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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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혈 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3
2011년 10월 28일 12시 43분  조회:4401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역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3.

   3월 1일 고종황제의 국장을 계기로 조선은 각지에서 동운동이 일어났고 그것은 또한 만주에 거주하고있는 200만 동포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3월 15일 예수교도들에 의하여 왕청과 거리가 멀지 않은 용정 서전평야(瑞典平野)에 근 만여명이 모여 독립축하회를 열었고 그 전날에는 서간도의 유하현 삼보원에서 규모는 그보다 작지만 수많은 동포가 모여 만세시위를 했거니와 재류동포의 명의로 “獨立請願書”를 작성하여 그것을 중국정부를 통하여 萬國會議에 제출하게 했다. 그곳에서는 여준을 비롯한 여러 유지들이 때를 맞춰 독립운동형세를 일으키고있었던것이다.

   서일은 조선에서 일어난 3.1만세시위의 “公約三章”을 다시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한숨을 쉬였다.  

  《결코 배타적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 그렇게 될수 있을가? 시위운동의 성격을 비폭력적인 것으로 규정해놓고는 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천명한다, 순진선량한 맘을 그래 누가 알아주는가? 그런다고 독립이 되는건가? 고작 그것만을 바라고 만세시위를 벌리다니?....평화적 수단으로 해결이 안되면?....시위는 피비린 진압을 당하고 있다. 만국회장을 붉게 물들였던  리준의 피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쳤던가? 그것을 벌써 잊었단말인가?》

   전혀 찬동이 되지 않았다. 목적이야 꼭같이 독립을 바라는거지만  결책자들의 나약과 비현실적인 기대에 결이 나면서 마음을 진정키 어려웠다.

  《대가를 피로 치르지 않고 독립이 된 나라가 있었던가? 일제의 통치가 부드러워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굴욕이고 운동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허, 허허!....》

   누군가 허구프게 웃다가 

  《우리쪽에서 육탄혈전을 하자구했더니만 그쪽에서는 비폭력적으루 하자구 반대곡을 부르구있네. 그러구는 대체 어쩌자는가말이여. 우리 민족이  마음선량해져 왜놈이 동정해줄가? 한데두 뭐가 어떻다? 무고한 희생을 바치고서 그걸로 구걸하자는건가?... 얼빠진 사람들!》

   어처구니없다고 부르짓길래 돌아다보니 이홍래였다. 그는 무기를 사들이는 일같아나 단장실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서일이 혼자 뇌는 소리를 듣고 보니 곁달아 결이 올랐던 것이다. 

   훈춘에 있는 황병길이 오래간만에 찾아와 서일께 물었다. 

  《서선생님, 여기서는 어찌하렵니까? 예수교에서 만세시위를 하고있는데 대종교가 잠자코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도 들고일어납시다. 왕청과 훈춘이 합심해서말입니다.》

  《왜 잊었단말이요? 대종교야 이미 지난해에 들고일어나지 않았는가. 그리했는데 어떻게 더 들고일어나란말이요. 예수교에서 하는것처럼?....우리 대종교는 행동을 이미 명백히 규명한바니 그들모양으로는 안할것이요.》

  《암 그렇구말구. 주먹만 들고 일어나 외쳐대 목숨잃고싶진 않어.》

   서일의 말끝에 이홍래도 따라서 대종교도들이 취할 행동은 오로지 무장대결뿐이라고 속을 박았다.

  《야만스런 왜놈의 총검이 리지를 잃어 자비를 모르니 하나님의 자식도 가리지 않는거요. 이 점을 명심하고 즉흥에 쉽사리 충격받지 말며 심사숙고를 한 연후에 행동을 잘 조직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보오.》

   서일은 이같이 말하고나서 만세시위로 동포들을 발동하여 투지를 앙양시킬 필요는 있겠으니 그 여세를 빌어 조속히 항일대오를 조직하고 그들을 교육해 차츰 무장을 갖춘 독립군으로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했다.

