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문화대백과
탈
이미지 크게보기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와 이웃마을인 병산리에 전해오는 탈.
이칭별칭
가면
유형
개념용어
목차
정의
개설
탈의 발생
한국 탈의 역사
한국 탈의 종류와 구조
한국 탈의 특징
탈 제작기법
탈의 형상과 색상
탈의 성격 표현
정의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주로 얼굴에 써서 분장에 사용하는 물건. 가면
개설
한자어로는 면(面)·면구(面具)·가면(假面)·대면(代面)·가두(假頭)·가수(假首) 등이라 하고, 우리말로는 광대·초라니·탈·탈박·탈바가지 등으로 불러왔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얼굴 앞면을 가리는 면구를 가면, 머리 전체 후두부(後頭部)까지 가리는 것을 가두·가수·투두(套頭)라고 하여 구별하기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탈’이라는 말이 가면을 나타내는 우리말로 쓰여지고 있지만, 우리 탈놀이[假面劇]에 사용되는 탈은 모두 얼굴 전면을 덮게 되어 있으며, 탈 뒤에는 ‘탈보[假面布]’가 붙어 있어서 이것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후두부를 가리게 되어 있다. 이 점으로 보아 우리나라 탈은 그리스가면이나 기악면(伎樂面)과 마찬가지로 가두에 가깝다고 하겠다.
탈은 동양이나 서양, 문명한 민족이나 미개한 민족이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민족 사이에 존재하며 기원도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원시민족사회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탈의 발생
탈은 원시시대의 집단생활에서 여러 가지 종교의식에서 신령·악귀·요괴·동물 등 비인간적인 것으로 가장하여 주술(呪術)을 행할 필요에서 요구되었다. 그 하나는 외적이나 악령을 위협하기 위하여, 두번째는 신의 존재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번째는 죽은 사람을 숭배하고 죽은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하여, 네번째는 토테미즘(totemism)의 신앙에서 여러 가지 동물로 가장하기 위한 의태(擬態)에서 발생한 것 등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발생된 탈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외적이나 악령을 위협하기 위한 탈로는 5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상례(喪禮) 때 사용되었던 방상시가면(方相氏假面)과 음력 정초의 악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행사 때 사용되었던 사자가면(獅子假面)이 있다.
또한 신의 존재를 표시하기 위한 탈로는 개성 덕물산(德物山) 위의 신당(神堂: 장군당과 부인당)과 영천군 신령면(新寧面)의 무당 신막(神幕)에 안치돼 있던 광대시(廣大氏)·창귀시[倀鬼氏]·소미시·놋도리 및 장군가면 등이 있는데, 이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무당이 그 가면에 고사를 지낸다.
죽은 사람을 숭배하고 비슷하게 만들기 위한 탈로는 문헌상에 나타난 것과 같이 신라시대의 관창(官昌)의 탈과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김락(金樂) 등의 탈이 그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신숭겸·김락 두 장수를 비롯하여 전사한 공신들의 가상(假像)을 만들어 열석(列席)시켰다. 이 제전(祭典)은 그 뒤 해마다 되풀이되었는데, 1120년에 고려 예종이 향가(鄕歌) 형식의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어 신숭겸·김락 두 장수를 추모하였다.
그리고 동물로 가장하기 위한 의태에서 발생한 탈로는 원숭이·범·담비·사자를 비롯하여 십이지(十二支)의 소·말·토끼·양·돼지·개 가면 등이 있다. 이들 가면은 산대(山臺)·봉산(鳳山)·강령(康翎)·마산(馬山)·통영(統營)·수영(水營)·하회(河回)의 탈놀이에서, 또 십이지의 탈은 조선왕조 궁중의 나례(儺禮) 행사 때에 사용돼왔다.
이러한 것이 한편으로는 그대로 신성시된 형태로 제마초복의 탈과 같은 신앙가면(信仰假面)이라는 것으로 전래되고, 또 한편으로는 점점 가무(歌舞)를 주로 하는 예능의 주요소의 하나가 되어 세월이 흐를수록 사실적으로 정교해져 예능가면(藝能假面)으로서 예술적으로 완성되어갔다.
한국 탈의 역사
우리나라의 탈이나 탈놀음의 시작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패면(貝面)과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토면(土面) 등 신석기시대의 가면유물을 들 수 있다. 그 뒤 6세기경의 것으로 추측되는 나무로 만든 옻칠을 한 탈이 발견되었다.
이는 1946년 경주 노서리(路西里) 고분인 호우총(壺杅塚)에서 출토된 유물가면으로 그 구조는 나무로 만든 탈에 옻칠을 한 것인데, 눈알은 유리이고 두 눈에는 황금으로 된 환(環)이 둘려져 있다.
이 탈은 방상시가면으로 보이는데, 방상시가면은 황금사목(黃金四目)을 연상하게 되므로 그 탈의 눈이 두 눈인 것이 이상하게 생각된다.
하지만 『태평광기(太平廣記)』 견이록(甄異錄)에 두 눈의 방상시가면이 있음을 말하고 있고, 『순자(荀子)』 비상편(非常篇)에도 두 눈의 방상시가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탈은 방상시가면이 틀림없다. 신라시대의 이 탈은 당시 왕후·귀족들의 상례 때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해석과는 달리 이 유물은 탈이 아니라 화살통이라는 견해도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밖에 덕물산가면(德物山假面)과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13개의 하회(河回)탈 및 병산(屛山)탈 등 옛 가면이 전해지고 있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 제사조(祭祀條)에 보이는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 중 월전(月顚)·대면(大面)·속독(束毒)·산예(狻猊)의 네 가지이므로, 이는 실로 9세기 말엽의 일로 탈 및 탈놀음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이 밖에도 신라시대에는 탈놀음으로 검무(劒舞)와 처용무(處容舞)가 있었다고 하나 이에 대한 정확한 문헌과 유물은 없다. 하지만 19세기의 조선조 현종 때의 학자 민주면(閔周冕)이 『구동경지(舊東京志)』를 증보, 간행한 『동경잡기(東京雜記)』 풍속조에 검무가 탈놀음임을 밝히고 있다.
이 가면검무는 중국 북제(北齊) 난릉왕(蘭陵王)의 고사(故事)를 놀이화한 대면희(大面戱)와 같이 나이 어린 관창의 용감한 이야기를 춤으로 놀이화한 것이다.
처용무는 고려·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탈을 쓰고 춤추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고려사』 고종 23년(1236)조에 복야(僕射) 송경인(宋景仁)이 취흥하여 처용무를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문헌상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나례행사 때 방상시가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나례의 신앙가면에서 뒷날 예능가면으로 진전하였다.
조선왕조에는 산대잡희(山臺雜戱)에서 파생된 산대가면극(山臺假面劇)을 비롯하여 최근까지 우리 민간에 연중행사의 하나로 각 지방에서 연희되어 오던 해서가면극(海西假面劇)·야류(野遊)·오광대가면극(五廣大假面劇)·서낭신제가면극[城隍神祭假面劇] 등이 있어 여기에 사용된 탈이 무척 많다.
한국 탈의 종류와 구조
우리나라 탈은 크게 신앙가면과 예능가면으로 나눌 수 있다. 신앙가면이란 일정한 장소에 가면을 안치하여 두고 그 가면에 제사(또는 고사)를 지내거나 가면을 얼굴에 쓰고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능가면이란 얼굴에 가면을 쓰고 무용할 때나 연극할 때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이 예능가면에도 신앙적 일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신앙가면에는 일정한 장소에 안치해 두고 고사만을 지내는 신성가면(神聖假面)과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얼굴에 쓰는 구나가면(驅儺假面)이 있다. 이 신성가면에는 광대시가면·창귀시가면·소미시가면·놋도리가면·장군가면이 있고, 구나가면에는 방상시가면과 사자가면이 있다.
둘째, 예능가면에는 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무용가면, 연극할 때 쓰는 연극가면이 있다. 이 무용가면에는 처용무가면이 있고, 연극가면에는 산대가면극·해서가면극·야류·오광대가면극·서낭신제가면극의 탈이 있다.
우리나라 탈의 구조를 보면 그 대부분은 움직이지 않는 조형(造型)에 지나지 않으나, 방상시가면의 눈알과 봉산사자가면의 눈알, 북청사자가면의 입, 산대가면극의 눈끔적이가면의 양쪽 눈, 마산오광대가면극의 턱까불가면의 턱을 비롯하여 동래야류가면극의 양반탈의 턱, 수영야류가면극의 수양반(首兩班)탈의 턱, 하회가면극의 선비·양반·중·백정 탈의 턱, 그리고 해서가면극의 황주양반탈의 턱은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 탈의 특징
우리나라 탈은 한국적인 표정을 지니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의 골격과 용모가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역(役)에 따른 인물의 개성도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하회가면의 선비·양반·각시·중·백정 등이 그러하며, 그 가면들의 사실적인 조각수법은 우리나라 나무탈 중 일품(逸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탈은 대부분 그 형모가 괴이하고, 또 색채가 짙은 데 그 특질이 있다. 이것은 대부분 야간에 장작불 아래에서 연출되므로 강렬한 색채로써 하지 않으면 표현의 힘을 약하게 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면극에 사용하지 않는 개성 덕물산의 신앙가면과 야간에 연희하지 않는 하회 및 강릉의 탈은 색채가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
그리고 그 탈들의 용모가 무시무시함과 동시에 표정이 매우 딱딱한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그리고 색채상으로 보면 주홍색이 대부분이고, 그 다음에 흑남색을 주로 많이 사용하였으며, 또 금색·은색도 적지않게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탈 중에 하회의 나무로 만든 가면에는 얼굴의 상반부와 하반부인 턱을 따로따로 만든 것이 있는데, 이는 끈으로 연결한 것으로서 얼굴의 표정을 변화시키는 데 대단히 유리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색채·형모 외에 거의 모든 탈에는 탈보인 헝겊조각 및 노끈을 탈 뒤에 붙여놓았다.
