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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대하역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5.
드넓은 황해(黃海)의 물결을 헤가르며 내처 남쪽을 향해 질주하던 대형의 기계배는 마침내 서쪽 산동반도(山東半島)의 끝단을 지나고있었다.
서 일, 조성환, 계 화, 황학수 이들 네사람은 다가 안동(安東)을 떠나면서 압록강에 가로놓인 철교를 볼 때도 발해만(渤海灣)을 감싸는 산동반도(山東半島)를 볼 때도 머리속에는 력사로 남겨질 지을수 없는 지난일들이 새삼스레 떠올라 착잡하게 엉켜붙었다.
왜적이 날조한 소위 압록강철교 락성식을 계기로 데라우찌 총독을 암살하려했다는 <<사건>>에 말려들어 그 얼마나 많은 조선의 지성인이 억울함을 당했던가! 김근영(金根濚)은 옥중에서 참혹하게 죽고 전덕기(全德基), 최광옥(崔光玉)은 병사하고 안창호, 이 갑, 이동녕, 이동휘, 이종호, 조성환은 로씨아로 만주로 미주로 각각 망명하였고 지어는 그때 新民會의 성원이 아니였음에도 투옥되여 악형을 받은 이가 한둘이 아니였던 것이다. 왜적이 동학란을 빙자(憑藉)하여 일으킨 갑오년의 淸日戰爭은 또한 얼마나 많은 중국 수병의 원혼(冤魂)을 발해만에 묻히게 만들었던가!
<<흰 것 검게 되기는 쉬우나 검은 것 희게 되기는 힘들다.>>
이것은 중국의 속담이다.
같은 동양인이요 린국이라 선의와 믿음으로 우의를 돈독히 키우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도리건만 그렇게는 못할망정 제패의 야망을 품고 침략만을 일삼고있는 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지독한 종족을 만들어 씨알머리를 인간세상에 남겨놓은건 조물주의 실수며 커다란 죄악이였다 고 누군가는 저주를 퍼붓기까지 했던 것이다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세계만방에 告하여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여 민족자존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嚴肅한 良心의 命令으로써 自家의 新運命을 開拓함이요 決코 舊怨과 一時的 感情으로써 他를 嫉妬 排斥함이 아니로다....舊思想 舊勢力에 기미된 日本爲政家의 공명적 희생이 된 不自然 又不合理한 착오상태를 改善匡正하여 自然 又 合理한 正經大原으로 歸還케 함이로다....
서일은 상해에서 보내온 3.1운동의 獨立宣言書를 꺼내놓고 다시보았다. 아무리 보고 생각해도 리해되지 않았다. 구원(舊怨)이 아니였으면 무엇인가? 과연 무엇인가? 오랜 원한위에 새 원한이 쌓여 압축되였다가 폭발한 것이 만세시위가 아닌가. 한데 왜서 舊怨을 감추려는가?....
이들 네사람이 타고가는 배는 “怡隆洋行號”였는데 그 배의 주인은 영국사람이였다. 그들은 배에 오른지 꼬박 4일만에야 마침내 상해포동부두(上海浦洞碼頭)에 도착했다. 떠나올 때 만주는 아직 땅도 채 녹지 않았지만 여기는 록음이 짙어 완연 다른절기같았다.
누구나 처음 와보는 생소한 도시여서 그들은 신고를 좀 한 끝에야 마침내 어느 한 졻은 골목에 <<夢來春>>이란 간판을 내건 주숙비가 그리비싸지 않는 려관을 찾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중국사람이 경영하는 하등려관이였는데 번대머리 주인은 조선에서 변이 생긴 덕에 자기는 요즘 돈을 번다고 내놓고 말하면서 웃는것이였다.
《자식! 남은 불행인데 네녀석은 돈을 버니 행운이라는 말이냐?》
서일은 화가 욱 치밀어 한 대 우려주고싶었지만 꾹 참았다. 여기를 버리고 가면 더 나은 곳을 찾을 것 같지 않았던것이다.
