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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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ㅡ제2부 24.
2011년 08월 21일 19시 46분  조회:3816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24.

    김동삼이 듣자니 아직 입교도 하지 않은 서일이 대종교의 명의 “重光團”이라는 것을 창립했다는데 그것이 대체 발전이 어떤가고 캐듯이 물었다. 서일은 배포유하게 준비가 되면 대오를 크게 장대시킬 타산인데 발전이란 장차봐야 알리라했다. 김동삼은 아 그런가 할뿐 그가  시급히 대종교의 명의를 도용했다고 나무리지 않고 되려 잘한일로 여기면서 내가 “重光團”이 이름을 날릴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그는 만주땅에 발을 붙이자면 우선 토민들과 말이 통해여야한다고 일깨워주었다. 

   토민과 말이 통해야한다는것이 화제에 오르다보니 자연히 박찬익(朴瓚翊)의 말이 나오게 되였다. 이동춘선생이 용정촌에서는 중국말을 제일 잘 구사할줄을 아는 사람은 아마 박찬익(朴瓚翊)일거라 했던것이다.

   《과연 날파람있는 사람이지! 대교가 중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선동을 어떻게 했는지 글쎄 공업학교 학생 모두를 입교하게 만들어놨다잖어!》

    이동춘은 이러면서 대종교에 대한 그의 지극한 정성까지 찬양했다.

    서일은 이선생이 이토록 칭찬하는걸 보니 과연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만나보려했다.

    박찬익은 나이를 따지면 서일보나 3살이 지하다. 그는 1884년 정월 2일에 경기도 장단군에서 태여난 것이다. 1908년, 25살나던해에 서울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는 기간 동지를 규합해서 학교를 쥐락펴락하려 드는 왜교관과 자주 맛서서 해냈다. 그러다가 그는 대교가 중광하니 동교생전부를 이끌고 대종교에 입교하는 기적을 창출했거니와 작년에 그들과 함께 북간도로 건너와 동만개발개척군의 선줄꾼이 된 것이다.

   함께 만주로 건너온 동교생들은 다가 만주 각지에 널리 흩어져 교편을 잡았고 용정촌에다 집을 잡은 박찬익은 지금 중국학교에서 교관으로 사업하고 있다. 

   근 70여처에다 학교를 세움에 이동춘의 노력이 많았던 것이다. 한즉 그의 공을 어찌 가볍게 보랴!

   계화는 동고향친구를 만나봐야겠다며 그의 집을 찾아가고 서일은 박찬익을 만나러 중국학교를 찾아갔다.

   박찬익이 마침 학교에 있었다.

  《임자가 박찬익이 옳지? 나 서일이요.》

   자기보다 나이어리다고 생각돼서 그런지 서일은 그를 보는 순간부터 마치 아우를 만난 듯한 감이라 언행이 스르럼없이 나갔다.  

  《아 그렇습니까! 대단히 반갑구만! 선성은 많이 들어 알고있습니다. 그러잖아 언제면 서형을 만나볼수 있을까했더니...올초에 왔다더구만. 건데 만주로 건너오자마자 욕까지 보시다니 원!...》

  《허, 이거. 거기서도 아는걸 보니 소문이 왁자게 퍼진게로군! 글쎄말이여. 재수없이 그렇게 됐어.》

  《상한 안질이 더 말썽부리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듣자니 왕청에 명동학교를 세웠다더군요. 그래 학교는 어떻습니까? 운영이 잘돼갑니까?》

   《덕분에 아직은 아무가탈없이 돼가고있어. 말이 사립이지 실상은 대종교 시교회가 맡다싶히 하는 상황이야.》

   《오, 그렇다면야 잘된게지요. 이제 한얼님이 은총을 내리실겁니다!》

   박찬익은 명동학교가 문제없이 운영되고있다니 마치 제 일같이 기쁘다면서 만주에 있는 동포학교 모두가 단군황조(檀君皇朝)의 품에 안겨들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다.

