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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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백포종사 서일 일대기제3부. 9
2011년 10월 23일 23시 05분  조회:4826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역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9.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철이 돌아왔다. 하늘은 푸르고 대기는 맑은데 어디선가 임금이 지었다는 삼일신고 예찬이 들려온다.

 

                    높고 높다 저 한밝메여

                    한울 복판에 우뚝 솟았네

                    안개 구름 자욱함이여

                    일만 산악의 조종이로다

 

                    한배검 한울에서 내려오시니

                    거룩할사 배달의 대궐이시오

                    나라를 세우고 교화를 펴사

                    온 누리를 싸고 덮었네

 

                    한배검 내리신 보배론 말씀

                    자자이 줄줄이 눈부심이여

                    큰 길은 오직 한배검 길이니

                    우리도 화하여 오르리로다....

 

   서일은 어느날 북경에서 오는 등기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신채호가 “夢天”을 련재한 신문 몇장을 모아서 보낸 것이였다. 그 속에 편지도 한통 있었다. 우선 <<敎報>>를 통하여 서장록로인이 횡사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면서 백주에도 꺼리낌없이 살인만행을 감행하는 귀축같은 만주의 토비를 저주하면서 그런 참화를 당하여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고 위안의 말을 해놓고 다음으로 만주에 왔다간 조성환선생으로부터 이곳소식을 잘알게되였노라면서 중광단의 발전을 위해 로고를 아끼지 않는 서일의 일편단심에 크게 감사를 드린다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미흡하나마 아껴 보아주면 고맙겠다면서 부탁대로 근일에 쓴 소설을 보낸다고 쓴것이였다.   

  《“몽천”이라... 번역하니 “꿈하늘”이라... 》

   서일은 소설의 제목부터 눈여겨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구독물이 생겨 손에 넣기만 하면 그것을 단숨에 읽어내야 직성이 플린다는 그는 그야말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무서운 열독가였다.

   그가 독서를 거의 끝내갈 무렵에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풍염한 얼굴에 이마가 넓고 눈섭이 짙은데다 팔자수염을 더부룩하게 자래운 우람진 체구의 50대 사나이가 “古經閣”에 들어섰다. 제2세 都司敎 김헌이다.

  《독서를 하시오?》

  《예. 도사교님이시구만요! 앉으시오!》

   서일은 보던것을 얼른 놓고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한말(韓末)의 경국풍상(傾國風霜) 속에서 종2품 가선계(嘉善階)의 작위까지 올라 덕망이 높고 학문에 조예도 깊거니와 성품이 온후황중(溫厚況重)하고 과묵한 그를 서일은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있었다.

   올봄에 압록강이 풀리자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로 건너온 김헌(김교헌)은 대종교를 총관하는 교주로서 맡은바의 직책을 다하기 위해 그야말로 불면불휴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는 총본사로 오자마자 우선 음력 3월 15일날 어천절(御天節)을 맞이하면서 교의회(敎議會)를 소집했던것이다. 이는 종문최고의결기관(倧門最高議決機關)으로서 대종교중광이래 처음으로 개최된 의회(議會)라는데서 그 의의가 자못 큰 것이다. 이 의회(議會)에서는 홍암대종사가 신해년 정월 15일에 “종령제1호(倧令第1號)”로 신리(神理)와 함께 제정하여 공포한 “홍범제17조항(弘範17條項)”을 전문23항으로 개정하고 또한 직제(職制)와 교도들이 준수할 종문의 규약 등 58개의 조항을 67개의 규제(規制)로 개정발표하여 직제를 현실화하고 교헌(敎憲)을 확립한 것이다. 

   라철이 대종교를 중광하면서 창립자로서 기반을 세웠으나 대종교의 종리(倧理)나 종사(倧史)는 아직 체계화되지 않은 상황이여서 많은 일들을 해야했다. 교리(敎理)와 의식(儀式)을 정비하고 민족종교로서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종래의 사대주의사상에 물젖었던 한계성을 탈피하자면, 다시말해 민족주체의 사관(史觀)을 정립하자면 많은 문헌의 저술과 편찬도 해야했다. 교주가 된 그가 이제 이끌고 해내야 할 일들은 많고도 많았다.

