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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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혈 백포종사 서일 일대기 제3부. 11
2011년 10월 28일 12시 30분  조회:4834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역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1.

   서일은 하나의 거창한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혼자만이 그런것이 아니였다. 서명자 모두의 기분이 그러했다.  

   중광단에서는 이민족(異民族)의 전제와 압박에서 해방되여 자주독립과 평등의 바탕위에서 공화체(共和政體)에 의한 민주의 자립을 선언했다. 이것은 명백한 時代的인 요청이였다. 복벽적 민족주의가  아직도 성행하는 때에 이같은 주의주장이 나온것은 하나의 대담한 돌파(突破)로서 개혁이였고 혁명이였으니 진보가 아닐수 없다. 이 선언서의 력사적인 의의와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이번의 선언은 대종교가 중심이 되어 만주, 로령과 나아가서는 미주지역의 독립운동세력까지 포함하여 거족적인 차원에서 전개된 것이다. 선언문은 그 방략에서 볼 때 종래 대일민간외교(對日民間外交)로써 동양평화를 실현하려했던 라철조교의 주장과는 달리 민족종교의 바탕위에서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결단코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고야말겠다는 굳은 결심이 도도히 맥박치고있는것이다.  

   여기는 항일독립운동의 책원지다. 무오독립선언(戊午獨立宣言)이 비록 대종교간부가 중심이 된 중광단(重光團)의 선언이기는하지만 이는 분명 한민족(韓民族)전체의 의지를 표현한 대일항쟁선언(對日抗爭宣言)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거창하지 않겠는가?...

   총본사에서는 소를 잡고 찰떡도 쳐서 서명자들을 호궤(犒饋)하였다. 그야말로 용이치 않은 모임이건만 종당에는 리별을 고하고 각자 제 위치로 돌아가야 했던것이다.

대일항전(對日抗爭)을 준비해야한다.

   이번 모임에서 장차 맞이하게 될 독립전쟁에서 주역을 담당하게 될 군사인재를 배양함에 신흥학교가 걸머져야 할 임무는 더 무거워진것이라 하여 교련진을 강화할데 대해 의론이 되었다. 서일은 그 학교 교장 이광의 요구에 의하여 신팔균을 그곳에 보내기로 대답했다. 홍충희가 김규식을 데려오리라며 조선에 나간 것이 아직돌아오지 않아 중광단(重光團)도 교련원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보다 큰 국면을 생각하여 그같이해야했던 것이다.

   이번 참석자중 년로자로 첫손을 꼽을 사람은 이범윤이였다. 큰 키골에 몸이 여전히 메마른 편인 그가 올해 나이 62세니 환갑이 지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기력이 있고 정력도 흐트러짐이 없이 포만한 상태여서 좋았다. 그는 지금 명월구에서 자기처럼 지난날 의병을 지낸 진학신(秦學新), 최우익(崔宇翼) 등과 손잡고 동산재기를 준비하고있는 중이라 한다.

   어언 10년 세월이 흘러갔다. 서일은 28살을 먹던 해에 로씨아에 건너가 “대동공보사”의 유진율(兪鎭律)과 함께 하선마구(哈什媽溝)에 자리잡은 이법윤을 방문하던 일을 잊을수 없다. 600명의 의병진을 바탕으로 최재형과 함께 사포대(私砲隊)가 사용하던 무기를 가지고 대일전을 전개하고있었던 이범윤은 그때 유진율의 소개로 서생티나는 서일을 알게 되어 어느덧 의중지인(意中之人)이 된 것이다.  

  《내 이 여옥이가 점괘를 바로맟혔지! 병가일패(兵家一敗)는 인지상사(人之常事)라면서 싸움에 패했다해서 의기소침해 말라던게 자네가 아닌가. 나를 고무하고 상병벌모(上兵伐謀)라면서 모략이 있어야한다구 깨우쳐주더니만 자네가 이제는 과연 장령이 됐네 그려! 하하하....》

   로인이 만나자마 무람없이 이러면서 서일을 얼싸 안아주기까지 해서 모두들 두사람은 어느때부터 저렇게 자별한 사이로 되였을가며 놀랬다.

