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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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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9    중국조선족 시인 김승종 篇 댓글:  조회:529  추천:0  2024-08-23
竹林 김승종 시인 2014년 08월 19일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청도에서 오래동안 몸담고 시창작을 하시다가 미국에 이민간 홍군식시인을 소개했는대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화룡시에서 시창작활동을 하시다가 한국에도 가서 한동안 일하면서 문학활동을 줄기차게 펼쳐온 김승종(죽림)시인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그럼 먼저 김승종시인의 시 “그립다 그리워 또 다시한번”을 감상하겠습니다.   그립다 그리워 또 다시한번                 김승종   외할머니 우리 집으로 놀러오시면 그 언제나 삼베보따리엔 그윽한 향기에 물씬 젖어있고   모시수건에선 알락다람쥐와 다투며 주었다는 노오란 깸알이 어느새 요 내가슴에 똑또그르―  구수히  흘러든지 오래고   앞내가 버들가지에 돌쫑개며 버들개며를 해빛 몇오리와 함께 스리슬슬 군침 돌게 스리슬쩍 말리웠다는 어느새 울 아버지 맥주병 들고 코노래 흥흥 넉사자 입은 언녕 귀가에 걸린지 오래고   외할머니, 우리 집으로 늘 놀러 왔으면…   신-외할머니는 누구의 동년에나 다 인상깊은 분이시죠 외할머니, 외가집 등 이 시는 김시인이 어렸을때 외할머니가 자기집에 오시던 때를 추억하면서 그때가 그립다고 쓴 시인데요 진짜 우리 민족의 시골에서는 흔히 볼수있는 삼베보따리,깸알, 돌쫑개, 버들개 그것도 해볕에 말리우느라 해빛 몇오리까지 함께 있는 향기론 물건들 그래서 아빠는 이날만은 맥주도 마이고 즐거워하신다는 …물론 시인 자신은 더욱 즐겁겠지요. 그래서 정말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은 명절같은 날이고 뭔가 먹을수 있는 날이여서 그 살기힘들던 시절 더욱 잊혀안지는거겠죠… 이 시는 외할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리던 일을 추억하면서 그리운 고향과 고향사람들, 친지들을 그리는 마음을 잘 시화한것이지요       신-그럼 김승종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주시죠 림-네, 김승종시인은 1963년 화룡시 로과향 죽림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연변대학사범학원졸업후 연변작가협회 이사, 화룡시 모향 신용사에서도 10여년 근무, 화룡시청년시인회 회장, 화룡시작가협회 주석 등 단위를 떠나 한국에 가있는 5년동안 경상북도안동 간고등어가공회사에 서 일하면서(고등어를 밸따기일) 유관 유지인사들과 련계하여 해마다 한화 천만원을 유치해 연변작가협회에 보내주어 중국조선족대학생“이육사문학상”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미 2011과 2012년에 진행했고 앞으로도 매년 하는 활동으로 자리매김 하는것 같다. 그리고 서지월선생이 책임진 대구시인학교에도 가서 시낭송 등 문학행사에 참가했고 안동의 이육사기념관, 옥천의 정지용생가 등도 다니고 또 재한조선족문인회에도 참가하여 활약상을 보였다. 룡정에서는 또 룡정시아동문학학회에서 아동소설창작에 대한 강의도 하시고 …요몇년전엔 또 자신이 한국서 땀흘려 번 돈 300만(한화)을 기증하여 중국조선족중청년들의 모던시집 “은회색 두 동네 카니발”을 출판하였다. 한국세계계관시인협회 본상, 두만강여울소리상, 등 수상. 시집: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R와 일회용삶”-연길에서 출간기념회까지 가짐.       “보리깜부기와 ‘구혼광고’와 흰 그림자의 삶” 등 펴냄.   지평선너머     김승종     지평선너머 노을이 몸풀이하던   개바자너머로 쥬우― 쥬쥬쥬 닭들을 어둠과 더불어 하아얗게 불러들이던   문턱너머 화로불우에서 시라지국이며 오누이장국이며 구수히―  얼룩고양이 코끝을 건드리던   나의 고향 느즈막 추억과 함께 새까아맣게 부서지고 그늘 비낀 마음속에서 하냥 색바래지고있는 아―   ―모두들 안녕하시우   림- 매일같이 고된 노동에 지치다 지평선너머 멀리를 눈주어 바라보면 고향이 그립겠지요 이제 마저 일을 다 마치고 가야할 그리운 고향, 지금 그곳에서는 예전처럼 어른들이 개바자너머로 쥬쥬-하며 닭들을 불러들일것이고 집안에서는 시라지국이며 오누이장이며를 홀-홀 불며 마시고 있을것 같은 그런 느낌과 그런 영상이 떠오르겠죠…물론 그것도 어린 시절의 그림이겠죠 그래서 새까맣게 부서지는 추억이고 또 마음속에는 그늘이 비끼고 색바래지는 추억…하나는 하루일에 고달파서 추억까지 부셔졌을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 스러져 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이 안타까운것도 있겠죠. 이 모든것을 마지막 한줄에 담아 “ –모두들 안녕하시우”하고 문안이나 올리는겁니다. 역시 고향과 이웃을 그리는 고향애가 다분히 풍기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새벽   김승종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남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많이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자신을 위한 종은                       단 한번도 못쳐보고 가셨소이다   어ㅡ머ㅡ님!ㅡ   림-돌아간 어머님을 부르고 부르는데 그 부르는 소리가 사방으로 종소리처럼 막 비껴갑니다. 쓸때 진짜 이쪽 저쪽으로 시행을 옮기면서 종소리가 비껴가는것 형태처럼 썼습니다. 진짜 우리 어머님들은 한생동안 남을 위한 종은 많이도 쳤지요 아침부터 “얘들아, 빨리 일어나 밥먹고 학교가라…”,또는 “얘들아, 남산더기의 콩기음을 오늘은 끝내라…” , “얘들아, 내가 오늘은 고사리말린것 팔아갖고 오마” 그리고 또 학교가서 선생말씀 잘듣거라, 나쁜 일을 하지말라..종을 많이 쳤죠. 그러나 단 한번도 자기를 위한 종을 치지 안았습니다. 어머니란 그 자체가 희생적인 존재이니깐요. 오직 자식과 남편과 늙으신 량가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죠 어느 가사에도 있다싶이 “부모라는 그이름이 생겨날때엔 사랑이란 그 이름도 함께 나왔다.” 등…. 말린 나물을 팔아서는 그래서는 애들 고무신이나 소금같은걸 사오느라 몇십리씩 도회에 걸어갔다 캄캄한 밤에야 돌아오신 우리들의 어머님이시죠 더우기 김시인이 살던 곳은 깊은 산속…그러니깐 숭선으로 가는데 큰산을 넘는데 그 큰산을 거의 넘어서 아직은 숭선은 좀 멀고 그런 곳에 있는 자그마한 산속마을에서 살았으니깐…그때 당시는 화룡시로 오자면 걸어서 다녀올때가 많았죠. 즉 이 시는 한생을 자기아닌 남을 위해 살아오시다 돌아간 어머님을 피타게 부르는 그 부름자체인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한행은 “어머님-!”하고 세글자에 감탄부호가까지 달아놓았죠…   7천만 족보찾기              김승종     봄우뢰 운다. 새하아얀 가슴 가슴마다에 봄우뢰 운다 뜨거운 맘, 맘 너머 시꺼먼 금이 간 골짜기에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오해 아닌 최대의 죄악의 오해 아니기를 시비 아닌 최대의 죄악의 시비 아니기를 슬픔 아닌 최대의 죄악의 슬픔 아니기를 고독 아닌 최대의 죄악의 고독 아니기를 랑비 아닌 최대의 죄악의 랑비 아니기를                                                                      ... 의 번지는ㅡ 의 족보는ㅡ 세상은?ㅡ 세상은?ㅡ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엇허, 살아서 한냥짜리 될가... 엇허, 죽어서 천만억조...냥짜리 될가... 모두들 종당엔 저ㅡ 높고 장중한 큰산아래 자그마한 이 되련만...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림-우리 민족이 아직도 제대로 족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와 부르짖은 시같습니다. 즉 우리 민족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모두 제대로 되는 “족보”를 못찾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 통일되지 못하고 아직도 미국이든가 등 나라들의 간섭을 많이 받고있는 상황… 시가 박력이 강하고 넓고 ..전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운명적인 문제를 다루었는데 처지는 감이 없고 거창하게 흘러 좋았습니다. 봄우뢰 메인다. 사람도 너무 울면 목이 메인다. 봄우뢰도 의인화하여 울다 목이 메인다…남북통일에 대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다 목메여 쓰러지는 …피타는 절규…피타는 호소…   그 어느 날의 빛                    김승종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진단(震檀)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이다가 10월의 빛, 그 어느날의 찬란함이다가 이다가 백두대간 너머 너머 두만강 압록강 건너 건너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 흐르는ㅡ 그 마력(魔力) 영원불멸, 영원불멸, 아, 그 이름 세월과 더불어 온 누리 만방에... 누누천년의 푹풍 새하야니 일으키는 훈민정음 !   신-이 시는 훈민정음을 말하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여기서 수자들인 1446이라든가, 14+10이라든가, 3434…등은 뭘 의미합니까?   림- 이 시는 우리 문자가 생겨난 즉 훈민정음 창제된 그걸 기념해서 쓴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에서부터 제시했는데 “그날의 빛”이라고 여기서 그날은 즉 훈민정음이 창제되여 공포된 날이겠죠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개구리-논을 푸는 마을 꽃이 피는 마을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초가삼간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오얏의 맛은 새콤달콤…아바이아매랑 모시고 오손도손사는 그런 기분이 떠도는 마을 …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막걸리나 술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노래와 춤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노래와 춤 총적으로 이 련에서는 화기애애하고 오붓하게 논농사를 지으면서 초가삼간 짓고 술마이면서 오손도손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밑에 련에서 1446년이라고 년도수도 밝혀 있구요 14+10=이란건 사실 우리 문자의 자모의 개수를 말한것 같구요. 맥이 흐른다에서 “맥”은 하나는 산맥-즉 백두대간에서부터 한나산까지의 그 척추뼈같은 그 산맥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혈맥-즉 혈통- 피의 맥을 말한것 같아요 그리고 3434, 3434이다가 3543은 곧바로 우리 민족의 시조의 글자수배렬을 말한거구요 정형시조의 기본 글자수…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등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 우리 민족이 훈민정음 창제날을 기념해서 막걸리랑 마이고 노래와 춤을 추면서 기념하는 그런 분위기를 잘 그려냈습니다.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몇번 나오는데 말입니다. 참 노래와 춤과 수자와 피진한 민족적 정서가 다분히 깔려있는 좋은 시라고 생각됩니다…   38의 영탄조   백두산 세상 1번지 산천어 999 쫑- 쫑- 에 와 닿고...   한라산 세상 1번지 고등어 999 쏭- 쏭- 에 와 닿고...   두 세상1번지 권커니작커니 산천어매운탕 얼쑤~ 간고등어구이 절쑤~ 아리아리 아리랑 쾌지나칭칭 그 정다운 맛,- 그 성스러운 멋,- 새하야니 새하야니 한누리 너머너머 끝없으련만...   후유,ㅡ 이날은 핫, 또 누런 이끼 끼며 루루 저물어만 가고 그리고 저기 저 녹쓸어가는 쇠붙이를 또 서로서로 맞대고 들어야만 하는...   림-그러니깐 여기서 999는 9자가 세번이나 들어간 1999년에 쓴 시같아요 여기서 9자는 형태가 산천어나 간고등어와 비슷하고 아직 세기를 넘어갈 대목에 있는 해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시구에서 “이날은 핫, 또/ 누런 이끼 끼며 루루 저물어가만 가고…라고 했습니다. 즉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새천년으로 들어서는데 대한 아쉬움, 만약 통일된다면 북에있는 산천어나 남에 있는 간고등어나 다 얼쑤 절쑤 춤노래 펼치겠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백두산은 북에 한나산은 남에 모두 1번지로 (제일 높은 산)있고 ….즉 통일에 대한 갈망을 산천어나 간고등어, 통일각이나 평화의 집, 백두산이나 한나산을 매개물로 노래하고 있다. 마지막 련에서는 통일도 못되고 새천년에 들어서는 아쉬움을 목놓아 읆조렸다.     노을             김승종       고 독 과 고독과 고독이다가 그 리 움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이다가   해     님 해 해 님 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하냥 발그무레 흐르다가 부 힌딪부  고치디 피 울음 !  피울음 !   림- 이 시는 형태가 노을이란 글자로 되여있다. 그리고 노을을 통해 한국에서 매일같이 고된 일을 하며 고향을 그리는 그 고독과 그리움을 피타는 노을에 비유해 슬프고 서럽고 부르짖고 있다. 이런 감정은 한국에 가서 고된 일을 못해본 사람이면 느낄수 없는 감정정서다. 현실생활에 깊숙히 발붙이고 쓴 시인것이 확연히 알린다 즉 현장감이 뚝뚝 떨어지고 질펀히 흐른다. 형식을 노을이란 글자처럼 한것도 독특하다. 누가 뭐라던 시인은 또 시인의 나름대로의 창작쓰질을 내세우느라고 노력한것인것 같다. 이런 형식상의 탐구형식을 우리는 지지하고 높이 찬양해야 할줄로 안다. 왜? 그만의 독특한 노력이니깐…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고독이 고독이다가 그리움으로 화했고 또 그 그리움도 노을빛에 빛을 튕기다가 다시 빛이 소리(피울음소리)로 변하는 이런 시적 승화가 돋보인다. 그리고 리념적인것(고독)이 다시 또 시각적(해빛)으로 화했다가 다시 또 청각적(피울음)으로 끝나는것은 기발한 상상과 시적 재능을 잘 보여준다…결코 쉽지가 않다.   신-그렇다면 김승종시인의 시작품특점을 귀납해본다면요? 림-네 주로 두가지로 귀납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김시인의 시들은 내용면에서 하나같이 민족애, 고향애(물론 고향애도 민족애속의 하나지요 왜냐 우리 민족이 살던 고향, 조선족인 내가 살던 고향이기때문이죠) 통일에 대한 갈망 역시 민족적인 거지요. 어느 시나 민족, 고향, 통일 등 주제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여기 우에서도 보았지만 “어머니”를 노래한 시라든가, 7천만의 대화합을 갈망한 시라던가, 지평선너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던가, 외할머니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라든가 등 거의 모두가 민족과 고향, 즉 민족애와 고향애 조국애 등이 시들에 다분히 깔려있습니다. 둘째는 형식상의 특점인데 한국 이상의 시창작수법 비슷한 시들이 아주 많아요. 수자를 도입한다든가, 시줄을 널어놓거나 삼각형으로 쌓는다든가, 또는 례하면 락엽을 쓴다할때 락엽이 흩날리듯 여기저기 뚝뚝 떨어지는 식으로 시어나 시행을 안배한다든가, 메돼지란 시가 있는데 진짜 매돼지처럼 시어와 시행들을 메돼지몸체처럼 배렬- 꼬리도 있고 머리도 있고 지어 다리도 있고…그래서 아주 우습기도 하지만 어딘가 색다른 풍경선이 보이죠. 이 면에서는 우리 민족시단에서 김승종시인이 제일 특이하게 그런 형식을 연구하고 있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형식면에서의 김시인의 진지한 탐구태도라고 보아야 할것이고 또 이런 형식이 극히 희소하기때문에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야 할줄로 저는 생각합니다. 고로 이런 시형식자체가 김승종시의 또하나의 특점이라고 짚고 싶습니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오늘은 김승종시인과 그의 민족적 정취가 다분히 풍기는 독특한 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 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이만 접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 클릭해보세요 → 潮歌网 2014年02月22日   개구쟁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 김승종   ㄱ  즈음 참 이상야릇해집니다. 기대치(期待値)와 소망치(所望値)를 너, 나, 그, 마음절구속에 넣고 찧고 빻고 하는 짓거리와 짓거리에 무척이나 넋을 빼앗깁니다… 그무렵, 지꿎게 굳이 보리떡을 만들어 개구쟁이들에게 먹이고싶은 그 까닭은 또… 쯔즘쯔즘 까달까달 쩝쩝… 그 찰나, 그 옛적, 모래톱소꿉놀이도 하냥 즐거웠고… 또 그립고… 하지만 요즈음 개구쟁이공화국에선 모래톱 소꿉놀이는 전혀 까막나라 이야기!-   요즈음, 꾸겨지고 곰삭은 령혼들앞에서 이 텁석부리의 마음은 늘 싹 사그라진 녹슬은 화로불과 마주하고있습니다…   ㄴ  요즈음, 너무나도 참 이상야릇해집니다. 이십사기(氣)와 칠십이후(候)와 함께 너, 나, 그, 마음과 마음이 징그럽게 눈언저리 핥으며 메말라가고있습니다… 그무렵, 지꿎게 굳이 보리떡을 만들어 개구쟁이들에게 먹이고싶은 그 까닭은 또… 쭈룩쭈룩 서섬서섬 냠냠… 그 찰나, 이 골목 저 골목 맛갈스럽게 누벼가며 늘 사시절 색다르게 놀던 놀이들은 인젠 새파아란 귀등에서 서리 맞은지 오래고… 그리고 요즈음 개구쟁이공화국에선 그 무슨 “…게임”에 귀여운 눈꼴 눈매마저 다아 빼앗겨 피발에 성엉켜 비지땀 흘리고. 보리떡 대신 그 무슨 괴상한 이름으로 얼룩진 “…먹기콩클”에 호들갑을 떨며 그렇게도 아롱지던 눈빛과 눈빛들 사이는 점점 헐벗고 굶주리여가고…   요즈음, 녹쓸고 텅 빈 령혼들앞에서 이 텁석부리의 마음은 늘 싹 사그라진 녹슬은 화로불과 마주하고있습니다…   ㄷ 요즈음, 이눔은 운이 좋게 내몽골초원 한가운데의 썅싸만(向沙彎)에 갔다 돌아와서부터 더더욱 참 이상야릇해집니다 염통방 닿기전 곰이 잔뜩 핀 그렇게도 찬란한 해볕마저도 지리지리 무서워짐은 또… 그무렵, 지꿎게 굳이 보리떡을 만들어 개구쟁이들에게 먹이고싶은 그 까닭은 또… 썅싸만 모래들의 소리는 이내 텁석부리 귀전에서 늘 찬란히 소소명명이 메아리치고… 웡-웡- 왱-왱- 쏴-쏴- 그 찰나, 썅싸만의 모래들은 소리에 소리를 뭉쳐 몽고포속 개구쟁이들을 왕왕 불러내여 거치른 모래바람앞에서 말이며 양떼며 락타들과 함께 열심히 뛰게 하면서 빨주노초파남보 새 별유천지로 생생히 만들어가고있었습니다   요즈음, 색바래지고 굳어진 령혼들 앞에서 오늘도 이 텁석부리의 마음은 늘 싹 사그라진 녹슬은 화로불과 마주하고있습니다…   ㄹ 느지막, 25시너머― 누우런 이끼 돋힌 침묵의 천년바위앞에서 개구쟁이들에게 보리떡을 정나미 정나미 먹이고싶습니다… 저― 높은 산아래 자그마한 “산”이 되기전   ―모두들 무사함둥…         이 글은 연변일보가 주최하고 한국CJ그룹 중국본사가 후원한      제21회 2013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수상소감】 천만년의 침묵을 깨우치며...   뜨끈뜨끈한 수상소식을 접하고,  한파에 움추렸던 몸을 우직끈 불러 일으켜 세워 보았습니다. 옹송거렸던 텁썩부리 시지기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고, 미세먼지에 혼나고있던 코도 어느새 그런 일 없는듯 흥얼대기 시작하는것이였습니다... (얘, 시지기야,- 좀 아서라!)   잠깐,ㅡ 시를 쓴답시고 허겁지겁 터벅터벅 문학이라는 가시덤불길과 벼랑길을 옹고집 하나만으로 걸어온 문학도였습니다. 친척, 친우, 형제들의 비꼬임들을 이만팔천리 내동댕이치고 저만의 소망 하나만으로 오또기마냥 일어서려 애쓰던 문학도였습니다. 그리고 대골령너머 죽림동의 촌지서였고 정치대장이였던 부친님께서 늘 보아온 를 철부지때부터 지금까지 쭉 내내 40여년 한시도 게으름없이 구독해온 애독자였으며, 눈곱만한 글귀라도 귀보에 등고되면 밤잠을 설치던 글쓰기열성자였으며 땜장이 통신원이였습니다...   이젠 시와 끄적끄적 씨름한지도 어언 30여년, 잃은것도 많고 얻은것도 많은 문학의 길에서 수많은 터널이 잇어지는 굽이굽이였습니다. 잃은것은 금싸래기, 은싸래기였으며 얻은것은 시향이 하냥 찰찰 넘치는 에너지였습니다. 저는 시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정이 확 드는 울 할머니 성스러운 질그릇처럼 참 좋은걸요. 백의겨레 맥박속에서 뛰는 우리 가락, 우리 리듬으로 된 바탕우에서 늘 무릎 맞대고 빙 둘러앉아 을 기분좋게 서로서로 기울여봄은 또 그 얼마나 좋다구요. 문학을 지향한다는것은 오로지 늘 가난과 고독과 자기와의 싸움이므로 저는 항용 시라는 큰 경전에서 천만년의 침묵을 깨우칩니다. 또 깨우쳐 나아갈것입니다...   고로 록색평화의 반어적인 안부로 하고 전하면서 오늘도 는 를 띄웁니다...   이 문학상을, 자신을 위한 하늘을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가신 아버님과 자신을 위한 종을 단 한번도 아니 치고 가신 어머님, 그리고 문학의 고행 길- 시의 길에서 지팡이이며 우산이며 보리떡이며 기름등잔이며 불씨이며를 항상 정히 챙겨주시던 여러 선배님들과 애독자들께 돌립니다. 또한 이 크나 큰 상을 저의 삶의 고개, 문학의 언덕을 톺는 하나의 디딤돌로 삼겠습니다.   의 편집자들의 숨은 로고에 정중히 감사를 드립니다. ==========////////////////////////////////////////=====================   "별''을 불러보는 시간입니다 2019년 02월 20일 작성자: 룡윤회   "별''을 불러보는 시간입니다 ​ ​ -김승종-   ​ ​ 오늘 따라 용두레우물가 왕버들 지나 ​ 저기 저 동산마루 너머  ​ 별들이 쏟아집니다 ​ ​ 희끄무러한 광목천 보자기에서  ​ 노닐던 별들과 ​ 코쓰깨로 윤나다  ​ 팔소매끝자락에서 뛰쳐나온 별들과 ​ ​ 앞집 뒷집 삽작문 건너  ​ 설기떡 미역국에 동동 띄웠던 별들과 ​ ​ 민들레며 냉이며 고사리며 도라지며가  ​ 살점되여 퐁퐁 뛰던 별들과 ​ ​ 도깨비짐승들과 장돌뱅이짐승들이  ​ 마을안팎 스적스적 노닐던 별들과  ​ ​ 태극문양 정나미나는  ​ 팔간집 호롱불속에서  ​ 꿈자락 하냥 펼치던 별들과... ​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 ​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 아이들의 이름과  ​ ​ 페이(佩), 찡(镜), 위이(玉),  ​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 ​ 벌써 아기 어머니 된  ​ 계집애들의 이름과,  ​ ​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 ​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 ​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 ​ 오늘도 ''흙으로 덮어 버린'' 별들이 ​ 초롱초롱 이슬 맺혀 밟혀오고 ​ ''부끄러움''의 별과 함께  ​ ​ 아리랑 오랑캐령 넘어 넘어 ​ 룡정 명동촌 하늘가에  ​ 은하수 되여 흐릅니다ㅡ  ​ ​ 아,불멸의 영원한 청년  ​ 윤동주의 ''별을 헤는 밤''이여ㅡ     ​ 김승종(金勝鐘) 프로필     아호; 죽림(竹林),  1963년 화룡 로과 두만강역 출생,  연변사범학원 졸업, 교원,  전 농촌상업은행 직원, 현 자유기고인.    전 화룡시작가협회 주석 력임,   중국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시인협회 회원, 룡정.윤동주연구회 리사,    , (200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 (2005년도 화룡시문련, 화룡시작가협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  (201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동인지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  , (2016년 제20회 수상시집) 등 시집, 론저 출간.   두만강여울소리 시우수상,  연변작가협회 인터넷 문학상, 연변일보 해란강 문학상, 제20회 , 한국세계계관(桂冠)시인문학회 시본상,  중국조선족대학생리육사문학제 유치 연변작가협회 공로상, 한국 이육사문학관 공로상 등 다수 수상. //////////////////////////////////////////////////////// 하늘과 종과 그리고... 2015년 01월 22일  작성자: 룡윤회 하늘과 종과 그리고... 竹琳.김승종                  (ㄱ)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ㅡ 남들을 위한 하늘,              그렇게도 그렇게도 성스럽게 성스러이 펼쳐 주셨소이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ㅡ 자신을 위한 하늘,              단 한자락도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아니 갖고 가셨소이다...   아 ㅡ 버 ㅡ 님 ㅡ...                                        (ㄴ)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남들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만번 수천만번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자신을 위한 종은,              단 한번도 단 한번도 아니 치고 아니 치고 가셨소이다...   어 ㅡ 머 ㅡ 님 ㅡ... ////////////////////////////////////////////////////////////////////// 두만강에 떼목이 흐른다 2014년 10월 06일    작성자: 룡정윤동주연구회 두만강에 떼목이 흐른다 김승종 여보소, 벗님네들! 버빡골 할배 떼목앞에서 거연히 뼈로 솟아 흐르오 부암동 할배 떼목뒤에서 소소리 탑으로 솟아 흐르오 진달래동산 지나  살구꽃동네 돌아 굽이굽이마다 아리랑 구성지오 에헤야 듸야  에헤야 듸야 두만강에 겨레의 전설  새하야니  새하야니  흐르고 흐르오… 2007년 12월호   파일 [ 2 ]      
7978    중국조선족 시인 박장길 篇 댓글:  조회:540  추천:0  2024-08-23
박장길시인 2014년 08월 16일 21시 28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연변녀성시회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좋은 시를 많이 쓴 녀류시인 리순옥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에서 사업하면서 가사창작을 비롯한 좋은 시들을 많이 창작하고 있는 박장길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신-박장길시인은 군복무를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후엔 또 예술단창작실에서 명가사들도 많이 창작한줄로 알고있는데요. 먼저 박장길시인의 약력에 대해서 얘기주시죠   림—네 박장길시인은 1960년 2월,   화룡시덕화향 길지촌에서 출생. 시인의 고향이라 불리우는 덕화향 길지. 길지에는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허씨3형제 한마을 장길네 집과도 가까운 곳에 있었음 소학교 담임교원 김응룡 고중시절에 허충남선생의 지도를 받으면서 문학가의 꿈에 열을 올렸다. 허충남선생은 학교에서 써클을 조직하여 문학강의. 시창작연습. 최룡관선생도 박장길시인과 머지않은 곳에서 살고있었음. 신창수시인, 그리고 중견시인들인 김영건, 김승종 시인들도 모두 덕화향에 살았습니다. 박장길시인은 향문화소에도 있었고 청춘시절엔 배구를 잘 쳐서 성대회에도 참가한적 있습니다. 후에 박장길은 군대에 참군합니다. 참군하여서도 작품창작을 계속하여 소속부대 표창도 받았습니다.   신—박장길시인은 3가지 일에 동시에 흥취를 가지고 몸잠구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3가지 일들이 있었습니까?   림-네  1. 참군2.배구. 3. 문학. 그의 아버지는 군관이였는데 퇴대하여 농촌에 와서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마을에서 였습니다. 박장길은 박군대의 아들답게 역시 군대로 떠났습니다. 당시 전 연변주에서 남평배구팀이라면 다 알았다. 길림성대회에까지 가서 전주를 대표하여 성에서 1등 한번 2등 한번을 했다. 그때 징병모집이 내려왔다. 학교몰래 보명해써 키 170 배구로는 키가 작다했지만 군대에는 특등 신체로 입대—운동원이였으니깐 빵빵하지요 성대한 환송속에서 참군.   신-그러니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계속 배구운동쪽으로 나갔겠네요. 어찌보면 참군이 그한테 문학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림—네 흑룡강성 흑하 그 쪽. 먼저 자동차련대. 후에 치치할쪽 포병부대로 전근. 군복무 3년간. 전투명령이 내려 집에다 유언까지 써보내던 가장 간고하던 년대 흑하현 백운공사. 어느 촌락. 전등불도 없고. 집에 들어가 자는데 바닥에는 닭개, 돼지, 게사니들과 함께 자던일, 변소갈때 가축을 모르고 건드리면 …큰 소동이 생기기도 하고. 당시 남쪽에서는 윁남전쟁, 그들은 혹시나 있을 북쪽 쏘련침략을 방지하느라 1급전투태세에 들어간 것이였음. 그런 환경에서도 시창작을 견지. 라지오에서 웥남전쟁에서 영웅이 속출한다는 이야기 듣고 영웅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신—이 시기 박장길시인이 쓴 라는 시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면서요? 림—네 “초소에 날아온 까치”의 창작이야기. “숙아, 너는 구름을” –연변문학에 발표됐는데 후에 이 시가 “민족문학”에 번역되여 발표—박길춘이가 번역. 박길춘은 방정현의 사람. 서로 편지가 오가다가 방정현에 가서 교장인 길춘아버지의 소개로 거기서 교원사업도 함. “잠못 이루는 밤”이란 작품은 아이들한테 사탕 사주면서 편지로 부치라 했다. 부대에서 령넘어 백운공사에 가야 우편국이 있으니깐. “흑룡강성조선말방송국”에도 투고. 원고료 7원이 왔다. 가끔씩 치치할시 조선족중학교 교원한테 다니며 시를 배웠는데 그 선생한테 5원으로 적삼 사갔다. 시를 발표했다고 전 련의 표창받음. 68사에서 조선족전사들한테는 이름이 다 알려졌다. 그후부터 전사들은 박장길이 글잘 짓는다하여 련애편지를 써달라 해서 많은 연애편지를 써주면서 시창작에서의 정서도 많이 키웠다고 한다. 한번은 한창 쓰는데 순라대에서 발견, 헌데 조선말을 알아못보고 간첩활동을 하는가 사부에 붙들어 갔는데 조선족전사를 찾아 읽어본게 영웅노래시이니깐 풀려났다는 이야기. 모얼뚱이란 동굴에 숨었다가—집합나팔소리가 나니깐 굴에서 나가는데 그만 굴이 무너졌지만 호주머니의 창작시만은 그냥 보존하고 있었다. 겨울엔 잉크가 얼어서 연필을 썼는데 연필속대가 자주 끊어져서 혹간 연필속대가 끊어지지 않을때는 그렇게 기뻐했단다. 포탄상자에 눌리워 팔목을 상함. 시까지 발표한 사람이라고 특혜를 줘서 팔에다 완장을 끼고 검사원질 하는 대접도 받았단다 역시 시한편때문에 받은 혜택이였다. 저녁이면 아홉시에 통일취침. 그래서 전지불. 초불. 등을 켜고 창작, 그러다 한번은 침대에 불이 달린적도 있었다. 전지약이 없어지면 취사칸. 사부의 불빛빌어…책을 읽었는데 모기가 너무 매달려 고생하던 일도 있었음 … 제대후 군인생활을 시화한  제대군인 시초 “고향의 흙” 을 창작 그리고 몇년전에는 또 로신문학원 제11기 전국중청년작가고급연구반도 수료하였는데 북경에 있는 기간 수편의 시를 한문으로 각지 잡지에 발표함.   신—문단활동도 아주 적극적인줄로 알고있는데요.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으며 어떤 성과들이 있습니까? 림-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연변문학예술연구원 부원장,연길시 조선족예술단 창작실 주임 선후로 아리랑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시가탐구상, 국가급 가사창작1등상, 정지용문학상, 가야하문학상 등 30여차 수상. 몇년래 인기가 높은 대형무극 “계절의 노래” 등 창작 신—많은 작품들을 써냈으니 당연히 적지 않는 문학작품집들을 펴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박장길시인에게는 어떤 작품집들이 있습니까? 림-네 시집 “매돌”, “찰떡” ,“짧은 시 긴 탄식”, “ 동시집 “소녀의 봄” 가사집 “춘하추동” 수필집 “어머니 시집가는 날” 등 8책.   신—수상작도 많겠는데요? 림—네 두만강여울소리 상 몇차 제14회 정지용상. –“짧은시 긴 탄식”으로 “동년의 뜨락” 가사 상—히트친 노래 전국급상 , 성급상 등 30여차. 가요무대 “사계절의 노래”는 인기가 확끌려 연변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가정- 안해는 중학시절의 동창생. 아들 무한대학졸업.  세식구   신—박장길시인도 시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을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림—네 풍격에서—진실과 뜨거운 정감과 애틋한 그리움으로 얼켜야 한다고 주장, 언어장난으로 시를 짜내는 건 혐오한다. 언어의 발견으로 시를 창작하는걸 싫어하고 시적 발견으로 시를 써내는걸 주장. 그러니깐 형식이나 기교보다 내용을 앞에 놓자는 주장. 시에서 받은 혜택--시는 무너지는 나를 춰세운 친구이고 농민의 자식으로부터 국가 1급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언제든 자신한테 많은 행운과 복을 안겨준 시를 배반하지 않을것이다고 다기차게 말함.   신—박장길시인의 시에 대해서 객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있습니까? 림—네 장정일 평론가는 “수상작품집 ‘짧은 시, 긴 탄식’은 무엇보다 먼저 시인적인 역설의 재치를 바탕으로 인생만사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탐구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생활에 밀착되고 함축되고 절제된 시어를 구사하는 그의 시작들중 기발한 역설에 기대여 시적사유의 도약을 실현한 수작들이 그의 작품집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보인다”고 평했다.   신—네 시 형식보다도 시 내용을 주장한다는 박장길시인인데요. 