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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4.
박기호가 안해와 함께 자식둘을 데리고 왕청에 왔다. 화룡 삼도구에 있는 청일학교는 김영숙에게 책임을 지우고 박기호는 명동학교 교장으로 부임을 한 것이다. 이 학교의 교사진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성묵이는 대체 어디를 돌아다니길래 아직도 안온다는가?》
친구가 오래도록 보이지 않으니 박기호는 근심스러워했다.
《그치는 아마 철새로 변해버린모양이야.》
《철새라면 회귀철이 됐을텐데?....》
묘하게도 박기호와 서일이 이런 소리를 주고 받은지 하루지나 성묵이 왕청에 다시 나타났다. 조선에서 금방 돌아오는 길이였다.
《범이 제소리하면 온다더니!》
친구와 동지들은 모두 그가 오래동안 대오로 돌아오지 않아 근심이 생기던지라 이같이 불쑥 나타나니 죽었던 사람을 다시보듯이 기뻐했다.
성묵은 그지간 민생을 관심하여 조선일판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자들은 다가 적대시하는 총독부의 정책들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가 말했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후 조선에 대한 시정방침은 네글자로 개괄할수 있는데 그것인즉 <무력압박>이라는거요. 전후의 총독 데라우찌나 하세가와를 보면 다가 정치적인 학식이라고는 없어서 거의 백지나답잖은 군인이였으니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총독부정치는 헌병정치인 것이요.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군력정치고 철포정치라는거요.》
《그자들은 군인특권을 발동하여 유감없이 강력정치를 실행하여왔어.》
서일이 가담가담 곁들었다.
《바로 그렇지. 조선사람은 헌병모자를 쓴 그림자만 봐도 마치 독사 맹수를 본것처럼 기피(忌避)하니 그 정도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알수 있지 않은가. 그 모양이다보니 조선에 살고있는 동포들은 자연히 5천년력사를 가진 조국의 혼을 다시불러보게되는거고 자유도 맘대로 호소못하니 서러움이 북바치면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했던거요.》
《한심했어. 합병 십년간 이천만민족이 살아가는 처지가 그모양이 됐건만도 량심은 떼여서 개를 먹였는지 자기들은 조선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복을 주고 번영을 주는 은인인 듯이 선전하니 왜놈이야말로 세상제일 간교하고 허심하지 못한 족속이 아닌가. 얼음같이 차고 사갈같은 지독한 놈들!》
이번 조선땅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억압으로 인하여 압축되였던 분노가 화산같이 폭발한 거족적인 항쟁이였다. 3.1운동이 일어나 열의가 날로 치렬해지자 하세가와총독은 군대를 출동시켜 섬멸(殲滅)하려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있는 왜사령관은 그보다는 머리가 있는 자였다.
《한민족은 반만년 력사의 정신을 가진 자라 결코 위압만으로는 굴복시킬수 없는터인즉 나는 발병(發兵)할수 없다.》
하면서 그는 하세가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이 이쯤되자 전에 조선주차군사령으로 있으면서 의병을 진압한 것이 큰공이 되여 일본 육군대장으로까지 승진하였다가 총독이 된 하세가와는 전보로 일본정부에 파병할 것을 요구해서 자국의 군대를 끌어다 적수공권인 백성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들 조선형세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고싶어했다. 하여 서일은 우선 덕원리에 있는 正義團 團員들을 집합시켜 먼저 보고를 듣도록했다.
성묵은 그간 조선에서 친히 보고 들은것을 그대로 전달했다.
먼저말한 것은 채암리(采岩里)와 용주리(龍珠里)의 참변(慘變)이였다.
