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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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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재확인하는 시집 댓글:  조회:5174  추천:0  2015-02-11
  2004 시집 기상도 정진명    ■다시 시집을 읽으며   내가 이른바 등단이라는 걸 한 것이 1987년도 겨울이니까, 벌써 15년도 더 된 적의 일이다. 등단이랍시고 한 뒤로 변변한 활동도 보여주지 못하다가 1993년에 시집 두 권을 내고는 그 뒤로 세상으로부터 눈을 떼었으니, 정확히는 10년 세월을 눈감고 보낸 셈이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그것을 회복하려고 활쏘기를 배웠고, 곁들이로 배운 활에 미쳐서 문단이라는 동네로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1994년 2월에 집궁을 했으니, 정확히 10년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글쟁이의 고약한 심사가 발동하여 그 동안 내 의지와는 조금 다르게 활에 관한 책을 몇 권 썼고, 그것이 문단에 눈 돌릴 경황이 없는 원인을 제공했다. 10년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보니 활 쪽에서 내가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들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그러니 이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떠밀렸다.   그렇다고 해서 활을 쏘는 동안에 시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활을 쏘면서 건강이 회복되는 그 정력을 시로 분출했기 때문에 건강이 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수준을 유지하게 된 데는 활에서 얻은 에너지를 시 쪽으로 옮겨버린 것이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만큼 나는 시를 많이 썼다. 10년 세월 1천 편을 썼으면 결코 적은 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생에서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시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동안 눈을 뗐던 세상 실정을 알아보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앞섰다. 가장 좋고 빠른 방법으로 우선 그 동안 읽지 못한 남의 시를 우선 읽기로 했고, 그 목표를 1천 권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2003년 하반기부터 읽기 시작해서 2004년 하반기로 접어드는 지금 850권 째를 통과했다.   이 작전에는 방법이고 뭐고 없다. 손에 잡히는 것을 다 읽어버리는 것이다. 이미 간행된 시집들을 닥치는 대로 순서 없이 읽으면서 보니, 내가 눈을 잠시 떼었던 지난 10년간 진행되어온 문단의 변화랄까 이런 것이 눈에 보여, 그것을 한 번 정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그런 작업의 뒷목인 셈이다.     ▼2004년에 보는 시집 기상도   는 말은 원래 사주 명리학의 대운을 셈하는 방법에서 나온 말이지만, 지난 10년 세월의 문단 변화에도 이 말은 적실하다. 가장 먼저, 그리고 손쉽게 눈에 띄는 것은 1980년대를 어떤 당위성처럼 몰아쳤던 노동문학의 몰락이다. 물론 이것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징후일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소련의 고르바초프로부터 시작된 페레스트로이카가 그 첫 단추의 징후였으니, 이후 옐친과 푸틴 정권을 거치면서 러시아는 격동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순식간에 체제의 변화를 겪었다. 자본주의의 전 지구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체제 변화는 그러한 체제를 꿈꾸며 사회 변혁을 시도하던 운동권 세력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사상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변혁과 그 전망을 노래하던 시 역시 사상의 부재와 빈곤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징후는 시에서 사상운동의 맏형 노릇을 하던 창작과비평사의 변화에서 한눈에 드러난다. 반동보수화가 그것이다. 창비시선 100번까지 개괄해보면 대체로 작품성보다는 사회변혁과 양심을 가진 자들의 정직한 세계가 시집 출판의 기본 요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100번을 넘어서면서 이런 구분점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실천문학사 같은 유사한 출판사의 시집 출판이 그런 분위기를 희석시켰을 것이다. 그러다가 200번 쪽으로 다가가면 그때는 사상성은 어디로 사라지고 작품의 완결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미 이때쯤이면 노동문학으로 대표되던 이데올로기가 시에서 힘을 잃고 그 반동으로 작품의 완결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유미주의 방향으로 흐른 것이다.   노동문학을 얘기하면서 실천문학사를 빼놓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실천문학사는 창비보다 오히려 더욱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는 노릇을 해왔다. 그리고 시집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니 이 잡지의 방향은 노동문학의 현주소를 잘 보여줄 수 있다. 2004년 상반기 현재 실천문학의 시집 시리즈는 156번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 중에서 100번 이전의 시집들은 대부분 절판되어 구할 길이 없고 도종환이나 김남주 같은 유명 시인의 시집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근래에 출판된 100번 이후의 시집들 중에도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것이 있다. 이것은 실천문학사의 영업 담당자가 귀띔해준 사실이다. 그러니 이른바 노동판의 고단함과 노동자의 해방을 염원하는 작품들이 이른바 문학시장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쯤 되면 노동문학은 침체나 퇴조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궤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 싶다. 시는 노동을 말하기조차 꺼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에서 남는 분야는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이다. 곶감 빼먹듯이 고독이나 우울, 절망 같은 것을 끄집어내어 영탄조로 노래하거나 낯설게 하기 수법으로 새롭게 포장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 편집과도 같은 것이어서 시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문제는 창비가 여기에 발벗고 나섰다는 점이다. 아마도 시장성 확보와 생존 전략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이런 변신이 신자유주의의 경제논리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화된 환경 속에서 출판사가 살아남아야 그나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궁색한 논리를 앞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등뼈를 발라낸 뒤에는 사람이 설 수 없는 것처럼 창비가 추구한 민족 민중주의 정신을 빼면 창비의 시에서 건져낼 만한 것은 없다. 창비의 변신은 생존의 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러한 세계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의 근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낳는다. 추종자들을 한 순간에 역사의 천덕꾸러기로 만드는 어이없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어떤 변명을 해도 창비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창비의 이런 변화는 다른 출판사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창비가 잠식한 부분은 그 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꾸준하게 전담하다시피 한 부분인데, 창비쪽에서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자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방향전환을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는 유미주의, 쾌락주의, 실험주의화로 귀결된다. 창비에게 잠식당한 시장을 실험시 쪽으로 극단화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보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 주된 전략이다. 문학과지성시인선 200번 언저리에 포진한 시집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쉽게 확인되는 것은 김행숙, 윤병무, 함성호, 김중, 조인선, 김점용, 성기완 류의 시집들이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문제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또 이미지 조작을 통해서 그것을 무의식 내지는 집단무의식까지 파고들려는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는 맹랑한 것들도 있어 이런 경향들이 시의 한 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을 문지 2세대 현상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문지 1세대와 이들의 관계이다. 문지 1세대는 황동규, 오규원, 이하석, 이태수, 이기철 같은 사람들이다. 2세대에 견주면 이들은 실험시보다는 오히려 전통 서정시에 가깝다. 그것은 아마도 그 후의 작품들 때문에 실험성이 덜 심해 보여서 생긴 현상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시를 계속 쓰고 시집을 계속 내면서 2세대의 특징을 시집체계 안에서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사의 시간 누적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1970년대 중반에 창비를 필두로 문지와 민음사 세 곳에서 시리즈로 시집을 내면서 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러다 보니 문단에 일정한 구획이 그어지고 그에 따라서 출판사 가족 비슷한 무리가 생겼다. 한 20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출판사별로 1년에 시집을 내는 권수는 제한되고, 이 식구들은 불어나면서 시집 출간의 일정량을 스스로 채워 이제는 시집을 내겠다고 청탁하는 사람들이 불필요해지는 식구 과잉이 생긴 것이다. 제 식구 챙기기에도 바쁜 상황이 벌어진 이 사태 앞에서 불리한 것은 당연히 신인들이다. 이들의 시집 출판이 어려워졌고, 이것은 그 식구들이 갖는 어떤 경향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전에는 어느 집단으로 소속되기 힘들게 되며, 그것은 신인들이 쉽게 길들여지는 아주 보기 안 좋은 결과를 유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경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문학과지성시인선이다.   그러나 문제는 창비와 문지 두 군데 모두 이러한 경향의 원칙에서 엉뚱하게 벗어나는 시집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작품 수준도 형편없을뿐더러 경향도 다른 시집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가족온정주의가 얼마나 끈질기고 불편한 함정으로 한국문학의 발전을 저해하는가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기득권 밖의 세력들은 새로운 모색을 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같은 구도를 비집고 등장한 출판사 가운데 세계사와 문학동네의 약진이 두드러져 보인다.   세계사는 1989년 하반기에 1호를 내는 것으로 벌써 100호를 채우고 새로운 기획으로 전환했다. 무엇보다도 세계사는 선발주자인 민음사,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가 지닌 온정주의의 폐해를 단호하게 극복하고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시집을 기획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도시문명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기획을 하여 일정한 작품들을 엮었다. 물론 대부분 앞의 세 출판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시인들이지만 앞의 세 출판사가 자신들의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시집들을 간간이 낸 것에 견주면 세계사의 원칙고수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고, 어려웠을 일이며, 이것은 분명히 역사의 평가를 받을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문학과지성사의 기획과 어떤 차별성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남은 숙제이다.   문학동네는 1994년부터 시집을 기획 출판했다. 그런데 문학동네 시집의 특징은 앞의 다른 출판사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바가 없다. 문명비판이나 현실 참여도 아니고 개인의 상상력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어서 후발주자로서 갖는 신선함이 다소 떨어진다. 굳이 문학동네 시집의 특징을 찾아본다면 시의 완결성에 있다는 점이다. 즉 그 이전 출판사의 시집들 중에는 형편없는 작품들이 많아서 작품의 완성도나 경향보다는 사람 때문에 시집을 내주었다는 혐의가 짙은 시집들이 많다. 그러나 문학동네의 시집을 보면, 앞 번호 쪽의 형편없는 몇 권을 제외하면, 형상화 면에서 일정한 선을 넘고 있다는 점이 나타난다. 나름대로 시의 수준을 정해놓고 좀 처진다 싶은 작품들은 제외시켜서 시집의 형상화 수준을 고르게 유지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시가 작품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판단을 하면 이러한 시도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유미주의 경향에 집착하면 때로는 시가 말장난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해 사상성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 가져올 후환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시의 완성도도 사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상이 곧 정치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간단히 밝혀둔다.   그리고 이들보다 좀 늦었지만 새로운 시도로 시리즈 시집을 내는 출판사가 나타났다. 천년의시작사나 시와시학사, 문학과경계사, 문학판, 시선 같은 출판사들이 그런 경우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다양해진 시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만 써놓으면 시집 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시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의 시인들은 정말 행복한 고민을 할 때이다. 좋은 시만 쓰면 그것을 내줄 출판사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시가 점점 위축되고 독자가 줄어드는 이 세계 문명의 주된 흐름 속에서 이는 분명히 한국시의 한 특이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한 분석은 다른 장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 시의 한 코미디, 신춘문예   좌주문생제라는 것이 있다. 좌주(座主)는 시험관을 말하는 것이고 문생(門生)은 그의 문하생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가 처음 시행되던 고려 때의 일이다. 시험관은 응시자의 당락을 결정짓는 지위에 있는 사람인데, 결과가 발표되고 나면 합격자는 자신을 뽑아준 좌주를 마치 아버지처럼 여기는 관행이다. 이것은 당시 고려사회의 귀족문벌을 견제하기 위해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은 선비들이 만든 관행이다. 그래서 성리학자인 이색도 이 제도의 좋은 점을 살리자는 논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소수자일 때의 문제이다. 이들이 왕의 후원을 입어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세력으로 성장했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때는 권력의 중심에서 자기 권력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전락하고 만다. 자기 식구 끌어주기라는 천박한 방법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고려 후기의 혼란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이 폐단을 절실하게 느낀 태종은 정치개혁의 첫 번째 슬로건으로 좌주문생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조선조에서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이 고착화될 때 이조 정랑 자리를 놓고 비슷한 소란이 반복되었다. 결국 선조조 이후에는 붕당정치라는 사색당파로 자리잡았고, 그것이 조선의 정치판도를 결정짓는 밑그림이 되어버렸다.   엉뚱하게도 좌주문생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른바 추천이라고 하는 제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문학 형성기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적용되어 시인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추천제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추천을 해주는 어떤 권력을 전제로 한다. 그 권력이 좌주문생제 초기의 취지를 살려서 이 땅에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애초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추천하는 세력의 경제전략과 문화 패권 전략에 맞물려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추천 제도의 좋은 점을 들추어서 그 순기능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추천 폐지론자조차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제도 때문에 상처받는 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추천 과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활동 방향과 시의 경향을 결정하는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인 것이다. 추천의 문턱을 엿보는 자는 아무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스스로 그런 경향에 기대고 그렇고 그런 평가 속에서 거기에 맞는 작품을 쓰는 풍조는 한국시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좌주문생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이 추천의 관행은 옛날 과거제도의 악습이 봉건제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뒷골목 문화 속에 그대로 재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언가 권위 있는 단체에 인정을 받아야 안심되고 그런 권위를 배경으로 하여 힘을 구사할 수 있다는 유치한 발상이 문학이라는 분야에 적용된 것이 추천제도의 본질이다. 구시대의 유습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칭찬 받아야 할 요소보다는 비판받아야 할 요인이 더 많다. 더구나 뽑는 자와 뽑히는 자의 관계가 뽑고 뽑히는 관계로 끝난다면 그만이겠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추천이라는 제도는 시인이 누려야 할 자유를 억압하는 한 기제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 권리이면서 족쇄가 된다. 이 권리와 족쇄는 그를 뽑은 사람과 잡지가 부여하는 것이고 평생 그 짐을 벗기 힘들다는 점에서 시인에게는 가장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하면 안 된다.   추천제도가 정말 불가피한 경우라면 문학지의 경우는 그래도 덜하다. 그러나 각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는 한 마디로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추천해준 문인들에게 무슨 발표지면을 할애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후원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후원을 해준다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지만.) 문단 바깥의 문밖 권력이 언론이라는 한 조건만으로 시인 딱지를 붙이고 떼고 하는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웃고 쓰러진 장승이 벌떡 일어설 일이다. 그런 웃기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언론의 장단에 춤추며 놀아나는 이 코미디야말로 한국 시가 지닌 모순의 한 극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시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이런 장난을 그치고 시집 발간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인의 조건은 그가 지닌 타고난 재주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지구력이다. 그런데 이른바 추천제도는 그 단발성으로 인해 이 지구력을 고려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신춘문예로 등단을 하고 나서도 몇 년 뒤에는 이름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시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의 천재가 아닌 한 평생을 두고 시를 쓸 수 있는 지구력은 시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것을 추천제도는 감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구력을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해에 걸쳐서 시인에게 발표지면을 할애해주면서 마침내는 시집을 내주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호기심으로 잠시 얼굴을 비쳤다가 시큰둥해져서 스스로 주저앉아버리는 뜨내기들을 얼마든지 걷어낼 수 있고, 정말 시가 좋아서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시집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문단 관행으로는 절대로 이것을 이룰 수 없다. 잡지사조차도 신인상 모집을 하면서 1회 10편 안팎의 작품으로 시인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반짝 재주보다는 그 시의 뒤에 서려있는 정신과 지구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 10편 가지고는 그게 잘 나타나지 않는다. 추천자가 신통한 무당이 아니라면 알아볼 도리가 없다. 그러니 선무당이 신통한 무당이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신인들이 지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그들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면 된다. 그것이 시단의 중진과 원로들이 해야 할 일이다. 당장 등 따시고 배부르다고 악습에 안주하는 것은 어른들이 하실 바가 못 된다.   ▼사소하나 큰 문제① : 한자표기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하나 생겼다. 새로 생긴 도서관인 만큼 모든 시설이 다 새로운 첨단이어서 대출부터 반납까지 모두 빌리는 사람 스스로 해야 하는 체제였다. 짬을 내서 돌아보고는 몇 차례 시집을 빌려다가 읽었는데 하루는 시집을 빌리려고 대출기 앞에 섰더니 컴퓨터 시스템이 고장나는 바람에 직원이 직접 접수를 받았다. 마침 그날 빌린 시집이 정희성의 였다. 대출장부에 기록을 하는 사람은 사서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시집을 내밀자 표정에 곤혹스러운 빛이 잠시 스쳤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이 아가씨가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직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하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대출 도서명을 적는 칸에 라고 쓰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내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왜 를 으로 읽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에 풀린 내 생각은 이렇다. 시집은 주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시집이 팔리는 상황이니, 아마도 는 사랑과 관련이 있는 말일 것이고 반납 받을 때 자신만 알아보면 되니 반납될 때 역시 이 의문의 문자를 으로 읽으면 될 일이다. 이것이 나의 추정이다.   내 추측이 맞는지 안 맞는지 그 처녀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은 왜 시에 한자를 쓰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을 암시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한자는 결코 시에서 용납해서는 안 될 이물질이 돼버린 것이다. 문제는 시인들의 의식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한계급이고, 그런 전통은 우리 사회가 인문학에 근거한 교양주의의 덕목을 존중하는 조선시대의 분위기를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 정도는 어느 정도 멋으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근대시 초기를 장악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도 시에서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괴상망측한 인습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미지의 문제를 들어서 한자가 시에서 차지하는 이미지의 비중을 문제삼기도 하지만 그건 궤변 지나지 않는다. 이미지가 유독 한자에서만 버릴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궤변임을 증명해주기도 전에 이미 독자는 한자를 버린 것임을 도서관의 그 아가씨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시대는 한자의 함정을 건너 영어로 건너가 버렸다. 차라리 영어를 쓰는 것이 더 낯익다. 그것이 이 사건이 암시하는 바다. 한자를 버리지 못한 자는 시인들 자신일 뿐이다. 이미 시대는 한자를 버렸다. 옛날의 낡은 체제를 아쉬워하는 어설픈 지식이 한자로라도 권위를 한번 세워보려고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 한자 혼용의 본질이다.   게다가 시에서 한자를 쓰는 것이 이런 단순한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자를 쓰는 것은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허는 짓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한자는 봉건세계의 반영이고 청산되지 못한 낡은 시대의 굴레라는 점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상식으로 굳어진 사실이지만 한자는 중세의 공용어고 공용어와 민족어의 관계는 근대를 가르는 중요한 한 기준이 된다. 원래 근대는 중세 봉건체제가 허물어지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중세의 특징은 사상과 삶의 보편성에 있다. 그 보편성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대로 몇 가지 큰 특징을 갖는다. 전제왕권의 확립, 율령체제의 성립, 보편종교의 존재, 보편언어의 성립과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따라서 중세체제란 많은 논란이 있지만 동양에서는 일정한 전제왕권이 성립되어야 하며, 그 왕권을 실행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구비되어야 하고, 그것을 뒷받침하여 정신을 순화시킬 보편종교인 불교와 유교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천하에 두루 전달할 문자언어가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세 보편언어란 유럽에서는 라틴어, 동양에서는 한문을 말한다. 따라서 근대란 이들의 특징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즉 중국 중심의 세계 지배가 흔들리고 민족 중심의 국가가 탄생하며 기독교나 민중종교가 발생하여 기존의 보편종교인 유교, 불교의 체계를 흔드는 그런 시점이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근대의 징후가 자국어의 확립이다.   이른바 ‘근대’가 자국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전개되었다는 것은 세계사에서 일반화된 법칙이다. 라틴어로 쓰여서 종교권력자들만이 볼 수 있던 성서가 독일어, 불어, 영어, 스페인어 같은 지방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고 그들 스스로 그것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문화면에서 볼 수 있는 근대의 징후인 것이다. 여기서 합리와 이성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정신이 싹트는 것이다. 유럽의 근대국가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성립하고 발전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라틴어로 시를 써서 영어권에서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것은 곧 중세언어로 시를 쓰는 광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런 예외가 제 나라 시로 인정받는 나라가 있다. 한국의 오늘이 바로 그 나라이다. 역사에서도 삶에서도 이론상 중세가 이미 말끔히 청산된 이 나라의 현대시에서 아직도 중세의 유물인 한자는 그대로 생생히 살아 숨쉬는 것이다. 이 지독한 후진성과 자기모순을 예술과 문화의 선봉이라고 자부하는 시인들께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세계사의 흐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말을 아끼고 다듬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시인에게 한자표기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언어체계에서 한자는 외국어이다. 그것도 제2 외국어로 분류된다. 영어에 제1 외국어의 자리를 넘겨준, 국민들의 선택권으로부터도 한 단계 더 떨어지는 먼 자리에 있는 문자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한자가 시의 독자층을 제한하는 아주 중요한 역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잖아도 시의 독자는 줄어든다. 시의 위기론은 결국 독자들이 감소한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 위기를 가장 확실하게 부채질하는 것이 한자라는 것이다. 막말로 말해 시에 한자 한 글자를 쓰는데 수십 명의 독자가 시로부터 등을 돌리고 떠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소하나 큰 문제② : 문장부호   한자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이상하고 묘한 관행을 시인들이 반복하고 있는 문제가 문장부호이다. 산문의 경우에는 맞춤법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문장부호 체계를 정확히 지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인들은 무슨 특권을 부여받았는지 맞춤법 체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것이다. 이 현상은 한두 명한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시인들에게서 나타난다. 너무 많아서 저것이 규칙위반인지 어떤지도 잘 판단이 안 갈 정도이다. 한글표기체계를 지키지 않는 시인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의 한글표기체계는 1933년에 확립되었다. 그때 맞춤법 통일안이 조선어학회에서 채택되었고, 그것은 알려진 대로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었다. 조선어 말살 정책을 고수한 일본제국주의는 이들에게 갖은 죄목을 씌워 심한 고문을 했고, 결과는 두 명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원들도 유죄판결을 받은 나머지 복역을 했다. 일본제국주의 경찰은 그들이 완성한 원고를 독립운동의 근거자료로 파악했고, 마녀 사냥식의 악랄한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에 다행히 해방이 되어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독립운동 단체들이 거의 다 지리멸렬하던 일제 말기에 우리측의 승리로 끝난 거의 유일한 사건이 바로 이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말이었다. 이 민족운동사의 위대한 승리를 스스로 까먹고 먹칠을 하는 시인들의 행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마침표라든가 쉼표, 아라비아 숫자 같은 것들은 1933년 조선어 맞춤법 체제에서 이미 우리가 써야 할 것으로 채택되었고, 그것은 비록 우리 나라에서 연원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세계사의 대세와 올바른 언어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쓰자고 합의를 본 것이다. 그때의 선택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면 그 뒤에 한글을 표현의 도구로 선택한 자들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 존중이란 그 표기법을 최대한 성실하게 지켜주는 것이다. 시라고 해서 유독 그들의 선택을 굳이 무시해야 할 무슨 불가피한 이유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시인들은 왜 시에 마침표를 찍는 데 그렇게 인색한가? 그것은 현행 표기법 체계에 대한 무지 때문이거나 그에 대한 가치관의 부재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한자와 표기법 관행을 보면 시인들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신의 문제   꽤 많은 시집을 읽으면서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묘한 의문 한 가지가 생겼다. 그것은 해방 후의 시들이 해방 전에 쓴 시들의 수준을 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의 수준이 후퇴했다는 말이다. 몇 번에 걸쳐서 확인하고 또 했지만, 확실히 해방 전의 시인들이 쓴 시와 그 후의 시는 보이지 않는 묘한 차이가 있다. 양은 어떨지 몰라도 질만큼은 분명한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 양상과 이유가 분명히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 고민거리이다. 시집을 바꿔서 교대로 읽어보면 분명히 묘한 차이가 있는데, 증거는 잘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시를 쓰는 솜씨나 말 다루는 재주는 오히려 해방 전보다 후가 더 나은 면도 있다. 현란한 어휘 구사나 시공을 뛰어넘는 상상력, 특히 최근에 보이는, 가늠하기 어려운 시들의 언어행진을 보면 동원된 말이나 수사 기교는 읽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혼의 울림은 해방 전의 시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것이 혹시 내가 옛 시에 익숙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최대한 선입견을 없앤 다음 읽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해방직후 그러니까 1950, 60년대에 활동한 시인들의 작품과 그 이전의 작품을 비교하면 그 질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의문은 단순히 개인의 능력 차이보다는 시대의 어떤 문제에서 발생하는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시대를 기점으로 해서 시의 질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다.   그 정신이란 말할 것도 없이 조선시대를 지배해왔던 유교, 또는 그 주변의 문제이다. 일제강점기를 보낸 사람들은 삶과 사고에서 유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마지막 세대이고 이것은 그들이 그 이전에 지배층의 행동과 사고에 절제력을 부여하던 세계관의 잠력을 내면에 갖고 있던 까닭에 그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무장한 그 이후의 후배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교 이데올로기는 정치사상이기는 하지만 요즘 말하는 정치사상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신앙이라는 것은 영혼의 존재 근거를 묻는 것이고, 그것의 형식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교가 현실정치에서 사회를 지배하는 체제로 굳었지만, 그것이 한 개인에게는 행동과 사고, 나아가 믿음의 근거로 작용하는 종교 노릇까지도 떠맡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교는 단순히 자본주의라든가 민주주의라든가 하는 것과는 어딘가 다른 양상을 지닌다. 그 양상은 세계를 인식하는 형식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 형식을 자신의 행동에 규율을 부여하는 어떤 내면의 기제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신은 거의 본능에 가깝게 세계를 해석하는 어떤 형식에 집착한다. 그 경우 그들의 의식 속에는 이기철학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주역의 음양오행이 뒤따른다. 실제로 그들이 그렇게 보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그들의 선배들이 해온 관행의 연장선상에서 그들의 정신이 보이지 않는 어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본능의 작용에 기대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본다.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형식과 규율에 대해 내면화된 경향이,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 양식이 도입된 상황에서도 작용하여, 새로운 자유시를 개척하는 에너지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이런 작용이 아니라면 당시로서는 별종에 가까운 이상의 시에서도 드러나는 엄정한 형식성과, 정지용의 시에서 드러나는 깔끔한 묘사방법, 만해의 시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깊이, 그리고 이육사의 시에서 보이는 살얼음을 걷듯 하면서도 지켜지는 묘한 긴장과 엑스타시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물론 이미 여러 논자들이 이들의 근원에 대해 설명을 하고 어느 정도 그것이 성과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 가지고 그 후의 세대들이 이들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까지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그 어려움은 바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 나아가 내면화된 무의식의 형식에 대한 본능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한두 사람의 성과나 결과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관의 교체시기에 나타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본질과 그 원인을 묻는 것이다. 영혼을 울리는 시의 요소, 그것은 정신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해방 전후인 두 시기의 작품비교를 통해서 보는 것이다.   해방 후 특히 최근의 시는 해방 전의 시들보다 현란해졌고 화려해졌다. 그러나 작품이 주는 감동과 깊이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퇴보를 했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해방 전에 도달한 시의 경지는 1980년대의 노동문학도, 그 후의 문명비판도, 최근의 고독과 환멸 맛보기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로 우뚝 솟았다. 어떤 거대한 정신의 흔적이 아니고는 오를 수 없는 그런 경지이다. 그 거대한 정신은 유교와 조선 후기의 문화감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방 전 세대가 이룬 놀라운 성취, 그리고 그 후의 세대가 해방 전 세대의 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유교라는 거대 이념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규율이 사라지면서 정신의 공황 상태가 오고 그것이 시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누군가 그와 유사한 경지를 개척하기 전까지는 해방 전의 세대가 보여준 높이는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정신의 벽 앞에 서있는 셈이다. 그 은산 철벽을 무엇으로 넘을 것인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 하나 : 노동문학   노동문학은 그칠 수 없다. 인간이 숨쉬고 먹고 싸고 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는 한 이 명제는 불변의 진리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과 인간의 관계 때문이다. 자본이 존재하는 한 그것이 인간사회에 야기한 갈등은 사라질 수 없고,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본에 대한 인간의 전쟁은 그칠 수 없는 것이다. 이때 전쟁은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한다는 것은 물질과 정신 두 측면에서 모두 자유를 쟁취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곧 해방이라는 말과 같으며 해방이란 여러 가지 질곡을 스스로 풀고 본래 한 몸이었던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내 안에서 평화로운 관계 속에 놓는 것을 말한다. 근원에 대한 이 같은 인간 본연의 갈등을 고착화시키고 그런 갈등을 전제로 해서 특권을 가진 자에게만 무한한 물질의 자유와 영혼의 타락을 부여하고 조장하기에 자본은 인간에게 악의 화신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전쟁은 날숨과 들숨이 교차하는 그 한 순간에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본이 현대 사회를 옥죄는 질곡의 원천이라면 그에 대한 인식과 해결 노력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데올로기 탐구가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실천하는 길이다. 그리고 문학에서 그러한 길로 드러난 것이 1980년대의 노동문학이다.   그런데 10년 세월 동안 흥기하던 이 기운이 또 10년 사이에 무슨 기피해야 할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렸으니, 이보다 황당한 일도 없을 것 같다. 1990년대를 지나고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든 현재 이 점을 지켜보면 황당해서 할 말이 없다. 박영근, 서정홍, 이선관, 김해자 같은 몇몇 시인들만이 지난 시절의 메아리처럼 노동의 언저리에서 그 고통을 이야기할 뿐 불과 10년 전 입에 게거품을 뿜으며 노동문학의 당위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던 자들이 갑자기 도사가 되어 공중부양을 하거나 제 안의 슬픔 속으로 퇴영하여 제살 깎아먹기를 자행하고 있다.   이들이 보인 행태의 황당무계함은 자본의 문제를 반대로 물으면 입증된다. 한국 사회에 뿌리박은 자본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이 모두 화이트 칼라화 되어서 더 이상 자본론의 분석과 그에 따른 실천이론 창출이 불필요해졌는가? 노동과 자본의 모순은 해결되었는가?   이 대답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자본가들 중에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원점이라는 얘기다.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노동문학의 대열은 사라졌다? 바로 이런 현상을 가리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말이 변절이라는 낱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시의 변절자들은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사람들을 굳이 꼽을 필요는 없으리라. 그러나 이 질문이 이름 없는 촌놈의 뜽금 없는 발언이 아니라 정의와 미래를 향해서 노도와 같이 진군하는 역사의 물음이라는 것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한국시에서 노동문학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한국 노동자의 생존과 한국시의 지형을 결정짓는 주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회색분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다 떠난 자리에 남을 사람만 남은 이 어려운 시대에 꼭 필요하고 목청껏 외쳐야 할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이다.   “이제야말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허리띠를 다시 조일 때다!”   ▼간과해도 되는 문제 : 천민자본주의   몇 년 전에 서울대의 한 경제학 교수가 자신의 글에서 무심코 던진 말이 몇 년이 지난 오늘 노동계의 한국사회 평가답안처럼 자리잡은 말이 있다.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그것이다.   한국 자본가들의 천박한 노동관과 악랄한 사기성에 치를 떨던 노동자들은 이 말이 나오자마자 한국 자본의 모순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인 양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자본을 비난하는 심정이 빚어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문제가 있다. 감정이 실린 이런 시각은 자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자본은 원래 천한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없고, 끝없는 탐욕만이 동력이 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그 앞에 천하다는 말을 붙인다고 해서 원래 천한 자본의 본질이 더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감정만 자극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희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스스로 모순을 갖게 된다. 그것은 자본의 본질을 민족성의 문제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런 오류는 의외로 심각한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 다른 나라, 그러니까 미국이나 유럽의 자본주의는 천민 같지 않고 신사 같다는 인식을 은근히 유포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은 자본의 성격과 흐름을 냉정하게 보는 시각에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얼마든지 나쁜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1980년대에 한 때 유행했던 종속이론의 경우도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초점을 잘못 맞춘 경우라는 판단 같은 것이 그것이다. 종속이론은 남미라고 하는 특수한 경제조건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국의 주변부에서 자본이 중심부로 이동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서 형성된 이론이고, 그것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그 본질을 희석시키거나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받고는 썰물처럼 운동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있다.   개념의 모호성이나 방향 설정 오류는 때로 이런 커다란 문제점을 안는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천민자본주의라는 말도 그런 위험을 다분히 안고 있다. 자본은 민족의 문제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사에서 나타나는 아주 보편화된 현상이며 거기에 작용하는 지역이나 민족의 문제는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자본의 전개과정에서 그런 요인을 무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것에 가려서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진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곧장 연결되기 때문이다.     ■맺으며   한국 시는 두 가지 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시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사실과, 여기에 부합하여 시인들이 백기를 들고 자본에 투항했다는 사실이다. 시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것은 불가항력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노동문학의 궤멸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이 노동문학을 노래하든 말든 노동자들의 궁핍한 영혼은 지금도 자본의 바퀴 밑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그러한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한 노동문학의 당위성은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명명백백한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시가 다른 분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이 갖는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즐겁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에 몰두하면서 그것이 시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은 인간의 순결한 영혼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드러내어 이 세계로부터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시의 행위를 한순간에 자위행위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 시는 말장난으로 떨어지고 만다. 시집으로 둘러본 현재의 한국 시는 이미 그런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야말로 그런 말장난을 넘어서 정신의 영역으로 나아가 시의 건강성을 되찾을 때다. 그 말장난과 정신의 경계에 노동문학이 흐르고 있다. 이것을 첨벙거리며 건너지 않고서 어찌 우화등선하겠는가? 새로운 감성과 지성 제1집  
178    시집 1000권 읽기 104 댓글:  조회:1738  추천:0  2015-02-11
    1031□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신대철, 창비시선 242, 창비, 2005   기행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쓴 시들이다. 대개 특정 지역과 연관을 맺고 있는 시들은 풍경 묘사로 할말을 정작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그런 한계를 벗지 못했다. 너무 많은 사건과 묘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여느 기행시와 다른 것은 그런 이야기 속에서 재구성해야 할 어떤 중요한 사건이나 이미지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묘사 뒤로 물러난 그런 것들 때문에 시가 자칫 지루해진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내야 하는 부담을 독자는 안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벌목공 문제라든지, 남북 문제 같은 것이 시의 중요한 소재로 들어있지만, 그것만으로 시가 되지는 않는다. 시인의 감정이 풍경 뒤편으로 너무 멀리 물러나 있다. 기행의 형태를 취한 원죄인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4338. 7. 19.]   1032□너무 많은 입□천양희, 창비시선 245, 창비, 2005   수필 식 깨달음이 시의 상자에 실려나왔다. 아주 잘 담겨서 정갈한 맛이 있다. 굳이 군더더기를 만들지 않고, 복잡한 미로를 헤매지 않고,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한 시집이다. 이럴 경우 시가 지닌 긴장이 풀어지기 쉽다는 것이 단점이고, 그 긴장을 어렵지 않게 건너가버릴 명징한 깨달음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런 시는 많은 부분 모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잘 쓴 수필과 이 시집을 놓고서 선택을 강요받을 때 이 시집을 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겠다.[4338. 9. 2.]    
177    시집 1000권 읽기 103 댓글:  조회:1606  추천:0  2015-02-11
    1021□마른 작설 잎 기지개 켜듯이□김정웅,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4   너무 깊이 들어갔다. 마음이 가 닿은 곳은 일정한 곳이 있다. 그곳은 무색 무취 무미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 세상을 보는 맛도 괜찮은데, 어쩐지 시큰둥하다. 감정이 인다면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돌아오는 세상이라면 너무 고요하다. 시는 그 고요함의 위에 떠있는 어떤 세계이다. 지지고 볶는 곳에서 시는 가장 아름다운 출렁임을 보인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들어간 그곳의 고요함을 보여주는 것이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볼 거리가 있게 된다. 그냥 있을 것 같은 느낌만 보여주어 가지고는 통 시의 맛이 나지를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이런 어정쩡한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하다.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되, 도대체 어디를 겨누어야 정말 좋은 시가 나올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할 시집이다. 어딘가 한 곳이 맞물리지 않아 겉돌고 있다는 뜻이다.[4338. 7. 12.]   1022□번개를 치다□정병근, 문학과지성 시인선 296, 문학과지성사, 2005   할 말이 없는 시대에 시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시들이 짧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가 짧다는 것은 할 말이 없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정말 할 말이 없거나, 할 말이 없어도 써야 할 경우에 생기는 일이다. 할 말이 없는데도 써야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한다.   이곳의 정제된 표현들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사물의 배후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일반독자들은 저절로 멀어지게 된다. 심미안을 요구하는 것이다. 심미안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런 시대의 한 풍경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런 점에서 착잡한 시집이다.   그리고 시야가 너무 좁다. 좁은 것이 단점은 아니지만, 큰 것을 놓치기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이 점을 경계해야 할 시집이다. 열정이 빠져나간 곳에서 폭이 좁은 것은 중요한 한계일 수 있다.★★★☆☆[4338. 7. 13.]   1023□소□김기택, 문학과지성 시인선 294, 문학과지성사, 2005   마치 찍어낸 것 같다. 동일한 방법과 시각으로 눈만을 돌려서 망막에 비치는 대로 벽돌 찍듯 찍어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대단한 힘이다. 앞부분에서는 대단한 긴장으로 장강처럼 흘렀는데, 중간 부분에서는 묘사에 불필요하게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흠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시시콜콜 정성을 들이고 있어서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온다. 그 내용에 딱 맞는 구조에 대한 고민이 없이 습관처럼 시를 쓸 때의 타성이 느껴진다. 이 타성을 걷어내는 것이 대가와 평범을 가르는 경계가 될 것이다. 정신이 문제다. 사물과 사회와 나를 하나로 꿰는 정신.★★★☆☆[4338. 7. 13.]   1024□개 같은 신념□정철훈,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4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것을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정말 훌륭한 미덕이다. 그리고 그 부분으로 좀 더 들어가야만 정말 좋은 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집의 경우, 기교를 부리지 않는 평범한 어투로 말하면서도 드러낼 것을 다 드러내는 묘한 재주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현란한 기교를 부리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단의 아류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의 화법까지 갖추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주 성실하고 뚝심이 느껴지는 시인이다.   그러나 현실을 감싸안고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본 것을 어떻게 연결시켜야만 그것이 새로운 세계로 열릴 것인가 하는 것이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연결되면 대작이라도 쉽게 쓸 수 있는 시인이다. 그리고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시인의 삶이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해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아직 토해내지 않은 것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토해낼 때까지 긴 호흡을 아주 편하게 잘 뽑아내는 뚝심을 믿어볼 일이다.[4338. 7. 14.]   1025□불쑥 내민 손□이기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293, 문학과지성사, 2005   한 작품을 오래도록 잡고서 끝까지 시를 만들려고 한 성실성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아직도 시의 언어들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시의 방향 설정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어느 때는 시가 전통 문법대로 움직이는데, 또 어느 곳에 가면 그 문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쓴다. 이런 점이 방법의 혼돈으로 비친다. 전통 시의 문법으로 보자면 너무 군더더기가 많고, 실험시의 문법으로 보자면 너무 충실하다. 그리고 시의 구조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는 의도까지 겹쳐서 시가 다소 혼란스럽다. 뼈를 더 바르든가 살을 더 붙이든가 해야 할 시집이다.   대체로 시가 산문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것은 시인이 그만큼 야심만만함을 뜻한다. 행가름에서 오는 기존의 질서가 주는 편리함을 버리겠다는 것이니, 이것은 곧 이미지와 구조에 자신이 있다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다. 높이 살 만한 일이다. 그 패기를 어느 방향으로 끌어야 자신도 시도 분명해지는가 하는 것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4338. 7. 15.]   1026□양철 가슴□강문정,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5   시의 표현은 주제를 대신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만,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물고 늘어져서 이쪽을 통해서 저쪽을 보고 저쪽을 통해서 이쪽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시의 긴장이다. 그런데 대체로 이 시집에서는 단순한 대체로 이루어지거나 단순한 묘사로 그치고 있다. 그리고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특수하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것은 무엇을 얘기해야만 시가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따라서 분명히 말해야 할 것과 그것을 드러냄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어렵게 둘러 표현한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렵게 둘러댔으면 그 둘러댄 것을 애써 따라갔을 때 둘러댄 효과가 주는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4338. 7. 18.]   1027□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이상국, 창비시선 241, 창비, 2005   욕망이 사라진 곳에서 마음이 마술처럼 피어난 시집이다. 대저 욕망을 끄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삶이고 사람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꺼야만 하는 곳에서 나오는 시들이 있다. 욕망을 끄면 욕망이 덮어씌웠던 것들이 보이고, 그것이 사라진 곳에서 해맑게 나타나는 마음의 지도가 있다. 그것을 찾아낸 시집이다.   대체로 자연물에 많이 의탁해서 시를 썼는데, 그것이 삶의 체험에 잘 연결되어 어느 하나 만든 것 같은 어색함이 없고 저절로 흘러나온 것들이다. 아주 자연스럽고 좋다.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한 전범이 될 만한 시집이다.   다만 과거를 회상하는 시의 곳곳에서 잘못하면 타성으로 떨어지고 말 위험성이 남아있다. 그 타성만 경계한다면 이성선 시인 이상의 좋은 시를 쏟아낼 것이다. 큰 산이 큰 시인을 낳는다. 산은 인간의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4338. 7. 18.]   1028□철갑 고래 뱃속에서□정남식, 문학과지성 시인선 298, 문학과지성사, 2005   시를 대하는 영혼이 깨끗하고 순결하다는 느낌이 우선 온다. 상상력의 발랄함과 성실함은 그 탓이다. 그런데 의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형식 흔들기라면 가나인, 황지우, 박남철에서 이미 많이 봐온 것이고, 상상력의 증폭이라면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시인들이 시도한 것이고, 삶의 비탄에 대한 통자라면 그 역시 많이 봐왔다. 상상력의 흐름을 보면 너무 얌전해서 이쪽 방향으로 보기도 어렵다. 어느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분명하지 않다. 서 있는 자리가 분명히 드러나지를 않는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4338. 7. 18.]   1029□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정양,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5   1부의 마재 시편은 아주 좋은 시들이다.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가 말 그대로 신화 속에 머물러버렸다면, 이곳의 시들은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기에 그만큼 값지다. 땀내나는 삶의 모습이 시에 담긴다는 것만으로도 요즘의 경박한 시들과는 다른 값을 주어도 좋을 일이다. 다만 이야기가 지루해진 것이 아쉽다. 그것은 서술 방식이 단조롭고 할 말을 드러내기 위한 구조가 밋밋하기 때문이다.   2부의 시들은 생활 속에서 주제를 잘 잡아냈다. 일상 속에 파묻혀서 긴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데, 위태롭지만, 늘어지지 않는 어떤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다만 그것이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데 깊이 묶여 있어서 시의 진행이 좀 무겁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주제를 가진 시가 범할 수밖에 없는 오류이다. ‘어금니’ 같은 작품은 사소한 구도와 설정으로 묘한 상징성을 일깨워주는 시이다.★★★☆☆[4338. 7. 19.]   1030□환상통□김신용, 시작시인선 50, 천년의시작, 2005   시집 전체에 보이는 것은 아픔이다. 그런데 시집 한 권의 주제를 아픔이라는 단일한 주제로 담아낸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아픔이 한 개인 속에 들어있는 체험과 맞물려있고, 그 체험은 이 사회가 지닌 모순의 한 극점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어찌 보면 한 개인의 발언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황이 되어, 시가 집단무의식의 단계까지 깊게 추를 드리웠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일이 그냥 나열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서 정확하게 직조되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그 전의 시에 비해 약간 늘어진 듯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이러한 집중력이 그런 타성을 삼켜버리고도 남을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민중문학이 여전히 우리 시대 시의 화두임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4338. 8. 10.]      
