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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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14.
2011년 08월 19일 14시 52분  조회:5050  추천:1  작성자: 김송죽
 

   로씨아지역에서의 반일항쟁에는 두 개파가 있었다. 하나는 최봉준(崔鳳俊)을 중심으로 하는 계몽파(啓蒙派)로서 그들은 海潮新聞을 꾸리고 있었고 다른 한 파는 이범윤, 최재형, 안중근 등 의병파(義兵派)로서 무장투쟁을 감행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조선의 반일의병항쟁과 애국문화운동은 서로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유생출신의 반일의병장들이 애국문화운동을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를 취하였는가 하면 애국문화운동 지도층은 반일의병항쟁에 대하여 부정하면서 살육적인 행동을 즐기는것이라 욕설을 퍼부었던 것이다.

 
  《시대를 잘 모르고 동족을 스스로 멸망케 하는 행동이다. 일시적인 흥분에서 나온것이지 결코 진실로 나라를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다.》

   서일은 언젠가 이런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것은 소위 애국문화운동을 지휘한다는 이들이 유생출신의 반일의병장들을 비롯한 반일의병항쟁에 대하여 비난하고 공격하는 소리였다.

   (의병항쟁을 지지하지는 못할망정 왜 그따위 식으로 나오는걸가?)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서일은 어려서부터 제또래의 친구들과 같이 유생들의 의병항쟁은 불가피하며 옳은것이라고 여겼고 애국문화운동 역시 국민을 계몽시키는것인것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하기에 그는 량자간에 모순이 생겨 서로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안타까와했던 것이다.

   이제와서는 그 안타까움이 점차 풀리기시작한다. 1907년 8월이후터는 이들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애국문화운동가들이 이제는 반일의병항쟁을 지지하는 립장에 서고있었던 것이다.

   유진율이 서일을 향해 이젠 돌아가겠는데 하고싶은 말이 없는가고했다. 

  《있습니다. 아직도 인식못하고 문화운동지도자와 의병항쟁지도자간에 서로 반목질시하면 반일투쟁력량을 분산시키는건 물론 민족적 융합에 장애를 조성할 뿐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도 당장 거둬치우고 마음을 합쳐야 합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는것도, 민족이 왜놈의 식민지노예로 전락될 지경에 이른것도 불화가 제일 큰 원인이 아닌가봅니다. 이제는 단합해서 불화를 없애야 합니다. 꼭!》 

   이것은 워낙 <<海潮新聞>>의 책임자 최봉준과 하고싶은 말이였다. 그러나 그를 만나지 못해 이렇게라도 한마디하니 서일은 속이 좀 후련해지는것 같았다.

   유진율은 자기는 동감이라면서 울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자 서일은 이동호군수를 다시만났다. 군수는 그한테 지난일을 말했다.

   《그때 나는 경원서 모집된 30명을 데리고 떠나 장진으로 갔더랬지, 홍범도를 찾아서. 그때는 홍범도가 천지평골짜기에서 왜놈의 토벌대를 요정낸 후였어. 우리는 여러날 고생 끝에 갑산에 가서야 그를 겨우찾아 만날수가 있었지. 헌데 가고 보니 부대라는게 말이 아니더구만.》

   《아니, 왜서요?》 

   《대오안에서 적에게 투항하는 자가 나타나서. 천지평전투에서 또한번 녹아난 일본 토벌대놈들이 그 후로는 감히 산골짜기로 기어들지를 못했다나. 허지만두 그러구말 놈들이 아니였지. 아니구말구. 이번에는 전술을 바꾼거네. 생각해보게 무슨 전술이였겠는가구...회유기만책! <귀순자에게는 직업을 알선하여준다>느니 <처벌하지 않는다>느니 선전을 요란스럽게 했다네. 그래서 아닌게 아니라 총을 놓고 대오를 떠나버리는 자가 속출하게 된거여. 차도선이마저도 얼림에 넘어가 그만 귀순해버린게 아닌가. (물론 후에 다시반일항쟁을 나섰지만두)그래서 기염은 쑥 저락되고 만게지. 바로 이럴 때에 우리가 찾아갔던거야. <이거 반갑기가 눈물이 날 지경이네> 하면서 홍장군은 기뻐서 이루말을 못하데. 우리가 간 것이 대단한 힘이 된다나, 원 어쩌면 그지경에까지 들었느지!》

