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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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1장(4)
2014년 08월 22일 22시 35분  조회:2353  추천:1  작성자: 김송죽
 

 

   4.

 

   려홍이는 아무리생각해도 극도로 쇠약해진 아버지가 자리에서 쉬이 일어날것 같지 않아 속이 탓다. 생각같아서는 어서 장가라도 가면 셰상뜨기전에 며느리손에서 더운물 한그릇이라도 받게 하여 한가지 소원이라도 풀어드리는 것으로 되련만 집안살림이란 생쥐 볼가심할것도 없이 애색하니 아닌게아니라 답답한 일이였다. 그렇다고 려홍이는 락망과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고는싶지 않았다. 자리에 누운채 긇고있는 약탕관을 붙박아보면서 침묵하고있는 아버지의 메마른 손이 가볍게 떨었다. 이시각따라 아버지가 한결 더 가엽어보였다. 경찰놈들에게 구타당하지 않았어도 이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을것이였다.

   <<아버지, 난 뭣보다 그 경찰서장놈을 빼워버린게 원통해서 죽겠어요. 그놈이 도망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기만 한다면 당장 붙잡아서 모가지를 비탈아놓을걸말이예요.>>

   깊은 명상에 잠겼던 김로인은 그사이 몰라보게 변모한 아들이 성질이 죽기는커녕 더더욱 억세여져서 돌아온것이 못내기뻣다. 한편 그러면서도 본성이 순직한 이 로인은 파란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약약하여 이제는 그저 말썽이 다시없이 무난히 지내려는 자기의 속마음을 그대로 내놓았다.

   <<리서장놈이 해온짓을 봐선 당장 릉지처참을 해버린대두 이 가슴속에 맺힌 원한을 풀지 못하겠다만 달아나버린걸 어떻게 하겠냐? 그러니 내 소원은 다른게 아니다. 평생에 제 보습 대일 땅만 한번 가져봤으면 원을 풀겠다.>>

   <<제 땅이 있었으면 하는것은 어찌 아버지 한분의 원이겠어요. 하지만 아버지, 땅만 있으면 또 뭘하겠어요. 그따위 악한들이 그냥 살아있는 한 우리더러 신세고치라고 가만놔두지 않을테니말이예요.>>

   <<하긴 그렇기는 하다. 우리와 그런놈들과는 도무지 한 하늘아래에선 살수없으니까말이다. 실말이지 그자들은 철천지 원쑤이네라!>>

   김로인은 이같이 대답하고나서 그 어떤 잡념이 머릿속에 찹잡하게 떠오르는지 입을 봉하고말았다.

   려홍이는 속이 갑갑해서 불을 피우느라 손에 쥐고있던 나무꼬챙이를 던지고 밖으로 휑하니 나왔다. 바람이 불어왔다. 더위를 품은 열풍이였다. 려홍이는 격노해진 감정을 눅잦히느라 일부러 콧노래를 흥흥거리며 다시금 집안으로 들어왔다. 약탕관에서 약이 졸아붙는 소리가 났다. 그는 얼른 약을 짜서 아버지에게 드린후 광주리를 틀려고 싸리가지를 쥐였다가 도로 집어던지고말았다. 웬 일인지 일감이 전혀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소작료인하투쟁을 해보자고 상의했더니 친구들이 모두 적극 도의해나섰다. 그런데 오늘 꼭 오겠다던 남천오가 왜 오지를 않는지 모를일이였다. 어제밤에 와서 낮동안에 주어들은 부언류설들을 털어놓고 갔었는데 아침새에 또 다른 소식들이 없는지 궁금하기가 그지없었다.

   려홍이는 끝내 집을 뛰쳐나오고말았다. 집모퉁이를 돌아 행길에 나서니 저기 마을중심 십자길에 숱한 사람들이 모여선것이 보였다. 려홍이는 총망히 그리로 걸어갔다. 동네 숱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삥 둘러선 그 복판에 지주집마부 양운파와 절따말 한필이 있었다. 마부의 손에 고삐를 단단히 잡히운 억대스레 생긴 절따말은 방금잡히운 야생말과도 같이 진정하려 하지를 않고 연방 코투레질을 해대며 삥삥 돌아치고있었다. 첫눈에 벌써 사람의 욕심을 돋구는 좋은 발이였다. 젊은축들이 엇바꿔가면서 그 말을 한번 타보려고 법석했다. 하지만 그 절따말은 성질이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누구도 함부로 얼씬거리지 못했다.

