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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바람을 그리는 작업이다...
2017년 08월 17일 23시 57분  조회:2019  추천:0  작성자: 죽림
뼈아픈 별을 찾아서 /이승하 
- 아들에게 


취해서 귀가하는 어느 밤이 온다면 
집에 당도하기 전에 꼭 한 번 
하늘을 보아라 별이 있느냐? 
별이 한두 개밖에 없는 
도회지의 하늘이건 
별이 지천으로 돋아난 
여행지의 하늘이건 
뼈아픈 별 몇이서 
너를 찾고 있을 테니 
그 별에게 눈 맞춘 다음에야 
벨을 눌러야 한다 
잠이 들어야 한다 아들아 
천상의 별을 찾는다고 네 발 밑에서 
지렁이나 개미가 죽게 하지 말기를 
통증을 느끼는 것들을 가엾어하지 않는다면 
네 목숨의 값어치는 그 미물과 같지 
아들아 네 등뒤로 떨어지며 무수히 죽어간 
별똥별의 이름은 없어 뼈아픈 별이기에 
영원히 반짝이지 않는단다. 


수상문학상 : 2002년 『뼈아픈 별을 찾아서』시집으로 제2회 《지훈문학상》수상
 

 

 

 

 

 

 

젊은 별에게 / 이승하 


다시 밤이다 
시야에 출렁이는 겨울 별자리 어디 
자전과 공전의 질서를 깨뜨릴 수 없어 고뇌하는 
젊은 별이 있다면, 지금 나에게 신호하라 
내 짙푸른 꿈 하나 쏘아 올릴 터이니 

광년의 거리 밖 너의 괴로움과 
내 바람의 외투를 걸치고 길 나서던 날들의 절망감이 
만나서 녹아 내릴 수 있다면 
내 아무런 확신 없이 떠돌던 삶이 
네 울분으로 들끓는 코로나 
백만 도가 넘는 뜨거움을 
만나서 녹아 내릴 수 있다면 

고생대, 중생대, 참 얼마나 많은 화석된 시간을 지나 
겨울 별자리와 나는 이 밤에 
이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대좌하고 있는가, 밤마다 
내 참 얼마나 많은 별에다 
기성(旣成)에 대한 증오의 화살을 쏘아 올렸던가 
어디를 가도 안주할 곳은 없었으니 

멀고 먼 시간의 바다인 황도 
12궁이 가리키는 세상을 향해 떠났었다, 그날 이후 
내 죄악의 유혹에 얼마나 자주 굴복했던가 
소리내어 울면서 버린 동정을 
얼마나 오래 저주했던가 
나보다 더 오래 질서이신 신을 저주한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싶다, 그를 힘껏 포옹하리 

지금은 밤이다, 끝 모를 어둠 
몸부림치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밤이지, 시작 모를 어둠이 
지상에 가득 찰 종말의 날이 
내 생애의 어느 날이 될지라도 
어둠 속에서 표류하는 젊은 별이여 
너를 축복하리, 환하게 웃으며 반기리, 환히 
환희의 날이 너와 나의 사후에 올지라도 

왜 이리 두려울까, 두렵지만 지금은 밤이니 
질서에 길들기를 거부하는 젊은 별이여 
희뿌연 새벽이 오기 전에 
내게 신호하라, 내 온몸으로 뜨겁게 
뜨겁게 너와 결합하고 싶다. 

<제8회 율목문학상 수상시집 표제작>

 

 

 

 

 

 

 

짐진 자를 위하여 / 이승하 


너의 짐을 져주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를 
너는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고통에 짓눌려 딱정벌레처럼 위축되어 
이게, 기어가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촉각 잘린 귀뚜라미처럼 
관절염 앓는 어머니처럼 
나는 살아가고 있는데 
네가 캄캄한 밤에 돌이 되어 
내 앞에 엎드리면 
나는 너를 지고 
너의 짐까지 지고 
어디쯤에 이르러 숨돌려야 할까 
울음 참으며 당도한 곳이 막다른 골목이면 
울음을 그냥 터뜨려야 하는지 
돌아서서 다시 걷기 시작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기 때문에 무력감에 절망하고 
공포에 질려 부르짖기도 하지만 
기적을 꿈꾸진 않으리라 
부끄러움에 떨며 받아들이리라 너의 짐을 
나의 짐 위에 너의 짐을 얹어 
더 어두운 세계를 찾아서 갈 터이니 
자거라 지금은 잠시 자두어야 할 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수상시집 수록작>