   서일이 만주로 건너오자 왼쪽눈 하나를 잃은 것이 과연 큰 신문거리가 되어 지어는 물의를 일으키기까지 했으니 독립운동에 관심을 두고있는 동지치고 모르는 이가 거진없다싶히 되었다. 이 일로 최진동은 더 난처했다. 그는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여 사과를 했거니와 보상을 하느라 현금 1천원을 내놓기까지 했다. 서일은 그 돈을 이동춘선생께 드리려했지만 이동춘선생은 한푼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일은 그 돈을 일전한푼 떼내여 제 가정살림에 쓰지도 않고 몽땅 학교를 건설하는데 내놓았다. 그래서 왕청사람들은 서일이 제 보배눈으로 명동학교를 세웠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만대부자가 아닌 이상 자기 혼자의 재력으로 학교를 계속 운영해 나가기는 힘든 일이였다. 이를 감안하여 시교회에서 금후는 학교경영의 경비일절을 대종교신도들이 감당하리라니 서일은 얼마나 고맙고 속이 든든한지 모르겠다. 박찬익이 이제 한얼님의 은총이 내릴것이라고 한다. 서일은 이 독실한 신도의 믿음이 놀랍도록 기특하면서 그 축복이 몹시고마왔다.     

   박찬익은 서일을 귀객이라면서 자기 집으로 끌었다.

   서일은 열혈이 끓고있는 그가 맘에 들면서 의기상투함을 느꼈다. 이로부터 두 사람은 초면이지만도 허심탄회(虛心坦懷)할수 있었다. 그들은 각자 지내온 경력으로부터 가정형편과 친구와 사회와 지어는 세계정세에 이르기까지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화제가 돌고 돌아 현재 만주일판에 분포한 동포마을의 실태를 분석하고 론의하기에 이르었다. 그들은 이주동포들의 민생문제에서 토지와 직업문제도 중요는하겠지만 안착이 된 다음에는 새 지식의 보급과 계몽을 우선에 놓아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어느덧 밤이 가서 이제는 자야했다.

   서일은 웃방 앉음뱅이탁상우에 “三一神誥”가 한권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그것은 넓적글이 판면을 메운 순 한문본(漢文本)이였다. 

  

   竊伏門 羣機有象 眞宰無形 藉其無而陶鈞亭毒 曰, 天神 假其有而生歿樂苦 曰, 人物 厥初 神錫之性 元無眞妄 自是人受之品 乃有粹駁 譬如百川所涵 孤月同印 一雨所潤 萬卉殊芳.

   

   서일은 경전을 펼치자 눈에 안겨오는 그 글을 즉각 번역하여 제 조선말로 쭉 내리읽었다.

 

  《신은 그윽이 엎드려 듣사오니. 뭇 고동은 허울이 있고, 참 임자는 얼굴이 없는지라. 그 없음을 빙자하여, 질그릇 만들 듯 조화함을, 가론 한얼이오. 그 있음을 빌어서, 나고 죽으며 즐기고 괴로움을, 가론 사람과 만물이니. 그 처음에 한얼이 주신 성품은 본대 참함과 가달이 없건마는. 이로부터 사람이 받은 품수가, 이에 정함과 얼럭이 있으니. 비유컨대 온갖 내가 젖은바에, 외로운 달이 한가지로 찍히고. 한번 비가 부르는 바에, 온갖풀이 다르게 꽃다움 같으니라.》

  

   《아니, 서선생은 그걸 한글로 숙련했습니까?!》

   박찬익은 서일역시 자기같은 대종교도인줄로 알았던모양이다.

   《숙련하다니 언제...오늘 이렇게 대하니 처음인걸.》

   서일은 자기가 아직은 대종교도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뭐랍니까! 그렇다면 서선생은 아직 입교도 아니했단말입니까? 하 이거! 원 어쩌면!...

