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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20.
남만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이 몇해동안에 독립운동간부를 륙속배양하여 그 수가 어느덧 3천명에 달하고있는데 그들 거의가 대일항전에 투신하고있었다. 1917년도에 이 학교에서 학업을 끝마친 제3기졸업생 채 찬(蔡燦), 신용관(辛容寬) 등 몇사람만 봐도 혈전준비로 실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김동삼과 손잡고 통화현에 백서농장을 세우고 경영하면서 내외지사를 모아 그들을 독립군으로 키우고있었다. 한즉 이같은 열혈의 남아를 투사로 길러내는 신흥무관학교야말로 성스러운 요람이라 하겠다!
한데 이 무관학교는 각종의 원인으로 하여 부득불 세곳에 나누어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본교는 통화현합니하(通化縣哈呢河)에 두고 통화현칠도구쾌모자(通化縣七道溝快帽子)와 통화현고산자하동(通化縣孤山子河東) 두곳에 분교가 나뉘여있었던것이다.
초대교장은 이시영이였고 현재는 교장에 이천민(李天民ㅡ李 洽), 부교장에 량규열(梁圭烈)였고 학감은 윤기섭(尹琦燮)이며 훈련감은 김창환(金昌煥이)였다. 지금 교성대장으로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보병중위 이청천(李靑天ㅡ池大亨), 기병중위 김경천(金璥天ㅡ光瑞), 신팔균 등이 교학과 훈련을 맡고있어서 청년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는바 입학지원자수는 날로 증가하고있었다. 그외 교관으로는 오광선, 이범석, 김승빈, 손무영, 박두희 등이였다.
특히 크게 역할을 하고있는것은 신흥학우회(新興學友會)였다. 그것은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과 재학생들로 조직된 강력한 혁명청년결사인바 만주 독립운동초기의 핵심조직으로서 일반민중이 큰 기대를 가지고있었던것이다.
新興學友會는 본부를 삼원포(三源浦) 대화사(大花斜)에 두고 “新興學友報”도 발행했다.
1. 혁명운동에 참가할 것.
2. 군사학교재를 간행하고 각종 학술을 연구하여 실력을 충실케 하는 것.
3. 각종 간행물을 통하여 혁명리론을 선전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 는 것.
4. 농촌에 소학교를 설립하여 아동교육을 담당하는 것.
5. 로동강습소를 경영하여 농민청년에게 군사훈련과 계몽교육을 행하는 것.
6. 민중의 자위체를 조직하여 적구(敵狗) 침입을 방지하는 것.
그들은 이상과 같은 사업목표를 정해놓고 그를 실천하기에 노력했다.新興學友會는 初代會長에 이근호였고 총무부장(總務部長)은 김동삼이였다.
서북으로 흑룡태원남(黑龍太原南) 녕소( 寧所)에
여러 만만헌원자손없어(萬萬軒轅子孫)없어
동해(東海)섭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젓먹여 길은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倍達)나라에
우리 우리 조상(祖上)들이라
그네가슴 끓던 피가 우리 핏줄에
좔 좔 좔 결치며 돈다.
장백산(長白山) 비단같은 만리락원(萬里樂園)
반만년래(半萬年來) 피로 지킨 옛집이여늘
남의 자식 노리터로 내어 맡기고
종서름받는이 뉘ㅡ뇨
우리 우리 배달(倍達)나라에
우리 우리 子孫들이라
가슴치고 눈물뿌려 통곡(痛哭)하여라
지옥(地獄)의 쇠문(門)이 온다.
칼춤추고 말을 달려 몸을 련단(鍊緞)코
새론 지식(智識) 높은 인격(人格) 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民族) 이끌어 내여
새나라 세울이 뉘ㅡ뇨
우리 우리 배달(倍達)나라에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
두팔들고 소리질러 노래하여라
자유의 기ㅡ빨이 떧다.
우렁찬 교가(校歌)의 울림에 신흥무관학교는 늘 생기가 넘쳐 흘렀다. 하지만 교포들의 피땀과 국내 애국지사들의 도움으로 겹겹이 덥쳐드는 온갖난관을 극복하면서 여지껏 지속적으로 운영해 오던 이 신흥무관학교가 갑작스레 파멸의 위기에 몰려들게 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7월이 다가고있던 어느날, 마적두목 당산(唐山)이 고등군사반이 있는 고산자분교(孤山子分校)에 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저의 부하 70여명을 이끌고 와서 갑자기 습격하여 윤기섭이하 박옥산 등 8명을 랍치해간 것이다.