   《그래서요?》

   《홍장군은 대오를 다시 수습하고 전투준비를 갖추었지. 전투가 전만 더 치렬해지리란걸 예견하구는 자체로 화승총과 탄알을 만들기까지 했네. 그런판이였는데 날자까지 기억나, 5월 4일이였어. 북청수비대장 하세가와가 홍장군을 귀순시켜볼려구서 순사대를 도하리에 보낸거네. 그런걸 홍장군은 잡아서 싹 죽여버리고말았지. <네놈들이 나까지 꾀일려구, 어림도 없는 짓이다> 홍대장이 한 말이였네. 사람이 생긴 것 같이 억척보두야!》

   이동호군수는 처음부터 홍범도에 대한 인상은 좋았노라면서 평을 이렇게 했다. 그가 그의 의병진을 찾아간 것은 옳았던 것이다.

   홍범도를 귀순시키지 못하게 되자 일본군은 무력으로 항복시켜보자고 그가 활동하던 신풍리지방에 토벌력량을 집중하였다. 그리고는 전술도 바꾸어 종래와는 달리 여러 측면으로 공격했던것이다.

   《홍장군이야 적이 그럴줄을 알았지. 그래서... 우리는 재빨리 산릉선을 타고 장진방면으루 이동을 한거네. 그래놓으니 놈들은 그만 혼란에 빠지고말았지. 우리는 패를 갈라서 싸우기로 했던거네. 그래서 양혁진은 장진으로 가고 한영준은 평북(평안북도)의 후창으루 가버렸네. 그러기를 참으로 잘했지. 한영준이 의병 한패를 이끌고 후창에 나타나자 그곳의 농민과 포수들이 너도나도 달여와 참가해서 의병수가 잠간새에 400명이나 되였던거네.》

   이동호군수의 말이 맞다. 서일은 언젠가 신문에서 그런 소식보도를 본 기억이 났다. 한영준에 의한 반일의병대의 조직은 반일의병항쟁이 조선의 북쪽지방까지 확대발전되게 하였음에 자못 의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북청 덕사귀, 어두벅령, 언방골, 산고개전투...》

   이동호군수는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자기가 홍범도를 따라다니며 치룬 전투들을 댔다. 어느덧 싸움재간을 배운 그는 <<날으는 홍범도 뛰는 차도선>>이라면서 홍장군은 지략이 출중해 앞으로도 잘 싸워갈것이라고 장담했다.

   《허면 군수께서는 왜 그이를 따라 간도로 가시지 않고 연해주로는 건너오셨는가요?》

   《난 여기루 신예무기를 구할려구 온거네. 아직도 화승대를 들구 싸우는 대원이 있으니. 헌데 그놈의걸 맘과같이 제꺽 구할 수가 있어야지.》

   서일이 묻자 자기가 연해주로 오게 된 연유를 이같이 말하면서 그는 전만 썩 다르게 변해가고있는 로씨아의 형세를 촉기빠르게 감촉하고 있었다.

   한국인이 무기를 소지하고 이 지역에서 대일항전을 하게되니 로씨아정부는 이를 막으려고 조취를 취하고 있었다. 즉 외교를 통해 걸고드는 일본의 사촉에 못이겨 민간에서 무기의 거래를 금지시킴과 동시에 한국인에 대하여 려권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로씨아정부에 한국의병의 무장해제와 체포송환을 의뢰하기까지 한 상황이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연해주를 비롯한 로씨아에서의 의병항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만 군자금과 의군(義軍)의 모집은 그리 여의치 않거니와 순조롭지도 않았다.       

   《서선생은 그래 어쩔참이오?》

   《돌아가서 교학을 그냥해야지요. 장차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만 저도 군수님의 처지가 된다면 전 그때는 여기룬 안올겁니다. 가면 간도쪽으로 갈겁니다. 제생각에는 의병을 모집해도 훈련을 해도 자리를 잡자면 그쪽이 더 낳을 것 같습니다.》

   서일은 자신의 타산을 시원스레 내비치였다.