 

 

 

 

 

 

 

 

바람 그리기 / 이승하 


황혼의 감천*으로 너를 보낸다 누이야 

네가 혼자 사분거리다 냇둑을 뛰어가면 
다옥한 네 머리카락 황금빛으로 빛났다 
망각의 시내 이편에서 나는 지켜보았다, 너는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두려움 하나 없이 
오롯이 옷을 벗었다 
하나씩 발 아래 옷이 쌓이면 
도리암직한 네 몸 청동빛이 났다 
그때 감천은 무르춤하였고, 
깊이깊이 한숨짓는 바람의 다발 
울음 참고 나는 오래 지켜보아야 했다 
그 무력했던 날들 

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월경이 멎고, 식욕을 잃었다 
낮에 웃고 밤에 바장이고 
혼자 웃고 혼자 흐느끼고 
잘 쉬어라 쉬어 
네 곁에서 나직이 휘파람 불면 
누이는 일어나 두 팔 아느작거리며 
집을 나섰다 마을을 나서 
혼자 가만가만 웃다 바람이 이끌면 
네 혼을 불러내는 정든 시내 
그 냇둑에 서서 바람을 그리겠다고 
바람의 매무새를 그리겠다고 

감천아, 감천의 바람아, 착란의 이 땅아 
내 누이는 영원히 어린애란다 
나와 누이를 연결시켜주는 끈은 없단다 

버려진 내 누이, 너는 아직 곱게도 미쳐…… 

*감천(甘川):김천시 외곽을 흐르는 시내.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수상시집 수록작>

 

 

 

 

 

 

 

畵家 뭉크와 함께 / 이승하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同化야 도 童話의 세계야 
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집짓기 / 이승하 


비어 있는 들판에 
돌을 실어 나른다 
오래 가꾸어온 
몇 조각 꿈도 실어 나른다 
갈 데 없던 시절의 
공연한 헛기침들 
피붙이 같은 材木에게 
이제는 체온도 전하여본다 

널빤지를 딛고 올라서면 
세상의 한쪽은 내 것이 될까 
여백의 하늘이 곁에 와 설까 
한없이 무거워져갈 
동시대인의 작업복 
내가 띄운 먹줄은 
누구의 줄에 가 닿을 건지……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리면 너도 쉴 수 있는 곳 
창을 내리라 아침 알리는 사랑의 빛 
보잘것없는 이 터전에도 
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야지 
그러나 언젠가는 
무너진다 무너져내려 
먼지가 될 나와 우리와 
모두의 험한 생계 

비어 있는 들판에 
다시 기둥을 세운다 
먼발치에서 흘긋 보면 
조붓하고 허약한 공간이지만 
시멘트 반죽마다 들이는 구슬땀, 
또 한 번의 진통을 
기억하기 위하여. 


<1981년 {시문학} 대학문학상 당선작>

 

 

 

 

 

 

늘 혼자였던 섬 / 이승하 


혼자 잠든 긴 밤들이 있었다 
바람 소리 물결 소리 자장가 삼아 
앓아도 혼자 앓았던 많은 밤들이 있었다 

독도를 삼키려 하지 말아라 
독도를 내 것이라 말하지 말아라 

내 돌품에 뿌리내린 식물들이 알고 있다 
내 돌머리에 깃든 새들이 알고 있다 
내 돌밭에 기어다니는 바닷게들이 다 안다 

나 혼자서 
밤에는 동해 저 큰 바다 다스렸고 
낮에는 저 뜨거운 태양과 싸웠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죽도가 아닌 독도 
독도는 온전히 내 것이로다

 

 

 

 

 

 

 

찬양 아침 / 이승하(李昇夏, 1960 ~ ) 


발작이 멎고……고비를 넘겼다 

밤이 물러가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창 열고 하늘의 끄트머리를 본다 
한 뼘의 하늘이 파들파들 떨고 있다 
일찍 일어난 새의 무리가 
먼동을 어슬어슬 트게 한다 

갈증 날 때 마시는 물처럼 차디찬 공기 
환호하며 뜀박질하는 공기의 입자들 
수억의 폐포를 낱낱이 일깨우며 
생명이 생명인 것을 확인케 한다 

머리맡에 있는 몇 송이 꽃 
힘겨운 밤을 함께 넘기느라 
고개 푹 수그리고 있다 
돋을볕 들자 그대 두 눈 가득 고인 눈물과 
이마 가득 돋아난 땀방울이 반짝인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침이다 
너와 나의 머리 뒤로 놀빛이 번지는 
이 경건한 아침을 위해 
나 이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살아난 것이다. 

