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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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8)
2015년 02월 03일 10시 42분  조회:2350  추천:0  작성자: 김송죽
 

                          8

 

 

 

 

 

 

    민호는 죽지 않았다. 한바탕 된 곡경을 치르고 보니 그는 웬 일인지 전보다 혈관에서 피가 거세게 흐르느것만 같았다. 온 몸에서 스러져가던 기운도 차츰 되살아나는것만같았다. 그래서 살고푼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삶을 버리고 이대로 여기서 죽어버린다는건 너무도 애닯은 노릇이것 같았다. 내가 왜서 죽어야하는가? 아까운 청춘도 다 못지내보고 값없이 죽다니 원. 죽지 말아야한다. 민호의 가슴속에서는 살고푼 욕망이 한결 세차게 솟구치기시작했다. 한데 가석하게도 목숨이 내것이긴해도 그것을 살리는가 못살리는가는 내맘대로 아닌 그였다. 잔인한 토비 손에 잡힌 신세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거라 생각 하면 자비가 먹장같이 가슴을 덮고 메워오는 걸 어할 수 없었다. 종잡기어려운 감정의 수렁에 빠져 아느새 모대쳤다. 그리고나서 그는 그것이 좀 진정되자 자기가 나무를 찍어넘기던 일을 상기했다.

    그날 그는 단 하나 살아야한다는 강렬한 충동과 욕망에서 그야말로 그 자신도 믿기어려운 초인간적인 마력을 푼것이다.

    위삼포가 뭐라했던가.

   《됐다, 네녀석은 이젠 무병장수할거다!》

    어깨를 탁 치며 이랬지. 분명 그랬어. 귀중한 약재를 감히 흠쳐먹은 이 우둔한 놈을 죽이지 않고 아직 살려주고있는게 과연 기상천외의 별일이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속은 모다더니 과연 알수없는것이 위삼포의 속마음인것 같았다. 악마에게도 그래 자비가 있을수있단말인가?

    민호가 까딱않고 누워 의문의 소용돌이에 잠겨있을 때 뜻밖에 향란이가 나타났다.

    아니 저 고약한 계집은 왜 또 바라오는거냐?… 자기한테 권총을 겨누던 일과 술을 먹이던 일이 다시금 상기되자 민호는 경계하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도않을 양으로 낯을 저쪽으로 돌렸다.

    염왕산의 위삼포에게 자식이라고는 오누이뿐인데 아들 용강이는 올해 나이 27살이고 향란이는 25살이였다. 향란이는 총명하고 재질있는 녀자였는데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담을 키우며 자란탓에 자존심이 너무도 강하고 오만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가. 그녀가 마음내켜서 일부러 찾아왔건만 대방은 거들떠보지도않으니 화나고 괘씸했다. 위세가 꺾이고 우롱당하는 것 같아 향란이는 입을 옥물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렇다고 밸쓰고 돌아가면 제 칙간도 몰라서 망신하는 것 같이 더 꼴불견이 되고마는지라 난생처음 치미는 분을 꾹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날 왜서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나요? 전날 치밀었던 분 아직도  안삭았나보죠.》

    자중하면서 온화하게 타협하는 투였다.

    민호는 반쯤 뉘였던 몸을 벌컥 일으켜 바로앉으면서 낯을 다시돌리였다. 녀인은 품에 딱 맞는 분홍색나는 가을세타를 입었는데 건방지게 두팔을 유방이 봉긋이 부풀어난 가슴우에 곁고있다가 사나이가 아니꼬와 눈총을 놓자 그만 멋적은지 도루내린다. 그리고는 전날 <권부가>를 부르던 비도가 앉았던 걸상에 가 앉아 미끈한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면서 되도록 얌전하게 몸을 가꾸었다.

    그래야지 그래야 여자멋이 나는거야. 민호는 이제야 토비두령의 따님을 면전에 놓고 똑똑히 여겨볼 수 있었다. 키는 츄얼이만큼 헌칠하고 몸매도 고운축인데 용모또한 못지않았다. 향란의 혈색좋은 얼굴은 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달걀형이였다. 자태가 도고한 그녀가 정기도는 쌍가플눈을 찌프리며 가로볼 때면 어딘가 야수같이 사납고 매서운 감이 났다.

    녀인을 오만하게 만드는 건 그 자신이 자랑하고있는 미모가 아니면 지나친 자존심일 것이다. 이 계집도 얼굴이 이만하면 미모인데다 두령의 따님이렸다 말잘타는 걸 봐서는 부출이 대단히 센 녀자였다. 보아하니 무예역시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녀인의 래방이 그닥반갑지 않은지라 민호는 입을 열어 뜨아하게 물어봤다.

