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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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13.
2011년 08월 09일 18시 23분  조회:5688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13.


    김성(金星)은 강기있고 총명한 청년이였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그는 두 은인에게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을가 이루다말할수 없이 감지덕지해 하였다. 하리(下里)마을을 떠나  연추(煙秋)쪽으로 걸음을 놓기 시작하자 김성은 자기가 연해주로 오게 된 리유를 알려주었다.

   《나는 학교에서 교편을 더 잡고있을 형편이 못되여 차라리 의병으로나 되여 싸우리라 맘먹고 집을 나온 사람입니다. 본래는 조용히 글이나 가르치며 세월을 보낼수도 있었습니다만 내라는 사람이 명줄을 어떻게 타고났는지 그렇게 돼주지를 않는단말입니다. 올봄에 있은 일입니다. 한 의병대가 대전과 송약사이의 철길을 파괴했지요.》

   《가만있자! 올봄이라했지? 대전과 송약사이라 했지?...그게 그럼 이강년의 의병대가 한 일이 아닌가.》

    서일은 무망간에 그의 말을 중둥잘라놓았다. 신문지상에서 그 사건을 보도한적이 있는데 면바로 생각난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강년이 령솔하는 의병대가 한 일이였습니다. 신문에도 났지요. 그 일로 인해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들지간에 한바탕 변론이 붙었던겁니다. 철길을 파괴하는게 옳으니 그르냐 하는 문제를 놓고서. 그때 저는 말했던겁니다. 의병이 철길을 끊은것이 뭐가 잘못됐느냐, 일본은 경부선을 비롯해서 우리 나라의 철도를 모두 독점관리하고 있다, 대체 무슨 심보냐, 무슨 리유로 남의 나라에 들어와 제 맘대로 독재를 부리는거냐. 제 나라의 철길을 그래 그자들이 그냥 독점하게 내쳐야 하는가고말입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말하면 못쓴다고 반박하며 나서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일진회에 가입한 교원들이였지요. 그후부터 저는 암암리에 경찰당국의 요시찰인으로 되고만것이지요.》

   《오, 알았어! 그래서 꼬리를 빼는 판이군!》

   유진율이 롱담조로 말하고는 웃었다.

   《그렇습니다. 어느때 곤욕을 치를지 모르는 일이라 에라 하고 떠난겁니다.》

   김성은 학교내에서 제 사상을 버리면서 까지 그따위 일진회의 녀석들과 그냥 어우렁더우렁 지내고싶지는 않아서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의병쟁의 길을 택했노라했다.

   《건데 머리는 왜 그 모양으로 만들었나?》

   서일은 나이가 자기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거니와 아직 장가도 가지 않았다는 그의 선택에 찬동은 하나 리해가 안되여 물었다.

   《저는 국내서는 의병을 찾을길 없어서 이리로 오자고 맘을 먹은겁니다. 한데 오자고 보니 아시다싶이 지금은 통행증없이는 나다니기가 어렵단말입니다. 다행히 내한테는 감영에서 발급한 교원증이 있었지요. 려권은 없어도. 듣자니 일진회의 사람은 통행이 좀 자유롭다더군요. 그래 생각해봤습니다. 그자들의 확연한 신분증이 뭐겠습니까. 남달리 뺀뺀골을 하는게지요. <오라, 그렇지! 나도 한번 그 모양새를 내보자!> 나는 머리를 이모양을 깎아버렸지요. 그리구나서는 서점에 가 일문서적까지 한권 사서 분장을 한거지요...했더니 확실히 감시가 적은 것 같습디다.》

   김성은 원산해관의 감시를 피해 밀항한 것을 자랑삼아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모양으로 로씨아땅을 밟으면 위험하다는 것 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그래 여게 와서는 어느 의병대를 찾아갈거요?》

   서일이 물어봤다.

   《난 유인석의 의병진을 찾아가렵니다. 그 의병진이야말로 력사가 오래거니와 명성이 높으이니까요, 안그렇습니까.》

  《유인석의 의병진이라, 거 접대가 대단히 좋았군! 하하하!...》

   유진율이 그 소리를 듣더니만 앙천대소했다.

