에 따라오는 이미지들(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의 기저귀, 바람)이 의미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는 듯한 생뚱같은 이미지들은 기실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앞뒤와의 다른 연결고리를 통해 교차접속되면서 더욱 탄탄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다양한 이미지간의 충돌을 통해 첫 시행에서 출발한 사유가 새로 만나는 사물들은 제마끔 새로운 관념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3) 내면 의식의 흐름 파악하기
일반적으로 '의식의 흐름'이라 하면 이것은 지금까지의 현대시 창작론에서 흔히 써온 말이다. 그러나 하이퍼시 창작론에서는 의식의 흐름을 강조하지 않고 '무의식의 흐름'이나 '무의식의 반복충동'을 강조한다.
하이퍼시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내면 무의식의 흐름에 대한 파악이다. 이런 무의식의 흐름을 ‘하이퍼시의 맥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시의 맥락은 하이퍼텍스트시의 구성에서 중심역할을 한다. 하이퍼시의 시어들은 시인의 무의식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 앉으면서도 하이퍼시가 지닌 정보의 수평적 결합처럼 내면적 질서를 갖추고 있다.
정두민의 시 전반을 보면 거의 모든 주체이미지와 그것의 움직임이 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려명의 피, 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 종달새 목청,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들, 천궁 유람, 진달래꽃, 마련화향기 등 다양한 이미지와 안테나, 바람, 계곡, 천궁, 피뢰침, 담벽 등의 다각적인 시각으로 봄 기상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설적이 아니라 철저히 암시적이며 은폐적이다.
(4) 시어의 선택차원에서 문제점 꼬집기
◎려명의 피를 뽑는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앞뒤구절의 련관속에서 바라볼 때 뒤구절인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는 너무 직설적이며 새롭지 않고 평범하여 앞 구절에서 떠올린 상상력의 맛을 뒤구절에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소지가 있다. 물론 그 어떤 경우나를 막론하고 새로운 이미지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아니다. 한개 이미지단위 내의 지나치게 많은 이미지 창출이 이 시의 매력과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경우 두번째 행에 대한 수정은 가능해 보인다. 혹시 두번째 구절을 앞구절에 걸맞게 “동녁하늘에 잠자리떼 날린다” 이런 식으로 바꾼다면 어느 정도 직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여기서 “움튼 라체”는 도대체 무슨 라체인지 알 수 없다. 상상에 맡길 수도 있겠으나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례컨대 ‘움튼 바위’ 혹은 ‘움튼 라목(裸木)’이라 하면 이미지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도 전부 추상어로 구성이 되었는데 별로 신통치 않아 보인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여기서 “꽃사슴에서 탈출”은 어페이다.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로 돼야 한다.
5. 마치면서
이상에서 정두민 시인의 시 를 창작기법의 몇가지 측면에서 풀이해 보았다. 잘못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하며 회원들의 기탄없는 지적을 바란다. 요컨대 정시인은 리좀리론을 하이퍼시 창작에 활용함에서 성과를 올렸으며 동인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정시인이 계속 하이퍼시 창작에 정진하면서 보다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펴내기를 기대한다.
2017.11.30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문고(7)《비비(飛飛)》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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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의 미학
----강동한 시 단평
▢박문희
한수의 시에 대한 단평에 이란 거창한 제목을 단다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대로 모종의 그럴만한 리유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여 그대로 쓰기로 했다.
'변주'는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중 제하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네이버사전에서는 '변주'를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르게 바꿈'으로 해석, 이를테면 한복들이 현대에 시류를 타 변화하는 것도 '변주'(중문으로 된 《천개의 고원》에서는 '流變'으로 번역되였음)로 표현한다. 한편 동음어인 음악의 '변주(變奏)'로도 통한다.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함을 일컫는 말이다.
'변주'에 대한 들뢰즈-가타리의 말을 조금 따다 음미해보자.
