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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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ㅡ제2부 30.
2011년 08월 23일 15시 27분  조회:5102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30.

   산야에 록음이 우거지고 훈풍이 향기를 실러오는 가절이다. 덕원리는 생기발랄한 청년들로 이루어진 중광단이 있어서 올해의 단오를 례년보다 더 즐겁게 보냈다. 남쪽에서는 이때 한창 가을보리를 베고 그 땅을 갈아번지며 벼모를 십느라 땀을 흘리려만 여기는 달랐다. 함북도와 거의 비슷할가, 동만에서도 봄파종을 끝마친 농한기라 허리를 편 농군들은 마음을 푹 놓고 이 천중가절(天中佳節)을 중광단원들과 함께 즐겁게 쇠였다.

   운동대회를 열었다. 단거리달리기, 바동받고 달리기, 물동이이고 달리기. 널뛰기, 그네, 씨름... 무려 20여가지의 종목이나되였다. 

   소를 잡아 화식을 집체로 했고 밤에는 우등불을 피워놓고 오래도록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였다.

   희연이가 마을의 부녀들 중에서는 그네를 제일 높이 잘 뛰여 1등을 했다.

   머리얹고 시집 온지 어언 14년, 희연이는 그지간 시부모아닌 년로하신 시할아버지, 시할머니를 모시면서도 군소리 한마디 없이 살림을 착실히 잘해왔거니와 웃분을 본받아 작식솜씨역시 자랑할만큼 뛰여났다. 그가 갖고 온 두권의 책 “규합총서(閨閤叢書)”와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은 덕원리 본토배기 최농부가 갖고있는 이지함(李之菡)의 “토정비결(土亭秘訣)”모양로 온 마을 사람들이 즐겨보고 아끼주는 보배였다. 희연이는 자기가 고향서부터 갖고 온 그 두권의 내용을 거의 암송한거나답지않은지라 왕청에 와서도 여기 덕원리는 물론 다른 마을에 까지 떠받들려 다니면서 강연을 하여 동포가정들의 어려움을 많이 풀어주었다.

   이해에 딸 죽청이는 10살이고 아들 윤제는 6살이였는데 그들 오누이는 마을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가탈없이 잘자랏고 서일의 큰할아버지와 큰할머니 두분 다 80고령을 넘겼지만 아직 큰병없이 건재했다...

   단오가 지나 사흘만에 화룡 북지사에서 젊은 사람 둘이 편지 한통을 가지고 왕청으로 서일을 찾아왔다. 편지는 강우가 쓴 것인데 내용인즉은 예정대로 음력 5월 13일에 청호에다 대종교총본사를 권설하는 의식을 거행하게 되니 왕청일대 교인책임자들이 대례에 참석하는 일은 관게치말고 본인만은 상론할 일이 있으니 대례전 며칠 미리와달라는것이였다.

   이것은 대종교인 모두가 가장 륭중히 기념해야 할 희사였다.

   홍암대종사가 무엇 때문에 대종교총본사를 본국에 두지 않고 만주의 화룡현 삼도구 청호에다 권설하는가? 라철이 말해서 서일은 그 원인을 너무나잘 알고 있었다.

   첫째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독립운동의 책원지가 만주, 중국본토와 로씨아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포교상 리로운 점이 있기 때문이였다.

   국조 단군이 백두산에서 통치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종교의 총본사를 백두산에 두는 것이 민족종교로서 정당하거니와 배달민족의 발상지인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다면 조선이란 제한된 범위를 벗어나 세계적으로 널리 포교를 함에도 유리할것이였다.

   서일은  묵, 계화, 최익항, 채오, 량현 등과 함께 말을 타고 떠나 대례 3일전에 화룡현 청호에 도착했다.

   아직도 흰눈을 떠인 백두산의 장엄한 설경이 바라보인다.

   하지만 산아래의 여기는 여름철이 다가오는지라 훈훈한 날씨였다.

   소식이 새여나갔는지 흰옷을 차려입은 원근의 교도들이 미리부터 하나 둘,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여 조용하던 청호는 벌써부터 흥성흥성 명절기분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늘이 알아주는지 명랑청쾌한 날씨였다. 홍암대종사 라철도 날씨처럼 밝은 얼굴로 그들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교우들이 모두 반겨주었다. 남만, 서만, 북만은 물론이고 북경, 남경, 상해를 비롯한 중국내지와 로씨아와 조선...방방곡곡에서 대종교의 주요인물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었다.