   박찬익의 놀램은 이루 형언키 어려웠다.  세상에 별일이 다있다는거다. 서일이 자기와 같은 신민회 회원이였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직 제 민족종교도 신봉하지 않다니 웬 일인가?... 어쩐지 믿기싶지 않게 리해되지 않았다. 짦은 순간이건만 각가지 생각이 착잡하게 뒤엉키고 있었다. 한편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한문(漢文)지식이 이토록 박식함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는 한문(漢文)을 알아도 그렇지는 못했던것이다. “三一神誥”를 손에 들고 이같이 막힘없이 번역해 내리읽는 사람은 처음보는 그였다.

   박찬익은 서일보고 지금 교도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박절히 수요되는지 모르겠다면서 “三一神誥”를 한글로 번역해달라고 청들었다.

  《우선 좀 보게해줘. 거기서야 이 책을 하나 더 구할수 있겠지.》

    <<그래, 그러지요, 그러지요!.... 서형!>>

    박찬익은 두말없이 흔쾌히 내놓았다.

   서일은 집에 돌아가서 번역도 하면서 정력을 넣어서 이제 대종교의 교리를 깊이연구해 볼 생각이였다.  

    서일과 계화는 보름사이에 용정과 근처의 학교마을을 돌고 연길로 가서  그 근처의 학교마을도 돌아보고는 도문에 까지 들려서 왕청으로 돌아갈 계획이였다. 그러니 한곳에 이틀이상 더 머무를 수는 없는것이다.

   김동삼역시 바삐보내는 사람이였다. 그는 용정까지 왔다가 뜻밖에 여기서 서일과 계화를 만나고 보니 구태여 다리품을 더 팔며 왕청까지 갈 필요는 없는지라 남만으로 돌아가고말았다. 그가 왕청에 가자는 목적은 바로 서일을 만나기 위함이였다. 같은 신민회의 사람이였던 그를 만나 회포를 풀면서 장차 펼쳐나갈 독립운동방략에 대해서 함께 연구해보자는데서였다. 한데 서일과 계화를 만나 심중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당장 무장항일을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요 당전의 급선무는 우선 군중을 계몽시키는것이라면서 중점을 거기다 두고있기에 다른 얘기는 더 하지 않았다.

   서일과 계화는 용정근처의 비암마을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그들은 가면서 류하현에서 동포들의 민생문제를 관계하느라 세웠다는 경학사(耕學社)와 그들이 군사양성에 머리를 쓰고있는데 대해서 얘기했다.

   김동삼이 그들에게 준 “耕學社趣旨書”를 보면 이러했다. 

                      

   <<...땅 없이 무엇을 먹고 살며 나라없이 어디서 살겠는가. 내가 죽으면 어느 산에 묻히며, 나의 커가는 아이들은 어느 집에서 살게 하겠는가!...“나는 모른다”고 하지 말자. 우리가 민중의 재산을 돌보지 않는데 저놈들이 어찌 빼앗으려 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지 말자. 내가 맡은 천직을 이행하지 않는데 저 놈들이 어찌 노리지 않겠는가. 차라리 칼을 빼여 자결하고 싶어도 그러면 도리여 나를 죽여 적을 쾌하게 할것이고 굶어죽고 싶어도 그러면 나라를 팔고 제 이름만 사게 될지어니  어찌 그렇게야 하겠는가. 그렇다고 눈물을 흘리며 끝없는 치욕속에서 살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힘을 길러서 그 마지막 결판을 보겠는가. 마침내 더는 어쩔수 없는 막다른 곳에서 다시 백절불굴의 뜻을 가다듬으면 한밤중에 종소리가 잠결에 울리듯 한 갈래의 혈로가 우리 앞에 트일 것이다.....

   이에 남만주 삼원보에서 여러 사람들의 열성을 융합하여 하나의 단체를 조직하니 그 이름을 <경학사>라 일컫는다...>>

  

  1) 자유직책(自衛之策).
  2) 질서와 풍기(秩序와 風紀).
  3) 생활방도(生活方途).
  4) 교육방책(敎育方策).
  5) 군사훈련(軍事訓鍊).

 

  이상것은 “耕學社”에서 결의한 사항이였다.