   이범윤은 10년전에 서일이 로씨아 연해주에 건너가 한고향 사람인 최재형의 집에 머므르면서 자기와 유인석, 홍범도, 안중근, 황병길 등 여러 지사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는 항일무장은 모래알같이 제가끔 흩어질것이 아니라 의례 하나로 통합해야 함은 물론 강적과 싸워 이기자면 련합작전을 해야한다고 선전해서 깨우치게 한 일을 말해 모인 사람 모두에게 나라와  백성을 근심해온 서일의 애국충정과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찍부터 발분(發奮)한 일단락을 보여주었다. 한편 또한 이로써 그의 감정과 사상은 하루 아침에 문득 형성되여 굳어진 것이 아니였음이 립증하기도했다.

   이번 모임에 이목을 크게 끈 다른 또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이범윤에 비해 나이가 33살이나 적은 김좌진이였다. 17세때 벌써 대한제국무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소문과 같이 그야말로 체구가 장사다운 거인이였다.

  《만주로 오기 며칠전이였지. <양반강도의 출현>이라는 기사가 신문에 나서 내가 그걸 읽어 본게 기억이 나누만. 돈의동 아무개 댁에 한명의 괴한이 들어 현금 5만원을 요구하므로 거절하였다구 했던가?... 정해식로인이 오시여 자상히 말을 해서 그 <괴한>이라는게 누구였다는 걸 알게 됐어. 세월이 류수같아 어언 칠년이 지나 오늘에야 내가 신문인물로 유명해진 그 <괴한>을 직접보게 됐구려! 하하하....그래 어느때 건너왔다지?》

  《이젠 몇 달이 잘 됩니다.》

   김좌진은 서일이 물어보는 말에 지금 잠시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삼달양행이 자리잡고있는 봉청가까이의 봉황성(鳳凰城)에 있다면서 돌아가서는 자기도 곧 무장단을 하나 세워볼 생각이라 속심을 털어놓았다.

  《의례 그래야지. 기다리겠소. 그때 가서 우리 손잡고 싸워봅세.》

  《서단장님! 저를 여기에 부르시고 용기까지 돋구어 줘서 고맙습니다.》

   김좌진은 허심하게 인사차림을 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잠시 사색에 잠겼다.

   지난해의 8월하순,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각 도의 광복단핵심을 규합하여 자금을 모으면서 반역자와 악질적인 친일관리들을 응징했는데 성원들이 발각되여 하나 둘 련이어 체포되기 시작했다. 이로하여 광복단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자 김좌진은 단장 박상진(朴尙鎭)의 뜻에 의해 만주총사령으로 임명되여 급히 건너온것이다. 동지들을 잃고 복수다운 복수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몰리다싶히 하여 만주벌판에 들어섰으니 분한 마음이야 더 말할 것 있는가. 때로는 속이 비여 허허하기도했다. 

  

                刀頭風盡 關山月 劍末霜寒故國心

                三千槿域 倭何事 不斷腥麝一帚尋    

               (적막한 달밤 칼머리에 바람은 찬데

                칼 끝에 찬 서리는 고국생각 돋구누나

                삼천리금수강산에 왜놈이 웬 일인고

                더러운 세상 한칼로 쓸어버릴 길 없나)

               

   이것은 그가 얼마전에 지은 시였다. 혼자서 상대도 없는 칼부림질은 또한 얼마나했던가.

  《왜적아! 나를 보아라! 왜적아! 나를 보아라!》

   어느날 아침에는 천지가 꽁꽁 얼어붙는 매서움속에서 웃동을 벗어 메친 채 동쪽을 향해 웨쳐대기까지 해서 아직도 잠속에 있는 동네 사람들을 깨웠다. 칼은 떨건만 아직은 쓸곳이 없었다.

