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7.
인간이야 어떻게 되여가건 계절은 드팀없이 찾아왔다. 종달새 지종이여 봄을 알리고 따스한 햇볕에 해토가 되는 것 같더니 어느덧 소만(小滿)이 되었다. 이때면 농촌은 농망기에 들어서는 것이다. 집집마다 논도 갈고 밭도 갈아 씨앗을 심느라 바삐돌아치기 시작한다.
농부의 일생은 무한이라네
춘경춘수는 년년이로다
허널널 허널널이 상사나듸야
가지나무 수절절이
노다노다 가오.
염세신농씨 내신 법은
천하지대본이 농사로다
..............................
누가 부르는 농부가인지 귀맛좋게 들려온다. 뉘라서 이곳의 봄조차도 평화로울 것 같지 못하다던가? 때리고 죽이고 마스고 불태우고... 란세에 아수라장이 된 조선은 국경너머 저켠에 있었다.
명동학교 운동장은 의연히 활기넘쳤다.
《훈련은 계속해야한다.》
《일손이 딸리는 판인데 어떻게?》
《그래도 훈련이야 멈출수 없어. 새벽에 아니면 저녁먹고 밤에라도 해야지..》
덕원리에 있는, 전부터 군사력으로 취급받아온 원중광단의 그 500명은농망기가 되어 오니 저희들끼리 이리해야 한다느니 저리해야 한다느니 각자 왈가왈부 의론을 했다.
이때 채오가 나타나 집합령을 내렸다.
대렬이 정돈되자 서일이 나서서 그들앞에 선포했다.
《이젠 농망기에 점어들었다. 시기를 놓친다면 자칫 페농을 할수도 있으니 래일부터 전간일에 총동원! 그러나 몸을 무리하게 부려서도 안될것인즉 씨붙임이 끝날때까지 일체훈련중지다.》
《와!....》
그의 간단한 명령은 모두를 일을 해도 기쁘게 했다.
서일은 무장인원 30명을 더 뽑아 50명으로 마을경비를 강화케했다. 모두 전간에 나가 일을 하느라 농가들이 비여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떨거지토비들이 얼싸좋다 달려들어 제맘대로 략탈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서일은 또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대원들이 전간에 나가 일을 하더라도 현재 소유하고있는 200여자루의 총을 휴대하게 했다.
이날 오후, 아직 저녁식사시간이 되기전에 이전에 한번 그를 찾아온적이 있는 전성호가 다시금 나타났다.
《대한정의단에 들렵니다. 받아줄수 있나요?》
《당연히 받아줄수 있지. 내가 접때 그러마구 대답했으니까. 건데 여게 오면 자유를 못부린다는걸 알겠지? 농사일을 해야해. 당장 래일부터.》
《제가 왜 농사일을 꼭 해야합니까? 전 그냥 용정에 있고싶습니다.》
《집이 거게있소?》
《먼 친척집에 기거하고있습니다. 만주로 건너와서부터 내내.》
《오, 그래! 하면 용정이 익숙하겠는데 성호가 혼자 할 일이 뭐요?》
《거기 은행의 금고에 금전이 있습니다.》
《용한 소릴하는군! 은행금고에 금전이 있잖구 쌀이 있겠나. 그래서?...》
《내가 그걸 털렵니다.》
《뭐라! 건 어쨌다구?》
《무기를 다 갖추자면야 자금이 많이 들텐데.... 안그렇습니까? 그깟거 놈들의 거야....전 준비가 됐습니다.》
전성호는 자신있어하면서 품속에 감춘 권총까지 꺼내 보이는데 그것은 대공계(大公鷄)라 부르는 구식의 단포였다.
《하긴 그렇기도한데....》
은행을 털어내면 군자금을 내는 이들의 부담을 덜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요 청년이 총명하고 담대해서 해낼 듯 싶었다. 서일은 고개를 찌붓하고 생각을 굴린 끝에 네가 재간있으면 어디 한번 손써보라고 내처두었다. 그러면서 그가 대한정의단에 가입하느냐 못하느냐는 그 성공여부로 결정하기로 했다.
《웬 청년인가? 》
여지껏 훈련을 지도해온 라중소가 단실(團室)에서 나가는 초면의 그를 발견하고 물어왔다.