  《기자선생! 왜 그럽니까?》

   김성은 그만 어안이 벙벙해났다.

  《이 멍청이야! 너를 죽이자구한게 바로 그 의병야.》

  《아니 뭐라!?...》

  유진율의 말에 김성은 물론 서일마저 깜짝 놀랬다.

  유진율은 머리꼭대기에다 아직도 멋없는 상투를 얹고있는 것을 보고서 자기는 그들이 유인석의 의병이라는걸 제꺽 알아맞혔노라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요즘 유인석이 60여명의 수하 의병들을 거느리고 로씨야로 건너온 것이다.
  연추에 도착했다. 바이깔호  너머의 저 머나먼 첼랴빈쓰크까지 한꺼번에 시공을 벌려 완공했다는, 구라파의 로씨아 본토로부터 우랄산맥을 지나 아득히 멀고 먼 이곳 원동까지, 마치도 하나의 혈맥마냥 뻗은 길이 7,000㎞의 대철로는 그 장관을 자랑이나 하듯이 해빛아래 번들거렸다. 그 철로의 끝이 닿고있는 원동의 항구도시 울라디보스톡에 올라서부터 내내 짙게 느껴지던 로씨아식의 독특한 이국적풍채가 북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더 다분히 느껴지고있었다.

   무비광대한 로씨야의 대지로 놓고 보면 하나의 작디 작은 표점에 불과할  연추ㅡ이것이 그래 동포가 살고있는 마을이란말인가?!...우선 가옥부터 외모가 완전히 달라서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는 함경도처럼 산간에 숨듯이 들어앉은 마을에서 처럼 토벽이니 토담이니따위는 전혀 볼수 없었다. 만주땅에 사는 한족(漢族)들의 주거(住居)처럼 진흙물을 묻힌 억새타래로 만든 두터운 타래벽흙집도 볼래야 볼수 없었다. 여기는 소문에 듣던바와 같이 모든 건축들이 목제였다. 살림집은 다가 아름드리의 굵은 송목을 잘라 지은 귀틀집인데 그것도 계단을 밟아 오르게끔 모양좋게 지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정원도 널찍널찍 잡아서 마을이 대단히 커보였다.

   교회당이 있고 학교도 있었다.

   마을한복판 제일큰 살림집이 바로 최재형의것이라 했다. 당연히 그럴만도하다. 빈궁에 시달리다가 9살나이에 부모따라서  여기에 온 그역시 개척자의 일원인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로씨야국적을 얻었고 학교를 다니면서는 이름도 베트루쯔오라 고치였다. 이 베트루쯔오가 청년에 이르러서부터는 기지민활한 활동가로 자라났다. 로씨아군대와 교섭하여 우육류(牛肉類)를 납품하는 군대의 용달상(用達商)을 경영하여 거만(巨萬)의 재산을 모았다. 그는 삶을 자체로 영위할줄을 아는 억센 사나이였다. 낯선 이역에서 온갖 역풍을 무릅쓰고 이같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그는 성실한 인품과 자애로운 덕성으로 명망이 높았다. 그는 동족에게뿐만 아니라 일반 로씨아인에게 까지 일시동인(一視同仁)의 태도로 대하는 사람이였다.

   《그분은 제 동포들 속에서는 물론 로씨아인들에게도 인망이 높아 도헌(都憲)으로 되었지요. 그리고 직무를 충실히 집행한 공으로 수도 뻬제르부르그에 까지 가서 황제를 알현했던겁니다. 훈장을 5개나 받은 분이지요.》

   유진율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최재형선생은 이곳 연해주에 와있는 동포들을 위해서 민생안정과 민족교육에 전념하시지요. 저기 저 커다란 학교를 보시오, 저것 역시  선생께서 사재를 희사하여 지은겁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도헌직으로 받는 년봉은 몽땅 동포학생을 류학시키는 학자금으로 내놓은겁니다. 그이는 이곳 한인회장입니다. 그이한테 방조를 받지 않은 교포가 어디있다구요, 신세지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우리 신문사 역시.》   

   전에 이달문이나 계화한테서 듣은바와 갔았다.