  《두분 다 아마 초면이겠죠?》

   신흥학교의 교관 이세영이 이장녕과 같이 지나다가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이장녕역시 한말의 무관으로서 경술국치(庚戌國恥)후에 만주로 건너와 지금은 신흥학교에서 교관으로 있었다.

  《서선생께서 수련생도의 사상교육을 무엇보다 선차에 놓고 중시해야한다고 못을 밖고 나왔는데 나역시 두손들어 찬성이요. 사상이 총을 지휘하니까. 안그렇소. 그걸 잊고 사상교육을 등한시했다가는 정말이지....》

   이장녕이 하는 말이였다.

  《이날을 보지 못하고 먼저가신 선렬들 앞에 우리가 불민하여 스스로 치욕을 당할 짓이야 하지 말아야지. 안그렇소, 서단장!?》

   이세영이 심각한 낯색을 지으면서 동을 다는것이였다.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모두들 새로운 용기로 즉각 궐기할 준비를 하하리라했다. 그러는 중 어떤 사람은 무장준비만을 강조했지 사상교육은 홀시하는 경향이 부지중 였보여 서일은 미간을 찌프렸다가 그것을 첫 자리에 놓아야지 망각하거나 홀시해서는 절대안된다고 강조했는데 이 두 사람은 지금 그 일을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였다.

   서일은 자기보다 10여세 우인 이세영을 다시금 눈여겨 보았다. 그는 청양사람으로서 일명 유흠(維欽) 또는 천민(天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얼굴이 갸름하고 눈섶은 짙은데다 남달리 두끝이 아래로 쳐진 까만 팔자수염을 매짜게 자래워 마치 사나운 삵괭이같이 날파람있어 보인다. 그는 23년전 홍주에서 기의하였다가 이승우(李勝宇)의 간계로 패했고 민종식(閔宗植)과 함께 기의하여 참모장이 되어 싸우다가 또다시 곱잡아 패하고는 붙잡히우기까지 하여 한동안 류형살이를 했다. 그러다가 거기서 풀려나와서는 독립단의군부(獨立團義軍府) 충천, 전라, 경상 3도의 사령관을 력임했고 6년후에는 함경, 평안, 황해의 독립단의용부 총사령으로 있다가 만주로 망명한 것이다.

   그가 서일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손에 무장을 들기에 앞서서 사상과 주의주장이 견정해야 한다면서 어깨겯고 싸워왔던 두 의병장 이은찬(李殷瓚)과 이린영(李麟榮)의 죽음을 애닯아했다. 허위가 총수로 되어 서울공략을 계획할 당시 의병 24진을 배비하기로 한것도 이은찬의 지략이고 각군장령을 적재선임(適材選任)한것도 이은찬의 지략에서 나온것이였다. 한데 그는 동대문밖에서 패한 후 단신으로 재거를 결의하고 부하 여럿을 데리고 서울에 진입했다가 그만 체포되고만 것이다. 

  《그인 법정에서도 굴함이 없었다는구만. <내가 대소 40여전에 원쑤 470여명을 죽었으니 속히 나를 죽여라. 나의 의거는 동양평화를 위함이니 금일에 와서 어찌 자신의 영욕에 언급하랴>면서 통매(痛罵)하고 순사했다오. 그인 그렇고 격문을 내여 수십만의 의병을 모아 한때 군세를 크게 떨쳤던 이린영 역시 서울시내 각국영사에게 공한(公翰)을 보내면서까지 공략을 준비했지만 기밀을 탐지한 적이 몰아닥치는통에 그만 실패하고말았지. 그는 황간금계(黃澗金溪)에 잠적하였다가 체포되여 순사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요. 의지와 사상을 통일시켰더라면 투항자도 변절자도 나지지를 않았을텐데. 안그렇소?》

  《옳은 말씁입니다. 국민 모두가 사상이 통일되였더라면 국치를 당하지 않았을것이며 오늘에 이르러 이처럼 오욕에 치를 떨지도 않을겁니다.》

   서일은 격분할 때면 매양 그러하듯 목청을 가늘게 떨었다. 살아 남은 의병장들과 한자리에서 동산재기를 계획하게 되니 행운스러우면서 선배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는 그였다.