그럼 아래 박장길시인의 시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박시인의 문학향기를 더욱 가까이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상할 시는  “콩꽃”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그 뜻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콩꽃 박장길   네가 맺은 열배로 조선족은 조선족다와졌다 해볕에 부끄럼없이 탱탱 여물어 황금 같은것 고르고 골라서 오래오래 퍼지웠다가 매우매우 삶아서 뭉개고뭉개서 빚어낸 메주 거기에서 짜낸것 만들어낸것 간장이며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청국장을 지나 장국에 이르러 승화된 맛 어머니같이 할머니같이 그렇게 정 깊어 무작정 좋아 불러만 보아도 입이 구수하고 군침이 도는 그 모든것이 우리들의 피에 흘러 대를 내려오며 같이 해온 대를 이어가며 함께 할 맛이 가지 않을 영영 우리의것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것은 콩꽃에서 비롯되였다 보잘것없이 잘게 잘게 피여 희게 피여 결실한것은 보귀한 꽃 콩꽃은 조선족꽃이다   신—네 “콩꽃”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를 이끌어낸것 같은데요 참 자연스러우면서 기발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림-네, 하얀 콩꽃이 피여나면 우리의 제일 전통적이고 고유한 음식의 하나인 콩이 달리고 콩으로는 또 된장, 간장, 썩장, 콩장,두부 등을 만든다. 하기에 콩꽃은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만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색갈까지 하얀 색이니… 시인은 우리의 꽃인 콩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민족이 즐겨 자시는 콩의 력사를 이 시에서 써냄으로써 우리의 음식문화를 도출해냈고 그속에 끈끈히 고패치는 민족의 문화, 민족의 맛, 더 나아가서는 민족녀성들의 고달프지만 또 찬란한 력사를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시줄에서 살펴보면  “우리들의 피에 흘러 대를 내려오며 같이 해온 대를 이어가며 함께 할 맛이 가지 않을 영영 우리의것” 이라고 했고 “우리를 우리답게 하고” “네가 맺은 열매로 하여 조선족은 조선족다와졌다”고 호소하는것이다. 콩꽃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생각하고 우리의 음식문화의 피나는 역사를 파헤친데서 이 시의 뜻이 염글어진 것이 특이하다. 무심히 콩꽃을 보고 지났더라면 이 시는 세상에 태여나지 못했을것이다. 신—네 콩꽃에서 민족의 얼을 찾아 적은 한수의 좋은 시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박장길시인의 력작 “거울앞에서 “를 감상하고 그 뜻을 파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울앞에서 박장길 텅 비여서 다 품어주는 거울앞에서 내안을 들여다본다 가득차서 좁은 가슴? 바라보면 벌써 안겨있는 거울은 비여있기에 넓어진것을! 채운만큼 좁아지고 비운만큼 채워지는것을 가르침 펴는 거울의 밝은 가슴 비여있어도 빈 소리 없다 신—네 거울앞에 서서 거울과 자기를 비유해서 시적인 의미를 찾은것 같은데요 그 깊은 뜻이 담겨있을듯합니다. 림-거울앞에서 거울을 보면서 발견하는 철학은 바로 비워있는것과 채우는 것 즉 비우면 많이 채울수 있고 채우고 있으면 좁아진다는, 소유와 무소유의 철학을 잘 말해주고 있다. 거울은 늘 비여두고 있기에 뭐나 비쳐드는건 그 비운 자리만큼 그득 채울수 있지만 거울앞에서 “내안을 들여다보니 가득차서 좁은 가슴”이 보인다. “거울은 비여있기에 넓어졌고” 나는 “채운만큼 좁아지고” 거울은 지금 “비운만큼 채워지는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또 마지막 련에 한술 더 떠서 거울은 “비여있어도 빈소리 없다”고 함으로써 –(사실 거울은 말이 없는 물체이다. 그만큼 또 빈소리할줄 모른다)무소유인 거울의 풍만함과 진실함 즉 그 품위를 한층 더 승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신—박장길시인은 로신문학원에서 연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음 감상할 시는 로신학원에서 문학공부를 하면서 지은시라고 합니다.  시 제목은 “나에게”인데요.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 박장길 접혀있는 손풍금이여 주름을 펴고 가득 차있는 그 소리 울려라 새바람 잡아 가슴 가득 재워 깊은 호흡으로 울려라 주름 잡힌 가슴에 접어넣은 사색 활짝 펴고 태양을 안고 타면 하얀 소리 울려나와 무대는 다시 열리고 해와 달의 조명아래 나래쳐 열광할 백이십뻐스 접혀져있는 손풍금이여 가슴을 열어 세월이 데려간 화려하던 한때를 털어버리고 선생을 타며 한껏 울려라 신—네 자기 자신을 손풍금에 비유하여 쓴 시같은데요 아마도     로신문학원에서의 자기의 감수를 시화한것 같습니다. 림—네, 그렇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 북경에 있는 로신문학원에 가서 연수받을 때 쓴 시같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을 주름이 가득찬 풍금에 비유하여 풍금이 주름을 펼때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것으로 상상하였다. 시인은 그때 이미 쉰고개를 넘어서고 있으니 인생의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 고 또 쉰고개를 넘고 있으니 속에는 소리의 소재(즉 생활체험같은것)들이  가득차 있는것이다.   (120호 뻐스는 뻐스선로를 말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선생을 타며 한껏 울려라 는 “신생”을 타며로의 오식이 아닌가도 생각되고 진짜 선생을 타며는 선생을 초과하며로 해석할지 저도 조금 궁금한데요)   시인은 매일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시구에서는 “새 바람 잡아 가슴 가득 재워(지식을 많이 배워) 깊은 호흡( 깊은 시적인 사색)으로 울려라” 고 하면서 새로운 시야와 새로운 의식으로 새로운 시를 창작해 낼것을 다진다. 이 시에서의 새로운 창작수법이라면 그저 자기의 감수를 적은것이 아니라 손풍금을 대상물로 삼아 손풍에 의탁하여 시인자신을 표현한것이 기발하고 묘하다.   신—다음은 박장길시인의 대표작중 한수인 “세월조각가”입니다.  감상하고 그 구체적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조각가   박장길 이 세상에 울리며 데리고와서 모르고 운 울음맛을 옹이를 박으며 배워준다 때가 되면 빠짐없이 조각을 한다 입가에 눈가에 이마에 새기기만 하고 삭제는 할줄을 모른다 전시장에 내놓고 해와 달로 비추어보며 지우지는 않고 그냥 보충만 한다 때가 되면 한점 한점 빠짐없이 저승사자를 시켜 눕혀 데려가고 세상의 문을 닫는다 세상문은 회전문 세월의 조각가는 할 일이 하도 많아 한해에 허옇게 늙는다   신—세월의 무상하고 또 무정함을 쓴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습니까?   림- 제1련을 살펴보면 이 세상에 울리며 데리고와서—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날때 울며 태여남을 말함 모르고 운 울음맛을—아길적 응아응아 하고 저도 모르고 운 그 맛을 옹이를 박으며 배워준다—차츰 커가면서 옹이를 박으며 배워간다. 세월의 흐름속에.. 제2련을 보면 때가 되면—시간이 가면…세월이 흘러가면 빠짐없이 조각을 한다—시간을 하나도 빠뜨림없이 얼굴에 새긴다   제3련을 보면 입가에 –입가의 주름살 눈가에 –눈가의 주름살 이마에 –이미의 주름살 새기기만 하고 –그냥 주름살을 남겨주기만 하고 삭제는 할줄을 모른다 –주름살을 없애버리지는 않는다..   제4련을 보면 때가 되면-죽을 때가 되면 한점 한점 빠짐없이 저승사자를 시켜-한명한명씩 죽음의 신을 시켜 눕혀 데려가고—사람이 죽으면 눕는다 눕혀서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뜻 세상의 문을 닫는다-이 세상과 리별을 하게 함을 말함 세상문은 회전문—헌데 세상문은 회전문이기에… 세월의 조각가는 –죽은건 보내고 조각가는 다시 돌아온다—즉 세월은 다시 돌아온다   할 일이 하도 많아 –세월은 할일이 많아서 한해에 허옇게 늙는다—한해사이에도 많은 사람을 저승에 보내느라 허옇게 늙어진다 여기서 한해라고 한것은 한해에 하나의 인생만 저승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생을 저승에 보내야 하기에 드바쁘다는걸 말한다. “세월의 조각가” 누가 술을 많이 마여 간을 파괴하면 간암을 만들어주고 위를 파괴하면 위암을 만들어 준다. 또 누가 자연의 생태평형을 파괴하면 지진을 보내주고 해일을 보낸다…가차없다. 이 시는 이렇게 세월의 무상함과 가차없음을 …누구에게나 동등한 세월의 칼날같은 예리함을 밝힘을로써 세월-즉 시간앞에서는 누구도 용서나 회의나 후회같은것이 있을수 없음을 …즉 무정한 인생을 똑 찍어 말해줌으로써 다시 더 올수 없는 한생을 다시 수개할수 없는 한번의 인생을 허송하지 말고 분발하고 노력하여 알찬 한걸음한걸음을 찍어가라는 부탁과 명령과 조언인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아주 랭정한 인생자세와 갖춤새를 따갑게 말해주는데 그 성공을 두고 있는것이다. 구 쏘련의 저명한 대 문호 고리끼는 이런 뜻의 말을 한 일이 있다. 즉 사람들은 매일 매일 자기무덤을 향해 한발작 한발작 다가가고 있다.- 그렇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자기의 죽음을 향해 전진한것이니깐 …이런 견지에서 볼때 우리는 매 한시간 매하루 매 1년을 소중히 살고 알차게 살아내야 할것이다. “세월의 조각가”는 사정은 봐주지 않으니깐…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문학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물과 별인데요. 박장길시인은 어떤 물과 불을 쓰고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물과 불                     박장길 물은 아래로 흘러 바다로 커지고 우로 솟아 불은 재로 사라진다 가장 낮은 곳은 바다 가장 높은 곳은 허공 신: 네 아주 짧은 시지만 박장길시인의 글솜씨를 보여주는 시가 아니였는가 생각됩니다. 림-물은 허심하고 겸손한 인생을 말하고 불은 기세차고 하늘을 쯔를듯 거창하지만 허무함을 말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있을수록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하는 허상을 비판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걸 많이 볼수있다. 가장 낮은것같지만 가장 휘넓은 바다같은 삶을 안고 살고있는 참다운 생이 있는가 하면 가장 높은것 같지만 사실 아주 허풍적이고 아주 텅빈 공중루각같은 풍만과 삶의 진가를 떠나서 물거품인생을 살아버리는 허무맹랑하고 갈대같은 인생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시인은 이 시로써 이런 현실을 비판한것이다. 이 시는 설명이 필요없이 조금만 사색해보면 그 뜻을 짚어낼수 있는 그런 철리적이고 사색적인 단시이다… 신: 네 오늘 문학살롱 작가초대석시간에는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님을 모시고 시인 박장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또다른 시창작 자세를 엿볼수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물론 박장길시인한테는 좋은 시들이 많지만 시간상관계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림선생님 오늘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림: 네 수고많았습니다. 신: 네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 노래 ------
[珍藏版] 김학철 장편소설《20세기의 신화》 潮歌家族 潮歌网        안내: 위 사진제목을 클릭하면 볼수 있습니다.   조선족 최대 필화사건!  작가가 10년 옥살이로 고역을 치르게 한 바로 그 소설! (《천지》1989년 발취련재,창작과 비평사 1996년 출판)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김학철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9.끝)   김학철과 반우파투쟁 [수필] 《20세기의 신화》(김학철) [반우파투쟁에 관한 김학철수필 7편] 가해자와 피해자 [청취기록] 반우파투쟁과 《20세기의 신화》(김학철)  
7976    김학철/정판룡 댓글:  조회:890  추천:0  2024-08-23
원로작가 김학철선생과 《20세기의 신화》                              정판룡   (1)   1997년 이른 봄인것 같다. 나는 무슨 일로 한국에 나갔다가 서울 종로서점에서 생각밖에 갓 출판된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를 발견했다. 출판사와 출판기일을 보니 출판은 서울에 있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하고 출판시간은 1996년 12월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이 《20세기의 신화》로 하여 수많은 옥고와 고생을 하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책은 처음으로 보는것이니 두말없이 한책 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3월 11일에 종로서점에서 샀다는것을 기록해두었다. 곧 읽어보려고 했지만 서울에서는 시간이 없었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내가 곧 병원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바람에 미처 읽을 사이가 없었다. 요지음 시간이 생겨 이 소설을 한번 자세히 읽었는데 내용인즉 전날 연길에 있던 임일평이라는 젊은이가 1957년 반우파투쟁때 우파분자로 되여 처음에는 기관에서 비판투쟁을 받다가 후에는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 가서 로동개조를 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摘帽右派)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것을 주로 쓰고있었다. 1957년에 전개된 반우파투쟁과 민족정풍은 주로 문예계를 중심한 인테리와 대학이나 당정기관에서 전개하여 이런저런 《분자》로 애매하게 붙잡혀나온 사람은 대부분이 임일평처럼 옳은 말, 속에 있는 말을 감히 한두마디 한 사회의 중견인물들이였다. 이런 사람들을 우에서는 50년말부터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다 모아놓고 로동개조를 시킨것 같다. 그러다가 60년대 중엽에 중앙에서 새로운 정책이 내려오면서 일부 《분자》들의 정치모자를 벗겨주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주고 신임하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 임일평이도 《모자를 벗은 분자》가 된 뒤에도 원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신문사 접수실에서 접수원 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1960년부터 중국에는 《3년자연재해》라고 하여 종래로 보지 못한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일어났다. 확실한 통계가 나오지 않아 기근의 엄중정도를 알수 없으나 우리 대학에서도 한때는 가둑나무잎, 콩대, 강낭대를 삶아 대식품을 만들었으며 푸대죽만 한두해 먹었으니 소위 《분자》들이 강제로동을 하는 강제수용소가 그 난통에 어떠했으리라는것은 가히 짐작할수 있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의 전국성적인 대기근은 《3년자연재해》로 인해 일어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것이 이미 밝혀졌다. 1957년부터 시작된 과격한 정치운동과 대약진, 인민공사화 등 좌적인 운동은 공산풍, 평균풍 등을 초래하게 한것이다. 거기다가 1960년부터 공개화된 중쏘분기는 날이 갈수록 첨예해져 마지막에는 우쑤리강의 진보도(珍?島)에서 무장충돌까지 발생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어제날의 형제국가는 우리의 적으로 되였으며 나처럼 국가의 파견을 받고 쏘련류학을 한 사람들까지 의심을 받게 되였다. 《20세기의 신화》에는 이런 내용들도 적지 않게 취급되고있다. 나는 바로 60년도 5월에 류학갔다 돌아왔다. 이때 학교에 돌아왔으니 이 시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돌아와보니 나의 스승 김창걸선생님은 58년에 내부민족주의분자 모자를 쓰고 임일평처럼 학부의 자료실에서 접수원노릇을 하고있었으며 나의 동창친구들도 여럿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로 되여 학교에서 로동개조를 하고있었다. 로시인 리욱선생은 57년도 대명대방(大鳴大放)때 북경에 연수 가고 학교에 없었기에 면했다고 하며 또 학교에는 《학생우파》라고 하여 학생속에서 잡혀나온 《우파분자》들도 여럿 있었다. 글을 가르칠만한 교원들이 모두 적으로 되여 잡혀가고 없으니 학교는 폭풍이 지난 들판처럼 쓸쓸하고 처량했다. 1960년 가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오면서 우리는 살기가 더 힘들었다.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에 묘사된 먹기를 위한 각종 사건들이 대학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1961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대처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이 우에서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일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 우경분자들에게 씌운 모자를 벗겨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라는 꼬리표를 그냥 달고 다니는것이였다. 로작가이신 김창걸선생은 운동때 민족주의분자로 확정은 되였는데 부교수이기에 성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내부민족주의분자로 되고있었는데 비준이 없는 분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민족주의분자의 꼬리표를 달고 그냥 자료실의 접수원으로 계셨다.  이처럼 《20세기의 신화》는 나로 보면 근 6년간 쏘련에 류학갔다가 돌아와 문화대혁명의 대동란이 일어날 때까지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때였기에 퍽 인상적이며 실감적이다. 우리 조선족문학으로 볼 때 토지개혁, 해방전쟁, 항미원조, 그리고 50년대의 호조합작, 인민공사시기를 반영한 작품들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20세기의 신화》처럼 50년대중엽으로부터 무고하게 이런저런 《분자》의 정치모자를 쓰고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며 생활을 해야만 했던 우리 사회의 일부 우수한 인테리들의 생활과 《3년자연재해》로 하여 생겼다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폭넓게 반영한 작품은 없다. 형제민족의 문학에는 《강제로동수용소》거나 60년대의 대기근을 반영하는 작품들 (이를테면 왕몽의 소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김학철선생이 쓴 이 작품이 처음인것이다.   (2)   《20세기의 신화》는 전, 후편 도합 1350매의 규모이니 김학철선생의 장편가운데서는 중간에나 속할것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년만 인 1965년 3월에 탈고 했다고 하니 1964년 년초에 쓰기 시작한것 같다. 당시 김학철선생은 몇해 강제로동수용소에서 로동개조를 했지만 잠시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창작의 권리는 여전히 없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때 《가중되는 정치적압박과 극단적인 궁핍》은 그로 하여금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는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보고 느낀것을 무슨 형식으로나마 쓸 생각을 한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쓰게 되니 자연 개인숭배에 대한 말을 많이 하게 되고 그분에 대한 불경의 내용이 소설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때는 또 바로 문화혁명이 일어날 때라 그 누가 그이에 대한 불경의 말 한마디만 해도 현행반혁명이 되던 때이니 김학철선생이 조용히 집에서 쓴 이 소설이 무사할수 없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얼마 안되여 반란파들은 발표도 되지 않은 소설원고를 몰수해갔으며 예심으로만 7년 4개월, 정식공판으로 판결받은 감옥생활이 10년, 도합 17년 4개월의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김학철선생님의 말씀대로 이것도 력사적기록을 돌파했다. 나는 한동안 세계문학을 전공했으며 세계문학사도 여러 책 쓴 사람이기에 동서고금 문학사에서 소설로 하여 큰 고생을 한 사람을 더러 알고는 있으나 김학철선생처럼 근근히 초고를 써놓은 미발표원고로 하여 근 20년 옥고를 치른 사람은 없는것 같다. 1977년 12월 만기출옥을 한 뒤에도 김학철선생은 옹근 3년을 완전실업자 대렬에 끼여 살다가 1980년에 최고법원에다 직소를 해서야 아직 발표되지 않은 미발표소설이라는데서 일이 락착이 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거리 《20세기의 신화》는 무죄판결이 공포된 뒤에도 7년이나 갇혀있다가 1987년 8월에야 비로소 임자에게 돌려졌다. 나는 《20세기의 신화》가 한국에서 출판되리라는것을 전혀 모르고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그 책을 한권을 샀으며 김학철선생은 한국에서 출판되였다는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우연히 북경에서 김학철선생과 만나니 또 무슨 봉변을 받을려는지도 모르겠다는 근심을 했다. 그뒤 어떤 봉변이 또 그에게 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김학철선생의 속이 편안할수 없다. 그의 이런 정서는 그뒤 그가 발표한 많은 수필, 산문들에서 엿볼수 있다.   (3)   김학철선생은 1916년 출생이니 금년 만으로 85세가 된다. 지금 중국에는 파금(巴金)같은 로작가가 아직 생전이고 파금이나 빙심(氷心), 조우(曹遇)같은 백세로인이 한둘이 아닌것을 보면 이전에 비해 작가의 수명도 많이 길어진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반정황을 보면 수명은 길어도 창작수명은 길지 않다는것이다. 파금같은분은 건국초기부터 글은 별로 쓴것같지 않으며 빙심도 나이가 얼마간 들면서는 별로 쓰지 않았다. 우리 중국조선족 문단을 보아도 대부분의 작가, 시인들은 나이가 60~70이 되면 점차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것이 상례로 되고있다. 장편소설 《부활》을 늙어서 완성하여 세상에 소문을 낸 로씨야의 대문호 똘쓰또이도 나이 80이 된 뒤에는 가정내부의 소소한 쟁론으로 출가하였다가 외지에서 사망하는 일이 생긴것을 보면 우리의 김학철선생처럼 85세의 고령이면서도 계속 쓰는 로인은 적어도 이 중국에는 더 있는것 같지 않다. 김학철선생은 몇해째 《장백산》 잡지에다 《초대석》이라는 란을 설치하여 매기 3~4편의 수필, 산문을 발표하고있으며 그외에도 이따금 이곳저곳에 발표한것을 합하면 한해에 근 20편의 글들을 발표하고있는 셈이다. 김학철선생은 1980년 12월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담당판사가 대중앞에서 랑독했으니 1956년부터 1980년까지 장장 24년을 창작권리를 박탈당했으며 환갑해가 퍽 지난 64세 때 다시 창작권리를 회복했으니 부득불 늙어서야 글을 쓰게 되였다. 남들은 집에서 편안히 할아버지노릇을 할  때 김학철선생은 그때에야 잃었던 시간을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강철같은 그의 의지는 김학철선생으로 하여금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글을 계속 쓰게 하는것 같다. 감학철선생은 어떻게 하든 잃었던 24년의 시간을 보충하고야 말겠다고 하셨다. 《이 점에서만은 하나님이 공정한것 같애. 잃은 시간을 보충하라고 나에게 시간을 주는것 같애.》 김학철선생이 몇해전에 골암(骨癌)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지금 정황은 어떤가고 물어보았더니 《몸에 난 암종만 열 개나 된다고 하는데 나는 치료도 하지 않고 거기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아.》 기실 김학철선생님은 신체가 극히 불편한 몸이면서도 아침마다 그 높은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는 부르하통강가에 나가 우리 젊은 사람 이상으로 운동을 하신다. 지난번 북경에서 《장백산작가상》 시상식이 있을 때 김학철선생은 원래 참가하려고 계획했는데 집에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가시지 못했다. 김학철선생은 작가이고 투사이며 투사이며 작가이사다. 그는 일제시기에 반일투사 윤봉길의 애국행위에 감동되여 20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상해로 건너갔으며 중국륙군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30년대말에는 조선의용대에 입대한 반일투사일뿐만 아니라 광복후에도 정치, 사회 부조리와 감히 맞서 싸운것으로 하여 근 20년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24년이나 창작의 권리를 박탈당했었다. 그의 이런 투사정신을 떠나 그의 문학을 리해할수 없다. 그리고 김학철선생에게 있어 문학은 시종 그의 투쟁무기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께서 건강장수하시고 더 많은 좋은 작품을 써주시기 바란다.                                                    2001년 8월         정판룡: 평론가, 연변대학 전임 부총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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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4    어머네와 아부제 댓글:  조회:137  추천:0  2024-08-23
길림신문 2024. 5. 16. 문학판 [시] 새벽(외1수)   김승종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남들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만번 수천만번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자신을 위한 종을 단 한번도 아니 치시고 아니 치시고 가셨소이다…   어—머—님—     하늘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남들을 위한 하늘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수만자락 성스럽게 성스러이 펼쳐주셨소이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자신을 위한 하늘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아니 갖고 가셨소이다…   아—버—님—
7973    볼세비키/ 정세봉(제목 클릭하기... 訪問文章 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715  추천:0  2024-07-13
[珍藏版] 정세봉 중편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 原创 潮歌家族 潮歌网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2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3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4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5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6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7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8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9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0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1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2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3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4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5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6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7 (정세봉) [련재소설] 볼세비키의 이미지18 終章   부록: [창작담] 나는 어떻게 되여 《의 이미지》를 쓰게 되였는가? (정세봉)   평론 정세봉의 야심작 《의 이미지》에 대한 評   [평론] 력사 현실 인생-정세봉의 《의 이미지》(최웅권)  
7972    죽림동 부모님께 드리는 헌시 댓글:  조회:179  추천:0  2024-07-13
부모님께 드리는 獻詩 2016년 02월 07일 02시 47분  조회:1367  추천:0  작성자: 죽림 오늘도 竹林洞 詩지기는 울고 웁니다... 새벽 (乾)(련작시 7수)     竹林 김승종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남들을 위한 하늘, 그렇게도 성스럽게 성스럽게 펼쳐 주셨소이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자신을 위한 하늘,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아니 갖고 가셨소이다...   아 - 버 - 님 - ...       새벽(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남들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수천만번 수천만번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자신을 위한 종은, 단 한번도 아니 치시고 아니 치시고 가셨소이다...     어 - 머 - 님 - ...           구리종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억만겁의 맘속 한 졸가리에 구리종 하나를 달아매여 둔적 있는가유...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자애로웠던 어머님를 위해 단 한번이라도 그 구리종을 울려 본적 있는가유...   오 호 라,ㅡ 하 늘이여ㅡ ...       하늘 한자락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억만겁의 맘속 한 구석빼기에 하늘 한자락을 베여다 둔적 있는가유...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다정다감했던 아버님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그 하늘 한자락을 펼쳐 드린적 있는가유...   오 호 라,ㅡ 구 리 종이여ㅡ ...       무릎고소장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붉은 장미 한송이와 꽃브래지어와 꽃팬티와 꽃금가락지이며를 들고 사랑하는 이 앞에서 찬란히 무릎을 불꽃티게 쪼개본적 있었지...   여보소! 竹琳 詩지기야! 무명모시두건과 무명젖가림띠와 무명서답과 함께 고뿔한약 반에 반첩이라도 유난히 정히 들고 세상에 둘도 없는 엄마 앞에서 새하야니 무릎을 하냥 쪼개본적 단 한번도 없었지...   아희야,- 삶의 사시(四時) 철철 이 시지기 눔의 무릎 흐려 들쑤셔놓는다...       아버지의 호롱불     그 어느 날- 그립웠습니다 아버지의 호롱불이 또 그립웠습니다 빛과 빛끼리 뒤엉켜 저만치 물러서있고 어둠과 어둠끼리 짓뭉개치며 어둠의 그 두께와 깊이를 시위하며 나 아닌 나를 흑운위에서 엇밟습니다   하지만 주름살투성이인 소리와 돌에 맞아 엉망진창이 된 소리가 빛 에돌아 어둠의 틈 사이를 굳이굳이 비집고 들어오고 나 아닌 십자가에서 슬프게 합니다 아버지의 호롱불이 또 그립웠습니다 그립웠습니다 그 어느 날...   오호라, 오늘 따라 정나미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의 호롱불이여!       새벽 . 2     이제껏 이 竹琳 詩지기 두 어께에 성스러운 가 이렇게 짊어져 있는줄을 마냥 몰랐습니다...   이제껏 이 竹琳 詩지기 가슴속 모퉁이에 성금요일(聖金曜日)과 성심성월(聖心聖月)이 그렇게도 효행효오(孝行曉悟)와 함께 이빠진 그릇과 더불어 터엉 비여 있음을 참 소소리 몰랐습니다...   오 호 라,ㅡ 부모라는 공통분모앞에 선 바 보여ㅡ ...   그리고, 바보들의 새벽은,- 핫,- 무사함둥...   [시작노트];-   등단 30년, 세월은 이 竹林에게 시인이란 왕관을 씌워주려 했으나 이 눔은 굳이 詩지기라는 밀짚모자를 고집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일단 개코같은 작가, 시인라는 이름이 물우의 기름처럼 뜨니 생일축사, 회갑축사, 추도사를 써달라는 청구가 너무나 기승부려 술 한잔 얻어먹고 써줬고 또한 그 집안대신 축사해 주기도 했었다. 그리곤 부조돈도 톡톡히 내고 머리를 조아리고 "내키지 않은 절을 하기"가 기수부지였다... 그럴때마다 이 詩지기는 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떠올리군 했었다... 왜?... 그것은 당당한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또한 아들로서 나의 아버님, 나의 어머님에 대하여 회갑축사, 추도사를 만장같이 써드리지 못한 회한의 끝자락이였기 때문이였다. 하여 "아버님"과 "어머님"에 관련된 시를 쓰려고 무등 오랜 시간을 삭혔었다. 그것은 수많은 고금중외 작가, 시인들이 "어머님"에 대하여 시를 너무나 많이 썼고 쓰고 있었는데, 그 모두가 편편 천평대등소유적인것이여서 나로서는 무척 거부감이 억척같았었다. 그리고 "아버님"에 대한 시는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그것마저도 별 "볼거리"가 없었었다... 저 세상으로 간 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거룩같이 표현하려면 남들의 답습을 꼭 회피해야 한다고, 이 세상에 詩지기만의 "시"를 써야한다고 고민, 고민하고 연금하던 끝에 잉태한 졸시가 "새벽"과 "하늘"인것이다. 그외 시는 불확실한 시대에 효(孝)문화가 썩어가고 있고 또한 사라져가고 있는 이때, 저 세상으로 간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이 불효자인 詩지기가 늦게나마 두무릎 꿇고 드리는 "獻詩"이며 "축사"이며 또한, "추도사"임을 이실직고하고싶다... 아버님ㅡ, 어머님ㅡ, 오늘도 이 불효자인 詩지기는 꺼이꺼이 울고 있쑤꾸매... 아범... 어멈...                                                       ㅡ 섣부리 잠못드는 그믐께 죽림으로부터.    
