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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첫행은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최초의 순간이다...
2016년 10월 21일 20시 38분  조회:4069  추천:0  작성자: 죽림

작시법시의 제목과 시의 첫행 / 박제천

[한국시학

 

 

 

때는 마침 가을계간 [한국시학가을호의 [100인 신작모음]을 읽기 위해 나는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분량이 분량인지라 이제껏은 지하철의 출퇴근 시간에 내내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사람들 이야기소리휴대폰소리차내 방송 소리와 싸우면서한편으로는 밀려오는 잠을 뿌리치면서 읽는 시라선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많지 않았다그 때문에 귀중한 시편들을 그냥 읽어치우고 만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어이번엔 읽는 장소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산을 오르다보면 도시의 사람마을을 벗어난 상쾌함이 있다우선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산에 사는 이들은 사람마을의 말을 쓰지 않는다나무는 나무대로풀은 풀대로 저들의 말을 주고받지만 바람도 골짜기의 물도 그 말을 다 알아듣는다하고싶은 말 중에서도 가장 속내가 깊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어찌 생각하면 시의 언어도 산에 사는 이들의 말이기에 나는 [한국시학]의 그 무수한 시편들을 산에 사는 나무며 풀바위며 물그곳에 뛰어노는 풀벌레그곳을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읽어주기로 한 것이다.

 

잎이 다 떨어진 채 마지막 한 잎만 붙들고 있는 겨울 미루나무를 보여주자그 산의 나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미루나무의 [움켜쥠]이 저들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바람들도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단풍잎들도 미루나무와 말을 나누고 싶어했다그러나 더 이상의 정보가 부족했다속내를 털어놓기엔 아쉬울 만큼 내용을 갈무리해 압축시킨 것이어서 좀더 보여달라고 계곡의 물소리들도 발을 굴렀다발치에서 노오란 들꽃 부부가 콕콕콕 웃으며 내 바지를 잡아당겼어요.

들꽃 부부만이 아니었다나무 위에서 제 노래만 하기에 열심이던 새들도 이 작품을 듣고는 계곡으로 날아가 찬물을 맛보고마음껏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다녔다그러면서도 둥치가 큰 바위나 우듬지의 나뭇잎들은 [아침운동]보다는 [자유의 맛] [축복]의 자잘한 내용을 듣고들 싶어했다이렇게 걸음걸음마다 시 한편씩을 읽으며 산을 오르다보니 산이 곧 시요시가 곧 산이었다시인들이 자연에서 얻은 것을 자연에 돌려주고자연과 형제가 되는 길을 나는 그 산행에서 조금씩 깨우치면서 나의 새로운 시도가 맞아떨어졌다는 생각내게도 이런 신통한 생각이 들었다는 게 여간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뺨을 간질이는 바람에 흔들거리면서물소리에 걸음의 장단을 맞추면서 강춘장윤종석임성숙이운룡신찬식황송문장석향최진연정연덕이건선 시인 등시력이 오래된 시인들의 심경시들을 읽다본즉 구비를 넘어서 어느새 산길이 가팔라진다땀도 나고 다리도 아파온다머리는 맑아지는데몸은 바윗덩어리처럼 굳어만 갔다그때부터였다낯선 이름들아마도 시력이 짧은 시인에 틀림이 없는 작품들이 나타나면서 나의 산행은 망쳐지기 시작하였다아침에 일어나서 하품하고양치질한다는 초등학교 일기장처럼 그저 그렇고 그런 심상한 이야기들이 줄을 지었다내가 읽어야 할 시들은 아직도 무수히 많이 남았는데첫줄만 읽어도 머리가 아파왔다그 산에 사는 것들도 머리를 도리질했다나중에는 소리내 읽지도 못할만큼 입이 아팠다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의 첫행은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최초의 순간이다이때의 첫느낌이 상대를 대하는 마음의 고삐가 된다.그런데 [한국시학]의 상당수 시편들은 대체로 평범한 시행을 사용한다눈길을 끌지 못한다이들은 신기한 것은 경박하다는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지만독자에게 호기심을 주지 않는 한독자는 더 이상 읽으려 들지 않는다시인의 평범한 신변 잡담을 독자가 왜 읽어야 하는가첫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목이다이 글을 쓰다가 문득 목차를 다시 들여다본즉놀랍게도 많은 시인들이 아주 평범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었다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지만 특히 시 장르의 경우는 분량이 짧기 때문에 제목이 30% 이상의 역할을 한다.

 

멋진 제목호기심이 가는 제목놀라운 제목이 달린 작품은 그 내용 역시 기대감을 채워준다그러나 [한국시학]의 시제목들은 대체로 누구나 아는 평범한 오브제나 지명관념어보통명사 등을 쓰고 있다예컨대[무상] [업보] [기도]나 [우물가] [눈사람] [단풍] [] [기다림] [보리밥] [휴대폰]과 같은 단수의 단어들이 가득 채운 목차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제목들이 효과를 보는 경우는 세련된 제목들 사이에 하나 둘 정도 섞여 있어야 한다그러나 이번처럼 모두들 [평범한 제목이지만 읽기만 하면 특별한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단순한 제목이 나열될 경우에는 독자가 목차를 보는 것조차 괴롭게 만들기 쉽다.