마침 이때 만주의 독립군상황을 료해하느라 안정근이와 함께 순회를 하고있던 조성환이 고산자분교를 찾아가다가 날이 저믈고 비도 내리는지라 통화현내에 있는, 고산자의 하동과는 거리가 불과 5리가량밖에 안되는 한 산간의 중국마을에 들려 그 마을에 사는 교포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거기서 공교롭게도 꿈밖에 이러한 변이 생긴 것을 알게되였다. 마적떼가 밤중에 소란스레 마을을 경유했고 그통에 놀라고 불안해난 주민들의 입에서 아마도 고산자하동의 뉘집이 털린모양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거 일난 것 같은데 가보자!》
근거불충분한 소문이지만 듣고 보니 불길한 예감이 신경을 아프게 긁어놓아 도무지 진정할 수 없었던 조성환은 안정근이보고 신을 신으라하여 문을 박차고 나와 단숨에 고산자의 하동으로 달려갔다.
마을어구에 있는 첫집의 개가 입촌하는 외인의 기척을 잡아 듣고 다시짖어대자 온 동네의 개들이 덩달아 놀래여 얼낌덜낌에 소란을 피우는데 아니나다를까 고산자분교는 그 마적들에게 습격을 받은것이고 그때까지도 흥분과 갈피잡기 어려운 혼란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말그대로 눈섭에서 떨어진 액이라 몹시 격분한 학원들은 조성환과 안정근을 보자 어떻게 알고 왔느냐며 자기들이 마적들에게 습격당한것을 고발했다.
《그놈들이 야차같이 밤중에 달려들줄이야 누가알았겠습니까. 후ㅡ》
이곳에서 교관으로 있는 김경천이 한숨을 뿜고나서 학감 윤기섭과 박옥산을 비롯한 8명이 토비들 손에 랍치되여 갔노라 알려주었다.
《대체 어떤놈들이요?》
조성환이 물었다.
그러나 그는 물론 다른사람들도 이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어느 무리며 대체 무슨 목적에 그런짓을 하는지 몰랐던것이다.
신팔균도 이 학교에 와 있었다. 그는 잡아가는 제사람을 앗아내려다가 볼을 총탁에 맞았는데 퍼렇게 멍이 들어 보기끔찍했다.
《뼈가 부서지지 않은것만두 다행이요.》
조성환은 다른 무슨말로 더 위로하면 좋을지 몰랐다.
신팔균은 분해서 황소숨을 내쉴 뿐 함구무언이다. 토비가 왕청에서 백주에 서장록로인을 살해하더니 이번에는 동지를 8명이나 랍치해갔다. 눈을 펀히 뜨고 그따위 무리에 두 번이씩이나 당하면서 손한번 써보지 못하는 자신이 무기력하고 바보스럽고 억울해서 복장이 터질지경이였던 것이다.
《무기도 물건도 안빼앗고 그저 사람만 끌어갔단말이지?》
조성환은 토비가 윤기섭 등 여덟사람을 잡아간건 인질로 삼자는게 분명한데 대체 무슨 목적에서 그러는걸까 궁리하면서도 그자들이 돈을 노리여 그따위짓을 한다는데까지는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역시 신흥무관학교는 워낙 경제난으로 인하여 겨우겨우 지탱하는 것으로 알고있으니까.
구질구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어느새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때에야 밤새 기별이 가서 합니하의 본부에서 이천민교장과 이청천이 말을 타고 달려왔고 쾌모자에서도 김창환이 몇사람을 데리고 급히 왔다. 김동삼이도 왔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몰라 혼자 속을 끓이던 조성환은 여럿이 한자리에 모이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자들이 사람을 랍치해가면서 그래 아무말도 없더란말이지?.....》
《그렇습니다. 하니까 더 답답한 일이 아닙니까.》
오는 사람마다 꼭같은 물음을 제기했고 그럴때마다 김경천은 꼭같은 대답을 하면서 한숨쉬였다.