7971    벗님네들, 시지기 竹林은 지금도 "시음병"으로 앓고 있다... 댓글:  조회:185  추천:0  2024-07-06
ㅡㅡㅡ김룡운(평론가) 2015년 02월 02일 12시 02분  조회:3913   작성자: 죽림   《시음병자》와 그의 시적그라프                                                                         김룡운 (평론가)           1. 김승종 – 그는 누구인가   한권의 책을 읽고 난 후이면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러한 물음은 책이 주는 감흥의 대소에 따라 순간에 머물을수도 있고 오래 지속될수도 있다. 요즈음 젊은 시인 김승종이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R와 일회용 삶》 이라는 첫시집을 펴냈고 이제 곧 그의 시의 가치를 점검해보는 세미나가 열리게 된다. 지금 필자는 김승종시인한테길다란 물음표를 던져본다. 김승종 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 시인을 알아보는 첩경이 아마도 시집의 표지풀이와 시인의 고백, 그리고 시집의 뒤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시 《시음병자와 얄미운 시란 놈과 그 잠언(1, 2)》 일것 같다. 우선 시집의 표제를 보면 대단히 아이니컬하고 유머적이고 신선한데 우리 시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흡인력이 있고 함축된 표제이다. 《보리》를 곡식으로 보면 그것은 말등에 속하는것으로 《보리》에는 주위환경과의 소외감이나 괴리감으로부터 오는 고독과 불안 내지 대항적에토스가 역설적으로 담겨져 있다. 가령 《보리》를 불교에서의 정각(正覺)을 깨치는 길로 나아가는 《보리》(菩提)로 읽는다면 륙진(六塵)을 떠나 오직 시만을 안고 깨끗하게 마음을 비우고 륙근청정(六根淸淨)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정화된 삶이 체현될것이다. 하여튼 남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자는 삶의 신조가 명징(明徵)한것만은 사실이다. 《등록되잖은R와 일회용 삶》은 《보리》에 대한 전개나 확산이라고 볼수 있겠다. 《등록되잖은R》일진대 그는 《호적》에서 언녕 버려진 존재, 그 가치를 무시당했거나 확인받지 못한《하찮은》 민초(民草)로서의 인간일것이다. 김승종의 시가 무척 아방가르드적이고 파괴적이며 스트레스가 많은 원인이 주로 그 버려진 존재, 무시당하는 존재로부터 유발되는것이며 시의 원광(圓光)도 거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일회용 삶》은 유한한 생명을 가치있게 뜻있게 살겠다는 시인의 생명선언으로 들리고 또 고귀한 삶에 대한 역설로도 안겨든다. 시인은 《나오는 말》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포지에(Poesie)=시를 탁마하는 길은 나로 하여금 시인이 되기 먼저 인간이 되게끔 늘 건곤(乾坤)이 타일러 주었으며 또 타일러 주고 있습니다.》《시를 쓴다는것은 자기의 생애를 걸고 벼랑길을 걷는 모험이라고 할가, 자기의 피를 빨아 먹으며 자기의 살점을 뜯어 먹으며 자기의 뼈를 갉아 먹으면서 일체를 분쇄하는 길임을 말하고싶습니다.》 시인은 또 자신을 《고행의 길ㅡ시의 길에서 계속 뛰고 뛸 시음병자(詩淫病者)》라고 자칭한다. 시음병자란 곧 시에 미친 사람이다. 사실 진정한 시인이 되자면 미쳐야 한다. 머콜리는 말한다. 《아무도 정신에 이상이 없으면 시인이 될수도 시를 즐길수도 없을것이다.》 김승종은 바로시에 미친 시음병자이기때문에 《자기의 피를 빨아 먹고 자기의 살점을 뜯어 먹으며 자기의 뼈를 갉아 먹으면서 일체를 분쇄하는 길》을 톺아 갈수있고 《살기가 숨이 찬 세상이지만 빈 항아리에 꽃꿈을 가득가득 채우》는 작업을 힘차게 할수 있는것이며 《그림자와 어둠이 때묻지 않은 찬란한 새벽을 찾》아 흔들림없이 전진할수 있는것이다. 《나오는 말》에서 삶의 신조를 피력했다면 《시음병자와 얄미운 시란 놈과 그 잠언》(1)과(2)에서는 미학주장을 극명(極明)하게 추켜들고 있다. 《시란 물리적변화보다 화학적반응의 가치조합이며 고독의 산물이며 신토불이(身土不二)이며 ∙∙∙훌륭히 잘못 말하기이며 완강한 부정이며 잘못의 가장 매력적인 꽃입니다.》 김승종의 시적주장중에서 특히 주목되는것은《화학반응의 가치조합》,《훌륭히 잘못 말하기》,《완강한 부정》,《잘못의 가장 매력적인 꽃》이다. 김승종시의 애매성과 모호성, 난해성은 바로 상술한 미학주장에서 비롯된것이다. 시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뉴크리티시즘–반실증주의에 치우치고 있으며 주의(主意)와 매체사이의 동질성에 바탕을 둔 장식적은유보다 충돌과 상반에 구조를 세운 현대시의 기능적은유에 쏠리며 역설의 론리를 내세운다. 본디 현대시는 심상들의 결탁이 아니라 결투에 의해 불꽃이 생기는것이다. 역설과 유기체설에 바탕을 둔 김승종의 미학주장은 어쩔수 없이 모험을 동반하고 기존질서를 파괴하는 《위험》한 길로 나아가게 되며 이 경우 부득불 또 《예술의 방탕아》, 《전통의 반역자》가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아래에 보리 한알로서의 김승종, 등록되잖은 R로서의 김승종, 일회용 삶으로서의 김승종, 시음병자로서의 김승종의 시적그라프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2. 파괴와 재축의 그라프   김승종은 자기의 시를 《만인에게 부치는 청승맞을 락서장》(《시음병자와 얄미운 시란놈과 그 잠언(1)》)이라고 하면서 마음껏 《락서》를 한다. 그 락서는 용기를 앞세우고 리념과 아집의 패각(貝殼)을 마스고 용감히 반란하는것으로 표현된다. 그는 우선 구조상에서 재래의 시틀을 마스고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표현방식을 재축(再築)한다. 유표한것은 음운이거나 문장부호, 수자, 도형들까지 시어의 대렬에 들어서며 그것들이 당당히 기표(記標)나 기의(記意)로 되여 의미를 창출한다는것이다. 이렇게 시어의 대렬에 들어선 음운이거나 문장부호, 수자, 도형들은 상당한 함축력을 가지면서 애매성과 모호성, 난해성의 외의를 걸치게 된다.   ①   등장인물 : ㄴ, ㄴ 시간 : 유명(幽明) 지점 : □   ②   ㄴ  : ∙∙∙∙∙∙ ㄴ : 뒤로 넘어졌다 참 아프다 ㄴ  : ~ ~ ~ ~ ㄴ : 으흐흥∙∙∙   ③   유명 두쪼각 ㄴ, ㄴ한테 빨강이 빨강이 잘도 타 죽는다           -《찬란한 대화∙27》전문   얼핏 보건대 대단히 황당하여 말그대로 한심한 《락서》같이 보이지만 조금만 품을 들여 해독하면 난해의 안개가 가셔지고 시의 몸뚱이가 우렷이 드러난다. 《ㄴ》를 남자라는 《남》자에서 ㄴ를 따온것이고 ㄴ를 녀자라는 녀자에서 ㄴ를 따오고 거기다 녀자임을 분명히 밝혀주기 위해 동그라미를 더 씌웠다고 생각해보면 짧은 드라마를 련상케 하는 이 시에서 시적주인공이 어떤 남자와 어떤 녀자라는것이 드러난다. 시간을 나타내는 유명(幽明)의 본뜻은 어두움과 밝음이지만 《유》를 음(陰)으로 상징되는 녀자로 《명》을 양(陽)으로 상징되는 남자라고 생각하면 시간속에도 남녀가 함께 용해되여 있어 무척이나 재미있다. 《□》는 그 어떤 가상적인 공간이라고 할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부호투성이의 시는 남녀사랑의 극치를 썼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 시에서 남자는 수동적이여서 그 행위란 다만 침묵을 나타내는 생략부호《∙∙∙ ∙∙∙》와 흥분상태를 지시하는 물결표 《~ ~ ~ ~》밖에 없다. 남자가 녀자한테당한다. 남자는 다만 녀자의 몸에 익어서 《빨강이 빨강이》 타죽을뿐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대남자주의의 파산도 곁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우문우답》은 순 수자로 만들어진 괴상한 시다. 표제 자체부터 조소, 유머와 풍자가 내비치고 있다. 표제는 어리석은 물음(愚問)에는 어리석은 답(愚答)을 주어야 하느니라의 뜻으로서진리를 직시하는 자의 랭소어린 훈계라고 볼수 있다.   3+8=11 3-8=-5 3×8=24 3÷8=0.375 … 38- 《×》(그름)   3+8=1 3-8=1 3×8=1 3÷8=1 … 38- 《0》(옳음)   참, 내탓! -《우문우답(12)》전문   19세기 프랑스 상징파의 거두시인의 하나이며 반역정신으로 충일(充溢)된 시만을 주로 써왔던 랭보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 《시인은 모든 감각들을 막대히, 오래, 신중하게, 대폭 교란시킴으로써 자신을 환상가로 만든다.》 《우문우답(12)》은 수자들의 요란스런 장난으로 정상적인 사유를 대폭 교란시킴으로써 기존시의 표현방식에 반기를 든다. 첫련은 분명히 진리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틀렸다고 가위다리표(×)를 치고 두번째련은 확실히 황당함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동그라미표(0)를 쳐준다. 세번째련의 《참, 내탓!》이라는 반어는 뒤죽박죽이 된 시비가름에 대해 던지는 시적화자의 분격이고 쓰거운 랭소이다. 김승종시인은 남들과 다른 구조를 짜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는것 같다. 수자로 된 이런 《장난》기 어린 시도 과연 시호적에 넣을수 있겠는가. 필자의 대답은 《있다!》이다. 모호성과 애매성도 그로서의 음미의 가치가 따로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순 수자나 부호로 만드는것과 같은 시들은 널리 추광할바는 못되고 실험용으로 가끔씩 써보는것은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시에서 원래는 더 《교란》시키고 더 《장난》질을 할수도 있었겠는데 시인은 그만 지쳐버렸던지 아니면 참지 못하였던지 진술한테 기대이고 말았다. 《×》를 쳤으면 《그름》이란 설명은필요없는것이고 《0》를 쳤으면 《옳다》는 설명은 필요없는데 혹처럼 《그름》과 《옳음》을 가첨하여 놓았다. 《새벽 한자락》역시 형식미의 탐구가 력력히 보이는 시다. 시인은 곧은 지팽이를 핍진하게 형상화하기 위해 한글자를 한행으로 하나의 종선-지팽이를 세워놓는다. 지팽이는 그 어떤 목적이나 기대, 욕구나 희망일수도 있고 더 추상적으로 말하면 인생행로라고도 할수 있다. 왜냐하면 지팽이는 길과 련계되여 있기때문이다. 아무튼 지금 개미 한마리가 우로 기여 오른다. 그 어떤 목표를 위해 가파른 인생길을 열심히 열심히 톺아 오른다. 우리는 개미를 주어진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인생을 영위해가는 민초의 형상이라고 볼수 있다.   개미 한마리가 지팽이끝으로 향해 기여오른다.   오 르 고 오 르 고 또 올 라 도 교의 (交椅)는 없다 -《새벽 한자락》일부   그러나 간신히 오르고 보니 자기가 앉을 자리가 없다. 희망은 무산되고 목적은 궤멸된다. 개미는 각성한다. 각성한 개미는 《새벽 한자락》을 주어가지고 도로 지팽이에서 뛰여 내린다. 시인은 허영과 라태가 아니라 분투와 각고를 통해서 얻은것만이 값진 삶이고 의의있는 삶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새벽 한자락》이야말로 아름답고도 싱싱한 미래다. 시인은 오를 때의 동작과 마찬가지로 내릴 때의 속도와 동작을 핍진하게 보여 주기 위해 시 마지막에도 한글자를 한행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떨어짐의 련속성을 암시하기 위해 점 세개를 찍어놓고 있다. 그 점도 시에 기호로 들어온 이상 기표와 기의를 갖는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외도 김승종의 시에는 기성표현방식을 허물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시틀을 재축하려고 꾀한 시들이 적지 않다. 김승종시인은 자신에게만 속하는 특유의 틀을 만들었지만 틀이 새로운데반해 그안에 든 물건은 그리 풍부하지 못해 퍼그나 유감을 주는것 같다.   3. 풍자와 유머그라프   김승종의 시에 사랑시, 풍물시, 애향시, 민족우환시 등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강렬한 비판을 기저에 깔고있는 풍자, 유머의 스찔이 주조(主潮)를 이룬다. 글머리에서 잠간 살펴봤지만 그의미학주장이 바로 《훌륭히 잘못 말하기이며 완강한 부정이며 잘못의 가장 매력적인 꽃》일진대 이러한 시인의 가슴에서 만들어지는 시가 어찌 부드럽고 잔잔하고 공순하고 착할수가 있겠는가. 노하고 비웃고 울부짖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하물며 《뒤틀린 성미가 현대문학의 시신(詩神)》임에랴. 김승종은 인간의 실재와 부재사이를 오가는 중에 어둠과 밝음에 회의를 품고 공허와 고독을 체험하기도 하고 등록되지 않은 삶에 고통과 분개를 풀기도 하며 거기로부터 패라독소가 흘러나오고 종당엔 시의 불꽃으로 튕겨나와 풍자와 유머로 시를 빚어 《빈 항아리에 꽃꿈을 가득가득》채운다. 김승종이 다루고있는 풍자와 유머는 침울하고 고통스런 내향적인 분위기보다도 통쾌하고 우락부락하고 외향적인 기분이 다분하다. 먼저 부제가 《슬픔의 저목장(2)》이라고 달린 《모두들 안녕하시우》를 보기로 하자. 이 시는 람벌로 인한 삼림의 파괴, 록색생명의 훼멸을 폭로비판한 시다. 시인의 눈길은 저목장에 와서 머문다. 시에 의인화하여 등장하는 버빡골 할배, 수영재골 할배, 다랑골 할매, 상공당 할매… 등등은 조난당한 나무들의 추상화된 이름이다. 람벌로 삼림은 심하게 황페화되였지만 저목장은 풍요로운 공동묘지로 된다. 시인은 이런 살풍경을 보고 서러워할 대신 능청스럽게 《모두들 안녕하시우》라고 너스레를 떨며 인사수작을 한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모두들 안녕하시우   침묵 침묵 침묵 침묵 … 저목장 슬픔의 저목장 그곳은 공동묘지였소 -으핫핫… -으힛힛… 그리워지는 《록색교향곡》이여 … 모두들 안녕하시우 -《모두들 안녕하시우》의 일부 무수한 《시체》들을 앞에 놓고 부르고 웨치는 애절한 초혼이요, 장중한 추도곡이요, 강렬한 분노의 절규다. 죽어가는 자연앞에서 록색교향곡을 사뭇 그리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부르고웨치는 초혼이요, 추도곡이요, 절규다. 초혼과 장송곡과 질타를 일축하여 아닌 보살하고 능청스럽게 《모두들 안녕하시우》라고 위트적인 인사를 하는 여기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모두들안녕하시우》를 더 실감나게 살펴주는것이 《-으핫핫》《-으힛힛》이라는 웃음소리다. 이 웃음소리가 있음으로 하여 풍자가 더 풍자다워지고 유머가 더 유머답게 되였다. 여섯번씩이나 반복되는 《모두들 안녕하시우》는 이 시에 커다란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의 영탄조(1)》은 모두들 떠나버리고 텅 비여버린 농촌의 피폐상을 풍자비판한 시다.   《좋겠스꾸마》고향은-       반디불과            모기떼와                 하루살이와          핫- 넋 잃고 굼닐어서…   《좋겠스꾸마》고향은-        호접은           꿀벌은               해빛은           핫- 삭막하고 정(情) 휘발돼…   《좋겠스꾸마》고향은-             나리꽃들이                  들깨꽃들이                      달맞이꽃들이                 핫- 꾸겨진 령혼으로 떠나버려…   《참, 좋겠스꾸마》고향은!…   시골풍경을 시골풍경답게 만들어주던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든것들-호접, 꿀벌, 해빛 그리고 각가지 꽃이 모두 떠나버렸기에 시골은 삭막하고 피폐하고 남은것이란 반디불과 모기와 하루살이들뿐이다. 하지만 시적주인공은 이 모든것을 모르는척 하면서 한켠에 비켜서서 《참, 좋겠스꾸마》라고 익살조의 인사를 던진다. 《모두들 안녕하시우》가 《모두들 얼마나 괴롭겠수》라고 되는것처럼 여기서 《참,  좋겠스꾸마》는 《참, 괴롭겠스꾸마》의 패라독스로 된다. 《핫》하는 기막힌 웃음소리는 역시 한심한 시골정경에 대한 한탄의 소리로 울린다. 《좋다》타령은 21행으로 된 시인데 행마다 《좋다》로 끝난다. 여기서 몇행만 간추려보기로 한다.   ① 붉은 《+》집에서도 도살장 돼 좋다. ② 《OK》에도 근드리 웃음 팔아 좋다. ③ 명작들이 거미줄에 생포로 돼 얼씨구 좋다. ④ 《아이들을 구하라!》좋다.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나쁜 현상들을 일일이 라렬시켜 놓고는 뒤에다 좋다는 딱지를 붙힌다. 결국은 《나쁘다》는것의 반의어이다. 모든 행이 반어적표현으로 된 이 시에서 다만 진즉진(眞卽眞)으로 된것은 《좋다》뿐이다. 시인의 의도는 명백하다. 구겨지고 녹쓸고 곰팽이 낀 일체 페단을 조속히 없애버려야만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는것이다. 아이들은 곧 미래가 아닌가. 이외 시인 김승종은 지루할 정도의 반복법으로 여러 편의 시들에서 풍자와 유머의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를테면   적색의 쥐들이다. 등색의 쥐들이다. 황색의 쥐들이다. 록색의 쥐들이다. 청색의 쥐들이다. 남색의 쥐들이다. 자색의 쥐들이다. … -《력사, 쥐, 그리고…》의 일부   우에서도 잠간 나왔지만 김승종은 또 그 특유의 감탄사 《으핫핫》, 《으힛힛》, 《아아아》,《오오오》,《히히히》,《핫》,《후유》등으로 유독 그만이 창출할수 있는 유머나 풍자를 만들며 또 기지나 위트적인 언어로 특색이 있는 풍자나 유머를 만들기도 한다.   없어도 없는체 아니하다 있어도 있는체 아니하다 알아도 아는체 아니하다 몰라도 모르는체 아니하다 -《영탄조》의 일부   오해 아닌 최대의 최대의 오해 아니다 시비 아닌 최대의 최대의 시비 아니다.        -《봄우뢰, 골짜기 및 메우기》일부   이런 언어유희기법은 우리 시단에서 그리 흔치 않은줄로 안다. 언어유희는 단지 수단으로 될 때는 그저 장난에 그치고 말지만 그것이 목적으로 씌일 때는 커다란 파워를 발휘한다. 생각컨대 김승종의 유희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 사용된것 같다.   4. 남기는 말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우리는 《시음병자》로서의 인간 김승종시인과 그의 미학관과 그의 시가 그리고있는 《파괴와 재축의 그라프》, 《풍자와 유머그라프》를 간추려 보았다. 모두어말하면 그는 개성이 있는 시인이며 재능이 있는 시인이다. 그는 삶을 투철하게 꿰뚫어볼줄 알며 비교적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내다본다. 그는 아방가르드적인 기질로 모든것을 뜯어고치려고 한다. 그의 시는 절반쯤은 모더니즘 내지 쉐르알리즘에 치우친다. 최룡관시인은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R와 일회용 삶》의 발문에서 김승종을 일컬어 《한국의 이상시인을 떠올리는 그런 스찔이 매우 다분하다》고 말했는데 필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아직 명실공한 현대파시인으로 되자면 거리가 멀다.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그의 시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융합상태에 있다. 물론 우세는 모더니즘이다. 그의 시에는 제대로 씌여지지 못한 리얼리즘시들도 적지 않다. 필자는 결코 리얼리즘시를 배제하지 않는다. 잘된것이라면 무슨 시도 좋다. 김승종의 시들중에서 《하얀 넋》,《시골운동장에서》,《입에 대한 생각》,《나는 하얀 두만강물새》등 거의 20여수를 헤아리는 시들은 잘되지 못한 리얼리즘시들이다. 이런 시들은 장식적은유에 머무르고 있을뿐 기능적은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입에 대한 생각》은 아무런 감명도 주지 못한다. 설명식 산문을 시행으로 갈라놓은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시가 이렇게 된데는 서로 밀고 당기고 역동적인 힘들의 힘겨운 결투와 화합이 없고 표면 장력이 미약하기때문이다. 김승종시인의 시들은 또 시원한 스트레스로서는 훌륭하나 삶의 근원적인 모습과 인간의 본연을 파헤치는데서는 손색이 보이며 로맨틱한 필치는 능란하나 장중미가 결여한듯 싶다. 그 원인은 주로 우리 허다한 시인들이 공동으로 안고있는 병집인 철학적사고의 옅음에 있는것 같다. 코울리지는 《신오한 철학자가 아니면서 위대한 시인이 된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문학가에게 있어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단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다. 금후 이면에서 더 각고하길 희망한다. 이러나 저러나간에 김승종시인은 현대파의 기치를 높이 추켜든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시의 반역자》중의 한사람이다. 순리(順理)보다도 역리(逆理)속에서 새로운 무엇을 탐구하려는 시인이 많이 나올수록 우리 시단은 번창할것이고 우리 시의 래일도 창창할것이다. 김승종시인이 금후 가파로운 시의 벼랑길을 톺아가는 와중에 더욱 알찬 시들을 만들면서 자신의 시의 그라프를 더욱 멋지게 그리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7970    詩~~~ "새벽", "하늘"...(길림신문, 2024.5.16) 댓글:  조회:207  추천:0  2024-06-28
          2024年05月16日 星期四     2024.05.16. 第03版:부간                             [시] 새벽(외1수)   김승종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남들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만번 수천만번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자신을 위한 종을 단 한번도 아니 치시고 아니 치시고 가셨소이다…   어—머—님—     하늘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남들을 위한 하늘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수만자락 성스럽게 성스러이 펼쳐주셨소이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자신을 위한 하늘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아니 갖고 가셨소이다…   아—버—님—  
{시지기ㅡ죽림 김승종의 들숨과 날숨...} 본관: 김해(金海) 김씨(金氏) 삼현파(三賢派) 익조패(반석패?). 조부: 김해 김씨 김유익(金儒益), (익[益]자 돌임), (할아버지는 7세 때, 증조할아버지 등에 업혀서 두만강을 건너 만주땅 죽림툰으로 정착...) 조모: 해주(海州) 최(崔)씨 부친: 김해 김씨 김홍영(金洪英 1924년생), (홍[洪]자 돌임).  모친: 파평(坡坪) 윤씨 윤금자(尹今子 철산, 1926년생) 형제들: 누님- 김후남(金後男), (종[鐘]자 돌임).          맏 형님- 김갑종(金甲鐘)          둘째 형님- 김명종(金明鐘)             막내- 김승종(金勝鐘) ============================================================================= 성명: 김승종(金勝鐘) 아호: 죽림(竹林) 적관: 중국 길림성 연변 화룡현 로과향 죽림촌(和龍縣 蘆菓鄕 竹林村).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화룡시 복동진 소학교 교원 근무. 1987년부터 2005년 2월까지, 화룡시농촌신용련합사 근무. 2007년말부터 2018년도까지 한국 나드리. 2018년도부터 현재 진행형 들숨날숨...   1,-   1979년도(고중시절), 문학써클 조직, "새싹" 등사본 작문지 발간(증명인; 시인 최룡관, 연변대학 일어학부 교수 김학천 고중동창생, 연길 동산학교 교원 박옥자 고중동창생, 동화작가 故 허충남, 소설가 故 허봉남, 우화작가 허두남). 1984년도(교원시절), 동북3성 "새별"문학사 설립, 초창 맨버 활동.(증명인; 국제방송국 기자 김호림, 길림신문사 기자 김태국, 훈춘방송국 박초란 소설가, 김재호 기독교인). 1987년도~1991도(금융시절), 화룡시 투도, 룡수평, 동성, 룡문 등지 중심 "평강벌문우회" 설립, 조직 활동, 등사본 "평강벌"문학지 발행.(증명인; 소설가 정세봉, 시인 故 현규동, 소설가 故 차룡순, 소설가 故 박은, 소설가 故 하태렬, 소설가 김영자, 김춘일 문학도).  1991년도~1994년도(금융시절), 화룡시 덕화지역 남평 중심 "두만강문우회" (증명인; 시인 최룡관, 동화작가 故 허충남, 시인 故 신창수, 시인 김영건, 시인 허동혁) 설립, 조직 활동. 화룡시문화관 조직, 주관 "천리봉'문학사" 우수회원.(증명인; 시인 故 현규동,시인 故 김문회, 시인 리근영, 소설가 故 하태렬, 작사가 한동해, 복동진 장재소학교 교원 김신숙).  "연변문학", "장백산" 잡지 조직 "개간지"부간(김응룡 시인, 홍천룡 소설가), "장백산"부간(남영전 시인) 문학강습. 연변작가협회 문학원 제2기 문학강습반 수료(증명인; 연변대학 박사 김관웅, 시인, 랑송가 송미자, 문화인 디자인너, 작가 김춘택). "연변문학" 잡지 발행사업 화룡지역 포섭 일조함.(증명인; 시인 김응룡, 소설가 홍천룡, 소설가 류흥식, 시인 리근영). 연변인민출판사 문예부 "별나라" 잡지 발행사업 포섭 일조함.(증명인; 편집, 주필, 시인 김현순, 소설가 량영철, 시인 한영남).   1994년도부터 화룡시청년시회 회장 력임(증명인; 료녕조선문보사 부주필, 시인 故 김룡호, 강소성 무석과학기술대학 한국어과 교수 시인 황춘옥, 리근영 시인, 김영저 소설가). 1988년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증인; 회장 성기조 시인, 홍용암 동시인). 1998년 6월 26일, 연변작가협회 회원(증명인;최룡관 시인, 故 현규동 시인).   2007년도부터~2023년도말까지, 연변작가협회 제8기리사단 리사(시가창작위원회, 증인; 최룡관 시인, 김영건 시인, 림금산 시인, 박장길 시인).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화룡시작가협회 주석 력임(증명인; 전임 화룡시문화예술련합회 주석 류재학, 소설가 김영자, 전임 화룡작가협회 주석, 작가 안수복 현임 화룡작가협회 주석). 시작가협회 주석 담임 시, 후비작가력량 중시(례켠대, 현재 문단 활약 작가들- 량영철, 구호준, 안수복, 김호식, 전광훈, 양용철 등등). 2002년 2월호, "문학과예술" 잡지(연변사화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김승종시작품세미나특집(증인; 故 전성호 평론가)등재.  시평론 목록;ㅡ ㄱ, "김승종시의 모지름과 해체작업 그리고 가치(최삼룡)", ㄴ, "초사실적인 추상예술의 가능성(한춘)", ㄷ, "우리 시단에 던진 새로운 충격(최룡관)", ㄹ, "'시음병자'와 그의 시적 그라프(김룡운)", ㅁ, "'류행따르기'와 '전통지키기'(김관웅)". 화룡시문화예술계련합회 주관지 "청산리"잡지(증명인; 전임 주석 류재학 촬영가, 소설가 김영자, 시인 허옥진) 시편집 담당. "청산리"잡지 제호 건의, 제의, 통과, 사용, 발행. 전주 문화예술계 대호평. "동북아신문" 주관 "재한동포문인협회(시분과 초대부장 담당)설립, 초창 맨버,  "동포문학" 동인지 제호 건의, 제의, 현재 "동포문학" 제호 사용 중(증명인; "동북아신문" 대표, 소설가 리동렬, 시인 김추월, 소설가 강호원). 2005년(닭해) 6월 22일, 교통사고 비장(지라) 파렬 체취 대수술(룡정시병원). 2005년 9월 15일, 중국소수민족작가연구중심(내몽고사범대학 內 중국소수민족문학관) 제막식 참가(증명인; 장백산 잡지 주필, 사장 남영전 시인, 고 박성군 소설가, 몽고 작가 마라친부 시인, 몽고 작가 터 싸이얼 교수 평론가). 2013년도 하계(夏季)전국작가내몽고참관방문단 일행 참석(증명인; 길림신문 박문희 부주필, 시인).   2011년도, "두동네 회색 카니발" 동인지 시집 출간 시 한화 300만(그 당시 인민페 2만) 출판경비 사비지원(증명인; 시인 최룡관, 시인 故 한춘). 연변작가협회 시분과 주관, 본시집출판기념회 및 시세미나 조직, 진행(증명인; 시인 김영건, 시인 림금산).  2011년도~2017년도, 대한민국 경상북도 도청(성정부 해당), 경상북도 안동시 시청(시정부 해당), 안동간고등어주식회사, 안동리륙사문학관, 안동병원 등등 기관, 단체 근 3년반기간 설복, 설득, 취득, 유치 성공. 연변작가협회(증명인; 전 주석 소설가 최국철, 전 련락부 주임 소설가 우광훈, 작협 재무과), 연변대학(증명인; 박사, 평론가 김호웅, 박사 평론가 故 우상렬) 주체, 주관. "중국조선족리육사문학제" 만 7년동안("사드문제" 후 단절) 해마다 유치활동경비 한화 천만씩, 그후 한화 천이백만씩 입금(재무관계 일절 불관여, 유치비 일절 사절), 유치, 조직, 진행(증명인; 작협 재무과, 한국 경상북도 안동이육사문학관 조영일 관장, 시인, 독립운동가 이육사 무남독녀 이옥비 녀사).    평백성으로서 량심이 있고 뼈와 주대가 있는 문학인으로서, 우리 작가후비력량 대오가 끊힌다는 량심적인 각도에서 적수공권으로 신임 하나로 당당하게 우리 당정기관 산하인 연변작가협회에 그것도 "연변"이란 이름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타이틀을 붙혀서 전 중국 조선족대학생(조선어를 배우고 조선어로 글짓기를 하는 타민족 포함)들을 아우러 문학축제를 유치하여 진행하게끔 한 유일무일한 장본인.  처음부터 한시도 드팀없이 유치비 사절했으며, 당정기관 관방에서 주체, 주관하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대학을 선호했음. 중국 연변작가협회와 안동병원 제휴. 생활난, 병사경력자, 작가 무료건강검진 유치. 첫회 안도현 김일량 시인 출국, 무료검진 진행 성공.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예미정" 内 "시지기 죽림" 诗轩房(증명인: 한국 안동 예미정 권동순 고문, 조일호 사장, 오상길 사장)있음. 중국 연변왕달무역회사와 한국 안동간고등어회사 제휴, 룡정왕달간고등어회사 유치(증명인; 한국 "매일신문" 기자 권동순 북부 본부장, "조선일보" 기자 권광순, 법인대표 김봉운 총경리), 공로상 수상. 2015년부터 "조선족네트워그(조글로)"에서 "시지기-죽림" 대형 블로그 설치, 문학, 문화, 예술 등등 창달(현재 2021년도말까지 7천건 곱셈하기 3 = 2만여건 게재, 증명인; 김삼 대표, 문야 기자).   2017년도후 현재, 룡정윤동주연구회(초창 설립 맨버 중 일원, 증명인; 소설가 김혁, 교수, 박사, 평론가 리광일) 리사, "용두레"독서회 리사(증명인; 소설가 김혁, 시인 심명주) 맹활약. 2013년 8월, 중국소수민족문학관(내몽고사범대학 내)에 고서적- 의서 한질, 목판화 "고구려 수렵도" 한매, 기타 자료 기증(증명인; 내몽고사범대 박사도사, 평론가, 몽고족 작가 故 터싸음바야얼 전 관장, 몽고족 임언 전임 관장). 2024년 1월-3월, 중국소수민족문학관에 열두번에 걸쳐 大量 귀중한 자료 기증(증명인; 임언 전임 관장, 화옥 현임 관장). 2019년도, 도서 8백여권 룡정시도서관 무료증정,  2019년도, 2천원 가치 사물놀이 두매, 기타 자료 장춘 단군문학회(증명인; 신봉철 회장, 엄철인 사무국장) 무료증정.  2013년 12월, 서장자치구, 내몽고자치구, 신강위글족자치구, 연변림업국 등 과학기술 조림처에 시험용 은행나무 종자를 각각 보내줌(증명인; 동창생 김학천 연변대학 일어학부 교수). 2013년 1월, 7월과 2024년 3월, 서장자치구 인민정부 인구및계획생육위원회 복리처에 구호물품 네차례 보내줌(증명인; 복리처 처장 국길國吉, 동창생 손하준).  40여년동안 문학생애에서 애지중지 마련했던 "보물"들인 도서(큰마대로 열다섯마대)와 우표 한상자, 문학상장꾸레미 등을 몰상식한 인간들의 무지로 인해 페기처분 되여 "술값"으로 전락된 통탄 할 "문단유사"가 발생했음...!!!(증명인; 원 화룡시농업은행 부행장 최태산, 원 화룡시인민은행 발행과 과장 김후남, 큰형님 김갑종, 둘째 형님 김명종).   2,-   시집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와 일회용 삶", (200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시집 "보리깜부기와 구혼광고와 흰 그림자의 삶", (2005년도, 화룡시문련, 화룡시작가협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동인지 시집 "두 동네 은회색카니발(공편저)",  (201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동인지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시론저 "시천하루밤과 시작노트와 시지기 삶"(2013년도 출판). @@ 시집 "우물 일곱개였던 마을"ㅡ (2016년도, 제20회 "연변정지용문학상"수상시집, 중국 연변작가협회 주최, 대한민국 옥청군 군청, 옥청문화원 후원, 연변대학 예술홀에서 수상식 개최). 시집 "윤동주 시와 竹林 담시노트" (2024년 7월 13일, 룡정*윤동주연구회 주최, 본시집 출간기념회를 연구회 사무실[윤동주 옛자택, 윤동주 장례식 자리]에서 진행). 시집 "어머네와 아부제"(2024년 7월 한국 학술정보 출판사 출판). 연변음악가협회 아동가요 우수상, 연변주문련 "선경대컵"가곡창작 은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두만강여울소리" 시우수상,  연변작가협회 인터넷 문학상(2013년도), 연변일보 해란강 문학상(2013년도), 제20회 "연변정지용문학상"(2016년도), "중국조선족대학생리육사문학제" 유치 연변작가협회 공로상(2016년도), 대한민국 세계계관시인문학회 시본상(1998년도) 수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리육사문학관 공로상(2016년도) 수상, 중공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주최 제9회 "진달래문예상(2020년도 9월 29일)" (시집 "우물 일곱개였던 마을")수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도청(성정부 해당됨), 경북일보사 주최, "중국조선족포항호미곶문학상"(2021년도) 수상. "송화강"잡지 시상상문학상(2022년도)수상. 대표작: 시 "새벽", "하늘", "무루의 한극(고중교과서 필독서3 등고)" 등...   3,-   자유기고인... 조선민족작가로서 화룡시작가협회 산하와 및 기타 지역의 문학사업촉진발전에 40여년래 큰 공헌, "화룡 문화의 별" 수상.   4,-   版本图书馆CIP数据核字 认定 시집, 론저;- 2001년도, 시집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와 일회용 삶(17만자)" (ISBN 7-80648-679-8/I.198), CIP (2001) 第074395字, 연변인민출판사 출판. 2005년도, 시집 "보리 깜부기와 '구혼광고'와 흰 그림자의 삶(15만자)" (ISBN 89-5800-031-7.03810), 대한민국 도서출판 신세림 출판, 등록번호: 제2-1298호. 2013년도, 시론저 "시천하루밤과 시작노트와 시지기 삶(30만자)"(ISBN 97-8962-883-4. 46623>), 홍콩 파랑새출판주식회사 출판, (港) 第1203-NO28字.  2016년도, 정지용문학상 수상 시집 "우물 일곱개였던 마을(16만자)" (ISBN 978-7-5449-4841-8), CIP (2016) 第208072字, 연변인민출판사 출판.  2008년도부터 현재까지, 연변교육출판사(ISBN 2008 978-7-5437-6996-0) (民课)출판, 중국 조선족고급중학교교과서 조선어문(고중 3학년 필수 3) 제4단원: 자연과 인류, 제25과 "무루의 극" 생태시 련속 게재됨. 2024년도 7월, 시집 "윤동주 시와 竹林 담시노트(60만자)" (ISBN 979-11-7217-424-8 03810), 한국학술정보사 출판, 등록 제일산-115호(2000.6.19). 2024년도 7월, 시집 "어머네와 아부제(30맘자)" (ISBN 979-11-7217-423-3 03810), 한국학술정보사 출판, 등록 제일산-115호(2000.6.19). 현재까지 문학작품 발표 180여만자수. 중국 중앙도서관, 중국소수민족문학관, 청화대학도서관, 북경대학도서관, 중앙민족대학도서관, 북경사범대학도서관, 상해도서관, 천진도서관, 장춘 단군문학관, 연변도서관, 연변대학도서관,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시집박물관, 화룡도서관(고향 도서관), 룡정도서관(제2고향 도서관) 상술 출간 시집, 론저 및 귀중한 자료 상재됨. =@@= 获奖情况及重要影响 : 1987年7月获延边音乐家协会儿童歌谣优秀奖。 2004年8月获延边州艺术界联合会歌曲原创作品银奖。 2008年10月获延边作家协会诗歌创作委员会诗优秀奖。 2015年2月获延边作家协会网络诗文学奖。 2015年3月获“延边日报”海兰江文学奖。 因2013年度同人合诗集''两个村子的故事”出版时,本人筹私经费志援贰万元整人民币。 因2011年至2017年,连续7年促成延边作家协会和延边大学联合举办“中国朝鲜族大学生李陆史文学节”,于2016年12月获功劳奖。 2016年9月获延边作家协会第20届郑芝溶文学奖。 2020年9月延邊州政府 "金達來文藝奬"... 本人已发表诗歌180余万字,其中,已结集出版4本(其中2本诗集出版国外)诗集。 诗歌作品收录在中国朝鲜族高级中学校“朝鲜语文”自习读本教科书 。 诗集, 论著藏于中国中央图书馆、上海图书馆、清华大学图书馆、 中央民族大学图书馆。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 유니세프에 기부 낙찰된 노벨평화상 메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경매에 출품된 노벨평화상 메달이 1억350만 달러(약 1천336억 원)에 낙찰됐다고 AP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메달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내놓은 것으로, 이번 낙찰가는 과거 노벨상 메달 경매 최고가인 476만 달러(약 61억 4천500만 원)의 스무 배가 넘는다. 무라토프는 인터뷰에서 "이번 경매 행사에 많은 연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런 큰 금액에 낙찰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는 미국 뉴욕 헤리티지 옥션을 통해 진행됐다. 뉴욕에서 열린 무라토프의 노벨평화상 메달 경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헤리티지는 "경매 수익금은 전액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에 전달돼 전쟁으로 집을 잃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메달을 누가 낙찰받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헤리티지는 낙찰자는 대리인을 통해 경매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헤리티지 대변인은 "1억350만 달러는 1억 스위스 프랑과 같다"고 언급, 낙찰자가 미국 외 거주자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이 23캐럿의 메달을 녹이면 175g의 금덩어리가 되는데, 이는 시가로 1만달러(1천290만원)에 불과하다고 AP는 전했다. 무라토프는 지난해 10월 언론 탄압에 맞선 공로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탔다. 그는 1993년 4월 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의 자금 지원으로 '새로운 신문'이라는 뜻을 지닌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가 러시아 당국의 처벌 위협 속에 올해 3월 폐간했다. 무라토프 기자의 노벨평화상 수상(2021.12.10)                     영상 기사02:01 [영상] 수단분쟁 닷새째…3번째 휴전합의 또 깨지고 무력 충돌 계속 영상 기사02:05 [영상] 구호품 받으려던 군중 몰려…예멘 압사 사고로 최소 78명 사망 영상 기사01:51 [영상] 코미디언 서세원, 캄보디아서 별세…향년 67세 영상 기사02:07 [영상]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대선출마…가문은 바이든 지지 영상 기사01:43 [영상] 세상 등진 25세 아스트로 문빈…라이브방송서 "좀 힘들었었어요" 영상 기사02:55 [영상] '약자와의 동행'은 언제쯤…'장애인의 날'에도 지하철 시위 영상 기사02:01 [영상] 수단분쟁 닷새째…3번째 휴전합의 또 깨지고 무력 충돌 계속 영상 기사02:05 [영상] 구호품 받으려던 군중 몰려…예멘 압사 사고로 최소 78명 사망 영영상 기사       핫뉴스 [삶] "나는 6살에 강남고속터미널, 누나는 7살에 서울역에 버려졌다" 반려견 패대기 친 식당 주인 입건…"과로에 술먹고 이성 잃었다"  
7967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댓글:  조회:2060  추천:0  2022-06-08
예술 속 사투리-1.박목월과 사투리詩 이채근 기자  매일신문  2021-01-29        가 가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경주에 있는 목월문학관의 박목월 생가 그림. 그의 생가는 건천읍 모량리에 있다. 시인 박목월       1.박목월과 사투리詩 일반적으로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매우 낮다. 언어예술의 전문가들이나 이러한 언어의 미묘하고 섬세한 측면에 눈을 돌릴 뿐이다. 사투리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사투리를 단순히 중심과 주변의 차이로 인식하거나 한낱 흥미 차원에서 희화화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나온 얕은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를 단지 기능적 차원에서만 다룰 수 없다. 정보와 의사 전달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정서적 울림을 전하는 주요한 수단이 언어다. 지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표준어는 기능적 측면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대로 살아온 향토민의 삶과 그 내면의 기질과 성정을 전달하려면 반드시 사투리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기실 사투리는 정신적 판단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겨울밤 '할무이'가 내오시던 배추적과 저녁상의 들깨 듬뿍 뿌린 뭇국의 맛을 어찌 사투리와 따로 떼어낼 수 있으랴. 그러므로 사투리는 향토민의 피와 살이요 호흡이라 할만하다. 일찍이 이러한 사실에 착안한 박목월 시인은 1960년대 후반 시집 '경상도 가랑잎'을 중심으로 경상도 사투리 시의 미학에 천착했다. 박목월 시인은 「사투리」라는 시에서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라고 노래했다. 나긋나긋하고 애교 넘치는 말씨로 부르는 오빠라는 말 대신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섹트로' 부르는 오라베라는 말! 이 막막하고 아득한 정서적 울림을 어찌 표준말이 감당할 수 있으랴.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박목월 시인은 초기에 민요적 리듬과 감각적 이미지로 환상적인 자연의 세계를 탐구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소소한 일상의 삶을 녹여낸 일상시 계열의 시를 거쳐 196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경상도 식 삶의 이면을 더듬는 일에 몰두했다. 많은 시인들에게 고향의 정서와 미학이 시적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투리를 외면하고 고향의 정서와 미학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경상도 사투리는 경상도 미학을 시에 담는 데 필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서 박목월 시인은 '사투리'란 작품을 통해 경상도 사투리의 맛을 시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이 작품 이후 그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자신의 시 속에 적극 활용했다. 특히 고향의 삶을 노래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의 어감과 분위기에 크게 의존했다. 그에게 고향 사투리의 예찬은 곧 고향에 대한 예찬과 그리움이 된다. 경상도 사투리는 거칠고 시끄럽다. 시인은 이를 '왁살스럽다'란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 왁살스러움 뒤에 숨겨진 혹은 그 왁살스러움 속에 들어 있는 순박하고 포근한 정서를 기린다. 굳세고 의연하나 질박하고 담박한 기질이 경상도 사람 본연의 성정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그 안에는 따스한 인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 박목월 시인은 이러한 경상도 정서를 사투리로 절묘하게 구현해냈다. 박목월의 시 중에서 사투리가 많이 활용된 작품은 '눌담', '적막한 식욕', '치모', '만술아비의 축문' 등이다. 하지만 박목월 시인의 경상도 시편의 정수는 '이별가'가 아닌가 한다. 청천벼락 같은 아우의 죽음을 맞이한 지극한 슬픔과 그 극복과정을 노래한 시다. 이 시를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는 이유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인 성조(聲調)를 활용해 동일한 시어에서 여러 감정을 전달했다는 점이다.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이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이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목월, 「이별가」 전문 이 시의 특징은 언술방식이 대화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청자가 없는 독백체이지만 단순한 독백이 아니다. 상대가 바로 눈앞에 있듯이 말을 붙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뭐락카노'와 '오냐'의 대화 반복을 통해 죽음을 수용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 '뭐락카노'는 8차례에 걸쳐 나타난다. 1연과 3연, 5연, 8연에 사용된 '뭐락카노'는 경상도 성조를 사용해 같은 단어이지만 충격적 죽음에 대한 부정, 죽음에 대한 푸념,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체념,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얻은 후 죽음을 납득하고자 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낸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단순히 사투리의 어휘나 종결형 어미를 활용해 시를 짓는데 반해 박목월 시인은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인 성조를 통해 시적 주체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좋은 문학은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밀착된 상태를 꿈꾼다. 향토성을 담은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투리만 쓴다고 향토시가 되는 일이 아니고, 향토의 풍물이나 인물을 찾아 그려낸다고 좋은 향토시가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질과 성정을 제대로 품어야 경상도 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문학의 재료인 언어와 사투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글 장옥관 시인  
796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영화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070  추천:0  2022-05-29
“영화계도 자유 위해 나서야”... 칸 영화제... “독재자는 죽고 자유는 영원… 영화는 자유의 편에 서 있을 것” 김영준 기자 2022.05.19      17일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 개막식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히틀러를 비판한 찰리 채플린처럼 오늘날의 영화계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간에 대한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는 죽을 것이요, 그들이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간 권력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독재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는 한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17일(현지 시각) 열린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 개막식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깜짝 등장했다. 특유의 국방색 상의를 입은 그는 화상 연설에서 찰리 채플린의 1940년 영화 ‘위대한 독재자’ 속 ‘최후의 연설’ 장면의 유명한 대사를 인용하며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화계의 지지를 호소했다. ‘위대한 독재자’는 채플린이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분장을 하고 나와 독일 나치 정권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히틀러에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배우 겸 코미디언 출신이기도 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치 정권을 정면 비판했던 당시의 찰리 채플린과 같이 오늘날의 영화계가 자유를 위협하는 푸틴 정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때와 같이 지금도 독재자가 있고 자유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영화계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오늘의 영화계가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새로운 채플린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승리의 결말을 보장할 영화가 필요하고, 영화는 매 순간 자유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의 힘을 강조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모든 참석자들이 기립해 박수로 화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화상 연설을 적극 활용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으며 지난달엔 미국에서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화상 연설을 했다. 그는 당시 “우크라이나의 음악인들은 턱시도 대신 방탄복을 입고 있다”며 “그들은 병원에서 부상자들을 위해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 화상 연설에선 “모든 독재 정권은 예술의 힘을 알기에 예술을 억압하려 한다”며 “예술을 통해서만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들은 러시아와 맞서 싸우는데 필요한 무기와 원조,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전쟁’을 주요 주제로 다룬다. 지난달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숨진 것으로 알려진 리투아니아 감독 만타스 크베다라비시우스의 다큐멘터리 ‘마리우폴리스2′와 벨라루스 태생의 우크라이나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다큐멘터리 ‘파괴의 자연사’ 등이 상영된다. 영화제 측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러시아 영화계의 참가를 금지했으며, ‘Z’라는 제목이 달렸던 프랑스 감독 미셸 하자니비시우스의 영화는 ‘Z’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해 ‘파이널 컷’이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출품됐다.