   마침 두팔을 쓱 걷어올린 한 젊은이가 말잔등에 겨우 올라붙었다가 그놈이 속구치며 용쓰는통에 허궁나가 떨어져 딩굴었다. 그래서 구경군들은 왁자그르 웃음을 터뜨렸는데 마치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경고나하듯 그 사나운 말은 코를 벌름거리며 <<으흐흐!>>하고 요란스레 효용하는것이였다.

   <<허, 저것 보지, 울음소리만 들어도 영낙없는 일등준마야! 흡사 옛적에 있었다던 적토마라니까.>>

   사람들은 너도나도 찬사를 금하지 못했다.

   <<자, 누가 저놈의걸 후려잡을만한가? 자신있는 사람은 어디 한번 나서보게나!>>

   청년시절엔 씨름깨나했다던 호방스런 장년 한분이 주름잡힌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청년들을 둘러보았다. 보매 자신도 한번 타봣으면 하는 욕구가 간절하나 이젠 기력이 지난것을 안타까와하는 표정이였다.

   <<그눔의 말릏 타기만 하면 임자로 되나?>>

   누군가 호기심이 동해서 이렇게 묻자

   <<되다말다, 임자로 된다니까!>>

   하고 마부 양운파는 짐짓 정말인듯 정색했다가 다시 눈을 슴벅거리고는 능청스레 웃어댔다. 여직 구경만하고있던 남천오가쓱 나섰다.

   <<부자라는건 고양이 잡은 쥐새끼도 빼앗기싶어하는거야. 손대감이 아무리 억마장자라 해도 자기의 말을 줄탁이 있나? 하지만 이눔의 말이 하도 억대세니 내가 한번 후려볼테야.>>

   둥글넙적한 얼굴에 본시 성미가 호협하고 걸걸한 그는 팔소매를 쓱 걷어올리더니 성큼 나서면서 말고삐를 받아쥐였다. 그러나 입에 자갈이 단단히 물린 말은 남천오의 손이 자기 몸에 닿자 아까보다 더 사납게 용쓰면서 아예 그의 손에서 고삐마저 채려고 대가리를 휘두르더니 사람을 자기 발밑에 뿌리치며 두발을 솟구쳤다. 그통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악!>> 하고 고함치며 물러섰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려홍이는 미처 자기 몸의 안전도 돌볼새없이 번개같이 몸을 날려 뛰여들었다. 그는 고삐흫 획 낚아잡자 전신의 힘을 모아 말을 옆으로 탁 챘다. 그리고는 불현간 꺽이우며 숙어진 말대가리에서 굴레를 제꺽 잡아쥐였다. 그러니 말은 그의 손을 물자고 희 이발을 드러내면서 패악스레 울부짖었다.

   <<에익!>>

   려홍이는 주먹으로 그놈의 코등을 한 대 힘껏 갈겼다. 그리고는 다시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제멋대로 마구 흔들어대는 말대가리를 또한번 힘껏 후려쳤다. 그제야 말은 <<으흐흐... 으흐흐... >>소리지르며 그 자리에서 발을 구르다가 서버리는것이였다.

   <<악마같으니라구, 내가 네놈을 그저... >>

   지랄부리는 말을 정복시킨 려홍이는 정복자로서의 쾌감을 느끼며 말잔등에 제꺽 올라탔다.

   말은 다시금 용을 썼다. 려홍이는 네굽질하며 돌아치는 말을 진전시키려고 애쓰는 한편 등자에 발을 꽉 끼우고 입이 째질 지경으로 자갈을 낚아채다가 방향을 잡자 고삐를 늦추면서 불시에 박차를 가하여 곧추 동대문쪽으로 냅다몰았다. 말은 마치도 광란적인 질주로써 분하고 떨리는 성풀이를 하려는 듯이 갈기를 일으키고 네굽을 안으며 악썼다.

   려홍이는 질풍같이 내달리는 말잔등에 납작 엎드렸다. 귀뿌리에서 마치 화살이 스쳐가는듯 휙휙 날파람이 일었다. 떨어만자면 뼈가 부서질건 영락없는 일이였다. 그는 먼지가 구름처럼 뽀얗게 날리고 흑덩이가 튕겨달아나는 광신적인 질주속에서 아슬아슬한 경쾌감을 흡족히 맛보며 마을에서 서너마장밖에 있는 산신묘를 불식간에 돌아왔다....