  《교포부녀들에게 산야채의 독성을 가리게 하고... 강냉이밥을 짓고 수수밥을 짓는 방법을 배워주고... 수토병방지와 예방법을 가르쳐주고...우리도 그리해야잖겠나.》

  《물론 그리해야지요. 그리구 중광단이 창설되니 소식이 퍼져 이를 알고 들고싶어하는 이가 적잖으니 계획보다 준비를 빨리해얄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있었소. 사람들이 그같이 지망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조직은 전도가 유망하다는걸 말하는것이지. 안그렇소 서교장?》

  《과연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원을 모집해 대오를 확대하고  조직을 널리 공포하게 될 그때가 되면 세상은 그 존재를 알게 될 것입니다.》

   重光團ㅡ 얼마나 장한 이름인가! 서일은 장차 무장투쟁을 전개하고저  창설한 조직이니 대종교도들의 관심속에서 잘되여가리라  스스로 확신하고있었다.

   돌아가면 해야할 일들이 많고 많았다. 학교와 숙사를 크게 지어야 했다. 그러자면 준비가 많아야 

다. 학생들을 동원해서 토피 수천장을 쳤는데 그것들은 다 말랐다. 하지만 문감 재목은 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였다.

   계화에게는 그것이 근심꺼리로 되여 늘 머리속에서 맴돌이쳤다.    

   용정일대와 연길근처의 마을들도 다 돌아보았다. 이제는 돌아가야했다. 도문(圖們)을 걸쳐 곧추 북으로 향한 그들은 여리를 걸어 석현(石峴)에 당도했다. 여기서 왕청(汪淸)까지는  여러리 길이라했다. 계화는 석현마을에 성이 장씨인 한족(漢族)지주가 하나 있는데 면목이 있고 자별한 사이라면서 들려보고 가자했다. 하여 서일은 그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그 마을의 복판쯤해서 돌담장을 높게 쌓고 소슬대문을 꾹 닫은 널직한 울안 한가운데 사랑채딸린, 처마가 건뜩 들린 커다란 청기와집이 한채 있었다. 그것이 장지주집이다.

   얼굴이 풍염하게 생긴 50대의 한족(漢族) 사나이가 하인의 전갈을 받고는 마당으로 나오며 손님을 례절스레 맞아주었다. 그가 바로 계화가 친해놓았다는 이 마을의 지주 장송린(張松麟)이였다. 한마을서 오래동안 같이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그를  “대갈망치”라 불렀다.  별명이였다.  온갖 어려움을 겪어 여무지게 드레진 사람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느 깍쟁이 부호같이 린색하고 좀스러운 속한(俗漢)은 아니였다.

   서일은 담장가에 두터운 판자를 차곡차곡 가려놓은 더미를 발견했다. 말짱 홍송목인 것 같았다.

   (많기두하구나! 중국사람은 집널만은 일등재료로 한다더니... 저거면 새학교의 창문을 다 짜고도 남겠구나!)

   부쩍 욕심났다.

   널다란 객실에 향기가 서리서리 풍기였다. 윤나는 검은탁상이며 등나무덩굴의자며 병풍그림이며 푸른색의 채화가 그려진 목긴 당화기며... 집안을 장식하는 모든  가구가  고풍스러우면서 일품(一品)이여서 집주인의 부유를 자랑하고 있었다.

   계화가 그한테 서일을 소개했다.

   주인은 친구의 친구는 바로 제 친구와 같다고  반가와하면서 어려워말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경개여구(傾蓋如舊)라 잠시사귀여도 구면과 같군요.》

    서일은 그와의 통화를 필답으로밖에 할수 없었다.

   《고락간에 잊지 말아야 하는게 곧 인정이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고신척영(孤身隻影)이라 인정없으면 살아도 몸붙일 곳 없는 외로운 몸이 되고말지요.》

  《우리 글을 잘 아는걸 보니 학식이 대단한 분이구려! 난 글을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식솔은 저그만치 48명이나 거느리고 삽네다.》

   그는 자기야말로 명실공히 이 소인국의 황제가 아니냐며 자랑절반 여유작작하게 우스개소리를 했다.