   《아가씨는 왜 왔습니까?》

   《오면 안되나요? 호ㅡ 인제보니 우린 인사늦었네요.》

   《그게 뭐 필요하다구. 난 잡힌 놈인데.》

   《신세땜에 너무속태울건 없어요. 내가 찾아온건 다름아니라 저.... 한마디 충고할일이 있어서요.》

   《뭐라? 아가씨가 나한테 충고할일이 있다구?》

   《그래요. 저의 부친님께 감사나드려요.》

   《뭐라! 내가?》

   《그래요. 거기서요.》

   《날 죽여주지 않아서 감사하단건가?》

   《무슨소릴 그렇게 죄쳐요. 죽여주지 않은게 아니라 자신이 죽자구든건 왜 말안해요.》

   《내가 죽자구들었다?》

   《그렇잖구. 록욕은 왜 그렇게 먹었나요. 미런스레. 그리구두 사는줄알았던모양이지.》

   《…》

   《저의 부친께서 그같이 땀빼게 굴지 않았더면 아마 그 자리에서 돼지같이 뻐드러졌을거얘요.》

    민호는 눈만 꺼무럭거렸다. 그렇지, 맞았어! 위삼포가 나한테 도끼주어 나무를 찍게한건 내가 땀을 콱 빼라고 그런거로구나. 약독을 빼느라구. 안그랬으면야 내 꼴이 과연 어떻게 됐을가?… 아아, 그래서 나는 산거로구나! 살수 있게 된거로구나!  가만있자, 그러고 보면 위삼포는 영 악마가 아니잖은가.

   《어때요. 내 충고가 무례하지야않겠죠.》

    향란이는 얼굴에 미묘한 웃음을 담으면서 여지껏 풀지 못한 의문과 갈피잡지 못할 상념 때문에 내내 안정을 찾지 못하고있던 사내의 근중을 뜨고있었다.

    다른때와는 달랐다. 성미가 무척 표독스러울 녀인이 이 시각 나긋나긋해지고 있었다. 민호는 권유가 옳은지라 이 시각 그녀가 덜미워보이면서 인정스럽기까지 해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인제야 깨닫는군요. 응당 그래야죠. 아버진 아마 특사까지 내리실거야. 이건 정말 하느님도 못하는 일이얘요.》

    이 말은 민호는 기쁘게했다.

   《아가씨! 그러니까 위두령이 날 여기서 내보내리란말입니까?》

   《못난이같네! 말도 그래 씹어줘야 넘길셈인가요.》

   《알려줘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아가씨!》

    민호는 안도의 숨이 나왔다.

    녀인은 사나이가 무등 기뻐하는 모양이 재미있는 양 여겨보다가 정색하고 물어왔다.

   《그사이 아마 무척 괴로왔을텐데 이젠 어쩔셈인가요?》

    뭘 어쩔셈이란말인가? 알자는게 뭐길래?…대답을 얼른 할 수 없었다. 하여 민호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마주보다가 말했다.

   《오 그렇지! 내가 위두령님을 배알해야지.》

    녀인은 랭소를 머금으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한가지 물어보래요?》

   《뭔데? 말하시오.》

   《잃어진 안해를 찾고있는중이라죠? 그렇지요?》

    어쨌다구 남의 일에 흥취는 갖는거냐, 싱겁게. 녀인이 집요하게 캐고드는게 언잖았다. 그렇다고 감출필요는 없는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난 지금 내 처를 찾고있는중입니다.》

   《안해가 다즈녀자라죠? 그 옷 지은 솜씨 대단하네요! 결혼복이였던가보죠?》

   《…》

   《한가지 더 물어볼까요. 그 다즈안해 인물이 어때요? 고운가요 미운가요?》

    이건 어딘가 비웃는것 같고 실답지 않은 물음이였다. 더구나 말끝마다《다즈, 다즈》하는게 경멸감을 풍기기도했다. 그래서 민호는 입을 다믈고 열지 않았더니 향란이는 그만 멋적은지 낯색이 붉어지더니 휑하니 나가버렸다.

   《쳇 별난계집 다 본다. 남의 안해 곱던 밉던 그게 네한테 무슨상관이냐.》  

    민호는 녀인의 뒤통수에다 랭소를 던졌다. 그리곤 아무튼 여기를 살아나가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기쁨이 끓어올랐다. 이제 여기를 빠져나가서는 잃어진 안해를 어떻게 찾을건가고 생각해봤다. 잊을 수 없는 밀월의 향기는 그로하여금 안해에 대한 그리움을 더 절절하게 하고 있었다. 한편 민호는 또 츄얼이는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불행은 당하지 않았을건데 하고 스스로 자책감에 모대기치기도했다. 죄를 씻기 위해서도 안해를 꼭 찾아봐야한다. 이건 남편된 나의 책임인거야 하고 그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한데 희롱받을 운명이였던지 일은 과연 묘하게 번져갔다.

    산채가 여느날보다 소연해지기시작했다. 팔방 여덟 개 산채에 나뉘여 들어있는 수백명의 류자들이 중앙산채의 뒤켠마당에 집결하는것이였다. 대체 무슨일일가. 안하무인이요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놈들인데 대체 뭘하느라 모이는걸가? 혹시 나를 처리하자고 그러는거나 아닌지? …민호는 가슴놀이 느닷없이 뛰기시작했다.

    다시생각 해 보니 그를 처리하자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를 감시하는 자가 없어진거다. 문도 잠그어놓지 않았다. 대체 무슨일일가?... 밖에 나가보고싶었다. 하지만 민호는 겨우 문가에 까지 갔을 뿐 문턱밖으로 감히 발을 내놓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범계를 해서 또 어떤 변이 생길지 모를일이였다.