7965    시, 죽림, 시지기, 텁썩부리 그리고 상바보눔애... 댓글:  조회:649  추천:2  2022-05-22
                   "시지기ㅡ죽림"은 누구???... 본관: 김해 김씨 삼현파 익조패(반석패). 조부: 김해 김씨 김인익(金儒益) 조모: 해주 최(崔)씨 부친: 김해 김씨 김홍영(金洪英 1924년생)  모친: 파평 윤씨 윤금자(尹今子 철산, 1926년생) 형제들: 누님- 김후남(金後男)          맏 형님- 김갑종(金甲鐘)          둘째 형님- 김명종(金明鐘) 성명: 김승종(金勝鐘) 아호: 죽림(竹林) 적관: 중국 길림성 연변 화룡시 로과향 죽림촌(蘆菓鄕 竹林村).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화룡시 복동진 소학교 교원 근무. 1987년부터 2005년 2월까지, 화룡시농촌신용련합사 근무.   1,-   1979년도(고중시절), 문학써클 조직, "새싹" 등사본 작문지 발간(증명인; 시인 최룡관, 연변대학 일어학부 교수 김학천 고중동창생, 연길 동산학교 교원 박옥자, 동화작가 故 허충남). 1984년도(교원시절), 동북3성 "새별"문학사 설립, 초창 맨버 활동.(증명인; 국제방송국 기자 김호림, 길림신문사 기자 김태국, 훈춘방송국 박초란 소설가). 1987년도~1991도(금융시절), 화룡시 투도, 룡수평, 동성, 룡문 등지 중심 "평강벌문우회" 설립, 조직 활동, 등사본 "평강벌"문학지 발행.(증명인; 소설가 정세봉, 시인 故 현규동, 소설가 故 차룡순, 소설가 故 박은, 소설가 故 하태렬, 소설가 김영자).  1991년도~1994년도(금융시절), 화룡시 덕화지역 남평 중심 "두만강문우회" (증명인; 시인 최룡관, 동화작가 故 허충남, 시인 故 신창수, 시인 김영건, 시인 허동혁) 설립, 조직 활동. 화룡시문화관 조직, 주관 "천리봉'문학사" 우수회원.(증명인; 시인 故 현규동,시인 故 김문회, 시인 리근영, 소설가 故 하태렬, 작사가 한동해, 복동진 장재소학교 교원 김신숙).  "연변문학", "장백산" 잡지 조직 "개간지"부간, "장백산"부간 문학강습. 연변작가협회 문학원 제2기 문학강습반 수료(증명인; 연변대학 박사 김관웅, 시인, 랑송가 송미자, 문화인 디자인너, 작가 김춘택). "연변문학" 잡지 발행사업 화룡지역 포섭 일조함.(증명인; 시인 김응룡, 소설가 홍천룡, 소설가 류흥식, 시인 리근영). 연변인민출판사 문예부 "별나라" 잡지 발행사업 포섭 일조함.(증명인; 편집, 주필, 시인 김현순, 소설가 량영철, 시인 한영남).   1998년도부터 화룡시청년시회 회장 력임(증명인; 료녕조선문보사 부주필, 시인 김룡호, 강소성 무석과학기술대학 한국어과 교수 시인 황춘옥). 1988년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회장 성기조 시인). 1998년 6월 26일, 연변작가협회 회원(증명인; 최룡관 시인, 고 현규동 시인),  2007년도부터~..., 연변작가협회 제8기리사단 리사(시가창작위원회).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화룡시작가협회 주석 력임(증명인; 전임 화룡시문화예술련합회 주석 류재학, 소설가 김영자, 현임 화룡작가협회 주석, 작가 안수복). 시작가협회 주석 담임 시, 후비작가력량 중시(례켠대, 현재 문단 활약 작가들- 량영철, 구호준, 안수복, 김호식, 전광훈, 양용철 등등). 2002년 2월호, "문학과예술" 잡지(연변사화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김승종시작품세미나특집" 등재.  "김승종시의 모지름과 해체작업 그리고 가치(최삼룡)", 초사실적인 추상예술의 가능성(한춘)", "우리 시단에 던진 새로운 충격(최룡관)", "'시음병자'와 그의 시적 그라프(김룡운)", "'류행따르기'와 '전통지키기'(김관웅)". 화룡시문화예술계련합회 주관지 "청산리"잡지(증명인; 전임 주석 류재학 촬영가, 소설가 김영자, 시인 허옥진) 시편집 담당. "청산리"잡지 제호 건의, 제의, 통과, 사용, 발행. 전주 문화예술계 대호평. "동북아신문" 주관 "재한동포문인협회(시분과 부장 담당)" 설립, 초창 맨버,  "동포문학" 동인지 제호 건의, 제의, 현재 "동포문학" 제호 사용 중(증명인; "동북아신문" 대표, 소설가 리동렬, 시인 김추월, 소설가 강호원). 2005년(닭해) 6월 22일, 교통사고 비장(지라) 파렬 체취 대수술(룡정병원). 2005년 9월 15일, 중국소수민족작가연구중심(내몽고사범대학 內 중국소수민족문학관) 제막식 참가(증명인; 장백산 잡지 주필, 사장 남영전 시인, 고 박성군 소설가, 몽고 작가 마라친부 시인, 몽고 작가 터 싸이얼 교수 평론가). 2013년도 하계(夏季)전국작가내몽고참관방문단 일행 참석(증명인; 길림신문 박문희 부주필, 시인).   2011년도, "두동네 회색 카니발" 동인 시집 출간 시 한화 300만(그 당시 인민페 2만) 출판경비 사비지원(증명인; 시인 최룡관, 시인 故 한춘). 연변작가협회 시분과 주관, 본시집출판기념회 및 시세미나 조직, 진행(증명인; 시인 김영건, 시인 림금산).  2011년도~2017년도, 대한민국 경상북도 도청(성정부 해당), 경상북도 안동시 시청(시정부 해당), 안동간고등어주식회사, 안동리륙사문학관, 안동병원 등등 기관, 단체 근 3년반기간 설복, 설득, 취득, 유치 성공. 연변작가협회(증명인; 전 주석 소설가 최국철, 전 련락부 주임 소설가 우광훈, 작협 재무과), 연변대학(증명인; 박사, 평론가 김호웅, 박사 평론가 故 우상렬) 주체, 주관. "중국조선족리육사문학제" 만 7년동안(사드문제 후 단절) 해마다 유치활동경비 한화 천만씩, 그후 한화 천이백만씩 입금(재무관계 일절 불관여, 유치비 일절 사절), 유치, 조직, 진행(증명인; 작협 재무과, 한국 경상북도 안동이육사문학관 조영일 관장, 이육사 무남독녀 이옥비 녀사).    평백성으로서 량심이 있고 뼈와 주대가 있는 문학인으로서, 우리 작가후비력량 대오가 끊힌다는 량심적인 각도에서 적수공권으로 신임 하나로 당당하게 우리 당정기관 산하인 연변작가협회에 그것도 "연변"이란 이름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타이틀을 붙혀서 전 중국 조선족대학생(조선어를 배우고 조선어로 글짓기를 하는 타민족 포함)들을 아우러 문학축제를 유치하여 진행하게끔 한 유일무일한 장본인.  처음부터 한시도 드팀없이 유치비 사절했으며, 당정기관 관방에서 주체, 주관하는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대학을 선호했음. 중국 연변작가협회와 안동병원 제휴. 생활난, 병사경력자, 작가 무료건강검진 유치. 첫회 안도현 김일량 시인 출국, 무료검진 진행 성공.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예미정" 内 "시지기 죽림" 诗轩房 있음. 중국 연변왕달무역회사와 한국 안동간고등어회사 제휴, 룡정왕달간고등어회사 유치(증명인; 한국 "매일신문" 기자 권동순 북부 본부장, "조선일보" 기자 권광순, 법인대표 김봉운 총경리), 공로상 수상. 2015년부터 "조선족네트워그(조글로)"에서 "시지기-죽림" 대형 블로그 설치, 문학, 문화, 예술 등등 창달(현재 2021년도말까지 7천건 곱셈하기 3 = 2만여건 게재, 증명인; 김삼 대표, 문야 기자).   2017년도후 현재, 룡정윤동주연구회(초창 설립 맨버 중 일원, 증명인; 소설가 김혁, 박사, 평론가 리광일) 리사, "용두레"독서회 리사(증명인; 소설가 김혁, 시인 심명주) 맹활약. 2013년 8월, 중국소수민족문학관(내몽고사범대학 내)에 고서적- 의서 한질, 목판화 "고구려 수렵도" 한매 기증(증명인; 내몽고사범대 박사도사, 평론가, 몽고족 작가 故 터싸음바야얼 전 관장, 몽고족 임언 현임 관장). 2024년 1월-3월, 중국소수민족문학관에 열번에 걸쳐 대량 자료 기증(증명인; 임언 전임 관장, 화옥 현임 관장). 2019년도, 도서 8백여권 룡정시도서관 무료증정,  2019년도, 2천원 가치 사물놀이 징 두매 단군문학회(증명인; 신봉철 회장, 엄철인 사무국장) 무료증정. 2013년 12월, 서장자치구, 내몽고자치구, 신강위글족자치구, 연변림업국 등 과학기술 조림처에 시험용 은행나무 종자를 각각 보내줌(증명인; 동창생 김학천 연변대학 일어학부 교수). 2013년 1월, 7월, 서장자치구 인민정부 인구및계획생육위원회 복리처에 구호물품 세차례 보내줌(증명인; 복리처 처장 국길國吉, 동창생 손하준).  40여년동안 문학생애에서 애지중지 마련했던 "보물"들인 도서(큰마대로 열다섯마대)와 우표 한상자, 문학상장꾸레미 등을 몰상식한 인간들의 무지로 인해 페기처분 되여 "술값"으로 전락된 통탄 할 "문단유사"가 발생했음...!!!(증명인; 원 화룡시농업은행 부행장 최태산, 원 화룡시인민은행 발행과 과장 김후남, 큰형님 김갑종, 둘째 형님 김명종).   2,-   시집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와 일회용 삶", (200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시집 "보리깜부기와 구혼광고와 흰 그림자의 삶", (2005년도, 화룡시문련, 화룡시작가협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동인지 시집 "두 동네 은회색카니발(공편저)",  (201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동인지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시론저 "시천하루밤과 시작노트와 시지기 삶"(2013년도 출판). @@ 시집 "우물 일곱개였던 마을"ㅡ (2016년도, 제20회 "연변정지용문학상"수상시집, 중국 연변작가협회 주최, 대한민국 옥청군 군청, 옥청문화원 후원, 연변대학 예술홀에서 수상회 개최). 연변음악가협회 아동가요 우수상, 연변주문련 "선경대컵"가곡창작 은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시분과 "두만강여울소리" 시우수상,  연변작가협회 인터넷 문학상(2013년도), 연변일보 해란강 문학상(2013년도), 제20회 "연변정지용문학상"(2016년도), "중국조선족대학생리육사문학제" 유치 연변작가협회 공로상(2016년도), 대한민국 세계계관시인문학회 시본상(1998년도) 수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리육사문학관 공로상(2016년도) 수상, 중공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주최 제9회 "진달래문예상(2020년도 9월 29일)" (시집 "우물 일곱개였던 마을")수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도청(성정부 해당됨), 경북일보사 주최, "중국조선족포항호미곶문학상"(2021년도) 수상. 대표작: 시 "새벽", "하늘" 등...   3,-   자유기고인, 조선민족작가로서 화룡시작가협회 산하와 및 기타 지역의 문학사업촉진발전에 40여년래 큰 공헌, "화룡 문화의 별" 수상.   4,-   版本图书馆CIP数据核字 认定 시집, 론저;- 2001년도, 시집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와 일회용 삶(17만자)" (ISBN 7-80648-679-8/I.198), CIP (2001) 第074395字, 연변인민출판사 출판. 2005년도, 시집 "보리 깜부기와 '구혼광고'와 흰 그림자의 삶(15만자)" (ISBN 89-5800-031-7.03810), 대한민국 도서출판 신세림 출판, 등록번호: 제2-1298호. 2013년도, 시론저 "시천하루밤과 시작노트와 시지기 삶(30만자)"(ISBN 97-8962-883-4. 46623>), 홍콩 파랑새출판주식회사 출판, (港) 第1203-NO28字.  2016년도, 정지용문학상 수상 시집 "우물 일곱개였던 마을(16만자)" (ISBN 978-7-5449-4841-8), CIP (2016) 第208072字, 연변인민출판사 출판.  2008년도부터 현재까지, 연변교육출판사(ISBN 2008 978-7-5437-6996-0) (民课)출판, 중국 조선족고급중학교교과서 조선어문(고중 3학년 필수 3) 제4단원: 자연과 인류, 제25과 "무루의 극" 생태시 련속 게재됨. 현재까지 문학작품 발표 80여만자수. 중국 중앙도서관, 중국소수민족문학관, 청화대학도서관, 북경대학도서관, 중앙민족대학도서관, 북경사범대학도서관, 상해도서관, 천진도서관, 장춘 단군문학관, 연변도서관, 연변대학도서관,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시집박물관, 상술 출간 시집, 론저 상재됨. ========================================================================== 获奖情况及重要影响 : 1987年7月获延边音乐家协会儿童歌谣优秀奖。 2004年8月获延边州艺术界联合会歌曲原创作品银奖。 2008年10月获延边作家协会诗歌创作委员会诗优秀奖。 2015年2月获延边作家协会网络诗文学奖。 2015年3月获“延边日报”海兰江文学奖。 因2013年度同人合诗集''两个村子的故事”出版时,本人筹私经费志援贰万元整人民币。 因2011年至2017年,连续7年促成延边作家协会和延边大学联合举办“中国朝鲜族大学生李陆史文学节”,于2016年12月获功劳奖。 2016年9月获延边作家协会第20届郑芝溶文学奖。 2020年9月延邊州政府 "金達來文藝奬". 本人已发表诗歌77余万字,其中,已结集出版4本(其中2本诗集出版国外)诗集。 诗歌作品收录在中国朝鲜族高级中学校“朝鲜语文”自习读本教科书 。 诗集, 论著藏于中国中央图书馆、上海图书馆、清华大学图书馆、 中央民族大学图书馆。      
7964    [그것이 알고싶다] - "청와대로 가보쟈..." 댓글:  조회:2649  추천:0  2022-05-14
    청와대 주변 문물과 나무들...   중앙일보     2022.05.13.     일러스트= 안충기 기자   백악산 능선에는 사연 많은 나무가 한그루 있다. 정상과 청운대 사이에 있는 소나무다. 풍경에 정신을 팔고 걷다보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나무 몸통에 난 구멍들을 시멘트로 메우고 그 위에 둥근 모양으로 하얗고 빨갛게 칠했다. 딱 사격 표적 모양이다. 그 옆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1.21 사태 소나무〉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센터(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한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무장공비 일당은 당시 청와대 및 주변시설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침투 간 아군복장과 민간복 착용, 취객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도발을 자행하였다. 1월 21일 교전 후 14일간 작전 결과 침투한 31명 중 28명 사살, 2명 도주, 1명을 생포(김신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 예비군(68.4.1)이 창설되었다.   백악산 능선 1.21 사태 소나무. 변선구 기자 나무의 총탄 자국은 공비들이 백악산 능선을 타고 튀었음을 말해준다. “박정희 모가지 따러왔수다.” 생포된 김신조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은 서늘했다. 1.21 사태는 예비군만이 아니라 육군3사관학교와 전투경찰대를 만들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련 교육을 실시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에 복수를 하려고 만든 684특수부대에서 행해진 가혹한 대우는 실미도 사건을 불렀다. 그 뒤 인왕산과 백악산, 청와대 앞길은 절대 보안공간이 돼 일반인 통행이 막혔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하나는 생태 보존이다. 아이러니1-청와대 나무들 총 맞은 나무 수령은 100년이 넘어 보인다. 꽤 나이 들어 보이지만 백악산에서 이 정도면 청년이다. 백악산은 길 아닌 곳은 갈 수 없고, 허용된 길이라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비무장지대와 다를 바 없다. 백악산 식생이 철조망의 엄호를 받았다면 청와대 풀과 나무들은 정원사의 극진한 보호를 받아왔다. 그래서 청와대는 창덕궁 후원 못잖은 명품 정원이다. 나무마다 사연도 많다. 대통령과 나무 4월 5일이 식목일이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0년 4월 5일에 열린 순종의 친경제(親耕祭)다. 임금이 손수 나무를 심고 밭을 갈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며 청와대는 장충단 공원, 어린이대공원, 국립수목원, 독립기념관, 남산 등과 함께 때마다 대통령이 나무 심는 단골장소가 됐다. 식목일에 심은 나무와 남긴 메시지도 갖가지다. “나무를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애국을 논할 자격이 없다” (1972년 박정희) “가구마다 나라꽃 무궁화 1그루를 심자” (1992년 노태우) “심고 보호하는데 그치지 말고 가꾸고 경영하자” (1994년 김영삼) “산림녹화와 경제적 활용을 병행하자” (2000년 김대중) “북악산을 전면 개방하겠다” (2007년 노무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63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공동으로 식목행사를 했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녹지원에 무궁화 15그루를 심었다. 사진을 통해 청와대 나무들의 사연을 알아본다. 정문을 통해 본관으로 가다보면 대정원 양편에 키가 훤칠한 금강송 무리가 있다. 춘양목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강릉~원주간 영동고속도로를 만들 때 10그루를 옮겨다 심었다.   대정원 옆 금강송. [눌와] 본관 동쪽에 있는 1960년생 쥐띠 구상나무다. 1988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심었다.   노태우 대통령 구상나무. [눌와] 영빈관 동쪽에 있는 가이즈카 향나무. 박정희 대통령이 심었다. 일본 오사카 남부 가이즈카 지방이 고향이다. 1918년생 말띠이니 100살이 넘었다.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대구 달성공원에 가이즈카 향나무가 이땅에서는 1호로 알려져있다. 문화재청은 이 나무를 사적지 부적합 수종으로 결정한 바 있다. 서울현충원에 있던 이 나무들은 대부분 국내 수종으로 바꿨다. 일제의 상징이니 뽑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땅에서 자라면 우리 나무인데 감정적 접근을 경계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가 보는 노란 민들레는 대부분 서양민들레다. 박정희 대통령 가이즈카 향나무. [눌와] 영빈관 앞에 있는 무궁화.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김대중 대통령이 심었다. 김대중 대통령 무궁화. [눌와] 상춘재 부근에는 나무 120여 종이 자란다. 잔디밭에 있는 반송은 청와대의 상징 같은 나무다. 177세(2022년 기준) 먹었다. 키 12m, 폭 15m가 넘는다. 반송 옆에는 적송 3그루가 있다. 4그루로 보이지만 오른쪽 두 그루는 뿌리를 같이 하는 한그루다. 왼쪽이 적송 오른쪽이 반송. [청와대 경호처] 녹지원 뒤 숲에서 자라는 회화나무 고목 중 하나다. 단정하고 늠름하게 생겼다. 청와대 관람 안내인이 설명하는 자리이자 포토존이다. 사진 명소 회화나무. [눌와]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심은 동백나무. 녹지원과 이어진 상춘재 동쪽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 동백나무. [눌와] 상춘재 앞에 있는 백송. 전두환 대통령이 심었다.   전두환 대통령 백송. [눌와]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에 심은 독일가문비나무. 1944년생 원숭이띠다. 대통령 전용 헬기장 옆에 있다. 최규하 대통령 독일가문비나무. [눌와] 연풍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작은 공원인 버들마당이 있다. 여기에 훤칠한 용버들 한그루가 서있다. 이 땅에서 가장 굵고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감이다. 버들은 물을 좋아한다. 근처에 개울이 흘렀다는 증거다.   용버들. [눌와] 대정원 동편 소정원 한가운데 있는 이팝나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심었다. 박근혜 대통령 이팝나무. [눌와] 수궁터에 있는 주목. 줄기가 붉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썩어 천 년, 합해 삼천년을 간다’는 청와대에서 최고참 나무다. 743세(2022년기준) 잡수신 왕할아버지다. 그 왼쪽에 구 청와대 본관 터임을 표시한 호리병조각이 있다. 수궁터 주목. [눌와] 수궁터에 있는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복자기. 1980년생 원숭이띠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심었다. 김영삼 대통령 복자기. [눌와] 성곽로 끝, 백악산 정상에서 청와대쪽으로 타고 내려오는 능선 중간에 백악정이 있다. 청와대 담장 밖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본래 정자가 없었는데 2004년 4월에 만들었다. 서울 사대문 안은 물론 아차산, 남산, 관악산까지 보인다. 이 한쪽에 2004년 5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서어나무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어나무. [눌와] 이명박 대통령이 심은 산딸나무도 백악정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 산딸나무. [눌와] 관저 앞, 관저와 침류각 사이에는 거대한 낙우송 무리가 서있다. 조경을 할 때, 광화문 쪽과 삼청동 쪽에서 관저를 가리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를 심을 때는 대개 정원의 가장자리에 심는다. 김영삼·박근혜 두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정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성격과 나무 심는 위치도 연관이 있을까. 이승만·윤보선 두 대통령 이름이 붙은 나무는 없다. 당시는 경무대 시절이라 지금의 청와대보다 영역이 작았고, 식목이 다른 일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수 있겠다. 정문에서 본관으로 들어가는 길 양 옆에 잘 생긴 반송이 11그루씩 서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조경을 했지만 이름표가 붙어있지는 않다. 아이러니2 아이러니가 하나 더 있다. 백악산 청와대 일대의 문화유산이 알려진 과정이다. 드문드문 밝혀지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밝힌 곳은 학계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청와대 경호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경호실 직원 몇몇이 역사문화유산 관련 연구 동아리를 만들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발품을 팔아 펴낸 책이 『청와대와 주변 역사·문화유산』이다. 2007년의 일이다. 내용이 치밀하고 충실하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청와대 내부와 인근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발굴하여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이는 단순 히 호사가적인 관심의 충족이 아니라 그간 잊혀져왔던 이 땅의 역사와 내력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소개한 본격적인 문화유산 저술이라는 점에서 놀라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청와대 일대의 문화유산 몇 개만 살펴보자.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각자 1990년대에 대통령 관저 뒤에서 ‘천하제일복지’가 새겨진 바위를 발견했다. 청와대 자리가 예부터 명당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표석 왼편에 연릉오거(延陵吳据)라는 글자로 보아 중국 남송 연릉 지역 출신 오거의 글씨를 집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 아래는 물이 솟는 천하제일복지천이 있다. 관저를 새로 지을 때 지금의 모습으로 주변을 정비했다.   천하제일복지각자. [청와대 경호처] 침류각(枕流閣) 오운정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손석희 전 앵커와 퇴임 인터뷰를 한 장소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枕流)는 뜻이다. 본래 관저 자리에 있었다. 1989년에 관저를 지으며 지금 자리로 옮겼다.   침류각. [청와대 경호처] 오운정(五雲亭)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후원인 경무대 만들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일제가 훼손하기 전인 1910년대 이전까지 이곳은 창덕궁 후원처럼 수려한 계곡과 정원이 있었다. 경무대에는 32개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오운각(五雲閣)은 임금 휴식처, 융문당(隆文堂)은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이고, 융무당(隆武堂)은 군사를 조련하는 장소였다. 오운정은 청와대에서 유일한 정자다.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글씨다. 관저 자리에 있던 정자를 관저를 신축하며 현재 자리로 옮겼다. 오운정. [청와대 경호처] 석조여래좌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 제작돼 경주 남산 계곡에 있던 불상이다. 이를 일제 때인 1912년 데라우치 총독이 서울 남산 총독 관사인 왜성대로 가져갔다. 1939년 총독 관사를 현재 청와대 자리에 만들며 함께 옮겼다. 관저를 새로 지을 때 지금 위치로 이전했다. 몸체가 온전하고 연꽃문양을 새긴 대좌까지 남아있는 통일신라 석불은 많지 않다. 기독교 장로 대통령 시절에 불상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불상을 치워버렸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일부 신도들이 성모상과 예수상을 함께 들여놓으라는 요구도 했다.   석조여래좌상. [청와대 경호처] 팔도배미 터 영빈관 앞뜰을 좌우 각각 8개 구역으로 나눈 공간이다. 1893년 고종이 신무문 밖에 경농재를 짓고 그 앞을 팔도를 상징해 8등분했다. 조선 8도, 즉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의미한다. 농사를 체험하며 풍흉을 살필 목적으로 만들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매년 봄 신하들과 전국에서 올라 온 곡식 종자를 심었다고 한다. 친경전(親耕田)이란 이름보다는 ‘팔도배미’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걸으면 보이는 것들 지난 4월 6일 백악산 남측 탐방로를 개방했다. 삼청 안내소~만세동산 약수터~청운대 쉼터~청운대전망대~법흥사 터~삼청 안내소로 돌아오는 코스다. 여유 있게 걸어 2시간 정도 걸린다. 4월 26일, 이 길을 한 바퀴 돌고 청와대앞길을 거쳐 분수대까지 걸었다. 코앞에 있는 청와대는 성곽로 능선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경사가 급한 길을 숨 가쁘게 올라가니 샘터이자 쉼터인 만세동방이 나온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이 움푹한 홈으로 떨어진다. 마실 수 없으니 손이나 얼굴을 씻으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쉬고 있는데 산불감시원 아저씨 둘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 분은 신입으로 보였다. “여기는 전국 일급지예요. 청와대 뒷산이라 그만큼 신경을 써요. 우리는 서울국유림관리소 소속이고요. 다른 데는 보통 오전 10시에서 7시까지 근무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1시간 빨리 일을 시작해요. 자부심을 가져도 돼요.” (일당 7만3280원인 산불 감시원이 되기는 쉽지 않다. 15kg짜리 등짐 메고 2km걷기 체력을 시험한다. 기계톱질을 얼마나 잘하는지도 본다. 재산이 4억 원을 넘으면 응시를 제한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재학생도 안 된다.) 법흥사 터 한쪽 작은 샘에는 청둥오리 한 쌍이 수시로 물속에 머리를 박았다. 가까이 가보니 물속에는 올챙이가 바글바글했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말했다. “저놈들 요즈음 신났어요. 이 계곡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를 오르내리며 영양보충을 하느라고 바쁘거든요.” 백악산과 북악산 북악산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백악산이 정확한 이름이다. 행정명칭도 백악산이다. 정상에 있는 표지돌에도 ‘백악산 해발 342미터’라고 새겨있다. 정상에는 두 개의 바위가 있다. 그 중 큰 바위에 오목한 홈이 몇 개 있다. 성혈(性穴)이라고 하는데 선사시대 이래 소원을 기원하며 표면을 오래도록 갈고 파낸 흔적이다. 예부터 ‘알바위’, ‘알터’, ‘알홈’ 등으로 부른다. 전국에 이런 이름을 가진 바위가 꽤 있다.   백악산 정상.   정상에 있는 알바위. 명식, 제정흡, 조민곤 세 명의 이름이 파여져 있다. 한 사람은 돌을 쪼다 말았는지 성만 새겨놓았다. 부아암(負兒岩)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8부 능선에 툭 튀어나와 있다. 바위 두 개가 포개져 있는데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다. 광화문 쪽에서는 돌출부위가 드러나지 않지만 동쪽이나 서쪽에서 보면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정도전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며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이 바위를 옮겨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정선 그림 속의 부아암. 간송미술관 소장. 법흥사 터(法興寺址) 백악산 동편 중턱에 있다. 신라시대 때 지은 절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자리가 협소하고 계곡물이 적어 스님 한둘이 생활할 수 있는 작은 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55년 절집을 지었으나 1.21사태 뒤 폐쇄하고 지금은 건물터, 축대, 주춧돌만 남아있다. 이 길을 개방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주춧돌에 앉아 쉬었다고 작은 소란이 일었다. 부처님이 보셨으면 한바탕 웃었겠다. 법흥사 터. 만세동방(萬世東方) 북악산 동쪽 6~7부 능선 계곡 중턱에는 약수터다. 바위에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이라고 새겨져있다. 왕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내용이다. 이승만 대통령 때는 이 계곡의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 먹었다고 전해진다.   만세동방 약수터. 청계천 발원지 백악산 인왕산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청계천으로 들어간다. 2005년 11월 종로구가 최장발원지를 조사했다. 백악산 서쪽 청운동 자하문 고개,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백악산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다. 백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을 발원지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촛대바위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 있다. 도성길과 붙어있다. 정남 쪽에 경복궁이 있다. 일제가 바위 정수리에 박은 쇠말뚝을 광복 뒤 빼내고 촛대바위라고 이름 붙였다.   촛대바위. 숙정문(肅靖門) 도성 4대문 중 북쪽으로 나가는 문이다. 조선시대엔 음양오행설에 따라 이 문을 열면 여풍(女風)이 분다고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면 숙정문을 닫고 남대문을 열었다. 북을 음이고, 남을 양으로 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4대문 중 유일하게 사람이 지나다니는 문이 됐다. 숙정문. 4ㆍ19 최초 발포 현장 청와대 서쪽 광장, 분수대 옆 바닥에는 동판 하나가 누워있다. 일부러 찾아야 보인다. 1960년 4월 19일 화요일 오후 1시 40분경,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대를 향해 처음으로 총을 쏜 현장이다. 이날 21명이 죽고, 17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를 추념해 2018년에 서울시가 만들었다.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역삼각형 모양(가로 35cm, 세로 35cm)이다. 서울시가 선정한 인권 현장 62개소 중 한 곳이다.   분수대 옆 4.19 첫 발포 지점. 분수대에서 북쪽으로 길을 건너면 무궁화동산이 나온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안가를 헐어 내고 공원으로 만들었다. 행정구역상 궁정동이다. 1979년 10월26일, 이곳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총을 맞고 숨졌다. 병자호란 때 청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김상헌 집터 옆이다. 현장에는 죽음의 자리를 표시한 어떤 활자도 없다. 당시 공원을 조성하던 이가 바위 두 개를 포개놓고, 그 위로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 한그루를 심어놓았다. 이 사정을 아는 사람만 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안가 터.     대통령 성격 나오는 청와대 나무…아예 나무 안심은 두명은 누구? 청와대 풀과 나무들은 정원사의 극진한 관리를 받아왔다.            