   황병길은 훈춘에서 항일무장이 조직되면 긴밀히 합작하자고 제의했다.

   서일은 황병길의 제의를 반갑게 접수했다. 그는 그가 가자 매주 4회를 내고있는 敎報特刊號에다 친히 쓴 사설을 내여 교도들을 깨우쳤다.

 

   <<유사이래 국가흥망의 력사가 허다하나 우리같이 이민족의 참혹한 박해를 받아 민족이 거의 말살될 위경(危境)에 까지 이른 것은 없었다.

.....돌이켜보건대 무도한 원흉 일본침략자들이 국제의 정의를 무시하고 잔인 간교한 수단을 다해 자객을 궁중에 까지 란입시켜 일국의 국모를 시해하였거니와 국왕을 위협하고 역도들을 사주하여 국권을 강탈한 사실은 이제는 철부지 삼척동자들마저도 다 아는 바가 되였다. 보아라, 이에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충간의담(忠肝義膽)의 열사들이 분기탱천(憤氣撐天)하여 의거를 일으켜 결사코 대항하니 일본은 안녕질서를 유지한다는 미명으로 수십만에 달하는 의병과 애국지사들을 살해하고 고형하지 않았던가!

.....일제가 여지껏 해온 행실을 보면 항일자에 대해서는 무조건 잔인무도한 탄압을 했다.... 한편 모든 분야에서 고혈을 짜내고 글과 언어를 빼앗고 지어는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와 력사를 가진 우리 배달민족의 혈통과 정기까지 말살하려고 드니 력사상 있어보지 못한 폭정이 아니고 뭔가!

.....지금 삼천리강산을 짓밟고있는 일제는 불의의 야욕이 골수에 꽉 차있는 침략자요 우리와는 한하늘을 떠이고는 살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쑤인 것임을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한다. 타국을 정복하기 위해 불작란을 천직으로 여기는 그런 자들에게 어찌 좋은 끝장이 있으랴.

.....지금 조국강토위에서는 우리의 동포 형제자매들이 가진 곤고위난(困苦危難)을 무릅쓰고 적수공권으로 일제와 혈투항전하여 강산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             

.....독립이 당장 이루어지는건 아니거니 우리는 그 어떤 환상도 다 버리고 민족정기를 살려 손에 총칼잡고 지구부단(持久不斷) 거족적인 혈투를 해나갈 결심을 해야한다.

   

   동북만주 각지 수십개소의 施敎會에서 일제히 교도들의 모임을 갖고 敎報에 실린 사설을 읽으면서 형세를 론하고 새로운 결의도 다지였다.

   한편 황병길은 훈춘으로 돌아가자 다년간 생사를 같이해 온 동지들과 토론하여 3.1獨立宣言祝賀民衆大會를 3월 20일 오전에 열기로 하고는  자신이 총지휘가 되였고 옌퉁례즈(煙筒磊자), 난베리(南別里), 황거우(荒溝), 둥거우(東溝) 등지의 여러 동지들은 훈춘과 북일중학교, 광동학교, 영생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의 학생과 그곳 마을의 동포군들을 동원시킬 책임을 각각 맡겼는데 동원할 수는 5000여명이였다.

   지정한 그날 그시간이 돌아오자 수천 군중이 훈춘시가에 모여 황병길의 지휘하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가행진을 단행하고 무사히 해산했다.     이를 방해하려던 일본령사관원들의 책동은 허사가 되고말았다. 적들은 지방의 중국관리와 토민을 금전으로 매수하여 황병길을 체포암살하려했다. 그러나 훈춘지방의 재류동포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그를 엄호했다.