멍청히 당하기만하다니? 그저 이러고있을건가? 안그러면 당장 어떻게 한단말인가?....갑작스레 당하는 재난이라 생각들이 갈피잡히지 않아 한동안 주장들이 좌충우돌했다. 왜서 추격하지 않았는가 하는 사람, 지금이라도 뒤를 쫓아가봐야 옳지 않으냐 하는 사람, 신출귀몰하는 마적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사람, 그래도 행적을 찾아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사람, 대체 어느 마적한테 당했는지도 모른다면야 너무나 무책임한게 아니냐 하는 사람.....물론 랍치된 이들을 속히 되찾오고싶은건 꼭같은 심정이건만 묘계가 나지지를 않으니 공담으로 그칠뿐이였다. 지형에 어두우면서도 결김에 그자들을 쫓아가 해본다는건 대부등에 겯낫질이요 닭걀로 바위를 치듯 어리석어 자멸을 자초할 뿐 아무런 승산도 없는 노릇이였다.
그러면 어떻게 한단말인가?
《기다려보기요. 이제 찾아오는 놈이 있을거요. 사람을 인질로 잡아가는 걸 보면 어떤 교역을 하자는게 분명하단말이요. 안그렇소?》
김동삼이 조성환과 꼭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면바로 들어맞았다. 이틑날 정오무렵이 되자 과연 40대초반의 말탄 자 하나가 고산자 분교를 찾아온 것이다.
이쪽은 잠간 모여서 토의한 끝에 조성환혼자 그자와 대면키로했다.
《나는 당산(唐山)의 화서즈(花舌子) 장귀재올시다.》
그자가 스스로 자기를 먼저소개하고있는데 꿈밖에도 어떤 위협이나 거만을 빼지 않고 선한 얼굴로 례모를 깎듯이 차리니 이건 마치도 개의 입에 상아가 돋아난 것을 보는것같아 놀랍기도했다.
《당산이라니 그가 누구요?》
《우리네 따당쟈더(大當家的)올시다.》
《따당쟈더라?》
《그렇습죠. 그래서 남만에서 기국을 한 이래 당산패로 세상에 알려진거죠. 당산이란걸 들어본적있겠지, 삼척동자마저도 아는데.》
《당산이라니? 모르오. 금시초문인걸!》
조성환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 주위에 과연 그러한 마적떼가 있는 것을 모르고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은 마적의 피해를 두려워하면서도 여지껏 그 누구도 그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조사나 연구를 하지 않았으니 대단히 큰 실수였다.
그자는 량미간을 끌어 모은채 대중하듯 아래우를 훑어보더니 입을 열어 집요하게 물어보는것이였다.
《임자는 대체 무슨 책임입니까?》
조성환은 이럴 때 자기의 신분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여 품속에 소지하고있던 임시정부의 임명장을 꺼내보였다.
《대한국임시정부라? 군무차장이라? 오, 대단한 분이구료!》
《방금 거기서 자기를 화서즈라했던가? 건데 우리 사람은 왜 잡아갔으며 대체 어쩌자는거요?》
조성환이 캐고 들자 장귀재는 종이봉투를 꺼내놓았다.
《이 해엽자(海葉子)를 보면 알게될거우다.》
조성환이 받아서 속지를 뽑아 보니 사람을 찾아가겠거든 5천원을 당장 내라는 협박편지가 들어있었다.
《제길할, 귀신이 곡할 일이지! 5천원이 어디있다고 이 지랄이랄이냐!》
조성환은 어이없어 웃고말았다.
마적은 대방이 흥분하여 부르짓기도 하고 난색이 가득한 얼굴을 구겨박기도하는지라 자기도 부득이한 사정이라 하는수 없이 나선것이라했다.
《이 일이 하필이면 임자한테 떨어질줄이야, 나도 동정하고싶구만. 한데 낸들 별수있어야지. 그리구 임자 또한 마음너르게 쓸줄을 압네다. 우선 제사람을 찾아오구봐얄게 아니겠습니까.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 사람은 목숨이 중하지 그깟 돈이 다뭐라구. 더구나 양즈방(秧子房)에 같힌 이들이야 모다 아까운 분들이겠지요. 아니그렇습니까?....옛말에 가유만귀 주사일인(家有万貴 主事一人)이라 했거늘 어서 사람이나 구할 방도를 대시오. 그러지를 않았다가는 후과가 어떠하리란걸 알아야지.》
권고가 선근한 것 같지만 집요하고 위협적이였다.
(악귀가 보살의 탈을 쓰고 피를 마시는거야.)