   《중광단 사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문안인사가 끝나자 라철이 서일을 조용히 따로 불러서 물어보는 말이였다.

   《무기가 불비한 정황이다보니 지금은 그저 교육에 주력하고있을뿐입니다. 하지만 장차는 힘이 닿는대로 무기구입에 력점을 둘 예산입니다.》

    <<오! 그래?... >>

   《기본단원이 군인하고 의병입니다. 원래 처음부터 모집대상을 그들로 하고 착수한거니 거의가 그렇게 된게지요.》  

    서일의 말 끝에 계화가 동을 달았다.

   《나도 근건 알고있소.》

   《대종사님, 생각같아서는 전민을 무장시키고싶습니다만은....》

   서일의 이 말에 홍암대종사는 눈을 치켜들고 여겨본다. 그 표정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란 말이냐 하고 묻고 있었다.

   《저의 생각은 우리 대교의 교도들만으로도 지금의 의식으로는 부르면 모두가 두말없이 향응할 것 같아서 해보는 소립니다.》

   《어디 계속말해보게.》

   《<위지> 부여전에 부여사람들은 <집집마다 갑옷을 갔추었다>고 했습니다. 고구려족은 부여족과 같은 종족으로서 언어도 법제도 풍속도 같았다는 <후한서>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사람들도 집집마다 무기를 갖추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근거가 되는군. 그래서?》

   《이는 고구려사람들은 군사에 복무할 준비를 항시적으로 하고있었음을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집집마다 무기를 갖추고있었을뿐만 아니라 그것을 능숙하게 다룰수 있겠끔 일상적인 훈련을 했을거고 그래서 일단 전쟁이 생기면 나가서 용감히 싸울수 있는 정신적인 준비를 하였다 그겁니다.》

   《서단장의 주의주장인즉은 우리 교도들만으로도 상무의 기풍을 수립하자 그겁니다.》

   계화가 서일의 말에 해석을 가했다.

   《그렇습니다. 힘없는 민족은 강자에게 먹히우기 마련이고 또 이런 처지가 된다면 주위 어느 나라도 도와주지 않는 것이 랭혹한 국제정치인것입니다.》

   서일은 자기의 인식을 기탄없이 피력했다.

   《어 그래, 허허허...》

   홍암대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련신웃었다. 이미 망국노가 된 민족일진대 오로지 육탄혈전만이 구국과 독립을 쟁취하는 길임을 진리로 받아들인 서일의 그 깨달음과 굳은 의지를 보고 그는 기뻐했다. 리론이 아무리 좋은들 구국항쟁을 입으로만 부르짖어서야 날아오는 총알을 막을까?... 단지 교육과 종교만으로는 독립운동을 완수할 수도 없음을 깨닫고있는 그였다.

   강우상교(尙敎)가 다가와 먼데서 온 분들이 대종사를 뵈옵자고 기다리고있다고 알리였다. 머리가 반백이 된 강우는 이제 곧 총본사전리(總本司 總典理)에 오를 사람이였다.

   홍암대종사는 서일과 “오대종지강연”을 써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가 가자 강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묵이와 박찬익은 왜서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일은 그들은 상해에서 오신분들을 만나야겠다면서 어디론가 가더라고 알려주었다.

   강우가 다시입을 열었다.

  《서선생은 하냥 웃는 낯이구려! 대종사의 얼굴도 몹시 밝아진걸 보니 여기서 무슨 좋은 얘기라도 있었던모양이지?》

  《중광단의 사정을 물으십디다. 그래서 제가 소개를 해드렸지요... 무장항일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우리 대종교의 교도들만이라도 상무의 기풍을 세워야겠다는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오, 그랬소! 그래야지! 한얼께서는 우리보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들이밀라고 안했소. 미친개와 승냥이한테는 몽둥이나 렵총이 제격이지.》

   귀맛당기는 말이였다.

   강우역시 무장항일만이 독립운동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이라면서 중광단이 장차 완정한 무장단체로 성장하고 따라서 대종교는 그의 든든한 후원이 되어야 하거니와 교도전체가 항일구국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철옹성같이 뭉쳐 일어나야 할 것이라했다.

   서일은 자기뜻과 같아 그 지지에 감사함을 표시했다.

   청파호에 교도들의 집자(集資)로 總本司와 古經閣이 일어섰다. 비록 그리 장엄하게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모양만은 갖추느라 한 건물이였다.