"...변주의 련속체를 만듦으로써, 그리고 상수들을 조이고 변주들을 풀어주도록 변수들을 조작함으로써, 언어가 말을 더듬도록 하라. 또는 언어가 '삐약삐약 울게' 하라..., 언어 전체에, 심지어 문어에도 텐서(tensor/张量)들을 설치하라. 그리고 거기서 웨침, 아우성, 음높이, 지속, 음색, 억양, 강렬함을 끌어내라....바꿔 말하기에 대한 취향..." (《천개의 고원》중 , 201페이지)
'변주리론'에 대한 나의 리해를 한마디로 개괄하면 시어를 해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현대시류를 타 변화시키듯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양하게 바꾸고 음악에서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듯 바꿔주면서 원래의 틀 안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강동한 시인의 시 한수를 옮겨온다.
만경창파 건너온 너
나 자취 더듬어 몇 만리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오랜 보뚝 터져
녹아내린 눈가의 고드름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고 있는 개바자의 해바라기꽃
언젠간 단비 되여
말라 찢긴 가슴 적셔 주리라
----시 전문
4개 련에 12행으로 씌여진 시로서 제목은 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우리는 읽고자 하는 시를 접할 때 우선 시 제목부터 보게 된다. 제목을 봐야 읽고자 하는 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시문을 여는 열쇠이자 시를 리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또한 각 련과 행을 련결하는 하이퍼링크 기능의 주요담당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드시 전부의 담당자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제목-행-련’을 련결하는 구도를 갖는 링크기능은 각 련, 각 행, 지어 모든 시어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시 읽기와 시 쓰기에서 링크기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시제가 이니 내용도 편지와 관련이 있기 마련이다. 칼로 자르듯 철저한 단절, 도주와 탈령토를 운운하면서 그것을 련결과는 아주 무관하게 취급하는 것을 하이퍼시의 한 개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일도 있지만, 실상 분리탈주와 접속련결 및 탈영토와 재령토의 변증관계를 외면하고 도주, 분리와 단절만 강조하는 사고방법은 재고되여야 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제목과 내용의 관계처리도 그렇지만 련과 련, 행과 행과의 관계처리도 마찬가지이다.
만경창파 건너온 너
나 자취 더듬어 몇만리
시 의 첫 련이다. 시 제목이 이므로 첫 행의 '너'를 편지로 상정해볼 수 있다. 만경창파 수만리 먼 이역 땅에서 날아온 편지. 그러나 제목이 라 해서 내용이 반드시 편지라는 보장은 없다. 편지가 단지 상징물에 불과해 그것이 상징하는 대상이 다른 사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례컨대 막언의 장편소설 제목이 《풍유비둔(丰乳肥臀)》이라 해서 그 내용이 풍만한 가슴에 큼직한 엉덩이를 쓴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제2련: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이 련은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를 첫 행으로 시작된다.
의인화된 2인칭 '너'의 '옷'을 떨리는 손으로 벗기는 이미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모종의 전률감을 줄 수 있는 시행이다. 여기서 '옷'은 편지봉투의 상징물이다. 하지만 '다르게 바뀐 내용물'로서의 '옷'은 필경 변주의 결과이며, 편지란 령토로부터의 탈주 혹은 탈령토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가타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조금 긴대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련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령토화하며 안정화되기도 한다. 우리가 상황이나 변수라고 부르는 것들도 사실은 탈령토화의 정도들 자체이다. 한편으로 내용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몸체의 혼합체 또는 몸체의 결집체 안에 있는 비률들이다. 다른 한편으로 표현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언표행위 내부에 있는 요소들이다... 요컨대 표현은 내용을 발견하거나 표상함으로써 내용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이 서로 소통하며 끼여들고 작용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의 상대적 탈령토화의 량자들의 결합 때문이다." (《천개의 고원》 중 171페이지)
시 제목 와 시 첫련의 '너'와 2련 첫행의 '옷'을 내용과 표현을 언급한 들뢰즈-가타리의 말에 련계시켜 보면 '편지'는 내용에 속하고 '너'와 '옷'은 표현에 속한다.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련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령토화하며 안정화되기도 한다. 그것은 부단히 진행되는 변주의 과정이기도 하다.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이 서로 소통하며 끼여들고 작용하면서 '편지'는 령토로부터 탈령토, 재령토로의 과정을 밟는데 그것은 내용과 형식이 상대적으로 탈령토화한 량자들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이것은 2련 첫행 뒤에 오는 3행의 시구다.
