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소설
14.
7월초순의 어느날 <<대구권총사건>>으로 형무소에 갇히여 고생하던 박상진이 풀려나왔다.
박상진은 좌진을 만나자마자 군자금모집정황부터 물어보았다.
좌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두마오, 돌에서 기름짠대두 그만은 났겠소.>>
<<그리두 힘들어? 그놈 부자들 머리통은 어떻게 돼먹었길래 그모양이야?>>
<<그놈의 골통에 애국심은 깡깡 마르구 더러운 숭일사상만 꽉 배긴거같으오.>>
<<그자들 정녕 그렇다면야 단맛 좀 봐야할거 아닌가?>>
<<내 생각역시 그렇소.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아난다는 속담 그른데없나봐.>>
<<참 그래. 건데 자식들 우릴 우습게 보고있네.>>
박상진은 입가에 경멸의 미소를 짓고나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아마도 내가 속히 한탕할가부다.>>
좌진은 알아들었다. 그것은 출국하리라는 소리였다. 중국과 로씨야를 여러축갔다온 그는 길을 알고 련계도 좋았다. 좌진은 이젠 손에 무기가 있어야함을 절실히 느끼고 그가 어서가서 무기를 구입해오기를 바랐다.
그런데 군자금모집이 뜻대로 되지 않고 경제난으로 인하여 독립투쟁이 부진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로씨야나 중국정부의 원조라도 받아야할게 아니냐고 했다. 지금의 형세야 어떻든간에 그 두 나라야 력사적으로 반일상태에 있어서 가능할것 같기도했다.
박상진은 이번걸음에 특히 중국의 거두 손중산을 한번 꼭 만나보리라 작심하고 지체없이 출국의 길에 올랐다.
어떻게 될런지?
박상진은 갈 때 거액의 돈을 휴대했다. 그는 황포강을 다시건너 거기서 해야 할 일들을 끝마치고나서 손중산선생을 만나보러 곧추 남경으로 갔다.
위태로움은 별로 없었다. 남경에 이른 그는 거기서 먼저 손중산의 부실(副室) 로일화(魯日華)를 면목익히고 그의 소개로 손중산을 회견했다. 박상진은 그의 앞에서 조선의 독립운동방략을 력설하고나서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손중산은 조선독립혁명을 동정하면서도 자국의 복잡한 형세, 즉 중국역시 혁명과업을 수행중에 있으므로 직접 도와줄수 없음을 말했다.
사실 형편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박상진은 손중산에게서 그가갖고있던 권총 한자루를 기념으로 받았다. 그것은 최신식의 미국권총이였는데 손중산은 조선독립혁명이 꼭 승리하기를 기원하면서 그것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박상진에게 자국의 독립혁명을 잘 이끌어나가달라는 부탁과 격려의 뜻이기도했다.
박상진은 물론 손중산이 그만해도 고마웠다. 그는 그번걸음에 상해에서 권총 13자루 구입해왔다.
좌진은 이 13자루의 권총이면 손을 펴서 군자금의연에 불응(不應)하는 악질부호들을 혼내울수 있으리라 생각되여 박상진과 함께 회원중 용감하고 지기있는 사람 몇을 뽑아 행동에 나설 의연금모집을 위한 결사대를 따로 조직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만 8월하순 어느날 저녁켠 가회동막바지에 있는 취운정 솔밭속으로는 기이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으니 그들은 김좌진과 박상진을 비롯해서 김한종, 채기두, 김경태, 장두환, 우재룡, 우리견, 림봉주 그리고 박성태외에 몇이 더해서 모두 13명이였다. 이 자리는 좌진이 여기서 살 때 벌써 보아둔것인데 취운정 그윽한 솔밭속에서도 제일 으슥했거니와 만일의 경우 도망하기에도 편리하고 발각될 위험도 적었다.