서일은 正義團에 가입하려고 벌써 두 번째 자기를 찾아오는 청년인데 이름은 아무개라면서 방금 두사람사이에 있은 일을 알려주었다.
《그가 정녕 겁기없는 치라면 장차 정찰병으로 쓰는게 어떨까.? 그건 전적으로 둘이 아니면 단독으로 행동하는거니까.》
《두고보지. 각인각성(各人各姓)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데.》
서일의 말이였다. 전성호와 같은 총명하고 대담하며 주견이 있어서 혼자서라도 자유로이 어떤 거사를 해낼 용기를 가진 청년이 한둘이 아니련만 적임자를 정작 고르자고 보면 힘들기도 했다. 서일은 라중소의 말과 같이 돈도 돈이려니와 그에게 정찰임무를 맡겨 적가까이에다 못을 밖아놓돗 잠복시킬 생각을 했다. 용정에는 적기관들이 있어서 그자들의 동향을 탐지할 필요가 있거니와 그러자면 그 지방에 익숙한 사람이 나서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발로 찾아와서 그러고 간 전성호가 다시나타나지 않았다. 손도 못써보고 그만 실패한것이다. 복면(覆面)하고 은행에 잠입한것인데 혼자다보니 인차발각됐다. 저항에 부딧친 그는 자기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일본인 직원 하나를 권총으로 갈겨 꺽꾸러뜨리고는 뺑소니를 친 것이다.
이 사건은 길림의 신문에는 물론 “遼東日報”에 까지 특대뉴스로 보도되였고 용정에 있는 재간도일본제국총영사관(在間島日本帝國總領事館)에서는 협의자를 붙잡느라 눈에 쌍불을 켰다. 그러나 사건을 빚어낸 범인은 복면을 한데다 아무런 단서도 잡힌 것이 없어서 수사는 어렵게 되였다. 기지있게 은행을 빠져나온 전성호는 왕청에도 오지 않고 배포유하게 거리를 나돌면서 동정을 살피다가 그곳에 있는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가입한것이다. 그것은 한때 태평무관학교의 생도였던 윤준희(尹俊熙), 한상호(韓相浩), 최봉설(崔鳳卨), 임국정(林國楨) 등 몇이서 분신쇄골이 되더라도 일제침략자에게 빼앗긴 조국을 되찾아오리라 굳게 맹세하고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서일이 농망기를 맞아 훈련을 중지하고 청년단원을 전간일에 총동원시키면서 마을경비를 곱으로 가강히 한 것은 옳았다. 파종이 한창이던 어느날 오후 한떼의 토비가 서북쪽 수림으로부터 나타나 마을을 향해 살금살금 접근하다가 망을 보고있던 보초에게 발각됐다. 보초가 제때에 신호총을 공중에 놓아 경비무력이 신속히 위세를 보였길래 그자들은 마을에 들어와 보지도 못한채 그만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말았던 것이다.
<<말을 한필 빼앗겨도 안되고 민가 한채 털려도 안된다!>>
이것이 지도부에서 내놓은 구호였다.
씨붙임이 다 끝난 5월 말의 어느날 <<同仁藥房>>에서 그지간 벌어놓은 돈을 가져가라는 기별이 와서 강철구를 데리고 용정에 간 이홍래는 약방에서 주는 돈을 받은 후 그곳에 있는 제창병원(濟昌病院)에 들려 영국인의 의사 민산해(StanIin Martanin) 교수가 그지간 책임지고 알심들려 속성으로 배양해낸 첫기의 의무일군 5명도 데리고 함께 돌아섰다. 그들이 오면 다시 그만큼한 수의 인원을 보내여 서의(西醫)를 배우도록 되어있는것이다. 서일의 타산은 옳았다. 重光團때부터 의술이 괜찮은 주견룡(朱見龍) 의사가 간호사 몇을 거느리고 있어서 병자가 나지면 치료를 해기에 그런대로 지내왔지만 대원수가 급속히 늘어나거니와 자기 관할내 교포들의 건강까지도 돌봐야 하는 현상황에서 그 누구나 의료진을 크게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껐던것이다.
용정을 떠난 이홍래 일행 7명이 갈길을 반남아왔을 때였다. 산굽이를 금방 도니 저앞 멀지 않은 랭천가에서 흰옷을 입은 두청년이 팔소매를 걷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두손으로 물을 움켜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갈한 목을 시원스레 추겨 기분이 좋은았던지 둘중 키가 큰 청년이 다시 길을 떠나면서 목청돋구어 노래를 부르는것이였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일일은
이내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야 돌아가리라
둘은 어디청년들인지 이쪽을 발견하자 목을 자주돌려 보군했다.