ㅡ이승하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사, 2005)에서

 

 

//

 

 
 

상처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가다 보았다

 

어머니가 가볍다

 

  아이고― 
  어머니는 이 한마디를 하고
  내 등에 업히셨다

 

  경의선도 복구 공사가 한창인데
  성당 가는 길에 넘어져
  척추를 다치신 어머니

 

  받아내는 동안 이렇게 작아진
  어머니의 몸 업고 보니
  가볍다 뜻밖에도 딱딱하다

 

  이제 보니 승하가 장골이네
  내 아픈 니를 업고 그때……

  어무이, 그 얘기 좀 고만 하소

 

  똥오줌 누고 싶을 때 못 눠
  물기 기름기 다 빠진 70년 세월 업으니
  내 등이 금방 따뜻해진다.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김천 우시장 탁배기 맛 
  
  이전 맛 같지 않구마  
  소 팔러 우시장에 나온 아부지를 따라와 
  승하야 니도 한 잔 묵거라 
  뜨물 같은 탁배기 한두 잔 얻어 마시던 
  그 술맛은 어데로 가삐맀는지 
  씹다 더 달싹해졌는데 더 씹다 
  어무이 치료비 마련할라꼬 
  큰맘 묵고 끌고 나온 한우 암소 
  하이고 나 원 참 
  200만 원도 안 준대여 
  또 소값 파동이래여? 
  소고기, 비육우 무데기로 수입한 탓이래여? 
  이번엔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이라네 
  내도 84년 폭락 때 죽은 뒷집 박씨 아저씨처럼 
  솔랑은 이 우시장에 두고 가까 
  우시장에 소 내삐리고 와 
  농약 묵고 탁 죽어삐리까 
  소야, 니는 죽어 괴기 될 자격이 없고 
  내는 살아 소 키울 자격이 없다 칸다 
  소야, 내 손으로 널 잡아먹긴 싫었는데 
  내가 널 백지 델꼬 왔다 
  에라이 속이 씨려 속 달랠라꼬 
  마시는 술맛이 왜 이 모양이고 
  움메에 우는 소 눈을 쳐다보며 
  우시장 한 켠에 앉아서 마시는 탁배기

 

어느 갓장이에게 들은 말 
  
  뭐 부끄럽지 않소 
  10년을 배와 재우 손에 익힌 것이 
  밤일꺼지 해가민서 한 달에 
  재우 두세 개 맨들어내는 것이 
  뭐 부끄럽지 않소이다 
  말총으로 날줄을, 쇠꼬리털로 씨줄을 
  절이고 절인 걸 또 절이고 절여 
  날줄 오백 열두 줄을 맨들기꺼지 
  기양 맨드는 기 내 일이라 
  눈 어둡어지는 것도 몰랐지만서도 
  배우로 온 사람 장사하겠다고 가고  
  공장에 다니는 기 낫겠다고 떠나고 
  이젠 늙은 마누라가 내 조수여 
  그래 자석새끼들한테 안 가르쳐준 것이 
  부끄럽다면 하냥 부끄럽소 
  개명한 시상에서 갓을 누가 쓴다냐 
  예를 누가 지킨다냐 
  조선色을 누가 돌본다냐 
  날 보로 왔으니 시인 양반 
  노래나 한 곡조 불러줌세 
  울 아배한테 배운 갓일 노래

 

      한 코 떠라 
      두 코 떠라 
      세 코 떠라 
      속히 떠라 
      
      양태 뜨는 소동들아  
      한 코 떠서 어머님 젖값 갚고 
      두 코 떠서 아버님 술값 갚고

 

 

귀향 

     이승하

그리 멀지도 않건만 
고향으로 가는 일이 참으로 힘들구나 

허나, 세상의 모든 길은 
저마다의 고향으로 나 있는 법 
그대 태어난 곳 자라난 곳 
꿈을 키웠던 그곳 
사춘기 시절엔 줄곧 떠나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대 고향을 버리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지 
연어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데 

