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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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혈 백포종사 서일 일대기 제3부. 10
2011년 10월 23일 23시 10분  조회:4934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역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0.

   조용한 古經閣.

   탁상우에 책 두권이 놓여있다. 하나는 서일이 갓 완성한 <<會三經>>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도꾸도미(德富蘇峰)가 1916년에 쓴 <<大正靑年及帝國的前途>>였다. 그는 “황실중심주의” 리론의 창시자로서 다이쇼(大正) 시대에 들어서서 대단한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언론인이였다. 1913년 10월, 내각수상 가쯔라가 죽자 정계를 멀리하기 시작한 그는 이 책에서 “황실중심주의”의 알맹이는 바로 “충군애국(忠君愛國)”을 “종교우의 종교, 철학우의 철학, 학문우의 학문”으로 춰올리면서 “일본의 국민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일본정신을 갖춘다음 자기의 전도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앙의 힘으로는 “태산을 옮기고 바다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 믿으면서 일본국민들에게 종교를 신앙하듯이 천황을 신앙하라면서 “천황의 위엄을 세상에 널리 떨치는것이며 일본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드는것이다”고 부르짖었다. “황실중심주의”를 자연스럽게 대외확장의 군국주의와 련계시켜놓은 것이였다.

   서일은 도꾸도미가 바로 자기의 대적으로 여겨졌다. 

  《어디 천황을 기껏 신앙하게 만들거라. 여기서 우리 단군의 자손들은 뭉치여 너희들 군국주의를 까부시고 독립을 쟁취할 그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서일은 <<會三經>>을 다 써놓고는 정식으로 출판되기에 앞서서 등사판으로 먼저 몇책 묶어냈다. 그 저작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한번 타진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헌 도사교가 서일늘 찾아왔다. 그는 탁상우에 놓여있는 <<會三經>> 등사본을 쥐여 펼치더니 한 구절을 읽는다.

  《어진이는 활쏘는 것 같고 지혜로운 이는 고기낚는 것 같고 날랜 이는 말 모는 것 같으니, 활 잘 쏘는 이는 항상 바로하기를 힘쓰고 고기 잘 낚는 이는 항상 살피기에 힘쓰고 말 잘 모는 이는 항상 조심하기에 힘쓰며 항상하여 힘들지 않는데 이르는 것이 도의 지극함이라.》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혼자소리로 뇌이는 것이다.

  《옳은 말이요. 그래서 <이 도란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제 몸에 있어서 밖으로 나가는것이니 나를 미루어 남을 앎에 되질함이 있음은 바름의 닦음이요, 분별함에 잣대질함이 있음은 살핌의 지극함이요, 옳음을 행함에 저울질함이 있음은 조심이 극진함이니라> 하셨군!》

   김헌은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래구절은 다음과 같이 되였다.

 

  <<어짐이 많고 지혜가 적으면 굳기만 하고 통하지 못하며,

   지혜가 많고 날램이 적으면 꾸미기만 하고 단행하지 못하며,

   날램이 많고 어짐이 적으면 세기만 하고 너그럽지 못하며,

   어짐이 많고 날램이 적으면 기대어 서지 못하며,

   날램이 많고 지혜가 적으면 빠르기만 하고 밝지 못하며, 

   지혜가 많고 어짐이 적으면 자랑하여 진실하지 못하며,

   어짐과 지혜가 많고 날램이 적으면 꾀를 좋아하되 능히 행하지 못하며,

   어짐과 날램이 많고 지혜가 적으면 건지기를 좋아하되 능히 살피지 못하며,
  지혜와 날램이 많고 어짐이 적으면 나아가기를 좋아하되 능히 오래지 못하나니 셋 중에 하나만 모자라도 이는 통달하지 못함이라 이르니라.