안방 어디선가 조선사람의 말소리 들려오는지라 서일은 귀가 솔깃해졌다. 들어보니 무슨 소식이 어떻고 어떻고 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말소리를 따라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 방에서 동포청년 댓이 모여 앉아 그날 발행된 신문을 펴놓고 떠드는것이였다. 서일이 그 신문 나좀 빌려봅시다했더니 청년 하나가 임자도 독립혁명을 하느라고 상해로 온거요 하고 시탐쪼로 물는것이였다.
《아따 그사람, 빌리라는 신문이나 줄게지 무슨 말이 그리도 많소?》
서일은 그가 건방지게 캐는지라 밸이 꼬여 말이 곱지 않게 나갔다.
《어이구, 나는 신분모르는 사람한테는 제 물건을 호락로락 빌려주는 성질이 아니오.》
신문에 소식을 내는건 대중이 보고 알라는 것인데 그게 무슨 값비싼물건이라고 빌려주고 안빌려주곤가, 그리고 그 신문 한 장 빌려주는데 신분까지 들먹일건 뭔가? 남을 무턱 의심하면서 얄망궂게 거만을 부리는지라 서일은 화까지 치미는것이였다. 이때 마침 황학수가 무슨일이냐고 다가와서 물어 사연을 알고는 대노하여 그 청년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돼먹지 못한 녀석, 어느 존전이라구 그 지랄이냐? 어른이 보시겠다면 곱다랗게 내놓을게지 뭐가 어쩌구 어째?》
그 청년은 그만 주눅들어 감히 대꾸질을 못하고 곁에 있던 동료가 신문을 내밀며 서일더러 보라했다.
그것은 상해에서 나오는 조간신문(朝刊新聞)이였는데 <<조선 독립운동은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는 표제하에 세가지 소식을 실었다.
(로이터 4일 북경발 소식): 조선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3월 29일 한국인들이 등주(鄧州)에서 독립소요가 일어나 살해당한 사람이 111명이나 되고 부상당한 사람이 2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본군경은 한국인 40여명을 역전 앞으로 끌어가 목만 내놓고 생매장했다. 가족들이 시체를 확인하려 하면 무작정구타하여....학교는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한 교회당도 소각되였다.
4월 3일 북경소식에는 시위자를 680명이나 끌어다 감옥에 감금하고도 일본경찰들이 또 123명을 경찰서에 구속했다고했다.
(로이터 3월 29일 소식): 서울 도처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동대문의 국립공업학교가 불에 탔고, 전번주일에는 남문밖의 8곳에서 화재가 났다. 이곳은 모두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주구(走狗)들이라 더욱이 한국인들의 저주를 받는다.
《옛소, 잘봤소!》
서일이 신문을 다 보자 돌려주면서 사의를 표시하니 신문을 빌려주지 않던 청년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입을 열고 선생님 제가 버릇없어 노엽혔으니 용서하시오 하고 사과를 했다.
황학수는 그의 태도가 고쳐지니 누그러진 음성으로 한마디 타일렀다.
《일후 주의하라구. 눈있어도 눈망울이 없어서야 쓰겠나. 이분은 만민이 우러르는 각하야. 보아하니 청년도 일편단심이나마 조국광복을 위해 바치자 맘먹고 이리로 온 것 같은데 우선 사람을 제대루 가려볼줄 아는 훈련부터 해얄 것 같아. 알았어? 그래야지 실수를 안하는거야.》
조선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통수계통을 제대로 가지고있지 않거니와 군중들이 당장 독립이 되기나한 것 같이 흥분하여 산발적으로 들고일어나다보니 희생자만 늘었지 소기의 성과를 거둘수는 없었다. 이같은 정황에서 이교헌(李敎憲), 윤이병(尹履炳) 등을 비롯한 여러 유지들은 임시정부수립을 서둘게 되어 지난 3월 17일에 모임을 갖고는 4월 2일에 인천 만국공원에서 13도대표자 대회를 열고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이를 국민에게 공포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한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한편 상해에서 임시정부설립을 주도하고있는 소장층의 애국지사들은 프랑스 조계지 보창로에 독립임시사무소를 두고 총무 현순의 이름으로 각국공사관에 독립선언서를 돌리는 한편 국내의 만세운동상황을 각국의 신문, 통신사에 제공하며 파리에 가있는 김규식과 미국에 있는 이승만에게 임시정부 수립의 계획을 보고하기도했다.