13명동지들이 다 모이자 좌진은 먼저 두사람의 사찰을 내세워 계동쪽과 가회동쪽을 감시하게했다. 그런 후 모두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좌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밤 여러분을 모이게한것은 다름아니요.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잘 알것이니 간단히 요령만 말하겠소. 아시다싶히 지금 우리들에게는 되도록 많은 군자금이 필요하오. 이 땅에 들어서는 왜놈의 우두머리들을 모조리 처리해버리기위해서도, 그놈들의 기관을 때려부시기위해서도, 또 해외에서 힘쓰는 동지들의 일을 돕기위해서도 참으로 돈이 많이 필요하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적으로 보아서는 우리들의 활동은 원활하지 못하였소. 그래 인제부터 우리는 되도록 짧은동안에 가급적 많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수단을 바꾸어 써야겠소. 모두가 알고있다싶히 이것은 린색하고 애국심이 없는 부호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여서 여러가지 난관도 많을것이오만 여러분들은 많이 애써 주시오.>>
좌진이 여기서 잠깐 말을 끊고 박상진이 한마디 께기였다.
<<우리는 우리가 목적한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네가지를 해야하오. 첫째는 비밀, 둘째는 폭동, 셋째는 암살, 넷째는 명령. 비밀은 각자가 지키자면 지킬수있는 것이고 폭동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자신이 없으나 오직 암살은 지금이라도 가능한 것이요.>>
이 말은 그가 전에도한바있다.
좌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며칠전에 우리한테는 마침 권총 몇자루 있게 되었소. 같은 동포끼리 무기를 휘두르는건 례의가 아니지만 인제는 사정부득이 하오! 그러나 동지들에게 거듭 부탁하고푼건 부디 인명을 함부로 살상하지 말아달라는거요. 허지만 또한 동지들의 명 하나는 지금 그들 유상무상의 천명보다도 더 귀중한것이니 그들 때문에 만일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다달을 때는 총을 쏘시오. 동지들은 살아서 정말로 우리들이 계획하는 일 앞에서 죽을 각오를 하시오. 이걸 아시겠소?>>
<<예!>>
그들은 나지막하나 단호한 소리로 대답했다.
<<자, 그러면 우리 모두 일어서서 손을 들고 조국을 지키시는 신명의 앞에 함께 맹세합시다!>>
이에 모두들 나란히 일어서서 손을 들어 맹세를 신명앞에 올렸다.
<<그럼 이대로 헤여집시다. 마음은 메여질것 같지만 별 할 말이 없소.... 부디 몸조심들 하시오. 그리고 권총은 상진동지집에 있으니 주의해서 모두들 가져가시오.>>
좌진은 이같이 지시하고나서 이 일은 극비밀이니만큼 사람마다 가정에서도 부모자식에게까지 비밀을 엄히 지켜달라는것을 강조했다.
그들은 <<대구권총사건>>때와 같이 자산가들이 요구에 응하지 않을것을 념려하여 먼저 대자본가 한명을 암살해버림으로써 부호들에게 경고하여 자금조달을 용이케하려 했다. 이 계획에 따라 암살대상으로 선택된 인물이 경상북도 칠곡(漆谷)의 장승원(張承遠)이였다. 왜냐하면 그는 악명높은 대지주였기 때문이다. 그자는 경상도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한국말기의 고급관원으로서 임금의 토지까지 편취한 불충한 인물이였을뿐만아니라 농민들을 혹독하게 착취해서 민분이 컸다. 그자는 또한 1916년 음력 5월하순에 왜관(倭館)에 거주하는 김요현(金堯賢)의 처 리성녀(李姓女)를 불법으로 때려죽이는 등 만행을 감행하여 만민의 원망을 사고있었다. 하건만도 이런자들은 일제를 등에 업고있으면서 아무런 가책도 없이 안하무인으로 놀아대고있었다.
<<그런놈을! 그런 악한을 어찌 살려둔단말이요. 내한테 맡기소. 내가 그놈을, 아니 실수없이 해치우리다.>>
장승원을 처단하는 문제가 상정되였을 때 이러면서 자진해나서는건 채기두였다.
좌진은 대호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채기두가 이까짓 목숨이라도 쓸데가 있다면 언제든지 내여던지겠노라면서 자기보고 급한 일이 있으면 아무때건 불러달라던 일을 한번다시 상기했다. 그때 그같이 면목알아서부터 지나온 몇해간 두사람의 관계는 보통이상으로 가까워져서 좌진이는 아닌게아니라 일이 있을때마다 그를 찾아 맡기군했었다. 그동안 채기두는 과연 로고가 많았다. 허지만 공을 따짐이 없이 이렇게 어려움에 목숨걸고 남먼저나서니 참말로 이 이상 믿음직한 동지가 있는것같지 않았다.