   그러므로 통달한 어짐은 트임에 있고 통달한 지혜는 앎에 있고 통달한 날램은 보전함에 있어 오직 어진 이라야 능히 좋아하고 미워할수 있으며 오직 지혜있는 이라야 능히 옳다 그르다 할수있으며 오직 날랜이라야 능히 쾌하고 부끄러워할수 있나니 물건을 느끼고 일에 응함이 이것에 벗어나지 않네라.>>

  《백포동생, 이를 어찌 일반인이 쓴 글이라 하리오! 인(仁), 지(智), 용(勇)을 분삼합일(分三合一)의 종리(倧理)로 귀일케함으로써 리해를 명철케 하니 실로 유일의 묘화대법(妙化大法)이오다!》

  《과찬이오다. 이 동생은 몸둘바를 모스겠습니다.》

   서일이 집필한 <<會三經>>에 대한 무원종사(茂園宗師)의 평은 긍정적이였다. 그는 이런 리론으로는 군사를 지휘하는데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면서 그야말로 값진 경전이라 찬양했다.

   이틑날 왕청에서 계화가 오고 요즘 가장집물을 거둬갖고 용정을 떠나 지금 그곳 덕원리에 안착한 박찬익이도 오다보니 여럿이 모여앉게 되였는데 말들이 오가는 중 자연히 국외의 교포상황을 운운하게 되었다.

   로씨아에는 지금 주로 일크츠크, 추풍, 쌍성, 사만리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에 교포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다. 거기서  무장의 서막이 오른 것은 전에 한일합방이 되자 유인석, 이상설, 이범윤 등이 의병운동을 벌려서부터였는데 정재관(鄭在寬), 이 강(李剛) 등은 치타에서 “국민회(國民會)”를 조직하여 미국에 있는 교포와 련락을 취하면서 각처에 지회(支會)를 두고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12년 3월 그곳 교포사회의 유력자인 이종덕(李鍾德)은 로씨아관헌의 허가를 얻어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고는 그 본부를 신한촌에다 두고 교포의 산업을 장려하거니와 신문을 발간하여 계몽까지 담당하고있었다.

   한편 씨베리아의 교포들은 이해의 8월에 레닌, 케렌스키 등에 의하여 제2차 로씨아혁명이 일어나 백계(白系)니 적계(赤系)니 하여 크게 두파로 갈라져 혈투를 하게 되자 요즘(12월)에는 쌍성에다 “전로한족회(全露韓族會)” 중앙총회를 설치하였다. 회장 문창범(文昌範)을 비롯하여 간부인 김립(金立)과 윤해(尹海) 등은 그곳의 교포들에게 자치사상을 고취하면서 간도지방의 교포들과도 련락하여 볼세위키와 손잡고 항일투쟁을 시작하려하고 있었다.

   여기 만주는 어떠한가? 동만주의 화룡, 왕청, 연길, 훈춘 등 지방과 남만주의 장백산, 무송, 임강, 집안, 통화, 환인, 유하, 청원, 관전, 안동 등에 거류하는 교포는 4, 50만호에 인구가 거이 200만을 넘고있는데 선지선각자인 독립운동가들은 사처에 독립단을 조직하여 사업과 교육 그리고 군사면에 실력을 키우려고 애를 쓰고있었다.

   독립운동은 국내의 의병운동을 뒷이어서 온양되고 있다. 전에 유인석이 이끌고 왔던 부대는 안동성의 집안, 통화 등지에서 진용을 정비하고있으며 이진용, 조맹선, 윤세복, 홍범도, 차도선 등은 “砲手團”을 조직했다. 전덕원이 이끌고 온 부대는 관전, 환인 등지에 정착하고는 백삼규 등과 손잡고 “농무계(農務契)”, “향약계(鄕約契)”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상의 단체들은 규모에 있어서나 영향력에 있어서 독립단체로 보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것이였다. 

   그에 비해보면 하나의 종교단체로 표방하고 나선 대종교(大倧敎)는 사실상 하나의 어마어마한 반일조직임이 분명했다. 여지껏 포교가 잘되였기에 신도들은 한사람같이 굳게 뭉치였고 각오도 높아서 민족정신과 투쟁정신이 철저함에는 그 어느 조직도 비기고 따를 수 없는 것이다.