이것으로 연희자는 탈을 자기의 머리에 밀착시켜 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고 또 추한 자기의 후두부를 관람자에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
가면은 대다수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나 그 중 더러는 여러 가지 신의 형상을 표시한 것도 있다. 방상시가면·처용가면·오방신장가면(五方神將假面)·산대가면극에 있어서 연잎가면[蓮葉假面]과 눈끔적이 탈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영노와 같은 가상(假想)의 동물탈도 있으며, 연극의 줄거리가 희극적인 관계로 실제의 동물탈도 상당히 있다. 즉, 산대가면극·해서가면극의 원숭이, 오광대가면극의 사자·범·담비 등과 같은 탈이 그것이다.
그리고 양반가면은 대부분 쌍언청이·언청이·입비뚤이·코비뚤이·사팔뜨기 등 불구자의 용모가 특징인데 이는 조선시대 양반계급에 대한 평민들의 반감이 탈에 반영된 것이다. 우리나라 탈은 형모가 괴이하고 색채가 짙은 데 특질이 있지만, 그 표정은 사실적이기보다 대부분 상징적인 것이 또한 그 특색의 하나이다.
탈 제작기법
탈의 제작기법은 재질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탈은 재료에 따라 나무탈·종이탈·바가지탈·털가죽탈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종이탈과 바가지탈이 주종을 이루는데, 그것은 재료의 특징 때문이다.
종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손쉽게 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바가지는 이미 그 형상이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조금만 손질을 하면 탈을 완성할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재료는 가벼워서 탈을 만들어 쓰고 탈춤을 추는 데 편리한 까닭도 있다. 이 밖에도 사자탈과 같이 규모가 큰 특수한 탈은 소쿠리나 키를 이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종이탈은 몇 가지 방식으로 제작된다. 첫째, 종이를 얼굴 모양으로 자르고 먹과 물감으로 그려서 얼굴에 쓸 수 있도록 한 종이탈이 있다.
동해안에서 별신굿을 하는 세습무(世襲巫)들이 탈굿을 할 때, 한지(韓紙)를 이용해 눈·코·입 부분을 적절히 가위로 오리고 먹과 물감으로 채색하여 인물에 맞는 탈을 만든다. 종이에 거의 손질을 하지 않는 탈도 있다. 한지를 그대로 보자기처럼 덮어쓰고 목 부분을 끈으로 묶은 다음 눈만 뚫어준다.
복면에 가까운 탈로 제주도의 도깨비탈은 이렇게 만든다. 한지 한 겹으로 만든 평면적인 종이탈이지만, 한지의 재질로 인하여 얼굴에 쓰고 있는 동안 얼굴 각 부위의 윤곽이 드러나서 입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진주오광대탈은 마분지를 사용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만든다.
두꺼운 마분지를 세로로 접어서 윤곽을 오리고 눈과 입 등을 도려내어 좌우가 대칭을 이루게 한다. 코는 다른 종이를 덧붙여서 코의 입체감을 살린다.
둘째, 흙으로 탈의 모양을 양각(陽刻)으로 만든 다음 그 위에 한지를 여러 차례 발라서 말리고 흙으로 탈의 형상을 떠낸다. 여기다 눈·코·입을 뚫고 물감으로 채색하여 탈을 완성시킨다.
이와 반대로 음각(陰刻)한 탈의 모형에 안쪽으로 종이를 발라서 탈을 떠내기도 한다. 양각의 모형에서 떠내는 경우에는 탈의 표면이 모형보다 무디게 나오고 모형을 그때마다 부수어야 한다.
셋째, 신문지와 마분지 등을 물에 오랫동안 불려서 풀을 넣고 절구로 찧어 종이찰흙을 만든 다음, 이 종이찰흙으로 탈을 빚어 만든다. 고성오광대탈은 이렇게 제작되는데, 종이찰흙의 재질감 때문에 탈의 표면이 매끈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바가지탈은 잘 마른 바가지를 이용해 만든다.
먼저 바가지를 얼굴 모양으로 적당하게 자른 다음 눈과 입은 도려내고, 눈썹과 코는 짚·새끼·노끈·털가죽·나무조각 등을 덧붙여서 만든다. 또 얼굴의 혹은 종이찰흙을, 귀는 바가지 조각을 이용해 만들어 붙인다.
따라서 바가지탈은 얼굴형이 바가지 모양으로 통일되어 있다. 탈의 형상이 완성되면 한지를 몇 겹 바른 다음 채색을 한다. 가볍고 제작하기 편리한 장점이 있다.
나무탈은 오동나무와 오리나무 등을 이용하여 칼로 깎아 제작한다. 따라서 나무탈은 조각품이라 할 수 있다. 원목을 깎아내어 만들되 수염 외에는 덧붙이는 것이 없다.
탈의 형상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탈의 뒷면을 깊게 파내어 얼굴에 쓰기 알맞도록 한다. 나무탈 위에 종이를 바르고 채색을 한다. 나무탈로는 하회탈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데 턱이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작과정에 턱을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탈의 형상을 온전하게 완성한 다음 턱을 따로 떼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노끈으로 연결하므로 전혀 이질감이 없다.
하회탈은 턱이 떨어져 있어서 자유로이 움직일 뿐 아니라, 입체감이 특히 강하며 좌우대칭을 이루지 않도록 조각하여 상하 좌우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바뀌므로 고정적인 탈의 한계를 극복하여 그 기법이 주목된다. 털가죽탈은 종이로 먼저 탈의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털가죽을 붙여서 제작하였다.
주로 개의 털가죽을 사용한다. 바가지에 털가죽을 입히는 경우도 있고 먼저 털가죽을 얼굴에 맞게 잘라서 그 안쪽에 종이를 여러 겹 바르는 경우도 있다. 눈과 입은 구멍을 뚫어서, 코와 눈썹은 다른 털가죽을 덧붙여서 나타낸다. 머리털·눈썹·수염 등을 나타내는 데에는 실제 머리카락이 쓰이기도 하지만, 실이나 털가죽이 쓰이는 경우가 흔하다.
탈을 덮어 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검은색 헝겊으로 만든 탈보를 탈 뒷면에다 부착시킨다. 탈보는 머리카락을 나타내기도 하고 쓴 탈을 얼굴에 고정시켜주는 구실도 한다.
탈의 형상과 색상
일반적으로 우리 탈의 형상은 기괴망측하게 생겼다고 한다. 실제보다 코·입·눈이 과장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코는 삐딱하고 눈꼬리는 사납게 찢어져 있는가 하면, 입이 크게 비뚤어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언청이탈·문둥이탈·옴탈과 같이 특수한 입이나 안면(顔面)을 지니는 탈 외에도 이마·볼·턱 등에 커다란 혹이 제멋대로 나 있고, 이가 어긋나게 톱니처럼 두드러져 있으며, 이마가 넓고 파도처럼 주름이 많아서 얼굴 각 부위의 비례가 맞지 않는 탈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탈이 인간적이다. 기괴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자탈이나 원숭이탈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 점 또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얼굴의 윤곽과 비슷하게 타원형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바가지탈의 경우는 거의 원형에 가깝고 나무탈과 종이탈은 장방형·역사다리꼴·역삼각형 등 다양하다. 가죽탈은 특히 모가 나게 생겼다.
일반적으로 우리 조각품이 평면적인 것과는 달리 가죽탈을 제외하면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부분적인 형상을 보면 눈이 대체로 크고 동그랗거나 치켜 뜬 모양을 하고 있다. 실눈을 하고 있는 것은 하회탈의 일부뿐이다. 코는 남녀노소에 따라 달라 젊은 남성탈은 코가 지나치게 크게 과장되어 있고, 여성탈은 콧대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거나 굽어 있다.
입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입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서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밑으로 깊게 처져서 불만스러운 모습을 짓고 있기도 하다. 언청이와 입비뚤이 등 병신스러운 입 모양을 하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치켜 덮고 있어 심술궂은 입 모양을 하고 있는 탈도 있다.
귀는 없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산대탈이나 오광대탈에는 귀가 있다. 동래와 수영의 들놀음탈에는 귀가 특히 과장되어 있다. 통영오광대의 양반탈은 턱이 없고, 하회탈의 일부는 턱이 분리되어 있다.
탈광대의 움직임에 따라 턱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므로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을 가변적으로 지어 보일 수 있다. 산대놀이의 눈끔적이탈과 함께 탈의 고정성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색상은 대체로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원색으로는 붉은색·검은색·흰색이 많이 보이며, 푸른 남색도 더러 있다. 간색(間色)으로는 얼굴색에 가까운 황색이 주로 쓰인다.
사실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인물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에는 원색이 기능적이다. 탈의 원색들은 신분계층에 따라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남녀노소에 따라서 일정한 성격을 부여한다.
늙은이 탈은 검고 어두우며, 젊은이 탈은 붉고 밝으며, 젊은 여성의 탈은 흰색이 많다. 이들 색상은 방위와 계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검은색은 죽음의 계절인 겨울을 나타내며 북쪽을 뜻한다.