조성환은 그자의 목에 데룽데룽 걸려있는 화상(和像)에 시선이 끌리자 일순간 생각이 종잡기 어려우면서 눈앞이 흐릿해나기까지 했다.
만주에 있는 전통적인 토비를 류자(綹子)라 부르는데 그런자는 거개가 목에다 이같은 불상을 걸고 다닌가. 그것이 곧바로 포대화상(布袋和尙)인 것이다. 포대화상은 18라한중 17번째의 라한이기도 하며 일명 달마다라(達摩多羅)라고 한다. 달마는 보디달마의 략칭이다. 기원 527년에 중국의 숭산 소림사(少林寺)에 와서 벽을 마주하고 종일 말한마디 없이 앉아있기를 9년이여서 벽관(壁觀)이라고도했다. 리입(理入)과 행입(行入)의 수행방법(修行方法)을 내놓았는바 서천(西天) 선종(禪宗) 第28組와 동토(中國) 선종초조(禪宗初祖)였다. 그가 바로 만주 토비들이 조상으로 떠받들면서 숭배하는 최고의 신인 것이다.
당산패마적은 남만에서 규모를 어느정도 갖춘 류자무리였다. 이런 무리면 따당쟈더(大當家的)아래에 소위 8대금강이라 부르는 내사량(里四梁), 외사량(外四梁)이 다 갖추어져있는데 화서즈(花說子)라하면 외사량중 두 번째급에 가는 인물로서 류자무리에서 련락관의 책임을 맡은 자인 것이다. 토비들은 표(票ㅡ인질)를 잡아다가는 길어야 5일, 빠르면 3일내에 보통 처리해버린다. 인질로 끌려간 집에서는 의례 화서즈가 갖고 오는, 돈과 사람을 바꾸자는 “해엽자(편지)”를 받게 되는것이다.
인질을 잡아다가 뜻대로 돈과 바꾸느냐 못바꾸느냐는 전적으로 화서즈의 능력에 달렸기 때문에 그의 역할은 자못 중요했다. 때문에 구변이 좋고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그를 다룰줄 아는 류자여야 이 직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랍치를 당한 측에서 돈을 내지 않을 것 같으면 별의별 수단을 다쓴다. 그래서 정안되면 인질을 죽이는데 그자들도 악명은 날리기싫어 되도록 인명은 빼앗지 않고 제 목적을 이루려하는 경우가 많은것이다.
표(인질)의 값을 정하는 것은 왕왕 그 무리의 책사(策士)인 반둬둬(翻垜的)와 표(票)를 관리하는 양즈방(秧子房)이 장꾸이더(掌櫃的ㅡ大當家的)와 토론해서 결정한다.
조성환은 이러한 내막을 알리없다. 토비란건 어쨌든 잔인무도한 인간의 집합체여서 인성을 잃기가 여상사니 내라는 액수의 돈을 같추지 않으면 인질로 잡혀간 사람의 목숨은 구하기 힘들것이라 어서 손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속이 타고 안달아날뿐이다. 그는 화서즈보고 내가 가서 여러사람과 토론하고 올 테니 우선 시간을 달라하여 그자를 기다리게 하였다.
《아니 5천원을 내라니!.....》
《그만한걸 내야 인질을 돌려보내리라?.....》
《한데 분교에 돈이 많다는건 어떻게 알았을가?》
조성환이 돌아오자 모두들 다시금 끓기시작했다.
《김선생, 이 학교에 그래 그 많은 거액이 있기나있소? 온 녀석이 하는 말인즉 그만한 액수의 돈이 꼭 있는걸로 안다는구만.》
조성환이 김경천과 물어보았다.
《돈말입니까, 있습니다.》
《아니 정말이요?....하다면 그게 헛소문은 아니였단말이요?》
《예. 헛소문은 아니였습니다.》
《허 이런! 헛소문이 아니라?....그런걸 난 토비녀석이 제짐작하고 헛소리치는줄로만 알았지!》
조성환은 이 소리를 듣고 다시한번 놀랬다.
《그 돈은 최형구선생께서 훌륭한 독립운동가를 많이 키워달라면서 우리한테 기부하신겁니다.》
이천민 교장은 안색이 침중하여 알려주었다.