   마을사람들은 그가 말을 휘여잡고 돌아오는것을 보자 함성을 올리면서 찬탄해마지않았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렴 사람이 이기지 짐승이 이기겠냐!>>

   <<지짜대장부는 그래도 려홍이다!>>

   <<......>>

   경탄과 찬사속에서 려홍이는 말잔등에서 내리자 숨을 돌려쉬고나서 땀이 흠칠난 말엉뎅이를 손바닥으로 몇 번 가볍게 뚜드려주었다. 그리고나서는 히죽이 웃으며 마치 사람에게나 하듯이 애무에찬 소리를 했다.

   <<에 이눔, 혼빵났지 허허... 땀참보이 됐구나. 일없어 내가 이제 당장 널 내가로 글고가 목역시키게 해주마.>>

   바로 이때 동대문쪽으로부터 말발굽소리가 요란스레 났다. 손자량이 달려왔다. 그가 탄 말이 울부짖자 이쪽 말도 급기야 요란스레 효용했다. 손자량은 악쓰는 자기 말을 겨우진정시키더니 채찍을 들어 양운파를 겨누면서 노기등등하니 호통쳤다.

   <<야 이자식아, 누가 말을 내오랬어, 누가? 어느놈이 내말을 저토록 만들어놨어 엉?>>

   <<어쩌누라 이 야단이슈? 말은 내가 내왔지만 이건... >>

   양운파가 답변하려는데 손자량이 돼지멱다는 소리로 그의 말을 끊어무지르며 눈알을 부라렸다.

   <<야, 이 미거한놈아! 네가 내 말을 함부로 끌어내오구도 그 대답질이냐? 누가 말을 내오라구했는가말이다 엉?>>

   기름을 쳐발라 반들거리는 새까만 머리를 뒤로 번져붙여서 넓은 이마빼기가 한결 번들거리는 손자량은 가로째진 뱁새눈에 오만스러운 너털웃음을 지엇다. 심한 모욕감을 느낀 양운파는 속에서 주먹같은 울화가 치밀어오르는지 여느때와는 달리 꿋꿋이 항변해나섰다.

   <<어쨌다구 이 야단이슈? 말은 내가 내오고싶어 그랬나 뭐, 손대감이 기켜서 그랬지.>>

   이 말을 듣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뭐, 아버지가 시켰다구?... >>

   꼴이 난처하게되자 손자량은 오만상을 찌프렸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헌데 말을 누가 저 모양으로 만들었느냐고 기염을 뽑았다. 양운파는 공연히 된욕을 얻어벅은게 분해서 대답도 안하고 말고삐를 채고 돌아섰다. 모인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손자량이 노는 꼴이 아니꼬와서 한마디 빈정대는 소리를 했다.

   <<손도령께서 정 알구싶다면 내가 알려드립죠. 말은 저기 저 려홍아가 탔는데 어찌나 멋스레탔는지 우리모두가 말잘타는 손도령님도 아마 따르지 못할거라구 했습지요, 헤헤!>>

   손자량은 고개를 획 돌려 려홍이를 쏘아보는데 지릅뜬 두눈은 놀램과 시기로 하여 피발이 곤두섰다.

   려홍이는 손자량에게 경멸에 찬 눈총을 던지고나서 몸을 획 돌려 자리를 뜨고말았다. 등뒤에서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려홍이는 땀밴 몸을 씻으려고 내가를 찾아 서대문을 나왔다. 

   내가로부터 맑은 물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서북쪽에서 흘러내리는 네물은 그리 넓지도 깊지도 않았다. 그것은 마을가까이에서 꺾이여 아래로 얼마간 내려가다가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고있다. 귀에 익은 물소리를 들라니 두팔을 휘두르고 소리지르며 물소리나는 저 내가로 장달음쳐가구하던 어린시절의 감미로운 추억이 되살아났다. 천진란만하고 즐겁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야말로 잊지못할 소년시절이였다. 려홍이는 여름해볕이 자글자글 내리쬐이는 삼복더위때면 늘 자갈많고 물맑은 저 깨끗한 내가에서 제또래의 송아지친구들과 함께 발가벗고 물장구치면서 재미나게 보냈다. 그런시절중 14살먹던 해에 미역감다가 손자량과 맞다들어 손찌검하던 일은 더욱 잊혀지지 않았다.