현순이 보낸 독립선언서와 회의통지서를 받고 떠나온 조성환 일행은 오면서 면목을 알게 된 황학수까지 넣어서 하나의 소집단이 되어 상해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지금 상해에는 거물급인사들이 륙속 모여들고있는 반면 사이비 독립운동가나 용기 하나만 갖고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자기도 한몫 들어 참여하려고 달려온 숙맥불면의 젊은 애국자들도 많았다.
조성환일행은 먼저 주숙부터 잡아놓고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보창로에 있다는 독립임시 사무소에 가보니 사람들이 가득차서 벅작거렸다. 겨우 현순이라는 총무를 만나서 만주 왕청에서 오는 사람들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등기부에 등록한 다음 그들은 거기를 나왔다.
이젠 신규식을 찾아가야했다. 상해로 온 그들이 여기와서 면목알고 가까운 사람은 오직 그뿐이였다.
《중광단이 이제 곧 우리들의 진영에서는 맨 첫번째의 독립군으로 발족하게 될 터인즉 선도적 역할이 대단히 큰겁니다. 한즉 제씨들은 서단장을 의례 무력부대 수장으로 대함이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분은 또한 우리 대교에서도 종사(宗師)요 엄연히 수령의 지위에 있는 분으로서 이번의 선언을 주도하신것입니다. 그러한즉 우리는 그 위훈과 자격과 인격을 봐서도 의례 각하라 불러야 명분에 맞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에 유지들은 왕청에 모여 獨立宣言을 할 때 신규식의 제의에 의하여 서일을 각하(閣下)라 경칭(敬稱)하여 독립혁명진영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그의 위상(位相)을 높이기로 하였던 것이다.
서명때 신규식은 원명을 쓰지 않고 신성(申聖)이라 교명(敎名)을 썼다.
그는 서일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거니와 대종교가 중광하자 맨먼저 입교한 사람이다. 그러니 교령(敎齡)을 놓고 봐도 서일보다 3년이나 더많은 것이다. 신규식은 서일이 입교하기 전인 신해년에 벌써 지교(知敎)의 질(秩)로 초승(超陞)되여 大倧敎本司의 경리부장과 종리부장을 역임하였었고 그해의 겨울에 상해로 이주하면서 해외의 시교(施敎)를 스스로 책임진 것이다. 1914년 5월에는 상교(尙敎)로 승질(陞秩)하여 시교사(施敎師)로 되었다. 지금 대종교의 서도본사를 책임지고있는 그는 상해에서 포교로써 교포사회를 묶어 세우는데 성공했거니와 大倧敎 사업의 일환으로 상해에다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여 교포 청년들이 중국과 구미(歐美) 등 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예비교육을 시키는 한편 또한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그는 중국 각지의 실력자들인 이열균(李烈均), 당계요(唐繼堯), 정잠(程潛), 노영상(盧永祥), 왕탁부(王卓夫) 등과 련락하여 우수한 청년을 뽑아 보정군관학교, 오성상선학교, 호북강무당, 운남강무당, 운남군관학교 등에 보내여 장차 각 독립군의 주력이 되어 그를 이끌고 나아갈 군사인재를 배양하고있었다.
독실한 대종교도요 열의높은 독립운동가인 그를 어찌 추급(追及)하랴!