《가만있자, 최형구라면 전에도 군자금을 모집하고는 자기의 자산까지 매도하여 무관학교운영비를 댄 분이 아니요?》
《맞습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최형구(崔亨球)는 정주(定州)사람인데 1910년에 대전(大田)에서 大明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한 것이다. 그는 1912년에 군자금을 모집하고 자기 재산을 팔아 6천 7원어치의 금을 장만하여 그것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만주의 임관호(林寬浩), 장관선(張寬善) 등에게 주었고 다시 8천원을 모집하여 이곳 남만에 있는 신흥무관학교의 운영자금으로 쓰게한 것이다. 그러던 그가 얼마전에는 자기의 사유재산을 처분한 금액과 모집한 군자금 5천 3백원을 갖고 자신이 집접 만주로 건너와 한족회(韓族會)의 책임자인 한진석(韓鎭錫)께 줘서 또 한번 무관학교 운영자금으로 쓰게끔 들여놓은 것이다.
돈이 있는건 어떻게 알고 달려들었는지 귀신이 피똥쌀 일이였다.
《그 누가 생각이나했겠소만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그같이 충열을 다하시는 분앞에 미안하고 죄송스럽기가 그지없구만.》
김동삼이 하는 말이였다.
모두들 기분이 불쾌하여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보탰다.
《우리 학원중 누군가 입을 건사못하고 놀렸을수도 있습니다.》
《제길할, 내부에 관한 것이면 외인앞에서 일언반구도 번지지 말라고 그리당부했건만....》
《조사해봅시다. 찾아내서 문초를 해야지.》
《하여간 우선은 발등의 불부터 꺼야지. 인질로 잡혀간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아니그런가?》
《그 많은것을 토비한테 빼앗기다니....》
《빼앗기긴 뭐. 그게 어떻게 생긴건데?》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돈인데 토비한테 빼앗기고만단말인가? 조성환도 그 돈을 내놓자니 뼈를 깎듯 가슴이 아팠다. 자기의 재산까지 팔아가면서 힘껏 장만해서 준 군자금이건만 그것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토비손에 빼앗긴다면 무슨 할말이 있으며 무슨 낯으로 지원자들을 대한단말인가? 그건 그렇고 일후에는 누가 군자금을 내자고하겠는가?....이 사건이 전반 독립운동에 부정적으로 영향이 미칠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렇다고 인질로 잡혀간 사람을 빼내오지 않는다면 그도 되지 않을 일이다. 하여 토론끝에 2천원가량 들이밀고 그것으로 어떻게 하나 사람을 빼오도록 담판해보기로했다.
조성환이 화서즈 장귀재를 다시만났다.
《그래 어쩔셈이냐? 돈은 마련이 됐느냐?》
오래동안 기다리느라니 갑갑했던지 화서즈는 짜증을 내면서 아까와는 다르게 입에서 버드러진 협박투가 나왔다.
《내 알아봤는데 돈은 확실히 생겼다는구만. 한데 그 돈은....》
《내놓기가 아깝다 그거겠지?》
화서즈는 이쪽의 말을 중둥잘라놓으면서 권고절반 위협절반해댔다.
《내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이야 구해놓고 봐얄게 아닌가. 생명이 중첨금이지. 아무렴 돈이 그보다 더할까. 허니까 후과를 생각해서두 내가 시키는대로 말을 곰상히 듣는게 좋암즉하단말이야.》
《도리야 명백하지만 우리로서는 딱한 사정이니 그러는거요. 글쎄 없는 돈을 어떻게 그 많이 내란 말인가?》
《없는 돈이라?....많다?....흥!》
화서즈는 콧방구를 뀌면서 머리를 가로젓는다.
《이게 어느땐가말이요. 돈이 생긴걸 그지간 다 써버려 지금 별반남지도 않았거니와 우리도 학교를 계속 운영할지말지 앞이 막막하단말이요. 상황이 이러하니 어쩌겠소. 2천원만 가져가구 우리네 사람을 내놓소.》
《하 이거 째째하게 노네. 고깟돈갖구서 사람목숨 여덟을 바꾸자는건가? 어림도 없지, 없어! 그건 안돼, 안되고 말고! 표하나 몸값 겨우 6백원에 몇십원 꼬리달린거 아닌가. 건데두 뭐가 어떻다?....대단히 봐주는거니 감사한줄 알아야 해. 그깟 2천원갖고 여덟을 바꾸자드니 원, 어리석지!》
화서즈의 태도가 이같이 이도 들어가지 않을 지경 굳은지라 조성환은 따귀를 갈겨놓기십도록 격분되는 것을 겨우참았다.