   황병길은 이같이 적의 삼엄한 감시와 추적을 받으면서도 왕청에 와서 서일과 약속한대로 훈춘지방에다 독립무장대오를 건설하기 위해 혼신의 정열을 몰부으면서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때 서일도 그와마찬가지로 석현의 한족지주(漢族地主) 장송린이 준 의연금으로 무기를 구입해 들이는 사업에 착수하고있었다. 콩알을 주으려면 콩밭에 가던지 아니면 콩털이를 하는 마당에 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른 어디보다도 제1차세계대전을 치룬 로씨아에서 무기를 구입해오는 것이 첩경일 것이니 서둘러야했다. 로씨아, 특히는 원동지방에서 아직도 백파(白派)인 꼴챠크의 잔여가 남아서 적파(赤派)와 대결하고 있었으며 특히는 제1차 세계대전에 출병하였던 첵코병들이 무장을 놓은 상황이라 수를 대여 구멍만 제대로 뚫는다면 그자들의 무장을 사들일수 있는것이였다. 서일은 현재 重光團에서 주축을 이루는 계화, 이홍래, 채오(蔡圭五), 량현, 최익항 등이 모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내놓고 토론하게 했다.

   모두들 생각이 서일과 일치했다.

   하다면 일본군이 아직 철거하지 않은 원동지구로 누구를 파견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자 계화가 거기로는 자기가 자주다녀 길도 아니  념려될 것 없다면서 자진해 나섰다. 서일이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보고 데리고 갈 사람을 자기절로 고르라했다. 그랬더니 계화는 자기와 생사를 같이해와서 아주 익숙하거니와 로씨아어를 구사할줄 알고 신체가 단단한 의병 김동평(金東平)과 요즘 만주로 방금 건너온 함북 경원출신의 날파람있는 청년 김학섭(金學燮)까지 해서 셋이 떠났다.  

   예견이 없은건 아니지만 장차 무기를 계속 사들일 생각을 하니 군비가 막대하게 지출될것이 빤한 사실이였다. 군비의 절대부분을 대종교도가 맡고있으며 약방도 꾸리고있지만 그만으로는 힘겨운것이였다. 서일은 정사흥(鄭士興), 강철구(姜鐵久), 김덕현(金德玄) 등을 불러 조선에 나가 군자금을 모집해 오라 임무를 주었다. 독실한 대종교도인 그들은 그지간 여러번 군자금모집에 나서서 성과를 적잖게 거둔 것이다. 

   서일은 그들을 보내고나서 이번에는 허중권(許中權)을 불러 함북도에 가서 남양, 종성, 회령, 무산 등 두만강연안의 변경구에 사리틀고있는 적의 병력배치 정황을 탐지해오도록 지시했다. 허중권 역시 처음부터 자진하여 정탐을 나선 사람인데 세심하고 담대하거니와 총명해서 여직 한번도 실수한적이 없이 임무를 완성했었다.

   중광단 본부의 소재지인 덕원리 마을을 비롯하여 주위의 20여리 이내의 경비를 이교성과 허활이 각각 무장대원 20명씩 데리고 책임지고있는데 5일전에 在間島日本帝國總領事館에서 파견한 성이 고씨인 중년의 첩자가 마을에 발을 들여놓다가 경비대원들께 잡힌 것을 내놓고는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서일은 잡힌 그를 고문하거나 죽이지 않고 내심하게 교육함으로써 되려 적의 동태를 료해하고는 정심까지 먹여서 돌려보냈다. 

   적의 첩자를 대함에 그는 이같이 남과는 달랐다.

<<孫子兵法>>“用間篇”에 “不知敵之情者, 不仁之至也, 非人之將”라했다.

   간첩을 리용하여 특수한 일을 해낼줄을 모른다면 그는 부대를 잘 이끄는 장령이라 할수 없는 것이다. 간첩을 리용함에 “因間”, “內間”, “反間”, “死間”, “生間” 5가지가 있는데 소위 “反間”이란 적이 보낸 첩자를 내가 되잡아 씀을 말한다. 서일은 이 술법을 알고있었던 것이다.