   《왜 아니겠습니까. 비단룡포를 입으면야 진짜황제노릇을 할수도 있지요. 아무렴 세살에 입궁을 해서 룡상에 올랐다는 아이신줘로 부의보다야 못하겠습니까.》

   그사이 중국말을 배워낸 계화는 부전조개 이맞듯이 대방의 비위에 좋게  곧장 우스개로 맞춰주었다.

   장지주가 껄걸 웃더니 이쪽은 아직모르는 새 소식을 알려주었다.

  《한데 그 부의황제님이 이제는 정말 개꼴이 되겠수다. 무창에서 들구일어났다는 소릴 못들었소?》

   10월 10일에 무창(武昌)에서 기의가 일어난 것을 말하고 있었다.

   기의주모측은 중국의 자산계급혁명당이라 부르는 동맹회고 수령은 손문(孫文)이였다. 그 소식이 오늘 각 신문들에 굉장히 보도된 것이다.

   서일은 장지주가 주는 “盛京時報”를 받아서 보았다. 신문은 무창기의소식을 대서특필했는데 관찰자의 언론요문이라면서 혁명형세의 발전은 한층 새로운단게에 진입한것인데 혁명과 반혁명간의 투쟁은 이제 더욱더 치렬해질것이라 예고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자산계급혁명당의 려정이 순리로운건 아니였다. 1907년도 <<청감강목(淸監綱目)>>에 기록된 짤막한 글만 봐도 알수 있다.

 

   <<광서 33년 가을 7월, 광주 흠주에서 혁명당이 사단을 일으키고 양성을 함락시켰으나 이어 격파되다. 동지달 손문, 황흥이 합세하여 광서 진남관을 공격 및 함락하였다가 패주하다. 유지ㅡ학생이 정치에 간섭하며 모임을 갖고 연설하는 것을 금지하다. 34년 춘정월, 광동에서 무기를 밀수하던 일본기선을 나포하였다가 명령에 의하여 놓아주다. 3월, 손문, 황흥이 무리를 파견하여 운남하구를 공격 및 함락하였으나 이어 패주하다. 겨울 10월, 안경포병영 인솔자 웅성기가 반기를 들었으나 이어 패망하다.>>       

 

   《어느 혁명이면 순조로울가. 대가를 치루지 않고는 대업이 이루어지기는 어렵지요. 우리는 독립혁명에 대가를 대체 어느만큼이나 치뤄야할지...》

   서일은 중국의 자산게급혁명이 우여곡절을 겪을것이지만 이제 승리할 그날은 꼭 있을거라 확신했다. 무릇 낡고 진부하고 반동적인 것은 그 종말을 고하고 력사무대에서 물러나기마련이니까.  

  《동맹회가 민주를 제창해왔으니 혁명이 승리할시 손문은 꼭 공화정부를 세우려 할거요...》

  《물론 그러겠죠. 전제가 페단인걸 알고 도전해왔으니. 장차 중국의 대권을 누가 잡겠는지 우리를 알아주고 해치지만 말았으면 전 고맙겠습니다.》

   계화와 서일이 주고 받은 말인데 마치 그걸 알아듣기나한 듯이

  《정권을 누가 쥐건 매한가지야. 싸워 봐, 기껏 싸워 봐. 큰 고기는 작은 고기를 먹고 작은 고기는 작은  새우를 먹고... 천도(天道)는 본시 센놈이 이기게 돼있는게지요. 그냥 청제국이 되든 새로 공화국이 되든 아니면 민국이 되든 내 이 장송린이 속 썩힐일은 아니고 알배도 아니야. 안 그렇소? 검둥이가 올라앉건 백강아가 올라앉건 나만 못살게 굴잖으면 돼.》

   장송린 지주는 제 잡담을 해놓고 하하 웃었다. 과연 셈평좋은 사람이였다.

   그 지주한테 아직 시집을 안간 딸이 있었는데 그 처녀가 별스레 서일을 할끗 할끗 훔켜보더니 제 아버지와 말하는것이였다.