조성환, 서일 등 네사람은 박달학원을 찾아가 거기서 마침 신규식을 만났다. 신규식은 여러날을 내내 임시정부수립을 위한 준비공작을 협조하느라 뛰여다니다가 쯤이 생기니 박달학원에 와 전에 교수로 초빙해온 농죽(農竹), 모대위(毛大衛) 두 사람과 만나 교학문제를 놓고 담화하고있는중이였던것이다. 온다는 전보도 치지 않고 문득 나타난지라 저으기 놀라면서 일어나 반기였다. 신규식은 량쪽을 인사시키면서 농죽은 중국국민혁명의 선구자(先驅者)고 모대위는 미국화교(美國華僑)라고 이쪽에 소개했다.
《일본에서 이광수, 국내에서 우 혁, 김 철, 서병호. 씨베리아에서 여운형....3월하순까지 적잖이 왔고 이제 이동녕, 이시영, 이회영, 조완구도 곧 올것이니 임시의정원 회의를 조속히 개최할 것 같습니다.》
신규식은 상해에서 기다리고있는 인물들이 육속도착하고있어서 임시정부 수립의 기운은 촉진된다고 하면서 서울의 경성 독립단에서는 이봉수(李鳳洙)를 파견하여 임시정부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기까지 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 모두가 자기의 정부를 세울 것을 절박히 바라는것일세.》
조성환이 이렇게 말하자 뒤를 이어 서일이 신규식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나의 유일한 임시정부를 구성하자면 이제 진통을 겪게될거요.》
《그럴거야. 서로 주의주장을 놓고 의견이 섞갈리기 시작하면야.》
서일은 지난해 獨立宣言書 서명모임이 있어서 왕청에 왔던 신채호를 생각했다. 불의(不義)가 란무하는 이 세상에 머리굽히고 살고싶지는 않다면서 세수를 해도 꿋꿋이 서서 하던 그도 올것이다.
《신채호하고는 련락이 자주되오? 언제쯤 도착하리라오? 보고싶구만.》
《우리 백포종사님을 빨리만나고싶어서도 늦어야 래일 저녁전으로 들어서게될거야. 북경을 떠났다고 전보가 왔다니까.》
신규식이 주숙문제를 꺼내기 전에 계화가 그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예관(睨觀) 동생은 요즘은 내내 눈코뜰새없이 바삐돌아치리라 믿소. 더구나 회의출석자의 주숙까지 일일이 안배(按配)하자니까. 그래 우리는 동생의 그 수고만은 덜어드리려고 자체로 숙소를 잡았으니 걱정마오.》
신규식은 낯색이 돌연 변했다.
《아니 형님! 거 무슨말씀을 하시는겁니까? 우리지간에 그럴 처지란말입니까? 안됩니다, 제 집을 놔두고서 내가 형님들을 려관에 주무시게하다니. 남이 들어도 웃을 일이지. 그건 절대안됩니다.》
그가 이 동생이 아무리 못난들 잠자리 하나 드리지 못할까봐 그러십니까 하면서 야단을 떨었다. 하여 그들 네사람은 <<夢來春>>려관에다 잡았던 주숙예약을 당장 물리고 신규식의 집에서 류숙하게 된것이다.
《여기서 임시정부수립을 위한 회의가 열리게 된다니 우리 대종교들이 그 누구보다 기뻐합니다. 방을 내놓아 회의참가자들을 류숙시키는데 아예 식사마저 무료로 시키는 집들도 있습니다. 시교회가 나서서 장악하고있지요. 회의기간에 드는 비용일절은 이제 남도본사가 담당할것입니다.》
신규식이 자부심갖고 말해서 모두들 감격했다.
국토가 촌토척지(寸土尺地)도 회복되지 못한 처지임에도 남의 땅 상해의 일각(一角)에서나마 당장 민족의 이름으로 大韓民國臨時政府를 수립할 수 있게되는것은 그의 헌신적인 불면불휴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어느모로 보나 믿음직하게 초창기 임시정부를 탄생시키는 산파역을 맡아하고있는 그는 임시정부의 기둥이였다!