   이범윤, 안중근, 유인석, 홍범도... 의병의 거두며 망명지사로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가 없었던 것이다.

   중등키에 단단하게 생긴 50대의 사나이가 구면인 유진율기자를 따라 자기네 집에 온 초면의  두젊은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르신님의 선성은 제가 고향서부터 들어 알고있습니다만 인제야 찾아뵙게 되여 미안합니다. 그지간 옥체무강하셨습니까?》

   서일이 무릎꿇고 큰절을 올리니 최재형은 되려 송그스러워 하면서 물어보는것이였다.

   《뭐라했더라, 고향서부터 나를 알고 온거라?... 고향이 어디게?》

   《함북도 경원군 안농면 금동입니다.》

 

   《어이구, 이거! 그렇다면 한고향친구로구나! 하하하...》

    이렇게 반가와할 변이라구야! 최재형은 파안대소를 하면서 어서일어나라며 서일을 두손잡아 일으켰다.

   《성명을 어떻게 쓰느냐?》

   《서일이라 합니다. 애명은 기학이구요. 저의 조부님도 그러시구 부친님도 그러시구...로씨아에 가거들랑 선생님을 배방하고 안부 꼭 전하랍디다. 저의 부친은 명함이 서재원입니다.》

   《이런! 하하하... 서재원이면 내 소시적의 딱친굴세! 잊을리있으리오! 난 뒷마을 이동이구 재원이는 앞마을 금동이구. 한동네는 아니지만 사이가 코앞이라 늘 같이 놀며 자랐지. 반갑구나! 정말루 반가와!》

   최재형은 전에는 가끔 들어서 소식을 알았노라면서 근년들어 조부와 부친의 건강은 어떠한가고 물었다. 서일은 변고없이 다 무사히들 보낸다고 아뢰고나서 느낀바를 말했다. 

  《오늘 와보니 어르신님은 과연 자애심많은 분이거니와 의를 위해 싸우시는 혁명가답습니다.》

  《허허! 칭찬이 과분한걸... 내야 응당해야 할 일을 하고있을 뿐이네.》

   최재형은 겸손한 분이였다.

   서일은 그의 앞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자기가 불시에 집을 떠나 여기로 오게 된 연유를 알려주었다. 최재형은 아 그런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한번 와서 연해주가 어떤 곳인가를 제 눈으로 직접보고 가는것도 나쁘지야않지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이 땅에서 혁명이 일어남으로 하여 급변하고있는 로씨아의 형세와 그로 인한 사회의 질서 안정상황에 대해서 말했고 이런 속에서 동포들의 의식변화와 상호협력과 난관에 대해서, 망명애국지사와 산발적으로 쓸어드는 의병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을 안둔시킬 문제가 긴박하다는것과 의병대지간에는 지반과 지위쟁탈로 불화와 모순이 생겨 그것이 골치거리로 된다는걸 숨기지 않고 말했다.

   《어디로 가나 그놈의 오그라질 당파심!》

   서일은 기분이 상해서 내뱉았다.

   그들은 어느덧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없이 속심을 나누기에 이르렀다. 

   한데 서일은 여기서 이달문도 계화도 만나볼수 없어서 섭섭했다. 그들은 지금 연해주에 있지 않았다. 얼마전에 만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호군수는 만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는 홍범도의병진에 합치였고 홍범도는 이곳에 있다고 한다.

   최재형은 서일보고 떠날 때 까지 맘놓고 자기네 집에서 류숙하라면서 그와 유진율과 밤을 패가면서 과거지사를 얘기했다.

   로씨아가 생각한 것 같이 그렇게 자유롭고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부유해질수 있는 곳은 아니였다. 이만큼이라도 살아나갈수 있게 자리매김을 한 그 력사야말로 눈물겨운 것이였다.