   그날 정오가 방금지나 내가에서 편을 갈라 뭏싸움하고 자맥질하며 놀다나니 어지간히 해나른해진 애들이 이마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말리우고나서 다시 내물에 뒤여들어가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조개잡이를 할 때였다. 한 애가 옹골찬 목소리로 다급히 소리쳐 알렸다.

   <<애들아, 저걸 봐라. 손깡뚱이가 오늘은 코플레기를 데리고 온다!>>

   그 소리에 애들은 모두 머리를 들고 그쪽을 보았다.

   <<저 후례아들놈새끼가 오늘 또 심술부리려나배..>

   <<글세, 어덯게 할가?>>

   려홍이는 주먹을 내들고 다른 애들에게 다짐놓앗다.

   <<애들아, 달아나는건 겁쟁이다! 한번 해보자!>>

   려홍이와 동갑인 손자량이 옷이 널려있는 둔덕으로 왔다. 이마는 넓고 거기에 비해 하관이 좀 빠게 생긴 용모에 지금이나 그때나 기름을 처바른 새까만 머리를 뒤통수쪽으로 착 붙이고 감장비단조끼를 입은 떼세쟁이 손자량은 자기보다는 키가 더크고 실팍하나 기운은 세지 못하고 신통히 마름질하는 애비를 닮아서 주먹코를 달고있는 최배식의 형제를 데려왔던 것이다. 손자량의 손에는 흰 도금을 한 길쭉한 쇠꼬챙이가 쥐여져있었다.

   <<저 애가 저걸 갖고 온걸보니 아마도 싸움걸자는 모양인데 어쩌겠니?>>

   <<어쩔게 있니, 우리한텐 손이 없나 뭐?!>>

   려홍이는 슬그머니 겁을 집어먹는 한족아이 양운파를 달래면서 속으로 은근히 별렸다. 그랬더니 손자량이 뱁새눈을지릅뜨고 만만해보이는 양운파에게 먼저 생트집을 걸었다.

   <<야 이 거지새끼야, 너방금 뭐랬니? 그래 냉큼 나오지 못하겠니?>>

   <<내가 뭐랬게 참... >>

   손자량보다 기운이 퍽 세건만 본시 담약한 양운파는 이렇게 어름어름 대꾸했다. 그래더니 저쪽은 더욱 기염이 올라서 을러멧다.

   <<안했다구? 흥, 이제방금 조선새끼하고 씨버린건 뭐냐?>>

   양운파는 겁나서 감히 대답질을 못했다. 근런데 손자량은 무어라 잘 알아듣지 못할 빠른 말로 입을 놀리면서 함께 온 그 마름의 아들 최배식이를 보고 둔덕에 있는 옷들을 물에다 처넣으라고 추겨댔다. 애들은 안달아 떨면서 욕지거리는 했으나 감히 나가 덤벼들리는 못했다.

   손자량이 발로 려홍이의 옷을 건드렸다.

   <<야 이새끼, 한 대 맞아보련?>>려홍이는 더는 참아낼수가 없어서 강가에 뛰여올라가면서 주은 조개로 그를 답새겼다. 그제야 다른 애들도 용기를 얻어 와ㅡ 소리치며 달려올라갔다. 려홍이는 손자량이 휘두르는 그 쇠줄에 뒤잔등을 한 대 되게 얻어맞고보니 약이 치받쳐서 주먹으로 그의 면상을 후려쳐 제껴놓았다. 둘은 서로 부등켜안고 모래불우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려홍이는 그의 손에 있는 쇠꼬챙이를 끝내 빼앗아서 물에 처넣었다. 애들은 그걸보자 잘햇다고 손벽을 쳤다. 그런데 이때 손자량이 악을 써서 려홍이를 제끼고 올라탔다. 려홍이는 한손으로 타격을 맊아내면서 다른 한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땅바닥에 있는 조개 하나를 제꺽 쥐여 그의 이마빼기를 힘껏 올리쳤다. 손자량은 그만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벌렁 나가자빠졌다. 이마가 터졌다. 그는 피흐르는 이마를 맘싸쥐고 그 자리에서 맴돌이쳤다....

