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6월 2024 >>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29
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연변축구의 한획을 그은 최은택교수님의 기념비를 세워야...
2017년 02월 08일 18시 05분  조회:5141  추천:0  작성자: 죽림
'진정한 스승의 풍모' 최은택,
그는 어떤 분이였던가
(ZOGLO) 2017년2월8일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감동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그만큼의 력사적인 사건과 잊지 못할 장면도 기억 한가득 쌓여가고 있다. 올 2월 5일은 연변에서 감독이란 호칭 대신 교수로 추앙받으며 연변축구에 한획을 크게 그으신 최은택교수님의 작고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연변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들이 더욱 분발해지길 바란다. 부디 이 글로라도 진정한 스승의 풍모가 항상 느껴졌던 교수님을 기념하고 비록 몸은 우리와 리별했지만 그가 우리 연변에 남긴 정신을 기리고 싶은 마음이다. 편집자

“그런 식으로 뽈 차려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지으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을것이면 논밭 갈고 부모께 효도라도 하라” 1997년 정신력이 흐트러진 연변선수들에게 내렸던 그의 불호령은 지금까지도 연변선수들의 투지를 불태우는 명언으로 전해지고있다.

연변과의 만남은 우연이였다. 최교수는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다가1997년, 1998년을 안식년으로 보냈다. 이때 팔꿈치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수소문하다가 중국쪽에 한방 치료를 잘하는 곳이 있다는 말에 연변으로 향했다. 당시 최교수를 안내한 한양대 학생 추명은 조선족이였고 최교수는 연변에서 축구계 인사들을 만날수 있었다.

연변대학은 최교수에게 1년 동안 겸임교수를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성적이 좋지 않았던 연변오동팀의 지휘봉을 잡아달라고 간청했다. 최교수는 연변대학의 요청은 흔쾌히 수락했지만 감독부임을 두고는 고심했다. 1986년 포항제철팀 지휘봉을 놓은후 10년 동안 축구현장을 떠나 있었다. 게다가 연변팀의 성적과 환경은 좋지 않았다. 최교수가 직접 관찰한 연변오동팀의 상태도 실망스러웠다. 담배와 술을 상시적으로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최교수는 지난 2000년 7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정확히 밝혔다. 그는 자신의 조건을 수용하면 지휘봉을 잡겠다고 했다. “팀을 맡기려면 내가 하자는대로 해야 한다. 2부로 떨어지더라도 성적을 두고 시비하지 말라. 선수 기용이나 관리에 대해서도 일절 간섭하지 말라.”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자 최교수는 1997 시즌을 앞두고 연변오동팀 감독이 된다.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담배와 술을 가까이하던 주축 선수들을 모두 내쫓았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선수들을 모두 쫓아냈다. 그러고는 18∼19세의 어린 선수 30명을 모아 기초훈련부터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야단이 났다. 쓸만한 선수들은 다 내보내고 어린애들을 데리고 무슨 프로축구를 하겠다는거냐고.”

연변은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전권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런 급격한 개혁을 할것이라 예상한이는 없었다. 최교수는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였다. 청소년대표 시절에 최교수를 만났던 허정무 한국 프로축구련맹 부총재는 최교수를 이렇게 기억한다. “좋은 분이셨지만 선수들은 굉장히 무서워했다. 성격이 칼 같은 분이였다. 철학이 분명했고 고집도 있었다. 아마 한국 축구인가운데 처음으로 독일류학을 하신것으로 알고있다. 선진적인 훈련방법을 한국에 도입하기도 했다. 무서웠지만 내게는 잘해주셨다. 힘들어 하는 선수들을 보듬어 줄줄 아는 분이였다.”

개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교수는 연변에 프로축구선수라는 개념을 알린 선구자다. 당시 연변오동팀은 경기 출전 여부에 상관없이 20명의 선수에게 경기수당을 똑같이 나눠줬다. 최교수는 경기에 뛰는 선수에게만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하며 경쟁에 불을 당겼고 훈련을 게을리하면 팀에서 내쫓겠다고 엄포를 놨다. 선수들이 꾸물거리면 불호령을 내렸다.

최교수 아래서 연변팀은 조금씩 강해졌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좋지 않았던 연변팀은 수비적인 경기를 해왔는데 경기 양상도 확실히 바뀌였다. 최교수는 많이 뛰는 축구로 상대팀을 압박했고 공을 빼앗으면 많은 인원을 공격진으로 일시에 올려보내는 전술로 재미를 봤다. 한 상대팀 감독은 최교수의 연변팀과 상대하는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연변팀과 경기하면 마치 미친개랑 싸움하는것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뛰여다니고 그림자처럼 붙는다. 전혀 당해낼 방법이 없다.”