   김헌은 모든 중요대사들을 우선 서일과 상의하군하였다. 가까이에 함께 있거니와 그의 심중에도 서일은 이전부터 모든 면에서 제1의 실력자로 받아졌기 때문이다. 김헌은 각지에 시교당을 설치할 계획을 갖고있었다. 이에 두사람은 이미 획분한 4개교구의 대종교도 분포상황을 다시금  검토한 기초상에서 어느 구역에 시교당 몇 개를 세우고 그런 연후에는 그것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영할것인가에 대해서 한동안 연구했다.

   연구가 초보적으로 잡히자 두사람은 후일 내놓고 다시토론하기로 하고 화제를 돌리였다.        

  《제목이 “몽천”이라....그 사학가가 이제는 소설에도 손을 댄단말이지!》

  《예.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친굽니다.》

   그들은 신채호를 놓고 말했다.

  《제가 거진 다 읽어봤는데....》

  《그래 무슨 얘기를 썼소? 읽어본 소감이 어떻하오? 맘에 드오?》

  《맘에 듭니다. 주인공 한놈이 옛날 조선의 애국적명장들의 도움을 받아서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고 <님나라>를 지키는 싸움터에 찾아가 원쑤를 물리치고 적들에 의하여 더렵혀진 나라의 하늘을 맑게 쓸어냈다는 환상적 이야기를 쓴겁니다.》

  《오, 그래서?...》

  《지금에 비춰보면 일제침략자를 물리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려는 애국적리상을 쓴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표현수법이 랑만적이구.》

  《참으로 그러하오!?....》

  《그러하지요. 작품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한놈의 형상에는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을 찾으려는 우리 배달민족의 애국주의정신과 민족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잘 체현되였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주제사상이겠구만.》

  《그렇습니다.》  

   김헌은 정녕 그러하다면 그 글을 대종교도들이 다 읽어보게끔 자체로 프린트하여 널리 배포함이 좋지 않을까했다. 의견이 좋았다. 이 일은 지금 중광단(重光團)의 선전사업을 책임진 김성에게 맡기여 대종교의 <<敎報>>와 중광단(重光團)의 신문인 <<일민보>>에 련재하기로 두사람은 토론되였다....

   이틑날 서일은 청일학교를 향해 걸음을 놓았다. 교편을 잡고있는 박기호와 김영숙을 데리고 함께 같은 화룡현내 지신사 장재촌(智新社 長材村)에 있는 명동중학교에 가서 그곳의 주인 김약연(金躍淵)선생을 방문하기위해서다. 나이 50줄에 오른 김약연역시 고향이 함북도인데 조국을 떠나 만주에 건너와 장재촌에 정착한지 이미 18년세월이 된다. 그는 장재촌에 정착하자 먼저 동한이라는 중국사람의 림야(林野) 수백일경(數百日耕)을 구입하여 개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월경해 오는 동포들을 모아 큰 부락을 만들었고 그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규엄재(圭嚴齋)라는 서당까지 세운 것이다.

   1906년에 이상설과 이동녕이 용정(일명 국자가) 서전평야에 세운 서전서숙(瑞甸書塾)이 일제무리의 간섭으로 페교가 되자 김약연은 거기서 교육받은 종형 김학연(金學淵), 박무림(朴茂林) 등을 초빙하여 규엄재를 토대로 낡은 교육을 버리고 현대식교육을 하는 명동중학교를 세우고 서전서숙의 정신을 이어 받아 독립지사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동포들을 혁명민주화 하는데 주력하고있었다. 용정에 살고있는 이동춘선생이 민족계몽을 위해하여 학교를 많이 세웠다면 김약연선생 역시 그이와 못지 않게 실제로 북간도에서는 교육가로서 민족운동 각 분야의 다방면에 주도적인 구실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그가 민중 계도(啓導)와 교육을 위하여 신진 엘리트(elite) 정재면(鄭載冕), 사학자 황의돈(黃義敦), 언어학자 장지영(張志暎) 등을 초빙하여 교학을 담당케 하니 명동중학교는 민족교육기관으로서 국내의 오산학교와 쌍벽을 이룬 위용을 떨치게 되였다.