   (쌓은 공적이야 마멸되랴. 이분들을 아무때든 아껴줘야한다.)

   활자로 인쇄된 무오독립선언서는 조선 내지와 로씨아, 만주, 미국 등지에 널리 배포(配布)됨과 동시에 조선총독부는 물론 서울시에 있는 각국 령사관과 일본정부에까지 전달되였다.

   

               이천만 동포야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총을 메고 칼을 잡아라

               잃었던 내 조국과 너의 자유를

               원쑤의 손에서 피로 찾아라...

   

   이것은 이번 서명집회기간에 창작된 “봉기가”였는데 마치도 불찌가 거센 바람을 탄 듯이 널리 퍼지면서 점점의 불꽃을 지펴놓기 시작했다.

   거퍼 이틀이 넘지 않아 중광단을 찾아오는 사람이 련이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맨먼저 찾아온 것은 전성호(全盛鎬)였다.

   보초선에서 우선 수색검문을 받고서야 중광단실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었던 그는 한창 혈기방장한 청년이였다.

  《게 앉소. 내가 바로 서단장이요. 그대는 대체 누군가?》

   서일은 굳이 자기를 만나보구야 돌아가겠노라했다는 청년을 아래우로 훓어보고나서 입을 열어 물었다.

  《예, 저는 성명이 전성호인데 호(號)는 철단(鐵丹)이고 을미년생입니다. 출생지는 경성이구요.》

  《을미년생이라? 병신, 경유, 무술, 기해.... 무오라. 그렇다면 올해 나이는 23이구만.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서단장님! 저는 국치후에 동만에 건너와갖구 내내 떠돌이를 하고있습니다.》

  《잠간만! 잡간만! 그래 아직 정처도 없다는 소린가?》

  《아니요. 정처야 있지만 귀속할만한 단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무슨 소린지? 그래 아직껏 사귄 친구도 없단말이요?》

  《있습니다. 밥을 굼더라도 친구는 사귀여두라잖습니까. 임국정이 하고 한상호, 윤준희, 최봉설.... 그 몇이 바로 나의 친굽니다.》

  《가만있자, 장재촌 명동중학교 학생아니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겠지! 그러길래 어디서 딱 본 것 같지.》

  《서단장님께서 언제 한번 장재촌 명동중학에 왔다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내가 거길 갔다왔지. 건데 왜서?.... 공부는 집어치웠소?》

  《예. 갑갑해서 우린 그만뒀습니다.》

  《무슨소린지. 한데 왜 혼자왔소? 저쪽 친구들은 다 뭘하구?》 

  《그들은 저....제가 먼저와갖구...》

   서일은 전성호가 대답을 인차못하고 뜸을 드리면서 어물거리는 모양을 보자 속으로 그만이 먼저 찾아온 뚯을 건너짚으면서  캐물었다.

  《중광단에 가입하자해두 실정이 어떠한지 몰라 우선 맥이나 짚어보자구 온거겠지? 아니그렇소? 먼저와서.... 그렇겠지! 그래 원래는 뭘 할려구 궁리들을 했었는데?》

  《성군작당이 되면 결사대 같은 것을 하나 조직해갖고 죽기내기로 싸워볼 생각입니다. 안중근을 본받아 청사에 기리남길 대공을 세워볼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우린 다가 자유적인 작전을 선호합니다.》

  《오, 그렇군!....자유적인 작전을 좋아한다?... 》

   서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뚜벅 뚜벅 거닐다가 입을 다시열었다.

