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남자를 돌려주고... 녀자를 돌려다오...
2017년 08월 17일 02시 14분  조회:1872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와 소통 

박찬일(시인) 

1. 

  시를 상대적 이미지 시, 절대적 이미지 시, 무의미시로 나눌 수 있다. 앞의 두 개는 수용미학상 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무의미시의 창작미학에는 수용미학상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상대적 이미지 시는 문덕수의 말을 빌면 수퍼비니언스 원리의 시이다. “시에서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1) ‘물리적 존재’는 토머스 S. 엘리엇이 1919년 「햄릿과 그의 문제들」(1919)이라는 에세이에서 처음으로 언명한 ‘객관적 상관물’과 같다. 

  김춘수는 상대적 이미지 시와 관념시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미묘한 차이는 있다. 파울 첼란의 두 편의 시를 예로 들어보자. 첼란의 유명한 「죽음의 푸가Todesfuge」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한낮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밤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사람이 갇히지 않는다 

“검은 우유”가 표상하는 것은 독가스였다. 유태인 대량학살에 사용된 독가스였다. 정확히 말하면 검은 우유는 ‘유태인 대량학살’을 표상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공중”은 경계를 지을 수 없는 곳, 그러므로 ‘자유로운 곳’[수용소 밖]을 표상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검은 우유와 공중은 물리적 존재로서, 혹은 객관적 상관물로서 독자와 소통하였다. 혹은 유태인 대량학살과 ‘자유로운 곳’은  물리적 존재로써, 혹은 객관적 상관물로써 독자와 소통하였다고 할 수 있다(검은 우유와 공중이 물리적 존재, 혹은 객관적 상관물이었다). 「죽음의 푸가」를 간단히 상대적 이미지 시라고 할 수 있다. 

  첼란의 다음 시 역시 상대적 이미지 시라고 할 수 있지만 물리적 존재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지 않고 관념을 통해서 관념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 관념시라고 할 수 있다. 순수 관념시는 상대적 이미지 시보다 소통을 더 어렵게 한다. 이 시에는 제목도 없다. 全文이다. 


  낯선 것이 

  우리를 그물로 가두고 있다 

  무상無常은 사정없이 

  우리를 꿰뚫고 쥐어오는데 




  헤아려 주렴 너는 나의 맥박을 

  네 안에서 내 것까지를 




  그러면 우리가 일어서리라 

  너를 향해 너를 넘고 

  나를 향해 나를 넘어서 




  무언가는 우리에게 

  피부처럼 낮과 밤을 입힌다 

  추락으로 끝내려는 

  더없이 집요한 유희를 위해 




“그물”, “맥박”, “피부”처럼 물리적 존재들이 있기는 하지만 “낯선 것”, “무상”, “너를 향해 너를 넘고/ 나를 향해 나를 넘어서”, “무언가”, “추락”, “유희”라는 관념어들이 이것들을 가리고 있다. 관념이 승하다고 해서 이 시가 폄하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시는 첼란의 존재론적 성찰을 담은 빼어난 시편에 속한다. 이런 시도 있고 저런 시도 있는 법이다. 

  상대적 이미지 시가 있다면 절대적 이미지 시가 있다. 




  날이 저물자 

  肋骨과 肋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고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 김춘수, <처용단장 제1부> 부분 




“거머리가 우는 소리”는 거머리가 우는 소리이고, “베고니아의 […] 붉은 꽃잎이” 진다는 것은 베고니아의 붉은 꽃잎이 진다는 것이다. “바다가 […] 새앙쥐같은 눈을 뜨고 있”다면 바다가 새앙쥐같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이육사의 「절정」 끝에 있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와 비교해보자. ‘강철로 된 무지개’는 겨울의 은유이자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라고 한 것은 식민지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알레고리는 1회적 알레고리, 역사적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용된 김춘수의 <처용단장 제1부>에서는 어떠한 알레고리도 찾을 수 없다. ‘저문 어느 날 거머리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베고니아의 붉은 꽃잎이 지는 것을 보았고, 새앙쥐같은 눈을 뜨고 있는 바다를 보았다’고 한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리듬만 남아있는 시, 이미지만 남아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절대적 이미지 시이다. 의미나 정보가 아닌, 절대적 이미지로 독자와 소통하려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절대적 이미지의 아름다움으로. 

  이 지점에서 김종삼의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북치는 소년」 전문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에 “어린 羊들”이 인쇄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 위에는 유리가루같은 것이 붙여져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진눈깨비처럼” “반짝”인다고 했을 것이다). 일견 가난한 아희, 서양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 어린 羊, 진눈깨비 등이 어떤 의미, 어떤 정보를 제공해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제목 “북치는 소년”은? ‘가난한 아희, 서양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 어린 羊, 진눈깨비’ 등과 ‘북치는 소년’의 관계는? ‘북치는 소년’과 끝의 두 연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바로 첫 연의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으로 보는 것이다. 이 시에는 시에 구조를 부여하려는 김종삼의 의도적 노력이 있었다. ‘제목’과 ‘끝 두 연’을 ‘내용 없는 아름다움’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김춘수의 경우 절대적 이미지의 이름이다. 