 

중진들의 경우는 시집의 균형을 잡기 위해 이런 제목을 의도적으로 몇 개쯤 사용하기도 한다하지만 연치가 짧은 신인들의 경우에는 이런 제목으로는 독자와 만나는 첫순간부터 외면당하기 십상이다이 자리를 빌어 신진시인들에게 고언을 드리자면귀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옷차림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 무심함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여기서 나는 강우식 시인과 함께 저술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시의 첫행을 효과적으로 제시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좋은 시인들이 그 첫머리를 특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개발한 테크닉 중 세 가지 방법을 인용해둔다.2) 시간과 공간이 첫 행에서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경우는 훨씬 효과적이다이러한 표현법은 그만큼 압축되고 간결한 어휘의 구사가 요구되지만 표현상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유치환

길손이 말없이 떠나려 하고 있다장만영

<봉준이가 운다무식하게 무식하게황동규

소 한 마리를 잡기로 하였다송정란

의 예는 하나의 문장으로 첫행이 이루어졌으되그 주어가 명사어로 된 예들이다.

김수영의 예는 그 주어가 사물이고장만영과 황동규는 그 주어를 인간으로 하고 있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러나 김수영의 은 민족 또는 민중을 상징하고 박목월의 도 한 인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송정란은 소를 통해 시를 상징화하고 있다장만영은 길손이라는 불특정한 주어를 사용하고 있으나황동규는 전봉준이라는 역사상의 인물을 주어로 등장시키고 있다.

 

최근의 시에 가까울수록 특정한 시간·장소·인물이 시에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대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예술의 독자적인 개성이 요구됨에 따라 보다 사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그러나 이러한 테크닉은 시력이 오랜 시인들이 사용할 때 그 효과를 보는 방식이다신진시인들에게는 우선은 그냥 [연못]이 아니라 [거울 연못]과 같은 식으로 복합어를 사용하여 제목의 단순함을 벗어나는 시도를 해보라고 권하겠다. [한국시학]의 목차에서 예거한다면 [허무혹은 새에 관한 떨림] [달과 산성] [나귀 귀가 반짝이다] [상사화 속에는 성 한 채 들어 있다] [붉은 눈밭] [가을 백일홍] [그대는 산에 가면 산이 되는가] [떡갈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와 함께등이 그나마 묘를 얻은 제목들이라 할 수 있다.계간 시평에서 뜬금없이 작시법의 용례를 인용한 것은 그동안 [한국시학]의 시작품들을 통독한 결과이렇듯 습관적으로감정적으로 신변잡기들을 시로 발표하는 신진시인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평자가 작시법을 강의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오랜만에 이름을 선보인 중진시인들의 작품을 거론하지 못해 애석하지만신진시인들의 문제가 보다 화급한 사안이라 생각했기에 글의 방향을 돌린 것이다.

행의 정취를 흠뻑 즐기고 싶다는 나의 소망은 결국 이렇게 쓸쓸한 발길에 지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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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박제천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와 같은 명제는 시인된 자에게는 언제나 주어지는 시험지라 할 수 있다. 물론 명제에 따라 그때그때 작성한 답안지가 시작품이지만, 답안지를 제출하는 즉시 시험지가 또다시 부여되는 상황이니, 답안지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시를 통해 자화상을 그려내는 이 작업에서는 언제나 코가 조금은 비뚤어지고, 눈의 윤곽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가까스로 완성한 자화상의 얼굴 역시 제 얼굴로 보이지 않기 일쑤이다. 시의 속성이 바로 시인의 속성이니, 완성되고, 정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갱신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엘리엇이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란 오류의 역사란 말로 마무리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된 각자가 평생에 걸쳐 작성해내야 하는 답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란 마치 90퍼센트는 바다 속에 몸을 감춘 거대한 빙하와 같다. 그 속내의 90퍼센트조차 짐작하지 못할 뿐더러 그나마 보여지는 10퍼센트조차 제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수시로 변화하는 한순간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시에 대한 접근은 어느 쪽에서 부딪쳐 들어가도 그 전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한 40년 시와 함께 살아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의 길에 들어선 이래 나는 우선 좋은 시를 쓰고자 발버둥치는 일에 전력을 다해 매달렸고,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생업과 맞물려 좋은 시를 가려내고 펴내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펴낸 개인시집이 10권을 웃돌게 되었고, 문학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엮어낸 시집만도 160종이 넘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나 역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그동안 내가 써놓은 시작품과 앞으로 내가 써나갈 작품들을 합한 것이라는 답변이 나올 뿐이다. 