   重光團에서 기병대를 만든 목적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평원지대에서 적과 싸우기 위함이고 둘째는 원거리작전을 유리하게 하기 위함이였다.

   서일은 이홍래와 함께 각종의 전략들을 수잽해서 만든 <<百戰寄略>>책을 펼쳐놓고 기병과 보병부분의것을 읽었다.

   ◆ 欲戰者, 須得平易之地, 進退無碍, 戰則必勝.   

  《네가 기병일진대 싸우고싶거든 평지를 고르거라. 그러면 진퇴에 막힘이 없어 필승할것이다.》

   ◆ 凡步兵与車騎戰者, 必依丘陵, 險阻, 林木而戰則勝. 

  《보병으로서 적의 전차나 기병과 싸울시는 반드시 구릉이나 험요하고 수림이 무성한데를 골라야 하네라. 그런데서 싸우면 승리할 것이다.》

   이때 경비대장 이교성이 웬 손님 두분을 모시고 나타났다.

   초면인 그들은 둘다 나이가 중년줄에 든 지식인타입의 점잖게 생긴 사나이들로서 자기들은 公敎會(天主敎의 옛이름) 책임자라 소개했다. 한사람은 성명이 김 붕(金鵬)이고 다른 한사람은 김일봉(金一鋒)이였다.

  《앉으십시오! 앉으십시오!》

   서일은 뜻밖에 나타난 이교도들의 래의를 몰라 조금은 의아했지만 례절에 어긋남이 없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그가 맑고 투명한 유리컵에 보리차를 따라 마시라며 권하자 김붕이 먼저 입을 여는것이였다.

  《이번 국내에서 국민이 많이 조직돼서 일어난 시위를 놓고 정부측은 일부 불량자들의 책동에 의한 반란이라 규정하고 무력을 쓰는데 서선생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정부가 말하는 소위 불량자들이라는 것이 손병희, 권병진, 권병덕같은 천도교도가 아닙니까. 그외에도 평양목사 아무개, 이천목사 아무개, 승려 아무개, 예수교목사 아무개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는 형을 내리려합니다.  생각해보시오, 그들의 거의(擧義)를 어찌 불량하다 말할수 있겠습니까.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이지요. 우국지사를 턱없이 무함하고 비하하는 왜놈의 그 행실이야말로 무지막지하기가 실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인가합니다.》

  《우리도 집회를 가졌소다. 형세를 알려주어 인식을 바로하게 하느라말이우다. 그리고 토론을 해서 각자 몸가짐을 바로갖도록 하기도했습니다.》

   김일붕이 하는 말이였다.

  《방금 말씀하신 그 몸가짐이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건지?....》

   서일의 의문을 달았다.

   이때 밖에서 누군가 목청을 높혀 노래를 불렀다.

 

             흩어진 우리 정신 한점에 모여들어

             외길로 파고 가면 진리뚫어낸다

             한길로 마음모아 삼신만 꼭 믿으면

             신령이 통하여서 크나큰 힘이 난다                 

       

             흩어진 가는 햇살 렌즈를 통과하여

             한점에 모여들면 타도록 불이 난다....

            

   공교회의 김붕이 그 노래소리를 귀담아 듣고나서 머리를 끄덕였다.

  《옳은 소리요. 흩어진 햇살도 한점에 모이기만 하면 불을 만들지! 옳은 소리요, 옳은 소리!》

   이홍래가 말했다.

  《흩어진 남북극이 똑같은 방향으루 다같이 정돈되면 쇠마다 자력이 나지요. 아니그렇소?》

  《옳은 소리요, 옳은 소리! 마음을 한길로 모으면 큰힘이 나지요.》

   서일은 속으로 공교회의 두책임자가 오늘 찾아온것은 시국이 이러한 때에 뜻을 서로 합하려 함임을 점치고 입을 열었다.

  《두분선생께서도 아시겠지만 지난해 말에 우리는 벌써 만방이 다 알도록 선언을 내린바 있습니다. 거기에 립지를 명확히 밝혔던거든요.》

   이홍래가 중간에 보탰다.