  상대적 이미지 시(혹은 관념시), 절대적 이미지 시가 있다면 무의미시가 있다. 무의미시는 앞서 말했지만 수용미학상 소통 불가능을 목표로 하는 시이다. 물론 의미, 정보들의 소통이다. 역시 김춘수가 이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돌려다오. 

  불이 앗아간 것, 하늘이 앗아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간 것, 

  女子가 앗아가고 男子가 앗아간 것, 

  앗아간 것을 돌려다오. 

  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 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 

  女子를 돌려주고 男子를 돌려다오. 

  쟁반 위에 별을 돌려다오. 

  ― <처용단장 제 2부> 부분 




“불이 앗아간 것, 하늘이 앗아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간 것”을 돌려달라고 하다가 “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 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라고 하고 있다. “女子가 앗아가고 男子가 […] 앗아간 것을 돌려다오”라고 하다가 “女子를 돌려주고 男子를 돌려다오”라고 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쟁반 위에 별을 돌려다오”라고 하고 있다. 김춘수의 말을 빌면 의미가 고정되려고 하면 그 의미를 다른 의미로서 가차 없이 처단하고 있다.2)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50 시는 식물과 동물이 말을 걸어 올때 써라... 2017-08-18 0 2237
649 동시로 엮는 어린 시절 색깔들... 2017-08-18 0 2248
648 시는 바람을 그리는 작업이다... 2017-08-17 0 2149
647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는 시간의 증언이며 자아의 확인이다... 2017-08-17 0 1752
646 "풍랑, 아무도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 2017-08-17 0 2028
645 나이테야, 나와 놀자... 2017-08-17 0 1926
644 좋은 시는 개성적인 비유와 상징성에서 환기된다... 2017-08-17 0 2014
643 제재를 잘 잡으면 좋은 시를 쓸수 있다... 2017-08-17 0 1909
642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기 위하여... 2017-08-17 0 2358
641 "한마디 시어때문에 몇달간 고민 고민해야"... 2017-08-17 0 1990
640 시인은 올바른 시어의 선택에 신경써야... 2017-08-17 0 1780
639 "아름다운 시를 두고 차마 죽을수도 없다"... 2017-08-17 0 1808
638 문학하는 일은 "헛것"에 대한 투자, 태양에 기대를 꽂는 일... 2017-08-17 0 1945
637 문학의 힘은 해답에 있지 않고 치렬한 질문에 있다... 2017-08-17 0 1955
636 남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시인은 참다운 시인이다... 2017-08-17 0 2098
635 좋은 음악은 시를 쓰는데 령혼의 교감적 밑바탕이 된다... 2017-08-17 0 1781
634 사람들 놀라게 시를 써라... 2017-08-17 0 1851
633 보여주는 시와 말하는 시... 2017-08-17 0 1881
632 소통 불능의 시는 난해한 시가 될수밖에... 2017-08-17 0 1748
631 산이 태양을 삼키다... 2017-08-17 0 1952
630 남자를 돌려주고... 녀자를 돌려다오... 2017-08-17 0 1872
629 문학은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2017-08-17 0 2025
628 시와 산문은 다르다... 2017-08-17 0 2252
627 글쓰는 재주는 비정상과 불당연에서 나온다... 2017-08-17 0 1942
626 하이퍼시 창작론 / 최룡관 2017-08-17 0 1934
625 "죽은 개는 짖어댄다"/ 박문희 2017-08-17 0 1790
624 안개꽃아, 나와 놀쟈... 2017-07-27 0 2119
623 시를 찾아가는 아홉갈래 길이 없다...? 있다...! 2017-07-27 0 1917
622 할미꽃아, 나와 놀쟈... 2017-07-27 0 2131
621 련금된 말과 상상과 이미지화된 말과 만나 만드는 시세계... 2017-07-27 0 1927
62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참새야, 나와 놀쟈... 2017-07-25 0 2159
619 5 + 7 + 5 = 17자 = 3행 2017-07-24 0 2157
618 나팔꽃아, 어서 빨리 띠띠따따 나팔 불며 나와 놀쟈... 2017-07-24 0 2135
617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만큼 멀까"... 2017-07-24 0 2103
616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017-07-24 0 2368
615 시인은 자아를 속박하고 있는 억압을 끊임없이 해방시켜야... 2017-07-24 0 1849
614 나무야, 네 나이테 좀 알려주렴... 2017-07-24 0 2284
613 시는 쉽고 평이한 언어로 독자의 감흥을 불러 일으켜야... 2017-07-24 0 2112
612 여름아, 네가 아무리 더워봐라 내가 아이스크림 사 먹는가... 2017-07-24 0 2416
611 모든 비유는 다 시가 될수는 있다?... 없다!... 2017-07-24 0 1814
‹처음  이전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