   음력 5월 13일(서력 6월 6일), 숙연한 기분속에서 총본사와 고경각권설의식이 거행되였다. 그러면서 따라서 청파호에 동도본사(東道本司)를 설치하는 한편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도교구와 외도교계를 설정반포하기도하였다.

   

   동도교구ㅡ 동만일대와 로씨아 연해주지방까지.

                   책임자: 서   일.

   서도교구ㅡ 남만으로부터 중국 산해관까지.

                   책임자: 신규식, 이동녕.

   남도교구ㅡ 한국전역.

                   책임자: 강   우.

   북도교구ㅡ 북만일대.

                   책임자: 이상설.

   외도교구ㅡ 중국, 일본 및 구미지방.

                   (책이자 미정)

   이때의 대종교 간부들은 전부가 독립혁명운동의 수령급 지도자로서 중견인물이였고 또한 기둥이였다. 그들은 누나 다 구국항쟁을 위한 준비를 활발히 하고 있었다.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은 1912년 54세에 북경, 천진, 상해, 남경과 광동 등지를 순력하여 망명지사와 중국인지사들을 만나 조국광복운동에 대한 방책을 숙의(熟議)하였거니와 북경에 있는 조성환의 집에 머므르다가 일시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으나 인차 풀려나와 그해의 7월에 신규식 등과 함께 동주공제(同舟共濟)한다는 뜻에서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고 총재로 추대되였다. 그 이듬해는 신건식(申健植), 김용호(金瑢浩), 임상순(任相淳) 등과 함께 상해로 가서 프랑스조계에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세우고 청년지사양성에 정력을 몰부었다. 그러다가 이해(1914)의 5월에는 홍콩에 가서 한문잡지(漢文雜誌) “香江”의 편집책임을 지고 원세개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다가 취조를 당하기도하였다.

    대원군집정 시대에 한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인물인 원세개는 신해혁명후 중화민국의 대통령까지 되자 중국국민혁명의 원로 송교인(宋敎仁) 등 지사 여럿을 비겁한 방법으로 암살하고는 한창 일본의 간계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로씨아에 건너갔던 이상설은 지난해에 어느 한 사이비 동립운동자의 모략과 방해로 말미암아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하바롭스크로 가면서 구슬픈 시를 남기였다.

 

                  나라를 잃어 나라를 울고

                  집을 떠나 집을 울고

                  이제 몸둘 곳 조차 없어 몸을 우노라.

                                    

   올해 그는 보스타빈(BOSTABIN)의 량해를 얻어 이동녕(李東寧), 이동휘(李東輝), 정재관(鄭在寬) 등과 함께 의병모집, 사관학교 건립 등을 추진하려고 망국후 최초의 망명정부의 이름을 전할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하고 자신은 정통령(正統領)으로 추대되였다. 그러나 이제는 만주로 들어와 북도교구를 책임지고 사업해야 할 것이다.              

   신채호와 조완구(趙琬九)를 만났다. 신채호는 전번에 서일을 보러 일부러 왕청까지 왔다간 일을 상기하면서 대종교의 민중항일단체로서 중광단이 발족한 것은 배달민족의 력사에 찬란히 기재될 일대희사라 하면서 앞으로 강대한 무장력으로 키울 것을 기대했다. 그도 조선의 동립운동은 오로지 육탄혈전으로만이 이룩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신채호는 병에 시달림받다가 지난해 신규식의 초청을 받고 상해에 가 동제사조직에 참가하는 한편 박은식, 문일평, 조소앙과 같이 박달학원을 세워 교포청년 교육에 힘쓰다가 윤세복선생의 초청을 받고 봉천  회인현에 가 거기에 있는 동창학교에서 교수를 하고있는데 이제 력사저적들을 하나하나 집필할 계획이라 했다.

  《나는 만주로 오면서 독립군양성기지도 찾을 겸 백두산을 올라보고 이어서 광개토왕릉을 가보았는데 저 야만스럽고 무지한 토인들 손에 허다한 사적들이 무수히 형편없이 파괴되고있더란말이요. 원 치가 떨려서...》

   그는 몹시 격분하면서 장차 발해국의 사적지도 답사하고 그에 대한 책을 쓰리라 했다.