176    시집 1000권 읽기 102 댓글:  조회:1786  추천:0  2015-02-11
  1011□바둑론□성선경, 문학의전당시인선 5, 문학의전당, 2004   시를 한 편으로 완성하려는 노력이 한 눈에 보이는 시집이다. 이미지 하나라도 다른 부분과 연관지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하려는 태도는 시인의 좋은 자질이다. 다만 너무 그럴 듯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군더더기가 되어 시의 몸집을 필요 이상으로 뚱뚱하게 부풀렸다. 어쩐지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점은 뒤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한 개인의 추억은 그것이 그대로 울림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뒷부분의 시들은 그런 점에서 아직은 미약한 촉매제들이 많다. 좋은 이미지로 무엇을 벼려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4338. 2. 22.]   1012□고양이 속의 아이를 부탁해□이영수, 문학의전당시인선 2, 문학의전당, 2004   시집 곳곳에 시와 무관치 않은 사진을 넣어서 장르의 혼합을 시도했다. 그런데 대부분 형식을 실험하는 시들이 딱딱하고 어려운데, 이 시집은 참 재미있다. 상상력이나 그것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질서가 다소 설명하는 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어렵게 쓰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어법을 택하고 있어서 부담을 별로 주지 않는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과 시를 읽기 어렵다는 것은 약간 다른 것이다. 바로 이런 묘한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시집이다. 시에서 상상력이 죽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다.★★☆☆☆[4338. 2. 23.]   1013□내 몸이 바다를 들이고□최광임, 모아드림 기획시선 72, 모아드림, 2004   사물을 바라보는 눈과 방향이 일정한 깊이와 폭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에서 할 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시인의 장점이다. 그런데 산만한 구석이 있다. 한 번 더 걷어냈으면 하는 어지러운 의상이 있어서 그것을 걷어내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선결 요건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복되는 이미지를 피해야 하고 이미지로 애써 말한 것을 굳이 말로 풀어주는 중복 표현을 피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시에서 덜어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얘기이다.   먼저 초고를 잡고서 주제를 한 번 더 확정한 다음 그 주제에서 한 치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굳은 살을 잘라버리지 않으면 쩔뚝발이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당연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좋은 시인이 되는 지름길이다.★★☆☆☆[4338. 2. 24.]   1014□산으로 간 물고기□김정희, 문학의전당시인선 6, 문학의전당, 2004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시집에서 갖춘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인은 이미 그런 장점을 갖추었다고 봐도 되겠다. 뒷부분에서는 늘어졌지만, 앞부분에서 보여준 시각의 긴장은 그런 능력을 능히 갖추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런 시각이 시각이나 표현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그런 시각을 크게 끌어안고 뒷받침해주는 어떤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가치체계에 의해 완성된다. 첫 시집에서 그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켜갈 수도 없는 것이니, 시의 표현이 그곳에 뿌리를 박는 방법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뿌리를 뻗다보면 가 닿는 수도 있고, 먼저 도달한 다음에 뿌리를 안내하는 방법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당분간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 거기에 도달하고 못 하고는 재주보다는 성실성이나 뚝심의 문제이다.★★★☆☆[4338. 2. 25.]   1015□즐거운 하드록□신정숙, 실천문학의 시집 114, 실천문학사, 1997   시를 쉽게 쓰는 방법을 아는 시인이다. 독백체의 담담한 흐름이 시집 전체의 일관성을 이루면서 한 어조를 만든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시집에 한 가지 방법론이 관철된다는 것은 그것이 잘 됐건 못 됐건 아주 중요한 방법이다. 다만 독백체가 갖는 단점은 독단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과 그 어투 때문에 곧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집의 밋밋한 면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의 구성이 천편일률이며, 그것이 아무리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독자의 접근을 막는 방파제 노릇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자는 지울 수 없는 흠이다.★★☆☆☆[4337. 6. 16.]   1016□다시 그리움으로□박재삼, 실천문학의 시집 104, 실천문학사, 1996   늙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다. 세월 앞에 무기력해진 한 사람이 그 무기력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생과 자연의 모습이 잘 잡혀있다.★★☆☆☆[4337. 6. 16.]   1017□치악산□박세현, 문학과지성시인선 175, 문학과지성사, 1996   말투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드러내는 말투 사이의 아주 미세한 간극이 감지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닌 그것 때문에 전부가 무너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일 수 있다.   시에서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오래도록 그것을 바라보는 집중력만으로도 한 경지를 연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마음을 주인의 자리에 놓지 못하고 노예의 자리로 놓아야 한다는 틀에 박힌 전제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빛을 잃었다. 이것은 자신이 빠져있는 곳에서 관찰만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오류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정상까지 올라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관념의 선험성이란 그만큼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경지를 열었으면서도 그 새로운 경지를 이미 있는 것의 아류 자리로 돌려놓은 그런 것이다. 그것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상과 사고의 유행이란 단풍과도 같은 것이어서 곳곳에서 울긋불긋하지만, 자기 자신의 본래 색깔이 되기는 어렵다. 울긋불긋한 단풍 속에서 사시사철 늘 그 모습인 바위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단풍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애써 표현을 하려고 한 흔적이 많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표현 구절들이 있어서 재미만 줄 뿐 그것이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악재로 작용한다. 프로라는 의식이 짐으로 작용한 까닭이다. 진정한 프로는 자신이 프로임을 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시는 삼척동자도 쓸 수 있는 갈래이기 때문이다.[4338. 7. 1.]   1018□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류인서, 창비시선 243, 창비, 2005   할 말이 별로 없는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향해서 아름답게 뻗어 가는 상상력의 모습을 본다. 전체의 구성력이나 부분의 표현력 어느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도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은 주제의 결핍 때문이다.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 쓴 시들이 아니어서 그렇다. 내용 없는 형식을 완성하려다 보니 묘사가 정밀해지고, 묘사가 정밀해진 만큼 독자의 상상력이 파고들 여지가 줄었다. 이럴 경우 긴장이 와야 하는데, 그 긴장의 진원이 파악되지 않기에 시가 잘 쓴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미진한 구석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정신의 긴장이 요구되는 시집이다.[4338. 7. 8.]   1019□제국호텔□이문재, 문학동네시집, 문학동네, 2004   같은 사람이 쓴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변했다. 내용은 거기서 거기 같은데,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이 완전히 변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명징해졌다. 군더더기가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본질에 훨씬 더 가까이 갔다. 앞부분의 짧은 시들은 시각의 긴장이 아주 잘 살아있다. 이런 긴장을 끝까지 밀고가지 못한 것이 흠이다. 연작은 상관물이 실제 대상과 너무 밀착됐다. 그리고 감정이 드러난 부분이 많다. 그 감정은 직접 드러나지 않고 태도에 묻혀있지만, 그 태도에 묻힌 감정이 너무 강렬하다. 상관물을 이용한 시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효과가 반감된다. 그 뒤쪽의 길어진 시들은 긴장이 풀렸다.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들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망의 주인인 마음의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마음에는 형식이 있다. 그 형식은 아주 오랜 내력을 갖고 있다. 이 부분을 파헤치지 않으면 더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4338. 7. 9.]   1020□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이창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97, 문학과지성사, 2005   욕망이 자신의 힘으로 우뚝 일어서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씹어 삼키는 이 난폭한 시대에 그 욕망을 버리는 일은 어찌 보면 위대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라는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은 큰 용기이기도 하다. 이때 거세된 욕망 대신에 그 자리에 자연이 들어오고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 놓인 한 존재의 양상과 의미가 욕망의 형태와 대위법을 이루며 드러난다. 그 지점에 와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망친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망치려는 것조차 욕심일 경우가 많고, 그것은 변형된 욕망이다. 일단 이렇게 물러섰으면 물러선 자리에서 마음의 움직임을 읽어야 한다. 마음은 욕망의 근원이다. 마음이 그린 지도의 법칙을 찾아내지 않으면 욕망의 중심으로부터 물러서는 것 역시 욕망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 지금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을 한 겹 더 뚫으면 자신의 주인인 마음을 만날 테고, 마음을 만난 날의 풍경과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성을 묘사해야 진실로 여유로운 세계를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 시를 완성하는 길이다.[4338. 7. 12.]    
175    시집 1000권 읽기 101 댓글:  조회:2034  추천:0  2015-02-11
  1001□상가에 모인 구두들□유홍준, 실천문학의 시집 146, 2004   가장 짤막한 묘사로 아주 많은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도록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사물을 보는 눈이 아주 참신한데 그것을 그저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의미의 울림을 주는 상징의 방법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다. 모든 이미지들이 죽음과 소멸 쪽으로 맞추어져 있어서 큰 이야기로 시 전체를 끌어올리는 방법까지 소화하고 있다. 다만 그 주제가 어느 방향을 향하지 않고 있어서 소재주의의 인상을 씻어내기 힘들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미지만으로는 안 되는 어떤 경계가 시에는 있다. 그것은 대부분 의미의 몫인데, 그 의미는 세계관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면 모래처럼 흩어져버리고 마는 그런 것이다. 그 부분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라도 한자는 버릴 일이다.★★★☆☆[4338. 2. 7.]   1002□풍경의 위독□전기철, 세계사시인선 125, 세계사, 2004   될 듯 될 듯하면서도 한 가지가 빠져서 시가 안 되는 경우이다. 애써 사물을 관찰하여 좋은 표현을 얻었는데도 그것을 자꾸 설명하려고 드는 버릇이 시의 걸음걸이를 무겁게 하고 자꾸 사건을 등장시킨다. 그래서 찾아낸 표현이 처음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 흐려지고 사건이 시의 전면으로 등장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시를 쓴 다음에 주제를 확정하고서 그 주제와 상관이 없는 것들은 모두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다. 이미 앞에서 말해서 다 알고 있는 것을 자꾸 설명하려고 드는 것은 어렵게 만든 감동을 갉아먹는 효과밖에 안 된다. 말 속에 표현을 끼워 넣지 말고, 표현 뒤로 말을 숨기는 법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4338. 2. 15.]   1003□앤디 워홀의 생각□이규리, 세계사시인선 124, 세계사, 2004   사물을 보는 눈이 안정돼있고 그것을 끌어내기 위한 표현을 찾는 데도 성실성이 묻어난다. 그런데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하고자 하는 말이 특별히 여길 만한 것이 아니라면 생각이 기대는 방향과 색깔과 표현을 좀더 선명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좋은 표현이 많으면서도 시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 중요할 것 같지 않는 작은 것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는 까닭이다. 깊어질 곳에서 깊어지고 늘어질 곳에서 늘어지는 어떤 가락을 찾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지름길일 것이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8. 2. 16.]   1004□꿈의 해석□백주은,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시에서 구조의 긴장을 만드는 법도 잘 이해하고 하고자 하는 말을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서 제시할 줄도 아는데, 너무 설명하려 드는 것이 흠이다. 다른 갈래, 예컨대 영화 이야기는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와닿게 된다는 것도 그것을 시로 쓰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시가 일상생활에 딸려서 움직이는 것도 문제다. 초점이 한 곳으로 모이지를 않게 된다.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되 일상 속에 빠져버리면 헤어나기 힘들다. 일상 속에 발을 딛고 있되, 시에서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럴려면 내가 택한 특수한 체험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 위에서 시상이 전개되어야 한다. 한자는 격절이다.★★☆☆☆[4338. 2. 17.]   1005□두미리 가는 길□최현순,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간간이 빼어난 표현이나 구절들도 보이는데, 대체로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시가 되고 안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집이다. 시에 끌어들여 중요한 이미지로 작용하게 되는 것과, 시에 끌어들이면 시 전체가 무거워져서 끌어들이지 말아야 하는 것의 경계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바로 이런 조절이 잘 안 되어 애써 얻는 귀중한 이미지들이 그 속에 파묻힌 경우다. 그러므로 주제를 정확히 정한 다음에 그 주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들은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다.★☆☆☆☆[4338. 2. 17.]   1006□가시나무새□노욱진,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이슬처럼 동그랗게 말린다’ 같은 시는 정말 빼어난 시다. 사물을 보는 시각도 신선하고 거기에다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능력도 곳곳에서 빛을 낸다. 그런데 군더더기가 많다. 굳이 없어도 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지루하게 따라다니는 시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한 발상을 얻었으면 그 발상이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의 한계와 그 발상에 뒤따라오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만큼만 말을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시집 곳곳에서 아주 깊은 경지까지 들어간 시들이 보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적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는 시집이다. 애써 얻은 생각을 시로 완성시키는 방법을 잘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4338. 2. 17.]   1007□아름다운 경계□장진숙,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시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이고, 그 전문성은 기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남다름이란 특수한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인식에서 한 겹 더 벗기고 들어가서 일상의 인식에 신선한 기풍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곳곳에서 많은 좋은 표현들이 있지만, 바로 이 점에서 어딘가 부족한 맛을 남기고 있는 시집이다. 남들의 생각을 잘 대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생각이 남들의 생각과 잘 어울리면서도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4338. 2. 18.]   1008□꽃피면 통화중이다□권선숙,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시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안다. 시에 담아야 하는 감정을 정확히 골라서 담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타고난 시인의 품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대상을 찾는 능력도 탁월하다. 대상에 대한 해석에 무리가 없고 자신의 할 말만을 적당히 실어서 전개시키는 것도 아주 좋다. 시가 짧은 형식으로 순발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다만, 시세계가 좁은 것이 흠인데 좀 더 넓게 보는 시야를 기른다면 뛰어난 시인이 될 것이다.★★☆☆☆[4338. 2. 19.]   1009□산마을□한광구, 모아드림 기획시선 64, 모아드림, 2004   나이 들어가면서 기교를 버리기는 쉽지만, 깊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시집은 기교를 버리고 아주 깊어졌다. 시가 짧아진 것이 기교를 버린 결과인데, 나이 많은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만큼 깊어졌다. 참 대견한 일이다. 그런데 시에서는 기교를 너무 버리면 때로 그 깊은 목소리도 나이 많은 사람의 잔소리로 들리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깊어진 세계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4338. 2. 20.]   1010□비발디풍으로 오는 달□김성춘, 모아드림 기획시선 66, 모아드림, 2004   잡다디한 것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핵심만을 잘 추리는 능력이 돋보인다. 지나치기 쉬운 풍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잡아내어 그것을 시로 만드는 능력에서는 긴장마저 느껴진다. 이것이 시를 살아있게 하는 요인이다. 그런데 너무 과격하게 추린 까닭인지 뼈만 앙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큰 말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 곳곳에서 복상 뼈처럼 튀어나온 것도 흠이다. 시가 간단한 양식이지만, 간단하더라도 울림을 주려면 그 안에 공명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그냥 제시만 해가지고는 어쩐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불필요한 한자표기와 더불이 이 점이 아쉽다.★★★☆☆[4338. 2. 21.]    
174    시집 1000권 읽기 100 댓글:  조회:1802  추천:0  2015-02-11
    991□해가 많이 짧아졌다□김종길, 솔, 2004   시인이 나이를 들면 두 가지 증상이 생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그 반동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구경 삼아 여행을 다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나이든 시집의 전형이다. 그 속에 관조와 달관의 자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달관이나 관조란 할 말이 없는 상태의 심정이기 때문에 시가 짧아진다. 짧아진 시에 너무 많은 말을 담으려 했다. 한자는 도움이 안 된다.★★☆☆☆[4337. 12. 22.]   992□검은 산 하얀 방□김지하, 솔, 1994   앞 부분은 시 이전에 감전 당한 영혼의 절규에 가깝다. 상황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서 가슴속의 말이 나오기 때문에 모든 이미지는 상징으로 비화한다. 상징은 해석의 자유가 많이 허용된다. 그 분위기를 어긋나지 않는 한의 자유이다. 하지만 해석의 자유는 이미지의 불충분함을 정당화하련 가장 좋은 기제이기도 하다.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것이 이런 경우이다. 뒷부분은 정치 선언에 가까운 절규이다. 그런 것을 시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대의 감수성과 안목의 몫이다.★★☆☆☆[4337. 12. 22.]   993□사라진 폭포□김수복, 세계사시인선 119, 세계사, 2003   묘사만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특히 묘사가 짧아지면 대부분 마음의 상관물로 변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될 때는 반드시 그것이 내 마음속의 그 어떤 정황과 꽉 맞물려있어야 한다. 글로 옮겨놓은 이미지가 그럴 듯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언가를 대변해줄 꺼라는 막연한 기대가 독자에게는 메아리를 주지 못하는 법이다. 많은 곳에서 이런 맞물림이 흔들리고 있다. 한자는 더 흔들린다.★★☆☆☆[4337. 12. 22.]   994□라․라․라□박의상, 고려원현대시인선 9, 고려원, 1995   여러 가지로 실험성이 강한 시집이다. 시행의 배치가 남다르다. 왼쪽 정렬의 관행을 깨고 짧은 행을 이리저리 배치하여 어떤 형태를 보이거나 기존의 형태를 흔드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시의 내용들도 불편한 현실에 반응하는 내면 심리를 담고 있다. 시라는 형상성의 고정 관념을 흔들고자 한 의도는 보이는데, 상상력의 체계 자체를 흔들어서 새로운 상상의 체계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시집이다.★★☆☆☆[4337. 12. 23.]   995□자화상을 위하여□홍신선, 세계사시인선 111, 세계사, 2002   표현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시가 필요 이상으로 화려해졌다. 다루는 내용들이 화려한 수사를 버려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도 그냥 두어서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버릇이 작용한 탓이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필연이 아닌 표현은 언제든지 말장난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도외시해서는 역시 좋은 시가 나오기 어렵다.★★☆☆☆[4337. 12. 23.]   996□거울 속의 천사□김춘수, 민음사, 2001   이 시집에서 무의미시의 의미가 아주 잘 드러난다. 이 시집에 의하면 시는 절대로 중요한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아주 가벼운 얘기, 그 중에서도 될 수 있으면 장난삼아 놀 수 있는 그런 아주 작은 얘기를 하는 것이 시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나머지는 다 가짜다. 그러니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들은 시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짧을 수밖에 없고, 인간 사이에서 전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감각들을 초대하는 것이 그 짧은 행보의 원인이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완벽한 시가 되지 않겠나 싶다. 그러나 시가 그런가? 그건 그런 전제 때문에 그런 것이지, 시가 본래 그런 것이 아니다. 일부러 틀린 전제를 해놓고서 평생을 신념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어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런 단순성이 시인의 한 기질이기도 하다. 그것이 교조화 하는 것의 부작용까지 고려하라고 하면 단순에 대해 너무 큰 요구가 될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는 그일 뿐이다. 한자는 그도 저도 아니다.★★☆☆☆[4337. 12. 24.]   997□모래인간□최승호, 세계사시인선 101, 세계사, 2000   관찰도 놀랍고, 그것을 드러내는 표현도 놀랍다. 죽음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이토록 깊이 파고들 수 있다는 그 집중력도 놀랍다. 파고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순전히 보여주는 것만으로 할 말을 하는 것에서는 광기를 넘어선 신들림의 느낌까지도 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죽음에 천착하는 것일까? 죽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가치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방식이다. 한자는 끝내 거슬린다.★★★★☆[4337. 12. 25.]   998□맨발□문태준, 창비시선 238, 창비, 2004   늙은이가 쓴 시 같다. 작은 풍경에서 그 만큼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사물을 아주 깊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많이 본 것을 아주 적은 묘사로 드러내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다. 그리고 시에서 작은 것으로 많은 것을 드러내는 방법은 상징이다. 상징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이 역시 오랜 관찰과 단련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그러나 너무 자세히 보려고 하다가 정작 커다란 것을 놓치는 수가 있다. 많은 시들이 말을 하다 만 느낌을 준다. 할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애써 찾아낸 표현을 아까워한 탓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면 시가 언어의 경제 원칙에 가장 충실하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경우이다. 시간이 깊이를 더할 것이다.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예술의 진가를 발휘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결국은 몸을 망가뜨리기에 불법이라는 것을 환각상태에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시에서는 가끔 그럴 때가 있다.★★★☆☆[4337. 12. 26.]   999□광기의 다이아몬드□김록, 문학판 시3, 열림원, 2003   네 거리의 신호등 체계를 지나가던 개가 알 턱이 없다. 인간에게 언어는 말하자면 그런 신호체계이다. 그런 신호체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언어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신호체계 밖의 동물들에게 그 언어체계는 재앙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목숨을 빼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물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의 시가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로 보면 우리 시의 깊이가 많이 깊어지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을 시로 담는다는 것은 언어화의 문제이고, 그것을 언어의 질서 속에 편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네 거리의 교통체계 밖의 질서가 언어의 체계 안으로 들어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 점에서 너무 일찍 시집이 나왔다. 언어 아닌 언어가 드러난 꼴이니 언어 아닌 언어가 언어 가까이 접근했을 때 드러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일찍 등단한 셈이다.★★☆☆☆[4337. 12. 27.]   1000□김수영 전집 [1] 시□김수영, 민음사, 1981   한암이 절친했던 만공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것은, 만공의 걸림 없는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그가 남긴 기이한 행실이 선문에 든 후손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보아서 그를 경계하고자 함이었다. 그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계집질하고 개고기를 먹고. 한암의 청고한 선풍이 서릿발 같이 휘날리는 중에도 말이다. 그런데 한암도 없는 한국의 시단에 만공이 저지른 오류는 그대로 한국 문단의 걸림돌이자 장애로 작동하고 있음을 김수영 이후의 시 행태에서 여지없이 나타난다. 스스로 치열했을지 몰라도 김수영은 그 후대에 끼친 악영향이 너무도 크다.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난해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었고, 시에 대한 오해를 한층 더 강화시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술 처먹고 대중 앞에서 지랄 발광하는 것을 시인 본연의 행실로 여기도록 기여한 주당들의 오류 이상으로 김수영의 실패작들은 한국문단을 어지럽혔다.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써놓은 시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 부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때로 홀로 높았던 정신이, 자신을 비출 거울을 갖지 못한 불행으로, 그를 이해 못한 추종자들에게 코스츔만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김수영에게서 본다. 어쩌면 이는 김수영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구석이 있다. 반성할 것은 스승이 아니라 스승을 뛰어넘지 못한 무능력한 제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4337. 12. 28.]    
173    시집 1000권 읽기 99 댓글:  조회:1811  추천:0  2015-02-11
  981□이슬방울 또는 얼음꽃□이태수, 문학과지성시인선 285, 문학과지성사, 2004   비슷한 이미지와 주제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지루하다는 뜻이다. 한 주제가 한 이미지를 타고서 한 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법이 못 마땅하다면 그것들을 나열한 시가 좀 더 큰 무엇을 위해서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점은 시 쓰는 버릇의 관성이 새로운 주제를 찾지 못할 때 오는 증상이다. 그러니까 형식이든 주제든 무언가 새로운 방향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뜻이다.★★☆☆☆[4337. 12. 18.]   984□낮은 수평선□김형영, 문학과지성시인선 292, 문학과지성사, 2004   시가 짧아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냥 짧아서는 안 되고 어떤 식으로든 압축이 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압축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엿장수 맘대로지만, 엿맛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져야 한다. 독자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설사 묻는다 해도 독자들은 관심이 없다. 한자는 누더기다.★☆☆☆☆[4337. 12. 19.]   982□하강시편□안수환, 동학시인선 78, 동학사, 2004   짧은 시들의 연작이다. 거침없이 생각의 마디들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갈래가 시이면서 연작의 형식이다. 그 전체를 꿰는 어떤 중심이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 그의 삶이 그것이다. 함부로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래서 그 행보의 가벼움 내지는 시각의 신선함 같은 것이 연작을 바라보는 독자의 흔한 기대일 것이다. 어디까지 형상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갸웃거리게 하는 시집이다.★★☆☆☆[4337. 12. 19.]   983□고요의 남쪽□강현국, 열린시학시인선 4, 고요아침, 2004   시가 아주 독특하다. 짧은 시의 강점을 아주 잘 살리고 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가도록 이미지를 배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런데 이미지들을 연결시키는 데에는 다소 논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직감에서 오는 것이든 일상의 논리에서 오는 것이든, 어쨌거나 그것이 사고를 자극하여 감성이 반응하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언가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시집이다.★★☆☆☆[4337. 12. 19.]   984□비누□이승훈, 열린시학시인선 1, 고요아침, 2004   생각을 방목한 것 같다. 굳이 좋게 얘기하자면 흐르는 의식이 터져 나오는 대로 받아 적은 것인데, 어떤 절제가 작용하는지 매끈하고 깔끔하다. 없는 것은 시뿐만이 아니다.★★☆☆☆[4337. 12. 20.]   985□신비주의자□주종환, 천년의시작, 2003   니체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세계의 질서를 흔들고자 한 의지가 그런 어조를 낳았으리라. 서사시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고, 일부는 시를 닮았기도 하고, 해서 도무지 어느 갈래에다가 넣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시이다. 그러니 시로 귀속시킬 수밖엔 없는데, 시이면서 시의 바깥으로 자꾸 나가려고 하는 것은 시라는 양식으로는 전할 수 없는 어떤 애절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란한 표현들은 어떤 단순한 것을 대체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다. 어렵고 구부러진 길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 대해 시원한 내용물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니체에 버금가는 작품을 쓸 것이다. 한자는 장애이다.★★☆☆☆[4337. 12. 20.]   986□단 한 사람□이진명, 문학판시 4, 열림원, 2004   원로시인의 수필 같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 동원된 말이 그 말보다 더 많으면 그건 시를 잘 못 쓴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쓴다면 어떤 의도가 있겠지만,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그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수필과 시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걸쳐있다.★☆☆☆☆[4337. 12. 20.]   987□꽃잎 세기□문덕수, 시문학시인선 204, 시문학, 2002   이미지 선택이 꽤 신중하고 섬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경직돼있다. 독자들은 한참을 더 나갔다. 옛날 원고 갖고 강의할 때 느껴지는 빛 바랜 느낌이다. 이미지 묘사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한 것이 시에는 있다. 방법상의 완숙은 그런 문제를 떠나지만 이미지에 의미를 실으려고 하는 욕심이 발동하는 순간에 이미지는 달구지로 전락한다. 이미지가 벗어놓은 옷처럼 흐믈흐믈 하지 않고 몸에 입혀진 것처럼 꽉 찬 느낌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7. 12. 21.]   988□절정의 노래□이성선, 창비시선 96, 창작과비평사, 1991   시에서 맑은 영혼이 드러나는 지점은 욕망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각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런 경지를 추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옛날부터 자연에 귀의하여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한 전통이었다. 자연에 깊이 기대면 욕망이 저절로 소멸된다. 이 점에서 이 시인보다 더 깊이 들어간 시인은 못 보았다. 인간이 인간을 버리고 자연의 질서를 따를 때 얻을 수 있는 인식과 세계관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신선한 솔바람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허황하거나 묘사를 끝날 자연이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은 냉정한 관찰의 과정에서 시인의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순수한 영혼에 비쳐진 자연이 아주 잘 살아있는 시다. 한자는 자연스럽지 못하다.★★★★☆[4337. 12. 21.]   989□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김태정, 창비시선 237, 창비, 2004   사상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서 스러지지 않은 분노의 감정들이 시로 살아났다. 그래서 그런지 수필체의 무거운 걸음이 시집 전체를 잡고 있다. 좀 더 가벼운 행보가 필요한데, 이것이 감정의 정리와 관련이 있을지는 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세상이든 사물이든 무언가 보는 눈의 방향을 잃으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빨리 아는 것이 좋은 작품을 쓰는 가장 중요한 비결일 것이다. 그 눈이 지금 빠져있다.★★☆☆☆[4337. 12. 21.]   990□물방울 속에 우주가 있다□황금찬, 시인정신시선 42, 오감도, 2000   시의 수준이 들쭉날쭉이다. 관찰과 인식이 주를 이루는 시는 뛰어난 형상력을 보여주는 반면에 어떤 주장을 담은 시들은 경직됐다. 이것은 시인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틀이 단순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팔방미인이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빼어난 부분을 더욱 드러내서 시 세계 전체를 아름답게 할 필요가 있다. 시에다가 윤리교과서의 한 구절을 넣은들 젊은 사람들이 그대로 들어줄 리 없기 때문이다.★★☆☆☆[4337. 12. 21.]    
172    시집 1000권 읽기 98 댓글:  조회:1758  추천:0  2015-02-11
971□소리 깊은 집□최춘희, 경계시선 25, 문학과경계사, 2003   시가 대체로 짧다. 그런 점에서 이미지를 아주 가볍게 다루면서 지루하지 않게 끝낼 줄을 안다. 그러나 시가 짧아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시만으로 끝나기 쉬운 짧은 시의 속성상 그 제시가 깊은 울림을 주는 여운을 지녀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아직 아쉬움이 많은 시집이다. 시가 짧아지면 자신의 생각을 깊이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심미안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4337. 12. 13.]   972□이 달콤한 감각□배용제, 문학과지성시인선 282, 문학과지성사, 2004   카메라 기법이 문단의 한 유행이 된 듯하다. 이 시집은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선별은 물론 시인의 몫이고, 그 언어의 선택에 따른 긴장과 의미 부여는 시인의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묘사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이 동원된다는 점이 눈에 거슬린다. 묘사라고 해도 시에서는 극도의 절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좀 더 압축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한자는 성공을 막는 장애이다.★★☆☆☆[4337. 12. 13.]   973□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조용미, 문학과지성시인선 283, 문학과지성사, 2004   시집 앞부분 절반은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할 만큼 뛰어난 성취를 보인다. 묘사로만 이루어진 듯하면서도 거기에 자신의 할말과 관련이 있는 이미지만을 선택함으로써 풍경을 통해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놀라운 세계를 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깊은 맥락을 대고 있다는 것도 독특한 일이다. 그것은 전통 세계의 어떤 깊은 의미를 탐독할 능력이 있는 사람한테서나 볼 수 있는데 시인이 그런 생활 환경에 놓여있는지 아주 깊은 곳에서 시를 뽑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르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만 듯한 마무리를 보이고 있다. 시가 대체로 짧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여백이 아니라 부족함을 비춰진다. 한자를 버려야 새 세계를 열 수 있다. 한자는 그대로 감옥이다.★★★☆☆[4337. 12. 14.]   974□숲을 떠메고 간 새들의 푸른 어깨□고찬규, 문학동네, 2004   대상을 묘사하고 그것을 시로 완성하려는 성실함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그러나 너무 정직하다. 정직하기 때문에 대상에 자꾸 얽매여서 자신이 정작 할 말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표현도 표현이지만, 과연 어떤 주제를 전하고자 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 더 분명하게 정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애써 얻은 인식이 그냥 묘사로 끝나고 마는 우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4337. 12. 14.]   975□바보 산수 가을 봄□강우식, 열린시학시인선 2, 고요아침, 2004   아주 깔끔한 서정시이다. 무리한 상상을 하지 않고 일상의 조용한 풍경을 잘 담아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상상력도 관찰력도 주제도 다 고만고만해서 새롭게 얻을 그 무엇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시가 편안하지만, 편안한 가운데 그 어떤 울림이 와야한다. 한자는 울림을 막는다.★★☆☆☆[4337. 12. 15.]   976□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정재학, 민음의 시 116, 민음사, 2004   새로운 시도가 눈을 잡아끈다. 이수명 이후 이런 류의 시가 안착을 했지만, 많은 숙제를 남겼다. 이 시집은 그런 숙제를 하나 더한 셈이다. 어조도 안정됐고 상상력도 부드럽다. 하지만 실험이 갖는 모험성은 시라는 갈래의 특성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근원에 대한 물음이라서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지켜볼 따름이다.★★☆☆☆[4337. 12. 15.]   977□물고기가 온다□김형술, 문학동네, 2004   상상력이 아주 독특한 시집이다. 시의 서사구조가 일관된 것이 형식의 실험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텐데, 실험에 가까운 상상력의 구도이다. 중요한 대상을 엉뚱한 이미지로 대체하고서 줄거리를 전개시키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토막토막 끊어서 상징을 푸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듯하다. 일종의 상징을 통하여 세계를 드러내겠다는 의도인데, 이런 시는 독자나 시인 자신을 어렵게 만든다.★★☆☆☆[4337. 12. 16.]   978□마녀처럼□장정임, 현대시시인선 5, 현대시, 2004   요즘 시의 주류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인데, 이 시집은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회성 발언을 하고 있다. 그것도 여성의 억눌린 감정을 자극하여 해방을 향해 진군하는 큰 몸부림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1980년대에 유행했던, 그러나 어느 시대에든 꼭 필요한 그 지점의 육성을 잘 보여준다. 어떤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으로 시가 방향을 잡으면 그 무게 때문에 상상력이 둔탁해진다. 그 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있지만, 오랜만에 힘찬 음성을 듣는 맛도 괜찮다.★☆☆☆☆[4337. 12. 16.]   979□꽃피면 통화중이다□권선숙, 현대시신작시집, 현대시, 2004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그것을 시로 엮어내는 섬세함과 성실성을 갖추었다. 하지만 너무 자세한 묘사가 많고, 설명투도 많아서 상상력의 울림이 약간 처지는 것이 흠이다. 상상력의 울림을 크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인식의 깊이와 비유의 간격이다. 그리고 시가 될 만한 사고와 그렇지 못한 사고를 엄격히 구분하여 다루어진 주제 속으로 한 층 깊이 들어가는 방법이 절실하다.★★☆☆☆[4337. 12. 17.]   980□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허림, 현대시시인선 12, 현대시, 2004   시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성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집이다. 그런데 밋밋하다. 주로 과거의 추억이 많이 나타나고, 특정 공간에 시인의 의식이 붙잡혀있기 때문인데, 특수한 사실들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려면 그 특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시의 내부에 갖추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상력인데, 그것이 미끈해서 걸림이 없다. 좀 더 굴곡을 만들어서 시속으로 들어간 독자가 잠시 머물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4337. 12. 18.]    
171    시집 1000권 읽기 97 댓글:  조회:1877  추천:0  2015-02-11
    961□붉은 편지가 도착했다□박미라, 현대시시인선 16, 현대시, 2004   시의 인식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이다. 거의 본보기에 가깝다. 대상의 인식을 완전히 소화하여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에 깃든 어떤 정신을 드러내는 시의 지평이 이 시집 안에서 완전히 살아나고 있다.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시인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이 죽지 않고 생각의 연결이 살아나는 일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시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잘 알고 이해한 시인이다. 한 가지 사물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생각의 올을 잡아내어 그것으로 전혀 새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것은 재주만으로도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일이다.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만나야만 이루어지는 자리에 이 시집이 있다. 그러니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의 표현과 기교가 절정에 이르면 반드시 시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 시집에 들어있는 내용물들은 우리에게 이미 아주 낯익은 것이라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이것 때문에 애써 이룬 재주가 더 이상의 어떤 세계를 향하여 확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계속 중요한 주제가 되었던 마음의 문제에 집중하되, 거기서 어떤 사물을 통해서만 말하는 방법과 주제로부터 조금 더 벗어나서 개인의 삶 속에 투영된 인류 보편의 어떤 감정을 좀 더 자극해줄 수 있는 그런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 점만 보완된다면 우리는 정말 큰 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물의 한 가지 속성에만 구속되지 않고 그것을 통해 큰 것을 노래하는 큰 호흡이 그런 가능성을 예고한다. 기대해볼 일이다.★★★★☆[4337. 12. 10.]   962□나는 둘이다□양전형, 현대시시인선 18, 현대시, 2004   시에는 시가 가는 길이 있고, 이미지에는 이미지가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잘 따르는 것이 시를 잘 쓰는 길이고, 나중에는 그 길을 벗어나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시를 잘 쓰는 길이다. 따라서 이미지가 자리를 잡았으면 내가 그와 다른 말을 하고 싶더라도 그 이미지의 흐름을 따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이미지의 흐름을 타고서 흘러가면서 시라는 큰 그림을 만든다. 이 시집에서는 많은 부분 이 점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서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잘 안 되었다. 결국 너무 서둘러 시집을 냈다는 얘기가 된다.★☆☆☆☆[4337. 12. 10.]   963□오래 말하는 사이□신달자, 민음의 시 122, 민음사, 2004   전에 읽은 시집에서는 여류시라는 느낌 이외에 다른 것이 없었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물을 보는 독특한 눈이며 삶의 달관에서 오는 적절한 깨달음에 그것을 실어내는 발상의 적절함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시들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경륜에는 오랜 세월 그 분야에서 익은 자의 완숙한 기교까지 느껴진다. 문정희와 비슷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여린 느낌이 온다. 맛있는 시집이다. 아마도 삶을 보는 솔직한 태도가 그 맛의 진원일 것이다.★★★☆☆[4337. 12. 10.]   964□밤에도 강물은 흐른다□최정아, 시선시인선 12, 시선사, 2004   주제와 표현의 일치감과 괴리감이 때로 시에서 크게 보이는 수가 있다. 이 시집이 그렇다. 대체로 하고자 하는 말들을 위해서 동원된 말들이 정도 이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이것은 시인이 시의 내용보다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쪽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표현된 것들이 담아내는 그 내용물이 안정되지 못하고 표현을 향해 억지로 옷을 입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표현을 찾아내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 실리는 내용들의 초점을 좀 더 선명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많은 표현들이 한 가지 초점을 향해 집중되어야만 시가 빛을 낸다. 한자는 초점을 흐릴 뿐이다.★★☆☆☆[4337. 12. 11.]   965□그대 밤하늘에 불을 밝히고 싶다□곽문환, 시선시인선 9, 시선사, 2004   이미지에 집착을 하다 보면 생각이 그냥 이미지에 머물러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실험이라고 해야 할지 의도라고 해야 할지 분명하진 않지만, 시에 실험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칭찬 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의 형식들이 어쩐지 낡아 보이는 것을 그런 탓이다. 그것은 이미지가 무언가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를 않고 혼자 서있는 경우이다. 주제가 충실한 시들은 표현에서 좀 착오가 일어나도 미숙해 보일지언정 낡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이 시의 신선함을 살리려면 결국 내용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7. 12. 11.]   966□겨울 운동장□김동수, 시선시인선 8, 시선사, 2004   이미지를 처리하는 수법이 에누리없이 아주 깔끔하다. 그런데 이미지에 시선이 고정되면 정작 이미지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 결과는 비유를 통한 이미지 대체로 나타나는데, 이런 방법에 너무 치중하면 시가 단조로워진다. 그리고 정의의 방식을 택하기 쉽다. 역시 단조로워진다. 이미지가 이미지의 한계 안에 갇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극복하려면 이미지를 정의하는 방향을 버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 주변의 것까지 아울러 보여줄 수 있는 열린 방법이 필요하다. 제시된 것을 규정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제시된 그것을 통해 그것 너머의 것까지 보여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자는 불필요한 태도이다.★★☆☆☆[4337. 12. 11.]   967□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강영은, 시선시인선 6, 시선사, 2004   시들이 좀 거칠다. 이 거칢은 한두 가지 원인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어떤 흐름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뚜렷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아주 위험한 것이다. 대체로 좋은 표현을 찾으려는 정신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느껴지는데, 그것이 거기에 적절한 마음의 상태를 담아내는 일과 조금 어긋나서 생기는 일이다. 따라서 세계를 보는 일정한 시각이 전제되어서 그 시각으로 표현을 잡아내야 하는데, 애써 잡아낸 표현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다 보니 때로 내용을 거칠게 담아낸다. 표현과 내용의 조화가 거칠지 않도록 하는 처방이 필요한 시집이다. 한자는 처방이 되지 않는다.★★☆☆☆[4337. 12. 12.]   968□다시 부르는 제망매가□김인육, 시선시인선 5, 시선사, 2004   목소리가 우렁차고 호흡이 길어서 무슨 내용이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시인이다. ‘꽃신’은 장시인데, 이야기를 가지면서도 그것이 충분히 서정성까지 아우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집의 절반이 여인들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차있는데, 여느 사랑시를 닮지 않고 시인만의 힘찬 기상이 느껴지는 점이 좋다. 다만 이 우렁찬 목소리가 거칠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시에 비쳐진 상상력의 구도를 좀 더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한자는 장애이다.★★☆☆☆[4337. 12. 12.]   969□여우비□지인, 현대시시인선 1, 현대시, 2004   유미주의인지 탐미주의인지 분명치 않을 상상력의 체계와 태도를 갖고 있는 시집이다. 이것은 세계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에서 촉발된 것인데, 그것이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드러날 때 보이는 난삽함을 그대로 안고 있다. 그림과 음악 쪽으로 넘나들며 상상력의 실험을 하는 것이 그런 태도의 결과이다. 그러다 보면 이미지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면서도 때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구르마의 노릇도 함께 한다. 이것은 일종의 이율배반인데, 궁금증이 심한 시인한테는 그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독특함을 추구한다면 이대로도 괜찮겠지만, 결국 도달할 곳이 있지도 않은 진리가 아니라 시라면 시의 특성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구원의 길이 될 것이다.★★☆☆☆[4337. 12. 12.]   970□익숙한 소리□문선영, 현대시시인선 4, 현대시, 2004   시가 어려운데, 그것이 상징이나 상상력의 복잡한 체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에서 초래된 것이라면 여러 가지 문제를 갖게 된다. 특수한 면을 깊이 파고들어서 거기서 보편의 거울을 발견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거울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수렁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발견을 하지 못한다면 차선책은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의 흔적을 보여주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가 어려워졌고, 이 어려움은 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너무 깊고 좁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리고 앞부분에서는 한 시 안에서 너무 많은 말들을 하려고 하고 있고, 뒤에서는 하고자 하는 얘기들을 너무 돌리거나 아끼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여러 모로 방법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4337. 12. 13.]    