붉은색은 생산의 계절인 여름을 나타내며 남쪽을 뜻한다. 늙은이 탈이 검은색이고 젊은이 탈이 붉은색인 것은 겨울과 여름의 계절적 상징과 관련되어 있다.
탈춤에서 보이는 노소의 극중 싸움에서 늙은이가 지고 젊은이가 이기는 것은, 겨울과 여름의 싸움굿에서 겨울을 물리치고 여름이 승리함으로써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간색으로 칠한 것은 하회탈이 대표적이다. 간색을 칠하되 미리 몇 가지 색으로 배합된 간색을 한 차례만 칠한 것이 아니라, 몇 차례로 나누어 거듭 칠함으로써 입체감과 사실성이 두드러졌다.
이를테면 부녀와 각시탈은 살색인 주황색을 몇 차례 칠한 위에 다시 흰색을 덧칠하고, 그 위에 연지·곤지를 찍어서 화장한 여성의 얼굴을 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눈썹의 경우도 곧바로 검은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녹색을 칠하고 난 다음 검은색을 덧칠하여 한층 깊이를 느끼게 하였다.
탈의 성격 표현
탈의 성격 표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인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놓고 극중 행동을 통해 어긋난 면을 폭로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인물의 부정적인 성격을 형상화하여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하회탈은 앞의 경우에 해당되고 다른 탈들은 뒤의 경우에 해당된다.
하회의 양반탈은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안색이 밝아서 허우대가 멀쩡한 양반의 인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극중에서 하는 행위와 말은 양반답지 못하게 함으로써, 양반의 드러나지 않은 허위를 폭로하는 효과를 올린다.
그리고 초랭이탈은 이와 달리 입이 비뚤어져 턱이 뾰족하고 콧대가 잘려 있으며, 얼굴색이 검붉어서 못난 아랫사람의 성격과 말의 자유가 제약되어 있는 신분적 한계를 그럴듯하게 형상화하고 있으면서도, 극중에서는 이러한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어서 상층의 허위를 비판하는 구실을 적극적으로 한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는 셈이다.
따라서 하회탈은 인물의 생김새와 행위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효과를 올리는 것이다. 즉, 멀쩡하게 생긴 양반은 병신짓을 하고, 병신처럼 생긴 초랭이는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나머지 탈들은 대부분 탈의 생김새에서 극중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양반의 바보스러움과 병신스러움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기 위하여 언청이와 문둥이 등으로 형상화하고, 노승의 관념적 허위를 풍자하기 위하여 검은 얼굴에 파리똥이 덕지덕지 앉은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탈의 형상에서 이미 비판적인 극중 인물의 성격을 희화적(戱畫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말뚝이탈은 코를 과장하여 남성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들놀음의 말뚝이탈은 코가 이마에서부터 입까지 걸쳐 길게 늘어져 있을 뿐 아니라 모양도 남성의 성기에 가깝다. 과장된 성기 모양의 코는 성생활을 건강하게 즐기는 민중의식의 반영이자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탈의 색상도 인물의 성격을 일정하게 창조하는데, 붉고 짙은 색의 탈이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나타낸다면, 누렇고 옅은 색의 탈은 바보스럽고 무능한 성격을 나타낸다. 검고 어두운 색의 탈은 찌들리고 소외당한 인물의 성격을 나타낸다. 고성오광대의 홍백양반탈은 인물의 이중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얼굴 좌우에 붉은색과 흰색을 칠하기도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또는 탈의 움직임에 따라서 표정이 바뀌는 탈로는 하회탈이 있다. 특히, 입체성이 강한 탈은 상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바뀌고, 좌우가 어긋나게 형상화된 탈은 좌우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
양반탈은 눈두덩·광대뼈 등을 갈매기 모양의 곡선으로 깊게 파서 아래위의 움직임에 따라, 초랭이탈은 입매를 좌우 상반되게 형상화하여 좌우 움직임에 따라 화난 표정과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각시탈과 같은 경우에는 내려깐 눈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을 함께 조형함으로써 각시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 이를 극복하려는 각시의 내면적인 의식을 더불어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하회탈은 부조화의 조화를 통하여 탈의 고정성을 극복한 창조적 성격 표현을 하고 있다. 우리의 탈은 시대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고, 각 시대의 인물들을 계층·남녀·연령별로 두루 보여주고 있다.
고려탈인 하회탈의 경우에는 양반·선비·초랭이·이매 등으로 인물의 상하우지(上下愚智)의 성격을 고루 표현하고, 각시·부녀·할미 등 여성탈은 생산력에 따라 처음·중간·끝을, 중·백정탈은 성속(聖俗)의 관계를 두루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탈에는 포도부장·포졸, 심지어 순사와 같은 탈이 나타나고, 용산 삼계 덜머리집과 같은 술집여자 및 취발이·신장수와 같은 탈이 등장하여 시장형성에 따른 상업적인 인물이 나타난다. 왜장녀·서울애기와 같은 탈도 조선조 후기에 등장한 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회가 점점 복잡하여짐에 따라 새로운 탈이 계속 생겨나는가 하면, 같은 탈의 숫자도 계속 불어난다. 그러나 같은 인물의 탈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형상화되기도 한다.
고려탈인 하회의 중탈은 색상이 밝고 호방하게 웃는 상을 하고 있는데, 조선시태 중탈은 한결같이 어둡고 찌들려 있어 울상들을 하고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의 중탈과 불교를 좌도로 몰아 탄압하던 조선시대의 중탈이 지닌 시대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회탈이 고려자기에 비유된다면 후대의 탈들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질그릇에 비유된다. 이것 또한 당시의 조각품이 지닌 일반적인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고려의 조각품에 비하여 조선의 조각품이 일반적으로 나빠진 경향이 있다.
고려의 불교조각품이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조선의 것은 정적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교조각의 퇴보에서 오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탈』(김수남, 행림출판, 1988)
『한국가면의 연구』(최상수, 성문각, 1984)
『한국의 탈』(국립민속박물관, 1982)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일지사, 1979)
「탈의 조형미가 지닌 예술적 형상성과 사회적 기능」(임재해,『한국민속과 오늘의 문화』, 지식산업사, 1991)
「탈과 조각품으로 본 하회탈의 예술성과 사회성」(임재해,『안동문화의 재인식』, 안동문화연구회, 1986)
「탈에 담긴 조형과 상징」(조동일,『문학이라는 시비거리』, 이우출판사, 1983)
「한국탈의 제작기법」(김기수,『한국의 탈』, 국립민속박물관, 1981)
「한국탈의 조형미」(유민영,『한국의 탈』, 국립민속박물관, 1981)
관련이미지 99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방상씨탈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아시아의 공연예술
탈과 탈놀이
15세기 후반에 기술된 이육(李陸)의 『청파극담 靑坡劇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떤 사람이 탈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그 집에 병이 전염되자 무당이 말하기를 탈 때문이라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즉시 집에 둔 탈을 들판에 버렸더니 과연 병이 나았다. 수개월이 지난 후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마침 밭가를 지나다가 전에 버린 탈 위에 피어난 버섯을 잘못 알아보고 따다 먹었다. 한 송이를 먼저 먹자 갑자기 웃으며 일어나 춤을 추었는데, 마치 미치광이 같았지만 모두 우연으로 여기고 그다지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에 먹은 사람도 웃으며 일어나 앞사람과 같이 춤을 추었다. 춤이 그친 후 물으니 "처음 먹자마자 흥이 저절로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였다"고 대답하였다.1)
한국의 대표적인 탈놀이인 하회별신굿놀이(윤주영 촬영)
이 이야기는 탈의 민간 어원설을 잘 함축하고 있다. 탈은 얼굴에 쓰는 가면, 인체에 생긴 질병, 갑자기 일어난 사고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1차적으로 탈은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내용을 반영한다. 즉, 탈(가면)이 탈(질병)을 불러온 것이다. 옛사람들에게 탈은 신체(神體)를 상징하는 신성한 대상이었다. 이런 물건을 사람 가까이 두고 함부로 다룬 까닭에 신의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탈을 소중히 여기고 신성시하면서도 사람이 사는 거처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숭배하면서 보관했다.
2차적으로 탈은 인간에게 신명을 일으키는 도구라는 의식을 반영한다. 고대의 신성가면은 15세기에 이르러 예능가면으로 전이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썩은 나무탈 위에 돋아난 버섯을 따서 먹고 저절로 흥이 나서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는 것은 탈이 지닌 예능성을 시사해준다.
3차적으로 탈은 그 자체를 이용해서 질병과 사고를 물리치고 해결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번에는 탈이 탈을 물리친 것이다. 이러한 탈의 의미는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를 퇴치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탈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한편, 탈을 응용하여 집단적인 예능을 만들어 전승시켜온 인류의 내력을 설명해준다.
한국의 고유어 '탈'은 한자어 '가면(假面 혹은 面)'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탈놀이는 가면희(假面戱), 가면무(假面舞) 혹은 가면극(假面劇)을 통칭한다. 일반적으로 가면을 이용한 놀이를 통칭 가면희라 하고, 가면을 이용한 본격적인 연극을 가면극이라 한다. 탈을 쓰고 노는 사람은 탈꾼, 탈광대라고 하였다. 고대의 기록에서는 탈과 탈꾼을 괴뢰(傀儡), 귀두(鬼頭), 귀뢰(鬼儡), 면구(面具), 가두(假頭), 대면(代面), 가수(假首) 등으로 통칭하였다.