이번에는 키가 작은 치가 노래의 다음절을 불렀다.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
이홍래가 처음부터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우리더니 아마 만주로 가즈건너 온 치들 같구나 하면서 어성높혀 불렀다.
《여봐, 지금 어디루 가는 길인가?》
《남이야 아무데루 가건 상관이 뭐요, 제갈길이나 갈게지.》
키큰 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데퉁스레 내뱉았다. 뜻밖이였다.
《아니 저자식보지! 게 섯거라, 당장! 누구존전인데 함부로 버르장머리없이 그따위 말본새냐?》
강철구가 참지 못하겠던지 노한 어성으로 그를 질타했다.
저쪽은 아뿔싸 실수를 느꼈는지 가다말고 무르춤 뒤돌아본다.
《수양이 모자라게....》
《거드름을 피우다니....》
너 한마디 나 한마디 핑잔하는 사이 어느덧 거리는 가까와졌다.
《내 다시물어보지. 젊은이들은 어디루 가나?》
이홍래는 버릇없이 대구질했음에도 개의치 않고 어른의 그 후덥고 넓은 도량으로 재다시 물었다.
《왕청에 갑니다.》
대답이 올곧지 않던 치가 힛죽 웃어 실수를 뭉때리면서 겸손해졌다.
《오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하고 한길일세.》
이홍래는 이렇게 대방에 붙임성 좋게 뵈이면서 넌지시 캐물었다.
《왕청으룬 왜가? 뉘한테서 심부름이라도 맡은가보지?》
청년은 그를 힐끗 치떠보고나서 낯색을 궅히였다.
《어른께서 우릴 잘못보고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바보아닌 이상 량심버리고 그런짓은 안합니다.》
이홍래가 혹시 적이 풀어놓은 끄나불이나 아니냐고 떠본것인데 대방의 속심을 제꺽 짚어내는걸 보면 머리가 빨리돌아가는 청년이였다.
《이름이 뭐요?》
《정민호입니다. 얘는 내조카 강위구요. 이제 겨우 열다섯살 입니다.》
《민호삼촌은 나보다 구년이나 손위얘요. 우린 오다가 서로 만나 면목알고 사귀여 아재비조카로 된거얘요.》
덩치가 작고 아직은 애티를 벗지 못해 천진해보이는 강위는 활발하고 솔직하고 귀엽게 생긴 소년이였다.
《넌 고향이 어디멘데 부모곁에 있잖구 함부로 나도느냐?》
이홍래는 한발 더 캐고 들었다.
소년은 아재비로 삼은 정민호의 안색을 살피는데 그가 눈치를 다르게 보이지 않으니 사실대로 알려주는것이였다.
《전 고향이 경상남도 밀양인데 량부모 다 안계셔요. 깃대들고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서.... >>
강호는 울먹이여 말을 잊지 못했다.
고을부근에 몇호 안되는 삼협촌락이 하나 있는데 지형이 마치 말발굽같 았다. 그 골짜기에는 한줄기 통행로가 있을뿐 길이 더 없 었다. 왜병은 지어 로약자 부녀까지 백오십여명이나 잡아 그 안에 몰아넣고는 총을 함부로 쏘아서 다 죽인거다. 녀동생은 잡히지를 않았다. 이름은 계순이였다. 소년은 북바치는 울음도 용케 참았다. 그는 제 여동생을 숙부집에 맡겼노라면서 살해당한 부모의 원쑤를 갚겠다고했다.
정민호는 이럴 때 자기도 신원을 밝혀야지 그러지를 않았다가는 남의 의심을 살것이라 생각했는지 자진하여 자아소개를 했다.
《저는 고향이 경북 칠곡이고 을미년 정월생입니다.》
《을미년생이면 보자, 올해가 기미년이니....스믈넷인가?》
이홍래가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더니 계산해냈다.