신규식은 이번 임시정부를 성립하는 일로 로씨아와 일본과 구미(歐美) 등지에서 왔거나 이미전부터 와있는 사람을 합치면 거의 1천명은 잘될것이라면서 이제 개회를 하면 뜻대로 순리롭게 진척될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중에는 수양이 모자라고 과격적인 자도 있을것이라 서일은 말했다.
《십인십지 사분오렬(十人十志 四分五裂)로 되면야 그렇게 되기 십상이지, 안그렇소? 일본이라는 흉악한 강적을 대상해 싸우려는 독립투사들이 남의 나라 한귀퉁에 와서까지 투합이 안되여 영웅주의나 부리면서 콩이요 팥이요 다투거나 방해를 놓는다면 회의는 기필코 난항(難航)을 겪을것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2천만 민족이 오늘에 와서 이 꼴 이 지경에 이른데는 우리 자신이 반성해볼 바도 많지. 자기만이 옳다고 독단을 부리면서 군중을 무시하거나 남을 깔보는 고약한 영웅심과 배타심, 그래서 무리를 따로 짓기 좋아하는 빌어먹다 오그라질 그놈의 당파심!》
신규식이 동감하면서 말했다.
《돌이켜 보면 분통만 터질 일이였지. 안으로는 세도정치와 외척집권으로 정부라는 것이 정권쟁탈의 도박장이 되었고 청, 아, 일의 국세각함(國勢角函)에 식민강도의 살육장으로 화하였다가 마침내는 경신년의 국치를 당한게 아니겠소. 따져보면 그 근원이 우리 민족이 자신의 오점은 반성하기 싫어하고 자랑하기나 좋아하는 렬근성에도 있었던거요.》
민족의 열근성을 꼬집으니 모두들 심정이 무거워지는지라 말이 없는데 황학수가 머리돌려 사위를 휘 보더니 문득 제의하는것이였다.
《회의가 오늘 당장 열리는 것이 아니요 독립이 당장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즉 우리 맘놓고 시내구경이나 한번 함이 어떠합니까?》
모두들 참 그러는것이 좋겠다했다. 신규식은 상해에 오면 제일 볼멋이 있는건 그래도 외탄(外灘)일거라면서 시내구경을 시켜주겠노라했다. 그는 상해를 잘알고있었다.
국토면적이 조선반도의 근 50배에 달하는 중국은 워낙 대국이여서 그만큼 인구도 많고 도시도 많았는데 그중 지금 한창 국제적인 신형의 대도시로 급부상하고있는 상해는 눈부시게 번화했다.
신규식이 향도를 하면서 이것 저것 설명을 잘해주어서 모두를 상해에 대한 료해와 인상을 깊게 가지게 하였다.
1845년 파부얼이 상해 도대(道臺) 궁모구(宮慕久)를 핍박하여 “상해조계지규약”을 체결함으로써 소주하(蘇州河) 이남으로부터 양경병(洋涇兵)에 이르는 837무의 땅을 영국 조계지로 만들어버렸던것이다.
이같이 조계지를 설립하자 세계 각지의 상인, 은행가, 외교관, 전도사, 모험가들이 앞다투어 많이 몰려들기 시작해서 적막하던 외탄(外灘ㅡ보통 上海灘이라 부름)은 삽시에 들끓기 시작했다. 갈대늪은 사라지고 건축공사들이 가득 들어섰으며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로동자들의 영치기 소리에 힘을 실어주어 상해의 적막을 깨버렸다. 오랜 세월을 두고 배끄는 인부의 발을 욕되게 만들던 험한 오솔길이 석탄재와 자갈과 모래로 다져진 평탄한 아스팔트길로 변해버렸다.