    개구리 모여 울건 떠들건 그걸 수탉이 알아서는 뭘하는가 네놈들이 하는 일 내알배 아니야. 민호는 구들에 흰들 누워버렸다.

    구들은 불을 때서 따스했다.

    비도들은 오후해가 썩 기울어서야 모임을 파했다. 저녁은 새하얀 밀가루만투 두 개에 돼지고기를 넣고 볶은 녹두채를 주었다. 대체 무슨일일가고 궁금증이 더해져 오늘낮에 무슨일있었느냐고 물어봤더니 저녁을 갖고왔던 자가 눈만 흘길뿐 알려주지를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향란이가 다시나타났다. 민호는 왜선지 그녀를 다시대하고보니 가슴속에 야릇한 흥분이 찰랑이였다.

    향란이는 석냥을 그어 갖고 온 양초에 불을 달았다.

    그녀는 어둠이 잦아들고있는 방안을 밝히면서 입을 먼저 열어 이쪽에 물어왔다.

   《이걸 어디다 놓을까요?》

   《고맙습니다, 아가씨! 이리주시오.》

    민호는 양초를 받아서 밤에 잘 때 발이 가는 뒷창턱에다 세워놓았다.

   《그걸 놓을 자린 찾을줄을 아네요.》

    향란이는 비양쪼로 한마디 이죽거리고나서 심술궂은 눈으로 대방을 이윽토록 노려보더니 입을 다시열어 오금을 박는것이였다.

   《당신네 고려사람 례절은 그런가요?》

   《아니 왜 그럽니까?》

   《왜 그럽니까가 뭐얘요. 시키는 서방질두못하겠나요 그래? 》

   《무슨소린지…》

   《왜서 아직도 가보질않아요. 감사하단는 인사말 한마디 번지기 그리두힘든가요. 정말 신사답지못한 사람이네.》

   《그건 내가 저…》

    민호는 열었던 입을 되닫고말았다. 변명이 무슨필요있는가, 자기가 위삼포를 배알하리라던 것이 이미 헛소리로 돼버린데야. 멋적은 난면을 수습해야겠기에 그는 딴전을 쳤다.

   《아가씬 접때 타본 그 백마가 어떻습디까?》

   《좋더군요. 건데 나하구 그건 왜 묻는가요?》

   《아가씨가 혹 그걸 잡아먹지나않았나해서.》

   《참 깜찍스레도 노네요. 그걸 내한테 앗길가봐 근심나던모양이죠. 시름나요, 안가질테니.》

   《아, 아니 그래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아가씨한테 그게 소용된다면야 줄수도있지요, 대신 내가 타고 갈 말을 준다면.》

   《인심후한 양 하네요, 남의걸 빼앗은 주제에.》

    향란이는 비웃고나서 얼굴에 악의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말을 타고 달리던 광경이 눈앞에 다시떠오르자 민호역시 만면에 웃음을 흘리면서 넌짓이 물어봤다.

   《건데 전날 아가씰 거들어주던 량반은 누굽니까?》

   《어느 사람말인가요?》

   《아 그 용감한 검사있잖습니까, 발검했다가 침뱉고 돌아서던이. 그게 아가씨의 오빤가요?》

   《아니애요. 내 오빠는 그날 안나왔더랬어요.》

   《오, 알만하군. 그럼 그게 아씨의 신랑되는....》

   《입다물어요. 결혼도 안한 녀자하구 망탕소릴. 날 아씨라말구 아가씨라불러요.》

   《아니, 그럼 아직은 미혼이란말입니가, 그래?》

   《그래요.》

   《허참. 그런걸 난 또…그렇다면…그 사나인 잘생겼더구만.》

   《별소릴 다 하네요. 남성들끼리두 인물평을 하는가보지.》

    녀인의 기탄없는 놀림에 민호는 그만 낯이 확 붉어졌다.

    그가 말이 없자 녀인이 입을 다시열어 침묵을 깼다. 

   《저의 부친께서 래일 자유를 줄거얘요. 그런줄이나 알고 속태우질랑말아요. 여기서 목숨붙어 나가는것만도 다행인줄 알아요.》

    그렇다, 인질로 잡혀온것도 아니요 범계한 사람이 염왕손에 잡혔다가 무사히 풀려나간다는건 하늘도 놀랄일이다. 민호는 자기는 국적다른 사람이길래 관방과도 어디와도 련계없으리라 여기고 위삼포가 관용을 베푸는거라여겼다. 하여간 목숨살려내니 천만중다행이요 운수대통이라해야 할 것이다.

    이젠 과연 안도의 숨이 활 나가는지라 민호는 아까부터 괴여오르던 궁금증이나 마저풀고싶어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오늘 저녁끼가 별루좋습디다. 건 왜선가요?》

   《거야 좋은 날이라 생활개선을 하니까 그런거죠 뭐.》

   《좋은 날이라니 명절이란말입니까?》

   《명절은 아니야요.》

   《그러면?…》

   《오늘 새자 하나가 더 가입했어요.》

   《오, 알만합니다. 워낙은 그런일이였구만!.》

    민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이네들 도당에 성원 하나가 더 불어났다는거로구나. 끼니마저 개선하는 걸 보니 아마 수수한 인간은 아닐거다 하면서 민호는 그게 어떤 자일가 생각했다.