   (토대를 이만큼 닦아놓았으니 이제는 중광단만도 대한독립선언을 만방에 떳떳이 발표하고 나설수 있지 않는가.)

   서일의 머리속에 이런 생각이 새삼스레 떠올라 고패치기 시작했다.

   어느날 서일은 김헌과 단둘이 있는데서 자기의 속심을 털어놓았다.

  《총독부에서 통제령이 내린 후부터 탄압이 점점 우심해가고있는 상황이니 부득이한 상황에 대교는 잠을 자는 것 처럼 가만히 있는것이 현책인가봅니다. 그 대신에 이제는 중광단이 정면으로 나서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런다면 미온상태에 있는 여러 독립단체와 지사들은 따라서 용기를 얻어 분발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오, 거 참 좋은 생각이구만! 한데 어떻게?...》

  《중광단에서 <대한독립서언서>를 작성하여 만방에 공포합시다.》

  《가만있자, 인자 방금 뭐라했소? 우리가 <대한독립선언서>를?...》

   김헌은 저으기 흥분했다. 그도 품어 온 생각이였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도사교께서 직접 그 선언문을 쓰시는 것이 어떨가요.》

  《나더러 그 거창한 일을 해내라는건가?!...》

  《도사교께서는 대교의 전 운명을 량어깨에 메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도사교께서 쓰신다면 그것은 <중광단>이라는 한계를 벗어난 우리 모두의 거사로서 력사에 기록될것입니다. 필경는 우리 대교의 영광이 될게아닙니까.》

  《허, 이거... >>

   김교헌은 묵묵히 생각하고나서 하다면 빈약한 필력이오만 한번 재간을 부려보리다 대답했다. 서일의 건의를 기꺼히 받아준거다..그는 당장 그날 밤으로<<大韓獨立宣言書>>의 초고를 써서 이틑날 아침에 들고와 서일앞에 내놓았다.

   서일은 그것을 받자 저으기 흥분된 목청으로 내리읽었다.

   

   <<우리 大韓同族 남매와 온 世界友邦 동포여, 우리 大韓은 완전한 自主獨立과 우리들의 평등복리를 우리 자손 黎民에게 대대로 전하게 위하여 여기 異民族 專制의 학대와 압박을 벗어나서 대한 민주의 자립을 선포하노라.》

     <<大韓獨立宣言書>>초안의 첫머리글이 이러했다.

   첫구절부터 서일의 맘에 들었다. 그는 김헌(김교헌)을 향해 이제 어느날 대종교도 신분의 독립운동가들을 불러 한자리에 모여놓고 토론하여 보충도 하고 수개도 해야 할 것같다고했다.

   이러던차 뜻밖에 김동삼이 총본사를 찾아왔다. 그가 혼자오지 않고  초면인 조소앙(趙素昻)을 데리고 온 것이다. 김동삼은 자기보다 9살 아래인 친구를 서일에게 인사시켰다.

   서일은 그와 상면하게 되었음을 무척 기뻐하면서 친절스레 대해주었다. 

  《선성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인제야 찾아뵙게 됩을 용서하시요. 선생님은 신사년이구 난 정해년생이니 여섯 살 차이. 동생으로 여겨주십시오.》

   나이 30세인 조소앙은 출생지가 경기도 양주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본명은 용은(鏞殷)이라 것, 한문(漢文)은 소시적에 할아버지한테서 배워 익혔다는 것, 18세 때 관비유학생으로 도오꾜오에 건너가 중학교에 다니고 22세때에 메이지법학부에 입학했다는 것, 신민회(新民會) 105명 사건에 련루자로 일본헌병대에 잡혀갔다가 증거가 없어서 석방되였다는 것, 26세에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하여서는 대동법률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이듬해에 상해로 망명하였다는 것, 그곳에 있는 신규식의 창의로 한,중(韓,中)두나라 민간의 우의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호한민(胡漢民), 대계도(戴季陶), 요중개(寥仲凱), 진과부(陳科夫) 등 중국 국민혁명의 여러 원로들을 방문했다는 것, 이듬해에는 혈족의 심리개혁과 단결을 위하여 국내로 잠입하려했으나 도로 피검되였다가 겨우 풀려났다는 것 등등.

