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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준엄한 세월이였다.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발동하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제는 대쏘작전을 준비하는 한편 20개 사단의 병력으로 포위망을 겹겹이 늘이여 항일무장들을 최후로 섬멸해버리려고 시도했다.
여지껏 유격전쟁을 계속해오던 항일부대들은 심산의 근거지가 적에게 발각되면서 습격을 받고 소각되였다. 험악항 상황이였다. 식량과 의복을 더는 공급받을수 없는 고립무원한 처지에서 싸움을 견지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였다. 특히 겨울에는 엄한과 기한에 쓰러지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다.
항일련군은 전성기에는 병력이 45,000여명에 이르기까지 했건만 후에는 불과 1,0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하여 이 대오는 하는수없이 유생력량을 보존코저 국경을 넘어 쏘련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공산당의 령도를 접수하려하지 않고 자기의 용기만믿고 싸웠던 자발성적인 항일무장들은 유생력량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채 모조리 붕괴되고말았다.
산시와 해림에서 생겨났던 <<팔대대>>가 바로 그러했다. <<팔대대>>의 수령 장기산은 부하 안비(雁飛)형제가 일본군에 팔마먹는바람에 잡혀서 철령하감옥에 갇혀 거기서 세균주사를 맞고는 온 몸이 썩어나서 시달림을 받다가 죽었고 로옥중은 1941년 가을에 자칭 고천대(辜天隊)두령이라는 류아무개가 해림에 와서 함께 교하(蛟河) 일본군을 들이치자고하니 그것이 계책인줄은 모르고 감언리설에 속아넘어가 경솔히 믿고는 400여명이나 되는 자기의 부대를 맏겼다가 몽땅잃고말았다. 류아무개는 본래 길림에서 파견한 특무였는데 <<팔대대>>를 자기가 거느리고가서 고스란히 관동군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투항을 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전부 무참히 살해되고말았다.
한편 대종교도들은 눈물겨운 <<임오교변>>을 겪게되였다. 대종교 3세교주 윤세복은 <<3.1학원>>을 세우고 교사(敎師) 5명으로 학원 60명을 가르치면서 각종 교서들을 찍어냈다. 그러면서 그는 천전을 지으려고 목단강성공서의 허가를 얻었다. 그래서 천전건축을 서두르게 됐는데 일찍부터 대종교의 내막을 알고있었던 일제는 1942년 11월 19일에 돌연히 숱한 군경을 풀어놓아 일조에 북만주의 녕안, 신안진, 할빈과 목릉, 밀산 등지를 비롯해서 북간도와 조선 여러곳에 있던 대종교골간 25명을 체포해버렸다. 그리하여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써 교도들을 교양하고 독립운동자를 길러내던 이 종교단체는 회멸의 경지에 이르렀다. 비참한 일이였다!
<<임오교변>>이 있은 직후 강석이네는 대종교도들이 좀 더 집중해서 사는 해남촌으로 이주했다. 류류상종이라 그래도 교도들사이에 오가는 정은 가식없고 투터운것이였다. 이국땅 타향에 와 살면서 환난상구(患難相救)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인 그들이였다.
<<아버지는 얼마나 고생하고계실가? 언제면 돌아오실가?>>
강석이는 언니못지 않게 옥살이를 하고있는 양부를 뇌이군했었다. 그것은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진 안타까운 기다림이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리한 2년 8개월의 세월이 흘러가서 마침내 1943년 6월하순이 되자 양부 김기철은 만기석방되여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두부룩한 수염, 메마르고 피기없는 얼굴... 혹형을 받아야만했던 모진 고생속에서 그지간 몰라보게 축했다. 허지만 늙은 몸에 생불여사(生不如死)의 생지옥에서 이같이 목숨붙어온것만도 기적같아 온 가정이 기뻐한건 더 말할것 없었다.