   서울태생인 조완구는 출생일이 서일보다 며칠이 늦은 동갑이였다. 하지만 서일보다 한해먼저 입교했거니와 총명과 재질이 있어서 그사이 참교, 지교를 걸쳐 올해는 상교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규칙초안위원(規則草案委員)이 되어 그사이 교의 중대한 사업들을 많이한 것이다.

   통화현 제6구 합니하로 옮겨간 신흥무관학교는 그 발전이 매우 빠른바 각처에서 애국청장년들이 많이 모여들어 합니하에서는 전부 수용할 수 없게 되어 유하현 제3구 고산자 대두자촌 넓은 곳을 선정하고 교사를 크게 신축하여 초등과 중등으로 나누어 합니하에서는 초등군사반 3개월간 일반훈련과 6개월간 후보훈련을 하였고 고산자 대두자촌에서는 고등군사반으로 2년제 고급간부를 양성하고 있었다.

   김동삼도 통화현내 심산절역에서 계속 독립투사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홍범도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장백(長白), 무송(撫松) 두현의 삼림지대를 근거로 전에 했던 산포수생활을 다시 영위하면서 포수단을 조직하여 이진룡(李鎭龍), 조맹선(趙孟善) 등 의병장과 윤세복선생 등 망명지사들과 제휴하여 재류동포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국내와 연락하여 애국청년소집과 독립군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서일은 이번 기회에도 홍범도를 보지 못했다. 련락이 미치지 못해서 오지 못한것이라 한다.  

   서일은 계화와 함께 자기가 세운 청일학교를 가보았다. 김영숙과 박기호 부부는 고맙게도 학교를 잘 꾸려가고 있었다.

   청파호에 총본사와 고경각을 권설하면서 이날 동도본사도 같이 세우게 되니 동도교구의 책임자인 서일이 이제는 부득불 이곳으로 옮겨와서 사업해야 할 것이다.

   서일은 사흘만에 청파호를 떠나 왕청으로 향했다. 매양 올때의 그 사람 게화,  묵, 최익항, 채오, 량현 등 여섯이였다. 그들은 말을 타고왔으니 갈때도 말을 타고가야했다. 아직은 기차도 자동차도 없는 고장이라 제일 편한 것이 그래도 말을 타는것이였다.

    계화가 서일을 향해 물었다. 

   《서선생이 이제는 동도교구 책임자로 부임됐으니 어찌하려오? 가족이 다 그리로 이사를 가야하는거요? 아니면...》

   《이사를 다니느라할거 뭡니까. 그런 고생이야 안해도 되지. 생각해보시오 집이 덕원리에 있어도 이젠 내가 전문 포교를 나다녀야 하는거고 청파호에 간다해도 의연히 포교를 나다닐게 아닙니까. 그러니 집이 어디에 있건 그게 나하고 무슨 큰 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둘러치나 메치나, 엎어치나 대배치나 매한가지지요. 안그렇습니까?》

   《그래 맞았어.》

    묵이도 최익항이도 그 말이 맞다면서 웃었다.

   서일은 실은 잠만 제 집에서 잘 뿐이였지 집일은 전혀 무관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 그는 그럴 정력도 없었던것이다. 그러니 년로하신 큰할아버지께서 가정을 떠맡고는 손부를 데리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힘들고 무거운 일들은 “로인회”의 분들이 많이 도와주군했다.

   《서단장! 서선생님! 집일은 우리가 도울테니 제발 대교와 중관단일만 잘해주시오. 부탁이우다.》

   모두들 이랬다. 한데 이제는 중광단일에는 정력이 덜가게 되였다. 자기가 맡은 교구를 책임져야하니까. 이제는 시교당을 세우기 위해서도 교포가 사는 곳을 찾아내여 전보다 더 수없이 많이 다녀야한다. 교도를 발전시키고 마을과 구역에 교조직을 내오고 때로는 지어 교도들의 이난문제를 관여하고 그를 풀어주기도 해야하고... 허다한 이들이 그가 와서 하기를 기다리고있는것이다. 

 

   연길에 들려 점심을 먹고 다시떠난 일행은 얼마가지 않아 마반산에서 공교롭게도 한떼의 토비무리와 마주쳤다. 30여명 잘되는 마적이였다.

   개개비새가 개개개 시끄럽게 울다가 뚝 그치고 풀숲에 숨었던 메추리라기들이 놀래여 요란스레 울며 날아났다. 고종명(考終命)은 하지 않더라도 값없이 이따위 놈들 손에는 죽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피뜩들었거니와 정작 이런 곤색을 당하고 보니 서일도 일시 방도가 나지를 않았다.  