   김약연은 올해들어 변무사(邊務使) 오록정(吳祿楨)의 인가를 얻어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지금 동포교육을 전면지도하고있는 것이다.            

   서일은 지금 왕청의 명동학교에서 학습중인 500명 중광단의 인원을 몽땅 빼내여 그들로 따로 무장단을 정식세울 계획을 세웠다. 정작 그런다면  변화될 학교운영방침에 대하해서도 함께 모색해야했던 것이다. 

  《이렇게 만나니 참으로 잘된 일이오다.》

   김약연선생은 오늘의 회동(會同)을 은근히 기다렸는지 무척 반가와했다. 중키를 넘는 건장한 체구에 점잖은 민머리의 어른이였다. 숱많은 팔자수염은 허옇게 세였고 풍염한 얼굴에는 인자함이 흐르니 일견하여 매우 인상적인 사람이였다.

  《이렇게 늦게 찾아와 회장어른님을 뵈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서일은 솔직히 자반성을 하고나서 찾아 온 뜻을 토로했다.

   김약연은 곰곰히 귀담아 듣더니 서일이 학교에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은 지식있는 중광단원으로 무장단을 따로 조직하는 것은 현명한 결책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종교에서 자체로 명동학교와 청일학교를 세우고 여지껏 운영을 잘해왔으니 과연 모범이 된다면서 간민교육회가 조직되였으니 이제부터는 만주각지에 산재해 있는 동포학교는 통일적인 관리하에 들게 되리라는것과 화룡과 왕청 두 현에 있는, 교명이 똑 같은 명동학교는 형제학교로 되어 우의를 돈독히 하고 현대식의 교육으로 질을 보장하면서 애국지식인배양에 력점을 둘것이라했다. 김약연은 한편 또 왕청의 명동학교도 장재촌의 명동학교처럼 잘돌보리라 덛붙이기도했다. 

   이러는 사이 박기호와 김영숙은 이 학교의 교학을 참관하고나서 교원들과 한자리에서 교학경험을 서로 나누고있었다.

   서일과 김약연사이 진지했던 담화가 막 끝나갈 무렵에 한떼의 학생들이 우루루 쓸어들었다. 

  《우리는 서단장님을 보러왔습니다.》

   윤희준이라는 20대의 학생이 인사하고 선참으로 하는 말이였다.

  《태평구 무관학교에서 전쟁을 배우다가 이리로 온 학생들일세.》

   김약연이 알려주면서 그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이 학생은 윤희준이고 저학생은 최봉설, 그리고 저쪽은 차례로 한상호, 임국정, 박응세, 김성일... 》

  《학생은 올해 몇살인가?》

   서일은 그중 키가 제일작고 애티나는 학생을 향해 물었다.

  《열다섯살입니다. 성명은 라운규이구요.》

  《고향이 어디지?》

  《함북도 회녕이얘요.》

  《오, 그래? 나도 함북도인데 회녕이 아니고 경원이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하시면 나하구 몹시 가까운걸요. 우리 규엄교장선생님이 나하고 한고향이래요.》

   라운규의 말에 김약연은 과연 그렇노라 고개를 끄덕여 보이면서 라운규는  문학에 각별한 흥취를 갖고있는 학생이라 알려주었다.

   서일이 오 그런가 그렇다면 커서 소설가가 되려는가 물었더니 라운규가 자기는 소설보다 극을 더 좋아한다면서 요즘은 대종교 경전도 읽는다고 했다.