이는 탈이 지닌 허구적 인격성, 얼굴에 쓰는 도구, 귀신이나 병환을 퇴치하는 종교성 그리고 탈을 쓰고 노는 연희자 등을 포괄시킨 의미이다. 인형 역시 탈의 명칭과 같이 쓰였으며 탈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2) 일반적인 의미로는 탈을 도구로 해서 노는 놀이는 모두 탈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로서의 탈놀이는 전승연희로서 독자성을 지닌 경우에만 해당된다.
탈놀이가 독자적인 연희양식으로 발전하면서 탈과 탈놀이는 지역마다 다른 명칭과 특징을 갖게 되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산대탈놀이' 혹은 '별산대탈놀이'라는 명칭이 전승되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개성과 조선시대의 한성을 중심으로 산대놀이[山臺戱]가 성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약칭으로 산대 혹은 별산대라고 한다. 산대란 산과 같이 높은 무대를 설치하고 놀았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를 위해 왕의 명령에 따라서 궁정(宮庭)이나 궁전 근처의 넓은 광장에 규모가 방대한 산대를 하나 혹은 여러 개 설치하고 다양한 공연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산대놀이라고 해서 모두 실제로 산대를 만들어놓고 그 위에서 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과거 산대놀이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의미에서 통칭 '산대놀이'라는 명칭이 유행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황해도 지역에서는 '탈춤'과 '놀탈'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춤이 그만큼 중요시되었고, 잘 놀아야 탈놀이가 된다는 의미에서 탈꾼을 놀탈이라 했던 것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들놀음' '오광대' '별신굿놀이' 등이 탈놀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탈 자체보다는 야외에서 노는 놀음, 다섯 광대의 놀음, 다섯 마당으로 노는 놀음, 별신굿에서 노는 놀음 등의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오광대에는 실제로 여러 인물이 출현하고, 오광대가 분명히 누구라는 규칙도 전승되지 않는다. 낙동강 유역의 여러 지역에서는 오광대탈놀이가 성행한 것이 확인된다. 경상북도의 하회나 동해안의 별신굿탈놀이에서는 굿과 탈놀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탈놀이 자체를 '굿놀이'라고 함으로써 굿의 넓은 개념을 인식케 한다.
강원도 강릉 단오제에서 놀아온 탈놀이도 고대적인 원형성을 느끼게 한다. 함경도에서는 애초부터 사자를 중심으로 놀았으므로 '사자놀이' 혹은 '사자탈놀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남사당에서는 탈놀이를 '덧뵈기'라고 한다. '덧보이기' 혹은 '덧쓰고 보이기'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탈과 탈놀이의 명칭은 다의적으로 사용되었다.
관련이미지 99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양주별산대놀이 신할아비와 신할미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로 신할아비가 미얄할미와 다투다가 미얄이 죽자 아들과 딸을 불러 장사를 지낸다.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탈과 탈놀이 (동아시아의 공연예술)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탈
분류
용어
목차
정의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주로 얼굴에 써서 분장에 사용하는 물건.
내용
탈은 한자어로는 ‘면面·면구面具·가면假面·대면代面·가두假頭·가수假首’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말로는 ‘광대·초라니·탈·탈박·탈바가지’ 등으로 불러 왔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얼굴 앞면만 가리는 면구를 가면이라 하고, 머리 전체 후두부後頭部까지 가리는 것을 가두·가수·투두套頭라고 해 구별하기도 한다. 한국의 가면극이나 일본의 가면극인 노能에서는 대부분 얼굴 앞면만을 가리는 가면을 착용하고, 중국의 가면극인 나희儺戲에서는 주로 가두를 착용한다.
그동안 탈은 가면을 가리키는 한국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몽골어, 특히 고대 몽골어에서 탈은 얼굴을 가리키는 말이다. 찰스 바우덴(Charles Bawden)이 편집한 『몽영사전(Mongolian─English Dictionary)』(1997)에 의하면, 몽골어 탈(tal)은 ‘일면(side)’, ‘한쪽 면’의 의미와 함께 ‘생김(feature)’의 의미가 있다. 몽골사회과학원의 수미야바타르(Sumiyabaatar) 교수에 의하면, 머리의 앞면, 즉 얼굴은 머리의 앞면과 뒷면 중 ‘한 면’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재도 탈은 얼굴의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한글학회의 『우리말큰사전』에서는 ‘탈박’을 ‘탈바가지’의 준말로 보았다. 그러나 탈박과 탈바가지에서 ‘박’과 ‘바가지’는 각각 몽골어로 가면과 도구라는 뜻이다. 이는 현재도 쓰는 말이다. 티벳과 몽골의 라마교 사원에서 거행되는 가면극인 ‘챰’의 가면은 ‘챰박’이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탈박은 얼굴 가면이란 뜻이고 탈바가지는 얼굴을 가리는 도구, 즉 가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탈박은 탈바가지의 준말이 아닌 것이다.
탈을 만드는 재료는 주로 나무이지만 종이, 가벼운 돌, 청동, 천, 도자기 등 다양하다. 탈에 채색을 하기도 하는데 황토를 입히거나 여러 가지 색깔의 염료로 그림을 그린다. 조각한 나무탈 위에 종이나 천을 바르고, 그 위에 옻칠을 하면 오래 보존할 수 있다. 한국의 하회탈이 그런 경우이다.
탈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인다. 탈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멜라네시아 등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다만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꾸며서 상연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아라비아·북동아프리카·발칸을 포함하는 근동近東 지역과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북아프리카에서는 탈을 사용할 수 없었다.
탈은 풍농 기원의 제의, 악귀를 쫓는 벽사의식과 나례儺禮, 병을 치료하기 위한 무속적 제의, 입사식, 장례식, 축제, 가장무도회, 연극, 무용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그래서 그 기능과 의미가 매우 다양하다.
탈의 주술적 기능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풍농을 기원하는 제의이다. 대체로 수렵, 목축 등으로 유동 생활을 하는 민족에 비해 정착 생활을 하는 농경 민족에게서 더욱 풍부한 탈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기술 수준이 낮고 자연 조건의 지배를 크게 받은 시대일수록 주술적인 농경의례가 성행했는데, 지금도 그 전통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농경의례의 양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풍년을 가져오는 신격神格과 정령이 탈의 형태를 빌려 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탈에서 풍농을 기원하는 주술의 기능 다음으로 많이 발견되는 것은 악귀惡鬼를 퇴치하기 위한 벽사辟邪의 기능이다.
신성탈은 사원이나 사당祠堂에 안치해 두고 숭배하며 제사 지내는 탈을 의미한다. 그리고 탈을 쓴 신을 숭배하는 것도 신성탈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의술탈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건강을 지켜 주는 보호 세력들을 불러내는 탈이다. 다른 하나는 질병을 가져오는 악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탈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한 치병굿에서 사용되는 탈도 일종의 의술탈로 볼 수 있다. 의醫의 옛 글자인 의毉는 무당이 병을 일으킨 악령을 쫓기 위해 화살[矢] 같은 무기를 손에 들고 사용하는 모습을 나타낸 문자이다.
추억탈은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추도의 뜻과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는 뜻을 담고 있는 탈을 의미한다.
전쟁탈은 악의에 찬 표정이거나 적에게 두려움을 줄 만큼 무시무시한 얼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기괴한 탈을 새긴 전투용 방패를 사용했고, 그들의 갑옷과 투구에 무서운 탈을 부착했다. 일본의 무사들도 가면 투구를 사용했다.
장례용 탈은 악령으로부터 죽은 사람을 보호하는 기능,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승에서 끊임없이 방황하지 않게 하기 위해 본래의 모습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 기능, 장례 시 죽은 사람을 재현하는 기능 등 몇 가지 다른 기능을 갖고 있다.
입사탈은 입사식, 즉 성인식에서 사용되는 탈이다. 입사식에서는 주로 젊은이들에게 입사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이 탈을 착용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입사식을 마친 젊은이가 성인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나타내는 탈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미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는 젊은이들의 입사식에서 입사식을 집행하는 사람이 나무로 만든 탈을 착용했다.
원시시대에 원시인들은 사냥에서 위장의 수단으로 탈을 사용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원시인들은 짐승의 소리를 흉내 내거나 사냥하려는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동물들에게 접근했다.
토템은 원시인들이 자기 부족이나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에 있다고 믿고 신성하게 여겼던 자연물인데, 이 자연물을 자기 집단의 상징으로 삼고 그와 관련된 금기禁忌를 통해 사회적 규제를 설정했던 것이 토테미즘이다. 토템을 숭상하는 집단은 오래전 자기들의 조상이 그 토템과 어떻게 결합되었는지에 관한 신화를 갖고 있으며 그 내용을 종교의식에서 거행하는데, 이때 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고위 사제·주술사·무당은 종종 그 자신의 매우 강력한 토템을 가졌는데, 이들은 그 토템탈을 쓰고 악령을 쫓아낼 수 있었다. 또한 적들을 응징하고 사냥감과 물고기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으며,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었다.
기우탈은 가뭄이 심할 때 비를 기원하는 제의에서 사용된 탈을 가리킨다. 기우제는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는 제의인데, 종족에 따라서는 이때 탈을 사용했다.