  《목적을 이루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이 했구만!》

   서일은 투사다운 조소앙이 맘에 들어 손을 다정스레 꼭 잡았다.

   김동삼이 서일의 탁상우에 놓여있는 “ 민보”를 집어 들었다.

  《중광단 신문이구만! 일본에서 쌀소동이라?...》

  《그렇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였지요. 우리 신문의 편집들이 소식을 좀더  알아냈는데 이번 소요로 데라우찌가 탄핵되여 나떨어졌답니다.》

  《오, 그래!? 9월 2일이라....로씨아에 파병을 하더니....지독한 군벌이야. 그자가 총독질하다 수상이 돼 돌아간게 어느때더라? 깜빡 잊었군.》

   조소앙이 1916년 10월이라 알려주었다.

  《그래, 그렇지. 헌데 이제 그 후임은 누가 될 것 같소?》

  《제 생각에는 하라기요우가 될것같습니다. 현재 일본정계를 놓고 보면 정우회, 동지회, 국민당 이 세파가 중심이 되어 도는게 아닙니까. 그는 그중에서도 세력이 압도적인 정우회의 총재니까요.》 

  《내 생각에도...정계란 워낙 개싸움판이라 억대센 놈이 이길내기지.》

  《여기 형편은 지금 어떠하오? 이동녕선생한테서  들은 소린데 중광단이 이제 당장 무장단으로 탈바꿈하리라던데 그게 정말이요?》

   김동삼이 조소앙의 말끝에 이렇게 불쑥 화제를 돌리였다.

  《그렇습니다. 당장은 아니되지만 우선 명동학교 학생중 오백명으로 따로 기병대를 조직했습니다. 총은 능력이 자라는대로 계속 구하기로 하고. 지금은 마상검술훈련을 하고있습니다.》

  《훈련장이 누구요?》

  《이홍래입니다. 의병질할 때 마상검술을 좀 익혔던 모양입니다.》

  《서단장님, 그 훈련을 이 아우한테 한번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조소앙이 청을 들자 김동삼이 잇따라서 찾아온 본의를 털어놓았다.

  《나하구 소앙이가 이번에 먼길을 마다하고 다리품을 팔게 된건 다름아니라 실은 그걸 한번 제 눈으로 확인하자는것이였네.》

  《그러시지요.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이라잖습니까.》

   서일은 그들을 데리고 왕청으로 향했다.

   500필의 말잔등에 오른, 칼로 무장한 끌끌한 젊은이들의 위용을 보는 순간 두사람의 입에서는 감탄이 련신 튀여나왔다.

  《과연 빈말이 아니였군!》

  《여기서는 과연 잘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내지는 물론 남만에 있는 여러 독립진영을 빼놓지 않고 거진 다 돌아다녀봤습니다만 여기 중광단처럼 임전태세를 갖추느라 훈련을 다그치고있는 무장단은 처음봅니다. 신흥학교를 내놓고는!》    

   조소앙은 이러면서 지금 왜선지 동산재기를 꿈꾸고 만주로 온 무장단마저 기력을 점점 잃어 휴면상태에 들어가고있는 것 같으니 과연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이런 때에 중광단이 선동력을 갖고 거세찬 숨결을 내뿝는다면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들을 다시금 분발하게 할수 있으리라했다.

   이에 서일은 신심있게 장담했다. 

  《부고(仆姑)로 천랑(天狼)을 쏘아 떨굴것이요, 종사(宗社)는 이어질것이며, 우리 배달민족은 영구불멸할것이다!》(부고ㅡ활. 천랑ㅡ잔악, 탐욕한자를 비유.)