  《오, 그래!? 하하하....넌 재미있는 애로구나! 참새는 작아도 울음은 큰거야. 공부를 잘하고 대종교에도 들고 크면 극도 놀거라. 할 일은 많네라.》

   서일은 그를 기특히 여겨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평구무관학교의 출신들인 다른 몇은 중광단은 모두 의병과 구군인출신이 아닌가, 왜서 그들로 무장단을 만들지 않는가, 과연 그렇게 된다면 무관학교물을 먹은 자기들도 받아줄수 있지 않느냐, 꼭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서일은 아직은 무장단이 아니니 공연히 들뜨지 말고 안정하라면서 여기서 착실히 배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충고로 눌러놓았다... 

   며칠후 서일은 왕청 덕원리 집으로 가면서 용정(龍井)에 들리였다. 이동춘선생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그의 도움을 받을 일이 한가지 있었던것이다. 큰아버지께서 비명에 돌아가셨을적에 이동춘선생은 길림에 가있다보니 그 사실을 모르다가 여러날을 지나 용정에 돌아와서야 알고는 그길로 조문하러 왕청에 갔다. 그러나 그때는 장례를 이미 마친 뒤였거니와 서일도 집에 있지 않아 만나지 못했던것이다.

  《내가 길림에 간걸 알면 거기다가라도 전보를 칠게지....안그런가. 그랬다면 이 동춘이는 백사불구 로인님의 장례는 봤을건데....》 

   이동춘은 서일을 만나자마자 기탄없이 섭섭함을 토로했다.

  《제가 불민해서 널리 알리지 못했으니 용서하시오.》

  《홍암대사의 유언을 적용해 그리한거야 아니겠지. 나도 아네. 서선생이야 실은 대업을 맡고있는 몸이여서 눈코뜰새 없이 돌아친다는걸 말이네. 내 말을 달리생각은 말게. 그래 하고있는 일들은 잘되어가는가?》

  《예. 잘되여가고있습니다. 새로 승질한 교주님께서 올봄에 건너오시여 교회의 일은 그분이 거의 떠맡다싶히 하고있습니다. 그래 저는 이젠 중광단사업에 보다 진력하게 됐습니다.》

  《내가 길림에서 들으려니까 그것이 그저 계몽만 목적한게 아니구 대종교의 민중항일단체라는 소문이 자자하구만. 남이 그리 안다해서 두려울건 없지만... 그래 언제까지 목총이나 들고 도수련습을 해나가려는가?》

  《이제는 무장을 구입하는데다 머리를 더 써야겠습니다.》

   서일은 전번에 백순도형과 함께 이상설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로씨아의 연해주에 갔던 여준과 이동녕, 이회영도 돌아가면서 총본사에 들려 중광단일을 관심해서 그같이 물었고 조성환도 왔다가 마찬가지로 질문을 던진바있다고했다.

   이동춘은 만면에 웃음지으면서 그렇겠지했다.

  《말이 현유 수백필이라지. 아무튼 그걸 그만큼 갖춘것만도 대단한 한 일을 했지. 서선생도 신문을 봐서 알리라 믿는데 전장의 형세는 차츰 돌아져 동맹국이 망하고말리라는 설이 나돌고있는게 아니요. 이번의 대전이 끝나면 혹시 총을 버리는 녀석들이 있겠는지 그걸 손에 넣으면....》

   그는 3년전 사라예보사건으로 발기된 제1차 세계대전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33개 국가, 15억이상의 인구가 말려든 이번의 세계대전이 과연 어떻게 끝말을 볼지?...

  《전쟁이 어떻게 종결될지는 아직 단정키 어렵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가 총을 구입할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되어준다면 얼마나좋겠습니까! 저는 두손모아 빌고 빌겠습니다.》

   묘연한 희망이 가슴을 들먹여 서일은 기분이 좋았다.