   군수는 생각을 잘했다면서 그때되면 자기는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리라 했다.

   김성을 다시만났다. 그는 요삼일간의 정황을 알아보느라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연추(煙秋)로 돌아온것다. 한번 혼빵나고서야 정신이 번쩍나는지 이제는 민둥머리를 감추느라 운두높은 중절모를 하나 얻어 쓰고 다녔다.

  《서선생님, 나는 어쩌면 좋을까요. 로씨아는 내가 생각던것과는 다릅니다. 왜선지 여기 사람들은 번연히 제 동포인줄을 알면서도 우호적으로 대할줄을 모릅니다. 차고 랭랭하기가...》

  《그럴수 맞아. 듣자니 여기서 이범윤이 의병을 새로 조직해갖고 두만강연안을 자주습격하니 일본수비대가 올까봐 은근히 두려워들한다오. 왜놈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겨기의 활동정황을 탐지하느라 밀정을 많이 들이미는 모양이야. 판이 이런판이니가 아마... 》

   서일이 생각나는대로 해석했다.

 

     <<일본을 반대하는 조선인 두목인 이범윤은...각 지방에서 무기 약 300정을 수집하여 사포대를 조직하고 대장이 되었다.>>

     <<이범윤은 망명자의 두목으로서 주민들을 선동하여 배일적 비밀결사대를 뭇고 운동비를 모집하여 무기를 사들이면서 기회를 보아 북부조선지방공격을 기도하고 있다>>

 

    이는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조선폭도토벌지》에 기록해놓은 글이다.

    그뿐이 아니였다. 지난해부터 올 8월사이 로씨아주차 일본영사와 함북도재임중인 일본관헌이 저들의 상부에 보고한 문헌중에도 이범윤의 동정행장(動靜行狀)을 기록한 것이 너무도다양한 것이다. 그와 그의 의병진은 이같이 적의 중점시각에 들어 감시를 받고있으니 밀정을 파견하는것도 그 어디보다도 많았던것이다.

    이것이 연해주의 상황이다. 하기에 유인석의 의병대는 오자마자 경각성을 각별히 높히였다. 그들이 김성을 체포한것도 실은 그가 원산항으로부터 미행하는 첩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차 분장도 의심스레했겠다, 누구를 원망할것도 없었다.

   김성은 로씨아에는 더 있고십지 않았다.

   그렇다면 만주로 보내는 수밖에. 서일은 이동호군수보고 그를 데리고 갈수 없겠는가고 청을 들었다.

  《데리고 가지. 헌데 서생티를 벗자면 말못할 고생을 겪어야 하는데...》

  《저는 싸우려고 나선 몸이니 각오가 돼있습니다. 믿으십시오.》

   김성은 장담했다.           

   이동호군수일행 몇사람은 그런대로 장총과 권총을 얼마가량 구해갖고 만주로 건너갔다. 물론 김성도 그 대오를 따라가버렸다.

   서일은 연해주에 온지 8일만에 안중근과 황병길을 만나게되였다. 그지간 아즈리, 시즈미, 사무와투리와 소왕령 등지를 나돌다가 의병본부가 있는 하선마구(哈什媽溝)로 되돌아온 그들은 거기서 이범윤으로부터 총명이 과인해 손만 잡아주면 전도가 유망할것 같은 젊은이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한번 만나보고푼 생각이 든건데 며칠전에 만주에서 무기를 구입하러 온 경원군의 원군수 이동호어른이 그들앞에서 또 서일의 사람됨을 자랑하는지라 일부러 보려고 연추(煙秋)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최재형선생댁의 웃방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산들바람이 들어왔다. 방안에 홀로앉아 <<海潮新聞>>을 열심스레 들여다보고있던 서일은 인기척에 고개를 번쩍 치켜 자기 앞에 문득 나타난 두 젊은이를 봤다. 둘다 중등키였는데 얼굴이 동글스럼한 청년은 자기를 황병길이라 소개했고 머리에 캪을 쓰고 팔자코수염을 기른 젊은이는 자기는 안응칠이라 자아소개를 했다. 