7963    [생태풍자담시] - 엄마, 이를 어찌하랍니껴... /김승종 댓글:  조회:500  추천:0  2022-05-14
 网站端触屏端  :  > 해란강 >  [담시] 엄마, 이를 어찌하랍니껴… □ 김승종   엄마, 이를 어찌하랍니껴…□ 김승종   2022-05-13      ㄱ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돼지네들 웃 마을 아래 마을 강남마을 강북마을 집집마다에서 퐁퐁퐁 꿀꿀이 동요 메들리로 만들어졌던 계단과 종달새 타령으로 만들어진 꽃대문 손잡이를 지글재글 철철철 마사버리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ㄴ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황소네들 노을록지원에서는 수수깡 계기가 동그라미들과 주판과 함께 앞구멍 뒤구멍 스리살살 맞춰 쿵쨔쿵쨔 삐꺼덕삐꺼덕 기름기 신음하며 궁시럭궁시럭 날새치기 하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ㄷ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집 뒤동산에서는 뭇짐승들과 열세명 개구쟁이들이 색갈물총놀이를 왁작지껄 매일 벌리고 있는 통에 공작새물감창고에선 진종일 시침 분침 초침 사이 사이를 비집고 방울도마도로 붉은 색감 만드느라 희희닥닥 혹복주머니를 히룽해룽 흔들며 숨통 조이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ㄹ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십자거리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황둥개네 백화약선당에서는 만병통치약이랍시고 쬐꼼 약종에 옥수수가루와 밀가루를 두리뭉실 섞어 만들어져 얼레뚱땅 울 뒤집 물새네 할망구한테 팔려 나간다는 짝퉁소굴 골목소식이 팔방돌이 들개들 입방송을 줄레줄레 타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ㅁ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유명짜한 토끼네 칠선녀오복점에서 배추무우양파고추마늘젓갈생강소금과 곰팡이들과 함께 집단체조무용을 쾌지나칭칭 춰대는 것을 창문가 군자란이 쏭알쏭알 미주알고주알 고자질했다고 군자란 뒤통수가 와지끈와지끈 깨지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ㅂ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세계화와 국제화와 전 지구적과 전 우주적과 전 은하계적이랍시고 하는 사계절선물점에서는 새앙쥐들의 막창 뒤끝머리와 맥반석을 설커덩설커덩 뒤섞어 만들었다는 연지분이 별무리 명표랍시고 이 입 건너 저 입을 지글재글 연지곤지 짓씹어 호물호물 삼키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ㅅ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암탉네들 오랍누이탁아소 지하회의실에서 마라톤식 론문발표회가 성대히 장엄히 찧고빻고 진행 중, 주제는 몽고반점이 점점 아스라히 사라지고 있다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ㅇ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그 ‘어는’ 날은 그 ‘어느’ 날을 들러리 세우고 앵무새 노래에 원숭이춤만 쿵빠빠 재롱재롱 춰대고 궁궐견들은 비둘기를 잡아 질근질근 술안주해대며 판도라상자를 마구잡이 왈카당덜커덩 열어제끼는 철딱서니들과 은근슬쩍 사해의 앞잡이로 된 도둑들과 세균전놀이로 밥먹듯 으르릉그르릉 빈정대는 해적들을 뚝딱뚝딱 만들어 성스러운 무루의 극을 쑥대밭 만들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ㅈ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텁썩부리 죽림은 천만억세기광장에서 뭇 백색쓰레기들 속에 동가서가 남전북전 포위된 채 황홀한 꽃잔디와 함께 시름시름 허겁지겁 비실비실 고사되여 가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ㅊ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가 그렇게도 정성껏 애지중지 애면글면 이웃하며 돕던 꿀벌들이 몇십통 보금자리에서 불현듯 갑자기 분가분가 사라지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ㅋ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집 비들기들과 철책선 넘나드는 산비둘기들마저도 이 먹이감 저 먹이감 모두모두 농즙맛 난다며 먹이감 투정 구구구 시위행진하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ㅌ   엄마ㅡ 그 어느 날부터인가 그 어느 날들과 그 어느 날들은 소망과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열두살짜리 녀아해 옆에서와 희끄무레한 피난대피소 안 래일일가 모레일가 조마조마 기름가마에 맘 졸이며 하마하마 당장 순산일지 난산일지도 막코등에 얹혀두고 있는 새내기 앞에서 검푸른 숲과 뭇눈언저리를 가로세로 야단법석 짓밟고 지나 온 화약궤와 불씨를 갖고 휙휙 불장난하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랍니껴…     ㅍ   엄마ㅡ 그 어느 날, 칠칠 째진 엄마의 바지가랭이 너머 너머 개구리 무리들이 집단 피살된 늪가 너머 너머 저 멀리로부터 포성이 아우성치는 속에 뻐꾸기는 밀보리 파종 늦었다고 사이렌을 윙윙왱왱 울리며 생야단하고 있는데ㅡ 이를 또한, 이를 또한, 어찌 어찌하랍니껴…   ㅎ   엄마ㅡ … …   ㄲ   도깨비방망이대장ㅡ 제길할, 이 텁석부리 거지시인놈아ㅡ 뭘 그렇게도 쯔즘쯔즘 까달까달 난삽하고 조잡스러우냐? 어서 빨리 ‘난삽조잡죄’로 세상 모든 요지경들을 처절히 처절히 콰르릉 쾅 날벼락 수배하락하이…   ㄸ   엄마ㅡ 엄마는 햇발이 창창 쏟아지는 ‘새양한’ 죽림동 팔간집에서 흥청망청 요지경 투성이로 망가져가는 퇴마루 돌계단과 색바래진 채 잊혀져가는 삽짝문 손잡이를 참따랗게 참따랗게 손맛 손매 보고 있고지고…   엄마ㅡ!!!   엄ㅡ마ㅡ!!!
7962    [세상만사] - "문제...문제" 댓글:  조회:1963  추천:0  2022-05-14
[잡문] 알쏭달쏭한 문제 2016년 02월 24일 작성자: 회령                                                                                                                                                                                        1.사람의 머리통문제         천지간 우주간 수수께끼가 많지만 많이 해명되였고 계속 해명되고 있다. 해가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굴러가 퉁! 떨어진다던 문제(수수께끼)도 해명을 보았고 미친수캐가 달을 짓씹어 먹었다든 문제도 언녕 해명되였다. 상아아가씨가 옥토끼를 데리고 절구를 찧는다는 문제는 해명중에 있다. 말과 당나귀가 노새와 버새를 만들어낸(창조한) 오묘한 문제도 해명을 보았고 화성에 물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거이 해명이 되는 모양이다. 사람이 250년까지 살수 있다고 이전에 어떤정신병자가 기염을 토하며 대성을 질러 웃긴바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무슨 백세시대라는가 하면서 건강장수의 비밀, 비결이 륙속 밝혀지는 중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약아빠지면서 보는 눈 생각하는 눈 분석, 판단하는 눈 그리고 실천행위가 고속으로 발달해서 말하자면 과학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계속 발전을 하고 있어서 수수께끼는 다 해명을 볼것이다. 천당이며 극락세계며… 다 밝혀질 것이다. 시간문제일뿐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리론상에서 해명을 보았고 지금 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그런데, 요상한것이 사람의 머리통문제다. 인간세상 수천년래 동서고금을 두루 보면 사람이 사람문제를 해결못한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주를 탐색하고 사막을 다스리고 대기온난화를 조정하고 러씨아가스를 도관으로 한국에 가져가고 장강의 물을 북경, 천진에 끌어오고… 이런 어마어마한 어기찬 일은 하면서도 사람이 제머리통 하나를 다스리지 못하여… 세상이 시끌벅적 여전히 계속 복잡하다. 온전한, 바로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건 아니다. 말썽은 제대로 되지못한 인간의대갈통 때문에 생기는데, 그것이 줄곧 인간사회의 미해결문제로 되고 있다. 멀리는 말고 근, 현대만 본다면 1,2차세계대전은 누구의 머리통 때문에 일어났는가? 38선은 어느놈 때문에 생겨나고 조선전쟁은 어느애들 때문에 터져가지고 지금도 우리를 원통케 하고 또 세인들앞에서 부끄럽게 하는가! 주영강, 서재후, 령계획, 소영동무… 그느마들 먹을게 없었는가 잠자리 불편했는가… 왜서 개골망신, 패가망신을 했는가… 아무리 따져봐도 그 머리통에 문제가 생긴거다. 주은래, 주용기… 이런 이들은 왜 오늘도 세계적 존경을 받는가?! 머리문제다. 머리통에는 정신이 있는데 그속에 의식이 있고 의식속에는 지식, 사유, 감각, 사상, 감정, 량심, 도덕, 습관… 이런것이 들어 있다. 사람은 머리통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세상의 모든일은 머리통에 달렸다.     머리통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공자님을 모셔와도 쓸데없고 그리스도, 석가모니, 나무아미타불, 마르쿠스, 레닌, 모택동… 고금중외 철학가, 사상가, 정치가, 종교가, 문학가, 교육가, 의학가, 생물학가… 그어느 성현을 모셔와도 쓸데없다.     인간은 오늘까지도 사람의 머리통문제를 철저히 해결하지 못했고 태평성대를 만들어 보지 못했다. 뒤죽박죽 치고박고 막고뚫고 잡고뛰고 양봉음위… 예나 지금이나 북새통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대갈통에 문제가 있는 인간나부랭이는 부단히 잡아버려도 부단히 생겨나니… 도대체가 생존바탕과 환경에 문제가 생겼나 염색체 유전인자에 귀신이 붙었나…                                                                                                                                                                   2016.2.24 =========================///             2.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         앞에서 머리통이요 대갈통이요 하며 무식하고 개명치 못한 악담을 하긴했지만 떠들다 보니께 워낙 주제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여서 급급히 함구를 했다. 세계관, 인생관, 사상, 량심, 도덕, 인격, 원칙, 당성, 진리… 감히 의식형태를 건드리다니… 고양이 새끼가 쇠대가리, 사자대가리를 맡은것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닌가.         하여 이제부터는 중한것은 피하고 경한것으로, 즉 직접 보고 듣고 한 현실적인 알쏭달쏭한 문제를(나로서는 리치를 알수없는것.) 말하고저 한다. 목적은 여러분들의 가르침을 받자는데 있다.         세상이 다 알다싶히 중국의 제5대의 중앙령도들은 맡은일을 잘하고 있다. 중국이 망하기를 늘 바라고 있는 사람들은 맹랑하고 괘씸하기가 짝이 없겠지만 그들도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수는 없을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바른말 하기를 싫어하고 심술통이 바르지 못한 미국아덜이지만 갸들도 습근평을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했는데 앞으로는 어떨가… 더 잘할거다하고 신심을 가지면서도 머리가 기우뚱거려지는, 말하자면 반신반의하는, 신심도 있고 우려도 있다. 그것은 양봉음위, 흥상만하(상급은 법석떠들며 얼렁뚱땅 속여넘기고 하급은 직접  기편한다.) 관관상호(아래위령도가 서로 감싸 줌.)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때문이다. 암행어사(독찰조)가 다니는데도 담이 큰 놈들이 여전히 있는데 이놈들의 방해와 교란, 파괴를 간단하게 볼수없다. 그래서 속이 개운치 못하고 우려가 생기는거다.     층층의 령도가 업적을 올리자고 기를 쓰고 초유록처럼 사업하는것은 위인민복무일뿐만아니라 그의 벼슬급도 오를수 있기에 말그대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다. 이것은 너무도 감동적이고 칭찬할 일이고 대단한 일이고 자타가 기뻐해야할 일이고… 좋은일이다. 그런데, 어떤령도의 업적올리기에는 치사스럽고 더럽고 젖먹던 밸까지 올라오는 문세가락이 들어있다.     여기서 간단한 실례를 한번보자.     한국시골에서 부는 바람을 얻어 먹었는지 우리고장에서도 “문화축제”라는 바람이 불어치는데, 어떤것은 희한하기 짝이없다. 중공18대에서 5위일체건설을 호소했는데 거기에 문화건설이라는 조목이 들어있다. “문화축제”는 문화건설범주에 넣을수 있을뿐만 아니라 중앙과 언행보조를 일치한다는 명분도 세울수 있고(모든면에서 보조를 맞추라고 중앙에서 말한바가 있다.) 업적을 쌓는데도 유익하고 첩경일것 같아서… 하여튼, 여기저기서 문화축제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남이 한걸 그대로 옮겨다 할수는 없는거고… 여덟신선이 바다를 건널때처럼 저마다 기발한 신통성, 창발성, 능동성, 적극성, 필요성, 절박성, 효익성, 위기감, 책임감, 사명감, 원대한안광, 혁명적포부, 과학발전관, 당성… 일체의 전략전술, 방법과 수단, 열량을 다 발휘해서, (어떤령도는 우격다짐으로) 축제잔치를 결정하고 굉장히 크게 경쟁적으로 펼치는데, 축제가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변소문화축제, 뱀장어문화축제, 술문화축제, 봄똥문화축제, 개구리, 두꺼비, 거머리, 나비, 개똥불, 한우, 제주도똥돼지, 개, 짚신, 낫가락, 대장간, 도자기, 막걸리, 뻥튀기(옥수수튀기), 각설이… 지어는 미국의 선진문화를 학습하여 방귀문화라는것도 창출하였는데, 미국에서는 정신병자들이 이미 방귀대회(축제)까지 남녀가 용약 달려들어 엄숙하게 거행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하내비를 따라가지 못하여 방귀축제를 하지못한 상황이긴 하다만 하여튼, 한국에서는 무엇에나 다 거창하게 “문화”라는 두글자를 붙이기 좋아하며 거기에 따르는 축제가 말그대로 여기저기산골마을, 버덕마을들에서 비온뒤 똥버섯 돋듯, 눈온뒤 강아지 뛰놀듯 비일비재다.     우리 이 고장 령도들에서도 한국의 “선진문화”를 혜안으로 예민하게 통찰하고 인입접목을 해서 무슨버섯 문화, 무슨배 문화, 무슨꽃 문화,  무슨강 문화, 돌문화, 찰떡문화, 초두부, 감주, 비빔밥, 소싸움, 빙설, 얼음, 여름철, 겨울철… 문화가 버쩍 만발했는데 거기에 따르는 축제도 가지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어떤령도자는 사심이 발작했다.     우리고장 어느부락에서 처음으로 축제잔치를 하는데, 시작부터 말썽이였다. 그것은 1, 2령도가 생각이 달랐든 것이다. 1령도께옵서는 기발한 신통성과 창발성, 필요성, 절박성… 20여가지 “성”에 나중에는 당성까지 내 휘두르며 축제를 주장하고 얼빠수는 필요없다고 일언지하 내놓고 반기를 들었는데, 결국은 거수가결로 축제를 하기로 결정했다. 속심을 말한다면 반대자가 훨씬 더 많았으나 일빠수가 노려보는 관건적 시각에 미움깨 살거있나, 내돈 드는것도 아닌데… 아주 대찬성이기나 한듯 번쩍 혹은 정중하게 다수가 거수를 했든것이다.     얼빠수가 코방귀를 뀐 리유는 다른데서 야단법석 진행한 축제들의 사회효익(초상인자, 경제진흥, 문화건설에서)을 보면 그 휘황한 성과라든지 심원한 의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돈은 백만단위로 날아났다. 할일 없는 귀빈, 수장, 로령도를 모셔오고 외국에 통기하여 엉덩이가수(노래할때 엉덩이를 돌출하게 심하게 률동함. 그래서 군중들이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 듣기좋고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엉덩이가수라고 함.), 마구 뒹굴고 물구나무를 서며 고함을 지르다가는 도깨비가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사설을 하는(신형의 노래라고 함.) 무슨 예술그룹… 그런걸 품삵을 주고 사오고 축포를 터치고 꽃불을 쏘고 기념품(뢰물)을 주고 연회를하고 먹거리전시, 민속놀음활동도 하고… 하여튼, 며칠을 여가있는 사람들은 심심풀이를 하였다. 축제잔치에서는 예술공연이 주요한 한장면인데 우리네 연원들의 연출은 박수갈채를 받았으나 거금을 주고 사온 외국연원들의 연출은 박수 한짝 없었다. 소학교아인지 중학교아인지 한 녀자애 둘이 새된소리를 두번 질렀을 뿐이다.     이렇게 시작한 축제를 이 부락에서는 련8ㅡ9년을 힘차게 하고 이젠 걷어치웠다. 번마다 축제뒤끝에는 우리부락을 세계에 알렸다는둥 민족문화를 고양했다는둥 정신문명건설을 했다는둥… 총결에서 라렬하는 만질수도 없고 볼수도 없는 성과는 수두룩 했으나 원래 없는 재정에 뭉테기 지출만 뚜렸했다. 유형의 성과가 전혀 없은건 아니다. 일빠수동지가 티비화면에 몇초를 생광스럽게 면목을 낸바가 있고 무슨지면에 사진과 함께 인터뷰내용이 나온것이, 그리고 그간 일빠수 두사람이 상급으로 조동을 했는데 하나는 반급이 오르며 조동하고 하나는 한급을 올리 조동을 한것이 휘황한 성과였다.     첯번째 축제가 있은후 군중들은 부질없는 짓을 한다며 돈이 아깝다고 하였다. 하지만, 일빠수동지들은 만난과 교란을 맞받아 용왕매진 나가며 짓부시고 해마다 두세번씩 축제잔치를 강행하였다. 결국은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돈만 팔아먹고 개뿔도 쓸데없는 축제를 걷어치우라는 민성질타와 나중에는 상급의 엄명일갈에 축제놀음이 사라졌다. 그간, 돈은 몇백만을 날렸는지, 어느놈이 얼마를 먹었는지… 뒷소문은 무성해도 일절 비밀에 붙혀 정작 말썽을 이르킨건 하나도  없었다. 축제는 창위집체결정이였고 학비를 지불한것은 정정당당, 잘한일이라는 것이였다. 성적앞에서는 일빠수가 돌출해 지고 실책, 오책, 손실, 실패… 이런것들 앞에서는 창위가 집체로 나섯는데 다들 무사했다. 했다는 심각한 검사란 “학비를 냈다.” 하며 히쭉 웃는것이고 두어번 궁둥이를 터니 깨끗히 끝났다.     근년에 기층에서 정풍의 일환으로 “생활회의”라는 활동을 하는데, 이곳 군중들은 생활회의가 어떻게 되나 지켜 보았다. 군중들이 보건대는 몇년 진행한 축제놀음 한가지만에서도 서넛은 무사할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일빠수를 비롯해서 창위전원이 히쭉웃고 무사통과! 생활회의는 끝났다. 축제덕을 입어서 한급을 춰 상급에 간 전임 일빠수가 파견을 받고 이곳 생활회의 감독, 지도를 내려와 친히 참석했는데 그의 평가결론은 다음과 같다.     “… 에ㅡ 이번 본부락지도부의 생활회의는 상급의 지시정신에 완전히 부합된다. 준비가 충분히 잘 되였고 얼굴을 붉히고 땀을 흘리고 목욕을 거뿐히 하고 새옷을 입고 경쾌한 심신으로 사업에 뛰여들게 되였다. 단결의 대회 승리의 대회다…”     군중들의 평론은 좀 달랐다. 중구난방 떠들어 대는 그들의 공론을 대충 귀납하면 다음과 같다.     “… 그게 관관상호라는 게오. 양봉음위 흥상만하 부정부패 그런짓거리를 같이 해 먹은것도 있고 해 먹도록 도와준것도 있고… 서로 걸리니까… 하이야며 별장이며 벼슬팔아 모은돈… 다 무사하게 새겼군! 그간 이곳아덜이 해 놓은게 뭐이요? 상급에서 회의를 하면 따라서 회의를 하구 상급에서 시찰을 오면 따라서 댕기구 그리구 축제를 하느라 북쩍거리구 또 다른게 뭐이 있수? 없지?... 어느촌에서 갑자기 홍수피해를 당했을때 한눔이나 대갈짝을 내 밀었소?... 흥! 생활회의가 뭐, 단결의 대회, 승리의 대회라구?... 빌어먹을! 쯔쯔쯔. 엑!퉤!”                                      2016.2.26 ======================///           3.기준문제     옳고그름, 좋고나쁨, 길고짧고, 곱고밉고… 이런것들을 판단하는 데는 고금중외 모두 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기준이 애매모호해서 긴가민가 알쏭달쏭한 문제(현상)가 많다. 문단에도 기준문제가 있는것 같다. 개혁개방전에는 전쟁영화에서 우리편의 주요인물이 희생될때면 두세가지 만세를 부르거나 전진돌격을 웨쳤다. 혹은 당을 따라 혁명을 잘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절대 다수의 관중들이 감동을 하고 고무추동 교육을 받았었다. 극소수가 가슴에 총을 맞은 사람이 어떻게 구호를 웨치거나 긴 유언을 할수있겠냐고 하며 의문을 품거나 내놓고 떠들기도 했는데 그런사람들은 두뇌가 꽤 까다로운 사람들이지만 성분은 좋았다. 그래서 엄중할 경우에는 단, 당지부대회에서 검사비판교육을 한두번 받았다. 성분이 나쁜 사람이면 큰일난다. 하지만 그때세월 성분이 나쁜사람들은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며 살았기에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겉으로는 좋은말만 하고 나쁜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시절의 모든 문학예술작품은 무산계급의 정치돌출, 사상돌출, 영웅인물돌출이 절대적 주선률이 였다. 사상성과 예술성의 유기적 결합을 강조하긴 했으나 정치사상이 우선이였다. 작품은 군중을 공산주의 사상과 작풍으로 교육하며 공산주의길로 이끄는 힘이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진것 같다. “계급” “혁명” “만세” “투쟁” 지어는 공산당, 공산주의, 자본주의, 압박착취… 이런말들을 하기 매우 꺼리며 작품에 정치사상성언어가 한마디만 있어도 그 작품은 창비를 맞는다. 그리고 “정치냄새가 난다.” “문화혁명때냄새가 난다.”고 할뿐만 아니라 어용나팔수라느니 어용문인이라느니 앞잡이라느니 하며 지금이 어느때라구!... 원, 참! 한다. 지금이 어느땐가? 사회주의초급계단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공산당의 령도와 무산계급독재를 수호, 견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작가 예술가들은 인민의 인재들이며 당의 인재들이다. 하다면 홍색주선률에 접근하거나 가담해서 자신을 이바지하는 것이 본분이 아닌가… 알쏭달쏭하다. 작품의 언어사용에도 아기뚱한 점들이 있다. 한국식으로 영어나 불어, 독일어를 사용해서는 아무 거침이 없이 통과가 되지만 한어를, 례하면 위에서 쓴 창비(총살)거나 피주, 쏘폴(구멍가게), 써푸, 땐디, 꽈호, 양뤄촬… 이런 우리가 익숙할뿐만 아니라 우리말로 변형된 상용어들을 쓰면 권위어른께서 면색이 퍼러딩딩해 나며 심기가 불편해 하시는데, 그것 참 까리까리 하다. 사투리 사용에서도 한국작가가 사용한것은 “하ㅡ 대단하다니! 귀중한 문화유산을 발굴 계승하고… 참, 대단해!”하고 무릎을 치고 엉덩이를 들썽거리지만 우리고장 작가들이 감히 그랬다가는 날벼락이 떨어진다. 왜서 이러는지 리치를 알수없다.                                                                                                                                                                            2016.3.2 =============================///           4.가치관의 기준    지금은 가치관도 아주 다종다양한것 같다. 그것은 여러가지 기준때문인것 같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동서고금에서 천경지위의 천륜이다. 이건 세살먹은 애로부터 천하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극히 일반적인 상식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여 왔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현상이 있을뿐만 아니라 그런 현상을 하늘만큼 춰 올리니…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다. 매체에서 보면 일부 젊은이들이 산골에서 기여다니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부모는 상관하지 않고 경로당이며 보육원에 찿아가서 자선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친절하기가 입안의 혀보다 몇십배 더 나긋나긋 하다. 사랑의 마음이 어찌도 강렬한지 어떤 젊은이는 아프리카 원시부락까지 날아가서 자선봉사를 한다. 힘겹게 사는 부모가 있으면서, 부모는 관계치 않고 자선봉사에 열중하는것은 리해하기 어렵다. 부모에 대한 부담은 없으나 주변에 보살핌이 수요되는 동포가 상당히 있건만 기어이 외국으로 날아가 봉사를 하는건 무엇때문인지… 련합국에서 파견한 구조대천사도 아니면서. 내역은 어떻든간에 봉사장면을 대서특필, 대방특보 하는 관방매체의 용의는 또한 무엇인가…선진발달문명국이여서인지 내가 알기 힘든 가치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또 이런것도 있다. 그것은 동물애호, 동물사랑인데 참으로 납득이 않갈때가 많다. 옆에 쓰러진 사람이 있건만 코물이 난다고 호들갑을 떨며 발바리를 안고 병원으로 가는 귀부인, 유한마담, 배고파서 손가락을 빠는 아이들곁에서 고양이에게 고기전을 냠냠 먹여주는 아가씨, 할머니… 어떻게 보는것이 옳은가… 사람에게는 얼음보다 더 랭혹하지만 짐승을 보면 “얘네들, 쟤네들!” 아들이요 딸이요 손자요 하는데, 지어는 짐승과 살겠다는 남녀까지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케 하지만 이것도 동물애호 동물사랑으로 긍정해 주고 제창할바인가… 한때 류행되던 “지구촌”이란 말을 지금은 왜서인지 별로 쓰지 않지만 통신정보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어느구석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세상이 그길로 다 안다. 하다보니 벼라별 일들을 다 접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그야말로 “신기”한 것들이 많다. 미국에서 “전국방귀자랑대회”를 굉장하고도 정채롭게 성공리에 거행한후 이곳저곳서방문화권에서 미가슴(녀자)선발대회, 미엉덩이(녀자)선발대회, 미거시기(남 녀복식)선발대회, 미허벅지(녀자)선발대회, 남녀라체혼합군중대회, 남녀라체혼합시위 행진, 남녀라체혼합경축대회… 등등 범국가적행사들이 미국의 대대적인 지도와 지지하에, 솔선수범 이신작칙의 영향하에 거이 해마다 펼쳐지고 있다. 이런행사들에 대한 미국의 지도사상과 학술리론을 보면 그것이 “인성, 인권의 원초적 본성이며 자유, 민주의 요구며 발휘”라는 것이다. 선진문명의 표징이기에 세계가 모두 환영해야 하며 따라배워야 하며 나아가서는 보급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침을 한발이나 흘리면서 인성의 전면적 해방이며 인권자유의 절대적 보장이며 이것이야말로 천당이라고 극찬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물질문명은 발달했으나 정신문명은 극도로 타락했다고 한다. 서양을 포함해서 세상만민의 절대 대부분 사람들은 “미친놈들이 미친지랄을 한다. 이 세상이 제대로 잘 되자면 미국놈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격한 웨침을 한다. 세상의 모든일에는 진리가 오직 하나뿐이라고 하는데, 기준도 그런거 아닌가… 그 유일정확한 기준으로(진리기도 한.) 하나의 지구촌, 하나의 인류가 되자면 세월은 얼마가 더 흘러야 겠는지… 우리를 보더라도 통일인식, 통일사상, 통일행동이 그렇게 쉬운일이 아님을 알수있지 않은가… 일조에 모든사람이 공산주의사상과 풍격으로 통일된다면, 동일한 가치관을 수립한다면 세상에 무슨 말썽꺼리가 있겠는가?!... 일만년이 오래지만 조석을 다투어야 하리…                                                              20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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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피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449  추천:0  2022-05-02
    2022년 2월24일. 새벽 5시30분, 폭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 아이들과 우리의 배낭을 쌌다. (…) 내 그림들을 파일에 넣었다. 우리의 아늑한 집은 방공호가 되어버렸다. 창문과 문 위는 온통 십자가들이다.   *십자가: 폭격시 유리가 터지지 않도록 십자 모양으로 테이핑한 것   2월28일. 미사일이 옆집에 떨어졌다.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 날이 갈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진다.   3월1일. 지하 생활 6일 만에 우린 바퀴벌레가 되어버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폭파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개구멍을 파악하고 있다가, 곧장 기어들어간다. 음식은 가루 한 톨까지 다 먹어치운다.   3월3일. 전쟁 8일째 밤 이후 나는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누구와 그리고 어디로 떠날지도 정하지 않은 채. 그냥 핸드폰을 들고 택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들이 도와주었다.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택시 연락처를 주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택시기사는 나우치카에 있다고 했다. (…) 20분 후 우리는 기차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서 가게 되는 상황에 대비해 아이들의 배낭을 버렸다.   전쟁 첫째 날 내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무서운 사실이지만 그 생각으로 미리 적어두었다.   3월6일. 다음날 새벽 5시 우리는 바르샤바 시내에 위치한 Mercure 호텔에 도착했다. (…) 결국 겉옷만 벗은 채 쓰러져 잠들었다.   3월12일. 엄마는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했다. 엄마는 하리코프(하르키우)에 외삼촌과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남았다. (…)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뿐.   그리고 2022년 4월, 책 앞에 쓴 ‘작가의 말’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이 일기를 적는 이유는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 위해서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 /황예랑 편집장
795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이야기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266  추천:0  2022-05-02
2022.04.27  공유하기 북마크   글자크기 변경 인쇄하기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글·그림|정소은 옮김|이야기장수| “내 나이 서른다섯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책 는 이 같은 ‘작가의 말’로 문을 연다. 지난 2월24일 오전 5시, 그는 폭격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짐을 챙기기 시작한 그는 아홉 살과 네 살 아이의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는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다. 그러나 “왜 적는 거야?”라고 묻는 네 살 딸에겐 솔직히 답하지 못한다. “우리, 지금 놀이를 하는 거야.” “무슨 놀이?” “‘전쟁’이란 놀이.”   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삶이 뿌리째 뽑힌 한 우크라이나 작가가 연필 한 자루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이다. 폭격 9일째 국경 밖으로 탈출한 저자는 남편과 이별해야 했다. 이야기장수 제공"  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삶이 뿌리째 뽑힌 한 우크라이나 작가가 연필 한 자루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이다. 폭격 9일째 국경 밖으로 탈출한 저자는 남편과 이별해야 했다. 이야기장수 제공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뿌리째 뽑혔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나고 자란 그레벤니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는 “전쟁 전 우리 삶은 마치 작은 정원 같았다”고 말한다. “그 정원에서 자라는 모든 꽃들은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꽃피우는 정확한 계절이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했던 우리 정원은 날이 가면 갈수록 풍성하게 자랐다.” 그랬던 그는 이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는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전쟁으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연필 한 자루로 기록한 책이다. 전쟁 발발 후 지하실을 방공호 삼아 8일을 보내고, 가족과 이별한 채 피란을 떠나는 과정이 일기 형식으로 담겼다. 이 책은 먼저 출간된 원서 없이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출판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한국 출판사의 편집자·번역자가 작가와 직접 소통하며 작가가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보내온 그림의 연필선을 살려 책으로 펴냈다. 평소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그림 작업을 해오던 작가지만 전쟁통 와중 연필과 종이만이 그의 작업 도구가 됐다. 그레벤니크는 “바깥에서 전투기들이 우리 집을 폭격할 때 그림은 나만의 내면세계를 향한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었다”며 “내 모든 두려움을 종이에 쏟아부었다”고 썼다.   작가는 혹시 모를 ‘사망 후 식별’을 위해 네 살 딸의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었다. 이야기장수 제공 책에는 폭격이 시작된 날부터 3월 중순까지 작가의 일기가 담겼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이들 가족은 9층 집에서 지하실로 달려내려 간다. 지하실은 마을 사람들의 방공호가 됐다.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폭격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지하 생활’도 길어진다. “거리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바로 옆이다.”(2월27일) “미사일이 옆집에 떨어졌다.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 날이 갈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진다.”(2월28일) “지하 생활 6일 만에 우린 바퀴벌레가 되어버렸다.”(3월1일)   은행이 문을 닫고 카드 거래가 정지되며 현금이 없어 생필품을 사지 못하고, 동물 먹이로 쓰려던 빵 조각을 씹으며 연명한다. 딸 베라는 말한다. “엄마, 난 초콜릿을 오래 아껴 먹을 수 있어. 볼 안쪽에 붙여두었어.” 지하실에 분필을 가져가자 아이들은 암벽화처럼 벽에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폭격 소리를 들으며 벽에 ‘평화’라고 적는다.   의 저자이자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이야기장수 제공"  의 저자이자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이야기장수 제공 거친 연필선의 글과 그림이 가득한 책장마다 전쟁의 공포가 묻어난다. 작가는 점점 가까이서 울리는 폭격 소리에 지하실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폭격은 ‘러시안 룰렛’ 같다. “5분 후 어디선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제비뽑기, 아니 러시안 룰렛이다. 오늘 넌 타깃이 되지 않았어. 이제 내일까지 꼭 살아남아.” 결국 전쟁 9일째가 되던 날, 그의 가족은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내 인생 35년을 모두 버리는 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배낭 하나만 짊어진 채, 목적지도 모른 채로 무작정 뛰어든 피란 열차는 “이 세상 모든 눈물로 가득”하다.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들이 눈물을 삼키며 아이들을 달랜다. 성인 남자는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계엄령으로 인해 작가도 곧 남편과 이별한다. 하루키우에선 거동이 불편한 외조부·외조모를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엄마와도 헤어졌다. 탈출 후에도 아슬아슬한 순간은 계속된다. “우리가 지옥에서 탈출한 것은 기적이다. 우리가 지나온 후 이르핀 지역에서 철도가 폭발했다.”   무사히 국경 밖으로 탈출했지만 이제 ‘전쟁 난민’이 된 작가와 두 아이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현재 불가리아의 한 소도시에 임시 난민 자격으로 머물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고향 하르키우 소식을 매일 애타게 기다린다. 작가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책 출간 소식을 전하며 “내가 가진 것은 노트와 연필뿐이었지만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면서 “나의 주된 메시지는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 전쟁을 멈추라는 것”이라고 썼다. /선명수 기자
795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그림책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125  추천:0  2022-05-02
"시내가 폭격당하고 있다" 우크라 그림책 작가의 '전쟁일기' 2022-04-15   인쇄     문학동네 새 브랜드 이야기장수서 국내서 세계 첫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전쟁 첫째 날 내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출신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36)는 2022년 2월 24일 오전 5시 폭격 소리에 잠이 깼다. 이 상황을 9살 아들 표도르와 4살 딸 베라에게 설명하고 아이들 팔에 인적사항, 연락처 등을 적었다. 폭격이 시작되자 작가가 딸의 팔에 적은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 [이야기장수 제공]   날이 밝은 뒤 방공호가 된 지하실로 내려가 8일을 보냈다. 폭발음이 들리지 않으면 집에 올라가 먹을 것을 챙기고 미사일이 떨어지면 두 아이의 손목을 붙들고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거리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바로 옆이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무섭다."(2022년 2월 27일) "시내가 폭격당하고 있다. 미사일이 이바노바 사거리에 떨어졌다. 번화하고 아름다운 나의 도시를 그들은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다."(2022년 3월 1일)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이야기장수 제공]   그레벤니크 작가는 지하 생활과 피란, 어머니·남편과의 생이별 등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너진 삶을 연필 한 자루로 기록했다. 2015년부터 '엄마, 화내지 마' 등 그림책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그는 평소의 화려한 그림체 대신 거친 연필 선으로 그려나갔다. 이 다큐멘터리 일기장은 작가와 한국의 편집자, 번역가가 직접 소통하며 완성해 '전쟁 일기'란 제목의 책이 됐다. 우크라이나에선 출판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워 문학동네 출판그룹의 새 브랜드인 '이야기장수'가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이야기장수의 첫 책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나의 도시를 그들은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다" 그렌벤니크 작가의 스케치 [이야기장수 제공]   그레벤니크 작가는 종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우크라이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피란 과정에서 어렵게 택시를 구해 10분 만에 터전을 정리하고 어머니를 남겨 둔 채 떠나는 모습, 계엄령으로 성인 남성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지 못해 남편과 생이별하는 순간이 저릿하게 떠오른다. "남편은 우리를 버스에 태웠다. 그는 더이상 우리와 함께 갈 수 없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남편은 온 힘을 다해 우리를 격려해주었다."(2022년 3월 5일)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는 작가의 말처럼 스케치한 그림에는 불안과 공포, 슬픔, 죄책감, 서글픔이 엉켜있다. 지하실에서 친구가 된 아이들이 벽면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임신부 모습, 피란 열차를 타려고 기차역에 몰린 인파, 남편과 헤어지는 장면…. 방공호가 된 지하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이야기장수 측은 작가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일기장 사진을 낱장으로 받았다. 피란 과정에선 그림을 디지털화 할 수 없었다. 작가의 그림을 일일이 연필 선을 따고 명암을 실제와 근접하게 맞추는 과정을 거쳤다. 작가는 현재 두 아이와 함께 폴란드를 거쳐 불가리아에서 임시 난민 자격으로 머물고 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들과 고향 하르키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는 "우리가 지옥에서 탈출한 것은 기적이다. 우리가 지나온 후 이르핀 지역에서 철도가 폭발했다"고 적었다. 이 글을 번역한 러시아 문화 전문가 정소은 씨는 "이것은 수백만 평범한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책의 인세는 작가에게 전달되며 번역료 전액과 출판사 수익 일부는 저자가 추천한 기관인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된다. /연합뉴스