양부는 그사이 강석이가 어린 나이에 비밀결사에 들어 활동하고있는 사실을 알고는 과연 장하다면서 대견해하시였다.
<<영조는 시집갈 궁리나했을텐데 너는 혁명을 생각하고있었단말이지. 종자가 아무데건 다르긴다르구나! 네 생부가 네나이만큼했을적에 벌써 생각이 넓어서 노비를 해방하고 땅까지 말끔히 나눠줬더랬지. 굴강한 기백과 두터운 의협심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을 탄복케하더니 인걸이 되어 죽지를 않았느냐. 딸이면 애비를 닮아야 하네라.>>
강석이는 그 말을고맙게 들었다.
양부는 그지간 항일세력이 위축된 정황이며 <<임오교변>>을 겪고나서 교인들의 정상활동이 어렵게 되고 불안속에서 정서가 생긴것들을 알고는 몹시 상심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리도 맥없이 망하고마는거냐고 여러날을 우울히 보냈다.
이러던차 어느날 외지에 나돌던 리달문이 찾아왔다. 사교(死交)의 상봉이라 반가울건 더 말할것 없는데 옷주제가 너무나 람루해서 옆사람보기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김기철은 그가 오자마자 제 안해와 상의했다.
<<리형 옷 해입혀야지.>>
<<글쎄요. 돼지팔아야 돈나오겠는데 그게 너무 작아서...>>
<<쌀이라도 팔아... >>
이 일을 리달문이 알고 무람없이 내던지였다.
<<그래, 맞았어. 내 이 꼴 말이아니다.... 흰광목 어떻게 그냥입어. 검댕이물감이라도 들여야지. ...무릎덧대라. 그게 다 판나면 뜯어버리면될거 아닌가.>>
그리곤 의례 강석이를 찾았다.
<<이눔아는 어데루갔나? 그지간 무사하게 지냈나?>>
리달문은 그지간 오래동안 련계가 끊어진 안진태패의 독립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답답해서 나돌다가 여러날만에 겨우 그리 멀지 않은 류모하자(柳毛河子)골안에서 한해남짓이 숨어서 숯구이를 하는 입곱명만 찾아내고 돌아왔던 것이다. 조사가 심한때라서 궈총은 있어도 깊이 감춰놓고 빈몸에 나돈 그였다.
위경무국(僞警務局)에서는 특무고(特務股)를 설치했다. 특무들은 무릇 총가진 사람만 보면 <<사창(私槍)>>이요 <<통비혐의>>로 잡아다가 항일련군과 내통하지 않았느냐고 혹독한 고문을 들이대는 판이였다.
만주땅에서 특무는 1939년부터 부쩍 많아졌는데 특무고의 외근인원들은 <<특무시찰원>>이라는 이름으로 각 경찰서 특무계에 내려가 특무고장과 직접적련계를 달고 활동했다. 그자들은 전 현의 향진(鄕鎭)과 식당, 려관, 극장, 정거장등에다 특무거점을 정해놓고 무릇 사람들이 경상적으로 집합하고 활동하는 곳에다는 에누리없이 사복특무를 들이밀었다. 그래서 가는곳마다 경찰세상이 된 만주국은 또한 특무세상이기도 했다.
이런속에서 비밀결사의 활동이 그만큼이라도 견지되였다는건 과연 기적이 아니라 할수 없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개전후 얼마간은 남방지방에서 승전을 거듭했지만 1942년 후반기부터는 반공(反共)태세를 갖춘 련합군의 점차적인 공세에 부딧쳐 미드웨이해전, 구아들카낼작전에서 대패한것을 고비로 1943년부터는 전면적패퇴를 거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패배로부터 자신을 만회하고자 이해의 가을부터 철저한 동원령을 실시했는데 그네들의 만주에서의 행동은 그 잔인성이 점점 발광적인 정도에 이르고있었다.