   《나역시 한때는 훈장질을 했소. 지금은 안응칠이 됐지만 전에는 안중근이라 불렀소. 서선생이 경원서 교편잡고있다는 소리를 이군수님께서 들어 알게되였소. 나이는 올해  28이라는것도. 그러니까 서선생은 1881년생이 겠지. 난 1879년도생이요. 생일은 구력으로 7월 10일이구.》

    안중근이 하는 말이였다.

   《내보다 두 살손우니 형님벌이 되는구만요. 4월초순에 경흥의 노서면에 있는 일본수비대를 야습한게 안형의 부대아니였소? 전번달 10일날 새벽에 신아산분경대를 습격한것도...듣자니 그때 두만강을 건너와 참전한 의병이 200명이나 되리라더구만.》

   그와 통성명을 하고나서 처음주고 받은 말이다.

   안중근은 자기가 한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는 서일을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음지었다. 

   황병길이 제 나이는 26살이라면서 자기도 한동안 교원노릇을 한 경력이 있노라했다. 서로가 처음보지만 하나도 서먹해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걸보고 인면이 여구(一面如舊)하다는 모양이다. 이건 아마도  의기상투(意氣相投)해서일 것이다.

   《안선생, 건데 이름은 왜서 고쳤습니까?》

   《안중근이라구 하면 어떤 사람은 듣기싫어하거든. 그 이름 그대로 갖구서야 누가 나를 믿고 따라주겠소. 그래 생각던 끝에 연해주에 와서는 안응칠이라구한거요. 그건 나의 애명이요. 솔직히 말해 여기 사람들한테만은 인상을 좋게 심어주자고 맘먹었던거요. 》

   안중근은 말하고 웃었다.

   <<안중근이 어덯다구서?>>

   서일은 혼자소리로 뇌이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려서 경원의 건달녀석한테 멋없이 놀림당하고나서 밸을 못이여 제 이름을 고쳐버렸던 일을 되새겼다.

   한데 그가 애명을 버리고 이름을 서일이라 지은것과 안중근이 되돌아가 애명을 쓰게 된 사정은 아주달랐다.

   안중근이란 이름은 그가 국내에서 애국문화운동을 할 때 부르던것으로서 일경에 많이 알려졌으며 또한 반일의병장들은 더 기억하고있었다. 로씨아로 건너올 때만도 의병장들은 애국문화운동에 대하여 좋지 않게 여기고 있었으므로 그 이름을 가지고는 의병장들과 접촉하기가 매우불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애명을 다시쓰게 된 그였다.

   안중근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의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로 유명한 황해도 해주 수양산밑 광석천변에 있는 옛집에서 진사(進士) 안태훈(安泰勳)의 장남으로 태여났다. 등에 박힌 북두칠성과 비슷한 흑점 때문에 아명을 응칠(應七)이라 명명하였다.

   안씨가문은 지방의 무반호족(武班豪族)으로 해주에 세거(世居)하여 명망과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중근의 조부는 일찍이 진해현감으로 있으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덕망이 높았다. 동학란(東學亂)때 18세나는 김창수(김구)라는 총각 접장이 포군부대를 거느리고 황해도에 출몰하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관군(官軍)을 괴롭혔고, 산포군(山砲軍)의 소년장군 안중군은 신동의 대장이라는 용명을 떨쳤다. 후에 소년 안중근은 아버지의 배려로 김창수를 포용(包容)하였는바 두 소년은 장차 조국의 운명을 걸머지려는 혈맹(血盟)을 맺기에 이르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나이 청년시기에 이르러 안중근은 천주교신부가 교육과 계몽으로 실력배양에 힘쓰라는 권고에 의하여 진남포교회의 프랑스선교사가 경영하던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자력으로 인수하여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러다 얼마지나지 않아 평양에서 열린 국채상환(國債償還) 대강연대회에 갔다가 자기를 비웃는 일본사람을 빈사상태에 이르도록 뚜드려 팬 일로 해서 경찰이 체포하려기에 몸을 피했던것이다. 그는 로싸아로 탈출을 목적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동만에 있는 남양평(南陽坪) 동포부락에서 얼마동안 교육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용정국자가(龍井局子街)를 경유하여 마침내 목적지인 울라디보스톡에 도착하여 신한촌(新韓村) 이치권(李致權)댁에 여장을 풀고 각계의 명사방문으로 일과를 삼았던것이다.      