  《방금말한 것 같이 과연 주의 주장이 그러하다면 중광단에 들어올려말구 맘먹은대루 먼저 실컷 자유적인 작전을 해보는것도 좋암즉하네. 그역시 적대투쟁을 함에는 하나의 지극히 필요한 방법이니까. 안그렇소? 성호, 내 말이 틀리지야 않겠지?》

  《예! 틀리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볼가요. 한데 서단장님, 일후 제가 다시찾아오게 되면 받아주겠습니까?》

  《받아주지. 받아주지. 왜 안받아주겠나. 건 근심말라구.》

   서일은 시원스레 대답을 주고나서 그를 돌려보냈다. 그 어떠한 구애나 속박도 받지 않고 자유스러운 몸에 무단적인 행동을 선호하는 청년들을 조직과 규률이 철통같이 째여진 큰 집단속에 가둬두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해의 겨울은 조심스럽게 서서히 다가오고있었다.

   추위는 젊은이들의 몸을 얼구어 사기를 식게하기는 새려 용기를 더 북돋우어 정신을 환발하게 만들고있었다. 명동학교의 널직한 운동장에서 중광단원들이 손에 목총을 잡고 한창 창격련습을 하고있는데 석현에 사는 한족지주 장송린이 문득 나타나 계화와 서일을 찾았다.  이때는 서일이 화룡의 총본사를 떠나 내내 왕청 덕원리의 집에 와 있었다.

  《아니 여긴 무슨일루서?!....》

   서일은 그가 덕원리에 온것이 너무나 뜻밖인지라 경아해하였다.

  《서단장! 이 사람은 그래 못올데루 왔는가유?》

  《아, 아닙니다. 그래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어른분께서 왜 못올데를 오셨겠습니까. 제가 물는건 다름아니라 그런 원지에서 무슨일로 기별도 없이 갑자기 오셨는가 그겁니다.》

  《의심말아주게. 이 장아무개가 군사탐정을 다니는 첩자가 아닐세.》

  《무슨말씀을 그렇게....아무렴 장어른께서 적이 되어 우릴 해칠까. 그럴리는 없겠지요. 그리구 실은 여기가 학교지 무슨 군영도 아닌걸요.》

  《그건 날 속이는 말일세. 군영아니면 저런 운동을 할까?》

  《아, 저것말입니까. 저거야 체육으로 배우느라....》

  《눈감고 아웅하지 말게. 군사훈련을 하는게 빤한데두?... 바로 여기서 살신성인이니 뭐니 하면서 육탄혈전을 하리라고 공포를 하잖았는가.》

   (이런 제길할!...)

   서일이 대답이 궁해지자 장송린은 승리자연하여 히죽이 웃으면서 품속에서 갖고 온 신문지 한 장을 꺼내놓는것이였다.

  《보게나. 여기에 자네들에 관한 소식이 실렸네.》

   서일이 받아서 보니 그것은 근일자 “申報”였다. “申報”는 중국에서 창간된지 오랜 신문인데(1872년에 상해에서 창간되였음)거기에 대한독립선언이 길림에서 만주, 로령, 미국에 있는 한인(韓人) 유지(有志)  39명의 명의로 만방에 알리니 이는 항일독립운동이 서막을 여는것이라는 보도가 대서특필로 실린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일은 낯빛이 확 밝아지면서 련신 뇌였다. 장송린이 그 소식을 알려주어 고맙기도 하거니와 더욱히는 중국에서 재빨리 자국의 4억 7천만 국민에게 이 일을 널리 홍보(弘報) 해주고있음에 감사했던것이다.