탈곡이 끝나기 바쁘게 검사대가 내려왔는데 그자들은 절후창(絶后槍)이라는, 끝머리에다 색대 즉 탐자(探子)를 꽂은 긴 참대꼬챙이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 감춰둔 량식을 찾아내느라 짚무지며 구들고래며 지붕이며 지어는 변소까지 찔러보았다.
농민들은 피땀흘려 지은 곡식을 이렇게 다 빼앗기고는 그대신 뜬 좁쌀을 <<배급>>으로 타먹고 대식품을 먹어야했다.
낟알익는걸 보고 굶어죽을수야 없잖은가. 공손히 말들으면 제배만 곯는다. 어진 백성이라고 나라님이 그래 어느때는 떡한쪼각 더 준다더냐 하면서 이듬해는 가을에 집집마다 낱알이 있는 족족 가만가만 좀씩 추수해다가 발방아로 찧어먹었다. 그런데 마을의 자경단에서 이 일을 알고 금지시켰다. 자경단장 류창수는 어느날 단원몇을 데리고 집집이 다니면서 방아채를 몽땅 걷어갔다.
<<과연 끈질긴 악귀들이구나. 개자식, 좀 찧어먹게 눈감아줄게지.>>
양모는 방아찧다 들켜 방아채를 빼앗기고는 분해하면서도 어쩌지 못했다.
<<씨, 나쁜놈들!...>>
강석이는 느즉막해서 자경단에 가보았다. 마당에 걷어들인 방아채들이 가득했다. 그는 제집의것을 알아보았다.
자경단실 구들에서 방아채걷으러 다녓던 자경단원들이 술먹고 취해서 자는데 단장 류창수는 자지 않고 밥짓는 녀인더러 국수를 눌러달라고 혀꼬부랑소리를 하고있었다.
<<남은 배곯게 하고 네놈은 술처먹고 국수먹고... 괘씸한 앞잡이놈같은게.>>강석이는 속으로 욕지걸이하면서 방아채를 슬그머니 메왔다.
<<우리집에서 너를 내놓구야 누가 감히 그걸 가져오겠니. 룡의 새끼니까 다르긴다르구나!>>
양부는 찬탄했다. 온 해남촌을 치고 오로지 강석이네만은 방아채를 숨겨놓고 도적방아를 찧어먹었다.
일제가 만주에서의 경제수탈은 여러가지였다. <<9.18사변>> 직후에는 지방세금이 13종이던것이 1944년에 이르러서는 34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애국헌납>>이라는 명목으로 파렴치하게 돈과 철, 연, 동, 아연, 석, 안티몬 등 금속들을 수탈해갔다. 철붙이만 보면 다 걷어갔는데 지어는 대물림이던 놋그릇과 놋숟갈마저도 수탈의 대상으로 되고 있었다.
<<쳇, 없다구 안주면 다지. 제깢놈들이 어쩐다구.>>
강석이는 비록 계집애였지반 사내애들만 못지 않게 배짱이 셌다.
이해 즉, 1944년 정월초에 37살의 서일의 아들 윤제를 비롯해서 김진호, 김두찬, 리성빈 등 <<임오교변>>때 잡혀갔던 이들이 취조를 받가다 교무무책이라하여 풀려나왔다. 그러나 서일의 사위인 최관은 놓여나오지 못하고 류치장에 그냥 갇혀있다가 5월 7일에 8년도형을 받았다. 그는 6년전에 대종교서적간행을 위해 출자금을 많이 납부했으니 공헌이 있는 교도였던 것이다.
강석의 양부 김기철로인은 서일의 아들 윤제와 그 몇몇 골간이라도 풀려나왔으니 다행이라 기뻐하면서 찾아가 위안했다.