795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록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447  추천:0  2022-04-08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 지원 위해 재결합 2022.04.08  박소영 기자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 / AP 연합뉴스   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재결합한다. 영국 가디언과 AP 통신 등은 핑크 플로이드가 약 30년 만에 재결합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새 노래를 발표한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새 싱글 '헤이 헤이 일어나'(Hey Hey Rise Up)에는 창립 멤버인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 2000년대 이후 활동을 같이 해 온 가이 프래트와 프로듀서 겸 작곡자 니틴 쇼니, 고인이 된 옛 멤버 릭 라이트의 딸 갈라가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밴드 붐박스(BoomBox)의 리더 안드리 흘리우뉴크가 러시아 침공 직후 불러 화제가 된 우크라이나 민중가요도 삽입됐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에 기부된다. 1965년 런던에서 결성된 핑크플로이드는 1960~1970년대 록 음악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였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며, '벽'(The Wall), '달의 뒷면'(The Dark Side of the Moon) 등의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억 5000만 장 이상 판매됐다. "우크라 위해…" 록밴드 핑크플로이드 재결합 약 30년만에 새 싱글 발표 우크라 `민중가요` 삽입 최현재 기자  2022.04.08  왼쪽부터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전 멤버), 닉 메이슨, 故 릭 라이트.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설의 록밴드를 다시 뭉치게 했다.  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출신의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약 30년 만에 재결합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새 노래 '헤이 헤이 일어나(Hey Hey Rise Up)'를 발표했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에 기부될 예정이다.  이 노래 제작에는 핑크 플로이드 창립 멤버인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 외에 2000년대 이후 활동을 같이해 온 가이 프랫과 프로듀서 겸 작곡자 니틴 쇼니, 고인이 된 옛 멤버 릭 라이트의 딸 갈라가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밴드 붐박스(BoomBox)의 리더 안드리 흘리우뉴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소셜미디어에 올린 뮤직비디오에서 부른 우크라이나 민중가요 몇 소절도 이 노래에 삽입됐다. 2015년 런던에서 붐박스와 공연한 적이 있는 길모어는 흘리우뉴크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성소피아 성당 앞에서 군복 차림으로 20세기 초 우크라이나 독립군을 기리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이 노래를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시 흘리우뉴크는 미국 공연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뮤직비디오를 찍은 뒤 여러 전투에서 싸웠으며 이 과정에서 폭탄 파편이 얼굴에 박히기도 했다. 길모어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순간 내가 가진 플랫폼을 활용해 뭔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길모어는 자신의 며느리가 우크라이나인이어서 손주들 역시 반은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며느리가 매우 연로하고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 친정어머니를 다른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 국경 너머로 간신히 대피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1965년 런던에서 결성된 핑크 플로이드는 사회성 짙은 가사로 유명한 록밴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록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였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현재 기자] ⓒ 매일경제 ========================/// 우크라이나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인 남성이 피아노를 치며 열창합니다. 현지의 유명 록밴드 '오케안 엘즈이'의 리드 싱어 바카르 추크 씨입니다. 원래는 팬들이 가득 찬 콘서트장에서 노래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해 길거리 곳곳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피란민이 모여 있는 방공호와 부상당한 병사들이 있는 병원, 또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며 노래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건데요. 그는 러시아 군함의 발사 거리 내에 있는 남부 도시 오데사에서도, 러시아군의 맹폭격을 받은 북동부 도시 하르키우에서도 길거리 공연을 펼쳤는데 외신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록 투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국민들에게 진한 위로가 됐을 것 같아요."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SBS 뉴스  
795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무라토프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184  추천:0  2022-04-08
노벨평화상 수상 러 기자 "붉은 페인트 피습..." 2022-04-08   글자크기조정  
795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언어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146  추천:0  2022-04-08
우크라이나어 배우기 열풍 2022.04.08.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듀오링고의 우크라이나어 학습 화면 [듀오링고 홈페이지·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투자회사의 동유럽 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스캇 리처즈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로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었으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전근이 보류됐다. 이미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리처즈는 지금 우크라이나 가톨릭 대학의 온라인 강의에 등록해 우크라이나어를 '열공'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우크라이나어로 그들의 문화, 그들의 자유와 침공을 맞아 그들이 보여준 놀라운 용기를 칭송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처럼 우크라이나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에 따르면 이 앱을 이용하는 전 세계 우크라이나어 학습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577% 증가했고 특히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200만명 이상 몰린 폴란드에서는 2천677%나 급증했다. 날 때부터 러시아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민족의식이 고양된 지난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어를 배우겠다는 열기가 확산해 왔다. 최근 개설된 '우크라이나어 회화클럽'의 신규 등록자는 사흘 만에 1천명에 육박했다. 우크라이나 시인  우크라이나 시인 리부바 야킴추크가 지난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시를 낭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부모가 러시아, 할머니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출신인 캐나다인 폴리나 레비나는 키이우와 도네츠크에서 2년간 유엔 관련 인도주의 업무에 종사하면서 러시아어만 사용해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애틀랜타의 IT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애비 데이비스처럼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돕기 위해 이 나라 말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IT 인프라 강화를 돕겠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또 다른 외국어 학습 앱인 핌슬러로 우크라이나어를 공부하고 있다. 일부 외국어 학습업체들은 자사의 자원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링큐는 우크라이나어 무료 강좌를 개설했고 외국어를 배우려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무료 프리미엄 계정을 제공한다.  교사들의 협동조합인 마이쿨클래스는 우크라이나 교사들이 이용할 때는 수수료를 면제하고 신청 절차도 간소화했다. 듀오링고는 우크라이나어 학습자에게서 나오는 광고 수입을 전액 우크라이나 구호 활동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레바논으로 이주한 난민들에게 언어 교습으로 생계 수단을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설립된 나타칼람은 지난달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 강사들을 처음 채용했다. 강사들은 시간당 최소 10달러의 급여를 받는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우크라이나어 학습 열풍은 우크라이나의 독자적인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인식과는 상반되는 흐름이다. 러시아제국과 옛소련 시절 탄압받고 빈농들이 사용하는 러시아어 방언으로 멸시당했던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언어라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두 언어는 이탈리아어 및 포르투갈어와 비슷한 정도의 유사성을 지닌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두 언어에 모두 능통한데 지난 2019년 우크라이나에서 실시된 조사에서는 집에서 주로 쓰는 언어가 '우크라이나어'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많았고 '러시아어' 또는 '둘 다' 쓴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8%와 25%로 나타났다.  폴란드 난민학교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795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노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284  추천:0  2022-03-24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피소에서 한 어린 소녀가 노래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른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온라인상에 공개돼 전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렛 잇 고’를 부르는 아멜리아의 모습.(사진=마르타 스메호바 페이스북 캡처   8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 뉴욕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근 온라인상에 우크라이나 소녀 아멜리아가 키이우의 대피소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르는 영상이 올라왔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아이 울음소리로 소란스럽던 대피소는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금세 조용해졌다. 아멜리아가 노래를 마치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대피소에서 소녀의 노래를 들은 마르타 스메코바는 당시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그는 “폭탄 대피소에서 소녀의 첫 마디가 나오자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일을 제쳐두고 이 소녀의 노래를 들었다. 남자들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노래 첫 소절에서 이미 (아멜리아 노래를 듣기 위해) 완벽한 침묵이 흘렀다”고 적었다.    해당 영상은 SNS를 통해 공유됐고 이 곡의 원곡자인 가수 겸 배우 이디나 멘젤도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영상을 공유했다. 그는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글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기색을 의미하는 하늘색, 노란색 하트모양 이모티콘을 적었다. 영상은 스메호바의 페이스북에서만 10만 회 이상 공유됐으며 트위터, 유튜브 등에도 공개돼 조회수는 각각 수백만 회를 기록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우크라이나에 영광을”,“가슴이 너무 아프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 “... ...난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전쟁을 피해 몸을 숨긴 시민들로 가득 찬 좁은 대피소. 긴장한 듯 의자에 올라서서 머뭇거리던 금발의 소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대화 소리와 아기 울음 소리로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유모차에 실린 아기를 돌보던 여성은 눈물을 흘렸고, 노래가 끝나자 시민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소녀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내려온다. 러시아와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한 대피소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의 러시아어 버전을 부르는 소녀 아멜리아의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노래는 고난과 역경, 두려움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대피소에 함께 있던 시민이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린 이 영상은 각종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조회수가 300만을 넘어섰다.   지난 3일 영상을 처음 온라인에 올린 시민 마르타 스메코바는 “아멜리아는 내게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관중 앞에서 노래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며 “아멜리아가 노래를 부르자 대피소에 있던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래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아멜리아의 노래에 ‘렛 잇 고’ 원곡을 부른 가수 겸 배우 이디나 멘젤도 화답을 보냈다. 자신의 트위터에 영상을 공유한 멘젤은 “우리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인 파란색과 노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겼다. =============================/// "큰 무대서 노래하고 싶어요" 우크라 '렛 잇 고' 소녀 꿈 이뤘다 이선영 에디터 2022.03.22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한 대피소에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를 불러 화제가 된 우크라이나 소녀가 폴란드 자선 콘서트 무대에 섰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21일 미국 CNN 등 외신들은 폴란드로 탈출한 우크라이나 7살 여아 아멜리아 안소비치 양이 지난 20일 폴란드 중부 우치의 아틀라스 아레나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 '우크라이나와 함께'에 출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안소비치 양은 우크라이나 전통 의상을 입고 긴장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습니다. 공연장을 메운 수천 명의 관중들은 휴대전화 불빛을 좌우로 흔들며 응원을 보냈습니다. 이날 공연은 TV로도 중계돼 많은 사람들이 안소비치 양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 공연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성금이 38만 달러(약 4억 6,000만 원) 이상 모였고, 공연을 주최한 폴란드 TVN미디어그룹은 80만 달러(약 9억 8,000만 원)를 추가로 기부했습니다. 앞서 안소비치 양은 이달 초 우크라이나 키이우 한 대피소에서 '렛 잇 고'를 불러 화제를 모았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긴장감과 공포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맑은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당시 대피소에 있던 한 남성은 SNS에 영상을 게시하며 "아이가 관객이 있는 큰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안소비치 양의 '렛 잇 고'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가 1,0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겨울왕국'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가수 겸 배우 이디나 멘젤은 자신의 SNS에 해당 영상을 공유한 뒤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응원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현재 안소비치 양은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폴란드 임시 거처에서 할머니, 오빠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아직 키이우에 남아 군인들을 돕고 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한편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후 우크라이나 밖으로 피란을 떠난 난민 수는 21일 기준 35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약 200만 명이 폴란드에 머물고 있습니다. '뉴스 픽'입니다.  출처 : SBS 뉴스   ======================///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우크라이나 방공호에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제곡 ‘렛잇고’(Let it go)‘를 불러 감동을 준 7세 여아가 폴란드에서 열린 자선콘서트 무대에 섰다. (사진=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AP통신은 폴란드로 탈출한 우크라이나 7살 소녀 아멜리아 안소비치 양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폴란드 중부 도시 우치의 한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를 위한 자선 콘서트에 출연해 수만 명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다고 전했다. 아멜리아는 이날 공연에서 우크라이나 전통 의상인 자수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고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우크라이나에 영광과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곡을 노래했다. 관중들은 연대의 표시로 휴대전화로 불빛과 휴대 조명을 들어 공연장을 밝혔다. 이날 콘서트는 TV로 중계됐고 우크라이나를 돕는 38만 달러(약 4억600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 공연을 주최한 폴란드의 TVN미디어 그룹도 80만 달러(약 9억8000만원)를 기부했다. 현재 아멜리아는 할머니, 오빠와 함께 폴란드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의 부모는 여전히 키이우에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앞서 아멜리아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대피소에서 ‘렛잇고’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당시 대피소에 있던 한 남성이 아멜리아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수백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원곡자인 가수 멘젤도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글과 우크라이나 국기색을 의미하는 하늘색, 노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기며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 "겨울왕국" 주제가 "렛잇고"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오늘 밤 눈 덮인 산이 하얗게 빛나 Not a food print to be seen 발자국도 보이지 않아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고립된 왕국 그리고 나는 그곳의 여왕이 된 것 같아 The wind is howling like swirling storm inside 내 마음속의 폭풍처럼 바람도 울부짖어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ve tried 감출 수 없었어, 하늘은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알거야 ​ ​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받아들이지마, 보이지 마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내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착한 소녀가 되야 해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감춰, 느끼지마, 드러내지 마 Well now they know 하지만 지금 그들은 알겠지 ​ ​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Can't hold it back anymore 더이상 감춰둘 수는 없어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Turn away and slam the door 돌아서서 문을 닫아버려 L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tay 난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아 Let the storm rage on 폭풍아 몰아쳐라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난 추위 따윈 한 번도 신경 쓴 적 없어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 everything seem small 멀어지면 모든 게 작게 보이니 참 웃기지 ​ ​ ​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그리고 한 때 날 지배했던 공포도 Can't get to me at all 나를 전혀 괴롭힐 수 없어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때야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한계를 시험하고 돌파하는 거야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옳은 것도 , 틀린 것도, 지켜야 할 규칙들도 이젠 없어 I'm free 난 자유로워 ​ ​ ​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나는 바람과 하늘과 함께 일거야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You'll never see me cry 더이상 내가 우는 것을 못 볼거야 ​ ​ ​ ​ Here I stand 난 여기 서 있어 And here I'll stay 그리고 여기 머무를 거야 Let the storm rage on 폭풍아 몰아쳐라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내 힘이 하늘에서 땅으로 휘몰아쳐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내 영혼을 얼음결정체들 속에서 마구 소용돌이 치고 있어 And one through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내 생각은 얼음같이 찬바람처럼 확고해져 I'm never going back, the past in the past 난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 과거는 과거일 뿐 ​ [출처] 겨울왕국
7952    [그것이 알고싶다] - "노벨 평화상" 댓글:  조회:2212  추천:0  2022-03-24
시사상식사전 노벨 평화상      노벨상 6개 분야 중 하나로 평화 증진에 현저히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1901년 노벨상 제정 이후 평화상은 2021년까지 총 102차례 수여돼 개인 109명·단체 28곳이 받았으며, 첫 번째 노벨 평화상은 1901년 국제적십자위원회 설립자인 스위스의 장 앙리 뒤낭과 국제평화연맹의 설립자인 프랑스의 프레데리크 파시가 수상했다.             외국어 표기     Nobel Peace Prize(영어)   1901년 노벨상 제정과 함께 수여되기 시작한 평화상은 평화 증진에 현저히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노벨 평화상은 1901년 국제적십자위원회 설립자인 스위스의 장 앙리 뒤낭과 국제평화연맹 설립자인 프랑스의 프레데리크 파시의 공동 수상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총 102차례 수여돼 개인 109명, 단체 28곳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다만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4년‧1915년‧1916년‧1918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던 1939~1943년에는 수상자 선정이 없었다. 또 1923년‧1924년‧1928년‧1932년‧1955년‧1956년‧1966년‧1967년‧1972년에도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1948년에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으나 암살당하면서 그해 노벨위원회는 "살아 있는 후보 중 적절한 인물이 없다'며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노벨 평화상 선정과 시상 다른 노벨상이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한림원(스웨덴 아카데미) 등에서 선정하는 것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과 시상 권한을 갖고 있다. 이는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으로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내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부문의 시상자 선정과 수상식은 스웨덴에서 하는 것에 비해, 평화상 수상자 선정과 시상식은 노르웨이에서 이루어진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결정에 관한 전권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갖고 있는데,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출된 5명의 위원은 후보자 추천 작업과 선별 검사, 최종 결정 과정에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보장받는다.  매년 10월 노벨위원회는 각국 전문가 1000여 명에게 서한을 보내 평화상 후보를 추천받는다. 후보자 추천권은 ▲노벨위원회 전‧현직 위원 및 노벨연구소의 자문관 ▲각국 의원 및 정부 각료와 국제 의회연맹 회원 ▲국제 중재재판소 및 국제 사법재판소 재판관 ▲국제 항구평화사무국 위원 ▲국제법 연구소 연구위원 ▲현직 법학·정치학·역사학·철학 교수 ▲노벨 평화상 역대 수상자 등에 있다.  서한을 받은 후보 추천위원은 다음해 2월 1일까지 추천 이유서를 첨부해 추천한다. 추천위원이 자신을 추천할 수는 없다. 노벨위원회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후보 범위를 좁혀가며 선별작업을 벌인다. 최종 수상자는 노벨위원회 5인 전체 회의에서 결정하며 수상자의 신원은 발표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다. 수상식은 노벨 사망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다.  한편, 노벨상은 생존자 개인에게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평화상은 단체나 조직에도 수여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국적 2021년 기준으로 미국이 23명으로 가장 많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이어 프랑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수상자 국적     수(명)     미국     23     프랑스     8     영국     7     스웨덴, 독일     5     남아프리카공화국     4     스위스, 벨기에, 아일랜드, 이스라엘, 러시아     3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아르헨티나, 북아일랜드, 이집트, 폴란드, 동티모르, 라이베리아     2     이탈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캐나다, 북베트남, 일본, 인도, 멕시코, 코스타리카, 티베트,  미얀마, 과테말라, 팔레스타인, 한국, 가나, 이란, 케냐, 방글라데시, 핀란드, 중국,  파키스탄, 콜롬비아, 콩고 민주공화국, 이라크, 에티오피아, 필리핀     1     2010년 이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그 업적   연도     수상자     업적     2010     류샤오보(중국)     중국의 기본 인권 신장을 위한 비폭력 투쟁     2011     엘런 존슨 설리프(라이베리아),  레이마 그보위(라이베리아),  타와쿨 카르만(예멘)     여성 인권을 위한 비폭력 투쟁     2012     유럽연합(EU)     유럽의 평화와 화합에 기여     2013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전 세계 화학무기 폐기 주도     2014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  카일라쉬 사티아르티(인도)      아동·청소년의 인권 향상에 기여     2015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튀니지의 민주화 주도     2016     후안 마누엘 산토스(콜롬비아)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의 평화협정 서명     2017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     핵무기 관련 활동 반대 운동 주도     2018     나디아 무라드(이라크),  데니스 무퀘게(콩고 민주공화국)     전쟁 성폭력 종식 노력     2019      아비 아머드 알리(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수십 년을 이어온 오랜 분쟁을 종식시킴     2020      세계식량계획(WFP)     기아를 퇴치하고 분쟁지역 평화에 기여해 굶주림이 전쟁과 갈등의 무기로 활용되는 것을 방지     2021     마리아 레사(필리핀), 드미트리 무라토프(러시아)     민주주의와 영구적 평화의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    [네이버 지식백과] 노벨 평화상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세계평화인물열전 노벨평화상: 기록과 역대수상자 노벨평화상 수상에 얽힌 다양한 기록들   기록으로 보는 노벨평화상 1901-2017 1901-2017년까지 시상횟수 : 총 98회 1, 2차세계대전 기간을 포함해 19년은 선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14-1916, 1918, 1923-24, 1928, 1932, 1939-43, 1948, 1955-56, 1966-67, 1972) 그리고, 1925년과 1962년에는 수상자는 선정되었으나, 시상이 1년 연기되었다. 총 98회의 전체 수상자 수 : 131   2017년 현재까지, 개인은 104명, 단체는 27개가 수상. 단, 국제적십자위원회가 3번 수상 (1917년,1944년,1963년), UNHCR이 2번 수상 (1954년,1981년), 따라서 실제 단체의 개수는 24개. 수상자가 1명(개)인 경우 vs 여러 명(개)인 경우     수상자의 평균 연령: 62세   대륙별 분포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대륙별 분포. 역대 수상자 전체를 보면 서유럽과 북미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백인⋅서구중심성은 노벨평화상 비판에 빠지지 않던 단골 메뉴였다. 1901-2017년 사이 전체 수상자 중 서유럽과 북미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65%에 달한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도 미국(21명), 프랑스(9명), 영국(7명) 순이다. 특히 초기 50년간 북미와 서유럽이 아닌 곳에서 수상자가 배출된 경우는 1936년 아르헨티나의 사베드라 라마스 단 한 번뿐이었다. 아프리카인이 최초로 선정된 것은 1960년, 아시아인은 1974년에 와서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인권의 시기에 이르러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개선되기 시작한다. 특히 21세기에 와서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수상 비율이 약 70%, 미국과 유럽은 약 25%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최초의’ 수상자들   진기한 기록들   여성 수상자 1901년부터 2017년까지 총 104명의 수상자 중 여성수상자는 16명으로 전체의 15.3%에 불과하다. 특히 처음 75년간 여성수상자는 단 3명으로, 그마저 모두 유럽과 미국 출신이었다. (이는 노벨위원회 구성과도 관련된다. 약 50년간 노벨위원회는 단 1명의 여성위원도 갖지 못했다. 현재는 총 5명 중 3명이 여성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인권의 시기를 거쳐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대(2001-2017)만 따졌을 때 여성 비율은 35% (총 17명 중 6명)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상 파리 평화협상 중 레득토(오른쪽)와 키신저(왼쪽) 1973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리더 레 득 토의 수상 결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노벨평화상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경우로 꼽힌다. 두 사람은 같은 해 파리에서 이루어진 베트남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두 전쟁 당사자 간의 다분히 정치적인 협상에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사람들은 nobel 평화상이 아니라, 전쟁상 또는 ‘ig-noble’ 평화상이라고 조롱했다. 뿐만 아니라 레 득 토는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는 수상자로 지명된 최초의 아시아인이자, 최초의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이를 거부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라는 영예(?)를 얻는다. 키신저는 수상을 허락했지만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 이후 노벨평화상을 반납하고자 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사건으로 노벨위원회 위원 2명이 위원직을 사임했다. 