  《당신들은 과연 잘하우다. 그래서 축하를 하러 온거지우. 쪽발이 일본 놈이 어디 한민족(韓民族) 하나에만 적이되는가유. 온 동양의 적으로서 우리 중국인민에게두 적이 되지유. 그놈들은 세력을 뻗치누라 혈안이 되었지유. 오늘을 보노라니 13년전 일본에 가 류학하던 우리 사람 하나가 배를 타고 귀국하던 중 신문에서 왜적이 한국을 협박하여 보호조약을 늑결했다는 소식을 보고 체읍명인(涕泣鳴咽)하여 진망치한(唇亡齒寒)의 장래를 사유하고 자탄하되 <한국이 망하면 중국도 위태하거늘 국민은 범연(范然) 무지하도다. 혈로써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글을 써 같은 배에 있는 아는 사람에게 주어 정부에 송달케 하고는 도해(蹈海)하여 자살했던 일이 새삼스세 상기되우다.》

    장송린은 반숭례(潘崇禮)의 애국단심(愛國丹心)을 놓고 하는 말이였다.

   《그 사람 앞날을 잘 내다봤지. 안그렇습니까? 지금 일본을 보시오. 보살의 탈을 쓰고 불작란질이지요. 한국을 먹었으니 이제는 여기 이 만주를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겁니다. 만주를 먹고나서는 어디를 삼킬까요?》    

   《거야 불보듯 빤하지. 지나대륙을 삼키려하지 않을까.》

   《바로맞혔습니다. 바다는 메워도 그자들의 탐욕은 메우지 못합니다.》

   《오오, 저 아수라같은 놈들을 어쩌면 좋을고?.... 그래서 꿈자리 사나와지고 불안함이 스멀스멀 기여드는 모양이네. 생각만해도 빈발(鬢髮)이 일어서는군! 목첩에 이른 흉적을 몰아내야 함이 절박할 이때를 맞아 그대가 나서서 이같이 무장대오를 기르면서 대결하리라 공포하여 만방에 알리니 과연 대단한 일이요! 참으로 잘하는 일이우다!》 

    장송린은 거듭 칭찬하면서 미래를 축복했거니와 력사적으로 중국과 조선은 강을 사이한 이웃이니 사실상 순치(脣齒)의 관계였음을 언급하면서 돈 5천원을 내놓아 중광단에서 경비로 쓰도록했다.

    이건 과연 꿈밖의 일이였다. 아닌게아니라 눈물이 나도록 지극히 고마운일이라 서일은 감격에 목이 메이였다. 그는 그의 성의를 중국인민의 후더운 성원으로 여기고 고맙게 받는다고 했다.

 

              오마니 아버지 탄식마오

              이내 주먹에 뛰는 피는 천금이라

              에야데야 에야데야 에야데야

              아무리 보아도 야단이 났네

            

              강물의 게가재는 물따라가는데

              없는살림에 이내몸은 품팔이가네

              에야데야 에야데야 에야데야

              아무리 보아도 야단이 났네

                           

    마을안에서 어느 농부가 함경도 “창곡”을 불렀다.

   《허 그 사람, 목소리하나는 좋다!》

    계화가 귀바퀴를 세우고 듣더니 한마디 내뱉는 소리였다.

    그 노래는 서일도 부를 줄을 안다. 집을 두고 품팔이를 떠나는 자의 신세를 담은 노래였다. 함경도와 두만강을 사이한 여기 동만에는 품팔이를 하다못해 솔가도주해 온 이들도 많았다.

   

                 두만강 건너서 불고개 넘어서

                 땅좋구 물이 좋아

                 호박하나에 집채만하구

                 옥수 하나에 한술기라네

                 보리가 클때문 암캐도 놀라 짓는다우

                 보따리 챙기세

                 우리두 그곳 가서 잘살아봅세.

 

   누가 지어낸 건지 이런 함경도의 “메나리”에 마음끌려서 고향을 버리고 만주에 건너와 사는 동포도 많았다. 물론 지금은 거의가 이전보다 살아가는 형편이 썩 나은 편이였다. 일제의 수탈이 미치지 않은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서일은 계화와 함께 중광단에 이름을 걸고있는 로인들을 찾아갔다. 후원의 일역을 맡고있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 무릎을 맞대고 앉으면 들을 말도 많았다. 하여 두사람은 어떤 문제에 봉착해서 해결책이 인츰 나지지 않거나 분망한 사업으로 인하여 피로가 덮칠때면 해탈책으로 그들을 찾아가 한담을 나누기도하는 것이다.