《그렇습니다. 올해 스믈넷입니다. 난 세 살적에 어머니를 여의였습니다. 그래서 부친님의 슬하에서 자라게됐지요. 그러다 내 나이 여덥살 되던 햅니다. 임인년 팔공산에 큰홍수가 졌을 때였지요. 그때 그만 부친과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부친께서 저를 잃어버린게지요. 나는 밥을 빌어먹으면서 혼자 헤매다가 마침 함흥의 경성서 마음착한 선생님을 만났지요. 그런데 그이가 내 사정을 신문에 내주어 부친은 날 찾은거지요. 부친이 작고하니 나는 평양에 갔지요. 거기서 허드잡일을 해먹으면서 여적지 혼자살아온겝니다. 이번의 운동을 거기서 겪었지요. 그게 어떠했는지 압니까. 여러분이 듣고싶다면 해드릴수도 있습니다.》
모두들 듣고싶다면서 어서하라했다. 하여 시작한 이야기가 이러했다.
3월 1일, 평양의 한 례배당에서 주모측으로부터 12에 광무황제의 봉도식(奉悼式종)을 알리는 종을 울리니 그 소리를 듣고 남녀교인과 기타 사람 수천명이 식장을 만들어 놓은 송덕학교 교정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선교사 마포(馬布)가 래빈석에 참석했고 사복한 형사들도 와서 기미를 시탐했다. 찬송가로 시작된 식이 기도와 봉도식을 마칠 무렵에 태극기가 돌연히 앞에 걸렸다. 모인 사람들이 놀라면서 기뻐했다. 주모자가 나서서 독립선언서를 읽으니 피가 끓듯 세찬 맥박이 치는데 이때 다른 또 주모자 몇이 태극기를 수없이 날라다 나눠줘서 만세소리가 우레같이 터져나왔다. 왜경찰서장이 순사 수십명을 데리고 와서 주모자를 조사하고 해산하라했지만 군중들은 벌써 거리로 뛸쳐 나가 만세를 불렀다. 이에 십여만의 시민이 합세하였다. 한편 이와 때를 같이하여 남산의 례배당과 설암리의 천도교구(天道敎區)에서도 시위행진을 벌렸는데 그 기세가 합치니 대단했다.
왜헌병과 순사들이 전부출동하여 시위자들을 마구붇잡아 경찰서에 가두며 구타하였는데 기절한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분노한 군중들은 가두겠으면 우리마저 잡아다 가두라면서 기세가 더욱사나와졌다. 왜경들은 소방대를 시켜 물을 뿜게 했다. 그러나 시위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왜놈들은 저희들 일본사람 몇에게 조선복장을 입혀 끼여들게 하여 돌멩이로 경찰서의 유리창을 깨버리게 했다. 그리고는 이를 구실로 실탄을 발사하여 부상자를 숱해냈다. 소방대는 쇠갈구리로 마구찔러 시위자들을 살해했다.
3월 3일에 시위집회를 다시하자니 왜경은 이를 벌써 알고 경비를 가강히했다. 그러자 보통학교 여학생 70여명은 몇곳에 나누어 운동장을 중심으로 경찰들을 이쪽 저쪽 뛰여 다니게 만들면서 만세를 계속불렀다. 그런다고 뚜들겨 맞고 왜경과 변론을 하는 사이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는데 어떤 자가 나타나 헛소문을 퍼뜨리기까지 했다.
《지금 총독부에서 조선인에게 언론자유를 허락하였다고 서양인의 집에 통신이 왔다.》
이 소리를 듣고 군중들은 기뻐서 웨쳐댔다.
《그러면 우리는 성중에 들어가 큰거리에서 연설회를 열자!》
군중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서대문으로 달려들어가니 파수를 보던 왜병은 노도와도 같은 군중앞에 겁을 집어먹었거니와 영문도 모르고 성문을 열어주었다. 그리하여 와ㅡ고함을 지르면서 달려들어가는데, 광열적인 그 모양을 보고 질겁한 일경은 적수공권인 그들을 향해 총을 란사하기 시작했다. 거리에 피가 즐벅하고 주검은 늘어났다...
《하나님께 빌어 뭘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준답니까? 안됩니다. 총들고 싸워야합니다. 아수라같은 왜놈들을 때려엎지 않고서야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만세를 불러 광복이 되면야 좋지. 그래, 그래갖고 될번이나합니까? 안돼요, 안돼! 목숨내걸고 피흘리며 싸워야지 살길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정민호의 부르짖음이였다. 그는 왕청에 正義團라는 것이 있어서 이전부터 무력을 키워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 가입할 마음을 품고 찾아가는 길이였다. 그는 각성한 것이다.