《왜적은 채암리 민가 설흔 한호에 불을 질러 부근의 팔면십오부락(八面十伍部落) 삼백열일곱호까지 태워버렸는데 죽은 사람이 설흔아홉이였습니다. 놈들은 다시 그 근방의 동리에도 달려들어서는 여러날동안 총을 쏘고 불을 지르고 방망이로 쳐서 수천인을 죽였답니다. 이에 근촌의 백성들이 남녀로소 막론하고 숨느라고 산곡으로 도망을 했는대 곡성이 충천했지요. 나는 마침 거기를 지나던 중이라 따라가 보니 혹은 창에 찔리여 피투성이 옷을 입은채 바위구멍에 숨기도 하고 혹은 풀자리에서 나무를 의지한채 풍찬로숙을 하는데 그 고통이 말이 아니였습니다.
소녀 하나는 로모를 업고 도망을 친건데 로모가 병들어 풀우에 누워 기갈(飢渴)이 몹시 심하니 깨여진 사기그릇쪼각으로 풀뿌리를 캐어 먹이고있었습니다. 어떤이는 풀자리로 어린애를 싸서 바위틈에 두었는데 외국사람들이 그걸 사진찍습디다.
외국인들도 아마 나처럼 참상에 끌려 그리로 발길을 돌린거겠지요. 룡주리에 산다는 늙은이를 봤습니다. 등이 꾸부러진 그가 눈물을 비오듯 흘리면서 서양의사의 손을 잡고는
<나는 나이가 일흔하나고 로댁은 일흔인데 삼자삼손(三子三孫)을 두었더니 왜병이 돌연히 집에 들어와서 그들을 모두 새끼로 묶어서 다리고 가기에 따라가 본즉 죽이려함으로 우리 두 늙은 것은 땅에 업데여 죽기러 애걸하였으나 목석같은 그놈들은 여섯아이를 칼로 배와 목을 무수히 찔러 죽이기에 아예 우리까지 죽여달라고 하였으나 들은척도 아니하고 여섯아이의 시체는 풀을 덮고 불을 질러서 수족도 귀도 코도 남지 않았다.> 하면서 읍소(泣訴)를 하는것이였습니다.》
비감이 잠긴 장내는 숙연했고 성묵이도 목이 메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누군가 이번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교들의 처지는 어떠한가고 물어 성묵은 그지간 다니면서 수집한 기록을 뒤지더니 맹산(孟山)의 학살을 이야기했다.
《맹산군에는 천도교도가 많은데 만세시위를 할 때에 예수교도들도 참가하였답니다. 당시 한인의 헌병보조원들은 간섭하려하지 않았기에 무사히 지냈는데 며칠이 지나서 왜병이 와서 어떤 목사의 명의를 빌어 집회케 하고는 그 집회에 지도하는 자를 체포하여 헌병분견소에 가두고는 갖은 고형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군중이 격분하여 분견소를 찾아가 석방하여 달라했더니만 헌병은 찾아 간 이들을 안뜰로 끌어 드린 다음 문을 굳게 닫고 총을 쏘아 육십인을 사살하였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 자는 창으로 찔러죽이였는데 그러는 속에서 셋이 천행으로 빠져 도망을 친겁니다.
그후부터 왜적들은 예수교 신자들에 대해서는 예수를 숭배하지 말라하고 천도교도에 대해서는 신앙을 포기하라하였답니다.》
정주참변(定州慘變)도 눈뜨고는 보기가 어려운것이였다.
그곳에서는 장날인 3월 21에 시위운동을 하려한 것을 왜적이 미리 정탐해서 알고는 먼저 제지할 계책으로 예수교회 목사이하 모든 직원을 포박하고 구타하여 피투성이 되게 만들어놓았다.
민심이 격앙하여 당일에 집회하였던 군중 2만 5000여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다가 시위자 50여명과 관람자 70여명이 적탄에 피살되였다. 적들은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개인의 살림집 세 채를 파괴했고 성내에 있는 예수교당, 천주교당을 불태웠거니와 오산소학교와 오산중학교도 불태워버렸던 것이다....일제의 천인공노할 죄악은 그 수를 이루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고있었다. 기형악형(寄刑惡刑)과 참살학살 행위는 세계인류력사상 그 류례가 없으니 일본사람이야말로 奸毒한 특종인이였다.