이 얼마나 존경할만한 사람인가!
<<이길로 곧장 돌아가시렵니까? 돌아가시더래도 술이나 한잔 같이 나누고봅시다.>>
이때 그들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고 가까이에 오직 채기두 한사람만있어서 좌진은 그를 끌었다.
<<술생각은 나도나는구려. 그런데 날 데리구서 어디메루가려오? 기생술집인가?>>
<<기생술집이라니요. 전 아직 그게 어떤덴지 모릅니다.>>
<<하하, 이거! 아직두 기생집을 모른다? 고지식한 량반이군!>>
채기두는 아주 무람없이 입을 뻐개며 웃고나서 동을 달았다.
<<그래 집에는 좀씩 가보나?>>
<<왜 안가겠습니까. 가보지요. 얼마전에도 한번 고향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거긴 헌병딱지들이 불을 어찌나켜는지 두밤다시 자기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인파에 섞여 사는 이 서울이 낫지요.>.
<<참 그래. 더구나 우리네 본부가 여긴데 김선생이야 지키고있어야지.>>
<<요긴할 땐 나도 출마하렵니다.>>
<<그건 나도알어.>>
그들은 화제를 돌리였다.
17년전 미국 전기회사에 의하여 처음으로 종로(鐘路)에 전등이 가설된 후로부터 서울거리는 점점 야경이 멋스러워갔다. 일본식의 다방이 늘어났고 층집들도 생겨났다. 그런데 전해의 7월부터 짓기시작한 총독부청사는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다. 좌진이와 채기두는 두해전에 지은 조선호텔과 이해의 10월에 가야 완공되리라는 한강인도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걷다가 안전한 자리로 보아둔 어느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간단히 한잔씩 나누었다. 헌데 그것이 마지막 고별주로 될줄이야 어찌알았으랴.
그로부터 10여일후.
신문에 충청도의 지주 리모가 괴한의 흉탄에 쓰러졌다는 보도가 발표되였다. 그러자 또 10여일후에는 전라도에서 전모라는 일본인 부호가 사살되였다는것이 신문에 났다. 경기도에서, 황해도에서, 평안도에서, 강원도에서 친일파로 유명하고 구두쇠로 이름높던 부호와 지주들은 그 국적여하를 불문하고 련달아 거꾸러졌다.
그러나 범인은 오리무중이요 온 조선은 더구나 그 때문에 부글부글 끓었다.
좌진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진정할수 없었다. 걱정되였던 것이다.
(부득이한 경우외는 인명을 없애지 말라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두 왜 이런가? 그래 모두 부득이하기만 했던가? 조선의 부호들은 정말 모두가 멍청한 돼지들뿐인가? 이러다 발각되는 날이면 어쩌는가?)
그는 동지들의 안녕이 걱정되였다. 자기 하나야 승천입지(昇天入地)라도 할만한 자신이 있지만 동지들의 생명과 계획한 일이 실패될까봐 걱정될뿐이였다.
어느하루 땅거미질 무렵 박성태의 보고를 받고 돌아오던 좌진은 김상옥이와 함께 경찰의 추격을 받게되였다. 이럴때 공교롭게도 좌진이를 만나보고 연해주로 떠나려 하는 정해식과 마주쳤다.
사태의 위급함을 깨달은 정해식은 두사람을 데리고 계동쪽으로 뺏다.
세사람은 어둠속에서 뛰다가 담장이 둘러진 어느 한 집 대문으로 쑥 들어갔다. 불밝은 방에서 거문고소리 들려왔다.
<<가만있자! 여기가 어디여? >>
정해식이 중얼거리는데 몸매를 단아하게 갖춘 중년의 주인녀인이 나타났다.
<<여보슈, 주인마님!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잖어. 우리네 이 량반을 잠간만 숨겨주구려!>>
정해식이 집요한투로 곡진히 사정해서 연유를 알게된 녀인은 좌진을 훑어보더니 웃음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정해식은 김상옥을 데리고 인츰 자리를 떳다.