외탄에는 붉은 벽돌담이 생겨났고 회색기와를 얹은 2층의 양옥들이 점차 빼곡히 들어 앉기 시작하면서 영화관, 해관, 양행(洋行ㅡ서양은행), 은행, 음식점, 오락장들이 가득생겨났다. 중국인,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일본인, 로씨아인, 유태인....세계 각국에서 지은 양식이 다양한 건축물들이 저마끔 위엄과 사치를 나타냈다. 길이가 3리가량되는 외탄은 클래식, 뉴 클래식, 파라크식, 고딕식, 르네상스식, 절충주의식 등 부동한 풍격을 갖춘 건축물들이 휘황스레 장식했다.
상해의 제1빌딩은 아세아빌딩이다. 그것은 번화한 두갈래 길 교차점에 7층으로 된 커다란 파라크건물인데 외관은 절충주의풍격으로 되었다. 정면은 파라크식으로 되어있고 정문의 좌우량측에는 각각 아이오니크 기둥이 있으며 안쪽문에도 작은 아이오니크 기둥이 있거니와 문위의 반원형 천장에는 꽃무늬가 조각되여 현란한 클래식미를 보여준다. 이 빌딩의 본래 이름은 맥크베은빌딩이였다. 그런것이 1917년에 주인을 곱잡아 바꾸는 당중 영국아세아화유회사(亞細亞火油公司)에 수매되여 아세아빌딩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외국회사로는 그 위풍이 대단해보이였다.
가슴사무치도록 몹시 부러웠다.
《언제가면 우리도 제손으로 저런 건물을 일떠세워볼가? 2천만 우리의 배달겨례가 손잡고 일제와 싸워 나라를 되찾을 때면, 우리가 제 주권을 행사하는 그때가 되면 될것이다. 한데 그날은 언제오려나? 아아!....》
서일은 잠시나마 감미로울 장래를 머리속에 떠올려보면서 스스로 격동하기도 하고 깨면 꿈같은 허실같기도 해서 탄식했다. 이럴때면 그는 가슴이 쓰리도록 미여지군했다.
이틑날 오전에 이동녕과 이시영이 상해로 왔고 저녁켠이 되어서는 신채호도 도착했다.
《종사께서 행동이 대단히 민첩하시네그려!》
신채호는 서일을 만나자 기뻐서 포옹했다.
《난 하루를 앞어왔을 뿐 단재(丹齋)선생도 늦은축이야 아니지. 귀체는 무강하시오?》
《한배님의 덕분에 회의를 보게됬지요. 종사께서는 회의에 내놓을 어떤 좋은 의안을 갖고오셨는지요?》
《난 회의에 불참할 생각이요.》
《아니 왜서?!》
신채호는 뜻밖이라 놀랬다.
《조선생도 나와 함께 오시였소. 이제 김동삼선생도 이시영선생도 올거구 조완구, 박찬익이도 올건데 거기에 신성하고 단재선생까지 하면 대종교인으로 참가수가 적은 축이 아니잖소. 난 교리연구나 좀 더 깊이하면서 어서 무장준비나 할 생각뿐이요.》
《아니 그래 임정창립에는 아예 참여를 않으시렵니까?》
《나의 의사를 형제분들이 반영해주구려. 그러면야 참여한것과 다를바뭐겠소. 온김에 여러 지사들을 만나 독립진의 실태나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돌아갈가하오.》
그 담음날 김동삼과 조소앙이 함께 왔고 뒷이어서 조완구도 도착했다.
서일은 독립운동에 선줄을 끌고있는 인사들 가운데서 손꼽히는 거물급인물들을 하나하나 거진만나보고 담화도 나누어 보았는데 임시정부를 조속히 세워 유일한 민족정부로 만들자는데는 주장이 일치하나 임시정부가 복벽(復辟)이 되느냐 공화(共和)가 되느냐에는 견해나 입장이 조금씩 엇갈렸다. 그러나 그것은 큰문제 없이 해결될 것 같았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 이미 일어났던 신해혁명이나 로씨아의 10월혁명이 앞으로의 방향이 무엇임을 시사해주고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병전쟁의 전통을 계승하여 군사적인 측면을 중시하면서 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이로써 북간도의 항일민족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서일은 자신이 복벽적 민족주의자임을 잘알고있는 것이다.