《육탄혈전함으로써 독립을 완성하자! 옳아, 그렇게 해야해!》
성묵은 지난해 重光團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은 옳은것이였다고 거듭말하면서 당시 불참하다보니 서명자명단에서 빠진 것을 매우 섭섭해하였다.
“일민보”와 “ 신국보”는 성묵의 조사기록들을 정리하여 련재하기로했다. 正義團의 단원들은 물론 만주에 거주하고있는 많은 동포들이 일제의 만행과 그 실태를 좀 더 상세하게 알게하자는것이였다.
3월달이 다가는 어느날 조성환이 왕청에 왔다. 그지간 로씨아를 돌아보고 오는 길이였다. 그는 서일을 만나자 씨베리아의 동태를 알려주었다.
《그곳 소식이 이리로도 전해왔으리라 믿네.》
《예, 대략적인 것은 우리도 알고있습니다만....씨베리아에서는 2월달에 벌써 <전로한족회>를 <대한국민의회>로 개칭하고 윤해와 고창일을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다면요. 요즘은 서둘러 임시정부를 세우고있다는데 어떻게 되어가고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걸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임시정부수립에 관해서 서일은 자신이 정치일군도 아니거니와 정력 또한 따르지 못해 직접 참여하고푼 생각은 없지만 지극히 관심하게 되는 일이라 자연히 신경을 모으고있었다.
조성환역시 서일은 독립혁명을 함에 보다 실제적이고 적실한 행동으로는 무력항쟁이 우선이라 여기면서 이에 력점을 두고 혼신의 정력을 몰붓고있으면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일같은데는 직접적인 참여를 피하려한다는 것을 아는것이다. 서일에 대해 료해가 제일깊은 사람은 그와 계화였다.
《그쪽에서는 3월 17일에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나서 요즘은 임시정부 각료의 명단과 5개 항목의 결의안을 발표한것이요. 내가 그걸 갖고왔는데 자 보게나.》
조성환이 과연 그것들을 갖고와서 내놓는것이였다.
서일이 받아서 훑어보니 그쪽에서 세운 임시정부의 각료라는 것이 학부총장과 범무총장은 결정되지 않고 대통령에 손병희, 부통령에 박영효, 국무총리에 이승만, 탁지총장에 윤현진, 군무총장에 이동휘, 내무총장에 안창호, 산업총장에 남형우, 참모총장에 유동열, 강화대사에 김규식이였다.
5개의 결의안은 이러했다.
1. 대한국민의회는 조국독립의 달성을 기약하며 세계민족 자결주의에 기인하여 한국민족의 정당한 자주독립을 주장함.
2. 일.한합병조약은 일본의 강압적 수단으로 성립한 것이고 우리 민족의 의사가 아니므로 그 존속을 부인하고 일본의 통치 철페를 주장함.
3.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송하여 독립운동과 정부건설의 승인을 요구하며 국제연맹에 참가를 주장함.
4. 한국독립운동의 실정을 세계에 선전하며 정부건설의 사실을 각국 정부에 통지하여 우리의 주권을 주장함.
5. 이상의 목적이 인도, 정의의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하면 일본에 대하여 혈전(血戰)포고를 주장함.
《어떻소, 맘에 드시오?》
서일이 들고있던 종이장을 놓자 조성환이 시탐쪼로 물어왔다.
《적당히 할 말은 다한 것 같습니다만 마지막항의 이것말입니다....그네들이 공정한 판결을 내려줄수 있을까요? 일본에 대하여서는 아무튼 혈전포고를 해놓고 봐야하는겁니다. 조선생, 아니그렇습니까?》
서일은 자신의 주장에 변함이 없음을 피력했다.
《옳은말이요. 나역시 그 생각이요.》
조성환이 머리를 끄덕였다.