받았어야 했으나 받지 못한 사람들: 간디와 톨스토이     인도의 간디(왼쪽)과 러시아의 톨스토이(오른쪽)은, 의외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평화인물들이다. ⓒ Unknown / http://lj.rossia.org/users/john_petrov/849786.html 당연히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거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인도의 간디와 러시아의 톨스토이다. 간디는 무려 5번이나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끝내 받지 못했다.(1937-39, 1947-48년) 노벨평화상은 물론,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평화상도, 문학상도 받지 못했다. 특히 ‘평화와 비폭력의 아이콘’인 간디가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수상이 유력시됐던 1948년에도 간디가 상을 받지 못한 것은 발표 몇 달 전 그가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적합한 후보자가 없다”며 수상자 없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1961년 스웨덴 출신이자 노벨재단 이사장 아들이었던 D. 함마르셸드에게는 사후수상이 허락된 바 있다. 또 위원회가 사후수상 불가를 정식으로 공식화한 것도 간디 사후 거의 30년이 지난 1974년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간디의 수상실패를 그의 갑작스런 죽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간디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었다. 후자는 비폭력 원칙에도 불구하고 간디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더 큰 폭력과 유혈을 야기했다는 점 (특히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과 관련해), 그가 지나친 인도 민족주의자라는 점 등을 근거로 간디의 수상을 반대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노벨위원들의 그런 견해가 노르웨이와 영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당시의 백인우월주의나 서구중심주의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간디의 사례는 ‘노벨평화상의 가장 큰 실수’, 또는 ‘노벨평화상의 수치’로 불린다. 이런 사람들도 노벨평화상 후보에? 히틀러, 스탈린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는 1939년 스웨덴 국회의원에 의해, 스탈린은 2차대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45년과 1948년 두 차례나 후보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한국의 전두환도 추천된 바 있다. 그 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한 유명인으로는 윈스턴 처칠(대신 처칠은 2차대전 회고록으로 헤밍웨이를 제치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아르헨티나의 후안 & 에바 페론, 세계 평화학의 아버지 요한 갈퉁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벨평화상: 기록과 역대수상자 - 노벨평화상 수상에 얽힌 다양한 기록들 (세계평화인물열전, 이문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노벨 평화상 러시아 언론인, 우크라 난민 위해 메달 경매   MBC뉴스     2022.03.24.     투데이 이슈톡입니다. 노벨 평화상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 기여한 공로자에서 수여하는 상인데요. 러시아 최초의 노벨 평화상을 받은 언론인이 자신이 받은 메달을 경매에 내놓겠다고 밝혀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렸습니다. 첫번 째 키워드는 "노벨상의 진짜 가치 경매 나온 평화상"입니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받고 활짝 웃는 주인공! 바로 러시아 반체제 인사이자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를 이끌고 있는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입니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건데요. 이들 매체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격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전쟁의 참상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폐간 위협을 받으면서도 푸틴 대통령의 부정부패를 폭로 중이라는데요. 진실을 알린 보도로 수상한 노벨 평화상을  우크라이나를 위해 다시 내놓은 무라토프 편집장. 메달이 비싼 가격에 팔려서 그의 바람대로 전쟁으로 다치고 아픈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오슬로(노르웨이)=AP/뉴시스] 지난해 12월11일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1.12.11.  [서울=뉴시스]송재민 인턴 기자 =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언론인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노벨상을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CNN,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60)는 이날 성명을 통해 "2021년 노벨 평화상을 판매해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기금에 보태겠다"고 밝혔다. 무라토프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10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있다"며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피란민, 부상을 입은 어린이들과 메달을 공유하고 싶다. 경매를 진행할 경매 업체를 구한다"고 했다. 앞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무라토프는 영상 성명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시작했다"며 "전쟁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는 슬픔과 수치심을 짊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후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격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무라토프는 편집 회의를 통해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된 기사를 나란히 배치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우리 신문의 입장"이라고 무라토프는 전했다. 이에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미디어 감독청인 로스콤나드조르는 이틀 만에 노바야 가제타를 폐간하겠다고 위협하며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도시 폭격과 민간인 사망에 대한 '진실하지 않은 정보'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고 WP는 전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 4일 러시아군에 대한 '가짜 뉴스'를 유포할 경우 최대 징역 15년의 실형을 부과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백 명의 기자가 러시아를 탈출했지만, 무라토프는 여전히 모스크바에서 일주일에 세 번 노바야 가제타를 출판하고 있다. 무라토프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이 정보 전쟁에서 도망가느니 차라리 내 발을 총으로 쏘겠다"며 "정부가 신문사를 폐간하려 한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겠지만, 직원들과 독자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신문사 불을 끄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1년 무라토프는 필리핀 언론인 마리, 레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무라토프는 "이번 노벨 평화상은 노바야 가제타와 (신문에서 일하다) 살해된 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노바야 가제타 소속 기자 6명이 괴한의 총격을 받거나 둔기를 맞고 숨졌으며, 특히 부편집장은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 올 노벨 평화상 언론인 2명은 박하얀 기자 2021.10.08  공유하기 북마크 1 글자크기 변경 인쇄하기 필리핀 레사 “사실이 없는 세계는 진실과 믿음이 없는 세계” 러 무라토프 “숨진 기자들 위한 상…억압적 현실 대변할 것”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8일 202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필리핀의 마리아 레사(왼쪽 사진)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AFP연합뉴스 올해 노벨 평화상은 독립언론을 이끈 언론인들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마리아 레사와 드미트리 무라토프를 선정했다. 레사와 무라토프는 각각 필리핀과 러시아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가 민주주의 수호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의 수상은 권위주의 정권이 세계 곳곳에서 권력을 잡은 오늘날 언론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노벨위원회는 “민주주의와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알리려는 것”이라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실에 근거한 저널리즘은 권력 남용, 거짓말, 전쟁 선전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레사는 필리핀 출신 언론인으로 필리핀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의 공동 설립자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의 폭력성을 조명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만연한 ‘가짜뉴스’에도 집중해왔다. 위원회는 래플러가 “두테르테 정권의 논란이 많고 살인적인 마약 반대 캠페인에 비판적인 관심을 집중해왔다”고 평했다. 레사와 그가 이끄는 매체를 눈엣가시로 여겨온 필리핀 당국은 지난 2년 동안 레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10차례 발부했다. 당국은 2019년 2월 래플러가 한 사업가에 대한 허위 내용을 보도한 혐의가 있다는 명목으로 레사를 체포해 이듬해 6월 유죄를 선고했다. 레사가 항소하면서 보석으로 석방됐다. 당시 인권단체와 언론계는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면서 저널리즘을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레사는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사실(fact) 없이는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며 “사실이 없는 세계는 진실과 믿음이 없는 세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기자가 되기 가장 좋은 때이다. 가장 위험한 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면서 “우리는 계속 빛을 비출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토프는 1993년 러시아 반(反)정부 성향 신문인 ‘노바야 가제타’를 공동 창립해 1995년부터 24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온 이 신문은 창간 이래 기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정부패나 경찰의 불법행위, 선거부정, 친정부 댓글부대 등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전해왔다. 위원회는 무라토프가 “러시아에서 수십년에 걸쳐 점점 더 험난해지는 환경에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해왔다”고 설명했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무라토프는 “이번 노벨 평화상은 나 개인이 아닌 노바야 가제타와 (신문에서 일하다) 숨진 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텔레그램 뉴스채널 ‘포디옴’에 “억압받는 러시아 언론을 계속 대변할 것”이라며 “ ‘외국 첩보원’으로 낙인찍혀 공격받고 국외로 추방되는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실은 이날 무라토프의 수상에 대해 “그는 재능 있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이념에 헌신하고 고집스럽게 일해왔다”면서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래플러는 “크렘린궁은 (정권을) 비판한 언론인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환영한다”고 일갈했다. 노벨위원회는 앞서 지난 3월1일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개인 234명과 단체 95곳 등 329명이 올랐다고 밝혔다. 평화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스웨덴크로나(약 13억5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올해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오는 12월10일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에 맞춰 노르웨이 오슬로대 강당에서 열린다. ===============================/// '노벨상' 러 독립언론, 젤렌스키 인터뷰 후 발행 중단  2022.03.28  작게 크게     기사내용 요약 "러 당국 2차 경고…완전 폐쇄 막기 위한 조치" 우크라이나 전쟁 끝날 때까지 잠정 중단 편집장 무라토프, '언론자유 수호'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슬로(노르웨이)=AP/뉴시스] 지난해 12월11일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기자회견에 참석 중인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정원 기자 =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설립한 러시아의 저명한 독립 언론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인터뷰한 뒤 러시아 당국의 경고를 받고 발행을 잠정 중단했다.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발행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통신규제기관인 연방통신정보기술매스미디어감시국(로스콤나드조르)의 두 번째 경고에 따른 결정이다. 이 언론 편집위원회는 성명에서 "우리는 로스콤나드조르로부터 2차 경고를 받았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특별 작전'이 끝날 때까지 신문의 웹사이트, 디지털, 인쇄물 발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은 "어려운 결정"이라며 "존경받는 출판물을 구하고 완전 폐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히 보기     이어 "이것은 우리와 여러분에게 끔찍하고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위해 우리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 언론은 러시아 당국이 법률로 정한 '외국 대리인'(foreign agent)을 명시하지 않아 이날 2차 경고를 받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7일 러시아 독립언론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러시아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노바야 가제타에선 '모든 크렘린의 사람' 저자 미하일 지가르가 무라토프를 대신해 참여했다. 1차 경고는 지난 22일 내려졌다. 러시아 법원은 1년 내 2차 경고를 받은 언론에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무라토프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러시아 당국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기여한 점을 평가 받았다. 그는 지난 22일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자신의 노벨평화상 메달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무라토프가 1993년 설립한 독립 언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직설적인 비판가였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를 포함해 설립 이래 6명이 살해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7950    [현지창작詩] - "두만강 새 이야기", "방천촌의 뚝심" 댓글:  조회:540  추천:0  2022-01-07
연변일보 "해란강" 제1824기 2022-01-07      두만강의 새 이야기 (외 1수) □ 김승종   장백 적봉에서 퐁퐁 솟은 옹달샘의 성스러운 정기이다가 군함산 너머 상천벌 하천벌 굽이굽이 벼파도 넘실넘실 춤추게 한 은하교 ‘우공정신’이다가 죽림골 호곡령 파수령 백년부락 돌고 에돌아 고추 마늘 수박 사과 풍년 듬뿍듬뿍 안겨주던 얼쑤절쑤 감로수이다가 경신벌 훈춘벌 벼오리농사 쾌지나칭칭 어거리대풍에 휘익휘익 상모춤이다가 해맞이 ‘동방 제일촌’ 방천촌 울 외삼촌의 만선고기배 흥겨운 투망먹임소리이다가…   어제날 눈물 젖은 두만강은 한으로 흘렀건만, 오늘의 두만강은 ‘향촌진흥’의 이야기꽃 활짝 피우며 와- 와- 주저리주저리 활개치며 동으로 동으로 흐르고 흐른다…     방천촌의 뚝심   쪽박과 쪽지게와 괴나리보짐과 두루마기와 열두폭치마와 색동저고리가 듬성듬성 휘우듬스레 놓였던 자리에 오늘은 줄레줄레 고래등 같은 한옥들이 만방에 어엿이 ‘동방 제일촌’이라 자랑하며 동네방네 뭇벗님들을 쌍이쌍이 불러들인다…   제일 부럽고 부러운 건 하얀 뼈가 우뚝 곧추 서서 저 푸른 하늘을 떠받치는 힘 깨나 썩 곧잘 쓰는 방천촌 촌민들의 뚝심이라 불러 불러보고 싶은 또- 그리고 그 어벌이 큰 뚝심을 두만강가 옥돌에 쪼각쪼각 정히 새겨드리고 싶어짐은 또-   ‘동방 제일촌’ 방천촌의 무궁무진한 자치 일원의 숨결이여! ‘동방 제일촌’ 방천촌의 당당한 자치 일원의 슬기로움이여!…  
7949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 남영전 댓글:  조회:1707  추천:0  2021-12-20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남영전 심금을 울리는 제목이다 나의 친혈육의 한많은 생명으로 엮은 이야기다 그러나 갖은 풍상고초를 다 겪은 할머니는 담담한 어조로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할머니 생전에 준확한 이주시간을 확인했어야 하는데 할머니의 그 아픈 상처를 더 다치는 것이 두려워 더 캐어묻지 않았다 지난 20세기 40년대 직전인 것은 틀림없다   원적이 경북선산 도개면 궁기동 일제의 만행을 피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 삼촌, 두 고모를 데리고 만주땅에 들어와 정착한 곳은  길림성 휘남현 대의산향 소의산촌    다행인 것은 산골사람들 마음이 후하여 이국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언어도 소통되어 마음 놓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그림자는 언제나 그들의 뒤를 따랐다 광복직전 일제의 731세균전 실험으로 털없는 쥐가 마을에 나타나더니 심한 쥐병이 돌아 3일안에 할아버지와 두 고모가 어쩔새없이 목숨을 잃었다   광복후의 중국해방전쟁 삼촌이 먼저 참군하여 사평전쟁에서 전사하였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5개월 되던 때에 아버지가 또 참군하였다 아들의 얼굴이 궁굼하다고 편지왔기에 할머니가 나를 안고 어머니가 옆에 선 나의 백일사진을 아버지의 부대로 부쳤고 아버지는 전우들과 찍은 사진을 집으로 보내왔었다 어버지의 붓글씨가 참으로 멋지다는 것이 어릴 때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유일한 인상이다   두살때 나는 병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의 속을 태웠다 여러 의사를 찾아보았고 온갖 약도 효험이 없어 하루하루 위중한 상태였다 누군가 알려주었다 20리 떨어진 어느 곳에 점 잘 치고 병 잘 보는 한 노파가 있다고 하였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나를 번갈아 업고 그 험한 20리 산고개를 넘어 그 노파의 댁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중인데 노파는 포대기에 쌓인 나를 보지도 않고 금방 들어선 아이가 위중하니 이 아이부터 봐주자고 하면서 마을서북쪽 산모퉁이에 조그마한 산신당이 있지 않는가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방법을 알려주었다 만약 이 방법이 효험이 없으면 이 아이는 희망이 없다고 하였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급히 집에 돌아와 준비를 하였다 할머니는 그 산신당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노파가 시키는 말을 외웠다 두 발과 두 날개가 묶였지만 살아 생생하던 장닭은 빨간 벼슬이 점점 흑색으로 변하더니 골골골, 골골골, 골골골 세마디 소리를 내더니 그만 숨을 거두었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나는 눈을 떴고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한참후에는 미음을 받았다   내가 5살때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할머니는 이제 하늘이 무너졌다 몇년사이에 친인 다섯을 앞세워 이제는 자신도 그들 뒤를 따르기로 비장한 결단을 내렸다 그 추운 겨울밤에 바줄을 쥐고 눈덮힌 뒷산에 올랐다 마지막 담배 한대를 태우는데 사람없는 산속에서 큰 고함소리가 울렸다 “손자가 지금 울고 있는데 여기서 무슨 짓이냐고!” 분명 할아버지의 노여움이었다 할머니는 너무도 놀라 바줄을 버리고 급히 집에 들어서니 나는 이불을 차던지고 울고 있었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 울면서 내가 20살때까지 홀로 밥을 찾아먹을 때까지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고 한다 내가 철이 든 다음 할머니는 나의 어릴 적의 일을 들려주면서 “세상사란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이 착하게 살면 하늘이 돕는다”고 말하였다   어릴적 나의 흥취는 할머니의 옛말을 듣는 일이였다 전기 없는 산골마을 밤마다 희미한 석유등잔 밑에서 할머니의 옛말에 나는 밤가는 줄을 몰랐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별명이 동네 옛말할매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그 많은 옛말을 머릿속 보따리에 다 거두어 넣었기에 할머니의 옛말은 끝이 없었다   내가 8세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100여리 먼 현성에 들어와 남의 집 뒷방살이를 하였다 나는 할머니가 나를 위해 새로운 고생이야기를 엮는 것을 보면서 어린 나이지만 늘상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1971년,  23세때 나는 할머니의 옛말덕분에 시를 엮어 중국문단에 데뷔하였다 하지만 그 특수시기 문학의 의미에서 나의 시는 시가 아니었다 1979년 새시대가 열리면서 나의 시는 시의 본연으로 돌아왔다 1983년, 장춘의 나의 문학은사는 나의 진보를 기뻐하여 현성에 있는 나의 집을 방문하였다 3일후, 은사가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자네 할머니는 참 대단한 분이야, 자네가 할머니를 쓰지 않으면 시인자격이 없네” 은사의 지적과 기대는 나를 크게 깨우쳤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할머니, 아버지, 삼촌을 기리는 서사시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연이어 두차례 전국적인 대상 길림성정부의 최고문학상을 받아 조선족시인의 신분으로 중국주류문단에 서게 되었다   시인은 항상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시의 활력은 새로운 창조에 있다 1985년, 그때 나의 시는 나 개인의 고봉이었다 이다음 나의 창신이란? 이다음 나의 돌파란? 환희와 박수가 끝난 다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때 사르트르가 나타났다 프랑스 존재주의 철학대가 그는 생명의 마지막순간 일생의 철학추구를 회고하여 이란 절절한 유서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는 반드시 토템식 형제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신화이지만 하나의 진리이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토템미학책을 읽고 자연과 인간 혈연관계의 예술표현인  토템미학에 흥취를 가졌는데 사르트르의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토템을 시적대상으로 새로운 장르 토템시를 창조해야 한다는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씨족들의 토템을 찾는 길에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신화의 고향이라 불리우는 《삼국유사》를 파고 들었다 할머니의 서민신화가 일연의 왕실신화와 한줄에 이어지는 것을 보면 민족문화뿌리를 캐는 것이 어쩌면 나의 숙명이었다 일연의 왕실신화를 하나하나 캐어보니 이전에 그냥 보통신화라고 한 것이 확실한 토템신화였다 토템정의가 이것을 말해준다 토템정의 4요소는  토템탄생, 토템표지, 토템수호, 토템전환 그 어떤 자연물체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된 시조는 그 고마운 물체의 상징을 자신의 성씨와 이름으로 하였다 그 고마운 물체는 또 조상과 후대를 끝까지 보호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물체로 돌아가고 생전에 필요하면 잠시 그 물체로 변했다가 돌아온다 이 신비한 물체가 곧 조상신, 토템이었다 일연의 왕실신화는 토템정의 이4요소가 완벽하고 생동하므로 진귀한 토템신화였다 일연의 토템신화에서 토템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나는 그 토템을 하나하나 깨닫는 작업에 들어갔다 보통 4, 5개월 하나의 토템을 지속적으로 깨닫다보면 한수의 토템시가 나온다 제목을 보면 영물시와 토템시는 구별이 안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영물시는 그 물체에 그 어떤 정서를 표현하고 그 어떤 뜻을 기탁하지만 토템시의 이 물체는 승화된 조상신이기에 그 물체의 형태와 특징을 빌어 조상들의 정신경지와 추구를 상징수법으로 표현하기에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진다 시의 표현방식은 고전과 현대의 결합이었다 1986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1987년 9, 10월호 《시인》전문지에 제목으로 토템조시 달, 곰, 학, 사슴 4수가 톱자리에 크게 나갔다 주류문단의 비평가들은 박수를 쳤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내용 새로운 시탐구라고 신문지면에서 열을 올렸다   2003년 6월 중남민족대학 추건군교수가 사천대학 등 4개 대학 련합으로 나의 토템시 세미나를 가졌다 그해 8월 42수의 토템시집 《원융》 출판 2004년 7월, 율원소적 저서 《남영전 토템시 감상》 출판 2005년 10월, 율원소적 편찬 시서화집 《시서화의 시대 공진》 출판 2006년 3월 북경 수도사범대학에서 “남영전 토템시 연구”세미나 진행 논문집 《남영전 토템시 연구》(1월) 전각집 《남영전 토템시 지구인》(8월) 2007년 또 3권의 관련도서 출판 논문집 《남영전 토템시 탐론》(4월) 논문어록집 《남영전 토템시 정수》(6월) 마명규 저서 《남영전 토템시학》(12월)   주류문단의 토템시열과 달리 조선족문단은 시야비야의 쟁론이 인터넷공간을 채웠다 일찍 한국도서상 저서 《중국 조선족문학의 어제와 오늘》의 저자 한림대학 정덕준교수는 남영전토템시를 어떻게 보는가의 주제로 2008년 6월 장춘에서  장춘사범대학과 공동으로 한중세미나를 가져 한국측에서는 서지월시인, 김영미교수가 논문 발표 2009년 12월, 한국에서 3차례 세미나 진행 부산 부경대학 세미나 울산 울산문화원 세미나 진주 한국국제대학 세미나   근간에는 조선족문단에 토템시비평가 한분이 나타났다 그는 작가 현춘산선생(1950--) 교원출신으로 장편소설 1부와 수필집 2권을 출판한 그는 중국고전문학을 즐겨읽기에 또 수편의 중국역사소설을 발표 시야비야하는 토템시 정체가 궁금하여  2018년에 하성량의 토템저서 《토템과 중국문화》(666페지)를 세번이나 정독하고 일연의 《삼국유사》 이어령의 《한국문화상징사전》 등 관련자료를 파고들어 끝내 토템학설을 깨달았다 현춘산선생의 해설문은 김창영시인의 공감으로 2020년 6월부터 《료녕신문》 화요일 문화판에 매기 한편씩 2021년 6월까지(평론 포함) 일년동안 연재되었다 이 기간의 해설문은 주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토템을 근거로 남영전 토템시이에 등장한  토템은 우리 민족 여러 씨족들의 토템이란 것을 증명하여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였다 지금은 또 영물시와 토템시의 구별점의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남영전 토템시 상징이미지 해설문을 위챗에 올려 독자들의 환영을 받는다   2020년 4월《길림신문》이 펼친 ‘문화를 말하다’ 시리즈에서 나는 을 말하면서 우리 민족의 시조는 호가 단군(坛君)이고 이름이 왕검(王俭)이라 하였더니 한 독자가 펄쩍 뛰었다 “단군은 이름이고 왕검은 왕의 호칭인데 무슨 동화같은 얘기냐고?” 생각밖의 반문에 나도 놀랐다 단군의 호와 이름이 나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새겨진 것은 35년전인 1985년이었다 토템시를 목적으로 단군신화를 파고들 때 ‘단군왕검(坛君王俭)’ 네글자에 호와 이름을 고증하였다 ①일연의 《삼국유사》에 古朝鲜(王俭朝鲜)표제 ②사마천 《사기》의 조선전에 옛 평양성을 王俭城이라고 칭한 말 ③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옛 평양은 王俭의 자택지란 말 이 세학자의 기록에 王俭이 단군의 이름이란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런데 이 독자는 왜 이름 왕검을 임금호칭이라 하고 호를 또 이름이라고 하는가? 나는 단군신화를 알만한 두 문인친구에게 문의하였다 생각밖에 그들 모두 이 독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내가 1대3 소수였다 문제의 장본인은 이승휴의《제왕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원문을 찾았다 답안이 나왔다 이승휴가 《단군신화》를 고쳤다 신화원형을 다치는 것은 금물이란 것을 중국신화통인 이승휴가 모를 리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이승휴(1234—1300)는 일연보다 28년 후생이지만 같은 동시대사람이고 둘 다 중국신화통인 학자  또 다 조정과 관련이 있기에 그들은 그 무엇이 통하는 것 같았다 1280년 이승휴는 충렬왕께 간언한 탓으로 46세의 젊은 나이에 면직당하고 집에서 우울한 은거생활을 하였다 1282년전후 일연은 김부식의 과오를 바로잡으려고 평생의 노력으로 《삼국유사》를 엮었지만 비난을 받아 간행되지 못하였다 국존으로 책봉되었던 일연은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 병으로 누웠다   신화통이고 시인인 이승휴가 《삼국유사》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승휴는 또 새로운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민족의 시조는 이름조차 없어진다는 고민에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죽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 아닌 방법은 그 문제의 곰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끝에 천신의 손녀가 약을 먹고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는다 그래서 그는 눈가림으로 《제왕운기》를 엮었다 《제왕운기》는 7언, 5언 식의 사시(史诗) 상권(上卷)은 중국반고시대로부터 원나라의 흥성시기까지 하권(下卷)은 단군조선으로부터 충렬왕시대까지의 역사를 화룡점정(画龙点睛)식으로 엮었다 모두 700여행, 4350자 원문에 단군관련 기록은 딱 2행 14자 “初谁开国启风云? 释帝之孙名檀君。” 그 누가 개국의 풍운을 열었는가? 천제의 자손 이름은 단군이다 고친 단군신화는 주해를 다는 식으로 뒷방에 슬쩍 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왕운기》는 충렬왕이 싫어할 이유가 없고 유교학자들이 반대할 근거가 없어 1287년에 쉽게 간행되었다 하지만 시인 이승휴는 자신의 죄를 알기에 더 고통에 빠져 1300년 4년만에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1360년 이승휴의 60주년 기일에 《제왕운기》는 재차 간행되었고 조선조로 바뀐 1413년에 제3차 간행이 되어 가짜 단군신화가 판을 쳤다 이리하여 제사장인 坛君이 단수신 아들 檀君이 되었고 본이름 왕검(王俭)은 아예 잃어버렸다   반문한 독자가 고맙다 그 반문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坛君과 檀君을 구별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모신 檀君이 가짜란 것을 몰랐을 것이다   요지음 중국판본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权锡焕,중국 陈蒲清 역해 湖南长沙岳麓书社 2009년 2월 제1판 인쇄) 이 악록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고적을 발굴하는 출판사 중국의 역해자 陈蒲清이 토템학설, 토템숭배관념으로 《삼국유사》를 조명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계시가 크다   陈蒲清의 해설을 들어보자 “단군신화는 고조선개국시조 坛君의 신화이다 신화는 왕왕 역사의 투영(投影)이다 환웅이 태백산정에 내렸다는 것은 옛날 묘향산일대는 고조선 원시씨족들의 발원지 고고학도 증명하는 바 이 지역은 신석기시대 전형적인 문화유적지대다 곰과 범이 한 동굴에 살았다는 것은 곰토템씨족과 범토템씨족이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을 말한다 곰이 사람으로 변했지만 범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곰토템씨족이 범토템씨족보다 더 흥성했고 더 발전했기에 곰토템씨족이 주도권을 가져 수령이 되었다는 말이다” 진포청의 해설은 참으로 확실하다 이렇게 토템학설로 신화분석을 하면 역사진상이 밝혀진다   ‘坛君王俭’ 네 글자를 토템학설로 어떻게 해석하는가? 토템탄생인 박혁거세, 석탈해, 김수로가 어떻게 성씨와 이름을 얻었는가를 보면 인차 답이 나온다 박혁거세는 깨고나온 알이 박처럼 둥글다고 하여 박씨성을 가졌고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하여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석탈해는 알을 깨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脱解) 까치토템의 작(鹊)자 왼쪽면을 떼어 昔씨성으로 하였다 김수로는 6개 알중 먼저 나왔다고 이름을 수로(首露) 그 함과 알이 금빛이라고 김씨성으로 하였다 이 세시조 모두 완벽한 토템표지다 坛君王俭은 더욱 전형적이다 곰씨족이 범씨족보다 우월하기에 곰씨족이 진정한 왕이다 그래서 왕씨성을 가졌고 나라를 다스리는 인물은 겸손하고 검소한 품행 겸검덕(谦俭德)을 갖추어야 하므로 이름을 검소할 검(俭)으로 지었다 그 시기 나라를 다스리는 수령은 제사장(祭祀长)이었기에 제단(祭坛) 坛자로 호를 坛君이라 하였다 호와 이름 모두 완벽한 토템표지다 이렇게 토템학설로 토템신화를 검토하면 그 시대 역사사실이 밝혀진다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한 학자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전문저서가 250종 논문은 5000편이 넘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많은 연구저서  토템학설로 조명한 것은 한편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안타까와 나는 글 두편을 쓰려 하였다 앞의 글은 이미 초고가 나왔고 뒤 글을 쓰고 있는중 이 급한 원고청탁으로 급히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제 이 글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우리 민족신화사의 엄청난 비극 이 비극의 장본인은 누구인가? 그 쟁론이 분분했던 춘추전국시대에 들여보자 그 많은 날카로운 입들 신화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근원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이 신화라는 걸 현명한 학자는 알았다 노자는 신화를 깨닫고 천인합일천지인사상으로 그 유명한 《도덕경》을 펴냈다 하지만 공자는 신화를 부정하여 괴력란신설을 퍼뜨려 노자가 좋아하지 않았다 공자는 또 《상서(尚书)》를 엮으면서 ‘成王败寇’(성왕패구) 성공, 승리하면 왕이고 패하면 구 이 엉터리말을 만들어 탁록전쟁에서 패배한 치우를 역적, 마귀로 비난하였다 사마천은 《사기》를 엮을 때 공자의 말을 오히려 괴담으로 여겼지만 김부식때부터 우리는 공자의 말을 성지(圣旨)로 모셨기에 우리의 시조는 참으로 불행해졌다   1992년 중국역사학자 임창화(任昌华)는 치우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의 근거는 한 철학대가의 말을 인용 고대의 부락전쟁은 정의, 비정의, 옳고 그름이 없다. 그때의 부락충돌은 융합을 촉진하고 생산발전을 촉진하는 진보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앙에서는 임창화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8년 북경 올림픽직전에 탁록에 염제, 황제, 치우 삼조상의 웅위로운 조각상을 세웠다   이번에 한국문화번역원과 중국악록사가 손잡은 중국판본 《삼국유사》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공자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여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는 토템학설을 받아들여 《삼국유사》를 조명한다면 우리 앞에는 세계에서 자랑할만한 문화유적 보석이 나타날것이고  잃어버린 시조의 이름도 되찾을 것이며 일연은 민족 문화사에서 높이 모셔야 할  세계적인 문화인물이란 것을 알게 되어 자호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2021.12. 14 장춘에
7948    [현지창작詩] - "군함산 비들기" 댓글:  조회:549  추천:0  2021-11-26
군함산 비둘기 □ 김승종   단풍이 곱다랗게 물든 군함산에서 해님 달님과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는 군함산 하얀 비둘기가 정답게 나를 반겨준다…   감로수 산에 올려 상천벌에 벼꽃 향기 넘치게 했던 우공들의 이야기이랑 성스러운 홍기하의 정기를 안고 장엄한 편과 장을 써 가는 새 이야기를 펼쳐준다…   슬기로운 군함산 비둘기는 떠오르는 아침 해님 금빛 해살 잡고 은하교 너머 너머 하아얀 넋 읊조리며 오늘도 쌍쌍이 훨훨 상천벌을 날아옌다… @@ "연변일보"  "해란강"부간 제1818기 2021년 11월 26일.