   숨겨둘 필요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서일은 그 두사람을 마주보면서 멀쩡히 앉아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겠는가, 이제는 우리만으로라도 나설것이라면서 요즘 자기와 김헌사이에 중광단(重光團)만이라도 만방에 독립선언(獨立宣言)을 하자고 의논이 있어서 지금 당장 행동에 들어가려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랬더니 김동삼도 조소앙도 낯빛이 확 밝아지면서 과연 그런가 그래 그리고는 어쩔셈이냐했다. 서일은 이것은 각별히 중대한 문제이니만큼 몇사람을 찾아 구체적으로 연구하자했는데 마침 잘오셨다고했다. 

  《그렇게 하시오. 반드시 그래야합니다.》

   조소앙은 중광단에서 독립선언(獨立宣言)을 내는 것을 적극 지지했다.

   그 자신이 <大同團結宣言書>라는 것을 작성하여 국내 동포들에게 보내는 한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할 것을 예정하고 조국의 독립에 관한 <主權不變論>, <主權民有論>, <最高機關創造必要論> 등을 골자로 한 취지서를 작성하여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개최하는 국제사회당에 한국문제를 의제로 제출하기도 한 것이다. 필력이 좋은 지식인이였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럴것이 아니라...》

   김동삼이 이렇게 말꼭지를 떼더니 서일은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한 점을 집어냈다.

  《선언서를 중광단이 내는 것으로 하되 간벽을 두지 말고 독립운동을 이끄는 수령급유지들의 서명은 받을수 있는데까지 다 받는게 좋겠구만.》 

   훌륭한 발의(發意)였다.

  《한데 간벽을 두지 않자면 그 법위는 어떻게 정하자는겁니까? 타교나 무신교자도 포함하자 그거겠지요?》

   김동삼은 바로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서일은 고개를 숙이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런다면 서명자도 많아질것이요 선언은 보다 광범위하여 위력을 더 낼 수 있는것이다.

   그는 김동삼과 조소앙을 데리고 화룡에 갔다. 거기 총본사에서 도사교 김헌과 함께 이 문제를 좀더 연구하자는것이였다. 될수만있다면 이 기회에 만주와 로씨아, 조선, 미주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많이 모여봤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기는 힘들것이니 유감스러웠다. 그들은 모두가 공인하는, 친숙하고도 활약적인 독립운동가들부터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서일이 그저 한번 피끗 만나봤거나 만나보고싶어도 기회가 없고 너무멀어서 그저 이름만 기억하고있는 유지 몇사람을 놓고도 담론하게 되였다.

    함북출신으로서 외교활동능력이 좋은 서상용은 화룡현 향정관(鄕正官)으로서 “덕신사(德新社)” 사장을 맡고있으며 밀양출신으로서 국치후에 남만 환인현에 이주하여 정착한 손일민은 내외지사들을 련합하여 조국광복에 종사하고있었다. 남만주에는 경학사(耕學社)사가 해체된 후에 풍년이 다시들자 정황이 달라져 흩어졌던 교포들이 다시모이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이상용을 비롯한 유지들이 교포의 자치기관인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여 독립기지설치의 기초를 닦고있었다. 서일은 단장 허혁(許赫)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지금도 상해에 있는 신규식(新聖)은 3년전 박은식과 “대동보국(大同輔國團)”을 조직하고 만주, 로령의 동지들과 “중국결사(中國結社)”에 가입하여 당대에 이름이 쟁쟁한 중국명사들과 유대를 굳게 맺고 한국혁명의 대외선전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는 작년 8월에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만국사회당(萬國社會黨)의 이름으로 조선독립을 요망하는 호소문을 제출하여 만장일치의 승인을 얻었다. 외교방면에 꾸준하고 끈질긴 노력을 경주하고있는 사람이였다.

   미국에서는 지금 안창호, 이승만, 박용만, 정재관 등 여러 유지들이 교포조직과 독립운동을 맡아 활발히 해나가고있었다. 미주의 교포들은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자 그를 부인하는 결의문을 세계에 돌리는 한편 일부의 지사들은 사관을 양성하여 원동(遠東)에 보내여 독립군편성을 원조하기로 하고 실제적인 노력을 해왔던것이다.