《만세시위는 그 여파가 국내외에 널리 미쳐서 구경은 적잖은 이들을 각성시키고있는겁니다. 한데 이제야 독립선언이나 만세시위만으로는 한국의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또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긴 이쯤한것도 요행이라 생각됩니다. 조급해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극악한 왜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자주독립을 이룩하자면 보다 원대한 계획과 조직적인 힘을 길러내야 할 것입니다. 조선생님, 아니그렇습니까?》
《옳은 말이요. 강적의 폭력과 만행은 지속될것이니 우리도 마땅히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운동을 설계해야하는것이고 그 지도를 위해서도 수뇌부가 꼭 있어야하는게 아니겠소.》
《그럼요. 그렇구말고요. 그 누가 승인하건말건간에 우리에게는 우리들의 정부가 있어야합니다. 절실히 필요한것입니다. 저는 조선생께서 임시정부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실것을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합니다. 우리들의 주장의 대변자가 되여서.》
서일의 희망이였다.
그러잖아 조성환은 임시정부수립데 꼭 참여할 작정이였다.
《이제 세워야 할 임시정부는 2천만 동포의 의사를 내세우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민족의 구심체가 되어 조선 국내외를 포괄한 모든 독립운동진영을 지도할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요.》
그는 이같이 말하고나서 씨베리아에서 서둘러 작성하여 발표한 각료의 명단부터가 실제적이 못된다고했다. 우선 대통령이라는 손병희를 놓고 봐도 그는 이번 3.1운동을 발기하고 조직한 사람으로서 경찰에 잡혀 강금되였는바 일제는 이제 곧 내란죄를 적용하여 그를 판결할것이였다.
《손병희! 분이야말로 우리 2천만 겨례중 희유의 위인인것입니다. 특권계급의 횡포에 대항하고 불의에 굽힐줄 모르는 강직함과 기개, 어디까지나 천백만민중의 생을 첫 자리에 놓고 싸워온 그 정신이야말로 너무도 보귀하여 후대의 구감으로 될것입니다.》
《서선생은 과연 그렇게 생각한단말이요?》
《그렇습니다. 정부가 역적이요 란적이요했습니다만 저는 소시적부터 내심 그이를 존경해왔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과거 그가 전봉준과 더불어 동학군을 조직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옳았습니다. 청,일량국이 출병하여 관군과 합세하지 않았어도 그는 목적을 달성하고말았을겁니다.》
《그랬으면 어떻게 될것같소?》
《그랬다면 우리 민족의 운명에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겁니다. 20여만의 희생을 내고서도 실패로 종지부를 찍었으니 최대의 의거가 민족의 최대의 비극으로 끝난게 아닙니까. 그렇게 되지 말았어야했지요. 이번 운동을 비폭력으로 주도하니 저의 주장과는 다른바있지만 동학군 창립때부터 천도교주가 되어 수천수만을 일언지하에 궐기시키는 그 재능과 수완에 저는 탄복합니다. 그는 그야말로 지도능력이 탁월한 분입니다!》
서일이 손병희를 이같이 높이 평하는 주요원인은 그가 그의 몸에서 종교를 리용하여 대중을 묶어세우는 방법을 배워냈기 때문이다. 신앙은 그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거대한 위력을 갖고있는 것이다!
상해에서 몇사람 모여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씨베리아에서도 수립했다. 조선에서는? 미국에서는? 만주에서는?.....너도 세우고 나도 세우면 여러개의 임시정부가 난립하게 될텐데 그렇게 되면 뭐가 되겠는가. 서일은 생각을 굴려보고나서 입을 열어 자신의 주장을 내놓았다.