모두들 그가 길을 잘선택했다고 했다.
한데 그들 일행은 왕청의 덕원리에 다 와서 뜻밖에도 놀라운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다. 正義團室에다 발을 들여놓은 정민호가 서일을 문득 보는 순간 그만 넔을 잃을 지경 악연했던 것이다.
《아, 아니 서기학선생님 아니십니까? 선생님이 왜 여게 계셔요?》
정민호는 알아보고 기뻐웨치는데 서일은 그를 인차 알아보지 못했다.
《누군가?....》
《선생님! 접니다. 정민호얘요.》
《뭐라! 네가 그래 민호냐?!》
그제야 서일은 알아보고 일희일경 어쩔줄은 몰라하고 정민호는 그를 부등켜 안고 어린애마냥 엉엉 우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가슴울리도록 감격적이여서 어떤 사람은 눈굽을 찍기까지 한다. 백포종사에게 언저 저같은 친인이 있었던가?...
《네가 나한테 의병격문 날라주던 때가 언제였더냐. 세월이 류수라 더니 그사이 네가 이렇게 컷구나!>>
경력을 놓고 비긴다면 정민호는 결코 남한테 짝질 청년이 아니였다. 의식적이였건 무의식적이였건간에 그 어느 구나 8살의 어린 나이때부터 반일항쟁에 참여를 했던가? ! 그가 소시적부터 늘 의병의 격문과 통문을 날라주어 서일과는 아주 숙친한 특수관계였다는 것이 알려지자 정민호는 댓바람에 인기인물로 되여 남다른 사랑을 받게 되었다.
왕청은 바로 이때 바야흐로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본영으로 부각되고있었다. 한데 정민호는 이곳에 와보니 생각던것과는 다른 현상을 보는지라 저으기 놀라기도했다. 덕원리에 온 이틑날이다. 그가 따로 로인회가 있다해서 찾아가보니 이달문, 정해식 등을 비롯한 여러 늙은이들이 바깥 백양나무 그늘밑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한창 초신(草鞋)을 삼고있었다. 저마다 한옆에 실오리같이 가늘게 비벼놓은 놓고 그것으로 초신을 만들었다. 그것은 삼오리도 아니고 아마껍질도 아닌것이였다. 정민호는 그것을 손으로 만져도 보고 코로 냄새도 맡아보다가 입을 물어봤다.
《이건 대체 뭔가요?》
안구가 하나 없는 이달문이 그한테 알려주었다.
《가래나무쩝질일세. 와 처음보는가?》
가래나무껍질로 초신을 튼다니 듣다 첫소린데 아무튼 그것은 질겨서 퍽 오래신을 것 같았다.
《이런 초신을 양반들도 신는가요?》
《거 무슨말을 본새없이 하나. 양반은 발을 등에다 지고다니는가? 여기 오면 동고동락을 해야하는 거야.》
이같이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정해식 양반이였다.
그를 내놓고도 다른 또 양반과 유생이 있었고 이달문이나 장기덕, 장사학같은 신분이 천한 사람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들 모두가 아주 영 신분적 구분을 타파하고 어우러 화목하게 지내고있음에 정민호는 감격했다.
온지 며칠지나 저녁켠 정민호는 로인들의 숙소에 갔다가 벽에 걸려있는 화승대를 발견하고 저거라도 들면 빈주먹만은 났겠지 생각되여 벗겨 들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다가 총의 임자인 담사리의병 출신 장기덕을 향해 말을 걸어보았다.
《이걸 나한테 주시죠.》
《그걸 널주고 난 뭘갖고 싸우라니?》
《늙으셨는데 이젠 그만 퇴병을 하시지요.》
《뭐라, 이놈! 날보고 쌈을 관두라는 말이냐?》
대방이 생각밖에 노발대발하는지라 정민호는 무참하여 낯이 확끈했다.
마침 이때 게화가 볼일있어서 들어왔다가 웬일인가고 물었다.
《저 창빠진 녀석이 무장을 해제하려구 접어들어서 내가....》
장기덕이 꾸며서 일러바치는지라 모두들 그만 폭소를 텃치고말았다. 물론 장기덕은 롱을 하느라 그런 것이였다.