170    시집 1000권 읽기 96 댓글:  조회:1700  추천:0  2015-02-11
951□지상의 그 집□홍윤숙, 시와시학사, 2004   유장함이란 이런 것일까? 시의 호흡이 아주 길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할말을 굳이 숨기지 않으면서도 긴장이 살아있다. 무엇보다도 생을 관조하는 깊은 관찰이 시집 전체의 폭과 깊이를 넉넉하게 만든다. 젊은 시인들이 본받아도 한참을 본받아야 할 시집이다. 다만 사건을 전달하거나 설명투로 떨어진 부분이 곳곳에 있어서 그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여유라고 보아도 되겠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시들 때문에 일종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4337. 12. 6.]   952□나는 미이라가 되고 싶다□박세림, 문학사상사, 2004   대체로 시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너무 많은 말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주로 이야기의 화법으로 쓰이고 있어서 시가 갖는 가벼운 행보 대신에 산문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걸음이 느껴진다. 이것은 자신의 체험이 감정과 뭉뚱그려져서 어디서 시가 발화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 탓이다. 따라서 시를 쓴 다음에 주제를 한 번 더 정확하게 정한 다음, 그것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말과 이미지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시의 고유한 질서를 좀 더 깊에 파고들 필요가 있다.★☆☆☆☆[4337. 12. 7.]   953□추억의 푸른 이끼□장병천, 현대시 시인선 14, 현대시, 2004   정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그 만큼 시를 많이 써봤다는 얘기이고, 섬세한 장면이 정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분명한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아는 시인이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른 호흡과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시집 전체의 흐름을 밋밋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프로펠러 소리가 졸음을 유도하듯 단조롭다는 것이 흠이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시각과 시로 엮는 상상의 접근법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도 칭찬 받을 일은 못된다. 사물로부터 관념을 너무 많이 유추하면 시가 자칫 모호해질 염려가 있고, 특히 관념의 모호성 때문에 시인의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읽는 독자는 지루해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4337. 12. 7.]   954□마지막 주유소□권정일, 현대시 시인선 15, 현대시, 2004   표현이 그 자체로 시의 목적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런 상황의 시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은 시의 정서를 전달하고 독자의 마음에 긴장을 일으키는 한 보조수단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시집은 어느 쪽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 흠이다. 분명 앞의 것이 아니라면 표현은 너무 수다스럽고, 그 수다스러움 때문에 정서를 전달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표현을 그렇게 하는 데는 반드시 그런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감성을 일깨우는 그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이 분명치 않아서 시가 어수선해졌다. 한자 역시 어수선하다.★☆☆☆☆[4337. 12. 8.]   955□주머니 속의 생□임종성, 현대시 시인선 17, 현대시, 2004   아주 깔끔한 서정시다. 맑은 물처럼 시가 맑다. 영혼이 맑지 않다면 어려운 일이고, 시의 특징을 아주 잘 소화한 경우이다. 그러나 서정성에 너무 집착해서 그런지 다소 허한 시들이 많다. 이 허함은 주로 주제 쪽에서 온다. 시가 꼭 무게 있는 주제를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제가 그냥 그렇게 끝나서는 어딘가 아쉬운 그런 시들이 있는 법이고, 이 시집의 곳곳에 그런 시들이 있다. 이 경우 정신의 방향을 단련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다. 그리고 울림이 깊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한자는 한 글자라도 혹이다. ★★☆☆☆[4337. 12. 8.]   956□양산시편□정대구, 시선시인선 3, 시선사, 2004   ‘할머니와 풍선’을 절창으로 꼽는 이유는 놀라운 관찰을 통해 얻은 사유를 적당한 비유에 실어서 무리 없이 할 말을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표현을 앞서가지 않고, 표현이 말을 짓누르며 넘치지 않아서 딱 필요한 만큼 말과 표현이 호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들이 작은 발견을 통해서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있거나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시가 무거워졌다. 이것을 달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걸음이다. 군살을 빼내거나 관찰을 좀 더 심도 있게 밀어서 표현과 말이 서로를 밀고 당기는 상태까지 가야 한다. 한자는 흠이다.★★☆☆☆[4337. 12. 8.]   957□견딤에 대하여□윤석산, 시선시인선 2, 시선사, 2004   시를 쓰는 방법에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어떤 말을 생각하고 있다가 그것에 적절한 이미지를 찾아서 쓰는 경우와, 어떤 이미지를 마주쳐서 거기에다가 할 말을 만들어 넣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의 경우는 앞의 경우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 결국 후자의 경우에는 주제의 빈약에 빠져든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런 시작법은 현실에 대해 치열할수록 좋은 작품을 쓰게 된다는 점에서 참 피곤한 시작법을 활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따라서 시의 기법이 문제가 아니라 치열성이 문제가 된다. 온달, 처용, 서동과 관련된 연작들은 대상에 너무 얽매여 정작 하고자 한 말을 제대로 못한 경우이다. 따라서 대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작품을 쓰는 비결이 될 것이다. 한다는 어떤 경우에도 비결이 되지 않는다.★★☆☆☆[4337. 12. 9.]   958□다보탑을 줍다□유안진, 창비시선 240, 창비, 2004   이 정도면 늙음이 두렵지 않다. 눈을 사방으로 열어놓고, 말랑말랑한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월도 이런 정도의 시를 허락하는 모양이다. 젊은 사람들 못지 않은 긴장감이 시 전편을 흐르고 있다. 시가 짧은 것은 불필요한 기교를 덜어낸 탓이리라. 산문투로 떨어진 시들도 있지만, 그것이 시집 전체의 무게를 덜어내지는 않을 것 같다.★★★☆☆[4337. 12. 7.]   959□봄은 전쟁처럼□오세영, 세계사시인선 126, 세계사, 2004   생각만으로 시를 쓰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다. 세계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생각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지만, 그때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거의 고전에 가까운 비유체계로 노래를 했는데, 그것이 낡아 보이는 것은 비유가 환기하고자 하는 세계가 형식에 의해 서정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쓰인 비유체계는 서정시의 전형에 가깝다. 전통 서정시의 정서가 실리게 되어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도시의 문명을 담아버린 까닭에 어딘지 모르는 묘한 아쉬움이 생기는 것이다. 전략이 바뀌었어야 할 시점이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이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을 무엇으로 바꾸어 가지고는 와 닿지 않을 만큼 도시는 복잡하고 어지럽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감상할 만큼 도시는 유유자적하지 않다. 내용에 맞는 형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7. 12. 9.]   960□악기점□배한봉, 세계사시인선 128, 세계사, 2004   주제가 적절한 살을 입고 적절한 호흡으로 살아났다. 꼼꼼한 관찰을 거기에 걸맞은 길이의 표현으로 드러내는 수법이 능수능란하다. 그러나 아직도 불필요하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좀 더 깎아내도 될 법한 시들이 꽤 있다. 게다가 뒤쪽의 시들은 너무 풀어졌다. 자연을 아주 깊이 관찰한 시각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 삶을 걸어놓고 있다는 것도 눈을 잡아끄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는 너무 세련되었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으려면 자연과 거기에 담긴 체험의 절실성이 더욱 깊이를 가져야 할 것이다.★★☆☆☆[4337. 12. 9.]    
169    시집 1000권 읽기 95 댓글:  조회:1917  추천:0  2015-02-11
941□오래 기억나지 않는 겨울을 위하여□강제윤, 문비시선 9, 문학과비평사, 1989   시가 어떤 내용을 싣고 있든 시가 드러내는 방법상의 일관성이 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1980년대라는 격정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대부분 직설에 의한 발언의 시들이 주조를 이루던 시대에 이렇게 우회하여 그런 격한 감정을 싣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직접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를 통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제시만으로는 갑갑한지 감정이 겉으로 불거지는 경우가 곳곳에서 보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그런 감정을 처리했다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4337. 12. 4.]   942□집에 돌아와 불을 켜다□김신중, 새로운 감성의 시 4, 크리에이티브 여민, 1995   이미지와 언어가 거의 분리되지 않는 깔끔한 묘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시인의 언어감각에서 연유하는 것인데, 웬만한 수련 가지고는 잘 안 되는 경계에 있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들의 삶의 어느 결과 감성의 일치를 보아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으면 때로 그 깔끔한 이미지에도 모호한 정서를 이루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시집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그런 단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이 부분은 일상 속의 깨어있는 의식으로 해결해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렇다면 어떤 긴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4337. 12. 4.]   943□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이근배, 문학세계사, 2004   정신이 앞서나간다고나 할까? 시에서 담아야 할 단련된 정신이 시의 밑에 분명하게 고여있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자유롭게 풀어내느냐 하는 것인데, 대체로 소재에 주제와 상상력이 많이 붙잡혀 있어서 답답한 느낌을 준다. 정신의 단련은 종교의 몫이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종교나 사상의 어떤 덫에 걸리면 시가 나쁘지는 않지만 통쾌한 맛을 주지 못한다. 정신이 깊어질수록 상상력은 좀 더 가벼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시가 주제 쪽으로 기울어지면 자칫 넋두리로 전락할 염려가 있다. 그리고 설명투가 많다는 것은 그 뒤에 거느린 주제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4337. 12. 4.]   944□길 위에서 묻는 길□김민형, 시작시인선 29, 천년의시작, 2003   시는 보통 상상력에 의존해서 그것을 부풀리는 방향을 쓴다. 그런데 이 시집 속의 상상력은 부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졸아든다. 그것은 시인이 시의 군살을 끊임없이 깎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짧고 아주 단단해진다. 그리고 시가 지닌 비유의 체계보다는 시상을 따라 전개되어 나가는 생각의 질서가 긴장을 이끌어가는 주요 열쇠가 된다. 당연히 발랄한 상상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절제된 긴장이 시의 맛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시는 시인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쓰지 않으면 긴장을 잃게 된다. 시집 한 권에서 그런 긴장을 유지하려면 시인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다. 이 시집에는 그런 처절함이 곳곳에 배어있다. 따라서 이런 긴장으로 살기 어렵기 때문에 무언가 다른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긴장의 문제이기보다는 방법의 문제이다.[4337. 12. 4.]   945□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위선환, 현대시신작시집, 한국문연, 2003   묘사가 아주 꼼꼼한데, 울림이 그 만큼 따라주지 못한다. 그 원인은 상상력이 떨리도록 현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데 있다. 내가 읽은 풍경이 아무리 참신하고 신선하더라도, 독자가 그것을 그렇게 보도록 해서 울림을 주는 것은 의미이다. 따라서 풍경 제시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부분을 조금 더 보강해야만 깊은 울림이 따를 것이다. 글로 써놓고서 그 안에 내가 넣고자 하는 것이 들어있다는 만으로는 울림을 만들지 못한다. 내가 분명한 느낌과 뜻을 얻은 다음에 그것을 얼마만큼 드러낼 것이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과 그런 결정이 아직 안 된 상태에서 드러내놓는 것은 무언가 좀 더 시원한 맛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정타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종종 깨달음이 깊이 들어가지 못했는데도 그런 것처럼 묘사된 것들도 있다. 그쪽을 강화하거나 표현의 방법을 좀 더 활달하게 변환시킬 필요가 있다.★★☆☆☆[4337. 12. 5.]   946□알타미라 벽화□정진경, 현대시 시인선2, 현대시, 2003   거침없는 상상력이 일상의 이미지들을 휘적이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주 활발하다. 그리고 이것은 점차 삶을 구속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디지털 세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미지들이 너무 과장된 데다가 관념 속으로 붕 떠있다. 자칫하면 현실의 어느 부분에 뿌리박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그리고 이것은 표현에 집착한 결과이기도 하다. 작은 것이라도 좀 더 크게 확대하려는 의도가 이런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쯤에서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을 좀 더 정확히 잡아서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상관물만을 정교하게 불러낼 필요가 있다. 시라는 것이 워낙 과장의 몸짓을 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어서면 황당해지기 쉽다. 과장을 하는 데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4337. 12. 5.]   947□기념사진□김재석, 현대시 시인선3, 현대시, 2003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물어야 할 시집이다. 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절의 이미지와 그와 관련 있는 비약의 상상력이 어쩐지 장난스러움으로 끝나고 마는 것은, 비단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일 성싶다. 그 일탈이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어떤 충동에서 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말장난으로 떨어질 방향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의 비약과 이미지가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애써 익힌 재주가 꽃을 피우려면 정신은 물론이거니와 기교에서도 신중한 맛이 있어야 할 듯하다. 한자는 더욱 신중할 일이다.★★☆☆☆[4337. 12. 5.]   948□이른 아침 사과는 발작을 일으킨다□이은유, 경계시선 30, 문학과경계사, 2004   너무 설명하려고 들어서 시가 지루해진 경우이다. 시 한 행에 매달리지 말고, 시 전체가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주제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시를 읽고 났을 때 한 가지 주제와 한 가지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도록 생각의 방향과 이미지의 흐름을 조종해야 한다. 그것이 잘 안 되는 바람에 초점을 잃은 채 이미지가 붕 떠서 흘러간 시들이 많다. 아깝다고 여기지 말고 주제와 관련이 없는 것들은 과감히 잘라내어 좀 더 팽팽한 긴장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든 시에게든.★☆☆☆☆[4337. 12. 5.]   949□겨울 수선화□서규정, 열린시학 시인선 10, 고요아침, 2004   시집의 앞부분 절반이 바다 체험으로 이루어졌다. 소재가 원양어업에 관여한 배꾼의 그것이니 아주 독특한 시집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호흡이 길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런데 바다를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큰 주제가 부각되지를 못하고 고기잡이배에 승선한 한 사람의 고뇌 쪽에 집중되어서 그것이 그대로 한계로 작용한다. 시는 개인의 특수성을 다루지만, 그 특수성 속에는 보편성이 숨어 있는 법이다. 그 점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그리고 뒷부분은 너무 밋밋한 것이 흠이다. 표현이 많이 등장하지만 신선하지 못하고 또 이야기의 줄거리 속에 파묻혀 있다. 그러다 보니 시의 긴장이 많이 풀린 형국이다. 한자 역시 긴장을 유발하기에는 너무 낡은 문자이다.★★☆☆☆[4337. 12. 6.]   950□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안도현, 창비시선 239, 창비, 2004   재주가 아깝다. 할 말이 없을 때 시에서 어떤 징조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주제가 없으면 시는 인식을 통해 그 긴장을 드러내는데, 앞부분의 몇 편에서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시의 긴장은 낱말의 조합으로 이루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내용을 상실한 인식은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 이루어진 조합들의 배경이 낱말들 사이에 실리콘처럼 박혀있을 때 팽팽한 긴장이 생긴다. 쓰기 위해서 쓴 시들이 갖는 함정은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도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장난이 매우 심한 시집이다. 독자들이 이런 시의 세계에 오래 매달려있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깊이 생각할 일이다.★☆☆☆☆[4337. 12. 6.]    
168    시집 1000권 읽기 94 댓글:  조회:1642  추천:0  2015-02-11
932□청풍에 살던 나무□김시천, 제3문학시선 7, 제3문학사, 1990 933□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김시천, 온누리, 1993   처음 시를 배울 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교와 장치를 연습하게 되는데, 그 단계가 지나서 기교가 몸에 익고 그런 장치를 통해서 감정을 자유자재로 드러내는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그 전의 기교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말해야 할 그 어떤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떠 안게 되면 기교는 먼발치로 물러서서 그러한 사상을 드러내는 데 가장 필요한 뼈대만을 남기고 나머지 잔재주는 흐믈흐믈 해진다. 시의 맛은 많이 사라지지만, 그 사상성이 갖는 무게 때문에 때로 그 맛에 집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시로서는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 목적성이 두드러지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 뒤에 먼발치로 물러선 장치들이 다시 드러나는 시기에는 시가 정말 해야 할 말들이 살아난다. 그때를 기다려야 할 시들이다.[4337. 12. 3.]   934□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정한용, 민음의 시 28, 민음사, 1990 935□슬픈 산타 페□정한용, 세계사시인선 43, 세계사, 1994 936□나나 이야기□정한용, 민음의 시 92, 민음사, 1999   시인의 첫 출발은 다분히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형식과 의식의 실험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가 세 번째 시집에 와서는 그런 바탕 위에서 서정성을 곁들이고 있다. 초점은 일상 속의 비어있는 어떤 것이다. 그곳에 작용하는 힘들의 방향과 의미를 추적한다. 그리고 시를 쓰는 방법이 아주 성실하다. 이 점이 사실은 시인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모더니즘은 의식의 치열성과 그 앞서나가려는 몸부림이 두드러져야 한다. 그 계열의 시인들이 자꾸 낯설게 하기 수법을 택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 시인의 시들은 너무 점잖다. 의식의 깊이로 본다면 시가 너무 늘어져있다. 무언가 더 단단하고 압축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관성을 벗어날 만큼의 이탈이 필요하다. 시를 일관된 시각과 방법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이 시인이 짧은 100m달리기의 시인이 아니라 마라톤형 시인임을 말해준다.[4337. 12. 3.]   937□쑥의 비밀□박윤배, 전망시선 3, 전망사, 1993 938□얼룩□ 박윤배, 경계시선 18, 문학과경계사, 2002   이 시인의 특징은 이미지 사이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발랄함이다.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미지들을 교묘하게 꿰면서 독자의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런 감각들이 일상의 훈련에 잠겨있는 느슨해진 느낌을 아주 잘 건드려서 일깨운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들이 파고드는 세계가 좀 더 깊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발랄함이 무게를 갖추려면 세계의 문제와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발랄함의 감각 때문에 때로 군더더기가 생기기도 한다. 결국 세계의 깊이를 전제하지 않으면 감각은 무언가 결핍된 느낌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4337. 12. 4.]   939□검은 밥에 관한 고백□유정환, 고두미, 2004 940□붉은 눈 가족□유정환, 고두미, 2004   이 시집 두 권을 읽어보면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가 쓰여진 10년 동안의 일관된 경향과 수법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상의 놓치기 쉬운 세세한 부분에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의외로 단단한 세계를 이룬다. 특별히 눈을 확 잡아끄는 표현도 없고 특별히 긴 시도 없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맛을 내는 것은 시가 건드려야 할 부분이 삶의 여러 정서 중에서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시집이 나오기 이미 10년도 전에 방법과 세계가 딱 짜여졌다는 뜻이다. 일상으로부터 어떤 것을 더 끄집어내어 세계를 깊게 하느냐 하는 것이 남은 숙제일 것이다. 그것은 시가 그러하기에 삶 스스로 깊어지는 수밖에 없다.[4337. 12. 4.]    
167    시집 1000권 읽기 93 댓글:  조회:1862  추천:0  2015-02-11
  921□낯선 금요일□문정영, 시선시인선 14, 시선사, 2004   표현에 너무 집착한 시집이다. 그래서 쉽게 쓸 수 있는 것들도 어려운 표현 뒤로 숨어버렸다. 그래서 마치 문자 해독하듯이 독자들을 훈련시킨다.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표현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애써 만든 표현이 오히려 의미 전달에 거북살스럽게 작용한다면 그건 분명 칭찬 받을 수 없는 일이다. 한 행을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표현을 심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나, 그것을 넘어서야만 정말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상상력의 어깨가 너무 긴장했다. 긴장하면 금간다. 한자도 금이다.★★☆☆☆[4337. 11. 28.]   922□열하를 향하여□이기철, 민음의 시 69, 민음사, 1995   좋은 표현과 깨달음의 말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너무 뒤로 물러선 탓인가? 이미지들이 대상에 바짝 다가가서 붙어있지를 못하고 붕 떠있다. 이것은 표현은 눈에 잡힐 듯이 그려지는데 그것으로 나타내야 할 주제가 분명치 못하거나 자신의 내면에 너무 깊이 들어있는 관념이라서 그런 것이다. 특히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결국 시가 너무 큰 것을 말하려다가 작은 것들의 뿌리가 뽑히는 바람에 모호해진 경우이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시의 좋은 방법인데, 여기서는 그 반대로 작용한 경우가 많다.★★☆☆☆[4337. 11. 30.]   923□본색□정진규, 시작시인선 43, 천년의시작, 2004   시에서 산문을 택한다는 것은, 시가 지닌 모든 장점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행가름에서 오는 시의 장점을 버린다면 시는 특별한 부분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 존재의 방식이란 대체로 논리와 구조이다. 논리를 강화시키거나 구조의 특별한 장치를 통해서 산문이 주는 둔탁한 행보 속에 시의 긴장을 살리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너무 깊이 들어가면 긴장만 남고 시는 사라진다. 당연히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 시집의 경우는 현실을 등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서 더욱 어려워졌다. 그것이 욕망을 제거하는 맑은 경지를 추구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이미 깨달아버린 자의 세상 구경이라면 독자의 폭을 아주 좁히는 일이 된다. 읽을 사람 이외에는 읽지 않는 그런 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시는 연꽃이 아니라 연이 된다. 어디까지 날아갈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한자는 불필요한 미궁이다.★★☆☆☆[4337. 12. 1.]   924□지평선에 서서□김준태, 문학과지성시인선 234, 문학과지성사, 1999   이데올로기가 문득 증발한 곳에서 변한 세태를 바라보는 눈은 날카롭고 안타깝지만,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해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태의 시집이다. 시가 짧아졌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단련된 정신의 경구화라고 할 수 있지만, 안 좋게 말하면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경구들이 너무 경직됐다. 그리고 산문투의 문장은 그 전부터 문제였던 것이지만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와 산문을 구별하는 지점에 대한 인식이 깊어져야 할 것 같다. 한자는 아직도 청산이 안 되었는지 그게 이상하다.★★☆☆☆[4337. 12. 2.]   925□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김정원, 내일을 여는 시 36, 내일을 여는 책, 2002   건강한 정신이 적절한 표현을 만나서 아주 좋은 세계를 이루었다. 우선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며 발견한 새로움에 일상의 진실을 담으려는 태도가 시인의 성실성을 능히 짐작케 한다. 요즘 들어서 보기 드문 일이다. 그래서 낡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낡음을 논할 것은 못된다. 다만 표현에 비해 주제가 너무 가벼운 것들이 꽤 많이 있고, 또 너무나 자명한 것들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애써 얻은 표현들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상상력이 경직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제가 무겁더라도 좀 더 멀리 떨어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에 대해서 좀더 치열한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좋은 시 쓰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4337. 12. 2.]   926□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송찬호, 민음의 시 22, 민음사, 1989 927□10년 동안의 빈 의자□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148, 문학과지성사, 1994 928□붉은 눈, 동백□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239, 문학과지성사, 2000   송찬호의 시는 다른 사람들의 시와 현저히 다르다. 그 현저함은 상상력의 독특함이 만드는 것이다. 시의 내용은 크게 두드러질 것이 없다. 그러나 같은 소재라도 송찬호의 손을 통과하면 묘한 상상력의 빛깔을 입고 나타난다. 송찬호 식의 상상력이라고 할 밖에 없는 묘한 파장이 생긴다. 시에서 상상력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송찬호가 처음일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송찬호의 시는 지지부진한 한국 시의 앞날을 여는 한 척도가 될 것이다. 동원된 언어가 기존의 언어 감각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서 재구성된다. 그 재구성의 방법이 상상력의 결을 드러내는 방법이 되고, 시 안에서 언어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쉽게 상징의 차원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래서 아주 낯설게 보인다. 그렇지만 그 낯선 언어의 질서 속에는 새로운 언어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꿈틀거린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까지 시인의 언어는 가 닿는다. 그래서 앞날이 아주 궁금해지는 시이다. 한자가 꼭 필요한가 하는 것은 깊이 새겨볼 일이다.★★★★☆[4337. 12. 2.]   929□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정영상, 실천문학의 시집 65, 실천문학사, 1989 930□슬픈 눈□정영상, 제3문학시선 8, 제3문학사, 1990 931□물인 듯 불인 듯 바람인 듯□정영상 유고시집, 실천문학의 시집 97, 실천문학사, 1994   시에 그 사람의 양심이라든가 영혼이라든가 하는 것이 나타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대개 시인은 화자의 탈을 쓰고서 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이 화자와 시인 자신의 간격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시는 그의 사생활과 아주 가깝게 밀착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렇게 생활과 시가 밀착되면 그림이 정밀하기는 한데, 어딘가 시원하게 트이지 못하여 답답하다는 것이 특징이 된다. 자신의 양심이 허락지 않는 상상력을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가 그렇게 만든다. 따라서 이 경우에 시의 척도는 상상력이 아니라 생각의 순일함과 양심의 곧음이다. 이 시인의 경우가 그렇다. 상상력으로 뜨지도 못하고, 영혼의 가없는 깊이로도 닿지 못하는 곳에서 아픔이 묻어나는 현실 속에 시인의 감성이 촉수를 뻗고 있다.[4337. 12. 3.]    
166    시집 1000권 읽기 92 댓글:  조회:1740  추천:0  2015-02-11
911□사평역에서□곽재구, 창비시선 40, 창작과비평사, 1983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의 얘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대부분 관념화하기 때문이다. 그 관념화를 얼마만큼 경계하고 멀리 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시의 형상화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 시집 속의 아픔은 그런 묘한 결합이 이루어진 경우이다. 이데올로기가 너무 앞서 불거진 흠은 곳곳에서 갖고 있지만, 그것이 어설픈 관념으로 드러나는 것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은 시인의 재주라고 할 밖에 없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닿을 듯 말 듯한 시집이다. 그리고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나름대로 한 시대의 육성을 대변할 만한 그런 분위기가 있다. 한 글자라도 한자는 한계이다.★★★☆☆[4337. 11. 21.]   912□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최승호, 문학 판 시 1, 열림원, 2003   세상 모든 현상을 고독과 허무로 도배하는 ‘곶감 빼먹기 파’의 원조가 바로 여기 있구나. 어떤 결론을 정해놓고서 거기에 해석과 합리화를 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모든 이미지들이 뻔히 정해진 결론을 향해서 질주해간다. 상상력은 날다람쥐처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아주 편하고 가볍게 뛴다. 시인의 능력을 새삼 보여주는 부분이다. 생각의 흐름도 시상 전개도 아주 자연스러워서 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난 결론과 그렇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불협화음은 어떻게 해소할까? 더 이상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자리까지 와서 말을 하려는 의지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부터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자는 답이 되지 않는다.★★★☆☆[4337. 11. 22.]   913□국토□조태일, 창비시선 2, 창작과비평사, 1975   거칠지만, 넓고 깊다. 아니, 높기도 하다. 연작은 그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연작이면 충분히 능력이 드러난 셈이다. 한 주제를 갖고 이만큼 깊이 파고드는데, 일관된 관점을 갖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허황한 표현이 없이 꼭 필요한 말들만 골라내는 것도 여간한 능력이 아니다. 1970년대 초반에 이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니다. 다만 한 가지 주제에 집착하면서 시선이 좀 굳어졌다는 것과, 시대의 어떤 특징을 너무 염두에 둔 나머지 상상력이 다소 얽매여서 자유롭게 뻗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다. 하지만, 사건을 다룰 때도 산문으로 떨어지지 않고, 관념이 짙은 내용도 잘 소화해냈다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4337. 11. 22.]   914□강 같은 세월□김용택, 창비시선 130, 창작과비평사, 1995   시가 생활 속에서 솟는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러나 생활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시이기도 하다. 1, 2부에서는 시가 짧으면서도 깊은 말을 하는 양식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뒤로 가면서 걸음걸이가 둔해졌다. 주제가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주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시는 길어진다. 그것이 시대의 탓이라고 해도 결코 칭찬 받을 일은 못 된다.★★☆☆☆[4337. 11. 25.]   915□주막에서□천상병, 오늘의 시인총서 3, 민음사, 1979   시에 허장성세가 없어 마치 청량제처럼 신선하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 이렇게 깔끔할 수 있고 시원할 수가 없다. 이 시원함은 읽는 자나 쓰는 자들이 모두 어떤 탐욕에 가까운 욕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탐욕 바깥의 풍경이 신선해 보일 밖에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표현 제일주의의 폐해가 그득한 세상에서는 오히려 소박한 표현이 신선한 맛을 줄 수 있다. 세월이 가도 시의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는 기교일 듯하지만, 오히려 마음의 순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좀 덜 들어갔다는 생각이 든다.★★☆☆☆[4337. 11. 26.]   916□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마종기, 문학과지성시인선 2, 문학과지성사, 1980   외국생활과 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외로움이 생활 속에서 아주 잘 살아있다. 시가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이 정도면 잘 증명해주는 셈이다. 그런데 시집 전체의 시가 고르지를 못하고 울퉁불퉁하다. 표현이 잘 된 곳은 엉뚱한 방향으로 상상이 튀고, 외로움이 잘 살아있는 곳은 너무 밋밋하다. 감정과 상상력의 작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어느 쪽인가 분명한 태도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시임을 알 수 있다. 한자가 너무 많아서 어지럽다.★★☆☆☆[4337. 11. 26.]   917□여울목 비오리□김영태, 문학과지성시인선 18, 문학과지성사, 1981   특이함이 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이 시는 가장 훌륭한 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시집은 결코 칭찬 받기 어려운 시집이다. 체험의 특수성이 독자를 만날 때 독자가 접근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 아마도 시인 자신이 아주 특수한 세계에 익숙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잘 연결이 안 되는 그런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러난 이미지를 통해서 그 시가 쓰여질 당시의 어떤 정신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계기를 잡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계기로 가는 길을 시가 차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위시라고 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여러 예술 갈래를 뒤섞어놓는다고 해서 전위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것은 탓할 것이 없지만, 계기를 주지 않고 저쪽에서 이쪽을 들여다보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세계가 독특해지는 것은 세월이 간다고 해서 외줄타기로 하고 건너갈 사람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술가는 스파이더맨일 수 있지만, 독자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착잡한 시집이다.★☆☆☆☆[4337. 11. 26.]   918□뒤란이 시끌시끌해서□조달곤, 작가정신, 2004   말투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차분히 가라앉았다. 들끓던 욕망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에 헛된 욕망을 버린 뒤에 나타나는 풍경들이 아주 잘 정리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불필요한 말들이 없이 상황을 전하기 딱 알맞은 것들만 동원되어서 시가 아주 깔끔하고 산뜻하다. 시의 시간 배경이 거의가 봄인 것을 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시의 세계를 밀고 가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아주 안정된 세계이고 수준이다. 다만 발견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시에는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4337. 11. 26.]   919□배추흰나비를 보았습니다□이선관, 답게, 2002   솔직함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이런 시집에서 본다. 이미지 뒤로 숨어서 숨바꼭질하다가 결국 외로움 이외에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시들보다 몇 배 낫다. 다만 수필과 거의 구별이 안 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단점이다.★★☆☆☆[4337. 11. 26.]   920□절정을 복사하다□이화은, 문학수첩, 2004   시가 아주 차분하고 시상 전개도 무리 없이 잘 이루어졌다. 시를 오래 많이 써본 시인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 만큼 기법은 원숙하다. 그런데 제1부의 빼어난 시 몇 편과 나머지 시들의 수준이 많이 차이 난다. 겉으로는 아무런 단점이 없는 듯하지만 관찰이 너무 평범하고 그것을 평범하게 묘사해나감으로써 긴장이 풀어진 시가 많다. 무엇보다도 어쩌다 얻은 표현 때문에 억지로 할말을 꿰어 넣어서 만든 시가 많다. 시집을 서둘러 냈다는 얘기다. 인생의 깊이가 갑자기 깊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런 시의 경우에는 좀 더 진득하게 기다려서 저절로 흘러 넘칠 때 쓰고, 엮는 것이 좋다. 한자는 넘쳐서는 안 되는 독이다.★★☆☆☆[4337. 11. 28.]    
165    시집 1000권 읽기 91 댓글:  조회:1807  추천:0  2015-02-11
    901□목숨을 걸고□이광웅, 창비시선 73, 창작과비평사, 1989   거칠지만 정신의 뼈대 같은 것이 느껴지는 시집이다. 이것은 형상화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형상화 이전에 거기에 들어있는 어떤 믿음일 것이다. 그런 것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서 선언 비슷한 수준까지 갔지만, 그러한 판단들이 일정한 체험의 전제 위에 서있기 때문에 시가 허황하거나 들떠있지를 않다. 다만 이런 것들을 될수록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상상력의 차원인데, 그것까지 요구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 될 것인가? 를 남겨둔 것은 무슨 의미인가?★★☆☆☆[4337. 11. 17.]   902□뿌리에게□나희덕, 창비시선 95, 창작과비평사, 1991   이렇게 건강하고 따스하던 세계가 어떻게 그런 고독 들추기로 바뀌었는지 놀랄 일이다. 이 시집에는 이웃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있고, 그들의 아픔을 감싸는 따스한 마음이 있고, 희망을 놓지 않는 굳센 의지가 서려있다. 그런데 이제는 제 안의 슬픔으로 퇴영하여 곶감 빼먹기를 반복하면서 그 단맛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스스로 날개를 떼어버리고 상처 난 누에가 되려고 하는 꼴이다. 무거운 생각에 붙잡혀있기 때문일까? 시들이 아주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직된 상태다. 이것을 벗어나면서 정말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곳이 슬픔 각색, 절망 주연의 유치찬란한 세계는 아니다. 오히려 이 세계로 돌아와야 할 것만 같다. 한자는 굴레다.★★☆☆☆[4337. 11. 18.]   903□철조망 조국□이동순, 창비시선 97, 창작과비평사, 1991   너무 큰 주제에 짓눌려서 상상력이 움츠러든 형국이다. 조금 풀릴 듯하다가도 결국엔 그 무거운 압력 때문에 움츠러들고 만다. 안쓰러운 일이다. 일이 안 풀릴수록 안 풀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일은 풀리는 법이다. 특히 시를 쓰는 일은 더더욱 그러하다. 마음이 무거우면 상상력은 움츠러드는 법이다. 움츠러든 그 상상력이 시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런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먼저 등을 돌린다. 시를 안 쓰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7. 11. 18.]   904□겨울 기도□정대구, 문학과지성시인선 14, 문학과지성사, 1981   시에서 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상당한 성취를 보여준다. 꼭 할 말만을 선택해서 압축하는 것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왕왕 할말을 추릴 때 그것이 설명으로 전락하지나 않나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곳곳에서 그런 분계점에 시들이 닿아있다. 무엇보다도 시집 전체에서 어떤 정서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 전면으로 드러나지를 않아서 시인이 그때그때 상황에 처할 때마다 시를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런 시들일 한 자리에 모일 때는 정서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힘이 필요하다. 모든 역량이 드러나면서도 그런 점이 아쉬운 시집이다. 한자 역시 아쉽다.★★☆☆☆[4337. 11. 19.]   905□금빛 은빛□홍희표, 창비시선 64, 창작과비평사, 1987   ‘씻김굿’이라는 부제가 시마다 달려있다. 결국 노래의 가락에다가 할 말을 실은 것이다. 어떤 일정한 양식에 기대어 자신의 할말을 하는 것은 아주 편하고 유리한 방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어떤 형식에 기댄다고 하더라도 시는 어차피 시다. 시가 지닌 긴장과 상상력을 드러내지 못하면 어떤 양식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거대 이데올로기를 시에 끌어들이는 데는 노래가 편하지만, 노래라는 그 타성에 안주해버리면 시가 되지 못하고 넋두리가 된다. 이 시집은 그런 위험이 너무 짙다.★☆☆☆☆[4337. 11. 19.]   906□지금 그리운 사람은□이동순, 창비시선 57, 창작과비평사, 1986   풍경 뒤로 시인이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이런 시에서는 시인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시는 거추장스런 모든 장식을 떼버리고 말을 직접 건네는 방식인데, 그것을 안 하려니 고도의 작전이 필요하다. 그 작전은 묘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묘사는 선택과 상징의 문제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냉정해져야 하고, 할 말을 최대한 숨겨서 선택된 이미지가 스스로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너무 성급하게 할 말을 겉으로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멀찌감치 물러난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밀하고 깔끔한 묘사가 이렇게 해서 효과를 반감시켰다. 1부의 농구에 대한 시는 그 의도나 방법에서 분명하지만, 그 분명함이 시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시의 감흥과 사물에 대한 인식의 선명도는 다른 것이다. 한자는 선명도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4337. 11. 20.]   907□네 눈동자□고은, 창비시선 66, 창작과비평사, 1988   이 시집은 반발력으로 쓰여진 시이다. 반발력은 저항의 힘이다. 어떤 힘을 전제로 한다. 그 힘은 기존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찍어누르는 대로, 그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모든 현상을 파괴하고 비꼬는 방향으로 시심이 작용한다. 어떤 시대에는 이런 심리와 경향이 그대로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고은의 시는 그런 시대를 대변해왔고, 잘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 성공이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에서는 일관성이 없는 법이다. 그 일관성은 그 이전의 억압된 세계 때문에라도 이루기 어렵다. 일관성을 이루는 순간 세계는 그 일관성을 바탕으로 억압의 기제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이유를 묻지 않고서 반발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런 영역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다. 그러니 어떤 잣대를 가지고 측정하기는 어렵다.★★☆☆☆[4337. 11. 20.]   908□사월에서 오월로□하종오, 창비시선 43, 창작과비평사, 1984   민중시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라면 나오지 말았어야 할 시집이다. 이런 시들이 진정한 시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은 물론 독자들이 시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다. 비유하자면 동일한 소음을 계속 반복하는 자동차 엔진소리 같아서 운전자에게 졸음을 유발한다. 막연한 관념성, 체험이 빠진 상태의 대리 발언, 무엇을 노래하려는 것인지 불투명한 애매모호함, 어느 것 하나 시로서는 건질 것이 없다. 실패한 사랑시들이 좋은 사랑시들을 외면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시라고 써서 발표하면 독자들만 떨어져나갈 뿐이다. 시라고 해서 시집을 사보는 독자들의 심리는 어렵고 안 어렵고를 떠나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없어도 새로운 맛이 나는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그런 기대감을 짓밟는 묘한 힘을 발휘하는 시들이다. 그러니 시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이왕에 나왔으니 어떻게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될 시집이다. 한자까지 섞여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4337. 11. 21.]   909□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이가림, 창비시선 27, 창작과비평사, 1981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문장력도 좋고, 호흡도 제법 길어서 별로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딱 한 가지가 빠졌다. 주제가 너무 뒤로 후퇴했다는 점이다. 드러내야 할 부분에서 과감하게 드러내지를 못하고 자꾸 이미지 뒤로 숨는 바람에 시 전체가 맥이 풀린 그런 경우이다. 무엇보다도 전하고자 하는 분노의 감정이 시의 밑바닥에 깔려있어서 좀처럼 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단점이다. 터져야 할 곳에서 터지지 않고 그대로 끝나는 그런 느낌이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시집이다. 한자는 더욱 아쉬운 문제이다.★★☆☆☆[4337. 11. 21.]   910□북 치는 앉은뱅이□양성우, 창비시선 23, 창작과비평사, 1980   운율이 아주 잘 살아있다. 운율이 잘 살아있다는 것은 말을 통해서 시를 쓴다는 얘기다. 그것은 무언가 전할 말이 있는데, 특별한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을 경우 가장 흔하게 택할 수 있지만, 또 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치열한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운율이 잘 작동하고 있다. 모호한 듯한 점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특정한 사실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서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거다 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시대 전체의 분위기와 개인의 내면 풍경이 잘 맞물려서 나름대로 호소력을 얻은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스스로 그런 감정의 복판에 서있지 않으면 안 된다. 청산되지 않은 한자는 끝내 흠이 될 것이다.★★★☆☆[4337. 11. 21.]    