   1864년 봄에 함경도는 민간의 식량이 절핍(絶乏)되여 먹을것이 없었다. 무산사람 최운실(崔雲實)과 경흥사람 양응범(梁應範)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다못해 결사적으로 두만강을 건너 만주의 훈춘에 도착하였다가 다시 우쑤리강을 건너 여기 이  연추(煙秋)에 왔다. 언어불통인데다 로씨아인과는 생활풍속도 달라 모두가 생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로를 극복하고 피땀흘려 개척한 보람으로 첫해에 수확을 거두어 토대를 잡았다. 이 소문이 국내에 퍼지자 삼수 갑산의 세궁민(細窮民)들이 결사적으로 도망쳐 왔다. 최운실은 자기의 량식을 모두 내놓아 추위에 떨고 굼주린 그들을 먹이고 살리였을뿐만아니라 빈민 35호를 데리고 추풍(秋風)에 가서 개간하기시작했다. 그해의 6월에 또 60여호가 부녀자를 거느리고 와서 로씨아군관이 밀을 주어 아사를 겨우 면하게 하였다. 게다가 1867년부터 7년간 이곳도 흉작이 련속들어 굶어죽는 동포가 속출했다. 로씨아군이 자기들의 군량에서 얼마간씩 갈라주었으나 그래도 살기 어려웠다. 나무뿌리와 풀뿌리를 캐여먹다못하여 하는수 없이 부자가 갈라지고 부부가 헤여져 사방으로 방황하였다. 그러나 청나라 한족(漢族)들은 좋은 기회라 여기고  여기에 와서 량식으로 교포의 처자들을 사갔다. 어떤자는 지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함께 사갔으니 그 처참한 광경은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지경이였다...그러했음에도 고향서는 살수 없어 떠나오는 이들, 굴함을 모르고 억척한 동포들에 의하여 쌍청(雙城)이 개발되고 우운현(烏雲縣)이 개발되였다. 해삼위(海參威)에 생겨난 개척리(開拓里)는 최초 5호가 자리잡고 개척한 마을이였는데 1년이 못되여 신한촌(新韓村)이라 호칭하고 양옥이 즐비하고 교회당과 학교도 서게 되었다. 안씨와 김씨에 의하여 개척된 흑정자(黑頂子)는 라선촌(羅鮮村)이라 불렀는데 몇해를 지나지 않아서 큰 부락으로 변하였다. 거주민이 계속증가하고 가축은 번성했으며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나면서 생활은 점점 활기를 띠여갔다...

   《이토록 터를 닥자니 오죽했는가. 어느핸가는 빈민 96인이 배를 타고 추풍으로 가려다가 해삼위에 이르는 해상에서 22이나 빠져죽고 그 나머지는 겨우 구출되여 만난을 겪으면서 쌍청을 개척한걸세.》

    최재형의 말이였다.  

    그 말을 서일이 이어받았다.

   《살길을 찾아 헤매다가 그 모양으로 죽음을 당한 자 어찌 한둘이겠습니까.  저 만주쪽 압록강, 두만강물은 그대로 귀신의 호곡성으로 되어 들립니다. 후ㅡ 이러나 저러나 수난을 겪어야 하니 어찌보면 이 민족은 수난의 명을 타고난 것만같아서 민망스러울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제 손으로 제 명을 건지지 못하는 신세의 민족으로 태여났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쓰라리도록 저려나는 서일이였다.

    유진율기자는 지금 로씨아에 거류하는 한국인은 3가지 형태로 분류된다고 알려주었다. 1883년 이전에 이주해 온 이들로서 로씨아에 귀화하여 토지를 자유로이 매매(賣買)하고 로씨아인과 다름없이 영주(永住)하고있는 사람, 로씨아에 귀화와는 관계없이 사유의 토지를 차입하여 몰래 토지를 소유해온 사람, 사유토지를 전혀 가지지 못해 소작생활을 하는 사람.

   《아편장사를 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다. 로씨아에 거류하고있지만도 정당한 노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법을 위반하면서 그 짓을 하고있지요. 이런 현상이 생기니 로씨아정부는 로씨아에 거류하는 한국인이 연해주에 대하여 경제적인 침투를 한다, 목재를 람벌하여 홍수를 일으키게 한다, 산야가 황페되여 생명과 재산마저 탕진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느니 뭐니 비난하기 시작하지요.》

  《감탄고토(甘呑苦吐)라 이제는 뱉어내자구 트집잡는거야. 말을 다 해야 알겠는가. 연해주개발이 어느정도 완성됐겠다 이제와서는 우리 사람이 더이상 쓸모가 없겠다구 여겨져서 배척을 하는 판이지.》

   최재형이 격한 음성으로  분석하는 말이였다.