    이러던차 녀인이 스스로 알려주는것이였다.

   《그래요. 괘주를 한 그 분이 오기는 청보산패에서 왔는데…》

   《뭐라구!?....》

    청보산패라는 말에 민호는 깜짝놀랬다.

    녀인은 이 조선족사나이가 낯빛이 갑작스레 돌변하는지라 다시쳐다보면서 자못 의아해하였다.

   《왜 그래요. 청보산을 아는가요?》

   《아, 아니요. 내 친구 하나가 별명이 청보산인데 언제 록림객으루됐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민호는 제꺽 꾸며댔다.

   《그래요. 호호호…알려드릴가요. 청보산은 사람이름따라지은것도 아니고 별명따서 지은것도 아니얘요.》

   《그럼?》

   《청보산이란 거기 맏두령이 제멋대로 지은거래요. 청보산이 말로는 기국한지 반백년이 된다지만 어찌 우리네 염왕산과 감히 비기겠나요. 워낙 볼모양없던 떨거지패였는걸요.》

   《아, 그렇습니까! 건데 어떻게 돼서 그 패에 있던 사람이 이리룬왔답니까?》

   《말하자면 길어요. 몇해전에 당벽진서 불의의 행세를 하더니 고태자서 또 그런 짓을 해 청보산은 아문의 숙청에 들어 괴멸되고만거얘요. 천벌이 내린거죠.》

    향란이가 <당벽진참안>(주)과 <고태자참안>을 입밖에 끄집어내니 민호는 분노하여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때려죽일놈, 우리가 빼운 원쑤놈이 이리루왔구나. 어떤놈일가? 그게 혹시 내가 찾으려는 놈이 아닌지?… 이 녀인은 방금 온 자에 대해서 잘아는 것 같았다. 민호는 그걸 알고싶어 물어봤다.

   《청보산패 사람인게 분명합니까?》

   《그렇잖구요. 거기서는 자리에 서던 인물인걸요. 수이샹이였으니까요.》

    수이샹(水香)이란 류자조직내의 세 번째가는 급인데 초소와 류자들의 규률을 전문책임지고 관리하는 자로서 민호가 원쑤로 점찍어온 진사해(陳四海)가 바로 그 직에 있었던 놈이다. 참 그자가 여기로 게발아들어온거나 아닌지. 

   《거기서 자리서던 사람이라면 아마 급이 있어다 그거겠지.》

    민호가 혼자소리퍼럼 중얼대면서 머리를 주억거렸더니

   《그래요. 돌아가는게 빠르네요!》

    향란이는 칭찬하곤 그는 성명이 진사해(陳四海)라 알려줬다.

   《아니!?.... 》

    추측이 맞아떨어지는지라 민호는 무망간에 다시 한번 찔끔 놀랬다. 어정쩡해 나면서 가슴이 뛰기까지 했다.

   《왜 그래요? 그일 아는가요?》

   《아, 아니,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향란이가 의문스러워하자 민호는 얼추 이렇게 응변하고나서 속으로 자기를 향해 부르짖었다. 참으라, 감정을 내비치지 말고 주의하라, 순간을 넘기지 못해 운명이 역전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렇다, 영민한 녀인이 이 순간 대방의 속내를 파고들수도있는것이다.       민호는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다사 넌짓이 한마디 던졌다.

   《허허, 진사해라! 그 사람 이름대루 생겼으면 맘이 바다같이 너르겠구만. 그렇지요?》

   《그럴거얘요. 우리네 화서즈가 소개받은 인물인데 아무렴 속한이겠나요.》

    향란이는 이러면서 약 보름전에 사람 둘이 류자에 가입했는데 오늘 또 새로 한사람이 가입했으니 국(局)이 붉어진다고했다. 뜻인즉 여기 이 염왕산의 진영이 흥성해지고있다는거다. 자랑이였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내가 과연 네놈을 여기서 만나게되는구나! 이젠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만나자던 원쑤놈이 여기에 온걸 알구서야 내가 어찌 가만둘소냐. 영민한 고양이 소리없이 먹이를 찾는다잖는가. 내가 고양이 쥐새끼잡듯 네놈의 명줄을 끊어놓아야 한다. 복수의 약으로 내 원쑤갚고 민족의 원쑤갚아 원한을 풀어야 한다. 새옹득실(塞翁得失)이라 세상일이 복이 될 지 화가 될 지 예측키는 어렵지만 민호는 자기가 원쑤를 갚기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스스로 위삼포만나러갔다.

   

    민호는 별채모퉁이를 돌다가 공교롭게 이 산채에서는 일반인물이 아닌 두사나이와 맞띠였다.

   《어이 여봐, 어디루가?》

    저켠에서 말을 걸어오길래 여겨보니 전날 칼을 빼들던 자였다.