164    시집 1000권 읽기 90 댓글:  조회:2157  추천:0  2015-02-11
  891□마음의 수수밭□천양희, 창비시선 122, 창작과비평사, 1994   묘사도 얌전하고 꼼꼼한데, 그런 묘사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엷다. 이미지가 이 정도 전개되었으면 할 말이 나와야 하는데, 정작 그 할 말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 그래서 시가 밋밋하다. 애써 찾아낸 발견과 이미지들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상태로 웅크려있다. 이런 이미지들에 활달한 생기를 불어넣고 힘차게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기에 정말 중요한 위치에 와있다. 한자는 버려야 할 기교이다.★★☆☆☆[4337. 11. 13.]   892□넋이야 넋이로다□하종오, 창비시선 58, 창작과비평사, 1986   정말 할말없게 하는 시집이다. 제목에 굿시집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굿시로 봐야 할 것 같고, 넓게 잡자면 극시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 같다. 행사에 동원된 것이니, 그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시와 행동이 붙어있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4337. 11. 13.]   893□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정호승, 창비시선 161, 창작과비평사, 1997   전환기에 와 있는가? 표현은 간절한데, 내용은 너무 허하다. 시가 짧아지면 잠언의 형태로 나아가는데, 여기서는 그 흉내만 내고 있다. 그러니 좀 더 깊어져야만 시의 상징이 깊은 울림을 갖게 될 것이다. 분노가 만든 사랑에서 분노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인데, 그렇다면 그냥 말 그대로 사랑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건너야 할 마음의 강이 있다. 그것을 건너면 부처가 될 것이다.★★☆☆☆[4337. 11. 13.]   894□가장 가벼운 짐□유용주, 창비시선 117, 창작과비평사, 1993   밋밋하다. 특별히 모난 것도 없고,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도 없다. 있다면 자신의 땀에 정직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밋밋한 것은 그러한 태도가 갖는 사상성 내지는 계급의식이 희미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것은 이 시집의 한계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기법이 보여주기의 수법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그런 기법으로 담기에는 거북한 감정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은 스스로 옥쇄를 차는 형국인데,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야 할 것이다. 감정이 격할 때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데, 너무 점잖은 방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시의 내용과는 달리 점잖은 시작법을 배웠다는 뜻이다. 계급의식을 강화하거나 상상력의 진폭을 넓힐 필요가 있는 시집이다.★★☆☆☆[4337. 11. 14.]   895□사진리 대설□고형렬, 창비시선 116, 창작과비평사, 1993   이게 시라면 세상의 어떤 글이든 행만 찢어놓으면 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시가 무엇을 노래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부터가 분명치를 않다. 묘사를 하고 말을 하면서도 전체의 묘사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없거나 있어도 별로 중요치 않은 시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주제가 없으니 말들이 뿌리 없는 부유물처럼 모호한 관념 위에서 둥둥 떠돌고 있다. 시 안에서 넋두리라도 이루어져야 판단을 하고 평가를 할 수 있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하여 처음부터 그런 판단이 어렵다. 무엇이 시이고, 어떻게 해야 시가 되는가 하는 것부터 새로 배워야 할 일이다. 그보다 서둘 일은 한자를 버리는 것이다.★☆☆☆☆[4337. 11. 14.]   896□아름다운 손□나해철, 창비시선 110, 창작과비평사, 1993   내용 없이 시를 쓸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집이다.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점도 없어 보이지만 볼수록 말들이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솜씨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본디 시가 다루지 못할 것은 없지만, 시가 다룰 수 있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다. 시가 될 것 같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시를 만들면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것이 시이다. 시가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오래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7. 11. 14.]   897□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나희덕, 창비시선 125, 창작과비평사, 1994   1부와 4부의 몇 편은 절창이다. 다 보여주지 않아도 다 보여준 것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시의 기능을 자주 잘 활용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런 눈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다. 감정의 절정에 올라있되, 그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냉정한 시선만이 잡아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재주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요, 스스로 그런 비극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다면 쓸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머지 많은 시들이 맥없이 늘어져있다. 그리고 절창이 노래한 감정들은 김고독 극본, 이절망 각색, 박허무 주연의 멜로물이어서 오래 머물러 있을 만한 것이 못되는데, 그 성취도를 보아서는 한 동안 이런 감정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 시인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시의 비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치하지 못한 한자 또한 비극이다.★★★☆☆[4337. 11. 16.]   898□독도□고은, 창비시선 126, 창작과비평사, 1995   논리의 비약과 장황한 시상 전개는 여전하다. 그런데 이미지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 좀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그것도 시각 이미지가 전면으로 솟았다. 이것은 생각이 냉정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많이 가라앉았지만, 곳곳에서 거친 목소리가 솟아난다. 아마도 시인의 특성이리라. 그러나 그 특성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듯도 한데, 자신감 때문일까? 아니면 중요한 것이 시의 뒤에 서린 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일까? 전해 개의치 않겠다는 투다. 사실은 말릴 일도 없을 것 같다. 너무 큰 걸음이 때로는 허방을 짚는 수도 있지만, 그 행보의 의기만큼은 가상하다. 시원한 걸음이 역시 시원하다. 그러나 시원함으로만 친다면 시는 어쩐지 불편하다. 이 불편을 해소할 생각도 없겠지만, 해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람’의 경우는 명작이다.★★★☆☆[4337. 11. 17.]   899□두 하늘 한 하늘□문익환, 창비시선 75, 창작과비평사, 1989   무엇보다도 시의 정서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을 노래해야 시가 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시인이다. 모든 언어를 어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배치하는 저력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다만, 감정이 아주 격한 절정의 위치에서 노래를 하기 때문에 그 감정의 바탕을 이해할 수 없거나 동의하기 어려운 자리와 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비칠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단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때가 있는 법이고, 곳이 있는 법이다. 그것까지 탓할 것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몫이기 때문이다.★☆☆☆☆[4337. 11. 17.]   900□어여쁜 꽃씨 하나□서홍관, 창비시선 80, 창작과비평사, 1989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이다. 목청을 높여야 하는데도 목청을 높이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목청을 일부러 낮추어 조용히 얘기할 줄 아는 것은 시를 아는 냉정함은 물론 인내력까지도 갖추었다는 증거이다. 흥분할 만한 내용을 아주 조용하고 냉정한 시각으로 묘사하여 끝내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에 동감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이야말로 정말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기본 요건이다. 격동의 시대인 1980년대에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러한 냉정한 눈길 속에서도 따뜻한 아랫목처럼 따스한 가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 따스함은 양심에 인정을 추가해야만 하는 것인데, 사람 알기를 고기 덩어리로 여기기 쉬운 의사라는 직업인에게서 이런 따스함이 느껴진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좀 아쉬운 것은 상상력이 너무 위축돼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사상과 주제가 중요하더라도 상상력이 활발하게 활개쳐야 시가 생동감 있게 살아날 수 있다. 그런 단점으로도 가릴 수 없는 맑은 정신과 양심이 살아있는, 읽기에 즐거운 시집이다.★★★☆☆[4337. 11. 17.]    
163    시집 1000권 읽기 89 댓글:  조회:1971  추천:0  2015-02-11
    881□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김용락, 창비시선 148, 창작과비평사, 1996   꼼꼼하고 세밀한 묘사가 시인의 성실성과 뛰어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방법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이렇게 묘사를 통하여 보여주기 수법으로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격렬한 것이다. 이럴 때는 장시로 보여주어야 하거나 아니면 육성으로 직접 육탄전을 벌이는 것이 더 나은 법이다. 이런 보여주기는 자칫하면 남들도 다 아는 것을 다시 보여주는 지루함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시집은 정확히 그 지점에 서있다. 한자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잔재 같다.★★☆☆☆[4337. 11. 10.]   882□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신경림, 창비시선 172, 창작과비평사, 1998   시에서 말을 아끼면 묘사가 되고, 묘사가 깊어지면 상징이 된다. 이 시집은 정확히 그 지점을 지나고 있다. 상징주의의 비틀린 상징과는 달리 이 묘사를 통해서 진입한 상징은 아주 선명한 이미지와 함께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주 깔끔하고, 그 깔끔함의 이면에는 시인의 냉철하고 냉정한 시각이 깔려있다. 주로 삶을 회고하는 방식의 묘사여서 달관과 통찰의 깊이도 느껴진다. 다만 추억에 의존할 때 생기는 정신의 둔화는 피할 길이 없다. 한자 역시 그런 둔함의 일종이다.★★★☆☆[4337. 11. 10.]   883□그 여자네 집□김용택, 창비시선 173, 창작과비평사, 1998   절반의 성공이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은 실패라는 뜻이다. 짧은 시들은 아주 좋은데, 긴 시들은 형편없다. 가장 큰 문제는 시에서 주제가 걱정스러울 만큼 엷어졌다는 점이다. 그 점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사랑타령인데, 이 사랑타령이라는 것이 시집 팔아먹기에는 좋지만, 자연 속에서 삶의 통찰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내면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되면 도사가 될 테고, 현실은 증발할 것이다. 이건 염려할 만한 부분이다. 시 몇 편이 아직까지 한 낱의 희망처럼 붙잡고 있으니 그것을 믿을 일이다.   시가 구체성을 결여하면 감동의 폭은 넓어지지만 깊이는 얕아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사랑시가 갖는 맹점이 이것이다. 어떻게 둘러대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연결되지만, 그럴수록 감동은 멀어진다.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시 역시 어떤 분명한 체험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 체험이 시에 나타날 필요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시의 밑바닥에 그 체험이 깔려있어야만 감동이 온다. 시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체험이 분명하지 않기에 시는 관념화한다. 이 점 특히 다른 부분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경계할 일이다.★★☆☆☆[4337. 11. 10.]   884□돌아보면 그가 있다□이원규, 창비시선 166, 창작과비평사, 1997   시가 참 단단하다. 논리의 비약도 재미있다. 그런데 너무 냉정하다. 이것은 내용을 너무 감추고 압축하려는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냉정함이 어느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냉소주의의 냄새가 너무 짙다. 그러면서 뜨거운 혁명을 꿈꾸고 있다. 그러니 말은 뜨겁되 시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것이다. 언어를 단단하게 잘 다루는 능력과는 별개로 주제에 따라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파고들어야 할 것 같다.★★☆☆☆[4337. 11. 10.]   885□가시연꽃□이동순, 창비시선 192, 창작과비평사, 1999   두 가지 특징이 선명하다. 주제가 생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과 절제된 감각의 묘사가 그것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묘사는 언어감각의 뛰어남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은 웬만한 공력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묘사를 하다보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생긴다. 감정을 드러낼 경우 애써 그린 묘사가 그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불필요한 발언을 해서 전체의 분위기와 긴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띈다. 절제된 언어감각이 뛰어난 시에서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수필 투의 문장이 많이 섞여있는 것이 눈에 띈다. 게다가 한자까지 섞여서 큰 흠집을 이루고 있다.★★☆☆☆[4337. 11. 12.]   886□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김영무, 창비시선 178, 창작과비평사, 1998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나름대로 빼어나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런데도 한 가지가 빠진 듯한 것은, 시로서는 내용이 함량 미달인 것을 자꾸 시로 만들려는 태도 때문이다. 그 태도가 시의 곳곳에 군더더기를 남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남기지 않는, 살을 깎아내는 결단이 더 필요한 경우이다. 시인이라는 이름과 시집이라는 것으로 만족하자면 이대로 두어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더 깊어질 필요가 있다. 한자는 깊어지지 않는 한 조건이다.★★☆☆☆[4337. 11. 12.]   887□집은 아직 따스하다□이상국, 창비시선 174, 창작과비평사, 1998   할말을 묘사로 대체하고, 그것을 적당한 호흡에 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넘치도록 유도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사물 너머의 어떤 중요한 세계를 놓치지 않고서 독자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힘도 좋다. 특히 제1부와 제4부의 작품들이 그렇다. 그런데 시집 중간에서 많은 작품들이 긴장이 해이해졌다. 아쉬운 일이다. 아마도 현실의 문제에 상상력이 짓눌린 것 같다. 현실의 문제가 절박할수록 상상력은 가벼운 행보를 해야만 시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 부분만 보충한다면 정말 대단한 시인이 될 것 같다. 한자는 덫이다.★★★☆☆[4337. 11. 13.]   888□긴 사랑□나해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171, 문학과지성사, 1995   시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이 시집은 잊고 있다. 옛날 같으면 이 정도의 퉁김만으로도 독자는 감동했겠지만, 지금의 독자는 그렇지 못하다. 하도 조미료를 많이 먹은 탓에 입맛마저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시가 꼭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조미료를 칠 필요는 없겠지만, 옛날의 맛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면, 조미료를 쳐대는 모습을 보고서 무언가 그것을 넘어설 어떤 방안을 찾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시가 지나치게 짧다. 짧아져야 해서 짧다면 상관없는 일이지만, 더 길어져야 할 듯한데도 짧아졌다면 그건 문제이다. 조금은 더 길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들이다.★★☆☆☆[4337. 11. 13.]   889□푸른빛과 싸우다□송재학, 문학과지성시인선 142, 문학과지성사, 1994   특수한 내면풍경을 드러내는 것이 시의 고유 영역이라는 고집과, 타고난 무관심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무중력 공간의 시를 낳고 있다. 마치 시장 속에 박힌 점집 같다. 절집 같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고고한 척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손님이 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투다. 이래 가지고야 장사가 안 되지는 않겠지만,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 그런 부분도 시의 한 영역이기는 하나, 욕심이 너무 클 때 나오는 실수이기도 하다. 좀 더 문을 열 필요가 있는 시집이다. 문패를 한자로 달아서야 구세대 밖에 또 누가 드나들겠나?★★☆☆☆[4337. 11. 13.]   890□나의 우파니샤드, 서울□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140, 문학과지성사, 1994   너무 수다스럽다. 그 수다스러움이 일종의 전략일 수는 있겠지만,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사이가 너무 느슨해져서 긴장마저 떨어뜨린다면 그건 낯설게 하기도 아니고 상상의 과잉도 아니니 다른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가 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발견한 또 다른 세계를 장황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할 말을 대신하는 것 역시 지루함의 한 원인이 된다. 그러니, 하는 말에 견주어 그 말로 전해오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면 듣는 쪽에서는 잔소리로 들리는 법이고, 잔소리 앞에서는 누구나 귀를 닫고 딴 짓을 하는 법이다. 시가 잔소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비장의 카드가 필요하다. 상상력이든 언어이든 좀 절제된 어떤 몸짓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 이왕 경전을 번역하려면 한자보다는 그냥 한글이 낫지 않겠는가?★★☆☆☆[4337. 11. 13.]    
162    시집 1000권 읽기 88 댓글:  조회:1863  추천:0  2015-02-11
871□나는 별 아저씨□정현종, 문학과지성시인선 3, 문학과지성사, 1978   염세주의자가 유독 예술이나 표현에 대해서 대단한 열정을 보이는 것은, 시를 보면 곧 죽을 것 같이 외로운 사람들이 적당한 지위에 넙죽넙죽 올라앉아서 잘 사는 것과 같은 모순이 아닐런가? 깨달음을 얻으려면 좀 더 분명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깨달아 봤자라는 관념을 전제해놓고서 깨달으려 한다면 그것을 인간답다고 봐야 할지 위선이라고 봐야할지 언뜻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런 점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마저 예술이라는 이름의 뒤에 흉기처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염세주의로 살든 회의주의로 살든 독자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시 안에 내장된 모순은 걷어내는 것이 예술에 뜻밖의 집착을 보이는 염세주의의 성공을 보장할 최소한의 예비가 아닐런가? 한자는 염세의 대상이 아닌가?★★☆☆☆[4337. 11. 6.]   872□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정현종, 문학과지성시인선 38, 문학과지성사, 1984   자신의 생각을 시의 뒤로 숨기는 법을 많이 체득했다.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과 그 생각이 요구하는 표현의 괴리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 많다. 그것을 생각의 긴장으로 풀어야겠지만, 생각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방법이 바뀔 때 그 전의 자신감을 대체할 그 어떤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시간도 깨달음도 더 필요하다. 시가 특수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믿음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런 절름발이 행보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시는 생각의 귀퉁이에 쓰레기통처럼 몰려있다. 한자는 버려지지 않은 옴 자국이다.★★☆☆☆[4337. 11. 6.]   873□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최하림, 문학과지성시인선 218, 문학과지성사, 1998   말을 묘사로 대신하는 능력이 일정한 성과를 보인다. 그런데 묘사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대신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묘사된 이미지들이 그 감정을 싣고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미지들이 전해야 할 그 감정들이 이미지들의 확실한 묘사만큼 따라주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미지들이 단순한 풍경 묘사와 감정 전달의 중간에 애매한 태도로 놓여있다. 결국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좀 더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자는 걷어야 할 이미지이다.★★☆☆☆[4337. 11. 6.]   874□자명한 산책□황인숙, 문학과지성시인선 281, 문학과지성사, 2003   고독의 식탁에서 쓸쓸함의 나이프로 허무의 빵조각을 씹어먹는 풍경. 이런 식이면 시가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고독과 사랑 둘로 압축하면 될 일이다. 옹달샘 앞에서 바닥에 겨우 차는 물을 자꾸 퍼낸들 거기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 바닥만 드러내는 샘 앞에서 투정할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기다리면 거기 물이 고이고 소금쟁이가 뜨고 이끼가 끼고, 또 그러다 보면 어느 샌가는 물고기도 살기 마련이다. 그렇게 퍼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외로움이라면 이제 그 위에 고여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꼭 필요한 말을 필요한 상황에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은 살 만하다. 그렇기에 더욱 아쉬운 일이다. 한자 역시 아쉽다.★★★☆☆[4337. 11. 7.]   875□영혼의 북쪽□박용하, 문학과지성시인선 236, 문학과지성사, 1999   과잉의 시집이다. 하고픈 말도 많고 동원된 말도 많고 담아야 할 내용도 많아서 탈이다. 많은 것을 절약하지 못하니 번거롭고 지루하다. 같은 말과 이미지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것이 어떤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시는 돌이킬 수 없는 약점을 지닌 셈이다. 무엇보다도 말들이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풀려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모호해진다. 그리고 말들만 남지 그 말들을 넘어서 뚫고 들어가는 어떤 것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성급하게 쓸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7. 11. 7.]   876□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한승원, 문학과지성시인선 227, 문학과지성사, 1999   시인들한테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면이 있다. 상상력이 거침없이 자신이 겨눈 바를 향해서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냉정하고 다양한 묘사가 뒤따른다. 그러나 산문이 갖는 둔중한 행보를 걷어내지 못해서 시가 불필요하게 무거운 주제에 예속된 시들이 너무 많다. 이 무거움을 걷어내는 것이야말로 시의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소화하는 특질을 잘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4337. 11. 7.]   877□사이□이시영, 창비시선 142, 창작과비평사, 1996   짧은 묘사는 암시와 환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암시와 환기는 짧은 전체를 모아놓았을 때 전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분명하게 담고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짧은 묘사의 뒷면에는 불가불 사상이나 철학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전체를 다 조합한 뒤에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짧은 묘사는 말장난이나 덜 깨달은 땡중의 넋두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짧은 시의 완성도를 묻기 전에 그 짧은 묘사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스스로 분명한가 하는 것을 물을 수밖에 없다. 시대의 어둠을 죽음이라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애매한 관념으로 은유해가지고는 철학이나 사상이 되지를 못한다. 한자도 청산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대의 어둠과 죽음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4337. 11. 8.]   878□참 맑은 물살□곽재구, 창비시선 137, 창작과비평사, 1995   수필로 써야 할 것을 시로 썼다. 시 쓰는 재주는 나무랄 것이 없겠다. 그러나 방향이 문제이다.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너와 내가 구별되지 않는 세계는 민요를 닮는다. 민요는 노래이다. 민요에서는 개인이 사라진다. 개인이 사라지면 관념의 덩어리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위험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것은 시인의 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그것이 변하지 말았어야 할 그 무엇이어야 하건만 시절이 하 수상하니 안타까울 뿐이로고!★★☆☆☆[4337. 11. 8.]   879□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양성우, 창비시선 159, 창작과비평사, 1997   이야기가 시의 전면으로 드러난 것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욱 심하다. 그런데 내용은 더 물렁해졌다. 이것은 외면의 적이 시간이라는 내면의 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전력의 약화를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인지 알 수 없다. 연애시의 어조를 많이 띠고 있어서 다소 혼돈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다. 그것이 시의 세계가 깊어지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은 실험 중인 것 같다. 다만 이대로 남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가락은 여전히 잘 살아있다.★★☆☆☆[4337. 11. 9.]   880□귀로 웃는 집□임영조, 창비시선 157, 창작과비평사, 1997   비유는 방법상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것은 시에서 오랜 세월 동안 쓰여오면서 나름대로 시의 어법을 형성한 가장 묵은 화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낡아 보이기가 쉽다. 게다가 대상이 선정되지 않으면 쓸 수가 없고, 자신의 마음속에 든 것을 정확하게 건네줄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만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단점은 어떤 대상을 선택했을 때 그 대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마치 작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거북하다. 이 시집에서도 그런 거북한 모습이 아주 많이 눈에 띈다. 더욱이 뒤로 가면서 심해진다. 단순 비유는 깔끔하게 보여주어야지 너무 많은 말을 하면 안 된다. 게다가 한자까지 뒤섞여서 뒤숭숭하다.★★☆☆☆[4337. 11. 10.]    
161    시집 1000권 읽기 87 댓글:  조회:2101  추천:0  2015-02-11
    861□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박찬일, 민음의 시 113, 민음사, 2002   자신만만한 태도가 시 전체를 압도한다. 자신만만함이 시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때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시에서 자신만만함이란 판단의 완성이기 때문에 완성된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든다. 장광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또 설명을 피하려고 하면 말장난을 하게 된다. 그리고 풍자의 태도로 이어진다. 그러나 풍자는 결국 어떤 벽에 부딪힐 때 취하는 것이고, 이것은 자신만만함과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 뚫어야 할 것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분명치 않지만, 태도만은 말할 수 있다. 그 태도란 겸손이다.★★☆☆☆[4337. 10. 25.]   862□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문정희, 민음의 시 119, 민음사, 2004   정말 시를 잘 쓰는 시인이다.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아서 일상의 평이한 언어로 쓰는데도 시들이 빛을 발한다. 생활 속에서 빛을 찾아낼 줄 아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생각이 비약과 상상을 적절히 건너뛰면서 이미지를 찾아내고 그 이미지들을 잘 연결시켜서 무리 없이 반전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런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한 번 잡힌 소재를 놓치지 않고 많은 것을 이야기할 줄 아는 시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에 꿈이 없다는 점이다. 너무 비극 쪽으로 경사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꿈을 버린 시는 시의 전부를 버리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4337. 10. 25.]   863□질 나쁜 연애□문혜진, 민음의 시 118, 민음사, 2004   젊은이의 패기가 물씬 느껴지는 시다. 펄떡펄떡 살아있는 야성도 그렇고, 남의 눈치 보지 않는 태도도 그렇다. 그러나 감정이 너무 원론에 가깝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형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용이든 형식이든 좀 더 나갔으면 좋겠는데, 고만고만하다. 의도한 것은 아마도 의식의 실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얌전하고, 단순한 서정시라고 보기에는 너무 혼란스럽다.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4337. 10. 26.]   864□나는 걷는다 물먹은 대지 위를□원재길, 민음의 시 117, 민음사, 2004   겉보기에 아무런 단점을 보이지 않는 시들이 밋밋하고 지루한 것은 어떤 정해진 관념을 풀려고 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관념이란 삶에 대한 결론을 말한다. 이미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진 상태에서 말을 하려 들기 때문에 신선한 표현도 없고 뚜렷이 할 말도 없는 것이다. 이 시집은 겉보기에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치열함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것이 인생일 뿐인가? 인생이 사라지면 무만 남는가? 그렇다면 시에서 할 말은 없다. 이런 자가당착이 애써 이룬 언어의 공력을 허무한 것으로 만든다. 어떻게 보면 가장 쉽게 시를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말 많은 시인들이 그렇게 시를 쓰고 있으니, 그것이 이 시인만의 탓은 아닐 것이다.★★☆☆☆[4337. 10. 26.]   865□오동나무 안에 잠들다□길상호, 제3의 시 11, 문학세계사, 2004   나무를 잘 그리려다 숲을 놓친 경우이다. 뒷부분에 괜찮은 작품이 몇 편 보이는데, 나머지는 세부묘사에 너무 공이 들어가서 전체의 그림을 잡아내는 데 방해가 되는 그런 경우이다. 이것은 부분부분의 표현에 집착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인데, 표현은 부분의 참신함도 좋지만, 시선이 부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체의 틀과 색깔까지 눈이 넓어져야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그 점만 잘 보충하면 큰 시인이 될 재목이다.★★☆☆☆[4337. 10. 28.]   866□기억들□송재학, 세계사시인선 107, 세계사, 2001   앞서 나온 시집 두 권을 읽을 때는 형편없는 시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시집은 아주 잘 썼다. 앞서 나온 시집에서는 형식을 통하여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고 한 의도된 욕심이 불거져서 내용을 소홀히 했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내면의 풍경에서 나오는 울림 때문에 욕심을 버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상상력이나 언어의 밀도도 단단해서 반짝반짝 빛을 낸다. 이런 긴장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가족사와 내면에 너무 집착하는 까닭에 시가 쓸데없이 화려하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이 화려함은 자칫하면 허영끼로 발전하기 쉬운 것이다. 한자 역시 그렇다.★★★☆☆[4337. 10. 29.]   867□오래된 식탁□송복순, 동학사, 2004   시간과 싸운 성실성이 보이는 시집이다. 우선 허황한 꿈들이 없어서 좋다. 시에서 소박한 느낌이 오는 것은 여간한 장점이 아니다. 그러나 내용이든 표현이든 한 꺼풀 더 벗겨야 할 시집이다. 옛날 같으면 괜찮을 듯한 표현들이 많지만, 입맛이 까다로워진 요즘의 독자들의 입맛에는 어쩐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자잘한 감정만을 나열해서는 안 된다. 그런 감정들이 인간의 심성에 도사린 어떤 분명한 감정을 향해 일제히 방향성을 띠고 작동해야 한다. 부분의 묘사가 성실하고 꼼꼼해도 그것이 전체의 어떤 그림을 향해 움직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4337. 10. 29.]   868□크낙새의 비밀□허윤정, 영하, 2001   세월이 흐르면서 분화되는 것은 학문이나 사회의 구조만이 아니라 시도 역시 그러하다. 표현에서도 내용에서도 자꾸 분화하면서 다양한 세계를 드러내고 정서화한다. 시가 짧고 영원한 감정을 노래하는 데 강한 특성을 보이는 갈래라고 하더라도 이런 분화를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그런 특성을 간직하는 것과 방법과 발상에서 이미 묵은 것으로 결정된 어떤 곳에 머물러있는 것하고는 다르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시는 자신이 쓰고 읽고 감상하는 자기만의 폐쇄된 영역 안에 머무르고 만다. 그 안에 갇혀있는 시다. 한자 역시 그런 폐쇄를 강화시킨다.★☆☆☆☆[4337. 10. 30.]   869□그의 집은 둥글다□이태수, 문학과지성시인선 162, 문학과지성사, 1995   방법도 내용도 혼돈이다. 제 자리에 머물러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못 찾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고, 방향성을 상실한 그 감각이 시의 새로운 국면을 열지 못해서 표현 역시 매번 새롭지 못한 그렇고 그런 것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방 이미지 하나에 매달리고 있는데, 이 때의 방은 자신만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만의 것을 가두어 놓으면 안 된다. 폐쇄된 공간이란 개인의 의미만 담긴다. 그래서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음이 세상과 교통하면서 그 과정의 내용과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재주 때문이 아니라 방향 때문에 시가 안 풀리는 경우이다.★★☆☆☆[4337. 11. 5.]   870□대담한 정신□양진건, 문학과지성시인선 165, 문학과지성사, 1995   패기는 좋은데 방향이 틀렸다. 어렵게 얘기해서 상황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시라는 생각이야말로 구태의연한 것이다. 그 왜곡된 생각이 시를 낯설게 만들지만, 그 낯섦은 이미지가 뭉쳐서 풀리지 않는 옥쇄로 작용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미지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야 시는 시원해지는데, 그게 안 되고 안으로 얽혀들고 있어서 이미지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를 쓰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들이 어디에 발을 대고 있어야 할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연출되는 혼란이다. 따라서 주제를 좀 더 분명하게 확정해야 하고, 거기에 꼭 필요한 이미지가 아니면 없애주는 것이 시의 혼란을 줄이는 일이다. 그리고 비유가 너무 많이 나온다. 비유는 뜻을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특히 직유는 너무 자주 사용하면 오히려 이미지의 흐름만 방해한다. 게다가 그 비유가 신선하지도 못한 것이라면 더더욱 문제이다. 한자는 낡은 방식이다.★★☆☆☆[4337. 11. 6.]    
160    시집 1000권 읽기 86 댓글:  조회:2334  추천:0  2015-02-11
851□오라, 거짓 사랑아□문정희, 민음의 시 102, 민음사, 2001   시집 한 권을 처음부터 한 호흡으로 쓰기도 어려울뿐더러, 한 호흡으로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집은 그런 시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처럼 읽힌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시집이다. 중요한 말을 간추리고 거기에 맞는 상황을 설정하여 읽는 사람이 아무런 부담 없이 받아들이도록 할 줄 아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니 방법이라기보다는 태도라는 것이 더 옳겠다. 여자들이 흔히 갖는 여성성의 함정이나 그 반발로 인한 과격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현실을 맨눈으로 정직하게 볼 줄 아는 아주 힘있는 세계를 갖추었다.   이 시인의 저력은 제3부에서도 드러난다. 외국에 나가서 쓴 시들을 모은 듯한데, 외국의 풍물에 빠져들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것은 여간한 능력 가지고는 되는 일이 아니다. 다만 너무 내면 성찰 쪽으로 방향이 고정된 데다가, 본래부터 있어서 그렇게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모순을 많이 보는 것이 흠인데, 이것은 지식으로 뭉쳐진 세계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 모순 너머에 서린 어떤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만 가미된다면 정말 훌륭한 시를 쓸 시인이다. 시집 제목은 그리 적절한 것 같지 않다.★★★★☆[4337. 10. 13.]   852□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허만하, 솔, 2000   오랜만에 보는 유미주의의 시다. 증발한 현실이 어렵다. 시인이 시를 절대의 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논리상 이상한 점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그런 전제는 대부분 현실을 삭제하고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예술 전반에 대한 상당한 감식안이 없으면 감상하기 힘든 시가 많다. 특히 그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시가 많다. 무지한 독자를 기죽일 일이지만, 그것을 기죽는 독자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자의 여유가 유미주의의 폐해이니, 최소한 경계는 해야 할 일이다. 사물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성실한 태도가 시 곳곳에서 확인되는 시집이다. 그런 성실성이 체험의 특수성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작용하면 시에는 씁쓸한 맛이 남는다. 아마도 김수영이 제일 먼저 그 쓴맛을 느낄 것이다. 한자 역시 씁쓸한 맛을 낸다.★★★☆☆[4337. 10. 13.]   853□아담, 다른 얼굴□조원규, 민음의 시 106, 민음사, 2001   이런 압축에 이르기까지 들였을 공과 배움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압축을 하면 내부 공간이 졸아들어 메아리가 생기지를 않는다. 울림이 없는 시는 갑갑하다. 결론이 먼저 추려져 나오기 때문이다. 행동을 발라내고 사유만 남기면 철학이 되는데, 관념으로 기우뚱거리는 모습은 시로서는 위험한 일이다. 말랑말랑한 살의 맛에 익숙한 사람에게 뼈를 우린 곰국의 뼈는 어쩐지 아쉬운 메뉴이다.★★☆☆☆[4337. 10. 14.]   854□공놀이하는 달마□최동호, 민음의 시 108, 민음사, 2002   제목 때문에 엉망이 된 시집이다. 제목도 그렇지만 모든 시마다 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이게 문제다. 동일한 부제를 연달아 달아두면 독자는 그것을 전제로 시를 읽는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굳이 그 연장선에서 읽어야 할 필요가 거의 없는 시들이다. 그냥 그대로 두어도 한 그림이 되는 그런 괜찮은 시라는 말이다. 그런데 불필요한 부제가 이미 모든 살아있는 이미지들을 사구가 되어버린 선불교의 죽은 비유 속으로 쑤셔 넣고 있는 형국이다. 화두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언어로 나타나면 사구가 된다. 활구가 되어도 부처가 될까 말까인데, 사구가 되어서는 중생은커녕 제 한 몸 구제도 못하는 것이다. 좋은 시들이 많은데도 부분부분에서 언어를 마감하는 데 미숙한 곳이 많이 눈에 띈다. 단 한 글자라도 한자는 혹이다.★★☆☆☆[4337. 10. 15.]   855□장편 서정시 백두산□최문진, 4293   아주 특이하고 희귀한 시집이다. 서문을 보면 자신의 회갑을 맞이해서 기념으로 낸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출판사도 적혀있지 않다. 단기로 4293년이면 서기로는 1960년이다. 제목대로 백두산을 다녀오면서 쓴 기행시이다. 시라고는 하지만 운문으로 쓴 수필이라고 봐야 할 정도이다. 특정지역을 지나면서 마주치는 장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쓴 것이다. 3행을 한 연으로 해서 끝까지 같은 방식으로 썼다.   내용은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 분위기가 난다. 민족주의의 관점으로 자연을 보고 거기에다가 1960년대의 냉전논리까지 가미한 형태이다. 일제시대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정치에 놀아난 것처럼 이 시대의 민족주의가 냉전의 논리에 놀아날 것인데, 그런 위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작은 단락의 제목을 보면 이 저자가 돌아다닌 곳을 알 수 있다. 단표자, 백두영봉, 천지, 십장생, 잣나무, 백웅, 정계비, 송화강, 발해, 인공위성. 1960년대는 이북을 갈 수 없는 시대인데, 만주체험이 실린 것으로 보아 해방 전에 체험한 것을 그 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을 거쳐서 송화강을 따라 북만주의 독립운동 지역, 발해 지역을 답사하고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내려오면서 보고 듣고 생각난 것을 적은 시집이다.★☆☆☆☆[4337. 10. 15.]   856□인생□이승훈, 민음의 시 109, 민음사, 2002   연기와 연기를 끊으려는 불교의 관념을 나름대로 잘 해석해서 그것을 시로 썼다. 그러나 너무 거기에 집착을 하면 시든 인생이든 남는 것은 없다. 불교가 갖는 관념체계와 불교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다른 것이다. 앞의 것은 철학의 영역이지만, 뒤의 것은 삶의 문제이다. 시는 삶의 문제 쪽이 가깝다. 시가 철학의 영역을 다루지 못할 것은 없지만, 그때는 대개 관념성을 동반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인데, 시에서는 너무 관계와 언어의 문제에 집중된 것이 문제다. 집중력은 좋지만, 때로 특수한 집중은 독자의 관여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시인이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의도를 더욱 드러내야 할 것이다. 한자는 혹이다.★★☆☆☆[4337. 10. 16.]   857□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정철훈, 민음의 시 110, 민음사, 2002   우리 시에서 북방의 정서는 아주 드문 편인데, 이 시에는 그런 정서가 살아있어서 아주 희귀한 느낌을 준다. 시집이 모두 4부로 구성되었는데, 그 방향이 서로 달라서 산만한 느낌을 준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라도 그것이 어떤 통일을 향해 달리지 않으면 시집이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상상력의 걸음이 성실하되 둔탁하다. 좀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 가볍게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남기지 않는 것이다. 시 전체의 흐름은 무난하지만 중간중간에 꼭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은 것들이 끼어 있어서 부산스럽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한자 역시 부산스러움의 한 원인이다.★★☆☆☆[4337. 10. 16.]   858□내 잠 속의 모래산□이장욱, 민음의 시 111, 민음사, 2002   시에 대해서 배울 것은 다 배운 시인이다. 묘사력도 관찰을 표현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어느 하나 탈 잡을 것이 없다. 그런데 미늘이 좀 션찮은 탓일까? 시어들이 이미지의 아가미에 정확히 꿰이지를 않아서 자꾸 빠져 달아난다. 걸릴 듯하다가도 미끈덩 하고는 빠져버린다. 묘사가 정확한 듯한데, 그 묘사들이 환기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 흔한 것이거나 엉뚱한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그럴 듯하게 얽어줄 주제도 너무 낯익은 것으로 귀착하고 있어서 애써 이룬 표현들이 낡은 빛을 낸다. 기교가 승한 시다. 그러니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하는 것부터 정해야 하는데, 너무 분위기에 편승하다 보면 자신이 새로운 무언가를 노래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미 그런 세계는 신물나게 노래된 것들이다. 젊은 시인의 시답지 않게 패기가 없이 너무 늙었다. 한자 역시 늙음의 징표다.★★☆☆☆[4337. 10. 21.]   859□사랑은 야채 같은 것□성미정, 민음의 시 115, 민음사, 2003   시인이 시를 쓸 때 한 방법만을 고수하면 반드시 지루함이 시에 나타난다. 그것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극복하는 것은 주제를 다양화하면서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상징이 시의 주요 수법으로 등장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말을 자꾸 쓰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어려움은 곧 지루함으로 연결된다. 이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방법으로 이 시인은 특별한 소재와 상황설정을 택하고 있는데, 이것은 잠시 신선할지는 몰라도 근본을 해결하는 방법은 못 된다. 자칫하면 시에 대한 자신감이 경망스러움으로 전락하기 쉽다. 상징이 주된 수법이 된 시집에서 소재의 특수성에 의존하는 것은 땜질에 불과하다. 좀 더 쉬워져야 하는데, 그 쉬움은 좀 더 깊어지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깊어지지 않는다면 쉬움은 경망스러움이 된다. 시집 후반부의 시들이 그런 기미를 드러낸다. 쉬움과 깊음, 그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7. 10. 23.]   860□별의 집□백미혜, 민음의 시 112, 민음사, 2002   표제로 뽑은 은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이 정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고 내공을 짐작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작품 전체에 들인 공도 만만찮다. 그런데도 확 와닿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은, 욕심이 과한 까닭이다. 욕심은 반드시 집착을 낳는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집착. 그러나 그것이 시인의 의식 속에서는 목숨을 걸 만큼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어쩐지 배부른 탄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없지 않다. 프랑스 산 포도주를 마시며 사는 것을 탓할 필요는 없지만, 그 향기를 맡고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개인의 절실함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절실함은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의 절실함에 자신의 감정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남들의 눈치는 보아야 하는 것이, 그렇지 않으면 종종 시가 넋두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2만 가진 사람 앞에서 5밖에 못 가졌다고 투정부린다면 2만 가진 사람으로서는 황당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작품집 전체의 수준과 균형을 고르게 유지하는 것은 여간한 능력이 아니다.★★★☆☆[4337. 10. 25.]    
159    시집 1000권 읽기 85 댓글:  조회:1828  추천:0  2015-02-11
842□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신용목, 문학과지성시인선 290, 문학과지성사, 2004   이만 하면 사물을 보는 눈도 아주 신선하고 거기에다가 할 말을 싣는 재주도 좋다. 좋은 시인이 될 요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특히 남들의 보지 않은 세계를 보려는 노력은 칭찬 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미주의의 혐의가 너무 짙다. 멋을 부리려다 보니 그 멋이 주제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망각하는 상태까지 다가간다. 이 안 어울림은 아주 미미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시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만 경계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좋은 시인에 되는 데 한자는 걸림돌이 된다.★★★☆☆[4337. 10. 8.]   843□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박주택, 문학과지성시인선 287, 문학과지성사, 2004   시어가 현실의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공중에 떠있다. 그래서 몽롱하다. 시의 이미지는 모자이크와 같아서 낱낱의 시어들은 현실 속의 어떤 점과 분명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점들이 모여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그때 떠오른 이미지는 높이 올라갈수록 선명해진다. 그런데 낱낱의 점들이 그럴 듯해도 그것이 연결점을 갖지 않으면 나중에 전체의 이미지가 흐릿해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지 않으면 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그런 상태 위에서 이미지만 둥둥 떠돈다. 그런 지점에 와있다. 따라서 묘사되는 대상을 통하여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먼저 정리하고 이미지들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자는 점검할 필요가 없는 쓰레기이다.★★☆☆☆[4337. 10. 8.]   844□한 잔의 붉은 거울□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288, 문학과지성사, 2004   자신의 체험을 다른 상황으로 바꿔 설정하여 풀어내는 아주 독특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시인이다. 그런데 장황하고 수다스럽다. 이 수다스러움이 어떤 전략에서 나오는 듯한데, 그 전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깊은 곳으로 숨으려 하고 숨기려 드는 모순을 시는 갖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수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워 보인다. 인내를 갖고 그 어려움을 통과할 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 전략을 실패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는 다들 아는 것을 어렵게 설명하면서도 다들 아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 더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오류를 위한 그 무엇이 필요한 시집이다. 한자는 오류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4337. 10. 9.]   845□백년 자작나무 숲에 살자□최창균, 창비시선 236, 창비, 2004   나무에 관한 관찰이 압권인 시집이다. 시인이 시골에 살아서 그런가 자연에 대한 관찰력이 남들이 가보지 못한 경지까지 다다랐다. 다른 시인들과 구별되는 이 시인만의 장점이다. 게다가 관찰력을 잘 받아낼 수 있는 언어의 세계까지도 갖추었다. 그런데 소에 관한 시들은 그것이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 그런가 다른 시들과는 다르게 너무 무겁고 둔탁하다. 시집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일부러 그런 듯도 한데, 시집 전체를 무겁게 하고 있다. 그리고 시집 제목이 별로 좋지 않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서 제목을 붙여야 했다.★★★☆☆[4337. 10. 12.]   846□이 짧은 시간 동안□정호승, 창비시선 235, 창비, 2004   시가 많이 달라졌다. 에서는 이미지와 함께 풍부한 느낌이 전해졌는데, 이 시집에서는 정서가 거의 다 사라지고 인식이 시의 전면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묘사와 제시의 사이로 깨달음을 일깨우는 화두 식의 어법이 많다. 세상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는 얘긴데,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시가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감성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의미가 강조됨으로써 사라진 그 감성의 세계가 못내 아쉽다. 일상의 사건에서 어떤 할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게을러 보인다. 그리고 그런 시작 방법의 문제는 주제가 흩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시의 말투가 가지런해도 이 점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이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시인의 능력 때문이리라.★★★☆☆[4337. 10. 12.]   847□벽화□김영산, 창비시선 234, 창비, 2004   곳곳에서 백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묘사로 일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법인데, 그런 수법의 단점은 무언가 할말을 하다가 만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시집도 이 문제점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벽화 연작은 빼어난 묘사에도 이런 허허로움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대가 하 수상하다보니 이렇게 선별에 의한 세계관의 제시가 답답한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제시의 수법이라도 무언가 분명한 변별점을 찾아서 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 특별한 깨달음도 없으면서 제시만 해놓는 것은 별로 성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건 대가들이 겨우겨우 성공할 때 빛을 보는 것이다.★★☆☆☆[4337. 10. 12.]   848□이 환장할 봄날에□박규리, 창비시선 232, 창비, 2004   부질없는 말의 시체로 산을 쌓았다. 쯧쯧! 위치는 절집인데 마음은 속세이다. 속세의 감정을 속세의 화법인 시로 설명을 했으니, 절도 집도 떠나지 못한 자의 영혼이 어디에 깃들까? 사방의 문을 모두 닫아놓았으니, 이제 어떻게 이곳을 나가서 또 어디로 갈까?★★★☆☆[4337. 10. 12.]   849□섬들이 놀다□장대송, 창비시선 231, 창비, 2003   화룡점정이란, 용 그림에 마지막 터치로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는 얘긴데, 그 한 획 눈동자를 그려 넣지 못해서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 시집이다. 눈동자가 무엇일까? 아마도 주제가 아닐까? 아무리 숙고해보아도 내용이 허하다.★★☆☆☆[4337. 10. 12.]   850□은빛 호각□이시영, 창비시선 230, 창비, 2003   요즘 시들을 보면 과거를 회상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시가 늙었다는 얘기다. 할 말이 없을 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역시 과거로 돌아간다. 그래서 시의 과거는 아주 게을러 보인다.★☆☆☆☆[4337. 10. 12.]      