   이런 일이 있은후 며칠이 지나 려홍의 아버지가 손지주집 청지기의 부름을 받고 손가장으로 갔더랬다. 그는 대눔을 열고 장원에 들어서자마자 난데없는 개무리가 갑작스레 달려드는 통에 뒤잔등이며 어깨며 팔이며 정강이며 형편없이 여러군데를 물렸다. 그때 피뜩 볼라니 손자량은 태화전(太和殿) 높은 창턱에 올라앉아 손벽치면서 깔깔 웃어대고 집안에서는 손팡유가 바깥을 내다보며 음흉하게 웃고잇었던 것이다. 려홍의 아버지는 요행 몸을 빼기는했으니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후 여러해를 내내 죽을 고생을 하였다. 하지만 그같이 억울한 봉난을 어디다 신소할 곳도 없었다.

   려홍이는 그후부터 심보고약한 손자량놈이 제 이마빼기에 난 숭터 때문에 아무 때고 꼭 보복하리라짐작하고 각별히 주의해왔던 것이다.

   려홍이한테는 어렸을적부터 치구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제일친한건 남천오와 온순한 한족아이 양운파였다. 려홍이가 손자량과 싸운 일에 대해서 남천오는 잘했다했고 양운파는 잘못했다 했다. 양운파는 확실히 반발심이 없는 애였다. 허나 려홍에겐 배짱이 있었다. 굴욕을 수치로 알았던 그는 그때 비록 나이는 어렸어도 복수를 해야한다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열다섯살을 먹던 해에 슬그머니 집을 떠나 멀리 간도에 있는 외할아버지집에 가서 몇해간 있으면서 당수(唐手)를 배웠다. 외할아버지는 먼 옛날 의병대에 있을 때, 기예높은 무술로 하여 이름을 떨쳤던 분이였다...

   다리목에 이르니 내가에서 웬 녀인이 빨래를 하고있었다. 넙죽한 빨래돌우에서 희거품을 일으키는 빨래를 물에 넣어 헹구고나서 다시 찰딱찰딱 방치질을 했다. 고르고 절주있는 방치질소리는 거울같이 맑은 온 내가에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뉘집 색시일가?... )

   려홍이는 뒷모습만 보고 머뭇거리다가 떠진 걸음으로 다가가 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혜옥이였다.

   <<난 또 누구라구?... >>

   <<호호... 몰라봐어요?>>

   혜옥이는 빨래하는데 거치장스럽다고 감아얹은 자기의 머리태를 만졌다. 아집 파겁을 못한 나어린 처녀모양으로 귀밑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하지만 정겹게 웃음짓는 그의 눈은

   <<봐요, 이렇게 머리얹으니 몰라보겠지요?>>

   하고 묻고있는상싶었다. 비록 가난한 집 딸이여서 모치장을 달리하지는 않았지만 손수지은 옷을 정갈하게 입어서 한결소박하고 단아해보이는 용모를 흘린듯이 바라보면서 려홍이는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했다.

   <<에그! 저 두거비 좀 봐!>>

   혜옥이가 황겁히 소리지르면서 려홍이의 몸가까이로 닁큼 다가들었다.

   <<뭐, 뭐여?... >>

   언제 어디서왔는지 눈알이 툭 불거진 굉장히 큰 옴두꺼비 한 마리가 방금 혜옥이가 빨래하던 돌우로 엉기적엉기적 기여올라가고있었다. 보기조차 끔직한 증상맞은 놈이였다.

   려홍이는 두말없이 발로 냅다차버렸다. 배가 불룩한 그놈은 고무공처럼 튀여 저쯤나가 물우에 철썩 떨어지더니 흰배때기를 내밀고 둥둥 떠내려갔다.

   <<에그!>>

   혜옥이는 려홍의 뒷잔등을 짚엇다가 제꺽 손을 뗐다.

   <<땀은 왜 이렇게 흘렸어요?>>

   <<나 방금 말을 탔더랬지.>>

   <<말은 어데서 난 말이게?.... 적삼벗어요, 얼른 씻게.>>

   헤옥이는 땀에 푹 젖은 적삼을 빨리벗으라고 재촉을 했다. 바로 이때 냇가둔덕서 려홍이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들 둘은 눈이 둥그래서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 남천호가 헐헐거리며 뛰여왔다. 그는 와닿자마자 땀에 젖은 적삼을 와락와락 벗더니 동생에게 넘겨주고는 긴요한 말을 할것처럼 려홍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두사람은 그늘진 다리밑으로 들어갔다.