    그때 회천(回天)의 경륜을 가진 이범윤을 만나보니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나 소극적이였다. 하여 안중근은 일대 용단을 내려 이범윤을 설득하였다. 성패리둔(成敗利鈍)을 헤아리지 말고 당장 의로운 청년을 모집하여 국내로 진격하여 겨례의 사기를 북돋아주자는 안중근의 열정에 넘치는 뜻이 감동을 주어 이범윤은 다시금 의병항쟁을 서둘렀다.

    일은 되어갔다. 안중근, 엄인섭, 김기룡 등의 꾸주한 노력에 의하여 마침내 1908년초에 300명가량의 의병대를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기간 황병길은 무기를 구입하느라 고생을 많이했다.  

   《왜놈이 침략하지 않았더면 그런 고생은 없었을 것을.》

    서일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는 문약으로 약소민족이 돼가면서도 달덕을 구하려다 결국은 이지경에 이른게 아니겠습니까.》

    황병길이 회심(悔心)에 잠겨 하는 소리였다.

   《고륜지해(苦輪之海)라고 고뇌가 끊임없이 운전하는 이 사악한 세상에 달덕(達德)이 어디있어 그걸찾는단말이오. 현실적이 못되는 그따위 환상은 언녕버렸어야 해. 열강이 득세를 부리는 세계를 똑바로 보고 연구했다면 제 민족이 살아나갈 길을 언녕 모색해냈을거야. 상무(尙武)의 기풍을 어느만큼이라도 수립했어도 쇠약이 이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을! 남의 침탈의 대상으로는 되지 않았을 것을! 병길이, 안그래?》

   《그렇지요. 서형의 말씀이 들어맞습니다.》 

   《론어에도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림에 충족한 병력이 있어야한다고 했거늘 우선 외침을 막기위해서도 국병은 잘키우고 국방은 잘 건설해야 할게 아니요. 하지만 우리는 여직 어떻게 했는가 좀 보란말이요. 원...》

    안중근은 문약으로 국방마저 강화할 것을 잊었던 과거를 원망했다.

   《도포입고 유건쓰고 당나귀타고 추풍월색이나 읊조리면 그게 지고지상인줄로 알고 만세를 선비나라로 유지하려했으니 한심했지요.》

   서일은 자국민의 부족점을 이만큼 비난해놓고 말머리를 돌렸다.

   《지금 세상이 돌아가고있는 꼴을 좀 보시오. 렬강들은 앞장을 다투어 약소종족을 정복하고 소멸하는 것을 마치도 강대국사람들이 다해야 할 의무로 간주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독재가 생겨나고 인권유린이 생겨나며 따라서 그것은 점점 극성을 부리는 정도에 이르는겁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에 와서 강행하고있는 통감정치를 보시오. 그것이 바로 표본이지요.》

   《그렇소. 과연 면바로 보아냈소! 일본은 정책을 변화사킨다고하나 그것은 공언에 지나지 않는거요. 누가 그자들을 믿을가, 5역신7역신놈들을 내놓고서는. 세월이 갈수록 원한만 쌓여 뼈속에 사무치게 되니 이 원쑤는 만세에 가서도 꼭 갚아야 할것이요.》

   안중근은 부르짖고나서 통감 이또오 히호부미에 대해서 말했다.