연변팀은 강해졌다. 젊은 선수들은 경기를 거듭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어떤 상대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았다. 결국 1997 시즌을 4위로 마무리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열광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최교수를 명예(영예)시민으로 추대했다.

최교수는 소리를 질러 연변을 바꾼게 아니다.

최교수는 선생님의 마음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갔고 선수들은 최교수의 진심을 느꼈다. 최교수는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연변오동팀은 월급을 거부하는 최교수에게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급했다. 일반 시민들의 기준으로 보면 큰 돈이였지만 외국감독이 생활하기에는 작은 돈이였다. 최교수는 이 돈마저 거의 선수들에게 소비돈으로 줬다. 한 선수가 지갑을 잃어버리자 자신의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내줬고 외국인선수에게는 국제통화료를 계산하라며 돈을 줬다.

독일 국적의 당시 중국 국가대표팀 슬라프나감독이 “정말 월급을 받지 않느냐?”라고 묻자 최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난 도우러 온것이지 돈을 위해 온게 아니다.” 최교수는 시즌을 치르다가 쓰러진적이 있다. 석가장으로 원정을 떠나다가 공항에서 갑자기 중풍증세를 보인것이다. 최교수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석가장 원정을 떠났다. 결국 석가장에서 선수들의 강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최교수는 경기 당일 다시 그라운드에 나타나 감독석에 앉았다. 선수들은 감동했다. 당시 로장이였던 황경량은 이렇게 말했다.

“최감독의 모든 행동은 모두 우리를 위한것이다. 월급도 받지 않으면서 림시로 도와주러 온 사람이 이러하신데 우리가 무슨 리유로 열심히 뛰지 않을수 있겠는가!” 

최교수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지난 1998년 연변은 연변오동팀과 최교수의 발자취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었다. 

당시 한 조선족아이는 누구를 가장 존경하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최은택교수님”이라고 답했다.

최은택교수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축구선수가 되기전에 인간이 되라”는 만인이 공감하는 리념을 중국에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연변축구팀의 선수들에게 최은택교수는 감독이 아니라 아버지였고 인생의 스승이였다.

연변팀 코치나 선수들 모두 감독님이라고 부른것이 아니라 학장님, 교수님으로 존칭하였다.

연변팀의 이런 가족같은 분위기는 타팀 선수나 다른 지역 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였고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있다.

 


 

중국에 대서특필된 부고

 

 

연변과 아쉽게 리별했지만 최교수와 연변의 인연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최교수는 2000년 길림성의 한 출판사에서 <<축구의 예술-나의 축구관>>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후에도 연변과 중국 전역에서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교육하는데 도움을 줬다. 여러 도시의 축구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강의했고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연변에 들려 도움을 줬다. 최교수는 2005년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강의했고 이것이 마지막 연변 방문이 됐다.

2007년 2월 5일, 최교수가 지병인 페암으로 작고하자 그의 별세에 중국 <<시나닷컴>> 등 주요 언론이 특집기사를 마련해 최교수를 추모했다. 연변뿐만 아니라 중국의 많은 이들이 최교수의 죽음을 안타까와했다.

“최교수님, 천국에 계신 당신을 너무나 뵙고 싶습니다. 영원히 당신같은 진정한 호인(好人)을 잊지 못할것입니다.”...

최교수가 연변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학생이였던 부모가 현재  박태하감독에 열광하는 자신들의 아이에게 혹시 이렇게 말하지 않을가? “박감독 전에 연변에는 ‘큰별’ 최교수님이 계셨다”고.

 

 


 

조선족의 자존심 세운 사람

 

 

지난 2015년 10월 24일, 박태하감독이 이끄는 연변장백산팀은 갑급리그(2부리그) 우승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경기장 분위기는 극적이였다. 지난 시즌 꼴찌였던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였다. 조선족축구팀이 우승을 차지한것은 50년만이였다. “연변인민의 영웅 박태하 THANKYOU”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프랑카드가 본부석 맞은편으로 올라갔다.