《그깟거 부지깽이만도 못한걸 욕심내선 뭘하오. 새총을 구입하느대로 내가 하나 줄테니 근심마오.》
계화가 하는 말이였다.
이 로인회에 <<會三經>> 등사본이 한권있었다. 한문지식이 제일 깊은 정해식과 이덕수 두양반이 가담가담 보고는 그를 해석하여 다른 로인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치고있었던 것이다.
《<고 감물 막대호량 추리 막대호도 응사 막대호권> 이라....새통 무슨소린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정민호는 한문자를 겨우 뜯어 볼 정도의 지식수평이였다.
故 感物 莫大乎量 推理 莫大乎度 應事 莫大乎權
ㅡ물건에는 작고 큰 것이 있고
이치에는 굽고 곧은 것이 있고
일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나니
여기에 그 취하고 버릴바를 알면
도에 거의 가까우니라.
장기덕이 얌전한 소학생이 선생앞에 과문을 외듯이 젊은이를 향해 배운 것을 외고나서 일깨워주었다.
《우리 여게루 왔거든 먼저 교도가 되어 배우거라. 그래서 머리골에 올바른 정신이 들어 무장이 되면 싸워도 네가 알고 싸우게 되느니라.》
정민호는 그의 충고를 받고 과연 대종교에 가입할 생각을 하게되였다. 더구나 그가 마음속 굳게 믿고 존경하여 따르는 서단장은 만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종사(宗師)였던 것이다. 만민이 우러러 따르는 그를 내가 따르지 않고서야 되는가.
大倧敎總本司는 새로 입교하는 자들을 위하여 벌써 여러번이나 인쇄된 <<奉敎課規>>를 “敎報”에 다시실었는데 정민호는 특히 13, 14, 15을 읽노라니 생각이 깊어졌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13.奉敎人은 비록 敎外人이나 혹 外人을 대하여도 溫恭謙和로써 상대하고 결코 輕侮와 岐視가 없을것임.
14. 奉敎人은 本國古來에 忠烈, 英豪의 神明을 모두 崇敬할 것이요 비록 他國의 賢聖 및 敎門들도 또한 敬待 할 것임.
15. 만일 本敎를 篤信하는 사람이 廣見益智를 위하여 他敎에 입교하여도 不禁할것이요 또 他敎에 卽入한 자가 本敎에 願入하면 곧 허가할지니 대개 한배검의 寬弘하신 대도를 仰禮하여 異端을 不攻함....
《이건 교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바구나. 옳아, 마땅히 이리돼야지! 안그렀니?》
정민호는 강호와 함께 대종교에 가입하리라 맘먹고 보니 여기로 오면서 기독교도 마을에 들렸던 일이 새삼스레 상기되였다.
신의주역에서 만주로 들어오는 화물차에 몸을 숨겨 순조롭게 월경한 그들은 봉천역에 이르러 내렸다. 거기서부터는 내내 걸어서 남만의 류하현을 찾아갔다. 그곳의 신흥학교에서 무관을 배양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한데 학교측은 다음기에 보자고 미루면서 받아주지 않았다. 더 머물러 있을 멋이 없었다. 하여 병사 노릇이라도 해야겠다며 독립군이 있다는 왕청을 바라고 먼길을 떤난 것이다. 그들은 화전, 안도를 거쳐 수일후에야 비로소 동만 용정에 이를 수 있었다. 독립군을 찾아 헤매는 그들을 동포들은 랭대하지 않고 잠을 재우고 밥도 먹여주었다. 특히 용정근처에 있는 한 기독교마을은 그 어느 마을보다도 그들을 살틀히 대했다. 한데 그들은 정민호가 왕청에 간다니 거기는 뭘하러 가느냐 가지 말고 基督敎에 가입하여 색시얻어 집간이나 이루거라, 大倧敎는 리론도 높지 못하면서 東間島國民會처럼 민생은 관심안하고 그곳에서 무력에만 정신팔고있다면서 입을 비쭉거렸다.
《대종교인은 잘뭉치였다는 소릴 내가 들었는데 어쨌다고 헐뜯는걸가? 봉교과규만 봐도 대종교는 어른스럽잖은가. 타교를 존중해주고.....》
정민호는 大倧敎에 대해서 호감을 더 가졌다. 그를 사랑하여 지키리라 맘먹은 그는 주저없이 강호를 데리고 입교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