  《일본에서 가장 유력한 인사, 가장 대단한 권력가는 아마 이또오공작일거요. 그런자가 통감이 되여 한국에 와서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해놓은 것이 뭔가를 보란말이요. 병력을 사용하여 5개조와 7개조의 협약을 강제로 성립시키고 한국의 상하 국민을 기만한 것 밖에는. 오늘도 반일의 기치를 든 의병들은 계속 싸울것이며 적탄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질것이요. 야수와도 같이 잔인무도한 그자들의 손에 학살된 무고한 백성은 또한 얼마일가?...》

   《이또오 그자야말로 침략의 괴수로서 보살의 탈을 쓴 살인마이지요. 힘으로 남을 억누르면 자신이 위태하다는 걸 알련만...》

   《머리가 뜨겁도록 자랑할 궁리만 하다보니 자신의 목숨을 돌볼 새나 있겠소. 한국인은 상하구별이 없이 행복해 하며 만족해 한다고 세상에 공포한것만 보오. 얼마나 뻔뻔스럽고 한심한 거짓말쟁인가구.》

    안중근의 말이였다.

    그들은 어느덧 화제를 스티븐즈의 죽음에로 돌리였다. 그자는 온 2천만 국민이 개 돼지만도 못하게 여기면서 죽도록 미워하고 저주하고 지어는 죽이려고까지 하는 역적 이완용을 충신이라면서 이또오와 같은 통감이 있으니 한국은 큰 행복이라니 동양의 대행이라니 나발불었으니 워낙 죽자고 환장을 한것이라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티븐즈를 사살하려고 총을 쏜 장인환과 전명운의 의거를 찬양했고 지금 미국, 하와이, 멕시코, 만주, 중국, 국내 각지에서 두사람을 구출하기 위한 기부금모집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있는데 대해서도 찬양하고 지지하는 태도로 운운했다. 

   《스티븐즈를 쏘아죽인 것은 그 사람을 죽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원쑤를 갚으려 하였을 뿐입니다. 그러한즉  인환 점영운 이 두 사람의 재판은 개인문제가 아니오, 우리 한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건 재판인겁니다.》

    서일의 말이였다.     

   《나라의 원쑤를 갚았다, 한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건 재판이다... 과연 옳은 말 옳은 평이요!》

   안중근은 흔쾌히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또오 히로부미를 보아라 유능한 그 정치가는 늙었어도 꾀가 많아 남의 나라를 멸망시키느라 발분망식(發憤忘食)을 하고있지 않느냐, 대체 어떻게 생긴 령감인지 그 몰골을 한번 보기라도했으면 좋겠다.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하고도 그래 제 수명까지 마음편하게 살수있을까 했다.

   이 순간 안중근의 눈에서는 경멸과 증오의 불길이 황황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원쑤에게 죽음을 주려고 맹세하는 사람에게서만이 잇을수 있는 것이였다.

   서일은 이 시각 그와 황병길의 앞에서 나는 이또오통감을 보았다, 그는 몰골이 어떻게 생긴 백두옹이더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뜻밖에 본것이라 경악(驚愕)하기만했던 일순간이였다. 말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입을 봉하고말았다.

   (말해봤자 쓸모도 없는 것을. 이젠 면암선생이나 다시배알하고 돌아가자. 첫날에 그저 간단히 문안만 올렸으니까.)

   유린석은 지난해에 한국군대가 해산되자 전국의 각 창의소(倡義所)에 거족적인 항전의 전개와 지구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종래의 체험에 비추어 외국의 지원없이는 일제와의  항쟁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국외의 망명기지로는 만주보다 로씨아가 기지구축도 그렇고 국내의병에게 무기지원도 그렇고 본토수복잔전을 전개함에도 최상의 길이라 판단하고 7월에 막료인 임정빈(任正彬), 이진용(李鎭龍)등과 함께 부하 60여명을 대동하고 원산항에서 연해주로 출발하였던 것이다.

   유린석은 연추(煙秋)에 본거를 두고 우선 부하들의 취업, 생계를 마련했고 최재형, 이위종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동의회(同議會) 회장에 추대되면서 이를 창의회(彰議會)로 재조직하여 의병을 규합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것이다.

  《젊은이, 연해주 구경이 어떤가?》

   서일을 다시보자 그가 물어보는 말이였다.