한가위로다 
타향의 하늘에서도 이국의 하늘에서도 
두둥실 떠 있는 원반형의 달 
어머니 등에 업혀 쳐다보았던 달 
사랑을 잃고 술에 취해서 쳐다보았던 달 
오늘밤 저 달은 한껏 발그레해지리라 

인생행로 걸어도 달려도 
어느 길 할 것 없이 험하기만 했다 
망망대해 달려도 멈추어도 
어느 뱃길 할 것 없이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나 있는 길에서는 
지친 새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그대 탯줄이 거기 묻혀 있기에 
그대만을 기다리는 노모가 있기에 

싸늘히 식은 가슴 지닌 이들이 
고향에 돌아온 날은 왁자지껄하리라 
따뜻한 고봉밥 넘치는 술잔 
사투리가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친척 아이 이름을 묻는다 
잃어버린 내 별명을 여기서 찾는다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이여 
이번 한가위만 같아라. 

 

돌아오지 않는 새들을 기다리며

          이승하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많은 물떼새들
왕눈물떼새, 검은가슴물떼새, 꼬리물떼새, 댕기물떼새......
수염 돋은 개개비란 새도 있었네
물떼새 알을 쥐고 돌아오던 어린 날의 낙동강
내 오늘 한마리 물고기처럼 回遊해 왔네
아무것도 없네 그날의 기억을 소생시켜주는 것이라고는
나루터 사라진 강변에는 커다란 굴뚝이 도열, 천천히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네, 천천히
대지를 버린 내 영혼이 천천히 황폐해 가듯

 

시간에게 묻는다 

         이승하 

시간이여
무수한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네가 필요한 것이냐
무수한 생명체를 소멸시키는 데
네가 필요한 것이냐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되느냐
영원히 나누어져 순간들이 되느냐
가뭇없이 흘러만 가느냐
언제 출발하여 어디까지?

시간이여
고통에도 무슨 뜻이 있느냐
사후 세계에 아무런 고통이 없다면
천국이 아니냐 혹 열반이 아니냐
천국과 열반이 아닐지라도
오라 고통이여
인간들의 오랜 벗,
지층을 뚫고 별을 헤아리며
화석을 부수고 미라를 만들며.

 

어머니 발톱을 깎으며


유강희

 


햇빛도 뱃속까지 환한 봄날
마루에 앉아 어머니 발톱을 깎는다


아기처럼 좋아서
나에게 온전히 발을 맡기고 있는
이 낯선 짐승을 대체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싸전다리 남부시장에서
천 원 주고 산 아이들 로봇 신발
구멍 난 그걸 아직도 싣고 다니는
알처럼 쪼그라든 어머니의 작은 발,


그러나 
짜개지고, 터지고, 뭉툭해지고, 굽은
발톱들이 너무도 가볍게
툭, 툭, 튀어 멀리 날아갈 때마다
나는 화가 난다


저 왱왱거리는 발톱으로
한평생 새끼들 입에 물어 날랐을
그 뜨건 밥알들 생각하면
그걸 철없이 받아 삼킨 날들 생각하면

 

 

 

현장비평가가 뽑은『올해의 좋은시』(현대문학, 2009)

 

 

-----------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던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 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시집『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문학사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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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안개꽃아, 나와 놀쟈... 2017-07-27 0 2051
623 시를 찾아가는 아홉갈래 길이 없다...? 있다...! 2017-07-27 0 1858
622 할미꽃아, 나와 놀쟈... 2017-07-27 0 2076
621 련금된 말과 상상과 이미지화된 말과 만나 만드는 시세계... 2017-07-27 0 1881
62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참새야, 나와 놀쟈... 2017-07-25 0 2098
619 5 + 7 + 5 = 17자 = 3행 2017-07-24 0 2084
618 나팔꽃아, 어서 빨리 띠띠따따 나팔 불며 나와 놀쟈... 2017-07-24 0 2058
617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만큼 멀까"... 2017-07-24 0 2052
616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017-07-24 0 2310
615 시인은 자아를 속박하고 있는 억압을 끊임없이 해방시켜야... 2017-07-24 0 1787
614 나무야, 네 나이테 좀 알려주렴... 2017-07-24 0 2226
613 시는 쉽고 평이한 언어로 독자의 감흥을 불러 일으켜야... 2017-07-24 0 2039
612 여름아, 네가 아무리 더워봐라 내가 아이스크림 사 먹는가... 2017-07-24 0 2358
611 모든 비유는 다 시가 될수는 있다?... 없다!... 2017-07-24 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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