158    시집 1000권 읽기 84 댓글:  조회:1831  추천:0  2015-02-11
  831□몸시□정진규, 세계사시인선 35, 세계사, 1994   감성을 전달하는 법은 두 가지다. 감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방법과 생각의 허를 찔러서 잃은 감성을 일깨우는 법이 그것이다. 이 시는 두 번째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고된 사고 훈련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여 그 깨달음으로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자칫하면 그냥 지식의 전달로 그치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과장하는 것으로 그칠 염려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커지는 위험은 산문성이다. 깨달음의 내용을 전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시가 산문으로 전락하는지도 모르는 수가 생기곤 한다. 산문의 무거운 행보가 곳곳에서 걱정스러운 시집이다. 한자 역시 걱정스럽다.★★★☆☆[4337. 9. 13.]   832□탄광 마을 아이들□임길택, 실천문학의 시집 75, 실천문학사, 1990   시가 현실을 다룬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명실상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집이 더는 있을 것 같지 않다. 탄광촌 아이들의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과장 없이 그대로 드러냈다. 아이들의 눈을 빌면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불거지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이 아주 잘 드러났다. 아이들과 숨을 함께 쉬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것이 어른들의 시집에 섞였지만, 동시집이라는 것이다. 동시집은 드러냄의 방식에서 어떤 식으로든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못내 아쉽지만, 동시집으로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좋은 시집이다. 이런 시집들이 있어야만 정말로 아이들 사이에서 시가 살아날 것이다.★★☆☆☆[4337. 10. 3.]   833□뫼비우스의 띠를 드립니다□안희두, 온누리, 1987   아주 독특한 시집이다. 수학의 공식과 원리를 소재로 삼아서 시집 한 권을 채웠다. 그렇기에 아주 독특한 시집이다. 시가 특정 소재에 집착하면 갑갑하다. 시의 영혼은 한없이 밖으로 뻗어나가는 성질이 있는데 특정 소재를 떠나지 않으면 소재가 주는 영역의 밖으로 시가 나가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정 소재는 그 소재의 지식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런 준비가 안 된 독자에게 지식을 강요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이해는 될지언정 그것에서 감동까지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수학이라니! 노력은 돋보이는 시집이나, 소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시집이기도 하다.★☆☆☆☆[4337. 10. 3.]   834□좋은 세상□이은봉, 실천문학의 시집 27, 실천문학사, 1986   시를 쓰는 자기 나름의 방법이 확고히 잡힌 시집이다. 그런데 시의 방법은 냉정한 보여주기 수법인데, 다루는 감정은 그렇지를 못해서 방법과 내용의 부조화가 이 시인이 극복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일 것 같다. 내용의 격렬함은 결국은 방법을 과격하게 하여 형식을 무시하게 될 것인데, 그런 조짐이 시집 곳곳에서 불거졌다. 한자 역시 그런 불거짐 가운데 하나이다.★★☆☆☆[4337. 10. 4.]   835□부활□고은, 오늘의 시인총서 6, 민음사, 1974   감수성이 아주 풍부해서 시집 전편에 철철 흘러 넘친다. 그런데 그것을 잡아낼 틀이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다. 막연한 감정이 막연한 이미지 묘사로 대체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나 의 경우에는 9분도 쌀처럼 아주 잘 정제된 시이다. 그렇지만 나머지는 7분도나 5분도의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리고 현학 취미가 있는 것은 탓할 것은 없지만, 그것이 독자의 접근을 저지하는 수준이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자는 어려운 문제이다.★★☆☆☆[4337. 10. 5.]   836□인부수첩□김해화, 실천문학의 시집 35, 실천문학사, 1986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시를 쓰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생각을 해야 나오는 것이 시인데, 육체가 고달픈 가운데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고달픈 육체로 생각을 하려면 특별한 감정이 아니면 안 된다. 특별한 감정이란 용납할 수 없는 대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육체가 견디지를 못한다. 그런 점을 이 시집은 아주 잘 보여준다. 인부수첩 연작은 노동의 한 가운데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런데도 흥분하지 않고 이 정도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걸러지지 않은 육성이 흥건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성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4337. 10. 5.]   837□붉은 산 검은 피 첫째 권□오봉옥, 실천문학의 시집 63, 실천문학사, 1989 838□붉은 산 검은 피 둘째 권□오봉옥, 실천문학의 시집 64, 실천문학사, 1989   조기천의 이후 처음 보는 서사시이다. 서사시의 약점은 서술과 진술을 균형 잡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독자가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라서 갈래를 정리해버렸기 때문이다. 서술이나 묘사는 소설로 넘어갔고, 진술은 희곡이나 수필로 넘어가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서는 또 다른 방법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나갔는데, 그것은 서사성을 벗어나서 비유나 다른 동일시의 체계의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유체계는 길어지면 긴장이 늘어진다. 이 시집은 진술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그럴 경우 시는 지루해진다. 화자의 내면 속으로 사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건을 겉으로 드러내면 화자의 내면 심리가 위축된다. 결국 서사시에서는 이 둘의 균형을 꾀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이 상당 부분 성공한 부분도 묘사와 구조에서 성공한 탓이다. 특히 구성이 간결하고도 여러 층을 갖고 있어서 울림이 좋았다. 그런데 이 시집은 구성은 단순한데 등장인물의 할말이 너무 드러났다. 그래서 지루한 느낌을 벗어나기 힘들다. 특정 사건을 서사시로 다루었을 것 같으면 처음부터 시간과 공간을 제시하고서 시작하는 것이 화자의 진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와 닿게 할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나온 서사시인데,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4337. 10. 5.]   839□사라진 손바닥□나희덕, 문학과지성시인선 291, 문학과지성사, 2004   이제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럴 필요가 없는 감정에 주저앉아서 꾸물거리는 것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삶의 외로움이라든지 존재의 근원을 흔드는 슬픔 따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한 번쯤 정직하게 거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데도 자꾸 보여주려고 하면 폼만 남는다. 그럴 때는 빨리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여태까지 바라 봐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떫은감만 남는다. 떫은 감 몇 개로 손님을 치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네댓 편을 빼고는 별로 볼 것이 없는 시집이다. 한자는 더욱 볼 것이 없게 만든다.★★☆☆☆[4337. 10. 6.]   840□붉은 담장의 커브□이수명, 민음의 시 103, 민음사, 2001 841□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이수명, 문학과지성시인선 289, 문학과지성사, 2004   존재 자체가 실험의 대상이 되는 순간 여태까지는 볼 수 없는 긴장이 거기 나타난다. 그리고 방법을 바꾸거나 정신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긴장은 점점 풀어진다. 처음 두 시집에서 나타난 긴장이 아주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시가 아주 세련된 논리화를 지향하고 있다. 시에서 논리화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보지 않은 상태의 자신감은 대개 덫으로 작용하기 쉽다. 그럴 듯해 보이는 순간 시의 긴장은 점점 풀어지는 것이다. 그 긴장의 강도는 시의 길이에서도 나타난다. 시가 짧아지는 것은 원숙해지는 것이거나 해이해지는 것이다. 이 시집의 징후는 뒤쪽의 것에 가깝다. 긴장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방법이든 세계관이든 바꾸어야 할 지점에 이른 것이다.★★☆☆☆[4337. 10. 7.]    
157    시집 1000권 읽기 83 댓글:  조회:1752  추천:0  2015-02-11
    821□푸른 삼각형□강유정, 청하시선 8, 도서출판 청하, 1983   단조로운 것이 흠인데, 아주 잘 쓴 시다. 죽음을 이토록 깊이 노래한다는 것도, 이토록 감미롭게 노래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물의 의미를 교묘하게 바꾸어 삶의 근원에 드리운 어떤 정서를 아주 잘 퍼 올렸다. 시어가 사물을 직접 지시하기보다는 정서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기도 어렵다. 곳곳에서 김춘수의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변별성은 있고, 또 나름대로 전하고자 하는 정서가 분명해서 아주 독특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첫 번째 시의 한 자 몇 글자는 옥의 티다.★★★☆☆[4337. 8. 30.]   822□나비와 광장□김규동, 산호장, 1955   지금까지 읽은 시집 중에서 가장 오래 전에 출판된 시집이다. 1955년이면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이니, 꼭 50년이 된 셈이다. 그 동안 출판 문화는 많이 달라졌다. 세로줄로 쓰여진 첫 번째 시집이다. 시집 뒤에는 이라는 제목을 다시 붙이고 로 표시한 다음 ____ 위에 543을 찍었다. 옛날에는 시집을 내면서 각 책에도 번호를 붙인 모양이다. 아주 재미있다.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 우리의 맹세라는 것도 넣어서 적개심을 고취시켰던 모양이다.   시의 내용은 별로 볼품이 없다. 무언가 특이한 분위기로 표현을 해야 하고, 서구의 냄새를 조금은 풍겨야 한다는 듯이 외국어도 많고, 표현을 아주 어렵게 했다. 겉멋이 좀 들었다고나 할까? 애상도 두드러진 정서이다. 아직 정제된 표현을 얻는 시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어려웠던 1955년에 이만한 시집을 냈다는 것이 놀랍다. 값이 400환(圜)이다.★☆☆☆☆[4337. 8. 30.]   823□반시대적 고찰□박남철, 세계사시인선 89, 세계사, 1999   시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양심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그러기 위한 몸부림에서 정서가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맑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시들이다. 삶의 모순을 극대화시키고 재생산하는 것이 자본이다. 그 앞에서 허물어지고 구겨지는 자신의 모습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반응하는 것이 이 시집의 내용이다. 시의 형태파괴는 어느 것으로도 위안 받지 못하는 정신의 내면이고 파편이다.★★★☆☆[4337. 8. 30.]   824□슬픔에 관한 견해□전원책, 청하시선 70, 도서출판 청하, 1991   시를 쓰는 태도는 아주 성실한데, 시 전체는 좀 산만하다. 이 산만함은 전하고자 하는 정서에 비해 주제가 빈약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좀 길어진다. 시가 길어진다는 것은 지루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제든 정서든 좀 더 벼려서 빛나는 구슬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단단한 것이 빛나는 것이다. 한자는 빛을 깎아먹는다.★★☆☆☆[4337. 8. 31.]   825□새□김동현, 청하시선 9, 도서출판 청하, 1984   앞의 시 몇 편은 정말 뛰어난 걸작이다. 인식의 꺼풀이 다른 사람은 흉낼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고, 그것을 통해 깊이 있는 사유를 나타내는 절묘한 감각까지 살아있다. 하지만, 뒤쪽으로 가면서 시가 그런 탄력을 잃고 흔한 시로 전락해버린 것이 끝내 아쉽다. 그렇다고는 해도 허투루 쓴 시는 없고 이미지들이 아주 견고하게 대상을 물고 있어서 모호한 구석은 없다. 시의 수련이 굉장히 깊은 시인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비이다.★★☆☆☆[4337. 8. 31.]   826□백두산□조기천, 실천문학의 시집 59, 실천문학사, 1989   보기 드물게 성공한 서사시이다. 서사시라는 양식은 원래 사건을 서술한 시여서 시의 본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 안에 스스로 모순을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배열은 시의 특성과는 무관하달 수 있다. 그러니까 시의 능력과는 조금 다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시 밖의 그 요인이 서사시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이 시는 그런 예를 보여준다. 해방 전 김일성 빨치산 부대의 보천보 전투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런데 전투장면이 주가 된 것이 아니라 보천보 전투가 일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정황과 조건을 아주 잘 배치함으로써 자칫 서사시가 갖는 사건 풀이의 지루함을 잘 비켜갔다. 이것이 이 시의 훌륭한 점이다.   원래 서사시는 그 줄거리의 주인공이 흥미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생활에서는 그런 주인공을 만나기가 힘들다. 더구나 서사시보다 더욱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양식이 이미 정착한 상황이기 때문에 서사시가 굳이 맡아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사시가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잃어버린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에 맞추어 해방 전후의 시기에 그런 조건을 갖춘 인물이 등장했고, 그것을 맹목에 가깝게 추종하는 단체가 성립했으며, 그것이 엄연히 살아있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마지막 서사시가 될지도 모르겠다. 줄거리 전개와 절제된 묘사, 인물들의 전형성 나아가 시의 호흡까지 거의 완벽하다고 할 정도의 형상화를 이루었다.★★★★★[4337. 9. 11.]   826□눈사람□최승호, 세계사시인선 66, 세계사, 1996   머리로 쓴 시이다. 시는 가슴으로 써야 한다. 판단은 머리가 하지만, 감정은 가슴으로 오기 때문이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은 좋은데, 그것이 너무 말장난 수준으로 떨어졌다. 죽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설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거나 수집해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그 간단한 사실을 큰 시인이 놓친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시들이 형상화 이전의 메모 수준에 머물러있다. 자신을 위해서나 독자를 위해서나 큰 불행이다.★★☆☆☆[4337. 9. 11.]   827□여백□최승호, 솔의 시인 9, 솔, 1997   앞의 시집을 낸 지 1년만에 나온 시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얄팍하다. 얄팍해도 앞의 시집보다는 훨씬 무겁다. 시집 전체의 주제를 눈사람으로 좁혀서 그 순환성을 찾아 연관 있는 이미지들을 엮었다. 대단한 능력이다. 의식은 앞 시집의 연장선에 있지만, 앞 시집이 있지도 않은 관념에 붙잡혀 허송세월을 한 듯한 인상을 주는 반면에 이 시집은 제목처럼 여백의 의미를 눈사람이라는 한 이미지를 통해서 끊임없이 발견하고 해석했기 때문에 크게 성공했다. 있으면서도 없는 삶의 실체를 잘 나타내주는 상관물로 눈사람을 설정한 안목이 대가임을 증명한다.★★★☆☆[4337. 9. 11.]   828□완전주의자의 꿈□장석주, 청하시선 1, 청하, 1981   어수선하다. 그 어수선함은 할 말에 비해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특히 묘사가 많은 시집인데, 그 묘사들이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서 동원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채 내가 겪은 체험을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시는 몽롱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체험 중에서 내 느낌을 싣고 갈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해서 등장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걸러내기가 잘 안 됐다.★★☆☆☆[4337. 9. 12.]   829□길은 마을에 닿는다□김완하, 천년의 시 4, 천년의시작, 2003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시에서는 치명상이다. 시가 많은 말을 동원한다고 해서 느낌을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그 상황에 정확한 이미지를 동원하느냐 하는 것에 대부분 성패가 달려있다. 꼭 필요한 이미지 주변에 그렇지 못한 것들이 많이 달라 붙어있다. 그래서 좀더 냉정하게 깎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제가 약간 빈약한 듯한 느낌도 이런 내용과 관련이 있다. 한 번 더 벗겨서 주제와 이미지의 연결을 견고하고 끈끈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4337. 9. 12.]   830□꿈을 비는 마음□문익환, 제3문학시선 1, 제3문학사, 1990   문익환은 워낙 정치성이 강한 행동을 해와서 이 시집을 읽기 전에 시 역시 그러하려니 하고 짐작했는데, 막상 시집의 내용은 너무 참하다. 윤동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짧은 시들은 예외 없이 윤동주의 느낌이 난다. 아마 일부로 그런 분위기로 시심을 달랜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긴 시들은 그런 분위기로는 전달할 수 없는 애절함이 있어 윤동주의 애절함이 노출된다면 아마도 이런 식으로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별을 소재로 한 시들은 너무 좋다.★★☆☆☆[4337. 9. 12.]    
156    시집 1000권 읽기 82 댓글:  조회:2126  추천:0  2015-02-11
  811□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장경린, 민음의 시 21, 민음사, 1989   시가 시대의 요약집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시집도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요약은 시대 자체의 풍경이 아니라, 그 시대 속에 낑겨있는 한 사람의 내면 풍경이다. 한 사람은 단순히 한 사람일 뿐이지만, 그 한 사람 속에는 시대의 상처가 남아있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는 시대의 상처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끄집어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시대 모두의 문제가 남아있는 상처가 있고, 단순히 나만의 상처가 동시에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에서 필요한 것은 시대의 울림이 있는 상처이다. 그것을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시대의 요약집이라는 시의 성격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자신의 내면풍경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상처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울림이 들어있는 풍경을 잘 요약했다. 같은 발상은 아주 적절한 것이다. 아마도 1980년대를 산 지식인의 내면풍경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낸 작품은 보기 힘들 것 같다. 뒤쪽에 장난스러운 몇 편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대로 한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한자는 지식인의 전유물일까?★★★☆☆[4337. 8. 29.]   812□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이문재, 민음의 시 15, 민음사, 1988   할말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변죽을 때리며 빙빙 돌려서 어떤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가 아주 잘 드러나는 시집이다. 그 의도라는 것은 아마도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세계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의미의 가장자리를 일부러 이렇게 빙빙 돌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의미는 역사의 몫일 것 같다. 주제가 분명해지는 것은 역사를 매개로 한 의지의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방향은 그쪽과 거의 정반대를 향하고 있을 것인데, 문제는 어느 쪽이 그 쪽과 정반대의 방향인가 하는 것이다. 의미의 가장자리로 떠돈다고 해서 의미의 세계에 대한 반발이 성취될 리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큰 숙제로 남은 시집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한 글자든 두 글자든 한자는 혹이다.★★☆☆☆[4337. 8. 29.]   813□푸른 비상구□이희중, 민음의 시 62, 민음사, 1994   정서가 설익은 20대 후반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분명치 않은 감정과 주제에 이미지들이 집중되고 있고, 태반이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있어서 시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원된 이미지들이 전하고자 하는 굵은 주제가 없어서 더욱 그렇다. 시의 경향은 어떤 주제를 전하기 위해 이미지를 동원하는 수법인데, 전할 그 무엇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미지들이 서로 긴밀한 협조를 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이 점을 극복하려면 주제부터 새롭게 벼려야 하며, 그런 뒤에 이미지를 동원시키는 원칙을 다져야 할 것 같다. 한자는 다질 필요 없는 것이다.★☆☆☆☆[4337. 8. 29.]   814□강□구광본, 민음의 시 10, 민음사, 1987   작품이 너무 소품이다. 소품이라는 것은 작품의 행수가 짧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다루는 주제도, 시의 호흡도 그렇다는 것을 말한다. 너무 주제가 빈약하다. 그리고 설익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라는 작품 정도인데, 이 작품의 발상도 어디선가 빌려온 것이기 쉽다. 그런 발상은 예술 일반에서는 그리 드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소 모호한 듯한 인상을 갖춘 시들이 그 시대의 어떤 문제점까지 아울러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드나,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지들이 너무 단순하다. 뒤쪽의 단시들은 발상에 머물러있는 것들이다. 시가 좋아지려면 주제가 더 분명해져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이미지를 좀더 확실한 것으로 뽑아야 한다.★☆☆☆☆[4337. 8. 29.]   815□가끔 중세를 꿈꾼다□전대호, 민음의 시 74, 민음사, 1994   관념성이 너무 강하다. 한 편 한 편에서 보는 시의 주제는 분명한 것 같은데, 시집 전체의 방향이 분명하지를 못하다. 젊은 날의 고뇌와 생각의 실험에 해당할 그런 시도들에 머물고 있다. 시인은 개인의 체험을 쓸 수밖에 없지만, 그 특수성이 보편성을 담지하지 못하면 시는 힘이 없다. 혼자 넋두리로 그치기가 쉽다. 그런 위험에 너무 노출돼있다. 따라서 한 편의 주제들이 모여서 이루는 전체의 모양새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할 단계이다. 시집을 너무 서둘러 냈다는 얘기가 된다.★☆☆☆☆[4337. 8. 29.]   816□어떤 길에 관한 기억□장석주, 청하시선 55, 도서출판 청하, 1989   시집의 제목은 시집의 절반을 차지한 연작시의 제목과 같다. 이 정도면 허무주의를 드러낸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다고나 할까? 아니면 이런 시집도 한 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무라는 것이 원래 모양이 없는 것이어서 어떤 것을 갖다 붙여도 되는 것이어서 시로 다루기는 아주 편하고 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잘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답이 많은 것은 정답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중에도 허무를 나타낼 만한 상황과 신념을 이만큼 뽑아내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어떤 전범이 되기에는 시의 세계가 너무 좁다. 한 50편까지 연작을 끌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4337. 8. 29.]   817□민둥산의 하룻밤□류환, 청하시선 66, 도서출판 청하, 1990   시에서 묘사는 상관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관물을 묘사의 대상으로 정하는 것은, 자신의 관찰이 정하는데, 그 정하는 기준과 원리에 따라 시의 내용과 품격이 결정돼버린다. 따라서 자신에게 절실한 그 무엇이 상관물로 적절한 것인가 하는 것을 회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시대의 문제는 더더욱 그러하고, 그 시대 속에 속한 개인의 내면풍경이 시대를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찰과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석연치 않은 상태에서 묘사가 이루어지면 시가 굉장히 지루해진다. 그리고 이미지에 이끌려서 나중에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가 닿기 일쑤이다. 선택과 관찰이 많이 풀어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은 의외로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것이다.★☆☆☆☆[4337. 8. 29.]   818□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오탁번, 청하시선 13, 도서출판 청하, 1985   세상을 보는 태도가 시의 깊이를 결정해버린 아주 묘한 시집이다.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능력이나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발상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런데 시집 전체에 묘한 시각이 스며들어서 시의 인식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계속 방해하고 있다. 풍자도 닮았고, 야유도 닮았다. 냉소라는 것이 가장 가까울 듯한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더 이상 뭣을 해봤자 세상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들어갈 듯하다가 거기서 머물고 만족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특히 이 점은 1부의 시에서 두드러진다. 들어가 보지 못한 자도 들어가 보지 못한 그곳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시이다. 시는 말이 아니고 상징이나 비유를 통해서 일상 언어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곳을 건드려주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태도가 그런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면 그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 독자들이 웃을지는 몰라도 감동하지는 않는다. 한자는 버려야 할 유산이다.★★☆☆☆[4337. 8. 29.]   819□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양애경, 청하시선 47, 도서출판 청하, 1988   두 가지 방법이 한 시집 안에서 충돌한다. 이미지를 따라가면서 할말을 그 뒤로 숨기는 방법이 있고, 이것저것 다 버리고 직접 말로 써버리는 방법이 있다. 이 두 방법은 내용상 충돌할 것은 없지만, 상상력의 체계나 발상의 방법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한 공간에 배치할 경우 미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법의 미숙이 내용의 미숙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로서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자 역시 미숙의 일종일 수 있다.★★☆☆☆[4337. 8. 29.]   820□서울에서 보낸 3주일□장정일, 청하시선 53, 도서출판 청하, 1988   주제가 거의 성에 집중돼있다. 성을 통해서 이 사회의 모순을 들추겠다는 발상이다. 그 전의 다른 시집에 견주면 가지런함이 많이 사라지고 산만해졌다. 아마도 보여주기보다는 말하려는 의지가 충만해진 탓일 것이다. 자신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폭탄으로 하여 세계를 건드리고자 하는 시들은 전위의 모습을 띤다. 장정일의 시가 시의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당연해야 할 일이다. 시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시의 가장 먼 가장자리까지 나간 경우이다.★★☆☆☆[4337. 8. 30.]    
155    시집 1000권 읽기 81 댓글:  조회:1711  추천:0  2015-02-11
801□청춘□김태동, 문학과지성 시인선 224, 문학과지성사, 1999   방법이 정신을 앞서나간 경우라 하겠다. 사물과 현상간의 동일성을 찾아내는 것이 시의 오랜 전통인데, 그 전통을 깨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고, 그것은 곧 시의 외연을 넓히는 일 이외에 별다른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이 여태까지 실험을 해온 결과였다. 위치 맞바꾸기를 한다고 해서 동일성의 바깥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무시이다. 위치 맞바꾸기 역시 동일성의 바탕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선 새로운 시각을 추구하는 패기가 좋다.   시집 전체에 죽음이 득시글거린다. 죽음을 이토록 깊이 파고든 경우가 우리 시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확 잡아끈다. 이 죽음의 의미는 좀더 넓은 시각을 갖춘 자가 밝혀야 할 부분이지만, 은 나의 추체험에 의존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늘 관념성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친 자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주인공이 그랬고, 기형도가 그랬으나, 서정주는 신라로 뺑소니쳤으니, 방법이 없지는 않은 셈이다.★★☆☆☆[4337. 8. 27.]   802□아, 입이 없는 것들□이성복,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문학과지성사, 2003   벌써 30년째 똑같은 잔소리를 하고 있다면 듣는 사람의 지겨움은 그렇다 쳐도 말하는 사람 자신도 지겨울 법도 한데, 이렇게 지치지 않는 것은 열정을 넘어 시에 대한 신념이랄 수밖에 없겠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을 반복하여 말하는 사람도 측은하겠지만 듣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몇 번 물을 부어 우려낸 뼈다귀국물처럼 삶의 쓸쓸함은 시의 영원한 주제여서 거기에 충실한 몇 시인들이 주변에는 있다. 애써 찾아낸 다양한 이미지들을 재편집해줄 든든한 빽으로 그 쓸쓸함을 잘 활용하는 것 역시 능력이라고 봐도 되겠다. 시집의 절반 가량이 시를 위한 초고 수준에 머물러있다. 실험시가 아니라면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성실성이 문제가 된다.★★☆☆☆[4337. 8. 27.]   803□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복거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257, 문학과지성사, 2001   시의 사유는 강렬한 집중성이다. 그것은 시가 길어져도 마찬가지이다. 긴 시가 몇 편 있는데, 소설가답게 그 전개 수법이나 호흡이 유장하고 좋다. 그런데 다루는 주제가 반복되고 있고, 화자 바꿔서 이야기하는 소설의 흔적이 아주 강하게 드러난다. 소설 같은 시가 없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력의 색깔이 다분히 논리를 깔고 있어서 메마르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소설이 갖는 논리가 시의 짧은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는 정말 거북하다.★☆☆☆☆[4337. 8. 27.]   804□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신대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249, 문학과지성사, 2000   시가 참 단단하다. 꼭 필요한 장면만 선택해서 할 말을 대신하게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너무 자연 속으로 침잠한 탓일까?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집 전체로 보면 자연에 대한 묘사가 압도하듯 많은데, 거기에 딸린 이야기들은 두셋으로 초점이 갈라진다. 특히 사람을 다루면서 줄거리가 끼어들어 다소 설명에 가까운 상황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자연은 그런 설명의 배경으로 물러나게 된다. 아무래도 자연에 대한 집중이 주제의 후퇴를 가져온 것 같다. 한자는 자연스러움을 막는 장애이다.★★☆☆☆[4337. 8. 27.]   805□그늘 반 근□김영태, 문학과지성 시인선 242, 문학과지성사, 2000   이런 시들을 보면 낯설다. 동원되는 말과 체험이 전혀 내 생각의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시는 물론 말과 경험까지도 낯설다. 이 경우 잘만 하면 생애 자체가 시가 되는 경우이다. 단, 그것이 독자의 이해가 가능하도록 배려할 경우이다. 그러나 체험의 특수성이 일반인들에게 이해되도록 하려면 천상 설명을 하게 되고, 설명을 하면 시는 늘어지고 만다. 그것이 문제다. 설명하지 않으려다 보니 자신의 느낌을 나열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독자에게는 뜬금 없는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다. 시의 체험은 특수하지만, 그 체험을 통해서 시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특수성과 일반성이 결합된 교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수한 체험사실을 묘사하면서 그 특수성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는 판단이 든다.★★☆☆☆[4337. 8. 27.]   806□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김혜순, 문학과지성 시인선 243, 문학과지성사, 2000   시를 밀고 가는 뚝심도 좋고, 말을 하기 위한 발상도 신선하다. 그러나 너무 길다. 시는 경제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갈래이다. 그 경제성의 원칙을 벗어나려는 것은 반드시 어떤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도가, 시가 펼치고 뻗어가는 데 도움이 되어야지, 오히려 시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면 그건 결코 칭찬 받기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도시의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서 일부러 장황한 어법을 활용하는 모양인데, 그 어법이 적절할 때가 있고 적절하지 못할 때가 있다. 많은 시들이 적절하지 못한 어법 위에 놓여있어서, 칭찬 받기 어려운 지경까지 가있다. 한자와 영어 알파벳이 뒤섞여 정신이 없다.★★☆☆☆[4337. 8. 28.]   807□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임동확, 민음의 시 31, 민음사, 1990   이성이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시가 말한다면, 중요한 역사의 한 장면을 노래하는 작품이 하나쯤 있는 것도 좋으리라. 시는 양심이 뒤척이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역사의 혹이기도 하다.★★★☆☆[4337. 8. 28.]   808□잘 가라 내 청춘□이상희, 민음의 시 25, 민음사, 1989   도대체 사춘기 정서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이른바 여류시가 갖는 단점을 거의 다 갖추었다. 말들이 애매한 위치에서 애매한 감정을 건드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 시다운 시는 뿐이다. 시가 되려면 먼저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것부터 단단히 따져서 정한 다음에 시를 쓸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애매한 태도와 정서를 벗어나기는 힘들다.★☆☆☆☆[4337. 8. 28.]   809□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박재삼, 민음의 시 35, 민음사, 1991   나이가 들어가면 직관이 발달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랜 관찰이 얻는 우주율의 세계를 보는 것일까? 시간의 고민이 많고, 시간에 관한 관찰의 결과가 시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다. 시가 작은 관찰에서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관찰이 독자의 심금을 퉁겨줄 때 비로소 그 감동은 성립한다. 대부분의 시들이 섬세한 관찰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것이 아무래도 주제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과,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무력해지는 한 개체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는 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관찰이 거의 말로 진행되다 보니 시가 짧은 데도 길다는 느낌이 든다. 한자는 불편하다.★★☆☆☆[4337. 8. 29.]   810□진흙소를 타고□최승호, 민음의 시 8, 민음사, 1987   시집 전체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죽어가는 것과 죽음에 대한 관찰이 아주 섬세하고 할말 역시 적절하게 소재를 따라가면서 전개되었다. 그런데 시집 전체를 읽으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어딘가 좀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좀 우스운 냄새도 나고, 풍자 같은 냄새도 풍기고, 야유 같은 분위기도 서린다. 죽음을 천착하는 것은 그 대척점의 삶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존재의 소멸과 현존하는 삶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그런데 죽음에 초점을 맞추면 모든 동작이 우스꽝스러워진다. 결국 이 시집의 죽음이라는 주제는 집착이 강할수록 삶의 양상이 희화화되는 것을 면치 못한 셈이다.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못하고 미리 설정된 어떤 관념으로 본 셈이다. 그것만이 죽음으로 빨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임을 눈치챈 것 같다. 죽음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서 살아난 사람들은 무당들뿐이다. 시인 중에는 아직까지 그런 사람이 없다. 한자도 죽음을 구원하지 못한다.★★★☆☆[4337. 8. 29.]    
154    시집 1000권 읽기 80 댓글:  조회:1986  추천:0  2015-02-11
791□개들의 예감□연왕모, 문학과지성 시인선 202, 문학과지성사, 1997   방향 없는 묘사에 그친 시가 있고, 무언가를 암시하고자 하는 시가 있다. 실험시라면 이 두 가지는 서로 어울리기 힘든 것이다. 암시는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다. 묘사는 너무 복잡하고 언어의 기능을 스스로 저버린다. 기능을 버린 언어는 그것 자체로 생명을 지닌다. 그 생명에서는 긴장이 느껴져야 한다. 그것은 실험이 갖는,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으려는 몸부림 때문이다. 그냥 말로만 남아버린다면, 실험의 생명인 정신이 죽어버린다. 적어도 이수명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실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4337. 8. 25.]   792□밤의 공중전화□채호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 문학과지성사, 1997   시가 아주 거칠다. 그렇지만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시집이다. 발상도 그렇고 시집 한 권에 흘러 넘치는 육체와 성에 관한 사고가 그렇다. 프로이드 심리학자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시집이다. 시 곳곳에 도착된 성에 관한 관찰과 느낌이 서려있다. 그런데 시가 아주 거칠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생각들이 가지런하지 않거니와, 가지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생각이 정리된 뒤에 이미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만난 뒤에 생각을 정리해서 그렇다. 그래서 실제로 필요한 말보다 장황한 이미지들이 동원됐고, 그 역시 깔끔히 정리되지 않아서 거칠게 느껴진다. 그리고 실험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니면 성찰의 내면을 드러내야 할지 방향이 분명히 잡히지 않아서 그런 탓도 있다. 태도를 좀 더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은 작품으로 가는 지름길이다.★★★☆☆[4337. 8. 25.]   793□그런 의미에서□임후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204, 문학과지성사, 1997   여느 시와는 다르게 시에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시체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는 그것이 실험시이든 보통 시이든 간에 읽어가면서 이미지가 만드는, 그래서 이미지에 실려 전해지는 어떤 의미나 정서가 와 닿기 마련이다. 특히 의미를 감추어서 주제가 파악하기 어려운 시들은 그 이미지가 갖는 느낌만으로라도 와 닿는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들은 그런 느낌조차도 없다. 그 원인을 잘 살펴보면 시를 쓰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무엇을 전하자고 쓴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선택된 어떤 상황을 아무런 생각이나 의도 없이 묘사하는 일로 그치고 있다. 말하자면 카메라를 찍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것과 같은 일이다. 실험시에서 종종 있는 일인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생긴 시들이 나름대로 무언가를 전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시인과 시의 태도가 서로 다르다. 이것을 실수라고 봐야 할지 의도라고 봐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시가 산만하다는 것이다. 한자는 산만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4337. 8. 26.]   794□유리의 나날□이기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211, 문학과지성사, 1998   시집 한 권을 한 호흡으로 쓴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대단한 능력이다. 그 능력 위에 시집 한 권 속의 시들이 한 초점을 향해 집중해있다는 것은, 그것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더욱 대단한 능력이다. 모든 시를 유리로 수렴시켰는데, 유리라는 말이 이 시집의 내용을 담기에는 좀 작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리가 나타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어떤 것이 이 시집에 담겨있다. 그리고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면서 언어가 거기에 혹사당하는 것이 단점이다. 이기철이라는 이름은 시어의 아름다움과 아기자기함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것은 그가 이룬 성취이고, 그것은 또 장점이기에 계속해서 살려도 좋은 그런 부분이다. 내용이 강해졌다고 해서 버릴 그런 것은 아니기에 아쉬운 것이다. 깨달음이 언어로 화할 때는 언어와 내용에 간격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미 선시에서 그런 경지를 아주 잘 개척했다. 성급하게 보여주려고 하다 보면 자꾸 설명하게 되고, 설명을 하게 되면 자꾸 본질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더더욱 덧칠을 하게 된다. 시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집 속의 시들이 대체로 길다면 그것은 장점이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작은 티끌이 보인다고 해도 이 시집이 이룬 경지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4337. 8. 26.]   795□사람들 사이 꽃이 필 때□최두석, 문학과지성 시인선 207, 문학과지성사, 1997   바깥에서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여 시를 쓰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닐지 몰라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자극 속에 이미 방법이 주어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극이 강하면 강할수록 시 또한 좋아진다. 그러나 그런 자극이 없을 경우에는 방법도 같이 사라진다. 그때 시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건질 것이라고는 정도이다. 단풍을 보고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은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인과 시민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4337. 8. 26.]   796□안동시편□이태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205, 문학과지성사, 1997 797□이슬방울 또는 얼음꽃□이태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285, 문학과지성사, 2004   이 시집을 관류하는 이미지는 길이다.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그것이 실제의 거리이든 마음의 거리이든 그건 상관없다. 시에서는 마음의 길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인이 돌아다니는 것은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는 발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와는 다른 곳에 가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고 그 자극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는 풍경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할말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풍경이 준 충격이 이미지로 다가오는데 그 이미지가 가지고 갈 의미가 선뜻 결정되지 않는 경우이다. 이 시집들 역시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체로 의미가 약하다. 그리고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이미지를 버리기 아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말을 정비하고 이미지 역시 꼭 필요한 것만을 놔두고 과감하게 잘라버릴 필요가 있다. 이미지는 어차피 무언가를 전하지 않으면 제 힘을 내기 힘든 법이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시는 꼭 줄거리가 생긴다. 돌아다니면서 마주친 풍경에는 그 풍경이 갖고 있는 사연이 있고, 그 풍경과 접촉하면서 생기는 나의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려고 하는 속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경에 너무 집착하지도 않고 풍경을 적당히 이용하면서도 풍경이 결국은 내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 시집의 풍경은 너무 강하다.★★☆☆☆[4337. 8. 26.]   798□내 손금에서 자라나는 무지개□문충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51, 문학과지성사, 1986 799□방아깨비의 꿈□문충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94, 문학과지성사, 1990 800□바닷가에서 보낸 한 철□문충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206, 문학과지성사, 1997   우직하다. 이 말은 태도나 상상력 모두에 해당한다. 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10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다. 이런 태도는 높이 살 일이지만 상상의 틀이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결코 좋은 점이 아니다. 시인은 자기만의 색깔이 있고, 상상력의 틀이 어떤 정형성을 갖추기 마련이지만, 그 정형성이 단순하면 금방 물린다. 억지로 다채롭고 화려할 필요는 없지만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최대한 새롭게 보여주려는 노력은 시인의 가장 좋은 덕목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 시들은 커다란 단점을 갖고 있다. 너무 설명투로 흐르고 어수선하다. 따라서 생각을 더 단단하게 벼리든가 상상의 층을 변화시키든가 해야 할 상황에 와있다.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생각과 상상력이 굴절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한자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4337. 8. 26.]  
153    시집 1000권 읽기 79 댓글:  조회:1913  추천:0  2015-02-11
  781□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유진택, 문학과지성시인선 187, 문학과지성사, 1996   주변의 사소한 것을 버리지 않고 시로 건져 올리는 발상과 태도가 성실성을 증거한다. 그러나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결론에 이르는 주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가 꼭 새로운 사실만을 결론으로 삼을 필요는 없지만, 그 무난함으로 인하여 시 전체가 무기력해 보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인식도 상상력도 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4337. 8. 20.]   782□무덤을 맴도는 이유□조은, 문학과지성시인선 187, 문학과지성사, 1996   시에는 정신이 움직이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에 따라서 이미지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해도 좋고, 사상이라고 해도 좋다. 이것이 불투명하면 좋은 표현과 적절한 구성을 가지고도 시는 불투명해진다. 시를 만들어가는 능력이나 이미지를 잡아내는 능력도 좋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불투명함을 한 꺼풀 걷어내야만 시가 힘차게 움직일 것이다. 이미지들이 선명한데도 시를 읽고 난 뒤 특별히 남는 것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불투명함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주제의식부터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한자를 없애는 것은 그보다 먼저 할 일이다.★★☆☆☆[4337. 8. 20.]   783□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이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180, 문학과지성사, 1996   시가 대중문화의 발빠른 움직임을 뒤따라갈 때가 있다. 서태지의 노래에서 제목을 딴 이 시집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문명에는 속도가 있고, 그 속도는 그 속도 위에서 태어나지 많은 사람에게는 멀미를 일으킨다. 그 속도의 여러 양상이 아주 잘 잡힌 시집이다. 하지만 아직 대중문화의 발빠른 움직임을 따라잡을 만한 율동은 아니다. 그리고 성급한 마음이 시의 앞쪽으로 이따금 불거져 나온다. 성급하거나 미숙하다는 증거이다. 이 점만 해소한다면 대단한 시인이 될 것이다. 한자는 속도의 걸림돌이다.★★☆☆☆[4337. 8. 20.]   784□바닷가의 장례□김명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194, 문학과지성사, 1997   세월 탓인가 치열함이 많이 줄었다. 시간에 대한 인식과 세월의 뒤편을 돌아보는 회고조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김명인의 시는 그 탄탄한 구조가 늘 좋았다. 이 시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풍경 묘사를 하는 듯하면서도 내면풍경을 교묘하게 겹쳐놓아서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상징으로 승화돼버리는 묘한 착상이 많았다. 이 시집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주제가 좀 약해진 것이 상징으로 건너가는 힘을 약화시킨 것 같다. 뒤쪽의 러시아 관련 시는 일정이 분명치 않고 내면 풍경이 많이 드러나서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4337. 8. 23.]   785□극에 달하다□김소연, 문학과지성 시인선 192, 문학과지성사, 1996   방향은 잘 잡았는데, 그 방향에 대한 상상력은 아직 그 방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거의 설명투다. 실험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내용은 거의 서정시이며, 그것은 정신의 실험이 끝나지 않은 상태임을 뜻한다. 실험은 정신이 밀고 가야하고, 정신의 번득임이 새로운 형식을 찾는 것이 실험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시집의 정신은 너무 밋밋하다. 전제된 결론을 위해서 증거 찾기에 바쁘다. 그 결론도 이미 시의 독자들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가 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시집이다.★☆☆☆☆[4337. 8. 24.]   786□이슬의 눈□마종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193, 문학과지성사, 1997   시 전편에 외로움이 절절이 배어있다. 어떤 것이든 분명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른 그 어떤 재주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 외로움이 말을 많이 하게 하고, 급기야 일기체나 수필체로 접근하게 하지만,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외로움이 처음부터 요구한 운명이기 때문이다.★★☆☆☆[4337. 8. 24.]   787□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이창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198, 문학과지성사, 1997   사물을 보는 시각도 독특하고 상상력도 유연하다. 시에서 자기만의 빛깔을 갖는다는 것은 생명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일인데, 그런 중요한 단계를 이미 지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세상에 대한 흔한 결론에 뒤를 대고 있어서 애써 이룬 시의 경지를 탈색시키고 있다. 게다가 장난끼가 다분해서 더욱 문제다. 장난끼가 풍자로 넘어가지 않으면 다소 경박스러워 보인다. 내 장난끼가 시에서 독자에게 어떤 암시를 주는가를 잠시 생각해볼 일이다. 장난끼가 시에서 도움이 될 때는 상상력의 걸음을 가볍게 해서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 배경을 더욱 확충시켜줄 때이다. 그렇지 않고 그런 장난이 주제 전체를 가볍게 만드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난이다.★★☆☆☆[4337. 8. 24.]   788□불쌍한 사랑 기계□김혜순, 문학과지성 시인선 199, 문학과지성사, 1997   언어는 어떤 대상을 대신하도록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리고자 대상이 분명할수록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것은 이미지를 대신하는 시의 언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그런 까닭에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시의 이미지는 흐리멍덩해진다. 그 흐리멍덩함은 주제가 분명치 않거나,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그 주제에 딱 알맞은 표현력을 얻지 못한 탓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말하는 이의 재주이고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시집은 아직 흐리멍덩하다. 표현력의 문제이기보다는 주제의 빈약쪽이 더 가까울 것이다. 주제가 미약한 상태에서 처음 잡힌 이미지만으로 살림을 꾸려가다 보니 외화내빈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표현력의 문제까지 번져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할 말이 분명하다는 것과 거기에 걸맞은 표현을 찾는다는 것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거의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피해야 할 도구이다.★★☆☆☆[4337. 8. 24.]   789□새벽달처럼□김형영, 문학과지성 시인선 197, 문학과지성사, 1997   특별히 재주를 부리려 하지 않고 생각을 잘 요약한 것이 장점이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시들일수록 그 생각의 가치가 돋보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치명상을 갖고 있다. 생각이 자기 한계를 드러내면 마치 풍선과 같아서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밀려나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에 관한 시는 우습기까지 하다. 한자도 우습다.★☆☆☆☆[4337. 8. 24.]   790□빠지지 않는 반지□김길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203, 문학과지성사, 1997   시에서는 관념이든 이미지든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길어진다. 그리고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꾸 반복되고 상황만 길어진다. 이것은 생각과 언어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거기에 꼭 필요한 말들만 취하면 이미지는 선명하게 정리되면서 메시지와 언어는 아주 가깝게 밀착된다. 그렇지 못하고 생각이 덜 정리된 채 쏟아져 나온 이미지에 취하면 정작 할 이야기를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언어와 생각 사이에 묘한 틈이 생기고 그것을 메우려고 자꾸 설명하려 든다. 이 시집에 불필요하게 긴 시들이 많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따라서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시는 자꾸만 길어질 것이고, 산만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자는 더욱 산만한 장치이다.★☆☆☆☆[4337. 8. 25.]  