  《우리들의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이루자는 그거요! 그러지를 않구 만세를 부른다구 그게 될번이나 한 일인가, 뭐? 안그런가유? 칼을 들고있는 회자수(劊子手)의 앞에서 살길이라면 오로지 그놈의 칼을 빼앗아 그자의 목을 도루치는 길밖에 없는거여. 안그런가유?》

   서일은 말을 더 하지 않고 이날의 “일민보”를 내놓았다.

   重光團의 “일민보”는 단이 창립되던 해의 벽두부터 한주일 3회 작은 판 4면에 순한글로 출간하고있는데 이날의 신문에는 요즘 만주각지 독립운동진영의 형세와 더불어서 3월 22일자 중국신문 “申報”에 보도된 <<조선에 대한 서방신문의 보도>>를 그대로 실었던것이다.

   그 보도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로이터 통신사 3월 18일 서울소식: 조선에는 아직도....이제 아래 몇가지를 적어 공개하는데 이는 정도(正道)를 벗어난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는 오점들이다.

   1. 조선의 통치자는 세계에서 가장 독재적인 정부이다. 이 정부에서 책정한 결의나 법률은 도오꾜오 국회나 일본천황에게 상소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조선총독의 독재권이 로씨아의 가장 암흑시기인 짜리황제때보다 더 엄격하다. 한국인들에게 조그마한 자유도 주지 않으며 한국인들에게 개인권리는 모두 박탈당했다.

    2. 조선의 일본정부는 야만적인 무력으로 조선인을 진압하였는데, 그들에게는 조그마한 이해심도 없다. 그들은 함부로 조선인을 총살했다. 한국민들이 자그마한 죄명만 쓰게 되면 장기구속을 당해야 한다.

    3. 일본정부는 한국인들에게 호소권을 주지 않았다. 호소할 일을 토론하든가 상정하는 것은 대역무도한 것으로 취급한다. 간첩을 파견하여...

    4. 5. 6. 7. 8.....

    상기의 사실들은 이미 실시된지 십여년이나 되는 사실들이다.        

  《보도가 과연 좋만!》

   김일봉이 입을 열더니 자기는 대종교의 敎報도 보고 重光團의 “일민보”도 가끔 얻어서 보군하는데 편집들의 기본소질이 높아서인지 다른신문보다 수준이 높게 잘꾸린다고했다.

  《서선생, 우리 힘을 합칩시다. 내 오늘 이 말을 하자구 온겝니다.》

   김붕의 이렇게 운을 떼자 김일봉이 한마디 보탰다.

  《그렇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깊히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린겁니다.》

   서일은 생각했다. 합치면 어떻게 합친단말인가, 공교회의 신도가 이제는 자기 교를 떠나서 대종교에 흡수되리라는건가? 그러자는건 아닐텐데....

   김붕이 마침 이쪽에서 질문하기전에 해석했다.

  《우리 두교를 놓고 보면 각자 신앙이 같지 않소만은 궁극적으로는 제 민족을 살려내고 독립을 이룩하자는게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허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교파라 하여 이단으로 취급하거나 백안시말고 대의를 놓고 한번 힘을 합쳐보자 그겁니다.》

  《참으로 고마운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이 처지에 이르러 무슨 리유로 단합하지 못하겠습니까. 대종교와 공교회는 단결하여 이제는 중광단만이 아닌 썩 광범한 범위에서 하나의 민간적인 항일단체를 만들어봅시다. 전 동만과 북만에다 우리들의 조직을 넓혀봅시다.》

   서일은 대방의 건의를 흔쾌히 접수했다.