예술탈은 무용과 연극 등에서 사용되는 탈을 의미한다. 예술탈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인다.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탈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처음에 연극 탈은 멀리 앉아 있는 관객들에게 배우의 역할이나 성격을 알려 주기 위해 썼다. 따라서 탈 모양만 보고도 주인공을 도와주는 착한 인물인지, 나쁜 인물인지 쉽게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온갖 동물과 나무, 태양, 구름 등 자연물도 탈로 표현했다.
문화의 발전과 함께 인간이 인간과 자연 또는 인간과 신의 문제를 주술로 해결하던 단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예술탈이 생겨났다. 주술의 해결 기능이 창조적 표현 기능으로 변화되면서 탈도 주술탈에서 예술탈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특징 및 의의
전통사회에서 탈은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탈은 나라별로 특징을 보이고 있다. 탈을 만드는 재료, 탈에 새겨진 문양의 상징, 탈의 용도, 탈의 기능 등에서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의 전통신앙, 전통문화 등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세계의 탈들을 통해서 인류 문화의 다양한 모습과 예술을 살펴볼 수 있다.
탈은 원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거나 소망하는 바를 이루려는 주술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만이 종교를 갖고 있듯이, 탈을 사용하여 주술적 목적을 이루려는 생각도 인간만이 가진 것이었다.
이 밖에도 탈은 수많은 형태와 용도가 있다. 특히 현대에도 탈은 병원에서 수술 시 착용하는 의료용 마스크, 야구의 포수와 심판의 마스크 같은 보호용 마스크, 아이스하키의 골키퍼가 착용하는 보호용 마스크,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방독 마스크, 소방관이 착용하는 화재 진압용 마스크, 프로레슬러들이 상대방에게 겁을 주기 위해 착용하는 마스크, 축제에서 착용하는 마스크, 탈극에서 착용하는 마스크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의 탈은 주술적 목적보다는 실용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주술적 탈이 실용적·예술적 탈로 전환된 것이다.
또한 10월 31일 핼러윈(Halloween)은 서양의 풍속이지만,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핼러윈이 되면 아이들은 마녀·유령·광대를 가장한 탈을 쓰고 돌아다니며 핼러윈 행사를 벌인다. 만화와 영화로 유명한 배트맨도 바로 복면탈을 씀으로써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신한다. 이런 이국적인 풍습에 대한 기호, 탈을 써서 자신을 감추고 변신해 보려는 욕구도 인간만이 가진 특징인 것이다.
베니스 축제 등 탈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스스로 탈을 쓰고 돌아다니면서 변신을 꾀한다. 변신에 대한 욕구, 그리고 탈을 쓰고 변신하면서 또한 내 안에 숨어 있는 나를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탈 문화가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참고문헌
탈이 지닌 종교적 의미와 주술적 기능(임재해, 민속연구4,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4), 한국 가면의 연구(최상수, 성문각, 1984),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일지사, 1979), 한국의 가면극(전경욱, 열화당, 2007).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갱신일
2019.01.18.
관련이미지 100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양주별산대놀이 신할아비와 신할미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로 신할아비가 미얄할미와 다투다가 미얄이 죽자 아들과 딸을 불러 장사를 지낸다.
이미지 갤러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탈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시사상식사전
하회탈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만들어져 내려오는 목조탈로, 2개의 병산탈과 함께 국보 제121호로 지정돼 있다.
외국어 표기
河回─(한자)
hahoe mask(영어)
국보 제121호인 하회탈은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재료는 오리나무가 많이 쓰였고, 옻칠을 하여 정교한 색을 내어 해학적 조형미가 잘 나타나 미적 가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 많이 성행했으며, 당시의 지배층인 양반 계층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전통역할극인 별신굿놀이에서 하회탈이 많이 사용되었다.
하회탈 | 출처: 시사상식사전
원래 극중 역할에 따라 14종류가 있는데, 현재 주지 2개ㆍ각시ㆍ중ㆍ양반ㆍ선비ㆍ초랭이ㆍ이매(하인)ㆍ부네(첩 또는 기녀)ㆍ백정ㆍ할미 탈 등이 남아 있고, 총각ㆍ별채ㆍ떡다리 탈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이 중에서 중ㆍ선비ㆍ양반ㆍ백정 탈은 턱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 말을 할 때 턱 부분이 움직일 수 있게 하여 생동감이 표현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다.
참고로 하회마을과 이웃한 병산리에서 전해져 온 2개의 탈을 병산탈이라 하는데, 하회탈과 함께 국보 제121호로 지정돼 있다. 2개의 탈은 양반탈과 선비탈로, 모두 하회탈의 이매탈처럼 턱이 없는 형태다.
한편, 원래 하회마을 소유였던 하회탈은 1964년 국보로 지정된 뒤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해 오다가 2017년 12월 27일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돌아왔다. 이는 하회탈의 원래 소유주인 하회마을보존회 측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하회탈 보관 장소 변경을 요구했고 중앙박물관이 이를 수용함에 따른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국보 하회탈은 양반·선비·백정·각시·초랭이·이매·부네·중·할미·주지(2점) 등 하회탈 11점과 병산탈 2점이다. 탈은 하회마을에서 귀환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지낸 뒤 보관 장소인 안동시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마지막 수정일
2018. 04. 24.
관련이미지 19
각시조사자 :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 갤러리
[네이버 지식백과]하회탈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하회탈
각시
분류
용어
목차
정의
역사
내용
특징 및 의의
정의
하회마을에서 별신굿을 할 때 광대들이 얼굴에 착용하던 탈.
역사
하회탈의 제작과 관련한 설화에는 허도령이 만들었다는 설과 안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허도령이나 안도령은 하회마을 거주민의 집단적 표상이다. 하회마을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門前에, 류씨 배판(배반杯盤)에”라는 향언鄕言이 전하는데, 이는 하회마을의 지배적 거주민이 허씨에서 안씨를 거쳐, 류씨로 교체되어 온 마을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대체로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그 후에 순흥 안씨가 입향하였으며, 류씨는 조선 초기부터 정주하면서 지배 세력으로 성장하여 집성촌을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나 안도령이라는 전설은 하회탈의 제작 시기가 고려 중엽이나 말엽까지 소급될 수 있는 방증이 된다. 허씨와 안씨, 류씨의 관계는 선주민과 이주민의 관계로, 허씨나 안씨가 선주민으로서 이주민인 류씨에 대항하여 별신굿과 탈놀이의 주도권을 고수하다가 다른 성씨 집단에게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보통 탈놀이를 하고 나면 정화와 송신送神의 의미로 탈을 소각하기도 하는데, 하회탈은 짚으로 엮은 섬에 담아 동사洞舍의 다락에 보관하다가 탈놀이가 있을 때 고사를 지내고 탈을 꺼냈다. 하회탈은 보수의 흔적이 있고 본래 턱이 없는 이매탈에 턱을 매단 구멍이 있으며, 떡다리나 희광이, 별채라는 이름도 언급된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탈의 형태와 명칭에 얼마간 변화가 일어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총각·별채·떡다리의 탈 세 개를 한 일본인이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된 바 없다. 하회탈은 각시탈, 주지탈2, 초라니탈, 백정탈, 할미탈, 중탈, 부네탈, 양반탈, 선비탈, 이매탈 등 열한 개 모두가 1964년에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면서, 하회마을을 떠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
내용
하회탈은 오리나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 국내 최고最古의 나무탈이다. 사자로 보이는 주지만 동물탈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의 얼굴이다. 그러나 각시탈은 열일곱 살 서낭각시신의 신체가면神體假面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허도령이 금줄을 치고 목욕재계를 하고서 탈을 만들 때 허도령을 사모하던 열일곱 살 처녀가 허도령을 몰래 엿보는 바람에, 허도령이 신벌을 받아 피를 토하며 즉사하고 처녀가 죽어서 서낭신으로 모셔졌다는 전설에 근거한다. 나머지 인물들도 서낭각시의 일행이므로 각시탈처럼 원래는 인태신人態神의 탈이었으나, 점차 신성성이 사라지고 예능탈로 인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서 공연용으로 사용하는 탈은 하회동탈박물관장인 김동표가 만들었다. 제작 과정은 먼저 오리나무를 10㎝ 두께로 잘라 2년 정도 건조하고, 얼굴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은 다음에 세부적인 부위(코·눈·입·이마·턱·볼)의 작업으로 들어간다. 코를 먼저 만들고 눈·입·주름살·턱을 만든다. 그리고 한지를 앞면에 바르고 황토와 황색 안료를 섞어 바른다. 그 위에 다시 황토와 적색 안료를 섞어 바르고 먹물을 발라 말린 뒤, 젖은 헝겊으로 먹물을 닦아 내면서 농담을 살려 표정과 분위기를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옻칠을 하여 방수防水와 방부防腐의 효과를 꾀한다.
하회탈은 크게 ①여성탈(각시·부네·할미), ②남성탈(양반·선비·초라니·이매·중·백정), ③동물탈(주지)로 삼분된다. 탈은 각각 인물의 성격과 의미를 나타내며, 인물별 성격에 따른 행동 지침도 구전된다. 탈의 거동은 “주지걸음하듯 한다.”, “사뿐사뿐 각시걸음”, “능청맞다 중의 걸음”, “황새걸음 양반걸음”, “황새걸음 선비걸음”, “방정맞다 초라니걸음”, “비틀비틀 이매걸음”, “맵시 있다 부네걸음”, “심술궂다 백정걸음”, “엉덩이춤 추는 할미걸음” 등이 있다.