    그는 이름이 보재(寶財)였다. 전번모양으로 태도가 아주 거만스러웠는데 옆꾸리에서는 오늘도 단검이 거들거리고 있었다. 이쪽 다른 한 사나이는 권총탄대를 띠처럼 허리에 둘렀는데 몸체가 건실하고 단단하게 생겼거니와 모색이 위두령을 닮아서 민호는 그가 바로 위삼포의 아들이라는것을 어렵잖게 알아맞혔다. 그의 이름은 용강(勇康)이였다.  

   《나 위두령만나러 가오.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하는가?》

    민호는 그들 다가 악의는 없는 표정인지라 대담히 물어봤다.       별채가 여럿붙어있는 산채여서 문을 모르고는 미궁속같은 중앙산채로 들어가기 힘들었다.

    묻는 말에 보재가 알려줬다.

   《앞쪽으루 더 가라구. 저 별채가 보이잖아. 그걸 건너구 또 하날 돌아서 가면 돼. 본채에 난 문으루 들어가라구. 별채문은 열지 말구. 거긴 위아가씨의 방이니까.》

   향란이는 별채 하나를 더 건너 다음의 별채에 있었다. 그 별채는 정남이였다. 민호는 이제야 모양이 똑같은 별채 여덟 개가 붙어서 이 중앙산채는 건축형식이 독특하면서도 치차모양으로 유별나게 건설되였음을 똑똑히 알게되였다. 이 아담진 목제의 별채들이 바로 여기 이 염왕산의 원로이자 이 한 도당의 수괴들인 팔대금강―사량팔주(四梁八柱)가 나뉘여 들어있는 거실이였던거다.

   《저자식이 왜 아직두 가지 않고 여기서 꾸물거리고있어?》

   《부해 하루 더 먹여주는모양일세.》

    보재와 용강이가 주고받는 말이였다.

    위삼포의 딸 향란이가 들어있다는 별채에 창문이 열려있었는데 하얀 비단카텐이 드리워있었다. 그 앞을 지나 모퉁이를 돌던 민호가 이번에는 백두옹 량태와 머리반백인 한 늙은이를 만났다. 백두옹은 기실 나이가 쉰살푼했지만 이쪽 반백의 사나이는 나이 일흔이 다 된 늙은이였다. 한때는 풍채좋았을 얼굴에 버섯이 돋고있는 그가 바로 염왕산의 군사(軍師)인 반둬더(翻垜的)였다.

    민호는 그들앞에서 정중히 인사차림을 하고나서 물었다.

   《전 저 위두령을 만날려구하는데요. 어디루 들어가야합니까?》

   《저 문으로 곧바로 들어가게.》

    량태가 손을 들어 알려주었다.

   《담통크니 부해 한모금 더 먹어보지, 안그래유 형님.》

    민호는 바람결에 백두옹이 자기를 놓고 하는 얘기를 잡아들으면서 위두령을 만나러 들어갔다

    위삼포가 마침 자기의 거실에서 중앙청으로 나오고 있었다. 

    민호는 그의 앞에 다가가 허리굽혀 공손히 인사를 차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소인이 두령님께 올릴말씀있어서 왔습니다.》

   《무슨일인가?》

   《두령께서 절 내보내시련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민호는 말을 채 하지 않고 사리였다.

   《그런데 어쨌다는건가?》

    위삼포는 눈쌀을 찌프렸다.

    어물거리면 공연히 의심살것같았다. 하여 민호는 소름끼치게 하는 그의 얼음같이 차고 쌀쌀한 낯을 어름어름 피하다가 다시금 여겨보면서 동강났던 말을 이었다.

   《전 여기를 떠나고싶지 않아서요.》

    이건 예상밖의 일인지라 위삼포는 자기 앞에 나타난 이 조선젊은이를 이윽토록 여겨보는것이였다. 민호는 말해놓고도 속이 은근히 떨려났다. 하지만 이미 내친 걸음이니 그 취지를 분명히 밝혀줘야했다. 민호는 자세를 바로가꾸고나서 입을 다시열었다. 

   《실은 제가 여기를 나간다해두 이젠 몸둘곳도 없는 신세입니다. 어디로 가랍니까. 그래서 저는 그런바하곤 차라리 위두령께 의탁하고싶은 맘이 생긴겁니다. 그런다면 전 일신의 용기와 정성을 다하렵니다. 위두령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런지 저의 생각이 이러하온즉 위두령께서 많이 념려해주십시오. 받아만주신다면 저는 그걸 무한의 기쁨으로 여기겠습니다.》

    위삼포는 곰곰이 듣더니 만면에 희색을 띠었다. 개도 사나운 개를 돌아본다잖았는가. 그러잖아 민호가 가지 않겠다면 차라리 받아두려던참이였다. 건강한 체격에 담대한 이 조선젊은이가 안중에 들었던거다. 범속한 인간을 백명 갖고있는것보다 지혜와 담력있는 신하 하나를 데리고있는 편이 훨씬 더 나은거다. 이같이 생각하고  여겨온 위삼포는 민호를 향해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수락함을 표시한거다.

    부드러움이 위삼포의 성품인건 절대아니였다. 신의 권능(權能)으로도 어쩌지 못한다는 북만토비의 거두 위삼포는 문무겸전(文武兼全)하여 감히 어깨를 겨룰자가 없거니와 용력과 지모가 난당이요 억강부약(抑强扶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을 부르짖어 후덕(厚德)을 과시하나 잔인함은 상상키 어려워 동당들의 경탄과 악명을 함께 날리고 있었다.