화순(和順)이라는 17살나는 녀종이 주인 분부대로 인차 목욕물을 끓이였다. 녀주인은 좌진을 목욕시키 후 옷까지 갈아입히곤 자기 딸 방에다 숨기였다. 경찰이 잡으려는 사람을 숨겨두면 그 후과가 어떠하리란걸 모르는바도 아니였건만 그녀는 사내의 름름한 기강에 마음끌리여서였던지 그런 선심이 생겨났다. 그녀의 딸은 이름이 김게월(金桂月)이요 나이는 22살이였는데 상궁인 어머니의 주장에 쫓아 기생이 된 몸이였다. 일견하여 사내의 눈을 끌만한 미모는 아니였지만 언행이 스스로 자리잡히고 태도가 세련되여 맑고 의젓한 얼굴과 어울리는 녀인이였다. 더구나 그녀는 거문고 잘타고 옛노래를 잘 불렀다.
좌진이 그의 집에 뛰여든것이 9월 10일이였다.
초조와 불안속에 하루하루 흘렀다.
좌진이 혹시나 하는 념려가 지꿎게 갈마들때면 그것을 털어버리고 요행을 바라면서 되도록 좋은 방면으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러나 하늘이 이 나라와 이 나라의 불쌍한 민족을 돌보지 않는지 그의 념원대로 되어주지를 않았다. 전 조선땅에 12명의 일본사람과 조선사람의 지주, 부호가 련달아 쓰러지고 뒤이어 11월 10일 경북 칠곡의 장승원까지 피살되자 비밀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한것이다.
김한종이 대구에서 체포되였다는 보도가 신문에 나타나기바쁘게 풍기광복단에서 활약했던 유창순이 체포되였고 그다음에는 11월초순에 장승원을 사살할 명령을 받았던 채기두도 체포되였다. 그리고 련이어 박상진, 우리견... 이렇게 동지들이 하나하나 적의 그믈에 걸려들어가고있었다.
<<아아, 장한 내 동지들아!>>
좌진은 비감에 잠기여 부르짖었다.
적의 혹독한 고문 끝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동지들을 생각하니 가슴은 칼로 저며내는것 같고 눈물은 앞을 가리였다. 몇은 서약과 동지의 의리와 장차의 일을 위하여 체포된 동지들은 아직까지 좌진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은 모양이나 언제 어느때 그마저 잡힐는지 모를 일이였다.
생각하면 비겁한것 같지만 좌진은 빨리 여기서 사라져야 했다. 더구나 리석대(李奭大)가 <<은산금광사건>>으로 체포되였기에 좌진은 이미 대한광복회로부터 만주지역 사령관으로 임명받은바도 있는것이다.
(내가 여기서 어물거리다 잡혀서 그네들과 같이 죽어서는 안된다. 살아서 그들의 원쑤를 갚아야한다.)
그는 충실한 아들의 흘리는 피를 먹고 흐느끼는 망국(亡國)을 어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게월이 이리 좀 오라구.>>
좌진은 마루하나 건너인 안방을 향해 조용히 불렀다.
암방에서 붓글씨를 쓰고있던 계월이는 웬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웃는 얼굴로 사뿐히 건너와 낭자틀고 옥비녀 꽂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였다. 이때의 그녀는 이미 좌진의 씨를 배속에 지니고있는 몸이였다.
좌진은 계월에게 그가 그지간 시중들어주어 고맙다는것과 자기는 쉽게 다시오기는 어려운 먼길을 가니 그리 알라는 말을 하곤 섧게 우는 그녀를 놔둔채 훌쩍 거기를 떠났다.
고향에 들리기도 무서웠다. 홀홀단신이여서 거치장스러움은 없었지만 길을 떠나자니 손에 푼전한잎도 없어서 곤난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동지를 찾을겸 전라도 모처에 가 헤매이던 좌진은 그곳에 있는 한 생명부지의 부자집에 뛰여들어 무턱대고 돈 3천원만 제꺽 꾸려달라했다. 그러자 주인이 당신은 대체 누군데 돈은 대체 무슨일에 쓰려느냐고 물었다. 이에 좌진은 강도가 돈을 달라는데 그건 알아서 무엇하느냐고 했다. 주인은 사나이의 기강에 눌리웠던지 돈 3천원을 내놓았다. 그제야 좌진은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고 고맙다면서 이 돈은 절대 허타이 쓰지 않으리라는 말을 남겨놓고 나왔다.
좌진은 그길로 발길을 북쪽으로 돌려 로인으로 변장하여 압록강을 건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