   앞장선 자가 길을 막고 물었다. 

  《선마만?》

   토비들의 말인데 너희들은 누구냐의 뜻이였다. 

  《빌어먹을 오소리 잡놈들!》

    묵이 그자를 마주보며 쑹얼쑹얼 뇌까리는 것을 서일이 마침 곁에서 제발 참으라고 귀띔했다. 담이 커서 배짱부린들 무슨 소용있는가. 

  《쌰마!》

   토비괴수가 나서면서 호통쳤다.

   (저자식이 면목있구나!)

   서일은 그자의 감사나운 몰골과 앞배에 찌른 두자루의 모제르권총을 보고 석현 장지주집의 머슴질했던 자임을 제꺽알아보았다. 그자는 아직 서일을 발견못한 꼴이다. 형세는 자못 위태로왔다.

   다른 녀석들은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당장 쏠 태세를 취했다.

   《말을 빼앗자는 수작이구만. 내리라는데 내려야지.》

   서일이 먼저내리자 잇따라 모두들 말잔등에서 내리는데 채오만은 왜선지 얼른 내릴 념을 하지 않고  꾸물댔다. 그러자 먼저 누구냐고 묻던 자가 말을 달려 지나가면서 그를 탁 낚아채여 땅바닥에 메치였다.

   다른 한 녀석은 서일이 어깨에 가로멘 가죽가방을 보더니 그 속에 돈이  들어있는줄로 알았던지 빼앗았다.

   《덩덩!... 게이 니먼 장꾸이!》(잠간만...너들의 주인께 주거라)

   서일이 매양짓는 웃음을 얼굴에 피우더니 가방속에서 목책을 꺼내여 연필을 끄적이여 넙적글 석자를 얼른 쓴 다음 쭉 찢어 그 녀석을 주었다.

   두목녀석은 이제야 한쪽눈알이 유별나게 큰 서일을 알아보고는 코를 벌름거렸다. 그자는 종이장을 받기는했어도 글을 모르는 판무식쟁인지라 거이게 오려진 것을 다른 녀석에게 물어서 알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두눈을 씀벅거리였다. 그러다가 그는 졸개들을 향해 총을 거두라 명령하고는 더 건드리지 않고 그만 가버렸다.    

   몸에 지닌 피천 한잎도 빼앗아내지 않았다.

   이쪽은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다시 마상에 올랐다.

   《아니 서단장! 거 대체 무슨 요술을 부렸길래 저놈들이 행패질을 그만뒀습니니까?》

   최익항이 매우 신기하게 여겼던지 경아한 낯색을 지으며 물었다.

   《가만있자, 저놈들이 우리가 석현서 만났던 그 마적이 아닐가?》

   계화는 이제야 머리가 도는 모양이다.

   《옳습니다. 바로 그놈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눈갖구두 잘봐뒀네! 그래서 웃엇구만? 건데 종이에 써준건 뭐요?》

   《張松麟입니다.》

   《오, 그렇지! 그놈은 제 주인이 우릴 좋은 친구라며 두둔했던 일을  생각하고 행패질을 그만둔게로구만! 하하하...》

   게화가 웃음을 텃쳤다.

   다른이들도 이제야 어떻게 된 요술인걸 알고는 강골있는 서일의 기발한 림기응변술에 탄복했다. 이일은 훗날 보태고 다듬고해서 한 켤레의 재미있는 야화로  돼버렸다....

   묵이자기는 아직은 군사지식은 물론 지식이 다방면 부족함을 절감한다면서 한동안 왕청을 떠나 단련도 할겸 배우고 오겠노라 제의했다. 서일은 이 문제를 놓고 생각했다.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것도 나쁠건 없을것같았다. 말과 같이 나가 돌며 고생도 해보고 배우며 단련해서 돌아와 중광단을 책임지면... 서일은 그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이홍래가 작반하리라며 따라나섰다. 이 “월경의병장”은 또 궁둥이에 좀이 쑤셔나서 못견디겠는모양이다. 차라리 동무가 되게 그리하라했다. 하여 어느날 그 두사람은 왕청을 훌쩍 떠나가버렸다. 어느때에야 돌아올지는 그들도 모르는 일이다.