“어 저건 누구지? ” 박태하감독과 하태균과 같은 “공신”들을 응원하는 프랑카드가운데 낯선듯 낯익은 프랑카드가 보였다. 고 최은택감독, 아니 최은택교수를 기리는 프랑카드였다. 최교수가 이끈 연변팀은 1997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갑A(1부리그) 4위를 차지했다. 이는 연변팀이 프로리그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최교수님이 여기 계셨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연변팀 서포터 박미화씨는 박감독에 열광하면서도 최교수를 떠올렸다. 연변이 최교수를 기억하고 기리는것은 성적때문이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렬악한 상황에 있었던 연변을 일으켰고 조선족의 자존심을 세운 이가 바로 최교수이다.

 

/연변일보 본면 글· 기획 리영수 리병천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11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993 [ "부고" ] - "금강이"야! "금강이"야!... 운명을 달리하다... 2017-02-10 0 3282
992 [록색문학평화주의者]백두산호랑이 "금강이"를 인젠 못본다... 2017-02-10 0 4749
991 [록색문학평화주의者]동북호랑이 왈; ㅡ내 친구가 죽어다니... 2017-02-10 0 4767
990 [이런저런] - 돈, 파지재가루가 되다... 2017-02-10 0 3027
989 [이것이 알고싶다] - 돈은 어떻게 제작되나?... 2017-02-10 0 3393
988 "카츄사" 노래 가사가 중국 연변 방천 "장고봉"에서 태여나다... 2017-02-09 0 3162
987 [고향문단소식] - 화룡 출신 김준 "쑥의 향기" 퍼뜨리다... 2017-02-09 0 2901
986 [쉼터] - 도난당한 유니폼 모두 복제품, 다행이네ㅠ... 2017-02-08 0 3261
985 [쉼터] - 스포츠와 유니폼과 경제학... 2017-02-08 0 4315
984 [쉼터] -스포츠스타 유니폼 도적당하다...팔다...소장품 되다... 2017-02-08 0 4919
983 [쉼터] - 수수께끼 100 2017-02-08 0 2745
982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뜯어보면 한 사람이 죽는다?..." 2017-02-08 0 5446
981 [쉼터] - 정월대보름의 유래 2017-02-08 0 4672
980 연변축구의 한획을 그은 최은택교수님의 기념비를 세워야... 2017-02-08 0 5141
979 [고향소식] - "동방의 제1촌"에서 3국의 닭울음소리 듣다... 2017-02-07 0 3357
978 [시문학소사전] - "페미니즘"란?... "페미니스트"란?... 2017-02-05 0 6394
977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자주 보면 좋을 법한 명언 100 2017-02-05 0 3719
976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말(語)" 명언모음 2017-02-05 0 3604
975 커피를 연료로 자동차가 못달리다?... 달린다!... 2017-02-03 0 5054
97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우리 고향에서도 "호박벌"을 화분매개곤충으로 리용해야... 2017-02-03 0 7092
973 [록색문학평화주의者]-100여년만에 백두산호랑이 반도에 오다 2017-02-02 0 4800
972 [록색문학평화주의者]-"백두산호랑이" "38선"을 넘나들기만을... 2017-02-02 0 5506
97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에서 보내는 시간을 잘 리용하기 2017-02-02 0 3775
97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물건들 2017-02-01 0 6171
96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기... 2017-02-01 0 3318
968 [이런저런] - "매 팔자 상팔자" (2) 2017-02-01 0 3338
967 [이런저런] - 매가 비행기를 타다... 그것도 80마리씩이나... 2017-02-01 0 4862
966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공연 관람할 때 2017-01-31 0 3669
965 성벽 돌에 키스를 하면 달변가가 된다?... 글쎄ㅠ!... 2017-01-31 0 5173
964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엘리베이터 타고 내릴 때" 2017-01-31 0 3361
963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문 잡아주기" 2017-01-31 0 4974
96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우주인 우주선에서 방귀를 뀌다... 2017-01-31 0 4232
96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화성에 간 우주인 먹거리 = 감자 2017-01-31 0 5071
960 [쉼터] - "손은 인체의 축소판" 2017-01-29 0 3502
959 [그것이 알고싶다] - 영화는 어느 때부터 태여났나?... 2017-01-27 0 4593
958 [그것이 알고싶다] - "지구종말시계=운명의 날 시계"란?... 2017-01-27 0 5232
957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올바른 세배 례절 가르쳐주기 2017-01-27 0 3405
956 [그것이 알고싶다] - 설날 차례상 차리는 법 2017-01-27 0 4810
955 [그것이 알고싶다] - 지방(紙榜) 쓰는 법 2017-01-27 0 5601
95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전 세계 200여개 나라가 합심하여 모든 오염을 줄이기... 2017-01-27 0 3350
‹처음  이전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