  《제가 오늘 선생님을 찾아온건 달음아니라...》

   그는 여짓여짓 하다가 말꼭지를 뗏다

  《무슨일이게?.... 어려워말고 말해보게.》

  《여기 용정에 새로 선 제창병원이 있잖습니까. 그 병원에서 의무일군을 얼마간 배양해줄수 없겠는지?.... 우리들의 의무일꾼을 말입니다. 의사학교도 위생학교도 아닌 병원이 돼나서 제의를 들어주겠는지?...》

   지난해에 용정에는 제창병원(濟昌病院)이란 간판을 내건 병원 하나가 새로 생겨났다. 그 병원의 경영자는 민산해(Stanlin Martanin)라는 영국사람이였다.

  《서선생, 과연 생각이 주밀하구만! 역시 지도자답네! 좋아! 내 어디 한번 나서보지. 그 영국의사가 세브란스의대의 교수를 지냈다는데 의술을 놓고 따질 것 같으면 이 근방에서는 아마 당해낼 자가 없을거야. 고명하지!》 

   이동춘은 영국인 의사가 1870년 7월 23일생이라는것까지 기억하면서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자치동갑이요 면목을 알거니와 어느덧  친구로 사귀였으니 사정하면 될듯하기도하다면서 서일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길고 짜른건 대봐야지. 안그렇소. 소뿔은 단김에 빼랬어.》

   일은 과연 그의 말과 같이 되었다. 민산해의사는 이쪽에서 의무일군 몇을 배양시켜달라니 그러마 하고 흔연히 대답한 것이다. 사람 몇을 어느 기한에 어느 수준으로 배양해 내느냐 등 협의는 다음날 다시만나 구체적으로 토론 하기로 했다. 모든 것은 장래를 위해서였다. 지금의 의진은 미약하다. 중광단이 무장단체로 일어서자면 자체의 든든한 의료진이 있어야 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였는데 해결할 가망이 있게 됐으니 기쁜일이아닐수 없었다. 서일은 한시름 놓았다...

   왕청에 와보니 그사이   성묵이가 돌아와있었다. 지난해의 5월에 남파 박찬익이와 함께 상교(尙敎)로 오르느라 총본사에 돌아와 여러 교우들 앞에 제 얼굴을 피끗 보이고는 다시사라졌다가 한해가 지난 이제야 또다시 나타난 것이다.

  《여봐, 임자는 그지간 대체 어디메를 그리 헤매구 싸다녔나?》

   한때 그와 같이 나돈 이홍래가 그가 돌아오자 벌써 이렇게 따져 물은 것을 서일도 만나마자 반복했다. 그의 행적이 몹시 궁금하다 못해 이제는 답답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나 돌아다니면서 의례 만나봐야 할 사람 몇을 만난거지 뭐.》

    성묵의 말이 몇이라지만 사실은 그 사이 그가 찾아가 만나본 사람은 많고도  많았다.

  《내가 방문한 이들의 명함을 댈테니 어디 한번 들어보겠는가. 김동삼, 조소앙, 신규식, 신채호, 이상용, 윤세복, 문창범, 유동열, 김좌진, 김학만, 안정근...》

  《가만있자! 안정근이라면 안중근의 아우아닌가?》

  《그렇지. 바로 그야. 그일 내놓구 다른 안정근이를 내가 만날까. 그리구 박은식...》   

  《가만있자, 박은식이라! 재작년에 신규식선생하고 함께 상해에서 <대동보국단>을 조직했던 그 백암선생아닌가? 그분이 지금 어디에 계시게?》

  《쌍성에 계셔. 연해주 쌍성에.》

  《그렇다면 천묵이 너가 로씨아에도 갔다왔단말이냐?》

  《그렇잖구. 내가 다리졸아붙어 못갈까, 멀어서 못갈까. 그인 올해 년세가 쉰아홉인데도 정력이 대단해. 왕성하다니까. 그분은 거기서 지금 <韓族公報>를 주관하고계셔.》