《움직임을 보니 임시정부를 저마끔 세울 것 같은데 그런다면 무슨꼴이 되겠습니까. 그같이 여러갈래의 임시정부 수립은 항일투쟁에 있어서 분산과 혼란을 초래할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민족의 정치적 통일을 의심받게 될것입니다. 아니그렇습니까? 저는 어떻게 하든 통합하여 하나의 정부를 이룩함이 옳다고봅니다.》
이같이 임시정부문제를 놓고 시비를 하고있는데 마침 상해의 法租界寶昌路에 있는 임시정부 주비(籌備) 事務所로부터 임시정부수립에 관한 회의가 열릴것이니 속히 출두하라는 통지가 왔다. 이리하여 서일과 조성환는 4월을 잡자 갑자기 서둘러 상해행을 하게되였다. 게화도 함께갔다. 이들 세사람 중 임시정부에 들어가 주역할을 할 사람은 물론 조성환이였다.
무장인원 10명이 그들을 장춘(長春)까지 호송했다.
장춘역에서 세사람은 관내(關內)로 향발하는 렬차에 올랐고 호송해간 사람들은 그들이 타고 간 말을 갖고 돌아섰다. 상해에 가서 볼일을 다 보고나면 조성환은 거기에 남던지 아니면 북경에 와서 갈라질것이며 서일과 계화는 왕청으로 되돌아와야하는 것이다. 그때면 그들은 그냥 렬차편으로 장춘까지 와서 전보로 알리면 이쪽에서는 호위대가 말을 갖고 가서 그들을 영접하기로 약속을 해놓았다. 아직은 중국군대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해치지 않지만 사처에 일본령사관이 있고 그네들이 길들여 부리는 첩자나 끄나블이 있거니와 사처에 일본군경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못지 않게 해를 끼치는 토비들이 욱실거리는 세월이니 신변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때로는 한심하게도 독립운동자지간에 마저 오해로 하여 불심임하거니와 신원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자상(自傷)을 자초(自招)하는 일이 끊기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들 일행이 탄 렬차가 봉천역(奉天驛)에 이르러 잠시 멈추는 사이 나이 이순(耳順)이 된듯한 한족(漢族)려객 하나가 차에 올라 례절스레 계화옆의 비여진 자리를 찾아앉더니 들고 오른 가죽가방에서 신문을 끄집어내는것이였다. 코등에 검은테안경을 건 것이 넓적글을 많이 읽은 사람같아보였다. 객이 어디까지 가며 직업이 무엇인지가 궁금하지 않았다. 서일은 그가 펼쳐 보는 신문에 눈길이 먼저끌리였다. 그것은 그가 매일 빼놓지 않고 보는 “申報”였던 것이다. 한데 3월 29일자 신문은 아직 왕청에 배달이 안되였고 설령 배달되였다해도 떠나오다보니 받아볼 새가 없었던 것이다.
《 <서울 2만명 시위단행>이라! 그 신문 좀 보여주실수 없습니까?》
서일은 염치불구하고 손을 내밀었다.
《한문(漢文)을 아시오? 보아하니 한국분같은데....》
서일은 입을 다물고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선사람이면 몰잡아 제 민족어나 민족문자만 아는줄로 여기는 그의 짧은 소견머리에 웃음이 나갈뿐이였다.
그 중국사람은 제 실수를 느껴 자괴(自愧)를 하는지 낯이 붉어지더니 신문을 보라고 내미는것이였다.
《아, 아닙니다. 먼저보시지요. 산 임자도 보지 않았는데 내가 손을 내밀었으니 례절을 몰랐지요.》
서일은 손을 저어 사절했다. 정작 주니 선 듯이 받게 되지 않았다.
그가 그러니 중국사람은 더구나 먼저보라며 주는것이였다.
봉천 소식: 어제 서울에서 2만여 명이 시위행진을 하였는데 군대가 출동하여 진압했다. 시위행진의 령도자 백여 명을 구속하였고, 쌍방은 다 사상자(死傷者)가 났으며 앞으로 더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보도는 짧았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본 서일은 충격을 크게 받았다.