    

    염왕산토비입적 즉 괘주(挂柱)에 민호역시 진사해와 마찬가지로 시험은 치지 않아도 되였다. 시험은 가입자의 본심이나 담략을 알아내기위한것인데 위삼포는 그것을 이미 알아본거나다름없었다.      (물론 복수의 칼을 속에 품고있는거야 어찌알랴.)

    토비들은 동당을 처음뭇는 기국(起局)때를 내놓고 새로 가입하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괘주(掛柱)라 한다. 괘주는 간단치 않은 일로서 담보인을 찾아 가입하는것과 자기절로 찾아와 가입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담보인은 일반적으로 류자내에서 사량팔주와 익숙한 사람이여야하는데 그를 통해 이름이 우두머리한테 전해진다. 가입자는 반드시 글을 남겨 그들이 선생으로 모시는 즈좡(字匠)에게 보관케 한다. 자기들이 하고있는 일이 결코 시시한건 아니라고 보는데서 세워오는 하나의 제규(制規)였다. 류자입적 수속으로 되는 거기에다는 자기가 온 래의를 밝히는데 주마비진(走馬飛塵), 불계생사(不計生死) 따위의 글을 써 놓음으로써 서명맹세를 하게 돼있다.

    제발로 찾아온자에 대해서는 일률로 아주 엄하게 대한다. 그런 자는 거개가 류자내에 동기간이나 친척, 친구가 없거나 면목아는 이가 없어서 부득불 타인을 통해 다리를 놓아 오는 것이다.

    무릇 가입자에 한해서는 먼저 그한테 담량이 있는가 없는가부터 알아보는데 그것을 과당(過堂)이라 한다. 과당은 방법이 두가지였다. 그더러 물담긴 호로병박이나 병사리를 주어 꼭대기에 이게하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곧추 백보를 가게한다. 그래놓고는 그가 일정한 거리에 이르렀을 때 맏두령이나 포토우(炮頭)가 권총을 갈겨 《땅!》소리와 함께 꼭대기에 인 것을 박살낸다. 그러면 다른 류자가 달려가 그자의 바지를 만져 아래가 젖었는가 젖지 않았는가를 검사한다. 어떤자는 머리에 인 것이 박살나는통에 기겁해 오줌을 싸거나 혼비백산하여 땅에 주저앉고만다. 그런 담약한 자는 궁둥이를 탁 차서 그 자리로 쫓차버린다. 그런자를 띵잉(頂硬)이라하는데 이것이 한가지 방법이요, 다른 하나의 방법은 류자대오가 기와가마(富豪)를 짓부시거나 관병, 경찰대를 만나 싸울 때면 맨 선두에서 돌진하는 명사수 포토우가 그를 데리고 나가 그한테 분자(총)와 청자(칼)는 주지 않고 <물을 보고 쟁반을 밟게한다> 즉 단신으로 정탐하여 략탈물을 찾게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들면 포토우가 맏두령께 알리여 그로하여금 당자를 불러 너는 단단하니 남기기로 한다는 말을 해서 시험에 통과되였음을 알도록하는 것이다.

    그런 후 길일을 택하여 맹세의식을 거행한다.

    민호는 그저 입적수속만 밟고나서 가입맹세를 했으니 때는 이해, 즉 1924년도 음력 9월 28일이였다. 이날이 바로 상강이였는데 가을내 곱게 물들었던 단풍들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기시작했다. 청쾌한 날씨였다.

    의식장은 전날처럼 중앙산채의 뒷마당이 아니고 앞마당으로 바뀌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구입(舊入)과 신입(新入)자는 형편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사해는 워낙 신분이 류자이긴하지만 구입자요 정민호는 이제 처음 류자무리에 발을 들여놓는 신입자이기에 모든 것을 새로배운다는 뜻에서 장소가  밝은 자리인 앞마당으로 정해진 것이다.

    중앙산채앞에 판자로 든든하게 만든 단우에 돌을 절구모양으로 파서 만든 네모난 검은 향로가 하나 놓여있고 그 앞 가까이에 사량팔주가 갈라앉았으며 널직한 마당에는 360여명의 류자들이 렬을 지어 앉았다.

    가입맹세의식이라서 분위기는 자못 엄숙하고 정중했다.

    의식은 류자내의 군사이자 맏두령의 참모이면서 천문지리와 팔괘행문(八卦行文)에 정통하고 생진팔자(生辰八字)를 능히 볼줄아는 반둬더가 집행했다. 민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앞에 나가 재향(栽香)했다. 가느다란 향 19가치를 손에 받아쥐였다. 그중 18가치는 18라한을 위해서 태우는것이고 한가치는 두령을 위해 태우는것이였다. 민호는 한가치씩 불을 달아 앞쪽에 3가치 뒤쪽에 4가치 왼쪽에 5가치 오른쪽에 6가치를 꽂은 후 중간에다 나머지 한가치를 꽂아놓았다. 그리고나서 향탁앞에 꿀어앉아 높은 목청으로 사전에 암기해둔 명문화된 구절을 뇌듯 입으로 번지였다.