  《오, 그래? 역시 언론인답군!》

   서일은 24살을 먹던 해 교편을 잡으면서 박은식이 출간하는 <<學規新論>>을 읽던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있다. 그 저서는 교육사상이라는 측면에서나 유교사상이라는 측면에서 다 중요한 문헌이였다. 그리고 그후 을사조약(乙巳條約)때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어 신문지상에 발표한 그의 그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유교개혁을 강조하였던 예리한 논설들은 그 신문애독자의 한사람이였던 그를 깨우치게끔 교육한바가 큰 것이다. <<대한자강회보>>며 <<서북학회일보>>며 그가 직접 꾸린 신문들에 발표한 논문들은 다가 국민대중을 일깨움에 막대한 공훈을 세운 것이다. 특히 그 자신이 창건하고 교장이 되어 다년간 활발하게 꾸려온 오성학교나 서북협성학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한 것이다.

       <<나라는 비록 일시 망했다 해도 국혼 즉 민족정기만 멸하지 않으면 반드시 부활할 그날이 있을것인데 지금 적이 국사마저 멸하려 하니 통탄한 심정 금할길없다. 또한 일언일구의 자유도 없게 되었으니 내 차라리 적에게 더렵혀진 내 조국을 떠나 해외로 나가 반만년 지켜온 선인들의 자취를 연구하고 흩어진 잔존기록을 모아 민족사를 정리하고 민족정기를 앙양시키는 사업에 헌신하리라.>>

   이같이 도슬려 마음먹고 망명의 길을 떠났던 박은식이다.

   서일은 그가 여기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 봄에 국경을 넘어와 서간도 환인현 흥도천의 망명지사 윤세복선생댁에 기류하면서 여러권의 력사서적을 써냇다는것을 잘알고 있다. <東明王實記>, <渤海太祖建國誌>, <夢見金太祖>, <明臨答不傳>, <淵蓋蘇文傳>, <大東古代史論> 등  그가 쓴 민족의 얼이 담긴 실기저술들은 지금 왕청에 있는 명동학교의 교재로 쓰이거나 중광단원들이 사랑하는 열독교재로 되고있는것이다.

    묵은 서일에게 김은식이 신규식과 손잡고 동주공제(同舟共濟)한다는 뜻에서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고 총재로 추대된 일과 상해 프랑스조계지에다 박달학원을 세운 일을 말했고 홍콩에 가서는 “香江”의 편집이 되어 원세개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다가 붙잡혀 취조를 당한 일도 말했다. 그것은 서일도 알고있는 사실들이였다.

   원세개말이 나오니 그의 끝장을 새삼스레 새기게 된다. 원세개는 일제의 간계에 빠져 황제꿈을 꾸면서 매국적인 21개조약을 체결했다가 중국인민의 반발로 궁지에 몰려 지난해 6월 6일에 원망속에서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난건 황제가 없는 민주주의국가 즉 민국을 건설하자는건데 권력을 찬탈해 황제의 꿈을 꾸다니 원. <사주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겨진다>고 과연 속담 그른데가 없구나.》

   서일은 혼자소리로 뇌였다.

    묵은 연해주 연추에서 최재형선생도 만나보았는데 무사하며 한고향인 서일네 일가족의 안부를 묻더라 하고나서 그런데 그지간 서장록로인이 어쩌면 그렇게 불행스레 돌아가셨는가 하면서 지악한 토비를 증오했다.

  《내 없은 기간 일을 많이 해놨네! 변화가 많아!》

  《변화가 많다? 일을 해놓은게 알리는가?》

  《알리잖구. 마을 주위 골짜기마다 말떼네. 그게 다 우리의 것이라며.》

  《그러하이. 한데 무장은 아직도 거의 구하지 못한 상태야.》

  《구라파것을 구입하면 아니될까? 무기는 구라파가 선진이야.》

  《건 나도 알어. 한데 그걸 어떻게 구입하는가말이여.》

  《돈을 장만한 후 사람을 내놓아 무기상을 찾아...》

  《그쯤한 궁리는 삼척동자도 하는거야.》

   이말에  묵은 히죽이 웃고나서 속심을 내보였다.