각시탈은 살구색 안면 위에 분粉을 칠하고 양 볼에 연지를, 이마에 곤지를 찍고, 입술도 붉게 칠하였다. 콧날은 펑퍼짐하고 광대뼈는 넓으며 입은 굳게 다물어, 생경하고 긴장한 표정을 한 젊은 처녀의 모습이다. 그러나 오른쪽 눈은 내리감고 왼쪽 눈은 치뜨는 모습으로 성性에 대한 처녀의 억압 심리와 호기심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형상화하였다. 머리 위에 한일자로 올린 트레머리와 양옆으로 늘어뜨린 머리채도 각시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억압적인 성 문화를 상징한다.
부네탈은 살구색의 안면에 분칠을 하고 양 볼과 이마에 연지와 곤지를 찍고 입술도 붉게 칠한 젊은 여성의 얼굴이다. 타원형의 반반한 얼굴에 실눈과 입이 모두 초승달 모양으로 조금 열려 웃는 표정과 중심에서 우뚝 솟은 날씬한 코가 조화를 이루어 요염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어서, 여성의 성숙한 육체미와 넘치는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두발은 얼굴 상반부를 테두리같이 둘러 귀를 덮고 양 볼 끝까지 내려 드리웠다가 다시 위로 올려 쪽을 쪄서 마치 뿔처럼 보이는데, 이는 남성들을 유혹하는 능동적인 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할미탈은 검붉은 얼굴에 녹색 반점을 찍어 기미를 나타내고, 눈은 둥글게 뚫린 고리눈에 미간은 깊게 파이고, 작은 코가 오뚝하게 솟았다. 양 볼과 눈언저리와 입가에 주름살이 새겨져 있고, 턱은 뾰족하고, 입은 크게 벌려 있다. 늙고 못생기고 박복한 노파의 모습인데, 고리눈과 오뚝한 코와 크게 벌린 입은 오히려 가난과 차별의 세파를 헤치고 살아온 억센 생활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준다. 순종적이고 체념적이고 허약한 노파가 아니라, 오히려 욕심과 탐심이 많고 입이 거칠고 성깔이 사나운 할미의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세 개의 여성탈은 여성의 세 연령층을 대변하도록 제작되었는데, 이는 여성의 본질적 능력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자녀 생산으로 인식한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관에 근거한다.
남성탈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적 신분과 역할을 대변하도록 제작하였다. 백정은 도살에 종사하는 천민이고, 중은 종교적 사제이다. 양반과 선비는 사대부이고, 초라니는 양반의 노비이며, 이매는 하급 관원이다. 이매를 별채라고도 부르는데, 별채는 고려시대 관원 별좌別坐의 음이 잘못 전해졌을 개연성이 크다. 이매는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점이 왼쪽 다리가 약한 도깨비, 곧 이매魑魅와 비슷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백정탈은 안면은 주황색이고 미간에 혹이 있으며, 이마와 미간과 양 볼에 깊은 주름살이 어지럽게 파여 험상궂은 표정이다. 이에 더해 실눈과 약간 미소 짓는 입은 오히려 “심술궂다 백정걸음”이라는 말처럼 심술궂고 잔인한 성격을 드러낸다. 또한 미간의 혹과 넓고 큰 콧방울과 널찍하고 힘센 턱으로 백정이 완력이 대단함을 표현하였다.
중탈은 주홍색 안면에 큰 혹이 미간에 솟아 있으며, 두 개의 실눈을 위로 부릅뜨고 인중과 코끝을 위로 추켜올리며 입을 크게 벌려 웃는 웃음은 교활한 인상을 풍겨 “능청맞다 중의 걸음”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양반탈은 안색이 주황색이고, 굵고 긴 눈썹과 초승달처럼 뜬 실눈이 완만한 곡선미를 이루며, 입을 크게 벌리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얼굴이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다. 코는 매부리코이며, 턱도 커서 강한 인상을 준다.
선비탈은 안색은 주홍색 바탕에 갈색을 덮고, 코는 매부리코이다. 눈은 고리눈이면서 눈 끝이 위로 찢어져 사납고 성난 표정이다.
초라니는 중과 선비처럼 주홍색 바탕에 갈색을 덧칠하였다. 두 눈은 눈알이 톡 튀어나온 고리눈인데 돌출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구멍의 테두리를 흰색으로 칠하였다. 코끝은 납작하게 눌렸고 입은 왼쪽으로 약간 올라가서 웃는 입이거나 입비뚤이이며, 위아래 치아가 드러나 있고 턱은 뾰족하다. 조각 기법이 다른 남성탈처럼 사실적이지 않고 동물탈인 주지탈처럼 단순화·양식화되어 있어, 인간이 아니라 동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매탈은 양반탈·백정탈과 같은 계통으로, 안면 바탕이 주황색이다. 이는 중탈·선비탈·초라니탈의 안색이 주홍색 계통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주홍색 계통이 강한 인상을 주며 공격적인 인물들이라면, 주황색 계통은 유순한 인상을 주며 포용적인 인물들이다. 이매탈은 눈이 실눈이고 눈썹도 부드러운 곡선인 점에서 양반탈과 비슷하지만, 코끝이 떨어져 나가고 턱도 분실되어 미완성의 미학을 보여 준다. 앞서 언급한 탈의 제작과 관련한 전설 또한 이매탈의 결손을 설명하는 데에 치중되어 있다. 이매가 “비틀비틀 이매걸음”과 같은 연기 지침에 따라 절름발이가 되어 관객을 웃기는 바보 역할을 하는 것은 유식하고 출중한 사대부와 대조되는 무식하고 어리석고 결함을 지닌 하인상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물탈은 주지탈로, 암주지탈과 수주지탈 두 개가 있으며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자의 머리, 즉 눈이 있는 상반부는 반달형의 판자에 눈을 그리고, 위쪽 가장자리에 꿩 털을 꽂아 갈기를 표현한다. 코와 입은 돌출시키고 위턱과 아래턱을 손으로 조종하여 “딱 딱” 소리를 내도록 설계했는데, 이는 북청 사자놀이의 사자처럼 사실적인 기법이 아니라 양식적이고 상징적인 기법이다. 그리고 위턱과 아래턱을 합하였을 때 완전히 포개져서 다문 입이 되는 것이 수사자이고, 불완전하게 포개져서 벌린 입이 되는 것이 암사자인 것으로 암수를 구별하였다.
특징 및 의의
하회탈의 형태 및 모양은 민중의 삶과 사회상을 반영한다. 하회탈은 성별·연령·신분·성격에 따라 안색이 분칠한 살구색, 검붉은 색, 주황색, 주홍색으로 구분하였는데, 후대의 탈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계승된다. 형태적으로는 좌우 대칭형과 좌우 비대칭형으로 양분된다. 양반탈과 선비탈은 좌우 대칭형이지만, 하인 초라니의 탈은 입비뚤이로 좌우 비대칭이다. 그러나 민중의식이 성장하면 이 설정이 역전되어 하인 말뚝이의 탈은 정상적인 대칭형이고, 양반의 탈은 비정상적인 비대칭이 된다.
눈은 실눈(각시·부네·양반·이매·중·백정)과 고리눈(선비·초라니·할미)으로 양분되는데, 실눈은 웃는 표정이고 고리눈은 성난 표정이다.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리하거나 여유가 있는 강자가 실눈을 하고, 불리하거나 불만과 반감이 있는 약자가 고리눈을 하고 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성난 눈은 도끼눈을 하고, 웃는 눈은 붕어눈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코를 통해서도 사회적 신분과 역학 관계를 나타내는데, 양반과 선비는 매부리코로 콧대가 높고, 초라니와 이매는 콧대가 꺾여 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부네의 코는 오뚝하지만, 성적으로 억압 상태인 각시는 콧대가 눌려 있다. 민중의식이 성장한 후 양반의 코는 언청이로 비정상적이고 말뚝이의 코는 정상적이고 실팍하게 변화되었다.
입의 경우, 하회의 양반과 선비는 정상적인데, 신분이 낮은 초라니는 입비뚤이이고 이매는 무턱이다. 다른 지역은 양반이 언청이이거나 입비뚤이이고, 말뚝이는 정상적인 입이다. 그리고 힘을 상징하는 혹이 중과 백정의 미간에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노승·취발이·말뚝이·먹중 등의 탈에 혹이 달려 있어 유사성을 지닌다.
이처럼 다른 지역의 민속탈과 비교하다 보면 하회탈이 사회사·의식사와 탈의 역사적 상관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하회의 남성탈 일부(양반·선비·중·백정·이매)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래턱을 분리하여 위턱에 끈으로 연결하여 고개를 젖히거나 숙임에 따라 표정의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절악切顎의 기법으로 제작하였는데, 후대의 탈에서는 단절되었다.
참고문헌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박진태, 새문사, 1990), 하회별신굿탈놀이(박진태, 피아, 2006), 하회탈, 그 한국인의 얼굴(임재해 외, 민속원, 2005), 하회탈과 하회탈춤의 미학(안동문화연구소, 사계절출판사, 1999), 한국가면극(이두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69), 한국탈놀이의 미학(박진태, 태학사, 2014).
집필자
박진태(朴鎭泰)
갱신일
2019.01.18.