고향의 오솔길을 톺으며…□ 김승종   "연변일보" 해란강 제1814기. 2021-10-22 08:34:38     고향에 대해 말할라 치면 자연스레 고향의 앞 언덕 오솔길이 떠오르군 한다. 고향의 오솔길은 사시절 속에 그야말로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와도 같았다. 내가와 들판, 산과 산 사이로 뻗은 오불꼬불 오솔길은 나에게 그토록 수많은 꿈을 심어주었다. 내 고향 죽림동 오솔길에는 우리 조상들의 피눈물의 력사가 력력히 슴배여있으며 쪽발구를 끌던 아버지, 돼지풀을 뜯던 어머니의 파란 많은 인생려정이 서리여있다. 고향의 오솔길엔 또 나의 동년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고뇌와 분투의 발자취들이 고스란히 남겨져있기도 하다. 하기에 봄이면 고향의 오솔길은 붉게붉게 핀 진달래숲에 묻혀 조상들의 얼을 기리는 듯하며, 겨울이면 백설을 떠인 오솔길은 또 백의자손들의 곡절 많은 인생길에서 담략과 기백을 시인하는 듯싶다. 나는 대자연을 사랑하고 생활을 더 사랑한다. 그것은 자연과 생활이 인간사유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나 시인들의 철리적인 인생사색을 추구한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내포되여있고 격정이 넘치는 정감과 새로운 삶과 생활에 대한 갈망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의 오솔길이 산봉우리까지 치달아오르듯이 나는 작가, 시인이 되려는 꿈을 안고 필을 들어 아름다운 고향과 삶의 진정을 쓰고 노래하였다. 후더운 고향사람들의 인정과 고향의 산천초목은 무한한 시의 령감을 자아낸다. 나는 이란 시를 쓸 때 고향의 오솔길 옆에서 자란 도라지에 대하여 자신의 서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백의동포의 넋을 지녔는가 괴나리보자기 화판으로 펼쳤는가 돌아돌아 다니던 도라지 새라새로이 뿌리 내렸구나 아지아지 치는 백도라지 조상들의 고르로운 숨결이런가 새하야니 두루마기요 보라보라빛 치마저고리 괴나리보자기 댕그랗게 놓인 곳 도라지 꽃향기 이 내 목 꺽 메이누나 아희야, 도라지 도라지 너는야 그 넋 그 숨결 고즈넉히 안았구나 고향땅에 묻힌 백도라지 고향땅을 밟고 일어섰구나 오호라, 조상들의 새하얀 뼈마디여!   고향의 산천은 나의 창작의욕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고향의 오불꼬불 오솔길은 마치도 나의 시창작의 우여곡절을 예시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시 등단 40여년간 그 언제나 한시도 시창작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산간의 오솔길과 고향의 죽림하기슭 그리고 달 밝은 창가에서 부지런히 시창작을 하였다. 나는 이 길에서 쓰디쓴 고배를 골백번도 더 맛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늘 고향의 오솔길을 떠올리며 수시로 자신을 탁마하고 현실생활에서 인생의 참된 도리를 탐색하면서 가파로운 창작의 길을 톺아올랐다. 마가을은 우리 고향 죽림동에 너나없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나는 계절이다. 나는 울긋불긋 단풍나무숲에 묻힌 고향의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시 를 이렇게 구상해 썼었다.   단풍잎 하나 빙그레 웃으며 박우물에 실린다 보고 싶어 한여름 그리워 한가을 황홀한 꿈 두쪼각 차분히 마음 자락에 드리워 바람 속에 무게를 달아본다 박우물 속 깊이를 훔친다 박우물 하나 단풍잎 하나   고향의 오솔길에서 키운 꿈은 드디여 알찬 수확을 거두게 되였다. 2001년도, 각고한 창작중에서 창작된 백여수의 시를 묶어 첫 시집 《삶》을 펴냈었다. 시집 《삶》이 출간된 후, 연변문학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연변작가협회에서 공동으로 나의 시작품연구세미나를 조직하였다. 세미나에서 권위인사들은 나의 시창작 풍격에 대해 표현방식이 개성화되고 주장이 새로울 뿐만 아니라 매수의 시마다 삶의 기백과 맥박을 느낄 수 있다고 긍정했다. 그 뒤를 이어 나는 또 여러권의 시집과 론저를 출간했는데 그중 고향을 노래한 시집 《우물 일곱개였던 마을》이 제20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선정되였으며 제9회 연변주정부 ‘진달래문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지니기도 하였다 . 어느 때인가 원 화룡시텔레비죤방송국 특집부 리찬무 주임은 “죽림 시인의 시를 감상해보면 대부분 시가 고향과 쌍두마차인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나의 고향과 나의 시는 쌍두마차이다!… 고향은 나에게 있어서 시의 원천으로서 너무나도 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고향의 오솔길을 걷노라면 자연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또한 무엇 때문일가… 그것은 아마 고향도 변하고 시대도 변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자신의 피와 땀으로 시대적 맥박이 살아 숨쉬는 시작품들을 더욱더 써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일 것이리라… 정다운 고향의 오솔길은 그 언제나 내 인생길의 좌표이다. 내 마음속 깊숙이 묻혀있는 고향의 오솔길을 따라 시창작의 경지에 톺아오르노라면 태산도 하늘 아래 뫼라고 읊조린 선인들의 심오한 억겁을 또 한번 터득해볼 수 있으리라…   오늘도 나는 맘속으로 고향의 오솔길을 더듬어 톺으며 시의 활시위을 또다시 단단히 메우고 메운다…
7946    [세상만사] - "고래 똥 = 로또"... 댓글:  조회:2808  추천:0  2021-10-12
2021.03.07        ▲ 태국에서 또 한 번 ‘바다의 로또’가 터졌다. 현지 매체 방콕잭은 6일 보도에서 태국 사뚠주의 한 어부가 용연향 두 덩어리를 줍는 횡재를 만났다고 전했다.   태국에서 또 한 번 ‘바다의 로또’가 터졌다. 현지 매체 방콕잭은 6일 보도에서 태국 사뚠주의 한 어부가 용연향 두 덩어리를 줍는 횡재를 만났다고 전했다. 현지 어부 아세레 푸아드(24)는 지난 2일 아버지와 낚시를 나갔다가 폭우를 만났다.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풀이 죽어 돌아간 어부 부자에게 바다는 대신 용연햔을 선물했다. 어부는 “빈손으로 터덜터덜 발길을 돌렸는데 얕은 해변에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용연향에 대해 본 적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에 가져왔다”고 밝혔다.             ▲ 이들이 주운 덩어리 무게는 각각 7㎏, 600g으로 지난달 태국 나콘시탐마랏주의 한 여성이 주운 용연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들이 주운 덩어리 무게는 각각 7㎏, 600g으로 지난달 태국 나콘시탐마랏주의 한 여성이 주운 용연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어부 가족은 송클라대학교 연구실에 용연향 샘플을 보내 진품 감정을 받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두 사람이 주운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그 가치는 최고 1020만 2000바트, 한화 약 4억 원으로 추정됐다. 진품 증명서를 받아든 어부 부자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버지는 “폭풍우를 만나 일찍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결국 이런 보물을 얻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두 사람은 이제 최고급 용연향을 사갈 사람을 찾고 있다. 판매를 위해 재감정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두 사람이 주운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그 가치는 최고 1020만 2000바트, 한화 약 4억 원으로 추정됐다.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된다. 배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색을 띠는데, 질감은 부드럽지만,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바다를 떠돌며 햇빛과 소금기에 노출되면 검은색은 점차 연해지고 질감은 딱딱해지며 좋은 향이 난다. 바다 위를 오래 떠다닌 용연향일수록 향이 좋으니 그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최고급 용연향은 500g당 2300만 원의 고가에 팔려나간다. ‘바다의 로또’, ‘바다의 황금’, ‘해신(海神)의 선물’이라고 불릴만하다.     ▲ 지난달 23일 태국 나콘시탐마랏주 시리포른 니암린(49)이라는 주민 여성도 수억 원대 용연향을 주워 화제를 모았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해변을 따라 걷던 그녀는 폭 30㎝, 길이 61㎝, 무게 약 7㎏짜리 황금빛 용연향을 발견했다. 가격은 790만 바트, 한화 약 3억 원으로 책정됐다. 지난달 23일 태국 나콘시탐마랏주 시리포른 니암린(49)이라는 주민 여성도 수억 원대 용연향을 주워 화제를 모았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해변을 따라 걷던 그녀는 폭 30㎝, 길이 61㎝, 무게 약 7㎏짜리 황금빛 용연향을 발견했다. 가격은 790만 바트, 한화 약 3억 원으로 책정됐다. 서울신문 / 권윤희 기자 ============================================ ‘바다의 로또’ 횡재… 15억원대 용연향 건진 태국 어부 2021.10.06        ▲ 1일 SCMP는 태국 수랏타니주의 한 어부가 조업중 30㎏짜리 용연향을 건지는 횡재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태국 어부가 바다에서 로또를 건졌다. 1일 SCMP는 태국 수랏타니주의 한 어부가 조업중 30㎏짜리 용연향을 건지는 횡재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현지 어부 나롱 펫차라지는 지난달 27일 니욤 해안에서 파도에 떠밀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물체 가까이 배를 몰았고, 한눈에 용연향임을 알아봤다. 어부는 “겉만 보고도 과거 텔레비전에 나온 값비싼 용연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된다. 배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색을 띠는데, 질감은 부드럽지만 악취를 풍긴다.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된다. 배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색을 띠는데, 질감은 부드럽지만,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바다를 떠돌며 햇빛과 소금기에 노출되면 검은색은 점차 연해지고 질감은 딱딱해지며 좋은 향이 난다. 바다 위를 오래 떠다닌 용연향일수록 향이 좋으니 그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최고급 용연향은 1㎏당 최소 3만7500~4만2791달러, 한화 약 4500~5200만 원의 고가에 팔려나간다. ‘바다의 로또’, ‘바다의 황금’, ‘해신의 선물’이라고 불릴만하다.       ▲ 어부가 주운 30㎏짜리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확인됐다. 시세대로라면 그 가치는 125만 달러, 약 15억 원 이상이다. 횡재를 직감한 어부는 손에 쥔 용연향을 일단 가족 몰래 숨겨두었다. 그는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진짜 용연향을 보거나 만져본 적이 없었다”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용연향을 상자 속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곤 용연향 샘플을 송클라대학교 연구팀으로 보내 진품 감정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어부가 주운 30㎏짜리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확인됐다. 시세대로라면 그 가치는 125만 달러, 약 15억 원 이상이다. 어부의 한 달 벌이가 10~20만 원 수준인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로또가 터진 셈이다. 어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너무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면서 “용연향 진품 증명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용연향 판매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값만 잘 쳐준다면 어부 일을 그만두고 친구들과 잔치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 권윤희 기자 ====================///      중앙일보  2020.12.08  이병준 기자  태국에서 발견된 100kg짜리 용연향. 사진 페이스북 캡쳐 태국에서 한 어부가 35억 원짜리 용연향을 주웠다고 영국 더선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용연향은 수컷 향유고래의 토사물로 향수를 만들 때 쓰이는 물체다. 보도에 따르면 태국 어부 나리스 수완나상(60)은 지난달 23일 남부 나콘시 탐 마랏의 한 해변에서 100㎏에 달하는 용연향 덩어리를 발견했다. 용연향을 집까지 옮기는 데에는 수완나상의 사촌 형제들까지 동원됐다. 수완나상은 처음에는 용연향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집에 와 겉면을 불에 그을려보자 향기가 나 용연향인 걸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수완나상은 현지 언론에 용연향 1㎏당 96만바트(약 3450만원)를 주겠다는 제안이 왔다고 밝혔다. 100㎏이면 9600만바트(약 35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더선은 수완나상의 월수입이 약 7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수완나상은 “이 용연향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전문가들이 이걸 봐봤으면 좋겠다”며 “경찰에게 가서 내가 용연향을 발견했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놓을 계획이다. 집에 도둑이 들까 불안하다”고 했다. /이병준 기자 ============/// 주황색 공... 희귀 진주 '줍줍' 횡재  2021-02-05   요약beta   공유  댓글  글자크기조정  인쇄 (서울=연합뉴스) 태국 남부에 사는 한 가난한 어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진주 중 하나인 멜로 진주를 발견해 뜻하지 않게 횡재를 얻었습니다. 지난 1월 27일 태국 남부의 나콘시 탐마라트 주에 사는 하차이 니욤데차(37)씨가 마을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굴 껍데기를 줍다가 1천만 바트(약 3억7천만원)로 추정되는 멜로 진주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5일 로이터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하차이씨는 조개껍데기 3개가 달라붙은 버려진 부표를 발견하고는 동생을 불러 새집을 꾸미는 데 사용하려고 가져왔는데요.   세 번째 껍데기를 열자 그 안에는 10펜스 동전보다 약간 큰 7.68g 정도 되는 오렌지색 진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이 진주는 매우 희귀한 멜로 진주로 그 가치는 최고 1천만 바트(약 3억7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의 한 부유한 사업가는 진주를 백만 바트(약 3천7백만원)에, 또 다른 명품 수집가는 5백만 바트(1억8천6백만원)를 제안했지만, 더 비싼 값을 받고 싶은 가족들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현재는 중국인 구매자가 1천만 바트(약 3억7천만원)에 사겠다고 제안을 해 와 협상 중입니다. 가장 비싼 가격에 진주를 팔고 싶은 하차이씨는 "그 돈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 운명을 바꿀 거다. 우리 가족 모두 더 나은 삶을 살 거다"며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멜로 진주는 남중국해와 안다만해에서 주로 서식하는 바다달팽이 '멜로멜로'가 만들어내는데 오렌지색에서 황갈색, 갈색까지 다양하며, 오렌지색 진주가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상으로 보시죠.    
7945    김승종 譚詩 "죽림동, 그 이름 부를 때면..." / 장백산 댓글:  조회:586  추천:0  2021-09-22
《장백산》2021년 제5호 2021년 09월 22일 작성자: 장백산       {담시譚詩}           죽림동, 그 이름 부를 때면...                                김승종     1   죽림골물에서 짜개바지 벌거숭이 개발헴 멱감던 친구들아,- 버빡골 실개천에서 가재잡이 세치네잡이 흥했던 친구들아,- 식초, 소다, 사카린 자작혼합형 사이다 나눠먹던 친구들아,- 달빛아래 모기쑥불 휘둘러 수수께끼놀이 신났던 친구들아,- 들벌한테 쏘이면서도 개똥참외 서리로 재미났던 친구들아,- 박달나무 얼어튀는 보배골에서 썰매타기 정났던 친구들아,-   그립다 그리워  또 다시 한번 그리워 “새양했”던 죽림동 개구쟁이들아,- 들숨날숨 지금 어디메???...     2     “깜장눈” 암소야,- 우리 집 살림꾼이였던 “깜장눈” 암소야,- 그립다, “깜장눈” 암소야,- 시인랍시고 쭉정이 글월 수없이 썼어도 너에게 문안 편지 반의 반 쪼가리도 못 써올려 죄송하기 짝 없구나   “깜장눈” 암소야,- 이 텁석부리가 고중 때, 눈과 귀를 더 틔이려고 두만강역 로과구 죽림동에서 덕화구 남평툰으로 “류학”하러 갈 때였었지. 네가 발구를 척 들레메고 이 눔의 쌀짐에, 이불짐에, 책짐을 무겁게 싣고 이랴 낄낄 선뜻 나섰었지. 죽림동 뒷 수영재골 올리막 골연 길 허위허위 헤쳐 헤쳐 이십여리, 또 가마솥골 내리막 골연 길 굽이굽이 탈탈 뚫고 삼십여리, 네발굽 터지도록 고맙게도 수고스럽게 갔다줘었지...   아부제와 어마이는 또 지고 이고 메고 들고, 너의 뒷그림자를 즈려밟으며 묵묵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탈탈 뚫고 삼십여리... 헤쳐 헤쳐 이십여리... 허위허위 이십여리... 굽이굽이 삼십여리...   이 텁석부리가 “류학” 끝날 때까지 “깜장눈” 암소는 발통 편자 몇 번이나 굽났었지   “깜장눈” 암소야,- 그후 이 시지기는 코마루 하늘 찌르고 부모님도 너의 그림자마저도 싹 잊어버렸었지...   “깜장눈” 암소야,- 너의 고기와 창자는 술꾼들의 안주로 되었을것이고, 또한 너의 뼈는 새별들의 눈 틔우는 분필로 성금되었을것이고... 너의 가죽은 상모춤꾼의 북 마구리에 메워졌을것이고, 멋쟁이 신사 쌍복 구두신 되었을것이고...   그립다 그리워 꿈결에도 불러 보는 참이름,- 사랑스러웠던 죽림동 “깜장눈” 암소야,- 그리워 또다시 그리워 불러 보고싶은 선이름,- 신성스러웠던 죽림동 “깜장눈” 암소야,-   시지기가 뒤늦게나마 정중히 두 손 모으고 모은다, 정중히 두 무릎 끓고 꿇는다... 그리고 정중히 꼴망태를 둘러메고 “깜장눈” 암소의 넋  한없이 부르고 부르며 찾고지고!!!...       3     이 텁썩부리는 뭇 수염 더부룩 할 때까지도 멋쟁이 울 아부제가 멋바람 일구는것을,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본적 없었다... 팔방미인 울 어마이가 분치장 차림하는것을, 단 한번도 단 하루도 못봤었다...   오늘따라 훈훈한 살내음 풍기는 울 팔간 집 장롱짝 쪽문 살며시 빼쪽 열면, 장가들던 사지바지 청구름마냥 너슬너슬 선남 되어 노래하며 나온다... 시집오던 치마저고리 꽃노을마냥 사쁜사쁜 선녀 되어 춤추며 나온다...   꺼이꺼이... 아 ㅡ 부 ㅡ 제 ㅡ 어이어이... 어 ㅡ 마 ㅡ 이 ㅡ     4     두만강 건너 건너 금비녀도 은비녀도 놋비녀도 옥비녀도 목비녀도 죽비녀도 울 할매 앞으로 아롱다롱 달려왔었다   호곡령 너머 넘어 봉황비녀도 용왕비녀도 원앙비녀도 매죽비녀도 모란비녀도 석류비녀도 국화비녀도 울 할매(해주 최씨) 앞에선 무용장물이였었다   울 할매는 평소 머리 얹을 때에도 울 할매는 명실 머리 얹을 때에도 오로지 납비녀 하나로 하마하마 산뜻 족하였었다   납비녀 하나로  온 한생을 절이셨던 죽림동 할미꽃 할매이시여,-   ㅡ오늘도 납비녀는  이 내 뒤통수에 애절히 꽂혀 울고지고 ...       5     소똥두엄 나르던 달구지는, 쉬염쉬염 뽕나무 옆에서 탈춤가락 듣습니다 쏘시개 싣고 온 발구걸채는, 휘늘휘늘 비술나무 곁에서 바람잡이 되였습니다 콧노래 부르던 남정네들, 얼쿵덜쿵 버드나무 그늘에서 멍군장군 맞붙습니다 수다쟁이 아낙네들, 지지콜콜 단풍나무 마루에서 화투치기 곱잡습니다 코흘리개 조무래기들, 와짝지껄 느티나무 주위에서 놀음놀이 끝없습니다 동네돌이 황둥개도, 까불꺼불 물푸레나무 아래에서 자장가 부릅니다... ...   핫, 요지음, 시가지의 가로수들은 요지경 쇠붙이들과 미사여구 콩켸팥켸들에게 당당한 설 자리마저도 의젓한 앉을 자리마저도 막된 놈 마구발방 찌지리 빼앗기고 있는 이때,-   죽림동 가로수들은 늘 살맛 아름아름 넉넉하고 정나미 풋풋했습니다...   고향을 떠난 죽림동 뭇사람들께서는 옛이야기 푹 숨배인 죽림동 가로수 한 두 그루씩은, 그 누구나 고즈넉이  다-아 갑북갑북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7944    [별의별] - "둥글다"와 "평평하다"... 댓글:  조회:2764  추천:0  2021-09-13
“지구는 평평” 외치는 음모론자들, 무시만 해선 안되는 이유  ‘지구는 둥글다’가 음모론이라고? 귀 닫고, 눈 감고 자기 주장만 펼치는 이들의 외침 다큐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윤수정 기자 2021.09.13      1998년 영화 ‘트루먼 쇼’는 작은 섬 모양의 세트장에 갇혀 일거수일투족이 TV로 방영되는 트루먼 버뱅크(배우 짐 캐리)의 삶을 그렸다. 특히 트루먼이 배를 타고 거대한 세트장 속 바다 끝에 위치한 평평한 벽을 발견하고, 그곳에 달린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는 장면이 유명하다. 보통의 평범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기발한 영화적 상상’이란 생각을 먼저하게 될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과학계 정설로 받아들여진 오늘날 평평한 세트장에 사람을 가두고 관찰한다는 개념이 신선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사실은 실제 우리 삶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이다.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진 ‘평면지구인’들   평평한 지구 모양을 축소한 모형을 들고 있는 평면지구인. /넷플릭스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는 위와 같은 지구 평면설을 믿는 이들을 다룬다. 스스로를 ‘평면 지구인(Flat Earther)’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구체 지구론’이 정설이 된 게 사실은 ‘트루먼 쇼’ 같이 거대한 음모를 위해 사람들을 세뇌시킨 결과라고 주장한다. 나사(NASA)와 정부 기관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하늘 밖으로 사람들이 나가는 걸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닐 암스트롱 등 우주인들의 역사도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배워온 교과서와 정반대 주장을 하는 이들이 그저 헛소리를 하는 괴짜처럼 보이겠지만, 다큐는 놀랍게도 이런 평면지구인이 미국에서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유명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2018년 조사한 결과 미국인의 약 2%(650만 명)가 지구평면설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큐는 이들 평면지구인들이 ‘평평한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를 결성하고 심지어 2017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국제 학회까지 여는 모습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평면지구인들의 모습을 보면 생각보다 멀쩡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해 놀라게 될 것이다. 개중에는 미국 경찰국 법의학 컨설턴트 등 과학적 지식이 다분해 보이는 전문직종의 사람들도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평면지구론을 설명하며 엉터리 근거를 댈 때마다 금세 현실감각이 돌아오게 된다. ‘지평선이 평평한 걸 내 눈으로 봐서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안다. 신기루 현상도 있다지만 그건 과학자들의 음모론이다’는 식의 주장이 대부분이어서다. 다큐도 이 같은 허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의 모습을 분석하거나 반박하는 실제 과학 전문가들의 장면을 계속 교차해서 보여준다. 다큐 속 평면지구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한 실험 모습. 이들은 구멍이 뚫린 판자 여러개를 세우고, 레이저를 비춰 불빛이 구멍을 일직선으로 통과하면 지구가 평평한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번번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데 실패한다. /넷플릭스 전문가들은 특히 이 같은 평면지구인들의 믿음이 ‘확증편향의 오류’로부터 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학적 사고는 A라는 가설이 B라는 결론으로 도출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검증을 거치는 방식을 택하지만, 평면지구인들은 B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이에 맞는 근거들을 끼워맞춘다는 것이다. 실제 다큐에선 평면지구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에 끼워 맞출 근거를 찾기 위해 각종 엉터리 과학 실험을 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틀려도 틀렸다고 말하지 못 하는 진짜 이유 평면지구인들의 학회에서 지구 모형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춤을 추고 있는 평면지구인. /넷플릭스 평면지구인들은 수차례 자신들의 주장이 자기 모순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코 자신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못 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스스로를 구체 지구론을 믿는 이들을 음모론에서 구해낼 영웅처럼 여기고, 이를 통해 구축한 영향력과 공동체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평면지구인들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서전트’는 다큐에서 내내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평면지구인들 사이 인기를 끌며 각종 강연을 하고, 심지어 그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다고 자랑한다. 특히 2015년 유튜브 전체 검색 건수가 5만 건에 불과했던 지구 평면설 영상이 2018년 1940만 건에 달했다며, 지금이야말로 평면지구인들이 뭉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평면지구인(Flat Earther)'을 뜻하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평면지구설 신봉자. /넷플릭스 마크의 말처럼 평면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상당히 끈끈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만날 때마다 ‘평평히 살자’는 사인을 주고 받고, 삶의 곳곳을 지구 평면설과 관련된 티셔츠, 책, 평평한 지구모형 탁자 등 각종 굿즈로 채우기 시작한다. 덕분에 본래 목수가 직업이었던 한 평면지구인은 아예 평평한 지구 모형만 만들며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한다. 급기야 평평한 지구인 모임 내 각자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파벌까지 생긴다. 마크는 자신들의 모임 내 70%가 평평한 지구 위에 반구형 물체가 덮고 있다고 믿고, 나머지 30%는 위가 뻥 뚫린 평평한 지구 모형이 여러 개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파벌의 사람들을 찍어내기 위해 각 파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정부 기관의 스파이’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 다큐는 그만큼 평면지구인들이 실제 지구평면설이 거짓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소속감을 강화하기 위해 몰두한다는 사실을 계속 짚어낸다. ◇음모론은 또 다른 음모론을 낳는다   2017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열린 평면지구인 국제 학회에서 사회를 맡고 있는 평면지구 전문 팟캐스터 퍼트리샤 스팅어. /넷플릭스 다큐 속 과학자들은 그럼에도 이들 평면지구인들을 결코 “경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구평면설 같은 음모론이 또 다른 음모론을 계속 낳을 수 있는 만큼 그저 웃긴 이야기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다큐 속 평면지구인들은 지구 평면설 이외에도 ‘백신은 위험하다’, ‘나사는 히브리어로 ‘속이다’란 뜻으로 사기 집단이다’ ‘언론이 모든 남성들을 여성으로 만들려고 트랜스젠더 옹호론을 조장한다’ 등 각종 음모론도 함께 퍼뜨린다. 심지어는 유명한 평면지구인들 스스로도 ‘사실은 우리를 감시하는 정부기관 사람들이다’ 등의 음모론에 시달린다. 전문가들은 이들 음모론 논쟁이 과학자들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양상으로 흐르는 게 특히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각종 합리적인 근거를 대도 음모론자들은 “믿을 수 없다”며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반박 증거를 갖다가 끼워 넣는다는 것이다. 실제 다큐 속 한 평면지구인은 “왜 과학자들은 구체지구론이 틀렸다는 고백과 함께 내부고발을 안 하냐”는 물음에 “생계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란 주장을 펴고, 주변 수많은 평면지구인들 또한 이 대답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큐는 이런 행동이 결국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자신들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평면지구인들은 다큐에서 자신들이 주장한 음모론 때문에 소셜미디어 그룹에서 강퇴 당하거나, 심지어 이혼까지 당했다고 고백한다. 다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마이크 휴즈란 미국 남성이 평면지구설을 직접 증명하겠다며 사제 로켓에 몸을 실었다가 추락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다큐 속 과학자들의 다음과 같은 일침은 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진실처럼 떠도는 요즘을 저격하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음모론자들을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들의 지성 또한 변형되게 내버려 두는 거다. 가장 최악은 이들을 사회의 경계까지 쫓아내고 결국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7943    [세상만사] - "5억=10억"... 댓글:  조회:1079  추천:0  2021-09-08
“5억원 그림 훼손... 10억원 이라고요?”  2021.09.08.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몰 지하 포스트에서 열린 ‘스트리트 노이즈’(STREET NOISE) 전시회에 전시된 존원의 대형 작품을 관람객이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은 이날 물감에 훼손된 부분. 연합뉴스“5억 그림에 페인트 뿌린 20대 연인” CCTV 영상, 10억원 매물로 등장 NFT로 제작해 첫 판매 지난 3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 전시된 예술품이 20대 남녀 연인에 의해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20대 남녀가 롯데월드몰 지하 1층 ‘STREET NOISE’(거리의 소음) 전시회에 출품된 미국 화가 존원(58)의 작품 ‘Untitled’(무제)에 청록색 붓자국을 남긴 것이다. 전시 주최 측이 폐쇄회로(CC)TV를 돌려본 바, 전시장에 소품으로 놓여있던 물감과 붓을 들고 한 커플이 그림에 덧칠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이들은 작품 훼손 경위에 대해 “벽에 낙서가 돼 있고 붓과 페인트가 있어 낙서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대화가 원만히 되지 않을 경우 관련 진술과 증거를 제출해 추후 법적 절차가 가능한 사안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존원의 대형 작품을 관람객이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은 물감에 훼손된 부분.관람객 그림 낙서…CCTV 영상, 10억원 매물로 8일 미술계에 따르면 ‘그림 훼손 소동’ CCTV 영상이 NFT(대체불가토큰)로 제작돼 판매된다. 가격은 무려 10억원에 책정됐다. NFT 미술품 거래업체 닉플레이스 관계자는 “CCTV에 등장하는 연인과 연락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대가로 초상권 협의도 끝마쳤다”고 말했다. 그림 훼손 소동 당시 당시 원작자가 “원상 복구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 커플은 1000만원에 달하는 그림 복원 비용을 일부 부담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닉플레이스 측은 “이 그림을 우리가 구매하면서 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최근 존원의 그림 ‘무제’를 구매해 분할 판매를 진행하는 동시에, 이같은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항간의 이슈를 선점해 판촉에 활용하는 NFT 시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를 접한 네티즌은 “5억원짜리 그림 훼손하는 영상이 10억원 이라고요?”, “과도한 장삿속”, “전 세계적으로 없는 일이긴 하지”, “이걸 살 사람이 있을까?”, “분명히 살 사람 있다고 본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그림 훼손 소동’ 사건 발생 후 복원비용 등 법적 문제에 대한 내용으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 매스컴에 이슈가 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작품은 더욱 유명세를 치르게 됨으로써 작품의 가격은 2배 이상 상승, 10억원 이상 호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고 전해졌다.   /김채현 기자 
7942    [문단소식]- 훈춘 김동진시인 "풍경소리" 울리다... 댓글:  조회:1721  추천:0  2021-09-07
2021-08-19    김동진의 시집 《길과 꿈과 록색 그리고 풍경소리》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시집은 김동진의 20번째 단행본으로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에 즈음해 펴낸 헌례시집이다. 제1부는 빈곤해탈, 난관공략, 민생개선에 나선 제1서기의 고상한 정신풍모를 노래한 중편서정서사시 이고 제2부는 서정장시 3수, 제3부는 서정단시 19수로 묶었다. 김동진은 1944년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에서 태여났고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선언어문학학과 본과를 졸업했다. 중국민족예술가협회 회원이며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이다. 시집 《두만강 새벽안개》를 비롯하여 시조집, 수필집, 실화집, 가사집, 동요동시집, 문집 등 19권을 출간했으며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연변문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시조문학상 등 수상경력이 있다.   리련화 기자
7941    [세상만사] - "표면이 벗겨진 금메달" 박물관으로... 댓글:  조회:2303  추천:0  2021-09-02
2021-09-01   도쿄올림픽서 입었던 운동복도 함께 기증 "메달에 대한 사람들 관심 원하지 않아"     ↑ 톈진 체육박물관에 자신의 메달과 운동복을 기증하는 주쉐잉 / 사진 = 웨이보 캡처 2020 도쿄올림픽 트램펄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중국의 주쉐잉(23)이 논란이었던 '표면이 벗겨지는 금메달'을 톈진시 체육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현지 시간 28일, 도쿄올림픽 여자 트램펄린 챔피언 주쉐잉이 자신이 딴 금메달과 이번 올림픽에서 착용했던 운동복을 톈진 체육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박물관 관계자는 "주쉐잉의 금메달과 운동복은 올림픽 정신을 고양하는 중요한 컬렉션"이라며 "기증을 선택한 주쉐잉의 헌신을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쉐잉이 박물관에 기증한 금메달은 문지르면 표면이 벗겨져 논란이 된 적 있습니다. 주쉐잉은 지난 23일 자신의 웨이보에 "메달도 껍질을 벗길 수 있나요"라며 사진 세 장을 올렸습니다. 이 중에는 금메달의 작은 얼룩을 닦자 표면 색깔이 변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 문지르면 표면이 벗겨져 논란이 되었던 주쉐잉의 금메달 / 사진 = 주쉐잉 웨이보 주쉐잉은 "내가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다. 금메달에 얼룩을 발견하고 문질렀을 뿐"이라며 "문질렀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고 덧붙였습니다. 해당 게시물에는 댓글이 2만여 개 이상 달렸고, 중국 네티즌들은 벗겨지는 올림픽 금메달을 비판했습니다. "저질 제품", "이게    일본의 독창성인가", "일본에서 새것으로 바꿔줘야 한다" 등의 반응도 있었습니다. 해당 게시글에 관한 논란이 커지자 주쉐잉은 "메달이 벗겨지는 문제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서 메달에 대한 사람들 관심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에 부담감을 느낀 주쉐잉이 결국 해당 금메달을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디지털뉴스부] ===========================/// 기자 입력 2021-08-25 09:26수정 2021-08-26 10:1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사진출처=2020 도쿄올림픽 트램펄린 여자 금메달리스트 주쉐잉 웨이보    2020 도쿄올림픽 트램펄린 여자 금메달리스트 주쉐잉이 자신이 받은 금메달이 벗겨졌다면서 실제 표면이 벗겨져 얼룩진 금메달 사진을 올려 중국 현지에서 논란이 일었다. 24일(현지시각) 글로벌 타임스에 따르면 주쉐잉은 메달에 흙이 묻어있는 줄 알고 문질렀는데 금메달이 벗겨졌다고 하며 사진을 3장 올렸다. 사진 속에는 금메달의 표면은 점점 벗거져 그 면적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엔지니어이자 제품 디자이너인 팬콩은 “사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지만 코팅 사이에 불필요한 잔여물이 제거되지 않아 금이 잘 붙지 않게 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주쉐잉이 올린 이 사진은 중국 현지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논란이 됐다. 한 중국 누리꾼은 “수년간 메달을 위해 노력해 온 선수에게 흠 있는 메달을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했다.   어떤 누리꾼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금메달 사진과 비교하며 “러시아 체조 선수 다리아 발레비예브나의 집에 불이 났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며 “많은 것이 탔지만 메달은 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이 있는데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 사용한 메달은 일본 정부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2020 메달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 국민에게 기부받은 전자기기를 재활용해 메달을 만든 것이다. 이는 도쿄올림픽이 강조한 ‘지구와 사람을 위해’라는 의제와 함께 친환경 취지에 부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도쿄올림픽 메달 제조사인 일본 조폐국은 환추시보에 “금박피에 대한 어떠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도쿄 조직위원회가 이번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디자이너 딜런 양은 “금메달은 의미가 더 중요하다”며 “메달의 가치는 그 메달이 얼마나 비싼 원료로 만들어졌는지보다 그 메달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의해 정의될 수 있다”고 전했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 주쉐잉의 메달이 불량품으로 확인되더라도 올림픽 역사상 첫 사례는 아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당시 메달이 부식됐다며 IOC에 교환을 요청한 사례는 100건이 넘는다. IOC는 문제가 되는 메달을 수거해 수리하고 선수들에게 다시 나눠줬다.          
7940    자유 자유 그리고 자유... 댓글:  조회:2351  추천:0  2021-08-07
도쿄올림픽 ‘패션 반란’ 2021.08.07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獨체조대표팀 “노출 의상 싫다” 자유복장 배드민턴, 유니폼 다채 “원하는 대로 입는다” 개성 중시2020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에 출전한 이란의 소라야 아가에이의 경기 모습. 히잡과 긴 옷을 입었다. 배드민턴은 복장 제한 없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옷을 입고 출전할 수 있다. 도쿄=AP 뉴시스‘편하게, 멋지게, 우리답게.’ 올림픽은 다양한 패션의 경연장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올림픽 구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와 비교하면 올림픽 패션의 방향은 위의 세 가지 내용으로 압축될 수 있다. 올림픽 패션에서는 선수들이 기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적 역할(편하게)이 강조됐고, 그러면서도 아름답고(멋지게), 자신이 대표하는 국가의 정체성 및 이미지(우리답게)를 세계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 추구됐다. 올림픽 패션과 관련해 지금은 금지된 전신수영복처럼 최첨단 공법을 동원해 과도한 기능을 지닌 복장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많았다. 하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여성 복장 노출 및 일부 국가의 정체성 표현이 논란이 됐다.  독일 여자 체조대표팀은 그동안 여자 선수들이 주로 착용하던 비키니 모양의 레오타드 유니폼 대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 모양의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독일 여자 체조 대표 엘리자베트 자이츠는 “모든 여성은 무엇을 입을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 비교해 모든 선수들에게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하는 배드민턴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경기를 치른 선수들 30명 중 3분의 1가량이 반바지 외에 레깅스, 원피스, 히잡 등 다양한 복장을 하고 나선 내용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배드민턴 역시 2014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선수들에게 미니스커트를 의무화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복장 전면 자율화로 바뀌었다.  하지만 반대로 거의 모든 선수가 비키니를 입고 출전한 종목도 있다. AP통신은 여자 비치발리볼 선수 대부분이 비키니를 입고 출전했지만 강제 조항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비치발리볼은 긴 바지 및 긴소매 등 다양한 복장을 허용하고 있지만 선수들은 비키니를 택했다. 미국 선수 앨릭스 클라인먼은 “더운 날씨에 많은 옷을 입고 모래가 끼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일부 복장에 대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있는 반면 기능적 필요에 따라 선택했다는 의견이 혼재하고 있는 셈이다. 선수들이 특정 복장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와 선택권 모두 중요하다. 결국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정진애 대한체조협회 여자체조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사실 체조에서는 순발력 유연성 등이 중요한데 옷이 끼면 불편하고 동작에 방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팀 유니폼은 선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아티스틱 스위밍 스타인 스베틀라나 로마시나와 스베틀라나 콜레스니첸코는 경기복에 곰 무늬를 넣었다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승인을 얻지 못하기도 했다. IOC는 도핑 문제를 일으킨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다.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러시아 선수들은 러시아 국기와 국명을 쓰지 못한다. IOC가 곰 무늬를 금지한 것은 곰이 러시아라는 국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은 결국 곰 대신 거미 무늬 옷을 입고 출전했다.  그러나 러시아 선수단은 유니폼에 흰색 푸른색 붉은색을 적절히 섞어 사실상 러시아 국기를 형상화했다. IOC가 정작 이 유니폼들을 제재하지 못해 올림픽에서 러시아 이미지를 지우려던 효과가 미미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미국은 랄프로렌, 이탈리아는 조르지오아르마니, 프랑스는 라코스테 등의 패션 브랜드와 손잡고 유니폼을 디자인하며 공을 들였다. 올림픽 패션은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패션 잡지 보그 온라인 호주판은 인상적인 올림픽 패션 31장면을 선정하면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우주인을 연상시키는 복장으로 출전했던 호주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 등과 함께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 검은색 옷을 입고 출전했던 김연아의 모습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원홍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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