   이리하여 3월 25일에 대종교와 공교회가 손잡고 3.1운동의 여세를 몰아 重光團의 기초우에서 동만과 북만의 교포들을 하나로 집결시키는 새로운 조직기구를 창립했으니 그것이 곧바로 正義團이다. 새로 탄생한 이 단체는 꼴꼴한 청년들을 골라서 가입시키면서 표면상 정치성을 띤 민간반일조직으로 공포됐으나 실상은 무장대원을 확장한것이였다.

    첫모집 때 명부(名簿)에 오른 단원이 1,037명. 50개분단 70개의 지단(支團)으로서 널리 분포되였다. 原重光團의 책임자들이 의연히 중축이 되였다. 

   正義團에는 젊은 인재들이 많았다. 서일은 김성에게 총책임을 맡겨  편집인원을 더 모집하게 하여 본래부터 꾸려 온 “일민보”외에도 순조선글의 “ 국보”를 하나 더 창간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전보다 더 많은 신문을 널리 배포하여 국세(局勢)를 제때에 알리면서 항일독립사상을 고취했다.

   이들보다 한발 앞어 3월 11일에 훈춘에서 이명순(李明淳) 외 몇이 주동이 되어 大韓國民會를 설립하였는데 會員이 무려 3000여명. 3월 12일에는 용정에서 구춘선(具春先)이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東間島國民會를 설립했는데 연길, 화룡, 왕청 3개지방을 5區會로 나누고 그 밑에 52개의 會를 둔 그것은 그들의 자치기관이였다. 한편 류하현에서 박장호(朴長浩) 등이 大韓獨立團을 설립하려고 남만의 망명의병들을 서둘러 규합하고 있었다. 

   연해주로 무장구입을 갔던 계화일행이 떠난 지 12일만에 총 98자루와 탄알 8상자(1만발)를 사서 말잔등에 싣고 돌아왔다.

   모두들 성공했다며, 수고했다며 무등 기뻐했다.

  《어이구! 이렇게 멋진 총을....》

   방금 압록강의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던 신입단원이 웃음꽃 활짝 핀 얼굴로 새것같은 베르단총을 들고 총구를 들여다본다. 총신의 안에 라선형이 있는가고. 서일이 복총(復銃) 얘기를 했더니 새삼스레 상기된 모양이다.

   1470년, 오지리의 한 사람이 복총을 발명했다. 총신의 내벽에 라선형을 만듬으로써 발사한 탄알이 돌면서 날아나게 한 것이다. 그러니 사정거리가 썩 멀어질뿐만 아니라 준확했다. 한데 돌면서 나아가는 탄알이 멀리가는 도리를 똑똑히 해명하지 못한다하여 교회는 그것을 제조하여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켜버렸다.

   그러다가 거의 300년이 지나 미국독립전쟁때에 이르러서야 복총이 다시금 제조되여 처음으로 거대한 위력을 과시한 것이다. 

  《무지가 언제나 진리를 매몰해버리는 것이다. 종교는 무지한 미신이 되지 말고 과학이 되어야 인류를 위해서 유익한 일을 할수 있는것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바로 발전으로 현실을 지도하는 그것이다.》

   서일은 한 말이였다.

  《우리는 사흘만에야 연해주에 들어설수 있었소. 그러구는 꼬박 엿새동안 이부락 저부락 돌아다니면서 총을 사들인거요. 지금 연해주의 경비를 일본군이 맡고있는데 치안이 극도로 혼란스러워 집집이 거의 총을 한두자루씩 휴대하는 처지라서 돈을 주니 여벌은 파는데....아무튼 운이 좋았지.》

   계화는 총을 쉽게 사게 된 리유를 간단히 말하면서 장차도 총은 아무튼 로씨아에서 사들일수 있을 것 같다고했다. 연해주로 가면서 계획에 없었던 말을 두필이나 사온데 대해서 서일은 아무튼 잘한일이라 했다.

  《우리는 아마도 말을 계속 사들이여야할 것 같습니다.》

   서일은 이같이 말해놓고 대방이 변해가는 낯색을 살폈다.