관련이미지 19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백정조사자 :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 갤러리
[네이버 지식백과]하회탈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문화유산채널
안동 하회탈
턱의 비밀
[ 安東 河回- ]
종목
국보 제121호
명칭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安東 河回탈 및 屛山탈)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목공예 / 가구류
시대
고려시대
지정(등록)일
1964년 3월 30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수량
13개
소유자(단체)
하회병산동민
관리자(단체)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유산채널 7분 다큐 "하회탈, 턱의 비밀" 편 감상 [출처원문보기]
하회탈, 턱의 비밀
출처: 문화유산채널
설명글
한국의 유교문화가 살아 숨 쉬는 안동 하회마을. 유무형의 민속적 전통이 공존한다는 특징 때문에, 201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하회마을에 대표적인 민속놀이는 단연, 800년을 이어온 하회 별신굿 탈놀이. 제 각각의 특징을 잘 살린 9개의 탈, 그 중에 유일하게 턱이 없는 선비의 하인 ‘이매탈’. 이 탈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낙동강 지류가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도는 안동 하회마을. 안동하회마을 /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 120개가 넘는 초가집과 기와집이 모여, 옛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재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수령 600년의 당산 나무 앞, 삼신당. 정월 대보름에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에게 안녕과 무병, 풍년을 비는 동제가 열리는 곳으로 하회 별신굿 놀이에서 탈놀이 춤판이 가장 먼저 행해지던 곳이다. 정월 대보름,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가 치러지는 곳이다. 하회마을 동제의 백미인 하회별신굿탈놀이 역시 이곳에서 시작된다. 하회별신굿탈놀이 /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여덟 마당으로 이뤄진 탈놀이에는 아홉 명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 마치 장단에 맞춘 신명나는 춤과 익살스러운 대사로, 양반과 선비, 승려의 치부를 속 시원히 드러내며 서민들의 울분을 풀어준다. 어허 상스럽게 소불알이라니 안살테니 썩 물러가거라 샌님 보소 이 소불알 먹으마요 양기에 억시게 좋으이데이 아니 뭐라꼬? 양기에 좋다고? 그러면 내가 사지 어허 여보게 선비 야가 나오자마자 첨부터 내보고 사라꼬 그랬으니께네 이 불알은 내 불알일세 내 불알 어허 내 불알이야 인터뷰 주연아 / 경기도 성남시 각각 캐릭터마다 걸음걸이가 다른 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인터뷰 Remi / 프랑스 표현이 굉장히 풍부하여 인상적입니다. 탈을 보면 희로애락이 느껴집니다. 아주 흥미로워요 하회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 국보 제121호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탈놀이가 8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오래된 하회 덕분이다. 고려 중기 때 만들어져 마을에서 신성시 여겨졌던 하회탈은 이 곳, 옛 동사의 궤짝에 보관되어 오랜 시간동안 전해졌다. 일제 강점기, 어느 날 이곳에 큰 불이 났다고 한다. 인터뷰 임형규 / 예능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그때 당시에 다른 건 다 타도 탈만큼은 꺼내야 한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들어가서 불이 난 곳에 들어가서 탈 궤짝을 가지고 나왔죠. 하회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마을주민에게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20년 정도에 그 해에는 ‘북촌댁’이라고 앞에 초가집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보관하다가. 그 집에 불이 나서 다 타고 탈을 보관할 때가 없 북촌댁 행랑채 뒤 굴뚝에 갖다가 걸어 놨었대요. 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았던 하회탈은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켜졌다. 그런데 하회탈에는 세 가지 형태의 턱이 존재한다. 우선 턱이 본체와 분리되어있는 탈, 극중 대사와 행동이 유난히 많은 양반과 선비, 파계승과 백정은 턱을 분리시켜 대사 전달력을 높였다. 인터뷰 임재해 /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하회탈의 특징은 턱이 떨어져 있어서 광대가 대사를 하면 실제로 턱 움직임에 따라서 턱이 움직이거든요 말하지 않고 뒤로 젖히면 턱이 열려서 “하하하” 하면 열려서 웃는 표정이 되고 “네 이놈”하고 고개를 숙이면 턱이 저절로 닫혀서 화난 표정을 짓고 아주 탈이 역동적인 가변성을 지니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반면, 턱이 붙어있는 탈은 여성 역할의 각시, 부네, 할미.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가 탈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초랭이’는 남성이지만 하층민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 역시 턱이 붙어있다. 그런데 턱이 없는 탈이 하나 있다. 하인역할의 이매다. 45년째 하회탈을 만들고 있는 김동표 장인.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회탈을 만들고 있는 그는 이매탈의 비밀을 알고 있을까? 인터뷰 김동표 / 하회탈 장인 하회탈 전설을 보면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 12세기경에 마을에 허씨들이 살던 시기에 마을에 재앙이 많이 일어났었답니다. 허씨들이 살던 시기니까 허씨 집안의 총각 허도령이라는 사람의 꿈에 신이 나타나서 ‘탈을 12개를 만들어서 그것을 쓰고 굿을 하면 재앙이 물러갈 것이다‘ 허도령의 이야기는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신의 계시를 받은 허도령이 탈 만들기에 열중해 있던 어느 날, “이제 이매탈만 남았구나” “오라버니” 허도령을 사모하던 김씨 처녀가 허도령이 그리워 그의 방문을 열고 말았다. 인터뷰 김동표 / 하회탈 장인 신이 ‘누구도 들여다보게 하지 말라’ 라고 했었는데 그 처녀가 들여다봄으로 해서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고 마지막으로 만들던 탈이 이매탈이었다고 하는데 턱을 채 못 만들고 허도령이 죽음으로 해서 그 이매탈은 지금까지도 턱이 없는 채로 전해져 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세계에 유래 없는 이 탈 안에는 허도령과 김씨 처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비틀비틀 과장된 몸짓으로 걸어 나오는 이매. 턱이 없어 바보스러운 모습이다. 덕분에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 “놔라, 이놈아“ 인터뷰 임재해 /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이매탈을 쓰는 순간 내 턱이 거기 보태져서 사람마다 턱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색깔도 다르고 그 때 창조적으로 완성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자체로 보면 기형적이지만 이것을 쓰면 내 턱이 여기 들어가서 완성이 되는거죠. 변증법적인 미학 중에서 가장 탁월한 ‘미완성의 완성을 추구한 탈이다’ “등신같이 말을 못한다” 정해진 대사가 없는 즉흥연기로 관객들과 호흡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근데 외국 사람이라도 인물은 이쁘다” 탈의 얼굴과 배우의 턱이 조화를 이루어 극 중 가장 실감나는 인물을 창조해낸다. 인터뷰 김오중 / 전수교육조교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이 바보로서의 웃음을 이 탈은 넘어져도 웃고 맞아도 웃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를 받아도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마냥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탈입니다. 천진난만한 웃음, 그것 하나만으로 사람들 마음을 그냥 사로잡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탈입니다. 신명나는 춤사위 속에 서민의 애환을 담고 있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사람의 얼굴에 씌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미완성의 탈, 해학과 풍자를 가장 잘 표현 할 줄 알았던 선조의 지혜가 만들어낸 유산이다.
익살스런 표정으로 담아내는 해학과 풍자의 한마당인 ‘하회별신굿탈놀이’. 그 중 9개의 탈 중 유일하게 턱이 없는 하인 ‘이매’ 그 사연은 무엇일까? 하회탈에 전해오는 ‘허도령의 전설’을 만나고 사람의 얼굴에 씌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미완성의 탈, 해학과 풍자를 가장 잘 표현 할 줄 알았던 선조의 지혜가 만들어낸 그 유산을 취재한다.
관련이미지 20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하회탈 | 출처: 시사상식사전
이미지 갤러리
[네이버 지식백과]안동 하회탈 [安東 河回-] - 턱의 비밀 (문화유산채널)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
한국의 탈
요약 IUATLD 세계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 3위 입상
발행년도
1985년
디자인
조영제
작품명
한국의 탈
종류
10종
구성
10×5, 5×2
색도
4도 평판
발행 매수
1,974만 매
판매 가격
60원
인쇄처
상문사인쇄소
우리나라 민속춤에 널리 사용되는 탈을 소재로 하여 통영의 오광대 홍백가면과 담비가면, 봉산 사자가면과 취발이가면, 하회 선비가면과 부내가면, 구파발산대 말뚝이가면과 옴가면, 수영야유의 영노가면과 양주산대의 연잎가면 등 10종의 탈을 서울대 미대 조영제 교수가 도안하였다. 이 씰은 국제항결핵 및 폐질환연맹(IUATLD)이 주관하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3위에 입상하였다.
1985년 씰
씰 홀더
씰도안 설명 전·후면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 http://loveseal.knta.or.kr
1904년 덴마크에서 시작한 크리스마스 씰 모금은 오늘날 전 세계 항결핵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국보1호인 남대문을 소재로 한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었으며, 1953년 협회가 창립된 이후 60여년간 모금운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씰을 통해 조성된 결핵퇴치 기금은 국내외 결핵퇴치 사업의 소중한 재원으로 사용됩니다.
제공처 대한결핵협회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탈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탈
유형
개념용어
목차
정의
내용
정의
뜻밖에 일어난 변고나 사고와 그에 따른 어떤 좋지 않은 결과를 가리키는 민간용어.
내용
예정한 노정을 탈없이 마쳤다거나 아무 탈없이 잘 지냈다는 것은 전자의 예이고, 속담에 일이 크게 벌어진 것을 두고 ‘탈이 자배기만큼 났다.’ 하는 것은 후자의 보기가 된다. 탈은 그밖에 병(病)의 뜻으로도 쓰이는데, 먹은 음식으로 말미암아 체하거나 설사 나거나 하는 뱃속 병의 총칭으로 사용하는 배탈이란 용어에 잘 드러난다.