  《짝짝눈만 아니였더면 미남이였을걸 그랬네요.》

  《허, 저걸 보지! 처녀가 늙어 가면 산으로 맷돌짝지고 오른다고 저 계집애가 엉뚱한 궁리를 했네그려.》         

   《왜, 뭐라구하길래요? 나한테 시집오겠다는 소리야 안했겠죠. 참 아까 들어오면서 볼라니 이 집의 담장가에 두터운 판자더미가 있습디다. 그거나 한번 흥정해보시죠. 창문재료로는 훌륭할것 같습디다.》

   서일이 말하니 계화가 자기도 봤노라면서 장송린과 판자를 팔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그래서 흥정이 붙었는데 장지주는 우정을 봐서 헐값으로 판다면서 몽땅 실어가라 대답했다.

  《이젠 됐어. 새학교 지을 문감은 다 해결이 됐구만!》

   계화는 한시름놓이는지라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서일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는 이미 정오가 다 되었다. 주인이 점심상을 차려주어 밥을 먹자고 마주앉는데 대문을 지키던 종이 급히 다가와서 주인의 귀에대고 뭐라 수근거렸다. 그러자 장송린의 얼굴에 일순간 곤혹스러운 빛이 흘렀다. 그는 제길할거하면서 음질을 쓰기까지 했다.

   《왜 저럽니까?... 무슨일이 생겼습니까?...》

   서일은 의문이 갈마들어 계화의 얼굴만 쳐다봤다.

   《누가 온다는구만. 선문도 없이 문득 찾아오니 좋잖아서 저러오.》

   《대체 어떤 사람이 오길래?...》

   서일은 의문이 더 짙게 갈마들었다.

   주인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한 무리의 괴한들이 대문을 활짝  열어재끼고 우루루 쓸어들었다. 조용하던 마당이 갑작스레 분주해졌다. 30여명가량되였는데 저마다 손에다 단총, 소총, 혹은 칼을 들었다. 서일은 어디의 어중이 떠중이들일까 생각했다가 인차 그 생각을 고치였다.

   《그렇지, 만주에는 토비가 많다더니 바로 이놈들이로구나!》

    모제르권총 두자루를 앞배에 찌른 목자사나운 녀석이 가랑이를 벌리고 서서 이쪽을 째려보며 씨벌이였다.

   《장장꾸이! 오늘은 웬 일입니까? 일본놈 앞잡이를 제 집에 들여놓고  먹이면서두 이 호삼이는 몰라보는거 아닌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일본놈 앞잡이라니. 사람을 잘못봤어. 이분들은 내 친구 좋은 사람이네. 트집은 왜?...이 삼촌이 조카를 몰라볼까, 원.》 

   장송린이 얼리는 투로 해석하면서 그의 앞으로 바싹 다가가 뭐라 귀속말을 몇마디 하더니 데리고 바른쪽 사랑채로 들어갔다. 하졸들도 따라서 들어갔다. 이윽고 주인이 되돌아와서 사과를 하는것이였다.

   《참 미안하게 됐소. 불청객이 뛰여들어 식미를 잃게해서.》  

    서일은 도리여 주인이 변을 당할까봐 걱정했다. 

   《저녀석은 이름이 호삼인데 본래 내집의 말먹이군이였었지. 건데 광서 32년에 저 웃마을 강촌의 유덕재아들놈허구 하찮은일로 싸움이 붙었다가 글쎄 저 우둔한 놈이 밸김에 그만 그 애를 돌로 쳐죽였단말이요. 살인죄는 대명이라 잡히면 낙자없이 죽는지라 내가 도망쳐라 시켰지유. 그래 지금은 작당을 해갖고 그짓을 하는건데 그놈의 류자(綹子)들은 의리도 모르는지 무리끼리 싸우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라 이번도 또 어느 무리와 맞다들자구 떠났다가 꿈자리 사나와 그만 제 굴로 되돌아가는 중이라는가.》

    장송린이 알려주어서야 서일도 계화도 웬 영문이라는걸 알게되였다. 