  《마을 몇 개를 돌아봤을 뿐이니 구경이야 시원치 않습니다만 유진율기자와 최선생어른으로부터 이곳의 상황을 상세히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구 어제는 안응칠과 황병길을 만나 하루를 보냈습니다. 고향의 이동호군수님도 여기서 만나보구요. 연해주에 계시는 분이 나닙니다. 동만의 홍범도부대에 계시지요. 무기를 구입하러 오셨길래 마침 만날 수 있은겁니다.》

   《그분은 군수자리에 있으면서 의거를 했다는 말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올봄에 고향서 30명을 모집해갖고 나가셨습니다. 저의 학생 9명도 그분이 데리고요.》

   서일은 제자 9명중 3명은 전사했고 가족에도 알리지 않았으니 이제 돌아가면 아마도 자기가 뒷처리를 해야겠다고 했다. 유린석의 병색이 도는 얼굴에 그늘이 짙어지고 있었다. 풍상많은 세월속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제자의병들을 생각하는모양이다. 서일은 머리에 얹은 상투를 지켜주느라 검은 유건을 단정히 쓰고있는 이 66세로인의 살결적은 근엄한 몰골을 바라보면서 전에 개화파(開化派)면 몰잡아 적으로 보고 비난해 온 완고한 유생종장(儒生宗匠)이 지금은 심기가 어떻게 돌아가고있을가 속으로 점쳐보았다.

   유명한 것은 10여년전 그가 자기의 의병진을 인솔하고 만주 료동(楚山阿夷城)에 이동하면서 내린 격문 <<再檄百官文>>이다.

   

 ...販君賣國之徒 接跡起於斯 稱爲萬國開化 而締結世讎之狡夷 輾轉搆禍 弑殺一國之母后 辰我至尊之君 上驅我先王赤子而禽獸焉 汚我先正制作而糞壤焉...

    

    이 글에서 유린석은 개화파를 임금을 팔고 나라를 팔아먹는 무리라고 규정해놓고는 그들이 만국개화를 사칭하여 천하에 홀로 남아있는 례의지국인 한국을 패륜(悖倫)의 나라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그들이 지은 죄악 세가지를 들었다. 즉 오랜 제도를 더럽힌 죄, 례의를 짓밟은 죄, 국모를 죽게 한 죄. 그리고는 지금 조국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감은 기필코 원쑤를 갚고 동방의 례의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끝까지 이역에서 우리의 옷을 입고 우리의 옛제도를 지키다 죽어서 귀국할 것이라했다.

   그는 강한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소신을 밝히면서 특히 일제보다 구라파의 문물을 수용하여 근대화하려는 개화파를 매국노로 단정하여 강력히 성토함과 동시에 생명이 다할 때 까지 투쟁할 것을 천명하였던것이다.   

   (그대로만 나가서는 안된다. 변화하는 형세에 보조를 맞춰야한다. 그럴줄을 모르고 대립을 고집하면 되려 역행자란 지탄속에서 자멸하고말것이다.)    

   애국문화운동을 개화사상이 이끌고 있었다. 서일은 유린석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조심스레 충고의 말 한마디를 꺼냈다. 

  《일개 무명인이 이러면 외람된 소행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엽줍고싶은 것이 하나 있어서 다시뵙습니다. 보시다싶히 형세는 부단히 변하고있습니다. 지금은 전만 달라 대세가 단합의 길을 바라고있습니다. 의례 그래얍지요. 의병항쟁과 애국문화운동이 본래 동일한 목적인즉 계속대결하면 자상뿐이니 종식하고 이제는 통합의 길로 나아감이 지당한줄로 압니다.》

   유린석은 곰곰히 듣더니 자기의 태도를 표명했다.

  《젊은의 충언이 사심없고 일리가 있는건데 외람될거 뭐겠는가. 그러잖아 나도 머리가 그리로 돌아 생각을 많이 해본걸세... 어제 바로 우리는 회의를 개최하고 토론을 했었네. 각자 립장과 태도를 모을때가 돼서. 내가 말했네. <지금 소위 유신혁명지당이 내외에 가득차서 세력을 가지고있으니 사세상 그들과 군사행동을 같이하지 않을수 없다>고 말이네.》  

   그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니 서일은 안개가 걷히듯 흐릿하던 속이 개운해지기시작했다.

   이틑날 그는 연해주를 떠나 고향에 돌아왔다. 뜻깊은 쾌속려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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