152    시집 1000권 읽기 78 댓글:  조회:1870  추천:0  2015-02-11
  771□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한승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60, 문학과지성사, 1995   역시 대작은 큰 안목과 구성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시집이다. 생각의 규모나 발상의 크기가, 작은 것에 집착하여 큰 것을 이야기하는 데 익숙한 일반 시인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아마도 소설의 구성력이 작용한 탓이리라. 라는 부제가 붙은 제1부는 53까지 나갔고, 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2부는 29까지 나갔다. 단순히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발상과 전체를 엮는 능력이 큰 안목을 깔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큰 느낌을 준다. 시집 전체의 주제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인데, 그것이 불교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있고, 또 치열한 정신이 시의 중심이 놓여있어서 매우 높은 경지까지 다가갔다. 촛불에 관한 연작은 시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만큼 대단한 경지에 이른 작품이다. 다만 시집의 뒤로 가면서 시가 수필처럼 변하고 문장 곳곳에서 산문 투의 어조가 남아서 아쉬운 경우가 되었다. 한자 역시 과제로 남아있다.★★★☆☆[4337. 8. 17.]   772□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이윤학, 문학과지성시인선 159, 문학과지성사, 1995   생각의 병을 앓는 사람의 시집이다. 생각의 병은 문명병이다. 생각에 치여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중환을 누구나 다 앓는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는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부에 못처럼 박혀있는 그 병을 정직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그런 용기를 낸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는 보는 즐거움이 있다. 생각의 병을 앓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을 설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방향이 시의 가장 중요한 특색이 되었다.   보여주기에서는 자신의 말이 시각 뒤로 숨기 때문에 때로 갑갑해서 직접 발설하고픈 충동을 느끼는 법인데, 이 시인은 그런 점에서는 끈기가 있다. 칭찬 받을 일이다. 다만 이미 결정된 세계 속에 자신을 집어넣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엄살이나 투정으로 비칠 때가 많고, 종말론 신도와도 같아서 결국 판박이 시를 양산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늙은이들이 하는 짓이다. 세계는 이미 늙을 대로 늙었다. 한자는 늙은이들이 즐겨 부리는 고집이다.★★★☆☆[4337. 8. 18.]   773□소읍에 대한 보고□엄원태, 문학과지성시인선 158, 문학과지성사, 1995   이 시집에서 볼 만한 것은 제1부에 묶인 소읍에 관한 시들이다. 대도시의 주변에 위치한 작은 읍의 내부 실정을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주변부의 삶과 현실이 아주 잘 나타났다. 그리고 이 부분을 더 깊이 파고들었어야 했다. 한 권 정도로 불리고 깊어져야만 정말 좋은 시가 나올 법했는데, 중간에 그치고 말았다. 1부의 시 속에서도 방법상이 혼돈이 엿보이다. 주로 이미지 제시를 통해서 보여주기 수법을 취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직접 말을 하면서 나서는 장면이 적잖이 드러났다. 1부 이외의 시들은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비하면 포즈가 좀 수다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가 선명하게 강조되는 시에서는 차분함이 감동으로 안내하는 문이다. 틈틈이 낀 한자는 감동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4337. 8. 18.]   774□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이정록, 문학과지성시인선 221, 문학과지성사, 1999   일상의 자잘한 사물과 사건에 관심을 주고 그것에서 삶의 깊은 암시를 읽으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그리고 될수록 시를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런 노력이 시 속에 이야기를 끌어들이곤 하는데, 그 이야기들이 줄거리로만 남지 않고 시에 긴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특이하다. 이것은 단순히 하고자 하는 말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도록 하려는 노력 때문이다. 다만 너무 그런 재미에 집착을 하다보면 장난끼나 말장난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그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시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한자 역시 도움이 되질 않는 물건이다.★★★☆☆[4337. 8. 18.]   775□생명에서 물건으로□이승하, 문학과지성시인선 163, 문학과지성사, 1995   죽음에 대한 관념은 가설일 뿐이다.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다. 특이하게도 죽음에 관한 소재로 시집 한 권을 꾸몄는데, 그것이 관념성이 강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죽음을 있다. 죽음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소재로 택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길이고 함정이다. 그 함정 때문에 시가 건조해졌다. 죽음을 설명한다고 해서 생명의 비밀이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죽음이 관념이기 때문이다. 한자 역시 지독한 관념이다.★☆☆☆☆[4337. 8. 18.]   776□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박용하, 문학과지성시인선 164, 문학과지성사, 1995   겉모습은 서울 생활이 주는 문명비판을 지향하고 있는데, 속에 흐르는 정서는 전통 서정시의 그것이다. 결국 시인은 자신도 모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얘기다. 따라서 장황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이나 시를 불필요하게 길게 늘어뜨리는 수법은 문명비판의 시인으로 분류되기를 원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농촌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흙내 나는 감수성이 담겨있다. 서정성은 내면을 지향하는 반면, 문명비판은 외부를 향한다. 이 화합할 수 없는 모순이 시의 흐름을 종잡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에 좀 더 정직하게 귀기울이는 것이 해법이다.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농사꾼이 회사원이 되지는 않는다. 한자는 서정성을 갉아먹는다.★☆☆☆☆[4337. 8. 18.]   777□누군가 그의 잠을 빌려□심재상, 문학과지성시인선 166, 문학과지성사, 1995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이것과 저것 사이 또한 아니라는 식이다. 진리를 찾다 보면 어떤 것이 진리인지는 알 수 없어도 어떤 것이 진리가 아닌가 하는 것은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답으로 삼는 것은 진리에 관심이 없다는 증거이다. 그 순간 그것이 진리로 착각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영역은 예술보다는 철학쪽에 더 가까운 고민들이다. 그 고민이 그대로 예술이 된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착각이다. 그러니까 남의 문지방을 넘어들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자는 제일 먼저 벗어버려야 할 신발이다.★★☆☆☆[4337. 8. 19.]   778□극장이 너무 많은 동네□성윤석, 문학과지성시인선 174, 문학과지성사, 1996   도시 문명을 노래하는 시들을 보면 한결같이 어렵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소화해내지 못한 정신의 한계가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그냥 배설해버리는 까닭이다. 이 시집에는 기존의 형식과 새로 발견한 형식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그리고 새로운 형식은 나타나는 순간 낡은 형식이 된다. 핸드폰의 신형 발생 주기가 3개월인 것과 같다. 그러니 몇 년에 한 번 내는 시집에서, 혹은 월간이나 계간에서 보이는 시들은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것이다. 주제를 과감하게 드러내야 할 곳과 감추어야 할 곳, 그리고 그 이유가 석연치 못한 구석이 곳곳에 널려있다. 한자 역시 석연치 못한 장치이다.★★☆☆☆[4337. 8. 19.]   779□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이선영, 문학과지성시인선 173, 문학과지성사, 1996   무엇보다도 야망과 패기가 느껴지는 시집이다. 글자라는 도구에 삶의 의미를 집어넣어 새로운 발상을 전개한 수법도 새롭다. 그런데 시를 써나간 발상과 수법이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과 글자의 행위가 갖는 상관관계를 파고들다 보면 생각은 철학의 범주로 넘어가기 쉽고, 그것은 시에서 흔히 보는 서정성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세계이다. 그런데 생각은 끊임없이 인식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데 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혹은 그리고자 하는 내용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고 겪고 느끼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상과 시의 정서가 끝내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 인식과 사고는 새로운 단계를 뚫고자 하는데, 시의 형식에 너무 안주해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결국 감정보다는 인식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시를 썼어야 한다는 뜻이다.★☆☆☆☆[4337. 8. 20.]   780□남몰래 흐르는 눈물□김영태, 문학과지성시인선 167, 문학과지성사, 1995   시는 짧은 형식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는 속성 때문에 낱말 하나도 중요하다. 그래서 잘 해득되지 않는 낱말 하나 때문에 시 전체가 막히는 수가 많다. 하물며 수많은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명이 등장하는 시집이야 말해 무엇하리! 미술작품을 등장시킨 시에서는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제대로 시의 감정이 파악된다. 따라서 이런 시집의 경우, 처음부터 독자의 접근에 큰 문제가 있는 시집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이나 예술가의 이름이 주는 울림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문장이 끌고 가는 바깥 모양의 질서에만 의지할 수 없다. 감상이 반쪽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독자의 문제인지 시인의 문제인지는 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눈에 띄는 것은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 이름이 요구하는 체험의 사건성 때문에 시가 수필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자는 잘못 편집된 화면 같다.★★☆☆☆[4337. 8. 20.]    
151    시집 1000권 읽기 77 댓글:  조회:1910  추천:0  2015-02-11
761□조국의 별□고은, 창비시선 41, 창작과비평사, 1984   시는 말로 하는 노래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는 시집이다. 격정의 끝에서 나오는 말은 모든 것이 노래가 된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격한 감정으로 내뱉는 말은 노래가 된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그 목표를 방해하는 모든 조건들에 부딪히면서 느끼는 뜨거운 분노를 노래하는 데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생각나는 대로 토하고 소리지르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 격정의 순간 속에 자신을 올려놓고 거기서 소리를 질러대는데 시가 나오지 않을 턱이 없다. 감정의 절정에서 조금만 비켜서면 그대로 죽음이 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몇 권 읽은 고은의 시 중에서 이런 방법론이 가장 잘 살아있는 시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절정의 정상에서 단 한 발짝도 비켜서지 않고 신들린 무당처럼 작두를 타고 있다. 이 시집을 보면 같은 운동권 시를 쓰면서도 어째서 다른 시인들이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정에서 한 발 비켜선 까닭이다. 그것은 시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시의 문법을 지켜서 감동을 전달하겠다는 선의의 이 시인들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쓰면서 표현을 살피고 감정의 흐름을 계산하고 기승전결의 구도를 따라가려 애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구조에 어쩐지 어긋나는 감정들은 시의 밖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걸러진 익숙한 감정들만이 시 속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니 걸러진 감정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고은의 이 시집에서는 그러한 방법론을 몽땅 버렸다. 오로지 절정에 올라있는 뜨거운 감정만을 가지고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입에서 터져 나오는 대로 소리 지르고, 닥치는 대로 받아쓴 것이다. 이런 시인들은 즉흥시를 쓰나 시간을 갖고 꼼꼼하게 쓰나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한 순간에 휘갈겨놓은 즉흥시라고 봐야 한다. 전근대의 언어, 자본의 언어인 한자를 버리지 못한 것은 무슨 뜻인가?★★★☆☆[4337. 8. 11.]   762□고두미 마을에서□도종환, 창비시선 48, 창작과비평사, 1985   흥분하지 않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재주이고, 그 재주는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재주라기보다는 자세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흥분할 곳에서 흥분하지 않는 것은 단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단련이 곳곳에서 시를 냉정하고 침착하게 만든다. 다만 할 말의 무게 때문에 시들이 단순해진 것이 문제인데, 표제작인 처럼 역동성이 넘치는 작품을 쓰는 것이 동일한 세계를 반복할 때 오는 지루함을 극복하는 길이다. 할 말의 방향과 그 할 말을 할 말처럼 들리게 하기 위하여 어떤 자리에서 말을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는 시집이다. 한자는 지울 수 없는 잡티다.★★★☆☆[4337. 8. 11.]   763□벽을 문으로□임동확, 문학과지성시인선 149, 문학과지성사, 1994   내면의 성찰이 아주 돋보이는 시집이다. 시각을 자신의 내부로 돌렸을 때 나타나는 심리와 삶의 깨달음을 서술한 시집이다. 심경(心經)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이런 의도를 스스로 나타낸 것이리라. 표현 여부를 떠나서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간 역량이 놀랍다. 대부분 현실을 다루던 시인들이 마음속으로 물러나면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신세타령으로 똥칠을 하기 쉬운데, 이 시인은 과거를 다루면서도 그 상처와 상처를 낸 현실에 대한 자기각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기실은 현실 문제의 연장이다.   시집에서 굵직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이미지가 물이다. 시인 자신이 의식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바다, 강, 냇물, 습기 같은 이미지들이 시집 전체의 사상을 떠받치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은 생명의 상징이니, 과거를 반추하고 현실을 돌아보는 소재와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런데 시의 정서가 격렬한데, 그래서 그런가 아직 거칠다는 느낌이 든다. 한자가 너무 많고 잘못 쓴 낱말도 있다. 그리고 선이나 불이니 하는 불교쪽의 이미지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설령 꼭 필요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도피의 흔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4337. 8. 12.]   764□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황인숙, 문학과지성시인선 147, 문학과지성사, 1994   시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늙은 시인의 사고와 감수성을 10대의 사춘기에 잡아두고 있다. 사춘기는 인생의 봄이고, 봄은 싹이 나오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싹이 어떤 모양으로 자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야 그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사춘기의 감정이 들쭉날쭉에 오리무중인 것은 아직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혼돈이고 그 혼돈은 그 이전의 사람들이 겪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창조성이 깃든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거기 머물러서 그때 느끼는 그 혼돈과 어지러운 감성이 세계의 전부이며, 그 전부를 보는 눈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망발이다. 그것이 성숙해가는 인간성의 한 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거기에 안착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창구 노릇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바다.   인생에 원래 들어있는 절망이라든가 외로움 같은 것이 강고하고 견디기 힘들다고 해서 스스로 자라기를 두려워하거나 뻔히 보이는 그곳으로 가기를 거부하는 것은 일종의 치기 어린 투정이고, 투정은 10대에나 하는 짓이다. 투정은 처음엔 들어줄 만하지만, 자꾸 들으면 짜증난다. 투정은 끝내 제 욕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정 중에 가장 쓸 만한 것이 자살이다. 그것은 그의 삶을 숭고하게라도 해주기 때문이다.★☆☆☆☆[4337. 8. 12.]   765□강 깊은 당신 편지□김윤배, 문학과지성시인선 109, 문학과지성사, 1991 766□굴욕은 아름답다□김윤배, 문학과지성시인선 141, 문학과지성사, 1994 767□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있다□김윤배, 문학과지성시인선 195, 문학과지성사, 1997   뱃대를 꽉 조이지 않은 황소처럼 말들이 헐거운 채로 수레를 끌고 있다. 한 꺼풀을 벗지 못해서 그저 묘사로 머물고 마는 시가 태반이다. 앞에서 제시된 상황을 그냥 좀 더 보태고 부풀려주는 정도로 이미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앞서 제시된 상황을 한 치 오차 없이 다음 장면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결구력(結構力)과 복선을 집어넣어서 다음 이미지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짧은 양식으로 주제를 전해야 하는 시의 특성상 장황해진다. 정곡을 찌르지 못하기 때문에 주제를 좀 더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비슷한 이미지를 다시 반복하여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시가 길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더 긴 시들이 너무 많다. 이것은 각 시에서 주제를 분명히 정하지 못하고 막연히 이미지만 설정한 상태에서 시를 쓰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미지가 잡혔더라도 주제를 한 번 더 확인해야 하고, 그 주제에 맞는 이미지가 아닌 경우에는 단호하게 잘라서 시 한 편의 이미지 흐름을 필연성으로만 연결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도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 시이다. 시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시의 방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4337. 8. 12.]   768□약쑥 개쑥□박태일, 문학과지성시인선 155, 문학과지성사, 1995   시는 언어에 개의치 않는다. 시는 언어를 통해 언어를 넘어서야 하는 갈래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 틀의 아귀를 어긋나게 하여 의미가 아닌 정서를 전달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소설을 쓴다면 크게 빛을 볼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시에서도 언어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미지의 흐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언어들은 죽은 언어이다. 때로 이미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말들이 제대로 쓰이는 데도 시에서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물론 그 반대로 옛말이 쓰여서 오히려 빛을 내는 시들도 있다. 그것은 방법상의 문제겠지만, 시 안에서 언어의 낯선 환경 때문에 의미가 혼돈을 일으키고, 그 언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희미해져서 줄거리만이 남는다면, 애써 시도하는 아름다운 말 지키기 역시 수단을 위해 목적을 버린 경우에 해당한다.★★☆☆☆[4337. 8. 13.]   769□슬픈 게이□채호기, 문학과지성시인선 150, 문학과지성사, 1994   모색의 시랄까? 정신은 치열한데, 그 정신의 방향이 아직 분명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러 방향으로 모색을 시도하는 중이다. 그래서 언어 역시 분명한 방향을 지닌 것보다는 상상의 내면에 집착하여 상상의 빛깔을 보여주는 단계에 머물러있다. 실은 모색의 시대에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성취를 보이는 시집이다. 그 머무름 때문에 시가 정체된 듯한 느낌을 받고, 이미지들 역시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고요하다. 상상력에도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을 설정해주지 않으면 이런 정체감은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의 문제겠지만, 그런 방향이 잡히면 맹렬한 속도로 달려갈 이미지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 속도감이 실려야 제대로 된 시가 나올 것이다. 한자는 정체의 한 부분이다.★★☆☆☆[4337. 8. 14.]   770□네 속의 나 같은 칼날□강유정, 문학과지성시인선 154, 문학과지성사, 1995   시는 될수록 숨겨서 수수께끼 풀 듯이 해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색깔 감각이나 대상 인식의 흔적에서 미술 전공자의 냄새가 물씬 난다. 그런데 짧은 시들에서 볼 수 있는 제시의 방법은 그런 제시의 투가 어떤 세계관을 전제로 할 때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다. 예컨대 당시의 간략한 풍경묘사법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한 묘사 속에서 다시 더 한 번 감추는 기법을 택하는 것은 어려 모로 위험한 일이고, 위험한 일을 자초하는 것은 의식이 시의 실험에 가 닿아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제를 말하는 대신 색깔로 나타내는 미술의 특성이 시에서 실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간다.   라는 15편짜리 연작시 역시 아주 특이한 시집이다.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어떤 기법을 토대로 쓰여진 시 같다. 주제는 관음증의 사회학과 인간학에 관한 영역일 듯한데, 그것을 그림 여러 장을 겹쳐놓은 듯한 몽환 기법으로 풀어간 것은 신선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시에서 주제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면 그것 역시 위험한 실험이고, 실험은 실험이 갖는 사회사의 맥락이 중요한 까닭에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시를 수수께끼처럼 제시해야 한다고 하는 믿음은 시의 본래 성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다.★☆☆☆☆[4337. 8. 15.]    
150    시집 1000권 읽기 76 댓글:  조회:1919  추천:0  2015-02-11
  751□사자 도망간다 사자 잡아라□장경린, 문학과지성시인선 135, 문학과지성사, 1993   할말을 숨기고 냉정하게 현상을 포착하여 제시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같은 시를 보면 상상력의 순도 또한 높고 화려하다. 그런데 이자가 문제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이자로 대체했는데, 그것이 한 언어로 교체됨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오는 상상력을 많이 삭감시킨 경우이다. 어떤 일관된 원리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을 것 같은데, 그것을 특정한 말로 대체한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 말이 시 안에서 풀리는 수가 있고 풀리지 않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잘 풀리면 좋지만, 제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억지 같은 인상을 주거나 상상력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낸다. 차라리 숫자로 대체한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전골과 찌개 연작은 역작이기는 하지만 애써 냉정하게 유지했던 것을 함부로 드러낸 꼴이 되었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여서 그랬을 것 같은데, 어쩐지 그런 식으로 뒤섞어놓는 것은 통쾌할지는 몰라도 깊이 파고드는 효과는 적다. 한번 냉정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좋은 세계를 가꿀 수 있는 능력이자 비결이다.★★☆☆☆[4337. 8. 8.]   752□신성한 숲□조정권, 문학과지성시인선 145, 문학과지성사, 1994   말로 전하기 어려운 커다란 주제에 오래 집착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말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다. 그럴 때는 이렇게 떠들어도 마뜩찮고, 저렇게 지껄여도 못마땅하다. 정확하지 않아도 말은 나와서 표현은 그럴 듯한데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빠져있다. 그리고 그것이 시의 형식을 빌면 틀림없이 상상의 단계를 한두 차례 뛰어넘어서 상징 비슷한 분위기를 내면서 의미가 뒤엉킨다. 당연히 시가 어려워진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발상은 규모가 큰데, 정작 본질을 찌르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이미지들이 자꾸 떠돈다. 특히나 독일 시편들은 출발할 때부터 너무 큰 부담을 갖고 쓴 시들이다. 그래서 알고 있는 지식을 소화하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도 잘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뾰족한 상징의 수법을 명징하게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럴 때는 억지로 말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말이 저절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자는 어쨌거나 불필요한 것이다.★★☆☆☆[4337. 8. 8.]   753□개밥풀□이동순, 창비시선 24, 창작과비평사, 1980   은 다시 보아도 걸작이다.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는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는 것인데, 너무 낮게 날아서 자세히 봤지만 멀리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미지에 대한 묘사력이 아주 뛰어난데도 세세한 부분에 너무 집착해서 보여줌으로써 전체의 주제를 전하는 데 상당한 장애를 받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런 태도가 사물에 대한 해석을 무리한 단계까지 끌고 나가게 한다는 점이다. 사물과 사건에는 그것이 갖는 고유한 이미지와 메시지의 영역이 있다. 그 영역 바깥까지 벗어나면 그럴 듯할지는 몰라도, 읽는 사람은 거의 본능에 가깝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고개가 외로 틀어지는 순간 감동은 사라진다. 이런 것은 대상에 대해 너무 무리한 해석을 가해서 생기는 일이다. 좀 더 멀찌감치 멀어져서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 한자는 불필요한 도구이다.★★☆☆☆[4337. 8. 9.]   754□봄의 소리□김창범, 창비시선 31, 창작과비평사, 1981   남들과는 다른 묘한 기품이 시에 흐른다. 쉽게 말하려 하지 않고 아껴서 세세하게 말하려고 하는 태도도 돋보인다. 그런데 주제가 뚜렷한 시들은 너무 조급하고, 주제가 흐릿한 시들은 너무 물렁하다. 대체로 두 계열로 나뉘는데, 시대의 탓인지 너무 에둘러 말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주제가 분명한데도 답답한 맛이 남아있다. 직접 뼈를 드러내야 할 것들도 살로 덮어버린 까닭이다. 한자는 한계이다.★★☆☆☆[4337. 8. 10.]   755□이 가슴 북이 되어□이운룡, 창비시선 35, 창작과비평사, 1982   사상성이 시를 밀고 가는 형국이다. 세계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관점이 좋다. 확고히 선 사상을 드러내기 위하여 시의 형식을 희생시키는 면이 아주 많다. 우선 불필요한 반복이 이루어지고, 그 때문에 시가 너무 길어졌다. 중언부언 말을 하면 독자는 중간에서 읽기를 마친다. 더 읽어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들이 시의 형식을 이완시킨다. 특히 앞부분의 시들이 그렇다. 좋은 사상이라고 해서 함부로 드러내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한자는 이래저래 장애물이다.★☆☆☆☆[4337. 8. 10.]   756□아도□송수권, 창비시선 52, 창작과비평사, 1985   남도의 정서가 잘 살아있는 시집이다. 무엇보다도 할 말이 뚜렷하게 들어있는 것이 이 시집의 장점이다. 많은 시집들이 할 말은 뚜렷한데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답답한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은 할 말도 뚜렷하고 그것이 시에 잘 실렸다. 그것은 시인이 말을 해야 할 곳에서 할 말을 과감하게 할 줄 하는 방법을 안다는 뜻이다. 다만 할 말이 너무 강하다 보니 자꾸 사건이 등장하고 시가 길어진다. 말을 자꾸 만들자니 그렇게 된 것이다. 호남의 가락도 잘 살아있지만, 그 위로 툭 불거진 말들이 시를 거칠게 한다. 한자도 거친 부분의 하나이다.★★☆☆☆[4337. 8. 10.]   757□끝끝내 너는□나종영, 창비시선 53, 창작과비평사, 1985   바둑에 우주류가 있고, 거문고에 신쾌동류가 있듯이, 시에도 민중류라는 것이 있어 100권을 읽어도 같은 어조, 같은 세계, 같은 구조, 같은 상상을 보여주는 시들이 있다. 말하자면 그 민중류의 전형인 시집이다. 민중류에서는 개인이 소멸한다. 이웃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정신대로 끌려간 여자는 내 이모이고 공장에 다니는 여자는 내 누이다. 화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내 안에 있는 것인데, 그런 발상은 근대시 이전의 민요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현대판 민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인식이 독창성을 보이기는 거의 힘들다. 같은 말에 분노를 실으면 그것으로 박수를 받는다. 개인이 공공의 목적 뒤로 숨어버린 시이다. 하지만 그 시를 읽는 자는 늘 개인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실이 시 전체를 관념 덩어리로 만든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단점이다. 그러나 한자는 어쩔 수 있는 대상이다.★☆☆☆☆[4337. 8. 11.]   758□겨울의 꿈□조재훈, 창비시선 42, 창작과비평사, 1984   시에 아주 독특한 맛이 있다. 우선 허영끼가 거의 없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눈과 그것을 노래하는 어조가 아주 차분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아서 여리디 여린 감성까지도 자라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 한 편 한 편에 공을 들이는 태도가 시 전편에 살아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집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시에서 추구하는 주제가 아직 뚜렷이 이것이다 라는 정도까지 나아가지를 못해서 특별한 하자가 없는데도 시들이 좀 흐리멍덩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시집 후반부의 부여 관련 시들은 일관된 흐름과 어조를 담고 있어서 한 방향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과 주제의 확보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그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애써 이룬 시에 화룡점정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것은 대부분 사상의 몫이어서 쉽게 해결될 것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4337. 8. 11.]   759□가거도□조태일, 창비시선 37, 창작과비평사, 1983   험한 시대에는 늘 필화라는 것이 있어서 글쓰는 사람들 자신이 그것을 피하여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시에서는 돌려말하기를 택하는데, 이 시집 속의 시들도 그런 시대 상황 때문일까? 본질을 찌르지 못하고 가장자리로만 돌고 있다. 그리고 끝내 에도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모색에서 그쳤다. 같은 작품에서는 그 방법의 일단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너무 돌고 있어서 방법상의 자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뒤쪽의, 신문에 실린 시들이 굵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라고 봐야 할 것 같다.★★☆☆☆[4337. 8. 11.]   760□하급반 교과서□김명수, 창비시선 39, 창작과비평사, 1983   방법론은 확실한데, 너무 원칙 지키기에 급급하여 좀 답답해 보이는 시집이다. 사물에서 어떤 조짐을 읽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노래하는 것은 서정시의 오랜 전통이다. 그리고 그런 발상의 계기가 되는 것이 없으면 노래하기 힘든 것이 서정시이기도 하다. 그런 원칙에 입각하여 마주치는 사물의 성격을 크게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적당히 잘 집어넣고 있다. 바로 그 성실한 친절 때문에 시가 길어지고, 이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의 격렬한 감정이 시의 장치에 붙잡혀서 화끈하게 분출하지 못하고 있다. 추구하는 세계가 변혁을 노래하는 것이면 시에는 격정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시의 상상력으로 걸러내기 위해 어떤 장치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그 장치가 너무 전통에 기대어 있어 새로운 그 격정을 담아내기 어려운 것이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을 그대로 지킬 경우 성실해 보일지언정 새로운 세계를 담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청산하지 못한 한자 역시 그렇다.★★☆☆☆[4337. 8. 11.]  
149    시집 1000권 읽기 75 댓글:  조회:2055  추천:0  2015-02-11
    741□속이 보이는 심연으로□최하림, 문학과지성시인선 107, 문학과지성사, 1991   시에 불필요한 이미지가 거의 없고 군더더기 역시 거의 없어서 시를 쓰는 역량이 대단한 시인임을 알 수 있는 시집이다. 적당히 부푼 몸집과 주제를 뼈로 제시하지 않고 살에 담아서 제시하는 풍만함도 갖추었다. 다만 제1부에서 보이는 상실감과 고독에 반하는 정서들이 그 뒷부분에 드문드문 나타나 애써 이룬 균형감을 깨는 것이 흠이다. 이것은 다양한 삶의 정서 가운데 일부러 어느 하나를 고집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런 방법상의 선택과 선별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만 온전한 시집이 될 것이다. 게다가 개인의 내력을 다룬 뒷부분의 시들은 아주 잘 쓴 시들이지만, 체험에 매몰되어 객관성을 잃은 부분도 적지 않다. 전체의 주제에 매달려 표현이 좀 밋밋해진 것이, 단점은 아니지만, 좋은 시를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한자는 버려야 할 것이다.★★☆☆☆[4337. 8. 5.]   742□서울 세노야□곽재구, 문학과지성시인선 95, 문학과지성사, 1990   1980년대의 시가 어떤 것이며, 그것이 10년밖에 안 된 지금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졌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다. 광주를 원죄로 한 지식인의 시 쓰기와 그러한 행위의 절정과 몰락의 기미를 몽땅 보여주는 1980년대 시의 한 전범이다. 요컨대 삶이 없다. 이 시집 안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1980년대라는 정치이념으로 재구성한 허구이다. 허구가 실제로 느껴지던 때가 1980년대이다. 이웃의 아픔이 내 아픔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환상의 시대가 1980년대였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과 절망을 나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던 시대의 시를 이보다 더 잘 대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독자로부터 왕따 당하는 시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것까지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관념은 유행 같은 것이어서 그 유행에 빠져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이 늘 최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철만 지나면 우스워지는 것이 유행이다. 그 유행의 절정에서 한 시대를 울린 이념의 맹랑함과 시인의 진정한 리얼리티를 잃어버린 시의 운명을 본다. 시에서 개인의 삶이 빠지면 그것은 만담이거나 연설문일 뿐이다.★★☆☆☆[4337. 8. 6.]   743□혼자 가는 먼 집□허수경, 문학과지성시인선 118, 문학과지성사, 1992   시간에 대한 과격한 판단과 무모한 반발이 시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시집이다. 그래서 시에는 늙음, 울음, 병, 상처 같은 것으로 가득 차게 된다. 과격하다는 건 자신의 좌절을 중심으로 시간을 재구성했다는 뜻이고, 무모한 반발이라는 건 모순을 용납할 만한 곳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형식을 제대로 갖추는 것조차 귀찮아하게 된 것이다. 송곳처럼 예민해진 자신의 감성과 판단으로 세계를 읽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예리함만 살아있다면 다른 어설픈 수사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낸다. 그렇기 때문에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라는 시집을 낸 시인에게서 이런 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둘 중의 하나는 가짜일 텐데, 그럴 만큼 처세에 능란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 세월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웃에 눈을 돌렸다고 보아야 할까? 이제는 떠나도 되는 세계일까? 그렇기 때문에 그 과격한 판단조차도 믿음이 가질 않는다. 언제든지 버리고 돌아설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논조를 지닌 시인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반응은 자살이다. 절망도 한자로 한다는 것이 우습다.★★★☆☆[4337. 8. 6.]   744□두만강 여울 소리□연변교포시인 시선집, 문학과지성시인선 113, 문학과지성사, 1991   외국에서 언어의 정체성을 갖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뻔히 보이는 장애를 넘기 위해서 스스로 택하는 길이라면 그것은 시 이전에 정신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4337. 8. 6.]   745□서울 1992년 겨울□이세방, 문학과지성시인선 120, 문학과지성사, 1992   불필요한 표현에 집착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마주치고 느끼는 것들을 세심하게 그려낸 것이 아주 돋보이는 시집이다. 외국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놓치기 쉬운 큰 문제, 예컨대 통일이라든지 민족이라든지 하는 것들까지 무리 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설명 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에서는 설명이 들어가면 긴장이 떨어지고 함축성이 줄어든다. 수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설명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판단을 잘 해야 한다. 마음이 급하면 설명하기 마련이다. 설명해도 안 될 것은 없지만, 설명을 하면 시는 길어진다. 길어지면 호흡이 흩어진다. 호흡이 흩어진 시는 긴장을 잃고, 긴장을 잃은 시는 늙은이의 주름살 같다.★☆☆☆☆[4337. 8. 6.]   746□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이준관, 문학과지성시인선 122, 문학과지성사, 1992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주 희귀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갖추었다. 보통 시인들한테서 보기 힘든 희귀한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시가 거칠다. 세세한 부분에서 제대로 처리를 못해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지 못하는 흠을 갖고 있다. 먼저 불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다. 생략해도 좋을 그런 부분들이 거의 없는 곳이 없다. 이것은 시인이 직관한 아름다움이 기존의 세계와 너무 달라서 시인 스스로 자신만의 독창성을 언어화시키는 데 필요한 화법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것을 시인만의 어눌함이라고 강변하려 하면 스스로 대화를 중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좋은 이미지를 감탄형으로 말해버림으로써 이미지와 주제의 불필요한 중복이 많이 빚어진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옛 풍경을 뜽금없이 등장시키는 경우가 잦다. 그런 세계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때문이겠지만, 그런 풍경이 단순히 소재로 등장하는 것과, 그런 배경으로 작용하여 시 전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다. 시집 전체에서 시들을 좀 더 매끈하게 다듬는 것이 남은 숙제가 되겠다. 한자는 불필요한 숙제이다.★★★☆☆[4337. 8. 7.]   747□운주사 가는 길□임동확, 문학과지성시인선 123, 문학과지성사, 1992   정신의 순결주의라고나 할까? 지켜야 할 것과 지켜지지 않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러나 역사로부터 받은 상처가 마음에 큰 짐이 되어 상상력이 짓눌린 경우에 해당한다. 너무나 큰 짐의 무게에 주제가 상상력을 딱딱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로부터 마음의 짐을 부려놓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지만, 그 짐에 짓눌려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 역시 역사의 몫이라고 해도, 시인으로서는 큰 단점이다. 오히려 억눌린 상상력을 구원해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역사의 그 아픔을 더욱 잘 드러내어 독자를 그리로 안내하는 것이 역사의 짐을 벗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아픔을 끌어안고 삭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때로 멀리 솟아서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자는 빨리 벗어야 할 짐이다.★★☆☆☆[4337. 8. 7.]   748□내 무덤, 푸르고□최승자, 문학과지성시인선 133, 문학과지성사, 1993   세계를 정의한다는 것은 개념화하는 일이고, 개념은 사고의 추리과정이라는 점에서 시에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시에서 꼭 필요한 것은 개념화 과정에서 덧들어나는 감정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를 개념화하고 그것을 공격하고자 할 때는 이런 감정들이 뒤쪽으로 물러서서 시가 자칫하면 공허해진다. 1980년대의 노동시가 범한 오류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이른바 문명비판을 기치로 내건 시들 역시 이런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집은 상상력의 울림이 없다. 주제가 겉으로 너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이미지들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복종하고 있다. 그래서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칭찬 받을 일이지만, 시를 삶의 거울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북살스럽고 어색하다. 한자 역시 어색하다.★★☆☆☆[4337. 8. 7.]   749□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박형준, 문학과지성시인선 144, 문학과지성사, 1994   이미지를 처리하는 능력도 좋고 시를 매끄럽게 다듬는 재주도 제법인데, 주제 빈약이다. 동원되는 이미지나 시어의 양에 견줄 때 주제가 너무 약하다. 주제 빈약은 어떤 능력으로도 대체 못할 결정타이다. 그리고 세부를 묘사하는 능력은 뛰어난데, 전체를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한 경우라 하겠다. 따라서 동원된 이미지나 시어들이 시 안에서 크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과감하게 잘라버려서 시가 가볍지 않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게다가 시집 뒤쪽에는 습작기의 탈을 벗지 못한 시들이 꽤 실려있다. 한자는 습작기 때 버렸어야 할 물건이다.★☆☆☆☆[4337. 8. 7.]   750□무늬□이시영, 문학과지성시인선 137, 문학과지성사, 1994   시가 짧은 양식이고, 짧아도 큰 울림을 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시집이다. 짧을 수 있는 것은 인식이 깊고 그 만큼 안으로 응축되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부분 삶의 이력에서 오는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젊은 시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깊은 맛이 시 곳곳에 들어있다. 다만 시의 절반 가량이 더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운 수준에 머물렀다. 짧게만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요, 길게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지만, 짧은 호흡의 관성에 밀려 풀어야 할 곳을 덜 푼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구성력 여하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풀 곳에서는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 시이다. 한자는 풀리지 않는 군더더기이다.★★☆☆☆[4337. 8. 7.]    