 

             나는 오늘 가입하여

                형제들과 한마음되였도다.

                내가 만약 마음변하면

                날벼락을 맞으리요

                두령님의 버림을 받으리라.

                나는 오늘 가입하여

                형제들과 한마음 되었도다.

                비밀을 지키고 변절을 안하고

                친구를 팔아먹지 않으리라.

                규률을 지키리라.

                내가 만약 배반한다면

                칼탕을 맞으리오.

                두령님들의 버림을 받으리오.

                형제들의 버림을 받으리라.

 

    민호가 말을 끝내니 위삼포가 먼저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

   《이젠 너도 우리와 한집안 식구됐다. 자, 일어나거라.》

   《고맙습니다, 두령님!》

    민호는 그에게 국궁재배하고나서 반둬더가 시키는대로 먼저 포토우앞에 다가갔다. 듣는말에 의하면 나이 50대인 이 대머리사나이는 아직도 날파람있고 총잘쏜다고 한다. 허니까 그의 총알에 날아난 목숨이 얼만지는 그 자신도 딱히 모른다. 민호는 혈색좋은 그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 동생은 일후 형님의 말을 잘 들으렵니다.》

    포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년장자다운 틀거지를 차리면서 알려주였다.

   《강자는 꾸준한 배움과 훈련속에서 나오는거요. 동생은 사격술을 련마해야하오. 매일아침 일찍일어나고 제 보금자리를 밟아 마스지 말아야겠소. 이젠 젓빨개도 아니니만큼 모든일에 주의해야지. 일이 생기면 제때에 알리도록하구. 알아들었는가? 우리 모두의 목숨이 내 하나에 달려있다 생각하고 그걸 잊어서는 절대안되겠소.》

    말을 마치고나서 그는 민호에게 총과 탄알을 주었다.

    민호는 그걸 받고나서 이번에는 백두옹 량태앞으로 갔다

   《이 동생은 형님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우리가 산채를 떠나면 풍찬로숙할 때도 어려울 때도 많고많소. 그런 때면 좋고 나쁜 음식을 가릴 처지가 못되지. 모자라면 형제끼리 나눠먹구…공융이 배를 받지 않고 남을 주었다는 옛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좋은 본보기니 그이를 따라배워야하네.》

    그리고나서 그한테 옷과 이불과 세면도구를 발급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돌같이 차고 굳어보이는 수이샹앞으로 가서 그한테도 사전에 배운대로 두손모아 왼쪽어깨우에 올렸다가 내리우면서 류자식의 경례를 했다.

   《이 동생은 수이샹형님의 가르침을 받으렵니다.》

   《동생은 자기에게 떨어지는 임무를 제때 착실하게 완수하기바라네. 그리구 모든 규률을 잊지말고 잘 지키게. 일일이 가르쳐야 배우겠나. 자각이 되라는거네. 알아들었나?》

   《예, 알아들었습니다.》

    반둬더역시 그에게 잘하기를 부탁했다.

    이로써 내사량에게 올리는 인사는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외사량인 양즈방(秧子房), 화서즈(花舌子), 차챈즈(揷千子), 즈좡(字匠)앞에 가서 먼저사람들 앞에서 모양으로 일일이 인사했다.

    양즈방은 인질을 잡아가두는 방인데 그일을 전문맡아보는 두령의 직명으로 되어버렸다. 그리고 화서즈는 류자내의 련락관이고 차챈즈는 정탐을 책임진 두목이며 즈좡은 전문 편지를 쓰고 류자내의 문건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인물이다.

    민호는 그들앞에 가서 인사할때마다 잊지 않고 주의해서 두손모아 왼쪽 어깨우에 올렸다가 내리군했다. 여기 이 염왕산은 물론 관동의 다른 규범화된 토비들은 다가 두손모아 앞가슴에 올리여 인사하는 것을 대단히 꺼리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모양이 신통히도 수쇄(手鎖)를 찬 동작과 같았기 때문이다.

    민호는 시키는대로 맏두령으로부터 팔대금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인사를 하고나서 몸을 돌려 이제는 형제라고 보아야한다는 다른 모든 류자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로써 그의 류자들앞에서의 가입맹세는 끝난셈이다.

    이날 염왕산류자들은 뜻밖에 자기들의 무리에 가담한 조선젊은이 덕분에 또 한끼 생활개선을 한건 물론 말썽부렸던 그에대해서 입가진 자마다 이러니 저러니 평을 달아가면서 의론도 많았다.

    민호는 군사체제로 편성되여있는 제1련 1패 3반에 배속되였다. 반장은 방정서부터 언녕 면목을 익혀둔 허저인 류자 위진이였다.

   《여보게, 어떤가? 내가 자넬 끌어당겼네.》

    위진이 웃으면서 친절을 보이였다.