  《고향에 좀 가봐야겠어 대체 무슨꼴루 돼가는지.》

   사타구니에 바람들었는지 또 나돌이를 할 궁리였다.

  《꼭 가봐야  나 뭐. 총독부가 지금 제할일을 기껏 하고있잖은가. <국세징수령>을 내린 이래 <지세령>이니, <시가지세령>이니, <담배세령>이니, <술세령>이니, <광업령>이니....어디 그것뿐인가 <조선은행권발행세령>에 <취인소세령>이라 그리구 저 뭐라더라?....<조선간접국세법칙자처분령>이라는 것 까지도 만들어서 무더기로 쏟아내고있지 않는가. 착취에 혈안이 되어 날뛰면서 백성의 고혈을 기껏 짜내고있는 판이지.》

  《그같이 혹심하고 열악한 속에서 독립운동자들은 대체 어떻게 싸워가는지?....나는 그걸 알아보고 얼마간이라도 도와주고싶다.》

  《거기 가서 돕는 일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마음 지긋이 안착하고 동천이를 협력해서 단원들의 기마훈련이나 잘하는게 좋겠어.》

   동천이 곧 신팔균인데 그는 요즘 명동학교에서 수료중인 500명 중광단원들에게 기마훈련을 시키고있었다.

  《기병이 보병과 싸울시 주의해야 할 점 두가지. 첫째는 산림지대나 막혔거나 비탈지거나 소택지를 만나면 그런 곳은 신속히 피해야 한다. 왜냐 하면 그런곳은 기병이 패하는 사지(死地)니까. 둘째는...》

   묵은 손자병법(孫子兵法)구절구절을 아직도 암기하고있었다.

 《그 전법은 뒀다가 실전시 써먹으라구.》

 《한데 내가 바라는 실전은 어느때 가야 벌어지겠나. 독립단체들이 미온적이구 발전이라는게 거부기걸음같으니 속에서 불난다.》

 《넌 그래서 미친년 널뛰듯 싸댕기는건가?》

 《친구! 내 이  묵의 거동을 그렇게만 품하하지는 말라구. 꼴꼴한 젊은이들을 골라서 보내지를 않던가.》

  서일의 말을 진담절반 롱담절반으로 받아 듣는 묵은 이 시각 자기 혼자서라도 한번 몸을 내번지고 싸워보고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났다.

  지난해 7월에 일제는 흥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다 총독부를 짓기 시작했는데 건축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의 10월에는 일본 육군대장 하세가와가 새총독으로 부임된 것이다. 묵은 지금 한창 짓고있는 총독부를 악마의 궁전으로 치부하면서 그것을 폭파해버리던지 아니면 자기도 안중근을 본받아 새 총독을 암살하고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속으로만 품었지 입밖에 감히 내지는 못했다. 실패하면 친구가 웃으리라여겨져서. 

  《한얼께서 자네를 보우하시기를 비네.》

   서일은 지지콜콜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를 눌러봤자 헛짓일 것 같아 이번에도 그럼 어디 네맘대로 해보라고 내쳐뒀다. 그는 자칫잘못하다가는 경찰에 잡혀 욕볼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보고 소시적에 “인간삼락”을 부르짖고 그것을 꿈꾸었던 죽마구우 최삼용이는 지금도 그냥 인천에 있는지 살아가는 모양이 어떤지 보거라 그리고 돌아다니다가 혹시 김규식을 만나게 되면 중광단은 이제 바야흐로 무장궐기를 할터이니 그리 알고 준비를 도와달라해서 그를 만주로 데려오라했다. 무장부대에는 작전실력이 있는 그런 인물이 없이는 안되는것이다. 

   현천묵은 부탁대로 하리라 대답하더니 며칠지나지 않아 과연 왕청을 다시떠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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