시를 쓴다는 일은 영혼의 전신포복이라 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 오체투지한 채 한뼘 한뼘 배밀이를 해나가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시인의 싱징물이라면 그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는 은유의 그물망을 이룰 수밖에 없으므로 그 낱낱의 상징과 그물망을 점검하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몫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인이 불과 2,30편의 서정적인 단상으로 그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직절적으로 파악하고 묘사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동시에 그 세계의 편협성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어찌하여 나는 사람이며 저것들은 돌인가, 우주의 이 일점 별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가. 누구도 내 궁금증을 풀어줄 길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라고 생각하면 저것이 새로이 나타나고, 이 모습을 가질 때에는 저 모습이 또 출현하는 이 무차별의 정신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미로로 짜여진 한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때문에 장주(莊周)도 혼돈을 이 세계의 거푸집으로 내세웠던 것이리라. 

내 안에서 나를 영매 삼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것들을 여지껏 시라고 불렀지마는, 나는 그 거품의 시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시를 만나고 싶다. 맥주의 거품이 그러하듯 시의 향과 맛은 실상 이 거품에 담겨져 있는 것이라 알고 있는 나를 지나서, 아직도 발효되지 않은, 덩어리째로 내 안에 숨어 있는 것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시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하더라도 막상 창작의 과정을 체계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매 작품이 내용에 따라 그에 걸맞는 형식을 창출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그 내용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를 위해서는 시창작을 희망하는 새내기들을 위해 출간하였던 책들을 소개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최근 10여년에 걸쳐 나는 새내기들의 시쓰기를 거들어온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나와 공부한 새내기 시인이 백여 명을 넘어섰을 뿐더러 시간이 갈수록 그네들이 더욱 좋은 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창작지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이 강우식 시인과 공저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비롯하여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의 시창작 실기 시리즈 3권이다. 창작을 위해 개발한 일종의 소프트웨어를 기술한 것이다. 이 방식은 실제의 창작교실에서 새내기들의 작품 방향을 제시하고, 창작 여건을 효과적으로 조성하는 한편, 실제 창작에 필요한 표현의 구조를 습득시키는 것이다. 

요점만 발췌한다면, 나는 시를 공부하려는 새내기 동무들에게 우선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는 명제 중에서 [어떻게]를 먼저 선택하라고 권한다. 두 가지 명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기초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라는 것이다. 시 쓰기는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갈등이나 절망을 화해로 풀어내고 씻어내는 한판 굿거리처럼 신명나는 일이므로, 이처럼 신명나게 시를 쓰려면 [어떻게]에 관한 규칙을 정해 놓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모든 스포츠에 룰이 있듯이, 모든 예술에 형식이 있듯이 그 규칙과 형식을 먼저 익혀야만 주어진 무대, 펼쳐진 마당 안에서 한판 영혼의 축제를 신명나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규칙의 제1조는 창작 시간이다. 한편의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시간은 누구도 정할 수 없겠지만, 나는 내 경험상 30분 정도로 짧게 잡아 단시간에 집중의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 말을 처음 듣는 새내기들은 대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규칙의 제2조는 [제1조가 손에 익을 때까지 한번 쓴 작품을 수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 역시 새내기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불평에 가득 찬다. 규칙의 제3조는 [한편의 시를 15행, 4단 구조로 전개하라]. 규칙의 제4조는 [하고 싶은 말을 쓰지 말라]. 규칙의 제5조는 [운명이니 사랑이니 가족이니 사회니 남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을 쓰지 말라] 규칙의 제6조는 [자신의 상처나 부끄러움이나 죄를 고백하라]. 이렇게 내가 정해 알려주면서 끝없이 요구하는 규칙의 대부분에 대해 새내기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 [이게 무슨 예술창작인가] [자유시를 쓰는 데 무슨 규칙이 있는가] [쓰고 싶은 말도 안 되고, 이 말도 안 되고 저 말도 안 되면 도대체 무슨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도식적인, 어찌 생각하면 그네들이 생각하고 있는 예술을 모독하는 소리만 골라 말한다고 역정에 가득 찬다. 
마침내 불평꾼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면, 나머지 새내기들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한 그룹은 반신반의하면서 [한번 해보자] 하고, 또 한 그룹은 [하라는 대로 하자]며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그리고 한두 해가 지나면 [하라는 대로] 그룹이 먼저 형식을 손에 익히고, [한번…] 그룹도 뒤이어 하나 둘 형식에 익어가기 시작한다. 이 무렵부터 내가 그네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에 관한 문제이다. 이미 형식을 익혔으니 그 형식을 버리고 내용에 걸맞는 새 형식을 창출하는 예술 원론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과 달리 한번 써놓은 작품도 꼼꼼이 퇴고를 하고, 좋은 모티프가 잡히면 시인의 내부에서 숙성이 되도록 기다리는 법도 익혀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시에 관한 자신의 생각도 정리를 해야 한다. 잎에서 말한 엘리엇의 지적대로 시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단시간의 일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작성해야 하는 답안지이며, 그 답안지는 한편 한편의 시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시를 써내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작품이 축적될수록 그 내용이 상승하는 방법론, 그리하여 한 시인이 스스로 정한 빛의 방향으로 한뼘한뼘 영혼의 전신포복을 해나가는 일이 시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나와 공부하던 새내기들이 [어떻게 쓰느냐]는 명제에서 벗어나 [무엇을 쓰느냐]에 헌신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도 내게 주어진 무상의 은총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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