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허형만
진솔한 삶의 역사를 위하여 ―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나는 누가 무어라 해도 '시'와 '삶'은 하나라고 믿고 있다. 나의 삶이 잠시도 쉬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전력투구 온몸으로 나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나의 시 또한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에 나의 시에는 가장 가까이 나의 가족사(家族史)가 많다. 그러나 이 가족사가 한정된 범주의 나만의 가족사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간사(人間史), 나아가서 모든 생명 있는 것에까지 확산되기를 바란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졸시 한 편을 보자.
시월이라 청자빛 우리나라 하늘 닮은
만고에 순하디 순한 우리네 許松氏는
일자나 한 자도 무식에 무식이지만
아들 딸 서울 유학에 발톱 빠진 許松氏는
젊었을 적엔 머슴도 했다. 소작도 했다.
고향 그리워 고향 찾아 돌아오던 날 밤
절 먼저 물꼬부터 훑으면서 눈물 씹던 許松氏는
국법을 조심하고 국토를 중히 하야
전라도 순천땅 닷마지기 논빼미에 혼을 거두는
초야의 잡초보다 질긴 심줄 許松氏는
이마에 흐르는 땀이 푸르딩딩 번득거린 허허청청 달도 밝은 이 한밤
짚가리 옆에 쭈그려 지성으로 낫을 가는 許松氏는
조선낫이사 잘 들어야지야, 암 잘들어야지야 다짐하며
황토내음 오금 박힌 손바닥에 탁탁 침 뱉는 許松氏는
살아야 밍(命)인께, 먹어야 뵉(福)인께
푸른 댓잎 서걱이는 소리로
하얗게 하얗게 밤이슬에 젖어드는
낼 모래가 환갑이신 우리네 許松氏는
―「許松氏」전문
이 시는 80년대 초반에 씌어져『현대문학』에 발표되고, 그 후 두 번째 시집『풀잎이 하느님에게』(1984, 영언문화사)에 실린 작품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許松氏'는 실제 인물로 필자의 숙부님이시다. 이 시 어느 한 구절에도 거짓은 없다. 그만큼 숙부님의 삶의 역사가 허튼 기교도 없이 과장도 없이 있는 그대로 객관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어찌 내 숙부님이신 '許松氏'한 분만의 삶의 역사이겠는가. 이는 곧 이 나라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우리네 농투산이 모두의 이야기이지 않겠는가.
하이덱거(Heidegger)는 말했다. 언어라는 것은 인간이 역사의 존재로 존재할 수 있는 보증을 한다고, 언어란 인간존재의 드높은 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는 계기라고.
그래서일까. 다음과 같은 졸시를 쓰던 날 밤은 퍽도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비나리는 밤이면/어머니는/팔순의 외할머니 생각에/방문 여는 버릇이 있다.
방문을 열면/눈먼 외할머니 소식이/소문으로 묻어 들려오는지/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기대앉던/육순의 어머니.
공양미 삼백석이야 판소리에나 있는 거/어쩔 수 없는 가난을 씹고 살지만/꿈자리가 뒤숭숭하시다며/외가댁에 다녀오신 오늘,
묘하게도 밤비 내리고/방문을 여신 어머니는/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젖어
― 차라리 돌아가시제./돌아가시제.
―「밤비」전문
내 갓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외할머니의 사랑과 정성 속에서 자랐다 한다. 그 외할머니는 지금도 눈먼 채로 살아 계신다. 나이는 아흔 중반. 따라서 이 시 역시 80년대 초에 씌어져 그후『현대문학』,『살아있는 시』에 실린 뒤 세 번째 시집『모기장을 걷는다』(1985, 오상출판사)에 수록 되었다.
이 시를 쓰면서 나는 앞서 밝혔듯 한없는 울음을 울었다. 그것은 아마도 밤비가 주는 분위기와 창호지 방문을 여시고 머엉하니 빗속의 먼 허공을 바라보시는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외할머니 생각 끝에 내뱉으신 독백 등이 한데 어우러져 가슴을 저미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지막 연, 어머니의 기가 막힌 넋두리, 한숨섞인 그 독백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 육순의 어머니와 팔순의 외할머니를 통해 이땅의 모든 여인의 인간사를 시로써 서사화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강했지 않았나 싶다.
그후 나의 시는 80년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으로 오면서 정치적·사회적 상황 속에서 당시 시대가 내리꽂는 뜨거운 문초에 아파하며 그 대답으로 여섯 번째 시집『洪草』(1988, 문학세계사)를, 그리고 북녘시인에게 띄우는 형식의 화해와 통일의 조국을 갈망하는 일곱 번째 시집『진달래 산천』(1991, 황토)을 내놓았다. 두권 모두 연작시 형태로 발표된 시들로서 각각 한 가지 주제의식 속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이러한 작업은 지금도 변함없이 '땅시'연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詩想의 체험은 항상 새로운 의미를 갖게하고, 그것은 관념과 관습과 나태를 거부한다. 휠더린(Holderlin)의 말처럼 시인은 神이 내리는 번갯불을 끊임없이 쐬야하고, 제비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빠쁠로 네루다(P.Neruda)의 말처럼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기 마련이고, 새들의 비상을 보며 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시를 쓰는 순간, 살아 있는 나를 확인한다.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시는 곧 내게 있어 생명의 입맞춤이며 빛이며 목마른 희망이라는 신념으로 쓴다. 적어도 나에겐 고도의 기교나 말장난은 없다. 더더욱 어떤 아류나 유파나 유행성출혈병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역사 속에서의 시인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진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진솔한 삶의 역사를 새로운 언어로 쓰고자 지난한 몸짓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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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1915∼2000)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엄청 뭉클한 시다. 잊혔던, 닫혔던, 억눌렸던, 그리움의 감정을 덜컥 열어젖히는 시. 논리를 깨부수는 이 그리움의 해방구에서 우리는 가슴이 벅차다가, 벅차다가, 뻥 뚫린다.
닥친 일들, 풀어야 할 문제들, 고된 노동, 이별의 슬픔, 조락의 불안, 잠시 놓아두고 하늘을 보자. 비운 마음을 청명한 눈부심으로 가득 채우자. 인생에 진짜 좋은 건 모두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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