   그의  분석을 듣고보니 서일은 언젠가 자기가 학생들 앞에서 일본이 조선을 완전강점하게 되면 조선민족은 그자들의 노예로 전락되거나 아니면 씨비리나 화태쪽으로 쫓겨가리라 말한 것을 새삼스레 상기했다. 과연 그렇게 되여가는것만같았다. 최재형어른은 벌써 그런 경우를 감촉하고있지 않는가!

   유진율은 울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의병진을 함께 돌아보고 동포사회를 같이 료해하자는것이였다. 서일은 그러자고 했다.

   두사람은 먼저 이범윤부터 방문하기로 하고 이틑날 하선마구(哈什媽溝)로 갔다. 거기에 의병본부가 있었다. 그것은 이범윤이 최재형, 김익선, 박춘근과 함께 대일항전을 하고자 설치한 것이였다. 또 한편으로는 지난해, 즉 1907년에 한국군이 강제해산을 당하자 그들중 일부는 여러 의병대에 가담하여 혹은 북간도로 가거나 혹은 연해주로 이동한 것인데 그런 의병대중에 홍범도의병대와 차도선의병대가 이곳 연추(煙秋)로 왔기에 경제적인 기반이 있는 최재형은 그들을 도와 의병진을 새로 정비하고있었던것이다.

   그리고 며칠전에 이위종(李偉鍾)이 뻬제르부르그로부터 군자금 1만루불을 지참하고 와서 이범윤은 600명의 의병진을 바탕으로 최재형과 함께 사포대(私砲隊)가 사용하던 무기를 가지고 대일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몸이 메마른 쉰살넘은 사나이가 자기를 찾아 온 두 젊은이를 창너머로 내다보고 있었다.

  《이관리사어른 안녕하십니까?》

   유진율이 허리꿉석 인사를 하는데 저쪽은 또 무슨 소식감을 벌려구 분주를 떠느냐고 롱담절반 진담절반했다.

  《오늘은 제가 이관리사어른께 멋진 친구를 사귀라고 복무를 하지요.》

   이범윤 하면 동포들은, 특히 함경도사람이면 누구나 다 거룩한 위인으로 우러러 보고있는데 간도관리사노릇을 할 때의 옛직함을 서슴치 않고 불러가면서 수작질하는 것을 보면 아주 숙친한 사이라 허물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이는 또한 아량있는 이범윤의 포섭력을 말해주기도하겠다.

  《함북도에서 온 서일이 선생님께 문안드립니다.》

   서일은 그의 앞에 다가가서 국궁재배했다.

  《오, 그렇소! 함북 어디요?》

  《경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네 총소리를 들었겠군.》

   이범윤은 다시금 서일을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그 눈매가 윤기자가 나보고 사귀라며 데려온 사람이 바로 너냐묻고는 약국의 약제사가 약처방을 다루듯이 대방이 갖추고있는 인격과 그 분량을 가늠하는것이였다.

   《저는 어른께서 흩어진 군사를 다시모아 건곤일척의 대결을 계획하신다는 소식을 듣고왔습니다. 기쁩니다. 아무튼 수고많이 하시여 전과를 올려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난 소문만 냈지 그닥 유능한 사람은 아닐세. 패전이 수두룩하니.》

   《아니옵니다. 병가일패(兵家一敗)는 인지상사(人之常事)라 99번 패하다가도 최후의 승리가 병가(兵家)의 궁극적 목표이지요. 패전이 수두룩하다고 의기저락할 필요는 없는가봅니다.》

   《오, 그런가!... 헌데 여보게, 젊은이는 대체 뭘하는 사람이오?》

   《소인은 경원학교서 교편을 잡고있습니다.》

   《뭐라! 훈장질을 한다는 말인가?...》

   이범윤은 일개 교원의 입에서 군사리론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여 그는 놀래는 한편 대견해 하는 기색까지 짖더니 근중을 떠보느라 당면의 의병투쟁을 어떻게 보는가고 넌짓이 물어왔다.