   <<그자식이 바싹 약이 올랐던데 힝!>>

   남천오는 물을 움켜 얼굴을 씻으면서 이렇게 말을 뗐다.

   <<갈개군같은 자식이 눈깔을 지릅뜨긴 제기, 그럼 누가 겁나할줄 알았던 모양이지, 흥!>>

   <<헌데 네가 그걸 탔다고 하니 더구나 분해하는게 환히 알리더구나.>>

   <<거야 그럴수밖에 없지, 그녀석과 난 본래부터 옹추간이니까.>>

   려홍이는 이렇게 말하며 방금전에 있었던 일을 얼핏 돌이켜보았다. 그것은 사실 유퇘한 놀음은 못되였다. 애당초 손자량과 같은 작자하고는 만나지도말아야했는데 오늘 공교롭게 다시만났으니, 그자의 지릅뜬 눈에서 불길한 앞날이 자꾸만 되짚어질뿐이였다.

   <<네가 방금 탔던 그 말은 말이다. ....너, 이전에 그런 말을 본 일이 있나?>>

   <<없어, 그래서 아마두 내가 감옥가있는 사이에 산거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려홍이는 눈을 꺼벅거리고나서 뒤말을 보탰다.

   <<내 보겐 틀림없는 일본군마인데 그자들이 대관절 어디서 저런 말을 얻었을가?>>

   <<옳아, 틀림없는 일본군마야. 그렇단걸 나도 방금알았어.>>

   남천오는 이렇게 자기가 얻어들은 이야기를 했다.

   <<저 말은 어제아침에 자량이녀석이 동네밖을 나갔다가 끌고들어온거래. 남의걸 빼앗았다나!>>

   <<빼앗았겠지, 안그러면 그자식이 설마 돈주고 싰겠나 뭐.>>

   <<빼앗아도 그저 빼앗은게 아니구 사람죽이고 빼앗은거래.>>

   <<원 저런?! 천하에 강도같은녀석!... >>

   남천오는 려홍의 분개에는 관계치않고 한가지 더욱 요긴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저 뭐라더라... 거시기 있잖아. 그렇지, 손가네가 이제 수향댜라는걸 조직하련다는구나.>>

   <<건 또 무슨 소리니? 그래 어디서 들었냐?>>

   <<운파한테서 들었지, 내가 아까 너네 집으루 가다가 말글고 장원에서 나오는 운파를 만나지 않았겠나. 말도 처음보는 말이렸다, 게다가 안장까지 제법 지웠길래 <운파야, 말끌고 어디가나?> 하고 물었댔지. 그랬더니 그가 <말도말어, 인젠 나더러 별 시시한 일을 다하라는구나> 해놓고 <천오, 넌 이 말이 어떻게 온겐지 아냐?> 하고 묻지를 않겠나. 난 물론 모른다고했지.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이 <이건....너 다른 사람하고는 말하지 말어.이건 손도령인지 망도령인지 한자가 살인하고 빼앗은거야. 그런걸 손대감이 나더러 끌고나가 길을 좀 들여달라나 젠장!> 하더란말이다.>>

   남천오는 더욱 음성을 낮추어가며 속삭이듯 말했다.

   <<손지주는 요며칠새에 수향대를 조직하겠노라구 하더란다.>>

   (그 <<수향대>>라는건 도대체 뭔데 손지주는 왜서 그따위걸 갑작스레 조직하는걸가?... )

   하고 려홍이는 자기의 마음속궁리를 밟아나아가는데 남천오가 문득 따지고들었다.

   <<려홍아, 넌 수향대에 들라고 하면 어쩔테냐? 들테냐 안들테냐?>>

   <<뭐, 내가? 내가 무슨눔의 지랄병났다구 거겔 들어? 만금을 준대두 난 들지 않을테다!>>

   려홍이는 이렇게 썩뚝 잘라말했다. 그랫더니 남천오는 려홍의 두팔을 부둥켜잡고 자기도 그 생각이라면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죽자고 당부하였다.