   《위반장, 고맙구만. 그러잖아 나도 같은값이면 위반장하구 같이있기를 원했는데. 아무튼 여기서야 구면으루되는건 위반장밖에 없잖습니까. 안그런가요.》

   《그렇지, 그렇구말구. 헌데 여봐, 이제부텀은말이여 날 그저 반장으루만 부르지 말구 형님이라해. 알아들었나.》

   《그러는게 좋다면야 그럽지요.》

    민호는 대답해놓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 이 어리석은 녀석아, 네놈도 그래 내 형으루되는게 그리두 소원이냐, 당분간은 길이 없으니 한길을 걷고 물이 없으니 한물을 먹는다만은.... 까마귀 까치가 모이는 한군데서 먹어도 형제는 아니구 종속이 다른거야. 그만한것도 그래 모르느냐 이 바보같은 자식아. 이 민호는 아무때건 원쑤만갚으면 여기를 뛸쳐나가리라 했다.

    저녁술을 방금놓으니 향란이가 찾아왔다.

   《이젠 한식구됐네요. 환영해요!》

   《날 축하하는건가.》

   《그럼요. 아니그러면 뭐겠어요. 이게 다 팔자소관인줄알아요.》

   《팔자소관이라! 아마 그런가봐. 난 이렇게 되리라곤…》

   《꿈밖이였다 그 말이겠죠. 두고봐요. 우리와 함께 지내서 후회될 일은 아마 없을거얘요.》

   《세상이 돌아감이 조석이 다른데…》

   《생각해봐요. 량산의 호한들은 왜 그토록 기세좋았겠나요. 우리 여기서도 살아가자면 첫점 신심과 용기가 있어야하는거얘요. 》

   《그렇겠지.》

   《내 오늘 단단히 일깨워주려구왔어요.》

   《아가씨가 나한테? 뭔데?》

   《그건말이얘요. 여기서 사달없이 무사히 지내겠거든 뭣보담 우선 우리가 쓰는 은어부터 부지런히 배워두라 그거얘요.》

   《오! 그런가.》

   《그렇잖구요. 제 말도 번질줄몰라갖구 나다니다간 큰일쳐요.》

   《오, 그런가!》

   《그렇잖구요. 몇가지 먼저 배워줄테니 명심해 들어요.》

    그녀가 자기를 소학생취급하는지라 민호는 씩 웃어버렸다.

    향란이는 눈을 할끗 빨고나서 진지하게 가르쳤다.

   《이래요. 여기 산채에 들어앉아있지 않고 나다닐 때 만약시 다른 패거리를 만나갖고 첫마디 묻는 말부터 막혀갖고 멍해있다간 그만 날쏘시개를 먹고말아요. 날쏘시개라는게 뭔지 알아요? 탄알맛을 본다 그거얘요. 깔개를 관장자라 하고 신은 탕두, 베개는 침룡이라해요. 모자를 하늘꼭대기라하고요. 량태가 옷을 주면서 뭐라던가요. 잎사귀를 바꾸라잖던가요. 옷을 바로 그렇게 부르는거얘요. 밥먹는 걸 삽부, 물마시는 걸 부해. 사람의 얼굴을 접시라 하구 곰보딱지를 꽃쟁반이라 하며 손은 닭발, 배는 오복자…》

    향란이는 이같이 토비들이 사용하는, 우수울지경 괴이하게 꾸며진 은어들을 한바탕 엮어대고나서 숨이 차는지 잠간 끊었다가 계속했다.

   《명심해요. 사귀고싶거든 만나고싶다고해요. 우린 순경을 개라 하고 군대는 벼룩이라 불러요. 누구하고 싸우느냐는 누구하구 소리내냐 하고 일이 여의치 않다면 그땐 등이 맞힌다 해요. 털안으로 들어가라면 그건 수림속으로 들어가란줄로 알아야 해요. 넘기라거나 메라고 하면 그건 어서빨리 걸으라는 걸로 들어야하고요…》

    향란이가 입심을 넣어 이같이 줄뽑아대는데 들어보니 과연 희한했다. 함께 생활하지 않고서는 그 많은 말을 다 배워낸다는게 꿈에서나 생각할 일이였다.

    여기 관동땅의 민간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면 동업자거나 계(契)거나 비밀결사거나 패를 무은거나 업종에는 거개가 신자가 하나님을 떠받들 듯 저들이 신봉하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라렬하면  목수는 로반(魯班), 야장은 로군(老君), 리발사는 라조(羅祖), 관자집은 뢰조(雷祖), 약방은 손사묘(孫思錨), 신깁쟁이는 손조(孫祖), 염쟁이는 매갈(梅葛), 장사꾼은 재신(財神), 백장은 삼성(三聖), 거렁뱅이는 리조(李祖)였고 토비들은 18존(十八尊) 즉 18라한이였는데 법도(法度)가 있고 금구무결(金甌無缺)하다는 염왕산에는 호(胡), 황(黃), 사(蛇) 등 삼선(三仙)의 위패와 선대의 사량팔주위패가 모셔진 영당(影堂)이 각각 갖추어져 있었다.

    민호는 위삼포가 친히 목에다 걸어준 금빛나는 부대화상을 건들거리면서 그것들도 일일이 참배했다. 속심이야 어떻든 향을 피워 꽂고 괘주를 했으니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도적의 배에 올랐으면 도적의 짓거리를 배워야지 별수가 없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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