148    시집 1000권 읽기 74 댓글:  조회:1857  추천:0  2015-02-11
731□달넘세□신경림, 창비시선 51, 창작과비평사, 1985   관심이나 논조가 와 비슷한데, 는 냉정하게 보여주는 수법이 주를 이루었는데, 여기서는 말하는 이가 조금 더 앞으로 나섰다. 그 말하는 이의 자격과 관심이 남들로부터 무리한 발설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어떤 선이 시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데, 격렬한 발언이 판을 치던 당시에는 차분했을 어조가 지금 보니 성급한 부분이 적지 않고 관념성에도 약간 경도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런 논조에 일조하는 것이 민요의 가락 속으로 들어간 신념이다. 민요는 지루한 맛이 있고 그 노래의 당사자들이 보는 세계관을 싣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장을 새롭게 담기가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락이 주제를 밀어붙여서 몽롱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바로 이 단점이 주제의 불투명성을 초래하고 있다. 여러 모로 의 뒷심을 넘어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4337. 8. 3.]   732□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9, 문학과지성사, 1981   아마도 한국에서 이상의 유산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시인일 것 같다. 이상이 타고난 바가 많다면 오규원은 일부러 택한 것이기가 쉽다. 사물과 세상의 한 측면만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그 시각의 확고함은 동일하다. 색은 공과 다르지만 색이 곧 공이기도 해서 그 중 어느 하나를 천착하면 나머지가 저절로 드러나는 이치를 둘 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움직임보다는 움직이는 것들을 못 움직이게 만드는 세계의 경직성과 거기에 매몰되어 가는 자아와 세계의 모습을 잘 포착해내는 것이다.   다만 그런 시각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만행이 시작된다는 점을 말한다면 그것은 시인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일까? 만행은 관념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 없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만행 직전까지 가까스로 이른 공의 세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세계는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깨달음을 구현하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의연히 있을 따름이다. 그것에서 허무와 죽음을 읽고 경직성을 읽는 것은 인간의 운명일 뿐이다. 이 시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가? 그냥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인가? 하지만 말하는 태도는 그것을, 그리고 인간을 경멸하는 색깔을 지니고 있다. 여러 가지 장치 뒤로 숨으려고 하고 있지만, 풍자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풍자는 날카롭기는 하지만 그 바탕이 무기력에 있다. 뛰어난 개인의 면벽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면벽 저 뒤쪽에서 꿈틀거리는 삶의 약동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서도 일부러 모른 체한다면 마주한 것은 그냥 벽일 뿐이다. 한자 역시 캄캄절벽이다.★★★★☆[4337. 8. 3.]   733□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동천사, 1987   바다에 관한 시로는 이만 한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겠다. 그 만큼 바다가 주는 풍경과 내면의 의식이 아주 잘 어울려서 한 세계를 이루었다. 바다에 대한 수사보다는 바다와 어울린 시인의 사고와 삶이 잘 드러났다. 그리고 성산포라는 한 지역에서 바다를 바라본 시각 또한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시의 주제가 개인의 내면으로 고정되면서, 성산포라는 지명이 갖는 신화의 세계라든가 환경, 나아가 그곳 사람들의 삶이 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다. 그렇기는 해도 바다가 일으키는 무한한 상상력과 그것이 영혼에 어떤 울림을 주어 삶의 깨달음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4337. 8. 4.]   734□고슴도치의 마을□최승호, 문학과지성시인선 46, 문학과지성사, 1985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미지들이 설정된 주제를 풀어내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음질치는 역동성이 잘 살아있는 시집이다. 이미지란 모름지기 이렇게 풀어져야만 한 오리 의혹도 없이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시집 전체의 주제가 악마주의랄까? 아니면 해골주의랄까? 비참주의랄까? 비참한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삶을 요소요소에서 잘 비추었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는 좀 인색한 편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끌어야 한다는 어떤 자부심 내지는 선민의식 때문이다. 그리고 보여주기 수법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우회의 방법이 때로 갑갑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파헤치고자 하는 공격성을 제공하는 삶의 근원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했을 법도 한데, 그 부분을 도외시하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문학이 삶이 아니기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4337. 8. 4.]   735□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이재무, 문학과지성시인선 89, 문학과지성사, 1990   세부 묘사에 대한 성실성이라든지, 함부로 말하지 않고 표현으로 대체하려는 태도가 아주 좋은데, 아쉬운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마음이 너무 앞선 시집이다. 그래서 이미지를 잘 끌어가다가도 끝내 참지 못하고 할말을 해버리고 만다. 할말을 해야 할 곳에서 해야 이미지도 살고 시도 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곳에서 말을 하면 그건 그냥 말일 뿐이다. 시에서 말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리한 연상과 비유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길로 걸어나온다든가 하는 것은, 하자면 안 될 것은 없지만, 해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시접 전체에서 걸러버렸으면 하는 시들이 많다. 개인의 체험을 시 속에 끌어들일 때는 자신의 감정이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동의 근원을 독자보다 먼저 내가 토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양한 표현력을 갖추었는데도 여러 가지로 아쉬운 시집이다.★★☆☆☆[4337. 8. 4.]   736□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박라연, 문학과지성시인선 98, 문학과지성사, 1990   시를 쓰는 방법의 확고함에 눈에 띈다. 비유를 바탕으로 한 동일시의 기법이다. 이 기법은 가장 구태의연한 방법이면서도 시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굳이 모험을 할 필요도 없고 실험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도 찾기 어렵다. 다만 비유의 찾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좀 게을러지기 쉽고, 또 다작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자신의 말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방법의 한계이다. 드러내고자 하는 원관념이 보조관념과 무리 없이 만나서 한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체험이 특수하므로 그 특수함을 어떻게 보편화시켜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좀 소홀하여 자서전 비슷한 시들이 많다. 나에게 절실하다고 해서 독자들까지 그러리라고 추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앞부분의 몇 편이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서 너무 빨리 시집을 낸 경우이다. 뒷부분의 습작기 시들은 없느니만 못하다.★★☆☆☆[4337. 8. 4.]   737□시집□정남식, 문학과지성시인선 99, 문학과지성사, 1990   사람의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명멸한다. 그런 명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이해하는 한 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혼자 이해하고 마는 것이라면 몰라도 어떤 예술의 형태로 드러날 때는 그런 명멸의 흔적들을 재배치하게 된다. 그것은 곧 질서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도 질서의 흐름을 타지 않고서는 예술로 올라서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게 하는 시집이다. 왜 이런 시를 썼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미 박남철 같은 훌륭한 전위를 체험한 사람에게 이 시집은 너무나 박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앞의 시 몇 편은 그저 말장난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지경이다. 시 같은 않은 시를 체험하게 하려 한 의도라면 지금 나와있는 수많은 시집에서도 그런 체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같잖은 시집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박남철의 경우, 시에서 정신의 절실함이 절절하게 우러난다. 형식이 일그러진 시들의 대부분은 그런 절실함이 무언가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집에서는 그런 절실함 대신 장난끼가 너무 많이 느껴진다. 시에서도 장난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장난을 위한 장난 같은 장난은 파괴력이 둔해진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것도 시에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피차 할말이 없는 일이다. 전위에 한자가 꼭 필요한가 역시 생각해볼 일이다.★☆☆☆☆[4337. 8. 5.]   738□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이태수, 문학과지성시인선 92, 문학과지성사, 1990   내 안에 또 다른 를 설정하여 그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내 안에 누적된 체험과 사고를 풀어내는 방법을 택한 것만으로도 이 시인의 경륜과 방법의 확고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들이 모두 고른 화법과 고른 수준을 보여주는 비결을 얻게 된다. 다만 의 범주가 너무 좁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사실 이 는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면 시 세계 역시 무한하게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체험의 극히 제한된 부분만을 묘사함으로써 라는 말의 상징성이 갖는 풍부한 함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가 특별히 처지는 것이 없으면서도 천편일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따라서 의 내용을 넓히고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이 좋은 시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에 대한 집착이 좁고 강하기 때문에 시들이 를 전달하는 데 급급해서 정작 세부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표현의 신선함 같은 것이 다소 미흡한 형편이다. 한자는 어찌됐든 칭찬 받을 일이 못 된다.★★☆☆☆[4337. 8. 5.]   739□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214, 문학과지성사, 1998   이제야 읽을 만한 수준까지 왔다. 불필요한 말이 많이 없어지고, 제시한 것에 울림을 만들어서 독자가 주제를 유추하여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시의 영역에 아주 많이 접근했다. 그러나 시가 되지 않을 것들을 붙잡고 불필요하게 집착하는 것이나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말해서 애써 이룬 맛을 깎아먹는 버릇은 여전하다. 필요한 것들만 남아서 할 말만 하는 시의 절제력이 더 필요하다.★★☆☆☆[4337. 8. 5.]   740□그 나라 하늘빛□마종기, 문학과지성시인선 106, 문학과지성사, 1991   시의 세계가 허황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찾아낸 소재를 꼼꼼하게 기록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성실성이 한 눈에 드러난다. 같은 작품은 오래 기억할 만한 좋은 작품이다. 게다가 시인이 한국에 살지 않고 오래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참고하면 한국에서 시를 쓰는 사람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노력을 들였을 것으로 보아, 시로 혼자서 이 정도의 수준을 이룬 것에 대해서는 큰 박수를 쳐줄 일이다. 다만 시들이 대부분 소품에 머물러 있다는 점과 감정이 잘 조절되지 않아서 시가 장황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한자 역시 흠이 된다.★★☆☆☆[4337. 8. 5.]    
147    시집 1000권 읽기 73 댓글:  조회:2071  추천:0  2015-02-11
  721□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하종오, 창비시선 32, 창작과비평사, 1981   소설에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 있다. 마치 신처럼 등장인물의 심리를 다 꿰뚫어본 듯한 태도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시점이다. 이 시집의 화자가 바로 소설로 치면 그런 관점에 해당한다. 그런데 전지적 작가시점의 특징은 화자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설픈 광대로 전락하고 만다. 사물은 그 사물이 갖는 특징이 있고, 그 특징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해석이 정도를 넘어서면 사물의 존재를 해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주장을 살릴 수는 있지만, 시를 살리지는 못한다. 시집 속의 시들 거의가 동일시의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각기 사물이 되어서 본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사물은 내 생각으로부터 이반된다. 그럴 때 시는 관념성이 짙은 넋두리로 변한다. 죽음이 중요한 상징이었던 시대에 다양한 죽음을 노래했으면서도 그것이 시대의 의미를 담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넋두리로 끝난 것은 그러한 오류를 보여주는 예이다. 무리한 해석이 시를 끝내 시답지 못하게 한 시집이다. 다만 운율을 살리려고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시의 관념성을 보완하기 위한 땜질이었다면 그건 자충수이다. 한자는 청산해야 할 악습이다.★★☆☆☆[4337. 7. 22.]   722□전야□이성부, 창비시선 30, 창작과비평사, 1981   한 시인의 정신이 그 시대의 정신을 대신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시인의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영광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가 갖는 막막한 절망의 정서를 시인의 시에서 살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를 통해 말을 하는 시인들의 입을 정권이 닫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답답함은 굴절되어 나타난다. 그 굴절의 모습이 이 시집의 1부에 잘 나타난다. 단단히 정제된 정신이 시 전체의 긴장을 만들고 있다. 2부로 넘어가면서부터 다소 그 긴장이 풀리지만, 그리고 4부에서는 개인의 삶 때문에 시대 전체의 문제가 묽어졌지만, 이 긴장을 낳은 정신이 시에서 영롱하게 빛난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 시인만의 몫이다. 이미지들이 큰 것을 말하기 위해서 제 자리에서 은은히 빛을 내는 그런 절제력은 시 쓰는 재주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한자는 갈수록 오점이 될 것이다.★★★☆☆[4337. 7. 23.]   723□새재□신경림, 창비시선 18, 창작과비평사, 1979   감정을 묘사로 대신하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곳곳에서 불거진 감정들은 이미 무언가 말을 하기로 하고 나선 자의 태도이다. 그 말은 장시 에 와서 활짝 핀다. 서사시의 어려움은 와 라는 어울릴 수 없는 조립에서 온다. 서사는 사건의 양식이지만, 시는 시간의 절단면인 순간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서사시를 쓰는 시인의 임무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조화는 대부분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이 시집의 장시는 아름다운 묘사가 뛰어나지만 결국 사건을 제시하는 방법이 너무 밋밋한 것이 흠이다. 그리고 내용 역시 진부하다. 사건을 시로 다루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가 되겠다. 가 갖는 상징성을 두루 살렸으면 좋겠는데, 그 사건이 일어난 근거지라는 것 이외에는 이 시에서 상징하는 바가 없다. 그리고 사건의 정황을 알아볼 수 있는 시대문제를 제시했어야 하는데, 사건만이 등장하다 보니 모든 상황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서사시에서 그것은 결점이다. 한자는 버릴 수 없는 업보인가?★★★☆☆[4337. 7. 23.]   724□소리집□강은교, 창비시선 34, 창작과비평사, 1982   파도가 없는 바다랄까? 어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고른 투를 보여주는 시집도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밋밋해 보인다. 이 밋밋함은 감정의 모호함과 주제의 관념성 때문에 더하다. 이런 특징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이 정해지지 않은 것과 그나마 하고자 하는 것도 관념성이 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언어가 늘 더 많이 동원된다. 경제성에 민감한 시에서는 단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은 일상의 사물을 다루는 시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시인이 갖는 어조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그런 밋밋함 하나 정도는 있어도 서운치 않으리라. 한자를 청산하지 못한 것 역시 단점이다.★★☆☆☆[4337. 7. 24.]   725□명궁□윤후명, 문학과지성시인선 5, 문학과지성사, 1979   허무주의와 결벽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된 시집이다. 삶은 이런 것이라는 전제와, 시는 이러 해야 한다는 일정한 선이 만나서 다른 관점을 허용치 않는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가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혹독한 모순과 상처로 점철된 삶의 양상들을 나타내는 데 이미지들이 동원되고 있고, 그 부분은 다른 평범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눈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세계여서 이미지의 배열이 아주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설정한 내용이 어려워 이미지가 어려워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시의 방향성이 불필요하게 특별해서 시가 어려워진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가 많고, 그런 이미지들이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삶의 어떤 전제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지를 않는 것이다.   표제작인 의 경우 뛰어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은 이런 태도 때문이다. 죽음의 서슬만을 느끼기에는 활이라고 하는 장비가 갖는 상징성이 너무 확연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태도는 삶을 비극과 종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을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면 이런 시집 하나 정도는 있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다. 한자는 끝내 부담으로 남는다.★★☆☆☆[4337. 8. 2.]   726□아니리□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93, 문학과지성사, 1990 727□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10, 문학과지성사, 1979 728□크낙산의 마음□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50, 문학과지성사, 1986   독일 시인 브레히트 시선 을 읽으면서 시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번역자를 보니 김광규였다. 오늘날 김광규의 시가 그런 꼴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이유였다. 누구나 흉내는 낸다. 그리고 그 흉내가 그대로 그 사람의 한계가 되는 수가 있다. 김광규의 시가 그런 경우이다. 브레히트의 시는 길고 연작이 많다. 시가 길면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긴 호흡을 이용해야 하는 시인의 고육책이다. 그리고 이런 쉬운 어법은 대신에 세계를 보는 명징한 시각으로 보완된다. 세계를 보는 시각이 고르고 새로울 때 쉬운 어법은 그 세계를 드러내는 방법이 된다.   김광규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와 브레히트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는 거의 같은 점이 없다. 규모 면에서 특히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히트의 방법이 김광규의 방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될 수 없는 방법을 자꾸 되는 것으로 하려고 하다 보니 수필체의 어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시의 2할 정도만 추려서 선집을 만든다면 그럭저럭 읽을 만한 시집이 될까, 지금 상태로는 시로 보기 어렵다. 내용이 늘어진 데다가 상징성 또한 약하기 때문이다. 좀 더 응축되어야만 할 시들이다. 쉽게 쓰기 위해 몸부림 친 시에서 한자가 용납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4337. 8. 2.]   729□몰운대 행□황동규, 문학과지성 시인선 101, 문학과지성사, 1991 730□미시령 큰바람□황동규, 문학과지성 시인선 131, 문학과지성사, 1993   김광규 시집 세 권을 거쳐 황동규 시집을 두 권이나 이어 읽으면서 보니 수필과 시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광규의 시는 수필과 시의 관계를, 황동규의 시는 일기와 시의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일기는 개개 사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부분 부분의 사실성이 중요하다. 그 사실성을 통하여 일상을 반추하고 거기서 삶의 교훈을 추론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의 주제도 주제지만 각 절의 묘사가 지향하는 사실 관계와 진실성이 작품의 형상성에 중요한 기능을 맡는다. 그러나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교훈에 가까운 관념이 아니라 그 개념에 대한 암시이나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 사실의 실제성이나 사실성보다는 그것이 갖는 함축성의 확산 가능성을 중요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개되는 이미지에서 그 이미지 자체에 독자의 생각이 머물게 하면 효과가 반감된다. 낱낱의 생각에 붙잡혀서 전체의 상징성이나 감수성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기가 해낼 수 없는 시만의 장점이다.   따라서 낱낱의 이미지가 스스로 의미의 장을 형성하면서 독립하면 안 된다. 전달하고자 하는 감성, 또는 느낌을 그 의미가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이미지에서 다음 이미지로 넘어갈 때 그런 덜컹거림이 있으면 일기로서는 성공일지 모르되 시에서는 실패이다. 바로 이 점을 황동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여행을 다니고 있다. 여행 이미지는 사건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대부분 특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사건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을 띤다. 그 보고서는 다름 아닌 일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시로서는 거의 치명상이다.★★☆☆☆[4337. 8. 2.]    
146    시집 1000권 읽기 72 댓글:  조회:1646  추천:0  2015-02-11
711□청록집□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1946)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집이다. 허투루 쓰인 시어가 하나도 없이 모두 제가 있어야 할 곳에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더욱이 세 명이 낸 합동시집인데도 한 호흡으로 읽힌다는 것이 특이하다. 세 세계가 각기 조금씩 다른 차이를 보이면서도 자연을 바라보는 전통의 어떤 맥락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떤 의도가 작용한 탓이겠지만, 박목월의 경우 자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서 현실마저 제거돼버렸다. 이 점은 조지훈도 마찬가지이다. 절과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한 영역이 잘 살아났다.   여기에는 한시의 작법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전통 계승의 또 다른 국면을 엿볼 수도 있다. 전통을 파내고서 그 자리에 들어앉아 뿌리내린 것이 현대시의 운명이자 경향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또 다른 중요한 면이다.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그 속에 숨긴 의도가 가장 많이 드러난 것이 박두진인데, 어둠과 밝음을 대비시킨 구도가 민족 해방이라는 관념을 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법이라는 것을 첫눈에도 눈치챌 수 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설익은 듯한 느낌마저 들지만, 강점기하의 양심이 어떻게 시의 장식 아래 은폐되었는가 하는 한 전범을 보는 것 같아 오히려 가슴 아프다. 해방 후 작고할 때까지 현실에 대한 비판을 감추지 않았던 노시인의 정신은 이 은폐물 속에 숨어있었던 셈이다.★★★★☆[4337. 7. 20.]   712□와사등□김광균,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4)   방법상의 의도가 너무 돌출하는 바람에 ‘설야’를 빼고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한시의 전통으로 보면 이미지만 남아있는 이런 류의 시는 일종의 퇴영이라고 할 밖에 없다. 이미 있는 훌륭한 전통을 무시하고 생경한 이론으로 시를 쓴다는 것이 이렇듯 허무한 것이다. 극히 절제된 묘사가 뛰어나다. 하지만 한시의 묘사가 마음의 어떤 정황을 드러내기 위해 상징의 차원까지 승화된 반면에 묘사만이 남은 이런 시의 심상은 공허할 따름이다. 다만 이미지즘을 염두에 두고 썼으면서도 그 방법의 투철함에서는 김기림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 김기림이 큰 구도를 갖고 시를 꾸미는 능력이 탁월했다면, 김광균은 극세밀 묘사에 뛰어났던 셈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진 데에다가 그것이 그러내고자 하는 세계까지 갖추어야 제대로 된 시가 될 것이니, 생각하면 한 방법이 완전히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제가 해결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통의 단절과 도외시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이런 시집에서 본다. 유행, 유행 하지만, 뿌리 없는 유행은 공허할 따름이다.★★☆☆☆[4337. 7. 21.]   71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민복, 창비시선 156, 창작과비평사, 1996   격렬한 인식과 사고만으로 시가 될 수 있는가? 앞부분의 시들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시의 감동은 생각의 질서에서 오지만, 격식을 버리고 사고의 뼈대만 추려서 보여주면 당황하게 되는 것이 독자다. 그것은 독자의 몫일 뿐, 시인의 탓은 아니라고 한다면 왕왕 우리가 논하는 시의 형식성은 무엇이 될 것인가? 뒷부분의 시들과 앞부분의 시들은 서로 방향이 달랐어야 한다. 같은 방향으로 서로 다른 감정을 배열했기에 뒷부분의 발랄함이 앞부분의 진중함을 짓눌러버린 결과가 되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관념성이 짙다. 죽음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을 대하는 바탕에는 그에 대한 반발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반발력이 만드는 상상력은 탄력이 있어 좋지만, 그 상상력을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시키는 것은 시에 여러 가지로 불협화음을 일으킬 소지가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아이는 아이처럼 대하고 어른은 어른처럼 대하며, 여자는 여자처럼 대할 일이다. 원리는 같더라도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것이 시다. 한자는 시급히 없애야 할 불협화음이다.★★☆☆☆[4337. 7. 21.]   714□세기말 블루스□신현림, 창비시선 149, 창작과비평사, 1996   멈추지 않는 것이 젊음의 특징이자 권리라면 이 시집은 충분히 젊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의식을 실험하여 이 세계의 비밀을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는 높이 살 만하다. 그리고 뻗어가는 의식의 촉수를 충분히 받아낼 언어의 세계가 확보되어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시어가 시상을 끊지 않고 일관된 천체를 보여줄 줄 아는 것은 젊은 시인치고는 갖추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집에서 노래하는 세계는 언어 안에만 갇혀있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래서 그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림 때문이 아니라 언어가 가둘 수 있는 세계는 그림과 달리 어떤 결론이다. 그 결론이 없기에 활달하지만 언어가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어떤 방향을 향해 시의 의미가 수렴되지 않으면 시에 오래도록 정착하기 어려운 상상력이다. 성급하게 결론을 낼 필요는 없지만 어떤 결론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이 시에 머무는 한 방법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일은 이런 시에서는 위험한 일이다. 독자가 애써 일군 상상력의 세계가 불필요한 친절로 인하여 바람 빠진 풍선이 되면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4337. 7. 21.]   715□조벽암 시 전집□이동순 김석영 편, 소명출판, 2004   시가 정치를 만날 때 어떤 모습을 갖게 되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집이다. 말하자면 선전 선동의 한 도구로 자리매김하여 실용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쓰임의 효용성이 중요한 것이지 작품이 갖는 상상력의 진폭이나 감동의 요인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침식을 견디지 못하고, 효용성을 지닌 그 시기만 지나면 무덤덤해지고 마는 한계를 지닌다. 시가 역사의 평가대상이라면 지난 시기의 한 가치를 드러내는 존재로 역사의 뒤안길에서 은은히 존재한다. 하지만 작품의 가치는 영원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이런 부류의 작품이 갖는 단점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주제를 드러내는 데 급급해서 작품의 긴밀성이 떨어지고 상상력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노래된 세계에 열광하는 광신도가 아니라면 독자가 개입할 틈은 별로 없다.★☆☆☆☆[4337. 7. 22.]   716□고척동의 밤□유종순, 창비시선 71, 창작과비평사, 1988   용수철의 탄력으로 쓴 시이다. 용수철은 스스로는 튀지 않는다. 누군가 누르면 그 반동으로 탄력을 내면서 튄다. 시집 대부분이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에 대한 반동 내지는 반발로 이루어진 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발력으로 인한 주제가 시의 전면으로 등장한다. 그것이 구체성을 유지할 때는 정신이 단단하게 드러나지만, 구체성이 조금만 결여되면 시가 모호해진다. 사물에는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그들의 영역과 양상이 있다. 시가 대상을 가장 심하게 일그러뜨리는 양식이기는 하지만, 사물의 모습을 너무 심하게 일그러뜨리면 현실성을 잃게 된다. 시에서 현실성을 잃는 것은 주제를 전달해줄 수 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감동으로 연결되기는 퍽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이 많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미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인내는 노동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인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물과 사태에 대한 억지해석이 시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 감옥 체험 시편을 뺀 나머지는 거의 다 그렇다. 말투는 강하면서도 정작 전하고자 하는 정서는 모호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상이 건전하다고 해서 그것이 시의 정서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상가나 철학자의 몫이다. 시인은 시인으로 머물러야 하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기다리는 여유를 가질 때 드러난다. 한자에 매달리는 것은 자유 이상의 질곡이 된다.★☆☆☆☆[4337. 7. 22.]   717□바다의 눈□김명수, 창비시선 136, 창작과비평사, 1995   깔끔한 이미지를 만들 줄 아는 시인인데, 아직도 써야 할 부분과 써서는 안 되는 부분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미지는 상징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는 제시의 기능이 강하다. 독자는 그것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여 시인의 메시지를 해독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미지로 제시된 것들에 대해서는 다시 중언부언하면 안 된다. 이미지들이 깔끔하게 잘 전달되도록 처리했는데도 중간중간에 영탄조로 발언을 해버리고 말아 애써 가꾼 이미지들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리고 주제를 한 가지로 좁혀서 각 시들이 지향하는 초점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두세 개로 흩어져서 시집 전체는 산만하다. 이미지와, 시집 전체의 조율법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7. 7. 22.]   718□꽃산 가는 길□김용택, 창비시선 70, 창작과비평사, 1988   애써 이룬 공을 무기력한 반복으로 까먹은 시집이다. 앞부분의 꽃산 이미지는 대단한 성취를 이룬 시이다. 거기에다가 사랑을 결부시키고, 이후 나타나는 모든 이미지의 중심에 꽃산을 놓음으로써 시인이 지향하는 세계를 아주 잘 드러냈다. 이렇게 상징화한 꽃산은 민중의 염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도 될 만하다. 시에서 이만큼 선명한 싱징을 이루면서 그 상징이 시집에 굵은 눈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교만으로도 어려운 일이기에 그 성과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뒷부분의 무기력한 반복 때문에 이런 성취를 절반은 깎아먹은 꼴이 되었다. 무기력한 반복은 조절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가 모자라서 전체를 완성하지 못하는 어떤 운명이 이 시인의 시에는 있다. 안타까운 일이로고!★★★☆☆[4337. 7. 22.]   719□새벽길□고은,  창비시선 15, 창작과비평사, 1978   시를 가장 편하게 쓰는 방법은 비유니, 상징이니, 이미지니 하는 자잘한 기교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그런 방법조차 거추장스러울 만큼 할 말이 가슴속 가득히 차야 하고 가슴속 가득히 들어찬 그것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 어떤 상황에 처해도 그것을 토해낼 만큼 절실한 상황에 자신을 놓으면 된다. 말하자면 전쟁터에서 자신이 어떻게 몸놀림을 하는지도 모르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면 된다. 그런 상황이면 자신이 뱉는 모든 말은 시가 된다.   이 시인이 지금 이런 경지에서 시를 쓴다. 엉뚱한 것 같지만, 이미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전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시 앞에서 멀미가 나고 재미가 없다. 게다가 동일한 반복이 만드는 지루함을 운율로 넘어가려고 하는 땜질 처방을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시집 뒤쪽의 장시는 그런 혐의를 벗기 힘들다. 문제는 시 천 편을 써도, 만 편을 써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질을 직접 언급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의 그 거대한 것을 에둘러 말하되, 언어가 작기 때문에 그것을 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본 세계를 잘 그려낼 수 있는 방법을 오래도록 탐구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인의 마음이 너무 바쁘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칭찬에 취하고 만다. 박수소리 들으며 아무도 말리지 않는 제 갈 길을 갈 뿐.★★☆☆☆[4337. 7. 22.]   720□별들은 따뜻하다□정호승, 창비시선 88, 창작과비평사, 1990   시집 안에 ‘박정만’이라는 시가 있는데, 전체의 율격이나 시의 격조가 박정만의 시와 많이 닮았다. 아마도 운율이 잘 살아있는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운율은 가락에서도 오지만 시의 행 가름에서도 온다. 박정만의 시에서도 그렇지만 운율을 살리려는 시들은 행가름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호흡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1970년대라는 시대는 단순한 색깔을 지닌 시대였다. 바라볼 곳이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다. 따라서 이쪽을 노래하면 저쪽은 당연히 드러나는 시대였다. 바로 그런 특징 때문에 정호승은 1970년대의 암울한 시기를 같은 걸작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런 색깔이 흐려지거나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이쪽을 노래해도 저쪽이 잘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 이 시집이 있다. 어조나 창작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대상으로부터 적당한 높이로 떠서 묘사하는 수법이나 대상을 환기시킬 수 있는 상관물을 이미지로 차용함으로써 전체를 그려내는 수법은 그대로 살아있다. 그런데 절실함이 덜한 것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좀 무뎌진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낱낱의 의미를 버리고 상관물을 더욱 추상화해서 전체를 노래하는 방법으로 건너갈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시들은 소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자는 꼭 빼야 할 그 무엇이다.★★☆☆☆[4337. 7. 22.]    
145    시집 1000권 읽기 71 댓글:  조회:1756  추천:0  2015-02-11
  701□정선 아리랑□박세현, 문학과지성시인선 103, 문학과지성사, 1991   “농무”를 읽는 기분이다. 꼭 필요한 말들만 쓰일 곳에 쓰여 더하기도 어렵고 덜 하기도 어려운, 딱 그 만큼만 그려진 풍경화다. 한 지역을 소재로 하여 이만큼 고르고 다양하게 형상화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선의 풍경과 그 풍경 속에 스며있는 정서까지도 아주 잘 표현되었다. 시인의 저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시집이다. 다만 묘사로 그치고 말았어야 할 곳에서 미처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는 감정의 골이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런 단점은 큰 것이 아니어서 정선을 한국 문학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시인이 노래한 것은 정선이지만, 시에서 노래된 것은 대한민국 전체이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시의 심오한 원리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시집도 보기 드물 것이다. 한자는 영원한 흠이 될 것이다.★★★☆☆[4337. 7. 7.]   702□성 타즈마할□함성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208, 문학과지성사, 1998   시에서 실험은 외부를 향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내부를 향한다. 세계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세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변화를 통해 세계의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실험은 어떤 변화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된 어떤 것이 그 사회 안에 있는 또 다른 존재들의 내면에 울림이 올 때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존재의 반응 여부에 따라 실험은 자칫 장난으로 그치고 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험하는 자가 늘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실험하는 순간 의식의 플러그가 이 세계의 어느 곳에 꽂혀있는 것이며, 꽂혀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함성호 표 플러그는 어느 곳에 꽂혀있는가?   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것은 거의 구도의 방향으로 시가 가고 있다. 그 접근법을 형식의 문제로 환치하고 있는데, 구원과 형식은 본질의 문제이기보다는 때로 표현상의 간단한 오류일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방향 설정의 어려움이 된다. 그것은 때로 근본을 묻는 형식의 날카로움이자 장벽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일정한 성취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시의 본질은 깨달음이 아니라 감성의 일깨움이기 때문이다. 깨달은 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설령 말을 할 상황이 오더라도 아낀다. 선시가 지극히 짧아진 이유는 그런 까닭이다.★★☆☆☆[4337. 7. 12.]   703□해파리의 노래□김억,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대정 16)   참고할 전례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틀을 새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선구자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고, 그 실패 때문에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성공이 보장된다. 1923년에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출판된 개인시집이라는 이력을 가진 이 시집이 그런 전형에 해당한다. 시가 대부분 분명한 형식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리고 한 눈에 감정의 과잉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것은 김억이 참고한 외국 시인들의 시에서 받은 영향이겠지만, 그 전까지 극도로 절제된 감정을 보여주던 한시의 관행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옛 형식인 한시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시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관행이 지닌 장점까지 버리고 전혀 새로운 틀을 만든 것은 그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어서 이 시집 전체가 감정 조절을 위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넘치는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진정한 자유시의 출현은 결국 다음 세대를 기다려야 했던 셈이다.★★☆☆☆[4337. 7. 14.]   704□카프 시인집□김창술 권환 임화 박세영 안막,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6)   역사는 나선형이어서 비슷한 일들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는 이론이 언뜻 떠오른다. 1920년대에 나온 이 시집 속의 표정이 1980년대를 휩쓸고 간 시대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함에 놀란다. 분명 역사는 나선형으로 돈다는 사실을 이런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대를 꿰뚫는 것은 자각의 정신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위치에 있고, 그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가 강렬하게 부각되며 이 때 형식의 거칢이나 무질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 상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에서 어떤 절제된 형식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서 피지배층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여 자신을 사회 변혁의 중심으로 설정한 것은 해방 전 공산주의 운동이 유일하다. 이 시집은 그러한 운동의 중심에 선 작가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논리화한 책이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1980년대에 일어났던 노동시의 원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전통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시 정신사의 한 획을 긋는 시집이다.   처음 나온 시집이기에 전례 없이 출발한 시가 갖는 모든 한계를 다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한계는 현실에 대한 저항에 관심이 집중되어 자신들이 열고자 하는 세계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에서 사상은 확립되었을지언정 방법론이 아직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일이겠는데, 그때는 이미 이 시집을 낸 조직인 카프가 해산되는 운명을 맞는다. 그리고 이후 반세기 동안 역사의 어두운 지층 밑으로 가라앉는다.★★☆☆☆[4337. 7. 14.]   705□영랑 시집□김영랑,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0)   1935년에 발간된 시집인데,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에 제목이 붙지 않고 1부터 53까지 번호를 붙인 것이다. 낱낱의 작품을 모아서 한 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한 권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의도가 시에서 잘 살아있어서 시들이 한 호흡으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제일 먼저 두드러진 것이 가락이다. 운율이 아주 잘 살아있다. 비슷한 음보가 반복되고 있지만, 반복되는 가락은 음보만이 아니라 주제, 이미지 같은 것들도 일정한 범주 안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시에서 정형성을 추구한 노력이 나름대로 성과를 보인 몇 안 되는 성공사례일 것 같다. 대신에 율격이 현저히 살아나기 때문에 다른 요소, 즉 주제라든가 구조의 단단함 같은 것은 많이 후퇴했다. 특히 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주제인데, 이 부분이 취약해진 것이 크게 눈에 띈다. 그리고 좋은 시를 쓸 때는 감정의 집중이 이루어지는데, 시의 구성요소인 율격에 생각을 집중하다 보니 바로 이런 감정의 집중이 잘 안 이루어진 것이 흠이다. 45번이 붙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같은 작품이 더 나오지 않은 것이 끝내 아쉽다. 좋은 가락이 흔치 않은 우리 시에서 운율을 잘 살리려고 했고, 또 일정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전범을 보인 작품이다. 하지만 안이하고 지루한 반복은 오히려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 시집이다.★★☆☆☆[4337. 7. 15.]   706□망향□김상용,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4)   1939년에 낸 시집인데,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빼면 별로 보잘 것이 없다. 대부분 발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고, 시어들이 너무 장황하게 분산되고 있어서 정작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전달하는 데 제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가 차분한 느낌이 들지 않고 어딘가 미숙한 느낌이 나고 들떠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은데, 자연에 빗댈 삶의 내용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에 주제가 엷어질 수밖에 없고 단순한 제시 정도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이미 자연을 성리학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석한 그 이전의 방법과는 다른 시각이 확보되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인데, 그것이 안 된 상태에서 언어화 됐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보인다. 자연을 자연으로 보는 것도 중요한 한 관점이 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것도 아니기에 문제이다. 방향을 잡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흠의 원인이 된 시집이다.★☆☆☆☆[4337. 7. 15.]   707□현해탄□임화,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3)   를 읽으며 그 논리 정연함에 소름이 끼칠 만큼 감동했던 10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 읽은 시집에서도 그 이상의 감동이 밀려든다. 1938년에 이런 시집이 나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역시 임화다! 연구자들이 인용하는 대부분의 시는 ‘네 거리의 순이’ 같은 초기 시들인데, 그런 것들은 문학사상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임화의 시를 평가하는 데는 헛다리짚은 것이다. 임화 시의 절정은 바다에 관한 시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들이 갖는 장점은, 대부분의 카프 계열 시인들이 갖는 발언의 직접성을 버리고 돌려 말할 줄 아는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카프 시인들의 시는 형상성이 한결같이 결여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관점에서 시는 노동자의 감성을 충동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격렬한 노동현장에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능력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가 격렬한 현장의 그 정서에 맞추어서 쓰여진다. 그리고 그것을 책상머리에 앉아서 읽는 자들의 눈에는 상상력의 결여로 결판나는 것이다. 단편 서사시라는 이름을 얻는 임화의 초기 시 역시 이런 판단으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바다와 관련한 시들에서는 카프가 해체된 뒤의 사색이랄까 하는 것들이 그런 한계를 벗어나서 아주 잘 극복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아마도 격렬한 현장에서 뛰던 자신을 조금 거리를 두고 돌아볼 여유가 생긴 탓일 것이고, 나아가 사상투쟁의 휴지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전환기의 여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문학 특유의 돌려 말하기를 아주 잘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혁명과 실천에 대한 믿음에는 전혀 변화가 없이 자신의 신념을 시의 뒤쪽에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상황은 변했을지언정 사상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바다 이미지는 당시의 조선 현실과 어울려 한국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광막한 바다에 떠있는 배의 존재가 당시의 조선 아니던가? 그 출렁이는 대지 위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혁명가의 존재와 정확히 일치한다. 임화는 바로 이와 같이 시 전체를 밑받침하고 있는 전제를 간파할 줄 안,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몇 안 되는 뛰어난 시인 중의 하나이다. 더욱이 해방 전의 시인들이 지리멸렬하여 자신의 내부로 퇴영하거나 시의 아름다움 속으로 도망치던 시절에 캄캄한 민족의 현실을 이만큼 여유 있고 크게 그려낸 시인이 없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이 굉장히 굵고 길다. 이것은 할 말이 많다는 뜻이고, 그 할 말을 걸러낼 어떤 형식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주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시는 지루해진다. 이런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 속에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꾀를 부렸다. 아마도 이것을 ‘단편 서사시’라고 불렀을 것인데, 시에서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는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주제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고뇌는 나름대로 성과를 본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아무도 개척하지 못한 한 시의 영역을 열어 젖힌 것이니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후반부에 와서도 이렇게 길게 쓰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바다의 이미지로 들어간 것은 안이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시다운 것은 전반부의 시가 아니라 후반부의 시이다. 거기서는 전반부에 쓰인 시들처럼 직접 주제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유추해서 해석할 수 있는 세계가 분명히 있고, 그럼으로써 더욱 그 해석의 넓이와 깊이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박노해의 이상으로 시의 한 경지를 열어 젖힌 시집이다. 오히려 사상성이나 방법 면에서는 임화의 시가 훨씬 더 앞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카프, 카프 하지만 카프가 그냥 카프가 아닌 것이 임화 같은 인물 때문이라는 것임을 이런 작품에서 확인한다. 후세의 시인들이 뛰어넘기 어려운 곳까지 시를 밀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절대절명의 전환점에 선 자의 몫이기도 하다.★★★☆☆[4337. 7. 16.]   708□태양의 풍속□김기림,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4)   1939년에 발간된 시집인데, 시에서 이미지의 노릇을 오래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무엇보다도 시집 전체를 한 구도 안에 넣어서 꾸민 기획력이 놀랍다. 물론 서구 이미지즘의 모방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단숨에 그런 모방을 할 수 있는 것은 웬만한 뚝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시들이 전체의 부분을 이루면서 전체가 달리는 방향으로 함께 작동하도록 배치되었다는 것은 큰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미지들이 어떤 전제된 관념을 나타내기에 급급하고, 그 전제된 관념이 현실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미지들은 공허함이나 황당함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지가 이미지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어떤 것을 나타내는 환기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림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그 환기의 대상이라는 것은 삶과 사회의 축도이다. 그렇다면 그 축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과 철학이 필요한가 하는 좀 더 큰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문명비판이라는 큰 관점 이외에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현실과 철학이 없기 때문에 시 전체가 허황한 몸짓으로 끝난 셈이 되었다. 일제하의 식민지 현실을 비켜놓고서 전달할 문명이란 바나나 껍질일 뿐이다. 대작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작가였는데, 이 점이 끝내 아쉬운 점이다.★★☆☆☆[4337. 7. 19.]   709□초롱불□박남수,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5)   절제된 묘사가 주를 이루면서 할 말이 풍경의 뒷편으로 물러났다. 이럴 경우에는 동원되는 언어가 시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이 된다. 의미는 이미지의 주변에서 독자가 추론할 수 있을 정도의 암시만으로 존재한다. 앞부분의 시들은 대개 자연에 둘러싸인 마을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경험이 등장함으로써 좀 더 상세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발간된 다른 시집들과 다른 것은 시어 선택과 시에 대한 생각에서 시인의 주관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변혁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미지 실험에 기울어버린 것도 아니어서 묘사 중심의 시이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언어세계를 열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일제강점기 말이라는 시대의 몫도 없지 않겠지만, 아쉬운 것은 묘사의 시가 흔히 갖는 것처럼 주제의 빈약을 피할 길이 없고, 시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후의 박남수 시가 갖는 절제된 언어 감각이 엿보이는 작품임은 분명하다.★★☆☆☆[4337. 7. 19.]   710□청마 시초□유치환,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4)   아주 독특한 시 세계이다. 어려운 한자 투성이가 흠이기는 하지만, 시에서 추구하는 바와 노래하는 것이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당시의 다른 시인들한테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독특한 맛이 있다. 종교 냄새도 풍기는데, 단순한 신도의 그것이 아니라 어떤 계시를 읽고자 몸부림치는 구도자의 그것이고, 아마도 이것은 유교의 잔상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선비들이 갖는 고결함 같은 것이 스며있다. 청마 자신도 그것이 어떤 세계인지는 분명히 자각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숭고한 그 어떤 세계를 상정하고 그것에 반하는 것들을 박쥐나 까마귀 같은 시들에서 드러냄으로써 그 반대편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고, 그런 세계를 특별한 장식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노래하는 방식으로 썼기 때문에 정신이 직접 드러나는 효과를 낸 것이다. 그렇지만 시의 바탕에는 한시의 작법이 많이 깔려있다.★★★☆☆[4337. 7. 19.]    