《서울에서 시위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했답니다!》
《2만여 명이라, 수자가 적잖았구만!》
그 보도를 두 번째 본 사람은 계화였다.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하게 발전하리라니 일났군! 죽음을 더는 내지 말아야하는건데.》
조성환도 차창밖을 내다보다말고 신문을 보더니 말했다.
《조선사람들은 죽는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이렇게 들고일어나니 과연 대단하네. 잘하네 잘해! 그래야지! 그런데 우리 중국 사람은 어떤가 보란말이요. 그같이 해낼까.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비겁하기 짝이없단말이요. 조선사람 처럼 죽기내기를 하고 싸울수 있을가말이요.》
그 중국사람은 신문을 보더니 뜻밖에도 조선사람을 올리추는것이였다.
남한테 찬양받는 자체가 조선인민의 투쟁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는것이라 기쁜데 그가 제민족의 열근성을 꼬집어 스스로 비방하면서 실망하는건 옳지 않아 서일은 한마디 충고했다.
《뭐라하셨습니까, 중국사람은 비겁하기 짝이없다니요, 어른님의 그 말씀만은 정확치를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사람이라해서 천성이 다 그러하겠습니까? 그렇지야않겠지요. 유사이래 중국은 수많은 영웅호걸을 배출하지 않았습니까. 저 멀리는 내놓고 명(明), 청(청)때만 봐도 주원장(朱元璋), 정 화(鄭 和), 정성공(鄭成功), 사가법(史可法), 이자성(李自成)같은 영걸이 나왔거니와 아이신줘러․현엽(愛新覺羅․玄燁), 임측서(林則徐), 홍수전(洪秀全), 등세창(鄧世昌) 같은 영웅이 산생한게 아닙니까.》
《그 다 따져보면 연원(淵源)이 있는것일세. 믿구루 좋은 나무래야 견실한 열매 달리는거요, 난화지맹(難化之氓)일세.》
《아니 무슨 외람된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연원이라니요? 고관대작이나 양반의 자식아니면 영걸이 될수 없다 그 말씀인가요. 멀리 진승(陳勝), 오광(吳廣)은 내놓고도 황소(黃巢)를 봅시다. 그는 소금장사꾼의 아들이였습니다. 출신이 비천하다보니 누구도 그의 생년월일을 아는이가 없어서 사기(史記)에 마저 자리를 비웠습니다만 업적은 천추에 빛날것입니다. 그리고 난화지맹이라 하셨는데 그도 정학치 않은 지적입니다. 백성이라 하여 왜 교화하기 어렵겠습니까. 무지로 사는 것이 백성의 원이 아닐진대 책임은 선각자가 그들을 계몽시키는가 안시키는가에 달린게 아니겠습니까. 조선의 백성도 원래는 선량하기만했지 무지하다보니 제 나라를 남한테 빼앗긴거고, 이족의 학대까지 심히 받다보니 눈을 뜨고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눈을 뜸은 각성이며 각성하면 불요불굴의 기백도 생기게 되는것입니다. 중국백성도 눈을 뜨면 그리될겁니다. 한데 백성의 눈을 띄우자면 더말할 것 없이 지식인의 선각자가 몸바쳐 나서서 계몽을 시켜야하는것입니다.》
중국려객은 신원을 전혀 모르는 초면의 조선족 젊은이한테서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자기가 불민해서 훈시를 받은것만같아 자곡지심(自曲之心)이 생기는지 아까처럼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느라 저켠으로 돌려버린다.
안동(安東) 압록강어구에서 배를 탈 때 그들은 동포사나이를 하나 만났다. 성명이 황학수(黃學秀)고 나이는 당년 41살이였다. 한배에 올라 같이가면서 여러말이 오가는 사이 어느덧 친해졌고 그러다보니 서로 믿어워보였던지 그는 자진하여 자기를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것이였다.