   서일은 그가 그러것이 좋았다. 바다너머 머나먼 여기로 온 목적의 하나가 의병을 통솔하고있는 이런분들게 한마디 충고를 하자는것이였다. 자진해서 물어보고있으니 어려워말고 제 견해를 기탄없이 피력해야한다.

   《소인은 글방선생이다보니 실전경험이란 있을수도 없습니다만 그지간 보고 듣고 분석한바가 있어서 장군앞에서 감히 말씀올리려하오니 소행이 외람될런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워말고 말하게. 내가 듣자고 귀를 세우지를 않는가. 어서 말해보게. 어서!》

   《그럼 하지요. 첫째는 지금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의병들을 하나의 힘으로 단합시켜야한다 그겁니다. 의병장들이 제각기 분산적인 활동에 치중한 나머지 한 구역안에서도 그렇고 린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의병대와도 그렇고 협동작을 잘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략을 모르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적은 이 약점을 리용하여 강력한 토벌력량으로 각개격파하는 전술을 쓰고있는겁니다. 이제는 두달이 되였구만요. 7월 2일에 이강년장군이 왜놈손에 체포된걸 아시겠지요. 린접부대들과 얼마든 련합과 협동작전을 실현할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러지를 않았지요. 저는 신문지상에 보도된걸 못봤습니다. 협동작전을 한다는 소리를 말입니다. 이인영의 의병대도 그렇고 신돌석의 의병대도 그렇고 이강년의 의병대도 그렇고...통합과 련합작전을 한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지를 않아서...》

   《말이 맞았어! 과연 옳은 충고일세!》

   이범윤은 서일을 향해 자기는 귀담아들을테니 말을 더 해보라했다.

   《각지 의병들은 새로운, 이를테면 다른 의병대에서 정찰, 위장 등 효과적인 전술을 썼다면 그를 응당 참고해서 적용해야할것입니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상병벌모(上兵伐謀)>라했습니다. 상병(上兵)이란 병사를 쓰는 법(法)이요, 벌모(伐謀)란 모략으로써 적을 공격해 승리한다는게 아닙니까. 모두어 말하면 병사를 씀에 제일첫째가 모략으로 적을 전승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보시오. 통일적인 단합도 없이, 전체를 맡아 지휘하는 통수도 없이, 의병장 개개가 모래알같이 흩어져 제멋대로 싸우고있습니다. 일정한 전술도 없이 싸움을 벌리다보니 결국 실패하고말지요. 목숨만 잃고.》

   이범윤은 곰곰히 듣더니 머리를 주억거렸다. 조금도 틀리지 않는 말이였다. 그한테 그 누가 이같이 투철히 말해주었던가? 없다. 오늘 함북도 경원에서 온 28살의 서생티가 물씬나는 교원 서일이가 말해주고있는 것이다. 아무리 군자라도 아이의 말도 옳으면 귀담아들으라했다. 이범윤은 자기가 오늘 뜻밖에 명지한 사람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되여 고마와했다.   

   이범윤은 여직까지의 의병항쟁을 한번 돌이켜보았다.

   의병항쟁의 첫시기부터 이병장들은 그 누구를 물론하고 결사(決死)를 맹세하고 싸움에 나섰으나 적들과의 치렬한 대결이 벌어지고 투쟁이 오래지속됨에 따라 동요하면서 우유부단한 행동을 하고 있다. 특히 유생들은 백성들의 투쟁기세에 고무되여 의병을 조직하기도 따라나서기도 했으며 사회적 영향력을 리용하여 의병장의 자리를 차지하기도하였다. 그러나 어떤가, 적과의 치렬한 싸움판에서는 외려 용감하지 못하거니와 뒷꼬리를 따라다니다가 대오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아예 항쟁을 포기하기도하는것이다.

   (그래서 되느냐? 그러지를 말아야지. 수치를 아는 사람이면.)