뜻밖에 발생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좋지 않은 결과를 두고 표현하던 탈이란 개념은 점차 민간 신앙에 수용되어 처벌과 관련된 막연한 영적 존재로 발전한다. 그런 막연한 민간신앙적 개념 가운데 임신 중이나 아이를 놓다가 죽은 여인들의 탈이 무(巫)에서 하탈(下頉)이라는 한 종류의 잡귀잡신(雜鬼雜神)으로 확정된다. 탈은 그러므로 한국인의 어떤 부정적인 관념이 하위신령으로까지 발전해 가는, 민간종교의 중요한 개념이다.
탈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 문헌적 출처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조선 후기의 학자 정동유(鄭東愈)가 지은 ≪주영편 晝永編≫에 탈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 있다. 그는 우리 나라에는 자전(字典)에도 없는 글자가 많다 하고, 그 가운데 속명(俗名)과 뒤섞인 글자[雜字]의 한 예로 ‘칭탈(稱頉)’을 들었다. 사람들이 흔히 일을 사고(事故)라고 칭탁(稱託)하여 모면하는 것을 ‘칭탈’로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쓰는 탈의 한자인 ‘頉’이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임을 알 수 있다.
민속신앙·생활·문학작품·속담 등은 탈의 종류와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속담에는 ‘죽는 놈이 탈 없으랴.’하여 어떤 재앙이라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계집과 숯불은 쑤석거리면 탈난다.’는 여자가 남자의 유인에 잘 넘어감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모두 어떤 좋지 않은 결과나 그 원인으로서의 탈을 표현하고 있다.
생활 가운데서 탈은 여러 종류와 내용으로 사용된다. 앙탈·속탈·뒤탈·배탈·까탈 또는 가탈 등이 그러한데, 앙탈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핑계를 대어 피하거나 남의 말을 안 듣고 불평을 늘어놓거나 생떼를 쓰는 것이다. ‘앙탈을 부린다’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속탈은 먹은 것이 잘 삭지 않아 생기는 병으로 배탈과 유사한 뜻을 가진다.
뒤탈은 어떤 일에 대하여 뒷날의 걱정이나 근심, 또는 뒤에 생기는 탈을 말한다. ‘모든 일을 뒤탈 없이 잘 처리하자.’는 용례는 일반적이다. 까탈은 ‘왜 이 일에 그다지도 까탈이 많으냐.’는 예처럼 일이 수월하게 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조건을 가리킨다.
탈의 생활적 용례는 이처럼 다양한데, 가요 가운데도 “이것 참 큰 일 났네, 큰 탈이 났네.”라는 구절이 있는 정도이다.
탈을 주제로 다룬 문학작품으로는 <변강쇠가>를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을 수 있다. 변강쇠가 경상도 함양(咸陽)의 장승을 뽑아다가 도끼로 패어 군불을 많이 넣었는데, 이 변고를 들은 팔도 장승들이 회의하고는 변강쇠에 달려들어 각기 자기네 맡은 대로 온갖 병을 들게 하여서 변강쇠는 송장이 되고 만다.
장승을 패어 덥게 때고 그날 밤을 자고 깨어나서도 변강쇠가 아직 별고 없음을 판소리에서 “아무 탈이 없었구나.”라고 노래한다. 그 탈은 그러나 결국 장승들의 징벌과 변강쇠의 병사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탈이 일상적인 뜻이 아니라 영적 존재 내지 민속신앙 대상의 처벌과 관련되어 있어 탈의 민속종교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 그런 면이 무(巫)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조상(祖上)과 관련하여 1930년대까지도 서울에서 불리던 <지두서 指頭書>라는 무가(巫歌)에 “청산의 청나비는 입이 걸려 못 나오고 흥산의 흥나비는 꽃이 걸려 못 나온다더니 아모씨 조상님네 탈에 걸려 못 나오실 제 애탈 지탈 넋의 넋탈 지방 너미 천너미 가시문 지게쇠문 지게 넘어 오실 제 진언이나 외어 가옵소서.”란 대목이 있다.
조상이 탈에 걸려 이승의 굿판으로 못 나온다면 그 탈은 이미 예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 탈이, 그 구체적인 뜻은 불분명하나 애탈·지탈·넋탈 등으로 개념화된다.
굿의 부정거리나 뒷전에는 탈이 잡귀잡신의 한 종류로 잡혀진다. 하탈이 그것이다. 제가(諸家)집 부녀 가운데 아이 배고 죽었거나 아이 낳다가 죽거나 아이 놓고 죽은 귀신을 가리키는 하탈은 전통굿의 뒷전에서 뒷전의 한 거리로 놀아졌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잡귀잡신 가운데 억울하고도 비참하게 죽은 귀신인 영산과 연결되어 영산의 하위개념으로서의 하탈영산이란 종류를 형성한다. 그래서 부정거리에서는 “낳구 가구 배고 가든 하탈영산”이라며 한 대목이 불려진다.
한국사회가 근대화되면서 의학의 발달로 임산부나 산모나 해산 모가 죽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에 따라 하탈이라는 잡귀잡신도 차츰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뒷전에서 더 이상 놀아지지 않는다. 다만 부정거리에서 하탈영산으로 잠시 언급될 뿐이다. 탈 개념도 근대화에 따른 서양과학 및 합리적 사고방식의 보편화로 이제 별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참고문헌
「변강쇠가」
「주영편 하」(정동유, 남만성 역, 『을유문고』 78, 을유문화사, 1971)
『한국무가집』 Ⅱ(김태곤, 집문당, 1978)
『서울새남굿 신가집』(서울새남굿보존회 편, 문덕사, 1996)
『한국의 샤머니즘』(조흥윤,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朝鮮巫俗の硏究』 上(赤松智城·秋葉隆, 大阪屋號書店, 1937)
「잡귀잡신 연구」(조흥윤, 『종교신학연구』 제1집,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소, 1988)
[네이버 지식백과] 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1. 탈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거라고요?
준비물: 사진기, 필기도구, 여벌 옷
* 경남 지방 탈놀이에 대해 알고 방문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 각 체험에는 이용비가 있으니 문의하고 가세요.
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나요? 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면의 한 종류예요. 탈은 또 하나의 얼굴을 상징하며, 또 다른모습을 보여 주지요.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옛날부터 탈을 만들어 사용했어요. 탈은 원래 제사를 위해 만들기 시작했어요. 자연재해나 질병, 죽음을 피하기 위해 탈을 쓰고 제사를 지냈지요. 이때 탈은 신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사냥을 하거나 전쟁을 할 때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해 탈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사용했던 탈은 점점 놀이로 발전했어요.
고성은 오광대놀이라는 전통 탈놀이로 유명한 고장이에요. 고성 탈 박물관은 오광대 탈을 비롯해 경남 지역의 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어요. 전시된 540여 점의 탈을 보면서 탈의 종류와 다양한 쓰임새를 배울 수 있지요. 탈에 쓰이는 색채, 탈놀이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행동, 탈의 표정 등 탈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도 자세하게 알 수 있어요.
탈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고성 탈 박물관으로 떠나 볼까요?
오광대놀이는 무엇인가요?
경상남도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탈놀이예요. 양반의 잘못과 허세를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우리나라의 탈춤의 종류와 내용을 알아볼까요?
봉산 탈춤, 오광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양주 별산대놀이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탈춤이에요. 탈춤에 담긴 내용은 모두 달라요.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갈등, 양반에 대한 풍자, 서민들의 가난 등 옛날의 생활 모습을 나타냈어요.
2. 탈에 대해 알아볼까요?
탈은 나무나 종이, 흙 등으로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얼굴에 쓰는 물건이에요.
1) 탈의 역사
탈은 선사 시대 원시인들이 동물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 후에는 주술적 목적으로 사용했지요.
우리 탈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부산 동삼동에서 발견된 조개로 만든 탈과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흙으로 만든 탈로 볼 때, 우리 탈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어요.
2) 탈과 탈춤의 종류
탈은 크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것과 탈놀이를 할 때 쓰는 것이 있어요. 탈놀이에 쓰이는 탈은 지역마다 달라요. 탈의 모양뿐만 아니라 복장과 춤사위도 지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 산대놀이 : 서울 중심의 경기 지역에서 전승1)된 탈놀이예요. 산대놀이는 고려 시대에 발생하여 조선 시대 궁중에서 많이 공연하다가 후에 민간에 전파되어 평민극으로 이어졌어요.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등이 대표적인 산대놀이예요.
* 서낭굿 : 경상북도 일대와 강원도 지역의 탈놀이예요. 서낭굿 탈춤은 가장 오래된 탈놀이로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서낭굿 계통의 탈놀이로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 강릉 단오제의 관노 가면극, 동해안 별신굿의 탈놀음굿 등이 있어요.
* 해서 탈춤 : 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탈놀이예요. 5일장이 서는 장터에서 1년에 한 번씩 탈놀이를 했다고 해요. 지금은 강령 탈춤, 봉산 탈춤 등이 전해지고 있어요.
* 오광대놀이 : 경상남도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전승된 탈놀이예요. 조선 후기 지방 시장과 함께 발달한 탈춤이지요. 고성 오광대놀이, 통영 오광대놀이가 대표적이랍니다.
다양한 탈
[네이버 지식백과]고성 탈 박물관 (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