며칠안되여 4월 10일이 돌아왔다. 서일과 계화는 상해시의 야경을 구경할 겸 프랑스조계의 김신부로(金神父路)에서 임시정부수립을 위한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이 개회된다니 회장의 외모라도 한번 구경하고 돌아가자면서 나섰다. 이때는 대지에 이미 어둠이 깔리는 밤이였는데 출입문가에서 외인의 출입을 막느라 파수를 서는 사람들 중 하나가 집안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하는 말이 회의장의 분위기가 매우 험악하다는것이였다.
하여 계화가 대체 무슨일이 생겼느냐고 물으니 그가말했다.
《이봉수하고 한위건이가 칼을 뽑아 들고 <들어라, 만일 오늘밤 임시정부수립이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할 때는 아예 함께 자폭해버리구말테다>면서 정문을 지키고있는거요. 원 한심해서!》
서일도 계화도 놀래는 한편 어처구니없어서 그저 웃고말았다.
회이장에 들어가 칼을 빼들고 위협적인 시위를 하고있는건 젊은 행동파였다. 한데 이틑날 정오가 거의 되어 올 무렵 그들은 먼저 집에 돌아온 신규식으로부터 더 험악한 소리를 듣게되였다. 간밤 29명의 의원이 참석하에 시작된 회의가 진행중 평정관(評定官)인 신채호가 의견충돌로 청년들에게 감금당하는 변을 당했다는것이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감금을 당하다니!》
계화가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펄쩍 뛰였다.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선출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게 됐던겝니다. <절대 안된다, 남에게 위임통치를 청원하였던 사람을 어떻게 수반으로 앉힌단말인가. 2천만의 국민중에 그의 령도를 바랄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절대 안된다. 그는 자격없는 사람이다!>하면서 채오가 들고일어났지요.》
신규식은 자기역시 신채호와 주장이 같았는데 론쟁이 격렬했노라했다.
이승만은 미국 윌슨대통령에게 한국의 위임통치를 청원한바있었다.
서일은 무척 흥미가 동하는지라 그래서 어찌되였느냐 재우쳐 물었다.
《흥분된 토론 끝에 결국은 이승만이 선출되고말았지요. 그리되자 채호가 퇴장을 하자고 자리를 박차구일어났지요. 그러니 소동을 피운다며 그들이 그리했던것입니다.》
신규식이 하는 말을 일변 들으면서 장면을 그려보니 웃음이 나왔다.
몇분지나지 않아서 신채호가 조성환이와 같이 돌아왔다.
서일은 나오는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나와 계화형은 회의상황을 다소들었소. 밸을 부렸다며. 옳았소. 주장이 옳다면야 끝까지 내뻗혀야지. 남에게 통치권을 맡기자는 사람이 민족자결심이 있으면 얼마있겠소. 이승만이 정녕 그런 사람이라면 나도 못믿겠소.》
소동을 일으키면서도 회의는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계속진행되여 이날 오전 10시에 이르러 끝맞히였는데 임시헌장을 의결하고 정강을 공포하여 이로써 大韓民國臨時政府의 수립을 보게된 것이다.
大韓民國 臨時憲章 宣布文
人民一致 中外協應 漢城에 義를 일으킨 以來 三十餘日間에 平和的 獨立을 三百餘州에 宣言하고 國民의 信義로서 完全히 組織한 臨時政府는 恒久히 自主獨立의 福利를 我子孫黎民에게 世傳하기 爲하여 臨時議政院의 議決로서 臨時憲章을 宣布함.
임시헌장은 10개조였다.
臨時議政院 議長: 李東寧
臨時政府 國務總理: 李承晩
內務總長: 安昌浩,
外務總長: 金圭植,
法務總長: 李時榮,
财務總長: 崔在亨,
軍務總長: 李東輝,
交通總長: 文昌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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