   서일이 단장직위를 벗은건 아니였다. 단장의 실무를 한동안 계화가 책임지기로 하고 기타의 일들은 채오, 량현, 김성과 최익항이 고루맡기로 한 것이다. 신팔균이 중책을 맡았으면 좋으련만 그는 초빙을 받아 군사간부배양이 더 실제적인 신흥무관학교에 조동된 것이다.

   요즘 이 정(李 楨), 이운강(李雲岡), 정면수(鄭冕洙)가 새로 중광단에 가입했다. 정면수는 구군대출신이였고 이정과 이운강은 군인출신도 의병출신도 아니였다. 그 둘은 대종교도였거니와 애국심이 강한 지식인이였다.

   음력6월을 잡자 서일은 다시 화룡으로 갔다.         

   청파호에 이르니 교도들이 해명신가(解明神歌)를 읊고 있었다.

 

     어아어아 우리 대황조 높은 은덕

     배달국의 우리들이 백천만년 잊지 마세

     

     어아어아 선심은 활이 되고 악심은 관혁이라

     우리 백천만인 활줄같이 바른 선심 곧은 살같이 일심일세

 

     어아어아 우리 백천만인 한활장에 무수 관관혁

     천파하니 열탕같은 선심중에 일점설이 악심이라

 

     어아어아 우리 천백만인 활같이 굳센 마음 배달국의 광채로다

     천백만년 높은 은덕 우리 대황조 우리 대황조.

         

    한편 음력 6월 9일, 홍암대종사 라철은 총전리 강우를 대신 백두산에 보내여 제를 지내게 했다. 동행인은 여럿이였다.

   서일은 강우일행을 멀리까지 전송해주고는 지난해에 지교(知敎)로 승질(陞秩)한 백순도형과 함께 돌아오면서 그와 처음으로 속심말을 나누었다.

   백순도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설흔한살때에 동학란을 당했소. 세월이 그러하니 마음이 유쾌할 리는 없었소마는 대신에 내 일생을 새로이 닦게 되었던요. 한창 진취심이 오르던 때라 나는 “일본유신사”와 “서양사”를 연구하게 되었고 거기에 재미를 붙이다보니 곁들어 지리학과 정치학도 보고 경제학도 전수를 하게 된 거요. 시대가 인간을 조각한다는 말이 맞는것 같으오. 내가 대교를 믿게 된것도 마찬가지요.. 대교가 중광되지 않았다면 오늘 많은 형제들과 같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었을가. 안그렇소?》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들 백의동포 다가 한배검님의 두리에  모여서 굳게 뭉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다면 암흑을 몰아내고 광명을 찾아 올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 화와 불행을 자초한 것이 우리 민족자체가 아니였겠습니까. 력사를 보십시오. 그 어느때면 파쟁이 없고 당쟁이 없었습니까. 공연히 미워하고 배척하고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을 능사로 삼으면야 결국 자신을 해치고 민족을 해치고 나라까지 해친다는걸 왜서 몰랐던지 참!》

    백순은 동생의 말이 맞다면서 따라서 한숨지었다.

    서일은 얼마전 덕원리의 교도가 라자구에 갔다가 그곳 공교회사람들께 멸시받은 일을 말했다.

   《자칫하면 교파지간에 앙숙이 될것이니 주의해야하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경시할 소사가 결코 아니지요. 온 교도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야했습니다.  가깝던 사이가 왜 그렇게 됐던지...

    한편 강호일행은 백두산기슭에 이르서 잠간 쉬고나서 다시 용기를 내여 등산하기 시작했다. 민족의 성산! 해발 2744m에 달하는 장백산맥의 주봉 백두산은 그 웅위함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백두산꼭대기의 기후는 변화무쌍하여 초가을이 되면 산아래에는 온통 빨갛게 단풍이 들고 무르익은 산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리지만 산우에는 벌써 흰눈이 흩날리고 찬바람이 불어친다. 봄이 오면 어떤가, 산아래에는 새싹이 움트고 들꽃이 만발하지만 산우에는 여전히 백설이 덮혀있는 것이다.

   백두산우에 오르니 16개의 높낮은 봉우리들이 병풍마냥 천지의 맑은 수면에 거꾸로 비껴 그야말로 황홀했다. 강우일행은 여기서 제를 지냈다.

        

    백두산제천문(白頭山祭天文)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維 天祖檀帝降世四千三百七一年甲寅六月初九日戊午에 不肖子孫羅喆은 玆敢代送總典理姜虞等하야 奉行檀禮하고 建天旗하고 燒檀香하고..

                                                                    (제2부 련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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