《본신을 놓고 보면 본관은 창원이오나 태여나기는 충북도 제천군 본제입니다. 8살때부터 한문서숙에서 15년간을 수업하고는 경자(庚子)에, 그러니까 내 나이 22살 때 무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을 한 후에는 5․6년간을 육군참위로 복무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미(丁未)에 군대가 해산되니 털털이 신세가 되어 그만 사직귀성(辭職歸省)을 하고만거지요.》
《그래 상해루는 뭐할러 가는거요?》
계화가 물으니 그가 어른분은 뭐할러 가느냐고 되잡아물었다.
《나말이지, 만나보구푼 사람도 있고 두루 구경도 할겸 가는거요.》
《과연 셈평좋네요. 이게 어느때라구 구경을 다닙니까, 나 원.》
황학수는 계화의 말을 곧이듣고 혀를 끌끌 차기까지 했다.
아까 이쪽 셋은 자기들은 각각 길에서 처음 만나 사귄 친구라고 소개를 했는데 황학수는 그것도 그대로 믿고있었다. 이때는 3.1운동직후라 조선으로 놓고 보면 갑작스레 터진 벌둥지모양으로 고향을 떠나 국외로 망명하여 헤매는 사람이 많고도 많았던 것이다. 김용원(金庸源)이라는 27살난 청년은 자기는 충남대덕(忠南大德) 사람이라면서 이중각(李重珏)이라는 친구와 같이 법주사(法主寺)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경찰에 잡히고말았다는 것 까지 말해놓고는 서일이 그래 저쪽 친구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의심이 더럭 생겼던지 말을 더 하지 않고 멀찌기 피해버렸다.
그가 가자 서일은 經傳이나 꺼내놓고 보면서 말을 삼갔다.
황학수는 한쪽 눈알이 유독 커서 인상적이면서 말수가 적어 단엄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가끔 집요한 눈길로 여겨보면서 속으로 너는 과연 뭘하는 사람이게 상해로 갈가고 점쳤다. 그러다 그는 서일이 소변을 보느라 보던 책을 놓고 잠시 자리를 뜬 사이 그가 보던 책을 쥐여 펼치는데 두 눈은 둥그래지면서 경아해 하는 빛이 번쩍이였다.
《<착함이 나의 본마음이요 맑음이 나의 본김이요 후함이 나의 본몸인데, 아득하여 악하게 되고 흐리게 되고 박하게 되니 그러므로 아득함이 본시 그런 것이 아니라 환상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며 깨달음이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킴에 따라 회복되는것이니라> 아니 이건....<회삼경>이라, 하면 이 경서는?!....》
조성환이 그를 재미있는 친구라 여겨보며 말했다.
《왜 처음보나? 하기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 대종교도가 아니면야. 그리고 실상 대종교도라해도 그렇지, 아직은 정식출판이 안됐거니와 출판이 됐다해도 국내까지 들어가긴 힘든거니까.》
《그러니까 이건 귀중한 대종교서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방금 그걸 보던 이가 쓴거요.》
《아, 그렇습니까! 내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데?....이름이 뭡니까?》
《서일이요. 백포종사 서일.》
《아니 뭐럽니까! 방금 서일이라했지요!....아, 저게 오시는군요!》
이시각 황학수의 놀램은 형언키어려웠다.
그는 서일이 가까이 오자 막 함성을 지르려다 참고 꿉석 허리굽혀 인사하고는 두손을 꼭ㅡ옥잡아쥐였다. 여기서 만나보는게 행운이라했다.
《중광단의 서단장님이였구만요! 지난해 만주에서 발표한 선언문을 내가 봤습니다. 설흔아홉 유지의 서명으로 발표된 중광단의 독립선언문을 말입니다. 아, 얼마나 좋던지! 내 피를 얼마나 끓게 했던지!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이룩하자! 천만 지당한 주장입니다. 내 오늘 상해에 가는것도 바로 정부에서 이 주장을 펼치자는것입니다. 조선이 당하고있는 것을 보시오!...》
그는 격정이 끓고있는 군인다운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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