《략탈을 생업으로 한다고 아무럼 이다지도 무도의할수야! 하늘이 무섭지 않어? 불가사이야 불가사이!》
《아니 뭐라!?》
화서즈는 그 말이 듣기싫은지 벌떡 일어나 눈알을 굴리였다. 그리고는 낯색을 험하게 짓고 선언하는것이였다.
《권하는 술을 안마시면 벌주를 마시는거야. 어디 맛이 어떤갈 두고봐!》
그자는 말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일이 이같이 탈리자 조성환은 골통이 작탄이나 터진 것 같이 웅ㅡ했다.
속이 타면서 안달아기는 다른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끝장이다! 인젠 동지들을 다 잃었어, 다 죽였어!》
인질로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고 절망하는 사람. 그깟 돈 때문에 사람을 잃다니 하면서 한숨쉬는 사람, 군자금이야 다시모으면 될건데 하면서 돈을 1위에 놓고 동지간에 생명을 귀중히 여겨주지 않는다면 이제 누가 총메고나서자하겠는가 하는 사람... 입가진것마다 제소리였다.
모두들 후과를 기다리고있던 중 이틑날 저녁켠에 당산마적패의 화서즈 장귀재가 다시찾아왔다. 이때는 이천민 한사람만이 현지에 없고 다른사람들은 그대로 있었다. 이천민은 사태의 엄중성을 한족회에 보고하여 수습방도를 찾아보려고 어제밤 류하의 삼원보로 달려간 것이다.
조성환은 담판할 기회가 다시생긴줄로 여기고 그자와 사정해보리라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상이였다.
《엣다, 보거라!》
그자는 무언가 자그마하게 흰천에 뭉그려 싼 것을 내놓았다.
받아서 펼치는 순간 모두 악연했다. 피끗보아 피묻은 살점같은데 다시여겨보니 그것은 혀바닥이였다.
《땅!》
순간 요란한 총성이 모두를 놀래웠다. 격분한 신팔균이 권총을 뽑아내자 곁에 있던 김동삼이 발견하고 제꺽 제지하여 탄알은 사람을 맞히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나버린 것이다.
《흥! 나를?... 털끝하나 다쳐보지, 너희들은 이밤을 넘기지 못하고 몰살이다, 몰살! 어리석게!....잡궁리말고 돈이나 얼씨덩 갗추거라, 알아들 들었느냐? 래일 모레 글피에 내가 다시올테니!》
장귀재는 이같이 뇌까리고나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겁기라곤 조금도 없이 과연 배포유한 녀석이였다.
《누구의 혀가 잘렸을까?》
《이 일을 어찌할 생각입니까?》
쾌모자에서 온 김창환이 조성환과 따지듯 물었다.
《속이 달기는 나도 마찬가지요. 김선생도 조급해말고 머리를 쓰시오.》
이틑날 정오무렵에 이천민 교장이 한족회의 한진석과 함께 고산자분교에 다시왔다. 김동삼이 한진석을 만나자 최형구선생이 가산까지 팔아가며 꾸려준 운영자금이건만도 우리들의 불찰로 토비손에 빼앗기게 됐으니 면목이 없게 됐다고 했다. 그러자 한진석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누구를 탓할것있느냐 한족회에서 장만했던 군자금 3천원을 몽땅 가져왔으니 여기에 남아있는 돈과 합치면 5천원이 되지 않느냐 사람의 목숨을 건지는게 주요하다면서 이것으로 랍치된 동지들이나 어서 구해내라했다.
때가 되자 화서즈 장귀재가 과연 또다시 찾아왔다. 한데 이번에는 호위자 여럿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돈은 준비됐겠지?》
《없는 돈을 어떻게 준비하란말이냐?》
이번에도 조성환이 그자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는 돈이 준비된 사실은 숨기면서 견결히 맛섰다. 장귀재는 그렇겠지, 네가 이럴줄을 알았다면서 미리 준비해갖고 온 것을 내놓았다. 그것은 사람의 귀 한쪽이였다.
<<아니, 저 악한놈들이!....>>
<<이건 또 누구의 귈가?!.... >>
그것역시 진짜 사람의 몸에서 떼낸 것이라 다들 치를 벌벌 떨었다.