   미주에서 실제로 군사훈련에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은 박용만이다. 그는 네브래스카 거주당시 소년병학교를 설립하여 사관생을 양성했거니와 하와이에 건너와서도 가루할 지방의 아후마두 농장에서 “국민군단(國民軍團)”을 조직하여 군인양성에 전력했다. 그러다가 농장의 경작계약이 완료되면서 재정난까지 겹쳐 해산하는 바람에 대체로 중단상태에 들어가고만 것이다. 하지만 활동은 의연히 멈추지 않고 있다. 박용만은 지난해 10월에 미국대한인국민회(美國大韓人國民會)의 대표로 선발되여 그달의 29일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 약소동맹국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립장을 세계에 호소하였던겄이다.

   그러한 그가 요즘은 태평양을 건너서 중국에 온 것이다. 목적은 이쪽의 독립운동진영과 밀접한 유대를 건립하기 위함이였다.

   <<마침 잘됐네!  의향을 물어 그도 온김에 서명케 해야지. 의례 그러자할거야!》

   김동삼이 하는 말이였다.

  《그런다면야 미주쪽에서도 참가하는 것으로 되어 좋은데 로씨아는 어찌하려오?  이동휘와 문창범이와 안정근이가 있는데...》

  《그분들이야 와야지. 오도록 통지하렵니다.》

   김헌이 걱정하자 김동삼이 하는 소리였다.

   이범윤은 몇해전에 만주로 건너와 지금 연길현 명월구에 자리잡았고 로씨야로 무기를 구입하러 갔던 이동휘는 태평구무관학교가 강제로 페교되자 돌아오지 않은채 그곳에 남아 지금은 케렌스키의 사회당과 유기적련락을 가지면서 새형식으로 독립운동을 모색하고있는 것이다.    

   김헌이 이미 써놓은 <<大韓獨立宣言書>>의 초고를 내놓고 넷은 재 검토를 했다. 결과 이미 작성된 초고를 바탕으로 내용을 더 가첨하여  실하게 하는게 좋겠다고 여겨져 이를 조소앙이 책임지고 완성키로 했다.

   <<그리하는것이 좋겠습니다. 헌데말입니다. 한가지 똑똑히 밝혀둘 것은요 우리가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기 위해 찾아낸 가장 적절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라는것이 바로 무장들고 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친개는 몽둥이로 맛서야 한다는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인데 그 무슨 국제에 청원을 올리다니? 하기는 그도 방법이겠지만 우리의 인식은 폭력이 아니고서는 절대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 그겁니다. 하기에 선언문에는 <육탄혈전을 함으로써 독립을 완수하자.>고 명철하게 밝혀 두는게 아닙니까. 서명자는 우선 그에 동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를 않고 좀이라도 이의를 갖고 대한다면 구태여 구구히 서명을 바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거야 물론이지요. 이럴때에 무지각자도 아니요 주의주장이 바른 사람에게 권고나 설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명은 자유여야 합지요.》

   조소앙이 서일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태도가 선명하고 견정한 사람만을 골라 서명을 받자고 했다.

   그들은 토론끝에 개개인에게서 서명받는 일은 김동삼이 책임지기로 하고 집합장소는 대종교총본사가 있는 화룡 삼도구로, 시간은 1918년 11월로 결정했다. 

   날자가 다가오자 독립운동에 이름날리는 령수급 인물들이 하나 둘 화룡 삼도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여 대종교총본사는 갑작스스러운 명절기분에 잠기게 되였다.

   로씨아에서 몇이 왔고 미국에서 온 박용만이도 서명에 참가해서 고마웠다. 그가 이 일을 미국에 있는 안창호와 정재관에게 전보를 쳐 알렸더니 그들은 기뻐하면서 대단한 일을 한다며  열열히 축하했거니와 부득불한 환경에 오지 못하게되니박용만에게 대리로 서명해줄것을 위탁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번 거사가 大倧敎에서 重光團의 명의로 내외 각지에 널려있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는것이라 했더니 그런가 할뿐 다른 말이 더 없더라는 것이다.