  《그 사람 참 대단했지! 용력이 절윤하고 총술이 타인을 초월했어.》

  《내가 그때 백발백중이였다고 소문이 난걸 들었지유.》

   두사람이 老人會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양반의병장 이덕수와 포군의병장 김기석이 주고받고 다른이들은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우리고있었다.

  《지금 누구를 얘기합니까?》

   서일이 묻자 이덕수가 이병장 김수민(金秀民)의 얘기를 한다면서 자기는 재질이 출중한 그를 면목안다고 덧붙이였다. 김수민은 장단(長湍) 사람인데 1907년에 거의(擧義)하여 총도감(總都監) 되어 항쟁하다가 戊申年인 이듬해의 12월에 순사(殉死)를 한 것이다.

   이덕수가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그 사람 화약과 탄환까지 자수제조해서 더구나 의장중 명성이 높았던거요. 다재다능한 사람이였지.》

  《그때 그가 거느리고 있었던 병졸이 아마 2천을 넘었지?》

  《넘었어. 장단의 덕음동을 근거로 삼고서는 군량을 산같이 높이 쌓았다오. 그러니까 후비를 든든히 했더랬지. 그 사람이 보부상을 모아 <정보대>를 편성하여서는 원근의 적을 밀탐하도록 했다오.》

  《머리를 잘 썼지.》

  《군병의 의복마저 색깔을 먹여 통일이 되게 만들었던거우다.》

  《생각이 주도했네 그려! 어떤 색깔을 썼게?》

  《송백색이였다우.》

  《산에 들면 제법 어울렸겠네.》

  《그 많은 옷들을 만들자구 해두 경비가 약차하게 들텐데...》   

  《그러게말이우다. 군자금을 어드렇게 거뒀을까?... 》

   이달문이도 장기덕이도 의문을 달았다.

  《경비는 물론 힘도 무척 들었지. 하지만 민간작페는 일체 엄금했다오.》

   이덕수가 이렇게 말해놓고 계속 이었다.

  《곡물의류를 주로 부호에게서 징발했는데 무지하게 마구하지 않고 힘에 따라했다오.》

  《아무튼 머리는 좋은 사람이였군!》

   경원군수를 지낸 이동호가 한마디 감탄인데 이덕수가 한숨지었다. 

  《그렇구 말구. 아까운 사람이야. 지금껏 살아있으면 나하구 함께 이 자리에서 세상일을 찧고 까불건데.... 운이 사나왔어.》

  《최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사를 했을테지요?》

   서일이 물어봄에 포군의병장 김기석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차라리 그렇게 껌벅했다면 나았으련만 최후는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네. 내 듣자니 자주 교전하여 승리하였으나 대부대의 적을 당해내기 어려워 실패하고는 서울에 잠입을 해서 차부로 변장하구 다녔다누만. 왜서 그랬겠소?.... 재기를 꾀하느라 적정을 정찰한게지. 그러다 체포를 당해서....》

   혹형 끝에 사형을 당했을 것이니 더 물어 뭘하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 방안은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구들아궁이에 넣은 장작이 탁ㅡ탁ㅡ 소리를 내면서 타고있었다.

   서일은 오늘 이야기를 듣고 계발을 적잖게 받았다. 이야기의 주인공 김수민의병장은 생전에 왜 명성이 그리 높았던가? 통솔자가 되어 애대와 신임을 받자면 우선 자신이 높은 군사기술을 장악해야 하고 기지있게 모든일을 처리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군량을 많이 장만하거나 보부상을 모아서 정보대를 편성한 것 같은 일들은 들으면 누구나 다 할수있는 일 같지만 그 궁리(窮理)가 누구의 머리에서나 다 나오는건 아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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