   이범윤 혼자서 해보는 자문자답이였다.

   그는 서일과 같이있고싶었다. 자기의 참모가 되어줬으면 오죽좋으랴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는 없었다. 서일은 아직 의병에 나설 맘은 없는 사람이였다.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사람이였다.

   서일과 유진율은 얜추로 돌아왔다.

   의병과 주민들이 동원되여 마을 한귀퉁에다 병영을 짖고있었다. 전날 온 유인석의 의병대가 쓸 병영이라고 한다. 60여명은 여기로 오자 처음 얼마간은 례배당에 들어있었다. 그러다가 교인들이 교회활동을 제대로 할수 없다고 불평이 많아 분산되여 개인가옥에 들게되였다. 그러니 외려 불편한 점이 더 많았다. 젊은 의병이 속옷만 입은 주인집녀인의 몸에 눈길을 돌린 것이 말썽거리가 되여 하마터면 당치도 않은 류혈적인 마찰까지 유발할번했다. 하여 최재형은 유인석, 이진석, 박정빈 등과 상론한 끝에 아마도 병영은 지어야 할것이니 일찍 손쓰는 편이 나으리라 시공을 벌린 것이다.

   《우리는 먼저 저기루 가봅시다. 건축이 어느정도 되어가는지...》

   유진율이 방향을 끄니 서일은 그를 따라 걸음을 놓는 수밖에 없었다.

   건축면적이 적잖았다. 다 지으면 큰집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굵은 통나무가 없는지 많이는 가는 나무와 판자와 톱밥을 주재료로 쓰고있었다.

   사람들이 한창 지붕을 만들고 있었다. 나무깨비나 수수깡 따위의 산자를 서까래에 얹을줄을 알았는데 그들은 그러지를 않고 연목에다 판자를 붙이고 있었다. 뚝딱, 뚝딱...여럿이 못질을 하고있었는데 보아하니 놀랍게도 거의가 녀인들이였다.   

   《호호호...》   

   《호호호...》

    어느 녀인인지 서일은 전혀 알아듣지도 못할 로씨아말을 입밖으로 굴려 내던지자 다른녀인들이 못질을 하다말고 모두 고개를 돌려 이켠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들썽하게 웃어댔다.                     

   《저 빌어먹을 말괄량이를 보지. 바람이 끼였어!》

   유진율은 녀인이 내친 소리를 잡아들은 모양이다.

   《뭐라구 했길래 저래?》

   《새서방온다오.》

   《저런! 롱담도 유만부동이지...날 맘들어 그런다면 알려주시오. 내가 새끼  셋이나딸린 애애비가 돼서 미안해 한다구.》

    그랬더니 유진율이 그 말을 정말 번역해주었다. 그래서 녀인들은 더 죽겠다고 웃었다. 서일도 따라웃었다. 유들유들 악의없이. 유진율은 지붕에 올라가 판자에 못질을 하고있는 녀인은 거개가 처녀들인데 로씨아 아가씨들의 성격을 닮아가는지 남녀성별을 무관하고 작난을 몹시쓴다고 알려주면서 의병거의가 팔팔한 젊은이라 녀성측에서 먼저 수작질하고 꾀여 관계를 발생하는 일이 자주 생겨 부득불 군법이 더 엄해지게 되였다고했다.

   서일은 뜻밖에 여기서 이동호군수를 보았다. 청년 몇사람과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군수는 축간 얼굴이였다. 서일은 놀램으로 반기면서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한데 이동호군수에게 맏겨 보낸 제자 9명중 3명이나 왜놈과 총격전을 벌렸다가 희생되였다니 억장이 무너지는것만같았다. 

  《아, 어쩌면 그렇게!...아무때건 가족과 친족이 알아야 할 일인데 왜서 여직 그걸 감추시는가요? 죽은 목숨이 되살아날 때를 기다리는가요?》

  이동호군수는 길이 바빠 길게 말할사이없으니 래일다시만자면서 총망히 가버렸다. 최재형은 그를 면목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동호군수는 여기에 있지 않는단말인가? 어디서 뭘하는데 늙은 몸에 저러고 다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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