  《아무렴 그리도 무심할수야!  왜설가?.....무력항쟁을 선호하지 않아서일가, 아니면 종교적편견에 배척심이 생겨설가?....》

   서일은 성망높은 이승만이 생각과 다르게 태도가 그러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채호역시 마찬가지였다.

  《하긴 명성높으신 분의 태도가 그러하니 섭섭하오만 그가 몰라봐 준다고 지구가 돌아가지 못할까.》

   이러면서 그는 선언문중간에다 아래의 몇구절을 더 가첨할것을 제의했다.

  
   <<슬프다, 일본의 무력이여!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가며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될지어다!>>       

    
    흥분과 격동의 어울림속에 <<大韓獨立宣言書>>
가 정식발표되였다.

     <<...슬프도다. 일본 쪽바리들이 임진이래 반도에의 죄악은 만세에 감추지 못하며 갑오 이후 대륙에서의 작죄는 만국에 허용치 못할바이다. 너희 싸움을 좋아하는 악습은 가로되 자신을 보존하고 자신을 방위한다는 구실로 끝내 하늘에 반하고 사람에 거역하는 보호합병을 날조하였다...10년무단의 작란이 이에 크게 자람으로써 하늘은 너의 두독을 제압하여 우리에게 호기를 내리시니 하늘에 따르고 인간에 응하여 대한독립을 선포하며 너희 합방의 죄악을 선포 징계한다.

   (1) 일본의 합방동기는 너희들의 온 일본주의를 아주에 펼치는 것으로 이는 동양의 적이다.

   (2) 일본의 합방수단은 사기, 강박, 불법, 무도의 무력, 폭행인 것으로 이는 국제법의 악마이다.

   (3) 일본의 합병결과는 군경의 야만스러운 권세와 경제의 압박으로서 종족을 말살하고 종교를 강박하고 교육을 제한하여 세계문화를 저애하는것으로서 이는 인류의 적이다....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檀君皇祖께서는 上帝左右에서 명을 내리시어 우리에게 기운을 주셨다. 세계와 시대와는 우리에게 복리를 주고자한다. 정의는 無敵의 칼이므로 이로써 하늘에 거스르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4천년 祖宗의 榮輝를 빛내고 이로써 2천만 赤子의 운명을 개척할것이다!

   궐기하라! 독립군! 독립은 일제히 천지를 바르게 한다.

   한번 죽음은 사람의 면할 수 없는 바이니 개, 되지와 같은 일생을 누가 원하는바이랴. 殺身成仁하면 2천만동포는 같이 부활할 것이다.

   일신을 어찌 아낄 것이냐. 힘을 기울려 나라를 회복하면 삼천리 옥토는 自家所有이다. 일가의 희생을 어찌 아깝다고만 하겠느냐.

   아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국민된 본령을 자각한 독립인 것을 명심할것이요,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고 인류의 평등을 실시하기 위해서의 자립인 것을 명심하도록 황천의 明命을 받들고 일체의  邪惡으로부터 해탈하는 건국인 것을 확신하여 육탄혈전함으로써 독립을 완성할 것이다!

                                        단군기원 4251년 11월 18.

                                     

         金敎獻, 徐  一, 金東三, 申采浩, 趙鏞殷, 金躍淵, 朴瓚翊,

         李範允, 呂  準, 柳東說, 李相龍, 金佐鎭, 金學萬, 朴殷植,

         李  光, 申  聖, 鄭信源, 李東寧, 申八均, 李東輝, 文昌範,

         李世榮, 安昌浩, 李  沰, 朴性泰, 鄭安立, 任  方, 尹世復,

         李大偉, 朴容萬, 崔炳學, 韓  興, 孫一民, 安定根, 朴政翊,

         郑 信, 許  赫, 黃尙奎, 金東平.>>      
        
        서명자  39명.

  

   <<大韓獨立宣言書>>는 滿洲, 露領 有志一同이란 명의로 발표되였다. <<重光團宣言>> 혹은 <<戊午獨立宣言>> 이라고도 부른다.

   (원문은 부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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