'너'의 '옷'을 벗긴 후에 나타난 경상은 눈처럼 희디흰 피부가 아니라 생뚱맞은 '수놓은 화원', '하얗게 뜬 녹비'와 '토장의 손길'이다. 이런 시어들의 조합은 일상론리에는 맞지 않으나 시적 론리에는 맞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행 '해진 젖살을 달래주는 익은 토장의 손길'은 '떨리는 손'에 대한 대응이면서 또한 이질적 언어의 무단 접속(례컨대 '해진 젖살', '토장의 손길')의 내포도 가진다. 이 시구들을 몇 번 음미해 보노라면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향기를 련상케 하는 전통 삶에 대한 회고의 의미도 지니지만 표현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다음 제3련을 보자.
오랜 보뚝 터져
녹아내린 눈가의 고드름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고 있는 개바자의 해바라기꽃
느닷없이 오랜 보뚝이 터지고 눈가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내리며 또 예고 없이 개바자의 해바라기꽃이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어재낀다. 이 역시 변주이다.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는 변주(變奏)'이기도 하고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르게 바꾸'는 변주(流變)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랜 보뚝' 과 '녹아내린 고드름'은 눈물샘과 눈물의 변주이며 '해바라기꽃'은 '나'의 화신이자 변주이다.
이제 마지막 련을 보자.
언젠간 단비 되여
말라 찢긴 가슴 적셔 주리라
여기서 '나'는 '해바라기꽃'에서 탈주하여 '단비'로 '재령토화' 된다. 마른 '가슴'을 적신다는 대목에서 그 '가슴'이 상정하는 의미는 상당히 다양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읽는 이들이 스스로 읽어내야 할 터이다.
이제 시 전문을 표현대상의 측면에서 귀납해 보자.
1련: 너, 나
2련: 화원, 록비, 손길
3련: 보뚝, 고드름, 해바라기꽃
4련: 단비, 가슴
보다싶이 각 련의 표현대상들은 분명 자립성과 독립성을 가지며 그것들 서로간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례컨대 2련의 화원, 녹비, 손길과 3련의 보뚝, 고드름, 해바라기꽃은 각 련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서로간에 아무런 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란 제목의 링크기능에 의해 우리는 편지와 각 련이 분명 련결되고 있음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오랜 보뚝의 터짐과 고드름의 녹아내림은 쏟아지는 눈물과 감정의 폭포일 터이고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어 예는 해바라기꽃은 만경창파 수만리 이국타향에서 정든 고향을 그리는 화자의 화신일 터이다. 각 련과 행들에 새로 발생하는 이미지들은 변주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러한 변주들이 시 전반에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을 이라 한 리유라면 리유겠다.
이상에서 우리는 시 를 한번 훑어보았다. 시 전반에 걸쳐 우리는 시어의 의미화에 대한 강동한 시인의 추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미지의 활발한 변주와 확장도 맛보게 된다. '떨리는 손, 벗기는 옷, 해진 젖살, 울고 있는 해바라기꽃'과 같은 이미지의 변주와 확장된 이미지는 읽는 이의 마음과 눈을 시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시어의 구사를 봐도 반 마디 설교도 없이 진지한 표현만 있을 뿐이며 내용은 진지하고 깊은데 반해 표현은 감각적이고 유연하다.
이런 점이 자못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지의 활발한 변주와 확장 및 시어의 의미화에 대한 의도적인 추구를 소홀이 한다면 우리의 시는 자칫 무의미한 언어유희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시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유미주의적 감각을 충분히 살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시는 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살려야 할 것이다. 상상력의 공간을 충분히 확장함과 동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살리는 것은 우리 시인들에게 있어 필수과목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2023.5.28.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창작세미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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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희 1950년 9월 7일 龍井 출생 1968년 上山下鄕 운동 가담 1972년부터 연변한사,연변대학 중문 전공 1974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 1980년 연변일보사 입사 1985년 길림신문사에 이적 2011년 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