  《이젠 팔백필도 넘는데 그걸 자꾸사서는?....》

   과연 계화는 모를 일이라며 의문을 품는것이였다.

  《우리가 그래 이곳을 장기적인 근거지로 만들 것 같습니까. 아니요. 생각이 그래도 그렇게는 아니될것입니다.》

  《무슨소린지, 만주를 독립기지로 잡아놓은 우리가 아닌가.》

  《하기야 여기를 내여놓고 다른 어디에서 더 좋은 적지를 찾겠습니까만 요즘들어 전에 없었던 왜병이 부쩍늘고있는 소리를 듣지 않으셨습니까. 형세는 부단히 변하기 마련인즉 아무때 가서든 우리는 근거지를 옮겨야 할 막부득한 처지에 놓일수도 있는것입니다. 하니까 그때를 생각해서도 재력이 닿는껏 우리는 말을 사들여야할것입니다. 생각해보시오, 안그렇습니까? 과연 정말 이동이 생길시 가족과 짐들은 어떻게 운반한단말입니까. 치중병도 치중병이려니와. 안그렇습니까?》

   계화는 서일이 자기보다 궁량이 더 넓음에 한번다시 탄복했다.

   적정을 탐지하고 형세를 알아보느라 정보원을 여럿 내놓았는데 그들이 만주각지를 돌아보고 와서 봉천과 장춘은 물론 중동철도연선의 일면파, 횡도하자, 목릉, 해림, 수분하에도 전에 보이지 않던 일본군과 병영이 새로 보이더라 보고하였던것이다. 하여 서일은 경각성을 한결 높이게 된 것이다.

  《만주라해서 우리들이 마음놓고 지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아닌것입니다.   리는 날이 갈수록 적에게 포위되고있는 상황입니다.》    

   그의 판단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하여 협약국이 씨베리야에 공동으로 출병할데 관해서 맺아놓은 규정대로 한다면 각국은 병력을 7000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 하건만 일본은 그대로 하지 않고 병력을 3개사에 달하는 7만 2000명이나 동원하여 동북 각지에 널어놓았다. 그러자 미국등 여러나라가 항의를 하는데 따져놓고 보면 일본은 그럴만한 리유도 있었던 것이다.

   1918년 5월 16일, 일본은 중국 단기서(段祺瑞) 정부와 비밀리에 “中日陸軍共同防敵協定”이라는 것을 맺았다. 이 협정에 의하여 일본군은 합법적으로 중국 동북의 길림성과 흑룍강성 두성에 진주하게 된것이다. 협정에 보면 중국은 일본군에 지도(地圖), 정보와 군용원료를 제공하고 일본은 중국군대에 군화(軍火)와 군사기술인원을 제공하기로 되어있다. 일본은 이로부터 중국군대와 길림, 흑룡강 두성의 군사를 공제하게 되었던것이다.

   일본은 협정에 따라서 중국에다 대량의 군사인원을 파견하여 고문으로 박아넣었는데 동북정황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것을 보면:

    

    <<擔當東三省巡閱使顧問ㅡ日本步兵上校 本庄繁和町野武馬二武官,

       擔當吉林督軍顧問ㅡ日本陸軍步兵中校 鈴木美通武官,

       擔當黑龍江督軍顧問ㅡ日本砲兵上校 齋藤稔武官.

       各顧問都多年駐在中國南方和北方, 精通中國上下情況, 是日本陸軍內         杰出的中國通.>>  圓田一龜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각 고문들은 여러해동안 중국의 남방과 북방에 있으면서 중국 상하의 정황들을 정통하였는바 일본육군내에서는 중국의 사정을 꿰뚫고있는 걸출한 인물들이라는 그것이다. 일본무관은 심지어 고급지휘관의 자격으로 중국군대를 다스릴수 있는 “전략지휘권”까지 가졌으니 더 말해서 뭣하랴!

   중국은 승양이를 제집에다 끌어들여 스스로 화근을 심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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