   《건데 주인집에 왔으면 공손해야지 꼴이 왜 저모양입니까?》

    계화가 말이 아니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색물감통에서 흰천을 꺼낼수야 없잖소. 례모를 알면 사람이 됐지.》

    장송린은 자기의 지난 처사를 후회하는 빛이였다.                 

   《악인에게는 그 나름대로 악인의 악마가 있지요. 저런 자가 의(義)를 지킬까. 장어른께서 궁리를 틀리게 한 것 같습니다.》 
   계화가 그쪽을 향해 던진 말이였다.

  밥을 다 먹자 밖에서 돼지멱따는 소리 들려왔다. 집주인이 그자들을 호궤(犒饋)하느라 잡는 모양이다.    

   둘은 도문서 산 지필묵(紙筆墨)을 한짐씩 다시지고 그곳을 인츰떠났다.

   그들은 부지런히 걸어 이틑날 정오무렵에야 덕원리마을에 이르렀다                             

                  이천만 동포야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총을 메고 칼을 잡아라

                  잃었던 내 조국과 너의 자유를

                  원쑤의 손에서 피로 찾아라

 

   마을안에서 노래소리 들려왔다. 한 사람이 아니였다. 여럿이 목청을 모아 같이부르는 합창이였다. 어딜까?... 학교쪽이였다. 누가 배워주는걸까?... 유감스럽게도 계화까지 포함해서 7명중 악보를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러니 필경 다른사람이 배워줄 것이다.

   계화와 서일이 학교에 이르러 보니 과연 박승익이도 심권이도 박기호도 현천묵이도 아니고 박호의 처 현숙서생도 아니였다. 명동학교와는 관계도 없는 두 외지인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약간 면목이 있었다. 보름전에 왕청을 떠나 용정으로 갈 때 길에서 마주쳤던 그 노래를 부르며 가던 두 젊은이였던 것이다.

  《서교장선생님, 용서하시오. 저번날 지나치면서도 몰라봤습니다.》

  《저희들은 교장선생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는 중입니다.》

   그들이 머리숙여 인사하고나서 하는 말이였다. 두사람 다 30살이 넘었다. 중키에 단단하게 생긴이는 성명이 채오(蔡五)고 그보다 키가 약간 더 큰이는 량현(梁玄)이였다. 채오는 성천반일의병대, 량현은 평산반일의병대에 있다가 8월에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을 한 것이다. 한즉 그들은 늦게까지 조국땅에서 항쟁을 해온 광영스러운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가 전투를 여러번 겪어 경험도 있는 지식분자였다.   

   그들은 덕원리에 발을 들여놓은 후로는 이홍래의 권고대로 다른 어디든 가지 않고 괴나리 보짐을 풀었다고 한다.   

  《여기로 오기를 잘했지. 그러잖아 이제 당금 중학반까지 설치하면 선생이 택부족이라서 적임자를 물색하고있던 참이요. 우리 함께 우선 중광단원들에게 글부터 가르치기오. 무식자가 많으니까. 계몽을 홀시할 수 없지.》

   서일은 그들을 기꺼이 중광단에 받아주었다.

   이때는 중국의 국세도 자못 복잡했다.

   1912년을 잡자 1월 1일, 손중산(孫中山ㅡ孫文)이 남경에다 임시정부를 세우고 대통령이 되어 中華民國을 세웠다. 한편 2월 12일에는 淸朝皇帝 부의(溥儀)가 퇴위하고 원세개(袁世凱)가 임시대총통으로 당선되였다.

   <<동남각성 장관은 일률로 도독이라 이르는바... 동삼성 총독을 동삼성도독으로 고치며... 길림, 흑룡강 순무를 또한 도독으로 고친다. 오로지 관명만을  바꿀 뿐 직권은 이전의 그대로하는바 소유의 각 성 문무속관은 옛공직을 그냥지켜야 한다. 관제영제같은 것은 더구나 고치지 않는다.>>

   이상은 3월 15일에 원세개가 내린 명령이였다.

   이리하여 조이손(趙爾巽)은 東三省 都督으로,  진소상(陳昭常)은 吉林都督으로 하루밤새에 각각 탈바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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