144    시집 1000권 읽기 70 댓글:  조회:2017  추천:0  2015-02-11
  691□세상의 나무들□정현종, 문학과지성시인선 161, 문학과지성사, 1995   종심소욕에도 불유구라더니, 이렇게 말해도 시, 저렇게 말해도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른 것인가? 똥을 눠도 시 코를 풀어도 시인 것만 나온다면야 세상엔 온통 천재시인들로 꽉 들어찰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풀어놓은 것들이 모두 시가 아니라는 것은 시인들 자신이 알 것이고, 그것을 시인이 모른다면 그것은 시인의 무지이거나 그를 무지의 상태에 머물게 해주는 주변의 눈먼 칭찬일 것이다. 역사는 공범까지 비판할 겨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화살은 시인 자신이 감당할 몫이니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것은 시인 자신이다.   ‘그림자’ 같은 시를 보면 시에 전혀 무지한 것은 아닌데, 어째서 태반의 시를 그저 발상의 차원에 머물러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 시인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우주율인데, 우주율을 인식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는 철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 어느 곳에서 발현되며, 그것이 어떤 절차로 이웃에게 다가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시인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 발상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한자 역시 말장난이다.★★☆☆☆[4337. 7. 1.]   692□시인의 바깥에서□김연신, 문학과지성시인선 225, 문학과지성사, 1995   시가 다른 예술의 양식을 빌려서 자신의 외연을 확장하고 형식을 실험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그림에 의지할 경우, 대부분 의미의 빈혈을 겪는다. 그림을 글씨로 베껴놓은들 거기서 의미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여주기 방법의 극단이 초래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형식에 의존할 때는 그 형식이 시에 반영될 때 시에서 볼 수 있는 효과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계산하고 차용해야 한다. 이 시집의 시들 역시 이런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를 그림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에 의미 파악이 쉽지 않고, 그것을 형식 실험의 부산물이라고 강변한다고 해도, 시각 이미지가 강화될수록 의미가 뒤따르지 않으면 뜻 없는 이미지만이 남게 된다. 이런 건 말장난처럼 보이기 쉽다. 형식이 새롭거나 실험하려는 의도이면 그것이 그렇게 된 불가피한 사연이 있어야 하는데, 시의 형식을 어렵게 풀어본 것 이외에는 별로 볼 것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윤회의 상상력으로 접근한 어패류에 관한 시는 그 난해도에 견줄 때 정작 그 난해함을 뚫고서 잡아낸 결론은 허망할 지경이다. 정선의 그림에 관한 시 역시 그림을 글로 베꼈다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그때 어떤 의미가 시로 살아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언어가 여전히 그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도 즐길 만한 것이지만, 이런 시도는 이미 많은 시에서 본 것이다. 요컨대 그런 형식 실험에서 시의 긴장을 어떻게 퉁겨줄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퉁겨줌이 반응을 일으키는 지점은 형식만이 아니라 의미까지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험은 늘 어려운 것이다. 한자는 성공하기 어려운 장비이다.★★☆☆☆[4337. 7. 1.]   693□렌의 애가□모윤숙, 영인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   소화 12년, 즉 1937년에 이런 시집이 나왔다는 것은 문학사에서 볼 때 묘한 울림을 갖는다. 일제의 통치가 강화되어 국내에는 저항세력들이 거의 소멸되어 가던 시기이니, 그런 영향일까? 문제의 초점이 현실을 부정하고 지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해 넋두리로 일관하고 있다. 시대의 우울한 정황이 이러한 일탈된 세계를 만들어냈을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조선의 여인이고, 이미 결혼한 남자를 그리워한다. 그러다가 이국 땅에서 삶을 마감하는 듯한 분위기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당시 통용되던 도덕관념을 염두에 두고 쓴 듯하다. 그런데 산문시의 전통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의 호흡으로 긴 시를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시 전체에 걸쳐서 격정이 넘치고 있다. 전체의 구조는 밋밋한 것이 흠이지만, 감정이 시를 밀고 가는 그런 형국이다. 그런 점에서 일정한 줄거리를 갖고 있지만 서정시에 가깝다. 섬세한 감수성이 곳곳에서 돋보이기까지 하여 실패한 사랑에 대해 노래한 시로는 특별히 손꼽을 만하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라든가 통념에 대한 내용들이 시에서 굴절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서 좀 아쉽다. 호흡이 긴 시를 쓸 때는 현실을 시에서 어느 정도 드러내주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대한 고려가 거의 안 되었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제목이 “렌의 애가”이니, 등장하는 이라는 인물은 의 연인이겠다. 렌이니 시몬이니 하는 것은 서구 취향이어서 당시 이 시인의 감성이 어떤 방향으로 흘렀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토착화되지 못한 정서는 기름방울처럼 물위에 떠있다. 그것을 선구자의 그것으로 만드는 것은 책상머리 이론가들일 것이다.★★☆☆☆[4337. 7. 5.]   694□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268, 문학과지성사, 2003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의미를 끌고 다니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설명해버리고 나면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이미지가 함축하는 바를 찾는 일이 중첩되어 오히려 시의 주제를 파악하는데 방해가 된다. 특히 장소를 변경해가며 쓰는 시들은 자신이 왜 거기 와있는가 하는 것까지 설명하려 들면 시가 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의 많은 부분이 삶의 깨달음에 대한 번민을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로도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표현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말하는 자신 안에 어떤 답을 갖고 있는 것이 시에 활력을 준다. 단순히 의문을 던져서 무언가에 궁금증을 갖고 있다는 정도에 머물다가는 맥풀린 시가 되고 만다. 그것은 이미 종교에 다가가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던지고 끝내는 풀지 못한 암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집 전체를 읽어보면 그렇게 동경하는 그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 어딘지 모르고 방황하는 것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것을 어떤 깨달음의 체계에 빗대어 아는 체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는 것, 그래서 입을 여는 것조차도 편견이요 착각인 것이 그 세계인데,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는 것은 우매함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상상력은 아름답지만 도착지점도 아닌 곳에서 상상을 끊는 것은 참혹할 따름이다. 시든 도든 설명하려 들면 안 되는 법이다. 화두는 그 세계를 아는 자들이 쓰는 말이지 최소한의 성실성도 갖추지 않은 자들이 만지는 장난감이 아니다. 이 경우 최소한의 성실성이란 침묵이다.★★☆☆☆[4337. 7. 5.]   695□풀나라□박태일, 문학과지성시인선 263, 문학과지성사, 2002   시를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이다. 운율, 이미지, 시어, 상징……. 이 중에서 특정 요소에 집착할 때 생기기 쉬운 것은 불균형이다. 어떤 것은 다리가 너무 길고 어떤 것은 대가리가 너무 크다. 그렇게 돼 가지고는 제대로 된 시가 못 된다. 물론 특정 요소에 집착하는 것은 다 사연이 있다. 음악성을 추구하겠다던가, 민족어를 빛내겠다던가 하는 그런 사연들 말이다. 그러나 시는 시인 만큼 민족어든 운율이든 그것이 시를 일단 빛내는 방향으로 작용해야지, 그것이 시의 전체 균형을 허물면 좋은 시가 되기 어렵다. 이 시집의 시들은 시어와 운율에 크게 집착했다. 운율이야 탓할 것은 못되지만, 시어에 대한 집착은 의미의 결핍을 낳는다. 의미가 물러나면 시는 모호해진다.★★☆☆☆[4337. 7. 5.]   696□박목월 시 전집□이남호 엮음, 민음사, 2003   9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시집이다. “청록집”의 시들을 빼놓고는 별로 보잘 것이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을 만큼 큰 이름의 시인치고는 작품의 양이나 수준이나 너무 소품이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우선 눈에 띄는 결함은 시에서 현실이 거의 증발하고 없다는 점이다. 개인의 소심한 생활을 쓴 것들이 간간이 있을 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정서가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은 주제의 빈약과 맞물려있다. 중반 이후 주제가 제법 뚜렷해지면서 시로서 알찬 수확을 보여주는 부분은 “크고 부드러운 손”인데, 이 부분의 시들은 찬송가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깨달음이 그때 와서 그랬을 것인데, 시로서는 너무 늦은 셈이다. 시가 다루어야 할 것은 생활 저 너머의 어떤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평생의 시작 경향을 결정한 듯하다. 다만 시어를 고를 때 함부로 생각을 담아내지 않고,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선택한 태도는 거의 연금술사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4337. 7. 6.]   697□타오르는 책□남진우, 문학과지성시인선 244, 문학과지성사, 2000   시각 이미지를 주된 방법으로 활용하는 시들은 짧은 구도 가지고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작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시각 이미지들이 주로 보여주기만 할 뿐 직접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란 시인이 제시를 하면 독자들이 그것을 자신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하여 그 의미를 해독하는 기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짤막한 제시로 끝나고 나면 독자들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되다 만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자꾸 시가 길어지는 것이고, 마침내 대작의 충동에 빠져서 결국은 성공한 시인은 ‘황무지’ 같은 대작을 쓰게 된다.   이 시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에서 나온 시집이다. 할 말을 직접 못하기 때문에 맥풀린 제시로 끝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짧은 시에서 시각 이미지의 제시로 성공하려면 그것이 상징성까지 아울러 동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의미를 동반하지 않은 채 이미지만 제시되고 있고, 그 이미지를 조합해 보아야 풍경 묘사에 그치고 마는 수가 많다. ‘족장의 가을’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고, 절반 이상의 시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 따라서 대작을 쓰던가 상징으로 건너가던가 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 지금 상태 가지고는 주제의 빈곤을 극복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미지의 조립이 너무 논리에 따르고 있어서 독자가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한 단위로 풍경이 제시되는데, 그 풍경이 담아낼 내면 풍경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풍경화로 머물고 만다. 말하자면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마음속의 그림은 읽는 사람의 정서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뒤를 짜 맞추는 논리성이 시에서 어떤 효과를 주는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명징한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어떤 효과를 위해 종사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4337. 7. 6.]   698□시를 쓰기 위하여□김연신, 문학과지성시인선 177, 문학과지성사, 1996   사물을 보는 눈이 독특하다. 그러나 그 독특함이 시의 본령이라고 믿는 것은 시를 일그러뜨리는 원인이 된다. 형식에 집착하면 자칫 눈이 세 개가 생길 수가 있다. 괴상하다는 측면에서는 구경할 만하지만, 그런 얼굴 가지고 살기는 참 피곤한 일이다. 시가 독특한 것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이다. 무조건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 시집 전체를 밀고 가는 중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렇게 할 필요란 내용의 호응을 말한다. 독특한 방법이 지배하더라도 어차피 보여주어야 할 그 무엇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자는 네 번째 눈이다.★★☆☆☆[4337. 7. 6.]   699□한없는 밑바닥에서□장영수, 문학과지성시인선 246, 문학과지성사, 2000   방법 없음도 시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것이다. 혼돈을 지향하는 어떤 세계를 노래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중년이 현실과 과거를 돌이켜보는 세계이다. 그렇다면 방법 없음은 방법이 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각 덩어리를 떠오르는 대로 행을 갈라 나열해 놓는다면 그것을 제대로 된 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햇빛이 얼굴에 정면으로 쏟아진 순간’ 같은, 그럭저럭 읽을 만한 작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다. 한자는 그 함량마저 줄인다.★☆☆☆☆[4337. 7. 7.]   700□허공□문충성, 문학과지성시인선 252, 문학과지성사, 2001   의욕이 앞서서 소화되지 않은 채로 이미지들이 쏟아졌다. 특히 제주의 역사와 관련된 사건들과 제주의 자연을 시 속에 끌어들이려고 애쓴 표정이 역력히 보이는데, 거기에다가 어떤 이야기와 주제를 넣을 것인가 하는 것이 아직 분명치 않아서 소재를 제공하는 데 급급했다. 특정 사건이나 사물은 그것이 시로 승화되는 계기가 꼭 있어야 한다. 그냥 제시만 해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인 체험이든 사고이든 그것과 연관이 되어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않고 낱말이나 이미지만 제시되면 그것이 결국은 시를 이루지 못하고 물에 뜬 기름처럼 감정의 위쪽에서 둥둥 떠다닐 뿐이다. 어떤 부분에서 접근해야 시 안으로 이미지가 들어오는가 하는 것을 좀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빼야 할 이미지이다.★★☆☆☆[4337. 7. 7.]    
143    시집 1000권 읽기 69 댓글:  조회:1660  추천:0  2015-02-11
  681□폐차장 근처□박남희, 경계시선 11, 문학과경계사, 2002   시에서 논리를 즐기는 시인이다. 논리는 일종의 관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념의 전후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시는 길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념을 풀기 위한 이미지들이 난폭하게 동원된다. 그래서 시가 단단하고 야무지지만, 포근하게 와 닿지 않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다. 큰 주제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리하지만, 무리한 이미지 동원으로 인하여 세세한 부분이 계속 전체 주제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둘이 절묘하게 부합하면 다행이지만, 웬만큼 높은 수련에 이르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관념의 덩어리를 잘게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작아진 그 만큼 그것을 실어줄 이미지 역시 작은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주제와 이미지는 어렵지 않게 맞아떨어진다. 이미지가 작다고 해서 큰 주제를 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시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음이 크다고 해서 시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니, 시에서 논리가 갖는 한계를 오래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시에 논리가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 때문에 이미지가 다치면 논리 역시 온전하기 어렵다. 시의 호흡이 굵직굵직하고 잘 썼으되 거칠다는 느낌이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4337. 6. 21.]   682□곡비□이명주, 경계시선 12, 문학과경계사, 2002   시가 장식을 버리면 순금처럼 정신이 빛난다. 빛나는 그 정시는 별다른 장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비유체계도 단순해지며, 단순함이 바로 시의 가장 빛나는 무기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이 단련되어야 하고, 그것은 더 이상 단련하기 힘들 만큼 내부로 응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짧음이 갖는 긴장의 강도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게 안 되면 시가 맥이 풀린다. 이 시집은 그런 방법과 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만큼 단련되지 못한 것들의 단점이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짧게 써야 할 것은 짧게 써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좀 더 살을 붙여서 섬세한 감수성을 담아낼 일이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러너 긴장이 풀어진다.★☆☆☆☆[4337. 6. 21.]   683□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전길자, 경계시선 16, 문학과경계사, 2002   주변의 사물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그것을 시로 옮기는 태도는 성실성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시는 내 안의 의미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좀 깊이 생각해야 할 듯하다. 만약에 의식이 바깥으로 향하지 않고, 내 안의 어떤 것만을 말하려고 하면 시는 진부해진다. 그것은 말하고자 하는 의지만이 작동할 뿐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정신은 정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고정된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보는 한 방편으로 이미지를 향해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4337. 6. 21.]   684□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최영철, 경계시선 2, 문학과경계사, 2001   사물에 함의된 비의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확립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데, 발견은 그렇다 쳐도 그 발견을 통해 어떤 세상을 노래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다소 불투명하기 때문에 애써 얻은 이미지가 장난으로 흐를 수도 있고, 그냥 발견에 대한 예찬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런 발견들이 담아내야 하는 어떤 세계를 확립하는 일에 집중해야 함을 뜻한다. 시집의 초점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흩어진 것도 단점으로 작용한다.★★☆☆☆[4337. 6. 21.]   685□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경계시선 8, 문학과경계사, 2002   서정시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 이미 아주 독특하게 갖추어졌다. 자신만의 시각을 갖춘다는 것은 시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좋은 덕목이다. 사물이 갖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순수하게 시인의 의식을 반영하는 일이어서 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겠다. 설명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경계한다면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한 태도이다. 시를 쓸 때 이미지를 마주쳐서 거기에다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 있고, 그 반대로 이미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갖추고 있다가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찾는 방법이 있다. 좀 더 큰 시를 쓰기 위해서는 앞의 방법에는 많은 한계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찾아오기를 기다려서 쓰는 방법은 게으른 방법이다.★★★☆☆[4337. 6. 21.]   686□재즈가 흐르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강수정, 경계시선 10, 문학과경계사, 2002   아주 독특한 시인이다. 상상력도 독특하고, 그 상상력을 펼치는 시어의 짜임새도 독특하며, 갖춘 세계도 독특하다. 그러니까 남들과 구별되는 시인만의 전매특허는 확보된 셈이고, 그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갚진 덕목이다. 그런데 이미지가 전개되는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덜컹거리는 것은, 시인 자신의 어눌함이라는 중요한 특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이미지들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시집이다. 대체로 자신의 체험을 다양한 방과 층을 갖춘 구조로 전달하려는 노력과 그 상상력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재빠르게 건너가야 할 곳에서 머뭇거리고, 빨리 달려야 할 곳에서 덜컹거리는 것을 자신의 특색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만 보완한다면 아주 독특한 시세계를 꾸며갈 능력 있는 시인이다.★★☆☆☆[4337. 6. 21.]   687□퍽 환한 하늘□이진영, 경계시선 3, 문학과경계사, 2001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애써 잡은 비유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의미를 부여하려는 재주는 부족함이 없지만, 이 시인이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러한 비유체계를 잡아내는 마음의 집중도와 열정이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시의 표면으로 떠오르면 시가 좀 서툴더라도 그 뜨거운 감정에 감동을 하는 법이다. 그러나 비유가 그럴 듯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의 분위기가 너무 냉랭하면 감동이 오지 않는 법이다. 마음이 시를 밀고 가는 것이지, 마음이 비유를 뒤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맥이 풀린 시가 된다. 무엇을 노래하고 어떤 열정으로 삶을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집이다.★★☆☆☆[4337. 6. 22.]   688□붉은 악보□김경, 경계시선 19, 문학과경계사, 2002   시는 개인의 체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만, 너무 깊이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있으면 감정이 때로 모호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이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삶을 이룬 사건들이 그 개인의 감정을 형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시에서 끌어내야 할 것은 결국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만 더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짧은 시는 자신의 반짝이는 상상력을 드러내는 데 아주 위력을 발휘하지만 거기에 너무 재미를 느끼면 그것이 불성실하다는 느낌을 주기가 쉽다. 대개 발견으로 그치고 말 경우이다. 자신의 전 생애를 걸 만한 대단한 것이 아니면 해도 되는 설명을 함부로 생략해서는 안 된다. 한자는 큰 장애이다.★★☆☆☆[4337. 6. 22.]   689□파천무□송수권, 경계시선 1, 문학과경계사, 2001   물풀들이 뿌린 내린 바닥이 아주 견고하다. 거기서 올라오는 상상의 줄기도 다양하고 나름대로 확보된 세계가 밑바닥을 커다랗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크고 넓은 바닥에는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말들이 이따금 섞여 있어 그것이 흠이다. 못 마땅한 것들이 때로 문학에 좋은 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구별할 줄 아는 것 역시 대가의 조건이기도 하다.★★★☆☆[4337. 6. 22.]   690□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이선관, 실천문학의 시집 127, 실천문학사, 2000   할 말이 절실할 때는 표현을 생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어설픈 표현으로 우회시키는 것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직접 말하기를 선택했다면 그때의 말은 체험의 절실성에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그리고 그 절실함에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는 안 쓰느니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시집에서는 할 말이 우선하는 시집이다. 그런 만큼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시의 전면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것을 우회시키는 방법인 비유가 곳곳에서 끼어서 오히려 불편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직접 말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또 마주친 대상과 싸울 때 대상이 너무 크면 그 싸움의 방식은 풍자가 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풍자는 복잡한 양식이다. 따라서 전략이 필요하다. 이 시집의 주 내용들은 비판은 비판이지만 풍자 쪽으로 조금 기울어있어서 약간 애매모호한 태도를 갖고 있다.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다. 칼을 뽑으려면 섬뜩한 것을 뽑아야 한다. 풍자의 태도는 기왕에 뽑은 날까지도 무디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4337. 6. 29.]    
142    시집 1000권 읽기 68 댓글:  조회:2113  추천:0  2015-02-11
  671□세상의 빈 집□이동재, 경계시선 21, 문학과경계사, 2003   한 곳에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발랄한 정신이 돋보인다. 그런데 그런 발랄함은 근원에 대한 고민을 놓는 순간 말장난이 되는 수가 많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머물러 있는 시들이 적지 않다. 한 번 잡은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시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신의 맷집이다. 그런 뚝심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것은 이미 재주를 넘어서서 무언가 시에서 할 말을 찾는 자의 태도이다. 따라서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이 점이 이 시인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다만 시가 장광설로 흘러가지 않도록 마음의 고삐를 죄고 거기에다가 세상을 더 넓게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이 기백을 제 방향으로 이끄는 방책이 될 것이다.★★☆☆☆[4337. 6. 18.]   672□쟈끄린느 뒤프레와 함께□박몽구, 경계시선 27, 문학과경계사, 2004   할 말의 내용과 견줄 때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었다. 그러다 보니 꼭 수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있고, 그 사건에 대한 느낌이 있으며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조리정연한 수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시의 문장을 기대하고 읽는 사람으로선 끝까지 다 읽어주기 곤란한 것들이 태반이다. 시의 문장이 수필의 문장과 다른 것은 그 긴장 때문이다. 대상을 직접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우회해서 독자가 그 우회함의 진의를 알아차리게 해서 감동의 절정과 그 절정의 말을 한 순간에 깨닫게 하는 것이 시의 언어이자 배치이다. 이렇게 수필 쓰듯이 길게 해서 쓰면 한 순간에 감동이 몰려올 까닭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시라는 양식을 빌릴 것도 없다. 수필을 쓰면 된다. 무언가 시라는 양식에 대해서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할 시집이다.★☆☆☆☆[4337. 6. 18.]   673□석류꽃엔 눈물샘이 있다□박백남, 경계시선 5, 문학과경계사, 2001   생각의 독특함만으로 시를 쓴다면 철학자들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방법’이 주는 관성 때문이다. 그 방법을 벗어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벗어난 그것이 새로운 관성을 유도할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이 시집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삶의 깨달음이 아주 독특하고 신선한 면이 많다. 그러나 그런 독특한 시각이 시라는 형식으로 들어갈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주 많은 시들이 수필에서 보는 산문의 그 투를 많이 끌어안고 있어서 시가 지닌 그 묘한 긴장을 건네주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참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그런 부분을 시인의 특징이라고 인정해주면 그만이겠지만, 그 특징이 시 형식의 관성을 허무는 쪽이라면 시의 개념을 바꾸는 수밖에 없고,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는 산문 말고 시의 갈 길이 따로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부를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는 이왕이면 생각을 드러내는 발상의 신선함도 고려했다면 더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소한 것 같지만, 발상 자체가 시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4337. 6. 19.]   674□해변주점□이상인, 경계시선 6, 문학과경계사, 2001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읽는 사람의 감정까지 차분하게 해주는 시집이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나름대로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고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무리 없이 설득하는 재주가 있다. 다만, 아직도 비유라든가 해석 면에서 다소 억지스런 부분이 남아있고, 불필요하게 설명을 하려는 부분이 눈에 띄어서 아쉽다. 그리고 시집 전체로 묶었을 때 그 세계가 어떤 곳을 지향하는가 하는 것이 조금 엷다는 점 역시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시들이 많은 분위기에서 이 정도로 차분한 시각과 목소리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이 시집이 지닌 아주 훌륭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4337. 6. 19.]   675□지독한 갈등□최종수, 경계시선 17, 문학과경계사, 2002   단단하게 벼려놓은 칼 같다. 칼의 쓰임은 베는 것인데, 거기에 장식이 많으면 오히려 불편할 뿐이다. 모든 장식을 떼어버리고 빛나는 검광만을 드러낼 줄 아는 것도 대단한 실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의 장식을 의식하지 않은 깔끔한 결론이 일관하고 있다. 이른바 운동권 시가 전멸한 가운데 독특한 빛을 발하는 시집이다.★★☆☆☆[4337. 6. 19.]   676□소리 깊은 집□최춘희, 경계시선 25, 문학과경계사, 2003   묘사를 통하여 보여주기 수법을 전개하는 시들은 감정을 직접 전하는 말들의 시와 성격이 달라서 때로 이 둘이 섞이면 효과가 반감되는 수가 있다. 이 시집은 보여주기가 주를 이르면서 거기에 말하기를 곁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두 가지 방법이 서로를 견제하는 수가 생겨서 어느 곳에서는 생각으로 와 닿고 어느 곳에서는 느낌으로 와 닿는다. 이 두 가지가 한 시집 안에서 서로 뒤엉키면 읽는 사람은 다소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시집은 아주 분명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리고 너무 자세하게 파고들어서 오히려 감정을 전달하는 데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도 곳곳에 있다. 이런 사소한 부분만 보충한다면 좋은 시를 쓸 시인이다. 한자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4337. 6. 19.]   677□푸르른 소멸□박제영, 경계시선 26, 문학과경계사, 2003   욕망을 해체하기 위하여 다양한 실험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그것이 나름대로 묘한 성공을 이루고 있다. 묘한 성공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본 세계를 분해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형식의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에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인식의 깊이이다.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려 드는 통에 그 인식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하던 것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잦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특별히 신선할 것도 없는 표현에 빠져들게 된다. 말하지만 하고자 하는 말에 치여서 표현을 소홀하게 되고, 그것을 형식의 파괴 내지는 실험으로 대치하려는 뜻하지 않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도 많은 부분 그런 우려에 다가가 있다. 따라서 욕망을 바라보는 인식의 깊이와 그것을 담아낼 변화된 어떤 형식을 좀 더 천착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한자는 여전히 장애이다.★★☆☆☆[4337. 6. 19.]   678□수렵도□이진영, 경계시선 13, 문학과경계사, 2002   적절한 이미지를 끌어들이며 시를 힘차게 전개시키는 방법을 잘 터득한 시인이다. 잔 돌부리에 걸리지 않고 거침없이 달리는 기백이 좋다. 그런데 너무 장황하다. 할 말보다 더 많은 이미지나 언어를 동원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전하고자 하는 말에 아주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꾸 장황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시집이 지향하는 주제가 분명한 방향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장황한 느낌을 부추기는 점이다. 칠갑산 풍이면 칠갑산 풍으로, 수렵도 풍이면 수렵도 풍으로 초점을 몰아갈 필요가 있다. 이것저것 시집에 다 담아두면 낱낱의 시를 잘 써도 산만함으로 비치기 마련이다.★★☆☆☆[4337. 6. 19.]   679□세상 뜨는 일이 저렇게 기쁠 수 있구나□서애숙, 경계시선 15, 문학과경계사, 2002   눈에 잡힌 이미지를 선명하게 제시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다만 이미지를 선택할 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잘 판단해야 할 것과, 어느 선까지 이미지를 제시해야만 독자가 마음속에 제대로 된 이미지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시인이 넘어야 할 가장 어려운 고비이기도 하다. 지금 단계에서는 짧은 시를 쓸 때가 아니다. 짧은 시는 묘한 경륜이 실려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선명하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제시만 하고 마는 짧은 시보다는 짧게 요약한 그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를 더 정밀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4337. 6. 21.]   680□서른 살의 박봉 씨□성선경, 경계시선 14, 문학과경계사, 2002   생활 주변의 사건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다만, 시인이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사소한 삶의 풍경을 묘사하면서도 정신은 그 뒤에 서린 어떤 희망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여주기만으로도 훌륭한 전망이 될 수 있지만, 이미 많아 봐온 대상 안에서 특별히 다른 전망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도 새로워야 하거니와 그렇게 묘사한 대상이 어떤 식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까지도 깊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자는 굳이 재구성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4337. 6. 21.]    
141    시집 1000권 읽기 67 댓글:  조회:2064  추천:0  2015-02-11
661□서울에서 다시 사랑을□이흔복, 실천문학의 시집 120, 실천문학사, 1998   시 한 편이 쓰인 상황을 그 시 스스로 설명해주지 못할 것 같으면 시집 안의 다른 시에서 그 시의 상황을 추상하여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시집 안에서도 그런 연관을 찾기 힘들고, 그런 어조를 낳은 심정의 바탕도 역시 짚어내기 힘들다면 그것은 시를 쓴 사람의 탓이다. 시들이 짧은데, 시는 짧을수록 긴장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긴장은 독자가 긴장을 유발시키는 기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파악하기 힘들다면 그것은 시를 못 쓴 것이다.   이 시집은 시에서 가장 중요한 그것을 빠뜨렸다. 결국 시를 어디서 풀어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아직 체득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시가 무엇을 얘기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가 어디서 시작되고 언어화되어야 하는가 하는 기초부터 다시 파고들 필요가 있다. 간간이 섞인 한자는 없느니만 못하다.★☆☆☆☆[4337. 6. 17.]   662□나는 부리 세운 딱따구리였다□백창일, 실천문학의 시집 119, 실천문학사, 1998   될 듯 될 듯하면서도 끝내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시집이다. 시상을 전개해나가는 수법이나 시를 다듬어가는 모양은 부족함이 없는 듯한데, 직접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에두르는 것이라든지, 내용이 희박해지는데도 묘사가 계속 길게 이어지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큰 결점이다. 십우도 연작의 경우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서 이미지의 연결은 매끄럽고 좋은데, 당신으로 치환된 절대자의 모습이 너무 추상성이 짙어서 언뜻 와 닿지 않는다. 십우도라는 제목과 시의 실제 내용 사이에 좀 더 긴밀한 연관을 넣어야만 살아날 시이다. 이와 같은 아쉬움이 시집 전편에 관철되고 있어서 무언가 분명한 방법을 더 찾아내기 전에는 시의 모호함이 잘 가시지 않을 듯한 시집이다. 그 모호함을 걷어내는 것이 숙제일 것이다. 한자는 모호함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4337. 6. 17.]   663□그리운 막차□송종찬, 실천문학의 시집 126, 실천문학사, 1999   묘사력이 아주 뛰어나고 거기에다가 감정을 싣는 방법까지도 잘 아는 시인이다. 그런데 시집 전체에 보면 시들이 그려주는 배경 위에 우울함이랄까 절망이 지나간 뒤의 썰렁함이랄까 하는 정서가 스며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어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따라서 낱낱의 시로 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가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것이 선뜻 잡히지 않는 것은, 주제의 흐림도 있겠지만, 방법론상의 문제 때문이다. 즉, 그런 정서를 전달할 상황을 정확하게 설정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어떤 상황을 설정해서 착실하게 묘사하면 그 상황이 전하고자 하는 정서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좋은 시를 쓰려면 막연한 상황 가지고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체험 중에서 시가 될 만한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을 구별해야 하고, 그 중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줄 수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잘 판단한 다음에 시를 써야 한다. 이 시집들의 세부 묘사는 아주 빼어난데도 시가 어쩐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은 그런 데서 오는 것이다. 한자는 꼭 빼야 할 충치 같은 것이다.★★☆☆☆[4337. 6. 18.]   664□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오도엽, 실천문학의 시집 124, 실천문학사, 1999   생활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게다가 땀 나는 삶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건 땀 나는 사람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축복이다. 그러나 그 축복이 감동을 주려면 그냥 드러내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일종의 법칙이기 때문에 그 법칙을 어느 정도는 지켜주어야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는 것이다. 축구 규칙을 모르고서 어찌 축구를 즐기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생각을 깊이 해야 할 시집이다.★☆☆☆☆[4337. 6. 18.]   665□안동소주□안상학, 실천문학의 시집 125, 실천문학사, 1999   많은 말들 가운데 시에 적절한 이미지를 찾아서 그것을 완성하려고 끝까지 다듬는 모습은 여러 모로 보기 좋다. 군더더기 없이 자신이 의도한 주제를 형상화할 이미지들이 곳곳에 잘 배치되었다. 다만 전망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이미지만 깔끔하면 그것이 어쩐지 허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그것은 형식이기보다는 내용의 문제여서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전망이 없을 때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정직한 것이다. 그런 정직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뒤이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어져 결국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일종의 퇴영인데, 그것이 퇴영으로 끝나고 만다면 시를 위해서나 시인을 위해서나 큰 불행이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한자는 걸림돌일 뿐이다.★★☆☆☆[4337. 6. 18.]   666□무궁화, 너는 좋겠다□나혜경, 경계시선 22, 문학과경계사, 2003   사물을 보는 능력도 시를 꾸려가는 힘도, 이미지를 전개하는 재주도 다 괜찮은데, 무언가 될 듯 될 듯하면서도 마지막 그 고개를 못 넘어가서 안타까운 시집이다. 그것은 너무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너무 자세히 보다 보니 동원되는 말이 많고,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시시콜콜 다 말해주다 보니 독자는 시어머니 잔소리 듣는 며느리의 심정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많아서 탈인 경우이니, 많은 것을 덜어내는 것을 익혀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안 된다.★☆☆☆☆[4337. 6. 18.]   667□저, 쉼표들□이종암, 경계시선 23, 문학과경계사, 2003   시에서 묘사는 실제에 대한 요약일 수밖에 없고, 그런 요약은 그 뒤에 정서를 거느리고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의 완결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미지를 시에 그릴 것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애매하게 그려놓고 그것을 토대로 독자가 알아서 꾸며주겠지 하는 기대는 처음부터 버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독자의 눈에는 그것이 미숙함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언어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어떤 것을 환기해주지만 그것이 시안에서 한 초점을 중심으로 조율되지 않으면 긴장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다. 시에서 의도되지 않은 그런 이완은 치명상이다. 따라서 어떻게 어떤 이미지를 쓸 것인가와 그것에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이냐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자는 고민할 것도 없이 버리면 된다.★☆☆☆☆[4337. 6. 18.]   668□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함진원, 경계시선 24, 문학과경계사, 2003   사전은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이 시에는 있다. 그것은 한 낱말이 거느릴 수 있는 다른 낱말의 관계이다. 따라서 시에서는 명사와 동사가 한 몸뚱이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문법에는 이상이 없을지 몰라도 의미전달에는 문제가 생긴다. 특히 그것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말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명사와 동사의 관계를 흔들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히 말 재미나 표현의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표현으로서는 그럴 듯해 보일지 몰라도 시로서는 감점 요인이다. 그런 감점 요인이 아주 많이 드러난다.   또 시로 써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을 생각했어야 할 시들이 적지 않다. 많은 낱말들이 한 이미지, 한 영상을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 한 장면을 그리는데 불필요하거나 불거져 나오는 것들은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다. 시집 전체로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한자는 제일 먼저 잘라야 할 물건이다.★☆☆☆☆[4337. 6. 18.]   669□연어의 말□임동윤, 경계시선 7, 문학과경계사, 2001   시를 대하는 태도랄까, 성실성이랄까? 그것이 너무 진지하고 정직해서 문제인 시집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라든지, 애써 얻은 주제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살을 입히고 꾸며서 보여주려는 노력이 일관되게 드러나는 시 세계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가 무거워진 형국이다. 생각과 이미지가 활달하게 치닫고, 멈출 곳에서 멎고 해야 하는데, 늘 고만고만한 어조와 발상법이 일관되게 나타나서 졸음을 불러온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발상의 격식을 과감하게 바꿔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드러내는 방법이나 접근하는 방향을 과감하게 뒤집거나 바꾸어서 이 단조로움을 벗어볼 필요가 있는 시집이다.★★☆☆☆[4337. 6. 18.]   670□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주용일, 경계시선 20, 문학과경계사, 2003   시가 작은 이야기를 해도 큰 아름다움이 된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시인이다. 큰 이야기를 다루려 하지 않고, 작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큰 이야기를 할 줄 알며, 말에 빨려들지 않고 말의 맛을 낼 줄도 아는,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잘 다루는 시인이다. 다만, 시들이 너무 소품에 머물러 있다는 것과, 대부분 애써 다룬 것들도 남들이 벌써 한 번씩 훑고 간 것들이라는 것이 끝내 아쉬운 부분이다. 방법상으로도 아쉬운 구석이 있다. 언어가 관념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서 겉도는 묘사가 간간이 눈에 띈다.   그리고 가장 큰 아쉬움은 시에 비전이 없다는 점이다. 큰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 속으로 침몰하면서도 끝내 놓칠 수 없는 꿈이 있어야 한다. 그 꿈이 너무 희박하거나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일상의 무의미한 의미들을 반복하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시집 전체에서 초점이 서너 가지로 나뉘는 것도 큰 단점이다. 따라서 시집 전체의 주제를 한 곳으로 모는 것과, 새로운 것을 꿈꾸는 의지만 조금 살아난다면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쓸 시인이다. 한자는 빨리 버려야 할 걸림돌이다.★★★☆☆[4337. 6. 18.]    
140    시집 1000권 읽기 66 댓글:  조회:1883  추천:0  2015-02-11
  651□통영 바다□최정규, 실천문학의 시집 113, 실천문학사, 1997   문학은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양식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양식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시집도 보기 힘들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몰골부터 전면으로 드러나는 많은 운동권 시집들하고는 전혀 다른 시집이다. 통영이라고 하는 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거기 뿌리 내린 사람들의 표정을 아주 자세하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그려냈다. 문학이 삶에 뿌리내리기는 쉬워도 한 지역에 뿌리내리기는 어려운 법인데, 자신의 삶이 드리운 한 지역을 이만큼 고집스럽게 그리는 것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중요한 미학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다만 너무 설명조로 흐른 것 때문에 시가 곳곳에서 지루해지고 그 부분들이 그릴 전체의 모습이 선뜻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아쉬움이 남는다. 진정한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세부를 넘어선 어떤 전망까지 담아야 한다.★★☆☆☆[4337. 6. 16.]   652□먼 길을 움직인다□맹문재, 실천문학의 시집 112, 실천문학사, 1996   시를 많이 써본 솜씨인데, 내용 때문에 시의 겉모습이 많이 일그러져 있다. 할 말이 이미지의 전체 모습을 흔들면서 생기는 일이다. 맹렬한 주제는 때로 시의 전체 균형을 허문다. 그리고 의도한 것이겠지만, 주변의 사물과 인물이 자기 중심으로 해석되어 좀 무리수를 둔다 싶은 구석도 있다. 시집 뒷부분의 회고조는 다른 부분과도 잘 안 어울린다. 그러나 서정성으로 사건을 끌어들이고 시의 관성 안에 주제를 묶어두는 능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어느 쪽이든 너무 경직되면 시가 볼품이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게 하는 시집이다.★★☆☆☆[4337. 6. 16.]   653□사과 향기가 만드는 길□이양희, 실천문학의 시집 111, 실천문학사, 1996   섬세한 관찰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양식이 시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시집이다. 여린 감수성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시에서 도외시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엉뚱한 전통이 서는 바람에 그런 세상이 시의 본래 영역이라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혀진 이 시점에 이런 빼어난 시집이 나온다는 것은 한국시의 한 반성이자 거울이 될 법도 하다. 전혀 꾸밈이 없고, 정직한 감수성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한 아름다운 정신세계가 이론이나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발견된다. 이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서정시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설명조의 시상 전개와 군더더기를 끝내 청산하지 못한 미숙함이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그런 단점마저 덮어버릴 만큼 시의 영혼이 맑고 순결하다. 이 자세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 점만 유지된다면 우리는 머지 않아 뛰어난 서정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식이다.★★☆☆☆[4337. 6. 16.]   654□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오봉옥, 실천문학의 시집 116, 실천문학사, 1997   전망을 잃고 영각 켜는 소리가 들리는 시집이다. 전망을 잃으면 주변을 돌아볼 수밖에 없고, 전망 없이 돌아보는 주변의 풍경들이 시집으로 형상화되었다.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생각의 간절한 부분을 수사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절실성 때문에 긴장이 느껴진다. 그러나 절실함만으로 쓰는 시는 한계가 있다. 체험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어 한 체험을 공공의 체험으로 만드는 것이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을 가볍게 보면 절대로 큰 시인이 될 수 없다. 한자는 몸에 박힌 가시이다.★★☆☆☆[4337. 6. 16.]   655□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강산, 실천문학의 시집 105, 실천문학사, 1996   어조도 단조롭고 시상 전개 수법도 밋밋한 것이 흠이지만, 주제가 뿌리내린 대지가 든든한 것이 강점이다. 생활 주변에 꼼꼼한 관찰을 준 것이며, 이제는 한물 간 것처럼 여기지지만, 인류가 도외시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의 의미를 거기서 읽어내려는 노력은 아주 값진 것이다.   그러나 고민의 방향이 너무 전망을 잃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한다는 것이 중요한 단점이다. 이런 시의 경우 사소한 것에서 모순의 한 극점을 보아야 하지, 주변의 절망에 잠겨서 그 감성을 곱씹을 때가 아니다.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시의 전망을 위해서도 그런 침잠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굳이 이쪽에서 하지 않더라도 슬픔과 절망을 곶감 빼먹듯 울궈먹으며 명성을 떨치고 돈을 버는 시인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좀 더 냉정하게 역사와 현실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이 시인이 나아갈 방향인 셈이다. 한자는 그 길을 가로막은 장애이다.★★☆☆☆[4337. 6. 17.]   656□메나리 아리랑□안용산, 실천문학의 시집 102, 실천문학사, 1995   말로 이끌어가는 시는 이미지가 만드는 상호연관성의 긴장이 없기 때문에 주제의 선명도가 가장 중요한 초점이 된다. 따라서 시가 어떤 의미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가 하는 것이 시의 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이 또렷해야 하고 그 또렷함이 시 전체를 이끄는 방향타의 구실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 시집의 경우에는 같은 말들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고 어조까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시가 지루하다. 따라서 그 지루함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난제이다. 한자는 어떤 면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4337. 6. 17.]   657□몽유 속을 걷다□김신용, 실천문학의 시집 118, 실천문학사, 1998   특이한 체험이 시에 무리 없이 아주 잘 녹아들어서 한 독특한 세계를 이루는데 성공한 시집이다. 문학에서 체험의 다양성은 중요한 재산인데, 유독 시에서는 그것이 명작으로 승화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시가 워낙 단순한 양식인 데다가 굳이 특별한 체험을 통하지 않더라도 시가 전할 수 있는 내용이 어떤 전제된 가정 위에 서있어서 그 가정만 받아들여진다면 특수한 체험으로도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이 얼마든지 잘 소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문답처럼 이미 어떤 전제된 긴장 위에서 진행되는 화법이기 때문에 시에는 굳이 특별한 체험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그 변한 모습이 새로운 전제가 되어야만 전할 수 있는 내용이 생긴다. 그것이 근대의 사회 구조이고, 그 구조 속에 깃든 인간의 영혼이다. 이 부분을 전하려는 노력이 많은 시인들에게서 나타났고, 그런 노력의 역사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데, 그런데도 아쉬운 부분이 남는 것은 그런 다양한 변화를 시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구석이 여전히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별한 체험은 자칫 일반이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의 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특수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시집의 경우는 바로 이 특수함이 시를 살리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미 이런 화법이 통할 만큼 우리 사회가 변했고, 그 변화 위에서 특수함이 받아들여질 만큼 필요한 어떤 전제를 우리는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한 극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이기에 이 시집은 시의 한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불필요한 한자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동원된 장황한 이미지들이 문제가 된다. 좀 더 단정하고 날카롭게 될 수 있을 법한데, 다변으로 하여 산만해졌다.★★★☆☆[4337. 6. 17.]   658□정신은 아프다□이용한, 실천문학의 시집 107, 실천문학사, 1996   주제를 싣고 거침없이 상상력을 펼치는 패기가 아주 좋다. 시들이 이리저리 빠지는 듯하면서도 할 말을 향해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솔해서 끌고 가는 것이 활달하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다소 경솔해 보이고, 그 경솔함은 주제의 흐름을 두어 가지로 갈라버리기 때문에 시집 전체로는 약점이 된다. 상상력이 활달하면 그 활달함 때문에 진지한 주제를 다루기 어렵다. 그래서 정작 진지해져야 할 곳에서도 톡톡 튀는 경향은 이 시인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큰 단점이다. 한자는 그런 경향과 상관없이 장애이다.★★☆☆☆[4337. 6. 17.]   659□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조용미, 실천문학의 시집 106, 실천문학사, 1996   시집의 앞부분 절반이 습작의 냄새를 못 벗어났다. 전체를 꾸미는 재주는 있는 것 같은데, 시각이 너무 작은 것에 집착을 하고 있어서 정작 큰 것을 볼 때 방해가 되는 이미지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모든 이미지나 구조가 시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그런 방향을 방해하는 것들부터 걷어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의 양과 일정 정도 비례한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시집 뒷부분으로 가면서 시가 아주 안정된 어조와 구조를 보이고 있지만, 앞부분의 단점은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다. 한자는 백해무익이다. 실천문학사에서 이런 시집을 낸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4337. 6. 17.]   660□어떤 청혼□정기복, 실천문학의 시집 123, 실천문학사, 1999   시에서 묘사는 아주 중요하고, 그 위치에 따라 시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지만, 자칫 잘못 쓰이면 묘사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묘사는 아주 냉정한 방법이다. 겉으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듯하면서 내면의 감정을 일거에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묘사다. 그런 만큼 그 방법도 내용도 철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넋두리만도 못한 방법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묘사가 절실한 방법이 되어서 성공하도록 하려면 묘사되는 그 그림의 밑바닥에 맨틀처럼 꿈틀거리는 거대한 감정이 고여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이라고 할 수 있는 뿌리깊은 것일수록 좋다. 어쩌다 발견하는 조그만 감정 가지고는 실패하기 딱 좋은 것이 묘사라는 방법이다.   이 시집에서는 묘사가 그럴듯하게 잘 된 것 같은데 그 묘사가 드러낼 내용물이 너무 얕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공들인 것들도 그냥 겉돌고 만다. 게다가 앞부분에서는 상황에 적절치 못한 이미지들까지 등장해서 흠을 더욱 키우고 있다. 요컨대 너무 서둘러서 시집을 낸 것이다. 그리고 실천문학사에서 나올 시집도 아닌 것이다.★☆☆☆☆[4337.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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