조성환은 도리머리질을 했다.
<<에, 아수라같은 놈들! 토비,토비 뭔가했더니... 내가 오늘 똑똑이 보게되는구나! 이 날강도놈들을 어쩌면 좋을고!.....>>
잡혀간 여덟동지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토비들 손에 시달리고있을것이였다.
밸같으면 당장 네죽고 내죽고 하련만 그래서는 되지 않을것이였다. 그럴일이 아니였다. 승산없이 대드는건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였다. 그러면?... 이럴때일수록 랭정해야한다고 생각한 조성환은 잠간 생각을 굴린 끝에 범을 잡자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해 하면서 용감히 나섯다.
<<가자! 내가 너들의 따당쟈더를 만나야겠다!>>
<<허 그래두 어른이 돌아가는게 빠른걸! 그래도 되지!>>
화서는 입을 뻐개면서 들어주었다. 때맞춰 앓음자랑을 오래한 늙다리류자가 죽어 산채에서 내가게 되니 그의 혀바닥과 귀를 베내여 써먹은건데 효력을 보는것 같아서 웃음집이 흔들했던 것이다.
산길을 거의 반나절이나 가서 어느 한 심마니가 사는 목피막에 이르러서 검은천으로 눈을 처매기에 하는대로 맏겼더니 다시 말잔등에 태워갖고 서너시간을 가는 것 같더니 다왔다는것이였다. 장백산줄기인지 아니면 장광재령이 시작되는 산중인지 통화에서 동쪽이라는것만 분명했지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조차 어려운 심산에 20여호의 산채가 있었다. 만주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까이에 마사(馬舍)가 있거니와 엄동의 한기를 막느라 새타래에 흙물을 묻혀 머리태꼬듯이 벽을 두텁게 쌓아 만든 커다란 토벽초가들이 대부분이였는데 산채의 복판에 있는, 통나무로 지은 커다란 귀틀집앞의 널다란 마당에서는 숱한 류자들이 모여서 한창 따떠위고있었다.
조성환은 한 젊은녀석이 머리꼭대기에 유리병을 이고 저쪽으로 가는것을 보았다. 한데 그것은 짧디짧은 한순이였을 뿐 총소리《땅!》하고 나더니만 꼭대기에 있었던 병사리는 박살나 보이지 않고 그자는 넋을 잃었는지 땅에 폴싹 주저앉고만다. 한자가 달려가서 사카구니에 손을 넣는 것 같더니 코를 쥐고 돌아서는데 장내가 떠나갈 듯 일장의 폭소가 터지고만다.
《아니 저 녀석들이 무슨 유희를 하는거냐?》
조성환은 보고도 알지 못했다.
그것을 과당(過當)이라 하는데 어떤 유희도 놀음도 아니였다. 그건 괘주(掛主) 즉 류자로 되려고 자원하는 자의 담량을 떠보는 시험인 것이다. 호로박이나 아니면 술병을 머리에 이여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십여보 걷게 하고는 땅쟈더가 권총을 쏘아 그것을 날려버린다. 담이 약한 자는 호로박이나 병이 날아나면 혼비백산하여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거나 아니면 총을 쏘지 않았는데도 바지에 오줌을 싸고마는 것이다. 그런자를 겁쟁이 파즈(扒子)라 하여 궁둥이를 차서 쫓아버리고 주저앉지도 오줌싸지도 않은자만을 단단한 녀석 띵잉(頂硬)이라 하여 산채에 받아주는 것이다.
조성환은 이날 이렇게 직접 그 수괴(首魁) 당산을 만나 그와 마주앉아 그자들의 불의한 행실을 조리있게 힐책함과 동시에 군자금 8천원이 어떻게 모여진건가, 나라독립을 쟁취하려고 국민이 한푼두푼 모으고 지어 가산을 팔아가며 지원해 모여진건데 너희들이 아무런 리유도 없이 그것을 빼앗아가면 뭐가 되는가, 이건 어린애 코끝에 묻은 밥알까지 갈퀴질하는게 아니냐 하고는 무도의한 일제의 침략본질에 대해 중오를 품고 말하니 당산은 곰곰이 듣더니 동정심이 생기고 잘못이 느껴져 다시 더 돈을 내라는 말이 없이 인질로 잡아둔 사람들을 내놓으면서 이 일은 없었던셈 치자고 량해를 구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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