   <<음, 우린 꼭 그렇게 하자! 우리가 밟을 길을 우리가 튼튼히 밟고 가자!>>

   하고 려홍이는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고 굳게 맹세하였다.

   혜옥이가 적삼 두벌을 깨끗이 씻은 뒤 다리목근처 담록색꽃이 한창 피고있는 대싸리에다 널고있을 때였다. 저편 다리건너쪽에서 추접스런 일본류행곡을 부르며 세사나이가 오고있었다. 이어 그즈들의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중국말소리였다.

   <<수지가 맞는단말이야. 이만하면 마수걸이가 괜찮은셈이지 안그래?>>

   <<체, 도로 나무암타불이 돼보라지. 출세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되돌아갈테야.>>

   <<근심말게. 손대감님네가 우릴 이렇게 오라구하는걸 보면 그래두 소원이뤄줄 심산이 잇길래 그러는거야.>>

   <<그렇구말구, 손씨넨 본시 권문세가이니까.>>

   불현듯 한자가 놀랜 게사니 푸덕이듯 하더니 못소리를 가다듬어가며 쉬쉬댔다.

   <<히히히, 저걸 봐. 색시야 색시!>>

   <<허ㅡ 기막히게 여쁜 아가씬걸!>>

   <<조년을 한번 삼티지 못할가? 으흐흐... >>

   불량배들은 다리밑에 자기들을 노려보는 사나이 둘이 있는줄도 모르고 급급히다리를 건너와 혜옥이에게로 다가가면서 꿀단지만난 파리떼처럼 진덕스레 수작질하기 시작했다.

   <<손도령이 접대를 해도 레절답게 하거던! 요렇게 아릿다운 아가씰 마중내보내다니, 히히히... >>

   려홍이가 올려다보니 상판이 털투성인데다 가슴팍에까지 털아ㅣ 숭숭한 자가 양복저고리의 앞단추를 벗기면서 먼저 수작을 걸고있었다. 아마도그자가 셋가운데 도장수인듯 하였다.

   <<저놈을!... >>

   <<가만, 좀 보자!>>

   려홍이는 우쭐 일어서는 남천오를 제지시키며 그자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이 더러운 수캐야! 추접스레 놀지 말어!>>혜옥이가 창졸간에 그자의 뺨을 찰싹 갈기며 반항했다. 털보눈 눈에 불이 번쩍나게 얻어맞은 볼을 쥐고 뒤주춤하기는 했으나 이미 끓어오르는 음욕을 억제할 재간이 없는지 입을 헤벌리더니 두팔을 쩍 벌려 그 흉물스런 품속에다 녀인을 그여히 안으려고 했다. 이 어수선한 판에 얼른 물속애 손을 넣었던 려홍이는 손에 닿이는대로 돌쪼각 하나를 제꺽 집어들고 올ㄹ뛰면서 그자의 대갈통을 냅다 갈겼다. 털보는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그바람에 한녀석은 혼비백산하여 다리를 되건너 달아나버렸는데 다른 한녀석은 품속에서 비수를 제꺽 뽑아들고 접어들었다. 려홍은 민첩하게 몸을 솟구치면서 바로 그의 턱주가리를 히껏 올리찼다. 그랬더니 그자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면서 소리조차 지르지를 못했다. 뒤따라올라온 남천오가 풀섶에 떨어진 비수를 찾아들었다.

   <<개같은 자식, 뭘 해먹을게 없어서 백주에 칼들고 강도질이냐!>>

   려홍이는 자기 발길에 꼬끄러진 두녀석을 멸시하는 눈찌로 쏘아보다가 봉변을 면한 혜옥이한테로 몸을 돌렸다. 남천오가 비수를 내물에 처넣고나서 말했다.

   <<가자, 여기에 그냥있다간 재미가 덜할것 같다!>>

   그들은 지체없이 혜옥이를 데리고 마을로 향했다. 그들 셋은 침묵속에서 걸었다. 려홍이는 이 급작스러운 불쾌한 사건의 장본인이 대체 누구인가를 생각했다. ㅡㅡ손가네는 무엇 때문에 저따위 오괴한 무리들을 끌어모으는건가? 요주움 짧다짧은 기간에만도 들려오는 별의별 불길한 소문들... 세상은 왜 이리도 소란해지는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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