그런데 이때에 그의 집에는 전혀 예상치않던 화가 또 떨어졌다. 지식있는 큰아들 두생이가 논을 재이는 일에 나섯다가 세 자경단사람과 언쟁이 생겼는데 단장이노라 세도쓰는 류창수가 시비에 지게되자 돌로 그의 머리를 까놓은통에 당장에서 까무라쳤던 것이다. 이로하여 두생이는 히스테리로 되어 한동안 마을이 소란하게 광기를 부리다가 얼마안가서 그만 약먹고 자살해버렸다. 억울해도 어데가 송사할 곳도 없었다. 점찍어놓은 <<요시찰>>의 가정이였으니 위만정부가 알아줄리 만무였다.
양부는 늙고 허약해졌다. 일가주장이던 역군이 그렇게 되고보니 집살림은 점점 더 쪼들려갔다. 그래서 강석이는 공부를 그만두고 자기라도 벌어서 식솔들을 먹여살리려고 맘먹었다.
<<그래두 아직 내가 살아있지 않느냐. 너는 공부나 잘 하거라. 장군딸이 눈뜬 소경이 돼서야 쓰겠냐.>>
양부는 이러면서 그가 학업을 중도이페지하는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강석이는 학교를 더 다니기싶어도 못가게되였다.
일은 이러했다. 삼복철 어느날 학교에서 원족을 가게됐는데 선생들이 사전에 단속이 없어서 점심때 녀학생 셋이 목욕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강석이와 정 동갑의 친구들인 도순옥, 김금녀, 김금순이였다. 허나 강석이만은 양부한테서 배운 헤염재간덕에 요행무사했던 것이다.
학교측에서는 학생들에게 규률은 강조하지 않고 제맘대로 목욕을 한 강석이를 규률을 모르는 <<불량한 학생>>이라면서 출학시키였다.
양부모른 학교의 처사에 불만해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차라리잘됐다. 그놈의 노하교육은 안받아도 된다.>>며 다행인듯이 강석이를 위안했다.
그러니 강석이는 이렇게 된바하고는 녀공모집이 있다는데 차라리 거기나 등록해서 돈벌이나갈 궁리를 했다. 그랫다가 그는 양부한테 호된 꾸지람이나 들었다.
<<이 계집애가 정신나가지 않았나? 지금이 어느땐데 나덤비자구그래? 찍소리말구 집에 가만 처박혀있거라.>>
강석이는 다시는 돈벌이같은 소리를 감히 입밖에 내지도못했다. 양부모의 말을 절대들어야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세태에 눈이 밝았으니까.
강석이가 출학당한지 며칠안되여 마침 리덕수로인이 조선에 간지 여러달만에 돌아와 지금 그곳에는 <<녀자근로정신대근무령(女子勤勞挺身隊勤務令)>>이 내려 숱한 녀성들이 끌러가는 판이라고 알려주었다.
태평양전쟁 개전이후 전쟁수요에 필요한 병원(兵員)과 보조인력의 동원을 위하여 갖은 방법으로 조선 청장년을 동원해 가고있던 일제는 이젠 조선녀성들마저 대량으로 강제동원하기 위해 1944년 8월부터 그같은 법령을 시행하고있었던 것이다.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한 이 법령은 12살이상 40살(처음은 32살)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녀성을 <<녀자정신대>>대상자로 규정하고 령장(令狀)을 발부해 동원했다. 령장 즉 <<정신근로령서(挺身勤勞令書)>>를 받은자가 만일 이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별도로 발부하는 <<취직령서(就職令書)>>에 의해 특정한 직업에 강제로 취업되였고 그것마저 불응할시에는 <<국민총동원법>>에 의해 1,000원이하의 벌금 또는 1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되여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이 기만적이고도 강제적인 방법으로 동원되여 군수(軍需)공장과 전방작업에 투입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녀성들중 상당한 수를 차지하는 녀성들이 일제군대의 <<위안부>>로 되어 육체를 참혹하게 유린당하는 처지로 변해간 것이다.
양부모는 강석이가 일제의 마수에 걸려들까봐 몹시 근심하면서 경각성을 각별히 높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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